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24/52)

외전

오후 4시에 준형이 막 바에 출근하여 청결 상태를 체크하고 본업 쪽의 일들을 점검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딸랑거리고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엘리엇이었다. 준형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엘리엇이 온다는 연락도 받은 적이 없지만, 무엇보다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션과의 일이 있고 나서 그는 꽤 오랫동안 휠체어 신세를 졌다. 실제로 하반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리 근육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정신적인 문제라고 하지만, 엘리엇의 상태는 상담 같은 것으로 나아질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재활 훈련을 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준형이 알기로 지난주까지만 해도 그는 전혀 다리를 쓰지 못했다. 지금도 불편한 듯이 목발에 의지하여 나뭇가지처럼 무력한 오른쪽 다리를 끌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게 어딘가.

“엘리엇, 축하해! 드디어 일어섰군!”

“이삼일 됐네.”

엘리엇이 대답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바까지 느릿하게 걸어와 의자에 앉았다. 그 정도 걷는 것도 쉽지 않은지 이마에 땀이 흘러 있었다.

“왜? 별로 기쁘지 않아 보이는데.”

“특별히 기뻐할 일도 아닐세. 어차피 문제도 없던 다리가 아닌가.”

“그렇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렸잖아? 언제부터 걷게 되었어?”

“지난주 토요일에 왼쪽 고관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네. 오른쪽은 아직일세.”

“곧 회복되겠지. 시작이 문제였잖아.”

“그렇긴 하지.”

준형은 웃으면서 샴페인을 꺼내어 목이 긴 잔에 따랐다.

“축하주는 벌써 마셨겠지만, 내 잔도 한 잔 받으라고.”

그 말에 엘리엇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무거운 얼굴이라서 준형은 의아하게 물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고민이랄 것까지는 아니네만…….”

“단순히 다리 움직인다고 보고하려고 온 건 아닐 거 아냐.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거지?”

그가 씁쓸한 것을 씹은 듯한 얼굴로 말했다.

“……별건 아닐세. 션에게 어떻게 말하나 싶어서 좀…….”

“어떻게, 라니. 아직 말 안 했어?”

“그게, 아무래도.”

“응.”

“그는, 내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걸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엘리엇이 그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며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준형은 잠깐 손을 멈추고 엘리엇을 빤히 쳐다보았다. 서비스직답지 않게 잠깐 솔직한 심정이 흘러나왔다.

“그 자식 생각보다 더 병적이잖아…….”

“준?”

“아니.”

준형은 애써 웃었다. 리암이나 아일라에게 말하는 대신에 자신에게 찾아온 엘리엇의 선택은 매우 훌륭한 것이었다. 비록 그게 남들에게 어떻게 들릴지까지는 모르더라도 두 사람이 화낼 것은 짐작을 한 모양이다.

하기야, 인간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이런 바까지 운영하고 있는 자기나 되니까 그걸 듣고도 그냥 많이 돌았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실질적인 충고만 해 주기로 했다. 자기들끼리 좋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이제 와서 떼어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모든 결정권이 오로지 엘리엇에게만 달려 있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었고, 무엇보다도 엘리엇이 그런 걸 다 고민할 정도로 상대에게 마음을 쏟고 있는데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누구에게나 조금씩의 변태 기질은 있다.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이상 션 맥케인이 어디에서 만족감을 느끼든 간에 그가 나설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말 안 할 수는 없는데, 뭐. 차라리 빨리 말하는 게 나을걸. 남들보다 늦게 알게 되면 화낼 거야.”

“그건 그렇겠지.”

“정 신경 쓰이면, 깜짝 놀랄 만큼 좋은 일을 섞어서 말해.”

“깜짝 놀랄 만큼 좋은 일?”

“뭐, 많잖아. 맥케인은 네가 뭘 해 줘도 다 좋아하긴 하겠지만. 집에 초대라도 한다든가?”

“집에?”

“그래. 런던이 곤란하면 오랜만에 멘느나 더비에 가는 건 어때? 아직 한 번도 맥케인을 초대한 적은 없지? 애플비 성도 괜찮겠고.”

“애플비에는 아무것도 없어.”

“네가 어려서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맥케인은 울면서 기뻐할걸.”

“그런, 가……?”

“제일 좋은 건 지금 살고 있는 타운 하우스이긴 하겠지. 너도 맥케인의 집에 가 보고 싶어 했었잖아?”

“그런 건가?”

엘리엇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샴페인 잔을 들었다. 표정에야 변한 곳이 없지만, 태도에 여유가 생긴 것으로 보아 마음을 결정한 모양이다. 준형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해했든 하지 않았든 그는 결론이 빠르다. 준형이 알기로 그래도 뭔가 고민 비슷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션에 관한 일뿐이었다.

* * *

그리하여 그 주의 금, 토요일에 헤리퍼드 타운 하우스의 고용인은 대부분 갑작스러운 휴가를 받았다.

엘리엇이 이런저런 뒷이야기가 날 것을 예상하면서도 런던으로 션을 부른 것은 2박 3일의 일정에 애플비나 더비의 성까지 가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 초대하는 거라면, 낡은 선조의 성보다는 그가 태어나서 살고 있는 런던의 저택이 훨씬 의의가 있는 것이 당연했다.

준형이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 초대할 생각이었다. 로테르담에서부터 불러올 마음까지는 없었지만 말이다. 정확히는, 뒷일로 미루어 두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래도 션에 대한 부분에서 자신은 몹시도 생각이 모자랄뿐더러 게으르기까지 하다고 엘리엇은 생각했다. 현재가 늘 만족스러운 탓일지도 모른다.

그는 고용인을 필요 최소한만 남기고 대부분 휴가를 주어 내보냈다. 전과 달리 션과의 관계를 특별히 비밀로 해야겠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정식으로 어딘가에 소개하기 전에 스캔들부터 새어 나가는 것은 곤란하다. 타운 하우스의 고용인은 가볍게 100명을 넘어서는 숫자이다. 보안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고 해도 그 인원수를 완전히 믿을 수 없다. 게다가 고용인들이 션을 보면 야단을 내리라는 것은 겪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경비 직원은 자리를 비우게 할 수 없으니 제외이다. 시설 관리도 절반은 남았다. 그밖에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으로는 요리장과 그 보조 하나, 하우스 키퍼인 메리와 그녀가 지명한 메이드 둘을 남게 했다. 그 이외에는 전원이 사흘의 휴가를 받았다.

윌리엄에게도 이 기회에 휴가를 주고 지중해로 가는 크루즈에 강제로 태웠다. 그는 한 달 정도 느긋하게 쉬다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동안에 부집사인 벤자민이 일을 맡게 되어, 그도 역시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커다란 저택이 썰렁해졌지만, 엘리엇은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메리는 저택이 엉망이 될 거라고 경고했지만 이삼일쯤 청소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션은 금요일 저녁에 런던으로 올 것이다. 엘리엇은 전용기로 그를 데려오라고 비서에게 일러 두었다. 기다리는 것은 이상스러운 기분이었다. 그가 도착할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데도 초조하다고 해야 하나,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 저녁에나 올 텐데도 하루가 통째로 사라졌다.

평소에도 그를 방해하는 고용인이 있었을 리 만무한데도 사람의 기척이라는 건 매우 중요해서 저택은 다른 때보다 더 조용했고, 기다릴 생각이 없는데도 션의 생각으로 뻗어 간다.

또 새로운 마음을 배우는구나, 하고 그는 내심으로 탄식했다. 저녁에 션이 도착했을 무렵에는 좀 지쳐 있었다.

“엘리엇 씨!”

그를 보자마자 션이 두 팔을 벌렸다. 엘리엇은 휠체어를 움직여 그에게 다가가 가볍게 포옹에 응해 주었다. 션이 그를 한 번 꼬옥 안았다가는 아쉽게 놓고, 반가움의 인사 대신 정수리에 입술을 눌렀다.

명성 있는 건축가의 대표작이자 18세기 초부터의 헤리퍼드 공작가의 발자취, 특히나 명예 선언 이후의 상급 귀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해서 타운 하우스는 건물 자체만으로도 아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지만, 션은 그런 것에는 흥미조차 없는 듯 아름다운 눈동자에 오로지 엘리엇만 담고 그만이 의미 있는 것을 보듯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그건 엘리엇에게도 좀 기쁜 일이었다.

* * *

집으로 초대를 했다고 해도 할 만한 일이 많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원을 구경하기에는 시간이 늦었고, 새삼스럽게 집을 보여 주겠다고 온 저택에 불을 다 켜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둘은 프라이빗 룸에서 마주 앉아 저녁을 들었다. 테이블 가까이 청동 스탠드를 끌어당기고 불을 밝히자 션이 약간 아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놀랐습니다.”

“뭐가?”

“밖에서 보기에 엄청 고전적이니까 내부도 그럴 줄 알았거든요. 로비도 굉장히 전통 있어 보이고.”

“자주 사용하지 않는 곳은 대부분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 하지만 거실이나 침실까지야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생활하는 공간인데. 수리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그렇군요. 여기는 아주 현대식인데요?”

“리모델링 한 지 6년쯤 되었네. 물이 새서.”

“물이 새요?”

“오래된 건물이니까. 창틀 쪽에 그렇게 되더군. 기어이.”

션이 놀랍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정말 하잘것없는 일인데도 일일이 크게 반응하니까 엘리엇은 약간 설레는 기분이 되었다.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뿐인데, 마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난처했다.

“사실, 식당을 기대했었습니다.”

“식당?”

“영화 같은 데에 자주 나오지 않습니까? 직사각형으로 된 긴 테이블에 이렇게 사람들이 앉는 거.”

그가 냅킨을 접고 양쪽 모서리에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자리를 표시했다.

“끝에 앉은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려면 소리를 질러야 되는 그런 식당이요.”

“아, 대식당 말인가. 있긴 있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손님이 좀처럼 오지 않아서 닫아 둔 지 오래됐다네. 그런 데에서 식사를 해 보고 싶었는가?”

“그럴까 봐 걱정했다는 측면에 가깝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쪽이 더 좋지요.”

그가 고개를 기울여 엘리엇에게 한층 다가왔다. 손이 뺨을 쓰다듬어 온다. 호흡이 흐트러졌다. 엘리엇은 한숨을 쉬며 션의 손목을 잡았다.

“그런 건 침실에 가서 하게.”

“긴장하고 계세요?”

“약간.”

“키스는 괜찮죠?”

“식사 중일세.”

“키스만인데요, 뭘.”

틀림없이 거기에서 끝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션은 진짜 잠깐 그의 입술을 훔치고는 되돌아갔다. 엘리엇은 발목에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자기가 긴장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왜요?”

“아무것도 아닐세.”

어쩐지 좀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주에 만나고 이번 주에 또 만나는데 이렇게까지 기대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게다가 막상 중요한 이야기는 어떻게 꺼낼지 결정도 하지 못했다.

일단 저녁이나 먹고……. 그런 생각으로 엘리엇은 가벼운 수준에서 식사를 마쳤다. 션이 디저트로 나온 젤리를 떠서 생글거리며 그에게 내밀었다. 엘리엇은 한숨을 쉬었다. 션의 집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해 주었지만, 늘 엄숙함을 지키고 있던 자신의 집에서 그러는 것은 아무래도 껄끄러웠다. 그러나 결국 고개를 숙여 그것을 받아먹었다. 다른 때처럼 식사 시중을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테지만, 보는 사람이 없다는 전제하에 그는 자신이 션에게 무한정 물러진다는 자각이 있었다.

“달아요.”

그가 엘리엇에게 한 번 더 젤리를 떠먹여 놓고 다시 입술을 훔쳤다.

“자네 좀 들뜬 것 아닌가?”

“당연히 들떴습니다. 엘리엇 씨 집에 초대받은걸요. 거기다가 여기에서 태어나서 자라셨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네만.”

“나중에 엘리엇 씨가 어려서 사용했던 방이라든가 그런 것도 구경하고 싶어요.”

엘리엇은 션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라든가 카이루완에서의 생활이 별로 궁금하지 않아서 약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둘은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션의 집처럼 좁지 않으므로 엘리엇은 굳이 휠체어에서 내려 소파로 옮기거나 하지 않고 마주 앉은 채 함께 앨범을 보았다. 사진에 기록으로서의 의미밖에 두지 않는 엘리엇으로서는 그런 게 즐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션은 제일 먼저 그것부터 보고 싶어 했다. 일가의 사진첩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지만, 예전에 윌리엄이 엘리엇의 것을 따로 정리해 놓았다면서 메리가 가져다주었다. 션은 즐거운 얼굴로 첫 페이지를 넘겼다.

“엘리엇 씨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인 걸요. 아, 이거 봐요. 귀여워요. 개를 키우셨군요. 고양이도 있고.”

아장거리며 걸을 나이의 엘리엇이 큰 개의 배를 베고 털 사이에 푹 파묻혀 있는 사진을 보고 션이 환성을 질렀다.

“동물 좋아하는가?”

“동물에는 관심 없습니다. 엘리엇 씨가 귀엽다는 뜻이었어요.”

그가 뺨에 입 맞춰 왔다. 엘리엇은 약간 한쪽 눈을 찡그렸다.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제 션이 이러는 것에 꽤 익숙해졌을 텐데도 오늘따라 짤막짤막한 키스나 스킨십이 그를 난처하게 했다. 예상치 못한 기습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이상하게 닿을 때마다 호흡이 흐트러진다. 션이 언제 손을 뻗어 올지가 신경 쓰이는데,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그렇다. 좀 더 어루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쪽 하고 뺨에 뽀뽀하고 바로 물러난다. 갑자기 그러는 것도 곤란하지만, 갑자기 그만두는 것도 곤란하다고 생각하면서 엘리엇은 손으로 뺨을 닦았다.

“엘리엇 씨는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글쎄. 그다지. 여기는 콘월에 있는 외가댁일세. 외할아버지께서 사냥을 좋아하셔서 집에 개가 많았지.”

“고양이도 있네요? 세 마리나.”

“쥐도 많았다네.”

션이 푸훗 웃었다. 뭐가 웃긴 건가 하고 엘리엇은 그를 쳐다보았다. 또다시 기습적인 키스가 이번에는 관자놀이를 훔쳤다. 살짝 닿은 베이비 키스인데도 엘리엇은 역시 감촉이 진하게 남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고 손끝으로 그 자리를 쓸어내렸다.

엘리엇은 무심결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션이 정색했다.

“엘리엇 씨는 웃지 마세요.”

“뭐?”

“앨범으로 눈을 돌릴 수가 없으니까요.”

그가 사르륵 눈웃음을 치며 엘리엇의 코끝을 가볍게 쥐었다가 놓았다. 유혹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엘리엇은 약간 뜨거워진 한숨을 쉬었다.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리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한다. 피하지방 어디가 간지럽기라도 한 건지 긁는다고 없어질 것 같지 않았다.

“이게 외조부님 사진이군요. 신문에서 봤었습니다. 엘리엇 씨는 이 분을 닮으신 것 같더라고요.”

“그렇다고들 하더군.”

“머리칼과 눈동자도 외탁이고.”

“어머니 것은 염색이라네. 금발은 아버지 쪽일세. 대대로, 라면 좀 과장이고 위체의 직계에 금발이 많긴 하지.”

“여기 보면 흑갈색이신데요?”

“가벼워 보인다고 해서 염색하신 걸세. 웬만해서는 비밀로 하셨다네. 나도 그럴까 했는데, 어머니가 워낙에 좋아하셨던 터라…….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한 것에는 정략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금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이유도 상당히 있으셨을 정도이니까.”

엘리엇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이다가 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네도 좋아하지?”

“전 딱히 금발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엘리엇 씨의 머리칼이 정말로 숨 막히게 아름다운 건 사실이죠. 금 같은 건 갖다 댈 게 아니에요.”

그가 고개를 기울여 이번에는 머리칼에 입술을 눌렀다. 엘리엇은 몸을 약간 뒤로 빼서 그 입맞춤을 피했다. 자꾸 가슴이 쿵쿵 뛰고 새삼스럽게 들먹거려서 불편한 기분이 되고 만다. 그걸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그는 담담한 신색을 의식적으로 지키며 지적했다.

“전에도 말했었지만, 자네의 표현에는 문제가 있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한 완벽하고도 정확한 표현을 하고 있는 게 맞습니다. 말이 모자란다는 걸 가끔 느끼기는 하지만요.”

션이 팔을 뻗어서 엘리엇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하고 몸을 맡기려는데, 그는 엘리엇을 휠체어에서 소파로 옮겨 자기 옆에 딱 붙여 앉히고는 또다시 앨범을 집어 들었다. 입술이 마르는 기분이 들어서 엘리엇은 눈살을 찌푸렸다. 딱히 지금 당장 션을 쓰러뜨려서 올라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꾸 예상이 틀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쪽에서 원한 것도 아닌데 초조해졌다.

“여기는 어디인가요?”

“애플비. 6살 때로군.”

“표정이 없어졌어요.”

“여러모로 쉽지 않은 시기였다네. 일단 기억이 없었으니까. 런던이 시끄러워서 이쪽으로 보내졌었다지만, 어릴 때 일이라 잘 기억날 정도는 아니로군.”

그리고 어머니도 역시 그랬었다. 그의 어머니는 심약하고 변덕이 심했으며, 그런 성격을 귀부인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엘리엇이 겪은 일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했으며, 아들이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하고 나서야 어머니다운 일을 하려고 애쓰기는 했지만 결국 잘 해내지는 못했다.

그녀는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견디지 못했고, 자기가 성모자의 그림처럼 이상적인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것도 견디지 못했다. 엘리엇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했으나 콘월의 후계자인 아내를 런던에서 내보내지는 못했다. 대신 엘리엇을 애플비 성으로 보내어 요양하게 했었다.

그런 것은 자신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지만, 말을 꺼내면 누구나 다 안쓰러운 얼굴로 쳐다보았기 때문에 엘리엇은 어머니에 대해서는 이 시기의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하고 있었다. 션은 분명히 가슴 아파할 것이다. 그런 얼굴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고맙게도 션은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 대신 앨범을 뒤로 더 넘겼다.

“아, 이것도 알랑 부인이지요? 여기까지 같이 가셨었군요. 이분은?”

“장모님일세. 아, 아일라의 어머니 말일세. 어릴 때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지.”

“그렇군요. 리암 경도 있군요. 알버트 왕자님도. 엘리엇 씨도 여기. 이건 몇 살 때쯤이죠?”

“9살 정도까지 애플비에 있었으니까 그전이겠지.”

모양 잘 빠진 아름다운 손가락이 사진을 더듬는다. 엘리엇은 그 손이 어린 시절의 자신을 쓰다듬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면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언젠가 저도 가 보고 싶습니다.”

“가 봐야 아무것도 없어. 그냥 낡아 빠진 성이라네.”

“그래도요.”

“자네가 실망하지만 않는다면야 가 보는 것쯤은 어렵지 않은 일이네만…….”

어려서 지냈던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울면서 기뻐할 거라던 준형의 말이 생각나서 엘리엇은 또다시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그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을 깨달은 션이 앨범에서 시선을 들고는 눈매를 부드럽게 늘어뜨렸다. 입술이 먼저 얼얼해지고, 그다음에야 키스가 닿았다.

엘리엇은 이번에는 맞았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션의 입술이 살며시 움직여 섬세하게 그의 입술을 애무하고 내밀어진 혀를 빨았다. 엘리엇은 자기가 평소보다 좀 예민해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계속해서 션이 건드리고 물러나기를 반복했기 때문인지 장소가 바뀌었기 때문인지 잘 알 수 없었다.

팔을 들어 션의 목을 끌어당기자 션이 엘리엇을 반쯤 소파에 눕히듯이 등을 감아 안으며 혀를 휘감았다. 키스는 금세 몸을 뜨겁게 했다.

“하아…….”

션이 눈썹을 내리깔고 그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조명이 긴 속눈썹에 내리깔리고, 눈동자에 드리워지는 짙은 그림자가 은밀한 그늘을 연상시킨다. 오가는 숨소리 중에 어느 것이 더 뜨거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자꾸 유혹하시면 안 돼요, 엘리엇 씨.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내가 언제.”

“그런 눈으로 자꾸 쳐다보시고. 계속 제가 뭘 하는지 신경 쓰시고.”

“내가 뭘. 으음.”

어느 쪽이 먼저라 할 것 없이 열기 어린 숨결이 또다시 뒤섞인다. 깊어지는 키스에 엘리엇은 몸을 떨면서 션의 목덜미를 더듬었다. 셔츠 첫 번째 단추를 풀고 손끝으로 피부를 긋자 션이 호흡을 떨면서 그의 뒤통수를 꽉 잡고 고개를 젖혀서 격렬하게 온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당신은, 제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좀 아셔야 됩니다.”

“침실로 갈까?”

“아직 시간이 이른데요?”

그렇게 말하는 주제에 션이 그의 등과 무릎 아래에 손을 밀어 넣었다. 엘리엇은 그것에 저항하면서 몸의 중심을 밑으로 쏠리게 했다.

“그럴 필요 없네. 내가 갈 수 있, 헉.”

션이 그를 훌쩍 안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엘리엇은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아 안았다.

“복도로 나가야 하는데…….”

“보는 사람도 없잖습니까?”

“CCTV가 있어.”

“전 봐도 상관없는데……. 곤란해지십니까?”

“곤란까지야, 아니네만. 무겁지 않은가?”

“행복의 무게죠. 평생 이렇게 다닐 수 있으면 그것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겁니다.”

“아.”

엘리엇은 머뭇거렸다. 할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는데, 션이 너무 행복한 얼굴을 해 버려서 말하지 못했다.

엘리엇 씨를 안고 다니려고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그가 거실에서 나갔다. 엘리엇은 약간 한숨을 쉬면서 침실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션이 쉬지 않고 입 맞춰 와서 답답한 기분은 금세 잊고 말았다.

거실에서 침실은 두 칸도 떨어져 있지 않다. 션의 팔에 안긴 채로 엘리엇이 문고리를 돌려 열었다.

그리고 둘 다 잠깐 침묵했다.

“아.”

션이 당황한 소리를 내면서 얼른 엘리엇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팔에서 힘이 빠져서 떨어뜨릴 뻔했기 때문이다. 침대에 빨간 실크 시트가 깔려 있고, 무드 등이 은은하게 붉은빛을 던졌다. 사방이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저기, 엘리엇 씨……?”

“분명히 말해 두는데, 절대 이건 내 뜻이 아닐세.”

엘리엇이 거의 짓씹듯이 내뱉었다. 좀처럼 화내는 일이 없는 그로서는 드물게 매우 격한 감정을 내보인 것이다.

“거기 인터폰. 아니. 휠체어 좀 가져오게.”

“그렇게 화내지 않으셔도 되지 않아요?”

션이 웃어 버렸다. 엘리엇은 뭐가 웃기냐는 듯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션이 방을 한 바퀴 둘러보고 방 한쪽에 세워진 스탠드에 불을 밝혔다. 겨우 방이 정상적인 색상으로 돌아와서 엘리엇은 한숨을 내쉬었다. 션이 촛불을 이것저것 끄고서는, 아직도 발갛게 불을 밝힌 장미 봉오리들을 살펴보았다.

“치워.”

“음. 비싸지 않을까요? 이거 엄청 비싼 꽃 같은데…….”

“내 스트레스보다 비싸지 않으니 치워서 던져 버리게.”

엘리엇은 신경질적으로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션이 당황하며 얼른 덩굴장미를 잡아당겼다. 가느다란 전선이 끊기면서 불이 꺼졌다.

“엘리엇 씨가 화내시는 거 처음 봅니다. 전 솔직히 좀 고마운데요.”

“고맙긴 뭐가. 자네 이런 취향인가?”

“적어도 환영받는 건 확실하잖습니까? 엘리엇 씨 주위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건 싫으니까요.”

“주위 사람이라니. 고용인일세. 게다가 주인의 사생활에 이런 쓸데없는 참견을 한다는 건 큰 문제야. 아무리 내가 엄하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배려심이 좀 지나치긴 합니다.”

그가 협탁에 놓인 젤 병을 들어 보였다. 그 옆에는 얌전히 초박형 콘돔 상자까지 놓여 있었다. 두 개나. 엘리엇은 고개를 숙이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메리는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서 그 아래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이제까지 엘리엇은 쪽팔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는데 오늘 하루 만에 그 뜻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자기 집의 고용인이 이럴 줄이야.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션이 웃으며 그것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그 뒤에 놓인 위스키 병을 들었다.

“위스키는…… 좀 안 맞는 것 같은데요. 샴페인이나 와인이라면 모를까. 반쯤 비었고. 나이트캡을 하시는 버릇이 있으십니까?”

“그건 아닐세. 예전에 준이 놓고 간 거지.”

“아하, 그래서…….”

그가 선선히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는 엘리엇의 곁에 앉았다.

“시트를 바꾸게 해야겠어.”

“저는 좋습니다. 엘리엇 씨는 피부가 희니까 붉은색도 어울릴 것 같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션이 엘리엇의 어깨를 눌러서 침대에 쓰러뜨렸다.

“엘리엇 씨도 괜찮으실 겁니다. 금방 잊어버리실 테니까.”

“응?”

되묻기도 전에 션의 입술이 겹쳐 왔다. 하긴, 어차피 뒹구는 것에 시트의 색 같은 게 상관있는 것은 아니다. 엘리엇도 그의 입술을 더듬으면서 션의 몸을 감아 안았다. 비위생적인 모텔의 시트보다야 빨간 실크가 나은 게 당연하다.

감촉은 좋았다. 엘리엇은 등에 닿는 미끈하고 에로틱한 감각에 몸을 움츠렸다. 션의 몸이 그를 품 안에 넣었다.

그가 셔츠 단추를 마저 풀고 가슴 안쪽으로 손을 넣어 애무해 왔다. 션이 맞닿은 아랫도리를 가볍게 내리치듯이 움직여 성기를 비빈다. 그러다 말고 둘은 다시 키스에 열중하여 서로 등을 끌어안았다. 션이 슬리퍼를 벗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엘리엇의 발목을 쓸어내려 신발을 벗겼다. 그리고 그를 안은 채 침대에서 굴러서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넓으니까 좋긴 좋네요.”

“그렇군.”

둘 다 키가 크기 때문에 더블 침대라도 항상 약간 좁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이 침대는 넉넉해서 팔다리를 모두 펴도 전혀 걸리적거리지 않았다.

이렇게 넓은 침대에서 섹스 하는 것은 엘리엇도 처음이었다. 정확히는 다섯 손가락에 차지 않을 만큼의 경험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의무적으로 아일라와 부부 관계를 가진 것은 흥분의 파편도 없는 물리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전혀 그런 것을 의식해 본 일이 없었다.

“이렇게 보면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요. 엘리엇 씨가 다른 때보다 더 근사해 보이니까.”

“근사하다는 건 내가 아니라 자네 같은 남자에게 하는 말일세.”

션이 몸을 일으켜서 셔츠를 벗었다. 올려다보면 더욱 크게 보이는 단련된 상반신에 엘리엇은 흥분하여 숨을 몰아쉬었다. 손을 뻗어 션의 바지 앞섶을 푼다. 엘리엇을 침대에 눕히고 내려다본 것만으로 그의 성기는 벌써 발기하여 속옷에 젖은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엘리엇은 매번 신기한 기분이 되곤 했다. 그가 대체 자기의 무엇을 보면서 이렇게 흥분을 하는 건지 말이다.

션이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내려다보면서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의 셔츠 단추를 어루만졌다.

“아름다워요.”

엘리엇은 그다지 수치심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세상에 다시없는 특별한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황홀한 눈빛에 낯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다. 션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그랬다.

도무지 옷을 벗기려 들지 않아서 엘리엇은 스스로 셔츠 단추를 풀었다. 션의 손이 그의 손등 위로 겹쳐졌다. 그리고 슬그머니 옷 안쪽으로 들어가 양쪽으로 펼친다. 엄지 끝이 예민한 유두를 누르는 감촉에 엘리엇은 입을 벌리고 숨을 들이켰다. 그가 그 입술을 베어 물며 고개를 숙여 몸을 몸으로 덮었다가 온몸으로 끌어안고 일으켜 앉혔다. 엘리엇의 팔에서 옷자락이 빠져나갔다. 션이 다시 그를 침대에 쓰러뜨렸다. 그리고 속삭였다.

“시트도 좋은데요? 피부가 평소보다 더 하얗게 보여요.”

“흡.”

엘리엇은 속삭이는 말에 화를 낼 뻔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쇄골을 깨물리는 감촉에 신음이 새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가 손에 깍지를 끼어 내리누르며 팔뚝 안쪽의 여린 살에 키스 마크를 남겼다. 엘리엇은 짧게 신음하면서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손을 아래로 뻗었다. 팬티를 끌어 내리고 한 손 가득 잡히는 것을 꺼내어 쥐자 션이 신음했다.

“서두르시면 안 됩니다, 엘리엇 씨. 전 오늘 계획이 아주 많아요.”

“계획?”

“엘리엇 씨가 집으로 오라고 하셨을 때부터 뭘 할까 생각했었거든요.”

“자네도 호색가가 다 됐어. 처음에는 너무 쭈뼛거려서 이거 참 순진한 청년이구나 싶었는데.”

“그러니까 엘리엇 씨는 절 책임지셔야 됩니다. 윽, 자, 잠깐만요. 엘리엇 씨.”

“그 계획이라는 건 일단 한 번 하고 나서 실행해도 되지 않겠나? 자신 없나?”

“헉!”

완급을 주어 주무르다가 잘 안 움직이는 다리로 끌어당기는 대신에 엘리엇은 그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아래로 끌어 내렸다. 사타구니를 맞부딪치는 자극에 션이 잠깐 몸부림치며 엘리엇의 머리 옆에 놓은 손으로 시트를 쥐어뜯으며 몇 번이나 허리를 움직였다.

“기다려요, 엘리엇 씨, 으읏.”

“하아, 션, 좋아.”

한 손으로 엉덩이를 붙들어 션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칼을 잡고 끌어당겨 입술을 겹친다. 그가 꿈틀거릴 때마다 온몸이 눌리는 자극에 엘리엇은 숨을 헐떡였다. 안팎에서 흘려 내는 음액에 아직 다 벗지도 못한 속옷이 축축해졌다.

“진짜로, 엘리엇 씨.”

션이 그의 입술을 깨물고 엉덩이에 가 있는 엘리엇의 손을 끌어당겨 다시 깍지를 끼었다.

“가만히 맡겨 주세요. 저는 엘리엇 씨의 안도, 밖도 잔뜩 핥고 푹 적셔서, 매일 밤 주무시려고 누우실 때마다 제가 생각나서 안달이 날 만큼 새겨 드릴 거거든요.”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예고에 엘리엇은 등골부터 엉덩이골까지 찌르르 흥분이 오는 것을 느꼈다. 반박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요청하는 대로 주도권을 넘겨주자 션이 시트를 끌어당겨 그것으로 그의 몸을 감싸듯이 하여 끌어안았다. 보드라운 감촉에 피부가 문질러진다. 션의 입술이 유두를 쪽쪽 빨았다. 그는 달뜬 숨을 토했다. 다른 한쪽 손이 반대쪽 유두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지거나 튕기기도 하고, 또 다른 손은 다리 사이로 들어가 엘리엇의 성기를 쥔다.

션은 정말로 그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핥으려 들었다. 유두가 붉게 솟을 정도로 흠뻑 빨아 낸 후에는 가슴과 배 한가운데 오목한 선을 지나 배꼽에 혀를 집어넣는다. 일부러 침을 고이게 해서 춥춥거리고 소리를 내면서 빠는 바람에 엘리엇은 당황했다.

“자네, 하응, 기다, 기다려. 그런 데를 빨면, 하, 으으응.”

깨닫지 못했던 성감대의 존재에 당황하여 몸을 돌려 도망가려 하자 이번에는 등허리를 깨물렸다. 옆구리를 쥔 손이 온 등을 마사지하듯이 훑는다. 혀를 길게 빼서 핥으며 올라간 입술이 뒷목을 꾹 깨물었다. 션이 뒤에서부터 그를 꽉 끌어안았다.

등에 닿아 오는 육체의 감촉이 뜨겁고 생생하다. 어깨를 안았던 손은 다시 앞쪽을 쓸고 내려오며 유두를 집고, 반대편 손으로 허리를 끌어안았다. 엉덩이에 션의 물건이 닿았다. 엘리엇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으나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므로 잘 닿게끔 조준할 수가 없었다.

“으음.”

엘리엇은 숨을 몰아쉬면서 침을 삼켰다. 션이 키들거리고 웃으면서 그것을 엘리엇의 엉덩이골 사이에 눌러 비볐다. 굵은 물건이 삽입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엉덩이 사이를 오가며 끈적끈적한 것을 묻혔다. 엘리엇은 헐떡거리면서 고개를 숙여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항문이 꿈틀거리면서 배 속이 꾸욱 조여든다.

“엘리엇 씨, 저 오기 전에 관장하셨지요?”

“응……. 으응, 션, 흐응, 으응…….”

“기대하셨어요?”

언제 적셨는지 젤로 축축한 손가락 하나가 어렵지 않게 뒤로 쑥 들어갔다. 크기는 한참 모자랐지만, 기분이 좋았다. 엘리엇은 안달을 내면서 짧은 숨을 반복해서 뱉었다. 션의 손가락은 길고 매끈하다. 자극이 많이 되는 편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깊은 곳을 짚으면 저도 모르게 교성이 새었다.

“자네, 그렇게 애태우진, 으응, 말고…….”

풀어 줘야 하는 건 알지만 엉덩이에 닿았던 굵고 긴 물건이 아쉬워서 조르고 만다.

“안 됩니다. 짧게 한 번 하고 끝낼 게 아니니까 충분히 풀지 않으면.”

그가 다른 한 손으로 성기의 귀두 부분을 가볍게 둥글려 만지면서 아래쪽을 검지 끝으로 콕콕 쑤셨다.

“그런데 엘리엇 씨 여기에 점이 있는 거 알고 있어요?”

그가 뒷목 위쪽을 혀로 눌렀다. 뒷목에 점이 있다는 건지 성기에 점이 있다는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여기에도. 여기에도. 이거 아는 사람 있습니까?”

견갑골의 어떤 부분을 혀로 핥고, 쭈욱 미끄러져 등 전체를 핥아 내려간다. 이번에는 엉덩이 골 바로 위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곳을 빨았다. 엘리엇은 신음하면서 몸을 뒤틀었다. 뒤에 들어간 손가락은 아직도 하나뿐이지만 거기에 신경이 집중되어서 뒤가 풀어졌다 조였다 한다. 션은 일부러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지만, 다른 손과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안쪽이 흔들린다. 그때마다 엘리엇은 뒤가 벌어지는 감각에 헐떡였다.

“여기에도 있어요. 허벅지와 엉덩이 경계선. 이거 본 사람은 확실히, 저밖에 없죠?”

그는 그렇게 말하다가 곧 말을 고쳤다.

“적어도 빨아 본 사람은 저밖에 없을 거예요.”

그리고 쪽 소리가 나도록 엉덩이 아래쪽을 빨아 들인다. 세차게 빨리고 깨물려 저절로 엉덩이가 흔들렸다.

“션, 빨리.”

재촉했지만 션은 올라와서 깊게 입을 맞췄을 뿐이다. 션의 입술에서 미묘하게 향기 비슷한 게 나서, 엘리엇은 그것이 자기가 사용하는 보디샴푸와 오드콜로뉴가 섞인 냄새라는 것을 알았다. 핥아 대는 바람에 냄새가 옮겨진 것 같았다.

“아직 일러요, 엘리엇 씨. 진짜 핥아 보고 싶은 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요.”

그는 엘리엇의 허벅지를 크게 벌리게 하고 고개를 숙여 귀두 아래쪽에 나 있는 약간 오돌토돌한 점을 핥았다.

“흡, 션, 헉.”

“이런 곳에 점이 있는 건 모르셨지요? 위에서 내려다보면 잘 안 보일 겁니다.”

“으음, 기다, 으으응, 흐응.”

엘리엇은 몸을 파득거리면서 베개를 움켜쥐었다. 뒤가 세차게 수축하자 션이 손가락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션이 그를 핥아 준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이렇게 혀끝만 세워서 그런 자리를 핥은 것은 처음이다.

그는 거기에서 끝내지도 않았다. 요도를 콕콕 쑤시듯이 자극하다가 혀를 길게 내밀어 점을 집중적으로 핥아 올린다. 끝부분만으로 굴리듯이 어루만지는가 하면 입술을 뾰족하게 해서 빨기도 한다. 구음을 받는 것보다 거기만 핥아 대는 감각이 이상하기도 하고 애가 타기도 해서 엘리엇은 그의 머리칼을 다시 움켜쥐어 끌어당겼다.

“자네, 능숙해졌어…….”

“연구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당신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하고.”

“션, 거기만 그러지 말고, 하, 으응!”

의도적으로 뒷구멍을 움직여 손가락을 조인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션이 입술 전체로 귀두를 물었다. 엘리엇의 허리가 크게 위로 튕겨 올랐다. 고비를 넘겨 주려는 듯이 끝부분만 쪽쪽 몇 번 빨아 준 션이 이번에는 뒤를 애무했다. 주름 언저리를 할짝거리다가 손가락으로 입구를 벌리며 안으로 혀를 밀어 넣는다.

엘리엇은 반사적으로 입을 막았다. 혀와 손가락이 같이 들어와 휘젓는 뒤의 감각에 그는 집중했다. 말랑말랑한 감촉이 안을 훑는다. 반대쪽 손가락은 집요하게 점을 어루만졌다. 가 버릴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채로 그는 헐떡거리면서 몸에 힘을 주었지만, 다리는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엘리엇은 애가 닳아 헐떡거리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션, 이제 안 돼.”

“일단 한 번 하세요.”

“그게, 아니라, 으으응!”

사탕을 빠는 것처럼 션이 다시 귀두를 입에 물고 혀를 굴리며 눈웃음을 쳤다. 손으로 기둥을 훑고 혀끝으로 점을 찌른다. 엉덩이 사이에 들어 있는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여 깊이까지 쑤셔 주기 시작한다. 엘리엇은 헐떡대면서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션이 혀를 움직일 때마다 페니스가 녹아 버리는 것 같다.

“하, 아, 아, 하아!”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 그의 것이 션의 입속에 뿌리까지 들어갔다. 발바닥에 뜨겁게 발기한 물건이 닿았다. 발가락은 오른쪽 엄지만 움직이는 상태였다. 엘리엇이 그것을 움직여 자극해 주자 션이 그의 발바닥에 자기 물건을 비볐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음모를 가볍게 건드리면서 볼 전체를 이용해서 성기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부드럽게 입술로 훑으면서 빼낸다. 그리고 손가락 두 개를 뒤에 꾸욱 밀어 넣었다.

“션, 션, 으으응……!”

엘리엇은 뒤를 힘껏 조인 채로 헐떡거리면서 션의 입속에 사정했다. 션이 눈매를 늘어뜨리고 웃으며 그의 정액을 삼켰다.

“하아……. 으응.”

엘리엇은 탈력하여 몸을 늘어뜨렸다. 션이 그의 뒤에서 손가락을 빼내고 허벅지부터 무릎까지 손으로 쓸면서 내려갔다.

“죄송합니다. 저도 일단 한 번.”

그리고 엘리엇의 두 다리를 끌어당겨 발목을 모았다. 그리고 두 발 사이에 자기 것을 끼웠다. 엘리엇은 흐려진 눈으로 션의 물건이 자기 발 사이에 미끄럽게 들락거리는 것을 보았다. 피스톤 운동을 하는 것처럼 션이 허리를 세차게 흔든다. 유연하고 다급한 허리 놀림을 보면서 엘리엇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와 서로 끌어안은 채로는 눈으로 볼 수가 없으니까 실감 나지 않는데, 자기에게 늘 저런 몸짓으로 파고들었던 거라고 생각하니까 새삼 숨 막히는 열기가 치솟았다. 굵직한 귀두가 모아 쥔 발 사이로 뚫고 들어올 때마다 엘리엇은 마치 몸을 관통당하는 기분이었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그는 자기 물건을 쥐었다.

“엘리엇 씨, 헉, 그러지 마세요, 헉, 그런 거 보여 주시면. 엘리엇 씨!”

션이 새빨개진 얼굴로 거의 괴로워하면서 말했다. 엘리엇이 자기 물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스스로 성기를 움켜쥐는 모습을 보고 참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는 그대로 엘리엇의 이름을 부르면서 싸 버렸다. 종아리와 허벅지로 투두둑 정액이 떨어졌다.

“아아.”

엘리엇은 그 열감에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고 신음했다. 용두질하는 손이 다급해진다. 션이 그의 발을 천천히 침대에 내려놓고 엘리엇의 손을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온몸으로 그를 꽉 끌어안았다. 엘리엇은 헐떡이면서 “왜?”라고 물었다. 션이 그 입술에 깨물듯이 키스하면서 젖은 사타구니를 마주 비볐다.

엘리엇은 한쪽 팔을 그의 목에 감고, 다른 팔로는 허리를 끌어당겼다. 션이 젤 병을 다시 끌어당겨 손바닥 가득 짜냈다. 치덕거리면서 골 사이에 바르고 젖은 손가락을 뒤로 밀어 넣었다. 깊은 곳을 탐색하듯이 짚는 손길에 엘리엇은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막지 못하고 그의 어깨에 이마를 밀어 댔다.

“아주 천천히, 한다면서. 으응.”

“취소하겠습니다. 흣. 엘리엇 씨, 좋아요?”

“좋아, 좋아, 빨리……. 으으음.”

젤로 가득 찬 뒷구멍을 쑤셔 대고 깊이까지 비벼 주는 움직임은 준비를 시킨다기보다는 핑거 섹스에 가깝다. 안부터 바깥까지 남김없이 훑으며 자극하고 완급을 주어 왕복운동을 할 때마다 엘리엇은 어지러울 정도의 쾌감을 느꼈다.

션이 그의 목을 젖혀서 턱에 키스했다. 입술을 겹치고 엘리엇의 혀를 끌고 나와 자기 입속으로 초대했다. 엘리엇은 혀를 빨리면서 신음했지만, 코끝으로 새어 나가는 비음 정도밖에 나가지 않았다. 조용해지자 항문이 손가락을 쩝쩝대며 삼키는 소리만 침실에 울렸다. 그 소리에 청각까지 예민해져서 엘리엇은 몸을 떨었다. 목구멍이 꼴깍 울리며 션의 타액과 자신의 타액이 뒤섞여 내려간다.

“으, 읍, 으, 하아아!”

션이 입술을 놓아주는 순간 막혔던 만큼 높은 교성이 목구멍 밖으로 치솟았다. 그는 또다시 현기증을 느끼며 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이로 살짝 깨물었다. 션이 그를 두 팔로 안아 베개 사이에 깊이 묻었다.

“콘돔 안 쓸게요. 괜찮죠?”

허벅지가 크게 벌려졌다. 엘리엇은 숨을 몇 번이나 들이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뜨거운 션의 페니스가 간신히 뒤에 닿았다. 기대감만으로도 느끼기 시작한 항문이 제멋대로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하다가 부드러운 귀두가 슬밋 고개를 들이밀자 안쪽 깊은 곳까지 부드럽게 꿈틀대며 그것을 받아먹었다.

“읏, 엘리엇 씨, 부드러워요, 하아, 엘리엇 씨.”

“으응, 아, 아, 아아…….”

엘리엇은 션의 팔을 잡은 채 그 굵고 긴 물건이 남김없이 자기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뱃속이 꽉 차는 느낌이다. 션이 그만큼 부드럽게 만들어 놓았는데도 그의 성기는 항상 엘리엇을 가득 채웠다. 지독한 충족감을 느끼면서 그는 션에게 팔을 뻗었다. 션이 웃으며 그를 부둥켜안고 가만히 몸을 숙였다. 그는 늘 삽입 후에 엘리엇이 원하는 만큼 안아 주곤 했는데, 요사이에는 거기에 행복한 웃음 하나가 더 붙었다.

몸속 깊은 곳으로부터 결합시킨 채로 뜨거운 육체를 서로 부둥켜안는다. 그것만으로도 엘리엇은 자신이 식어 있는 껍데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이 감각은 부드러운 쾌감과 함께 밀려오지만, 션이 그에게 GFG를 때려 박았을 때만큼이나 그의 애정을 이해하게 했다.

“사랑해요.”

“션, 션, 아아…….”

“엘리엇,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나도 그렇다네.”

이름을 부르며 끌어안자 션이 수없이 귓속에 속삭였다. 고조되는 감각과 감정을 참을 수 없다. 엘리엇은 숨을 몰아쉬며 그의 귀밑머리를 쓰다듬고 입술에 키스했다. 녹아내린 젤이 미끌거리면서 션의 아랫도리를 적시고 엘리엇의 엉덩이에 묻었다. 쾌감을 탐해서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쭙쭙거리고 키스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기분, 좋아요?”

“좋아. 아아, 좋아……. 으으응, 이대로…….”

완만하게 상승하며 숨이 점점 가빠진다. 말로는 이대로 있자고 조르면서도 참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이기 시작하자 션이 조금 몸을 일으켰다. 살짝 빠져나가는 감각에 엘리엇이 쾌감을 기대하면서 눈을 떴는데, 그는 다시 움직여 깊이 삽입해 오는 대신에 아예 끌어안아 허벅지 위로 앉혔다.

“하, 아, 잠깐, 션. 지금, 흑!”

엘리엇이 발버둥을 쳤다. 션의 것은 길다. 차라리 기승위라면 자기가 조절할 수 있으므로 얼마든지 즐길 수 있지만, 이렇게 몸의 자유를 빼앗긴 채로 올라앉게 되면 너무 깊이 들어와서 감당할 수가 없다. 아니, 그 이전에 그는 마주 보고 앉은 자세를 원래부터 좋아하지 않았다.

“셔, 션, 션, 아, 아, 안 돼, 션, 하, 힉! 흑! 앗!”

“엘리엇 씨는, 이게 싫은 건 아니죠?”

“아! 아, 아! 흑, 하, 윽! 이거, 아흑!”

“조금만 참아 보세요. 긴장 푸시고. 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요.”

션이 그를 꽉 끌어안았다. 엘리엇은 달아나려고 팔에 힘을 주어 션의 어깨를 주먹으로 밀쳤으나 오히려 포옹이 더 깊어졌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 이상은 정말로 하지 않았다. 아래에서부터 쳐올린 것도 아니고, 허리를 움직여 쑤시는 것도 아닌데 엘리엇은 혼자서 몸부림쳤다. 이 자세는 감당할 수가 없다. 버둥거리는 그를 힘껏 끌어안은 채 션이 속삭였다.

“괜찮아요, 엘리엇. 몸에서 힘을 빼세요. 저를 믿으시고요.”

그는 정말로 이 자세를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느껴서 그러는 것이라는 걸 션은 진즉 눈치채고 있었다. 달아날 수 없는 자세라서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섹스가 아닌 스킨십에 익숙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남의 무릎 위에 안겨서 포옹받는 것에 겁을 먹고 있는 것뿐이다.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지만, 션은 그럴 작정이 없었다. 서로 이렇게 깊게 마주 안고 연결된 자세인데 말이다. 그는 엘리엇이 더 많이 느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지금처럼 자기에게 매달려 몸부림치기를 원했다.

“아, 아, 아!”

엘리엇이 등을 젖혔다. 뒤가 션의 물건을 조이더니 쭈욱 빨아 들였다. 션이 낮게 신음했다. 그가 헐떡거리면서 몸을 다시 기울여 션의 어깨에 매달리고 어깨를 이로 꽉 물었다. 아프게 할 작정은 아니었지만,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깊다. 파고든 살덩이의 길이만이 아니라 포옹 자체가 너무 깊다. 게다가 뜨겁다. 엘리엇은 금세 자기가 온몸으로 션을 끌어안고 있는지, 션을 조이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신경 줄이 합선이라도 된 것처럼 전신에 불길이 달리고 머릿속이 곤죽이 된다.

허리가 조금씩 떨리면서 움직이려 할 때마다 션이 다시 그를 끌어안아 아이를 달래듯이 등을 어루만졌다. 엘리엇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흔든다. 이미 벗고 있었음에도 엘리엇은 자신의 몸 위에서 또 한 겹의 방패가 모두 떨어져 나가 정신까지 새로이 알몸이 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수치심이 들었지만, 그것도 이내 날아갔다. 그는 꺽꺽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엘리엇, 엘리엇, 괜찮아요. 기분이 좋은 거예요, 지금.”

“죽어, 죽어……. 흐아, 으, 아으흑!”

흐느끼면서 애원하듯이 션에게 매달린다. 온몸이 벌벌 떨린다. 피부 위에 대고 폭죽이라도 터뜨리는 것처럼 오색의 쾌감이 달린다. 션의 것이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그의 안에 꽉 들어차 있었다. 저절로 엉덩이를 꿈틀꿈틀 돌릴 때마다 뿌리까지 박힌 것이 지금까지 닿은 적도 없을 만큼 깊은 곳을 비볐다. 숨이 턱턱 막히고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성기 끝에서 질금거리고 액체가 새었다. 엘리엇은 견디지 못하고 등을 도로 뒤로 젖혔다.

“아! 아! 아! 제발! 아! 아아!”

“잠깐, 지금, 가고 있어요……?”

션은 당황하여 물었다. 엘리엇은 그런 말을 듣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션의 어깨를 쥐어뜯으면서 그는 사정하지 않고 절정에 올랐다. 경련하는 그의 몸을 붙들어 안고 션이 살짝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아, 힉, 흐악! 흐윽, 아, 악!”

한 번 그가 움직일 때마다 엘리엇은 네댓 번씩 비명을 올렸다. 쾌락 중추가 완전히 펑크나 버린 것 같았다. 빠져나가는 게 싫었지만, 빠졌다가 다시 깊이 쑤셔질 때마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든다. 엘리엇은 버둥거렸다. 잘 안 움직이는 왼쪽 허벅지로 버둥거려서 션의 허리를 감는다. 그런데 왼쪽만이 아니라 오른쪽 다리도 같이 움직였다. 그가 정신없이 허리를 감아 당기자 션이 헐떡거리며 외쳤다.

“엘리엇 씨, 지금……! 헉!”

“션, 흑, 하, 아, 아!”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엘리엇은 정신을 잃은 채 션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션이 그의 허리를 당겨 더 깊이 파고들면서 침대에 눕혔다. 아래로 빨아 대는 엘리엇 때문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엘리엇이 베개에 얼굴을 묻고 그의 팔을 멍이 들 정도로 쥐었다.

“엘리엇 씨, 흣, 지금, 아직도 가는 중, 이에요?”

“아, 아!”

션이 엘리엇이 절정에 달하는 반응을 모를 리 없다. 등을 활처럼 휘고 온몸으로 교성을 올리는 그를 내리누른 채 션은 기쁜 나머지 소리 내서 웃고 말았다. 다리. 그건 지금은 방해물일 뿐이다. 그는 허리를 감아 당기는 것 말고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엘리엇의 다리를 손으로 풀어냈다.

허벅지를 벌리고 성기를 빼낸다. 엘리엇의 구멍이 뻐끔대며 젤을 흘렸다. 아래에 깔린 붉은 시트가 그의 뒷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로 푹 젖었다. 몸의 경련은 멈추지 않은 채였고, 엘리엇은 소리를 참거나 입을 막는 것조차 잊은 채 계속해서 절정에 몸을 떨었다.

“엘리엇, 세상에. 이렇게까지.”

그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자기 아래에서 엘리엇이 몸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음란하게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뒤쪽만이 아니라 앞쪽도 흠뻑 젖었지만, 말간 전립선액으로 젖은 것이지 사정을 한 것은 아니다. 이것만은 정말로 지금까지 어떤 남자도 본 적 없는 광경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만큼 지극한 쾌락을 선사한 것도 자기가 처음일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쌀 것 같아서 그는 서둘러 엘리엇의 안에 다급히 물건을 밀어 넣었다.

“흐아악!”

반밖에 넣지 않았는데 엘리엇이 한 번 더 가 버렸다. 온몸으로 조이고 빨아들이는 감촉에 션은 그를 부둥켜안은 채 신음하면서 고환이 엉덩이에 뭉개질 정도로 나머지 부분까지 꽉 박아 넣었다.

엘리엇이 벌벌 떨면서 울었다. 쾌감이 너무 지독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션의 몸에 매달린 채로 엉덩이를 높이 든다. 션은 별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자신이 경련하며 버둥거릴 때마다 뒤에 들어와 있는 엄청난 물건이 안을 뭉그대며 짓누르고 비빈다. 그는 허우적대면서 무거운 작대기 같은 다리를 들어 션의 허리를 감았다. 지나친 감각에 달아나고 싶은데도 몸은 피하기는커녕 좀 더 그를 갖지 못해서 안달한다.

“하응, 아, 응! 하, 아, 악!”

“엘리엇, 안에 할게요. 괜찮아요? 당신 안에 하고 싶어요.”

질문은 거의 형식적인 의미밖에 없었다. 눈까지 풀려 버린 엘리엇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아마 안 된다고 했어도 션은 그를 눌러 안은 채 안에 자기 것을 쏟아 냈을 것이다.

“아, 악! 힉! 힉! 흑!”

배 속에 뜨거운 것이 퍼지는 감각에 엘리엇이 정신을 놓고 소리를 질렀다.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의 뒤가 꿈틀대며 션을 세차게 빨았다. 젖혀진 엘리엇의 목덜미에 입술을 누른 채 가장 깊은 곳에 남김없이 자신을 해방한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의 몸속에 내보내고 나서도 션은 자신을 파묻은 채 한참 가만히 있었다.

엘리엇은 이제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고 쌕쌕거리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뺨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면서 션은 그의 아랫입술을 빨았다. 키스하고 싶었지만 그러다가는 진짜 호흡곤란을 일으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이 히끅히끅 어린애처럼 울었다. 늘 냉엄해서 무정하게 보이는 푸른 눈동자가 초점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흐트러진 채 션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는 숨을 몰아쉬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엘리엇의 아랫도리가 들썩였다. 떨림이 멈추지 않는 허벅지를 부드럽게 주물러 준다. 그것만으로도 엘리엇은 또다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션은 일단 한 번 물건을 빼냈다. 엘리엇의 구멍에 자기 정액이 흠뻑 들어간 것을 확인한다. 콘돔 없이 하는 날은 거의 없지만, 없이 하더라도 안에 할 수 있게 허락받는 날은 많지 않다. 엘리엇의 몸 안이 얼마나 움직여 대는지, 뱉어 내는 것처럼 항문 주위로 정액이 흘러나온다. 정복감과 쾌감에 눈앞이 현란하다. 션은 도취된 채로 그것을 긁어서 밀어 넣고 다시 성기로 뒷구멍을 막아 꽉 채웠다.

“흐, 아아앙! 이러다, 지, 진짜로, 아아앙!”

엘리엇이 다시 높은 소리를 질렀다. 션은 푸딩처럼 흐물흐물해진 엉덩이 사이로 부드럽게 쉼 없이 자신을 끝까지 밀어 넣고서는 손을 뻗어 엘리엇의 옆구리를 붙잡아 달아나지 못하도록 끌어당겼다.

“이제 겨우 두 번인 걸요, 엘리엇. 계속 가세요. 밤새도록, 저한테 미쳐요.”

“하, 아! 아아, 아! 아, 안 돼, 션……!”

그는 아주 천천히 허리를 뒤로 뺐다가, 또다시 아주 천천히 밀어 넣었다. 엘리엇이 자기 것이 들어가는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의식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정말로 움직임 하나하나마다 엘리엇은 미칠 정도로 반응했다.

“션, 제발, 아, 응, 아!”

축축한 뒷구멍에서 빼낼 때마다 찌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션은 엘리엇의 뒤가 자기를 오물거리면서 뱉었다 삼켰다 하는 모습을 숨을 몰아쉬면서 들여다보았다. 정액과 섞여 불투명해진 젤이 움씰거리는 구멍 사이로 흘러내렸다 빨아들여졌다 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성기를 그는 다시 한번 꽉 밀어 넣고 깊은 곳을 비볐다. 엘리엇이 정신없이 도리질을 치며 한 손으로는 그의 팔에 손톱자국으로 피가 날 만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시트를 움켜쥐었다. 션은 그 상태로 짧게 빼냈다가 가볍게 내리치듯이 깊은 곳을 박았다.

“아악!”

“그렇게 좋아요? 웃, 엄청나게 조여요.”

엘리엇이 비명을 올리며 또다시 갔다. 션이 웃음소리를 흘렸다. 쾌감 이상으로 희열을 느낀다. 엉덩이가 마구 들썩이는 것을 개의치 않고 자신의 템포에 맞추어 가볍고 짧게 안을 박아 주자 엘리엇이 그때마다 애원이 섞인 교성을 토해 냈다.

“아, 아! 션, 션, 아! 앗, 앗, 악! 아……!”

션은 지금이라면 GFG 같은 게 아니라 몸만으로도 둘이 뒤섞여 하나가 되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금 더 엘리엇을 미치게 하고 싶었지만, 피부를 겹치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구부렸다. 시트를 부여잡은 손을 돌리게 해서 깍지를 끼고 쑥 하고 더 깊이 찔러 넣어 안쪽 깊은 곳을 쑤신다.

“아, 아, 아, 흑!”

엘리엇이 엉덩이를 더 높이 들었다가 축 처졌다. 또다시 가 버린 것이다. 션은 긴 숨을 내쉬면서 호흡을 조절했다. 그리고 몸을 비비며 본격적으로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엘리엇, 안에 엄청나게 됐어요. 하아, 이렇게 조이는데 이렇게 부드럽게.”

“아, 악, 아, 아아, 하, 아악!”

가볍게 내리치는 것만으로도 가 버리는 상황에서 쭉 빼냈다가 푹 박아 넣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엘리엇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한 번씩 깊이 찔러 들어올 때마다 한 번씩 간다.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라서 어디를 만져 주어도 벌벌 떨면서 쾌감으로 받아들인다. 도가 지나친 쾌락은 고통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그는 그만하라거나 더 해 달라거나 하는 말을 할 정신도 없었다. 성감이 끝나기는커녕 계속 높아지기만 할 뿐이다. 머리가 어지럽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제정신이 돌아오지 못하고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한 번 더요, 헉, 엘리엇. 엘리엇. 헉, 더 깊이, 조금만 더 깊이 받아 주세요.”

“션, 셔언, 하, 아, 어흑, 아, 악!”

션이 속삭이면서 그를 끌어안고 미끌거리듯이 빠르게 아래에 왕복운동을 했다. 그러다가 다시 깊이 박아 넣고 정액을 듬뿍 뿜었다.

“아, 아, 굉장……. 아아아!”

엘리엇은 넋을 놓은 채 멍하게 중얼거리다가 션이 성기를 붙잡아 주물러 주자 크게 허리를 튕겼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사정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는 폭발하는 기분으로 션의 손안에서 파정했다.

“엄청 많이 나왔어요.”

“션, 션.”

간신히 고비를 넘어갔지만, 평소보다 몇 배나 고조된 절정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엘리엇은 안아 달라고 팔을 뻗었다. 풍선에 구멍이 뚫린 열기구를 탄 것처럼 추락감과 부유감에 동시에 휘말려 천장이 빙빙 돌고 침대가 위아래로 뒤집히는 것 같다. 눈을 감으면 끝도 없이 추락하고, 눈을 떠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션이 땀으로 흥건한 몸을 꼬옥 끌어안았다. 엘리엇은 그의 몸에 매달린 채 벌벌 떨었다.

흥분이 전부 가라앉는 데에까지는 몇십 분이나 걸렸다. 션이 몇 번이나 이마에 키스하고 등을 어루만지며 달래는 것에 몸을 맡기고 심호흡한다. 간신히 안착한 곳은 션의 품 안이었다. 엘리엇은 지쳐서 눈을 간신히 내리감았다. 피부에는 아직도 전율이 달리고 션이 콧잔등을 쓸어내리는 감촉에 약한 쾌감을 느낀다.

“좋았어요?”

엘리엇은 대답하지 못했다. 열락의 잔여물은 아직도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곳에 다녀온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조금 더 기운 내셨으면 좋겠는데.”

달콤하게 속삭이는 말에 무슨 소리인가 엘리엇은 션을 바라보았다. 션이 그의 미간에 키스했다. 엘리엇은 그제야 아직도 엉덩이 안에 빳빳한 션의 성기가 파묻혀 있는 것을 깨달았다.

“자, 잠깐.”

당황한 엘리엇이 정신을 차리고 스톱을 걸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 셀 수 없을 만큼 가 버렸고, 더 할 체력은 정말 조금도 없었다.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고, 몸은 삐걱삐걱 비명을 올리는 데다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용했다. 그러나 벌려진 다리 사이로 션은 아직도 물건을 들이민 채였고, 몸은 아직도 떨릴 정도로 예민했다.

거기가 제자리이기라도 한 것처럼 바듯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그를 꽉 채우고 있던 션의 성기가 크게 꿈틀거렸다. 엘리엇은 참지 못하고 비음 섞인 교성을 흘리며 션을 올려다보았다. 션은 물기에 젖은 속눈썹을 올려 뜨고 바라보는 새파란 눈동자에 맥박이 빨라지고 아랫도리가 지이잉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 눈으로 보시면 곤란하다니까요.”

그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표정으로만 그러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큰 물건이 부피를 더 키웠다. 엘리엇은 힘없이 신음했다.

“더는, 흐, 으응……. 션, 셔언…….”

그는 젖은 엘리엇의 얼굴을 닦아 주고 사랑스럽게 입 맞추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엘리엇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힘을 잃은 엘리엇의 고환이 션의 아랫도리에 닿을 정도로 뿌리 끝까지 박아 넣고 손끝으로 가만가만 엘리엇의 성기를 쓰다듬었다.

“하, 아으으응!”

엘리엇은 주먹질을 하고 싶은 기분을 느꼈으나 주먹을 쥐기는커녕 시트를 움켜쥐어야만 했다.

* * *

욕실에 들어가 있는 사이에 시트가 치워졌다. 션은 계속 그의 옆에 붙어 있었으므로 침실을 정리한 것은 메리였을 것이다. 엘리엇은 평소의 깨끗한 흰 시트가 깔려 있는 걸 보고 안심을 해야 좋을지, 붉은 시트에 온통 얼룩지게 만든 정액을 신경 써야 좋을지 모를 기분이 되고 말았다.

움직일 수 있다는데도 기어이 그를 수건으로 싸안아 들고나온 션이 다리를 주물렀다. 욕실에서 발견한 향기 나는 오일을 가지고 나와서 발라 주고 쥐가 나서 돌덩이처럼 굳은 종아리 근육을 살살 풀어 준다. 엘리엇은 졸린 눈을 내리감았다.

“자네는…….”

“화나셨습니까……?”

“하…….”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침대에서 하는 일은 백번 주의를 줘 봐야 소용이 없으므로 엘리엇은 그냥 한숨만 쉬었다.

“하지만 기분 좋으셨지요?”

“……목 아프니 말 시키지 말게.”

두 시간도 넘게 소리를 질러 댄 목에서 아직까지 소리가 나는 것 자체가 놀랄 일이다. 쇠를 긁는 소리처럼 쉬어 비틀어진 소리로 중얼거리고 엘리엇은 눈을 감았다. 울기도 얼마나 울었던지 퉁퉁 부은 눈을 뜨고 있는 것도 힘들었다.

션과 섹스 하다 지쳐서 못 일어나겠다 한 것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오늘은 차원이 달랐다. 절정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못하고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온몸의 근육이 풀려 버렸다. 막 움직이기 시작한 다리에 쥐가 나서 통증이 이렇게 심한데도 신경이 과부하되었는지 하는 동안에는 알지도 못했다.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것도 몰랐다. 그는 섹스를 좋아했지만, 이렇게 끔찍한 쾌락은 두 번은 사양이었다.

“엘리엇 씨가 앉은 자세로 심하게 느껴서 불안해하시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대단했습니다. 그렇게까지 되실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

“정말로……. 미치게 예뻤어요.”

사랑스럽다는 듯이 등에 떨어뜨리는 키스를 내버려 두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콧방귀만 뀐 것은 목이 아파서 대꾸도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미칠 뻔한 것은 이쪽이다. 마비된 것조차 잊고 다리가 움직였으니 말이다. 하도 움직이지 않아서 진짜로 근육이나 신경에 이상이 생긴 건가 했는데 정신적 문제가 맞긴 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다가 너무 느낀 나머지 마비가 풀리다니 자신은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건가 하고 엘리엇은 생각했다.

“내일 당장 재활 치료사를 불러야겠군요.”

션이 조심스럽게 근육을 풀어 주면서 관절도 어루만지고 가동범위를 신경 써서 마사지했다. 평연한 목소리에 엘리엇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 보니 자네.”

“예.”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한 거, 알고 있었나?”

“제가 엘리엇 씨 몸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할 리 없잖습니까?”

션이 엷게 웃으면서 말했다. 엘리엇은 한숨을 쉬면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런 줄 알았으면 고민할 것도 없는 일인데 말이다.

“왜 그러세요? 숨길 작정이셨습니까?”

“꼭 그런 것은 아니네만……. 서운한가?”

“서운하냐고요?”

션이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마음이 편해진 엘리엇은 몸을 나른하게 폈다.

“자네는 내 다리가 마비된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

션이 침묵했다. 의외이다 못해서 설마 엘리엇이 그렇게 생각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던 탓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엘리엇 씨가 회복되는데 제가 싫어할 리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네만……. 또 이런 것과는 문제가 다르지 않은가?”

이런 것, 이 섹스 취향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채고 션은 멍해졌다. 그는 아일라의 말마따나 자기가 상당히 돌아 버렸다는 사실은 자각하고 있었지만, 성 취향 자체는 좀 집요할 뿐이지 매우 일반적인 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엘리엇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저는 별로 특별히……. 장애에 기호가 있거나 하지 않습니다. 절대로요. 그냥 엘리엇 씨가 좋은 것뿐이에요.”

션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숙여서 그에게 짧게 키스했다.

“엘리엇 씨가 다리를 못 쓰면 그게 제 취향이고, 건강하시면 그게 제 취향이고, 엘리엇 씨가 어떤 상태라도 전부 다 특별하고 좋습니다. 그건 별로 이상하지 않잖습니까?”

“그런가.”

“안고 다니지 못하게 하실 테니 그건 좀 서운하긴 하겠네요. 하지만 다리가 다 나으시면, 더 여러 가지 일을 같이할 수 있으니까 그것도 좋습니다.”

션이 가볍게 이마를 비볐다. 엘리엇은 어딘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꺼림칙한 기분이 남는 것을 느꼈지만, 그가 애교를 부리며 안아 오는 바람에 곧 풀어져 좋은 기분이 되었다. 곁으로 들어오라고 눈짓하자 션이 허리와 등을 가만가만 주물러 주던 손을 멈추고 기꺼이 옆으로 기어들어 와 엘리엇의 머리를 끌어당겨 자기 어깨를 베게 하고 다른 한 팔로 허리를 감아 안았다.

“졸리시죠?”

엘리엇은 예전에 아파트에서 만날 때 자고 일어나면 꼭 이런 자세가 되어 있어서 자기가 잠결에 사람 품에 파고드는 버릇이 있었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있는 게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고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져서, 품에 끌어안기면 편하고 기분이 좋아져서 저절로 잠이 왔다. 그럴 만큼 지치기도 했고. 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여 품에 얼굴을 파묻자 션이 시트를 목까지 끌어 올려 덮었다.

“자네가 런던으로 돌아오려면 얼마나 남았지?”

션에게 내려졌던 국외 추방령은 이미 철회되었다. 애초부터 자신에게 저지른 짓이 문제였으므로, 엘리엇 자신이 그 사건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었으니 추방령도 함께 무효가 된 셈이었다.

“계약은 내년 3월까지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려나요. 이쪽으로 오려면 올 수야 있겠지만…….”

“오고 싶지 않은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냥, 좀……. 제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서요.”

“흠. 그런 이유라면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게 회사 일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엘리엇은 중얼거리면서 션의 옆구리에 팔을 걸쳤다. 션이 확인하듯이 물었다.

“제가 돌아오면 좋으시겠어요?”

“서두를 필요는 없네. 생각하고 있는 일이 있긴 하지만, 아직 먼일이니까. 무엇이든 자네 원하는 대로 하면 돼.”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달콤한 목소리로 조르면서 뺨을 어루만져 오면 입이 열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엘리엇은 베갯머리송사라는 게 어떤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는 건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션의 손목을 잡았다. 이건 지나치게 기분이 좋다. 경계해야 할 것 같았지만 막는 손은 무력했다. 결국 머리칼과 뺨에 떨어지는 키스를 감미롭게 받아들이며 한숨을 쉰다.

“뭐 대단한 이야기도 아닌데. 여기 들어와서 사는 건 어떨까 싶어서 말일세.”

“……정말로요?”

“방이야 남아도는걸. 하지만 그러려면 미리 준비가 여러 가지 필요하겠지. 아직은 좀 일러.”

션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허리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고 엘리엇의 머리에 코를 힘껏 비볐다. 엘리엇의 손에 닿은 옆구리 근육이 꿈틀거린다. 벌써부터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직 먼일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언젠가, 라도 좋습니다.”

금요일이라는 주 단위의 희망이 아니라 평생에 밝혀지는 행복한 불빛이다. 션은 일어서서 엘리엇을 번쩍 안아 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애써 참았다. 엘리엇은 그런 속도 모르고 평온하게 션의 품 안에서 나른해진 눈을 내리감았다.

“커밍아웃을 할 계획은 없었는데.”

“예.”

“요즘에는 공개까지는 아니라도 주변에는 알려 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 자네를 끝끝내 비밀로 숨겨 두지는 않을 테니 좀 더 마음을 놓고 기다리게. 하지만 한동안은 이대로, 자네와 지금처럼 지내고 싶어.”

“예……. 저도 그렇습니다.”

션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지금도 좋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 일주일에 이틀을 함께하고, 그와 만나는 시간을 위해 살아가고, 찾아오고, 기다리고, 함께 걷고, 입을 맞추고,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런데 엘리엇은 그 이후까지도 생각해 주고 있다.

션은 그가 실은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엘리엇이 회복되는 것이 두려웠었다. 그의 몸에 남아 있는 자신의 흔적이 사라지고, 자유로워진 두 다리로 더 멀리까지 나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이라고 해서 엘리엇의 생활이 부자유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행동반경이 늘어나고 만나는 사람과 하는 일이 많아지면,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올 기회도 늘어날 것이다.

그는 멋지다. 충격적이었던 첫 만남을 생각하며 션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기처럼 혼까지 빼앗기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반하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 있으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엄격한 인상과 사회적 거리의 선을 넘어 내면을 알게 된다면 사랑에 빠지는 자는 더욱 많으리라.

엘리엇이 쉽게 마음 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경쟁자가 생길 가능성만으로도 션은 불안하고 두려웠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자신의 매력이라는 것은 오로지 엘리엇에게만은 무력하니까. 런던으로 돌아오는 것을 망설인 이유도 그것이다. 자제력을 잃었다가 엘리엇에게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가 있다. 그가 그것을 생각해 주고 있다. 단지 일주일에 이틀을 만나 끌어안고 몸을 나누는 것만이 아니라 삶을 함께하는 것을 말한다. 한집에서 살면서 아침에 함께 눈뜨고 함께 생활하고 함께 잠든다. 그것은 처음부터 션이 간절히 바라던 소망이었다.

남자 애인이 있다는 것이 엘리엇에게 어느 정도의 리스크가 되는지 션은 전부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짐작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욕심을 내고 싶다. 누구에게라도 당당하게 이 사람이 내 것이고 내가 이 사람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그런 꿈같은 희망을 바란다.

언젠가, 가 있다면 기다릴 수 있다. 얼마든지, 언제까지라도. 이렇게 그를 품에 안은 채로라면, 그것이 아무리 긴 기다림이 되더라도 틀림없이 최고로 행복할 것이다.

너무 행복해서 괴로웠다. 션은 반미치광이가 된 기분으로 엘리엇에게 보이지 않게끔 그의 얼굴을 자기 가슴에 끌어당겨 놓고 혼자서 허공을 향해 소리 없이 발광했다.

폭탄을 던져 놓은 연인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따뜻하게 풀린 몸으로 그의 품에서 졸다가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 * *

「제발, 션, 더 깊이는, 하으읏, 또, 안에, 아흣…….」

「으응, 엘리엇, 당신 안이 제 걸 빨아 대는 게 느껴져요? 키스할게요. 으음, 기분 좋아요? 더 깊이 넣어 달라고 말해 보세요. 여기가 좋아요?」

「아, 아, 흐응, 제발, 션, 하아, 안 돼, 거기를 그렇게 하면, 나 또, 아아아……!」

종이 딸랑이며 바의 문이 열렸다. 무표정하게 유리잔을 닦고 있던 준형은 한쪽 이어폰을 뽑고 무표정하게 클로이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녀는 핸드백을 의자에 내려놓고 겉옷을 벗었다.

“마스터, 뭘 듣고 계세요?”

“일.”

“안색이 안 좋으신데요?”

“아무리 일이라도 듣기 싫은 건 있으니까.”

6배속으로 돌려도 저 대화를 다 알아듣는 자신의 청력이 참 민망스럽다. 그러나 준형은 무표정을 지킨 채로 전송된 녹음 파일을 끝까지 돌렸다. 자지러지는 신음 소리와 민망한 대화는 둘째 치고 살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20분째. 6배속으로 25분이 조금 넘었으니 풀 타임 150분 이상을 뛰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동안 내내 엘리엇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며 절정에 달하고 있다. 이거 지금 살아 있긴 한 건가, 하고 준형은 한숨을 쉬었다.

어지간히 여러 일을 구경한 그도 약도 하지 않았는데 이 난리를 치는 꼴은 처음 보았다. 본 게 아니라 들은 거지만. 듣고 싶어 듣는 것은 아니다. 수면 중이든가 섹스 중이든가, 여하간 침대에 있는 상태의 사람은 취약하다. 녹음 파일을 체크 하는 것은 업무 중의 하나이다. 고작 해야 섹스를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게 민망하여 끝까지 듣지 못할 만큼 준형은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마침내 기어이 엘리엇의 숨이 넘어갔는지 소리가 조용해졌다. 설마 복상사로 죽은 건 아니겠지? 하고 준형은 의심하며 배속을 줄였다. 아니, 복하사인가. 다행히도 션이 숨을 몰아쉬는 소리 사이로 엘리엇이 내는 앓는 듯한 흐느낌이 들려왔다.

「엘리엇……?」

그러고 보니 이 자식, 하는 중에는 이름을 막 부르네. 준형은 괜스레 성냥개비를 송곳니로 뭉개듯이 씹으며 투덜거렸다. 본인이 괜찮다면야 상관없지만 말이다.

아까는 이러다가 또 하더니,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끝났는지 흐느끼는 소리가 잦아들고 침묵이 찾아왔다. 준형이 다시 배속을 올리려는데, 술병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도청기가 장치되어 있는 밑바닥을 통통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종잇장처럼 얇은 기계를 툭 분리해 낸다.

「하아.」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준형은 놀랐다. 처음에 술병을 만지작거릴 때 알아챘나 하고 생각했는데, 도로 내려놓길래 아닌 줄 알았더니 사실은 알고 있는 게 맞았던 모양이다. 이건 꽤 최신 제품인 데다가 매우 비밀스럽게만 거래되는 것인데 말이다.

“아참. 보안기기가 전공이었지.”

보안과 침투는 한 세트이다. 그리고 사실 준형이 설치해 놓은 것도 보호를 위한 것이고 말이다. 의외로 그쪽으로도 위험한 놈이었잖아? 하면서 준형은 깨달았다. 이놈, 처음부터 알면서 장치를 끄지 않고 일부러 들으라고 그 지랄을 한 건가?

「제이 씨, 용도는 알겠지만 곤란합니다. 게다가 너무 허술하지 않아요? 두 번 다시 엘리엇의 침실에 이런 걸 놔두지 마십시오.」

션이 마이크에 가까이 대고 선명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파삭 도청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준형은 “하.” 하고 기막힌 소리를 냈다.

“이 자식이 지금 나한테 시비를 걸었어?”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탈의실에 들어갔던 클로이가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러고 보니 클로이, 요새도 애인이 주말에 안 만나 준다고 화내고 그래?”

“그야 그렇죠. 일이 이러니까 할 수 없다고 해도 말 안 들어요.”

“1박 2일 휴가 갔다 올래? 로테르담에.”

“로테르담이요? 거긴 왜요? 일 들어왔어요?”

그는 서랍을 열어서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든 상아색의 작은 피스톨을 바에 얹었다. 클로이가 눈을 빛냈다. 그것은 특수 강화계의 GFG 능력자가 처리한 암살용 권총으로 정확도는 달리지만 플라스틱이라 금속 탐지기에 걸리지 않는다. 내구성도 믿기지 않을 만큼 튼튼했다. 거기에 묻어 있는 피의 역사는 더 전설에 가까운 것이다.

“그거, 빌려주시는 거예요?”

“뭐 심각한 일도 아닌데 굳이 거기까지 가서 암거래하고 그런 거 귀찮으니까 이거 갖고 가. 이 주소로 가서, 문 따고 베개에 한 발씩 쏘고, 벽에도 한 발 박고 와. 총탄은 여기 가서 찾으면 되고.”

준형은 메모지를 꺼내어 션의 집 주소와 번호 키의 패스워드를 적고, 션이 로테르담에 내린 다음 날에 바로 묻어 놓은 탄약고의 주소도 알려주었다.

“립스틱으로 ‘내가 보고 있다.’라고 쓰고 올까요?”

클로이가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신나게 그것을 받아 들었다. 준형은 혀를 찼다. 립스틱은 좀 그렇지만, 그 의견은 복장을 긁는 데에 매우 유효할 것 같긴 했다. 그는 빳빳한 종이를 꺼내서 『내가 2㎞ 안에 있다는 걸 잊지 마라』고 메모를 적어서 클로이에게 건넸다. 그는 여태까지 남이 시비 거는 것을 단 한 번도 봐준 일이 없다. 더군다나 션 같은 타입은 미리미리 밟아 두지 않으면 한없이 기어오르게 마련이다.

“금방 옷 갈아입고 올게요. 전화도 한 통 하고요.”

준형은 녹음 파일을 파기하고 플레이어를 서랍에 집어넣었다. 클로이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명랑하게 외치고 뛰어나갔다. 그는 클로이에게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 주고 닦던 유리잔을 도로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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