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pilogue. (12/52)

Epilogue.

따뜻한 체온과 맞닿은 채 안겨 있자니 졸음이 몰려왔다. 션의 목덜미에 어리광을 부리듯이 얼굴을 비빈다. 그가 다정하게 어깨를 끌어안고 관자놀이에 입을 맞춰 왔다.

“졸리면 주무세요. 침실까지 옮겨 드릴 테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상태가 기분이 좋은 것이지, 방에까지 가서 자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가물거리며 끌어안은 채로 잠시 가만히 있는데, 삐이익거리며 커피 머신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션이 나를 쿠션에 기대어 놓고 일어섰다. 체온을 잃어버린 것이 아쉽지만 나한테 붙어서 떨어지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하는 수 없이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엘리엇 씨는요?”

“나는 생각 없네.”

커피가 마시고 싶다면 그의 입술을 훔치는 쪽이 훨씬 낫다. 그가 따뜻한 김이 오르는 머그잔을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자네는 정말 커피를 좋아하는군.”

“평범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 아무래도 달고 살게 되어서……. 홍차로는 솔직히 카페인이 좀 모자라요. 엘리엇 씨만큼 맛있는 홍차를 늘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가 웃으면서 내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커피는 테이블에 내려놓고 다시 나를 끌어안았다. 나른한 고양이처럼 나는 그의 품 안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가 내 귀밑을 쓰다듬으면서 속삭였다.

“그리고 잠들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하루 자면 엘리엇 씨는 가 버릴 게 아닙니까?”

“내일 오후의 일일세.”

“아아, 그래도 싫습니다. 그렇다고 월요일에 혼자 가시게 할 수도 없고요.”

“그러게 런던으로 돌아오라지 않았는가.”

션은 로테르담에 새로 직장을 구했다. ‘새로’라는 것은 나에게는 비밀이다. 준형의 말에 따르면 내가 찾아갈 때까지 션은 직장을 구하기는커녕 집 밖으로 채 열 번도 나오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중에 헌책방에 갔던 이틀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모두 술을 사러 나갔던 것이다. 애초부터 로테르담으로 갔던 것도 일자리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추방령의 기한이 다 되어서야 뭉그적거리고 공항으로 갔다가 그냥 아무 비행기 표나 끊어서 출국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내게 비밀로 했다. 나는 어차피 그가 직장이 없다면 런던으로 돌아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해고 이유가 그렇다 보니 만약 런던에 들어갈 만한 회사가 없는 거라면 헤리퍼드의 보안부에라도 넣어 줄까 하고 생각했었지만, 말을 꺼낼 기회도 없었다.

‘맥케인의 체면도 좀 생각해 주라고. 실연당한 충격으로 반폐인이 되어서 집구석에 처박혀 있었다니 저도 쪽팔리겠지.’

‘그게 수치스러워할 일인가?’

오히려 내게는 좀 기쁜 일인데 말이다. 준형이 피식 웃었다.

‘애인에게 못난 꼴을 보였는데 그 와중에 낙하산으로 취직까지 신세 지는 건 그냥 평범하게 절망적이지. 넌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이해 못 하겠지만, 맥케인 입장에서는 너와의 신분 차이만으로도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기분일 텐데, 무직자 노릇까지 할 수 있겠어? 자칫하면 얼굴로 기둥서방이 된 것처럼 보일걸.’

‘가랑이?’

언급된 부위가 부위인지라 눈살을 찌푸리자 준형이 웃었다.

‘그것도 우리나라 속담인데.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근데, 네가 기분 나빠할 부분은 거기가 아닌 것 같은데.’

뜻은 이해했지만, 좋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션은 내가 다녀간 다음 날부터 로테르담에서 부랴부랴 일자리를 구했다. 이것도 준형에게 들은 거지만, 눈높이에 맞는 곳이 없는데도 그중 낫다 싶은 곳에 아무 데나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마치 원래부터 거기 다니고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 “단기 계약으로는 좋은 조건이 거기 정도밖에 없어서 그랬다.”라고 말했다. 조건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밖에 없다는 것은 확실히 거짓말이었다. 처음에 준형이 말했던 대로 스웨덴에도 좋은 자리가 있었고, 미국까지 거리를 벌린다면 훨씬 나은 회사도 있었던 것 같으니 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말하지 않는 일이니 덮어 두기로 했다. 말하고자 하지 않은 일을 캘 필요는 없다. 꼭 모든 것을 알아야만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그런 것은 아주 사소한 일이다.

어쨌거나 그리하여 그는 적어도 2년은 런던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고, 내가 매주 금요일마다 로테르담으로 오기로 했다. 어차피 나는 CE의 경영을 그만두고 나서 한가해졌고, 전용기를 타면 로테르담까지는 편도 한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션은 레지던스에서 나와 아파트를 빌렸다. 공항 터미널에서 가깝고 전동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큰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혼자서 휠체어를 전동으로 움직이게 한 일은 없다. 매번 션이 먼저 터미널에 나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에 우리는 공항에서 만나서 같이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션의 집으로 돌아와 잠든다. 그는 간혹 토요일에 출근하는 일이 있지만, 대개는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었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 브런치를 먹고 운하를 따라 산책한다.

저녁은 션이 만들었다. 그것을 먹고 나면 TV를 켜든가 책을 읽었다. 종종 우리는 끌어안은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요일에는 좀 더 멀리까지 나간다.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가기도 하고,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그리고 오후 느지막이 그가 나를 공항까지 바래다주면 한 주가 끝난다.

나는 그것이 연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같이 있는 시간을 보내는 법이나 그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닌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로테르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션과 같이 가면 어딜 가도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나를 션이 돌보고 있는 것을 보면 연인 사이처럼 보이기보다는 간병인과 환자라든가 비서와 고용주 사이처럼 보이는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션은 그것이 불만인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별거 아닐세.”

“말씀해 보세요.”

그가 커피 향이 나는 입술로 내 인중을 누르며 속삭였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 집에 오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네.”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럴 리가. 나는 이 집이 무척 마음에 든다네.”

고개를 돌려 짧은 키스를 되돌리고 나는 몸을 더 깊이 그의 품에 파묻었다. 그리고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예전 생각이 좀 나서 말일세.”

“예전이요?”

“처음에 자네가 로테르담에서 묵고 있었던 레지던스 말일세.”

“……잊어 주시면 참 감사할 것 같은데 말이죠. 부끄럽습니다.”

션이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놀랐거든. 자네가 집을 그렇게 어지럽힐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었어. 그런데, 지금 집을 보면.”

“보면?”

“자네 집은 이러저러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그대로라서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하고 그렇다네.”

온화하고 깔끔하면서도 밝은 분위기와 포근한 쿠션, 남자 혼자 사는 것치고는 잘 갖춰져 있는 주방 같은 것들 말이다. 소파에서 바로 손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읽을거리가 놓여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최대한 팔을 쭉 뻗어 보았다. 아슬아슬하게 잡지 꽂이에 손이 닿았다.

“집어 드릴 테니 그냥 계십시오.”

션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나는 됐다고 그의 가슴팍에 머리를 밀어 댄 채로 아무것이나 뽑아냈다. 그리고 놀랐다. 시사 잡지 같은 것이 아니라 이코노믹 레터였다. 게다가 13년 전의 것이다.

“아.”

션이 내 손에서 그것을 낚아채려 했다. 나는 그것을 피하느라 엉금엉금 기어서 소파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그리고 이코노믹 레터를 펼쳤다. 13년이나 된 저널을 대체 어디다 쓰려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것에도 관심이 있는가?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니네만, 옛날이야기라서 요즘 읽기에는 맞지 않을 텐데.”

놀라서 묻자 션이 약간 붉어진 얼굴로 내 손에서 책자를 빼앗으려 애썼다.

“그런 거 아닙니다. 봐도 잘 모르고요.”

“그럼?”

나는 책을 잡으면 습관적으로 늘 하듯이 목차를 훑었다. 그리고 왜 션이 이것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았다. 내가 대학 다닐 때 기고한 글 쪼가리가 실려 있었던 것이다.

션이 얼굴을 붉혔다. 나는 약간 입을 벌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레지던스에 쌓여 있었던 낡은 신문지 뭉치와 잡지들을 생각해 냈다. 생각해 보면, 고작해야 두어 달 만에 쌓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종이 색도 변색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는 아마 헌 신문지를 가져다가 읽고 있었던 것이리라.

“자네, 혹시 내 기사 같은 걸 찾고 있었나?”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당신의 이름을 알았으니 알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냥 평범하게 도서관에서 검색한 것뿐입니다.”

“아니,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네. 언론에 실리는 것은 대부분 공식적인 활동이고…….”

대답하면서도 몹시 이상한 기분이었다. 어째서인지 얼굴에 화기가 올랐다. 그것을 억누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아서 션의 시선을 피했다.

“경제학 같은 건 잘 모르지만, 당신이 어릴 때 썼던 글이 있다니까 좀 궁금해져서 빌렸습니다. ……엘리엇 씨?”

나는 기어이 고개를 숙여 버리고 말았다. 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부르며 몸을 숙여 눈을 맞춰왔다. 나는 눈을 돌리려고 하지만 너무 가까워서 잘되지 않는 통에 허공만 바라보았다. 낯이 뜨겁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부끄러워하시는 겁니까?”

션이 나와 똑같이 새빨개졌다. 그러더니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가 마구 문질렀다.

“엘리엇 씨 정도 되는 사람이 이렇게 귀여워지는 건 반칙이라고요.”

“그게 무슨 말, 으음…….”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입술을 먹혔다. 나는 당황했지만, 션의 목에 팔을 감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가 내 허리를 끌어당기고 무릎 아래로 손을 넣어 안아서 다시 소파로 올렸다. 다리 사이로 몸을 밀어 넣은 채 입술을 갈라 열었다. 왜인지 몸이 평소보다 훨씬 빨리 뜨거워졌다. 금세 숨이 차서 황홀경에 빠진 채 혀를 섞는다. 션이 스웨터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등허리를 만져지는 것만으로도 찌르르했다.

“진짜로……. 제가 이상하다면 그건 전부 당신 탓입니다.”

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이지를 못해서 그를 끌어당기지 못하는 게 애가 탔다. 션이 손바닥 전체로 내 몸을 어루만지다가 엉덩이 쪽으로 두 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팬티부터 바지까지 한꺼번에 끌어 내렸다. 슬리퍼와 양말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눕기에는 너무 좁은 소파에서 꽉 끌어안은 채로 우리는 낑낑거렸다. 이럴 작정은 아니었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손을 아래로 내려서 앞섶을 주무르자 션이 짐승처럼 그르릉거리며 그 손을 치우게 하고는 막무가내로 내 다리에 자기 고간을 비볐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가 허덕대면서 몸을 일으키려다가 도로 키스하고 싶은 욕망을 못 이기고 내 위로 숙였다. 우리는 몇 번이나 몸을 떼려다가 실패하고 키스밖에는 제대로 시작도 못 했는데 앞을 흠뻑 적시고 말았다.

“기다려요.”

션이 열기에 몽롱해진 눈으로 말하고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나는 할딱대면서 그를 기다렸다. 다리가 움직였다면 뒤따라가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션이 침실에서 젤과 콘돔을 가지고 나왔다. 나는 그가 엉덩이를 쉽게 만질 수 있도록 몸을 약간 뒤틀었다. 션이 젤을 손바닥 가득 짜서 따뜻해지라고 주물렀다. 그리고 도로 내 위로 엎어지면서 항문 위에 그것을 질척하게 바르고 속으로 끌어넣었다. 손가락이 녹은 눈을 밟는 것처럼 질퍽질퍽한 소리를 내면서 내 뒤에 젤을 채웠다.

“으응, 흐응, 으응.”

“엘리엇, 굉장해요.”

션이 내 얼굴과 엉덩이를 내려다보면서 숨을 헐떡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뒤를 계속 쑤셔주면서 입속을 파헤친다. 나는 제대로 키스에 응하지 못하고 그의 입속으로 신음을 흘려 냈다. 아기에게 하는 것처럼 무기력한 다리를 들어 올리며 그가 내게 몸을 묻어 왔다. 온통 젖은 허벅지 깊은 곳을 두 손으로 벌리고 페니스가 파고든다.

“아, 으응, 으으음, 하아아.”

성급했던 전희에 비해서 밀고 들어오는 동작은 더없이 부드러웠다. 숨 가빠 하는 것을 알고 션이 입술을 놓아주어서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고 호흡을 조절하면서 그를 깊이 받아들였다.

충족감에 잠긴 채로 가만히 그대로 있었다. 션은 일단 몸을 잇고 나면 서둘러 움직이는 법이 없다. 조심스럽게 내 몸을 어루만지고 이마와 머리칼, 얼굴에 빈틈 하나 남지 않을 만큼 온통 키스를 떨어뜨리면서 기다린다.

먼저 안달이 나는 것은 거의 항상 내 쪽이다. 뿌리까지 잔뜩 박아 넣어 가득 찬 것을 제대로 다 받아들이지 못해서 조였다 풀었다 삼키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다가 결국 못 견디고 허리를 뒤틀기 시작해서야 션은 천천히 안을 벌리듯이 움직이며 원하는 곳을 쑤셔 주었다.

“하아, 하아, 앗, 션, 앗!”

“저한테 매달리세요. 그렇게……. 좋아요.”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뒤로 스스로 아랫도리를 깊이 결합시키는 것이 어려워졌다. 나는 션의 어깨와 목에 힘껏 매달리며 애원하듯이 몇 번이고 이름을 불렀다. 그가 내 엉덩이와 허벅지를 자기 팔로 들어 올리고 엉덩이 속 깊은 곳까지 쑤욱 들어온다. 쾌감 때문에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경련하는 아랫배 위로 내 페니스 끝에서 흘러나온 탁한 액체가 흐른다. 션이 그것을 비비려는 듯이 몸을 구부려 허리를 꽉 끌어안아 몸과 몸으로 짓뭉갠다. 버둥거리며 어깨를 붙들자 그가 쿡쿡 안을 쑤시다가 밀어 올리듯이 힘껏 박았다. 나는 애가 타서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 그가 내 등 쪽의 스웨터를 움켜쥐었다.

“앗, 응, 응, 하, 핫!”

“엘리엇, 더 물어뜯어도 괜찮아요, 으응, 더요.”

그가 속삭이는 목소리의 의미가 잘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기분 좋았다. 불릴 때마다 그를 힘껏 빨아 들인다. 무력한 채로 흔들리면서 그를 내 쪽으로 끌어당길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에 애가 탔다.

좁은 소파에서 우리는 몸부림치다가 결국 러그 위로 굴러떨어졌다. 나는 그의 어깨를 밀어젖히고 올라타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션이 웃었다. “그건 다음에요.”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싸 버릴 정도로 야했다. 참지 못하고 내가 사정하는 동안에 션은 나를 끌어안은 채로 두 다리를 좌우로 크게 벌리더니 빠른 손놀림으로 자기 성기에서 콘돔을 빼내고 다시 격렬하게 박아 넣었다.

“아, 아흐응!”

마지막 한 겹의 껍질조차 없어진 션의 물건은 지독하게 뜨거웠다. 나는 당황했지만, 몸을 일으킬 틈도 없이 곧바로 션에게 짓눌렸다. 움직일 수 없도록 상체를 제압당한 채 미끄덩한 션의 것이 나를 뚫고 들어왔다. 나는 숨이 넘어가는 사람처럼 헐떡거리면서 션의 팔을 붙잡았지만, 그것만으로 못 견디고 러그를 쥐어뜯다가 다시 그에게 매달렸다. 언제부터 울기 시작했는지 눈이 흐렸다.

션이 내 눈물을 빨아 마셨다.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하는데 입꼬리가 웃고 있었다. 온몸으로 나를 뭉개고 엉덩이가 아플 정도로 아랫도리를 치댄다.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너무 뜨거워서 안이 익어 버린다. 혈관을 타고 불이 흐르는 것 같았다. 구멍은 이미 젤로 푹 젖어 있었는데도 션이 흘리는 액체가 안을 더 적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점점 더 질척거리고 음란한 소리를 냈다.

“션, 션, 흑, 힉, 응, 힉!”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두 팔로 내 머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리고 포도알을 건져 올리듯이 내 입술을 베어 물었다. 달콤한 키스와 숨 막히게 압도적인 결합에 끌어안긴 채로 나는 션이 내 안 깊은 곳에 사정하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눈을 꽉 감고 그의 입술과 정액을 받았다.

멍하다. 나는 거의 넋을 놓은 채로 션의 손에 몸에 맡겼다. 콘돔 없이 생으로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실제로 실행할 계획을 세운 적은 없다. 이렇게 기습적으로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수용 능력이 낮은 오감이 포화 상태에 이른 기분이다.

그사이에 션은 바쁘게 움직였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채우고 콘돔을 버리고 내 스웨터를 벗겼다. 스웨터는 정액과 젤로 얼룩덜룩해진 것만이 아니라 션이 얼마나 잡아 뜯어 놨는지 완전히 너덜너덜했다.

“주무십시오.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어…….”

나는 여전히 스틱스강 언저리를 서성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잘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만큼 쇼크였다. 션의 물건이 아직도 뒤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그 뜨거움을 떠올리자 몸이 먼저 소스라친다. 그리고 정액은……. 안에 사정당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션은 대개가 실수해서 흘릴 때가 아니라면 콘돔을 끼었더라도 사정하기 전에 빼 주는 편이었다. 체내에 사정당한 그 자체로도 전에 맛본 적이 없는 피학적인 쾌락을 불러일으켰으나, 그보다도 션이 허락도 구하지 않고 그랬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제가…… 너무 심했나요?”

어느 틈에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손을 뻗었으나 한 대 때려야 할지, 끌어안아야 할지 헤맸다. 그래서 이마를 가볍게 밀쳤다가 다시 껴안았다.

“콘돔 없이 하는 건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을 때는 안 돼.”

“싫지는 않으셨다는 거죠?”

“자네 반성 안 했군.”

한숨을 쉬면서 목을 끌어안는다. 션이 그대로 나를 안아 들어서 욕실로 향했다. 김이 가득 찬 따뜻한 욕조 안에 내려놓고 그가 다시 한번 내 입술에 키스해 왔다.

여운과 후희를 즐기는 사이에 손가락이 뒤로 들어온다. 이전에는 섹스의 후처리는 부탁해도 이렇게 몸을 씻는 일까지 맡긴 적이 없지만, 역시나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혼자 하기 어렵고, 게다가 이제는 연인 사이이니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으응, 하, 으음.”

수용성 젤은 금방 씻겨 나갔지만, 션의 손가락은 다른 때처럼 금방 빠져나가지 않았다. 깊은 곳까지 파헤치려는 듯한 움직임에 저절로 교성이 올라갔다. 션의 목을 두 팔로 끌어안은 채 키스하던 것을 잊고 헐떡거린다. 숨결이 뒤섞인다.

“션, 이러지 말게. 오늘은 이미…….”

“조금 더 참아 주세요. 안에 했으니까 처리를 해야죠.”

“아흐응……!”

그의 물건이 뿌리까지 박고 사정한 것을 생각하면 정액이 들어간 곳까지 손가락이 닿을 리가 없다. 그러나 션의 손길은 집요했다. 느끼는 곳을 어루만지고, 깊은 곳까지 벌려 자극하는 움직임이 완전히 섹스나 다름없었다. 항문이 벌름대면서 벌어진다. 물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아, 션, 그만……. 으으응!”

나는 결국 또 싸 버리고 말았다. 욕조의 물이 뿌옇게 물들었다. 션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잘하셨습니다.”라고 속삭이면서 내게 짧게 몇 번이나 키스하고 욕조의 물을 뺐다.

그는 기진맥진한 채인 나를 고쳐 앉히고 몸에 비누칠을 하고 샤워기로 씻어 냈다. 그리고 다시 욕조에 물을 채웠다. 좋은 향이 나는 입욕제가 거품을 냈다. 나는 기운 없이 그가 간단히 자기도 몸을 씻는 것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었다.

“언젠가 자네에게 매운맛을 보여 줘야 하는데.”

“좋아서 숨이 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아.”

그가 커다란 타월을 가져와 나를 감싸서 다시 번쩍 안아 들었다. 기운도 좋다.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이 나이에 안겨 다니는 것은 역시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힘들지 않은가?”

“제가 너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안 했던가요?”

션이 침실로 가다 말고 다시 나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침대에 나를 내려놓았다. 파자마를 입혀주는 손길은 정성스러웠다.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션이 내 곁으로 파고들어 오다 말고 인상을 찌푸렸다. 불만 가득한 얼굴로 순순히 침대에서 내려가기는 했으나, 나에게 핸드폰을 건네주기 전에 액정을 확인했다. 남의 핸드폰을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몇 번 지적을 했는데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알랑 부인입니다.”

그는 아일라를 반드시 새 남편의 성으로 부른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으나 웃기만 하고 듣지 않는다. 아일라도 그를 싫어하고 말이다. 관계 개선을 시켜야겠다고는 생각하지만, 어디에서부터 손대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아일라의 남편인 토마 알랑과 나의 사이도 썩 양호하지 못하다. 아이가 생긴 뒤에는 좀 나아진다 싶었는데, 쓰러져 있는 동안에 아일라가 나를 많이 신경 쓰고 자꾸 런던으로 찾아오는 바람에 한동안은 처음보다 더 악화되었었다. 그러나 최근에 션의 일로 쫓아온 아일라를 말리기 위해 연락한 뒤로부터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퍽 누그러졌다.

나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엎어 놓았다. 중요한 일이라면 윌리엄을 통해서 다시 걸어 올 것이다.

“받지 않으십니까?”

“괜찮아. 급한 일도 아닐 테고.”

아일라와 통화하는 것은 변함없이 나에게 귀중한 시간이지만, 로테르담에 있는 동안에는 션에게 시간을 전부 다 쓰기로 약속했다. 핸드폰을 켜 놓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다급한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전화라면 윌리엄이나 준형을 통해서 온다. 그러니까 다른 전화는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션이 기쁜 듯이 웃으며 나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나는 그의 어깨를 베고 누워서 피곤한 눈을 가물가물 감았다.

“아일라 이름을 보니까 생각났는데.”

“예.”

“여름휴가에는 파리에 가세.”

“파리요?”

“토마 씨에게 초대를 받았어. 자네와 함께 오라더군.”

“알랑 부인이 싫어할 겁니다.”

“자네도 싫은가?”

그가 잠깐 고민하는 기색이더니 이내 미소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알랑 씨의 초대라면서요. 그리고 엘리엇 씨는, 저와 알랑 부인이 친구가 되기를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거기까지 바랄 만큼 무모하지는 않다네.”

나는 션의 가슴팍에 이마를 비볐다. 션이 내 머리칼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졸리면 주무세요.”라고 속삭였다.

문득 옛날에 가졌던 의문이 기억났다. 그러고 보면, 나는 겉보기에는 전혀 남을 반하게 할 만한 요소가 없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면에 그럴듯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대체 내 어디가 좋았던 건가?”

션은 그런 질문을 받을 줄 몰랐다는 듯이 눈을 둥글게 뜨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가 짓는 표정 중에 아름답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느냐마는, 지금 것이 유난히도 어여쁘게 보이는 것은 아마 행복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제 세상에서는 오로지 당신만이 ‘진짜’이니까요.”

그가 고개를 숙였다. “진짜?”라고 되묻는 내 입술 위에 짤막하게 입을 맞추고, 그가 가만히 속삭였다.

“예. 당신만이 진짜고,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을 반하게 하는 게 제 인생의 목적입니다. 아, 웃으시는군요. 농담이 아닌데요.”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으로 해 두자. 어쨌든 그는 행복한 듯했고, 나도 그러했다. 그러므로 다른 대부분의 일처럼 덮어 두고 나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잠을 청한다.

내 삶은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았다. CE의 일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헤리퍼드 공작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집에서 쉬고, 공식 행사에 참석한다. 그리고 금요일에 바에 가는 대신에 션의 집에 온다. 그리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이틀간, 레일 밖으로 벗어나지는 않아도 따라 걷는 대신에 멈추어 있는다.

등에 팔이 둘러져 왔다. 그 따뜻하고 평온한 공간 안에서 나는 진심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잊으며, 삶은 정말로 살아갈 만한 것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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