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130)


훌쩍. 훌찌락.

쓰레기가 나뒹구는 공터 구석에 쪼그려 앉은 나루가 눈물을 훌쩍였다. 다행히 머리 위에 다 낡은 천막이 있어서 비는 피할 수 있었다. 옆에서 몸을 털던 강아지는 나루가 걱정됐는지 계속해서 손을 핥아 주는 중이었다.

두 시간 내내 울던 나루는 지쳐서 눈물을 그쳤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우느라 기력을 다 써서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느새 친구가 된 강아지가 숨겨 두었던 뼈다귀를 나루의 앞에 가져다 두었다. 이거라면 잠시 허기를 달랠 수 있을 듯했다. 사람이 먹다 남긴 뼈다귀에는 자잘한 살점이 붙어 있었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으려던 나루는 규연의 말을 떠올리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시리얼을 개처럼 먹었을 때도 혼났는데, 이런 것까지 주워 먹으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다.

“아니야, 괜찮아. 규연이한테 혼나…….”

“끼이잉?”

“아, 나 버려졌지 참…….”

버려졌다는 걸 다시금 깨닫던 나루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시리얼을 개처럼 먹어도, 더러운 음식을 먹어도, 뭐라고 혼낼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나 이제 어떻게 살지, 떠돌이 생활하는 건 무서운데.”

떠돌아다니는 건 정말이지 무서웠다.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정확히는 엄마와 막냇동생이 차에 치여 죽은 걸 목격했던 그때. 이사를 위해 이동하던 나루는 온갖 고초를 겪었었다.

개울가를 건너다가 오리한테 쪼이기도 하고, 이동하느라 지쳐서 잠시 쉬려고 할 땐 다른 떠돌이 개들이 달려들어 싸움을 걸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강아지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기에 이런 걱정까지는 하지 않아도 됐지만.

왕왕!

‘우리를 버린 주인들은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알아서 잘 살아가야 해.’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나루처럼 주인에게 버려진 이 강아지는 벌써 2년째 떠돌이 생활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나루의 사회 선배나 마찬가지였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나루가 눈을 질끈 감았다. 화내던 규연의 얼굴을 떠올리니 저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

몸을 바들바들 떨던 나루는 규연과 있었던 일을 떠올리던 중, 까무룩 잠이 들어 버렸다. 늘 따스한 소파 위에서 담요를 덮고 잠들었는데, 이런 추운 길바닥에서 자려니 이까지 덜덜 떨렸다.

나루는 이곳에 와서 처음 악몽을 꿨다. 규연이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며 계속 소리치는 꿈이었다.

* * *

째잭. 짹. 아침 해가 뜨자마자 새들이 시끄럽게 울었다. 부스스한 꼴로 눈을 뜬 나루는 밀려드는 한기에 제 몸을 한껏 웅크렸다.

“어…….”

습관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루는 울상을 지었다. 모든 게 꿈이길 바랐는데, 어제 일어났던 일은 현실이었고, 자신이 눈을 뜬 곳은 더러운 공터였다.

이제 뭐부터 해야 하지. 볼을 긁적이던 나루가 어제 보았던 강아지를 찾았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어디로 간 건지, 강아지가 보이지 않았다. 나루의 옆에는 뼈다귀 두어 개가 쌓여 있었다.

혼자 떠난 건가. 아니면, 잠깐 어디로 간 건가.

한 시간 동안 멍하게 강아지를 기다리던 나루는 끝내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뼈다귀를 쌓아놓고 나타나지 않는 걸 보아하니 이곳을 아예 떠난 듯했다.

위이이잉. 위잉.

뼈다귀 때문에 파리가 꼬였다. 친구마저 잃었다는 생각에 울컥한 나루는 바닥에 앉은 파리를 손으로 퍽, 때려잡았다.

“일단 나가 보자.”

굳게 마음먹고 일어선 나루가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도심의 아침은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기도 했고, 학생들도 학교에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사이에서 한가한 사람은 나루밖에 없었다.

이 세상으로 넘어오자마자 규연에게 납치당한 나루는 아직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그러니까, 몇 명을 제외하면 늘 좋은 사람들만 만나와서 이 세상의 무서움을 몰랐다는 거다.

다들 착하니까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한 나루는 인상이 좋아 보이는 남자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신호등 앞에 서서 노래를 듣는 남자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저기…….”

“아 씨 뭐야.”

“저 한 번만 도와,”

“안 사요.”

응? 내가 뭘 팔려고 한 건 아닌데?

나루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옆을 기웃거려 봐도 남자는 불쾌하다는 시선만 던질 뿐, 호의적으로 굴지 않았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뭐야, 규연이보다 착하게 생겼는데 왜 저러는 거야.

마음을 다잡은 나루는 그 뒤로 여러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를 통학시키는 아주머니, 등교 중인 학생, 회사에 가는 직장인 등 여럿에게 말을 걸었으나 마찬가지로 호의적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쿠궁.

망했다. 나루는 현실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지하실에서 갇혀 살던 그는 일해 본 적이 없었다. 규연과 함께 지낼 때도 그랬다. 일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어머, 여기서 뭐 하세요? 잠깐 이리로.”

“어? 네…….”

“인상이 참 좋아 보이신다. 얘기 좀 나눠도 괜찮지요?”

그렇게 좌절하고 있는데 나루의 앞에 구원자가 나타났다. 처음으로 상냥하게 말을 걸어 준 사람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었다. 따스한 말투에 감동한 나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의 말을 경청했다.

사람들을 피해 구석으로 온 여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반복하더니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마침 근처에 패스트푸드점이 있었는데, 자연스레 그 안으로 들어간 여자가 주문을 마치고 나루를 빤히 쳐다봤다.

“왜, 왜요?”

“죄송하지만, 음료 좀 베풀어 주실 수 있나요?”

“정말 죄송해요. 제가 사실 돈이 없어서, 먼저 베풀어 주시면 안 될까요. 배고파요.”

불쌍한 표정을 짓던 여자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루는 여자보다 더 불쌍한 얼굴로 동정을 사려 했다.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맴돌았다.

“야, 저기 좀 봐. 저 사람 기존쎄다. 사이비 당황함.”

“아 개웃기네, 크큭. 야 쳐다보지 마!”

음료를 사서 나가던 대학생들이 두 사람을 비웃었다. 나루는 제 이야기를 하는 줄도 모르고 여자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온순한 눈빛에는 별다른 감정이 들어있지 않았다.

당황한 여자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나루는 여자의 안색을 살피며 걱정까지 해주었다.

“괜찮으세요? 표정이 안 좋아요.”

“아, 그, 저기, 저는 공부하는 사람이라 베풀어드릴 수는 없고,”

“죄송해요, 작게 말씀하셔서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려요…….”

여자는 급기야 나루의 눈을 이리저리 피했다. 분명 악의 없는 말투인데, 오히려 악의가 없어서 광기가 느껴지는 게 무서웠다.

‘시간 초과 시 주문 목록이 초기화됩니다. 10, 9, 8…….’

그때, 키오스크에서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계산을 완료하지 않으면 주문 목록이 초기화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에 다급해진 나루는 여자의 두 손을 붙잡고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어떡해. 얼른 계산해야 한대요. 베풀어 주세요.”

“아, 그게, 일단 이것 좀.”

“네?”

“아, 계산, 할게요.”

나루에게 말려든 여자가 제 카드로 계산을 마쳤다. 야무지게 햄버거 세트를 시킨 나루는 자리에 앉아 감자튀김 먼저 입에 쏘옥, 넣었다. 영혼이 빨린 듯한 얼굴로 나루를 쳐다보던 여자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혹시, 도를 믿으시나요?”

“도? 도레미파솔 할 때 그 도인가요?”

“…….”

엉뚱한 대답에 여자의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나루는 아랑곳하지 않고 햄버거 포장지를 깠다. 그리고는 먹음직스러운 빵과 고기 패티를 크게 베어 물었다. 와중에 시선은 여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유형에 끊임없이 당황하던 여자가 매뉴얼 대로 말을 이어갔다. 나루가 중간중간 끼어들어 알아듣지 못할 질문을 던져도, 무시하고 제 할 말만 늘어놓았다.

덕분에 나루는 외롭지 않은 식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콜라로 마지막을 상큼하게 장식한 뒤에는 잘 먹었다는 인사를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나와 버렸다.

착한 사람을 만나서 참 다행이었어. 이제 뭐 하지…….

지잉.

거리를 의미 없이 돌아다니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그러고 보니 여태 핸드폰 꺼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배터리가 3% 남았습니다. 충전을 완료해 주세요.>

규연의 연락인 줄 알고 허겁지겁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그냥 배터리가 없다는 알림이었다. 이런 상황에 배터리까지 없다니. 절망에 빠진 나루가 발을 동동 구르며 화면을 빤히 응시했다.

규연이한테 문자를 보내는 게 맞는 걸까. 나를 다시 찾아 주기는 할까.

문득 어젯밤, 강아지가 조언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를 버린 주인들은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알아서 잘 살아가야 해.’

주인은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 규연이는 정말 후회하지 않을까. 나루는 미련을 떨쳐내지 못했다. 마음이 상해서 집을 뛰쳐나왔지만, 규연이 자신을 꼭 찾아 주었으면 했다. 아니, 찾지 않는다면 후회하기를 바랐다.

<배터리가 2% 남았습니다. 충전을 완료해 주세요.>

화면을 켜 놓은 탓에 배터리 1%가 빨리 닳았다. 나루는 망설이지 않고 메신저 앱을 켰다. 휑한 친구 목록에는 규연과 서연이 있었다. 익숙하게 규연의 이름을 누른 나루는 메시지 하나를 남겨 놓고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유규연 후회해]

독기 가득한 메시지였다. 약간의 원망을 담아 메시지를 전송하고 나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목적지 없이 걷던 나루는 건물 앞에 놓인 의자를 발견하고 쉬어 가기로 했다. 낡은 의자였지만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꽤 편안했다.

삼십 분 정도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나루는 맞은편 상가를 구경했다. 나루 또래와 비슷한 도넛츠 가게의 직원들을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 옆에 있는 꽃가게 주인도, 옷가게 주인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중이었다.

나도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해.

그래, 인생을 살아가려면 어쨌든 돈이 필요했다. 나루는 어떻게 해야 일을 할 수 있는지 몰랐다. 아직 생각을 더 해 봐야 할 듯했다.

“이 청년은 뭐여, 다리도 튼튼한 게 왜 여기 앉아 있어.”

“에?”

“어여 비켜, 이거 우리 노인정 의자여.”

건물 근처가 소란스러워지더니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어르신들이 몰려나왔다. 자세히 보니 건물 앞 나무 간판에 ‘햇살 노인정’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얼떨결에 의자에서 물러난 나루는 할머니들 사이에 섞여 멀뚱히 서 있었다.

쭈욱 늘어선 의자에 나란히 앉은 할머니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나루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디서 나타난 청년인지 궁금하신 모양이었다.

“왜 저러고 서 있댜?”

“글씨야, 나도 모르지. 하이구, 말짱하게 생겨서 꾀죄죄허네.”

“저, 저, 뭐야. 농장 가는 청년 아니여? 그 차가 요 앞에서 태우고 가자녀.”

“그런갑네. 요새 젊은 청년들도 태운다더니.”

나루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할머니들이 농장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농장’은 인천 끄트머리에 있는 큰 농장인데, 일손이 부족할 때마다 단기 알바를 지원한 청년들을 태워 가곤 했다. 그 정류장 중 하나가 이 노인정 앞에 있었다.

나루는 농장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농장? 내가 농장에 가는 건가?

한참 의아해하던 중, 근처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나루에게 말을 걸어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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