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7)

강요(1)

  

  

도윤을 알기 전 희성에게 집안 행사라곤 부모님의 생일이 다였으나 이제는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도윤의 생일을 맞이해 도윤이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를 주문해두고 도윤이 좋아하는 음식들로만 식탁을 차렸다. 선물은 눈에 보일 때마다 사모아서 방의 절반이 쇼핑백으로 가득 찼다. 생일을 축하한다며 12시가 되기도 전에 한번 뒹굴고 12시가 넘어서는 세 번을 더 뒹굴었다. 도윤은 생일이 시작되자마자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다.

본인의 생일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들떴다. 완벽한 새벽을 보냈으니 아침엔 맛있는 것들을 먹이고 점심부터는 내내 집에서 할 것들이 많았다. 도윤이 원하면 밖에도 함께 나갈 의향이 있었다.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마음에 드는 것을 사러 가면 그만이었다. 이제 막 불에서 내려온 음식들이 식탁에 오르는 것을 확인하고 2층으로 올라간 희성이 문을 벌컥 열었다. 도윤은 미약하게 틀어둔 에어컨의 바람에도 추운지 이불을 덮고 웅크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침대에 앉아 도윤의 볼을 콕콕 찔러보던 희성이 얼굴 곳곳에 입을 맞췄다. 도윤은 얼굴에서부터 느껴지는 간지러움에 앓는 소리를 내며 뒤척였다. 귀여워. 희성이 웃으며 이불을 들추고 도윤의 위에 올라탔다. 자느라 올라간 잠옷 아래에 위치한 붉은 꽃도 예뻐서 한참을 내려다보던 희성이 몸을 숙여 도윤의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댔다. 일정하게 뛰고 있는 심장박동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잠옷 위로 입을 맞춘 희성이 도윤의 얼굴을 붙잡고 흔들었다. 으응…. 도윤의 미간이 구겨지는가 싶더니 이내 예쁜 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밥 먹어.”

“더 자고 싶…은데….”

“일어나.”

희성이 붙잡은 얼굴 곳곳에 뽀뽀를 남겼다. 눈을 뜨기는 했지만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탓에 밀어내는 손에는 힘이 없었다. 희성이 손을 붙잡아 손등과 손바닥에도 입을 맞췄다.

“하도윤, 생일 축하해.”

“…….”

“일어나.”

“…….”

도윤이 점점 멀어지는 정신에 다시 잠에 빠지려다 다소 격하게 일으켜지는 몸에 고개를 흔들었다.

“나 자고 싶어….”

“다들 너 하나 때문에 새벽부터 얼마나 바빴는데.”

“…….”

“네가 계속 자면 그걸 하나하나 다 치워야 할 거고, 네가 일어나면 다시 하나하나 준비해야 되겠지. 더 자고 싶으면 자. 내가 내려가서 이런 거 다 필요 없다고 말할게.”

“…….”

“더 자.”

“아…. 가, 가면 되잖아….”

아직도 자신의 위에 앉아있는 희성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적댄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내려와야 씻으러 가지.”

“씻겨줄게.”

“내가 할 수 있어.”

“생일이잖아.”

어차피 씻겨주는 건 당장 오늘 새벽에도 했고, 별일이 없어도 자신이 하고 싶으면 해주는 거면서…. 희성의 입술이 도윤의 입술을 꾹 눌렀다가 떨어졌다. 희성에게 끌려 욕실에 들어선 도윤은 필요 없다고 거절했지만 세수를 당했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양치까지 끝냈다. 볼일만큼은 혼자 보겠다며 밀어내기에 생일이니까 한 번쯤은 봐주기로 했다. 도윤은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또 주방까지 끌려갔다. 희성이 말했던 것처럼 식탁은 아주 화려했다. 희성의 생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식탁에는 도윤의 아버지가 앉아있었다. 도윤의 얼굴에 화색이 묻어났다.

원래라면 둘만의 식사를 만들고 싶었으나 생일이고, 아침부터 식탁에 요리를 옮겨주었던 사람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차라리 오늘이 평일이었다면 벌써 출근을 하고도 남았을 텐데. 희성이 아쉬운 표정을 숨기며 도윤의 앞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도윤은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들이 보람을 느낄 정도로 아주 맛있는 식사를 했다. 미역국도 두 그릇이나 먹었다. 배가 불러도 일단 먹었고 아버지가 밥그릇에 올려준 반찬도 곧잘 받아먹었다. 희성은 연석이 도윤에게 반찬을 줄 때마다 거슬렸지만 자신도 반찬을 올려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덕분에 도윤의 밥그릇에는 밥보다 반찬이 더 많았다. 볼이 빵빵해져선 입안에 든 음식을 씹어 삼키는 도윤은 행복해 보였다.

케이크만큼은 단둘이 있을 때 불을 켜고 싶었다. 그래서 케이크는 잠시 미뤄두고 아버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려던 도윤을 붙잡고 2층으로 올라왔다. 자기도 손이 있다는 도윤을 무시하고 강제로 양치를 시켜준 희성은 방에 들어와서도 자기 마음대로 휘둘렀다. 침대에 강제로 앉혀진 도윤의 품엔 방 한편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쇼핑백들이 안겨졌다. 희성이 매번 선물을 해준 덕분에 이제 도윤도 이 브랜드가 익숙했다. 초반에는 선물을 받고도 이게 명품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했는데 이제는 이게 얼마나 비싼 것인지도 다 알았다.

외출을 허락해 주지도 않으면서 무슨 옷을 이렇게 많이 사다 주는지도 의문이었다. 도윤이 옷을 만지작거리다 희성을 힐끗거렸다. 희성은 그다음 쇼핑백을 꺼내는 중이었다. 이번엔 신발이었다. 꼭 정장을 입고 신으면 어울릴 것 같은 까만 신발이었다. 마찬가지로 집 밖에 보내주지도 않으면서 왜 신발을 사주는지도 이해가 안 갔다. 도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신발을 신겨주는 희성의 머리꼭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신발은 맞춤 신발인 듯 발에 딱 맞았다. 도윤이 발을 까딱이다가 무릎에 입을 맞추고 떨어지는 희성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예쁘네.”

“…….”

지금은 잠옷 차림이라 신발이 잘 어울리지도 않는데 뭐가 예쁘다는 건지…. 도윤이 신발과 희성을 번갈아 쳐다봤다. 선물 증정식은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도윤은 작은 상자 안에서 나오는 시계를 보다가 손을 뒤로 숨겼다. 지금까지 받아왔던 모든 선물들은 자신에게 필요가 없는 것들뿐이었다. 시계는 더욱이 필요가 없었다. 핸드폰만 있으면 됐다. 손을 뒤로 숨기고 고개를 젓자 말없이 보기만 하던 희성이 손을 끌어당겼다.

“이런, 이런 건 필요 없어….”

“그렇겠지.”

“다른 선물들도 나는, 필요 없어.”

“그렇겠지. 네가 언제 내가 주는 걸 필요로 한 적이나 있어?”

“…….”

결국 하얀 손목에 시계가 채워졌다. 도윤이 반짝이는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저녁에는 밖에 나가서 먹자.”

“…저녁?”

“응.”

“나 아, 아빠랑, 저녁 먹으면 안 돼…?”

“왜?”

“생일이니까…. 아빠랑….”

“그럼 난?”

“…….”

“싫다는 말을 밤새 해놓고도 아직도 부족해? 선물도 싫다, 같이 밥 먹자는 것도 싫다.”

“난….”

“언제쯤 싫다는 소리 좀 안 할래? 대체 뭐가 그렇게 싫은데?”

도윤이 고개를 숙였다. 할 말이 없었다. 희성은 앞에 서서 방을 둘러보며 낮은 한숨을 쉬다가 다른 쇼핑백에서 옷을 꺼내들었다. 도윤이 입으면 예쁠 것 같아 산 청바지가 침대에 앉은 몸 위로 던져졌다.

“이것도 싫겠다.”

“…….”

“이것도 싫겠네.”

“…….”

“이것도 다 싫지? 넌 싫다는 말밖에 못 하잖아.”

옷과 신발, 무선이어폰, 목걸이 등 여러 가지의 선물이 도윤의 주변에 흩어졌다. 도윤은 처음에 안겨졌던 청바지를 아직까지도 끌어안고 있는 중이었다.

“다 팔든지 버리든지 네 마음대로 해.”

“…….”

“아버지랑 나가겠다고?”

“…….”

“그것도 네 마음대로 해.”

도윤에게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투둑 떨어진 눈물이 청바지에 스며들었다.

“흐…. 제발, 좀….”

“네 마음대로 하라고, 도윤아.”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친 도윤이 희성을 올려다봤다.

“오늘은…아빠랑 보내도, 되, 되잖아.”

“그렇게 해. 내가 마음대로 하라고 했잖아.”

“…거짓말.”

“난 오늘 예약 취소 안 해. 그러니까 아버지랑 시간을 보내든, 날 따라오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생일이니까.”

희성의 손이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컥 가슴에 치미는 감정에 도윤이 고개를 숙여 눈물을 닦았다. 침대에는 선물이, 바닥에는 쇼핑백들이 잔뜩 어지럽혀져있었다. 도윤의 손은 눈물로 엉망이었으며 희성의 기분 또한 엉망이었다. 작년에 이어 최악인 생일이었다. 아직 오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그런 느낌이 강력하게 왔다. 올해도 최악의 생일이 될 것 같았다. 울음을 참아보려 했지만 끅끅거리는 소리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다. 도윤이 숨을 들이쉬다 호흡이 엉켜 기침을 뱉었다.

원래 계획 대로였다면 도윤과 시간을 보내고 이제 슬슬 예약했던 식당을 가야하는 시간이었다. 홀로 준비를 끝내고 소파에 기대앉아있던 희성이 벽에 걸린 시계를 노려봤다. 도윤에게 말했던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2층은 조용했다. 팔걸이를 톡톡 치는 손가락의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희성에겐 참을성이 많지 않았다. 이만큼을 기다려준 것도 도윤이라 가능했던 이야기였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시계를 노려보던 희성은 뒤에서 들려오는 문소리와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를 듣곤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당장 눈앞으로 펼쳐진 광경에 기가 막혀 아무런 소리도 뱉지 못했다. 계단을 내려오던 도윤이 소파에 앉아있는 희성을 보고 잠깐 멈칫거리더니 아버지와 함께 현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도윤이 결국 아버지를 택했다. 손목도 깨끗했고 옷도 평소 자신이 입던 옷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더러워진 기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바닥까지 처박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고도 한참을 앉아있기만 했다. 손이 떨렸다. 주먹을 쥐고 일어난 희성이 도윤을 위해 주문한 케이크를 찾아 식탁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여자가 눈치를 보며 케이크를 들었다.

“버려요.”

“네?”

“버리라고요.”

“하지만….”

“버리라고.”

얼굴을 구긴 희성이 2층으로 향했고 곧장 도윤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고요한 방을 훑어보고 어딘가로 전화를 건 희성이 짧은 용건을 마치고 핸드폰과 함께 침대에 엎어졌다. 도윤의 침대에는 그 주인의 냄새가 가득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쉰 희성이 눈을 감았다.

아버지와 함께 둘이서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도윤은 조용한 집안에 숨을 참았다. 얼른 올라가서 옷 갈아입고 씻어. 다정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아버지에게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바짝 긴장한 상태로 계단을 올랐다. 희성의 방문도 자신의 방문도 모두 닫혀있었다. 일단 일을 치기는 했는데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많이 화났겠지. 당연한 이야기였다. 또 방에서만 생활해야 할지도 몰랐다. 도윤은 방문을 열기 전에 심호흡을 한번 크게 내뱉었다. 도윤은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끔 문을 열었고 문 사이로 보이는 방의 상태에 입을 떡 벌렸다.

방이 언제 가득 차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텅 비어있었다. 이게 대체…. 도윤이 다급하게 희성의 방문을 열었지만 그곳에 희성은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도윤의 발걸음이 급했다. 거실에도 없고, 희성이 자주 쓰고는 했던 욕실에도 없었다. 혹시 몰라서 주방도 확인했으나 찾는 이는 없고 일하시는 이모님만이 도윤을 걱정스레 살펴보고 있었다.

“혹, 혹시 희성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아까 나가기는 했는데….”

“언제, 언제요?”

“30분 조금 됐나? 무슨 일 있어요?”

물이 담긴 컵을 내밀며 걱정하는 얼굴을 마주하자 이상하게 눈물부터 났다. 입술을 깨물고 울기 시작하는 도윤에게 휴지를 쥐여 준 이모님이 머뭇거리다 팔을 쓸어주었다. 그 손길에 그동안 참아왔던 설움이 왈칵 터지고 말았다. 눈물은 닦고 또 닦아도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난처한 듯 주변을 살피던 이모님이 도윤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자 울음은 더 커졌다.

“아이고,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끅….”

“생일인데 이렇게 울면 어떡해.”

등을 쓸어주는 손길에 문득 어머니의 생각이 났다. 도윤이 덜덜 떨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괜찮아요, 다 괜찮아.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어머니의 목소리와는 비슷한 구석이 전혀 없었지만 눈물을 터뜨리기에는 충분했다. 도윤이 우는 사이 집으로 돌아온 희성은 오늘따라 유독 끝도 없이 펼쳐지는 어이가 없는 광경들에 입을 다물었다.

도윤보다 빨리 희성의 존재를 알아챈 이모님이 놀라며 도윤을 놓아주었다. 도윤이 호흡을 고르기도 전에 팔을 잡은 희성이 걸음을 늦추지도 않고 2층으로 향했다. 젖은 휴지를 쥐고 끌려 올라온 도윤이 손을 뿌리쳤다.

“방, 네가 그랬어?”

“응.”

“왜?”

“네가 날 무시했으니까.”

“난 분명 말했어, 아빠랑 같이 간다고! 말을 무시한 건 내가 아니라….”

“너도 네 마음대로 해서 나도 내 마음대로 했는데 이게 왜?”

“제발 한 번이라도! 한 번만이라도 그냥….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두면 안 돼?”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왜냐면…. 너는….”

나를 좋아한다며. 나를, 좋아한다며. 도윤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할 말을 혀로 굴렸다. 희성이 차가운 시선으로 도윤을 쳐다봤다.

“…됐어.”

결국 하고픈 말을 삼켰다.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희성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도윤은 희성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희성의 감정과 방식은 모두 틀렸다. 이건 사람을 좋아한다는 감정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욕심내는 것과 같았다.

“방 다, 다시 돌려줘.”

“내가 왜.”

“그럼 난 어디에서 자?”

“네 방은 없어. 이제 내 방에서 자.”

“…….”

“앞으로도 계속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도 그럴 거니까.”

넌 원래 그렇게 하고 있었잖아. 도윤이 입안의 살을 깨물곤 욕실로 몸을 돌렸다. 아버지와 식사 한번 했다고 방이 없어졌다. 생일에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당연한 건데. 도윤에게는 그 당연함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희성에게 화가 났지만 그 화를 풀 수가 없었다. 세면대를 짚고 고개를 숙이자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떨어졌다.

그런 일이 있고 희성은 매번 자려고 누운 도윤을 올가미처럼 끌어안은 채로 잠이 들었다. 도윤은 벗어나려 뒤척였지만 그럴 때마다 허리를 꽉 끌어당겨서 자유로워질 수도 없었다. 마주 보고 눕게 하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목덜미에 닿는 숨에 소름이 돋았지만 도윤은 눈을 꾹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2년이 가까워지도록 자신에게 다정히 대해주고, 굶었을 때도 남몰래 챙겨주려 했었던, 그 후에도 식사시간마다 초콜릿과 간식을 챙겨서 올려주던 이모님이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다음날 점심쯤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신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쫓겨났다. 도윤은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집안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거나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남들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

날이 지나치게 맑았다. 가벼이 부는 바람은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었고 나무가 흔들리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아주 얇았고 근처에는 솜사탕과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몸이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대부분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뭐가 그리도 행복한지 내내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웃으며 도윤을 지나쳤다. 도윤은 눈앞에 펼쳐진 이 모든 것이 어쩐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희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자신의 옆에 희성이 없을 리가 없는데. 도윤이 길을 잃은 아이처럼 고개를 돌려댔다.

겁이 났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홀로 떨어졌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희성이 없으면 좋아해야 하는 것이 맞는 건데 이상하게 자꾸 겁이 났다. 현재 도윤의 상태는 누가 봐도 불안해 보였으나 사람들은 관심을 주지 않았다. 마치 투명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도윤이 느릿하게 걸음을 떼려다 자신을 지나쳐가는 아이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곤 이어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도윤아, 천천히!’

‘엄마!’

‘그러다 넘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렇게 달려와?’

‘엄마, 저 솜사탕 먹고 싶어요!’

‘사람들 많으니까 엄마 손 꼭 잡아야 돼, 알았지?’

‘솜사탕!’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꿈이구나.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이구나. 어린 도윤은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엄마는 아들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도윤이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떼어내 그들을 쫓았다. 솜사탕을 받은 어린 도윤은 눈이 접힐 정도로 웃고 있었다. 왼손으로는 엄마를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솜사탕을 쥔 어린 도윤에게 또 익숙한 사람이 다가왔다. 도윤은 뒷모습만 보고도 그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모습의 부모님과 어린아이가 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행복해 보였다.

‘도윤아 아빠도 아.’

‘…….’

‘조금만 먹을게.’

‘…진짜 쪼끔만 먹을 거예요?’

‘약속.’

‘…약속.’

작은 손과 커다란 손이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도윤은 웃지도, 울지도 않는 이상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결국 솜사탕을 한가득 뺏어 먹었고 어린 도윤은 울었다. 아빠가 밉다고 울었다. 어머니는 웃으며 새 솜사탕을 사주겠다고 어린아이를 익숙하게 달래주었다.

실제로 다리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나 꼭 무거운 추를 달아놓은 것 마냥 걸음을 옮기는 것이 힘들었다. 힘겹게 다가간 도윤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이제는 부를 수 없는 그 이름도 입에 담아보았다.

‘엄마….’

떨리는 손이 어머니에게 닿았다. 그러자 어머니에게 안겨있었던 어린 도윤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았다. 눈물을 방울방울 달고 자신을 보는 어린 도윤은 말이 없었다. 고개를 든 어머니도 말이 없었다.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도윤을 말없이 쳐다만 보았다. 무서웠으나 그 시선마저 그리웠다. 결국 꿈속에서의 도윤이 눈물을 터뜨렸다. 소리도 못 내고 우는 도윤에게 어머니가 다가왔다.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다 커버린 자신의 아들을 끌어안아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가족이 함께 있었는데 어머니를 끌어안자 자신과 어머니 둘만 남아버렸다. 도윤은 울었다. 어머니를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서, 안겨있어도 안기고 싶어서.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도윤은 보고 싶다고, 가지 말라고 중얼거리며 울었다. 그러나 자신을 끌어안아주던 손길이 사라졌다. 공원이었던 배경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다. 도윤이 울면서 애타게 엄마를 찾았다.

“…윤….”

“흐으….”

“…도윤….”

“엄마….”

“하도윤!”

어두운 배경이 사라졌다. 어둠 대신 보인 것은 희성이었다. 도윤이 축축해진 눈을 깜빡였다. 더 이상 꿈속이 아니었다. 지금은 현실이었다. 심장이 쿵쿵 뛰고 호흡이 힘들었다.

“천천히 숨 쉬어.”

“…끅….”

“천천히.”

“…….”

자다가 도윤이 앓는 소리에 깬 희성은 갑자기 울면서 엄마를 찾는 소리에 그를 깨웠다.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희성은 도윤이 진정되길 기다리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물 가져다줄 테니까 기다려.”

“…괜찮아.”

도윤이 코를 훌쩍이며 눈을 감았다. 내뱉는 숨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듯했지만 본인이 괜찮다니 희성은 다시 자리에 누워 도윤을 끌어안았다. 무슨 꿈을 꿨는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또 어머니가 나오는 꿈을 꿨겠지. 희성이 한숨을 쉬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

교실에 앉은 모두가 몇 달 뒤에 성인이 된다고 한들 지금 당장은 그저 열아홉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수능이 코앞이어도 다들 놀기 바빴고 공부를 하라고 준 자습시간에는 게임을 하거나 핸드폰을 봤다. 선생님들은 정신 좀 차리라고 잔소리를 해댔고 아이들은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었다.

요즘 도윤과 희성은 과외의 횟수를 늘리기도 했다. 원서도 선생님의 도움으로 별 어려움 없이 접수를 마쳤다. 그동안 희성이 원하는 대학과 전혀 다른 곳을 쓰려다 걸려 또 욕을 먹기도 했다. 두 사람은 꼭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 마냥 같은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희성만 붙고 자신은 다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직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1차 합격 결과는 학교에서 확인했다. 쉬는 시간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자신과 희성의 이름에 제발 떨어졌길 빌면서 갔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둘 다 1차 합격에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선생님은 이제 진짜 시작이라며 어깨를 두드려주었으나 전혀 기쁘지 않았다.

첫 시작부터 합격으로 시작한 덕분일까 지원했던 대학에서 대부분 1차 합격이란 결과를 얻어냈다. 이제 수능에서 최저를 맞추고 면접만 잘 본다면 최종 합격을 받을 수 있었다. 도윤은 붙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아이러니한 마음을 가지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수능이 다가올수록 날은 추워졌고 조용해질 거라 예상했던 학교 분위기는 더 어수선해졌다. 이미 수시에 붙고 면접까지 본 아이들은 복도로 나가서 놀거나 책상에 엎드려 자기만 했다. 선생님들과 오로지 수능을 보고 달리는 아이들에겐 그게 더 편했다. 도윤은 문제집을 뒤적이며 틀린 문제의 해답을 찾아보았다.

지난 1년은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서 원망스럽더니 올해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 1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교실은 수험장에 맞춰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었고 사물함도 텅 비어버렸다. 굳이 수능을 보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에겐 평소와 같았지만 도윤에게는 달랐다. 꼭 전학을 왔었던 첫날이 떠올랐다. 낯선 학교. 낯선 얼굴들. 텅 비어버린 교실을 둘러본 도윤이 걸음을 옮겼다.

생일을 아버지와 보낸 이후로 방이 없어진 도윤은 욕실을 갈 때 빼고는 모든 시간을 희성과 공유했다. 햄스터와 놀 때도, 침대에 엎드려 핸드폰을 할 때도, 낮잠을 잘 때도 모두. 희성과 공유해야 했다. 무엇을 하든지 따가운 시선이 따라왔다. 그게 불편하기는 했지만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남들이 일어났을 시간에 비슷하게 일어난 희성은 오늘도 등을 보이고 자는 도윤의 목덜미에 입술을 붙였다. 그 상태로 숨을 색색 쉬다가 눈을 감은 채로 도윤의 배를 문질렀다. 뒤에서 희성이 자신의 몸을 만지든 말든 도윤은 깊게 잠들어있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도윤의 살이 들어왔다. 살살 빨다가 잘근잘근 물면서 손으로는 말랑해진 유두를 만져보았다. 상처가 다 나았는지 그저 말랑하기만 했다. 희성이 촉, 촉. 입술을 붙였다가 떼곤 유두를 손톱으로 긁었다.

“…응….”

납작하고 말랑했던 유두가 꼿꼿해짐을 확인하고 아래로 빠져나온 손은 바지 위로 향했다. 아침이라 살짝 힘이 실린 것이 느껴졌다. 희성은 중심을 손바닥으로 둥글게 문질러보다 일어났다. 도윤을 마음껏 만지는 동안 잠이 다 깼다. 이제 슬슬 씻고 돌아와 도윤을 깨우면 될 것 같았다. 다시 평온하게 잠든 도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일어난 희성이 방을 빠져나왔다.

수능은 시작이 어렵지 그 뒤부터는 모의고사 같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과 끝날 때까지만 좀 긴장이 됐지 2교시부터는 정말 모의고사를 보는 것 같았다. 도윤과 희성은 여태 준비한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한 실력을 보여주며 수능을 보았다. 수능이 끝나니 조금 허무하기도 했다. 오늘 하루를 위해 그 많은 날들을 달려왔다는 것이 허무했다. 흩어지는 입김을 눈으로 좇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도윤이 희성을 따라 교문 앞에 대기 중인 차에 올랐다.

면접을 볼 때는 너무 떨려서 밤새 외웠던 것들도 다 까먹어버리고 일단 생각나는 대로 대답하고 봤다. 희성은 떨리지도 않는지 보기 전과 후가 똑같았다. 덜덜 떨면서 말한 것은 저 혼자였다. 항상 면접을 다 보고 나오면 왜 그런 말을 했지, 왜 준비한 대답을 거기서는 못했지, 하고 후회가 밀려들었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도윤은 어쩌면 면접을 잘못 본 것이 다행이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희성은 분명 면접을 잘 봤을 거고, 떨어진다면 자신만 떨어지는 거니까 그러면….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이런 생각만 하다 보니 나중에는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미 불합격을 받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희성의 합격 소식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듯 순조로웠고 그의 가족들도 고생했다는 말만 전했다. 그와 반대로 도윤에게는 선물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자신의 아들에겐 고생했다는 말만 전했던 주현과 호태는 도윤에게 노트북을 선물해 주기도 했고 용돈을 주기도 했다. 희준도 도윤과 희성에게 공평하게 나눈 금액으로 용돈을 주었지만 도윤에게는 필름 카메라를 하나 더 사주었다. 평소 카메라를 쓸 일도 없고 써본 적도 없어서 거절했었지만 어른이 주는 선물은 거절하는 게 아니라며 짐짓 엄한 얼굴을 보여주는 바람에 얼결에 받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는 또 단둘이 외식을 했다. 이건 희성의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이야기였다. 이렇게 좋은 날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야지요. 웃으며 꺼낸 말에 희성은 미간을 좁혔고 도윤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고 카페에 간 도윤은 조각 케이크 하나를 두고 조촐한 축하파티를 했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자 도윤은 희성과 함께 납골당을 찾았다. 오면서 사 온 꽃은 그 앞에 잘 놓아두었다. 어머니의 사진과 그 옆에 함께 놓인 가족사진을 보며 힘없이 미소를 지은 도윤이 한참을 서있기만 하는 동안 희성은 밖으로 나와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울이 온 만큼 입을 열기만 해도 입김이 풀풀 흩어졌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조용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자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희성이 고개를 돌리자 애써 눈물을 닦고 표정을 정리하며 나오는 도윤이 있었다.

“가자.”

“…….”

“…안가?”

“가.”

돌계단을 밟는 도윤은 남들이 보기엔 괜찮아 보였으나 희성은 그를 보며 위태로움을 느꼈다. 기다리는 내내 따뜻함을 유지시킨 희성의 손이 도윤의 손을 잡았다. 처음엔 그냥 잡았다가 자연스레 깍지를 꼈다.

“하도윤.”

“응.”

“어머니한테 뭐라고 했어?”

“…그냥….”

“그냥 뭐.”

“보고 싶다고…. 나 대학도 가고, 잘 지내고 있으니까….”

작은 목소리였으나 희성에게는 충분했다. 깍지를 낀 손에 힘이 실렸다가 코트 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다. 주머니 속으로 들어온 도윤의 손은 잠잠했고 희성은 힘을 실었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했다. 돌계단을 내려가는 걸음이 느렸다. 도윤은 목에 둘둘 감은 목도리에 입술과 코를 파묻고 바닥만 내려다보며 걸었다.

도윤과 희성은 20살이 되었다. 아직까지 졸업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 법적으로 성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된 것이다. 두 사람에겐 새로운 집이 생겼고, 희성은 졸업선물로 차를 선물 받았다. 어른들은 그래도 두 사람이 졸업을 하고 그 후에 독립을 할 것을 요구했다. 희성은 하루빨리 집을 나가고 싶어 했고 도윤은 시간이 조금만 더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집에서 나가게 된다면 이제 퇴근을 하고 돌아온 아버지를 맞이할 수도 없었고, 아버지와 저녁을 먹지도 못할 것이 뻔했다. 이사를 갈 곳은 오피스텔이었고 지금처럼 산책을 할 수 있는 정원도 없었다. 희성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면 현관의 근처도 가지 못할 터였다.

다른 짐들은 모두 새로 사들였다고 했으니 자신이 가져갈 것은 몸과 옷, 햄스터가 다였다. 옷도 싹 다 버리고 새로 사주겠다는 말에 아직 한 번도 입지 못한 것들이 널려있는데 왜 버리는 거냐며 막았기에 겨우 지켜낸 것이었다. 희성은 햄스터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안 그래도 병원에서 햄스터의 수명이 길지 않다는 것을 확인받고 신경이 쓰이는데 희성마저 햄스터를 곱게 보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을 해봤을 때 병원에서 알려주었던 기간이 많이 남지도 않아서 더 심란했다.

이미 개어져 있는 옷들은 그대로 상자에 넣어두고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정리하느라 서있는 사이 방으로 들어온 희성이 허리를 끌어안았다. 도윤이 옷을 대충 접어 내려놓고는 허리에 감긴 손을 떼어내려다 포기했다.

“나 아직 정리 중이잖아….”

“그걸 왜 네가 해.”

“내 옷이니까.”

“사람을 써.”

“이 정도는 내가 해야…아….”

얌전히 허리에 감겨진 왼팔과는 달리 자유로워진 오른손이 바지 속으로 들어왔다. 도윤이 옷걸이에 걸린 옷을 쥐고 고개를 저었다.

“하, 하지 마.”

“또 언제 이 집에서 해보겠어.”

“하기 싫어, 하기, 읏.”

“싫어?”

“싫어….”

“그래.”

싫다는 말 한마디에 손이 쑥 빠져나갔다. 도윤이 눈을 깜빡이며 숨을 내쉬다가 고개를 돌렸다. 희성은 도윤의 엉덩이를 몇 번 주무르다가 톡 치고는 드레스 룸을 빠져나갔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고 사람이 달라졌을 리는 없었다. 도윤이 찝찝한 기분에 다시 옷 정리를 시작했다.

졸업식엔 희성의 가족과 도윤의 아버지가 모두 참석했다. 명색이 졸업식인데 꽃다발이 없으면 되겠냐며 교문 앞에서 파는 것이 아닌 딱 봐도 값이 꽤 나가 보이는 풍성한 꽃다발이 도윤의 품에 안겨졌다. 어색하게 자신이 준 꽃다발을 안고 서있는 도윤을 보던 희준이 결국 크게 웃으며 머리를 흩뜨려주었다. 희준의 옆에 서있던 연석이 둘에게 손짓했다.

“사진 찍어줄게요.”

“사진은 제가 찍어 드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찍고 또 찍으면 되죠.”

“그럼…. 그럴까?”

희준이 웃으며 도윤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꽃다발을 품에 안은 도윤이 머뭇거리며 희준을 올려다봤다.

“나 말고 앞에 봐야지.”

어깨에 올라왔던 손이 도윤의 볼을 콕 찔렀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본 도윤이 카메라를 보며 웃었다. 희준은 도윤이 웃는 것을 보며 따라 웃었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몇 번 들려오고 연석은 사진이 잘 나왔다며 웃었다.

“근데 희성이는?”

“어머니랑 담임선생님한테 가셨어요….”

“그래? 하긴, 있었으면 이렇게 사진 못 찍었지. 그치?”

“네에….”

“아버지랑 둘이 찍어줄게. 서봐.”

“아, 저….”

“왜?”

“꼬, 꽃다발…감사합니다….”

도윤이 고개를 꾸벅였다. 희준은 별것도 아니라며 도윤의 볼을 손등으로 문지르다 뒤로 물러났다. 희준의 빈자리를 아버지가 채웠다. 도윤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으며 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제 도윤이 혼자 찍어줄게.”

“혼, 혼자요?”

“교복은 오늘만 지나면 이제 입을 일도 없어.”

“어떻게 찍어요?”

“그냥 웃기만 해.”

“아….”

자신이 벗은 패딩을 안고 옆으로 비켜난 아버지를 힐끔거리다 꽃다발을 고쳐 안은 도윤이 희준을 쳐다봤다. 확실히 교복이 잘 어울리네. 희준이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찰칵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도윤이 어색한 몸짓으로 다가가 기웃거렸다.

“나중에 보내줄게.”

“감사합니다….”

“예쁘다, 도윤아.”

“…감, 감사합니다.”

도윤이 패딩을 입는 동안 꽃다발을 받아준 희준이 멀리서 다가오는 익숙한 얼굴에 입꼬리를 올렸다.

“희성이 온다.”

“아.”

패딩을 입고 꽃다발을 다시 받은 도윤이 뒤를 돌아보자 빠르게 다가온 희성이 그 꽃다발을 뺏어다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당황한 도윤이 희준의 눈치를 살폈지만 희준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아까운 꽃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꽃다발을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려던 도윤의 품에 새로운 꽃다발이 안겨졌다. 희준이 준 것만큼이나 풍성하고 예쁜 꽃다발이었다. 희성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느라 상황을 알 리 없는 아버지가 바닥에 처박힌 꽃다발을 주워 눈을 툭툭 털어냈다.

“둘이 서봐.”

“꺼져.”

“마지막인데 사진이라도 찍어야지.”

도윤이 새로운 꽃다발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예쁘다.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희준에게 욕이라도 하려던 희성이 옆에서 냄새를 맡고 있는 도윤을 쳐다봤다.

“내 걸로 찍어.”

“그래, 서봐.”

“하도윤 이리 와.”

“으응.”

얌전히 희성의 옆에 서서 자신을 쳐다보는 도윤을 보던 희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뭘 웃어. 희성이 턱을 비틀다 옆을 돌아봤다. 희준이 준 꽃다발을 치웠음에도 무언가가 자꾸 거슬렸다. 대체 뭘까. 희성이 골똘히 생각해 보다 꽃다발을 뺏어들었다.

“왜?”

“패딩 벗어.”

“…또?”

“또?”

아. 희준과 사진을 찍었다고 털어놓으면 희성이 또 어떻게 나올지 몰라 대꾸도 없이 급하게 패딩을 벗어냈다. 패딩 아빠 줘. 두 사람이 사진을 찍는 것을 구경하던 아버지가 패딩을 받아 갔다. 이제 자신은 교복 차림이었으나 희성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왜 나만….

“…너도 코트 벗으면 안 돼?”

“왜.”

“나만 졸업하는 거 아니잖아.”

“…….”

잠시 망설이던 희성이 코트를 벗어다 희준에게 던졌다. 던져진 코트를 가뿐히 받아낸 희준이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하나, 둘…. 숫자를 읊는 목소리에 꽃다발을 안은 도윤이 앞을 쳐다봤다. 찰칵, 찰칵. 사진이 꽤 여러 번 찍히는 소리가 났다.

“됐어, 이제 옷 입어.”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이는 도윤과 달리 희성은 핸드폰을 낚아채듯 가져와 사진을 확인했다. 눈이 쌓인 학교를 배경으로 웃고 있는 도윤을 확대해 보았다. 까만 머리카락 아래로 하얀 볼은 추위에 얼어 살짝 붉어져 있었으며 어두운 교복을 입고 알록달록한 꽃다발을 끌어안은 채 웃고 있는 도윤의 모습은 예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희성은 패딩을 입으려는 손을 잡아다 다시 운동장에 세웠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풀풀 흩어졌다.

“나 추운데….”

꽃다발을 들고 있느라 손이 빨갛게 얼었다. 도윤이 눈알을 굴리다 웃으라는 말에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찰칵 소리가 너무 많이 나서 조금 민망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보았고 그 뒤에 서있는 희준은 대체 언제까지 찍을 생각인지 궁금하다는 얼굴로 희성을 보고 있었다. 차라리 자신이 한번 크게 웃어주고 끝내는 게 빠를 것 같아 자세를 고치고 맑게 웃은 도윤이 핸드폰을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웃음에 희성이 멈칫했다. 핸드폰을 내리고 웃는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희성이 다시 사진을 찍어댔다. 도윤이 웃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희성은 곧장 배경화면부터 바꾸고 봤다. 춥다는 말만 반복하며 패딩을 입은 도윤이 다시 꽃다발에 코를 묻었다. 좋은 냄새. 희성은 졸업을 축하한다는 아버지의 말에 눈까지 접어가며 웃는 도윤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졸업하는 날엔 다 같이 밥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아버지랑 나는 다시 회사 들어가야 해서.”

“그럼 꺼져.”

“살다 보니 네가 졸업을 하는 날이 온다.”

“헛소리 좀 그만해.”

“열심히 키워놨더니….”

희준이 혀를 차다가 자신들을 돌아보는 도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꽃다발을 안고 총총 달려온 도윤이 코를 훌쩍였다.

“형 이제 가볼게.”

“오늘 감사했습니다.”

“이건 용돈. 둘이 맛있는 거 사 먹어.”

“어…. 안 주셔도 되는데….”

“어른이 주면 어떻게 하라고?”

“…감사합니다.”

용돈을 받고 고개를 꾸벅이는 도윤을 향해 웃어준 희준이 손을 흔들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 아빠도 다시 회사 들어가셔야 한대.”

“응.”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

“집.”

희성의 부모님과 도윤의 아버지는 운동장을 벗어나는 내내 아쉽다며 입을 열었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다며 웃는 어머니를 한번 안아준 희성이 허리를 숙여 열린 창문 사이로 인사를 건넸다. 희준의 차가 먼저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그 뒤를 이어 도윤의 아버지와 희성의 부모님이 탄 차가 빠져나갔다. 너무 추워서 자꾸 콧물이 나왔다. 도윤이 훌쩍거리며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올라 몸을 떨었다.

2년간 달렸던 길이 아닌 낯선 길을 달려 도착한 새로운 집에 도윤이 꽃다발을 끌어안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에도 어색한 공간에 눈알만 굴렸다. 20층. 평생 이렇게 높은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품에 안긴 꽃다발에서 자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희성은 새로운 문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비밀번호 1223.”

“1223?”

“까먹지 마.”

“…1223?”

“내 생일이니까. 절대 잊어버리지 마.”

도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라도 자신을 새겨둬야만 도윤이 잊어버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정한 비밀번호였다. 문이 열리자 지나치게 넓은 현관이 눈에 들어왔다. 도윤의 입이 벌어졌다. 겨우 두 사람이 살 집인데 현관부터가 너무 넓었다. 이제부터 자신이 살 공간이었지만 아직은 남의 집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도윤이 신발을 벗으며 집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 후에야 신발을 벗은 희성이 두리번거리는 고개를 잡아다 입술을 부딪쳤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놀란 도윤의 품에서 예쁘게 포장된 꽃다발이 떨어졌다. 읍, 으읍! 잡아먹히는 것 같은 입맞춤에 얼굴을 찡그린 도윤이 패딩을 벗겨내는 손에 고개를 틀었다.

“뭐, 하, 뭐야!”

“아까부터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

“아니, 잠깐, 아, 희성아 잠깐….”

“이제 여기엔 우리 둘밖에 없어.”

“읏, 잠까안….”

바닥으로 떨어진 패딩이 뒷걸음질을 치던 발에 밟혔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가 놓고 도윤을 이끌어 방으로 들어온 희성이 웃으며 코트를 벗었다. 다리에 무언가가 닿은 것 같더라니 침대였던 모양이었다. 순간 뒤로 푹 꺼지는 감각에 눈이 질끈 감겼다가 떠졌다. 희성이 벗어던진 교복 마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도망가려 몸을 일으킨 도윤은 다시 닿아오는 입술에 숨을 참았다.

목의 살을 빨아들이는 힘에 이불을 쥐고 끙끙거린 도윤이 위로 올라와 턱에 쪼듯이 뽀뽀를 남기는 희성을 밀어냈다.

“그만, 그만….”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마이와 조끼를 빠르게 벗긴 희성이 넥타이까지 아래로 쭉 잡아당겼다. 단추를 하나하나 풀고 있을 여유까지는 없어서 뜯듯이 와이셔츠를 풀어헤친 희성이 안에 꼼꼼히도 받쳐 입은 흰 티셔츠에 미간을 구겼다. 급해죽겠는데 뭘 이렇게 많이 껴입었는지 애가 탔다. 희성으로 인해 쭉 올라간 티셔츠가 도윤의 입술에 물렸다. 분홍빛의 유두를 보고 있자니 입에 침이 고였다. 아래가 터질 것 같았다. 곧장 유두를 문 희성이 쪽쪽 빨기 시작했다. 혀에 닿는 딱딱함에 아예 손으로 가슴을 모아 크게 머금었다.

“읏, 아, 아….”

티셔츠를 뱉어낸 도윤이 울상으로 가슴팍을 빨고 있는 희성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양쪽 모두 희성의 혀와 손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릎을 세우고 우는소리만 내던 도윤이 콱 깨무는 이에 결국 눈물을 흘렸다.

“흐으, 아파, 따가워….”

“하….”

“따가, 흐, 워어….”

피가 몰려 붉어진 유두를 만족스럽게 내려다보곤 손으로 굴려보았다. 도윤이 고개를 저으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희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편 또한 쪽쪽 빨다가 깨물기를 반복했다. 주변의 살도 잘근잘근 씹어보고 빨아올려 자국을 남겼다. 아래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도윤이 손으로 자신의 유두를 만져 확인했다.

“따가워, 희성아, 끅, 나 따가워….”

아래를 비비며 도윤을 살살 자극하던 희성이 그 손을 쳐내고 아까부터 방해만 되던 넥타이를 옆으로 넘겼다. 혀로 붉어진 유두를 핥았다가 부드럽게 빨아 당기자 흣, 으으, 흐으…. 신음이 터진다. 녹음을 해서 매일 틀어두고 싶을 만큼 예쁘고 귀여운 소리였다. 반대편 유두가 가라앉을까 봐 손을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엄지와 검지로 동글동글 굴려보기도 하고 손톱으로 꾹꾹 누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도윤은 울면서 그만해달라고 빌었지만 희성은 귓등으로도 들어주지 않았다.

“아! 희, 희성아 그만, 아으…그만, 그만….”

“왜.”

“아파, 으응, 아…파….”

난 또 뭐라고. 희성이 개의치 않고 다시 꼿꼿하게 선 유두를 물었다. 운동장에서 사진을 찍을 때부터 물고 빨고 싶었다. 혀가 아플 정도로 빨아들이던 희성이 우는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교복을 입고 침대에 엉망으로 흐트러져있는 도윤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희성은 양손으로 울긋불긋 물든 가슴을 꽉 쥐어보았다. 운동을 하지 않아 살이 말랑했다. 희성이 씩 웃고는 다시 유두를 찾았다.

“흑….”

다리를 바르작거리던 도윤이 가슴팍에서부터 끊임없이 찾아오는 미묘함에 눈을 감았다. 희성이 조금만 더 만져준다면 꼭 사정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뒤를 빨아주었다고 뒤로만 갔었던 때가 떠올랐다. 도윤이 눈물을 흘리며 희성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입에서는 막지 못한 신음이 자꾸만 튀어나왔다. 발가락이 꼼지락꼼지락 바쁘게도 움직였다.

가슴을 빨리면서 희성이 뒤를 빨아줬을 때를 생각하고 있자 무서움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희성이 무릎으로 아래를 문질렀다. 허리가 움찔거렸다. 도윤이 신음과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흐, 흐으…희…성아…끅….”

속옷이 젖었음이 느껴졌다. 무서워…. 도윤이 헐떡이며 희성을 밀어냈다. 유두를 빨고 꼬집으며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즐기던 희성이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였다. 움찔움찔 떨리는 허리에 교복 바지를 벗기자 속옷이 젖어있었다.

“…뭐야?”

“읏…흑…내가, 내가 그만…하라고…했, 끅….”

“너 지금 싼 거야?”

“몰…라….”

“뭘 몰라.”

속옷 위로 손바닥을 문지르자 축축함이 느껴졌다. 희성은 속옷을 쑥 내리고 축축한 성기를 만져보았다. 한두 번 만지기만 했음에도 손가락이 미끌거렸다. 희성은 혀를 내어 손가락을 핥고는 자신의 바지를 벗어던졌다.

“나 그만할래, 이제 그만할래.”

“너만 싸면 다야?”

“다야! 다니까 그만할래, 나 안 하고 싶어…안 할래…!”

와이셔츠에 속옷만 입은 채로 맞닿은 아래를 비비던 희성이 도윤의 것을 몇 번 더 쓸어 손가락을 적셨다. 마음 같아서는 풀지도 않고 일단 쑤셔 넣기부터 하고 싶었다. 도윤의 정액으로 미끌거리는 손가락을 넣고 대충 휘젓던 희성이 몸을 숙여 입술을 찾았다. 온 얼굴로 울었는지 입술이 짭짤했다. 무식하게 넣은 손가락을 억지로 벌리자 고통이 일었다. 도망가길 포기한 혀를 빨다가 떨어진 희성이 손가락을 빼고 도윤의 손을 잡았다.

“풀어.”

“뭐, 뭘?”

“네 손으로 풀어보라고.”

도윤의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천장을 보고 누운 희성이 다리를 벌렸다.

“내가 하면 또 피 볼 것 같으니까 네가 하라고.”

“…어, 어떻게 해야 되는데?”

“손 줘봐.”

태연한 시선과 불안한 시선이 마주쳤다. 희성이 느리게 뻗어오는 손을 잡아 입에 넣고 질척하게 빨다가 뱉어냈다.

“이제 넣어.”

“아플, 아플 것 같은데….”

“그럼 빨든지.”

“…넣을게….”

당장이라도 마음을 바꿔서 뒤를 빨라고 할까 봐 얼른 손가락을 아래에 가져다 댄다. 항상 희성이 직접 풀어 왔기에 그동안 이쪽으로 손가락을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도윤이 눈치를 보며 검지를 문지르다 넣어보았다.

“하나 가지고 언제 다 풀어.”

“아니, 천천히 해야….”

“짜증 나니까 답답하게 굴지 마.”

“…….”

손가락 하나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 같았다. 도윤이 손가락을 하나 더 늘렸다. 열을 머금고 있는 내벽이 느껴지자 손가락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굳었다. 고개를 들어 멈춰버린 도윤을 본 희성이 해탈한 듯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천년의 욕정도 다 식게 만들어버리는 능력에 기가 찼다. 차라리 풀지도 않고 넣어버리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빼.”

“어?”

“빼라고.”

“아니, 나는 그러니까, 어….”

작게 한숨을 쉰 도윤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뻑뻑해진 내벽을 누르는 손가락에 희성이 혀로 마른 입술을 쓸었다. 도윤은 손가락을 움직여 아래를 푸는 내내 희성의 반응을 살폈다. 희성이 미간을 좁히면 손을 뺐고 낮은 신음을 흘리면 천천히 움직였다. 자신이 위에서 풀었더라면 이미 도윤의 것을 넣고 한 발은 뺐을 시간이었다.

“이제 넣어.”

“벌써…?”

“그 정도면 됐어.”

손가락을 무는 힘은 전혀 준비가 된 것 같지 않은데 넣으라는 말에 당황했다. 손가락을 느릿하게 빼내자 아래가 움찔거리며 새로운 것을 찾았다. 희성은 도윤이 삽입하기 편하게 알아서 다리를 벌려주었다.

“안 들어갈 것 같은데….”

“야.”

“…알, 알았어.”

주춤거리며 귀두를 입구에 맞춘 도윤이 조심스럽게 삽입을 이어갔다. 확실히 아직은 도윤의 것을 받아내기엔 벅찬 감이 있었다. 희성이 호흡을 고르며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을 즐겼다. 귀두가 구멍을 벌릴 때는 조금 불쾌했고, 기둥이 들어서면 소름이 돋았다. 하…. 희성이 기분 좋은 신음을 뱉을 때 느릿하게 자신의 것을 넣던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내벽이 기둥을 감싸는 느낌은 2년이 지나도록 익숙해지지 않았다.

“읏….”

“도윤아, 끝까지 넣어.”

“잠, 잠깐…으응….”

고개를 숙인 도윤을 올려다보자 감은 눈이 보였다. 희성은 목을 끌어안아 입술을 물었다. 두 몸이 겹쳐지자 도윤의 것이 더 들어오면서 아래가 벌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희성은 목이 마른 사람처럼 도윤의 혀를 빨다가 타액을 삼켜냈다.

“으응, 읏….”

바지와 속옷을 모두 벗어버린 희성과 달리 도윤은 아직 모든 교복을 입고 있었다. 맨살에 닿는 바지의 감촉에 희성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리를 도윤의 허리에 감고 당겼다. 하…. 잠시 떨어진 입술 사이로 두 사람의 신음이 흩어졌다. 입술이 떨어지자 도윤은 기다렸다는 듯 희성의 어깨에 이마를 비볐다.

“흐으, 이상, 해….”

“뭐가 이상한데.”

“그냥, 흣…다….”

삽입만으로도 끙끙거리는 도윤을 끌어안고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 희성이 밭은 숨을 내쉬었다. 너무 좋아서 소름이 돋았다. 장기를 누르는 귀두도 좋았다. 고개를 틀어 도윤의 귓불을 물자 허리가 움찔한다. 아, 좋아…. 유두를 빨았던 것처럼 귓불을 쪽쪽 빤 희성이 도윤을 뒤로 밀치고 위에 올라탔다. 그제야 도윤의 것이 뿌리까지 들어왔다. 희성의 몸이 살짝 떨렸다.

“희성, 희성아, 잠깐, 흐윽, 나, 나….”

“읏, 하도윤 너, 교복…버리지 마.”

“아! 아, 흐으, 으….”

손을 뒤로 뻗어 도윤의 허벅지를 쥐고 허리를 들썩인 희성이 바지를 쓸었다. 삽입을 하는 동안 제자리를 찾은 티셔츠에 퉁퉁 부은 가슴이 보이지 않아 좀 거슬렸으나 그건 나중에 괴롭혀주면 되는 일이었다. 자신은 와이셔츠만 겨우 걸치고 있는데 아래에 있는 도윤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희성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몸을 일으켜 삼켰던 것을 쭉 빼내면 내벽은 알아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 좁아지려 했다. 희성은 그 좁은 길에 다시 도윤의 것을 밀어 넣으며 아래를 조였다. 안 그래도 빡빡했던 내벽이 더 달라붙자 도윤은 힘도 못 쓰고 울었다. 눈 꼬리를 따라 흐르는 눈물도 아깝다는 듯 혀로 핥은 희성은 볼을 깨물어 보다 다시 귓불을 쭉쭉 빨았다.

붉어진 귓불이 예뻤다. 희성은 실실거리며 귀에 입을 맞췄다. 몸을 숙이고 있느라 희성의 것이 도윤의 배에 딱 붙었다. 스스로 성기를 삼켜내고 뱉기를 반복하던 희성이 배와 쓸리며 느껴지는 성감에 탁한 숨을 뱉었다. 꼭 박히면서 박는 느낌이었다.

“아…하도윤….”

“응, 으응….”

허리를 몇 번 더 움직이며 도윤의 배에 문지르던 희성이 손을 넣어 기둥을 쓸었다. 너무 좋아서 발가락이 굽었다. 타액을 삼키지도 못하고 흘려보내는 도윤의 입술을 물고 자위를 시작한 희성이 혀를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도윤이 미약하게나마 혀를 쪽쪽 빨았다. 성기를 쓸어내리는 손이 더 빨라졌다. 희성은 도윤의 아랫입술을 콱 깨물며 사정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벅찬 숨이 서로에게 쏟아졌다. 희성은 몸을 일으켜 하얀 배에 쏟아진 정액을 골고루 펴 발랐다.

침대 헤드에 앉아 지친 듯 희성의 어깨에 기대 있던 도윤이 들썩이는 허리를 잡았다. 이미 세 번의 사정을 마친 탓에 잠시 쉬기로 했으면서 그새를 못 참고 움직이는 희성의 힘을 버틸 수가 없었다. 빼는 건 싫다고 해서 삽입을 한 채로 잠깐 숨을 고르던 도윤이 어깨에서 볼을 떼어냈다. 희성은 이제 와이셔츠도 입고 있지 않았지만 자신은 아직도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더웠다. 이제 그만하고 싶기도 했고…. 도윤이 코를 훌쩍이며 희성을 올려다보았다. 희성의 안에는 자신의 것과 자신이 두 번이나 사정한 것들이 들어있었다. 희성이 힘을 줬다가 풀며 도윤의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읏, 그만하면 안 돼…?”

“응.”

“이제 그만하고 싶어….”

“언제는 더 하고 싶었던 적 있었어?”

“움, 직이지, 흐윽….”

이제 다 쉬었나 보네. 손가락으로 도윤의 유두를 튕기며 움직인 희성이 눈을 질끈 감는 도윤을 쫓았다. 이제 정말로 온종일 도윤과 단둘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2년 동안 그토록 바라고 또 바랐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벅찬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희성은 도윤의 머리카락을 쥐고 뒤로 당겨 입술을 머금었다.

희성의 격한 움직임에 도윤은 손을 쓰지도 못하고 또 안에 정액을 쏟아냈다. 눈을 뜰 힘도 없어서 가쁜 숨만 색색 쉬며 희성의 가슴팍에 머리를 콕 박고 있던 도윤은 와이셔츠를 벗기는 손에 눈을 떴다. 교복에 그렇게 집착을 하더니 이제 좀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도윤의 와이셔츠가 바닥에 떨어지고 티셔츠마저 벗겨졌다. 옷 하나를 벗는 것도 힘이 들었다. 도윤은 목이 말라 침을 삼켰지만 입안이 말라있어서 해결이 되질 않았다. 거슬리는 것이 사라지자 그제야 상처가 나고 붉게 열이 오른 유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희성이 손톱을 이용해 유두를 살살 긁어보았다. 움찔움찔. 도윤이 힘없는 고갯짓을 했다.

“흐, 안 돼….”

손을 올리지도 못하는 도윤을 내려다보며 이마에 입을 맞춘 희성이 성기를 쭉 빼냈다가 다시 뿌리까지 삼키며 앉았다. 오랜 삽입과 여러 번의 사정으로 녹진해진 내벽이 도윤의 것을 쭉쭉 빨았다. 능숙하게 아래를 조이며 기둥을 주물러주자 겨우 매달려있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만…좀…해….”

“흠.”

“나 방금, 방금 했, 하읏, 했잖, 흑…아….”

아래는 이미 도윤의 것에 맞춰 벌어져있었다. 희성이 고개를 숙여 도윤의 목을 씹었다가 놓아주었다. 하얗기만 했던 목은 독한 모기에 물린 것처럼 새빨간 자국이 한가득이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상체도 마찬가지였다. 유두는 퉁퉁 부어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깨물리고 빨린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기둥을 타고 흐르는 정액이 느껴졌다. 그게 아까워서 아래를 조인 희성이 엄지로 유두를 문지르며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아, 그만….”

“자꾸 그만하란 소리만 할 거면 뒤처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차라리 기절을 해.”

“그게 무슨, 아흣…!”

“싫으면 입만 벌리고 있어.”

“흑, 나, 나 화장실…끅, 화장실 가고 싶어, 읏, 아아!”

“그거 아니잖아.”

“아니야, 화장, 화장실 맞아, 그으만…!”

익숙해진 내벽은 엉뚱한 곳을 찔러도 성감을 가져왔다. 위로는 유두를 문지르고 아래로는 내벽을 이용해 도윤의 것을 자극했다. 도윤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 싫어…! 입만 열었다 하면 쏟아지는 신음에 싫다는 말도 못 하고 숨을 삼킨 도윤이 몸을 떨었다. 아래가 꽉 차고 틈으로 물이 줄줄 쏟아졌다. 희성이 허리를 떨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벌어진 아래로 머금고 있던 물이 침대를 적셨다. 헐떡이던 도윤의 몸에 힘이 빠졌고 뒤통수가 헤드에 닿았다. 도윤은 아까 희성이 했던 말처럼 까무룩 정신을 놓고 말았다.

도윤의 몸을 끌어다 침대에 눕힌 희성이 뻐끔거리는 아래에 기분이 나쁜 듯 미간을 좁혔다가 도윤의 허벅지에 입술을 묻었다. 잔뜩 씹힌 상체와는 달리 하체가 깨끗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힘이 없는 다리를 벌리고 허벅지 안쪽을 사탕 빨 듯 머금고 빨아 자국을 만들어냈다. 촉, 촉. 쪽. 붉은 흔적 위에 입을 맞추고 다시 살을 머금은 희성이 이로 살살 긁어보았다. 정신을 잃은 도윤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지만 즐거웠다. 허벅지에 위치한 점도 쪽쪽 빨았다. 기분 탓이겠지만 도윤의 살은 다디 달았다. 희성이 살을 조금 더 세게 빨아보았다.

기절을 한 도윤을 가지고 노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정신을 놓은 도윤은 자신이 뭘 하든 끙끙거리기만 할 뿐 깨어나지 않았다. 희성은 오늘도 기절한 도윤의 다리를 붙잡아 어깨에 걸쳤다. 익숙하게 무릎을 끌어안고 성기를 끼운 후 삽입하듯 움직였다.

“읏….”

말랑한 살에 끼워진 성기가 앞뒤로 빠르게 왕복운동을 했다. 자신이 현재 무슨 짓을 당하는지도 모르고 잘만 자는 도윤을 내려다보며 삽입을 이어간 희성이 무릎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도윤의 내벽만큼은 아니지만 성기를 품는 허벅지에 기분이 좋아 달뜬 숨을 터뜨린 희성이 밀려드는 사정감에 허벅지를 놓아주었다. 빳빳한 성기를 주무르며 도윤의 얼굴에 자리를 잡은 희성이 입술을 깨물고 자위를 했다.

“후….”

투둑. 희성의 것이 도윤의 입가에 쏟아졌다.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탓에 입안으로도 정액이 주르륵 흘러들어갔다. 몇 번을 더 쓸어 올리며 남은 것을 모두 쏟아낸 희성이 엄지로 입술에 묻은 정액을 문지르다 입술을 벌려 귀두를 넣어보았다. 입가에는 하얀 정액을 묻히고 귀두를 오물오물 머금는 모습을 보고 있자 또 힘이 들어갔다. 희성이 성기를 반이나 쭉 밀어 넣었다. 따뜻한 입안과 말캉한 혀가 서툴게 기둥을 빨았다. 너무 좋아서 욕이 절로 나왔다. 희성은 천천히 성기를 더 넣어보다가 찡그려지는 얼굴에 다시 빼주었다.

희성은 자신에게 혹사당한 허벅지를 문질러주다 그 위로 잘게 뽀뽀를 남겼다. 희성의 성기에 쓸린 허벅지는 새빨갰고 그 위로는 정액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도윤이 자는 동안 몇 번의 사정을 마친 희성의 탓이었다. 점심쯤 집에 들어온 것 같은데 창밖이 어두웠다. 일단 씻기고 좀 재운 다음에 저녁을 먹으면 되겠다 싶어 축 늘어진 도윤의 목과 다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몸이 들리자 도윤이 으응, 하고 가슴팍에 이마를 비비적댔다. 그 모습을 보니 또 아래에 힘이 들어갔지만 희성은 일단 참아보기로 하며 욕실로 향했다.

***

쉬지도 않고 달려드는 희성을 감당하느라 피곤했던 도윤은 점심이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1시를 넘기면 슬슬 깨워볼까 했는데 다행히 알아서 눈을 떴다. 이미 먼저 일어나 씻고 간단하게 아침까지 먹은 희성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애쓰는 도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귀여워. 볼에 뽀뽀를 남긴 희성이 입을 벌려 볼을 깨물어 보았다. 으응…. 도윤이 눈을 감고 손을 휘저었다. 희성은 도윤을 끌어안고 머리카락에 코를 비볐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희성에게서 벗어난 도윤은 바닥에 발을 내리다 빨갛게 쓸려있는 허벅지를 확인했다. 하아…. 또 자신이 기절한 사이 희성이 무슨 짓을 했는지 허벅지가 따가웠다. 희성은 관계가 끝나면 항상 자신에게는 윗옷과 속옷만 입히곤 했는데 오늘도 다를 게 없이 똑같다. 고개를 돌려 자신을 관찰하듯 보는 희성의 하체를 확인한 도윤이 마른 세수를 했다. 분명 세트로 나온 옷일 텐데 셔츠는 자신이 입고 바지는 희성이 입고 있었다.

“…바지 줘….”

“없어.”

“있잖아….”

“네가 찾아서 입어.”

“…….”

도윤의 입에서 한숨이 쏟아졌다. 오늘도 잠옷 사이즈는 도윤의 몸보다 컸다. 침대에서 일어나니 셔츠가 엉덩이를 가렸다. 도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옷을 찾다가 포기했다. 아마 드레스 룸까지 가야 할 듯싶었다. 아직도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며 방을 나선 도윤은 욕실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제 들어오자마자 희성과 침실로 들어오는 바람에 아직 집 구조를 몰랐다.

겨우 찾은 욕실에 들어와 양치를 하고 세수를 마친 도윤이 불을 끄곤 문을 닫았다. 아까보다는 훨씬 멀쩡해진 정신에 그제야 집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목을 긁적이며 집을 둘러본 도윤은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방마다 열려있는 문을 쳐다봤다. 이상했다. 왜 전부 문이 열려있지? 조심스럽게 문으로 다가간 도윤은 손으로 벽을 만져보다 깨달았다. 문을 전부 열어둔 것이 아니라 문이 아예 없다는 것을. 모든 방이 그랬다. 문이 달려있는 곳은 현관과 테라스, 욕실이 전부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려 방으로 향하던 걸음이 천장을 올려다봄과 동시에 또 굳었다. 구석에 위치한 까만 물체에서 빨간빛이 반짝였다. 도윤이 급하게 주변 천장을 확인했다. 그 까만 물체는 거실에도 있었고 드레스 룸에도 있었고 서재에도, 주방과 현관에도, 하다못해 테라스에도 있었다. 셔츠와 속옷만 입고 있다는 것도 까먹고 테라스를 둘러본 도윤이 빠른 걸음으로 방에 들어와 천장을 살폈다. 희성은 헤드에 기대앉아 도윤을 구경했다. 빨간빛을 깜빡이는 물체는 방에도 있었다.

“구경은 다 했어?”

“…너, 너….”

“처음으로 같이 살 집이라 신경 좀 써봤는데. 어때?”

“저거, 저게 대체 뭐야?”

“뭘 것 같은데?”

느긋하게 앉아있던 희성이 일어나 다가왔다. 도윤은 떨리는 눈동자를 굴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네가 보이는 곳에 없으면 기분이 너무 더럽더라고.”

“저걸…대체 왜…왜…?”

“이유는 방금 말했잖아. 어딜 가든 내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

희성이 굳어버린 도윤을 끌어안았다.

“여긴 우리 부모님도 없고, 네 아버지도 없어.”

“…….”

“이제 우릴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얘기야.”

“…….”

“도윤아, 집 마음에 들어?”

정처 없이 떠돌던 시선이 천장의 구석에 닿았다. 카메라는 도윤을 향해 빨간빛을 내뿜고 있었다. 가슴이 조이고 숨이 막혔다. 도윤의 셔츠 사이로 드러난 어깨에 입을 맞춘 희성이 웃으며 떨어졌다.

“점심 먹어야지.”

“…안 먹어.”

“네가 늦게 일어날 것 같아서 일하는 사람은 그냥 보냈어.”

“너라면 이 상황에 밥이 넘어갈 것 같아?”

“점심엔 샌드위치 먹고, 저녁에는 사람이 따로 올 거야.”

“김희성!”

“앉아있어.”

말이 통하지 않았다. 벽에게 소리를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도윤은 입술을 꾹 닫고 이를 물었다. 도윤이 거실에 서있는 동안 희성은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자신은 아직도 셔츠 차림인데. 도윤이 천장에 설치된 CCTV를 보았다.

“앉아야지, 도윤아.”

“안 먹는다고 했잖아!”

“또 굶으려고?”

“먹기 싫어.”

“억지로 먹이기 전에 와서 앉아.”

“…….”

“도윤아, 내가 지금 농담하는 것 같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도윤에게 다가온 희성이 팔을 잡아끌었다. 억지로 앉혀진 도윤은 블랙과 화이트로 깔끔하게 맞춰진 식탁을 내려다보았다.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은 새벽에 왔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희성은 집안일을 맡은 사람들에게 모두 똑같은 조건을 내밀었다. 도윤에게 필요 이상으로 말을 걸지 말 것. 도윤이 질문을 해도 무시할 것. 마주치더라도 쳐다보지 말 것.

샌드위치와 우유를 놓아준 희성이 그 앞에 앉아 식탁을 두드렸다. 도윤은 투명한 컵에 담긴 하얀 우유를 쳐다보았다.

“먹어야지.”

“…배 안 고프다고 했잖아.”

“안고프더라도 먹어.”

“좀….”

“먹어야 나한테 소리칠 힘이라도 생기지.”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해도 들어주지도 않을 거잖아.”

“그건 네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지.”

정말로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계속 이어지는 강요에 샌드위치를 물었다. 도윤이 샌드위치를 꾸역꾸역 먹는 모습을 희성은 턱을 괴고 구경했다. 목이며 어깨며 밤새 자신이 물고 빨았던 흔적을 집요하게 보기도 했다. 샌드위치를 억지로 먹던 도윤이 목이 막히는지 우유를 급하게 넘겼다.

“다 먹으면 집 구경시켜줄게.”

“…내 방만 알려줘.”

“네 방?”

“응.”

“오늘 우리가 잤던 곳이 네 방인데.”

“…그럼 네 방은?”

“내 방도 거기고.”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 같으면 다 먹고 확인해 보든지.”

도윤이 남은 샌드위치를 한입에 욱여넣고 우유가 담긴 컵을 비웠다. 다 씹지도 않고 일어나 집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쫓던 시선이 자연스레 도윤의 다리에 닿았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걸 보니 바지는 평생 안 줘도 될 것 같았다. 방마다 들어갔다가 나오길 반복하는 도윤의 얼굴에서 서서히 핏기가 없어졌다. 침실로 만들어둔 곳은 정말로 한곳밖에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자고 일어났던 방 앞에 멍하니 서있는 도윤의 뒤로 다가가 허리에 팔을 두른 희성이 어깨에 입술을 눌렀다 떼어냈다.

“아직도 거짓말 같아?”

“…….”

“집은 마음에 들어?”

“…난…난 네가 싫어….”

“놀랍지도 않아.”

“내가 널 싫어한다는데 넌…아무렇지도 않아?”

“애초에 기대한 적도 없어서 상관없어.”

“대체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좋아하니까.”

도윤의 목에 입을 맞춘 희성이 허리를 끌어안았다. 도윤은 이따금씩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정말 진심으로 나를…좋아해?”

“이것도 농담 같아?”

희성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도윤을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눈가에 열이 올랐다.

“날…정말로 좋아하는 거면….”

“응.”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이러는 게 뭔데.”

“여태까지 네가 한 짓 전부, 전부 다.”

“글쎄.”

아래로 푹 숙여진 고개가 떨렸다. 도윤이 울고 있었다. 희성은 허리를 감싼 손을 풀고 도윤의 몸을 돌려세웠다. 얼굴을 가린 손을 억지로 떼어내자 눈가에 번진 눈물이 아래로 떨어졌다.

“네가 조금이라도 덜 예뻤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했겠지.”

“…흐….”

“지금도 네가 얼마나 예쁜지 알아?”

“끅, 이, 이거 놔….”

“정말로 싫었다면 네 의견을 더 밀어붙였어야지.”

“안 들어줄 거잖아, 내가…무슨 말을 해도 넌….”

“집을 옮길 때, 너 싫다고 했어?”

“…….”

“내가 같이 살자고 했을 때 싫다고 한적 있어?”

“…….”

“도윤아, 없잖아. 너도 원했으니까 날 따라왔겠지.”

“…….”

희성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억울했다. 싫다고 했어도 듣는 척도 안 했을 거면서. 도윤이 서러움에 헐떡이며 눈물을 쏟아냈다. 매일 너 하고 싶은 대로만 했잖아, 처음부터 그랬잖아,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전부 너를 위한 일이었잖아! 우느라 호흡이 벅찼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놓았다. 눈물에 젖은 속눈썹이 서로 달라붙었다. 희성은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주며 입을 열었다.

“결국은 다 따라왔잖아. 이번에도 넌 나를 택한 거야.”

“하….”

“네가 좋아서 따라온 건데 자꾸 이렇게 아닌 척 굴면, 좀 속상하지.”

“좋아서 따라온 적…없다고…흑…대체 몇 번을 말해야 들어줄 거야?”

잔뜩 젖은 눈으로 쳐다보는 건 역시 곤란했다. 대답을 삼킨 희성이 입을 맞추려 다가가려다 옆으로 틀어지는 얼굴에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바닥을 노려보며 눈물을 닦아내는 얼굴을 빤히 쳐다본 희성이 머리카락을 잡아 돌렸다. 고통에 찬 얼굴이 희성과 마주했다.

“흐, 흐윽….”

“투정도 정도껏 해.”

“놔, 놔!”

“봐줄 때 적당히 하라는 소리야.”

“아프잖, 아! 아!”

“도윤아, 얌전히만 있으면 알아서 예뻐해 준다잖아.”

“끅, 아파, 제발…!”

“너만 잘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어. 그러니까 평소처럼 예쁘게 굴어.”

“놔줘, 희성아, 놔줘….”

“이제 다시 대답해 봐. 집이 마음에 들어?”

도윤이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당장 뒷머리에서 고통과 심적으로 무섭게 다가오는 말에 입술이 떨렸다. 떨리는 입술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 마음에…들…들어…그러니까…흑….”

“네가 원해서 온 집이야. 맞아?”

“흐으, 흑…. 마, 맞, 맞아….”

도윤의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희성은 머리카락을 놓아주고 뒤통수를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덜덜 떨리는 입술을 머금고 혀를 넣자 어설프게 입안으로 들어선 것을 섞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이래야만 자신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억지로 혀를 움직인 도윤이 몸을 떨었다. 여린 입안의 살을 문지르다 다시 혀를 뽑아낼 것처럼 빨아들인 희성이 상처로 가득한 유두를 꼬집었다. 흣. 도윤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틀었다가 아차 싶어 허겁지겁 희성에게 붙어왔다. 만지면 만질수록 떨리는 몸을 끌어안아 침대에 눕힌 희성이 티셔츠를 벗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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