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1)
도윤이 외출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연우와 유정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희성은 당연하게도 자꾸만 도윤을 밖으로 불러내는 연우와 유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셋이 만나면 밥을 먹고 카페에 앉아 수다나 떠는 것이 다인데 연우와 유정은 늘 도윤을 부르고 봤다. 도윤이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서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지만 도윤은 그 두 사람이 부르면 희성에게 외출 소식을 알렸다.
오늘은 연우와 유정이 둘이서 놀이공원에 다녀왔다며 그곳에서 찍은 사진과 그곳에서 먹었던 간식들을 찍은 사진을 잔뜩 보내온 참이었다. 두 사람을 그저 부러워만 해야 했던 도윤은 서울로 돌아가 늦은 저녁을 먹을 생각인데 혹시 나올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유정이 찍은 퍼레이드 동영상을 계속 돌려보던 도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도윤은 우선 답장을 뒤로하고 희성을 찾아 나섰다. 평소보다 일찍 샤워를 마친 희성은 거울을 보며 면도를 하는 중이었다. 수염이 많이 나지도 않으면서 희성은 때가 되면 잊지 않고 면도를 했다.
욕실 앞을 서성거리며 얼쩡거린 도윤은 거울을 쳐다보는 희성을 힐끔댔다. 바지만 입고 거울을 보던 희성이 밖에서 얼쩡거리는 도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왜.”
“응?”
“할 말 있으면 해.”
“응, 응. 어떻게 알았어?”
아까부터 계속 욕실 앞만 왔다 갔다 하면서 시선을 끌어놓고 어떻게 알았냐니. 희성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도윤은 욕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벽에 찰싹 달라붙어 입술을 달싹였다.
하던 면도를 멈추고 도윤을 돌아본 희성이 손을 뻗어 팔을 끌어당기자 도윤이 얌전히 딸려왔다. 커버를 내리고 앉은 도윤은 또 눈을 굴리기 바빴다.
희성은 도윤이 자신을 찾아오고, 자신이 씻는 동안 옆에 앉아있는 것이 너무 좋고 귀여워 다시 면도를 시작했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희성은 입까지 벌리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도윤이 너무 귀여워 면도기를 내려두었다.
“재미있어?”
“뭐가?”
“나 구경하는 거 재미있냐고.”
“뭐어, 별로….”
“수염도 안 나는 게.”
희성의 손가락이 도윤의 볼을 콕 찔렀다. 말랑한 볼을 몇 번이나 찔러보고 튕겨낸 희성이 몸을 숙여 입을 맞추었다. 도윤은 잠깐 닿았다가 떨어진 입술에 입을 열었다. 희성의 기분이 좋아졌으니 이제는 말을 꺼내 봐도 될 것 같았다.
“김희성 나 있잖아.”
“응.”
희성의 입술이 이번엔 볼을 찍고 떨어졌다. 도윤은 볼이 잡혀 고개를 움직이지도 못하고 오른쪽 눈을 찡그렸다.
“김희성 나….”
“응.”
쪽. 낯간지러운 소리가 욕실에 울려 퍼졌다. 도윤은 입술을 꾹 눌렀다가 떨어지는 입술에 고개를 틀어보려 했지만 단단한 손에 막히고 말았다.
“아니…김희성, 쫌….”
희성은 기계처럼 도윤의 입술을 쪼아댔다. 말을 할 틈이 없었다. 결국 팔을 붙잡은 도윤이 싫은 소리를 내자 희성이 그제야 뽀뽀 폭격을 멈춰주었다.
“왜.”
“나 나갔다 와도 돼?”
“다 늦었는데 어디서 누구랑.”
“연우 누나랑 유정이가 같이 고기 먹자고 해서….”
또 그 두 사람이었다. 희성이 이를 꽉 물었다가 도윤의 볼을 엄지로 쓰다듬어주었다.
“가고 싶어?”
“으응, 아니면 같이 갈래?”
말랑하고 부드러운 살을 따라 엄지를 움직인 희성이 잠시 생각에 빠지는가 싶더니 짐짓 무서운 얼굴을 해 보였다. 도윤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볼을 쥐고 있던 손이 이번엔 도윤의 이마에 닿았다.
“열이 이렇게 나는데 어딜 나가겠다고.”
“열?”
“이마가 뜨겁잖아.”
“…내가?”
온종일 기침 한 번 없었고 머리가 어지럽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무슨 열? 도윤이 눈을 깜빡였다. 희성은 굳은 얼굴로 이마를 만져보더니 너 아파. 한마디 했다. 희성이 자꾸만 이마와 얼굴, 목을 만지며 열이 난다고 하니 이상하게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도윤은 알쏭달쏭 한 얼굴로 희성을 올려다봤다.
“안 어지러워?”
어지러운가…? 도윤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희성이 어지럽냐고 물어보니 또 갑자기 어지러운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도윤이 이마를 살짝 만져보았다. 열이… 나는 건가…?
“어지럽지?”
“조금… 어지러운 것 같아.”
“아픈데 어딜 나간다고. 일어나, 가서 누워있어.”
“으응….”
정말 열이 나나? 내가 정말 아팠던가? 도윤이 애매한 기분으로 희성에게 끌려 방으로 들어왔다. 희성은 아까부터 심각한 얼굴로 이불을 걷어내고 도윤을 눕혀주었다. 이불을 턱 끝까지 올려주고 볼을 쓰다듬어준 희성이 물었다.
“핸드폰 어디 있어?”
“소파에….”
“누워있어. 내가 못 간다고 대신 말해둘게.”
“응….”
희성이 자꾸만 자신을 환자 취급을 하니 정말로 아픈 것 같았다. 몸이 덥기도 했고 가쁜 숨이 나오기도 했다. 도윤은 저도 모르는 제 상태를 알아챈 희성이 신기했다.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희성이 사라진 문을 바라보았다.
희성은 소파에 홀로 버려져 있는 도윤의 핸드폰을 들어 비밀번호를 풀고 연우와 유정이 있는 대화창에 들어갔다. 엄지를 움직여 내용을 훑어보니 대충 놀이공원에 갔던 두 사람이 도윤을 불러내 함께 저녁을 먹을 생각인 듯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독차지해야 할 도윤을 자꾸만 불러내는 연우와 유정이 싫었다.
[내가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불러내지 말라고, 다시 부르면 차단을 하겠다고 구구절절 써서 보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도윤이 울거나 화를 내면서 자신을 탓할 수도 있으니 간결하게 답장을 써서 보냈다.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숫자가 줄어들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답장이 오든 말든 상관없었다. 희성은 그대로 나가기를 눌렀다.
아무것도 모르고 누워서 시간만 보내던 도윤은 방으로 들어와 자연스레 이불을 들추고 옆에 눕는 희성을 훔쳐봤다. 아까는 걱정을 하던 얼굴이더니 지금은 묘하게 즐거워 보였다. 도윤이 이불로 입술을 가리고 물었다.
“못 가서 미안하다고 했어? 뭐래?”
“알겠대.”
“웅….”
아쉬운 마음에 코를 훌쩍이자 희성이 도윤이 베고 있던 베개를 빼버리곤 자신의 팔을 넣어 받쳐주었다. 희성은 괜히 이마를 만져주곤 그 위에 입술을 꾹 눌렀다. 도윤의 이마는 지나치게 멀쩡했다. 열은 없었다. 몰래 웃음을 삼킨 희성이 고개를 숙여 숨을 쉬느라 벌어진 입술을 머금었다.
입술을 핥으며 빨고, 빨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입술을 깨물던 희성이 느릿하게 혀를 밀어 넣자 도윤이 몸을 떨었다. 키스를 할 때마다 떠는 도윤이 미치도록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희성은 팔로 도윤의 허리를 끌어당겨 더 깊게 혀를 밀어 넣었다. 혀를 옭아맸다가 놓아주곤 사탕을 빠는 것처럼 살살 빨았다가 또 놓아주었다.
도윤의 숨이 살짝 가빠졌다. 희성은 입천장과 옆의 여린 살을 긁기도 하고 문질러주다가 서서히 떨어졌다. 입술 사이로 늘어지는 타액도 아까워 혀를 내어 입술을 핥은 희성이 도윤의 머리카락을 살살 넘겨주었다.
“옮으면…어떡해….”
“네가 아픈 것보단 내가 아픈 게 더 나아.”
“그런 게 어디 있어….”
“여기.”
“그래도….”
“네가 아픈 것까지 내가 전부 다 가져갈게.”
도윤은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희성을 밀어냈다. 진심을 섞어 한 고백에 부끄러워하는 도윤이 사랑스럽고 예뻤다. 희성은 오돌토돌 흉이 진 왼쪽 손목을 들어다 입을 맞췄다. 희성이 손목에 입을 맞출 때마다 도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손을 빼내려고도 해봤지만 희성은 쉽사리 놓아주는 법이 없었다.
“있잖아.”
“응.”
손목에 머물러있던 입술이 이번엔 손바닥에 닿았다. 손바닥에 뽀뽀를 하니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도윤이 손바닥을 꾹 눌렀다가 떨어지는 입술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나도…놀이공원 가고 싶어.”
도윤의 손바닥에 가려져있던 입술이 느릿하게 올라와 손가락을 깨물었다. 깨물린 손가락이 움찔 떨렸다.
“응? 우리도 놀이공원 가면 안 돼?”
집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도윤은 희성에게만 들릴 정도로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마음이 간질거렸다. 희성은 손가락을 살살 물었다가 놓아준 뒤 다시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희성과 달리 놀이공원에 가고 싶은 도윤이 계속 희성을 졸랐다.
“나도 가고 싶어, 가자아.”
“그런 델 왜 가고 싶어?”
“재미있잖아.”
“난 너랑 둘이서 집에 있는 게 더 재미있는데.”
“가자아. 응? 으응?”
도윤이 저도 모르게 몸을 달싹이며 희성을 졸랐다. 하여튼 귀여운 짓은 혼자 다 한다. 손을 놓아준 희성이 엄지로 도윤의 눈가를 살살 문질렀다. 도윤은 눈을 찡그리면서도 놀이공원 가자아…. 하며 조르기 바빴다.
“사람이 너무 많잖아.”
“평일에 가면 별로 없대!”
“그렇게 가고 싶어?”
“응! 나 놀이공원 중학생 때 간 게 마지막이라서….”
도윤이 눈을 빛냈고 희성은 그저 도윤의 볼을 연신 쓰다듬으며 이마에 입술을 꾹 눌러주었다. 이렇게 조르고 또 졸랐는데도 알겠다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방 시무룩해진 도윤이 희성에게서 멀어졌다. 고개를 들어 베고 있던 희성의 팔도 밀어내고 뒤로 돌아누웠다.
도윤이 뭘 하든 마냥 귀엽기만 했다. 도윤의 허리에 팔을 감은 희성이 찰싹 붙어 숨을 들이켰다. 도윤에게서 나는 향기가 너무 좋았다. 분명 같은 제품으로 씻고 세탁을 하는데 유독 도윤에게선 좋은 냄새가 났다. 단단히 삐진 도윤은 잘 자라는 인사도 없이 잠을 청했다. 도윤이 자려고 노력하는 사이 셔츠를 들추고 손을 밀어 넣은 희성이 따끈한 배를 만지작댔다.
다음날 도윤은 놀이공원에 가자는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는 희성에게 단단히 토라져 이름을 불러도 쌩, 말을 걸어도 쌩, 희성이 소파에 앉아있는 도윤을 따라 앉으면 또 쌩하니 일어나 자리를 피했다.
연우와 유정과 함께 얘기를 나누곤 했던 대화창이 없어졌다는 것을 눈치챈 후로는 더 뿔이 난 상태였다. 희성은 도윤과의 연락이 아니면 모두 읽고 삭제를 하거나 아예 읽지도 않고 삭제를 하는 편이라 저도 모르게 나가기를 눌렀다며 실수라고 사과했지만 도윤은 받아주지 않았다. 희성은 턱을 비틀어보다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도윤의 방문은 닫혀있었다. 다시 같이 살게 된 이후 초반에나 문을 닫고 살았지 희성이 가진 불안함을 안 후부터는 줄곧 열려있었던 문이었다. 희성은 한숨을 쉬곤 문을 두드렸다.
도윤은 자신에게 단단히 토라져 있는 상태였기에 당연히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희성은 문을 다시 두드리지 않고 손에 힘을 주었다. 문을 잠가놓지는 않았는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희성은 가만히 서서 침대에 엎드려있는 도윤을 눈으로만 쫓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도윤의 앞에는 햄스터가 있었다. 도윤은 희성이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 쪽으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도윤은 지금 보통 삐친 것이 아니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놀이공원을 못 가게 했다고 침묵시위를 하는 도윤이 어이가 없었지만 귀여웠다.
들어간다는 인사도 없이 방으로 들어온 희성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에 도윤을 대신해 콩이가 관심을 보이고 다가왔다. 도윤은 희성에게 다가가는 콩이를 손으로 잡아다 다시 자신의 앞에 두었다.
“덥잖아.”
“…….”
“가면 그늘도 없을 거고, 사람만 많을 건데.”
“…평일에 가면 없다 그랬어.”
“누가.”
“누나가….”
그놈의 누나. 연우와 친해지게 놔두는 것이 아니었다. 희성의 실수였다.
“그렇게 가고 싶어?”
“가고 싶어….”
“왜 가고 싶은데? 사람 많은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난 좋아해.”
한숨은 삼켜냈지만 저도 모르게 혀를 찬 희성이 이마를 긁적였다. 아프다고 할 때는 통하더니 지금은 통하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손바닥 안에서 웅크린 콩이를 빤히 보던 도윤이 별안간 침대에 얼굴을 박았다.
뭐 하는 건가 싶어서 지켜보려는데 훌쩍임과 동시에 등에 떨림이 찾아왔다. 몸을 당겨 앉은 희성이 도윤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이불에는 도윤의 눈물방울이 콕콕 찍혀있었다.
“저리, 가아….”
웅크리고 있던 콩이가 화들짝 놀라 두 사람을 올려다봤다. 희성은 얼굴을 찡그리며 도윤을 일으켰다. 억지로 앉혀진 도윤은 창피함에 고개를 숙이려 했지만 늘 그렇듯 희성을 이기지는 못했다.
“하도윤.”
“이거 놔!”
“하도윤.”
놀이공원에 못 가게 해서 우는 것도 창피한데 평소에도 매일 불리던 이름을 듣자 지금만큼은 이상하게 너무 속상하고 서럽고 화가 났다. 볼이 잡힌 채로 입술을 삐죽이던 도윤이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왜, 왜 못 가게…해애, 왜….”
“하도윤, 나 봐.”
“흐…왜, 왜 자꾸 무섭게, 불러? 왜?”
“도윤아.”
“약속했잖아! 나랑 약속했잖아!”
도윤은 어떻게든 참아보려 해봤지만 서러움은 둑 터지듯 한 번에 쏟아졌다.
“너어…짜증 나….”
도윤은 급기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약소옥, 한 것도 안 지키고오…! 도윤은 끅끅거리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도윤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은 닦고 또 닦아도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희성이 눈물범벅인 얼굴에 입맞춤을 퍼부었다.
“내가, 끅, 하는 말은…듣지도 않으면서어! 매일, 흑…매일 뽀뽀…하구….”
밀어내려 뻗은 손이 입술에 닿자 희성은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가 손목을 감싸고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서러움으로 퉁퉁 부은 얼굴이 붙잡힌 손목으로 향했다. 희성은 조용한 방을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고 두 사람이 뭘 하는지 알 리가 없는 콩이는 이미 흥미를 잃었는지 베개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꼭 놀이공원이어야 돼?”
“…….”
“다른 곳은 안 돼?”
“…….”
대답도 없는 입술은 침묵시위를 하듯 굳게 다물려있었지만 감정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지 삐죽거리곤 했다.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며 우는 얼굴은 예쁘고 귀여웠지만 도윤을 사람이 많은 곳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놀이공원에 가면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을 텐데 그 사람들에게 도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두 손목을 엄지로 살살 쓰다듬어주며 다른 곳을 생각하던 희성의 머릿속에 언젠가 할머니께 받은 별장이 떠올랐다. 막둥이라고 자신을 예뻐하고 귀여워해 주던 할머니가 잠깐 스쳐 지나갔다.
딱히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방치되고 있던 별장이었다. 차를 타고도 꽤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주변에는 그 흔한 편의점도 없고 사람들도 살지 않는 그런 곳이 있었다. 이게 왜 이제야 생각났지?
“별장이 있어.”
“…….”
“가면 수영장도 있는데.”
“수영장…?”
“주변에 사람도 없어서 조용하고.”
“나 수영해도 돼…?”
훌쩍. 도윤이 훌쩍이며 물었다. 희성은 그런 도윤이 너무 귀여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도윤이 죽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었다. 허리를 숙여 도윤의 왼 손목에 입술도장을 꾹 찍은 희성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응.”
“진짜?”
“응. 가면 온종일 둘이서만 있을 수 있어.”
그건 별로 끌리지 않는 모양인지 대답을 미루는 낌새가 보였다. 희성은 얼른 말을 바꾸었다.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수영도 해.”
“놀이공원은?”
“…그건 나중에.”
“약속….”
훌쩍. 희성의 손안에서 빠져나온 새끼손가락이 앞에서 까딱였다. 너무 귀여워서 볼이나 한번 깨물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내밀어진 새끼손가락을 잡고 흔든 희성이 곧장 도윤에게 뽀뽀했다. 안 그래도 콧물이 자꾸 흘러서 곤란한데 숨을 쉴 입을 막으니 더 곤란해졌다. 도윤이 고개를 틀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나 휴지….”
혹시나 싶어 손으로 코를 막았더니 물끄러미 보기만 하던 희성이 일어나 휴지를 가져왔다. 코를 풀고 싶은데 왜 앞에서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희성에게 못 볼 꼴을 다 보여줬다지만 이런 모습까지 보여주기엔 너무 창피했다.
결국 코를 푸는 둥 마는 둥 대충 닦기만 한 도윤은 그거 조금 울었다고 부어버린 눈을 문지르며 혼자 놀고 있던 콩이를 케이지에 넣어주었다. 우느라 열이 올랐던 얼굴은 본래의 색을 되찾았지만 눈가는 아직도 붉기만 했다. 솔직히 정신이 들고나니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나이 먹고 놀이공원에 가주지 않는다며 울다니.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온 도윤은 물을 들이켜고 쭈뼛쭈뼛 소파에 앉았다. 일부러 거리를 두고 앉았지만 희성이 거리를 좁혀왔다. 도윤과 자신의 사이에 생긴 거리를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구는 것이 희성이 하는 일이었다. 익숙하게 허리를 감아오는 팔을 떼어내지도 못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린 도윤이 캘린더를 클릭했다.
“우리 언제 가?”
“네가 가고 싶을 때.”
“으응, 많이 멀어?”
“어차피 운전은 내가 하니까 신경 쓰지 마.”
아직 개강 전이라 평일에 가든 주말에 가든 다 좋을 것 같았다. 비록 희성의 별장이고, 가면 또 둘만 있겠지만 집을 벗어나 놀러 간다는 자체가 좋아 마음이 들떴다. 바로 옆에 찰싹 달라붙어 어깨에 턱을 얹은 희성이 캘린더를 보며 언제가 괜찮을지 고민에 빠진 얼굴에 뽀뽀를 해주려다 그만두곤 볼을 기댔다.
***
언제 갈지 날짜까지 정하니 도윤은 더 신이 나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미리 사람을 불러 별장을 청소하고 필요한 것을 채워두라 일러둘 예정이라 몸만 가면 되는데 도윤은 눈을 뜨고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책상에 올려둔 달력엔 표시까지 해두고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콩이는 평소에 집안일을 도와주던 남자가 돌봐주기로 했다. 도윤은 여행을 떠나는 날에 입을 옷도 미리 맞춰두었다. 밤에 입을 잠옷은 희성이 정하는 바람에 직접 고르지 못해 속상했지만 괜찮았다.
도윤은 TV를 보다가도 뜬금없이 ‘우리 금요일에 가는 거 맞지?’ 하면서 물어보기도 했고 밥을 먹다가도 ‘우리 금요일에 가서 뭐 먹어?’ 라거나 ‘가서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어?’ 하고 물었고 자기 전에도 ‘밤에 불도 피울 수 있어?’라고 물어봤다.
희성은 도윤이 일일이 물어볼 때마다 귀찮을 법도 한데 하나하나 다 대꾸를 해주었다. 도윤이 자신에게 말을 걸면 걸수록 오히려 좋기만 했다.
별거 아닌 일에도 자신을 찾는 도윤이 좋았다. 희성은 자기가 해줄 수 있는 일이면 다 해주고 싶었다. 도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전적이 있으니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도윤이 하고 싶다는 일이면 다 해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여행을 가야 하는 당일 아침,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희성이 입어줬으면 좋겠다고 했었던 흰 반팔 티셔츠와 청으로 된 멜빵바지를 입고 소파에 앉아 전화를 받고 있는 희성만 빤히 보던 도윤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벌써부터 시무룩하게 올려다보는 눈을 피해 뒤를 돌아본 희성이 이마를 문질렀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데? 많이 다치셨어?”
-새벽에 자전거 타고 오다가 차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넘어지셨나 봐.
“새벽에 자전거를 대체 왜.”
-요즘 새벽마다 운동 나가시거든.
“병원은.”
-많이 다치신 건 아니고 발에 깁스만 잠깐.
건너편에서 얼굴만 비추고 가라는 희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성은 눈을 꾹 감았다가 뜨곤 뒤를 힐끔거렸다. 어깨가 축 처진 도윤이 끌어안은 쿠션에 턱을 묻고 있었다.
“일단 알았으니까 끊어.”
-그래.
전화를 끊자마자 속으로 욕을 씹은 희성이 소파에 앉아 혀로 입술을 축였다. 도윤이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안다. 너무 잘 알아서 문제였다. 손등으로 턱을 문지른 희성이 입을 뗐다.
“도윤아.”
“응….”
“오늘 조금만 늦게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
“…왜?”
“일이 좀.”
“무슨 일? 왜 못 가는데?”
“못 가는 게 아니라.”
“그럼? 왜, 왜 늦게 출발해? 왜?”
난처했다. 희성이 혀로 볼 안쪽의 살을 문질렀다. 도윤은 놀이공원도 포기하고 오늘만을 위해서 살아왔다. 오늘은 집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는 날이었다.
오늘은 자신이 가자고 했던 것도 아니었고 희성이 먼저 가자고 했던 여행이었다. 오늘이 되기 전까지 계속 날씨를 확인했고 오늘을 위해 수영복도 새로 샀다. 놀러 가는 꿈까지 꿀 정도로 기대를 하고 기다렸던 여행이었다.
“집에 일이 좀 생겼어.”
“무슨 일?”
“아….”
웬만하면 도윤의 앞에서 어머니란 단어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혀로 마른 입술을 쓸어낸 희성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머니가 조금 다치셨나 봐.”
“마, 많이? 왜 다치셨는데?”
“심한 건 아니고. 발을 좀 다치신 거 같아.”
순간 도윤의 몸에 열이 올랐다. 어머니가 다치셨다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하지만 희성이 알려주지 않았으니 당연히 서운할 만도 했다. 도윤은 스스로를 위해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여행은…다음에 가면 되니까, 응….”
“다녀와서 출발하면 돼.”
“어떻게 그래. 어머니 다치셨다며.”
“금방 다녀올게.”
“아니야, 그냥 다음에….”
“다녀올 테니까 집에서 기다려.”
도윤이 입을 뻥긋거리기도 전에 이마에 입을 맞추고 몸을 일으킨 희성이 집을 나섰다. 고요해진 집안에 쿠션을 힘주어 눌러 구겼다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린 도윤이 그 위로 턱을 묻었다. 어머니. 엄마. 오랜만에 입에 올려보는 단어였다.
“엄마….”
웅얼웅얼 쿠션에 입술을 묻은 도윤이 엄마를 불러보았다. 엄마가 그날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이런 상상을 해봤자 기분만 우울해졌다. 도윤은 벌떡 일어나 콩이가 있을 방으로 향했다.
안 좋은 생각이 들 땐 콩이와 노는 것이 최고였다. 콩아. 이름을 부르며 케이지를 기웃거리자 열심히 쳇바퀴를 타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윤은 이제 콩이가 쳇바퀴를 타는 걸 재미있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할 일도 없으니 콩이가 혼자 뭘 하고 노는지 구경이나 해야겠다. 책상에 엎드린 도윤은 지치지도 않는지 쉴 새 없이 쳇바퀴를 타다가 터널을 요리조리 돌아다니는 뒷모습을 따라 눈을 굴렸다.
많이 다친 것은 아니라는 희준의 말은 사실이었으나 발에 깁스를 하고 있는 점도 사실이었다. 금방 퇴원을 할 텐데 뭐 하러 다 보러 왔냐고 농담을 뱉는 어머니에게 희성은 조심 좀 하시라는 말을 건넸다.
“그래도 다친 김에 아들들 모인 것도 보고, 나쁘진 않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희준이는 얼른 회사 들어가 봐야지.”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조금 있으면 아버지도 온다니까.”
“그래도 오실 때까지는 있을게요.”
그럼 나야 좋지. 주현이 웃으며 희성에게 손을 뻗었다. 희성이 한숨을 쉬며 다가가자 주현이 손을 잡고 손등을 두드려댔다. 집을 나가더니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아 막내아들을 보는 게 오랜만이었다.
“서운하게 뭐 한다고 연락 한 번을 안 해. 잠은 좀 자?”
“네, 뭐.”
“다행이네. 도윤이랑 안 싸우고 잘 지내고 있지?”
“안 싸워요.”
희성이 시계를 쳐다봤다. 어머니가 괜찮은 것도 봤으니 도윤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약속 있어?”
“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형 있으니까 먼저 가.”
“연락드릴게요.”
“운전 조심하고.”
“나가는 거 보고 올게요.”
희성이 뒤를 힐끔 보니 주현이 손을 흔들고 있었고 희준이 웃으며 따라 나오고 있었다. 저 웃는 얼굴을 보자 전에 자신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도윤을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주차장이 있는 지하층을 누른 희성이 언짢다는 티를 팍팍 냈다. 엘리베이터 내부에 비치는 표정을 살피던 희준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는 내 허락 없이 하도윤 만나지 마.”
“왜?”
“하도윤한테 연락하지 마.”
“너 초밥 좋아하는 것도 내가 알려준 건데?”
“하도윤 도와주지 마.”
엘리베이터가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내린 희성이 성큼성큼 차로 향했다. 열림 버튼을 누르고 희성을 지켜보던 희준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주현의 병실이 있는 층을 눌렀다.
커다란 집에 혼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일이 얼마나 떨리고 무서운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곧장 집으로 돌아온 희성은 손바닥에 콩이를 올리고 TV를 보고 있는 도윤의 앞에 서서 옷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들었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온 희성에게 놀라기도 했지만 오자마자 가방부터 챙겨서 더 놀랐다.
어머니는 괜찮으시냐고 물어볼 틈도 없이 일으켜진 도윤은 방으로 끌려와 콩이를 케이지에 넣어두고 다시 방을 나와야 했다. 희성에게 급함이 느껴졌다. 아무런 반항도 없이 끌려다니던 도윤이 손목을 잡은 희성의 손목을 쥐었다.
“희성아, 희성아.”
“왜.”
“어머니는? 어떠셔? 괜찮으신 거지? 응?”
“괜찮아. 다 챙겼어?”
“응, 근데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어머니 옆에 더 있다가 오지.”
“네가 기다리고 있잖아.”
“나? 나는…괜찮아. 꼭 오늘 안 가도….”
“너 오늘만 기다리고 있었잖아.”
“그래도 어, 어머니가 더 중요하잖아.”
“난 네가 더 중요해.”
왜 이렇게 조급하게 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어머니가 다치셨다는데 자신이 더 중요하다니, 도윤이 얼굴을 찡그렸다. 손이 이끌리는 힘에도 버티고 섰더니 희성이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지금 출발해야 오후에라도 도착해.”
“방금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출발하면.”
“엄마잖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잖아.”
자기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보던 희성이 아차 싶은 얼굴로 혀를 찼다. 도윤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희성은 빠르게 인정했다. 자신의 실수였다.
“미안.”
“나한테 미안해할 게 아니라….”
“내가 실언했어. 근데 도윤아, 나한텐 너도 중요해.”
정말 아주 가끔 희성에게선 예전의 희성이 보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희성이 다시 전처럼 돌아갈까 봐 겁이 났다. 도윤은 입안의 살을 씹으며 희성을 따라 발을 뗐다. 신발을 신고 엘리베이터를 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동안에도 오가는 대화는 없었고 차가 출발해 도로를 달리면서도 특별한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운전을 하는 사람을 위해서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잠을 자면 안 된다는 매너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도 없고 음악도 없으니 차 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도윤은 저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쳐들었다.
에어컨의 바람이 너무 차가웠다. 도윤은 팔을 움직이려다 몸을 감싸고 있는 담요의 존재를 눈치채고 옆을 힐끔거렸다. 희성이 무표정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출발할 때부터 무거웠던 공기는 여전했고 어색했다. 어깨에 걸쳐졌던 담요가 다리로 내려왔다. 희성이 자신을 생각해서 먼저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 것도, 자신을 생각해서 어머니를 뵙자마자 달려왔다는 것도 안다.
담요를 구겼다가 폈다가 부산스럽게 군 도윤은 휴게소로 들어가는 차에 희성을 돌아봤다. 쳐다보는 시선을 알면서도 묵묵히 차를 주차한 희성이 안전벨트를 풀었다. 희성을 따라 안전벨트를 푼 도윤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차에서 내려 땅을 밟았다.
점심이 훌쩍 지난 현재 날씨는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방금까지 시원하다 못해 추웠던 차 안에 있었던 탓에 도윤의 살은 차가웠지만 금세 열이 올라 따뜻해졌다. 문을 닫고 조금 기다리니 희성이 차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걸음을 나란히 하며 화장실에 갔다가 편의점으로 향했다.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았지만 출출하기는 했다. 도윤은 가면서 먹을 과자나 음료수를 사고 밖으로 나와 입맛을 다셨다.
알감자도 먹고 싶었고 핫바나 소시지도 먹고 싶었다. 희성은 휴게소에 들렀던 목적을 이뤘으니 다시 돌아가려고 했지만 자꾸 음식을 파는 가게를 기웃거리는 도윤을 눈치채고 발을 붙이고 섰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응, 근데….”
“근데.”
“먹고 나면 나중에 밥 못 먹을까 봐….”
“뭐 먹고 싶은데.”
“나, 나 알감자랑 소시지!”
“그거면 돼?”
“응!”
희성이 사줄 것처럼 굴자 신난 도윤이 직원에게 알감자와 소시지를 주문했다. 희성의 카드로 간식을 사고 난 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린 도윤이 양손에 알감자와 소시지를 들고 희성을 따라 차에 올랐다.
희성은 운전을 해야 하니 간식을 다 먹고 출발을 하기로 했다. 이쑤시개에 꽂힌 알감자가 도윤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도윤에겐 음료수를 따주고 자신이 마실 물을 따 목을 축인 희성이 알감자를 먹기 바쁜 볼을 구경했다. 먹는 게 그렇게 좋을까. 희성이 병을 밀어주자 알감자에 이쑤시개를 꽂은 도윤이 음료수를 마시고 내려놓았다.
“맛있어?”
“응, 먹을래?”
“아.”
작게 벌어진 입술을 힐끔대던 도윤이 알감자를 하나 골라 희성에게 먹여주었다. 버터에 굴려지고 설탕이 뿌려진 알감자는 달콤했다. 도윤은 어쩐지 기대에 찬 얼굴로 희성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맛있지?”
“응.”
알감자를 먹는 동안 내버려 두었던 소시지를 든 도윤이 입을 벌려 끝을 앙, 베어 먹었다. 뭉툭한 소시지를 먹는 도윤을 보고 손가락을 움찔 떤 희성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입술에 묻은 케첩을 혀로 핥아먹고 음료수를 마신 도윤이 소시지를 희성에게 내밀었다.
케첩이 덕지덕지 묻은 소시지를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눈을 반짝이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소시지를 먹은 희성이 새콤한 맛에 눈을 찡그렸다. 기름진 소시지도 별로였다. 희성이 소시지를 먹자마자 다시 가져가 맛있게 먹은 도윤이 발을 달랑거렸다.
간식을 먹으며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몸을 움직인 덕에 어깨에 올라가 있었던 멜빵의 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도윤이 멜빵을 입으면 귀여울 것 같아 급하게 찾아서 사 온 거였는데 상상 속의 모습보다 몇천 배는 더 예쁘고 귀여워 마음에 들었다. 팔을 타고 내려온 끈을 올려주자 마지막 소시지를 우물대던 도윤이 고개를 돌려 희성을 봤다.
나름 깔끔하게 먹는다고 애쓴 모양이었지만 입가에 케첩이 묻어있었다. 눈앞의 도윤이 너무 귀여워 짜증까지 날 정도였다. 희성은 몸을 당겨 뽀뽀를 해주며 입가에 묻은 케첩을 핥아먹고 떨어졌다.
입안에 아직 소시지가 있는데 뽀뽀를 하고 입술을 핥고 멀어지는 희성에게서 조금 더 떨어진 도윤이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뽀뽀 정도는 이제 익숙할 만도 한데 도윤은 늘 부끄러워했다. 그 점이 너무 귀여워 장소가 어디든 도윤을 붙잡고 빨아먹고 싶었다.
손등으로 입술을 벅벅 닦아낸 도윤이 쓰레기를 모아 다 버리고 오겠다며 문을 열었다. 같이 가. 희성이 따라 내리려 몸을 틀었지만 도윤은 쓰레기통도 바로 앞이고 화장실도 한 번 더 다녀오겠다면서 훌쩍 내려버렸다.
주변에 차가 오지는 않는지 두리번거리며 쓰레기통으로 총총 달려간 도윤이 곧장 화장실로 사라졌다. 도윤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늘 그랬듯 불안함이 슬금슬금 발을 타고 올라왔다. 초조함을 티 내는 손가락이 운전대를 톡톡 두드렸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던 도윤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결국 차에서 내린 희성이 화장실로 들어가 도윤을 찾았지만 애타게 찾는 얼굴이 없었다. 심장이 쿵쿵 뛰고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저도 모르게 거친 숨이 튀어나왔다.
희성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도윤을 찾았다. 차도 사람도 많지 않았지만 도윤은 없었다. 입술을 씹으며 안으로 들어가려던 희성이 이제 막 문을 열고 나오는 한 사람을 보고 주먹을 쥐었다. 건물 안에 있는 편의점에라도 다녀온 건지 도윤의 손에는 과자가 들려있었다. 허탈했다. 떨림을 감추려 심호흡을 한 희성이 다가가자 도윤이 놀란 눈을 깜빡였다.
“화장실 갔다 왔어?”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도 들었다. 희성은 대충 대꾸해 주며 도윤과 함께 발을 맞춰 걸었다. 간식을 먹어놓고 무슨 과자를 또 샀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도윤이 먹고 싶다면 이해가 갔다. 그거 잠깐 밖에 있었다고 땀이 흘렀다.
희성은 도윤이 편하게 탈 수 있게끔 문을 열어주었다. 고마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고 차에 오른 도윤은 과자를 다리에 놓고 안전벨트를 끌어당겼다. 철컥 소리가 나는 것까지 듣고 나서야 문을 닫아준 희성이 차를 빙 돌아 반대편에 올라탔다.
휴게소까지 오는 내내 자기만 했던 도윤은 이번만큼은 자지 않겠다는 듯 부지런히 과자를 먹고 창문을 내렸다가 올리고 핸드폰을 만졌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도윤이 과자를 먹는 동안 부스러기가 떨어졌지만 희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따로 음악을 틀어두지 않아도 좋았다. 희성은 정적 속에서 들려오는 도윤의 숨소리나 도윤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더 좋았다. 하지만 도윤은 앉아만 있기가 지루한지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어 소리를 조금 높였다. 도윤이 트는 노래는 신나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알지도 못하는 노래라 거슬렸으나 도윤의 흥얼거림을 들을 수 있어서 괜찮아지기도 했다.
목적지까지 한 시간이 좀 더 남았을 무렵, 새로운 간식을 꺼낸 도윤이 과자 한 알을 집어다 희성의 입 앞에 들이밀었다. 앞만 보던 희성이 동글한 과자를 보다가 도윤을 힐끔댔다.
이걸 거절하면 또 혼자 시무룩해질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희성이 입을 벌려주자 초콜릿을 품은 과자가 기다렸다는 듯 쏙 들어왔다. 희성이 씹는 것까지 확인한 후 과자를 먹은 도윤이 내비게이션으로 남은 거리와 시간을 확인했다.
***
미리 준비해두라 일렀던 덕에 별장에는 없는 것이 없겠지만 두 사람은 도윤의 간식을 사러 마트에 한 번 들렸다. 간식만 샀는데도 손이 무거웠다. 희성이 트렁크를 열어 짐을 꺼내는 사이 차에서 내린 도윤이 별장을 올려다보곤 입을 벌렸다.
별장이라고 해서 그냥 평범한 집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희성의 본가만큼은 아니지만 커다랗고 외관이 예뻤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던 말도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도윤은 뒤를 돌아 자신들이 지나쳐온 길을 쳐다봤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도 없었고 편의점도 없었다. 밤이 되면 정말로 무서울 것 같은 분위기였다.
도윤이 멍하니 서서 구경하는 사이 짐을 모두 꺼내온 희성이 대문을 열었다. 도윤은 길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남겨지는 것이 무서워 얼른 뒤를 따라 대문을 넘었다. 꼭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희성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바깥을 구경한 도윤이 별장 안으로 들어와서는 침을 꼴딱 삼켰다.
천장에 달린 커다란 샹들리에가 도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별장의 전체적인 톤이 화이트와 블랙으로 맞춰져 있어서 더 예뻐 보였다. 집에 있는 소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소파도 있었다. 둘만 있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별장이었다. 짐을 내려둔 희성이 손을 씻기 위해 욕실로 향하자 별장을 구경하기 바빴던 도윤이 급하게 발을 뗐다.
애초에 출발했던 시간이 늦어서인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벌써 어두웠다. 오늘은 희성이 온종일 운전을 하기도 했고 별장을 구경하고 싶기도 해서 수영은 내일로 미뤘다. 오는 내내 간식을 먹어서인지 배도 고프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을 아예 거르자니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플 것 같아 간단한 음식을 꺼내 먹은 둘은 샤워를 하고 또 별장을 구경했다. 희성의 입장에서는 별장을 구경하러 돌아다니는 것보단 도윤과 함께 소파나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쪽이 더 끌렸지만 도윤이 즐거워하니 양보하기로 했다. 어차피 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았다.
잠옷은 희성이 미리 준비해둔 것 중에서 마음에 드는 잠옷으로 골라 입었다. 별장의 주변으로는 빛이 없어서 사방이 어둡고 조용하기만 했다. 도시에 있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고요함이 새로웠다.
도윤은 자려고 침대에 눕기 전까지도 별장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봤었던 벽난로가 신기해 다가간 도윤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도 계속 벽난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1층과 2층에 있는 욕실도 엄청나게 커다랬다. 욕조가 무슨 수영장처럼 넓었다. 방도 많았는데 하나같이 모두 넓고 근사했다. 이런 곳에서 살면 정말 부자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부를 구경하느라 바빠서 방치되었던 희성은 아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침대에 누워 도윤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평소에 팔베개를 워낙 많이 해줬던 탓인지 도윤은 이제 희성이 팔베개를 해줘도 딱히 불편해하지 않았다. 천장을 보고 누운 도윤을 끌어당겨 왼손을 맞잡은 희성이 볼을 쪽쪽거렸다.
자세는 불편하지 않았는데 귓가에 자꾸만 뽀뽀를 하는 소리가 들려와 조금 불편해진 도윤이 어깨를 뒤척이자 희성이 아예 귓가에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쪽 소리가 너무 가까이서 들려와 깜짝 놀란 도윤이 으으응. 하면서 고개를 뺐다.
소리 없이 웃으며 손을 만지작거린 희성은 자신의 손가락과 달리 비어있는 약지에 아주 잠깐 시선을 두다가 다시 얼굴을 끌어당겨 입술을 머금었다. 미간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눈을 꼭 감은 채 키스를 받아낸 도윤이 살짝 달뜬 숨을 터뜨렸다. 전에 비하면 상냥한 수준인 키스를 받고도 움찔거린 도윤이 눈을 떴다.
“오늘은 싫어….”
“왜 싫어.”
“오늘은 그냥 자면 안 돼?”
“왜.”
“하기 싫어어….”
말로는 하기 싫다고 하면서 잡은 손을 흔들거나 불쌍한 척 눈을 깜빡이는 게 말과 행동이 너무 달랐다. 희성의 기준에선 이미 한 번은 붙어먹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희성이 다시 입술과 볼에 뽀뽀를 해주다가 고개를 틀어 목에도 입을 맞춰주었다.
“으응…아니, 나….”
“안 해.”
가벼운 입맞춤만 하고서 떨어진 희성이 이불을 끌어다 도윤의 가슴팍에 덮어주었다. 에어컨이 뿜어내는 빛을 따라 눈을 굴린 도윤이 몸을 돌려 희성과 시선을 마주했다. 옆으로 돌아눕느라 양손이 희성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애매한 손 위치에 주먹을 쥔 도윤이 눈을 깜빡였다. 또 뭐가 하고 싶어서 먼저 나서서 예쁜 짓을 하나 싶었다. 희성이 달싹이는 입술을 보다가 참지 못하고 뽀뽀를 해주었다.
“있잖아, 우리 내일 또 뭐해?”
“네가 하고 싶은 거.”
“뭐 하지?”
“수영하고 싶다며.”
“응, 응. 수영도 하고 또!”
“뭐 하고 싶은데.”
“너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말해?”
“으음…. 안 해도…되지 않을까…?”
“근데 왜 물어봐.”
“그으냥.”
“아까부터 왜 그렇게 귀엽게 굴어. 하고 싶어?”
“아니야.”
도윤이 못마땅한 눈으로 희성을 흘겨봤다. 남들처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도 꼭 이렇게 브레이크를 건다. 다시 천장을 보고 누운 도윤이 설레는 마음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차들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없으니 정말로 여행을 왔다는 실감이 났다.
콩닥콩닥. 내일이면 마음껏 수영을 할 수도 있고 주변을 산책할 수도, 운이 좋으면 다른 곳까지 나가서 놀 수도 있겠지! 벅차오르는 설렘을 끝내 참지 못하고 실실거린 도윤이 이불을 끌어안았다. 도윤을 끌어안고 있던 희성은 혼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
도윤은 밤새 몸을 섞지도 않았는데 피곤했는지 꽤 오랜 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눈을 떴을 때 시야에 희성이 없어서 저도 모르게 놀라기는 했지만 푹신한 침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자는 동안에도 돌아간 에어컨이 아직까지도 찬바람을 내뿜고 있었기에 이불속에 숨어 눈을 감았다 뜬 도윤이 앓으며 몸을 일으켰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웅크렸다.
양손을 가슴팍에 모으고 웅크린 도윤이 침대에 얼굴을 몇 번 비비곤 이불을 걷어냈다. 조용한 방이 낯설었다. 희성은 어딜 간 거지…. 멍하니 일어난 도윤이 살짝 부어있는 눈을 문지르며 욕실로 향했다.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털며 거실로 나온 도윤이 하품을 했다. 거실에도 에어컨이 틀어져 있어 공기가 서늘했다. 반팔로 된 잠옷을 입어 살짝 쌀쌀하기까지 했다. 팔을 쓸면서 주방으로 나온 도윤은 이제 막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려던 희성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아일랜드 식탁에는 희성이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운 음식들이 놓여있었다. 함께 살면서 희성이 요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믿기가 어려웠다. 떨떠름하게 의자에 앉은 도윤이 희성을 올려다봤다.
컵에 주스 두 잔을 따르고 한 잔은 도윤의 앞에, 나머지 한 잔은 자신의 앞에 놓아둔 희성이 의자에 앉아 주스를 마셨다. 넓은 식탁에서 혼란스러운 사람은 도윤이 유일했다. 뒤늦게 주스를 마신 도윤이 토스트와 샐러드, 계란 그리고 과일이 담긴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간단했지만 역시 희성이 요리를 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뭐해.”
“응? 이, 이제 먹으려구.”
“우유도 있어.”
“주스면 돼.”
포크로 샐러드에 있는 방울토마토를 콕 찍어 입에 넣은 도윤이 한참을 씹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네가 다 한 거야?”
“못 먹겠어?”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처음 봐서….”
“과일이랑 샐러드는 만들어져있던 거 꺼내기만 했어.”
“으응.”
사람이 다녀간 흔적도 없으니 토스트나 계란은 희성이 했단 소리였다. 식빵은 어차피 토스트기가 다 구워주는 거였지만 그저 신기했다. 도윤이 식빵에 딸기잼을 바르고 그 위에 계란을 얹었다.
기본에 충실한 토스트는 다 아는 맛이었지만 맛있었다. 도윤이 계속해서 힐끔거리자 식빵을 조각내서 먹던 희성이 식탁 아래로 발을 톡 쳤다. 먼저 훔쳐봐 놓고 건드리니 뒤로 빼는 모습이 귀여웠다.
희성은 아예 다리를 뻗어 도윤의 발을 사이에 가두고 식빵을 씹었다. 도윤은 잠깐 벗어나려 버둥거리더니 이내 포기를 하고 아침 식사를 이어갔다.
먹는 것을 아무리 좋아해도 막 자고 일어난 아침에는 버거웠다. 도윤은 반이나 넘게 남은 식빵을 먹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끌다가 무려 희성이 직접 만들었다는 점을 떠올려 입을 벌렸다. 남은 계란도 다 먹고 샐러드도 몇 번 먹었더니 배가 불렀다.
평소에 편식을 심하게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도윤의 그릇에는 테두리만 남은 식빵이 남아있었다. 괜히 먹기가 싫어 블루베리를 먹고 있자 발이 흔들렸다. 도윤이 알이 큰 블루베리를 입에 쏙쏙 넣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건 왜 안 먹어.”
“나중에 먹을 거야.”
“안 먹을 거잖아.”
도윤은 할 말이 없어져 블루베리만 씹었다. 희성은 자신을 너무 잘 알았다. 식빵 테두리만 남겨둔 채 블루베리를 야금야금 먹어 치운 도윤이 주스를 홀짝이며 일어날 타이밍을 쟀다. 그때였다. 희성이 손을 뻗어 도윤이 남긴 식빵 테두리를 가져가 입에 넣었다.
무표정으로 남은 식빵을 먹고 손을 턴 희성이 그릇을 싱크대에 넣어두었다. 도윤은 커다랗게 뜬 눈만 깜빡였다. 오늘 희성이 좀 이상했다. 요리도 하고 제가 남은 음식까지 먹어치웠다. 도윤이 허벅지를 긁적이다 그릇을 들고 희성을 도왔다.
아침을 먹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소파에 앉아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던 도윤이 입을 다물고 입매를 길게 늘어뜨렸다. 음. 고개를 돌리면 커다란 창 너머로 밖이 보였다.
주변이 온통 초록색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지 나무가 흔들리지도 않았다. 여기까지 온 건 좋지만 슬슬 심심해졌다. 슬리퍼를 신고 일어난 도윤이 바깥과 이어지는 문을 열자 더운 열기가 훅 끼쳐왔다.
희성은 해가 너무 뜨거우니 조금만 있다가 수영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얼른 수영을 하고 싶었다. 실내에서만 신는 슬리퍼를 벗자 맨발이 되었다. 도윤은 수영장이 있는 곳까지 맨발로 걸어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을 넣어보았다.
물 온도도 조절을 할 수가 있다더니 정말로 막 차갑지는 않았다. 덥기는 해도 수영을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손에 묻은 물을 털면서 다시 안으로 들어간 도윤이 희성을 찾았다.
“희성아.”
어디에 있는지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넓은 거실에 오도카니 서서 돌아올 대답을 기다리던 도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희성아!”
이번에도 기다리는 대답이 없었다. 도윤이 걸음을 옮겨 1층을 돌아다니며 희성을 찾았지만 희성은 1층 그 어디에도 없었다. 2층에 있나? 계단을 밟으며 위를 올려다본 도윤이 2층에 도착하자마자 희성을 찾았다.
“김희성!”
“왜?”
“어디 있어?”
“여기.”
희성은 2층 맨 끝 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희성에게 다가간 도윤이 방을 들여다보았다. 이 방은 희성이 어릴 적 별장에 오면 혼자 들어와 놀곤 했다던 방이었다.
“여기서 뭐해?”
“그냥. 근데 왜?”
“응, 나 수영하고 싶어서!”
“수영이 그렇게 하고 싶어?”
“으응. 나 해도 돼?”
“같이 가.”
희성이 손을 잡으며 밖으로 이끄는 중에 벽에 걸린 사진이 도윤의 시야에 들어왔다. 잡은 손에 힘을 주자 희성이 멈춰 섰다. 도윤이 다시 방을 기웃거리며 들어와 사진을 쳐다봤다.
벽에 걸린 액자에는 키가 큰 아이와 그보다 키가 작은 아이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들어있었다. 키가 큰 사람은 누가 봐도 희준이었고 키가 작은 사람은 누가 봐도 희성인 것 같았다. 이때도 희준은 웃고 있었고 희성은 못마땅한 듯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거 너지?”
“수영하고 싶다며.”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진을 들켜버렸다. 희성이 한숨을 쉬며 도윤을 잡아끌었다. 어릴 때랑 지금이랑 똑같이 생겼네. 도윤이 웃음을 참으며 방을 빠져나왔다. 저 때도 형을 싫어했구나. 왜지? 궁금했지만 물어보면 또 희준의 이름을 꺼냈다고 발끈할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근데 튜브에 바람 넣는 거 있어?”
“있어.”
다행이다. 이 더운 날 입으로 일일이 불어야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희성을 따라 방으로 들어온 도윤은 새로 산 수영복을 꺼내 입고 티셔츠에 머리를 끼웠다.
희성도 자신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사는 것 같더니 역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똑같은 수영복인 줄 알 것만 같았다. 수영복까지 입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도윤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미리 준비되어 있었던 튜브에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큰 유니콘이 서서히 부피를 키워갔다. 도윤이 설레는 마음으로 부푸는 튜브를 구경했고 희성은 그 옆에 서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더워죽겠는데 튜브에 바람이 가득 차기를 기다리는 게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기계가 알아서 바람을 넣고 있으니 힘을 쓰지 않아도 됐지만 한번 구겨진 얼굴은 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찡그린 얼굴 위로 아까 봤었던 사진 속 얼굴이 겹쳐 보였다.
드디어 튜브가 완성되었다. 신난 도윤이 튜브를 안아다 물에 띄워보았다. 기계의 노력으로 탄생한 하얀 유니콘은 물 위에 둥둥 잘도 떠다녔다.
신남을 주체하지 못하고 실실거린 도윤이 쪼그리고 앉아 손에 묻힌 물을 가슴팍에 톡톡 문지르며 들어갈 준비를 했다. 옆에 서서 도윤이 하는 것만 지켜보던 희성이 유니콘의 머리를 잡아주자 조심스럽게 유니콘의 위에 올라탄 도윤이 웃으며 물장구를 쳤다.
하얀 유니콘의 목을 끌어안고 물장구를 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 저렇게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니콘을 타고 유유히 물 위를 돌아다니는 도윤을 물끄러미 보던 희성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예고도 없이 발목을 쥐자 놀란 도윤이 희성을 봤다가 또 웃으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볼에 피어난 보조개를 보며 발목을 만지작댄 희성이 대뜸 튜브를 뒤집었다.
덕분에 튜브에서 떨어진 도윤이 허우적허우적 정신을 못 차렸다. 가만히 서 있어도 바닥에 발이 닿는데 도윤은 안타깝게도 그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희성아, 희성아! 콜록거리느라 희성을 부르는 목소리가 엉망이었다.
희성은 잠시간 허우적거리는 도윤을 보다가 다가가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제야 물먹는 것을 멈춘 도윤이 콜록거렸고 한차례 늦게 바닥에 발이 닿는다는 것을 알아채고 머쓱한 듯 세수를 했다.
“왜, 왜 그래!”
“재미있어서.”
“재미없거든?”
튜브를 향해 걸어가는 도윤을 다시 끌어당긴 희성이 튜브를 뒤집었을 때와 같이 냅다 입부터 맞추고 봤다. 홀딱 젖은 채로 혀를 섞다가 숨이 찬 도윤이 먼저 고개를 틀었다.
콜록콜록 기침하면서 희성을 흘긴 도윤이 다시 튜브를 찾아 떠났다. 혼자서 타지도 못하면서 튜브를 쥐고 도망가는 꼴이 웃기고 귀여웠다. 여유롭게 뒤를 따라간 희성이 다시 튜브에 올라타는 것을 도와주었다.
유니콘을 타고 혼자서도 잘 노는 것 같더니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도윤이 발장구를 쳤다. 물에서 나와 앉아있던 희성이 다가가자 유니콘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도윤이 손을 팔랑거렸다.
“왜.”
“같이 놀면 안 돼?”
넓은 수영장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으려니 좀 심심했다. 도윤이 발을 차자 튜브가 움직였다. 가까워지는 듯하다가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튜브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물에 젖은 수영복이 허벅지까지 말려 올라간 것이 보였다. 가만히 앉아 쉬고 싶었지만 그걸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도윤의 살에 이끌려 들어간 사람치고 희성은 제법 건전한 방향으로 놀아주는 쪽을 택했다. 튜브를 잡고 끌어주자 도윤은 스스로 발장구를 치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가는 게 즐거운지 계속 웃기만 했다.
튜브에 눌린 허벅지를 한 번만 빨아보고 싶었다. 희성의 아래는 아까부터 지금까지 쭉 발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튜브를 끌어준다고 신난 도윤을 보자 괜한 심술이 일었다.
희성은 참지 않았다. 아까처럼 예고도 없이 뒤집어진 튜브에 도윤이 또 물을 먹고 콜록거렸다. 코로 들어간 물 때문에 코가 너무 따가웠다. 실실거리며 다가간 희성이 얼굴에 묻은 물을 닦아주었다.
“너, 너어.”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도윤이 복수를 위해 손으로 물을 튕겼다. 콜록거리는 자신과 달리 태연하게 물을 닦아내는 희성의 모습에 도윤이 씩씩대며 손바닥에 물을 모아 공격했다. 희성은 물로 아무리 공격을 해봐도 타격감이 없어 보였다.
본전도 못 찾고 그만둔 도윤이 튜브에 오르기 위해 물속에서 폴짝 뛰어올랐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튜브를 탈 수 없었기에 도윤이 원망스러운 눈빛을 쏘아댔다. 물속에서 도윤의 허리를 끌어당긴 희성이 볼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나가자.”
“벌써?”
물에 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다고?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더 놀래.”
“나중에 놀아.”
“나중에 언제?”
“또 놀고 싶을 때.”
“난 지금 놀고 싶은데….”
튜브를 꼭 쥔 도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희성이 손에 있는 물을 도윤에게 튕겼다. 뭐야! 치사하게 방심하고 있을 때 공격을 하다니. 희성을 피해 앞으로 나아간 도윤이 튜브를 구석에 두고 다시 다가왔다.
수영을 잘하진 않지만 나름 어릴 때 배운 것을 써먹으려고 준비하고 있자 희성이 다가와 팔을 붙잡는다. 가까워진 얼굴을 의아하게 바라보자 희성이 자신의 어깨에 도윤의 손을 얹어주곤 수영을 도와주었다.
아까는 나가자고 했으면서…. 코앞에 있는 얼굴이 부담스러워 물속을 쳐다보자 이번엔 희성의 가슴팍이 눈에 들어왔다. 갈 곳을 잃은 눈동자가 희성의 상체에 닿았다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당연히 집중될 리가 없었다.
한번 잃은 집중력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찰랑거리던 물이 코로 들어왔다. 코가 매웠다. 도윤이 눈을 감고 기침을 토하자 희성이 몸을 안아왔다. 졸지에 희성의 목에 팔을 감고 안긴 자세가 되었다. 찡한 코에 기침만 토하던 도윤이 훌쩍였다.
“놔줘.”
“싫어.”
“놔줘어.”
“싫어.”
물속에서 도윤을 끌어안은 희성이 곧장 밖으로 향했다. 코알라처럼 안겨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던 도윤이 발버둥을 쳤다.
“싫어, 안 나갈래, 싫어!”
“나가야 돼.”
“왜애! 아, 싫어!”
무겁지도 않은지 물속에서부터 안고 있던 도윤을 한 번에 들어 올린 희성이 문을 열었다. 투명한 창엔 물방울들이 희성의 손자국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채로 침대에 던져진 도윤은 침구가 젖든 말든 고개를 격하게 저어댔다. 애초에 수영복 하나만 입고 있어 귀찮게 벗을 옷도 없는 희성과 달리 도윤은 수영복에 티셔츠를 입고 있는 상태였다.
물에 젖은 티셔츠는 희성의 손에 의해 벗겨져 바닥에 찰팍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희성을 밀어내길 포기한 도윤이 가슴팍에 손을 모으고 주먹을 쥐었다. 엑스를 그리는 것도 아니고 손만 모으고 있는 자세에 희성이 웃음을 터뜨리며 그 위로 입술을 붙였다가 떼어냈다.
“하, 할 거야?”
“싫어?”
“아까 싫다고 했, 했는데.”
“어제도 싫다고 했잖아.”
“어제느은….”
“어제는 싫었으면 오늘은 좋아야지.”
“시, 시간도 아직!”
“뒤에 약속 있어?”
“…….”
“난 없는데. 너도 없잖아.”
대꾸할 말이 없어 여전히 주먹만 쥔 도윤이 눈을 깜빡였다. 눈치를 보던 도윤이 주먹 쥔 손을 입술까지 올려 웅얼댔다.
“그럼…오, 오늘은 조금만 하면 안 돼…?”
“노력해 볼게.”
“조금, 조금만. 응?”
“손 내려.”
“조금…으응….”
얇은 손목을 쥐고 아래로 내린 희성이 입술을 문질렀다. 곧장 입안으로 파고든 혀는 입안의 여린 살을 문지르며 잔뜩 긴장한 혀를 맞이했다. 붙잡은 얼굴을 살짝 들어 올리자 혀가 더 깊숙이 들어갔다.
희성은 볼 안이나 입천장, 혀 등을 꼼꼼히 핥고 문질러주었다. 응…. 얼굴을 쥔 손등에 도윤의 손이 닿았다. 혀가 뽑힐 듯 빨아대던 희성이 입술을 빨며 떨어졌다.
“흐….”
“예뻐.”
“읏.”
새가 부리로 쪼듯 쪽쪽 뽀뽀를 해준 희성이 이번엔 목을 물고 빨았다. 귀 뒤를 핥을 땐 소름이 끼쳤다. 도윤이 바르작거리며 눈을 감았다. 다른 과정을 건너뛰고 도윤의 것을 처박고 싶었다. 그만큼 마음이 급했다. 젖은 상체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던 희성이 가슴을 마사지하듯 주무르다 유두를 꾹 눌렀다. 눈을 찡그린 도윤이 한숨 같은 숨을 터뜨렸다.
스스로 뱉어내는 신음이 너무 부끄러워 입술을 깨물어 보기도 하고 은근슬쩍 손등으로 입술을 막아보기도 했지만 이미 잔뜩 물리고 빨린 유두는 이제 살짝 스치기만 해도 간지럼을 탔고 저릿했다.
충분히 단단해졌음에도 희성은 포기하지 않고 가슴을 괴롭히는 데 집중했다. 희성과 몸을 섞은 지도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다. 도윤은 다음에 올 쾌감을 자연스레 떠올려보다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저도 모르게 그런 걸 떠올리고 기대하는 게 싫었다.
조금 전까지 물에 있다가 나오기도 했고 방에는 에어컨도 틀어져 있어 살에 닿는 손이 차가웠다. 희성의 손바닥이 상체 곳곳에 닿을 때마다 몸이 떨렸다. 조금만 더 물고 빨면 상처가 날 것 같은 유두를 놓아주고 배에 입을 맞추던 희성이 옆구리를 살살 간질이자 허리가 떨리며 동시에 신음이 흘렀다.
솔직하게 반응하는 몸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웃으며 살을 깨문 희성이 수영복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물에 젖어 살에 착 달라붙어 있었던 수영복을 벗기니 반쯤 기립한 성기가 꺼떡였다. 도윤은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얼굴도 예쁘고, 몸도 예쁘고 하다못해 성기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은밀한 곳까지 다 예뻤다. 도윤의 것이 완전히 발기하기도 전이었지만 입이든 아래든 넣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입으로는 배를 깨물고 빨면서 손으로는 성기를 쥔 희성이 몸을 일으켜 도윤을 내려다봤다.
팔로 눈가를 가리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꽉 찼다. 도윤은 평소에도 섹스를 할 때면 가끔 몸을 떨곤 했는데 두려움에 잡아먹혀 떠는 것과 흥분에 휩싸여 떠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후에도 초반에는 도윤이 무서워하는 바람에 가벼운 손장난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떨림을 달래주는 날들이 있었다. 과거의 기억 때문에 떨고 있으면 희성은 하던 것을 멈추고 도윤이 진정되길 기다려주었다.
그런 걸 떠올리면 지금 도윤을 감싸고 있는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희성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느릿하지만 힘을 줘서 성기를 쓸어내린 희성이 숨을 터뜨리는 입술을 머금었다. 어설프지만 자신을 따라 혀를 섞는 도윤이 좋았다.
혀를 섞으며 성기를 자극하자 반쯤 기립해있던 것이 서서히 힘을 싣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도윤과 몸을 섞는 일은 순전히 저만 좋아서 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도윤도, 하도윤도….
“도윤아.”
“흐, 으응, 응?”
“좋아?”
“읏, 하아…아….”
분명 도윤도 좋아할 터였다. 좋아해야만 했다. 도윤도 자신과의 섹스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목과 어깨, 쇄골을 잘근잘근 씹으며 내려간 희성이 기둥을 쥐고 귀두에 입을 맞췄다. 섹스를 하는 내내 자신만 보고 자신의 생각만 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자신은 더 분발해야 했다. 선단에 숨이 내려앉았다. 이어서 뜨겁고 축축한 입안으로 들어서자 도윤이 훌쩍이며 다리를 세웠다. 도윤의 허벅지에 있는 자신의 이름이 선명한 것처럼 죽을 때까지 도윤의 머릿속에 자신이 선명했으면 좋겠다.
희성이 기둥을 삼키면 삼킬수록 좁아지는 허벅지에 손을 넣어 양옆으로 벌렸다. 도윤의 것을 끝까지 삼키는 것은 희성에게도 버겁고 입술이 아팠지만 제가 힘들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보다 도윤이 더 만족스러운 섹스가 됐으면 싶었다.
이런 행위를 하는 동안 도윤이 쾌감에 몸부림쳤으면 좋겠다. 내가 주는 쾌락이 너무 좋아서 엉엉 울었으면 좋겠다. 신음을 뱉기도 벅찬 입술로 제 이름을 불러줬으면 좋겠다.
부들부들 떨리는 허벅지를 주무르며 성기를 삼킨 희성이 고갯짓을 이었다. 흐윽, 흑…. 계속 신음을 참던 도윤이 솔직하게 반응했다. 입안에는 이제 침인지 도윤의 것에서 나온 액인지 모를 것들이 잔뜩 뒤엉켜 미끌거리고 있었다.
숨을 조금 더 편하게 쉬기 위해 성기를 뱉은 희성이 꺼떡거리는 것을 붙잡고 입을 벌렸다. 고개를 숙이면 숙일수록 헛구역질이 일었지만 희성은 그 느낌마저 좋아 즐기기를 택했다. 숨이 막혀 눈알이 벌겋게 충혈돼도 개의치 않고 더 깊게 머금었다.
욱…. 희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눈물이 고였지만 참을 수 있었다. 목을 긁으며 들어오는 귀두가 좋았다. 희성은 터질 것 같은 아래에 수영복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수영을 할 때부터 도윤의 것을 빨고 있는 지금까지 크기를 키우고 있던 성기는 금방이라도 사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목을 찌르는 귀두에 눈을 감고 밖으로 꺼낸 것을 흔들었다. 조금만 더 쥐고 흔들면 사정할 수 있었다. 그건 도윤의 것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목구멍에서부터 비릿함이 느껴졌다. 침을 삼키자 목구멍이 조여들었고 도윤이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다.
도윤의 손바닥이 이마를 밀어냈다가 밀려나지 않자 이번엔 머리를 밀어냈다. 거의 다 됐는데 밀려날 순 없었다.
“하아, 아, 김…희성…!”
다시 침을 삼키자 목구멍이 조여들었다. 삼키지 못한 타액들이 기둥과 희성의 턱을 타고 흘렀다. 도윤이 허리를 들자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더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놓치기 싫어 허리를 붙잡은 희성이 눈을 찡그렸다.
헛구역질이 나다 못해 쾌감까지 들었다. 눈을 감자 목을 찌르는 감각에 고여 있던 눈물이 툭 떨어졌다. 도윤의 것이 희성의 입안에서 움찔움찔 사정했다. 도윤이 뱉어내는 것을 밀어내지도 않고 빨던 희성이 자신의 성기를 힘껏 흔들었다.
도윤과 함께 가고 싶었지만 뭐, 나쁘지는 않았다. 탈력감에 뒤로 쓰러진 도윤이 숨을 헐떡거렸다. 입안에서 미끌거리는 액을 혀로 문질러보던 희성이 비릿함에 아주 잠깐 고민을 하곤 위로 올라가 도윤에게 입을 맞췄다.
정신없이 호흡을 고르느라 바빴던 입술 사이로 비릿함이 덕지덕지 묻은 혀가 침범했다. 이거 싫다고 몇 번을 말했었는데 어째 들어주는 법이 없었다. 얼굴을 찡그린 도윤이 혀를 밀어냈지만 정액을 묻힌 혀는 빠져나가지도 않고 입안을 돌아다녔다.
치아를 훑고 볼 안의 살도 훑은 혀는 이제 도윤의 혀를 감아왔다. 질척한 소리가 방을 울렸다. 부끄러워서 열이 올랐다. 그러자 그걸 또 어떻게 안 건지 희성이 손으로 도윤의 양쪽 귀를 막았다.
귀를 막고 키스를 하면 소리가 더 적나라하게 들리곤 했다. 도윤이 끙끙 앓으며 희성의 손을 떼어내려고 노력했지만 키스만 진득해질 뿐이었다. 희성의 입안에서 사정한 성기가 꺼떡였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사정한 것과 희성의 타액을 함께 삼켜낸 도윤의 눈꼬리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으…그, 끅, 만하라고….”
“네가 좋아하니까.”
“아니야….”
조금 전에 눈물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흘러내린 눈물방울을 혀로 핥은 희성이 귓불을 빨다가 귓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흣. 도윤이 눈을 꾹 감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희성은 귀가 축축해질 때까지 빨다가 내려와 목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힘겹게 눈을 떠도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있어 세상이 흐릿했다. 시작도 안 했는데 줄줄 흐르는 눈물을 핥아먹은 입술은 가슴과 옆구리, 허리와 배를 차례대로 빨았다. 도윤은 애무만으로도 진이 빠져 울며 몸을 떨었다.
신음을 참느라 이로 깨문 입술도 떨리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희성이 하얗게 질린 입술을 핥아보았다. 입술은 허락해 주지 않겠다는 듯 굳게 닫혀있었다.
“넌 얼굴도 예쁘고, 귀도 예쁘고 몸도 예쁘고 좆도 예쁘고.”
“이상한 말 하지 마!”
훌쩍거리며 희성을 올려다보던 도윤이 결국 히끅히끅 울음을 터뜨렸다. 말을 잇다가 엉엉 울기 시작한 도윤을 보고 있자니 사정을 한번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발기한 성기가 아팠다. 도윤의 것에 성기를 비비던 희성이 낮은 숨을 터뜨렸다.
이마와 볼에 입술을 누르고 떨어진 희성이 가슴팍을 쓰다듬으며 내려와 도윤의 허벅지를 잡았다. 안 예쁜 곳이 없다. 희성은 손바닥에 가득 들어찬 살을 마음껏 주무르며 타투 주변을 쓸었다.
도윤에게도 학습능력은 있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것을 도윤도 알았다. 본격적인 행위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우느라 힘을 다 써버려 난감했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위에 올라탄 희성을 올려다본 도윤이 훌쩍, 코 먹는 소리를 냈다.
납작한 배를 쓰다듬으며 도윤이 진정되길 기다려주던 희성은 뒤를 풀기 위해 손가락을 물었다 뱉곤 이미 벌어져 있는 도윤의 입안으로 가져갔다. 따뜻한 혀를 톡톡 건드려보다가 꾹 누르자 얼굴을 찡그린 도윤이 혀로 손가락을 밀어냈다.
희성은 낮은 숨을 터뜨리곤 손가락을 놀렸다. 밀어내는 혀를 만져보고 입천장을 긁어주면 어깨를 떨었고 살을 문질러주면 눈을 꾹 감았다. 축축해진 손가락을 빼내 뒤로 가져간 희성은 곧장 아래를 풀기 시작했다.
타액으로 축축해진 손가락이 말라서 뻑뻑해지면 다시 손가락을 물리고, 젖으면 뒤를 풀기를 반복했다. 아직 도윤의 것을 받아내려면 힘들긴 하겠지만 마음이 급했다. 이 정도 아픔은 무시하고 쑤셔 박으면 몸이 알아서 적응하고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희성이 젖은 손으로 도윤의 것을 위아래로 쓸어주다가 자신의 것과 맞대어 삽입하듯 비볐다. 으응….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신음을 흘리는 도윤을 빤히 바라보면서 몸을 일으킨 희성이 기둥을 붙잡고 아래에 귀두를 문질렀다.
뭉툭한 귀두가 닿자 끝이 조금씩 벌어지는 게 느껴졌다. 도윤은 늘 그렇듯 숨을 참았고 희성은 턱을 비틀어보다 성기를 반이나 머금었다. 벌어진 입술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후….”
“아, 으…아파….”
역시 좀 아팠다. 삼켰던 것을 조금 빼내며 숨을 고르던 희성은 아예 뿌리까지 삼키고 앉아 눈가를 구겼다. 동시에 헐레벌떡 몸을 일으킨 도윤이 희성의 허벅지를 잡고 고개를 저어댔다. 이런 행동은 매번 똑같아서 대답을 듣지도 않은 희성이 허리를 움직이며 말했다.
“왜, 조금, 아…기다리라고?”
“응, 응. 으응.”
“기다리면 뭐해줄 건데?”
“흑, 잠, 깐마안….”
“응? 뭐해줄 거야?”
눈꼬리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핥으려 몸을 숙이자 도윤이 고개를 휙 돌린다. 귀엽긴. 친절히 볼을 잡고 돌려준 희성이 눈물을 핥곤 입술에 뽀뽀를 해주었다. 우으…. 도윤이 울먹이며 희성을 올려다봤다. 너무 귀여워 아래가 움찔거렸다. 도윤은 순간 조여드는 내벽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윤아.”
“으응, 응. 왜…왜애….”
“입 벌려봐.”
“왜…?”
이유를 물으면서도 몽롱한 얼굴로 입을 벌리는 게 말도 잘 듣고 너무 예뻤다. 희성이 실실거리며 작게 벌어진 입술에 혀를 밀어 넣었다. 얼굴을 붙잡고 눈을 내리뜬 채 혀를 섞는 동안에도 희성의 허리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도윤과 섹스를 할 때면 쉴 틈이 없었다. 희성은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유두를 괴롭히거나 허리를 돌렸다. 숨도 못 쉬게 만들어놓고 가슴까지 괴롭히는 건 반칙이었다. 허리와 허벅지를 움찔거리던 도윤이 희성의 손등을 잡아 내리려고 애썼지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으으응, 응!”
소리를 쳐도 혀가 잡혀있으니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눈물을 줄줄 흘려보내자 희성이 아래를 조이며 혀를 빨아댔다. 씨이…. 서러움에 씩씩거리던 도윤이 복수를 하고자 희성의 혀를 쪽쪽 빨다가 콱 깨물어 보았다.
키스를 하면서 어쩐 일로 적극적으로 나온다 싶었다. 입술을 뗀 희성이 따끔한 혀를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눈물로 범벅된 눈을 쳐다봤다. 숨이 모자랐는지, 아니면 흥분을 해서 그런 건지 얼굴과 목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도윤의 배에 문질러지며 딱딱해진 성기가 꺼떡였다. 예고도 없이 움직여 성기를 자극하는 아래에 도윤이 입을 벌렸다.
“아!”
“마음에 안 들었어?”
“하읏, 잠, 아, 읏!”
씨근덕거리던 도윤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허리를 움직인 희성이 뜨거운 숨을 터뜨렸다. 기둥을 감싼 내벽이 귀두에서 나온 액으로 미끌거렸다. 뭉툭한 귀두는 희성의 내벽을 짓눌렀고 그에 보답하듯 아래를 조이며 빨아들였다.
“하으, 윽.”
“희성, 응, 희, 읏!”
배를 짚은 손바닥에 힘이 실렸다. 배가 눌리자 숨을 멈춘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허리를 들었다가 그대로 아래로 내리던 희성에게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귀두가 내벽을 찌르면 찌를수록 몸이 떨렸고 머리가 뜨거워졌다.
아, 좋아…. 계속해서 이어지는 쾌감에 정신이 붕 떴다. 희성과 마찬가지로 헐떡거리던 도윤이 눈을 감은 채로 허리를 쳐올렸다. 아! 희성이 비틀거리며 도윤의 배를 짚음과 동시에 하얀 살 위로 액이 투둑, 떨어졌다.
배를 짚은 팔이 후들후들 떨렸다. 사정을 했다고 허리를 멈추지는 않았다. 희성은 귀두를 타고 기둥으로 줄줄 흐르는 액을 훑으며 도윤의 것을 내벽에 문질렀다. 울면서도 서툴게 박아대던 도윤이 한 발짝 늦게 희성의 안에서 사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