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욕(3)
학교 가기 싫다. 햄스터에게 학교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10번이나 반복했던 오늘 아침, 도윤은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 하루만 학교 안 가고 햄스터랑 놀면 안 되나? 희성이 듣는다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고 한소리를 했을 법한 생각을 하며 학교에 도착한 도윤이 책상에 늘어졌다. 햄스터는 오늘 병원에 가기로 했다. 병원, 내가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 도윤이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을 책상에 올렸다.
늦은 새벽까지 햄스터에 대한 글과 영상을 보고 잤더니 조금 피곤하기도 했다. 늦게까지 찾아본 결과 도윤이 주운 햄스터의 종류는 골든 햄스터라고 불리는 것 같았다. 한 손으로 잠금을 풀고 앨범에 들어가자 어제 잔뜩 찍어 둔 햄스터의 사진이 주르륵 나타났다. 귀여워. 도윤이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문질렀다. 희성은 교무실에 불려가서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프면 안 되는데. 도윤이 지금쯤 아마 병원에 있을 햄스터를 걱정하며 눈을 깜빡였다. 엄지를 옆으로 움직여 사진을 넘기자 햄스터의 또 다른 사진이 나타났다.
볼이 터질 것 같은 햄스터가 귀여워 끙, 앓는 소리를 낸 도윤이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 더 정확히 말하자면 ‘햄스터’라는 단어에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얼굴도 알고 이름도 알지만 대화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정인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핸드폰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선이 핸드폰에 닿았다가 정인의 얼굴에 닿았다. 사탕을 원하는 어린아이처럼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정인이 고개를 돌려 도윤을 봤다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급히 시선을 피해버렸다.
이제 도윤은 선생님을 제외하고 학교에 있는 모두가 자신을 피한다는 것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원인이 희성이라는 것도 아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희성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게다가 정인은 햄스터를 키우는 것 같이 보였다. 도윤의 시선으로는 그랬다. 도윤이 일어나 자신들의 앞에 서자 정인의 핸드폰을 보던 무리들이 입을 닫았다. 주변이 조금 조용해진 것도 같았다. 힐끔거리는 시선을 애써 무시한 도윤이 입을 열었다.
“저기 있잖아.”
“어어?”
“혹시 햄스터 키워?”
“아, 응. 왜…?”
갑자기 밝아지는 표정에 정인이 본능적으로 앞문과 뒷문을 쳐다봤다. 예쁘게 웃는 얼굴에 정인과 함께 있던 아이들이 멍하니 도윤을 올려다봤다.
“나 뭐 물어봐도 돼?”
“어어, 뭔, 뭔데?”
“어제 햄스터를 주웠거든.”
“…응?”
“햄스터는 뭐 먹어? 해바라기씨?”
“어…. 맞긴 맞는데, 해바라기씨는 많이 주면 안 돼.”
“왜?”
“햄스터한테 별로 안 좋아서….”
“아아. 그리고 햄스터가 자꾸 쳇바퀴를 타던데, 그냥 재미있어서 타는 거야?”
“…아마?”
도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정인이 불안함에 계속해서 문을 힐끔거리다 물었다.
“혹시 햄스터 처음 키워?”
“으응.”
“…햄스터 집은 뭐 어떤 거 써?”
“집? 아직 어제 주운 그대로야. 이런 거.”
도윤이 앨범에서 햄스터 사진을 보여주자 정인이 음, 하고 소리를 냈다. 햄스터가 지내는 케이지를 보니 지금은 희성이 언제 나타날까 하는 두려움보다 햄스터 주인으로서의 마음이 더 커졌다.
“집부터 바꿔야겠다.”
“왜? 이거 안 좋은 거야?”
“이런 케이지는 햄스터가 다칠 수도 있어서.”
“진짜?”
이번엔 도윤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 찼다. 1년이 되도록 도윤의 표정이 이렇게 다양한지 처음 알았다. 흥미로운 빛을 띤 여러 개의 눈들이 도윤을 향했다.
“…우리 햄스터가 먹는 사료, 내일 조금 줄까?”
“그래도 돼?”
“어, 뭐…. 나는 많아서 괜찮은데.”
“고마워….”
도윤이 눈까지 접어가며 헤실헤실 웃자 정인의 얼굴에 열이 올랐다.
“…번호 좀 주라. 나중에 궁금한 거 생기면 물어봐도 되고.”
“번호?”
번호를 달라는 말에는 조금 망설여졌다. 희성이 알면 또 무섭게 굴 텐데…. 도윤이 머뭇거리다 정인의 핸드폰에 번호를 눌러주었다. 만약 정인이에게 메시지가 오면 보고 삭제를 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희성이도 모르겠지. 도윤이 고맙다며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병원은 다녀왔으려나? 희성이 결과를 받아서 알려주겠다고 했으니 그전까지 자신은 알 방법이 없었다.
다음 시간에 쓸 책을 꺼내 놓고 다시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는 사이 희성이 교실에 들어섰다. 도윤이 고개를 들어 희성을 쫓았다. 외출했던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마냥 자신을 따라 움직이는 고개에 희성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햄스터는? 병원 갔대?”
주인을 반기는 줄 알았더니 햄스터를 기다리는 거였다. 희성이 살짝 올라오는 짜증을 꾹 눌러 참았다.
“내가 어떻게 알아.”
“…….”
“집에 가서 봐.”
“…….”
“안 아파, 됐지?”
눈에 띄게 좋아지는 안색이 어이가 없었다. 도윤의 고개가 끄덕이면서 머리카락이 팔랑팔랑 날린다. 햄스터를 집안으로 들여보내는 게 아니었다. 희성이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어차피 엎질러진 물,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여태 차를 타러 가면서 이렇게 가볍고 빠른 걸음으로 갔던 날이 있었나? 그것도 자기가 먼저? 교문으로 빠르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가볍다 못해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평소라면 도윤이 질질 끌었을 시간을 희성이 대신했다. 문을 열고 뒤를 돌아본 도윤이 교문을 지나치지도 않은 희성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꼭 하는 짓이 햄스터랑 닮아 보였다.
도윤이 손을 흔들어 희성을 불렀다. 저렇게 나오면 더 가기 싫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었다. 희성이 걸음을 뚝 멈추자 도윤의 눈이 당황한 듯 크게 뜨였다. 차와 희성을 번갈아 보던 도윤이 다시 교문을 지나쳤다.
“왜 안 와?”
“야.”
“어?”
“적당히 해.”
“…….”
또 내가 뭘 잘못했지…. 갈 곳을 잃어버린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희성의 기분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윤을 지나쳐 차에 오른 희성이 고개를 돌렸다. 머뭇거리며 차에 오른 도윤이 문을 닫고 가방을 끌어안았다.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사람이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희성은 말없이 창밖만 봤고, 도윤은 가방에 턱을 묻고 신발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는 익숙한 그림에 운전만 할 뿐이었다.
이유 모를 냉전은 두 사람이 집에 도착해서도 계속됐다. 도윤은 완벽하게 바뀐 케이지와 그 내부에 감탄할 새도 없이 햄스터의 상태를 확인했고 희성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햄스터는 아픈 곳 없이 멀쩡했다. 영양제만 먹여주면 될 것 같다는 말에 영양제도 소중하게 챙겨왔다. 햄스터는 바뀐 집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인지 바쁘게 돌아다니다 구석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숨 쉬는 것도 잊고 햄스터가 자는 것만 보던 도윤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찰칵 소리가 생각보다 커서 놀랐지만 햄스터는 다행히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딱히 보여줄 사람도 없지만 열심히 사진을 찍던 도윤이 웅, 울리는 진동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정인이었다. 따로 포장된 사료와 함께 [나 정인이야.] 하고 도착한 문자에 도윤이 잠시 방문을 확인했다. 희성은 조용했다. 정인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기 위해 엄지를 움직이던 도윤이 방금 찍었던 사진을 첨부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사진만 덜렁 보냈는데도 정인은 귀엽다며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도착한 답장에 도윤의 몸이 굳었다.
[이름은 정했어?]
그러고 보니 이름을 정하지도 못했다. 여태 그냥 햄스터라고만 불렀지 이름을 정할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다. 이름…. 이름…. 인절미를 닮았으니까 인절미라고 부를까? 좀 그런가? 답장을 할 생각도 못 하고 이름을 중얼거리고만 있자 다시 진동이 울렸다.
[우리 집 햄스터는 탄인데.]
탄이? 학교에서 봤었던 햄스터는 검은색의 털과 회색 털이 섞여 있었다. 탄이. 어울린다. 도윤이 웃으며 답장을 보냄과 동시에 받은 메시지는 모두 삭제했다. 그러자 귀신같은 타이밍으로 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도윤.”
“어, 어!”
[나는 아직 고민 중이야. 나 이제 답장 못해서 내일 봐 미안.] 급하게 답장을 보내고 삭제한 도윤이 핸드폰을 엎어두었다. 햄스터는 여전히 자고 있었고 닫혀 있던 문이 희성의 손에 의해 열렸다.
“잠깐 내려와.”
“왜?”
“어머니 오셨어.”
“…어머니?”
“응.”
“오셨어?”
“내려와서 그냥 얼굴만 보고 다시 올라와.”
“으응, 잠깐만….”
핸드폰을 구석에 밀어두고 일어난 도윤이 희성에게 다가갔다. 희성의 어머니는 처음 보는 거라 긴장이 됐다. 희성이 계단으로 향하는 도윤을 보다 고개를 돌려 엎어져 있는 핸드폰에 잠깐 시선을 두었다.
“안 와?”
“…가.”
진동이 짧게 울었지만 희성은 우선 못 본 척하기로 했다. 도윤이 어딘가 긴장한 얼굴로 1층을 내려다 보다 고개를 돌려 묻는다.
“혹시 어머니 무서우셔?”
“아니.”
“진짜?”
“아버지랑 비슷해.”
희성이 중얼거리며 계단을 밟았다. 이미 1층에는 어머니가 돌아오셨다는 소식에 모두가 분주해진 상태였다. 희성의 어머니의 여행이 끝나자 오랜만에 집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긴 여행을 마치고 온 사람답지 않게 희성의 어머니는 기운이 넘쳐 보였다. 피곤할 만도 한데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다니는 것이 정말이지 그녀다웠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던 주현이 대뜸 몸을 돌려 뒤를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막내아들은 여전히 귀여웠고 그 뒤를 따라 눈치를 보며 내려온 낯선 얼굴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남자애치고 예쁘게 생겼다더니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희성의 어머니인 주현이 웃으며 손짓했다. 도윤이 희성의 뒤를 졸졸 쫓아 소파에 앉았다.
“도윤이?”
“안, 안녕하세요.”
“안녕.”
희성이 팔걸이에 기대 턱을 괴었다. 잔뜩 늘어진 희성과 달리 도윤은 뻣뻣하게 굳어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주현이 흥미로운 시선을 숨기지 않으며 도윤을 살폈다.
“막내가 친구를 집에 데려온 게 처음이라, 아줌마는 농담인 줄 알았어.”
“네, 네?”
“희준이가 쓰던 방에서 지낸다고?”
“네….”
“잘 됐지, 뭐. 어차피 희준이는 집에 잘 오지도 않아.”
여자가 차를 홀짝였다. 자신의 어머니와 도윤을 번갈아 보던 희성이 허리를 펴고 앉았다. 도윤은 멀리서 봐도 자신의 어머니를 어색해하고 있었다.
“인사 끝났으니 저희 먼저 올라갈게요.”
“벌써?”
“공부하기로 해서요.”
“아, 그래. 먼저 올라가 있으면 과일 올려 줄게.”
“괜찮아요.”
“먹으면서 해. 참, 희성아 희준이가 연락 좀 받으래.”
“뭘 연락을 해요.”
“막내 목소리 다 잊어버리겠대.”
“그러면 좋겠네요.”
단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친 희성이 도윤의 팔을 끌어올렸다. 어정쩡하게 일어나 고개를 숙인 도윤이 2층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끝까지 쳐다본 주현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막내가 되게 좋아하네? 주변에 아무도 그 중얼거림에 답을 해줄 사람은 없었지만 주현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차를 홀짝였다.
***
이른 새벽부터 커다란 저택의 대문이 열리고 하얀색의 차가 정원을 지나쳤다.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올 때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원을 보며 차에서 내린 남자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오랜만에 아침이나 같이 먹기 위해 집을 찾은 남자가 현관을 열어주는 직원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셨어요?”
“그럼요, 저야 항상 잘 지내지요.”
“아버지는요?”
“곧 나오실 겁니다.”
“어머니는?”
“소파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아. 막내는요?”
“막내 도련님께서는 아직….”
“하긴, 이 시간이면 아직 잘 시간이죠.”
굳이 현관에서 가족들의 안부를 물은 남자가 천천히 집으로 들어섰다. 직원의 말대로 어머니는 거실에 앉아있었다. 희성을 닮은 얼굴을 한 남자가 웃으며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 큰아들 왔어?”
“여행은 재미있으셨어요?”
“아들이랑 갔을 때가 더 재미있었어.”
“그럼 다음에 가족여행으로 한 번 더 다녀올까요?”
“나야 좋지. 조금만 기다려, 아버지 나오시면 밥 먹자.”
주현의 말에 희성의 형인 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현은 희준을 지나쳐 주방으로 향했고 희준은 2층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 걸음을 옮겼다. 예전에 이 집에 살 때는 지겹도록 오르고 내렸던 계단이었다. 자신에게는 연락도 없는 매정한 막내를 보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걸음이 가벼웠다. 그전에 자신의 방은 아직도 그대로인지, 아니면 다른 용도로 바뀌었는지 괜히 확인을 해보고 싶어졌다. 무슨 용도로 바뀌었든 상관은 없지만 궁금하기는 하니까.
희준이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가 멈칫했다. 자신의 방에서는 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책상 위에는 커다란 케이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희준이 의아한 얼굴로 케이지를 들여다보았다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아무리 빈 방이라 해도 햄스터 방으로 만든 것은 좀 너무하지 않나? 희준이 고개를 돌려 방안을 둘러보다 침대 위에 볼록 솟아 있는 이불을 보고 손을 들어 턱을 매만졌다. 설마 희성이 자신의 방에서 지낼 리는 없고. 희준의 걸음이 느릿하게 침대로 향했다.
…누구? 난생처음 보는 얼굴에 희준이 다시 당황했다. 많아봐야 희성의 또래로, 처음 보는 남자아이는 피부가 하얗고 속눈썹이 꽤 길었다. 베개에 눌린 볼 때문에 살짝 벌어진 입술이 붉었다. 부모님이 기부를 밥 먹듯이 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입양을 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렇게 큰 남자애를.
홀린 듯이 손을 뻗어 도윤의 머리카락을 넘겨준 희준이 으응, 하고 몸을 뒤척이는 얼굴에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눈을 감고 있어도 이 정도인데 눈을 뜨면…. 누가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잠에 빠진 얼굴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숙인 희준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허리를 폈다.
“나가.”
“일어났어?”
“방에서 당장 나가.”
“내 방인데 어딜 나가?”
시끄러운 알람을 끄고 일어나 씻으러 가려던 희성이 문이 열려있는 도윤의 방에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는지 물어보려고 들어왔으나 눈에 보이는 것은 반갑지도 않은 형의 뒷모습이었다. 심지어 희준은 도윤의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희성은 피가 차갑게 식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연락도 안 받고.”
성큼성큼 걸어온 희성이 희준을 끌고 방에서 나왔다. 희준이 힘을 조금이라도 줬다면 절대 끌려 나오지 않았을 테지만 오랜만에 닿은 동생의 손길에 기꺼이 끌려 나와 주었다. 희성이 화를 억누르며 희준을 올려다봤다.
“왜 왔어?”
“왜 왔냐니, 좀 서운하네.”
“누구 마음대로 저 방에 들어가?”
“희성아, 저 방은 원래 내 방인데.”
“이제 형 방은 없어.”
“그래 보인다. 누구야? 설마 부모님이 정말로 입양이라도 하셨어?”
그 말에 희성이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는 눈으로 희준을 보다 혀를 찼다. 희준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건들지 마.”
“건드린 적 없는데.”
“말 걸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
“왜?”
“내 거야.”
희준을 쳐다보는 눈은 일렁임도 없이 고요했다. 막둥이로 태어나 집안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희성이었다. 모두가 오냐오냐 키웠고, 실수를 해도 귀엽다고 봐줬다. 무슨 일을 해도 예쁨을 받으며 자란 결과 희성은 사람들이 내가 이런 일을 하든, 저런 일을 하든 전부 잘했다고 해주니 주변 눈치를 보지 않는 아이로 성장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게 뭐든지 다 사주고 만들어주었다. 희성에겐 그게 당연했다.
세상을 살면서 희성이 가지지 못하던 것은 없었다. 덕분에 희성이 가진 소유욕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하지만 사람에게 소유욕을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희준은 아까 손가락을 스쳤던 도윤의 머리카락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쟤를 잡아먹은 것도 아닌데 뭘 벌써부터 가시를 세워.”
“얼굴 비추러 왔으면 얼굴만 비추고 가.”
“내려와, 아침 같이 먹자.”
“입맛 없어.”
희성이 불쾌하다는 티를 잔뜩 내며 희준을 지나쳐 욕실로 몸을 숨겼다. 귀엽기는. 희준이 닫혀있는 자신의 방문을 쳐다보다 1층으로 향했다. 주방이 가까워지자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부모님은 이미 자리에 앉아있었으므로 희준도 웃으며 주현의 앞에 앉았다.
보통은 희성의 가족의 식사시간이 끝나면 그제야 도윤의 아버지와 도윤이 식사를 시작했다. 도윤이 음식을 나르는 여자를 도와 그릇을 식탁에 올려 두었다. 오늘은 식탁에 올라가는 밥그릇의 개수가 늘어있었다. 도윤이 숟가락과 젓가락의 짝을 맞춰서 내려놓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일에는 희성이 가족들과 아침을 먹으니까 이 시간대에는 항상 아버지와 자신뿐이었는데…. 도윤이 의아함을 품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려다 주방으로 들어서는 희성을 보고 멈춰 섰다.
“뭐해, 앉아야지.”
“…….”
“누가 너한테 일해도 된다고 했어?”
“…….”
희성이 식탁을 훑어보고는 자신의 앞에 있는 그릇과 가운데에 있는 그릇을 바꿨다. 원래라면 도윤의 앞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였으나 희성이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앞에 앉아버렸다. 어버버거리며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서있자 옷을 차려입은 연석이 주방에 들어섰다. 연석이 희성에게 인사를 건네자 희성이 앉아있다 고개를 꾸벅였다. 아침부터…. 도윤이 못마땅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도윤과 연석이 감사 인사를 하는 동안에도 희성은 말없이 젓가락만 들었다.
사람이 한 명 늘었을 뿐인데 식탁이 고요했다. 도윤이 밥을 꼭꼭 씹으며 희성을 살폈다. 걱정을 한 것치고 희성은 조용히 밥만 먹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밥그릇에 장조림이 얹어졌다. 떠나가는 젓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연석이 많이 먹으라며 웃고 있었다. 도윤이 웃음을 헤실헤실 흘렸다. 그 웃음에 희성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도윤을 눈에 담았다. 장조림이 좋은 건지, 아니면 아버지가 좋은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장조림을 얹어준 아버지가 좋은 걸지도.
희성이 아이 같은 웃음을 한참이나 곱씹다 도윤의 다리로 발을 뻗었다. 툭. 발이 닿자 열심히 씹던 도윤의 입이 느릿해졌다. 분명 반응은 바로 오는데 도윤은 모르는 척을 할 생각인지 그저 씹는 데에 열중했다. 희성이 입꼬리만 올려 웃다가 다리를 더 뻗어 도윤의 다리를 쓸었다. 그러자 도윤이 움찔, 입을 가렸다. 가운데에 앉아 국을 떠먹던 연석이 아들을 살폈다.
“왜? 혀 씹었어?”
“으응.”
“천천히 먹어.”
“네에.”
놀라서 살을 씹었더니 눈물이 핑 돌 만큼 고통이 어마어마했다.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씹은 살을 혀로 문지르며 희성을 노려보자 이 일의 장본인은 멀쩡히 식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도윤이 씩씩거리며 물을 삼켰다.
식사가 끝난 후, 할 말은 많았지만 희성이 어머니에게 끌려가다시피 사라져버렸다. 양치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간 도윤이 거울로 씹은 곳을 확인했다. 꽤 세게 씹은 탓에 벌써 부어오른 곳을 보는 얼굴이 울상이었다. 칫솔에 치약을 쭉 짜고 입에 넣자 따끔따끔 고통이 찾아왔다.
최대한 씹은 곳을 피해서 양치질을 마치고 간단한 세수까지 끝낸 도윤이 수건에 얼굴을 비비적댔다. 수건을 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부드러움이 사람의 기분을 참 좋아지게 만들었다. 게다가 냄새도 좋아서 한참 동안 얼굴을 박고 있던 도윤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씹은 곳을 혀로 문지르며 문을 열었다. 당연히 희성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었는데 도윤의 눈앞으로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
“…누구세요?”
“안녕.”
“아, 안녕하세요….”
희준의 시선이 도윤의 얼굴 곳곳에 닿았다.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알아봤지만 눈을 뜨고 있으니 생각보다도 더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눈 꼬리가 위로 살짝 올라간 덕에 눈이 더 커다랗게 보였다. 세수를 했는지 앞머리가 젖어 있는 것조차 볼만한 그림이었다.
“막내가 내 얘기를 했을 리는 없겠고.”
“…아.”
“내 이름 알아?”
“아뇨….”
“김희준. 그냥 형이라고 부를래?”
“…….”
도윤의 시선에 담긴 호기심을 눈치챈 희준이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자신보다 조금 작은 아이를 보며 젖은 머리카락을 흩트려주자 멍하니 손길을 받고만 있는 모습이 누구와는 다르게 순해 보였다.
“나한테도 이름 알려줘야지.”
“아, 저는….”
“응.”
“도윤, 이에요. 하도윤.”
“도윤이?”
“네.”
희준이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마음껏 만지던 손을 내려 귀를 만져주곤 떨어졌다. 그 짧은 찰나에 흠칫 놀란 도윤이 몸을 움츠려 희준을 쳐다봤다. 경계심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어쩐지 아기 같았다. 잠시 닿았던 살에 목이 탔다. 희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윤은 희성을 닮았지만 조금 더 어른스러운 얼굴에 넋을 놓고 있었다.
“학교 데려다줄까?”
“어, 근데…. 희성이가….”
“준비하고 내려와.”
“…네.”
희준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도윤과 눈을 맞춰주다 등을 보였다. 몸에 딱 맞춰서 제작한 슈트는 희준의 몸을 아주 잘 보여주었다. 널찍한 어깨를 멍하게 보던 도윤이 급하게 방으로 들어와 교복을 찾았다. 흰 티를 입고 와이셔츠를 걸치자 열린 문 사이로 격한 발걸음의 희성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문득 아까 욕실 문을 두드렸던 소리가 떠올랐다.
“형 만났어?”
“응? 응.”
“아, 씨발.”
희성의 입에서 터진 욕에 도윤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그동안 화는 많이 냈어도 욕을 했던 적은 없었다. 도윤이 단추를 끼우지도 못하고 숨을 삼켰다. 희성이 차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도윤을 훑었다. 머리카락이 조금 젖어 있기는 했으나 평소와 별다른 점은 없었다. 희성이 와이셔츠를 잡고 단추를 채워주었다. 희성의 욕설에 조금, 아주 조금 쫄아서 눈치만 보던 도윤이 아래로 잡아당겨지는 와이셔츠에 고개를 숙였다. 교복을 입다 말고 입술이 닿았다.
희성이 문을 열었던 것처럼 급하게 혀를 밀고 들어왔다. 미간을 구기고 밀쳐내던 도윤이 오히려 더 밀려나며 침대에 쓰러졌다. 잠시 떨어진 입술에 도윤이 고개를 틀었지만 위로 올라탄 희성이 더 빨랐다. 마치 잡아먹히는 기분까지 드는 키스가 이어졌다. 으응, 응…. 얼굴을 잡고 고개를 틀자 혀가 더 깊숙이 들어섰다. 희성의 옷자락을 쥐던 손이 이불을 긁기 시작했다. 도윤이 꾹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혀가 문질러지는 느낌이 이상했다. 흐윽. 도윤의 목에서 신음이 먹혔다. 희성이 손을 내려 도윤이 입고 있던 셔츠 안으로 침범했다. 천장을 노려보던 도윤의 몸이 파드득 떨렸다. 삼키지도 못한 타액이 옆으로 줄줄 흘렀다. 희성이 다시 손을 올려 도윤의 얼굴을 잡았다. 혀를 빨아 당기듯 움직이던 희성이 입술을 떼어내자 도윤이 숨을 헐떡이며 눈가를 가렸다. 번들거리는 입술에서 더운 숨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희성의 엄지손가락이 도윤의 입가에 흐르는 타액을 닦아냈다. 손바닥에 숨겨진 눈에 열이 오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울음을 참는다고 꽉 문 입술을 내려다본 희성이 웃었다. 아래로 내려간 입꼬리가 움찔거리며 턱에 힘이 들어갔다. 희성이 도윤의 손목을 잡아 내렸다. 아침부터 눈물을 터뜨린 도윤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눈을 감았다. 뽀얀 얼굴에 열이 올랐다. 희성이 진귀한 것을 보는 것 마냥 숨을 죽이고 보다가 눈꺼풀 위로 입을 맞춰주었다.
“도윤아, 이런 건 나만 볼 수 있는 거야.”
“윽, 으으….”
“마음 같아서는 네가 평생 나 말고는 아무도 못 만나게 하고 싶은데.”
“내가, 대체 뭘…. 흑, 너한테….”
우느라 내뱉는 말이 모두 엉망이었다. 희성이 숨을 쉬느라 벌어진 입술에 손가락을 넣고 혀를 눌렀다. 욱. 도윤이 몸을 떨면서 손가락을 밀어내려 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손가락을 혓바닥에 문지르며 꾹꾹 누르자 아래에 깔린 몸에서 벅찬 숨이 터졌다.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손가락을 밀어 넣고 누르던 희성이 천천히 손가락을 빼냈다.
콜록. 도윤에게서 기침이 터져 나왔지만 희성은 자신의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았다. 흐린 시야로 자신의 타액으로 범벅이 된 손가락을 입에 넣는 희성을 보던 도윤이 끅끅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 네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참는 거야.”
“흐….”
“도윤아, 김희준이랑 말도 섞지 마.”
“…….”
“부탁 아니고, 명령이자 경고야.”
“…….”
“착하지.”
희성이 타액으로 범벅이 된 손가락을 도윤의 와이셔츠에 문지르곤 침대에서 내려갔다. 교복 다 입고 내려와.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간 희성이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멍하니 천장을 보는 도윤의 눈에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희성의 말을 잘 듣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아침에 밥도 같이 먹었는데 희성이 자신을 막 대하는 것이 서러웠다. 자신이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것을 다 알면서도 손가락을 넣어서 괴롭힌 것도 서러웠다. 도윤이 옆으로 누워 몸을 말았다. 울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눈물이 나는 것도 서러웠다. 훌쩍거리며 눈물을 참으려 애쓰던 도윤이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엉엉 눈물을 쏟아냈다.
꽉 막힌 코를 훌쩍거리는 도윤을 끌고 평소에 자신들을 학교로 데려다주던 남자의 차에 올라탄 희성 덕분에 기다리고 있던 희준은 찬밥 신세가 되었지만 아무렴, 다 괜찮았다. 어차피 희성이라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고 희성은 아마 자신의 차를 탈 바엔 택시를 타는 것이, 그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걸어가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할 사람이었다. 귀여워 해주고 열심히 키워준 형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몰라주는 것이 슬펐지만 희준은 이것조차 애교로 봐주고 있었다. 울었는지 발갛게 열이 오른 얼굴로 훌쩍거리는 도윤을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으나 그것도 언젠간 한 번쯤은 또 보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도윤은 학교로 향하는 내내 창밖만 쳐다봤다. 가끔 울컥하는지 숨을 고르는 소리도 들렸다. 고개가 아프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자신에게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교실에 올라올 때도 희성의 뒤에서 거리를 두고 쫓아온 도윤이었다. 그래봤자 도윤은 희성의 손바닥 안에서 놀 뿐이다. 도윤의 귀여운 시위는 신발을 갈아 신고 교실에 들어와서도 계속됐다. 도윤은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책상과 희성의 책상을 떼어놓았다. 하지만 눈치를 보느라 겨우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만 떼어놓았다. 어이가 없음과 동시에 귀여워서 웃음이 터질 뻔한 희성이 느긋하게 그 꼴을 지켜만 봐주었다.
다음 교시가 체육이면 도윤은 쉬는 시간인 10분이 유독 짧게 느껴지곤 했다. 예전 같았으면 교실에서 교복을 벗고 체육복으로 갈아입었을 텐데 이제는 체육복을 들고 굳이 화장실까지 가서 갈아입고 와야 했다. 처음에 교실에서 갈아입으려고 했다가 희성이 정색을 하는 바람에 고생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침을 삼킨 도윤이 얌전히 체육복을 품에 안고 화장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추운데…. 따뜻한 교실을 놔두고 매번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희성에게 그 불만을 말할 용기는 없어서 들어왔을 때처럼 교복을 끌어안고 화장실을 빠져나온 도윤이 멈칫했다. 체육복을 다 갈아입은 정인이 복도에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녕.”
“으응.”
“이거.”
“이게 뭐야?”
“어제 준다고 했던 거. 교실에서는 못줄 것 같아서.”
“아, 아! 고마워….”
“그럼 나 먼저 갈게.”
“응, 진짜 고마워.”
“또 궁금한 거 생기면 언제든 물어봐!”
도윤이 한 손에 들어오는 봉지를 주머니에 넣고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병원에 갔다가 집에 가서 먹여봐야겠다. 아침보다 좋아진 기분으로 복도를 걸어 교실로 들어간 도윤이 책상 위로 교복을 내려놓자 희성이 몸을 일으켰다. 책상의 사이는 여전히 애매한 간격을 유지한 상태였다.
“가자.”
“으응, 잠깐만….”
도윤이 최대한 희성의 눈에 보이지 않게, 그렇지만 누가 봐도 수상하게 주머니에서 꺼낸 봉지를 가방에 쑤셔 넣었다. 희성이 눈을 가늘게 뜨고 도윤을 쳐다봤으나 도윤은 안타깝게도 정인에게 받은 선물을 숨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 선물이라도 받았나 봐.”
“…….”
티 나게 굳어버린 도윤이 가방을 억지로 닫았다. 분명 복도에는 자신과 정인밖에 없었는데 희성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투로 말했다. 로봇이었다면 삐거덕 소리가 났을 텐데 도윤은 사람인지라 그저 뻣뻣하게 일어나 희성의 체육복을 잡아끌었다. 오전 내내 삐쳐서 쳐다보지도 않았던 주제에. 한소리를 하려던 희성이 먼저 닿은 도윤의 손에 얌전히 교실을 벗어나주었다.
원래라면 번호순으로 짝을 맞춰서 준비운동을 했을 체육시간, 도윤은 어째선지 항상 희성과 함께해야 했다. 희성의 원래 짝이었던 해진은 이제 체육시간이 두렵지도 않았고 즐거웠다. 그냥 한마디로 살 판이 난 거다. 반대로 도윤은 희성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목과 어깨에 시선을 두고 준비운동을 마쳤다. 체육 선생님은 기껏 준비운동까지 시켜 놓고 자유시간을 주었다. 강당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된다는 말이 끝나자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럴 거면 교실에서 하지. 남들이 중얼거리는 말을 흘려들으며 강당의 뒤에 있는 계단에 앉은 도윤이 핸드폰을 꺼내 햄스터 사진을 훑었다. 귀여운 사진으로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싶어서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는데 핸드폰이 순식간에 손안에서 사라졌다. 도윤이 고개를 퍼뜩 위로 올렸다. 도윤의 앨범을 훑던 희성이 심드렁한 얼굴로 핸드폰을 다시 손에 쥐여 주었다.
“좋아?”
“귀여우니까….”
“누가?”
“햄스터….”
그래봤자 쥐 아닌가. 희성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도윤의 옆에 앉았다. 누구는 줄넘기를 하고 있었고 누구는 농구를, 누구는 탁구를 하는 모습을 눈에 담으며 도윤에게 기댄 희성이 오른팔을 도윤의 허리에 감았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찾던 도윤이 움찔 떨다가 몸을 굳히는 것이 느껴졌다. 반응이 이렇게 정직하게 바로바로 오니 만지는 맛이 났다. 희성이 웃으며 허리를 지분거리자 도윤이 허리를 살짝 틀면서 희성을 밀어냈다. 하지만 희성은 밀면 밀리는 대로 밀려나주다 다시 돌아와 허리를 만지작거리길 반복했다. 도윤이 입술을 꾹 물고 손등을 잡아 내렸다.
“하지 마…!”
“왜?”
“하, 학교잖아.”
“학교가 아니면 만져도 돼?”
“그런 게 아니라, 좀….”
희성이 실실 웃으며 도윤의 허리를 끌어당기자 손등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몸이 딸려온다. 다들 각자 할 일을 하기 바빠서 두 사람에게 닿는 시선도 없었지만 도윤은 허리를 비틀며 안절부절못했다.
“가만히 있어.”
“손 좀….”
“여기서 남들한테 너 우는 거 보여주고 싶지는 않으니까 얌전히 있어.”
“…….”
도윤의 목이 점점 분홍빛으로 물들더니 색이 조금 더 탁해졌다. 희성이 고개를 틀어 목을 보다가 그랬다.
“아무 데서나 붉히지도 마.”
“…….”
“허락해 준 적 없으니까.”
“…….”
“내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마.”
허리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올라와 도윤의 목덜미를 끌어당겼다. 도윤이 숨을 참으며 주변을 눈으로 훑었다. 다들 주어진 자유시간을 즐기느라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느껴지는 시선도 없었다. 희성이 원래는 흰색이었을 분홍빛 목을 손가락으로 쓸다가 그 위로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도윤은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굳어서 바닥 위로 퉁, 퉁 튕겨지는 농구공만 쳐다보았다.
“종 치면 깨워.”
“…….”
자신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워 눈을 감는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던 도윤이 천천히 숨을 뱉었다. 희성의 머리카락이 다리에 눕느라 흐트러지고 동그란 이마가 드러났다. 도윤의 시선이 이마에 머물렀다가 목에 닿았던 입술로 향했다. 눈을 감고 있는 희성은 조용했다. 입을 다물면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데, 입만 열면…. 도윤이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물고 희성의 얼굴을 오밀조밀 뜯어보았다. 처음 희성을 봤을 때 느낀 점은 아, 잘생겼네. 였다. 근데 웃는 얼굴은 또 귀여워서 신기했다. 정리를 하지 않아도 정갈한 눈썹을 물끄러미 보던 도윤이 손을 들어 그 위를 조심조심 쓸었다. 동시에 희성의 속눈썹이 떨리더니 까만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윤이 급하게 손을 내리고 눈치를 봤다.
“계속해.”
“…….”
도윤의 손길이 기분 좋았는지 희성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대놓고 판을 깔아주니 또 모르는 척을 하기 바쁜 도윤을 보며 입술을 톡톡, 두드린 희성이 검지에 힘을 살짝 주었다.
“입술 상해.”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난 하자 있는 거 안 좋아해.”
자신을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을 하는 말에 도윤이 슬쩍 미간을 구겼지만 입술을 문지르고 떨어지는 손가락에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정리했다.
“도윤아.”
“응.”
“아까 하던 거 계속해봐.”
그 말을 끝으로 희성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희성의 말인데 또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머뭇거리던 손이 머리에 닿았다. 희성은 어렸을 적 부모님이 자기 전에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만들어냈다.
체육이 4교시면 급식을 그 학년에서 제일 빨리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제일 빨리 먹고 나오면 남들보다 쉴 수 있는 시간도 많았다. 오늘도 희성이 사준 사탕을 주머니에 넣고 초코우유에 꽂힌 빨대를 쪽쪽거리며 교실에 앉아있던 도윤이 앞에서 빙고를 하고 있는 무리에게 관심을 가졌다. 나도 빙고 잘하는데…. 전에 있었던 학교에서 서준과 빙고를 하면 항상 도윤이 이겼었다. 그러나 전학을 오고 나서는 빙고를 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도윤이 아쉬운 마음에 초코우유를 조금씩 쪽쪽거리다 옆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희성을 힐끔거렸다. 빙고하자고 하면 무슨 그런 걸 하냐고 뭐라 하려나…. 도윤이 말을 걸어볼까, 말까 고민을 시작했다.
“왜.”
“어?”
고민을 시작한 것이 무색하게도 희성은 빨대를 물고 자꾸 자신의 눈치를 보는 도윤을 모를 리가 없어서 먼저 아는 척을 해줬더니 초코우유를 쥐고 멍청하게 눈을 깜빡인다.
“왜.”
“…….”
“할 말 있으면 해.”
“…빙고할래?”
“…뭐?”
“빙고….”
게임하자는 말을 저렇게 간절하게 말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희성이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곤 핸드폰을 책상에 엎어 두었다. 그 행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건지 도윤이 신난 얼굴로 세상 소중하게 쥐고 있던 초코우유를 내려놓고 공책을 꺼냈다.
“공책 찢어줄까?”
“마음대로 해.”
“으응.”
공책을 찢는 손에는 망설임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도윤이 종이를 내밀자 희성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도윤의 공책을 가져왔다. 아. 순식간에 멀쩡한 공책을 빼앗기고 종이만 한 장 덜렁 얻은 처지가 되었지만 도윤은 금방 수긍했다.
“5빙고 해도 돼?”
“응.”
희성의 허락이 떨어지자 도윤의 볼펜이 줄을 죽죽 그었다. 줄 하나를 긋는데도 정성을 다하는 도윤과 달리 희성은 대충 줄을 그었다.
“주제 뭐하고 싶어?”
“아무거나.”
“어, 그러면 나라 할까?”
“하고 싶은 거 해.”
“…숫자 할까?”
“…….”
“…나라?”
“…….”
“…미안.”
희성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 기가 죽었다. 주제는 나라로 정해졌고, 도윤은 등까지 돌려가며 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보여준다고 해도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저렇게 등까지 돌리고 그것도 모자라 팔로 종이를 감싼 모습을 보자 기가 찼다. 뭐 얼마나 대단한 빙고를 하겠다고 저렇게까지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희성이 대충대충 칸을 채우고 펜을 내려놓았다. 펜이 구르는 소리에 혼자 머리를 굴리던 도윤이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벌써 다했어?”
“응.”
도윤은 꽉꽉 찬 희성의 표를 보다 자신의 표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표는 아직 세 칸이나 비어있었다. 희성이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속이 탔다. 혀로 입술을 쓸면서 고민에 빠진 도윤이 고개를 슬쩍 돌려 희성의 칸을 보며 눈알을 굴려댔다.
“…나 세 개만 알려주면 안 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부탁을 하는 도윤을 보며 공책을 밀어주자 조심스러운 손길로 공책을 가져간다. 이러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빙고를 많이 해보지 않은 희성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도윤은 눈알을 바쁘게 굴리며 나라를 고르고 있었다.
“됐다.”
희성의 표에서 나라를 골라간 덕분에 겨우 칸을 채웠으면서 뿌듯한 얼굴을 해 보였다. 순서는 희성이 그저 귀찮음에 먼저 하라고 양보를 해줘서 도윤이 먼저 하기로 했다.
“어어, 잠깐만.”
“또 왜.”
“이거 펜 바꾸려고….”
표를 그리고 나라를 채웠던 펜을 그대로 쓰는 희성과 달리 도윤은 필통에서 주황색 형광펜을 꺼내 들었다. 진짜 가지가지 한다.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다다르고 있었다. 도윤이 눈치를 보면서 칸에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희성은 겨우 빙고가 한 줄이 되었을 때 게임에 흥미를 잃고 귀찮음과 싫증을 느꼈다. 반면에 도윤은 다음엔 무슨 나라를 선택할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희성이 펜을 던지듯 내려놓자 종이를 뚫어져라 보던 도윤이 고개를 들어 옆을 봤다.
“…안 하게?”
“귀찮아, 네가 알아서 해.”
“혼자 어떻게 해.”
“그럼 하지 마.”
“…….”
도윤의 입술이 살짝 나왔다가 다시 쏙 사라졌다. 두 개의 빙고 판을 보며 쓸데없는 고민에 빠진 도윤을 본격적으로 구경하기 위해 턱을 괴고 눈을 깜빡이자 형광펜을 쥐고 눈치를 본다. 자신의 칸에는 핀란드가 있었지만 희성의 칸에는 핀란드가 없었다. 도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핀란드 해도 돼?”
“응.”
“으응, 그러면 이거 스페인 해도 돼?”
“하고 싶은 거 해.”
“응!”
희성의 칸에서 스페인을 찾아 색칠한 도윤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칸에서 독일을 꼼꼼하게 칠하곤 펜을 내려놓았다. 도윤의 표 옆으로 작게 표시해둔 다섯 개의 동그라미가 모두 꽉 찼다. 거의 혼자 하는 빙고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이겼다고 기분이 좋은지 초코우유에 꽂힌 빨대를 무는 얼굴이 밝았다.
“이겼네.”
“으응, 나 빙고 잘해.”
“잘하네.”
“전에 서준이랑 했을 때도 매일 이겼어.”
“…….”
“아.”
도윤의 벌어진 입술이 절로 닫혔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평화로운 분위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으로 처박혔다. 턱을 괸 상태 그대로 말없이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시선을 견디지 못한 도윤의 손바닥에 땀이 찼다. 혼자 급한 손길로 종이를 접어 정리한 도윤이 남은 초코우유를 한 번에 쭉 빨아들이곤 칫솔을 들고일어났다.
“나 양치하려구….”
“…….”
말끝을 흐리면서 일어난 도윤이 종종걸음으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턱을 괴고 빈자리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희성이 허. 하고 숨을 터뜨리곤 교실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북적거리는 것이 싫어서 점심을 먹자마자 양치를 마친 희성이 화장실에 들어서자 이제 막 입을 헹구기 시작한 도윤이 거울을 보곤 어깨를 떨었다. 희성의 시선이 화장실 곳곳에 닿았다. 자신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희성이 문을 닫자 이제 화장실에는 도윤이 입을 헹구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도윤은 최대한 느리게 입을 헹궜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칫솔에 묻은 물기를 털고 입고 있던 후드의 소매로 입가를 닦은 도윤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멈춰서 희성을 봤다. 복도는 시끄러운데 화장실은 사람이 둘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조용했다. 희성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도윤에게 다가갔다. 조금씩 뒤로 도망가듯 걸음을 옮기자 의도치 않게 좁은 칸 안에 들어선 꼴이 되었다. 문은 불안한 도윤의 마음도 모르고 끼익 소리만 한번 내고서 조용히 닫혔다. 도윤이 절로 숙여지는 고개에 숨도 죽인 채 칫솔만 보았다.
“도윤아.”
“…응, 응.”
슬쩍 얼굴을 들어 희성과 눈을 마주한 도윤이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희성의 키도 결코 작은 키가 아닌지라 이렇게 마주 보고 있으면 눈이 바로 마주치곤 했다.
“자꾸 긁지 마.”
“…….”
“적당히 모르는 척해 주고 있잖아.”
“미안….”
사실 마음만 먹으면 서준인지 뭔지 하는 놈은 당장이라도 찾아낼 수 있었다. 도윤의 턱을 잡아 올린 희성이 내리깐 눈을 보았다. 자기 딴에는 최대한 희성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행동이 희성에게는 더 자극적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도윤은 미처 알지 못했다. 커다란 눈을 깜빡일 때마다 긴 속눈썹이 평소보다 더 잘 보였다. 희성의 엄지손가락이 도윤의 입술에 닿았다. 입술을 꾹꾹 누르고 문지르던 손가락은 이내 빠르게 입안으로 침범했다. 조금 전에 차가운 물로 입을 헹궜는지 입안이 시원했다. 희성의 손가락이 혀를 꾹 누르고 빠져나가자 도윤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멀어지는가 싶었던 희성의 손이 도윤의 볼에 닿았다.
“아….”
도윤은 이제 이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정도는 알았다.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서 더욱 가까이 다가온 희성이 고개를 틀어 입술을 맞댔다. 희성은 망설임도 없이 혀를 밀어 넣고 도윤의 목을 아래로 눌렀다. 방금까지도 시원했던 혀가 금세 미지근해졌다. 소리도 없이 질척하게 이어지던 키스에 도윤의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희성이 그 사이로 다리를 밀어 넣는 바람에 다행히 넘어지는 꼴은 면했다.
응, 응…. 슬슬 숨이 부족했다. 자신은 항상 숨이 부족해서 끙끙거리는데 희성은 멀쩡해서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잠시 떨어진 입술에 도윤이 숨을 색색거리며 쉬다가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말소리에 풀린 눈을 크게 떴다. 뒤늦게 양치를 하러 온 무리 같았다.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와 물소리가 섞여서 화장실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도윤이 눈앞에 있는 어깨를 조금 밀어내려 손을 뻗었지만 다시 이어지는 키스에 고개를 뒤로 뺐다. 희성이 방해되는 소음에 미간을 구기곤 도망가는 목덜미를 잡아 아래로 눌렀다.
희성은 도윤이 키스할 때 내는 소리를 꽤 좋아하는 터라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목을 누르던 손을 옮겨 귓바퀴를 문질러주자 도윤의 몸이 흠칫 떨리더니 먹힌 소리를 냈다.
“흑.”
저도 모르게 낸 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당황한 도윤이 눈을 크게 떴지만 희성은 눈웃음을 짓더니 혀를 더 깊게 밀어 넣었다. 도윤의 신음에 바깥이 조금 조용해진 것도 그때였다.
“야, 방금 뭐야?”
“뭐가?”
“나만 들었냐? 무슨, 이상한 소리 났잖아.”
“뭔 소리?”
“막, 이상한….”
도윤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희성을 붙잡았지만 혀는 꽤 거칠게 입안을 돌아다녔다. 혀와 혀가 만나 미끌미끌 거리는 감촉은 언제 느껴도 소름이 돋았다. 귀를 만지작거리는 손이라도 그만뒀으면 좋겠는데 희성은 계속해서 귀를 만지고 있었다. 도윤이 절로 나오는 소리를 겨우 억눌렀다.
“안에 누구 있는 거 아냐?”
“그런가?”
정신없는 키스를 이어가고 있을 때 문이 차례대로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제는 진짜로 머릿속에 빨간 불이 켜졌다. 그만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틀었는데도 희성은 개의치 않고 다시 입술을 붙여왔다. 안 돼…. 희성의 손목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다 드디어 자신들이 있는 칸 앞으로 인기척이 들리고 문이 덜컹거렸을 땐 정말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희성은 이 상황이 좀, 많이 짜증이 났다. 입술을 떼어내자 타액이 늘어졌다. 희성이 소리 없이 짧은 뽀뽀를 남기곤 주먹으로 문을 쾅, 쳤다. 그 큰소리에 도윤도 놀랐고 밖에 있던 무리도 놀라서 아, 씨발 뭐야? 하고 욕을 뱉었다.
“야, 그러게 문을 왜 열어.”
“아니 나는….”
“걍 빨리하고 나가자.”
“존나 놀랐네.”
도윤의 심장이 쿵쿵 무섭게 뛰었다. 그 뒤로도 요란하게 양치를 하던 무리가 화장실에서 빠져나가고 희성이 못마땅한 얼굴로 문을 열어 미련 없이 칸을 빠져나가기 전에 도윤을 돌아보았다.
“근데 왜 오늘은 안 울어?”
“…나 매일 안 우는데.”
“울잖아.”
“아니야.”
“아니라고?”
“으응.”
칫솔을 쥐고서 아니라고 대꾸하는 도윤이 귀여웠다. 분명 눈은 촉촉한데 흘러내리는 눈물이 없으니 어색한 데다 아쉽기까지 하다.
“그래도 우는 게 더 예쁘니까 앞으로는 울었으면 좋겠는데.”
“…….”
“넌 네가 울 때 얼마나 예쁜지 모르지.”
“안, 예뻐.”
“예뻐. 다음에 보여 줄게.”
그걸 어떻게 보여준다는 거지? 머뭇거리는 걸음으로 희성을 쫓아 칸을 빠져나온 도윤이 교실로 가는 내내 후드의 소매로 입술을 가렸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누가 알아보면 큰일이니까. 사실은 그게 더 수상해 보인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