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7)

강요(3)

  

  

희성의 앞으로 온 택배의 정체는 성인 용품이었다. 도윤은 느지막이 일어나자마자 식사도 거르고 그 물건부터 찾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안 그래도 도윤의 것이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 들어갔다는 것이 신경 쓰여 따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알아서 버려주니 수고만 덜었다. 씩씩거리며 투명한 실리콘을 버린 도윤은 씻고 나와서도 희성을 무시했다. 다시는 너와 술을 마시지 않겠다며 선언을 하기도 했다. 희성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일이라 대충 그래, 그래. 하고 넘겼다. 도윤은 술도 약했지만 숙취까지 있었다. 그것만 마시고도 머리가 어지럽다며 소파에 누워있는 모습이 볼만했다.

도윤은 해장을 위해 끓인 콩나물국을 그릇째로 마셔버리고 두 번째 그릇을 받았다. 솔직히 좀 억울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희성은 자신이 아주 조금, 정말 혀만 댔다 싶을 정도로 맛만 본 맥주를 혼자 다 마시고 그것도 모자라 맥주잔에 소주를 털어마셨다. 숙취를 느껴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희성이었다. 도윤이 콩나물을 씹으며 희성을 흘겨보았다. 지나치게 멀쩡해 보였다. 어제 희성은 술에 취해 잠든 자신에게 몹쓸 짓을 했다. 최근 식탁에 올라오는 메뉴들은 모두 희성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었다. 정력에 좋지 않다는 음식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그 음식들로만 준비를 부탁했다. 인터넷은 거짓의 바다인 게 분명했다. 정력이 없어지기는커녕 더 심해져서 자신을 괴롭히니 억울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속으로 불만을 중얼거리고 있는데 먼저 일어난 희성이 방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식탁에 작고 까만 박스가 놓였다. 또 이상한 물건일까 봐 긴장을 놓지 않으며 박스를 열어보았다. 콩나물국과 함께 입안에 들어온 밥을 열심히 씹던 입이 느려졌다. 지갑이었다. 의문을 품은 눈이 희성을 올려다봤다.

“선물.”

“나 지갑 있는데….”

“이제 이거 써.”

“왜? 나 지갑 아직 멀쩡한데…?”

거짓말이 아니라 지금 쓰고 있는 지갑은 졸업선물로 받은 것 중 하나였다. 그래서 아직 흠집도 없었고 아주 잘 쓰고 있었다. 도윤이 밥을 꼭꼭 씹어 삼키고 선물을 쭉 밀었다. 받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아 밀어주자 희성이 다시 앞으로 놓아주었다.

“싫으면 버려.”

“…….”

버리라는 말이 참 쉬웠다. 도윤은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기 시작한 얼굴을 뚫어져라 보다가 밥을 먹었다. 콩나물국은 맛있었다. 이래서 어른들이 해장을 할 때마다 콩나물국을 찾았던 거구나. 이제 깨달았다. 국그릇에 코를 박고 흡입하던 도윤이 빵빵해진 볼을 씰룩이며 상자를 열어보았다. 지갑은 안과 밖이 모두 까만색이었다. 조심스럽게 지갑을 살펴보던 도윤은 안에 꽂힌 블랙카드 하나를 발견했다. 앞뒤로 살펴보니 장식용은 아닌 것 같았다. 도윤이 남은 밥을 깨끗하게 비우고 일어나 소파의 끝에 앉았다. 희성은 소파에 기대 다가오는 도윤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거 잘못 들어있는 것 같아.”

“…….”

“샀던 곳에 가서 돌려줘야….”

“…….”

소파에 눌린 볼을 보다가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희성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너 쓰라고 넣어준 거잖아.”

“…나?”

“그래. 밖에서 뭐 사고 싶은 거 있으면 그걸로 사.”

“…….”

“어차피 항상 내가 있을 거라 별로 쓸 일은 없겠지만.”

“…이런 거 안 줘도 돼.”

“사람이 선물이라고 주면 그냥 좀 받아.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지갑과 카드를 쥐고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뻐끔거리다 조용히 다물었다. 그릇을 치우는 소리가 주방에서부터 들려왔다. 도윤은 괜히 카드를 다시 살핀 후 지갑에 넣었다. 희성의 기분이 저조해 보이진 않았지만 눈치가 보였다. 그를 화나게 해서 좋을 일이 없었다. 엄지로 표면을 문지르면서 목소리를 냈다. …고마워.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모르는 척 지갑을 열었다 닫았다. 희성은 여전히 소파에 기댄 채 고개만 돌려 도윤을 보고 있었다.

“도윤아, 그거 알아?”

“뭐?”

“넌 가끔…사람을 착각하게 만들어.”

“…내가?”

“응.”

“난 잘, 모르겠는데….”

배에 얹은 손이 잠깐 움직였다가 멈췄다. 또 한참을 물끄러미 보기만 하던 희성이 말했다.

“싫어하는 사람이 주는 선물에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

“대답해 봐. 내가 정말 싫어?”

“…나는….”

“넌 내가 싫다면서 종종 헷갈리는 행동을 해.”

“그냥…선물 받았으니까….”

“그게 사람을 착각하게 만든다는 거야.”

“…….”

“아니면 내가 무서우니까 그냥 받기만 하는 건가?”

집요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도윤은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지갑만 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어려웠다. 희성이 싫으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을 할 것이고 무섭냐고 물어보면 또 그렇다고 할 것이었다. 머뭇대는 사이 둘의 식사를 정리하고 저녁까지 미리 만들어둔 남자가 이만 가보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도윤이 얼른 일어나 남자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희성의 시선은 오로지 도윤에게만 향해있었다. 남자가 집을 나서자 또 정적이 찾아왔다. 도윤은 눈치를 보며 방으로 도망쳤다. 넓은 거실에 홀로 남아 도윤이 사라진 곳을 보던 희성이 소파에 누웠다.

엠티는 결국 가지 못했다. 근래에 희성과의 외출이 잦았던 탓에 엠티에 가지 않겠다는 말에도 어느 정도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덕분에 희성이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느슨해졌다고 믿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과대는 엠티에 불참하는 신입생들을 찾아 이유를 물었고 희성이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순순히 그러라며 사정을 봐주었다. 남들이 엠티에 놀러 가서 재미있게 놀 때 희성은 도윤에게 외출을 제안했었다. 마침 심심하기도 했고 속도 답답했던 도윤은 당연히 그러자며 옷을 갈아입었다. 희성은 차로 이동하는 내내 도윤에게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아 내비게이션과 창밖만 쳐다봐야 했다. 한 번도 와보지 못했던 동네에 도착한 도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구경을 하다가 희성에게 이끌려 낯선 가게에 들어섰다. 하얀 벽에는 그림이 걸려있었는데 음식점도 아닌 것이 정체를 알 수가 없는 가게였다.

게다가 이상한 것은 또 있었다. 가게의 끝에는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침대 같은 작업대가 있었다. 도윤은 눈만 굴리며 희성의 뒤에 숨어 가게를 구경했다. 곧 안에서 어떤 여자가 웃으며 나와 인사를 건넸다. 둘은 짧은 인사를 마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데 도윤에겐 잘 들리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여자가 건넨 젤리를 먹던 도윤은 자신의 옆으로 오라는 손짓에 희성의 옆에 앉아 고개를 쭉 뺐다. 여자가 펜을 움직이자 모니터에 영어가 나타났다. 도윤은 젤리를 우물거리며 구경했다. 모니터에 뜬 단어는 ‘yoon’과 ‘hee’가 다였다.

‘저게 뭔데?’

‘네 이름.’

‘…내 이름? 그 옆에는 내 이름 아닌데?’

‘그건 내 이름.’

‘…….’

‘그럼 이대로 작업할게요.’

‘네.’

‘뭘…하는데?’

‘어떤 분 먼저 받으실 거예요?’

‘…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젤리만 먹던 도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둘을 번갈아 보았다. 여자는 편하게 하라며 웃고 있었고 희성은 도윤의 손에서 젤리를 뺏어다가 테이블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얘 먼저 할게요.’

‘뭐, 뭘 하는데?’

‘이쪽 분이 쇄골?’

‘아뇨.’

‘아, 그러면 이걸로 갈아입고 오세요. 화장실은 저쪽.’

‘네?’

멍창한 얼굴로 바지를 받은 도윤이 희성을 쳐다봤다. 희성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을 보다가 화장실로 데려갔다. 도윤은 바지를 끌어안고 닫히는 문을 살폈다.

‘벗어.’

‘왜, 왜?’

‘바지 갈아입어야지.’

‘그러니까 왜 갈아입어야 하냐고!’

‘까먹었어? 나랑 타투 하기로 했잖아.’

‘뭐? 내, 내가 언제?’

‘같이 술 마신 날. 내가 하자고 했더니 네가 좋다며.’

‘내가 언제 그랬어? 싫어! 나 안 해!’

‘우리 타투 할까? 했더니 네가 응. 이라고 했잖아. 벗어.’

‘안 그랬어!’

‘그랬어.’

도윤은 밖에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고 소리를 쳤었다. 희성은 그러거나 말거나 옷을 들어 올려 바지를 잡았고 도윤은 필사적으로 막았다.

‘싫어!’

‘싫어?’

‘싫어!’

‘네가 한 약속인데 네가 싫어하면 어떡해?’

‘난 기억 안 나!’

‘내가 기억해.’

도윤은 바지를 사수하느라 애를 썼지만 결국 희성의 손에서 버클이 풀리고 말았다.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있었고 기억도 안 나는 것을 요구하는 말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바지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게 못하겠으면 취소하든지.’

‘그, 그래도 돼?’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못하겠다고 네가 직접. 말하는 거야.’

‘…….’

‘우리 때문에 다른 사람도 못 받고 온종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잖아. 네가 직접 말해야지.’

‘…….’

도윤의 옆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은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그러니 도윤의 약점 또한 줄줄이 꿰고 있었다. 희성이 손수 버클을 채워주고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 주었다.

‘뭐 큰일이야 나겠어? 서로 시간 버리고 감정만 상하는 거지.’

손잡이를 쥔 희성을 보며 도윤은 반바지를 끌어안고 입술을 씹었다.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도윤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희성을 붙잡았다.

‘왜.’

‘…….’

‘못하겠다고 말하러 가야지.’

‘…이름…만…하는 거지…?’

모든 상황은 희성의 뜻대로 흘러갔다. 도윤은 훌쩍거리며 바지를 쥔 손에 힘을 주었고 희성은 웃었다. 눈물을 방울방울 달고 바지를 갈아입은 도윤은 화장실을 나가기 전 또 한 번 물었다. 작, 작게 하는 거지? 크게 하는 거 아니지? 그때까지도 코를 먹으며 묻는 질문에 희성은 다시 문을 닫고 입술부터 비비고 봤다. 크기에 대한 답을 주지도 않고 입을 맞추는 행동에 도윤이 눈을 감았다.

여자는 애초에 희성에게 무슨 말을 전해 들었는지 전혀 당황하는 티도 내지 않고 휴지를 뽑아 도윤에게 내밀었다. 도윤은 작업대에 앉아 흐르는 콧물을 닦다가 자신에게로 향한 질문에 빨개진 코를 하고 여자를 쳐다봤다.

‘허벅지에 하실 거라 앉아서 받아도 되고 누워서 받아도 돼요. 어떻게 하는 게 더 편하겠어요?’

‘…허벅지요?’

‘네.’

‘…허벅지에 한다구요?’

‘네.’

도윤은 고개를 퍼뜩 들어 희성을 올려다봤다. 그런 말은 없었잖아! 도윤이 또 억울하다는 얼굴을 했다. 정전기 때문에 붕붕 떠있는 머리카락을 정리해 준 희성이 반바지를 끌어올려 점이 박혀있는 아래쪽을 가리켰다. 평소 희성이 좋아하곤 했던 위치라 모를 리가 없었다. 도윤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냥 누워.’

‘…….’

‘누워서 할게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분명 자신의 몸인데 희성이 하라는 대로만 움직이는 여자에게도 미운 감정이 들었다. 분명 죄가 없겠지만, 그래도 미웠다. 도윤은 다시 차오르는 눈물을 휴지에 닦으며 천장을 보고 누웠다. 하얀 천장을 보면서는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크기가 작고, 또 자신의 이름이니 그냥….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또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도윤이 심호흡을 뱉자 떨리는 숨이 터져 나왔다.

여자는 작업대에 누워있는 도윤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말들이 도윤의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도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울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거 많이, 끅, 아파요…?’

‘받는 사람마다 조금 다른데 보통 따끔?’

‘…끅….’

‘많이 아프면 말씀하세요. 그럼 잠깐 쉬었다가 할게요.’

‘…네….’

‘금방 끝나요.’

작업이 시작되고 도윤은 따끔거리는 느낌에 몸을 움찔 떨며 눈물을 흘렸다. 희성은 그 옆에 앉아 하얀 살덩이에 새겨지는 자신의 이름을 뚫어져라 봤다. 여자는 작업 중 괜찮냐는 말을 제외하고는 도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번에도 희성은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도윤은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따끔함도 싫었고, 옆에 앉아 자신의 다리를 쳐다보는 희성도 싫었다. 작업을 받는 내내 따가움이 느껴져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났다. 그래서 참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우는 것을 택했다. 작업이 다 끝났을 때엔 코가 꽉 막혀 머리가 어지러웠다.

희성의 작업이 이어지는 동안 도윤은 소파에 앉아 빨갛게 부어오른 선을 보고 또 눈물을 터뜨렸다. 처음엔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대체 술을 마시고 무슨 약속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서 더 서러웠다. 도윤은 자신의 허벅지에 새겨진 'hee'에 뇌가 정지했다. 굳어버린 뇌를 겨우 움직여 본인이 어떤 이름을 새기는지 물어본 적도 없었고, 희성과 여자가 그것을 알려준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하게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줄 알았다. 도윤은 지금 이 상황이 전부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으나 허벅지에서부터 느껴지는 따끔함이 사실임을 알려주었다.

타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도윤은 씻지도 않고 침대에 뛰어들었다. 그다음 일이야 뻔했다. 도윤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울었다. 온종일 울어놓고도 울 힘이 남아있는지 참 서럽게도 훌쩍였다. 희성은 자신의 쇄골에 새겨진 윤을 빤히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꼭 낙인을 찍어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틈만 나면 거울로 쇄골을 확인한 희성은 이불 속에서 우는 도윤을 그대로 끌어안았다. 저리 가! 안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희성은 그것도 좋은지 아예 이불을 들춰내고 안으로 들어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타투 사건이 일어나고도 벌써 몇 주가 지났다. 도윤은 자꾸 저도 모르게 허벅지에 새겨진 희성의 이름을 만지작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타투를 한 뒤로 희성은 도윤에게 집에선 반바지를 입고 다닐 것을 강요했다. 속옷만 입는 것도 좋겠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초반에는 허벅지에서 희미한 고통과 간지러움이 느껴져도 반항을 하고자 긴 바지를 고수했었는데 희성이 손쉽게 벗겨버리는 바람에 포기했다. 이제 도윤은 반바지를 입고 생활하는 것에 완벽히 적응했다. 도윤이 집에서 반바지를 입기 시작하자 희성은 그때부터 심심할 때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곳을 문질러보고 입을 맞춰보고 별 난리를 다 피웠다. 몸을 섞을 때면 그 위에 일부러 사정을 하기도 했다. 도윤은 갈수록 점점 더 이상해지는 희성의 취향에 한숨만 쉬어댔다.

오늘은 비가 왔다. 앞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무섭게 쏟아진 비는 천둥번개를 동반했다. 새벽부터 흐리던 하늘은 오전부터 본격적으로 어두워졌고 점심이 지나자 꾸릉, 꾸릉 소리를 냈다. 거실의 불을 켜놓고 있어도 밖이 어두워서 벌써 밤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점심을 먹고도 과자와 음료를 테이블에 올려둔 도윤이 채널을 돌려가며 예능을 찾아댔다. 희성은 무슨 일을 하는지 식사를 마친 후 서재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소파에 놔둔 쿠션을 끌어안고 채널을 고정시킨 도윤이 잠시 고개를 돌려 밖을 확인했다. 쏴아아. 비가 창문을 때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간 눈앞이 번쩍였다. 도윤은 쿠션을 끌어안고 TV를 향해 몸을 돌렸다. 조용했던 음향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창을 등지고 있어도 밖이 번쩍거리는 것이 다 느껴졌다. 도윤은 쿠션에 턱을 묻고 예능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때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번쩍거림이 집을 훑고 지나갔고 10초도 지나지 않아 꽝, 하는 소리가 터졌다. 도윤의 고개가 창밖으로 돌아갔다. 천둥번개가 치자 비가 더 무섭게 쏟아졌다. 도윤이 울상으로 쿠션을 만지작거렸다.

“뭐해.”

“어어.”

서재에서부터 컵을 들고 나온 희성이 주방으로 가려다 소파로 방향을 틀었다. 번쩍거리는 하늘에 짧은 시선을 준 희성이 도윤의 옆에 앉았다. 쾅. 도윤이 움찔거리며 쿠션을 끌어안았다. 희성은 커피를 홀짝이다 도윤을 살폈다.

“무서워?”

“아, 아니거든?”

도윤이 TV를 보며 딴청을 부렸지만 이어서 큰소리를 내고 사라진 천둥번개에 다시 몸이 말렸다. 희성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도윤의 다리를 바닥으로 내렸다. 천둥번개가 무서워 끌어안고 있던 쿠션까지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윤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희성의 머리가 도윤의 허벅지에 닿았다. 배를 보고 누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부분을 문지르던 희성이 잠옷을 들춰 배에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저게 뭐가 무서워.”

“나 무섭다고 한적 없는데?”

“무섭잖아.”

“아니야.”

“맞잖아.”

“아니야!”

이 순간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 천둥번개가 또 번쩍거리더니 폭탄이 떨어진 것 같은 굉음을 만들고 사라졌다. 도윤이 움찔거리며 입을 닫았다. 희성이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도윤의 턱을 콕콕 찔렀다.

“별걸 다 무서워하네.”

“아니라고 했잖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희성이 다시 상의를 들추고 얼굴을 숨겼다. 배에 닿는 숨결에 도윤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둠 속에 숨어서 말랑한 살을 찾아 쪽쪽 입을 맞춘 희성이 숨을 크게 불어넣어 보았다. 보통 아기에게나 하는 짓을 다 커서 당한 도윤이 손으로 배를 덮었다. 드러난 얼굴 위로 빛이 쏟아지자 희성은 눈을 감았다. 이러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잠이 오곤 했다.

그 짧은 새에 잠이 든 건 아니겠지만 떨림도 없이 감겨있는 눈꺼풀을 물끄러미 보던 도윤이 잠옷 셔츠 사이로 보이는 자신의 이름에 혀로 마른 입술을 쓸었다. 틀어둔 예능에서는 별로 웃기지도 않는데 자기들끼리 하하 호호 웃고 있었다. 도윤은 소리를 약간 줄이고 눈을 감고 있는 얼굴 위로 손바닥을 흔들어 보였다. 곧게 잘 뻗은 콧대를 눈으로 훑던 도윤이 검지의 끝으로 희성의 쇄골을 문질러봤다. 딱히 느껴지는 건 없었지만 이상했다. 왜 이런 걸 몸에 새기고 싶어 했는지 아직도 의문이었다. 이름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던 도윤이 다시 손을 거뒀다. 몸이 편했던 거지 잠을 자지는 않았던 희성은 잠시나마 닿은 온기가 아쉬워 배에 얼굴을 딱 붙이곤 잠을 청했다.

장마라기엔 시기가 너무 일렀다. 아까보다 천둥번개가 치는 횟수는 잦아들었으나 비는 여전히 모두를 집어삼킬 것 마냥 쏟아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식사를 책임지는 남자는 보통 새벽에 출근해 아침과 점심을 책임지고 저녁에 다시 찾아오거나 아니면 미리 저녁까지 만들어두고 가고는 했는데 오늘은 다시 집으로 오라고 하기가 미안한 날씨가 이어졌다. 자신의 다리를 베고 깊게 잠든 희성을 깨울 수가 없어서 최대한 소파에서만 시간을 보낸 도윤이 슬슬 입이 심심해져 시간을 확인했다. 남자가 다시 찾아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다.

비가 창문을 때리며 바닥으로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도윤은 고개만 돌려 어두운 하늘을 보다가 문득 먹고 싶은 것을 떠올렸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짬뽕이 생각났다. 도윤은 뒤척이지도 않고 자는 희성을 보다가 볼을 긁적였다. 짬뽕이 먹고 싶다고 하면 또 왜 그런 걸 먹고 싶어 하는 거냐고 싫은 소리를 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한번 물어는 봐야겠다. 도윤이 마음을 굳게 먹고 곤히 자고 있는 희성의 어깨를 조심스레 흔들었다.

희성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가 이내 쌍꺼풀과 함께 졸음이 묻어난 눈이 나타났다. 올라간 눈 꼬리가 평소보다 예민해 보였다. 눈을 마주하지는 못하고 코와 입술의 그 언저리에 시선을 둔 도윤이 입술을 열었다.

“…일하시는 분한테 저녁에 오지 말라고 하면 안 돼?”

“…….”

“…응?”

“…왜.”

방금 막 잠에서 깬 탓에 목소리가 가라앉아있었다. 희성의 가슴팍에 올려두었던 손이 꼬물거렸다.

“나 짬뽕 먹고 싶어서….”

“…….”

“있잖아, 오늘은 시켜 먹으면 안 돼? 응?”

“밥이나 먹어.”

“오늘만 시켜 먹자, 응? 으응?”

“싫어.”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했다. 그러나 도윤은 칼만 뽑아들었을 뿐 그 무엇도 베지 못했다. 시무룩해진 도윤이 여태까지 잘 내어주고 있던 다리를 들썩여 희성을 밀어냈다.

“저리 가. 나 방에 갈래.”

소파에 앉은 희성의 머리가 살짝 붕 떴다. 도윤이 걸을 때마다 슬리퍼가 직직 끌리는 소리를 냈다. 홀로 남겨진 희성이 하품을 하며 욕실로 향했다.

짬뽕을 거절당하고 방으로 들어온 도윤은 아무것도 모르는 햄스터에게 중얼중얼 희성의 흉을 보고 있었다. 도윤의 손바닥에 앉아 간식을 먹던 콩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짜증 나….”

누가 뺏어가지도 않는데 간식을 볼에 욱여넣은 콩이가 뽀르르 도윤의 손을 벗어나 침대를 돌아다녔다. 도윤은 나름 반항을 한답시고 희성이 제일 싫어하는 짓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희성은 햄스터를 침대에 올려두는 것을 싫어했다. 콩이는 간식을 머금은 채로 침대를 바쁘게 돌아다니다 다시 도윤의 앞으로 달려왔다. 손가락으로 콩이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준 도윤이 실실거리는 사이 방으로 들어온 희성이 벽에 기대 둘을 내려다봤다. 도윤은 희성이 왔다는 걸 아까부터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르는 척 콩이와 노는 것에 집중했다.

“야.”

“…….”

“내가 그거 침대에 올리면 어떻게 한다고 했어?”

“…….”

“나와서 밥이나 먹어.”

“…….”

“하도윤.”

“…….”

희성이 콩이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조심스럽게 안아든 도윤이 케이지에 넣어주며 새초롬하게 대꾸했다.

“안 먹어.”

“…….”

“너, 너 혼자 먹어.”

말은 왜 더듬었지…. 도윤이 혀를 씹으며 햄스터를 살폈다. 희성은 팔짱까지 끼고 도윤을 내려다봤다. 이러면 좋은 말로 할 때 먹으라고 짜증을 내겠지. 도윤은 희성을 알았다. 그래서 새끼손톱만큼의 자신감이 생겨 대들어보았다. 희성의 입술이 열렸다. 좋은 말로 할 때….

“그러든지.”

어? 당황에 물든 눈이 희성을 돌아봤다. 희성은 망설임도 없이 등을 돌려 주방으로 떠나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어어. 최대한 조용히 일어나 주방을 기웃거리자 남자가 국그릇을 놓아주고 있었다. 희성은 혼자 앉아서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하려다 남자에게 도윤은 오늘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도윤의 자리에도 국그릇을 내려놓던 남자가 멈칫, 도윤을 쳐다봤다.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던 도윤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의자에 앉았다. 젓가락을 든 희성이 눈만 치켜떠 도윤을 봤다.

“…나도 먹을 거야.”

“안 먹는다며.”

“그거는….”

“먹기 싫으면 먹지 마.”

“아, 아니야.”

도윤은 남자가 국그릇을 내려주자마자 숟가락을 들어 열심히 퍼먹었다. 희성은 20살 먹고 반찬투정이나 하는 도윤의 머리통을 보다가 천천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두 사람이 식사를 하는 동안엔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주방을 울렸다.

***

엠티를 빠진 사람은 정말로 몇 되지 않았다. 엠티를 다녀온 사람들끼리는 이미 무리가 형성되어 있었고 도윤과 희성은 강의실의 끝에 앉아 둘만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강의를 듣는 동안엔 문제가 없었지만 잠시 쉬는 시간이 생길 때 도윤은 늘 어색하게 강의실을 둘러보곤 했다. 애초에 말을 걸 수도 없어서 소용은 없었으나 친해질 틈이 보이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그동안 상상해왔던 대학의 그림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지루한 강의가 끝나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희성을 기다리기 위해 복도에 서있던 도윤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틀었다. 분명 본 적이 있는 얼굴인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도윤이 혀로 입술을 축이곤 눈치를 봤다.

“되게 오랜만이네.”

“…….”

“선배를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아, 안녕하세요….”

선배였구나. 도윤이 얼른 고개를 꾸벅였다. 이름이 자꾸 생각날 듯 말 듯 가물가물했다. 도윤은 아침에 희성이 입으라며 막무가내로 던져준 분홍색 카디건의 소매를 매만지며 남자를 쳐다봤다.

“우리 신입생 환영회 때 이후로 처음 아닌가?”

“…….”

“엠티도 빠졌던데.”

“그게….”

“난 그것도 모르고 엠티에서 존나 찾아다녔잖아.”

“저를…요…? 왜요…?”

“왜긴 왜야, 후배랑 친해지고 싶은 건 선배로서 당연한 거지.”

남자가 재수 없게 웃으며 도윤을 봤다. 곧 희성이 나올 텐데, 이런 모습을 보이면 서로 곤란한 일만 일어날 것이 뻔했다. 도윤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힐끔거렸다. 남자는 묘하게 기분 나쁜 시선으로 도윤의 얼굴부터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입고 나온 분홍색 카디건을 쭉 훑었다.

“무슨 남자 새끼가 그런 옷을 다 입고….”

“…….”

“암튼, 강의 다 끝난 것 같은데 시간 되지?”

도윤의 고개가 양옆으로 돌아갔다. 도리도리. 남자가 미간을 구기며 되물었다.

“왜.”

“…약, 약속이 있어서요.”

“누구랑.”

“그건….”

대답을 머뭇거리는 사이 남자가 전화를 받으며 도윤을 힐끔댔다. 어, 아니. 어디? 남자는 혀를 차곤 전화를 끊으며 도윤을 쳐다봤다.

“자주 보자.”

자주 보자니, 자주 보게 된다면 이름도 모르는 남자의 장례식이 열리게 될지도 몰랐다. 많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남자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윤이 고개를 꾸벅였다. 남자는 보폭을 크게 해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희성이 화장실에서 나와 도윤의 옆에 섰다. 남자가 조금만 더 늦게 떠났거나 희성이 조금만 더 일찍 나왔더라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 벌어졌을 터였다.

“하도윤, 배고파?”

“응? 아니, 아직.”

“그럼 됐어.”

“왜?”

“가자.”

“어디 가?”

“차.”

“왜? 우리 아직 오후에 강의 하나 더 남았잖아.”

“어쩌라고.”

희성이 틱틱거리자 도윤은 얌전히 입을 다물고 그 뒤를 따랐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희성의 걸음은 빨랐고 도윤의 걸음은 그 속도를 쫓느라 살짝 버거워 보였다. 희성은 문을 열자마자 가쁜 숨을 쉬는 도윤을 조수석에 밀어 넣었다. 얼마나 세게 밀어 넣었으면 거의 구겨지듯 조수석에 엉덩이를 붙여야 했다. 희성이 운전석으로 돌아오는 동안 도윤은 안전벨트를 매고 벗은 가방을 끌어안았다. 급한 일이라도 생겼는지 문이 쾅 하고 닫혔고 차체가 살짝 흔들리는 것도 느껴졌다.

“우리 어디 가?”

“안가.”

“…그럼 차는 왜 탔어?”

가방을 안고 멀뚱멀뚱 눈만 깜빡이는 얼굴에 희성이 대뜸 목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쑥 들어온 혀에 도윤은 미간을 살짝 구기곤 어깨를 밀어냈다. 희성은 생각보다 쉽게 밀려났다. 도윤이 얼굴을 뒤로 빼며 입을 열었다.

“누, 누가 보면 어떡해….”

“밖에서 안 보여.”

“그래도….”

더 가까이 다가온 희성이 입을 잘게 맞추며 다시 진득하게 혀를 섞어왔다. 죄 없는 가방이 도윤의 손에서 엉망으로 구겨졌다. 말랑한 입안의 살을 훑고 혀를 옭아매며 안전벨트를 푼 희성이 조수석으로 넘어갔다. 차가 넓어 무리는 없었지만 도윤만 놀라 끙끙거렸다. 도윤은 키스만으로도 벅차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으나 희성은 손을 뻗어 조수석을 뒤로 빼는 여유까지 있었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자리가 더 넓어졌다. 혀를 뽑아먹을 것처럼 쪽쪽 빨던 희성이 이번에는 예고도 없이 등받이를 뒤로 훅 넘겼다. 놀이 기구를 탄 사람마냥 놀란 도윤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그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도윤이 끌어안고 있던 가방은 뒷좌석으로 던져진지 오래였고 입고 있던 바지와 속옷은 발목까지 내려갔다. 혹시라도 누가 지나갈까 봐, 누가 볼까 봐 무서워서 밀어내던 도윤은 희성이 자신의 것을 머금으면서부터 말을 잃고 말았다. 다 세워지기도 전에 성기를 입에 넣고 빤 희성이 서서히 힘을 싣는 기둥에 웃음을 흘렸다. 타액으로 질척해진 기둥을 뱉어내자 끝이 붉어져 더 예쁜 모양새를 만들고 있었다. 희성이 귀두부터 기둥을 따라 뽀뽀를 남기곤 음낭을 핥아보았다. 천장을 보며 헐떡이던 도윤의 허벅지가 움찔 떨었다.

힘이 실리면서 점점 더 커지는 기둥을 잡고 허벅지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 위를 혀로 핥은 희성이 한입에 머금고 쭉 빨았다. 새겨진 이름을 뽑아먹을 기세로 빨아대는 힘에 도윤이 허벅지를 모으려다 저지당했다. 그 주위로도 입술을 내리며 여린 살을 씹어댄 희성이 다시 귀두의 끝을 혀로 문질렀다.

“하읏…!”

“좋아?”

“으응, 안, 안 좋, 읏….”

이로 귀두를 깨물자 허리가 떨렸다. 희성이 웃으며 고개를 숙여 성기를 삼켰다가 뱉어냈다. 도윤의 손이 얼굴을 가렸다가, 신음이 터져 나오는 입술을 가렸다가, 차를 짚었다가 창문을 짚었다가 열심히 움직였다. 희성은 창문을 짚은 손을 가져와 자신의 머리에 올려주었다.

“아, 아으…응….”

머리카락을 쥐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올려준 건데 도윤은 차마 힘을 주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기를 택했다. 희성이 타액과 함께 성기를 뱉었다가 아예 뿌리까지 삼켰다. 목구멍이 열리고 끝이 조였다. 도윤이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목구멍의 끝을 찌르는 귀두에 헛구역질이 일었지만 이 정도는 가볍게 참을 수 있었다. 희성이 침을 삼키자 끝이 더 조이는지 머리카락이 조금 당겨졌다.

“희, 희…성…하아!”

자꾸 움찔거리는 허벅지가 신경 쓰여 콜록거리며 성기를 물린 희성이 신발을 벗겨내고 걸쳐져있던 속옷과 바지도 완전히 벗겨냈다. 축축하게 젖은 성기가 꺼떡이고 배가 빠르게 올라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희성은 자신의 어깨에 도윤의 다리를 올려주고 다시 성기를 머금었다. 도윤이 훌쩍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읏, 희성아, 이제, 아….”

“응.”

“그, 흣…하아, 아, 그마안….”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만하라는 말을 가볍게 무시한 희성이 성기를 이로 긁다가 끝까지 삼켰다. 그러자 허리가 들리고 도윤이 헐떡였다. 어깨에 올려둔 다리를 뻗자 발이 대시보드에 닿았다. 도윤이 분홍색 카디건의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흑, 나, 흐으, 가, 가고…싶…어….”

소매에 묻혀서 웅얼웅얼 들리는 목소리에도 희성은 고갯짓을 이어갔다. 대시보드를 밀어내는 발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발목에는 희성에게 새로 선물 받은 발찌가 당당히 빛을 내고 있었다. 희성은 목이 따가운 것도 참으며 성기를 끝까지 물고 있었다.

“희, 성아, 읏, 으응….”

도윤은 급하게 몸을 일으켜 희성의 이마를 밀어냈다. 정말로 나올 것 같아서 밀어내려는 건데도 희성은 얼굴까지 구기며 버텼다. 입안의 살과 혀가 기둥을 쓸고 올라가는 동안에도 힘겹게 사정을 참아낸 도윤은 귀두를 이로 씹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 결국 참지 못하고 허리를 떨며 사정했다. 분홍 카디건의 소매로 입을 틀어막고 헐떡인 도윤이 아직까지도 귀두를 힘 있게 빨아대는 힘에 고개를 저었다.

“흐윽, 응, 그만, 그만해….”

카디건이 이마에 닿았다. 희성은 그제야 귀두를 뱉곤 입안에 가득 들어찬 비릿한 정액을 혀로 굴려보았다. 조용히 정액을 머금고 있는 희성을 발견한 도윤이 글러브박스를 열어 휴지를 한가득 가져와 입 앞에 대주었지만 입술은 열리는 법이 없었다. 아직 정리되지 못한 숨이 말소리에 섞여들었다.

“뱉, 뱉어….”

“음.”

“얼른, 빨리 뱉어….”

“흠.”

비릿한 맛에 인상을 찌푸리자 도윤의 마음이 급해졌다. 희성은 자신의 입술 앞에서 흔들리는 휴지를 보다가 몸을 일으켜 도윤에게 입을 맞추었다. 숨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입안으로 미끄덩거리는 정액이 들어오자 도윤이 혀로 밀어내며 고개를 틀었다. 덕분에 입에서 흐른 정액이 입술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렸다. 희성이 웃으며 목을 핥다가 다시 입술을 비볐다. 싫어, 싫어! 도윤이 욱, 하며 밀어냈지만 희성은 꼼꼼하게 입안을 누볐다. 프하…콜록…! 도윤이 모자란 숨을 찾으며 기침을 토했다.

희성은 정말로 학교 주차장에서 할 생각인지 글러브박스에서 꺼낸 젤로 뒤를 풀었다. 하더라도 학교 주차장에서는 아니었다. 차라리 집에서 하는 것이 천 배는 더 나을 것 같아 그만하자는 말을 꺼냈더니 정색을 하는 바람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희성은 옷을 끌어올려 도윤의 입에 물려주곤 젤을 성기에 잔뜩 뿌렸다. 차가운 젤이 쏟아지자 몸이 절로 떨렸다. 도윤이 흠칫, 희성을 올려다봤다. 아직 풀리지도 않았을 뒤에 귀두를 맞춘 희성이 혀로 볼 안을 문지르다가 아래로 꾹 내려왔다. 억지로 열린 뒤가 아렸지만 아픈 티는 내지 않았다. 왼손으로는 창문을 짚고 오른손으로는 기둥을 쥔 채 삽입을 이어가던 희성이 낮은 숨을 터뜨리며 두 손을 도윤의 배에 올렸다.

옷을 물고 있느라 으응, 응…. 하는 신음만 들려왔다. 희성이 옷을 빼주곤 아래를 조이며 유두를 괴롭혔다. 움직일 때마다 젤로 인해 질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차에서 하는 섹스는 불편함이 많았다. 희성은 허리를 숙여 도윤의 목을 잘근잘근 씹어주었다. 고개를 틀고 헐떡이는 도윤을 눈에 담으며 유두를 괴롭혀주면 내벽이 품고 있는 성기가 꺼떡이며 허리가 떨렸다. 만지면 만지는 대로 반응이 오는 몸이 재미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성기가 내벽을 긁으며 반이나 빠져나왔다. 희성은 다시 뿌리까지 삼키며 도윤의 것을 꽉 물었다. 말랑거리는 내벽이 성기를 주무르자 도윤이 눈을 질끈 감았다.

“후으, 도윤, 읏, 아.”

“으읏, 아….”

“예뻐, 도윤아. 너무 예뻐.”

눈 꼬리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낸 엄지를 입에 넣고 빨아보았다. 희성이 웃으며 허리 짓을 이어가다 도윤의 손을 끌어와 자신의 배를 만지게 했다. 희성이 성기를 삼키면 삼킬수록 뱃가죽에서부터 윤곽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도윤이 고개를 저으며 손을 뿌리쳤다.

“네 거잖아.”

“징, 흑, 징그러, 워….”

희성은 꼭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시선으로 자신의 배를 쳐다봤다.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도윤이 손을 떼어냈음에도 자꾸 느껴지는 감촉에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앉아서 하는 자세인 만큼 희성의 배에서 자꾸만 윤곽이 드러났다. 도윤이 시선을 올려 희성을 쳐다봤다. 얼굴에 열이 올라 살짝 붉어져있었다. 서늘했던 눈도 흥분에 잠겨 조금 젖어있는 것 같았다. 도윤은 자신과 마주친 눈을 피하지 않고 허리를 움직이는 희성을 빤히 보다가 입술로 들어서는 손가락에 눈가를 찡그렸다.

“빨아.”

“우…왜…?”

“내가 하라면 그냥 하는 거야.”

“…….”

입안에서 움직이는 손가락을 어쩔 수 없이 빨았다. 손가락을 빠는 동안 신음이 먹혔지만 희성은 그게 더 흥분되는지 아래를 더 꽉 조여 댔다. 도윤이 흐응, 응. 하며 빨던 손가락은 갑자기 들어왔던 것처럼 갑자기 빠져나갔다. 희성은 타액으로 질척해진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넣고 줄줄 빨았다. …더럽지도 않나? 도윤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희성의 입에서 나온 손가락은 뒤를 향했다. 뭘 하려는 거지? 도윤이 눈을 깜빡이자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읏!”

“하아….”

도윤의 궁금증이 풀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윤은 성기와 내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손가락을 느끼곤 고개를 저었다.

“뭐, 뭐해! 아!”

“흣.”

희성은 대답도 해주지 않고 도윤의 것을 품고 있는 자신의 내벽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손가락과 단단해진 성기가 내벽을 누르자 희성이 어깨를 떨며 도윤의 가슴팍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하아, 아…. 희성에게서 쏟아지는 신음에 도윤의 머리가 핑 돌았다. 안 그래도 내벽이 성기를 빨아 대서 죽을 것 같은데 자꾸 누르는 힘이 더해지자 숨을 쉬는 법도 까먹을 것만 같았다. 도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희성의 허리를 잡으려다 저도 모르게 몸을 떨며 사정했다. 가슴팍에 이마를 댄 채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던 희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뜨거운 숨이 유두에 닿자 도윤이 또 흣, 하며 남은 정액을 모두 토해냈다.

“도윤아, 좋아?”

“하으, 으….”

“네 좆에 쑤셔 박힌 것도 나고, 손가락을 박아 넣은 것도 난데.”

“잠, 깐…아….”

“왜 네가 느끼고 싸는 건지….”

“그만, 흣.”

성기와 입구를 비집고 들어선 손가락이 기둥을 꾹 눌렀다. 도윤이 숨을 삼키며 희성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만, 그만….”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왜.”

“하, 지 마, 좀….”

도윤이 기둥을 누르던 손을 빼냈다. 조금 아쉬운지 혀를 찬 희성이 질척이는 아래를 느끼며 다시 허리를 움직이려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멈췄다. 도윤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지나가던 길이었거나, 아니면 주변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타려고 왔거나. 안에서는 밖이 아주 잘 보였기에 희성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무리를 지어온 남자들이 옆에 있는 차 문을 열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지 차를 뒤지며 저들끼리 웃는 소리가 안까지 흘러들어왔다. 도윤은 아예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는데 분홍색 카디건의 소매가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 희성은 흡연구역도 아닌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는 남자들을 보고는 다시 허리를 살살 움직였다. 도윤이 헉, 하며 허리를 잡아왔지만 움직임이 멈추지는 않았다.

“하아….”

“끅, 하지, 마, 하지 마…!”

“왜? 들킬까 봐 걱정돼?”

“응, 응, 하지 마, 무서, 무서워, 흐으응….”

“그런 것치고는….”

두 번째 사정을 마친 것이 또 희성의 안에서 크기를 키웠다. 옆에서 욕설과 함께 웃음소리가 들리자 도윤이 저도 모르게 허리를 쳐올렸다. 동시에 눈가를 구긴 희성이 휘청거리며 창문을 탕, 소리 나게 짚었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도윤이 떨리는 입술을 물며 희성을 올려다봤다.

“뭐야? 안에 누구 있냐?”

“몰라, 안에 잘 안 보여.”

“나 이 차 진짜 운전해 보고 싶었는데.”

“존나 비싸겠지?”

“봐봐, 안에 누구 있는 거 아냐?”

웅성거림이 가까워지자 겁을 먹은 눈알이 이리저리 떨렸다. 희성은 귀찮게 됐다는 듯 밖을 힐끔거리다 벗어둔 셔츠를 도윤의 위에 덮어주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안이 보이진 않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도윤부터 가리고 봤다.

“존나 안 보여.”

“어떻게 이렇게까지 안 보이냐?”

“됐어, 가자.”

“어엉.”

남자들이 사라질 때까지 움직임을 멈춘 희성이 더 이상 말소리가 들리지 않자 셔츠를 뒷좌석으로 던져버렸다. 도윤이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았다.

“그만하자아….”

“난 아직 한 번도 안 쌌어.”

“흐으, 빨리, 빨리….”

“빨리하라고?”

“빨리, 하으, 싸….”

말끝이 흐려졌다. 도윤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숙였다. 단단한 손이 말랑한 볼을 쥐었다. 입술이 닿고 혀가 섞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희성은 방해꾼들 때문에 흥이 다 깨졌지만 어렵지 않게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도윤의 혀 밑을 훑고 입천장을 문지르며 허리를 끌어안은 손을 가져와 자신의 것을 쥐게 했다. 도망가지 못하게 그 위로 손을 덮은 희성이 자위를 하듯 성기를 쓸었다. 뜨거운 숨이 서로의 입안에서 흩어졌다. 스스로 기분이 좋아지는 부분을 찾아 성기를 주무르고 빨아들인 희성이 꺼떡이며 사정했다. 오랜 키스로 숨이 찬지 도윤이 희성의 가슴팍에 볼을 기댔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방금 사정을 했으니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목이 말랐다. 물이 마시고 싶어 얼굴을 떼어냈다.

“물 마시고 싶어….”

뻐끔거리는 아래와 내벽이 떨리며 성기를 주무르는 감각이 지나치게 선명해 몸을 떨자 뚜껑을 딴 희성이 물을 머금고 다시 입술을 붙여왔다. 틈이 생긴 입술 사이로 물이 넘어왔다. 도윤이 힘겹게 받아 마시다 혀까지 빨아먹었다. 혀를 빨리며 웃던 희성이 다시 물을 머금고 도윤에게 넘겨주었다.

차에서 하는 섹스의 뒤처리는 생각보다 배로 귀찮고 힘들었다. 도윤은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카시트를 닦았지만 정작 차 주인인 희성은 청소를 맡기면 된다며 도윤을 끌어안기 바빴다. 희성의 안에 있던 것을 긁어 뺀 것도 모두 꼼꼼하게 닦고 냄새를 빼기 위해 문도 잠깐 열어두었다. 좁은 곳에서 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이런 귀찮음이 따라온다면 앞으로 차에서 하는 건 조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희성은 뻐근한 허리를 움직이며 바람에 흩어지는 나뭇잎을 올려다보다 멍하니 앉아있는 도윤의 앞으로 다가갔다. 차체를 짚고 몸을 숙이자 지친 듯 숨만 쉬던 도윤이 말없이 눈을 맞춰왔다.

귀엽긴. 희성이 손가락으로 볼을 눌렀다가 뗐다. 어깨 아래로 내려간 카디건을 정리해 주고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춘 후 떨어지는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도윤이 입술을 달싹였다. 희성은 붉은 입술을 엄지로 꾹 눌러주곤 손을 펴 그대로 볼을 톡톡 쳤다.

“나 배고파….”

축 처진 몸에 고정되어 있었던 시선을 손목으로 옮겨간 희성이 무릎에 올려둔 손을 끌어와 쪽쪽 뽀뽀를 남겼다.

“뭐 먹고 싶은데.”

“몰라, 배고파….”

딱히 생각나는 건 없지만 배는 고팠다. 도윤이 머리를 굴리다 도저히 떠오르는 것이 없는지 고개를 저었다. 희성은 소리 없이 웃으며 도윤을 안으로 밀어 넣고 입을 맞췄다. 진득하고 질척한 키스가 이어지고 도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밀려드는 혀를 받아내려 애썼다. 이러다 또 차에서 하자고 할까 봐 겁도 났다. 슬슬 모자라는 숨에 도윤이 고개를 틀어 할딱였다. 희성은 옆으로 돌아간 얼굴을 따라 짧은 뽀뽀를 남기고 운전석으로 향했다. 달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할딱거린 도윤이 창문에 머리를 박았다.

둘은 점심을 먹기 위해 만들어낸 시간에 남들보다 많은 것을 했다. 차에서 몸도 섞었고 점심도 먹었다. 선 운동 후 식사를 끝낸 도윤은 양치도 열심히 했다. 그 옆에서 먼저 양치를 끝낸 희성은 도윤이 얼른 끝내기를 기다렸다가 안으로 데려가 다시 질척하게 혀를 섞었다. 도윤은 피곤했다. 아무리 주고 또 줘도 부족하다는 듯 구는 희성이 무서웠다. 대체 뭘 얼마나 더 어떻게 해야 만족이란 걸 느낄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번 강의에서는 과제가 주어졌다. 혼자 하는 과제가 아닌 무려 조별 과제였다. 심지어 스스로 팀원을 꾸리는 것이 아닌 교수님이 직접 조를 짠 조별 과제였다. 강의가 끝나갈 무렵 교수님은 강의실을 쭉 둘러보고는 조별 과제가 있음을 알렸다.

‘각자 앞에 붙어있는 종이 확인하시고 조원들과 이야기 나누도록 하세요.’

흰 종이를 앞에 붙여두고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교수님을 보다가 남들보다 조금 늦게 일어난 두 사람도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는 조를 확인했다. 동시에 도윤은 속으로 야호! 소리쳤고 희성은 대놓고 얼굴을 구겼다. 도윤의 이름은 3조에 있었고 희성의 이름은 5조에 들어가 있었다. 도윤이 설레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끝, 끝나고 봐.’ 그랬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가지고서 자신의 조를 찾아 떠난 도윤을 바라보는 희성의 볼이 잠깐 볼록해졌다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혀로 볼 안을 쓸며 5조를 찾아 몸을 돌린 희성의 기분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쭈뼛쭈뼛 3조를 찾아 의자를 끌어다 앉은 도윤이 조원들을 살폈다. 여자 둘, 남자 둘. 도윤은 희성이 있을 뒤를 돌아보았다. 희성은 삐딱하게 앉아 도윤을 쳐다보고 있었다. 딱 마주친 시선에 도윤이 어색하게 눈알을 굴리며 다시 앞을 돌아봤다.

“저는 이유정이에요. 20살.”

“박동호입니다. 21살이에요.”

“도연우입니다. 저도 21살.”

“저, 저도 20살이에요. 하도윤…입니다.”

도윤이 자꾸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으려 혀를 깨물었다. 조원들을 둘러본 동호라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 이 수업 재수강이라서 대충 아는데 보통만 해도 점수는 잘 나와요.”

“근데 왜 재수강하세요?”

이번엔 연우라는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악의는 없고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 같았지만 도윤과 유정은 눈치를 살핀다.

“작년에 학교를 개판으로 다녀서요.”

“이번에도 개판으로 다닐 예정이세요?”

“아닌데요.”

“그럼 다행이네요.”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도윤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PPT는 제가 맡을게요. 유정 씨랑 도윤 씨는 자료조사 해주세요.”

“제가 발표인가요?”

“하기 싫으세요?”

“네.”

“그래도 하세요.”

둘 사이에 또 정적이 찾아왔다. 도윤과 유정은 이제 울고 싶어졌다. 동호가 작게 한숨을 쉬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 못하겠으면 말하세요. PPT 하시면 되니까.”

“제가요?”

“네.”

동호가 어이가 없음을 알리는 한숨을 터뜨렸다. 도윤과 마찬가지로 눈치만 보던 유정이 목소리를 냈다.

“저희 번호 교환할까요?”

“네.”

도윤은 핸드폰을 꺼내기 전에 희성을 돌아봤다. 희성은 자신의 조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누가 봐도 대충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도윤이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책상에 올려두었다. 조원들을 따라 핸드폰을 들고 번호와 이름을 저장한 도윤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새로운 번호가 채워진 연락처를 구경했다. 다들 알아서 깨끗하게 이름과 나이를 정리해 적어주었다.

“톡방은 제가 나중에 만들게요.”

“네.”

“네에.”

“모르는 거 있으면 서로 물어보고 아는 거면 알려주는 걸로 해요.”

“네.”

“네에.”

“그럼 자세한 건 톡방 만들어지면 그때 얘기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요?”

연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뒤를 돌아보니 희성도 이제 막 정리를 하고 일어나려는 것 같았다. 도윤은 뒷문에 서서 희성을 기다렸다.

“핸드폰 줘봐.”

“왜?”

“내놔.”

“안, 안 돼.”

도윤은 핸드폰을 등 뒤로 숨기고 고개를 저었다. 또 삭제하려고 그러지! 도윤이 씩씩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다 하도윤! 하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누군가와 부딪치고 말았다. 어어….

“죄송, 죄송합니다.”

“이제 선배를 막 치네.”

“아….”

급하게 뒤를 돌아본 도윤이 고개를 숙였다. 점심때 자주 보자며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말을 뱉고 사라진 남자였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남자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야, 유호준 빨리 와!”

“어, 잠깐만!”

유호준? 생각해 보니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도윤은 뒤에서 호준을 부르는 또 다른 남자를 힐끔거렸다. 어느새 다가온 희성이 도윤을 뒤로 끌어다 자신의 옆에 세웠다. 호준의 시선이 희성에게 닿았다. 희성은 대놓고 호준과 닿은 도윤의 등을 털어주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호준의 인상이 대번에 구겨졌다.

“가자.”

“어어, 안,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왜 해.”

“야.”

“희성아 너 부르는….”

호준이 턱으로 희성을 가리켰다. 동그란 눈을 깜빡거리며 호준과 시선을 마주한 도윤이 침을 삼켰다. 귀찮음이 덕지덕지 묻은 희성이 호준을 향해 몸을 틀었다.

“너 그때 걔지.”

“뭐.”

“싸가지 없는 새끼가, 진짜.”

“하도윤, 가자.”

“야!”

호준은 딱 봐도 다혈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 것 같았다. 희성은 그런 호준을 상대도 해주지 않으며 도윤을 이끌었다. 뒤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그를 부르는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유호준 뭐 하냐고! 빨리 와!”

“아니, 좀 기다려봐!”

“늦었다고!”

“아오, 진짜!”

씩씩거리는 목소리와 발소리가 반대편으로 멀어졌다. 도윤은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희성을 따라가다가 손목이 아파 와 얼굴을 찡그렸다. 있는 힘껏 쥐고 있는 탓에 희성의 손끝이 하얗게 질리기까지 했다. 도윤은 고통에 절로 벌어지는 입술을 다물지도 못했다. 차에 도착하고 나서야 자유가 된 손목엔 희성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내일부터 학교 다니지 마. 어차피 내가 옆에 있을 텐데 학교를 왜 다녀.”

“뭐?”

“그렇게 해.”

“싫어!”

삐약삐약. 뜬금없는 자퇴 강요에 도윤이 싫음을 어필했지만 희성의 귀에는 그저 삐약 거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자신이 이 학교를 어떻게 들어왔던가!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머리가 터져라 공부했다. 수업 시간에 잠을 많이 자기는 했지만 최대한 깨어 있으려고 노력했고 과외도 정말 열심히 했다. 희성은 말도 안 되는 일로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도윤이 입술을 꾹 다물고 몰래 희성을 노려봤다.

“뭘 노려봐.”

“내가 언제?”

언제 노려봤냐는 듯 표정을 바꾼 도윤이 안전벨트를 쥐곤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신호가 걸린 틈을 타 핸들을 쥐고 있던 손이 도윤의 앞으로 넘어왔다. 도윤이 눈을 깜빡이다 그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렸다. 희성은 손바닥에 턱하니 올라와 있는 도윤의 손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핸드폰.”

“아.”

“내놔.”

“…왜?”

평소처럼 얌전히 핸드폰을 내어주려던 도윤이 멈칫했다. 주머니에서 나오려던 핸드폰이 다시 안쪽으로 밀려났다.

“우, 운전해.”

“핸드폰 내놔.”

“운전할 때 핸드폰 보면 안…되는데….”

“야.”

핸드폰을 주면 희성이 할 일이야 빤했다. 도윤의 연락처에 새로 저장된 번호를 지우려는 거겠지. 도윤은 끝까지 안전벨트를 쥐고 있다가 바뀌는 신호를 가리켰다.

“…안가?”

뒤에서 출발을 알리는 클랙슨이 울렸다. 희성은 아까부터 놀랍도록 마음에 들지 않는 일만 생기고 있는 탓에 기분이 언짢았다. 핸들을 쥔 손등에 불거진 힘줄을 힐끔거리던 도윤이 문 쪽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나중에 집에 도착하면 또 희성의 일방적인 폭언이 시작될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을 천천히 달랬다.

도윤은 주차장에 도착해 주차가 끝나자마자 잽싸게 차에서 내려 도망쳤다. 뒤에서 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연타했다. 투명한 벽 너머로 삑하고 차가 잠기는 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하필 엘리베이터가 맨 꼭대기 층에서 내려오느라 좀 느렸다. 버튼을 누른다고 해서 엘리베이터가 쑥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연타하는 손이 빨랐다. 희성은 여유롭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도윤의 카디건을 잡아챘다.

“술래잡기가 하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나, 난 그냥! 엘리베이터 빨리 누르고 있으려고! 응, 그러려고….”

“네가 그렇게 기다리던 엘리베이터 왔네. 타.”

“으응….”

여전히 카디건이 잡힌 채로 엘리베이터에 오른 도윤이 20층을 꾹 눌렀다. 그 후로는 숨 막히는 정적이 찾아왔다. 내려왔을 때보다 느린 것 같은 속도에 도윤이 입술 안쪽의 살을 잘근잘근 씹었다. 희성은 올라가는 내내 말을 아꼈다. 띵. 평생 이어질 것 같던 정적을 깬 것은 20층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기계음이었다. 희성에게 잡혀 집 앞까지 도착한 도윤이 느릿느릿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리고 쭉 이어지는 복도를 보며 신발을 벗은 도윤은 그때까지도 카디건이 잡혀있었다. 도윤의 신발 뒤에 희성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였다. 현관과 이어지는 복도를 걸으며 침도 삼키지 못하던 도윤이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어깨를 떨었다.

“하도윤.”

“으응?”

“내가 가져갈까, 아니면 네가 줄래.”

“…….”

가방끈이 어깨를 타고 주르륵 흘렀다. 도윤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핸드폰을 꺼내 희성에게 건네는 쪽을 택했다. 핸드폰의 잠금은 있으나 마나다. 남의 핸드폰을 가지고 가서 주인의 허락도 없이 잠금을 푼 희성이 연락처에 들어갔다. 꼭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부모님께 검사를 받는 기분이었다. 막힘도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을 따라 눈을 굴리던 도윤이 다시 돌아온 핸드폰을 뒤적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저장되어 있었던 이름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 깔끔하게 사라져있었다.

“…그럼 과제는 어떻게 해?”

“네가 알아서 해.”

“그런 게 어디 있어….”

“뭐가 됐든 그 핸드폰에는 내 번호만 저장해. 아버지도 지우고 싶은 거 겨우 참고 있으니까.”

“…….”

“대답해야지.”

“…그럼 문자는 해도 돼?”

“도윤아, 내 말을 어디로 들었어?”

“문자도 못하면 과제는 어떻게 해!”

“과제 얘기만 해.”

불퉁하게 소리친 도윤이 돌아온 대답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마음을 바꿀지 몰라 핸드폰을 소중하게 품고 방으로 들어간 도윤이, 베딩 속에 파묻혀있는 콩이에게 다녀왔음을 알리는 인사를 하다가 손을 씻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다시 욕실로 달려갔다. 빨빨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도윤은 햄스터와 조금 닮아있었다. 자신에게 햄스터는 그저 쥐에 불과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도윤이 햄스터와 닮아 보였다. 희성은 손만 씻고 나오려는 도윤을 안으로 욱여넣고 문을 닫았다.

연분홍빛 카디건이 희성의 손에 의해 바닥에 떨어졌다. 버거운 입맞춤을 피하려 뒷걸음질을 치던 도윤의 다리가 욕조에 닿았다. 순간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갈 뻔한 허리를 잡아주며 목을 문 희성이 이내 촉, 촉 소리를 내며 살을 빨아댔다. 아, 아까 했잖아! 도윤이 목을 틀어 봐도 소용은 없었다. 희성이 샤워기를 틀자 차가운 물이 도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희성은 물놀이를 할 때 심장이 놀라지 않게 천천히 물을 묻혀주라던 경고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강제로 찬물을 맞은 도윤이 숨을 크고 급하게 들이쉬었다.

“나 아직, 옷도 입고 있, 잖아!”

“그게 뭐.”

“다 젖었, 아, 차가, 차갑…!”

입술이 먹혀 뒷말도 자연스레 입안으로 사라졌다. 희성은 뒤로 뻗은 손으로 물의 온도를 조절했다. 희성은 젖은 티셔츠 위로 도윤의 살을 만지기 시작했고 도윤은 소름이 돋아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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