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다정하게 묻는 성희유의 어조에 도유는 고민하다가 자신 없는 어조로 답했다.
“……마법 외에는 제가 지닌 지식이 밑바닥이라서…?”
임무에서 실수를 할 때마다 성희유에게 갈굼 비슷한 조언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탓에 도유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성희유는 그런 도유를 안쓰럽게 보았다. 제가 원인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자학하지 말고요. 그런 이유도 아닙니다. 우리는 범법자가 재학 중인 학생 중에 있다고 보거든요. 피해자들의 공통점, 기억하시나요?”
“네.”
인적성 검사에서 유사성을 보인 피해자들은 모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게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교우 관계가 활발하지 않고 대체로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때가 긴 사람들이었다. 성희유가 일갈하듯 말했다.
“흔히들 ‘너드’라고 말하죠.”
“팀장님, 그런 표현은 피해자들이 조금….”
“본인들이 한 말을 그대로 옮긴 겁니다. 걱정 말아요.”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니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성희유의 성격을 알고 있는 도유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희유가 은근히 인성이 험악한 걸 한두 해 보나.
“그럼 팀장님. 혹시나 해서 묻는 겁니다만. 잠입할 때의 제 역할이 뭡니까?”
“학생입니다. 명확하게는 너드죠.”
“네?”
도유는 멍하니 되물었다.
성희유는 도유의 반응을 말끔하게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학생으로 잠입해서 너드인 척하고, 어떻게든 범법자의 눈길을 끌어 보세요. 걱정 말아요. 7학년으로 잠입해서 졸업 작품을 핑계로 범법자가 흥미를 보일 만한 마법 수식을 보여 주면 되는 일이니까.”
“팀장님 제가 두 마디만 드리겠습니다.”
“네, 말해 봐요. 도유 씨.”
“첫 번째로 제가 아는 너드는 졸업 작품 때문에라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다니는 존재가 아니며, 두 번째로 저는 27살 이하가 아니라 32살입니다.”
“첫 번째. 졸업이 걸린 학생은 성격에 관계없이 그걸 위해서라면 불길조차 건너는 용감무쌍한 존재입니다. 두 번째. 걱정 마요, 도유 씨. 도유 씨 그렇게 안 삭았으니까. 다만 눈에 띄는 얼굴이라, 인상을 흐릿하게 하는 안경이랑 마스크를 줄 테니까 쓰고 다녀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아니, 도유는 저를 보며 웃는 성희유 팀장의 눈빛을 보며 이 이상 반론을 제기했다가는 더 엄청난 조건을 얹어 버릴 것을 눈치챘다. 도유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복종의 뜻을 밝혔다.
이렇게 도유는 32살이라는 나이로, 27세 이하의 파릇파릇한 새싹들의 틈에 섞여 범법자를 끌어내기 위해 설계도를 내밀고 다니는 이상한 너드가 되었다.
이제 슬슬 교내에 소문이 났는지, 도유는 저와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멀찍이 피해 가는 학생들을 보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정말 하기 싫었다.
하지만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고 해도 직장인은 상부에서 명령하면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게 삽만 가지고 산을 파내라는 명령이든, 32살의 다 큰 남자가 20대 초중반의 학생들 사이에 잠입하라는 명령이든 따라야 하는 것이다.
서도유는 월급으로 먹고사는 가녀린 직장인이었으니까.
*
잠입한 지 한 달하고도 일주일째.
역시나 오늘도 허탕이다.
마치 역병에게서 달아나듯, 대화가 끝나자마자 후다닥 뛰어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도유는 마스크 아래로 씁쓸하게 웃었다.
오늘도 본부에 복귀할 수 없다.
잠입 임무의 특성상 단서를 잡을 때까지 본부에 연락을 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보고차 짧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만 허락될 뿐이다.
도유는 하루라도 빨리 본부에 가고 싶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본부에서 제공하는 밥이 맛있었기 때문이다.
이 아카데미의 밥은 정말 맛이 없었다. 근처 식당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입 중인 도유에게 주어진 주거지 근처의 식당도 맛이 없었다.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한 지 한 달하고도 일주일이 되자 슬슬 도유는 성희유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원망한다는 걸 본인에게 들키면 살해당할 것이 분명하기에 여느 때처럼 속으로 꾹꾹 삼키며,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설계도를 주섬주섬 접기 시작했다.
‘저녁 뭐 먹지?’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며 설계도를 가방에 넣으려고 할 때,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상대방의 얼굴을 본 순간 도유는 멈칫했다. 와중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면 놀란 제 얼굴을 훤히 보이고 말았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선배.”
도유는 제게 말을 건 이 미남자의 신상 명세보다, 보고서에 누군가가 이 미남자의 웃음을 ‘그 어떤 단단한 얼음도 한 번에 완전히 녹아내리게 할 웃음’이라고 적어 놓은 코멘트를 먼저 떠올렸다.
말 그대로였다.
남자는 도유도 잠시 움찔할 정도로 확실히 잘난 얼굴이었다.
도유는 이 남자가 제게 말을 건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남자는 이 아카데미에서 ‘스타’라 불리는 존재였다.
너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빛나는 샛별, 태양.
성별, 학과, 성격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호감을 한 몸에 받는 외모와 능력, 부까지 갖춘 우상 같은 존재, 이청신.
잘생겼고, 집안에 돈이 많다는 소문과 뛰어난 머리에 마법사 중에서도 가장 축복받았다는 순도 높은 마력을 몸에 지닌 이가 바로 눈앞의 존재였다.
하이틴 영화에서는 보통 이런 스타와 너드가 엮이기도 했지만, 너드인 척하는 도유는 제게 먼저 접근한 아카데미의 스타인 청신을 의심쩍은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놓고 보지는 않았다.
“나, 나한테… 말 건 거야?”
“네. 선배 부른 거 맞아요. 도유 선배.”
당황했다는 것을 열심히 티 내며 가방을 꽉 움켜쥐는 도유의 언행에 청신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유는 뿔테 안경 너머로 흘끗흘끗 청신의 표정, 눈 깜빡임, 약간의 움직임 등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그 변화를 알아차렸다.
“나를, 알아?”
“그럼요. 제 동기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졸업 작품을 도와줄 마법사를 찾고 계신다고요. 혹시 구하셨어요?”
“아니….”
도유는 어물쩍 대답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물음표를 수백 개 새겼다. 청신이 도유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졸업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상황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배.”
청신이 손바닥을 위로 향해서 손을 내밀었다. 도유는 눈을 깜빡이며 청신의 손을 멀뚱히 보다가 다시 청신의 얼굴을 보았다. 청신이 도유를 향해 생긋 웃어 보였다.
호감 가득한 웃음은 보는 것만으로도 입 안이 달았지만, 도유는 다른 사람처럼 그 얼굴에 홀리지 않았다. 오히려 청신을 향한 의심만 한 겹 더해졌다.
지금까지 이 아카데미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도유를 질색한 표정으로 보거나, 짜증이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거나, 비웃음을 짓거나, 동정 어린 눈으로만 보았다.
그런데 이청신은 그들과는 정반대의 호감 어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이들은 보통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도유는 긴장으로 뻣뻣해지려는 몸에서 애써 힘을 풀었다.
“선배. 설계도, 제가 잠시 봐도 될까요?”
이렇게 먼저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속으로 당황하던 도유는 곧장 정신을 차리고 청신에게 설계도를 건네주었다.
도유가 이 아카데미에 잠입하기 전, 약 이틀 동안 범법자가 관심을 보일 만한 마법과 그 마법을 도구에 새겨 넣는 방식에 대해 열심히 그려 놓은 설계도였다.
도유는 제가 그린 설계도에 집중하기 시작한 청신의 표정을 집요하게 관찰했다.
“선배.”
“으응?!”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제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던 것은 아닌가 걱정하며, 도유가 황급히 고개를 푹 숙였다. 너드는 아카데미의 스타라고 불리는 이 인기 있는 놈과 똑바로 눈을 마주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설계도, 선배가 그린 건가요?”
어쩐지 청신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있다. 도유는 그간 학생들이 보였던 반응과 그때마다 속으로 서러웠던 감정이 순식간에 북받쳐 올라 저도 모르게 외쳤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망상 따위가 아니야…! 충분히 실현할 수 있어!”
외친 직후에 후회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더 이상한 놈 취급을 당할 뿐이다.
동시에 본부로 복귀해 식당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멀어지고 말았다는걸 깨달은 도유는 덜 감정적으로 말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도유가 속으로 후회하며 사과하려던 순간 청신이 말했다.
“망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정한 목소리였다. 도유가 고개를 번뜩 쳐들었다. 청신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어 나갔다.
“선배 말씀대로 설계도도 그렇고, 옆에 적어 놓은 이론도 그렇고…. 이 완성도라면, 충분히 실현이 가능하죠.”
위로하는 말이었지만 도유는 청신의 말에 더 당혹스러워졌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토끼처럼 눈만 깜빡이며 청신을 보았다.
현재 아카데미에서 실행하는 수업의 수준만으로는 도유가 직접 그린 설계도는 난해함 그 자체이며 이해는 물론 구현도 할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청신은 ‘가능’하다고 했다. 도유의 머릿속에서 생각이 뿌리처럼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