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2권) (6/27)

대가

  

  

집이 크고 정원이 넓어서 좋은 점은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 소리가 안 들린다는 점이었다. 간혹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아침잠을 설치기는 해도 핸드폰 알람과 그 외에 다른 큰소리로 일어나 본 적은 없었다. 턱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에 눈을 뜬 희성이 품 안에 들어와 자고 있는 얼굴을 보다가 픽 웃었다. 어제 숨이 넘어가도록 울더니 눈을 감고 있음에도 부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도윤과 처음으로 몸을 섞었던 어젯밤, 둘은 그 뒤로도 몸을 세 번이나 더 섞었다. 자꾸 이상하다고 우는 도윤의 입에서 좋다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몰아붙였더니 나중에는 결국 좋다고 울었다. 도윤의 것을 받아내는 뒤는 아팠지만 우는 얼굴에 꼴려 도저히 못하겠다는 애를 붙잡고 입까지 썼다. 마지막으로 입에 사정한 도윤이 숨을 헐떡이며 눈을 감았고 그대로 기절했다. 말 그대로 기절. 한참을 끅끅거리다 조용해진 도윤이 이상해서 고개를 드니 그랬다. 온몸에 붉은 자국을 달고 잠에 빠진 도윤을 한참이나 보다가 가운을 걸친 희성이 욕실에서 가져온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자신의 방으로 옮겨줄 때까지도 도윤은 깨지 않았다.

희성은 도윤이 자는 동안 샤워를 하면서 스스로 안을 정리했다. 몸에 문제만 안 생긴다면 평생 품고 다녀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리를 해주지 않으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본 기억이 있었다. 도윤에게 너 때문에 아프다고 놀려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잔뜩 곤란해져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얼굴을 보는 건 꽤 재미있으니까. 도윤과 달리 멀쩡한 몸을 보던 희성이 다음에는 자국을 만들어보라고 시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샤워를 마쳤다.

올해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힘들 것 같았다. 유난히 맑은 하늘을 눈에 담다가 다시 도윤을 쳐다본 희성이 이불을 들췄다. 아침에 보니 도윤의 몸은 생각보다 더 엉망이었다. 거의 피멍처럼 물든 자국을 보다가 이불을 덮어주자 그 짧은 새 닿은 공기가 차가웠는지 도윤이 으응, 하고 품에 파고들었다. 희성이 웃으며 허리를 당겨 안자 꼼지락거리던 몸이 다시 얌전해졌다. 따끈한 몸을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춘 희성이 눈을 감았다.

도윤이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도윤보다 늦게 잤지만 잠이 오지 않아 말랑거리는 살을 만지작대고 있을 때 도윤이 몸을 뒤척이며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이 희성의 가슴팍이라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머리를 굴리느라 반응이 조금 굼떴다.

“일어났어?”

“왜 여기….”

“기다리느라 지루해죽는 줄 알았네.”

사실 얼굴을 보고 몸을 만지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희성은 이마에 입술을 비비며 중얼댔다.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못한 도윤의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힘겹게 올라왔다. 그러니까…. 지금, 그러니까…. 도윤이 눈을 감고 생각을 하다가 그만 자신도 모르게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희성은 품 안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도윤이 귀여워 퉁퉁 부은 눈가를 엄지로 문질러주었다.

“잠자는 왕자네.”

“…….”

“뽀뽀로 깨워줘야 하나?”

“…….”

도윤이 눈가를 찡그리고는 얼굴을 숨겼다. 숨겨봤자 희성의 가슴팍이라 별 의미는 없었지만 말이다.

“도윤아, 꿈에 나 나왔어?”

“아니이….”

“왜 안 나왔어? 우리 밤에 기분 좋은 거 많이 했는데.”

“…….”

“너 눈 엄청 부었어, 알아?”

“…으응.”

“어제 나한테 박으면서 엉엉 울었잖아. 그래서 그렇게 부었나?”

“이상, 한 말, 하지 마….”

“뭐가 이상해? 네가 나한테 박았다는 거?”

“그거 하지 마….”

“난 좋았어. 매일 박아줬으면 좋겠던데.”

도윤의 귀가 발갛게 익었다. 들으면 안 되는 것을 들은 것 마냥 고개를 젓자 머리카락이 가슴팍에 비벼져 기분이 요상했다. 희성이 낮은 숨을 터뜨리며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등을 쓰다듬자 도윤의 몸이 비틀렸다. 맨살을 꾹꾹 누르자 뼈가 느껴졌다. 희성이 피아노를 치듯 등위에서 손가락을 놀리다 일어났다.

잠에서 깬지 오래되지 않아 여전히 말랑한 도윤의 이마와 눈가에 뽀뽀를 해주고 침대 아래로 다리를 내린 희성이 잠시 허리를 짚고 미간을 구겼다. 이불에 싸여 큰 눈을 끔뻑거리던 도윤이 몸을 살짝 일으켰다.

“왜?”

“아….”

“왜, 왜?”

“왜겠어?”

“아, 아파?”

“괜찮으니까 누워있어.”

사실 도윤이 박아대서 이렇게 됐다기보다는 희성이 위에서 움직인 탓에 아프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도윤은 내내 누워있었고 희성은 그 위에 올라타 마지막까지 허리를 움직였으니까. 뻐근한 허리를 비틀다 방을 나간 희성의 빈자리를 보다가 웅크리고 누운 도윤이 이불을 끌어올렸다. 희성이 자꾸 이상한 말을 할 때마다 부끄러워 어디로 숨고만 싶었다. 이불로 만들어낸 동굴 속에서 입술을 깨문 도윤이 자꾸 떠오르는 어젯밤의 기억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희성의 몸이 떨릴 때마다, 자신의 아래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 때마다 무섭기는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기분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심지어 희성은 몸이 떨릴 때 그 느낌을 즐기는 것 같았다. 가쁜 숨을 쉬면서도 웃었으니까, 도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중간에는 눈물을 흘리는 것도 같았는데 관계를 가지는 내내 자신이 더 많이 울었던 탓에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희성이 씻고 나온 후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마친 도윤은 오늘도 목 티와 후드를 꺼내 입었다. 온종일 가족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 목덜미에 울긋불긋한 자국들은 없어지기는커녕 더 진해져 있었다. 오늘은 아무리 더워도 더운 티를 낼 수 없었다.

옷을 다 입고도 한참 동안 옷장을 들여다본 도윤은 오랜 고민 끝에 곱게 다려져 옷걸이에 걸려있는 교복 바지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오늘은 아버지도 있었고 크리스마스, 그리고 가족들이 다 같이 모였다는 핑계로 병원에서 자고 올 생각이었다. 혼자였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었지만 저에게는 아버지가 있었다. 부모님이 그랬다고 하면 희성도 오늘만큼은 허락을 해주겠지 싶었다.

목을 만지작거리며 책상에 다가간 도윤이 콩이에게 줄 간식을 꺼내 케이지를 기웃거렸다. 잠이라도 자는 모양인지 쳇바퀴는 조용했고 고개를 숙여 확인한 집에는 연한 갈색의 몸통이 보였다. 얼굴이 보고 싶어 케이지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도윤은 벌컥 열리는 문에 요상한 자세로 희성과 시선을 마주했다.

문 손 잡이를 잡고 눈을 내리깔 듯 도윤을 보던 희성은 검은색 목 티에 짙은 회색 브이넥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어깨가 넓어서 그런지 태가 살았다. 오늘따라 하얀색 목 티가 눈에 들어와 입었던 도윤이 습관적으로 목을 만지작거렸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하얀색과 검은색 옷이 마치 커플 티 같았다.

“늦어도 10시 전에는 들어와.”

“10시?”

“응.”

“으응, 근데 만약에 늦으면 어떡해?”

“궁금하면 늦어도 되고.”

오늘 안에 집에 들어올 생각이 없었던 터라 마지막 말에는 가슴이 너무 뛰어 아프기까지 했다. 방금 전까지도 궁금해서 물어본 주제에 답을 주니 고개를 흔든다. 말없이 고개만 양옆으로 흔드는 게 남에게 얼마나 귀엽게 보이는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도저히 뽀뽀를 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희성은 곧장 다가가 뽀뽀를 하고 떨어졌다. 순식간에 뽀뽀를 당한 도윤이 손으로 입술을 가렸지만 이미 입술은 훔쳐진 후였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멀어진 희성이 나중에 보자며 방을 나갔고 홀로 남겨진 도윤만 손등으로 입술을 비벼댔다.

희성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던 도윤의 기분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희성이 붙여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자신이 무엇을 하든 저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둘이서 밖으로 나와 본다며 도윤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사주고 함께해 주었다. 작은 케이크를 사서 병원에 들어와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고요히 잠든 어머니의 체온은 따뜻했다. 소파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는 아버지를 뒤에 두고 잠든 어머니의 손을 잡은 도윤이 손등에 볼을 비볐다.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준 도윤이 한참을 내려다보다가 소파에 앉아 케이크를 꺼냈다. 초는 생략하고 아버지와 함께 케이크를 먹을 생각이었다. 겨울이라 철을 맞이한 딸기가 올라간 초콜릿 케이크는 어머니가 평소에 좋아하던 케이크였다. 케이크 밑에 깔린 칼을 꺼내 포장을 벗길 때쯤 아버지의 핸드폰이 진동을 토해내며 울었다. 도윤이 칼을 들고 아버지를 힐끔거렸다.

“먼저 먹고 있어.”

“기다릴래요.”

“잠깐만.”

도윤이 손에서 칼을 굴리며 통화를 기다렸다. 어머니? 아버지의 작은 목소리가 테이블에 내려앉았다. 아마 할머니에게서 온 전화인 것 같았다. 도윤이 할머니예요? 하며 눈을 빛냈다. 도윤은 할머니를 좋아했다. 최근에 전화를 자주 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인사라도 하고 싶어 칼을 내려둔 도윤이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어쩌다가? 병원은요? 병원이에요?”

갑자기 다급해지는 목소리에 도윤의 눈이 커졌다. 왜요? 입모양으로만 물어보자 이마를 짚은 연석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알겠어요, 저 지금 출발할 테니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전화 주세요.”

연석의 뒤로는 석양이 지고 있었다. 온종일 한일이라고는 먹고 논 것뿐인데 벌써 땅거미가 내려앉는다. 전화를 끊은 연석이 침대에 누워있는 민영을 한번, 그리곤 무슨 일인지 몰라 눈치만 보고 있는 도윤을 한번 번갈아 쳐다보았다.

“왜요?”

“할머니가 빙판에 미끄러지셔서 허리를 다치셨나 봐.”

“많이 다치셨대요?”

“지금 입원한다고는 하는데 이거 어떡하지, 오늘은 꼭 다 같이 보내고 싶었는데.”

“…괜찮아요, 제가 엄마랑 있을 게요.”

“아니면 지금 먼저 집에 데려다줄까?”

“아, 아뇨!”

당황한 도윤이 말까지 더듬으며 고개를 젓자 연석이 도윤의 볼을 만져주었다.

“집에는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 알았지?”

“…네.”

“도착하면 전화할게. 아들, 미안해.”

“괜찮아요….”

케이크를 다시 박스에 넣어 냉장고에 둔 도윤이 어머니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멀어지는 아버지를 눈으로 좇았다. 할머니가 계신 곳이면 서울에서 차로 한참이나 달려야 나오는 곳이었다. 아쉬운 것은 사실이나 할머니가 입원을 하신다니 투정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연석은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마지막까지 도윤에게 미안하다 사과를 했다. 도윤이 손을 흔들어주다가 창밖을 쳐다봤다. 온 세상이 화려하게 변해있었다. 조그맣게 보이는 가게들도 모두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예쁘게 변해있었고 거리에 있는 나무들도 새로운 색을 입고 있었다. 자신만 빼고 모두가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도윤이 반짝거리는 전구를 눈에 담다가 다시 병실로 향했다.

도윤의 할머니가 입원하셨다는 소식은 야경이 예쁘다고 소문나 특별한 날이면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돌 정도로 어려운 레스토랑에서 식사 중이던 희성에게도 전해졌다. 희성의 아버지, 호태는 크리스마스만큼은 모두가 가족들과 행복하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집안에서 일을 하는 직원들과 평소 자신들의 옆에 붙어 다니던 사람들까지 모두 집으로 보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도윤의 아버지가 아침저녁으로 두 사람의 기사 노릇을 하는 남자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 희성에게 닿았다. 물을 마시고 입가를 정리한 희성이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실장님. 문자 받았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맞춰서 입었다고 잔소리를 꽤 들었던 희성이 구석에 기대서자 거의 목소리만 들렸다. 손목에 걸린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희성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숙였다. 건너편 남자는 희성의 말에 그저 네, 네. 알겠습니다. 하는 대답만 하고 있었다. 할 말을 마친 희성은 정말 화장실에 다녀왔다는 듯 태연하게 다시 가족들에게 섞여들었다.

아버지가 떠난 후 병실은 도윤이 작게 틀어 놓은 음악소리만 울려 퍼졌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이렇게 슬픈 노래였나? 도윤이 침대에 얼굴을 대고 미동도 없는 손가락을 멍하니 보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보통 병원 사람들이면 노크를 하고 들어왔을 텐데 문은 열리지 않았다. 도윤이 음악을 끄고 문 앞으로 걸어갔다. 왜 안 들어오시지? 의아함을 품고 문을 열자 하얀 가운 대신 어두운 정장이 문 앞을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다. 도윤은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얼굴을 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이제 슬슬 돌아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그것은 마치 저승사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멘트였다.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아버님께서 부탁하셨습니다.”

“…….”

“천천히 준비하고 나오세요.”

“…….”

정중하게 고개를 꾸벅이는 남자를 내려다본 도윤이 입술을 깨물었다.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가 최대한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문을 닫았다. 병실이 다시 조용해지자마자 가방에서 지갑을 꺼낸 도윤이 소파 아래로 가방을 밀어 넣었다. 침대에 있는 핸드폰까지 챙긴 도윤이 허리를 숙여 작게 속삭였다.

“나중에 다시 올게요.”

어머니의 숨소리가 꼭 알겠다고 대답해 주는 것만 같아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도윤이 문을 열어 여태 기다리고 있던 실장님의 뒤를 따랐다.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길엔 정적만이 가득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실장이라는 남자는 시계를 확인하며 어서 주차장까지 내려가기를 기다렸고, 도윤은 밖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너무 떨려서 손바닥에 자꾸 땀이 났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남자와 함께 차에 올랐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차가 오늘따라 답답하다고 느낄 때쯤 차는 주차장을 빠져나와 병원 입구에 섰다. 도윤의 다리가 초조한 듯 떨리기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가 시간을 또 한 번 확인했다. 도윤이 서서히 올라가는 막대에 침을 삼키곤 문을 열었다. 그리곤 뛰었다. 무작정 뛰었다. 뒤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려왔지만 도윤은 목적지를 정해두지도 않고 일단 뛰고 봤다.

숨이 턱 끝까지 찼다. 입에서는 피 맛이 났고 다리는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힘이 풀려 자꾸만 휘청거리길 반복하던 도윤이 근처에 있는 상가로 몸을 숨겼다.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모자란 숨을 쉬는데 갑작스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빠도 화를 내실 것 같았고 실장님도 화가 났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희성이 제일 크게 화를 낼 것 같은데, 실컷 도망치고 나서야 후폭풍이 생각났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도망을 쳤어, 멍청아. 무릎에 이마를 콩콩 찧으며 우는소리를 낸 도윤이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몸을 크게 떨었다. 숨도 떨렸고 핸드폰을 꺼내드는 손도 떨렸다. 배터리가 반밖에 남지 않은 핸드폰에 뜬 발신자의 이름은 희성이었다.

“어떡, 어떡해.”

희성의 이름을 보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자기가 도망쳐놓고 혼자 겁을 잔뜩 먹은 도윤이 전화를 받지 못하고 핸드폰을 쥐고만 있자 진동이 멈췄다. 어, 어떡해. 희성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도윤이 코를 훌쩍이다가 또다시 울리는 진동에 시간을 확인했다. 희성과 약속했던 시간은 10시. 지금은 9시 35분.

9시 45분. 도윤의 핸드폰에는 희성에게서 온 부재중이 25통이 넘어가고 있었고 배터리도 함께 닳고 있었다. 희성에게 마지막으로 온 메시지는 [재미있네] 하나였다. 달랑 네 글자만 왔음에도 도윤에겐 충분히 무서운 말이어서 결국 눈물을 콕콕 찍어 내야 했다. 쪼그리고 앉아서 훌쩍거리는 도윤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한 번씩 힐끔거렸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면 잡힐 것 같아서 도착한 곳은 편의점이었다. 병원에서도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니 여기에서 잡힐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마침 배도 고팠고 밖은 추웠기에 편의점에 들어온 도윤은 컵라면과 삼각 김밥, 그리고 사과주스를 샀다. 계산을 마치고 구석에 앉아 라면에 스프를 넣고 물을 채운 손이 바쁘게 삼각 김밥을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가게에서 틀어둔 노래만이 편의점을 울리고 있었다. 도윤이 띵, 소리가 나자마자 삼각 김밥을 꺼내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참치마요를 한입 베어 문 입은 김밥을 씹느라 바빴고 눈은 밖을 살피느라 바빴다.

크리스마스에 편의점에 앉아 라면과 김밥이나 먹고 앉아있다니. 도윤이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다가 라면을 호로록 먹었다. 맛있었다. 면을 먹다가 목이 막히면 국물을 마셨다. 국물이 너무 뜨거우면 사과주스도 마셔가면서 배를 채운 도윤이 이제는 조용한 핸드폰을 힐끔거렸다. 아까는 핸드폰이 터질 것처럼 전화를 하더니…. 시계는 10시 30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도윤이 네모난 사과주스를 쥐고 빨대를 물었다.

쪼로록 소리가 날 때까지 사과주스를 마신 도윤이 쓰레기를 정리하고는 편의점 직원에게 고개를 꾸벅이며 밖으로 나왔다. 추워…. 방금까지 따뜻한 곳에서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몸이 떨렸다. 그나저나 이 패딩도 희성이 사준 옷인데…. 도윤이 패딩을 만지작거리다 느릿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뒷문으로 들어가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핸드폰 배터리도 충전해야 했고 아까 너무 달렸더니 쉬고 싶었다. 한숨을 쉬는 도윤의 입에서 입김이 풀풀 흩어졌다. 어차피 내일 학교에 가야 하니까 희성을 만날 수밖에 없는데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실장님께는 뭐라고 사과를 드려야 할지도. 그냥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밖에 너무 오래 있었더니 코가 빨갛게 얼었다. 얼굴은 차가웠고 손도 추위에 얼어 새빨갰다. 어두운 뒷문을 몇 번이고 확인한 몸이 재빠르게 병원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는 위험했다. 눈치를 보던 도윤이 계단을 오르며 숨을 헉헉거렸다. 평생 이렇게 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힘겨운 숨을 내쉬며 어머니의 병실이 있는 층에 도착한 도윤이 문을 열기 전 한참을 망설였다. 만약 이 문을 열었을 때 앞에 희성이나 실장님이 있으면 어떡하지? 문을 열기가 겁이 나 한참을 귀를 대보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몇 십분 동안 귀를 대보고 있어도 건너편은 조용하기만 했다. 빨간 손으로 문을 열고 작은 머리통을 밖으로 내민 도윤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곤 살금살금 걸어 병실로 향했다.

혹시 안에 있으면 어떡하지? 병실 앞까지 무사히 도착한 도윤의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희성이라면 역시 밖보단 안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침을 삼키자 울대뼈가 일렁였다. 도윤이 문을 최대한 살살 열어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병실은 조용했다. 희성은 병실 그 어디에도 없었다. 도윤이 눈을 깜빡이며 병실에 들어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아무도 없지…? 패딩을 소파에 던져놓고 세수와 양치를 하고 나와서도 의문이었다. 왜… 없지…? 심지어 핸드폰도 조용했다. 충전기를 꽂아둔 핸드폰을 물끄러미 본 도윤이 소파에 누워 패딩을 덮었다.

‘…아니면 내가 너무 겁을 먹었나? 사실 희성이도 오늘만큼은 봐주려고 했을지도 몰라.’

도윤이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희성이도 오늘만큼은…. 도윤이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몸을 웅크렸다. 어머니의 옆에서 자지는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한 공간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싶었다. 새벽에 울릴 알람을 맞춰두고 눈을 감은 도윤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

도윤이 자신의 전화를 모조리 무시했다. 메시지도 읽었다는 표시가 뜨지 않았다. 약속했던 시간이 가까워질 때쯤 집으로 오고 있냐고 물어보려 전화를 걸었던 거였는데 도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느낌이 별로였다. 전화를 걸면서 핸드폰을 노려본 희성은 병원이 아닌 이상한 지점에 찍혀있는 표시에 얼굴을 구겼다. 받지도 않는 전화를 종료하고 실장이란 남자에게 전화를 건 희성이 책상에 손가락을 두드렸다.

‘도, 도련님.’

“실장님 지금 뒤에 도윤이 없죠.”

‘아, 그게….’

“내가 뭐 많은 부탁을 했던가?”

‘갑자기, 뛰어나가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내 말이 너무 어려웠어요?”

‘아닙니다.’

희성이 구겨진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이게 자꾸 귀엽다, 귀엽다 해주니까….

‘얼른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하도윤이 어디에 있는 줄은 알고?”

‘찾아보겠습니다.’

“됐으니까 병원 앞에서 애나 기다려요.”

희성이 욕을 씹으며 전화를 종료했다. 이렇게 된 거 도망쳐서 어디를 돌아다니나 구경이나 할 생각이었다. 크리스마스에, 그것도 혼자서. 이 추운 겨울밤에. 희성이 턱을 괴고 핸드폰을 내려다보자 화면에 표시된 원이 한참을 멈춰 있다가 움직였다. 가만히 앉아 도윤을 지켜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절로 터졌다. 조금씩 움직이던 원이 또 한곳에서 멈췄다. 희성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화면만 보다가 일어나 도윤의 방으로 향했다.

없다. 아무리 찾아도 도윤이 평소에 메고 다니던 거북이 등딱지 같은 가방이 없었다. 가방의 빈자리를 확인한 눈이 이번엔 옷장에 꽂혔다. 이런 귀여운 계획을 세웠다는 건, 당장 내일의 일도 생각했다는 거겠지. 거침없는 손길에 열린 옷장 안에는 원래 있어야 할 교복 바지가 보이지 않았다. 희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예쁘게 생긴 얼굴로 귀여운 짓을 하니 자신도 똑같이 굴어줘야지. 옷장을 닫고 방을 나선 희성이 여전히 똑같은 곳에 멈춰있는 원을 눈에 담았다.

원은 한참 동안이나 한자리에 머물렀다. 슬슬 지루하다고 느껴질 즘 움직이기 시작한 원은 익숙한 방향으로 향했다. 도윤이 병원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희성이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윤이 지금 병원 들어갔으니까 내일 아침에 학교로 데려와요.”

‘알겠습니다.’

“아침에도 놓쳐보세요.”

‘아닙니다, 아침에 연락드리겠습니다.’

“퇴근이나 해요.”

짜증이 한가득 묻은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끊어진 전화에 한숨을 쉰 남자가 병원을 올려다보았다.

***

새벽에 알람을 못 듣는 대참사가 벌어질 상황을 대비해 핸드폰을 얼굴 근처에 두고 잔 도윤이 휘청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씻으러 가기 전에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꾸벅인 도윤이 안녕히 주무셨어요. 중얼거렸다. 아침에 어머니에게 인사를 한 것이 몇 달 만인지 기억도 안 났다.

오늘은 방학식이니 교복을 제대로 입지 않았다고 혼내는 선생님들도 없을 터였다. 그래서 위에는 어제 입었던 대로 하얀색 목 티와 검은색 후드를 입고 바지만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병원에서 학교까지는 거리가 꽤 있으니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도윤이 가방을 메고 어머니를 살짝 끌어안았다.

“다녀오겠습니다.”

이 인사도 몇 달 만에 해보는 거지? 도윤이 웃으며 손까지 흔들고 문을 열었다. 그리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악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몸소 깨닫게 되었다. 대체 어떻게 알고 이 앞에서…. 도윤이 벌렁거리는 심장 부근을 움켜쥐고 남자의 인사를 받았다. 어제 차에서 마지막으로 본 얼굴은 조금 피곤해 보였으나 항상 비슷한 얼굴이어서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이기만 했다.

늘 그렇듯 학교로 향하는 차 안은 조용했다. 평소라면 도윤도 말없이 가고는 했겠지만 오늘은 찔리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라 이 정적이 너무 불안했다. 가방을 끌어안고 눈치만 보던 도윤이 입을 열었다.

“어제는, 죄송해요….”

“아닙니다.”

“제가 아저씨를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구요….”

“정말 괜찮아요.”

“저….”

“네.”

도윤이 마른 입술을 혀로 쓸었다. 희성의 이름을 입에 담기가 무서웠다.

“혹시요. 희성이 화 많, 많이 났을까요?”

“음….”

“…많이….”

남자가 딱히 해줄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도윤이 가방에 얼굴을 묻었다.

학교에는 제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을 했지만 도윤은 아직도 교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학교를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교무실 앞도 서성여보고 1학년부터 3학년이 쓰는 층도 모두 돌았다. 이제는 정말 들어가야만 할 때였다.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지각이었다. 사실 방학식이라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도윤은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도윤이 복도에서 서성거리자 이제 막 교실에 도착한 담임선생님이 이름을 불러왔다.

“도윤아, 안 들어가고 뭐해?”

앞문으로 들어가며 손짓하는 선생님을 따라 뒷문으로 들어간 도윤이 삐거덕삐거덕 자리에 앉았다. 희성의 눈치를 보기 바빠서 가방도 못 벗고 앉아있던 도윤이 뻣뻣하게 앞만 바라봤다. 희성은 그런 도윤을 한번 쳐다보기만 할 뿐 조용히 자기 할 일만 했다. 도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희성이 말을 걸거나 건드리지도 않기에 숨까지 참아가며 슬쩍 눈알을 굴렸다. 희성은 옆으로 관심도 주지 않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방학식은 교실에서 진행되었다. 교실에 걸려있는 TV를 통해 교장선생님이 전교생들에게 방학을 잘 보내라는 말과 인생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집중하는 사람이 없었다. 습관처럼 나오는 ‘마지막으로’라는 말이 벌써 세 번이나 나오기도 했다. 도윤은 최대한 희성에게서 등을 돌리고 앉아 TV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자, 마지막으로.”

“자, 마지막으로.”

옆줄에서 자, 마지막으로 라고 하기가 무섭게 TV에서 교장선생님이 그 말을 똑같이 따라 했다. 곳곳에서 터진 웃음은 교실 전체를 물들였고 담임선생님이 집중하라며 교탁을 두드렸다. 도윤은 지금 아무 생각도 없이 웃을 수 있는 모두가 부러웠다.

“도대체 언제 끝나냐.”

“그러니까. 끝나고 PC방 갈 거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에도 도윤은 홀로 반대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고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정말로 끝이 났다. 담임선생님은 TV를 끄고 주의사항을 몇 가지 알려주었다.

“너네 이제 정말 고3인 거 알지? 또 방학이라고 놀기만 하면 안 된다.”

“예에.”

“보충수업 신청한 사람들은 지각하지 말고. 중요한 시기니까 공부도 좀 하고.”

“으….”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다치거나 아프지 좀 마라, 알았어?”

무슨 일 생기면 선생님 번호로 연락 주고. 물가에 내놓은 아이들을 보는 것 마냥 교실을 둘러본 담임선생님은 방학 잘 보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종례를 마쳤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가방을 멘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을 벗어났다. 도윤이 마른침을 삼키며 시간을 끌다가 들려오는 반장의 목소리에 가방을 멨다.

“교실 문 잠가야 하니까 빨리 나가.”

아직 도윤과 희성을 포함한 몇 명이 교실에 남아있었다. 오전 내내 희성에게 말 한마디도 걸어보지 못하고 교실을 벗어난 도윤이 신발을 들고 뒤를 쫓았다. 두 걸음 정도 뒤에서 따라오는 도윤을 못 본 것은 아니지만 희성은 묵묵히 1층으로 내려왔고 신발을 신는 도윤을 기다려주지도 않고 교문으로 향했다. 덕분에 신발을 제대로 신지도 못하고 꺾어 신은 도윤이 허겁지겁 쫓아 차에 올랐다.

라디오조차 틀려있지 않아 조용한 차 안에 숨이 턱턱 막혀서 은근슬쩍 창문을 내렸다가 닫아. 하고 오늘 처음으로 들려준 목소리에 얌전히 창문을 올렸다. 주말까지는 병원에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아버지의 문자에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손이 다급했다. 뭘 하든 눈치가 보여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차가 익숙한 골목으로 들어서고 골목보다 더 익숙한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대문을 지나 이제는 겨울의 옷을 입은 정원까지 지나자 차가 속도를 낮췄다. 남이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얼른 문을 열고 나온 도윤이 희성을 기다렸다. 느릿하게 차에서 내린 희성이 드디어 도윤의 앞에 서서 눈을 맞춰왔다.

“핸드폰.”

“어?”

“핸드폰 달라고.”

“…왜?”

“똑같은 말 두 번씩 하게 만들지 마.”

솔직히 너무 무서워서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 도윤이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을 희성의 손에 올리곤 침을 삼켰다. 커다란 눈알을 굴리며 눈치만 보고 있는데 손에 올라간 핸드폰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으로 처박혔다. 도윤의 고개가 함께 숙여지고 입이 벌어졌다. 희성은 무표정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핸드폰을 발로 짓눌렀다. 땅에 부딪쳐 깨진 액정이 희성의 발에 완전히 박살 나고 말았다. 산산조각 난 핸드폰을 보자 말문이 막혔다.

“연락도 안 되는 핸드폰이 왜 필요해.”

“…….”

박살 난 핸드폰이 희성의 발에 차여 벽에 부딪치며 바닥을 굴렀다. 손이 떨렸다. 방금까지 멀쩡했던 핸드폰이 이제는 쓰레기가 되어있었다. 도윤이 핸드폰을 주우려 몸을 숙이자 깨진 화면 위로 눈물이 툭 떨어진다. 쪼그리고 앉은 자신을 지나쳐 집으로 들어가는 희성에게 화가 났다. 윽…. 도윤이 울음을 삼키며 핸드폰을 들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희성은 계단을 올라가는 중이었다.

“김희성!”

도윤이 이름을 불러도 희성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계단을 올랐다. 두 사람을 마중 나온 여자가 도윤의 얼굴을 보고 멈춰 섰다. 계단을 두세 개씩 밟아 오른 도윤이 허락도 없이 문을 열어 소리쳤다.

“사과, 사과해!”

“도윤아, 사과는 잘못을 했을 때만 하는 거야.”

“내 핸드폰….”

“그렇게 따지자면 사과는 네가 해야지.”

“내가 왜…?”

“사람이 연락을 하면 받아야지. 그리고 누가 네 마음대로 약속도 깨고 밖에서 뒹굴라고 했어?”

“뒹굴….”

“재미있었어?”

“엄마 만나러 간 거잖아. 나 엄마 만나러 간 거잖아!”

“그건 네 사정이지.”

도윤이 울컥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입을 다물었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정말 자신은 단 하나의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얼굴에 뒷걸음질을 친 도윤이 방으로 들어와 소매로 눈가를 문질렀다. 흐으…. 입술 사이로 울먹임이 튀어나왔다.

휴지를 깔고 그 위에 박살 난 핸드폰을 올려둔 도윤이 될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원버튼을 꾹꾹 눌러댔다. 언제나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 떠야 할 화면은 잠잠했다. 너무 많이 울어서 코는 꽉 막혔고 눈가는 따가웠다. 주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햄스터만이 케이지에 붙어 도윤을 보고 있었다. 그만 울고 싶어도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볼을 타고 턱에 맺히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고 전원버튼을 꾹꾹 누르길 반복했다.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했으나 핸드폰은 끝내 켜지지 않았다.

충격으로 배도 고프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도윤은 이불 안으로 몸을 숨긴 채 잠을 청했다. 새벽에는 악몽까지 꾸었다. 악몽 속에서도 희성은 핸드폰을 박살 냈다. 새벽 내내 희성이 박살 낸 핸드폰이 몇 개인지 셀 수가 없었다. 잠을 잤지만 잔 것 같지가 않았다. 눈은 퉁퉁 부어서 잘 떠지지도 않았다. 도윤이 눈을 비비적거리며 일어나 책상을 보았다. 안타깝게도 어제의 일은 꿈이 아니었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핸드폰을 보니 머리가 아프고 목이 탔다. 씻고 주방으로 내려가려 방에서 나온 도윤이 계단에 서있는 낯선 남자를 보곤 눈을 깜빡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 계단을 지키고 있었다. 누구지?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머뭇거리던 도윤이 욕실에서 씻고 나왔을 때도 남자는 계단을 지키고 있었다.

물을 마시기 위해 1층으로 가려던 도윤의 앞이 막혔다. 남자의 팔이 상체를 막아서는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도윤이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저 1층에 내려가려고, 하는데….”

“죄송하지만 내려가실 수 없습니다.”

“…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도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대답한 남자가 계단을 막아섰다.

“물만 마시고 올 거예요.”

“죄송합니다.”

“아니, 저….”

도윤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이게 대체 무슨…. 옷자락을 쥐고 1층을 힐끔거린 도윤이 그대로 몸을 돌려 희성의 방문을 두드려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간 건가? 뒤를 살짝 돌아보자 남자는 마치 마네킹처럼 그 자리에 우뚝 솟아있었다. 물 마시고 싶은데…. 비켜달라는 말도 못 하고 얌전히 방에 들어온 도윤이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다 핸드폰을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아빠한테 연락이라도 왔으면 어떡하지. 희성이 박살 냈다고 하면 믿어줄까? 생각이 너무 많아서 콩이가 케이지에 딱 붙어있는 것도 몰랐다. 도윤이 뒤늦게 햄스터를 발견하곤 케이지에 손을 넣어 꺼내주었다. 웬일로 아침에 깨어있지? 도윤의 손바닥에서 몸을 말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린 햄스터가 책상에 내려와 뽈뽈 돌아다녔다.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면 잠시 멈췄다가 다가오는 모습이 귀여워서 등을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햄스터는 책상 위를 활발하게 돌아다니다 도윤의 손바닥 위에서 몸을 말았다. 두 손으로 떠받드는 것처럼 햄스터를 들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작은 몸을 보며 따라서 숨을 쉬던 도윤이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에 잠깐 숨을 참았다. 바닥에 슬리퍼가 끌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도윤이 서둘러 케이지에 햄스터를 넣어주곤 의자에 앉아있을지 침대에 누워있을지 갈팡질팡하다가 침대에 누워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렸다.

문을 등지고 있어서 문이 열려도 누가 들어왔는지 얼굴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2층에 올라와 노크도 없이 들어올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도윤이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을 시작했다. 그 사이 슬리퍼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도윤은 이불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물이 담긴 컵을 들고 도윤의 방으로 들어온 희성은 침대에 볼록 솟아있는 형체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삐딱하게 섰다. 분명 일어나서 씻었다는 말까지 전해 들었는데 자는 척을 하고 있는 꼴이 우스웠다. 돌아누워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이 다 보였다. 어깨부터 발끝까지 이불로 숨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 보이는 것이 하찮기만하다. 희성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 이불을 걷어냈다.

자신이 사준 잠옷은 어디다 팔아먹고 이런 옷을 입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불을 잡고 있었는지 손이 어색하게 떨어졌음에도 도윤은 계속 자는 척을 했다.

“하도윤.”

“…….”

“물 마시고 싶다며.”

“…….”

컵을 들고 있자니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희성이 침대에 앉아 도윤의 티셔츠를 쭉 잡아 올리자 하얀 등이 드러났다. 동시에 방금 낚은 물고기마냥 펄떡거리며 일어난 도윤이 티셔츠를 잡아 내렸다. 정전기에 일어난 머리카락들을 보던 시선을 내리자 입을 꾹 다문 도윤이 뚱하게 자신의 손에 있는 컵을 보고 있었다.

“나 목 안 말라.”

“그래?”

“응.”

컵에서 시선을 떼지도 못하면서 이게 무슨 고집인가 싶었다. 희성이 보란 듯이 물을 반이나 마시며 도윤을 쳐다봤다. 사실 물이 너무 마시고 싶었던 도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다가 입맛을 다셨다.

“마지막으로 묻는 거야. 물 마시고 싶어?”

“…….”

“세 번은 없어. 똑바로 대답해.”

“…마시고 싶어.”

어제 핸드폰을 박살 낸 희성에게 오늘은 기필코 화를 내리라 마음먹었던 도윤이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도윤에게도 자존심은 있었다. 그러나 컵을 주지는 않고 다시 물을 입에 머금는 희성을 보며 도윤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윤에게 줄 물을 입에 머금은 희성이 한 일은 하얀 뒷목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어깨를 밀어내는 힘에도 꿈쩍 않고 오히려 뒷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자 고통을 느낀 도윤의 입이 벌어졌다. 그 사이로 물을 넘겨준 희성이 마지막으로 차가운 혀를 움직여 미지근한 입안을 훑었다. 꿀꺽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뒷목을 놓아준 희성이 컵을 쥐여 주었다. 도윤은 아침부터 키스를 당한 사실이 분한지 입술을 깨물고 컵만 노려봤다. 그때 도윤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죄 없는 컵만 노려보던 도윤이 급하게 물을 마셨다.

“배고파?”

도윤은 침묵했다. 배는 당연히 고팠다. 어제 저녁도 먹지 않고 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민망해서 열이 올랐다. 도윤은 컵을 쥐고 시선을 피했다.

“착하게 굴어야지.”

“…….”

“너 나한테 잘못했어, 안 했어?”

희성의 연락을 무시하고 말도 없이 외박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희성에게 잘못한 일이냐고 물으면 도윤의 대답은 ‘아니’였다.

“도윤아.”

“나는…. 잘못한 거 없어.”

“잘못한 게 없어?”

“없어.”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미련 없이 일어난 희성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갔다. 덕분에 밖에 그 남자는 누구고 대체 왜 계단을 지키고 서있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너무 갑자기 휘몰아친 상황에 남자를 까먹은 것도 사실이었다. 속도 답답했고 배도 고파서 남은 물을 모두 마신 도윤이 책상에 컵을 올려두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학교 가기 전에 편의점이라도 들렸어야 했는데. 도윤이 꼬르륵거리는 배를 문지르며 창문을 내다보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것이 슬슬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중간에 다시 방으로 들어온 희성은 물병만 책상에 올려두고 다시 나갔다. 도윤이 온종일 먹은 거라곤 물 밖에 없다는 뜻이 된다. 문을 열기 전에 심호흡을 크게 한 번하고 방을 나선 도윤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계단을 내려가려다 또다시 앞을 막아서는 몸에 얼굴을 구겼다.

“잠깐이면 돼요, 진짜 잠깐이면 되는데.”

“죄송합니다.”

남자는 꼭 로봇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하는 말마다 ‘죄송합니다.’ 라는 대답만 반복할 순 없었다. 배가 고파서 속이 쓰렸다. 도윤이 터덜터덜 돌아와 물을 마셨다. 희성은 자신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 싶은가 본데 이번만큼은 쉽게 넘어가 줄 생각이 없었다. 겨우 이틀 굶는다고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고.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한 도윤이 다시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렸다. 배고픔을 느끼느라 고통스러운 것보단 차라리 잠이나 자는 편이 나았다.

자다가 배가 고파서 일어난 적은 처음이었다. 꿈에서 자신은 아주 맛있는 피자를 먹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배가 더 고픈 느낌이 들었다. 핸드폰이 없어서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가 없어 비틀거리며 일어난 도윤이 책상에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2시. 언제 또 다녀간 건지 물병이 채워져 있었다. 지금이면 밖에 그 로봇 같던 아저씨도 없겠지 싶어서 조심스럽게 문을 연 도윤이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을 펄떡거렸다. 저 아저씨는 잠도 안 자나? 어둠 속에서 혼자 서있던 남자는 문이 열리는 쪽을 향해 돌아보다 다시 앞을 봤다. 도윤이 눈치를 보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

“진짜 바로 올라올게요. 제발요….”

남자가 어둠 속에서도 예뻐 보이는 아이의 얼굴을 보다가 희성의 방문을 힐끔거렸다. 온종일 이곳에 서있었으니 지금 도윤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남몰래 걱정을 하고 있던 터라 남자가 잠시 고민했다. 들릴 듯 말 듯 작게 속삭이던 도윤을 따라 목소리를 낮춘 남자가 살짝 비켜나주었다.

“바로 올라오셔야 됩니다.”

“네, 네!”

도윤의 웃는 얼굴에 남자가 잠시 숨을 참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살금살금 계단을 밟은 도윤이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이틀 만에 보는 음식이 냉장고에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도윤은 청포도 몇 알과 빵 하나를 꺼내 다시 계단을 올랐다. 그릇을 꺼내는 소리조차 무서워서 휴지로 청포도를 감싼 도윤의 걸음이 가벼웠다. 그리곤 계단을 거의 다 올랐을 때 도윤은 눈앞에 벌어진 일에 걸음을 멈추었다.

남자의 얼굴이 돌아가 있었다. 이미 돌아간 얼굴로 또다시 희성의 손이 올라갔다. 찰싹도 아니고 철썩이나 퍽에 가까운 소리가 어둡고 조용한 복도를 울렸다. 도윤의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남자는 희성에게도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고 다시 한번 남자의 뺨을 내려친 희성이 고개를 틀어 도윤을 내려다봤다. 얼굴에 닿는 시선이 차갑기만 했다. 희성은 조금 더 시선을 내려 도윤의 손에 있는 휴지와 빵을 쳐다봤다. 희성에게 밀쳐진 남자가 비틀거리며 옆으로 비켜났고 도윤은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허락한 적도 없는데.”

“…….”

“도둑 새끼처럼, 남의 집에서.”

“…….”

덜덜 떨리는 발이 미끄러졌다. 뒤로 넘어지려는 도윤의 팔을 잡아챈 희성이 힘을 주어 끌어당겼다. 놀라서 떨어트린 휴지가 풀어지고 청포도가 계단을 통통거리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착하게 굴라고 했더니 도둑질이나 하고.”

“나, 난….”

“잘못했다고 빌면 원하는 건 다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 아파, 이거 놔…!”

“넌 아무런 생각도 없었겠지.”

“아!”

“네가 집에 안 들어왔었던 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희성이 웃음 한번 보여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도윤이 팔을 더 세게 잡는 힘에 입을 벌리고 고개를 숙였다.

“이 새끼는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건가?”

“제발….”

“그런 거라면 틀렸어.”

“윽.”

“죽더라도 나보단 네가 먼저 죽을 거니까.”

눈물방울이 계단으로 추락했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너무 아프고 무서워서 눈물이 나왔다. 희성이 계단에 떨어지는 눈물을 보다가 팔을 놓아주는 대신 머리카락을 잡았다. 도윤이 울면서 자신의 머리채를 잡은 손목을 붙잡았다. 계단을 올라 방으로 가는 내내 그런 도윤과 희성을 보던 남자가 고개를 숙이곤 마른 세수를 했다.

휘어 잡힌 머리카락이 당겨지면서 머리가 몹시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평소에도 잘 휘둘리던 몸이 이틀째 물 밖에 마시지 못한 탓에 손쉽게 침대를 굴렀다. 지금 드는 생각은 ‘무섭다’가 유일했다. 엉금엉금 기어서 뒤로 도망가던 발목이 잡히고 몸이 딸려갔다. 무서워, 무서워…. 도윤이 끅끅거리며 발버둥을 쳤지만 희성은 저보다 큰 몸을 아주 쉽게 뒤집었다.

“싫, 끅, 싫어, 싫어…!”

희성의 손에 붙잡힌 두 손목이 위로 올라갔다. 도윤이 그 사이에 갇힌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댔지만 희성은 남은 손으로 티셔츠를 훌렁 올렸다. 언제 봐도 예쁘고 귀여운 가슴이 눈에 들어서자 희성은 고개를 숙여 유두를 물었다. 도윤은 허리를 비틀며 싫다는 말만 반복했다. 말랑했던 유두가 희성의 혀로 인해 딱딱해졌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도윤에게 화가 났다. 희성이 이를 세워 딱딱해진 유두를 콱 씹자 도윤이 큰소리를 냈다. 빨갛게 된 유두가 만족스러웠다. 희성이 멀쩡한 반대편 유두 또한 물고 빨다가 콱 깨물었다.

조금씩 희미해져가는 자국을 따라 입술을 내려 다시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물감이 서서히 번지는 듯 붉어지는 자국에도 부족한 듯 희성이 아예 검 붉은색을 만들어냈다.

“흑, 아파, 싫어….”

머리 위로 고정시켰던 팔을 내려 아래로 잡자 도윤이 바르작거리며 반항했다. 희성은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도윤의 바지를 끌어내리기에 집중했다.

“하, 하지 마! 싫어!”

“네가 싫어봤자.”

“제발, 제발 하지 마, 나 싫어….”

“아까 이렇게 빌어보지 그랬어.”

“제발, 제발…. 아!”

반응이 없던 것을 쥐자 도윤이 눈을 감고 발버둥을 쳤다. 희성이 배려 없는 거친 손짓으로 도윤의 것을 세게 주무르고 쓸어 올렸다. 아픔과 동시에 찾아오는 미묘한 느낌에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도윤의 머리카락이 이불에 쓸려 여기저기 흩어졌다. 하얀 피부는 이제 붉기만 했고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아래가 뻐근해졌다. 희성이 입술을 씹으며 도윤의 것을 크게 쓸어 올렸다. 귀두의 끝에서 나온 액이 조금씩 양을 더하더니 이제는 손이 미끄러웠다. 눈을 뜨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던 도윤이 귀두를 손톱으로 긁는 느낌에 입을 벌렸다.

“하아, 아, 아….”

“이렇게 좋아할 거면서, 싫다는 말은 잘도 하지.”

“안, 좋, 으응!”

“그럼 이건 다 뭐야?”

희성이 질척거리는 자신의 손을 도윤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도윤이 쳐다보지도 못하고 눈을 질끈 감자 잡고 있던 손목을 풀어준 희성이 이번엔 볼을 잡고 힘을 줬다.

“네가 기분이 좋을 때 어떤 걸 쏟아내는지 똑바로 봐야지.”

“싫, 아!”

“똑바로 봐.”

시야가 흐릿했다. 도윤의 떨리는 시선이 질척한 손바닥을 훑었다. 아직 사정을 하지 못해서 아래가 꺼떡거렸다. 도윤의 몸을 뒤집었던 힘과 속도로 바지와 속옷을 동시에 벗겨 바닥으로 던진 희성이 다시 성기를 붙잡았다. 도윤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음낭을 주무르다가 다시 힘 있게 성기를 만져대는 손이 거칠었다. 도윤이 발로 침대를 밀어냈다. 동시에 허리가 들리고 성기의 끝에서 정액이 투둑, 툭, 배로 쏟아졌다.

“하아, 흐으, 으….”

사정의 여파로 도윤이 침대에 늘어져선 헐떡거리고만 있자 그 사이 옷을 모두 벗은 희성이 다시 자리를 잡았다. 몽롱하게 천장을 올려다보던 도윤이 다리가 잡히고 그 사이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귀두의 끝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싫어, 나 싫어….”

발목에 예쁘게 채워진 발찌의 위에 입을 맞추고 다리를 어깨로 넘긴 희성이 허벅지를 잡아다가 성기를 밀어 넣었다. 부드러운 허벅지살이 성기를 감싸는 것이 생각보다 더 좋았다. 도윤이 흔들거리는 다리를 보다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도윤에게 박는 것처럼 몇 번이나 허리를 쳐올리던 희성이 미간을 좁히며 다리를 놓아주었다. 힘을 주고 있느라 허벅지가 아팠다. 도윤이 훌쩍거리며 희성을 올려다보았다.

벌벌 떨리는 도윤의 허벅지에 입을 맞추고 혀를 내어 점이 있는 부분을 핥던 희성이 자신의 것을 잡고 자위를 시작했다. 입술에서는 달뜬 숨이 터져 나오고 손은 더욱 빨라졌다. 도윤은 허벅지에 쏟아지는 뜨거운 숨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터뜨렸다.

도윤을 반찬으로 자신의 것을 만져주던 희성이 사정했다. 하얀 정액이 도윤의 배에 쏟아지고 잠시 숨을 고르던 희성이 두 사람의 정액을 모아다 도윤의 것에 펴 발랐다. 붉은색의 성기에 하얀 정액이 묻었다. 희성은 뒤를 풀지도 않고 그 위로 아래를 비볐다.

“하기 싫어, 나 하기 싫어!”

“아래 다 세워놓고 그런 말 하면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거 알아?”

“희, 윽…!”

“하아….”

틈도 없던 아래가 아주 느릿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풀지도 않고 도윤의 것을 넣는다는 것은 확실히 위험한 짓이었다. 희성이 얼굴을 찡그린 채로 뒤로 손을 뻗어 주름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손가락과 입구에는 이미 액이 발려있어서 충분히 미끄러웠다. 희성이 급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아래를 벌렸다. 하아, 아…. 작은 신음이 흘렀다. 당장 도윤의 것을 안에 넣고 움직이고 싶었다. 배가 가득 차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장기가 뒤틀리는 느낌도 좋았다. 급하게 뒤를 풀고 도윤의 것을 쥔 희성이 다시 귀두의 끝을 맞추고 몸을 내렸다.

강제로 벌어진 아래는 힘겹게 도윤의 것을 삼켜냈다. 반밖에 들어서지 않았는데 희성이 숨을 헐떡였다. 도윤은 끊어질 것 같은 힘에 떨리는 손을 들어 희성의 허벅지를 잡았다. 충분히 풀어주지 않았더니 도윤의 것을 쉽게 받지 못하는 아래에 속이 탔다. 차라리 한 번에 넣고 그 뒤에 적응을 하는 것이 더 빠르겠다 싶었다. 자신의 허벅지를 쥔 손등을 잡고 몸을 콱 내린 희성이 고개를 젖혔다. 내벽이 일렁거렸다. 말랑하고 따뜻한 내벽이 성기를 물고 빨아들이자 도윤의 허리도 함께 들렸다. 더욱 깊게 들어서는 성기에 희성이 겨우 눈을 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달빛이 밝았다.

“희성, 아, 희성아, 빼, 빼줘…!”

“싫, 어. 읏!”

“움, 움직이지 마, 아!”

희성이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고통을 참으며 성기를 반이나 빼고 다시 그 위로 주저앉았다. 아! 희성이 몸을 떨면서 도윤을 내려다보았다. 도윤은 또 울고 있었다. 박히고 있는 건 난데 울고 있는 사람은 도윤이라니. 어쩐지 더 흥분이 되었다. 희성의 손이 도윤의 붉은 유두에 닿았다. 아래로는 도윤의 것을 빨아먹으며 손으로는 유두를 괴롭히기 시작하자 도윤이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재미있었다. 희성이 손을 내려 도윤의 배를 짚고 허리를 돌리다 고개를 숙였다.

“좋, 아, 도윤아, 너무…좋아, 읏!”

“흐윽, 으응, 응….”

도윤의 성기가 누르는 곳마다 성감이 차올랐다. 희성의 입에서 신음이 끝도 없이 터져 나왔다. 도윤은 자신의 것을 꾹꾹 물고 주무르는 내벽에 기절할 것 같았다.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얼굴을 가리자 희성이 손을 끌어와 자신의 것을 쥐여 주었다. 아까 사정을 했음에도 다시 크기를 키우고 흔들리던 것이 도윤의 손에 닿자 희성이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야해서 도윤은 눈을 내리깔다 희성의 뱃가죽 위로 솟았다가 없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눈물이 범벅인 얼굴만 보면서 움직이던 희성이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도윤의 것을 뿌리 끝까지 삼킬 때마다 배가 볼록해졌다.

“응, 윤아, 만져봐.”

“징, 그러워….”

“징그러워?”

“흣, 으응, 응….”

솔직한 감상평에 웃음이 터졌다. 허리를 움직이던 희성이 어깨를 떨며 웃다가 허리를 굽혀 도윤의 입술을 물었다. 눈물 덕에 입술이 짭짤했다. 어차피 뒤에 있는 건 침대라 도망갈 곳도 없는데 도윤은 고개를 뒤로 빼며 혀를 피했다. 희성이 품고 있던 것을 빼자 도윤이 몸이 부르르 떨었다. 커다란 것을 품고 있던 뒤가 허전한지 뻐끔거렸다. 희성은 고개를 틀어 혀를 더 깊숙이 넣고 도윤의 입안을 훑었다.

“일어나.”

“왜…?”

“위에서 박아봐. 가르쳐줄게.”

“…이제 그만하면 안 돼?”

“되겠어? 너 지금 나한테 혼나는 중이잖아.”

“잘못한 거 없, 없는데….”

새끼손톱만큼의 자존심을 남겨둔 도윤이 눈치를 보자 말없이 내려다보던 희성이 일어나 도윤을 일으켰다. 갑자기 일으켜진 도윤이 침대에 앉자 희성이 그 위에 앉아 끝을 맞추고 몸을 내렸다. 말릴 새도 없이 이어지는 행위에 도윤이 방황하자 목에 감긴 팔이 당겨지고 자연스레 희성의 위에 올라탄 자세가 되었다. 희성이 씩 웃었다.

희성은 도윤이 도망도 가지 못하게 발로 허리를 꾹 당겼다. 조금 더 깊게 들어서는 것에 희성이 밭은 숨을 터뜨렸다.

“천천히, 뺐다가 다시 들어와.”

“꼭, 해야 돼?”

“응.”

“하기 싫, 아!”

짜증 나게 하지 말란 의미로 도윤의 이마를 찰싹 때린 희성이 허리를 끌어당겼다. 도윤이 이마를 문지르다 성기를 조금씩 빼내곤 천천히 밀어 넣었다. 그런데 희성이 위에 올라타 움직일 때와는 또 느낌이 달랐다. 도윤이 자신의 입에서 터지는 낮은 숨에 눈을 찡그렸다.

“하읏, 어때, 하도윤.”

“이상, 해….”

“좋은 거야. 너도, 나도.”

“…정말 좋아?”

“좋으니까 조금만 더 빨리, 세게 박아.”

“빠, 빨리? 세게?”

도윤이 눈치를 보다가 허리를 쳐올리자 희성의 허리가 붕 뜨고 고개가 젖혀졌다. 하아…. 그렇게…. 계속해. 내벽이 그새 조금 부은 것도 같았다. 도윤이 미끌거리는 내벽에 성기를 밀어 넣고 몸을 떨었다.

“응, 도윤아….”

“으응.”

“내가, 하아…. 했던 것처럼, 핥아봐.”

“어, 어딜?”

좀 더 세게 박아줬으면 좋겠는데 도윤은 뭐가 그리 무서운지 벌벌 떨기만 했다. 감질났다. 더 큰 쾌감을 맛보았던 희성으로서는 애가 탔다. 뒷목을 끌어다 목덜미를 대주자 도윤이 마치 물을 마시는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혀를 내밀어 목을 핥기 시작했다. 씨발, 돌겠네. 희성이 다리를 꾹 눌러 도윤을 아래로 당겨 허리를 들썩였다. 깨물지도 못하고 핥기만 하는 혀가 더 꼴렸다. 하지만 꼴리기만 했을 뿐 성에 차지는 않는다. 쳐올리기만 해줘도 느끼는 내벽이 더한 자극을 원했다. 희성이 도윤을 밀치고 그 위에 올라탔다. 꼭 불판 위의 호떡이 된 느낌이었다. 이리저리 뒤집히는 게 꼭 호떡이나 부침개 같기도 했다. 멍하니 흥분에 젖은 얼굴을 보던 도윤이 무섭게 느껴지는 성감에 어깨를 움츠렸다.

자신의 위에 올라탄 희성은 거의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키스를 하면서도 허리는 계속 움직여댔고 자신이 느끼는 곳만 골라 도윤의 성기를 가지고 놀기도 했다. 슬슬 아래에서 사정감이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배를 짚고 있는 손목을 잡은 도윤이 입을 열었다.

“나 쌀, 것 같은, 윽, 으으….”

“싸.”

“빼, 빼줘….”

“안에, 흣, 싸.”

“싫어, 제발 빼줘, 응?”

“내 안에서만 싸. 내 눈 뒤집히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흐으, 아, 아…!”

“앞으로도, 이렇게…. 내 안에서만, 으응.”

“하아…. 아….”

도윤의 사정에 맞춰 스스로 앞을 만진 희성이 몸을 떨며 사정했다. 막 사정을 마친 성기가 덜덜 떨리는 내벽에 자극을 받아 꺼떡였다. 희성이 실실거리며 허리를 느릿하게 돌렸다. 기분이 좋았다. 도윤은 심장이 너무 뛰어서 머리가 어지러웠음에도 다시 천천히 느껴지는 성감에 침을 삼켰다.

도윤과 희성은 새벽 내내 몸을 섞다가 도윤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을 때서야 그만두었다. 도윤은 충분히 지쳐있었다. 이틀째 밥도 못 먹었는데 격한 운동을 했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이번에 희성에게 숙이고 들어가면 이 집에서 나가기 전까지 평생을 이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떠올리곤 잘못했다는 사과를 끝내 하지 않았다. 웬일로 자존심을 챙기는 도윤의 행동에 희성은 알겠다며 헐떡거리는 도윤을 두고 씻으러 갔다.

씻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너무 힘들고 피곤했다. 땀과 정액으로 이미 충분히 더러워진 이불을 끌어안고 한참을 멍하니 있자 수건을 든 희성이 방으로 들어왔다. 도윤은 잠에 취해 시야가 흐렸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도윤을 한참이나 보던 희성이 도윤의 몸을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가물가물했다. 도윤은 그렇게 자신을 덮치는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 후로도 도윤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1일째 되던 날은 어차피 생각이 없어서 그나마 괜찮았다 쳐도, 2일째엔 조금 힘들었으며 3일이 되는 날엔 속이 너무 쓰려서 물도 마시지 못했다. 희성은 밥을 먹지 못해서 힘이 없는 도윤을 매일 밤마다 안았다. 심지어 도윤은 새벽에 코피까지 쏟았다. 가끔 해가 떠있을 때도 관계를 가지기도 했는데 밀어낼 힘도 없어서 희성이 하는 대로 놔두었다. 물만 겨우 마신 지 4일이 되는 날엔 현기증이 심하게 나 눈앞이 까매졌다. 이제 당장 며칠만 지나면 새해인데 도윤은 역대 최악의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앉아만 있어도 머리가 어지러워서 속이 울렁거렸는데 희성은 그런 도윤을 봐주지 않았다. 안 그래도 어지러운데 몸까지 흔들리니 토가 나올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침대에 늘어진 도윤의 몸을 닦아주고 이불을 덮어준 희성이 가운 차림으로 복도를 걸었다. 슬슬 도윤에게 죽이라도 줘야 할 것 같아 1층으로 향하려던 걸음이 급하게 계단을 오르는 남자로 인해 멈췄다.

“뭐야, 누가 2층에 올라오라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박민영 씨께서 깨어나셨다고 합니다.”

“박민영?”

“도윤군 어머니께서 깨어나셨답니다. 지금 가족들을 찾고 계신다고….”

가운을 여미며 방으로 들어간 희성은 옷을 갈아입고 침대로 다가가 창백한 얼굴을 보다가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쳐낼 힘도 없는 도윤은 미간만 찌푸릴 뿐이었다. 입술이 터서 피가 조금씩 모습을 보였다. 희성이 바짝 마른 입술을 눌러보다가 도윤을 깨웠다. 도윤은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일어나.”

“…….”

“하도윤.”

“어지러워….”

“어머니 깨어나셨대.”

“…어?”

여태 정신을 못 차려서 허우적대던 도윤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그리곤 급하게 몸을 일으키다 현기증이 나 도로 침대에 쓰러졌다. 희성이 얼굴을 구기다가 대충 옷을 입혀 도윤을 업었다. 도윤은 흐린 정신에도 엄마를 중얼거리며 희성의 목에 팔을 둘렀다.

도윤과 희성을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업혀서 나오는 도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희성의 얼굴은 여전히 구겨져있었다.

“뭘 보고만 있어?”

“아, 이쪽으로….”

문이 열리고 도윤을 업은 희성이 팔에 힘을 주었다. 업혀서 이동하는데도 어지러운지 도윤이 끙끙 앓았다. 차에 도윤을 눕히고 머리를 자신의 허벅지에 올린 희성이 의자를 탁 쳤다. 출발해도 좋다는 신호에 남자가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도윤은 이제부터 걸어갈 수 있다며 희성의 몸을 밀어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고집을 부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희성이 불안한 눈을 고정시킨 채 도윤의 뒤를 쫓았다. 도윤은 병실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어지러움을 느끼고 엘리베이터에 기댔다. 문이 열리고 도윤이 잠시 벽을 짚으며 눈을 감았다 떴다.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자신의 팔을 잡아주려는 희성의 손을 뿌리치고 병실까지 걸어온 도윤이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펴고 문을 열자 안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어머니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깨어났다는 소식은 정말 사실이었다. 눈을 뜨고 의사의 질문에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민영은 열리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도윤을 쳐다봤다. 문을 잡고 굳어있던 도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민영의 눈이 커졌다가 팔이 들렸다. 비틀거리며 다가간 도윤이 민영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입술이 마구 떨렸다. 잠시간 어지럽지도 않았다. 도윤이 어머니의 품에 쓰러지듯 안겨서 눈물을 쏟아내는 것을 지켜본 희성이 문을 닫으며 입구에 섰다. 민영은 도윤을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여주다가 고개를 들어 희성을 보았다. 희성이 소리 없이 고개를 꾸벅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도윤의 또래로 보이는 걸 봐선 친구인 것 같았다. 전학을 가서 친구를 잘 못 사귀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이었다. 민영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민영을 보자 희성은 어쩐지 입안이 까끌거림을 느꼈다. 의료진들이 자리를 피해 주자 정말로 병실에는 도윤이 우는소리만 들려왔다.

“도윤아.”

“엄….”

“아들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졌어?”

“엄마, 엄마….”

도윤의 볼을 쓰다듬어준 민영이 눈물을 엄지로 닦아주었다. 아빠도 오고 있대. 작게 웃으며 속삭이는 말에 도윤의 눈물이 또 터졌다.

“도윤아, 뒤에는 친구야?”

“끅, 친, 친구?”

뒤를 돌아보는 얼굴이 엉망이었다. 눈물로 범벅인 얼굴이 자신을 쳐다봤다. 입술을 깨문 도윤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민영을 돌아보았다.

“아, 니에요. 친구….”

그 대답에 희성이 혀로 볼 안을 쓸었다.

“그럼?”

“김희성이라고 합니다.”

“희성이?”

“네. 지금 도윤이랑 같이 살고 있어요.”

“…같이 살다니?”

“아니야, 엄마 그런 게 아니구요, 그냥 잠깐.”

“아버님도 저희 집에서 같이 지내고 계시고요.”

“도윤아?”

자신을 노려보는 도윤의 눈초리는 그저 간지러웠고 입술은 윗니로 깨무느라 질려있었다. 희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곧 이사 갈 거예요.”

“도윤아.”

“얼른 퇴원해서 셋이 같이 살아요.”

희성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정말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어머니의 앞이라고 입만 살아서 떠드는 도윤을 당장이라도 데리고 나가고 싶어졌다. 민영이 도윤의 손등을 매만져주곤 기침을 터뜨렸다. 고작 기침 한번 했을 뿐인데 놀란 도윤이 벌떡 일어나 민영의 자리를 정리해 주었다. 민영이 소리 없이 웃었다.

“아빠 오시면 깨워드릴게요.”

“아빠 금방 올 것 같은데?”

“그래도….”

“알았어. 희성이랑 잠깐 편의점이라도 다녀와.”

마지막 말에는 대답도 없이 이불을 끌어올려 주었다. 민영이 편안히 누워 눈을 감자 희성은 기다렸다는 듯 도윤의 팔을 잡고 복도로 이끌었다. 도윤도 어머니를 뒤에 두고 있어서 별다른 저항도 없이 순순히 따라 나와 주었다. 가만 보니 도윤은 매 순간마다 집에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시 화를 삭이곤 입을 열려던 희성의 몸이 아래로 쑥 꺼졌다. 도윤이 쓰러진 것이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희성이 주변을 둘러보다 마침 걸어오는 간호사를 보고 소리쳤다.

어머니를 보는데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힘을 다 써버린 듯 도윤은 조용히 잠만 잤다. 손등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있었다. 민영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병원으로 달려온 연석은 아들이 쓰러졌다는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음을 느꼈다. 하얗게 질려있는 아들의 옆에는 희성이 있었다. 무리해서 공부를 하다가 그런 것 같다며 도윤은 자신이 보고 있을 테니 민영에게 가보라는 말에 연석은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였다.

사실 도윤이 쓰러진 이유는 정도가 미약하나 정확히는 영양실조였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격하게 뒹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고요하게 감긴 눈과 미동도 없는 속눈썹을 눈에 담던 희성이 도윤의 손을 잡고 침대에 엎드렸다.

/7.부재

몸이 무거웠다. 눈은 잘 떠지지 않았고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도 헷갈렸다.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뜬 도윤은 환한 전등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확실히 집은 아니었다.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이 꼭 병원…. 병원…. 엄마! 뒤늦게 정신이 돌아왔다. 하지만 몸을 바로 일으킬 수가 없었다. 한쪽 손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있었고, 다른 손은 희성에게 잡혀있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잠든 희성을 보았다. 희성은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자고 있었다. …싫어. 싫었다. 도윤이 잡힌 손을 빼내려다가 힘을 주는 손에 고개를 틀었다. 차라리 얼굴이나 안 보는 게 나았다.

이게 다 희성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픈 것도, 상황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것도 모두 다. 급기야 엄마의 사고와 아빠의 실직도 다 희성 때문인 것 같았다. 셋이서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왔는데 희성을 만나고부터 모든 것이 틀어졌다. 억울했다. 더 이상 울 힘도 없을 것 같았는데 눈물은 또 나왔다. 링거를 맞고 있는 손을 들어 눈가를 가린 도윤이 서러운 숨을 삼켰다. 숨을 쉬는 것 빼곤 미동도 없던 몸이 들썩이자 잠에서 깬 희성이 허리를 폈다. 온종일 우는 얼굴만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도윤아.”

“…….”

“하도윤.”

“…흐, 싫어, 제발 좀…가….”

희성의 손가락이 손등을 만지작거렸지만 도윤이 손을 빼냈다. 희성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눈물이 겨우 멎을 때쯤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가 아팠다.

“넌 대체 뭐가 문제야?”

“그걸, 몰라서 물어?”

“집도 없는 널 데려와서 먹여주고 씻겨주고 입혀준 건 생각도 안 해?”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잖아!”

“하….”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네 마음대로 했잖아! 내가 싫다고 해도 넌 계속, 계속….”

“쉬어.”

“제발, 부탁이니까 나 좀 그냥 놔둬….”

말끝이 흐려졌다. 현기증이 났다. 도윤이 팔로 눈을 덮고 호흡을 골랐다. 희성은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눈에 새기다 병실을 빠져나왔다. 주차장에 있을 남자를 불러다 병실 앞을 지키게 만든 희성이 아주 오랜만에 택시를 이용했다. 몸에 밴 지독한 소독약 냄새가 거북했다.

민영이 깨어나면서 당분간 호태의 기사 역할은 다른 사람이 맡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새해가 지났고, 연석은 옷을 갈아입거나 잠깐 씻으러 오는 것이 아니면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병원에서 집으로 온 도윤은 살기 위해서 죽을 먹었다. 며칠간은 계속 죽만 먹었다. 그러다 밥을 조금씩 먹기 시작한 뒤로 이제는 현기증도 느껴지지 않았고 속이 울렁거리지도 않았다. 희성과의 관계는 조금 서먹해졌다. 희성은 자신과 마주쳐도 몸을 만지거나 말을 걸지도 않았다. 여전히 밖을 나가는 것은 통제되었지만 병원은 허락되었다. 계단을 지키는 남자도 여전했다.

1층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 식사는 계속 방으로 올라왔다. 식사를 챙겨주시는 이모님은 밥그릇과 국그릇의 사이에 사탕이나 초콜릿을 하나씩 넣어주었다. 언제 또 굶을지 몰라 사탕은 따로 숨겨두고 초콜릿만 하나씩 까먹은 도윤은 그릇을 밖에 내놓고 양치를 했다. 이제는 방에 물이 없는 것이 어색했다. 컵을 들고 창가로 향한 도윤이 정원을 정리 중인 직원들을 내려다보다가 계단을 지키고 있는 남자의 앞에 섰다.

“아저씨.”

“네.”

“저 밑에 정원에만 잠깐 다녀오면 안 돼요?”

“…죄송합니다.”

“그냥 너무 답답해서요. 산책이라도 하고 싶어서….”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남자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속이 더 답답해졌다. 도윤이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와 햄스터를 살폈다. 너도 이 안에만 있어서 답답하겠다. 사료와 간식을 먹고 살이 올라 더 귀여워진 햄스터가 도도도 달려와 도윤을 올려다보았다. 간식도 새로 사야겠네. 도윤이 간식을 꺼내 밥그릇에 놓아주고는 책상에 팔을 올리고 그 위로 엎드렸다. 작은 입으로 바쁘게 간식을 먹던 콩이가 갑자기 그루밍을 시작했다. 잘 먹다가 뭐해. 도윤이 웃으며 케이지를 톡톡 두드리자 콩이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하던 그루밍을 마저 이어갔다.

콩이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팔이 슬슬 저려서 허리를 펴고 앉은 도윤이 바깥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문을 쳐다보며 집중했다. 아마 남자와 희성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화의 주제는 항상 비슷했다. 오늘 도윤이 남자에게 무슨 부탁을 했는지, 밥은 다 먹었는지. 일주일 전만 해도 바로 자신의 방문을 열었을 희성은 이제 방에도 잘 오지 않았다. 시선은 문에 고정시키고 손만 움직여 물을 마셨다. 바닥에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이내 멈췄다. 컵을 내려놓는 손이 느려졌다.

똑똑.

문을 두드렸다. 대체 누가? 희성은 문을 두드리지 않았고 가끔 희준이 집에 놀러 올 때면 문을 두드리곤 했다. 그도 아니라면 계단을 지키고 서있던 남자일 수도 있었다. 도윤이 입술을 혀로 쓸고는 대답했다.

“네.”

바깥에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도윤도 조용히 문만 쳐다보았다.

“하도윤.”

“…왜?”

“나와.”

“왜?”

희성의 부름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인 도윤이 문을 열었다.

“나와.”

“어디 가는데?”

“나오라면 그냥 나와.”

“…알았어.”

희성이 앞장 서자 자신에겐 그렇게 단단하던 남자의 몸이 옆으로 비켜났다. 서운한 얼굴로 남자를 힐끔거린 도윤이 희성을 졸졸 쫓아 현관에 섰다.

“어디 가?”

“정원.”

“…진짜?”

“어.”

도윤의 얼굴에 화색이 묻어났다. 겨우 집 앞에 있는 정원을 가는 건데도 도윤은 신나서 신발을 신었다. 자신이 문을 열기만을 얌전히 기다리는 얼굴을 보면서 몸을 돌린 희성이 찬바람을 맞으며 현관을 나섰다.

정원에는 겨울인데도 잘 가꾸어진 나무가 가득했다. 눈이 쌓여 마치 만화에 나오는 그림 같기도 했다. 집에서 입는 긴 바지와 후드만 입고 있는 도윤은 춥지도 않은지 신나 보였다. 걷는 길마다 눈을 치워둬서 신발이 젖지는 않았지만 춥기는 더럽게 추웠다. 길을 따라 걷는 도윤에게서 입김이 풀풀 흩어졌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뒷모습이 정말이지 작은 강아지 같았다. 분명 키는 도윤이 더 큰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희성이 다섯 걸음 정도 뒤에서 걷다가 도윤을 불렀다.

“하도윤.”

“응?”

“이리 와.”

“으응.”

그 짧은 새 귀가 빨갛게 얼었다. 순식간에 다가온 도윤이 희성의 앞에 섰다. 희성은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을 도윤에게 내밀었다. 어…. 도윤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입김이 공중에서 흩어졌다. 전에 쓰던 기종은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새 핸드폰이었다. 도윤이 머뭇거리며 눈만 치켜떠 희성을 올려다보았다.

“싫어?”

“아, 아니.”

도윤이 얼떨떨하게 핸드폰을 받고 액정을 문질렀다. 입술이 말라서 자꾸만 혀가 나왔다.

“…고마워.”

“됐어.”

“근데 나 이거 처음 써봐서….”

이 핸드폰은 희성이 쓰던 것만 봤지 실제로 써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중에 내 방으로 와.”

“응?”

“알려줄게.”

“응, 으응.”

찬바람이 불자 도윤이 코를 훌쩍였다. 귀는 아까부터 새빨갰고 코도 슬슬 빨개지고 있었다. 희성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 나무 사이로 도윤을 끌어당겼다. 새 핸드폰을 소중히 쥐고 끌려온 도윤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아무리 사람이 없다지만 이곳은 집에서도 다 보이는 정원이었다. 게다가 며칠 동안 손도 대지 않더니 갑자기…. 손쉽게 잡힌 목덜미가 아래로 당겨지고 차가운 입술이 닿았다. 목에 닿는 손도 차가웠다. 도윤이 어깨를 움츠리며 입술을 가르고 들어서는 혀를 맞이했다. 혀를 옭아매다가 쪽쪽 빨던 희성이 입안의 살을 문지르기도 하면서 키스를 이어가다가 다시 혀를 비볐다. 촉촉거리는 질척한 소음이 일었다.

“으응….”

도윤의 입에서 신음이 먹혔다. 혀의 아랫부분까지 빠짐없이 훑고 멀어진 희성에게서 입김이 샜다. 키스 한 번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린 도윤이 휘청거렸다. 주저앉지 못하게 다리 사이에 자신의 다리를 밀어 넣은 희성이 다시 입술을 붙였다. 아래가 터질 것 같았지만 지금은 이 정도만으로도 좋았다. 도윤의 입안에 있는 타액을 모두 삼켜낸 희성이 입술을 내려 턱을 깨물었다. 도윤이 달뜬 숨을 뱉으며 풀린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꼭 눈이 올 것 같았다.

도윤은 꽤 오랜 시간 자신을 끌어안고 있기만 하는 희성을 훔쳐보다가 먹구름을 올려다봤다. 기분 탓인지 희성이 조금 달라진 것도 같았다. 도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계단 앞에 아저씨….”

“왜.”

“이제 가시라고 하면 안 돼…?”

“그 사람을 네가 왜 신경 써.”

“…불편해.”

“널 어떻게 믿어. 틈만 나면 도망가려고 머리나 굴리는 너를, 내가 어떻게 믿냐고.”

“…….”

도윤의 옷에 코를 묻고 깊고 느리게 숨을 들이쉰 희성이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이제 아래가 반쯤 진정된 것 같았다.

“다음 주부터 과외 시작할 거야.”

“과외?”

“대학은 가야지.”

“…나도 하는 거야?”

“나랑 같은 대학 가려면.”

“…….”

대학을 같이 간다고?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희성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과외 중에 시선처리 똑바로 해.”

“누구한테? 선생님한테?”

“쳐다보지도 말고 질문도 하지 마.”

“그게 무슨 과외야….”

“이것도 많이 봐준 거니까 알겠으면 고개나 끄덕여.”

“…….”

“끄덕여야지.”

“알았어….”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짧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면 잘 볼 수가 없던 도윤의 얼굴에 주방에서 일하는 이모님이 반갑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덩달아 웃으며 고개를 숙인 도윤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희성의 시선에 입꼬리를 내렸다.

희성이 새로 선물해 준 핸드폰은 다루기가 어려웠다. 전에 쓰던 것과는 사소한 것부터 모두 달라서 손이 자꾸 방황했다. 자꾸 얼굴인식을 하라고 하기에 희성이 지켜보는 앞에서 어색하게 얼굴까지 등록했는데 뒤늦게 비밀번호를 쓰는 것도 있다고 알려줘서 몰래 노려보기도 했다. 침대에 나란히 앉아 새 핸드폰을 구경하는데 희성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허리를 끌어당겼다. 카메라를 구경하던 도윤이 불편한 티를 내며 슬쩍 힘을 주었다. 하지만 희성은 자신을 번쩍번쩍 들기도 하고 마음대로 뒤집기도 하는데 힘으로 이겨먹을 생각을 하다니, 그건 너무 어리석은 짓이었다.

도윤이 허리를 조물조물 주무르는 손을 떼어내며 연락처에 들어갔다. 연락처는 간소했다. 정말 지나치게 간소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저장된 번호라고는 부모님과 희성이 다였다. 서준이의 번호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서준이 번호가 뭐였더라…. 도윤이 곰곰이 생각에 빠진 사이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손이 대뜸 옆구리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파드득 놀라 손을 움켜쥐어도 손은 계속 움직였다. 도윤이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에 웃음을 터뜨렸다. 작년에도 거의 한두 번만 볼 수 있었던 보조개가 깊게 파였다. 저 보조개가 너무 귀했다. 도윤은 자신에게 저 보조개를 보여준 적이 잘 없었다.

“아! 그만, 그만해!”

“도윤아, 너 진짜 예쁘다.”

“응?”

보조개가 서서히 사라졌다. 희성의 시선은 자신의 볼에 닿아있었다. 침대에 누운 도윤이 핸드폰으로 입술을 가리고 눈을 끔뻑였다. 다소곳하게 입술을 가리고 누운 도윤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볼에도 짧은 뽀뽀를 남겼다. 보조개가 있었던 곳에도 뽀뽀했다. 희성이 볼을 아프게 깨물어 주곤 몸을 일으켰다. 볼에 묻은 타액을 닦으며 눈으로만 희성을 쫓던 도윤이 가슴팍을 문질렀다. 그냥 묘한 기분이었다. 방에 홀로 남겨진 도윤이 다시 핸드폰을 들어 손이 가는 대로 다 눌러보았다. 아빠한테 문자나 보내봐야겠다.

***

희성은 요즘 바빴다. 무슨 일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를 따라 회사에 종종 나갔다가 오는 것 같았다. 이미 위로는 형인 희준이 회사 일을 맡고 있기도 하고, 아직은 어리니 본격적으로 회사에 대해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은 알아두면 좋다는 말에 얌전히 따라다니는 중이었다.

하루의 반을 아버지와 함께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도윤을 찾았는데 도윤은 이제 방에서만 생활하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갔다. 방에 앉아 공부를 하고, 공부가 안되면 게임 영상이나 예능을 돌려봤다. 그것도 질리면 햄스터와 놀기도 했는데 도윤이 그러고 있으면 지친 낯의 희성이 찾아와 끌어안곤 했다. 밖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따끈한 도윤의 몸을 끌어안고 있으면 세상이 녹는 기분이었다. 싫다는 애를 붙잡고 입술을 붙이는 것도 좋았다. 도윤에게서 나는 살 냄새가 좋아 목덜미에 한참을 코만 박고 있었던 날도 있었다.

오늘도 희성은 아침을 먹고 아버지와 함께 간단한 운동을 했다가 집을 비웠다. 나가기 전에 아직까지 자고 있는 도윤에게 입을 맞추고 멋대로 혀까지 집어넣어 입안을 훑고 빠져나가기도 했다. 도윤이 깨어있든 자고 있든 그것은 희성에게 걸림돌도 되지 않았다. 깨어있으면 반항하는 게 귀여웠고 자고 있으면 얌전한 것이 아래를 동하게 만들었다. 물론 자느라 자신의 입안에 무엇이 들어왔는지도 몰랐던 도윤은 여유롭게 일어나 씻고 아침을 먹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 부모님과 전화를 하고, 또 잠시 패드로 영상을 보고 그다음에야 공부를 했다.

문제가 풀리지 않아 의자에 올린 다리를 긁적이던 손이 슬쩍 맨 뒤에 붙은 해설지를 훔쳐보았다. 여전히 이해는 못 했지만 답을 보고 따라 샤프를 움직인 도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살면서 과외라는 것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과외가 조금 기대되기도 했다. TV에서 보면 대학생들이 과외를 해주던데…. 대학생…. 도윤이 책상에 팔을 올리고 그 위로 턱을 얹었다. 1년 뒤의 나는 대학생이 되어있을까? 문득 궁금해져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문제를 쓱 훑었다.

똑똑.

도윤이 허리를 펴고 앉아 의자를 뒤로 쭉 밀었다. 벌써 점심을 주시나? 도윤이 시간을 확인하곤 문을 열었다. 그리곤 고개를 살짝 들어 앞에 서있는 희준을 올려다보았다. 희준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 안녕하세요.”

“뭐해?”

“저 공부, 해요.”

“방학인데?”

웃으며 되묻는 말에 도윤이 고개를 돌려 펼쳐진 문제집을 쳐다봤다. 돌아간 얼굴을 보던 희준이 입을 열었다.

“피자 사 왔는데 먹을래?”

“피자…?”

“피자 좋아해?”

“어, 좋아하긴 하는데….”

“내려가자.”

“아…. 저….”

자신은 2층을 벗어나면 안 된다. 희성이 알면 계단을 지키고 서있는 아저씨도 저도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머뭇거리는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던 희준이 괜찮다며 도윤을 이끌었다. 어깨로 팔이 둘러졌다. 도윤은 복도를 걷는 내내 계단에 서있는 남자의 눈치를 살폈지만 남자는 고개만 까딱일 뿐 자신을 막진 않았다. 희준에게 비밀을 지킨다는 대가로 돈을 받은 남자는 다시 제자리에 우뚝 섰다.

집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 모두가 도윤이 1층으로 내려온 것을 눈감아주었다. 정확히는 자신들을 위해, 도윤을 위해서. 희성이 알면 집안이 뒤집어질 것이 분명했지만 모두가 입을 다물면 되는 일이다. 희성이 없는 집안은 모두가 하나였다. 도윤이 어색하게 의자에 앉아 피자를 내려다보았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제일 기본으로 사 오긴 했는데.”

“저는 다 좋아해요….”

“다 좋아해?”

“네….”

도윤이 주방을 청소 중인 이모님을 발견하곤 고개를 꾸벅였다. 여자가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박스를 열자 포테이토 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박스가 닫혔을 때도 냄새가 진동을 해서 침이 고였는데 뚜껑이 열리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도 같았다. 피자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도윤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피자를 보다가 희준을 쳐다봤다.

“먹어.”

“먼, 먼저….”

“난 이미 먹고 왔으니까 도윤이 먹어.”

“그래도….”

차마 먼저 먹지도 못하고 침만 삼키는 도윤을 위해 제일 작은 조각을 들어 한입 베어 문 희준이 피자를 씹자 그제야 손이 움직인다. 희준이 휴지로 손을 닦고 핫소스를 뜯어 도윤에게 내밀었다.

“얼마나 뿌려줄까?”

“제가 할게요.”

“많이?”

“조, 조금만….”

“매운 거 못 먹어?”

“어…. 막 엄청 못 먹는 건 아닌데, 그래도 조금.”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희준은 연신 웃는 얼굴이었다. 표정이 다채롭지 못한 희성만 보다가 웃고만 있는 희준을 보니 자꾸만 눈길이 갔다. 희성과 닮은 듯 닮지 않았다. 도윤이 피자를 우물거리며 희준을 훔쳐봤다. 작은 피자 조각은 마음만 먹으면 세입 만에도 먹을 수가 있었지만 도윤을 위해 느릿하게 씹어 삼킨 희준이 손을 닦고 컵에 콜라를 채웠다. 도윤이 고개를 꾸벅였다. 목으로 넘어가는 탄산이 따가운지 도윤의 눈가가 잠시 찌푸려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한 조각을 빠르게 먹고 다른 조각을 든 도윤이 입을 벌렸다. 희준은 입속으로 사라지는 피자와 바쁘게 움직이는 입술을 보며 물었다.

“앞으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나한테 문자해.”

“네?”

“잘 먹으니까 보기 좋네. 막내는 이런 재미도 없고….”

밥도 재미없게 먹는 희성을 떠올린 희준이 턱을 괴고 도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렇게 쳐다보는데 피자를 먹기가 조금 민망해서 입을 작게 벌린 도윤이 피자를 야금야금 먹었다.

“근데 내 번호는 알아? 내가 알려줬던 적이 있던가?”

도윤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희준이 지갑에서 꺼낸 명함을 도윤의 앞으로 쭉 밀어주었다. 피자를 먹고 있어서 명함을 들어보지는 못하고 고개만 숙여 쳐다본 도윤이 명함에 새겨진 희준의 이름을 따라 눈알을 굴렸다. 명함이라니, 정말이지 어른 같았다. 도윤이 피자를 씹으며 고개를 들었다.

“근데, 희성이가….”

“그러니까 몰래 해야지.”

“…….”

“오늘도 일부러 집에 막내 없는 거 확인하고 온 건데.”

“아….”

도윤이 입안에 있는 것을 꿀꺽 삼켰다. 피자는 맛있었다. 짭짤한 베이컨과 부드러운 감자의 조화가 상당히 좋았다. 도윤이 피자를 크게 물었다가 마주친 눈에 시선을 내리깔았다. 희준은 언제 봐도 긴 속눈썹과 이어진 커다란 눈을 천천히 훑다가 기름과 소스로 번들거리는 입술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음식을 먹을 때 입이 벌어지지도 않고 쩝쩝 소리도 없이 예쁘게 잘도 먹었다. 피자에 정신이 팔려 한참을 우물거리던 도윤이 뒤늦게 시선을 느끼고 손등으로 입술을 닦아냈다.

“휴지 놔두고.”

“으응….”

몸을 일으켜 도윤의 입가를 닦아준 희준이 마지막으로 손등까지 닦아주고 나서야 다시 의자에 몸을 붙였다. 희성에게는 나지 않았던 향수의 냄새가 살짝 스쳐갔다. 도윤이 다급하게 콜라를 마셨다.

희준이 먹은 작은 조각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맛있게 먹은 도윤이 입술을 혀로 핥았다가 안으로 말아 물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희준이 사 온 피자를 혼자 다 먹고 있었다. 아무리 한 조각을 먹었다고 해도 자신이 먹었던 조각들에 비하면 아주 작았다. 도윤이 휴지를 만지작거리며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여태 맛있게 먹어놓고 눈치를 보는 도윤이 귀여워 웃음을 터뜨린 희준이 식탁을 톡톡 두드렸다.

“다음에 또 사 올게.”

“네에.”

오랜만에 맛본 피자에 정신이 팔려도 단단히 팔렸다. 4일 동안 강제로 물만 마셔봤던 도윤은 이제 배가 불러도 음식이 눈앞에 있으면 일단 먹고 보는 안 좋은 버릇이 하나 생기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자꾸만 저도 모르게 배가 불러도 먹고 있었다. 머쓱해진 도윤이 박스를 정리했다. 깔끔해진 식탁에 만족스러운 듯 도윤이 콜라를 홀짝였다. 희준은 주머니에서 우는 진동에 전화를 받으며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상대방이 뭐라고 하는지 들으라면 들을 순 있었지만 남의 대화를 엿듣는 것은 나쁜 일이었기에 얌전히 콜라만 마셨다. 희준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전화가 끊어졌다. 도윤이 아닌 척 콜라를 마시다 희준과 눈이 마주쳤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혼자 찔린 입이 스르륵 열렸다.

“어디 가세요…?”

아닌 척하고 콜라만 마시고 있더니 궁금했는지 조심스럽게 묻는 목소리가 갈수록 작았다. 희준은 먼저 말을 걸어놓고 눈을 피하는 도윤이 꼭 거북이 같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내밀고 있다가 누가 건들면 등껍질 속으로 숨어버리는 것이 비슷했다. 희성과 같은 나이고 같이 살기도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를 수가 있을까. 희준은 궁금증이 생겼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출장?”

“아하….”

“도윤이 비행기 타본 적 있어?”

“…….”

바닥을 보이는 컵에 콜라를 다시 채워주자 도윤의 고개가 꾸벅이다가 양옆으로 돌아간다. 뚜껑을 닫던 손이 멈칫거렸다.

“요즘 대부분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지 않나?”

“배, 배 타고….”

“…배?”

의아하다는 물음에 어쩐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전학을 오기 전에 다녔던 학교에서는 수학여행을 제주도까지 배를 타고 갔었다. 덕분에 도윤은 아직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못했고, 여권도 없었으며 따라서 해외를 나가보지도 못했다. 심심하면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어머니와, 방학마다 해외로 나갔던 과거의 희성을 떠올려보던 희준이 눈을 깜빡였다.

“뭐 가지고 싶은 건 없어?”

“별로 없어요.”

“먹어보고 싶은 건?”

“별로….”

“간식 같은 거 사다 줄까? 팀장님은 나갈 때마다 애들이 부탁했다고 뭐 잔뜩 사 가시던데.”

“괜, 찮은데.”

“이번엔 나도 팀장님 따라서 돌아다녀 봐야겠네.”

도윤이 괜찮다고 고개를 저어도 희준은 듣지도 않았다. 이럴 때는 희준이 왜 희성과 형제인지 알 것도 같아서 도윤의 손바닥에 땀이 찼다.

희준은 도윤에게 피자를 마음껏 먹이고도 여유롭게 차까지 한잔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내어줄 때 뜨거우니 조심하라고 했더니 입고 있던 긴팔의 소매를 끌어당겨 잔을 쥐고 후후, 불어마시는 귀여운 모습도 구경할 수 있었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귀여움이 묻어났다. 본인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레 나오는 귀여움이라 웃음만 나왔다. 모두가 평화로운 오후를 보냈다. 희준은 현관까지 따라와 배웅을 해주는 도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집을 나섰다. 날이 추웠으나 견딜만했다.

희준이 집에서 나가자마자 도윤은 잽싸게 2층으로 올라가 방에 콕 처박혔다. 희준이 없으니 무서웠다. 희성에게 이 모습을 들키는 날엔 또 밥을 못 먹게 될지도 몰랐다. 미래의 자신을 위해 서랍에 숨겨둔 사탕의 개수를 확인하는 눈이 바빴다. 초콜릿도 조금 있으니 이 정도면 버틸 순 있을 것 같았다.

거의 피자 한 판을 혼자 다 먹어버리고 차까지 마신 도윤은 배가 너무 불러서 곤란했다. 희성이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면 어떡하지?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생각은 전혀 다른 길로 빠졌다. 만약 희준이 왔다는 것을 희성이 알게 되면? 모두가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했지만 불안했다. 이 집안의 왕은 희성의 부모님이 아니라 희성이었다. 혹여나 누가 들켜서 다 불어버리면 어떡하지?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샤프가 손에서 굴러 책 위로 떨어졌다. 결국 동영상을 멈추고 이마를 긁적인 도윤이 방안을 서성거렸다. 밖에 나가서 산책도 못하니 방을 빙빙 돌면서 소화를 시키는 수밖에.

방을 돌아다니고, 옷장을 정리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햄스터의 집까지 정리했는데도 피자가 가슴까지 차있는 기분이었다.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를 마신 도윤이 찬바람에 코를 훌쩍였다. 춥지만 상쾌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주었다. 도윤이 멀리서부터 들어오는 차에 고개를 쭉 내밀었다. 희성이 돌아왔다.

차에서 내린 희성이 2층을 올려다보았다. 둘은 눈이 마주쳤고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는 사이 희성이 성큼성큼 걸어 집으로 들어왔다. 도윤이 창문에 기대 문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곧 문이 열리고 희성이 다가올 것이다. 손가락으로 창문을 톡톡 두드리던 중에 문이 열리고 희성이 나타났다. 도윤은 멈칫거리는 것도 없이 곧장 다가오는 희성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어깨에 볼을 기대는 희성에게선 겨울의 냄새가 났다. 머뭇거리는 손이 끝내 희성의 등에 닿지 못했다.

“하도윤.”

“응.”

“도윤아.”

“으응?”

“하도윤….”

희성이 고개를 틀어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찬바람을 맞고 있어서 그런지 평소에는 따끈했던 살이 차가웠다. 희성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오늘 뭐 했어?”

“나, 그냥….”

“밥은.”

“으응, 먹었어.”

“저녁도?”

“배가 별로 안, 고파서….”

“왜?”

“점, 점심을 조금 늦게 먹었어.”

희성이 미심쩍다는 눈초리로 도윤을 훑었다. 그리곤 다시 도윤을 끌어안고 한참을 서있기만 했다. 슬슬 다리가 아파서 밀어내려는 찰나 희성의 입이 열리고 도윤이 티 나게 굳었다.

“…향수 냄새.”

“…으응?”

“향수 냄새.”

딱딱하게 굳은 몸을 매만지던 손이 티셔츠를 훌렁 들어 보였다. 판판한 배는 자신이 남겼던 흔적 외에는 깨끗했다. 코를 박고 있던 목덜미도 확인했다. 하얀 목도 깨끗했다. 희성이 턱을 비틀었다. 도윤은 쿵쿵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화, 화장실 방향제 냄새인가…?”

창문을 열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순식간에 오르는 열에 땀이 날 뻔했다. 그래도 여전히 미심쩍다는 시선이 닿자 도윤이 목을 긁적였다. 뚝딱거리는 것이 묘하게 거슬렸으나 당장 눈앞의 도윤이 너무 예뻤다. 희성이 허리를 끌어당겨 도윤을 끌어안았다. 온종일 피곤했던 몸이 녹는 기분이었다. 허리를 주무르는 손이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 엉덩이에 올랐다.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곳을 잘근잘근 물면서 엉덩이를 만지자 허리가 비틀렸다. 가만히 좀 있으라는 의미로 엉덩이를 때리자 도윤이 아프다고 소리를 냈다. 손에 닿는 말랑함이 좋아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고개를 물린 희성이 눈을 맞춰왔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지금 당장 깔아서 울리고 싶거든.”

“…….”

“넌 내 밑에서 울 때가 제일 예뻐, 알아?”

“…….”

“같이 씻자.”

“싫, 싫어.”

하얀 손목이 희성의 손에 붙잡혔다. 싫어어…! 싫다고 버텨도 이끄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질질 끌려 욕실에 도착했다. 희성이 욕조에 물을 틀어두고 도윤의 옷을 벗겨냈다. 싫다고 도망가려는 몸을 욕조에 구겨 넣자 쪼그리고 앉아 희성을 노려보다가도 희성이 고개를 돌리면 언제 노려봤냐는 듯 자신의 발가락만 내려다보았다.

씻겨준다는 명목으로 데려와 놓고 도윤이 눈물을 터뜨리고 콜록거리며 정신을 놓을 때쯤 끝난 행위는 오늘도 힘들기만 했다. 퉁퉁 부어오른 유두가 아팠고 씹힌 온몸이 따가웠다. 비틀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숨으려는 도윤을 이끌어 자신의 방으로 데려온 희성은 겨우 입혀놓은 가운을 벗기고 잠을 청했다. 자꾸 우느라 히끅거리는 소리에도 잠은 잘 왔다. 희성은 밤새 도윤이 도망가기라도 할까 봐 허리에 감은 손에 힘을 주고 눈을 감았다. 마주 보고 누운 덕에 도윤의 서러움이 담긴 숨이 얼굴에 닿아서 몸이 달았지만 꾹 참았다. 도윤은 욕실에서만 네 번의 사정을 토해낸 몸이었다. 세 번째로 쏟아낼 때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야해빠진 얼굴로 애원했고 마지막으로 사정했을 땐 거의 기절 직전이었다. 희성이 더 닿을 곳도 없는 허리를 바짝 끌어당겼다.

***

과외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일주일 사이에 총 3명의 과외 선생님이 저택을 스쳐지나 갔다. 첫 번째 사람은 도윤을 보자마자 넋을 놓고 있다가 입구에서 그대로 돌려보내졌고 두 번째 사람은 자꾸만 도윤에게 말을 걸어 대서 중간에 희성이 문제집을 엎어버렸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이 쫓겨난 날, 도윤은 왜 자꾸 모르는 사람이 묻는 말에 대답을 다 해주고 앉았냐고 희성에게 욕을 얻어먹었다. 공부를 하라고 새로 들였던 책상 위에서 숨이 막힐 때까지 키스를 당한 도윤은 잠시 정신을 잃고 널브러져 있어야 했다.

세 번째 사람은 그나마 좀 괜찮은 것 같았다. 도윤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수업도 잘했다. 그러나 문제를 푼 도윤에게 칭찬을 해주고, 칭찬을 받은 도윤이 신난 강아지처럼 웃었을 때 희성은 문제집을 덮었다. 어려웠던 문제를 겨우 풀었는데 칭찬까지 받으니 기분이 좋아서 웃은 거였는데 희성이 남에게 함부로 웃어주지 말라고 했던 말이 뒤늦게 생각난 도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세 번째 사람은 그대로 쫓겨났다. 텅 비어버린 방에서 침묵을 지키는 희성이 무서워 오들오들 떨던 도윤은 방으로 끌려가 오래도록 울기만 했다.

이쯤 되니 이젠 정말로 진지하게 과외를 받고 싶었다. 그래서 도윤은 네 번째로 찾아온 선생님에게 인사만 하고 문제집에 얼굴을 박듯이 집중했다. 도윤이 고개를 들지 않는 덕분인지 과외를 시작하고 최초로 1시간이 흘렀다. 이모님이 중간중간에 먹고 하라며 가져다주신 과일이 테이블의 중앙에 놓였다.

뒷목이 너무 뻐근해서 고개를 돌리던 도윤이 눈치를 보며 포크에 사과를 콕 찍었다. 간단한 시험을 보겠다는 말에 방이 조용했다. 희성은 과외 자체를 귀찮아해도 나름 샤프를 열심히 굴리고 있었고 선생님은 문제집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 정적 속에서 갑자기 ‘와삭’, ‘와삭’ 소리가 퍼지자 희성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소리의 진원지를 확인했다. 시선의 끝에는 도윤이 멍하니 앉아 사과를 먹고 있었다. 붉은 입술이 사과에 눌렸다가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와삭, 와삭.

희성은 아예 샤프를 내려두고 도윤을 구경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윤은 아직도 멍을 때리며 사과를 씹고 있었다. 조용한 방에 퍼지는 뜬금없는 소리에 고개를 든 선생님이 도윤을 힐끔거리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희성은 사과가 들어간 저 입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샤프를 들었다. 사과 한 조각을 다 먹고 또 새로운 사과를 콕 찍어 입으로 가져간 도윤이 샤프를 쥐었다. 왼손으로는 사과를 먹고, 오른손으로는 문제를 풀었다.

사과는 도윤이 다 먹었다. 사과를 먹고 달달해진 입안을 혀로 훑으며 채점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앞에서 뻗어온 다리가 닿았다. 허벅지에 닿은 발에 도윤이 크게 움찔거리며 선생님을 살폈다. 이번 선생님은 정말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했다. 다리를 길게 뻗어 자신의 다리를 쓸어 올리고 허벅지를 누르는 발을 붙잡아 내린 도윤이 미간을 좁혔다. 입모양으로만 하지 마. 했더니 희성이 어깨를 으쓱이며 발을 놀렸다. 거리가 있어 제일 중요한 곳에는 닿지 않았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지금 자신은 과외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도윤은 자꾸 다리를 문지르는 발을 붙잡고 다시 한 번 하지 마! 하며 소리 없이 외쳤다.

“여기 각자 시험지.”

“네, 네.”

“둘 다 대충 어느 정도인지는 알겠어. 시간은 미리 들어서 알겠지만 주 2회 2시간씩 할거야.”

희성은 듣는 둥 마는 둥, 심드렁했다. 도윤은 겨우 멎은 발 장난에 안도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눈이 뻑뻑한지 눈두덩 위를 꾹꾹 누르다 문지른 선생님이 문제집을 정리하며 일어났다.

“그럼 다음 주에 보자.”

“안녕히 가세요.”

맡은 학생은 둘인데 인사는 한 사람의 목소리로만 들려왔다. 앞으로 도윤과 희성의 과외를 맡아줄 선생님이 집을 빠져나갔다.

희성은 이번 한 번으로는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주를 지켜보기로 했다. 오늘은 도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였다. 도윤은 시험지와 문제집을 쌓고 그 위로 필통을 올렸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희성은 화를 내지도 않았고 선생님은 쫓겨나지 않았으며 끝나고도 자신을 건드는 손이 없었다. 기분 좋은 쪽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도윤, 이리 와.”

“안 올라가?”

“이리 와.”

문제집과 필통을 끌어안고 희성에게 다가간 도윤이 익숙하게 휘어 잡히는 허리에 중심을 잃고 문제집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넘어지지 않게 책상을 짚은 손목이 살짝 아려왔다. 도윤의 다리 사이로 무릎을 밀어 넣고 사이를 넓힌 희성이 그대로 허리를 끌어왔다. 다리가 벌어지며 엉덩이가 닿고 도윤이 희성의 위에 올라탄 자세가 되었다. 희성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좋았다. 도윤은 누가 언제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 불안해서 자꾸만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게 희성을 자극한다는 것도 모르고,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 하나로.

“허리 그만 흔들지.”

“내가 언제?”

“지금도.”

“이건…!”

숨까지 멈추고 고개를 숙인 도윤이 반쯤 서있는 것을 발견하곤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끌어당겨 앉혀졌다. 희성의 입에서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다.

“…나 하기 싫어.”

“넌 어차피 매일 하기 싫어하잖아.”

“근데 왜 내 말 안 들어줘?”

“들어주기 싫으니까.”

뼈마디가 불거져 잘생긴 손이 도윤의 골반을 잡고 앞으로 당겼다가 뒤로 밀어냈다. 옷 위로 닿는 감각이 새로웠다. 도윤이 손을 떼어내려 허리를 비틀다 뒷목을 콱 잡아 누르는 힘에 희성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잠시만 이러고 있어.”

“누가 오면 어떡해….”

“아무도 안 들어와.”

도윤이 본능적으로 희성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숨을 쉬느라 닿는 조그만 숨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커다란 자극으로 다가왔다. 욕실을 같이 쓰니 희성의 몸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희성에게선 이런 냄새가 나는구나. 도윤이 얌전히 안겨서 숨을 쉬다가 허리를 지분거리는 손길에 볼을 비비적댔다. 부드러운 볼이 목덜미에 비벼지자 금방이라도 사정을 할 것만 같았다.

“으응….”

언제 들어도 귀여운 신음이었다. 사람이 앓는 소리가 이렇게까지 귀여워도 되나. 희성이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에 엉덩이를 당겨 안았다. 바르작거리기만 하고 완전히 밀어내지는 못하는 몸이 따끈해서 좋았다.

“도윤아, 평생 내 옆에만 있어.”

“…….”

“울어도 내 옆에서 울고, 웃어도 내 옆에서 웃어.”

“…….”

“숨 쉬는 것도 내 옆에서만 해.”

“…….”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옆에 있어. 그래야 내가 살아.”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희성의 말이 귀에 바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도윤은 입을 꾹 다물고 말을 아꼈다. 손가락으로 척추뼈를 따라 눌러주던 희성이 다시 허리를 끌어안았다.

“알았으면 대답해.”

“…….”

“너 때문에 나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대답해.”

“…응.”

“내 집에서, 내 옆에만 있어.”

“응….”

“네가 없어지면 난 그냥 죽을 거야.”

“…왜?”

“내가 죽으면 네가 날 죽인 거야.”

듣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혔다. 안겨있던 몸을 떼어내 눈을 마주친 도윤이 흔들림도 없는 눈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희성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에 누가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은 고통이 일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그러니까 제발 이대로 있어.”

“왜, 왜 그런 말을 해?”

“요즘 자꾸 네가 이 집에 없는 꿈을 꿔.”

“…….”

“고작 하루 집에 없었을 뿐이었는데, 나는 매일매일 그런 꿈을 꿔.”

“…….”

“그래서 아침마다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너를 찾아. 네 방에서 멀쩡히 자고 있는 널 보면 그나마 좀 나아.”

희성의 손이 하얀 볼에 닿았다. 도윤은 복잡한 심정으로 희성을 내려다보았다. 위에서 눌려지는 힘에 닿은 입술이 자연스레 벌어졌다. 혀가 섞이고 타액이 섞였다. 도윤은 천천히 입술을 머금고 혀를 옭아매는 희성에게 맞춰주려 고개를 살짝 꺾었다. 희성은 웬일로 키스에 응해주는 도윤이 좋아서 혀를 쑥 밀어 넣었다.

***

희성에게 병원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고 병실로 들어선 도윤이 손을 씻고 아버지의 옆에 앉았다. 어머니가 깨어나기 전에는 간병인을 썼었는데 어머니가 깨어난 후로는 내내 아버지가 그 옆을 지켰다. 민영은 오랜 시간 누워만 있었던 탓인지 몸이 많이 약해져있었다. 조금이라도 오래 활동을 하면 기침을 토했고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어했으며 일어나있는 시간보다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더 많기도 했다. 그새 살이 많이 빠진 부모님의 얼굴이 보기 힘들었다. 수척해진 얼굴로 도윤의 손등을 잡은 연석이 웃으며 밥은 먹었냐 물었다.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영은 잠들어있었다.

“도윤아, 밖에서 잠깐 얘기 좀 할까?”

“여기서 하면 안 돼요?”

도윤의 손등을 붙잡고 민영을 내려다본 연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문을 닫는 순간까지도 어머니를 돌아보던 도윤이 아버지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연석은 추운 날씨에도 외투 하나 걸치지 않고 걷고 있었다. 유난히 작아 보이는 등에 마음이 아팠다.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도윤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연석의 손에 쥐여 주었다. 고작 몇 백 원의 커피에도 연석은 고맙다며 종이컵을 만지작거렸다. 도윤이 눈치를 보며 옆에 앉아 손바닥으로 무릎을 문질렀다. 커피를 한 모금 넘기고 마른 세수를 한 연석이 입을 열었다.

“도윤아.”

“네?”

“…….”

“왜요?”

“우리 이사는 조금만 더 생각해 볼까?”

“…왜요?”

아버지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도윤은 눈을 내리깔아 바닥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제 겨우 고3인데, 널 혼자 두기에는….”

“…….”

“가진 것도 없이, 아빠가 욕심만 많아서….”

“…….”

“의사들이…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는구나….”

끝내 터진 눈물이 연석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도윤이 눈을 깜빡이다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며 마구 떨리는 입술을 깨물다 입을 열었다.

“엄마, 깨어나셨, 잖아요.”

“…….”

“저랑 얘기도 했어요. 이제 겨우 깨어나셨는데, 말도 안 되잖아요!”

“이게 다 내 잘못이다, 내가 못나서, 내가 다 잘못했어.”

“그게 왜…!”

도윤이 소매를 끌어당겨 눈을 벅벅 문질렀다. 호흡과 입술이 너무 떨려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제 겨우 일어나서 내 이름을 불러주셨는데, 갑자기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 이런 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인생은 영화가 아니었다. 도윤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도망치듯 병실로 들어왔다. 마치 자신이 언제 깨어났냐는 듯 민영은 고요히 잠들어있었다.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도윤아, 하고 이름을 불러줄 것만 같은데 의사들은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입술에 피가 나도록 깨물어도 울음이 그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어머니의 손이 차가울까 봐, 어머니의 몸에 더 이상 체온이 남아있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도윤이 닿지도 못하는 손을 쥐었다가 펴곤 몸을 숙였다. 숨이 너무 벅차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가슴이 조이듯 너무 아팠다.

바닥에 쓰러지지도 못하고 허리만 숙여 울음을 토해내고 있자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전에도 기침을 터뜨리곤 정신을 차리지 못해 병실이 소란스러웠었다. 의료진들은 바쁘게 상태를 확인했고 정신은 자꾸만 흐려졌다.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눈을 떴더니 도윤이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눈물범벅인 얼굴이 자신을 향했다. 왜 울고 있냐고, 안아주고 싶었다. 도윤이 눈물을 닦으며 다가와 손을 잡았다. 시야엔 산소호흡기와 도윤이 들어왔다. 숨을 색색 뱉는 민영을 끌어안고 울던 도윤의 머리에 손이 닿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에 도윤의 울음이 더 커졌다.

“도…윤아….”

조그맣게 부르는 자신의 이름에 도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얼굴을 묻었다. 어릴 때부터 눈물이 많아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다 커서도 여전한 아들이 안쓰러워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게 꼭 자신의 잘못 같기도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자식이라 정말 귀하게 키웠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할까 봐 매일매일을 걱정했고, 어쩌다 다쳐서 오는 날엔 제가 더 고통스러워 밤새 상처를 들여다보고는 했다. 도윤이 감기에 걸려 몸에 열이 오르기라도 하면 또 밤새 졸지도 않고 수건을 갈아줬고, 땀을 닦아주었다. 차라리 자신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머리, 아프겠다…. 그만 울어….”

“끅, 흐, 흐으….”

“도윤아….”

힘이 없는 손이 도윤의 볼에 닿았다. 부드럽고 예쁜 볼이 따뜻했다. 아마 너무 많이 울어서 열이 오른 것 같았다. 도윤의 아픔까지 모두 자신이 가져가고 싶었다. 숨을 쉬기도 힘든 입술이 느릿하게 열렸다. 사람의 직감은 무서웠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으면 또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좀… 봐, 응?”

“아, 아니야, 하지 마세요, 하지 마….”

“엄마가 너무 미안해….”

“안 들을래, 안 들을 거예요!”

“다음에…도….”

“그만, 제발요 그만….”

“엄마가….”

기침이 쏟아졌다. 도윤이 급하게 호출버튼을 꾹꾹 눌렀다. 복도가 소란스러워지고 문이 열렸다. 어머니의 손을 잡은 도윤이 숨을 헐떡이며 의사가 다가오는 것을 쳐다보았다. 문밖에 서있던 아버지도 함께 들어와 도윤을 끌어안았다. 어머니의 손을 놓친 도윤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둘러싸인 의료진들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아버지의 손이 도윤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

도윤의 어머니의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쯤은 미리 말을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오전에 도윤이 병원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도윤의 방에서 햄스터와 눈싸움을 하던 도중에 부고를 받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는데 도윤이 오지 않아 슬슬 기분이 안 좋아지려던 참이었다. 문자를 받자마자 도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인상을 구기며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오자 안타까운 표정을 하고 서있는 부모님이 있었다. 오늘만큼은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도윤은 울다가 지쳐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연석은 홀로 서서 간간이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영정사진 속 민영은 웃고 있었다. 고통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연석은 멍하니 그 사진을 보다가도 자신에게 인사를 해오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장례식은 고요했다.

병원에 도착한 희성의 가족들은 곧장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복도와 입구에는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위로하는 근조화환이 줄지어 서있었지만 민영의 장례식장은 텅 비어있었다. 연석은 회장님을 발견하곤 고개를 꾸벅였다. 희성이 그 뒤를 따라 고개를 숙이며 도윤을 찾았다. 연석의 옆에 서 있어야 할 도윤이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조의를 표하고 주변을 둘러본 희성이 이어진 방으로 들어갔다. 도윤은 찾아온 조문객들이 식사를 하는 곳에 있었다. 구석에 처박혀서,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희성이 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새빨갰고 눈이 부어있었다. 지쳐서 잠든 건지 입술에선 색색거리는 숨이 흘러나왔다. 희성이 옷을 벗어다 도윤의 위에 덮어주었다. 잠깐 찾아온 온기에 도윤이 잠결에 몸을 더 웅크렸다. 밥을 먹는 조문객도 없었다. 작은 머리통을 들어 허벅지에 올린 희성이 까만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쓸어주었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도윤의 눈에 손바닥을 올려 빛을 가려준 후 텅 비어있는 공간을 훑었다. 이렇게 조용한 장례식장은 처음이었다.

희성의 부모님은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주었고 희준은 늦은 밤에 찾아왔다. 그리곤 오는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연석에게 잠깐이라도 앉아있으라며 신경을 써주기도 했다. 이제 시간은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희성이 잠깐 눈을 감고 있다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에 손가락을 벌려 틈새를 내려다보았다. 퉁퉁 부어버린 눈 위로 촘촘한 속눈썹이 살랑거리고 있었다. 희성이 손을 내려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멍하니 눈앞의 와이셔츠를 보던 도윤이 몸을 일으켰다.

“안녕.”

“…….”

도윤이 주변을 둘러보다 이마를 짚었다. 어지러웠다. 온몸의 수분이 다 메말라버린 것 같았다. 이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여태 덮고 있던 옷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희성이 팔을 뻗어 도윤을 끌어안았다.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꿈이 아니구나. 현실임을 알아채자 숨이 거칠어졌다. 온종일 그렇게 울어댔는데도 눈물은 또 나왔다. 등을 문질러주는 손에 도윤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듣는 사람의 마음이 아플 정도로 울어댔다. 희성은 그만 울라고 말리지도 않았다. 도윤이 속에 담긴 것을 다 토해낼 때까지 그저 등만 만져줄 뿐이었다.

도윤은 한참을 울다가 그대로 안겨서 정신을 잃었다. 숨을 헐떡이는가 싶더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 아마 장례식장에 와서부터 울다 쓰러지고 울다 쓰러지길 반복한 듯싶었다. 차라리 쓰러진 김에 아무 생각 없이 잠이나 잤으면 좋겠기에 옷을 끌어다 얼굴까지 덮어주었다. 희성이 배에 닿는 뜨거운 숨을 느끼며 팔을 토닥여주는 사이 희준이 다가왔다. 희준은 몸을 말고 희성에게 안겨 쓰러진 도윤을 보다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도윤이 밥은?”

“밥이 넘어가겠어?”

“그럼 너는.”

“생각 없어. 이런 곳에서 먹고 싶지도 않아.”

“도윤이 자?”

“보면 몰라?”

옷을 들춰보는 손을 쳐낸 희성이 얼굴을 구겼다.

“건들지 마.”

“지금 이럴 때야?”

“건들지 마.”

“도윤이 깨워서 물이라도 먹여야지.”

“깨우지 마.”

“희성아.”

“눈만 뜨면 우니까 차라리 자고 있는 게 나아.”

“너도 물 좀 마셔.”

희준이 물병을 옆에 소리 없이 살짝 놓아두고는 다시 일어났다. 속삭이듯 대화를 이어가도 도윤은 가끔씩 몸을 떨뿐 조용히 잠만 잤다. 희준은 마치 도윤의 집에서 태어난 장남처럼 굴고 있었다. 확실히 먼저 태어나 세상을 살아왔던 희준이라 이런 일에도 능숙했다.

이른 새벽에 장례식장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첫차를 타고 올라와 택시를 타고 오는 내내 하얗게 질렸던 얼굴이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연석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사를 오기 전, 도윤과 가장 친했던 서준이 정신없이 달려와 남자를 끌어안았다. 도윤과 함께 커서 거의 아들이나 마찬가지였던 서준의 등을 토닥여주는 손에 힘이 없었다. 서준의 뒤로 서준의 부모님이 다가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묻다가 눈물을 보였다. 친한 사람들의 눈물에 도윤의 아버지가 숨을 참으며 눈에 힘을 주었다.

새벽부터 소란스러워진 분위기가 어색했다. 졸다가 깨기를 반복했던 희성이 눈을 뜨고 여전히 자고 있는 도윤을 확인했다. 몸이 조금 뜨거운 것이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옷을 걷어내고 이마에 손을 올리자 도윤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너무 많이 운 탓인지 이마가 평소보다 뜨거웠다. 이제 슬슬 깨워서 뭐라도 먹여야 할지, 아니면 이대로 놔둬야 할지 고민을 하는 사이 처음 보는 얼굴이 헐레벌떡 들어와 자신을 본다. 누구…. 희성이 서준의 얼굴을 올려다보는데 뒤늦게 도윤을 발견한 몸이 달려들었다. 씨발, 뭐야? 도윤의 머리를 끌어안고 눈에 힘을 주고 있는데 도윤이 뒤척이며 눈을 떴다. 띵한 관자놀이를 누르며 몸을 일으킨 도윤이 목을 끌어안는 힘에 비틀거리며 팔을 더듬었다.

“너 뭐야.”

“도윤아!”

“누구…. …서준이야?”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데 씨발 남의…서준?”

“서준, 서준아….”

희성의 머릿속으로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고, 절대 사진을 보여주지 않던 서준이라는 이름이 스쳐지나 갔다. 서준과 도윤은 서로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자신이 보는 눈앞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끌어안고 있는 도윤을 보자 피가 차갑게 식었다. 그렇게 보여 달라고 할 땐 모르는 척을 하더니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희성이 둘 사이를 떨어뜨리고 도윤을 끌어당겼다. 눈물 콧물 다 뽑아내며 울던 서준이 훌쩍거리며 멀어진 도윤과 그 뒤로 눈을 빛내는 희성을 쳐다봤다.

“이거, 놔!”

도윤이 팔을 풀어내려 힘을 썼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서준뿐이었다. 콧물을 휴지로 닦고 인상을 쓰자 겨우 벗어난 도윤이 벌떡 일어나 서준을 끌고 자리를 벗어났다. 아까부터 차갑게 식은 피가 제 온도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뒤를 쫓으려던 희성의 앞으로 이번엔 희준이 나타났다.

“그만.”

“비켜.”

“김희성, 그만.”

“뭘 그만하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비켜.”

“희성아, 도윤이 좀 가만히 놔둬.”

“네가 뭔데 하도윤 이름을 막 불러?”

“형이니까, 희성아. 형이잖아. 너 지금 이러면 도윤이한테 독밖에 안 돼.”

“그거 좋네. 그냥 같이 죽어버리면 되겠다.”

“김희성!”

잡힌 팔이 아팠다. 희성이 인상을 쓰고 희준을 올려다봤다. 희준도 참을 만큼 참았다. 남의 장례식장에서 언성을 높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희준이 희성을 끌고 장례식장을 벗어났다. 향냄새에 머리가 아팠는데 바깥공기를 쐬니 화가 가라앉는다. 희준이 침착하게 하늘을 보다가 옆을 돌아봤다. 희성은 손이 닿은 팔을 털어내고 있었다.

“찬바람 좀 쐬고 제발 침착하게 굴어.”

“가르치려고 들지 마.”

“네가 도윤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다 아는데.”

“네까짓 게 뭘 알아?”

“상황은 좀 봐가면서 해. 도윤이 지금 안 그래도 힘들어하는데 너까지 그러면 되겠어?”

“내가 알아서 해.”

“알아서 하는 게 이 모양이니까 그렇지.”

희성이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숨을 터뜨렸다. 머릿속과 눈앞으로 자꾸만 서준과 끌어안고 있던 도윤이 떠올라 쉽게 침착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손이 떨렸다.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불안감에 입이 바짝 말랐다. 서준의 등에 닿은 하얀 손을 생각하니 목도 함께 타기 시작했다. 입술을 질겅이고 마른 세수를 하고도 머릿속에 꽉 찬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희준이 한숨을 쉬며 자판기에서 이온음료를 뽑아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거 다 마실 때까지 안에 들어오지 마.”

“…….”

“검사한다.”

“씨발, 별….”

차가운 이온음료를 쥐고 욕을 씹은 희성을 남겨두고 안으로 들어간 희준이 주위를 둘러보며 도윤을 찾았다. 도윤은 서준과 함께 앉아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서준에게 밥을 주고, 그 앞에 앉아 물만 겨우 마시던 도윤이 희준을 발견하곤 몸을 일으키려다 저지당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손짓에 다시 몸을 붙이자 희준이 신발을 벗고 그 옆에 앉았다.

“도윤이는 왜 안 먹어.”

“생각이 없어서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먹어야지. 도윤이 친구는 이름이 뭐예요?”

“아, 저는 이서준이라고 합니다.”

“도윤이랑은 많이 친한가?”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였어요.”

“아아, 되게 오래됐네.”

“네. 근데 누구…세요?”

“아까 봤던 남자애 형이에요. 김희준.”

“아…. 아까 걔랑은 친구야?”

서준이 희준의 눈치를 살피며 도윤에게 속삭였다.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던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친구. 그 말에 희준은 말없이 눈만 깜빡였다.

“…근데 희성이는요?”

“밖에 있어. 내가 나중에 들어오라고 했거든.”

“…….”

도윤이 눈을 내리깔고 종이컵을 쓸어댔다. 희준이 일어나면서 서준에게 천천히 먹으라며 웃어주었다. 서준이 고개를 돌려 희준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랬다.

“근데 친구도 아니라면서 왜 저렇게까지 하시는 거야?”

“…나도 몰라.”

“…그동안 왜 아무런 연락도 안 했어?”

“미안, 그럴 일이 조금…있었어.”

“1년 만에 받은 연락이 이거라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미안해.”

서준이 숟가락으로 국을 휘휘 저었다. 밥을 깨작거리며 침묵을 지키다 한참 뒤에 열린 입술에서 목소리가 샜다.

“너 그냥 다시 내려오면 안 돼?”

“응?”

“…아저씨도 너무 지쳐 보이고, 너도…그렇고….”

“…….”

“집 구할 때까지라도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건?”

“그게….”

“내려오면 예전처럼 같이 학교도 다니면서 같이 지내자.”

도윤이 곤란한 듯 종이컵의 끝부분을 꾹꾹 눌렀다. 자꾸 한숨이 나왔다. 마음 같아선 서준을 따라 내려가고 싶었다. 더 이상 엄마가 없는 이곳보다, 엄마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고만 있자 뒤에서 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윤이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이온음료 캔 하나와 초코우유 하나를 바닥에 떨군 희성과 눈이 마주쳤다. 서준도 덩달아 고개를 돌려 희성을 올려다봤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도윤과 서준에게 줄 음료까지 뽑아서 들어왔는데 오자마자 들은 말이라고는 같이 가자, 우리랑 같이 지내자. 였고 도윤은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겨우 진정시킨 손이 떨렸다. 도윤이 잠시 눈을 굴리다가 양해를 구하고 희성에게 다가갔다.

“저, 희성아….”

“그렇게, 그렇게 떠나고 싶어?”

“희성아 잠깐만.”

“내가 죽겠다고 했잖아. 넌 내가 죽어버려도 아무렇지도 않아?”

지금 이 순간해야 할 말이 아님을 알고 있다. 도윤은 현재 어머니가 돌아가신 상태고, 죽음이란 단어는 절대 금지였다. 희성이 차가운 시선으로 도윤을 쳐다봤다. 도윤이 떨고 있는 손을 잡고 한적한 곳을 찾았다. 희성은 먼저 잡아온 손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침을 삼켰다.

“내가 널 보내줄 것 같아?”

“희성….”

“좋아? 네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서준인지 뭔지 보니까?”

“내 말 좀….”

“내가 대체 너한테 뭘 더 해줘야 해? 뭘 더 해줘야 옆에 있을 건데?”

떨리는 손을 붙잡고 떼어내자 희성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손을 떼어놓는 것이 자신의 말에 대한 답장이라고 느껴졌다. 희성이 그대로 도윤을 지나쳐 병원을 벗어났다. 고개를 숙인 도윤은 손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다시 서준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입구에는 희성이 떨어뜨린 음료가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 이온음료는 서준의 것일 테고 초코우유는 자신에게 주려고 뽑아온 모양이었다. 도윤이 한숨을 쉬며 음료를 주워 서준의 앞에 앉았다.

“이거 마셔.”

“…마셔도 돼?”

“응.”

“싸웠어?”

이걸 싸웠다고 볼 수가 있는 건가? 희성은 혼자 화가 나 자기 할 말만 해버리고 떠났고, 자신은 대답 대신 손을 밀어냈다.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늘, 이래….”

“괜찮아?”

“응.”

도윤은 초코우유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따가운 눈을 문질렀다. 희성을 대하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현재 아무런 여유 따위도 없는 자신에게 자기가 대체 뭘 하면 옆에 있어줄 거냐고 묻는 것도 피곤했다. 왜 제가 꼭 자기 옆에 있어야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머리가 아파서 물을 마신 도윤이 테이블에 엎드렸다. 그냥, 다 필요 없고 엄마가 보고 싶었다.

희성이 그렇게 떠나고 도윤은 남은 기간 동안 울기만 했다. 웃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서도 울고, 아버지의 야윈 얼굴을 보고 울고, 겨우 밥을 먹으려고 했을 때도 울었다.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3일 동안 정말 많이도 울었다. 나중에는 울다가 지쳐 자는 것도 힘들어서 마지막 날에는 밤을 꼴딱 새웠다.

화장터에서는 속을 게워내기까지 했다. 울다가 속이 울렁거려 입을 틀어막자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희준이 도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끌어안고 달래주자 도윤은 더 서럽게 울어댔다.

화장이 끝나고 도윤의 어머니는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셋이서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옆에 함께 놓여졌다. 납골당에 주저앉아 숨도 못 쉬고 울던 도윤은 결국 희준에게 업혀서 집에 도착했다. 도윤이 집에 왔다는 소식은 희성에게도 전해졌다. 축 늘어진 도윤은 희준에게 업혀있었다.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이불을 끌어와 덮어준 희준이 문밖에 서있는 희성을 돌아보았다. 희성은 도윤이 자는 얼굴을 보고만 있었다. 작게 한숨이 터졌다. 피곤한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뜬 희준이 문을 닫고 희성을 봤다.

“도윤이 일어나면 죽부터 먹여. 내려가면서 이모님한테 말씀 드려놓을게.”

“…….”

“며칠 내내 울기만 했어. 쉬게 놔둬.”

“…….”

“희성아.”

희준이 하는 말을 모조리 무시한 손이 문을 열었다. 희준이 다시 닫히는 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며칠 만에 보는 얼굴에 손이 닿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희성은 부르튼 입술을 만져보다가 이불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에 보이는 등을 끌어안고 눈을 감은 희성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도윤에게선 향냄새와 묘한 냄새가 섞여서 났다. 꼭 도윤이 아니라 다른 사람 같았다. 힘을 주지는 않고 팔을 두르기만 했다. 희성이 옷에 입술을 붙였다. 불편한지 어깨가 꿈틀거렸다. 그리곤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에 희성이 눈을 감았다. 도윤이 집에 없을 때는 잠이 안 와서 고생을 했는데 몸이 닿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며칠 동안 잠을 설친 두 소년들의 입에서 곧 안정적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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