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목적지에 도착하니 잠시 머리가 굳었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도윤이 들고 있는 짐은 고작 쇼핑백 하나가 전부였다. 커다란 터미널 앞에 서서 서성이던 걸음이 절뚝이며 안으로 향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버스를 타러 온 사람들보다는 노숙자가 더 많았다. 도윤은 무서웠지만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여름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터미널 안 공기는 차가웠다. 자판기에서 새어 나오는 빛과 화장실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윤은 쇼핑백을 끌어안고 입술을 떨다가 허리를 폈다. 무서워. 아파. 목발도 없이 걸어 다녔더니 발이 너무 아팠다. 신발을 벗자 양말에 피가 스며든 것을 볼 수 있었다. 피를 보자 또 눈물이 터질 뻔해서 겨우 고개를 들어 고요한 터미널을 올려다봤다.
얼마나 그러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졸지도 못하고 주변을 경계하던 몸이 움츠러들었다. 느리게 뒤를 돌아보자 잠을 자던 노숙자가 화장실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서웠다. 시간은 느렸고 사람은 없었다. 핸드폰도 없어서 더 무서웠다. 도윤이 쇼핑백을 끌어안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 몸을 웅크렸다.
잠깐 졸았다가 깨어난 도윤은 간간이 앞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매표소에도 불이 들어와 있었다. 쭈뼛쭈뼛 매표소로 향하는 걸음이 느렸다. 안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던 직원이 도윤을 발견하곤 고개를 까딱였다. 모자를 살짝 들어 인사를 한 도윤이 오랜 고민 끝에 서울에 오기 전 살았던 곳의 차표를 구매했다. 첫차는 30분 뒤에 운행한다고 했다. 그동안 발을 절뚝이며 화장실에도 다녀오고 편의점에서 물을 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배는 고프지 않았다.
사람들을 태울 버스가 연달아 자신의 자리를 찾아 들어왔다. 밖에 서서 버스만 기다리던 도윤이 표와 버스를 번갈아 확인했다. 시간도 맞고, 목적지도 같았다. 차 앞에서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던 기사에게 차표를 쥔 도윤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여기 가려면 이 버스 타는 거 맞나요?”
“예.”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이곤 버스에 오르려던 몸이 멈칫했다. 대답을 해준 기사는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뒤를 돌아 조용한 터미널을 눈에 담고 숨을 가다듬은 몸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시간에 딱 맞춰 출발했다. 버스가 출발하는 순간까지도 혹시나 희성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던 도윤은 터미널을 빠져나가고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가 돼서야 몸에 힘을 풀었다. 긴장이 풀어지니 이젠 잠이 왔다. 쇼핑백을 보물마냥 끌어안은 도윤의 눈꺼풀이 아래로 떨어졌다. 어둠이 찾아왔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만 얼른 들렸다. 도윤을 태우고 열심히 달린 버스는 익숙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17살까지 보고 자랐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서자 도윤은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긴장이 됐다. 물을 마시고 짐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기사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계도 없어서 터미널에 있는 시계를 보고 지금이 몇 시인지 알았다. 아직 오전이었다. 도윤은 또 택시를 이용했다. 기억하는 주소를 말하고 몸을 기댔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토록 원했던 곳에 왔지만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택시는 도윤을 익숙한 곳에 내려주었다. 도윤은 17살까지 살았던 동네에 도착해 침을 삼켰다. 걸음은 이번에도 익숙한 곳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누르는 손에 떨림이 찾아왔다. 6층을 누르고 거울 속 자신을 쳐다보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 이사를 갔으면 어떡하지? 그게 아니더라도 대학을 다른 곳으로 갔으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지? 도윤이 불안함에 떨리는 손을 꽉 쥐고 6층에 내려 문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조용했던 복도에 누구세요? 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윤이 뒷걸음질을 쳐 열리는 문 사이로 나타난 얼굴을 보았다. 문을 열어준 사람의 표정은 꼭 귀신을 본 사람 같았다. 처음엔 놀랐고, 그다음에도 놀랐다. 도윤의 얼굴이 그동안 참아왔던 것을 모두 쏟아내듯 일그러졌다.
“도윤아!”
“서, 서준아….”
“갑자기 무슨, 너, 너 왜 울어? 어? 들어와! 일단 들어와!”
“흐으, 서준아, 서준아…!”
“뭐야!”
도윤이 서준에게 안겨 엉엉 울음을 쏟아냈다. 덕분에 주방에 있던 서준의 아버지와 욕실에 있던 서준의 어머니가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왔다가 눈을 크게 떴다. 도윤이 편안한 품에 안겨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기절하듯 잠든 도윤이 깨어난 것은 점심을 훌쩍 넘겨 오후가 됐을 때였다. 눈물이 굳어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끙, 앓으며 일어난 도윤이 익숙한 방을 둘러보곤 침대에서 내려왔다. 문을 열자 이번에도 익숙한 거실이 나타났다. 눈물이 또 나올 것 같아 코를 훌쩍였다. 거실에 앉아 TV를 보던 서준이 벌떡 일어나 도윤에게 다가왔다.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서준아….”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너 여기 어떻게 왔어? 아저씨는? 너 혼자야?”
“혼, 혼자 왔어.”
“왜? 무슨 일 있었어? 너 발은 또 왜 그래? 손목에 그건 또 뭐고!”
쏟아지는 질문 폭격에 정신이 혼미했다. 도윤이 고개를 숙여 발을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양말도 벗겨져있고 새로운 붕대가 둘러져 있었다.
“너 자는 동안 엄마가 치료해 줬어.”
“아….”
“대체 무슨 일인데? 어?”
“혹, 혹시 우리 아빠한테 전화했어?”
“아직. 왜? 몰래 온 거야?”
“…아빠한테 비밀로 해줘. 부탁할게.”
“대체 왜?”
“서준아 제발.”
“…일단 알겠어. 너 밥부터 먹자. 여기 앉아있어.”
17살 때까지만 해도 함께 앉아 밥을 먹고는 했던 식탁이었다. 서준은 밥이며 국이며 반찬을 빠르게 날랐다. 그리곤 물이 담긴 컵까지 주고는 그 앞에 앉아 도윤이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입맛은 없었지만 최대한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도윤이 물을 삼키고 빈 그릇을 들고일어나려다 제지 당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서준은 차릴 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식탁을 정리했다. 도윤이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말 안 해줄 거야?”
“…나중에 말하면 안 돼?”
“…알았어.”
“서준아, 나 혹시 컴퓨터 좀 써도 돼?”
“왜? 되긴 되는데, 이리 와.”
“으응.”
절뚝이는 도윤을 부축해 방으로 들어간 서준이 컴퓨터를 켜고 그 앞에 도윤을 앉혔다. 도윤은 어색하게 마우스를 움직여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찾는 페이지를 클릭하려다 옆에 서있는 서준을 올려다봤다. 괜히 민망했다. 가만히 지켜보던 서준이 미간을 구겼다.
“휴학? 너 진짜 뭐 큰일이라도 있는 거야?”
“…….”
“아, 진짜….”
“…….”
답답함에 가슴팍을 두드리는 서준을 옆에 두고 휴학 신청을 마친 도윤이 인터넷을 껐다. 이제, 이제 또 뭘 해야 하지? 도윤이 혀로 입술을 쓸다가 집안을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몸을 떨었다. 혹시, 혹시…. 불안감은 빠르게 차올랐다. 도윤이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자 더 당황한 서준이 몸을 잡아 눌렀다. 커다란 눈이 떨고 있었다. 덩달아 심각해진 서준이 그를 앉히고 방문을 닫았다.
무서웠다. 희성이면 어떡하지? 구석에 놓아진 쇼핑백을 들고 방에 서있던 도윤이 문이 열리는 소리 눈을 꾹 감았다. 눈을 뜨기가 무서웠다. 눈을 뜨면 바로 앞에 화가 난 희성이 서있을 것만 같았다. 덜덜 떨리는 몸에 손이 닿았다. 도윤이 할딱이며 주저앉았다.
“도윤아! 도윤아, 나야. 도윤아.”
“욱….”
“하도윤!”
어깨를 잡고 흔드는 서준을 뿌리치고 욕실로 달려간 도윤이 기껏 먹었던 점심을 게워냈다. 도윤을 도와주려 등을 두드리던 서준이 급격하게 떨리는 몸에 손을 뗐다. 이상했다. 도윤이 이상했다.
콜록. 속을 다 게워낸 도윤이 흐린 시야를 닦았다. 물을 내리고 입을 헹구는 동안에도 서준은 말이 없었다. 침대에 앉은 도윤에게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이 쥐여졌다. 서준이 의자를 끌어와 침대 앞에 앉았다. 물을 마시지도 않고 쥐고만 있던 손이 이따금씩 떨리고 있었다. 서준의 시선이 손에 머물렀다가 올라왔다.
“너 무슨 일 있어. 맞지.”
“…….”
“나한테도 말 못 하는 이야기야?”
“…….”
“아저씨 몰래 온 거면 아저씨랑 싸웠어?”
“…….”
지퍼를 잠근 듯 입술은 닫혀있었다. 서준이 한숨을 쉬곤 다시 물었다.
“혹시, 정말 혹시. 아저씨가 너 이렇게 만들었어?”
그 질문에 도윤이 놀라 고개를 저었다. 서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
“하도윤.”
“…나중에, 나중에 서준아, 나중에….”
“나중….”
서준이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 그게 좋겠다.”
“안, 안 돼.”
“왜?”
“여긴 안 돼, 여기는, 안 돼….”
“그러니까 왜 안 되는데? 누가 쫓아와? 그래?”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손이 떨렸다. 턱을 타고 흐르는 물을 겨우 닦고 고개를 숙인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몇 년 사이 달라진 친구가 낯설었다. 서준이 머리를 헤집었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갈 건데?”
이번에도 고개가 느릿하게 양옆으로 돌아갔다.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없어?”
“…….”
“하도윤 너 왜 이렇게….”
차마 변했냐고 까지는 묻지 못했다. 허벅지에 올려둔 컵에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말문이 막혀 입만 뻥긋거리던 서준에게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 미안해…. 갑자기…찾아와서….”
“그게 왜 미안해.”
“나, 나 때문에….”
“뭐가 너 때문인데?”
“내가, 내가 다 잘못…했, 했어…. 화내지 마, 서준아, 흑, 화, 화내지 마….”
사람이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서준이 입을 틀어막고 들썩이는 어깨를 보다가 컵을 뺏어다 책상에 올려두었다. 품에 안겨 우는 등을 쓸어주었다. 궁금한 것 밖에 없고, 답답함뿐이지만 도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도윤이 서준의 집에 온 첫날은 모두가 이유를 알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며 지나갔다. 도윤은 먹기만 하면 토하고 심지어 체하기도 하는 등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서준의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으나 서준이 막아섰다. 도윤은 잠만 잤다 하면 악몽을 꿨다. 손목을 긋던 날의 꿈과 희성이 자신을 찾아오는 꿈이었다. 새벽에 울면서 앓는 소리에 깨어나 보면 도윤이 악몽을 꾸고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도윤을 깨우면 도윤은 일어나 미안하다며 울었다. 대체 뭐가 미안한 건지 알 수가 없는 밤이 여러 차례 지나갔다.
서준의 집에서 지낸지도 벌써 4일이 흘렀다. 도윤은 요즘 깨어있을 때면 매일 인터넷을 뒤졌다. 하루빨리 갈 곳을 찾아야 했다. 희성이 이곳을 못 찾을 리가 없었다. 초조하게 마우스를 달깍이던 손이 한곳에 멈췄다. 제주도. 문득 희준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수학여행으로 가본 적이 있었던 제주도. 여권이 없어 당장 해외로는 갈 수 없었다. 해외로 갈 용기도 없었다. 그러나 제주도 라면. 도윤이 홀린 듯이 무작정 제주도로 향하는 티켓을 구매했다. 서준이 마침 과일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다 눈을 깜빡였다.
“…너 제주도 가게?”
“으응.”
“몸도 안 좋으면서 제주도는 무슨.”
“나 이제 가야 돼.”
“뭘 자꾸 간대. 이거나 먹어.”
“미안해.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 한번 할 때마다 만 원이라고 했지. 내놔.”
“…미안, 아. 미안. 아니, 아….”
“삼 만원.”
“…으응.”
보물처럼 아끼는 쇼핑백에서 봉투를 꺼낸 도윤이 돈을 꺼내들자 서준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진심이야?”
“…….”
“와, 어이없네.”
“…….”
“필요 없거든?”
서준이 누굴 쓰레기로 아냐며 중얼거렸다. 도윤이 돈을 다시 집어넣고 오렌지를 먹었다. 서준이 컴퓨터를 한참이나 보곤 그랬다.
“…진짜 가려고?”
“응.”
“왜 가는지는 아직도 비밀이고?”
“…미, 으응.”
사과가 입에 붙었다. 도윤이 다시 오렌지를 물었다.
“가면.”
“응?”
“가면 연락할 거야?”
“…….”
“너 죽으려고 가는 거야?”
“아, 아니야.”
“그게 아니면 가서 연락해. 무조건 해. 무슨 일이 있어도 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해. 알았어?”
“…알았어.”
“너 진짜 짜증 난다.”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말고는 해줄 말이 없었다. 도윤이 포크를 돌돌 돌렸다. 혀를 차고 일어난 서준이 옷장을 열었다. 도윤은 오렌지만 먹으며 서준을 살폈다.
“뭐해?”
“너 입고 다닐 옷 찾는다, 왜.”
“옷?”
“너 쇼핑백 저거 달랑 하나 들고 왔잖아.”
“아…. 나 괜찮은데….”
“어차피 나 사두고 안 입은 옷 많아서 괜찮아.”
그 대답을 끝으로 서준이 옷을 꺼내 침대에 던졌다. 차곡차곡 쌓이는 옷이 무덤을 만들었다. 도윤이 오렌지를 콕 찍어 서준의 입에 넣어주었다. 서준은 말없이 오렌지를 받아먹고 이번엔 캐리어를 꺼내들었다.
“서준아, 나 진짜 괜찮아.”
“이거 다 그냥 주는 거 아니고 빌려주는 거야.”
“…….”
“나중에 꼭 돌려주러 와.”
“…응.”
캐리어에 옷 몇 벌을 챙기고도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방을 둘러본 서준이 머리를 긁적였고 도윤은 부지런히 오렌지를 날랐다.
만약을 대비해 두 사람은 서준의 부모님에게도 제주도에 간다는 말을 전하지 않았다. 도윤이 제주도에 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서준이 다였다. 서준은 옷과 캐리어를 빌려주고도 평소에 메고 다닐 작은 가방도 빌려주었다. 부모님이 잠든 새벽에 몰래 빠져나온 서준은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함께 기다려주고 있었다. 혼자 갈 수 있다고 했는데도 믿을 수가 없다며 따라왔다. 쇼핑백만 덜렁 들고 나타났던 첫날과는 달리 짐이 늘었다. 도윤이 불어난 짐을 물끄러미 보다가 웃었다.
“뭘 웃어.”
“그냥.”
“그냥 나도 같이 갈까?”
“같이?”
“어, 너 혼자 보내놓고 내가 맘 편히 잘 수나 있겠냐?”
“나 진짜 괜찮아.”
“웃기지 마. 오늘도 악몽 꾼 거 다 알거든?”
머쓱한 손이 캐리어 손잡이를 잡았다. 버스가 오고 있었다. 신호에 걸려 멈춘 버스를 확인하고 도윤을 돌아본 서준이 입맛을 다셨다.
“내 번호 알지.”
“응. 안에 적어뒀어.”
“도착하자마자 전화해.”
“나 핸드폰 없는데….”
“공중전화는 장식이야?”
“어…. 알겠어.”
“한 달에 한 번 편지.”
“알았어.”
“기다렸는데 안 오면 바로 찾아간다.”
“으응. 버스 왔다.”
도윤을 태울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했다. 기사가 내려 짐칸을 열어주고 도윤이 그 안에 가벼운 캐리어를 밀어 넣었다.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서준이 머뭇거리다 도윤을 끌어안았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와.”
“응, 고마워.”
“전화 꼭 하고.”
“그럴게.”
“아프지 마.”
“너도 아프지 마.”
“너나 아프지, 난 안 아파.”
“그런가?”
도윤이 웃었다. 서준은 웃는 친구의 얼굴을 꼼꼼히 눈에 담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서준아, 고마워. 도윤이 손을 흔들며 버스에 올라 자리를 찾아갔다. 밖에 서서 그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보는 시선이 따라붙었다. 안쪽에 앉아 손을 흔드는 도윤은 웃고 있었다. 서준은 불안했지만 도윤을 믿어보기로 했다. 버스가 도로를 달려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에 서있던 서준이 느릿하게 집으로 향했다.
도윤이 떠나고 몇 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아서 초인종이 울렸다. 잠을 못 잔 탓에 서준이 비몽사몽으로 문을 열었다.
“누구….”
“하도윤 어디에 있어.”
“네?”
“하도윤 어디에 있냐고.”
서준이 인상을 썼다. 누군데 다짜고짜 남의 집에 찾아와서…. 멍했던 정신을 다잡으며 고개를 든 서준이 눈앞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어디서 봤더라. 이 얼굴을 어디서…. 서준이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이 얼굴을 끄집어냈다. 어, 장례식장에서. 도윤이 친구. 서준이 눈을 빠르게 감았다 뜨며 희성을 쳐다봤다. 급하게 왔는지 숨이 고르지 않았다. 어쩐지 도윤이 생각났다. 서준은 빠르고 짧게 머리를 굴렸다.
“도윤이를 왜 여기서 찾는데?”
“여기 왔잖아, 씨발. 하도윤 어디에 있냐고!”
“너 나 알아? 왜 갑자기 욕이야?”
“비켜.”
“너 뭔데, 야!”
“하도윤!”
부모님이 집을 비워서 다행이었다. 서준이 미친 듯이 집안을 뒤지고 다니는 희성을 쫓았다.
“너 이거 신고할 거야!”
“하도윤 어디에 있냐고!”
“서울에서 사는 도윤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하도윤 어디에…! 씨발, 어디 있냐고!”
“잘못 찾아왔어. 도윤이 여기 없어.”
“그럼 어디 있는데.”
“그러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도윤이 나랑 연락도 안 해.”
“지랄하지 마. 하도윤이 여기 말고 갈 데가 어디에 있어.”
“도윤이한테 무슨 일 있어?”
“…….”
“무슨 일인데.”
“마지막이니까 대답 똑바로 해, 하도윤 어디에 있어?”
“너 사람 말 못 알아들어? 도윤이는 여기 온 적도 없다니까!”
서준이 소리를 버럭 질렀고 희성은 실소를 자아냈다. 며칠째 잠도 못 자고 도윤을 찾아다니며 뒤져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희성이 웃는 낯으로 서준을 마주했다. 웃고는 있지만 기분이 좋아 만드는 웃음이 아니었다. 서준이 소름이 돋은 팔을 쓸었다.
“없어?”
“…없어.”
“…도윤이 어디에 있냐고, 제발….”
연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웃고 있지만 웃는 것이 아니던 희성의 표정에 절망으로 물들었다. 서준이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희성을 봤다.
“제발, 제발…씨발…제발….”
“…….”
“도윤이, 도윤이 어디에 있어?”
“나, 난 몰라.”
“네가 달라는 거 다 줄 테니까 하도윤 어디에 있는지만 말해.”
“미안한데 진짜 몰라서 그래.”
“…그럴 리가 없잖아. 하도윤 여기 왔잖아!”
“진짜. 진짜 안 왔어.”
희성이 비틀거리며 허리를 숙였다. 도윤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당시 희성은 심장이 철렁이며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손이 떨려 운전을 할 수 없었다. 겨우 도착한 병실은 텅 비어있었다. 도윤이 누워있어야 할 침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핸드폰을 추적해 봤지만 핸드폰을 놓고 간 건지 장소도 병원으로 떴다. 사람을 시켜 병원 곳곳을 뒤졌으나 도윤은 보이지 않았다. 도윤의 아버지에게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거짓말, 거짓말이었다. 도윤이 제 아버지에게까지 비밀로 하고 사라졌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어머니의 납골당에도 가봤다. 하지만 도윤은 없었다. 다녀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도 가봤지만 헛수고였다. 도윤을 봤다는 사람조차 없었다. 처음으로 집을 나갔을 때와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곳곳에 사람을 풀었다. 도윤이 갈만한 장소에는 모두 사람을 풀었다. 혹시라도 집으로 올까 싶어 집에도 있어봤고, CCTV도 돌려봤지만 도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희준은 도윤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멈칫했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며 도윤을 걱정했다. 몸 안의 피가 자꾸만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희성은 도윤이 사라진 며칠간 잠시도 쉬지 않고 서울을 돌아다녔다.
마지막이었다. 이곳이 일말의 희망을 품고 달려온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도윤은 없었다. 도윤을 봤다는 사람도 없었고 도윤의 흔적도 없었다. 희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긴장한 얼굴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하도윤이 갈만한 곳, 다 말해.”
“…못해.”
“왜! 대체 왜! 너 하도윤 친구잖아! 하도윤이, 너…좋아하잖아….”
“모르니까. 이제 그만해.”
“다 줄게. 제발 하도윤이 어디에 있는지만 말해. 그거면 돼.”
“너도 답답하겠지만 난 진짜 몰라. 장례식장에서 봤던 날 이후로 본적도 없어.”
“거짓말이잖아. 너는 알잖아.”
“하…. 정말 몰라.”
희성이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꼴이 엉망이었다.
“하도윤 오면. 여기로 연락해.”
“…….”
“왔는데 연락 안 하면, 진짜 그땐 너도 하도윤도.”
“…….”
“…연락해.”
볼펜을 들어다 눈에 보이는 종이에 번호를 날려 쓴 희성이 여전히 비틀거리며 현관에 섰다.
“다 준다는 거 농담 아니니까 연락해.”
“…….”
“난 하도윤만 있으면 돼.”
“…….”
문이 쾅 닫혔다. 서준은 폭풍이 지나간 자리를 훑어보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서준이 엉금엉금 기어 핸드폰을 들었다. 모르는 번호가 찍혀있었다. 서준이 아무도 없는 집을 둘러보곤 바닥에 드러누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어, 여보세요?
“…하도윤 너야?”
-으응, 나 여기 숙소인데….
“숙소? 공항이 아니라?”
-응, 그냥 숙소 전화 빌렸어.
“…다행이네.”
-…목소리가 왜 그래?
“뭐가? 자고 일어나서 그래.”
-혹시 내가 깨웠어?
“그건 아니고.”
-응, 미안.
“됐어.”
-어…. 나중에 또 연락할게.
“잠깐, 도윤아!”
-왜?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잠시 침묵이 찾아왔지만 도윤에게서 괜찮다는 대꾸가 들려왔다. 방금 우리 집으로 찾아온 애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던데. 서준이 말을 아꼈다. 도윤이 또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서준은 핸드폰에 도윤의 숙소 번호를 저장했다. 혹시라도 희성이 다시 찾아와 핸드폰을 뒤질 때를 생각해 ‘할아버지’로 바꾸기도 했다.
***
도윤이 사라진지 일주일이 지났다.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장소가 어디든 가리지 않고 사람을 보냈다. 작정하고 떠난 만큼 통장도 비어있었다. 이래선 카드를 쓰는 족족 추적할 수도 없었다. 희성은 그동안 도윤이 휴학 신청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날로 바로 휴학을 신청했다. 도윤이 자살시도를 했던 날 만났던 조원들에게 그날 도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을 때, 유정은 자기도 모르겠다며 편의점에 다녀왔더니 갑자기 도윤이가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가게를 나갔다고 대답했고 연우와 동호도 비슷하게 대답했다.
결국 도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화가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침착하게 생각을 해보려고 해봤지만 여전히 초조했다. 그리고 그때 연우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었다. 평소 도윤이에게 시비를 걸고 괴롭히는 것 같다던 선배가 있다고 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날 가게에서 그 사람을 보았고 하필 도윤이 나왔던 방향에서 바로 따라 나오는 걸 봤다는 이야기였다.
희성은 연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끊고 호준을 찾았다. 호준은 태평하게 집에서 자빠져 자다가 사람들이 들이닥쳐 놀라서 당신들 뭐냐고 소리를 지르다 기절해있는 상태였다. 들어가기도 싫은 호준의 자취방은 밖에서 봐도 더러웠다. 역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희성이 집으로 들어서자 남자들은 호준을 억지로 앉혀 고개를 들게 했다.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거리는 호준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훑어본 희성이 손을 들어 뺨을 쳤다. 호준의 얼굴은 짝이 아닌 둔탁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고 곧 역겨운 시선을 가진 눈이 희성을 쳐다봤다.
그 뒤로도 호준은 남자들에게 잡혀 희성에게서 쏟아지는 폭력을 무력하게 받아내야 했다. 처음엔 도대체 자신에게 왜 이러는 거냐고 악을 쓰던 호준은 핏줄이 터지고 입술이 터진 얼굴을 힘없이 떨어뜨렸다. 슬슬 손이 아플 법도 했지만 희성은 숙여진 얼굴을 들어 올려 피멍이 든 볼을 또 수차례 내리쳤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폭력에 호준은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다.
‘대, 체…허억….’
‘아파?’
‘왜, 왜 이…컥….’
‘너 하도윤 알아?’
‘욱….’
‘아냐고 묻잖아.’
‘아, 알, 알아.’
‘왜?’
‘…….’
호준이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입을 뻥긋거렸고 희성의 주먹이 얼굴에 꽂혔다. 호준의 얼굴과 희성의 손이 피범벅이었다. 잠시 숨을 헐떡이던 호준이 입안에 굴러다니는 것을 뱉고 눈을 감았다. 침과 피와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이를 벌레 보듯 쳐다본 희성이 머리카락을 쥐고 잡아당겼다. 하도 맞아 터져서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고 있는 건지 분간이 어려웠다.
‘너 토요일에 하도윤 만났지.’
‘…….’
‘만났어. 그렇지?’
‘…….’
‘걔한테 뭐 했어?’
‘…후으….’
‘뭐 했냐고 묻잖아.’
다물지 못한 입에서 침이 줄줄 흘렀다. 희성이 한숨을 쉬고는 일어나 호준의 배를 걷어찼다. 커헉. 남자들에게 잡혀있어 쓰러지지도 못하고 숨을 삼킨 호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숨도 쉬지 못하고 떠는 호준의 얼굴이 다시 한번 들어 올려졌다.
‘왜 울어? 아파?’
‘허억, 헉….’
희성이 손을 까딱이자 남자들이 호준을 놓아주었다. 큰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진 호준이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조금씩 기어서 자신의 발목을 잡는 손에 희성이 발을 털었다. 피투성이로 바닥을 기는 호준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차가웠다. 신발을 신고 있던 발이 호준의 손등을 밟았다.
‘악!’
‘말 못 하는 거 아니네.’
‘아, 파…아악!’
‘하도윤한테 무슨 짓 했냐고 물었잖아.’
‘흐, 별, 별거 안, 윽…!’
‘별거 안 했어? 뭘 하기는 했다는 소리네.’
희성의 발이 잠시 붕 떴다가 손등을 짓밟았다. 동시에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호준이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희성의 발밑에 있었다.
그날 호준은 울면서 토요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살기 위해 말을 더듬으며 화장실에서 도윤을 만나고 도윤에게 했던 말, 했던 행동을 모두 토했으나 상대는 희성이었다. 호준은 소리를 지를 수도 없게 옷으로 입이 틀어 막힌 채 아까보다 배로 쏟아지는 폭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기절했다.
도윤의 베개를 얼굴에 올리고 침대에 죽은 듯 누워있던 희성이 베개를 내리고 자꾸만 부스럭대며 거슬리게 구는 햄스터를 노려봤다. 처음엔 어디다 그냥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2년간 도윤이 아끼고 아꼈던 햄스터라는 것을 떠올리고 겨우 참고 놔둔 거였다. 도윤이 돌아오면. 금방 돌아왔는데 햄스터가 없으면 또 자신을 원망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관리는 집을 관리해 주는 사람이 맡았다. 아무리 도윤이 좋아했던 햄스터라지만 직접 돌봐주기는 싫었다. 쥐새끼 주제에 도윤의 관심을 너무 많이 받았다.
희성은 다시 도윤의 베개를 얼굴에 덮었다. 벌써 도윤의 냄새가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음에도 정신이 멀쩡했다.
“하도윤….”
희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베개를 힘주어 끌어당기자 마치 질식사라도 당할 듯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죽음보다 조금 더 진하게 느껴지는 도윤의 냄새에 희성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도윤이 보고 싶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찾아서 자신의 옆에 둬야 했다. 자신은 도윤을 만나기 위해 태어났고, 도윤도 자신의 옆에 있기 위해 태어났다. 희성이 눈을 감고 도윤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제일 먼저 매일같이 울던 얼굴이 떠올랐다. 도윤이 울 때면 가슴이 들끓었다. 울면서 자신이 싫다고 말하는 하도윤. 울면서 그만하라고 도망치는 하도윤. 울면서 잘못했다고 비는 하도윤. 온통 우는 얼굴뿐이었다. 허탈했다. 우는 얼굴만 떠오르는 건 당연했다. 도윤은 자신을 보며 웃어준 적이 별로 없었다. 당연했다. 하도윤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다. 희성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도윤이 웃으면 얼마나 예쁜지 희성이 제일 잘 알았다. 어쩌다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해주면 배시시 웃었다. 눈까지 접으며 웃음을 흘리는 얼굴이 얼마나 예쁜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정말 기분이 좋을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만들어내는 보조개가 얼마나 예쁜지 희성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희성아. 희성아…. 희성아! 김희성! 도윤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이름이 좋았다. 눈치를 보면서 부르는 이름도, 신나서 부르는 이름도, 화나서 부르는 이름도 모두 좋았다.
희성아….
평생 베개 밑에서 살 것 같던 희성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분명 도윤의 목소리였다. 말꼬리를 흘리며 부르는 이름은 제일 익숙한 것이었다. 희성이 고요한 방을 둘러봤다. 분명 똑똑히 들었다. 도윤이 자신을 불렀다. 실내화를 신지도 못한 맨발이 방바닥을 밟았다. 도윤이 항상 앉아있던 소파에도 사람은 없었다. 욕실에도 없었고, 주방에도 없었다. 드레스 룸에도 없었고, 서재에도 없었다. 홀린 듯 도윤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집을 뒤진 희성이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팔로 눈을 가렸다. 씨발, 별…. 이젠 환청까지 들렸다.
김희성.
또다. 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다가왔다. 희성이 팔을 내리고 조용하기만 한 집을 쳐다봤다. 도윤이 없자 속이 울렁거렸다. 희성은 도윤이 TV를 보며 덮곤 했던 담요를 끌어와 얼굴에 덮었다. 여기서도 도윤의 냄새가 났다. 희성이 급하게 호흡을 골랐다. 하도윤이 보고 싶었다.
***
홀로 제주도에 도착한 도윤은 한참을 공항에 앉아만 있다가 제주도 안내 책자를 꺼내 살펴보았다.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놀러 온 듯싶었다. 도윤은 갈 곳이 없었다. 서준이 도착하면 전화를 하라고 했는데 그 말도 듣지 않았다. 가방에 안내 책자를 넣고 캐리어를 끌며 밖으로 나온 도윤은 일단 눈에 보이는 택시를 잡아탔다. 어디로 갈 거냐는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다 안내 책자에서 본 바닷가를 떠올리고 목적지를 말했다. 택시 기사는 친절했다. 도윤에게 맛있는 것을 추천해주고 어디 가 재미있고 어느 바다가 조용하고 예쁜지도 알려주었다. 가만히 듣던 도윤은 목적지를 바꿔 택시 기사가 추천해 준 바닷가로 향했다.
택시 기사의 추천으로 도착한 곳에서도 도윤은 한참 동안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보냈다. 일정하게 밀려왔다가 다시 뒤로 도망가는 파도를 눈에 담으면서.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바다를 뒤로하고 일어난 도윤은 당장 지낼 곳을 찾아보았다. 핸드폰이 없어서 힘들었지만 주변에 널린 것이 숙소였다. 도윤은 건물을 기웃거리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던 숙소에 들어가 일주일 치 숙박비를 내밀었다. 주인은 도윤에게 방 키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첫 번째 숙소는 그냥 잠만 자기에는 충분한 곳이었다. 도윤은 일주일 내내 편의점에서 사 온 컵라면과 김밥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제주도는 어딜 가든 사람이 많았고 도윤은 어쩐지 겁이 나 최대한 숙소에서만 지냈다. 일주일이 지나자 도윤은 또 짐을 챙겨 다른 곳으로 향했다.
두 번째 숙소에서도 딱 일주일만 지냈다. 밤마다 여행객들이 자기들끼리 파티를 했지만 도윤은 방에만 있었다. 식사도 컵라면과 김밥, 빵이 고작이었다. 대신 바다는 실컷 봤다. 질리도록 봤지만 아직까지 질리지는 않았다. 해변에 앉아 일렁이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발바닥도 이제는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밤마다 약국에서 산 연고와 붕대로 손목도 치료했으나 손목은 여전히 보기가 흉했다.
세 번째 숙소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주일을 보냈다. 하루하루 희성이 언제 찾아올지 몰라 두려워하던 것도 이제 조금씩 슬슬 무뎌지고 있었다. 그러나 식비는 편의점에서만 때우니 괜찮았지만 숙소비로 나가는 돈이 꽤 들었다. 여태 모아두었던 돈이 많이 남기는 했지만 이 돈이 전부였기 때문에 걱정이 됐다. 희준이 필요할 때 쓰라고 준 카드도 항상 지니고는 있었지만 쓰기가 싫었다. 만약 이걸 쓰고 희성이 그걸 알아채면, 그러면…. 도윤은 돈이 들어있는 봉투를 캐리어에 넣고 희준이 준 카드도 캐리어 깊숙이 넣어두었다.
찾아보면 갈 곳이야 널리고 널렸겠지만 도윤은 캐리어를 끌고 뚜벅이를 자처했다. 내리쬐는 햇볕이 뜨거웠다. 서준이 챙겨준 모자를 쓰고 터덜터덜 걷던 도윤의 걸음이 앞에서 걸어오는 무리를 발견하고 조금 느려졌다. 남자 네 명이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도윤은 캐리어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고 고개를 숙였다. 웃으며 지나치던 남자 중 한 명이 실수로 도윤과 어깨를 부딪쳤다. 남자는 급하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도윤이 가빠지는 숨을 꾹 참고 걸음을 빨리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캐리어를 지지대 삼아 힘겹게 걷던 도윤이 결국 쪼그리고 앉아 숨을 골랐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쯤은 도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서웠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코를 훌쩍였다.
오후가 되면서 햇볕은 더 쨍해졌고 몸으로 느껴지는 기온도 높아져갔다. 붕대가 감긴 손목을 보기 싫어 긴팔을 입은 탓도 컸다. 아무리 모자를 쓰고 있다지만 캐리어를 끌고 걸어 다녔더니 힘이 들었다. 밥도 먹지 않아서 배도 고팠다. 어딜 가든 휴가를 맞이해 제주도를 찾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라면은 질렸지만 또 조용하게 혼자 먹을 수 있는 것은 라면이 다였다. 목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걷던 도윤은 순간 앞이 어질어질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불어오는 바람도 뜨거웠다. 캐리어를 짚고 허리를 숙인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 땅에서 피어오르는 열기가 무릎과 손바닥을 달구었다. 어지러워…. 길바닥에 주저앉아 겨우 정신을 다잡고 있을 때였다. 도윤을 지나쳐 도로를 쌩쌩 달리던 차 한 대가 후진을 하며 도윤의 옆에 섰다.
“저기요!”
“…….”
“학생! 괜찮아요?”
멀지 않은 거리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고개가 들렸다. 운전석에 앉은 여자가 걱정스러운 낯으로 도윤을 살피고 있었다. 괜찮다고 대답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캐리어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잠시 차 안을 돌아본 여자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내 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학생, 무슨 일 있어요?”
“…그게….”
“얼굴이 익었네, 일어날 수 있겠어요?”
대답 대신 고개가 살살 저어졌다. 여자가 뒤에서 걸어오는 남자에게 손짓하면서 도윤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더위 먹은 것 같은데, 잠깐 우리랑 가요.”
“네…?”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실려가. 얼른.”
“아….”
여자가 내미는 손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도윤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여자는 도윤의 팔을 잡고 일으켜 뒷좌석에 타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여자를 따라 내린 남자는 도윤의 짐을 트렁크에 넣고 조수석에 올랐다. 여전히 걱정스러운 낯이 도윤을 돌아보며 말했다.
“금방 도착하니까 잠깐 누워있어요.”
“…가, 감사…합니다….”
“한창 뜨거울 때 왜 짐까지 들고 걸어 다녀, 그러다 쓰러지면 어떡하려고.”
걱정을 담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도윤은 시원한 공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어지러웠던 시야에 암흑이 찾아오고 가빴던 숨소리가 조금씩 원래의 호흡을 되찾았다.
친절한 사람들을 따라 도착한 곳은 바다를 배경으로 지어올린 건물이었는데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하는 듯했다. 1층에는 카페가 있었고 그 안에선 기념품도 작게 팔고 있었다. 여자가 건넨 물을 꼴딱꼴딱 마시며 카페를 구경한 도윤이 시원한 테이블에 엎드렸다. 울렁거렸던 속도 조금은 괜찮아졌고 발갛게 달아올랐던 얼굴도 가라앉았다. 눈을 감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어보았다.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으며 시원한 공기를 마시던 도윤의 몸이 느릿하게 일으켜졌다.
“이제 좀 괜찮아요?”
“네에….”
“여름엔 웬만하면 차 타고 다녀요.”
“네….”
“아까 운전하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밥은? 식사는 했어요?”
“아, 아직….”
“그럼 뭐 좀 먹을래요?”
웃으며 다가와 도윤의 이마를 만져본 여자가 물었다. 이상하게 이 손길이 싫지 않았다. 도윤이 눈을 깜빡이고만 있자 조수석에 타있었던 남자가 알아서 샌드위치 한 개와 아이스티를 만들어 가져왔다.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시선에 도윤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이것 좀 먹어요.”
“감사합니다….”
거의 3주 만에 컵라면과 김밥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게 된 순간이었다. 도윤이 살짝 떨리는 손으로 샌드위치를 물었다. 안에 새우튀김이 들어있는 샌드위치였는데 신기하게도 튀김은 바삭했지만 속은 거의 생새우나 다름없었다. 맛있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는데 입맛에 맞았다. 도윤이 급하게 샌드위치를 반이나 먹어치웠다. 앞에 앉아 도윤을 살피던 여자가 아이스티를 밀어주었다.
“천천히 먹어요.”
“네, 네.”
“…혼자 왔어요?”
“…네.”
여자는 또 한동안 말없이 도윤을 살폈다. 샌드위치와 아이스티를 번갈아가며 먹어치운 도윤은 배가 불러오자 슬슬 정신이 드는지 눈치를 봤다. 여자의 시선이 드러난 손목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괜찮으니까 여기서 조금 더 쉬었다가 가도 돼요.”
“…감사합니다.”
“혹시 이 뒤로 일정 있어요?”
“아, 아니요.”
“음. 제주에 얼마나 있다가 갈 예정이에요?”
“…….”
“이제 지낼 곳은 있고?”
“그게….”
카운터에 서서 핸드폰만 보던 남자가 도윤을 쳐다봤다. 다리에 둔 손가락이 쉴 새 없이 꼬물거렸다.
“아니면 여기서 지내도 돼요. 아직 방이 남아서.”
“…….”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고 말해줘요.”
“네….”
“쉬어요.”
왔을 때와 같이 웃으며 일어난 여자가 카운터에 서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도윤은 아이스티를 쪽쪽 빨아마셨다. 솔직히 이제 갈 곳이 없었고 오늘은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었다. 창밖의 풍경은 그림 같았지만 감출 수 없는 뜨거움이 느껴졌다. 카페의 문을 열면 쏟아지는 더위에 숨이 막힐 것이 분명했다. 도윤은 남은 돈을 생각해 보다가 캐리어를 조금 열어 돈 봉투를 꺼내들었다. 도윤은 지쳐있었다. 쉬고 싶었다.
“저….”
“뭐 필요해요?”
“아니요…. 혹시 일주일만 지내도 되나요?”
“있고 싶은 만큼 있는 거죠.”
“그러면, 저 일주일만….”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가 도윤을 내려다봤다. 카운터와 높이가 있어 자연스레 올려다봐야 하는 시야였다. 도윤은 최대한 남자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눈을 내리깔았다. 여자는 일주일 치 숙박비를 현금으로 내는 도윤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
“…어, 그리고 샌드위치랑, 음료도….”
“그건 됐어요.”
“그치만….”
“얘 월급에서 까면 되니까 걱정 마요.”
“예?”
“인사가 늦었는데 이쪽은 우리 아들. 아침은 밖에서 먹어도 되는데 보통 이용객들에게는 아침을 무료로 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늦어도 11시까지 카페로 오면 돼요. 알겠죠?”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지내는 방에 문제가 생겼다, 하면 카페로 내려오거나 전화해요.”
“아, 저…핸드폰이 없어서요….”
“핸드폰이…없구나. 그럼 카페로 내려와야겠다.”
핸드폰이 없다는 말에 남자가 도윤을 빤히 내려다봤다. 슬쩍 눈을 들어 올렸다가 마주친 시선에 눈동자가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이제 도윤에게 사장님이 된 여자가 카운터에 서있는 남자에게 무어라 말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남자가 카운터에서 나와 도윤의 캐리어를 들었다. 어어. 당황한 도윤이 사장님을 돌아봤다.
“정우가 방까지 들어다 줄 거예요. 원래 하는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마요.”
“괜, 괜찮은데!”
“아까 쓰러져있는 거 정우도 다 봤는데 뭘.”
사장님이 올라가라며 손짓하자 남자, 정우가 캐리어를 번쩍 들어 도윤에게 손짓했다. 사장님과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정우와 단둘이 남겨지자 또 땀이 흘렀다. 정우는 무겁지는 않지만 그래도 보통의 무게를 자랑하는 캐리어를 번쩍 들고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다. 한참 뒤에 떨어져서 계단을 오르던 도윤이 2층에 도착해서도 멀찍이 거리를 두었다. 핸드폰으로 잠시 비밀번호를 확인하던 정우가 옆을 돌아봤다가 벌어진 거리를 보고 뭐 하냐는 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비밀번호 알려줄게요.”
“네, 네.”
“여기서 알려드려요?”
“아, 그게, 그러니까….”
“누가 듣고 있어도 전 몰라요.”
“아니, 아니에요!”
“그럼 빨리 와요.”
정우의 고갯짓에 도윤이 쭈뼛쭈뼛 옆에 섰다. 그럼에도 여전한 거리에 정우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손바닥으로 한번 누르고.”
“네.”
“별, 9517, 또 별.”
“네, 네.”
“제가 뭐라고 했어요?”
“네?”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만 하기에 다시 되물었더니 역시나 멍청히 눈알만 굴려댔다. 정우가 혀를 차고는 다시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이게 그쪽…. 근데 이름이 뭐예요?”
“저요?”
“그럼 여기에 저랑 그쪽 말고 또 누가 있나요?”
“…이름은…왜요?”
“일주일이나 볼 사이인데 이름 정도는 알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카페 내려가면 알 수 있어요.”
“하, 하도윤…입니다….”
“하하도윤? 이름 네 글자예요?”
정우가 픽 웃었다. 도윤은 그런 게 아니라며 말을 더듬었다. 더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낯선 남자와의 대화 때문인지 땀이 났다.
“전 최정우. 필요한 거 있으면 카페로 내려와요.”
“네….”
정우는 미련 없이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정우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꾹꾹 누르고 문을 연 도윤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안을 구경했다. 3주간 지냈던 숙소들에 비하면 정말 최고였다. 방도 넓었고 창문도 컸다. 화장실도 깨끗했다. 캐리어를 현관에 두고 집으로 들어선 도윤이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봤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고 있자니 계속해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3주 만에 숙소 다운 숙소를 찾았다. 땀이 흐른 옷을 벗고 샤워도 했다.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놓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제주도로 도망을 온 이후 처음으로 몸과 마음이 편해 잠이 왔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지만 이불을 덮은 도윤이 잠을 청했다. 어쩐지 오늘만큼은 매일 꾸던 악몽도 꾸지 않고 푹 잘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착각이었다. 도윤은 오늘도 악몽을 거하게 꾸고 일어났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은 희성에게 뺨을 맞는 것부터 이어졌다. 꿈에서 뺨을 맞으면 또 장면은 빠르게 전환되어 욕실이 되었다. 꿈에서 도윤은 유리조각을 밟았고 손목을 그었다. 그걸 바라보는 희성의 표정은 날마다 바뀌었다. 어떤 날은 절망에 빠져있었고, 어떤 날은 화를 내고 있었고, 어떤 날은 웃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젠 그 일이 있던 날 진짜 희성이 짓던 표정이 흐릿했다.
헉헉거리며 새벽에 눈을 뜬 도윤은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다시 잠이 들었다. 보통 그날 있었던 꿈을 꾸면 그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암흑뿐이었는데 오늘은 새로운 꿈을 하나 더 꿨다. 배경은 희성과 함께 살던 집이었다. 방에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내려다보는 희성이 있었고 도윤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고개를 숙이고 있기에 뭘 그렇게 보나 싶어서 함께 고개를 숙인 도윤은 케이지에 있는 햄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콩아! 이름을 불러봤지만 꿈속이라 그런지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꿈속에서도 도윤은 희성이 햄스터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걱정을 했다. 하지만 꿈속에서의 희성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며 그저 햄스터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콩…아…. 도윤이 햄스터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막 잠에서 깨어나 몽롱했지만 얼른 몸을 일으켰다. 집에 두고 온 콩이가 걱정이 됐다. 희성은 햄스터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이 없어졌다고 콩이를 못살게 굴면 어떡하지? 손바닥으로 눈가를 꾹꾹 눌렀다.
몸이 무거웠다. 3주 동안 제주도에서 지내는 동안 자고 일어났는데 몸이 가벼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기 전에 들었던 예감은 그냥 잠을 편히 자고 싶었던 도윤의 바람일 뿐이었다. 사실 무슨 꿈을 꾸든 악몽만 꾸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고요한 방이 꿈을 그저 꿈으로만 보내려 하지 않았다. 안 좋은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창문을 열자 바다 냄새가 훅 끼쳐들었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를 한동안 시야에 담던 몸이 욕실로 향했다.
서준은 도윤의 오랜 친구였다. 그래서 도윤이 여름에 어떻게 입고 다녔는지 정도는 아주 쉽게 기억했다. 캐리어에는 반바지가 많았다. 긴 바지는 희준이 준 바지밖에 없었다. 침대에 앉아 긴 바지와 반바지를 보며 고민에 빠진 도윤은 문득 허벅지에 새겨진 이름 위를 문질렀다. 샤워를 하면서 아무리 문지르고 또 문질러도 지워지지는 않고 빨갛게 상처만 남던 이름이었다. 도윤은 캐리어에서 밴드를 꺼내 희성의 이름이 새겨진 곳을 덮었다. 이름이 보이지 않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손목의 상처에도 연고를 새로 바르고 커다란 밴드를 붙였다. 어차피 긴팔을 입고 다닐 생각이었지만 밴드 위로 붕대도 대충 감았다. 상처를 볼 때마다 제일 먼저 드는 것은 후회였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후회를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걷었던 소매를 다시 내린 도윤이 반바지를 입으려다 남들에게 무슨 좋은 일을 하려고 그따위로 입고 다니냐는 목소리가 떠올라 긴 바지를 입었다. 자각이 없는 행동이었다.
옷까지 다 입고 나니 방에 걸려있던 시계가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늦어도 11시 전까지만 내려가면 아침을 준다던 말이 떠올라 카페에 내려온 도윤은 오늘도 카운터를 지키고 서있는 정우를 보고 주변을 서성였다. 이러다 11시를 넘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돼서야 카페로 들어서자 지루한 얼굴로 카페를 지키던 정우가 핸드폰을 내려두었다.
“난 또 내일 들어오려는 줄 알았네.”
“…아?”
“밖에 뭐 재미있는 거 있어요?”
“아니요….”
“5분만 더 기다려보다가 안 오면 나가보려고 했는데 들어와서 다행이네요.”
“…….”
조금 수치스러웠다. 밖에서 서성이고 있던 것을 다 들켜버려 창피했다. 도윤은 괜히 메뉴판만 훑었다.
“오늘은 햄에그샌드위치.”
“…네에.”
“앉아있으면 가져다 줄게요.”
“알겠습니다….”
“음료는 커피랑 아이스티, 귤 주스도 있고.”
“주스…마실게요.”
“앉아있어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은 도윤은 꼭 못 올 곳에 온 사람처럼 어색하게 굴었다. 샌드위치와 주스는 금방 나왔다. 정우가 그릇을 놓아주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려다 도윤에게 나이를 물어왔다. 주스를 홀짝이던 입술이 움찔 떨렸다.
“…….”
“전 24살. 뭐, 이것도 비밀이에요? 어차피 찾아보면 알 수 있는 거 예의상 물어본 건데?”
“…20살이에요.”
“그래 보여요.”
저게 욕인지 칭찬인지. 저 말의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도윤이 주스를 홀짝이며 정우의 티셔츠를 눈에 담았다. 눈을 마주치지는 못하고 이렇게라도 쳐다봐야 기분이 덜 나쁘지 않을까 싶어서 쳐다본 건데 정우가 대뜸 몸을 숙여 눈을 맞춰왔다. 놀라 사레가 들린 도윤이 콜록콜록 기침을 뱉었다. 목이 따끔해서 눈물도 찔끔 났다.
“오….”
“뭐, 뭐 하시….”
“진짜 눈을 못 마주치네.”
“…….”
“혹시 뭐 잘못해서 제주도로 도망 왔어요?”
“…….”
잘못….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몰랐다. 희성의 말대로 얌전히 집에만 있었으면 지금쯤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됐다. 희성의 경고를 무시하고 혼자 멋대로 사람을 만나서 안 좋은 일을 겪었는지도. 우울함은 순식간에 온몸을 지배했다. 도윤의 어깨가 축 늘어지자 정우가 분위기를 읽고 맛있게 먹으라며 자리를 피했다. 입맛이 떨어졌다. 기껏 준비해 준 아침을 놓고 도윤은 고사를 지내는 듯 생각에 잠겼다.
제주도에 온 지는 3주. 서준에게는 첫날 연락을 했고, 아버지에게는 도망을 치던 날 편지만 남기고 여태 아무런 연락도 드리지 못했다. 걱정이 됐다. 아무리 편지에 많은 말을 써두었다고는 해도 자신의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우선. 우선….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도윤은 주스를 마시곤 뒤늦게 샌드위치를 야금야금 먹었다. 3주 만에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다 먹은 접시와 컵을 반납하고 눈치를 보다 고개를 꾸벅여 인사한 도윤은 방으로 올라와 양치를 하고 간단한 짐을 챙겨 방을 나왔다. 일단 숙소의 위치를 기억해 둬야 했다. 가방에 있던 작은 수첩에 숙소의 이름과 주소를 적고 혹시 몰라 숙소의 전화번호도 적어두었다. 가방에 수첩과 볼펜을 넣어두고 숨을 크게 들이쉰 도윤의 가슴팍이 마찬가지로 크게 부풀었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찾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숙소가 점점 멀어졌다.
도윤은 평생 핸드폰을 달고 살아서 핸드폰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불편한 일인지 처음 알았다. 핸드폰이 없으니 길을 찾기도 어려웠고 지금이 몇 시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흐르는 땀을 닦고 주변을 둘러보던 시선이 어느 가게에 닿았다. 아마 기념품을 파는 곳 같았는데 사람이 없어 보였다. 있으면 사고, 없으면 말고란 생각으로 방향을 튼 도윤이 가게 앞에 서서 안을 기웃거렸다. 밖에서 봤던 것과 같이 사람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좋은 냄새가 났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에어컨이 틀어져있어 시원한 가게에는 카운터를 보는 여자 한 명이 다였다. 도윤은 가게를 빠르게 훑어 물건을 찾았다. 가게에는 귀여운 물건들이 많았다. 엽서도 있었고, 인형도 있었고, 스티커와 장난감도 많았다. 도윤은 그중에서도 한편에 모여 있는 시계를 하나 골라 계산을 했다. 희성이 종종 선물이라고 주곤 했던 시계들은 무겁고 비쌌다. 언젠가 가격을 찾아봤을 때 시계 하나에 억이 넘고, 천이 넘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2만 원이라는 가격은 희성의 말을 빌려 싸구려에 불과했다. 하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이제 도윤에겐 시계가 생겼다. 오른쪽 손목에 시계를 찬 도윤이 뿌듯한 얼굴로 팔을 들어 보였다.
핸드폰이 지나치게 발달된 탓인지 공중전화는 잘 보이지 않았다. 길을 걷고 또 걷다가 더위에 지칠 즘 도윤의 앞에 하늘색의 공중전화 부스가 눈에 띄었다. 숙소에서 나온 지 4시간 만에 찾은 공중전화였다. 제발 고장이 나있지 않길 바라며 뛰어서 부스로 들어온 도윤은 수화기를 들어 신호가 가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도망칠 때만 해도 쇼핑백이 보물이었는데 이젠 서준이 준 가방이 보물이었다. 도윤은 보물 속에서 수첩을 꺼내 서준의 번호를 꾹꾹 눌렀다.
전화는 2번 만에 연결이 됐다. 여보세요. 건너편에서 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잠시 환하게 웃은 도윤이 목소리를 냈다.
“서준아!”
-…뭐야?
“서준아, 나 도윤이!”
-너 이 번호 뭐야?
“나 이거 공중전화라서….”
-아. 야, 너!
“으응.”
서준은 전화를 건 사람이 도윤임을 알자 대뜸 화를 냈다. 걱정이 되어 첫 주에 지냈던 숙소에 전화를 했더니 이미 체크아웃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또 연락이 없어서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아냐는 물음에 도윤이 눈동자를 굴려 부스에 붙은 전단지를 훑었다. 서준은 그 후로도 한참을 화만 내다가 겨우 진정을 찾고 안부를 물었다. 도윤은 좋은 숙소를 찾아 편하게 지내고 있다는 말로 서준을 안심시켰다. 도윤이 공중전화에 연결된 선을 배배 꼬다가 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서준이 몇 초간 침묵을 지키다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저씨 다시 내려오셨어.
“…내려오다니?”
-하던 일 그만두시고 다시 내려오셨다고.
“…….”
-나한테 너한테서 온 연락은 없는지 매일 물어보셔.
“…아빠가?”
-아저씨한테는 말하면 안 돼? 가끔 새벽에 우리 아빠랑 술 드시고 우리 집에 오시는데 그때마다 너 걱정된다고 우셔. 도윤아, 그냥 아저씨한테는 말씀드리자.
“…….”
연결된 선을 배배 꼬던 손이 멈췄다. 도윤은 입술을 깨물고 말을 아끼다가 코를 훌쩍였다.
“혹시 아빠 어디로 이사 가셨는지 알아?”
-응. 주소 줄까?
“으응, 주소 불러줘.”
-잠깐만.
주소를 찾는지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어서 주소를 부르는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넘어왔다. 도윤은 전화를 어깨에 끼우고 꼼꼼하게 주소를 받아 적었다.
“고마워. 아, 그리고 혹시….”
-말해.
“…혹시 집에 누가 찾아오거나 하지는 않았지?”
-…….
“왔어…?”
-아니, 그런 적 없어.
“다행이다….”
서준은 자신의 집에 희성이 쳐들어왔었던 것을 비밀로 남겨두기로 했다. 아파트 앞에 웬 차가 새벽부터 밤까지 온종일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과, 자신이 외출을 하면 따라붙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비밀로 남겨두었다.
-넌 괜찮아?
“난 괜찮아.”
-밥은?
“밥도 잘 챙겨 먹고 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이 상황이 전부 이해가 안 돼.
“…….”
-그래도 난 네가 무사했으면 좋겠어.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네가 겪은 일도 알 수가 없지만 일단은 그래. 난 네가 사람을 죽였든 뭘 했든, 네 편이야.
“…고마워….”
-이제 또 한동안 연락은 안 할 거지?
“…….”
-돈은? 혹시라도 돈 부족하면 전화해. 내가 거기로 가든 어떻게든 도와줄게.
“으응, 고마워.”
서준이 보지는 못하겠지만 도윤의 얼굴에 미소가 생겨났다. 서준은 마지막까지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있으라며 걱정과 걱정을 했다. 4시간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으며 찾아댄 공중전화로 겨우 이어진 전화는 그렇게 30분도 채우지 못하고 끝이 났다.
희성의 허락도 없이 이렇게 오래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처음이었다. 사장님은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라고 했지만 도윤은 또 걷는 것을 택했다. 비록 중간에 길을 한번 잃어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길에서 쓰러지지는 않았다.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라면과 김밥이 들려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나무에 물을 주고 있던 정우가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도윤은 거침없이 거리를 좁혀오는 정우를 피해 뒷걸음질을 쳤다.
“안 더워요? 이 날씨에 무슨 긴 팔에 긴 바지?”
“괜, 괜찮아요.”
“어디 갔다 와요?”
“…….”
“또 비밀? 그럼 그건 뭐예요? 저녁? 아, 이것도 비밀인가?”
“…….”
컵라면과 김밥을 등 뒤로 숨기고 고개를 숙인 도윤이 입술만 축였다.
“나중에 밤에 다 같이 모여서 고기 먹을 건데 내려와요.”
“저, 저는 괜찮아요.”
“다 괜찮대. 나였으면 컵라면 먹을 바에 차라리 내려와서 고기 먹는다.”
“…괜찮다니까요…!”
“알겠어요.”
알겠다면서 왜 더 가까워지는 건지 모르겠다. 다가오는 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정우는 도윤의 머리카락에 붙은 먼지를 떼어주었다.
“먼…지….”
손가락을 털며 먼지가 붙었음을 알려주려던 정우가 말끝을 흐렸다. 파들파들 떨리는 어깨와 툭 치면 뒤로 넘어갈 것 같은 몸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정우가 얼굴을 굳히고 허리를 숙였다. 눈을 꾹 감고 있는 도윤이 떨고 있었다. 정우가 팔을 잡으려다 손을 물렸다.
“저기요, 저기요!”
“흐윽….”
“괜찮아요? 또 머리 아파요?”
“저, 저…올, 올라….”
“…도와줄게요. 혼자서 못 올라가겠는데.”
“아니, 에요, 저, 저 혼자….”
“뭘 혼자 올라가요, 올라가다가 쓰러져서 굴러떨어지면 어떡하려고.”
정우의 손이 다가오다가 허공에서 멈췄다. 도윤은 힘겹게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
“혹시 내가 손대는 게 싫어요?”
“…….”
“그러면. 그러면.”
주변을 둘러보며 바닥을 확인한 정우가 굵은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와 도윤에게 내밀었다. 흐릿한 시야 속에 나타난 나뭇가지에 도윤이 눈가를 찡그렸다.
“이거 잡아요.”
“…네?”
“잡아주기는 해야 될 것 같은데, 손대는 게 싫다면서요.”
“…….”
“이거라도 잡아야지. 얼른.”
“…….”
“이건 제가 들고 갈게요.”
바닥에 떨어진 컵라면과 김밥이 정우의 손에 들어갔다. 나뭇가지도 정우의 손에서 흔들렸다. 도윤이 소매를 끌어와 눈물을 닦아내곤 나뭇가지의 끝을 쥐었다.
“그럼 저 먼저 갈게요.”
“…네, 네에….”
앞장을 선 정우를 따라 나뭇가지를 쥐고 뒤를 따른 도윤이 천천히 계단을 밟았다. 정우는 도윤을 배려해 아주 느릿하게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나뭇가지만 쥐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정우는 문 앞에 도착해서도 나뭇가지를 놓지 않고 도윤을 살폈다. 고개를 푹 숙인 도윤에게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감사 인사가 흘러나왔다. 정우는 컵라면과 김밥을 받아 들어가는 도윤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1층으로 내려왔다.
밤이면 모두 모여 바비큐 파티를 한다더니 이번 숙소도 해가 지니 시끌시끌했다. 도윤은 끝내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에서 컵라면과 김밥을 먹었다.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자니 질리기도 했지만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포장을 해와도 됐지만 사람이 많은 곳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쓰레기를 정리하고 냉장고에서 꺼낸 물을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올 사람이 없는데…. 문득 어제 남들이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우의 말이 떠올랐다. 도윤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누구냐고 묻지도 못하고 얼어있자 밖에서 조금은 익숙해진 목소리가 도윤을 불렀다.
“도윤 씨, 저 정운데요.”
“…….”
“고기 좀 가져왔거든요. 문 앞에 놔둘 테니까 먹어요.”
“…….”
“저 가요!”
“…….”
정말로 그릇을 놓고 내려갔는지 발소리가 멀어졌다. 현관에 서서 1분간 망설이던 손이 문을 빼꼼 열었다. 문 앞에는 고기와 버섯, 그리고 쌈이 담긴 그릇이 있었다. 해가 져서 어두운 계단을 한번 쳐다보고 그릇을 가지고 들어온 도윤이 습관적으로 허벅지를 긁적였다. 밴드가 살짝 떨어졌다가 위를 꾹꾹 누르는 손에 다시 희성의 이름을 가렸다. 맛있는 냄새가 났다. 매일 김밥과 라면만 먹던 일상에 어제부터 새로운 음식이 자꾸 생겨났다. 도윤이 함께 딸려온 젓가락으로 삼겹살을 집어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아까 라면과 김밥을 먹었는데도 배가 고픈 느낌이었다. 다음 고기를 집는 젓가락이 조금 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