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하면 비틀리는 법 (4)
유혹, 유혹이라는 건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성적인 목적으로 이성을 꾄다는 건 대충 이해가 갔다. 나루는 전 주인인 범현과 섹스 비슷한 행위를 해 본 적이 있었다. 내키지 않으나, 그때 했던 짓을 떠올려 연습하다 보면 몸이 익숙해질 테고, 그럼 성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떨쳐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읏, 추우……!”
욕실로 들어와 옷을 벗으니 한기가 느껴졌다. 상체를 덜덜 떨던 나루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잔뜩 받았다.
쏴아아아―. 점차 채워지는 물을 바라보던 나루가 욕조 안에 들어가 몸을 데우기 시작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범현은 늘 몸이 굳으면 뻣뻣해서 못 쓴다며 나루를 따듯한 물에 들여보내 놓곤 했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다음에 천천히 그걸 시도해 봐야지. 가장 중요한 준비 단계라고 했으니까.
욕조에 늘어져 있으니 나루의 두 뺨에 홍조가 돌았다. 나른하게 풀어진 눈은 반쯤 감긴 채였고, 입도 멍하니 벌어져 있었다.
“허엇, 이러고 있으면 안 돼!”
나루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몸을 조금 풀어 주려고 한 건데,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 나루는 몸을 일으켜 샤워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머리 부분을 돌려 빼고 호스만 남게 했다.
“이상하다. 옛날에는 그 사람이 여기에 뭘 끼웠는데, 무슨 투명한 거….”
옛 기억을 떠올린 나루가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범현은 샤워기에 또 다른 호스를 끼웠는데, 나루에게는 그런 장비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 일단 없으니까, 그냥 해야 하나….”
곤란하다는 듯 볼을 긁적이던 나루가 손을 벌벌 떨었다. 얼굴은 이미 새파랗게 질린 채였다.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긴장한 듯 몸을 잘게 떨던 나루는 들고 있던 샤워기 호스를 천천히 제 뒤로 가져갔다. 규연이 보았다면 기겁하며 말렸을 만한 행동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나루 혼자였다.
서늘한 호스가 엉덩이를 스쳐 내려가자 몸이 흠칫, 떨렸다. 나루는 제 목적대로 호스를 가져다 대고도 쉬이 움직이지 못했다. 쓰지 않아 빡빡해진 구멍에 이런 호스가 단번에 들어갈 리 없었다. 막상 하려니 두려워진 나루는 주위를 둘러보며 젤로 쓸 만한 것을 찾아냈다.
미끌미끌하고 부드러운 바디 오일.
저거라면……. 눈을 반짝인 나루가 오일을 가져와 제 손에 주욱, 짜냈다. 듬뿍 짜낸 탓에 핑크빛 손바닥이 번들번들해질 정도였다.
“으음…….”
잠시 고민하던 나루가 오일 묻은 손을 제 뒷구멍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미끄럽고 질척한 액체가 닿으니 괜히 느낌이 이상해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으, 으윽…!”
용기를 내어 손가락 하나를 집어넣은 나루가 앓는 소리를 냈다. 작게 벌어진 입구로 얇은 손가락 하나가 비집고 들어가자, 그 이물감에 내벽이 움찔거렸다.
어, 어떡해. 이제 어떡하지? 아무것도 못 하겠어….
고작 손가락 하나일 뿐인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범현에게 처음 다리를 벌렸던 날이 떠올라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기까지 했다. 어정쩡한 자세로 곤란해하던 나루가 결국 넣었던 손가락을 빼냈다. 쿨쩍이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놓아 준 뒷구멍은 벌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꽉 다물렸다.
스르륵.
나루는 호스를 끌어당겨 다물린 구멍 위를 건드렸다. 무모한 시도라는 걸 알면서도 대담하게 움직여 본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규연과 평생 섹스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안 돼. 그 사람이 그랬었잖아. 사랑하고, 또 사랑받으려면 얌전히 다리를 벌려야 한다고.
범현과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 나루가 입술을 콱, 깨물었다.
“으, 으윽, 흐.”
낑낑거리던 나루가 욕조를 손으로 짚은 채, 두 다리를 활짝 벌렸다. 얇은 허벅지가 벌어지기 시작하니 힘없는 종아리가 덜덜 떨려왔다. 이게 무슨 민망한 자세지. 나루는 얼굴을 붉히다가도 허벅다리를 더 크게 벌렸다.
“으, 아으…….”
매끈거리다 못해 오일로 번들번들한 손을 다시 뒷구멍에 넣으니 질척한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다리를 활짝 벌린 게 큰 역할을 해 준 걸까. 아까보다 구멍이 느슨해져 손가락 넣기가 수월해졌다.
스륵.
이때다 싶어 호스를 가까이 당긴 나루가 살짝 벌어진 구멍에 호스를 마구잡이로 욱여넣었다.
“흐, 하윽, 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본능적으로 밀어내려는 내벽을 강제로 뚫고 호스를 집어넣는 손이 야무졌다. 손가락보다 굵은 호스가 안을 비집고 들어오자, 나루가 온몸을 떨며 욕조에 주저앉았다. 뜨거운 내벽에 서늘한 호스가 닿은 것만으로도 죽을 지경인데, 주저앉느라 호스가 더 깊이 들어와 소리 없이 경련해야만 했다.
“청, 흐윽, 청소, 읏.”
한참 엎어져서 허리를 떨던 나루는 손을 수도꼭지 쪽으로 올렸다. 입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청소’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내뱉고 있었다.
청소. 그래, 이건 청소하는 거였다. 아주 옛날, 범현이 나루의 뒷구멍에 무자비하게 호스를 꽂아 넣었을 때. 분명 청소하는 거라고 말해 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읏, 청소를 해야, 사랑할 수 있어….”
세뇌가 이렇게나 무서운 거였던가. 나루는 범현이 제게 습관처럼 했던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청소를 깨끗하게 해야 사랑할 수 있다는 말. 물론 범현은 청소시킨 나루도 더럽다며 제 것을 넣어주는 법이 없었다.
맞아, 전 주인은 내가 청소를 해도 더럽다고 했어. 규연이는 깨끗한 걸 좋아하니까, 더 더 열심히 청소해야 해.
나루의 두 눈썹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가 제자리를 되찾았다. 청소하는 게 무서웠지만, 규연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견뎌낼 자신이 있었다.
툭, 쏴아아-
눈을 질끈 감은 나루가 수도꼭지를 위로 쳐올렸다. 그러자 미지근한 물이 호스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흐, 으으, 무, 무서, 하윽! 아!”
방금까지 자신 있게 굴던 나루가 몸을 뻣뻣하게 굳히며 눈물을 툭 떨궜다.
물을 너무 세게 튼 건지, 흘러들어온 액체들이 내벽을 강하게 치며 버겁도록 들어찼다. 당황해서 물 끄는 것도 까먹은 나루는 그저 앓는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높게 치올릴 뿐이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물이 들어차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홀쭉하던 배는 어느새 물로 가득 차 빵빵해졌고, 호스만큼 늘어난 구멍에서는 차마 들어가지 못한 물들이 새어 나와 엉덩이와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무, 무서워, 으윽, 으, 그, 그만, 어, 어떡해, 규연아, 흐윽!”
어쩔 줄 몰라 하며 발가락 끝을 잔뜩 오므린 나루가 살짝 부푼 배를 끌어안고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렸다.
그리고는 두 팔꿈치와 무릎을 이용해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힘겹게 세 번 기어가던 나루는 안쓰럽게 떨리고 있는 손을 뻗어 수도꼭지를 겨우 끌 수 있었다.
“으, 흐윽, 끄으, 이거 어떻게 빼, 으, 규연아, 나, 살려, 흐읍!”
들어오는 물은 더 이상 없었지만, 나루는 이미 한계치에 도달한 상태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호스를 품고 있자니, 안에 들어찬 물이 빠지지 않아 무섭고, 그냥 모든 게 공포였다. 끝내 설움이 터진 나루는 유혹이고 뭐고, 살려달라며 규연을 찾았다. 흐느끼는 소리와 희미한 목소리가 욕실에 웅웅 메아리처럼 울렸다.
나는 바보야. 송나루 멍청이. 한심해. 그 사람 따라 하는 게 아니었어.
“흐븝, 끄으, 살려 줘…….”
욕조에 처절하게 엎드려 있으니 괜히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나루는 제 머리를 꼭 감싸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규연을 찾는 목소리가 점차 묻혀갈 때였다.
덜컹! 나루가 그토록 찾던 규연이 욕실 문을 세게 열어젖히며 들어왔다.
“송나루! 너 왜 울, 아니, 이게 뭔.”
“으읏, 흐, 규연아, 흐읍.”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 아니, 대체 왜 이런 짓을…….”
방에 홀로 있다가 욕실에서부터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놀라 달려온 규연은 황당을 금치 못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바디 오일, 무슨 짓을 했는지 엉덩이 사이에 호스를 끼고 울고 있는 송나루. 와중에 살짝 부풀어 올라 있는 배.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었다.
규연은 욕조 가까이 다가가 나루의 상태부터 살폈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눈은 붕어처럼 부어오르고, 콧물 자국까지 난 게 미치고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 준 규연은 곧장 커다란 수건을 가져와 나루의 등에 덮어 주었다.
“송나루, 너 혼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설마, 그 호스로….”
“나는 청소를, 흐끅, 청소를 하려고.”
“…….”
내가 진짜 얘 때문에 미친다. 항상 감히 상상도 못 할 사고를 치는구나. 곤란하다는 듯 이마를 짚은 규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루는 제발 나 좀 살려달라며 규연의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기다려, 일단 이것부터 뺄 테니까.”
“으, 으응, 흣.”
나루의 허리에 손을 올린 규연이 부드럽게 힘을 가해 자세를 낮춰 주고, 한 손으로는 구멍에 쑤셔 넣어진 호스를 잡아당겼다. 길게 들어와 있던 호스가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나루가 야릇한 소리를 내며 허리를 들썩였다. 그럴 때마다 뱃속의 물이 흔들려 찰랑거리는 소리가 미묘하게 들려왔다.
규연은 호스를 천천히 빼내면서도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자괴감을 느꼈다. 열받는 건, 지금 이 모습에 살짝 꼴렸다는 거고.
이런 씨발. 유규연, 정신 차려라. 이런 상황에서 건드리는 건 좀 아니지.
마음을 다잡은 규연이 남은 호스를 한 번에 빼내어 버렸다.
“아, 하으, 으응! 아, 이, 이상해.”
“얼마나 넣었으면 이래. 여기에 물 넣을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대체.”
“흐, 으으, 일부러 그런, 거, 아닌데.”
“도와줄 테니까 천천히 내보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나루의 말에는 조금의 거짓이 섞여 있었다. 규연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나루가 편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집중했다. 부푼 나루의 배 위로 규연의 큼지막한 손이 닿았다. 잘 내보낼 수 있도록 배 위를 살살 문질러 주니, 참는 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던 나루가 물을 터뜨려 보냈다.
“아, 흐아읏! 흐, 흐끅, 허엉!”
살짝 벌어진 뒷구멍으로 투명한 물줄기가 세게 뿜어져 나왔다. 촤아악, 하는 소리에 수치심을 느낀 나루는 엉엉 울며 규연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한 번 터져 나온 물줄기는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잠깐 나오는 게 더딜 때는 규연이 배를 꾸욱, 눌러 줬다. 그러니 안에 남아 있던 물들이 울컥, 하고 새어 나왔다. 얼굴은 물론이고, 새하얀 엉덩이까지 붉게 물들여서는 물을 뿜어내고 있는 모습에 규연이 입술을 콰득, 깨물었다.
“제발 이런 짓 하지 마.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래.”
“으, 흐윽, 흐으.”
“강제로 하드한 취향에 눈 뜨게 만들려고 작정했지, 아주.”
“으읏, 응, 그게, 뭐, 뭐야?”
속으로 애국가를 제창하던 규연이 인상을 작게 찌푸리며 잔소리를 했다. 꼴리는 건 꼴리는 거고, 속상한 건 속상한 거였다.
나루는 규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온갖 짓을 다 벌이고, 울기까지 한 주제에 순진하게 묻는 꼴이 어처구니없었다.
“아니다. 아니야. 이제 다 나왔나, 봐.”
“아, 아으!”
“또 한 번 이런 짓 해 봐.”
“…….”
나루의 다리를 벌려 안을 확인한 규연이 이제 다 해결됐다는 걸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등에 덮어 주었던 수건을 온몸에 감싸 주니, 나루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힘이 다 빠진 몸은 아직도 덜덜 떨리는 중이었다.
어떡해, 무서워. 나도 규연이랑 사랑하고 싶은데, 뒤에 손만 대도 옛날 기억이 떠올라. 나, 나 이러다가 나중에라도 규연이한테 미움받으면 어떡하지. 지금은 동등한 연인 관계라고 하지만. 내가 계속 이런 식이라면…….
심장이 쿵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