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부터 자꾸 악의적으로 쳐다보네?”
“너도 마찬가지야.”
비꼬는 말투로 나루를 괜히 건드리던 도민이 얄미운 웃음을 지었다. 누군가와 기 싸움을 할 땐 무조건 여유로워야 승리한다던데, 도민은 어디서 기 싸움으로 져 본 적이 없을 것 같았다.
나루는 여유로운 표정을 연기하지 못했지만, 반사적으로 도민의 말을 맞받아쳐 줬다. 0.1초도 지나지 않아 대답이 튀어나오자 도민이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자신에게 맞대응하는 사람이 처음 나타나 당황한 모양새였다. 도민의 날카롭던 눈매가 동그랗게 바뀌어 끔뻑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루는 도민을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성격이 좋지 못하다는 걸 느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개차반이었다. 규연의 성격도 한 싸가지 했지만, 도민은 결이 다른 싸가지였다. 조금 더 얄미운 쪽이랄까. 이상하게 전혀 무섭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사장님이랑 무슨 사이라도 돼?”
“…….”
“너랑 사장님이랑 그, 급이 안 맞잖아.”
나루는 이 비슷한 말을 이전에 건혁에게서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걱정된다는 표정을 꾸며내고 있었지만 저건 명백히 시비를 거는 거였다. 시비가 참 하찮았다. 자기방어를 위해 자꾸 시비를 거는 걸까.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는 도민이 웃기기만 했다.
급이 안 맞는다. 나루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규연은 돈도 많고 잘생겼다. 반대로 자신은 돈도 없고 외모도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다. 급이 안 맞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안 맞는다고 해서 서로 좋아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나루는 규연에게 좋아한다는 말까지 얻어냈다.
그냥 나를 미워해서 저러는 거겠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나.
나루의 표정이 작게 일그러졌다. 짜증 나던 건혁이 사라지니 이제는 도민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주기적으로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들 때문에 나루의 온순한 성격이 날을 세우고 있었다.
“내가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해.”
“뭐?”
“나는 너 마음에 안 들어. 혹시, 너 의사 표현 못 해?”
나루의 날카로운 말이 도민의 뼈를 때렸다. 당황한 그는 자기가 나루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두어 번이나 의심했다.
도민은 나루를 처음 보고 성격 파악을 바로 완료했었다. 멍청하지만 눈치 하나는 빠른 바보. 그래, 분명 바보 같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나루는 첫인상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직설적인 말투에, 악의 섞인 조롱까지. 전부 열받았다. 의사 표현을 할 줄 모르냐니. 도민은 사회생활에 서툰 나루보다 자신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작은 말에도 자존심이 팍팍 상했다.
나루를 벽 쪽으로 완전히 밀어붙이며 겁을 준 도민은 원하는 대로 ‘직설적인 화법’을 사용해 의사 표현을 확실히 했다.
“나 여기에서 자리 못 잡으면 안 돼. 넌 내 경쟁자야, 알겠어?”
“경쟁자?”
“그래, 내 자리 빼앗을지도 모르는 경쟁자!”
나루를 ‘경쟁자’라 칭하던 도민이 제 속내를 당당히 드러냈다. 정확한 뜻을 알아채지 못한 나루는 멀뚱히 서서 볼을 긁적였다. 이런 반응에 답답함을 느낀 도민은 어깨를 떨며 씩씩거렸다. 삐죽 올라간 눈꼬리가 마치 화난 아기 고양이 같았다.
경쟁자라니.
별다른 능력이 없던 도민은 아르바이트에 지원할 때마다 떨어지곤 했다. 살아갈 희망은 단 하나, 자신의 반반한 외모 하나뿐이었다. 도민의 예쁘장한 외모에 꼬여 든 사람들은 금세 호기심을 가지며 다가왔고, 도민이 조금만 애교를 떨어 줘도 의식주를 해결해 주었다.
문제는 도민이 아양 떠는 것에 적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고, 천성이 그랬다. 살갑게 굴며 애교를 부리는 것보다는 기회를 봐서 슬쩍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도민 나름의 표현 방식이었다.
다가왔던 사람들은 이런 도민의 모습까지도 사랑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오래 가지 못했다. 주는 게 더 많아질수록, 그들이 요구하는 애정의 강도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도민에게는 무척 버거운 요구들이었다.
결국, 도민은 그들과의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도망쳤다. 그러다 처음으로 취업 된 곳은 작은 음식점이었다.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않던 도민은 직원들의 견제에 시달려야 했다. 가게 사정이 안 좋아질수록 견제는 더 심해졌고, 끝내 도민은 떠밀리듯 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때 들었던 말이 하나 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친해 보여도, 전부 경쟁자일 뿐이다.’ 도민은 그 말에 이를 갈며 동의했다. 처음 겪은 세상은 혹독하고, 치사했다. 못된 사람들이 원망스러웠지만, 도민은 살아남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었다.
친해 보여도 다 경쟁자. 친해지고 싶어도 가까워지면 안 돼. 그러면 내가 살아남을 자리를 빼앗기니까.
그렇게 다시 일어선 도민은 어렵사리 규연의 카페에 취업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타이밍에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고 말았다. 나루는 규연의 옆에 꼭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했고, 급기야 도민을 경계하기까지 했다. 보통 놈이 아니었다는 거다. 순진한 얼굴을 하고서는 하는 행동은 묘하게 약은 게, 자기보다 잘나 보여서 짜증이 났다.
나루의 어깨를 밀쳐 벽에 딱 붙인 도민이 손에 힘을 주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맞서는 게 처음이라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럴수록 나루의 미간이 점차 찌푸려졌다.
“물리기 싫으면 이거 놔.”
“물려? 너, 너, 수인인 거 다 티 나거든. 그런 행동은 여기서 어린애로밖에 안 보여!”
“……어?”
“난 세상에서 개가 제일 싫어. 너처럼 멍, 청하니까…!”
물어 버린다는 말에 욱한 도민이 뱉어서는 안 될 말을 그대로 외쳤다. 자기도 당황했는지, 멍하니 입술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순간, 나루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수인. 개. 모두 나루에게 익숙한 말이었다. 이쪽 세계에 넘어온 뒤로는 속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던 말들인데, 왜 도민의 입에서 저런 말들이 나온 걸까.
도민은 수인이 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아니, 나루가 강아지 수인이라는 것까지도 완벽히 파악한 모양이었다. 사람인 상태에서도 수인을 구분해낼 수 있는 건, 오직 같은 수인뿐이었다.
나루가 후각에 집중하며 도민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코를 킁킁거리자 도민이 한 걸음 물러서서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루는 신경 쓰지 않고 도민의 냄새를 계속 맡았다.
어, 이 냄새는…….
“설마 너, 고양이야?”
“…….”
“나랑 같은 수인이지. 고양이. 너 고양이잖아. 고양이 냄새가 나.”
“아 씨, 붙지 마.”
역시, 도민도 나루와 같은 수인이었다. 이쪽 세계로 넘어온 존재는 나루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눈치로 보아서 도민은 나루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이곳으로 넘어온 수인인 것 같았다.
나루의 추측대로 도민은 한참 전에 이 세상으로 넘어온 수인이었다. 호기심이 많고, 어느 공간이든 일단 몸을 비집어 넣고 보는 고양이 수인.
어느 날, 주인 몰래 나와 산책을 하던 도민은 흥미로운 모양의 상자를 발견하고 냅다 발부터 밀어 넣었다. 만족스러울 때까지 몸을 말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갈 참이었는데, 도민은 영영 주인을 볼 수 없게 됐다. 발을 넣자마자 차원이동구에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장기적 가출을 해 버린 데다가, 예쁨만 받고 자라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도민에게 이 세상은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렇게 성격이 바뀌게 된 것이다.
나루가 냄새를 계속 맡아대자 신경질적으로 밀쳐낸 도민이 짜증을 부렸다. 카페 안에서 봤을 땐 자꾸 웃는 척을 해서 본래 모습이 어떤지 몰랐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도민은 고양이 수인과 거의 비슷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까칠하고. 쓸데없이 만지거나 붙는 걸 싫어하고. 자존심이 세고. 전부 고양이 수인 특징이었다.
잠시 신기한 눈으로 도민을 쳐다보던 나루는 다시 표정을 썩혔다. 또 다른 수인을 발견한 건 좋았지만, 하필 고양이 수인에다가 성격 개차반인 도민이라 달갑지 않았다.
고양이 수인과 강아지 수인은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루는 고양이 수인을 극도로 싫어했다.
천적이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렸을 때, 나루네 가족은 고양이 수인들 때문에 이사를 많이 다녔어야 했다. 자리를 잡으면 고양이 수인들이 몰려와서 빼앗고, 도망가려 하면 자꾸 덤벼들어서 의도치 않게 싸울 일도 많았었다.
이러니 나루가 고양이 수인을 싫어할 수밖에. 게다가 도민은 쓸데없이 제게 경쟁 심리를 품고 있었다.
“규연이랑 무슨 사이냐고 물어봤었지.”
“…….”
“응. 나 규연이랑 무슨 사이니까 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 고양이 수인이면 특히 용서 안 해.”
눈을 부릅뜬 나루가 도민을 빤히 쳐다보며 경고했다. 도민이 자신과 규연의 사이를 떼어놓으려 한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차분한 목소리에는 깊은 화가 담겨 있었다. 나루의 반격에 당황한 도민은 무어라 반박하지 못하고 헛웃음만 치는 중이었다.
나루는 도민이 다시 덤벼오기 전에 확실히 기를 눌러 놓기로 했다. 멍청해 보여도 제 주인 하나는 똑바로 지킬 줄 알았다.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선 나루가 도민의 목을 붙잡아 벽으로 세게 밀쳤다. 어느새 전세가 역전되고 있었다. 상대의 목을 붙잡는 행위는 지난번 건혁에게 당했을 때를 떠올려 따라 한 것이었다.
“경쟁자고 뭐고, 고양이 너, 규연이 넘보지 마.”
“너 지금 뭐라고 하는,”
“내 거라고, 규연이.”
도민이 대꾸하려고 할 때마다 나루가 끼어들어서 말을 끊었다. 세뇌시키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던 나루가 해맑게 웃었다. 눈은 여전히 부릅뜬 채인데, 입만 화사하게 웃고 있는 게 무서웠다.
나루를 마냥 만만하게만 보던 도민은 해맑은 광기에 제대로 당해 버렸다. 한 걸음씩 다가오면서 사람 숨통을 조여대는데 이 모습이 꼭 꿈에 나올 것처럼 섬뜩했다.
결국, 참다못한 도민이 나루의 다리를 발로 차 버렸다. 목이 졸린 상태라 정신이 아득해져서 급한 대로 다리를 걷어찬 것이었다. 하지만 나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미쳤어? 크윽, 놔아!”
“…….”
“야아악! 놓으라고!”
“나 바보 아니야. 이걸 왜 놔.”
규연이 들으면 충격받을 만한 광경이었다. 웃는 얼굴로 대꾸하던 나루가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도민을 제압했다. 앞으로 만만히 보이지 않으려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
반쯤 포기한 도민은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며 나루를 힘껏 노려봤다. 앙칼진 시선이 나루의 광기 어린 눈동자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 그러자, 도민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목까지 졸려서 억울했는지 입술이 서럽게 떨렸다.
저 멍청한 강아지! 난 그냥 내 자리를 지키려고 한 것뿐인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도민이 속으로 억울함을 외쳤다. 이번에도 경쟁자에게 밀려 가게에서 쫓겨나는 건 아닐까, 걱정돼서 하마터면 눈물을 빵 터뜨릴 뻔했다.
마침내 도민의 얼굴에 피가 쏠려 새빨갛게 변했을 때 즈음, 나루가 천천히 손을 놓아줬다. 동시에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규연이한테 수작 금지야. 그때는 나한테 죽어.”
“하, 하아, 이 또라이가!”
“진짜야. 죽어. 규연이 건들기 금지.”
상큼한 경고를 남긴 나루가 도민에게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인사했다. 이제 용건 다 끝났으니 안으로 들어가 보겠다는 뜻이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도민을 뒤로한 나루가 쇠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바람이나 쌩쌩 불던 밖과는 달리 카페 안은 온화했다. 방금까지 격한 감정싸움을 벌이고 온 나루는 매장에 울려 퍼지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평온을 되찾았다.
그나저나 규연과 서연, 그리고 저번에 보았던 파티시에 한 명이 모여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손을 털어낸 나루가 붕 뜬 걸음으로 걸어가 규연의 옆에 섰다.
“어, 쓰레기 버리고 오셨어요?”
“네.”
“와, 감사해요.”
고작 쓰레기를 버리고 온 것뿐인데 서연이 과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나루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자, 규연이 그만 좀 하라는 양 서연에게 손을 휘휘 저었다.
“무슨 얘기 해?”
“아…….”
규연에게 슬쩍 다가간 나루가 귓속말했다. 셋이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궁금했나 보다. 규연은 나루의 질문을 받자마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마 나루를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