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April.
그날 밤의 파티는 체스터 백작이 후원하는 미술관에서 도난당했던 세잔의 진품 세 점이 돌아온 것을 기념하여 개최한 신진 작가 미술전의 전야제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일반에 공개하기 전에 한발 먼저 그림을 보면서 감평을 하고 딜러를 부르거나 화가를 소개받거나 하지만 엘리엇에게는 그런 취미가 없다. 체스터 백작이 선친의 오랜 친구가 아니었다면 간단히 인사만 하고 정말로 그에게 긴요한 용건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럴 수 없었다. 늘 그렇듯이 백작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간장을 녹여 가며 인사를 하려고 애쓰는 딜러와 무명의 화가들, 큐레이터와 비슷한 취미를 지닌 사람들을 팽개친 채 엘리엇의 팔꿈치를 잡고 그는 억지로 그림들 앞으로 이끌었다.
“자네는 감성이 메말랐어! 정말로 후원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게 무엇인지, 우리가 후세에 남길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란 말일세!”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로서는 이 그림이 바싹 마른 여자와 나목을 구별 못할 정도로 섞어서 그려 놓았다는 것밖에 모르겠군요.”
“그것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좋아. 이걸 자네에게 선물하지!”
지금 당장 그림을 떼어 낼 기세인 체스터 백작을 수행비서가 헛기침하며 말렸다.
“미술전은 내일부터 시작입니다, 백작님.”
“아, 아, 그렇지. 끝나면 잊지 말고 이 친구에게 보내 두게. 그리고 밑에다가 헤리퍼드에서 가져가기로 되어 있다는 리본도 달아 두고.”
엘리엇은 옅게 웃었다. 딱히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지만,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 이름을 빌려주는 것쯤은 어려울 게 없다. 그는 새삼스럽게 그림을 다시 한번 보았다. 체스터 백작은 훌륭한 감식안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틀림없이 좋은 작품일 것이다.
그림은 작은 거실의 벽에 걸기에 딱 적당한 정도의 크기였다. 캐번디쉬의 아파트 벽에 걸면 너무 클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체스터 백작이 친분 있는 미술상에게 질질 끌려갔다. 엘리엇은 미소를 띠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엘리엇에게 소개할 사람이 있는데 이러지 말라고 불평을 하면서도 끌려가는 태도에 즐거움이 묻어난다. 이런 자리는 엘리엇처럼 관계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여상한 파티와 다를 바가 없지만, 백작에게는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일 것이다.
그는 잠시 더 그림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캐번디쉬의 아파트를 생각하자 마음이 부드러워졌기 때문이다. 션은 마음에 들어 할까. 내친김에 괜찮아 보이는 것이 있다면 하나쯤 더 사서 션의 집에 걸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파 쪽 벽 공간이 비어 있었다. 적당한 크기의 그림을 찾아볼까 하여 새삼스럽게 미술전을 제대로 보려고 발을 옮기는데, 아는 얼굴이 발길을 가로막았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헤리퍼드 합하?”
“아아, 퍼거슨 경. 오랜만이로군. 한 달 가까이 클럽에서 얼굴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발목을 삐었지 뭡니까. 운동 좀 열심히 한다고 작정하면 꼭 그런 일이 생기더군요.”
“큰일이로군. 지금은 괜찮은가?”
“더 큰일이 생겼으면 이렇게 여유롭게 이런 자리에 나올 수 없었겠지요. 아, 이쪽은 제 친구입니다. 괜찮은 사진작가입니다.”
“에반스 밀러입니다, 합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엘리엇 위체일세.”
엘리엇은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에반스라는 남자가 그의 손을 힘차게 잡았다. 사진작가라기보다는 본인이 모델이라고 하는 쪽이 어울릴 것 같은 준수한 용모였다. 손안에 약간 땀이 흐를 만큼 긴장하고 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근사한 미소를 짓는다. 엘리엇은 쓴웃음을 지으며 에반스의 손안에서 손을 빼내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웠네. 그럼, 퍼거슨 경, 집을 장식할 그림을 찾던 중이라 이만.”
“제가 안내해 드릴 수도 있는데.”
“글쎄,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엘리엇은 에반스의 뒤쪽을 눈짓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끼어든 것은 웨스트베리 남작 로버트 산더스이다. 체스터 백작과는 서로 상극인 그가 여기에 참석한 것은 꽤 놀랄 만한 일이었다. 체스터 백작은 고전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순수예술만이 진짜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비해 웨스트베리 남작은 팔리는 것이 진짜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작이 순수하고 옹고집인 애호가로서 하는 말인 것에 비해 남작의 주장이 사업의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웨스트베리 남작은 영국에서 가장 큰 연예 에이전시의 대표이사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헤리퍼드 합하. 신년 축하연에서 뵙고 처음이지요?”
남작이 정중하고 고풍스러운 태도로 절했다. 그는 재작년에 파산 위기에 놓인 그림스톤 가문에서 작위를 사들였는데, 몸짓만으로 보면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었던 것처럼 우아했다. 엘리엇은 3년 전에 외가 쪽의 친척으로부터 그를 소개받았다. 그때의 그는 그야말로 만인의 여신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폭발적인 매력을 뽐내는 붉은 머리의 미녀를 동반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고동색 고수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아름다운 청년과 함께였다.
“그렇군.”
엘리엇이 힐긋 청년을 쳐다보자 웨스트베리 남작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었다.
“이 친구는 안젤로 알바네제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호주에서 발굴해 낸 모델이지요.”
“이름이 아주 잘 어울리는군.”
아마 예명일 것이다. 아니면 부모에게 선견지명이 있었던가. 엘리엇은 냉정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입고 있는 것이 디너 슈트가 아니라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듯한 모호하고 여린 곡선은 천사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엘리엇은 천사보다는 바커스에게 욕정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새하얗고 조그만 얼굴을 수줍게 붉히는 청년에게 그저 남들이 예쁘다고 하겠구나 하는 것 이상의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웨스트베리 남작이 대변인처럼 말했다.
“아직 어리고 신출내기라서 아무것도 할 줄 모릅니다. 합하께서 이끌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내가 모델 일에 무어 아는 것이 있다고 이끌고 말고 하겠는가.”
사교계는 마치 체스 게임과 같다. 그가 한 걸음을 움직이면, 다른 방향에서도 하나의 움직임이 발생한다.
그가 쓰러진 직후에 션의 이름이 사교계에 알려졌었지만, 풀러와 피처버트의 적절한 도움으로 곧 스캔들은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것은 엘리엇이 그 이후에 아무런 새로운 소문거리를 만들어 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에게 남자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그것을 수면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숨겨진 취미 정도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소개가 시작된 것은 두 번째로 션을 집에 들인 다음이다. 션은 모르고 있지만, 그것은 꽤 큰 한 걸음이었다. 한 번은 그저 유별난 일로 끝나지만, 두 번에는 큰 의미가 있다. 그는 션을 두 번 집에 들임으로써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공언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또한 아무런 핑계도 없이 남자 애인을 집에 들일 정도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것은 물밑의 스캔들이었다. 그에게는 이제 곧 결혼하게 될 약혼녀나 정숙한 아내 대신에 먼저 혼인 서약을 어기고 별거 중인 처가 있었고, 자녀가 있는 집에 애인을 끌어들인 것도 아니다. 아직까지는, 그저 아주 잘생긴 남자와 잤다는 것뿐이다. 리암의 말마따나 요즘 세상에 그런 건 드문 일도 아니었다.
많은 연장자들이 그것을 불쾌하게 여겼지만, 그에게 그걸 직접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헤리퍼드 공작가에는 어른이 없다. 엘리엇의 아버지도, 조부도 외아들이었고, 두 사람 다 정략결혼으로 결합한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음에도 그런 쪽에서는 사생활이 아주 깨끗했기 때문이다. 외가인 콘월의 계보도 마찬가지이다. 방계의 친척 정도야 있지만 방계는 결국 방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접근해 오는 사람 대부분은 이것은 기회로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여자를 노골적으로 들이밀지 못했던 것은 아일라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엘리엇이 그녀를 아끼고 좋아하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명백했지만, 설령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선대 공작의 뜻과 세월에 의해 그녀의 지위는 확고했다.
그러나 남자라면 문제가 다르다. 공작 부인의 경쟁자가 되지 않으면서도 헤리퍼드 공작의 옆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면 조심할 이유가 없다. 엘리엇은 수없이 잘생긴 남자들을―특히 검은 머리이거나 푸른 눈을 가진― 소개받게 되었다. 해명할 기회가 있다면 조각 미남은 내 타입이 아니라고 설명이라도 해 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특별히 검은 머리나 푸른 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거기에 더하여, 너희가 누굴 들이밀어도 션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없을 거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아니, 여기에 하나 있긴 하다. 엘리엇은 션을 이 어린 청년의 옆에 나란히 세워 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아름답기로 말하자면 안젤로도 모자라지 않지만, 분명히 사람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것은 션 쪽이리라.
그는 내심으로 웃었다. 자신은 아무래도 션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애인이 있다면 누군들 그러지 않겠는가 싶으면서도, 자신이 그런 기분이 된다는 게 신선하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8월에는 얼스터 백작이 크루즈를 개최하지.”
운을 띄우자 웨스트베리 남작이 눈을 빛냈다.
“유럽의 아름다운 남녀는 모두 모이는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안젤로라면 합하의 옆자리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일 겁니다.”
“리암에게 말해 보겠네. 남는 초대장이 있을 걸세.”
엘리엇의 파트너로서 참석시킨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남작은 바로 알아들었다. 리암 튜더의 크루즈에 참석하는 데 엘리엇이 남는 초대장을 필요로 할 리 없다.
물론 웨스트베리 남작도 그 크루즈의 초대장을 얻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엘리엇이 관심을 두어 초대하는 것과 자신이 그 틈에 끼어들어 가기 위해 연줄을 이용하여 초대장을 얻어 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것은 안젤로가 아니라 웨스트베리 남작에게 훨씬 큰 기회였다.
안젤로에게는, 지금으로서는 시선을 준 것으로 족하다. 자주 부딪치면 기회는 얼마든지 생기는 법이니까. 이것은 매우 훌륭한 일보였다.
감사의 인사를 하려는데,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리암의 크루즈? 가려고?”
대뜸 반말로 묻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힘이 있는 우렁우렁한 음성이었다. 엘리엇은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라이언?”
“하하, 오랜만이야, 엘리엇.”
그가 거침없이 팔을 뻗어 엘리엇을 포옹했다.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과 재회하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반갑다고 해도 공적인 장소에서 남자가 남자를 이렇게 끌어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는 굳이 밀어내지 않고 상대를 가볍게 끌어안고 한차례 등을 두드리고 물러섰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졸업하고 처음이니까 거의 10년 만이군!”
“벌써 그렇게 되었나.”
엘리엇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아직 옆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웨스트베리 남작에게 그를 소개했다.
“세인트데이비스 자작가의 라이언 세인트 데이비스일세. 이쪽은 웨스트베리 남작 로버트 산더스. 그는 종신 귀족이야.”
“존함은 여러 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상속권도 없는 넷째라서 겨우 기사의 칭호를 받았으니, 내가 오히려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감히 오브 세인트데이비스와 견주겠습니까? 헤리퍼드 합하께 인사를 드리다 보니 이런 운 좋은 일도 생기는군요.”
“우선순위를 바꾸어 말하면 안 되지. 엘리엇과 인사를 하는 사이인데 제대로 된 작위도 없는 나 같은 게 관심사나 될까.”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저 같은 신출내기에게는, 너무 높아 감히 동경조차 하지 못하는 합하보다는 세인트데이비스 경 같은 분이 구체적인 이상형이지요.”
라이언이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은 태도로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웨스트베리 남작은 “두 분 말씀 나누시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으니.”라고 말하고 정중하게 절을 한 후에 안젤로를 데리고 물러섰다.
라이언이 웨이터를 불러 샴페인을 두 잔 집었다. 그리고 한 잔을 엘리엇에게 건넸다. 엘리엇은 술을 마실 생각이 없었으므로 사양하려고 했지만, 라이언이 강권하듯이 그의 손에 샴페인을 들려 주었다.
“축하 정도는 해야지.”
“무슨 축하할 일이라도 있나?”
“재회를.”
라이언이 잔을 부딪쳐 왔다. 굳이 축하까지 할 일인가. 그러나 그가 반갑다고 느낀다면 거절할 것까지는 없었다. 엘리엇은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샴페인에 입술을 댔다. 라이언은 단숨에 잔을 쭉 비웠다. 그리고 다시 지나가는 웨이터의 쟁반에 빈 잔을 얹어 놓았다.
엘리엇은 잠깐 침묵했다. 10년 만에 만나는 대학 선배에게 할 만한 이야기가 뭐가 있을지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넌 전혀 변한 데가 없구나.”
“그렇다고들 하더군.”
그는 잠깐 뺨을 쓰다듬었다.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서 특별히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내적으로는 스스로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런던에는 언제 돌아왔어?”
“열흘쯤 됐어. 가족 모임을 제외하고 파티에 참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
“오랜만에 얼굴을 보이기에 별로 적절한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
“체스터 백작의 연회라면 네가 얼굴을 내밀 테니까.”
라이언이 한 번 삼키고 나서야 끝까지 말했다. 엘리엇은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체스터 백작이 주최하는 모임에 자신이 대부분 참석하긴 하지만, 그 외에도 만날 만한 자리는 얼마든지 있다. 런던에 머무를 거라면 어차피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테고, 다급한 용건이 있는 거라면 약속을 잡는 것이 낫다. 대학 선배이기도 한 오브 세인트 데이비스가 만나자는데 비서가 굳이 사전에 가로막을 리도 없고 말이다. 그런 용건이 있는지 의심스럽기는 했다. 라이언은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동안 한 번도 연락해 오지 않았다.
라이언이 어색하게 웃고 그의 손에서 샴페인 잔을 도로 빼앗았다. 그리고 그의 팔을 잡고 바가 설치되어 있는 쪽으로 끌어당겼다.
“위스키? 요새도 버번을 마셔?”
“바꿀 이유가 없는 취향이니까.”
“그건 그러네. 그 지팡이는 어떻게 된 거야?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후유증이 있었어?”
“약간. 발목이 불편하지만, 대단한 정도는 아니야.”
“대단한 정도가 아니라니.”
“선배가 상관할 일도 아니고.”
그러자 라이언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거친 걸음으로 테라스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엘리엇은 바에서 한 잔의 위스키를 부탁하고, 느릿하게 라이언의 뒤를 따랐다.
그가 테라스로 들어서자마자 라이언이 커튼을 쳤다.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야, 라이언. 부인까지 구설수에 오르게 될 텐데.”
“나한테 화가 난 건 알아. 마음이 많이 상했겠지.”
엘리엇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라이언에게 화가 나 있는 부분이 아무것도 없었고, 뭔가가 있었더라도 십 년 전의 일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나한테 사과할 만한 일이 있었던가?”
“10년 전에.”
라이언이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었다.
“너한테 한마디도 하지 않고 떠나 버린 거, 미안하다.”
“그게 왜?”
엘리엇은 미간을 좁혔다. 그는 이럴 때가 가장 싫었다. 자신은 인지하지도 못했는데 상대가 감정적으로 부딪쳐올 때. 그것이 10년이나 묵은 일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10년 전의 일을 기억에서 뒤져 봤지만, 도무지 라이언이 왜 사과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령 그가 따로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더라도 그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는 엘리엇의 가족도, 친척도, 아랫사람도 아니고, 굳이 분류하자면 친구의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다. 어디에 가서 무얼 하든 그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졸업하고 나면 미국으로 갈 거라는 이야기는 그전부터 했었고, 같은 클럽과 학과 사람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졸업 축하를 겸하여 열린 송별회에는 엘리엇도 참석했다.
그러나 라이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발, 그런 식으로 상관없다고 말하지 마.”
“나는 선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래, 널 이해해.”
엘리엇은 그가 뭘 이해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대화의 맥락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라이언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이마를 문질렀다. 그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쥐어짜듯이 말했다.
“네가,”
“…….”
“네가, 네게, 그럴 정도의 용기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로 네 옆에서 떠나지 않았을 거야.”
엘리엇은 몹시 이상한 기분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가 되어서야 그가 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뭐라고 응대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지나간 일이다? 그건 부정확한 말이었다. 엘리엇에게는 한 번도 시작된 적이 없는 일이었으니까.
션을 곁에 두기로 한 것은 그가 지금까지 처음으로 안쪽 깊은 곳까지 닿아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일라가 특별하다면, 션은 유일하다.
라이언과 지난 10년 동안 계속해서 연락했었더라도, 설령 지속적으로 육체관계를 가졌더라도 션의 자리에 그가 들어가 있을 리는 없다. 그와 가깝게 지냈던 것은 사실이지만, 수많은 타인보다 조금 친근하다는 것일 뿐이지 특별하다는 범주에 속한 적조차 없었으니까.
그는 아마 라이언에게도 그랬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엘리엇은 난처해졌다. 여기에서 자기가 사과를 할 타이밍인 건지, 아니면 나는 그런 감정이 없었노라고 설명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묵언으로 무시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터이고, 굳이 뭔가 대꾸를 하자면 뒤늦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적절한 일이라고 충고하는 것이 옳다 싶었지만, 그걸 라이언이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미간을 좁힌 채 입을 다물고 바라보자 라이언이 약간 웃었다.
“불편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지난 일이고.”
“이해해 줘서 고마워.”
“그냥,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말끝이 애련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처졌다. 엘리엇은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까닥했다. 이제 와서 라이언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 말한 게 아니라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용건은 그게 전부라는 것을 알고 엘리엇은 테라스의 커튼을 젖혔다. 찰나, 수많은 시선이 꽂혔다가 분분히 흩어졌다. 그는 그것을 무시하고 느릿하게 테라스 밖으로 나왔다. 라이언도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다음에는 아내를 소개해 줄게. 티파티는 어때? 예전 클럽 멤버들을 모아서.”
“가능하면 참석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지. 지금은 세인트데이비스 하우스에 있어?”
“아니, 호텔이야.”
라이언이 미소를 띠었다.
“스피로 호텔. 그거, 요전에 인수했어.”
“그렇군.”
엘리엇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라이언이 또 연락하겠다며 그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엘리엇은 위스키 잔을 든 채로 바 쪽으로 향했다. 어쩐지 기분이 가라앉아서 알코올이 당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 *
엘리엇이 귀가한 것은 새벽 3시에 다가가는 시간이었다. 일찍 돌아오고 싶었지만, 체스터 백작이 자꾸 붙잡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어깨가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 정도로 피곤했지만 그림 쇼핑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그는 네 잎 클로버와 물방울이 그려진 손바닥만 한 액자 세 개를 션에게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현관 옆벽에 걸면 적당할 것이다.
별생각 없이 달게 한 선매 리본은 화제를 일으켰다. 권유도, 후원 약속도, 부탁도 없고 누군가에게 이걸 선물해 달라고 지정받은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작품 같은 것을 산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체스터 백작은 매우 기뻐했으며 귀가가 예상보다 더 늦어진 것도 그 탓이다.
“어서 오십시오. 피곤해 보이십니다.”
현관까지 마중 나온 윌리엄이 그의 재킷을 벗겨 주며 말했다. 엘리엇은 고개를 끄덕였다. 술은 한 잔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어쩐지 눈꺼풀이 무겁다. 빨리 돌아오고 싶은 것을 참고 있었기 때문일까.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 침실로 향한다. 윌리엄이 셔츠를 마저 벗기고 가운을 걸쳐 주었다. 엘리엇은 끈을 대강 묶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욕실로 향했다.
“이제 자네도 가서 쉬게. 나도 샤워만 하고 잘 테니까.”
“예.”
“내일 오후까지는 특별한 일정이 없으니까 당직에게 맡겨 두도록 해. 자네도 피곤하겠군.”
윌리엄이 알았다며 웃었다. 그리고 “안녕히 주무십시오.”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물러갔다.
엘리엇은 욕실에서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고 나왔다. 머리만 대충 털고 침대에 눕는다. 하지만 눈꺼풀이 무거운 것에 반해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평소에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넘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은 채 잠시 뒤척이다가 이내 일어서고 말았다. 피로와 약간의 알코올이 억지로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럴 때는 차라리 저절로 잠이 올 때까지 간단히 책이라도 읽고 있는 게 낫다.
그러나 그는 책도 오래 붙들고 있지 못했다. 이렇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가슴팍 안쪽이 답답한데 한숨을 길게 내쉬어도 산소가 모자란 것 같은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엘리엇은 책을 내려놓고 일어서서 방 안에서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지난 10년 동안 라이언에 대해 떠올린 적은 한 번도 없다. 최근에 션과 이야기하다가 잠깐 이야기가 나와, 타인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바가 있었을 뿐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고용인 하나 없이 좁은 집 안에서 남과 부대꼈던 일은 라이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엘리엇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특별한 경험이기는 했지만, 옛일이다.
라이언이 그의 집으로 굴러들어왔던 것은 도박 빚 때문이었다. 카드 내기로 집세를 날리고 가문에서 지원을 끊어 버려서 갈 곳이 없다며 한밤중에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별반 친하지도 않은 자신을 찾아왔었다. 그때 그는 크지는 않지만, 방이 다섯 개나 되는 이층집에 살고 있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잠잘 방을 내주었다.
며칠만은 몇 주만이 되고, 몇 주는 몇 달이 되고, 어느 날 들여다보니 낡은 것이지만 침대가 들어오고 책상과 안락의자, 맥주 궤짝으로 만든 테이블까지 갖춰져 있었다. 엘리엇은 그것도 큰일로 여기지 않았다. 라이언은 시끄러웠지만, 선은 지킬 줄 알았다. 그의 친구들이 아래층의 방 하나를 점령하고 아지트로 삼다시피 했었지만, 특별히 불편을 끼치지는 않았고, 자신도 가끔 거기에서 같이 시가를 피우거나 카드놀이를 했었다.
그는 그 이듬해의 11월에 졸업했다. 가끔씩 잤지만, 동거라기보다는 하우스 메이트에 가까운 사이였다. 1년도 넘게 같이 살았는데도 친했느냐고 묻는다면 애매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밖에 안 되는.
이제 와서 그런 말을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후.”
난처한 일이라고 엘리엇은 생각했다.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옛일을 조금 되새겨 보아도 라이언이 자기를 좋아했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문득 절제하려고 애쓰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늘 눈부신 것을 바라보듯 황홀하게 자신을 향하는 션의 시선을 떠올렸다. 깍지 끼어 잡았던 손의 감촉이 남은 것 같아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편다. 그가 알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결심도, 맹세도 남은 인생 전부와 같은 무게가 되는. 엘리엇은 자신이 처음부터 너무 과분한 것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그보다 못한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보고 싶어졌다.
엘리엇은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각은 새벽 3시 반. 지금쯤이면 깊이 잠들어 있으리라.
전화를 걸면 깰 것이다. 분명히 기쁘게 받아 주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은 내일 오전 중에 특별한 일정이 없지만, 션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
그는 참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다시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러나 혼자 있는 침대 속은 썰렁하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처리해야 할 문제들을 생각하려고 했지만 달콤한 생각에 점령당한 머릿속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는 파자마 위에 가운을 걸치고 인터폰을 눌렀다. 당직인 애쉬튼이 나왔다. 잠이 들어 있었는지 목소리가 걸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차를 대기시키게.”
「한밤중인데 어디에 가시렵니까?」
“윌슨 그로브로.”
션의 집이 있는 거리 이름을 말하자 애쉬튼이 “알겠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대답하고 인터폰을 껐다. 엘리엇은 보고 싶다는 마법의 단어를 중얼거리며 슬리퍼를 끌고 복도로 나섰다. 순찰을 도는 경비원들이 로비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올라오다가 엘리엇을 보고 황망히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게.”
그는 짧게 인사하고 경비원들을 스쳐 로비로 내려갔다. 급한 발걸음이 뒤쫓아 왔다.
“합하.”
애쉬튼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실색하며 물었다.
“그대로 가실 겁니까?”
“가서 잠만 잘 건데. 이대로 됐네.”
“아직 날이 찹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가 황급히 뛰어 들어가 봄 코트를 가지고 나왔다. 엘리엇은 조금 초조한 기분이 들었으나 애쉬튼을 내버려 두고 나간다고 해서 바로 차가 준비되어 있을 것도 아니라서 하는 수 없이 기다렸다.
곧 애쉬튼이 다시 나왔다. 가운 위에 코트를 걸쳐 입고 엘리엇은 차에 올랐다.
가로등이 흐리게 번져 보이는 게 안개가 짙다 싶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엘리엇은 등받이에 목을 젖힌 채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하나씩 세었다. 밤거리는 한가했고, 차는 이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사가 내려서 우산을 받치고 뒷좌석 문을 열었다. 엘리엇은 배웅을 받는 대신에 우산을 받아 들었다.
“오늘은 돌아가게. 용건이 생기면 부를 테니.”
기사는 엘리엇이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갈 때까지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복도의 불이 꺼져 있어서 어두웠다. 엘리엇은 지팡이처럼 우산으로 바닥을 더듬어 계단을 찾았다. 날이 급격히 차가워졌는지, 아까 귀가할 때까지만 해도 썰렁한 기분이 들지 않았는데 애쉬튼의 말처럼 벌써 추웠다. 빗물에 젖은 슬리퍼가 양탄자를 적시며 찰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슬리퍼를 현관에서 벗어 버리고 맨발로 침실로 향했다.
션은 곤하게 잠이 들어 있었다. 엘리엇은 매트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 곁에 앉아 푹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미소가 저도 모르게 입술에 걸렸다. 약간 벌어진 채 색색거리는 숨을 내쉬는 연홍색 입술을 손끝으로 만져 본다. 션도 이제 서른이 넘었는데, 잠든 얼굴은 나이 찬 사내라기보다는 소년처럼 깨끗하고 천진하게 곱다.
잠자는 미녀를 발견한 왕자의 기분을 맛보며 엘리엇은 천천히 허리를 구부려 보드라운 아랫입술을 살짝 입술로 물었다. 그는 요즘 들어 한 번씩 이 아름다운 남자가 자기 것이라는 사실에 신기함을 느끼곤 했다. 이상한 일이다. 만났던 즈음에는 잘생긴 줄은 알았지만, 그리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얼굴인데, 지금은 볼수록 모자란 곳 하나 없이 매일매일 빛을 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갈수록 어여뻐 보이는 얼굴을 어루만진다. 이보다 더 수려한 남자는 찾아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엘리엇은 그게 객관적인 판단인지 그냥 자신의 느낌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으음.”
션이 몸을 약간 뒤척여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래서 엘리엇은 키스하는 대신에 몸을 구부려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반쯤 끌어안았다. 숨을 깊게 들이쉬며 민트 향이 섞인 체향을 들이마시자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던 가슴이 부드럽게 풀어지며 편해졌다. 그것만으로도 피로가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국 깨우고 말았는지 등에 팔이 감겼다. 션이 잠에 취한 목소리로 물었다.
“엘리엇……?”
“쉬이.”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
“잠깐 얼굴만 보러 온 거니까.”
달래듯이 소곤거리며 눈꺼풀을 쓸어 감겨 준다. 엘리엇은 션이 자꾸 밤중에 그를 깨워 놓고 왜 웃는지도 알 것 같았다. 깨울 생각은 없고 잠든 얼굴도 사랑스러웠지만, 역시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은 아쉬워지고 만다. 션이 눈을 감은 채 웃음을 띠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언제 오셨어요?”
“지금 막.”
엘리엇은 션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다정한 손짓이 머리칼을 쓸었다.
“발이 차가워요…….”
“음…….”
션에 제 발끝으로 엘리엇의 발등을 쓸면서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엘리엇은 일어나려고 애쓸 필요 없다고 그의 눈을 다시 내리감겼다. 그리고 나란히 베개를 베는 대신에 품으로 파고들듯이 어깨를 베고 누워 배에 팔을 얹었다. 션이 불분명한 말을 웅얼거렸다. 사과의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그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곧 다시 잠이 들었다.
엘리엇은 그대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불 속이 따뜻하다. 션의 다리와 뒤엉켜 있는 발도 따뜻했다. 맑았던 머리가 곧 졸음으로 흐려졌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도 않아서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