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27)

제주도(1)

  

  

도윤이 지내게 된 숙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기 투숙객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우는 아침이면 아침을 먹으러 내려오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빴고 저녁엔 바비큐 파티가 아니어도 꼭 한자리에 모여 술을 마시느라 바빠 보였다. 숙소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정우, 그리고 사장님은 다들 나이 성별 상관없이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도윤은 없었다. 아침이면 늘 사람들이 한차례 빠진 시간에 느지막이 나타나 구석에 앉아 조용히 배를 채우고 사라졌고 외출을 하더라도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도윤의 손에는 항상 편의점 봉지가 들려있었다.

정우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자리를 지키다가 사라지는 도윤이 궁금했다. 말을 걸어도 대화가 잘 이어지지도 않았고 숙소를 이용한지 벌써 5일이 지나가고 있는데 웃는 모습도 잘 보여주지 않았다. 매일 저녁에 이용객들끼리 먹고 노는 자리에도 도윤은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아침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등의 인사는 꼬박꼬박 하는 걸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정우는 의자에 기대앉아 도윤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 곧 5시가 된다. 그러면 도윤은 2층에서 내려와 숙소를 나간다. 그리고 5시 10분이 되지도 않아서 다시 들어오겠지. 정우는 5시가 되려면 아직 3분 정도가 남은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의 입구에 서서 도윤을 기다리던 정우는 정말로 5시 땡 하자마자 열리는 문소리에 웃음을 참았다. 사람이 이렇게 정확할 수가 있나? 아무튼 신기한 사람이었다. 정우가 허리에 손을 얹고 계단을 올려다봤다. 오늘도 몸에 본드로 붙여둔 것 같은 가방을 멘 도윤이 계단을 내려오려다 멈춰 섰다. 정우가 사람 좋은 미소를 만들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도윤은 다시 방으로 가지도 못하고 내려오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내려올 거였잖아요.”

정우가 손을 까딱였다. 도윤이 가방끈을 꼭 쥐고 계단을 밟았다. 나란히 서있자 키 차이가 그렇게 나는 편도 아니었다. 정우는 생각보다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도윤을 보며 조금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도윤은 늘 웅크리고 다녔으니 당연했다.

“또 편의점?”

“…….”

“매일 라면만 먹으면 안 질려요?”

“괜찮아요….”

“아니면 저랑 같이 먹을래요?”

“네?”

“근처에 카레 맛있는 집 있어요.”

“…저는 혼자 먹는 게 좋…아요….”

“난 혼자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어쩌라는 거지? 도윤은 생각했다. 정우는 잠시 기다리라는 말만 남기고 카페의 문을 잠그고 돌아왔다. 카페를 저렇게 막 닫아도 되는 건가? 살짝 불안한 기색으로 정우를 힐끔거리던 도윤이 가방끈을 손톱으로 뜯었다.

“진짜 맛있어요. 맛없으면 제가 책임질게요.”

“…….”

“갈까요?”

땅에 박히기라도 한 듯 서서 고개만 살살 젓고 있는 도윤에게 정우가 손짓했다. 저 사람과 저녁을 먹었다간 체할 수도 있었다. 도윤은 아프고 싶지 않았다. 이유가 있는 거절이었지만 그 이유를 알 리가 없는 정우는 생각했다. 내가 무서운가? 이렇게 경계심이 많은 남자는 처음이었다. 정우가 잠시 고민을 하곤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갈게요. 그럼 도윤 씨가 뒤에서 따라오면 되겠다.”

“…….”

“그럼 저 먼저 가요? 잘 따라와요!”

정우가 성큼성큼 대문을 나섰다. 도윤은 정우가 나가고도 1분 동안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대문을 지나쳤다. 도윤이 정우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다.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도윤은 원래 가려고 했던 편의점을 지나쳤고 정우가 뒤를 한 번씩 돌아보며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둘은 식당으로 가는 내내 대화를 아꼈다. 정우는 골목을 들어가 불이 켜져 있는 아담한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도윤은 이제 막 골목을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정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도윤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그래도 끝까지 따라오기는 왔네. 정우가 작게 웃으며 문을 열고 인사했다. 정우는 이미 자주 다녔던 곳이라 사장님과도 익숙하게 인사를 나눴다. 낯선 분위기에 도윤이 입구에서 입술을 씹었다.

“여기 앉아요.”

“네….”

얼마나 자주 와봤는지 정우는 알아서 물과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메뉴판도 알아서 가져와 도윤의 앞에 들이밀었다. 가방끈을 생명줄 마냥 쥐고 있던 손이 메뉴판을 들었다. 그새 비어있었던 컵에 물이 차올랐다. 도윤이 메뉴를 고민하는 동안 정우는 휴지를 깔아 그 위에 수저를 놓아주었다.

“해물 카레도 맛있고, 돈가스 카레도 맛있고.”

“…….”

“치킨 카레도 있어요. 버섯 카레도 맛있는데.”

“치킨 카레….”

“치킨? 그럼 난 해물.”

보통 손을 들면 직원이 찾아오곤 했지만 정우는 이번에도 직접 포스기에 메뉴를 찍어댔다. 누나, 치킨 하나 해물 하나! 주문을 끝내고도 정우는 주방에 있는 사장님과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도윤은 낯선 가게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자신이 저녁시간대의 첫 손님인 모양이었다. 도윤이 물을 홀짝였다. 정우가 피클과 깍두기를 그릇에 담아 가져왔다.

“여기 깍두기 맛있어요.”

정우가 카레 집에서 깍두기가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도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요일에 가죠?”

“네.”

“이제 어디 가요? 그냥 돌아가나?”

“그건 아닌데….”

서로 마주 보고 앉아있어도 시선만큼은 부딪치지 않았다. 정우가 물로 입을 축이곤 푹 숙여진 머리통을 쳐다봤다.

“그쪽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건진 안 물어볼게요. 근데 어차피 여기 놀러 왔잖아요.”

“…….”

엄밀히 말하면 놀러 온 건 아니었다. 도윤은 말을 아꼈다.

“이미 왔고, 시간은 흐르는데.”

“…….”

“계속 방에만 있지 말고 바다라도 구경해요.”

바다는 3주간 실컷 봤고, 지금도 방에서 창문만 열면 보이는 것이 바다였다. 도윤은 이번에도 말을 아꼈다.

“아쉽지 않게 충분히 놀다가 가야죠.”

“네….”

“꼭 술 안 마셔도 되니까 그냥 한번 내려와서 사람들 하는 얘기 듣고 구경하다가 가요.”

“…….”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새로 온 사람 있으면 서로 챙겨주려고 하고. 보고 있으면 재미있어요.”

“…….”

“제주도까지 왔는데 방에만 있고 라면만 먹기에는 너무 아깝잖아요.”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손톱만 뜯었다. 문득 손톱이 많이 자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에서 지낼 때는 희성이 다 잘라줬었는데…. 도윤이 저도 모르게 희성을 떠올렸다가 움찔 떨었다.

“5분만 있다가 가도 돼요. 도윤 씨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네….”

희성의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계속 생각이 났다. 마지막에 네가 죽든 말든 자신은 상관이 없다고 말했을 때 희성이 짓던 표정이 떠올랐다. 도윤의 눈이 꾹 감겼다가 떠졌다. 그땐 정신이 없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이라 말하는 희성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자신이 무슨 말을 뱉는지도 모르고 일단 저지르고 봤다. 희성에게 너무 심한 말을 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됐는데. 하지만, 하지만…. 희성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겁에 질린 자신을 안으려고 했다. 도윤은 합리화를 시작했다.

“도윤 씨?”

“네, 네?”

“불러도 모르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죄송합니다….”

“사과받으려고 한 말 아닌데.”

희성을 생각하느라 눈앞의 정우를 잊을 뻔했다. 도윤은 주방에서 그릇을 들고 나오는 사장님을 발견하고 고개를 꾸벅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카레가 정우와 도윤의 앞에 놓여졌다. 도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원래라면 지금쯤 방에서 혼자 라면을 먹고 있었을 텐데, 오늘은 눈앞에 카레가 있었다.

“맛있게 먹어요.”

“잘, 먹겠습니다.”

도윤은 정우가 먼저 먹는 것을 보고 그를 따라 숟가락을 들었다. 카레는 적당히 매콤한 맛이 있어 느끼하지 않고 더 맛있었다. 카레를 씹으며 도윤을 훔쳐보던 정우가 깍두기를 도윤의 숟가락에 올려주었다. 도윤이 놀란 눈으로 정우를 쳐다봤다.

“맛있다고 했잖아요.”

“아….”

도윤이 머뭇머뭇, 숟가락을 물었다. 정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도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카레와 깍두기를 씹어 먹었다. 정우는 그 후로도 도윤이 괜찮다고 했음에도 도윤의 그릇에 깍두기를 올려주었다. 남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도 속이 편했다. 도윤이 남은 밥을 모두 비벼 앙 물었다.

카레는 정우가 샀다. 자신이 사겠다고 해도 정우는 자기가 먼저 먹으러 오자고 했으니 자기가 사는 것이 맞다며 도윤을 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숙소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도 사주었다. 졸지에 저녁과 후식까지 얻어먹게 된 도윤이었다. 도윤은 쭈쭈바를 쪽쪽 빨며 정우의 뒤를 졸졸 쫓아 숙소 대문을 넘었다. 곧장 방으로 올라갈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도윤은 정우를 쫓아 카페 앞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아보았다. 5일을 지냈는데 이곳에 앉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정우는 카페의 문을 다시 열기만 하고 도윤과 거리를 두고 앉았다. 해가 지고 있어 하늘이 보라색을 띠다가 점차 붉게 물들고 있었다. 정우가 쭈쭈바를 주무르는 손을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윤은 끝내 방으로 올라가지 않고 정우를 도와 바비큐 파티를 도왔다. 불을 피우는 정우의 옆에서 사람들의 수에 맞게 나무젓가락과 그릇을 정리했다. 정우는 땀을 뻘뻘 흘리며 불을 확인했다. 도윤이 망설이다가 종이컵에 물을 담아 건넸다. 대충 땀을 닦아내던 정우가 웃으며 컵을 받았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도윤에게 관심을 가졌다. 누구는 아침에 카페에서 잠깐 봤다고 했고 누구는 오늘 처음 본다며 신기해했다. 그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도윤은 잠시 속이 울렁거려 무리에서 벗어났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나마 여자들이 말을 걸면 괜찮았는데 남자들이 말을 걸면 손이 떨렸다. 한숨만 나왔다. 도윤은 시끌벅적 떠드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홀로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아직까진 남들과 모여 있는 것보다 이쪽이 마음은 더 편했다. 콜라를 홀짝이며 생각을 비우고 있자 옆에서 누가 부스럭대며 다가왔다. 여전히 멍한 얼굴이 옆을 돌아봤다.

…누구지? 역시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도윤의 옆에 다가와 멋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많아봐야 7살로 보이는 아이는 스케치북을 펼치고 색연필을 들었다. 도윤이 눈을 깜빡였다.

“같이 할래?”

“어?”

“같이 해.”

여자아이가 대뜸 도윤에게 초록색 색연필을 쥐여 주었다. 도윤이 주변을 둘러보며 보호자를 찾았다. 하지만 다들 술을 마시고 노느라 바빠 보였다. 도윤은 이제 어린아이에게도 눈치를 보며 스케치북에 초록색을 칠했다.

“공룡 그릴 줄 알아?”

“고, 공룡?”

“응. 브라키오사우루스 그려줘.”

“브라키오…어?”

“몰라? 목이 이렇게 긴!”

“아아.”

아이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도윤을 올려다봤다. 도윤은 잠시 그 공룡의 생김새를 떠올려보다 기억을 더듬어 색연필을 죽죽 그었다. 그리면서도 이게 맞나? 싶어서 긴장이 됐다. 도윤이 공룡을 그리기 시작하자 아이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안타깝게도 그림을 그리느라 집중한 도윤에겐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도윤이 색연필을 내려놓았다. 아이가 요상한 표정으로 스케치북을 보더니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니야! 이거 아니야!”

“어어, 미안, 미안해.”

“공룡도 못 그리고.”

“미안해….”

“이상해. 어른이면서 공룡도 못 그려?”

“미안….”

“인마, 너 여기서 뭐해?”

“삼촌! 삼촌 이것 봐!”

“뭔데? 거북이?”

거북…. 도윤이 시선을 피했다. 정우가 아이의 설명을 듣더니 이내 웃으며 스케치북을 들여다봤다.

“어! 브라키오사우루스 그려달라고 했는데!”

“오빠가 잘 몰랐나 보지. 네가 설명해 주면 되잖아.”

“어른인데! 브라키오사우루스도 못 그리고!”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인마.”

“왜 때려! 엄마한테 이른다!”

“일러라. 도윤 씨 고기 먹어요.”

“배가 안 고파서….”

아이가 아직도 씩씩거리며 도윤을 노려봤다. 브라키오사우루스를 거북이로 그려놓은 도윤은 아이의 눈초리를 피해 정우를 올려다봤다. 정우는 어깨를 으쓱이다 아이의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다. 아이가 또 씩씩거리며 정우의 배를 주먹으로 쳤다.

“얘는 우리 큰누나 딸. 이현지라고, 아직 7살이라.”

“네….”

“이현지, 오빠한테 인사해.”

“뭐! 공룡도 못 그리는 게.”

“콩알만 한 게 어디 오빠한테.”

“흥.”

아이, 현지가 도윤에게 몸을 홱 돌렸다. 도윤은 미안함에 색연필을 들고 만지작거렸다. 정우가 대신 사과를 하곤 자신을 찾는 무리들에게 돌아갔다. 또 둘만 남아버리니 어색한 공기가 둥둥 떠다녔다. 도윤이 눈치를 보다가 분홍색 색연필을 들어 토끼를 그려주었다. 그제야 현지가 관심을 보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토끼….”

“또 그려줘.”

“어떤 거?”

“고래 알아?”

“으응.”

“고래 그려줘.”

현지는 도윤이 또 고래를 엉망으로 그릴까 걱정하며 스케치북을 쳐다봤다. 도윤은 분홍색 색연필 그대로 고래를 그리려다 현지에게 또 한소리를 듣고 파란색으로 바꿔들었다. 고래와 그 위로 물줄기도 그려주자 현지가 웃으며 만족했다.

또래가 없어 엄마의 옆에서 그림만 그리던 현지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현지는 자신이 그려달라는 대로 잘 그리진 못하지만 열심히 그려주려고 애쓰는 도윤이 마음에 들었다. 현지는 머리핀을 꽂고 있었지만 여태 뛰어다니고 아무렇게나 만져댔더니 아래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영 불편한지 자꾸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었다. 현지를 따라 그려진 그림에 색칠을 하던 도윤이 머뭇거리다 색연필을 내려놓고 머리핀을 새로 꽂아주었다. 엉성하지만 이제 막 불편하지는 않았다. 현지가 웃으며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었다.

또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정우가 소시지를 꽂은 젓가락을 두 개 들고 왔다. 도윤과 현지는 한 손엔 소시지를, 한 손엔 색연필을 들고 스케치북을 채우는데 열중했다. 도윤이 꽃을 그리면 현지가 거기다 색을 칠했다. 소시지를 우물거리며 꽃을 꾸미던 현지가 머리를 긁적였다. 애써 정리해 준 머리가 또 엉망이 됐다. 현지가 고개를 들어 도윤에게 그랬다.

“나 머리 묶어줘.”

“응?”

“머리 묶어줘.”

“나 묶을 줄 모르는데….”

“해줘.”

스케치북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다가온 현지가 대뜸 도윤의 다리에 올라앉았다. 당황한 얼굴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현지에게 자신이 먹던 소시지를 쥐여 주었다. 머리핀을 빼고 이미 다 풀려서 헐렁해진 머리끈도 푸는 손이 계속해서 머뭇거렸다. 현지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발을 흔들다가 소시지를 베어 먹었다.

“아, 아프면 말해. 알았지?”

“응!”

누군가의 머리를 묶어주는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도윤이 조심스럽게 현지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 정리했다. 현지는 계속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머리가 작아 더 조심스러웠다.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지나다녔다. 기웃거리며 머리를 확인한 도윤이 머리끈을 이용해 잡고 있던 머리카락을 묶어보았다. 처음이라 이상하게 묶인 것 같았지만 우선 아까보다 정리가 됐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도윤이 얼굴을 앞으로 빼 현지의 앞머리에 머리핀을 꽂아주었다. 자신의 소시지와 도윤의 소시지를 번갈아 먹던 현지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춰왔다. …이상한가? 도윤이 머리핀을 다시 꽂아주었다.

“됐어?”

“응.”

현지가 웃으며 내려와 땅을 밟고 섰다. 입술에 묻은 케첩을 핥아먹은 현지가 도윤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색연필을 정리하던 얼굴이 양손에 소시지가 꽂힌 젓가락을 든 현지에게 닿았다.

“이름 뭐야?”

“내 이름?”

“응.”

“도윤이야. 하도윤.”

“응, 하도윤!”

어쩐지 뒤에 붙어야 할 말이 빠진 것 같았지만 도윤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현지가 반이나 먹어치운 소시지를 들이밀었다.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정리한 도윤이 소시지를 먹었다. 현지는 도윤을 빤히 쳐다보곤 왼쪽 손목을 가리켰다. 아이의 순수한 궁금함에 도윤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거는 왜 하고 있어? 아파?”

“어…. 이거는, 그러니까….”

“아파?”

“…으응, 조금.”

“왜 아파?”

“그냥 조금 다쳤어.”

작은 손이 붕대가 감긴 손목에 닿았다. 도윤은 말없이 아이의 손이 닿은 손목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상처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을 텐데 현지는 한참이나 그 위를 만지작댔다.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어, 밥 잘 먹고 밤에 잘 자면 안 아프댔어.”

“…….”

“하도윤도 밥 잘 먹고 밤에 잘 자.”

“으응. 고마워.”

이걸 고쳐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사이 정우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아이의 손에 있던 손을 빼 뒤로 감춘 도윤이 정우를 올려다봤다. 현지가 남은 소시지를 모두 입에 욱여넣고 정우에게 젓가락을 들이밀었다.

“현지야, 이제 가자.”

“애에?”

“왜는 왜야, 집에 가야지.”

“시은데!”

커다란 소시지를 한 번에 넣은 탓에 현지의 발음이 줄줄 샜다. 현지의 귀여움에 도윤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더니 앞에 서있던 정우의 시선이 닿았다. 도윤이 황급히 웃음을 거두고 현지를 쳐다봤다. 현지는 소시지를 꼭꼭 씹어 먹고 있었다.

“엄마 간대.”

“왜?”

“늦었으니까. 너도 가서 자야지.”

“나 잠 안 오는데?”

“그래도 가야지.”

아까는 자기더러 잘 먹고 잘 자야 한다더니…. 도윤이 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현지가 부루퉁하게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품에 안으며 소리쳤다.

“하도윤 안녕!”

당찬 인사에 정우가 대신 얼굴을 찌푸리며 현지의 머리에 꿀밤을 놓아주었다. 뜬금없이 꿀밤을 맞은 현지가 정우에게 머리를 들이박았다. 도윤이 다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입술을 매만졌다.

“쪼끄만 게 어디 오빠 이름을 막 불러?”

“왜 때려! 왜!”

“하도윤이 뭐야 하도윤이!”

“하도윤이니까 하도윤이라고 하지!”

“오빠라고 해야지!”

“흥.”

정우가 난처한 얼굴로 현지를 달랑 안아들었다. 가기 싫다며 발버둥을 치던 현지가 도윤에게 손을 흔들었고 도윤도 덩달아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현지를 옆구리에 끼고 대문을 나선 정우는 5분이 조금 더 지나서 모습을 나타냈다. 도윤은 그 사이에 소시지를 다 먹고 젓가락만 쥐고 있었다.

“나 앉아도 돼요?”

“네, 네.”

정우는 도윤을 배려해 현지가 앉았던 자리의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조금 더 옆에선 여전히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현지가 사라지자 또 현실과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이제 슬슬 방에 올라가려고 눈치만 살피던 도윤을 귀신같이 알아챈 입술이 열렸다.

“도윤 씨 혹시 괜찮으면 여기서 일해보지 않을래요?”

“네?”

“사장님이랑도 얘기를 해봤는데, 사장님은 도윤 씨가 괜찮다고 하면 자기도 괜찮대요.”

“이, 일이요?”

“일이라고 해봤자 뭐 별거 없어요. 손님들 체크인해주거나, 방에 필요한 거 채우고, 오늘처럼 밤에 저 도와주면 돼요.”

“…….”

“체크인이나 체크아웃은 뭐 어차피 사장님이나 제가 할 거긴 한데, 만약 둘 다 자리를 비웠다. 하는 경우에만 도윤 씨가 조금만 도와주면 돼요.”

“저는….”

이런 상황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우는 부담 가지지 말고 오늘내일 천천히 생각을 해보고 할 마음이 생기면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말하곤 일어났다. 도윤은 방으로 올라가는 대신 그 자리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일을 하게 되면 사람들을 대하는 상황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자신이 멀쩡할지 의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런 일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도윤이 한숨을 삼키며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이곳 사람들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이제 또 어딜 가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도 해봤다. 게다가 여기서 일을 하게 되면 더 이상 숙소에 돈을 쓰지 않아도 됐다. 아직 남은 돈은 많았지만 언제까지 집도 없이 돌아다니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원래 살던 곳으로 이사를 갔다던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매일 밴드와 붕대로 꽁꽁 감싸고 다닌 손목은 바람이 통하지 않아 상처가 덧나고 있는 것 같았다. 병원에 한번 다녀오거나 아니면 손목을 내놓고 다녀야 하는데 그건 본인이 원하지 않았다. 이 상처를 남들에게 보여줄 바에야 차라리 병원을 다녀오는 게 나았다.

손목에 일자로 생긴 상처 주변이 붉게 부어올랐다. 씻는 동안에도 신경이 쓰여 계속 살펴본 손목을 내려다보며 만져본 도윤이 한숨을 쉬었다. 연고를 바르면서 느껴지는 오돌토돌함에 도윤이 인상을 썼다가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알바를 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 약하게 틀어둔 에어컨에서 웅웅 소리가 났다. 도윤이 옆으로 누워 연고를 바른 탓에 번들거리는 손목을 빤히 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웠다. 이런 일이 생긴 것도 무서웠고 혼자가 된 것도 무서웠다. 밖에 나갈 때마다 혹시나 희성이 자신을 찾아올까 봐 무섭기도 했다. 정우가 자꾸 자신을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하는 것도 무서웠다. 자신이 없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든 것을 희성이 대신해주고 또 옆에서 도와줬다.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덧난 상처에서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이걸 긁을 수도 없으니 도윤은 입으로 바람을 불어 간신히 간지러움을 참아냈다.

자신이 없고 무서웠지만 평생을 이러고 살 순 없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자아가 서로 의견을 쏟아냈다. 충돌하는 의견에 머리가 아팠다. 새벽까지 잠도 못 자고 고민에 빠진 도윤은 조금씩 밖으로 나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자신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의견이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하자 눈을 꾹 감았다. 어둠이 찾아오고 시간이 흐르자 도윤의 마음이 점점 한쪽으로 기울었다. 간지러웠던 손목에선 어느새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

희성은 혼자가 된 후로 마음 편하게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 도윤의 물건이 없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는 옷과 침구에서도 도윤의 냄새가 어렴풋이 나는 지경이었지만 그것마저 없으면 희성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겨우 잠을 잔다 해도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 간격으로 눈을 떴다. 눈을 감아도 앞이 보였다. 오늘도 누워서 도윤의 베개에 코를 묻고 있던 희성은 잠을 포기하고 핸드폰으로 찍어두었던 도윤의 사진을 휙휙 넘겨보았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하도윤, 소파에서 TV를 보다가 잠든 하도윤, 울다가 지쳐 잠든 하도윤. 사진은 많지 않았다. 평소에 사진을 많이 찍어뒀어야 했다. 희성이 한숨과도 같은 숨을 뱉으며 사진을 넘기다 멈칫했다.

도윤과 함께 바다에 갔을 때였다.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웃고 있는 도윤의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빛이 반사된 바다가 반짝반짝 빛났다. 하지만 빛나는 바다보다 웃고 있는 도윤이 더 빛나 보였다. 희성이 사진을 키워 도윤의 얼굴을 확대했다. 웃는 얼굴이 가까워짐과 동시에 피를 잔뜩 묻히고 우는얼굴이 사진 위로 겹쳐보였다. 희성이 핸드폰을 던지듯 내려두고 뻑뻑한 눈두덩을 문질렀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하도윤 하나를 못 찾는다는 게 말이 안 됐다. 희성은 도윤이 갈만한 곳이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보냈다. 어머니의 납골당에도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윤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도윤이 이사를 오기 전까지 살았던 곳에도 사람을 보냈다. 서준에게도 사람을 심었고 도윤의 아버지에게도 사람을 심었다. 그들이 집 앞 편의점을 가도 그 소식은 희성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거기에 도윤이 나타났다는 소식은 없었다.

도윤의 아버지는 도윤이 사라지고 며칠 뒤에 바로 일을 그만두었다. 희성은 도윤을 찾느라 정신이 없어 그 사실도 뒤늦게야 알았다. 도윤이라면 아버지에게 분명 자신의 목적지를 알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윤과 살기 시작한 후로 쳐다보지도 않았던 본가에 제 발로 들어가 도윤의 아버지를 찾았지만 일을 그만두었다는 소식만 들을 수 있었다.

‘도윤이 많이 아팠다면서?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

‘도윤이 퇴원했다더니, 금방 그만두셨어.’

‘퇴원….’

희성은 어머니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퇴원. 언제부터 도망을 퇴원이라고 불렀지. 이사를 간 곳까지는 어머니도 모른다고 했다. 희성은 집을 나오면서 도윤의 아버지를 찾았다. 도윤을 찾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데 도윤의 아버지를 찾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주소를 받자마자 차를 몰았다. 도윤의 아버지는 이사를 했다는 말을 전하지도 않았는데 집까지 찾아온 희성을 보고 말문이 막혀 입만 뻥긋댔다. 멋대로 들어와 방마다 문을 열어 확인하는 희성을 말리지도 못했다. 서준의 집에서 느꼈던 감정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도윤이 어디에 있어요?’

‘…….’

‘하도윤 어디에 숨겼냐고, 묻잖아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아시잖아요. 하도윤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잖아요.’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한 가지밖에 없고, 만약 안다고 해도 그걸 너에게 말할 이유는 없는 것 같구나.’

‘이유가 없다고.’

‘앞으로 이런 식으로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

‘이유가 없어? 여태 받아먹은 게 얼만데 이유가 없다고?’

‘…….’

결국 희성은 그날도 아무런 소득 없이 서울로 돌아와야 했고 침착하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도윤은 절대 혼자서 이렇게까지 꽁꽁 숨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서울로 가는 내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중간에는 사고도 날 뻔했다. 겨우 집에 도착한 희성은 숨이 모자란 사람처럼 급하게 도윤의 담요에 얼굴을 박고 한참을 죽은 듯 누워있기만 했다.

잠을 자지 못해 눈이 따가웠다. 차려진 아침을 대충 먹으면서도 늘 자신의 앞에서 밥을 먹던 도윤을 떠올렸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도윤을 보고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기분이 좋았다. 이제는 그것도 상상을 해야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희성은 어제와 같이 밥을 반도 먹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도윤을 찾으러 다니는 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도윤이 없는 사이 잠도 못 자고 밥도 먹지 않았던 탓인지 살이 빠졌다. 평소 입던 바지가 조금 헐렁해졌다. 희성이 혀를 차며 옷을 마저 입고 집을 나섰다. 희성이 탄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기계의 도움도 없이 도로를 달리는 차는 거침이 없었다. 신호를 기다릴 틈도 없었다. 집으로 곧 우편물이 날아올지도 몰랐다.

평소라면 반듯하게 주차되었을 차가 오늘만큼은 주인을 닮아 엉망으로 자리를 잡았다. 성큼성큼 건물로 들어선 희성은 자신을 막아서려다 급하게 고개를 꾸벅이는 남자들을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험악한 얼굴에 모두가 희성의 주위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엘리베이터는 고층에서 희성을 뱉어냈다. 조용한 복도에 희성의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사무실의 앞에 있던 남자가 희성을 발견하곤 얼른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희성은 이번에도 그 인사를 무시하고 문을 열었다. 남자가 다급하게 달려와 희준의 부재를 알렸다.

“회의 중이셔서 자리 비우셨습니다.”

남자는 익숙한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희성에게 마실 것을 물었다. 이번 물음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남자는 알아서 마실 것을 가져왔다. 캐모마일 차가 담긴 잔에서 김이 올라왔다. 남자가 애써 준비한 차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희성은 소파에 앉아 따끔거리는 눈을 감았다. 며칠을 못 잤더니 머리가 아팠다. 차에 가자마자 약을 먹어야 할 듯싶었다.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차에서 이제 더 이상 김이 올라오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바깥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희성은 감았던 눈을 떴다. 동시에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기다렸어?”

“…….”

“미리 연락이라도 줬으면 좋았을 텐데.”

“…….”

희준이 그 앞에 앉으며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는 희성을 쳐다봤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희준은 도윤이 사라진지 얼마나 됐는지 가늠해 보았다. 도윤이 사라지자마자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다.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는 시선에 희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잠은 좀 자고 있어?”

“…….”

“밥은?”

“…….”

“온 김에 같이 점심 먹을까?”

“…….”

희준이 웃었다. 사람 좋게 웃는 얼굴과 달리 희성에게선 실소가 터졌다. 희준은 미소를 띤 채 다 식어버린 차를 들이켰다.

“재미있나 봐.”

“글쎄.”

“이상하다 했지. 하도윤이 혼자서 도망갈 수 있는 애가 아닌데.”

“지금 나 의심하러 온 거야?”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지.”

“음, 내가 도와줬을 거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둘이서 짜고 나 엿 먹이니까 재미있어?”

“그런 적은 없는데.”

“하도윤 어디로 숨겼는지 말해.”

“그건 말 못 해.”

“말해.”

“못한다니까?”

화를 낼 기력도 없었다. 아까부터 머리가 너무 지끈거려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도윤의 아버지도 모른다, 서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찾아온 희준의 대답도 ‘모른다.’였다. 도윤이 있는 곳을 진짜 모르는 사람은 저뿐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찾아왔다. 그 말은 도윤이 저를 제외한 모두에게 자신이 어디로 갈 것인지 알려주었다는 뜻이 된다. 화를 낼 기력도 없으니 말싸움을 할 힘도 당연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희성은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을 택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더 있을 수도 없었다. 소파에서 일어난 희성이 잠시 휘청거렸다가 소파와 이마를 짚었다. 희준이 다가와 팔을 잡았지만 희성은 그 손을 매섭게 쳐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꼴을 하고서 버티는 희성이 미련하기도 했고 그래도 피가 섞였다고 안타깝기도 했다. 희준이 한숨을 쉬곤 입을 열었다.

“도윤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몰라.”

“…….”

“정말 진심으로 몰라서 대답 못한다고 한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해?”

“도윤이한테 나는 남이야. 동시에 네 형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도윤이가 나한테 어디로 갈 건지 말해줬을 리가 없잖아.”

희성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남의 입에서 도윤의 이름이 나오니 끔찍하게 싫었다. 당장 도윤을 끌어안고 싶었다. 싫다고 밀어내도 좋았다. 그냥 도윤을 부르고 만질 수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았다.

“…제발 하도윤 좀 찾아줘.”

“…….”

“제발 좀…. 모른다고, 하지 말고….”

도대체 도윤이 뭐기에. 희준은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는 희성을 내려다봤다. 소파를 짚은 손등엔 뼈가 두드러져있었고 손끝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도윤은 상처를 잔뜩 입고 떠났고, 희성은 휘청거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곧 무너질 것 같았다.

“우선 집에 가서 좀 쉬는 게 좋겠다.”

“손 치워. 나한테 손, 대지 마.”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앉아있어. 기사님 불러줄게.”

“필요 없어.”

“그 상태로 무슨 운전을 하겠다고. 앉아있어.”

“됐다잖아!”

어깨에 얹은 손을 털어내며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희성의 뒷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서로에게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도대체 왜 이렇게 악을 쓰며 붙잡고 있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희준은 도윤이 사라진 지 한 달이 넘어가는 동안 단 한 번도 카드를 썼다는 문자가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톡톡 두드렸다.

***

도윤이 일을 시작하게 된 시기가 딱 성수기와 겹치는 바람에 하루하루가 바빴다. 사장님과 정우의 배려로 도윤이 손님들과 얼굴을 마주 볼 일은 적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름 열심히 일을 했다. 도윤이 하는 일은 새벽에 일어나 정우의 옆에서 카페 일을 돕는 것과 손님을 받기 전 방에 들어가 필요한 것을 채워두고 바쁜 일이 끝나면 정우와 함께 장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초반에는 정우와 둘이 장을 보러 가는 것도 힘들어해서 사장님과 함께 다니곤 했지만 이제는 도윤에게도 여유가 생겨있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것이다. 가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손님들에게도 서툴게나마 응대를 할 수 있었으니 장족의 발전이었다.

정우와 장을 보러 갈 때면 대부분 바이크를 이용했다. 이것 역시 처음에는 도윤을 배려해 차로 이동했었는데 도윤의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면서 정우는 은근슬쩍 바이크를 내세웠다. 이걸 타고 다니면 에어컨과는 또 다른 자연바람을 쐴 수 있고 주변을 더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을 강력히 어필했다. 도윤은 그 말에 반신반의하며 바이크에 처음 올라탔던 날, 무엇을 잡아야 할지 몰라 방황했고 정우가 그렇게 타면 중간에 가다가 튕겨나간다고 겁을 주면서 도윤의 팔을 끌어와 자신의 허리에 감도록 했다. 뒤에 탄 도윤이 딱딱하게 굳었음은 팔을 보고도 알아챘다. 바이크를 처음 탔던 날 도윤은 차와는 또 다른 느낌에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속이 뻥 뚫리는 것을 경험했다. 그 후로도 정우는 도윤을 데리고 장을 보러 가거나 어딘가로 놀러 다닐 때 바이크를 이용하곤 했다.

보통 도윤이 하는 일은 3~4시 정도면 끝이 났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카페 일을 돕고 오전에 체크아웃을 하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가 오후에 체크인을 하는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러면 자유 시간이었다. 자유 시간에는 밖에 나가서 놀다가 들어와도 되고 방에 올라가 쉬어도 됐지만 도윤은 대부분 정우의 옆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장님과 정우는 도윤에게 아주 감사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도윤을 남처럼 대하지 않고 꼭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그렇기에 도윤도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서준에게는 전화 대신 꼬박꼬박 편지를 보냈다. 대신 서준이 받는 편지나 택배에는 발신인에 대한 주소가 없었다. 정우와 함께 돌아다니며 기념품을 사거나 예쁜 엽서를 발견하면 지나치지 않고 사서 서준에게 보냈다. 그리고 서준은 자신에게 온 물건들 중에서도 아버지에게 전해달라는 물건만 골라 도윤의 아버지에게 주곤 했다. 도윤에게서 온 편지와 선물을 처음으로 전해줬을 때 도윤의 아버지는 그제야 자신의 아들이 있는 곳을 알았고 다행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도윤의 방에도 물건이 많이 늘어났다. 옷장에는 새로 산 옷들이 가득했고 신발장에도 새로운 신발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장님의 권유로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다 보니 볼펜도 사야 했고, 일기에 붙일 스티커도 사고 싶었다.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적는 것은 귀찮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재미있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있었구나, 내가 이랬구나.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초반에 썼던 일기를 살펴보면 우울함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우울함이 생길 것 같은 내용이 수두룩했으나 지금은 달랐다. 보통 사람들이 쓰는 일반적인 일기와도 같았다. 도윤은 그만큼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아침이라 살짝 열어둔 창문 사이로 찬바람이 흘러들어오며 그 앞에 걸어둔 드림캐처에서 짤랑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단히 씻고 나와 로션을 바르던 도윤이 드림캐처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전체적인 색이 화이트로 맞춰진 드림캐처는 정우가 매일 악몽을 꾸는 탓에 잠을 잘 자지 못한다는 도윤에게 준 선물이었다. 도윤은 저것도 처음엔 저걸 달아둔다고 해서 어떻게 악몽이 사라진다는 건지 믿지 못했다. 저걸 달고도 악몽을 꿨으니 도윤이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최근에도 종종 악몽을 꾸기는 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단순히 드림캐처를 달아뒀다고 악몽을 꾸는 횟수가 줄어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몸과 마음이 편해지니 자연스레 잠을 깊게 자느라 꿈을 꾸지 않는 것이겠지만 도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카페로 내려가 정우를 도와야 할 시간이었다. 창문을 닫는 도윤의 손아래엔 손목 보호대가 있었다. 창문이 닫히자 드림캐처도 조용해졌다. 방주인이 사라진 집안은 갑작스레 찾아온 정적에 잠식당했다.

2층에서 1층에 있는 카페로 가는 그 잠깐 사이에도 추위가 느껴졌다. 긴팔을 입었지만 바람이 차가워 팔에 소름이 돋았다. 팔을 쓱쓱 쓸며 카페로 들어선 도윤이 이미 재료를 준비하고 있는 정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오늘 왜 이렇게 빨리 나왔어요?”

“잠이 안 와서. 밖에 춥지?”

“네에.”

도윤이 벽에 걸어둔 앞치마를 두르고 손을 씻었다. 정우는 토마토를 썰면서 하나씩 주워 먹다가 옆으로 다가온 도윤에게 한 조각을 내밀었다. 앞치마에 손을 닦던 도윤이 입만 벌려 토마토를 받아먹고 그 주위를 기웃거렸다.

“냉장고에서 양상추 꺼내놔.”

“양상추만요?”

“양상추랑 소스.”

몸을 숙여 전날 밤에 미리 나눠둔 양상추와 소스를 꺼낸 도윤이 또 정우의 주변을 기웃거렸다. 샌드위치의 재료 준비를 모두 끝낸 정우가 손을 씻다가 자꾸 주변을 서성이는 도윤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샌드위치 만들 거니까 장갑.”

“장갑!”

도윤이 좋아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장갑을 끼고 빵을 일렬로 놓은 도윤이 정우를 따라 소스를 뿌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닭 가슴살을 찢어 넣은 샌드위치였다. 그 위로 햄과 치즈, 다시 빵, 그 위로 토마토와 양상추를 쌓은 도윤이 또 빵을 위에 얹었다. 이제 도윤이 좋아하지만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 포장만 남았다. 정우는 착착 쉽게 싸는데 자신이 싸는 건 영 이상했다. 도윤은 오늘도 곁눈질로 정우의 포장을 훔쳐보곤 열심히 따라 했으나 엉망이 된 샌드위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정우는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듯 도윤의 것을 가져와 새로 포장을 끝냈다.

“이제 아침 먹을까?”

“형 커피 마실 거예요?”

“그걸 말이라고.”

“제가 내려도 돼요?”

“맘대로 해.”

정우가 손님들의 몫을 따로 챙겨두고 두 개의 샌드위치를 잘라 그릇에 놓았다. 도윤은 정우가 가르쳐준 대로 커피를 내렸다. 정우의 커피를 내릴 동안 도윤은 자신의 몫인 주스를 컵에 가득 따랐다. 정우는 이미 샌드위치를 들고 홀에 앉아있었다. 도윤도 얼른 주스와 커피를 들고 정우의 앞에 앉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홀을 간단하게 청소하고 샌드위치까지 만든 정우가 피곤한 얼굴로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도윤은 주스를 홀짝이곤 샌드위치를 베어 먹었다. 아침마다 매일 먹는 샌드위치였지만 오늘도 맛있었다.

도윤이 샌드위치에 정신이 팔린 사이 정우는 아메리카노만 마시며 도윤을 구경했다. 처음에는 말도 못 걸고 가시만 잔뜩 세워 그 안에서만 지내더니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달라진 모습이 신기하고 웃겼다. 샌드위치를 먹느라 소매가 흘러내리자 가려졌던 손목 보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우가 왼쪽에만 하고 있는 손목 보호대에 시선을 두다가 말했다.

“선생님이 가리지 말라고 했잖아.”

“아. 자꾸…보여서….”

“그래야 더 빨리 아물지.”

“이상하잖아요….”

“뭐가 이상해. 그거 빼.”

“…….”

“빼.”

“…….”

입안에 든 것을 씹으며 눈치를 보는 도윤에게 정우가 씁. 하고 짐짓 엄한 얼굴을 했다. 머뭇머뭇 손목 보호대를 빼는 손이 느렸다. 전보다 상태가 아주 많이 좋아진 상처에 정우가 손목 보호대를 가져갔다. 솔직히 도윤의 손목을 처음 봤을 땐 많이 놀랐었다. 어쩌다 실수로 보게 된 손목이었고 도윤도 놀라 급하게 숨기긴 했지만 그 상처를 보고 놀라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정우는 상처를 발견한 날 도윤을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 진료를 받게 했고 의사도 상처를 보더니 왜 이제야 병원에 왔냐며 혀를 찼었다.

항상 긴팔을 입고 붕대를 감고 있던 도윤에게 정우는 반팔을 사다 주고 붕대도 빼앗았다. 덕분에 도윤은 왼팔을 남들에게 보여주기가 싫어 한동안 오른손만 움직이며 생활했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정우로서는 겨우 덧나지 않고 잘 아물고 있는 상처에 또 보호대 따위를 쓰는 것이 못마땅하게 보였다. 도윤이 손목을 문지르며 정우의 시선을 피했다.

“내가 말했지, 그거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그래도….”

“뭘 그래도야. 빨리 먹기나 해.”

“네….”

시무룩해진 도윤이 샌드위치를 먹었다. 곧 손님들이 내려올 시간이었다. 정우도 얼른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 먹었다.

핸드폰도 없이 몇 달을 지내본 결과, 확실히 핸드폰이 없으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새벽에 알람은 시계를 통해 듣고 일어난다고 해도 남들과 연락을 할 수도 없었고 길을 찾으려고 해도 지도를 볼 수 없으니 이게 참 난감했다. 심심할 때나 밤에 잠이 안 올 때도 가지고 놀 핸드폰이 없으니 정말로 불편하기만 했다. 오전에 해야 할 일을 끝내고 생긴 쉬는 시간에 정우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던 도윤이 사장님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정우를 찾았으나 마침 자리를 비운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대신 받아야 했다.

“여보세요?”

-어, 정우야 지금 손님 한 팀 간다고 하거든?

“사장님 저 도윤이에요.”

-도윤이? 정우는?

“형 잠깐 나가셨는데….”

-나갔어? 어쩌지, 손님 한 팀이 일정이 꼬여서 지금 체크인하러 간다고 하거든?

“…지금요?”

-내가 가면 좋겠는데 지금 갈 상황이 안돼서.

“아….”

-정우한테 하라고 하면 되는데 얘 어디 갔어? 늦는대?

“어디로 갔는지는 저한테 얘기 안 해주셔가지구….”

-아이고. 그러면 도윤아. 혹시 괜찮으면….

“네, 네.”

-예약자 확인만 해주고 방이랑 비밀번호만 알려주면 돼. 괜찮겠어? 힘들면 내가 그냥 예약자들한테 문자만 넣어도 되긴 하거든?

도윤이 불안한 눈으로 조용한 창밖을 쳐다보다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고개를 끄덕였다. 할, 할 수 있어요. 도윤의 대답에 사장님이 다행이라며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정리된 것을 보고 방과 비밀번호만 알려주면 된다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게 있으면 또 전화 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도윤이 심호흡을 하며 노트북을 켜 사장님이 정리해둔 사이트에 들어갔다. 원래 오늘 3시에 체크인을 하려고 했던 팀이 조금만 일찍 체크인을 할 수 있냐고 물어왔다고 했다. 평소라면 사장님과 정우가 했을 일을 오늘은 도윤이 처음으로 혼자 하게 되었다.

도윤이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을 혀로 축이며 명단을 눈으로 훑다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예약자 이름엔 ‘조희성’이라고 표시가 되어있었다. 제주도에 와서 희성의 이름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분명 성이 조 씨인 것을 확인했으나 저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손님들이 오기 전에 정우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대체 어디로 간 건지, 왜 아직도 조용한 건지 애가 탔다. 도윤은 대문으로 들어서는 차에 눈을 빠르게 감았다가 떴다. 주차를 마친 손님들이 캐리어를 끌고 카페로 다가왔다. 도윤이 주먹을 쥐었다가 펴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갑자기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혹시나 해서 연락드린 건데 된다고 하셔가지고. 감사합니다.”

“아니, 아니에요.”

“저희 조희성으로 4명 예약했거든요.”

“…….”

여자의 입에서 희성이란 이름이 나오자 도윤의 몸이 굳었다. 일행은 카페를 구경하느라 바빠 보였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간단한 확인을 했다. 여자는 웃으며 3박 4일 예정이라고 답했다. 도윤이 방과 비밀번호를 메모에 적어두고 카운터를 빠져나왔다.

“캐, 캐리어 들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저 따라오세요.”

정우가 했던 일들을 떠올려 양손에 캐리어를 든 도윤이 계단을 올랐다. 이들의 숙소는 3층이었다. 도윤이 살짝 가쁜 숨을 쉬며 방 앞에 캐리어를 놓아주고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손님들이 캐리어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날은 추운데 땀이 났다. 도윤이 한숨을 쉬며 카페로 들어왔다가 카운터에 서있는 정우를 보고 울상을 지어 보였다. 마침 정우도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텅 비어버린 카운터에 도윤을 찾던 중이었다.

“형 어디 다녀왔어요?”

“나 잠깐 카레 집에. 방에 올라 갔다왔어?”

“손님 오셨는데 형 없어서…. 저 혼자 다녀왔어요….”

“진짜? 미안, 괜찮아?”

“네에….”

도윤이 터덜터덜 안으로 들어오자 정우가 걱정스러운 낯으로 도윤을 살폈다.

“여자분들이었어?”

“으응….”

“그래도 잘했어. 많이 컸네.”

정우의 손이 도윤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뚱하게 서있던 도윤이 다시 정우의 핸드폰을 가져갔다. 도윤이 하고 있는 게임은 정우가 도윤을 위해 깔아둔 게임이었다. 손님이 없을 때 쉬라고 가져다 둔 의자에 앉은 도윤이 게임을 시작했다. 정우가 작게 웃으며 도윤의 머리통을 조금 더 쓰다듬어주었다.

오후에는 정우와 함께 다음날 쓸 재료를 사러 갔다. 이제는 혼자서도 익숙하게 헬멧을 쓰고 뒷자리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는 도윤이 기특해 괜히 볼을 쳐주곤 자신도 헬멧을 썼다. 시동을 걸자 도윤이 알아서 허리를 감아왔다. 정우와 도윤을 태운 바이크가 대문을 나섰다.

마트에 들어선 정우는 카트부터 뽑아왔다. 숙소에서부터 가져온 장바구니를 안에 담은 도윤이 정우를 졸졸 쫓아 마트를 돌았다. 제일 중요한 양상추도 사고, 쌈을 싸먹을 상추와 깻잎도 카트에 담았다. 오늘은 뭘 살지 고민하며 카트를 끌던 정우가 무심코 옆을 돌아봤다. 도윤이 시식코너에서 소시지 두 개를 이쑤시개에 꽂아 가져오고 있었다. 도윤은 정우에게 소시지를 먼저 먹여주고 그다음 남은 소시지를 먹었다. 맛있다. 도윤이 이쑤시개를 쓰레기통에 넣고 정우의 옆에 붙었다.

“과자 안 사?”

“살래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새라 얼른 과자 코너로 카트를 이끈 도윤이 먹고 싶은 과자를 골라 담았다. 정우는 신나서 과자를 고르는 도윤을 따라다니며 자신이 먹을 과자도 담았다. 방앗간이 끝나면 또 라면을 담고 술을 한가득 담았다. 이렇게 매일 사둬도 밤이면 다 끝나버리는 게 술이었다. 모자라면 근처 편의점에 가도 되니까 떨어져도 문제는 없지만 되도록 많이 사두는 쪽이 서로에게 편했다. 거의 가득 찬 카트를 내려다보며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을 마친 정우가 도윤을 이끌고 계산대로 향했다.

술은 마트 안의 배달 서비스를 이용했다. 원하는 시간을 적어두면 그 시간 안에 배달을 해주니 참 편했다. 그리곤 매일 가는 빵집에서는 샌드위치를 만들 빵도 사고 도윤이 먹고 싶은 땅콩 크림빵도 샀다. 도윤은 정우를 도와 바이크 안에 장본 것들을 정리해 넣고 들어가지 않는 것들은 일단 바닥에 두었다. 정우는 짐을 정리하고 도윤에게 바이크를 맡긴 채 정육점으로 들어갔다. 춥기는 했지만 바람을 쐬고 싶어서 남았더니 근처를 서성이던 여자와 남자가 도윤에게 웃으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학생이세요?”

“네? 네….”

“멀리서 보는데 인상이 너무 좋으셔서요.”

“…네?”

“저희 막 수상한 사람은 아니고요, 그냥 간단하게 이야기 한번 나눠보고 싶어서 그러는데 시간 되세요?”

“아…니요….”

“잠깐이면 돼요. 진짜 한 3분?”

도윤이 정육점을 힐끔거렸다. 좀 전에 들어갔으니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대답도 못하고 머뭇거리고만 있자 여자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댔다.

“몇 살이에요?”

“저…20살이요.”

“그렇구나. 엄청 어려 보여서. 여기 살아요?”

“네….”

“춥지 않아요? 저희 어디 잠깐 들어가서 얘기 나눌까요?”

“괜, 괜찮아요.”

“저희가 사실 공부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설문조사 몇 가지만 응해주시면 되는데.”

“아….”

시간 괜찮으세요? 주로 여자가 말을 이었고 남자는 그 옆에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난감했다. 도윤이 눈치를 보고 있자 여자가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저기 카페 있는데 따뜻한 거 마시면서 얘기해요.”

“아니, 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그래요? 그럼 여기서 할까요?”

이번엔 남자가 단호하게 쳐내지 못하는 도윤에게 종이를 들이밀었다. 종이에는 정말로 설문조사를 위한 질문 몇 가지와 이름, 번호를 쓰는 칸이 있었다. 이름이랑 번호는 왜…? 도윤이 볼펜을 만지작대며 종이를 쳐다보다가 물었다.

“저기…이름이랑 번호는…왜 쓰는 거예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면 알려드리는 용도예요.”

“아….”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요.”

“근데 저 핸드폰이 없는데….”

“그러면 사는 곳 주소라도 적어줄래요? 우편으로 보내드릴 수도 있어요.”

도윤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질문을 훑었다. 여자와 남자는 잠시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또 도윤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요즘 힘든 일은 없어요?”

“네?”

“저희 아까 공부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잖아요. 근데 저희한테도 딱 보여서.”

“뭐가요?”

“본인한테 뭐 힘든 일이 있나 본데요?”

“…….”

“생각도 많아 보이고.”

볼펜을 쥔 채 눈만 끔뻑였다. 어떻게 알았지…? 떨리는 눈동자에 여자가 냉큼 입을 열었다.

“저희한테 말하기 좀 그러면….”

“뭐야?”

“형…!”

“뭐 하세요, 지금?”

“아까 기다리신다는 분…?”

“네, 네.”

“아….”

“지금 뭐 하시는 거냐고요.”

밤에 먹을 고기를 사 온 정우가 자신의 뒤로 도윤을 뒤로 숨기고 미간을 구겼다. 갑자기 험악해진 분위기에 도윤은 눈알만 도록도록 굴려댔다. 남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도윤에게서 종이와 볼펜을 가져갔다. 아직 이름과 주소도 적지 않았고 설문조사도 안 했는데…. 그럼 저희는 이만. 여자와 남자가 빠르게 멀어졌다. 정우가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 도윤을 쳐다봤다.

“저 종이에 뭐 적었어?”

“아직….”

“사이비잖아. 앞으로 저런 사람들 오면 그냥 무시해.”

“아….”

“뭘 대답을 다 해주고 있어.”

“아니, 나는….”

진짜 걱정이다, 걱정이야. 정우가 혀를 차며 고기를 넣었다. 도윤이 입술을 삐죽이다가 주섬주섬 헬멧을 썼다.

“누구랑 둬도 문제고 혼자 둬도 문제고….”

“…….”

“아무나 따라가지 마.”

“안 따라갔는데….”

“아무한테나 대답해 주지 말고.”

“네에….”

억울했지만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정우가 툭 튀어나온 입술을 잡아 양옆으로 흔들었다.

“뭘 잘했다고 입을 내밀고 있어.”

“으응!”

도윤이 고개를 털었다. 가끔 도윤이 현지보다 더 걱정이 된다. 어휴. 정우가 헬멧 위로 주먹을 꽁 쥐어박았다. 도윤은 정말 억울했다. 그들이 그런 사람인 줄도 몰랐고 그냥 설문조사라니까 한번 본 것뿐인데! 혼자 마음이 틀어져 정우의 옷만 잡았다. 짐을 다리 사이에 두고 시동을 건 정우가 옷만 잡고 있는 손을 떼어다 허리에 단단히 감아주었다. 옷 위로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 느껴졌다. 바이크가 소음을 만들며 주차장을 벗어났다.

숙소에 도착하고 바닥에 발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우렁찬 목소리가 도윤을 찾았다. 헬멧을 벗던 도윤이 몸을 움츠렸다. 카페의 문에 이마를 박고 대문만 노려보고 있던 현지가 문을 열어젖히며 달려왔다.

“하도유우우운!”

“저게 또….”

“어디 갔다 와! 왜 이제 와! 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에!”

“아야…. 아파, 현지야 아파….”

“왜 이제 오냐고!”

“아파, 현지야 나 아픈데….”

“이익!”

도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놀러 온 현지가 뿔이나 주먹질을 해댔다. 7살의 주먹질에도 그만하란 소리 한번 못하고 맞아주기만 하는 도윤을 구해주는 건 오늘도 정우의 몫이었다. 정우에게 달랑 들어 올려진 현지가 발을 흔들며 도윤을 찾아댔다. 도윤은 바이크에 싣고 온 짐들을 꺼내 카페로 옮겼다. 현지는 도윤이 사 온 것들을 정리하는 내내 정우에게 안겨있었다. 아이의 눈치를 보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정리를 끝낸 도윤이 현지에게 다가갔다. 정우가 안 그래도 버둥거리느라 엉망이 된 현지의 머리를 더 헝클어뜨렸다.

“오빠 때리면 안 돼.”

“흥.”

“안된다고 했어.”

“흥!”

“현지야….”

도윤이 고개를 홱 돌려 자신을 외면하는 현지의 주변을 안절부절못하며 기웃거렸다. 정우가 누가 애고 누가 어른인지 모를 장면에 웃음을 참으며 현지를 내려주었다. 정우에게서 벗어난 현지는 기다렸다는 듯 도윤의 손을 잡고 의자를 가리켰다. 도윤이 의자에 앉자 현지가 얼른 그 위에 앉아 등을 보였다.

“오늘은 머리 땋아줘.”

“으응.”

“엄마가 하도윤 금방 온다고 했는데 엄청 늦었어.”

“미안해.”

“흥.”

“화났어?”

“흥.”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손으로 머리를 빗어주자 현지에게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도윤은 그동안 현지와도 많이 친해졌다. 현지는 도윤이 자신의 머리를 묶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가 묶어준다고 해도 도윤이 아니면 싫다고 빽빽 화를 내기도 했다. 평생 남의 머리 한번 묶어본 적 없던 도윤도 이제는 제법 꼼꼼하게 묶을 줄 알았다. 현지의 요구대로 머리를 땋기 시작하자 현지가 메고 있던 가방에서 젤리를 꺼내 도윤에게 내밀었다. 도윤이 고개만 숙여 젤리를 받아먹었다. 도윤에게 젤리를 주고 똑같은 색의 젤리를 찾아 입에 넣은 현지가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었다.

“하도윤 있잖아.”

“응?”

“토요일에 나랑 놀자.”

“토요일에?”

“응, 응. 나 유치원 안 가는 날인데!”

“뭐 하고 싶은데?”

“몰라, 엄마는 그때 어, 귤 딴대.”

“귤?”

“하도윤 귤 좋아해?”

“응, 좋아해.”

“그러엄. 그러면!”

도윤이 머리끝을 묶고 다 됐다고 알려주자 현지가 뒤를 돌아보며 눈을 빛냈다.

“우리 집에서 귤 같이, 같이 해!”

“집에서?”

“응!”

“근데 토요일에는….”

“왜에? 안 돼? 왜 안 되는데?”

“으음.”

“같이 해, 응? 같이 하자아.”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피할 수도 없어서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자 정우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현지는 정우가 도윤을 뺏으러 온 줄 알고 도윤의 목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저었다. 목이 졸렸다. 도윤이 기침을 뱉곤 현지를 끌어안았다.

“뭘 같이하는데?”

“삼촌 저리 가! 삼촌은 몰라도 돼!”

“너나 도윤이 괴롭히지 말고 저리 가.”

“아니야! 괴롭힌 거 아니야!”

“뭔데?”

“어어, 현지가 토요일에 같이 귤, 읍.”

“싫어! 말하지 마!”

목을 끌어안던 손이 이번엔 입을 틀어막았다. 정우가 그 꼴을 보고 낄낄 웃었다.

“뭐, 주말에 귤 딴다고?”

“삼촌이랑은 싫어!”

“근데 어쩌냐, 도윤이 토요일엔 안 되는데.”

“…왜?”

“오빠는 여기서 일해야지.”

“…….”

“…….”

“오빠는 여기서 일해야 돼. 삼촌이랑 같이. 둘이서. 현지만 빼고.”

“…….”

입이 틀어 막힌 도윤은 눈알만 굴렸다. 도윤을 끌어안고 있던 현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도윤이 급하게 등을 토닥여주었지만 정작 현지를 울린 장본인은 뭐가 그리 웃긴지 웃기만 했다. 현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도윤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울지 마. 현지야 울지 마, 응?”

“끅, 삼, 촌…시러….”

“울지 마, 울지 마.”

“아, 재밌다.”

달래는 사람만 안절부절. 울린 사람은 그저 재미있었다. 정우가 한참을 웃다가 엉엉 울기 시작하는 현지를 뒤늦게 달래려 입을 열었다.

“알았어, 삼촌이 오빠 데리고 갈게.”

“삼촌은 싫어!”

“삼촌이 오빠 데리고 갈 건데 왜 싫어?”

“삼촌 미워! 저리 가! 하도윤만 와!”

“그래라, 7년 동안 예뻐해 준 삼촌은 이렇게 버려지네.”

도윤이 히끅거리는 등을 토닥여주었다.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쏟아내던 현지가 웅얼웅얼 말했다.

“토요일에 나랑, 같이 놀아.”

“알았어. 이제 그만 울어, 응?”

“삼촌 말고 나랑만 놀아, 알았지?”

“알았어.”

“약속.”

“약속.”

코를 훌쩍이며 어깨에서 떨어진 현지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었다. 도윤은 그 작은 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어주곤 다시 등을 토닥여주었다. 얼굴을 비비적대느라 앞머리가 엉망이었다. 도윤이 앞머리를 조심스럽게 정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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