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130)


새 우는 소리가 아침을 알렸다. 규연의 침대에서 함께 잠든 나루는 따스한 품을 느끼며 귀를 쫑긋거렸다. 아까부터 창문 근처에서 짹짹거리는 참새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규연의 품속으로 더 파고 들어간 나루가 입술을 오물거렸다. 꿈속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

나루보다 잠이 많은 규연이 웬일로 먼저 눈을 떴다. 반쯤 눈을 뜬 그가 자연스레 팔을 올려 나루의 몸을 껴안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보송보송한 게 규연의 목 언저리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촉감으로 봤을 때 벌레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불도 아닌 것 같은데, 느낌이 꽤 신기했다.

규연은 손으로 보송한 물체를 털어냈다. 잠깐 닿았지만, 어딘가 말캉하기도 하고 보드라웠다. 그리고 미묘하게 온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으으…….”

그때, 잘 자던 나루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규연은 익숙하게 손을 뻗어 등을 토닥여 줬다. 그러자 낑낑거리는 소리가 바로 잦아들었다.

다시 눈을 감고 잠들려던 규연은 눈썹을 찌푸렸다. 방금 느꼈던 그 촉감이 목을 또 간지럽히고 있었다. 잠을 방해받아서 그런지 슬슬 짜증이 났다.

큼지막한 손이 또다시 보송한 물체를 쳐냈다. 이번에는 모기를 잡듯 내리쳤다.

“끄잉…….”

소리가 컸나. 숨을 색색 내쉬며 자던 나루가 또 낑낑댔다. 규연은 아까와 똑같이 등을 토닥였다.

이제 좀 잘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알 수 없는 물체가 규연의 목을 계속 건드렸다. 덕분에 잠이 저 멀리 달아나고 말았다. 규연은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일어났다.

“하, 뭐가 자꾸…….”

눈을 번쩍 뜬 그가 침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몰라 허공까지 살펴보았으나 목을 간질이던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있는 거라고는 규연 자신과 나루뿐이었다.

잠시만.

곤히 잠든 나루를 바라보던 규연이 제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나루를 쳐다보았다.

숨이 턱, 하고 멈췄다. 어디 이뿐일까. 몸이 굳어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놀란 규연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방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들리는 건 나루의 일정한 숨소리가 다였다.

“하움…….”

작게 하품하며 돌아누운 나루가 자세를 바꿨다. 그러자 보송보송해 보이는 것도 방향을 틀었다.

쫑끗.

설마, 내 목을 간질이던 게 저거라고? 말이 돼?

규연의 표정은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시선 끝에는 나루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루의 머리였다.

밝은 머리카락 위로 하얀 무언가가 솟아 있었다. 규연은 굳은 몸을 풀며 나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본능적으로 돌아누운 나루가 규연의 팔을 껴안았다.

얌전히 팔을 내어 준 규연은 식은땀을 흘리며 나루의 머리를 살폈다.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던 그가 다른 손을 뻗어 하얀 무언가를 만져 보았다. 위쪽은 보송보송하니 부드럽고, 안쪽은 촉촉한 듯 말캉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건 분명…….

강아지 귀였다. 새하얀 강아지의 귀.

급하게 손을 떼어낸 규연이 뒷걸음질 쳤다. 움직여서 이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하얀 강아지 귀가 쫑긋거렸다. 마치 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규연은 지난날 나루와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언젠가, 나루는 규연에게 자신이 강아지라고 했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었다.

사실 규연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떻게 사람이 강아지일 수 있겠는가. 태어나서 이 세상에 강아지 인간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몇 번을 다시 봐도 저건 강아지 귀가 확실했다.

“미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근처를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다. 마음을 진정시켜 보려 해도 그게 쉽지 않았다.

결국, 고민하던 그는 꿈나라에 빠져 있는 나루를 흔들어 깨우기로 했다.

“송나루, 송나루, 일어나 봐.”

“으…….”

몸을 건드릴 때마다 귀가 팔랑거렸다. 규연은 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나루를 깨웠다.

잠시 후, 잠꼬대하던 나루가 서서히 눈을 떴다. 규연은 말을 잃고 말았다. 눈을 감고 있을 땐 거짓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뜨니 정말 현실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루는 규연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안아달라며 애교를 부리는 거였다. 혼란에 빠진 규연은 안아주기 전에 손가락 끝으로 강아지 귀를 가리켰다.

“머리?”

“너, 귀가…….”

“응? 어, 어라……?”

규연의 손끝을 따라 머리 위를 더듬거려 보던 나루가 귀를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왜 여기에 있는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쫑긋. 쫑긋.

손을 내린 나루가 제 뜻대로 귀를 움직여 보았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는데,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걸 보니 제 귀가 맞는 것 같았다.

몇 번 더 귀를 쫑긋거려 보던 나루는 벙쪄 있는 규연을 향해 해맑게 소리쳤다.

“나, 나 돌아왔어!”

‘나 강아지 됐어’도 아니고 ‘나 돌아왔어’라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런 규연과 달리 나루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수인으로 사는 삶이 힘들긴 했어도, 귀와 꼬리는 나루 몸의 일부이기도 했다. 사실 이렇게 기뻐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드디어 규연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번에는 영 믿지 않는 눈치라 씁쓸했는데, 이제라도 귀가 나타나서 정말 다행이었다.

“잠깐, 송나루. 제발 나한테 적응할 시간을 좀 줘라.”

“이거 내 귀야.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나 강아지라고!”

“진정해 봐. 진정해. 잠시만.”

규연에게 달려든 나루가 방방 뛰어댔다. 두 귀가 같이 팔랑이며 움직이는 게 신기했다. 이 상황이 전혀 익숙하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강아지 귀를 단 나루가 귀엽다는 거였다.

하, 어이가 없네.

규연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칠 뻔했다. 나루의 행동 때문은 아니었고, 와중에 저 모습을 귀여워하고 있는 자신이 어이없어서였다.

잠깐, 나 그럼 아까 송나루 귀를 때린 거야?

규연의 표정이 절망에 물들었다. 그게 귀인 줄도 모르고 때린 거였지만, 어쨌든 나루를 때린 거나 마찬가지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루에게 가까이 다가간 그가 강아지 귀를 세세히 살펴보았다. 어디 다치거나 찢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해 보는 거였다.

“안 다쳤냐, 귀 아프지는 않고?”

“응? 아까 잘 때 뭔가 따끔거리긴 했는데…….”

“이리 가까이 와 봐.”

영문을 모르는 나루가 따가웠다며 귀를 만지작거렸다. 그 말에 죄책감을 느낀 규연이 나루의 몸을 슬쩍 끌어당겼다.

나루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밤새 규연의 품에 안겨 잠든 것도 꿈같은데, 일어나자마자 제 본모습으로 마주 볼 수 있다는 게 뿌듯했다.

“으핫, 간지러워.”

“아픈 게 아니고?”

“응, 더 만져 주면 안 돼?”

규연이 귀를 만지자 나루가 몸을 웅크렸다. 귀 안쪽에 손이 닿아서 간지러운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계속 만져 달라며 머리를 들이댔다.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규연이 나루의 머리카락을 대충 쓰다듬어 주고 말았다. 아직 놀라는 중이라 마구 예뻐해 줄 정신이 없었다.

“이제 믿어져? 나 강아지야.”

“…….”

“믿어져? 규연아, 믿어져?”

“어, 믿어진다.”

강아지인 걸 밝히는 게 그렇게나 좋을까. 들뜬 나루가 규연을 보채며 질문 폭탄을 날렸다. 멍한 눈으로 나루를 바라보던 규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한 걸음 떨어진 나루가 신난 듯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방을 나섰다. 이 상황에 출근 준비를 하러 나간 거였다.

박자를 타며 뛰어나가는 나루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 발랄해 보였다. 저 귀는 볼 때마다 신기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팔랑거리는 게, 계속 눈이 갔다.

사실 귀가 이 정도까지 흔들린 건 나루의 작은 팬 서비스였다. 원래는 그냥 걷는다고 해서 귀가 이렇게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규연이 보고 있으니 일부러 귀를 귀엽게 흔들어 준 것이었다.

느지막하게 거실로 나온 규연은 시리얼을 따르고 있는 나루를 발견했다. 꼭 강아지가 스스로 사료를 부어 먹는 것 같았다.

“하아…….”

규연은 착잡했다. 이제 막 나루와 정식적인 연인 사이가 되었는데, 애인이 강아지 귀를 달고 다녀서 몹쓸 짓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천하의 쓰레기가 된 느낌이었다.

이게 맞는 걸까.

“규연아, 너도 이거 먹어?”

“나는 됐어. 너 먹어.”

손을 휘저으며 거절하자 나루가 제 그릇만 가져와 식탁에 앉았다. 규연은 맞은편 의자에 앉아 밥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긴 있구나. 아, 뭐 다른 세계라고 했던가. 그럼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말도 진짜겠네. 하, 미친…….

“궁금한 게 있는데, 그 귀는 어떻게 해서 나온 거야.”

“나도 모르겠어. 잘 안 나왔는데, 갑자기 나왔네…….”

“너 그 꼴로 출근은 어떻게 하려고.”

“…….”

출근. 그러고 보니 이런 꼴로는 밖에 나갈 수 없었다. 귀가 나왔다고 마냥 좋아하던 나루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곤란한 건 규연도 마찬가지였다. 저걸 대신 집어넣어 줄 수도 없고, 앞으로도 저 귀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나루는 집에 박혀 있어야만 한다.

“집어넣어 봐.”

“안 들어가는데…….”

“방법 같은 거 없어?”

“모르겠어.”

손으로 귀를 꾹꾹 누르던 나루가 인상을 찌푸렸다. 강제로 집어넣으려고 하니 귀가 아팠다. 같이 마음을 졸이던 규연은 살짝 부은 귀를 보고 그만하라며 나루의 손을 붙잡았다.

“일부러 그러지 마, 벌써 부었잖아.”

“나 출근하고 싶단 말이야.”

“…….”

안쓰러운 눈으로 나루를 쳐다보던 규연이 대뜸 입꼬리를 올렸다.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자꾸 웃음이 튀어나왔다.

나루의 새하얀 귀가 축 늘어져 있었다. 아까는 분명 쫑긋 세워져 있었는데,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니 양쪽으로 굽어 늘어진 게 귀여웠다.

“…왜 웃어? 웃겨?”

“아, 잠깐 나 쳐다보지 마.”

“왜? 나 진짜 속상해.”

“고개 돌려, 송나루. 제발.”

규연은 미칠 지경이었다. 나루가 얼굴을 들이밀며 축 늘어진 귀를 보여줄 때마다 입꼬리가 줏대 없이 올라갔다.

이런 거에 좋아하고 싶지 않은데.

유규연, 정신 차리자. 애가 심각하게 속상해하는데 뭐 하는 짓이냐.

아…….

시선을 돌려 나루를 마주한 규연이 아예 뒤돌아 버렸다.

안 되겠다. 존나 귀엽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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