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너드가 수사하는 법 (1)화 (1/159)

#1

“저, 저기.”

남학생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뒤돌아보았다.

목소리의 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남학생을 부른 이가 최근 아카데미 내에서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잘못 봤나 싶었지만, 소문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모습에 남학생은 빠르게 자리를 뜨고 싶어졌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줘!”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기색을 읽었는지 절박한 목소리로 붙드는 까닭에 남학생은 결국 상대방을 향해 완전히 몸을 돌렸다.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소문의 주인공을 보며 남학생은 동기들이 떠들어 대던 말을 떠올렸다.

‘한 달 전부터였지, 아마? 그 너드.’

‘맞아! 진짜, 머리는 관리도 안 하는지 부스스하지, 유치한 굵은 뿔테 안경에 맨날 똑같은 체크 남방인 것도 웃긴데 이 계절에 검은 마스크까지 끼고 다녀.’

‘그래도 행색은 그나마 낫지 않니? 그 미친 ‘설계도’가 제일 웃기지.’

‘아, 너도 봤어?’

‘그럼. 그 너드, 아무리 봐도 망상증 환자야. 마법사도 아닌데 마나 감응력만 높은 일반인들이 회까닥하기 좋다던데, 딱 그 너드가 그 경우 아냐?’

‘6년간 휴학했다는 것도 그 이유일지 모르지!’

일명 ‘망상증 있는 너드’. 그 너드는 한 달 전부터 지나가는 학부생을 아무나 붙잡고 지금처럼 말을 걸었다.

“네.”

“혹시, 어느 과 몇 학년이야…?”

질문을 하는 목소리에는 자신이 없다.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하지만 남학생은 이미 이 너드의 대화 순서에 대해 동기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은 상태였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첫 번째. 이 너드는 부르는 목소리에 대답하면 학과와 학년을 묻는다.

“체능 마법 제3학과 4학년입니다.”

두 번째. 학과와 학년을 대답하면 지금처럼 눈을 빛내며 이렇게 말한다.

“…! 그럼, 내 졸업 작품, 도와줄 수 있니? 분명 내 작품이 통과만 된다면, 날 도운 너도 학점을 좋게 받을 수 있을 거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동기들에게 들은 말 그대로 내뱉는 너드의 말에 남학생은 결국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듣자 하니 이 너드는 마법 관련 제작과를 다니다가 병에 걸려 6년간 휴학했다가 이번에 복학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너드는 생각이 없는 걸까? 아니면 욕심이 과한 걸까?

7학년까지 있는 이 마법 아카데미에서는 아무리 휴학을 길게 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졸업 작품을 내고 제대로 된 점수를 받는다면 졸업이 가능하다지만, 이 너드는 너무 세상 물정을 몰랐다.

이 너드와 같은 학년의 선배들은 이미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재능 있고 뛰어난 후배들을 통장으로 낚아 제 연구실에 처박힌 지 오래였다.

졸업 작품 심사만 제대로 받는다면 누구나 후하게 주는 학점만으로는 그 어떤 이득도 없기에 이 너드처럼 학점만 운운하면 아무도 낚이지 않을 터였다.

심지어 남학생도 이미 다른 선배에게서 더 좋은 제안을 받은 상황이었다. 남학생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제가 학업에 더 집중하고 싶어서요.”

“그러지 말고 이 설계도를 한 번만, 한 번만 봐 줘…!”

말투는 소심해 보이는데 주섬주섬 설계도를 꺼내는 손길은 막힘이 없다.

이 또한 이미 동기들에게 들은 레퍼토리대로였다. 남학생은 그냥 무시하고 갈까 하다가, 동기들이 ‘망상병 환자 같아.’라고 평가했던 설계도가 궁금해서 너드가 건넨 설계도를 받아들었다.

A3 용지 크기의 종이에는 자필로 빼곡하게 적힌 마법 수식과 그것을 배치하기 위한 배치도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설계도를 본 순간 남학생은 어째서 동기들이, 학부생들이 이 너드를 망상증 환자라 했는지 이해했다.

“이게….”

“이론은 완벽해! 실현할 수 있어!”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애처로웠지만 남학생은 호기심에라도 같이 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니, 선배님을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앞줄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했건만 이게 제가 알던 마법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광적으로 적어 낸 광기의 산물처럼 느껴지는, 어떻게 돼먹었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의 난해한 마법 수식이다.

천재들로만 구성되었다는 마법사 협회, 카단의 마법사라도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남학생은 이제 짜증에서 동정 어린 눈으로 너드를 보았다.

이 설계도 같지 않은 설계도를 들고 학점만 대가로 삼는다면 이 너드, 평생 졸업 못 한다.

“제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아…. 알았어….”

“그럼 부디 좋은 조력자를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하루 되십쇼, 선배님.”

고개를 꾸벅 숙인 남학생은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탓에 보지 못했다.

남학생과 내내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던 너드가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르게 가라앉은 냉정한 눈으로 남학생의 옆얼굴, 행동, 걸음걸이 하나하나 분석하듯이 보고 있다는 것을.

빠르게 걸어 단숨에 학생회관이 있는 쪽으로 사라지는 남학생을 빤히 보던 너드, 서도유는 들고 있던 설계도를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잠시 주변을 훑어본 그는 저를 보는 이가 없음을 확인하고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체능 마법 제3학과 4학년 정한 24세, 신상 명세와 일치. 대상에서 제외.」

남학생이 알려 주지 않은 정보까지 마치 제 것처럼 입력한 뒤 전송 버튼까지 누른 서도유는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벤치에 완전히 등을 기댔다. 그러면서 그는 생각했다.

‘망할, 대체 언제 낚이는 거야?’

마법사 협회 「카단」의 특수부 제1팀 소속 서도유가 이 아카데미에 잠입한 지 오늘로 한 달이 지났다.

그는 쓰고 있던 뿔테 안경을 벗어 눈가를 문질렀다. 빨리 본부로 복귀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아카데미에 있다는, ‘사회에 혼란을 가져오는 마법사’를 찾아내지 못한 채 복귀했다가는 제 상사에게 머리가 쪼개질 것을 알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세상 그 누가 자기 부하의 머리를 진짜 쪼개겠냐고 묻는다면 도유는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특수부 제1팀 팀장은 고통 없이 끝내 준다며 제 몸보다 거대한 대검으로 진짜 쪼개 버린다. 이미 한 번, 가까스로 그의 대검을 피한 경험이 있는 도유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날은 여느 때처럼 업무를 마치고 보고서까지 제출하여 칼퇴근을 앞둔 완벽한 날이었다.

도유는 지금도 그날의 하늘을 기억한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날이 화창해서 오늘은 공원에서 파는 푸드 트럭에서 음식을 사서 먹자고 생각하며 퇴근하려고 짐을 싸고 있을 때였다.

평소라면 도유의 보고서를 읽고 결재 도장만 찍고 내버려 뒀을 제1팀 팀장 성희유가 팀장실로 도유를 부르더니 대뜸 물었다.

“도유 씨, 이카루스 아카데미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아무리 마법사 협회 카단이라 해도 소속된 이들은 일단은 ‘직장인’이다.

그리고 직장인들은 누구나 뼈저린 경험을 통해 상사가 하는 질문에 의미가 없지 않다는 것을 깨우친 자들이었다. 또한 그 질문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아는 척한다면, 높은 확률로 자기가 그 일을 하게 될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도유는 돈 많은 부자나 천재들만 간다는 아카데미와 관련되어 제가 뭘 할지 짐작도 되지 않았지만 본능이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는 입을 틀어막았다. 즉 혀가 굳었다는 뜻이다.

성희유는 그런 도유를 보며 빙긋 웃었다.

“알고 계시는군요. 잘 됐습니다.”

“…알고만 있습니다. 마법사와 마나 감응력이 높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마법을 가르치고, 일반인에게는 아티팩트 제작 기술 및 사용 기술을 가르치는 기관이며, 조건에 부합하는 성인이라면 27세 이하까지 누구나 다닐 수 있는 아카데미가 아닙니까.”

“다 알고 계시니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도유 씨가 그곳에 잠입 좀 해야겠어요.”

마치 오늘의 날씨를 말하듯 여유롭다 못해 졸린 목소리였다. 도유는 불에 지져진 사람처럼 눈을 부릅뜨고 성희유를 보았다.

성희유는 도유의 당혹 따위는 전혀 보지 못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곳에 ‘범법자’가 나타났어요. 기억나죠? 우리가 금기로 지정한 마법들을 일반인에게 제공해서 사회에 혼란을 부르고 있는 마법사요. 지난번에 거기에 연루된 피해자가 그 아카데미 학생이었고, 다른 사건의 피해자도 마찬가지로 그 아카데미의 학생이었죠.”

일반인과 마법사가 섞여서 함께 공존하는 현 세계에서 범법자라고 칭한 마법사를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인지 도유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도유는 평소 성희유에게 임무를 받을 때처럼 곧바로 ‘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팀장님.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도유 씨.”

“제게 아카데미에 잠입하라 말씀하셨는데 제가 교수나 조교나 행정부 직원으로 잠입하는 겁니까?”

“도유 씨.”

성희유가 생긋 웃었다. 진짜 나이는 알 수 없었으나, 육체는 9살 정도 되는 아이의 것이라 그런지 앳된 웃음은 정말 아이 같았다.

그러나 도유는 제가 어렸을 때도 성희유가 저 순수를 가장한 가증스러운 웃음을 지은 채 저를 지옥에 밀어 넣었던 것을 몸소 겪었기에 긴장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팀장님.”

“도유 씨가 말한 걸로 잠입해야 하는 일이었다면 제가 도유 씨를 보냈을까요, 보내지 않았을까요?”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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