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3)화 (3/159)

#3

먼저 제게 접근한 청신.

호감 가득한 태도를 취하고, 난해한 설계도를 보며 실현을 입에 담은 존재. 그렇다는 것은….

“하, 진짜 예뻐 죽겠네….”

귓가에 들려온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도유는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제 곁에 있는 청신밖에 없다.

청신과 눈이 마주치니 그가 왜 그러냐는 듯 눈을 깜빡이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이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살며시 흔들린다.

“미안한데, 혹시 방금 뭐라고 말했어?”

“네?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선배.”

정말 모르겠다는 듯 눈까지 깜빡이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도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일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였다. 딱 청신이 목소리를 낮게 깔면 그런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봐.”

그러나 도유는 의심을 접었다. 청신이 도유에게 예뻐 죽겠다고 말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처음 만난 사이다. 도유는 그저, 지난 한 달 하고도 일주일간의 고생이 지난했던 까닭에 그동안 누적된 피로가 지금 이렇게 나타나는구나 하고 흘려보냈다.

“그보다 선배.”

“응?”

“듣자 하니 다른 후배들에게는 같이 졸업 작품을 해 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하셨던데, 제게는 아무 말씀 없으시네요.”

청신의 말이 뜻하는 건 자명했다. 도유는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랑 같이 졸업 작품 해 줄 거야…?”

“물론이죠. 진심으로, 제가 하고 싶은데요. 선배 파트너.”

이렇게 졸업 작품을 함께 만들겠다는 뜻을 결연하게 밝히는 청신의 태도는, 도유가 그동안 애타게 찾던 이의 모습이었다.

감격에 벅차오른 도유는 너드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행동을 하고 말았다.

“서, 선배?”

“정말 고마워!”

청신의 손을 양손으로 꼭 잡은 도유는 활짝 웃었다. 그래 봤자 마스크와 뿔테 안경으로 가려져 있어 청신에겐 보이지 않았다.

청신은 도유의 반짝거리는 눈과 제 손을 잡은 손을 넋 놓은 채로 번갈아 보았다. 미인의 뺨이 살며시 달아오른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도유는 밝은 어조로 말했다.

“잘 부탁해!”

“아….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멍하니 대답하는 청신을 보며, 도유는 속으로 확신했다.

‘범인이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것이 확실하다면, 아마 그는 사람의 호감을 사기 쉬운 매력적인 얼굴에 타인을 조종하기 위한 연기도 쉽게 해내는 인간이겠죠.’

아카데미에 잠입하기 전, 성희유 팀장이 해 주었던 조언에 딱 부합하는 자가 바로 이청신이었다.

동시에 그간 카단 마법사 협회의 특수부 일을 해 오며 헤쳐 왔던 많은 현장에서의 경험이 도유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이 녀석이 바로 그동안 카단에서 찾았던 ‘범법자’라고.

그렇기에 도유는 청신의 손을 꼭 잡았다.

윤슬처럼 반짝거리는 눈으로, 어쩐지 뺨이 더 붉어진 청신을 보며 결심했다.

반드시 이 녀석의 비밀을 파헤쳐 밝혀내고 본부로 복귀하겠다고.

*

청신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약속을 잡고 잠입용 숙소에 돌아온 도유는 그날 신나서 성희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드디어 꼬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확신하기 전까지는 섣불리 행동하지 마세요. ㅎㅎ]

팀장이 사용하는 자음 두 개, 그것도 ‘ㅎ’이 반복되어 이어지니 도유는 소름이 돋았다. 저 ‘ㅎ’에 함축된 의미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건 나대다가 멍청하게 실수하지 말라는 뜻이자, 겨우 잡은 꼬리를 놓치면 직접 죽여 버리겠다는 은유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도유는 들떴던 것도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겸손한 자세로 답변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다음 날, 청신과 약속한 시간이 되기도 전에 그와 만나기로 한 카페에 뛰다시피 걸어갔다. 약속 50분 전이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가방 속에 챙긴 녹음기와 소형 카메라를 설치하고 마법사인 청신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처리를 해야 할 것까지 생각하니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세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직원이 반갑게 도유를 맞이했다. 도유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어 인사하려다가, 너드는 목소리를 내서 대답하지 않는다는 [너드 매뉴얼] 책의 내용을 떠올리고 고개만 까닥였다. 그리고 녹음기와 카메라를 설치하기에 적합한 곳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도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은 오전 11시. 현재 시간은 오전 10시 13분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11시에 보여야 할 얼굴이 벌써부터 보인다.

“도유 선배!”

활기찬 얼굴로 도유를 부르는 목소리에, 그렇지 않아도 청신을 흘끔거리고 있던 이들이 도유를 보았다. 도유는 닭이 모이 쪼듯 고개를 푹 숙이며 청신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선배.”

어제와 똑같은 인사지만 청신의 목소리는 한결 밝았다. 이제 보니 목소리뿐만이 아니다. 아카데미에서도 빛이 나는 청신이지만 오늘은 유독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도유는 청신의 맞은편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내가 10시에 만나자고 했어?”

“아뇨. 11시에 만나자고 하셨죠.”

“그런데 벌써….”

벌써부터 와 있냐고, 너 그렇게 한가하냐고, 역시 너가 범인이기 때문에 먹잇감을 물어 씹으려고 그러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도유는 말을 삼켰다.

너드는 질문이 많으면 안 된다. 꼬리를 잡기 전에 정체를 들켜 놓쳐 버리면 성희유가 제 목을 따 버릴 것을 알기에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선배가 보고 싶어서요. 선배도 저 보고 싶어서 벌써 나온 거 아녜요?”

“…….”

왜 이렇게 달콤하게 웃는 걸까?

턱까지 양손으로 괴고 방긋 웃는 청신의 모습에 도유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를 관찰하는 시선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와중에 머릿속에서는 청신이 저처럼 녹음기와 카메라라도 설치하러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요. 앉으세요, 선배.”

“…응.”

“주문은 뭐로 하시겠어요? 커피 좋아하시면 커피 어떠세요? 여기 블렌딩 꽤 괜찮은 것 같아요.”

“내가 커피 못 마셔서….”

못 마시지는 않지만 안 좋아한다. 쓰고 검은 물을 굳이 돈 주고 사 먹고 싶진 않았기에 도유가 거절하자 청신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선배는 커피를 못 마시는군요. 그럼 단 음료 좋아해요?”

“아니. 단것도 별로 안 좋아해.”

사실은 매일같이 가방에 사탕을 넣어두고 먹을 정도로 단것을 좋아했지만, 도유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을 내뱉었다.

“그럼 차를 좋아하시려나요?”

“응….”

이상하다. 도유는 그렇게 생각했다.

청신은 제가 한눈을 팔면 당장에라도 필기를 할 것 같은 기세였다.

과거 사이비 종교들이 새로운 타깃에게 접근할 때 상대방의 호감을 사기 위해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부터 파고들었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청신의 질문은 점점 깊이가 깊어져 갔다.

“차라면 홍차? 허브차? 전통차? 어떤 것을 좋아하시나요?”

“차라면 안 가리고 모두 좋아해.”

“그렇군요. 그래도 그중 선호하는 게 있다면요?”

“으음, 홍차…?”

“홍차를 좋아하시는군요. 그럼 그중에서 어떤 홍차를 좋아하시나요? 다즐링, 아삼, 얼그레이, 기문, 우바같이 홍차 종류도 정말 많잖아요. 생산지도 다르고, 수확 시기도 조금씩 다르고. 마실 때 스트레이트 티로 마시나요? 아니면 밀크티? 아. 선호하시는 브랜드가 있나요?”

대충 둘러댔던 건데 이렇게 질문이 돌아올 줄 몰랐다.

도유는 오늘 제 쪽에서 은근슬쩍 청신을 흔들어 볼 생각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청신이 먼저 도유를 뒤흔들고 있으니까.

사실 도유는 홍차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아는 거라고는 얼그레이뿐이다.

그것도 자세히 아는 게 아니었다. 같은 특수부 동료가 얼그레이를 좋아해서 얼그레이를 베이스로 한 온갖 식품을 먹어 봤을 뿐, 솔직히 차는 다 똑같은 물맛이라고 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도유였다.

“얼그레이…. 좋아해.”

“아, 그렇군요. 저도 좋아해요, 선배.”

더 질문을 쏟아부을 거라고 생각했던 청신은 다행히 도유에게 별다른 질문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제 얼굴에 퍽 잘 어울리는 어여쁜 미소를 띠었을 뿐이다. 도유는 잠시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머뭇거리며 입을 벌렸다.

“…그렇구나. 너도 차 좋아하는구나.”

“네. 좋아해요, 선배.”

유독 ‘좋아해요, 선배.’라는 말에 강세를 주는 느낌이다.

도대체 뭘까? 도유는 미묘한 이질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 행동에 청신이 턱에 힘을 주는 것을 보고 더더욱 의아해졌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가 없기에 도유는 메뉴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이걸로 할게. 너는 아직 남아 있네.”

“네. 선배, 밀크티 맞죠?”

“응. 잠시 다녀올게.”

“아녜요, 앉아 계세요. 제가 다녀올게요.”

“아니 괜찮은데-.”

거절할 틈도 없이 청신이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유가 따라 일어서려고 하자 청신이 고개를 저었다. 잠시 망설이던 도유는 들썩였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이고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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