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52)

7.

대개의 경우 이름을 알지 못하거나 이성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해서 나는 좀처럼 대처하지 못한다. 겪어 본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는 대체로 부모에게, 혹은 아일라에게 의지해 왔다. 이것이 무엇인지, 가지고 있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감정의 문제라면, 내가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도 그것이 나았다. 적어도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일라가 결정한 것이 나를 망가뜨리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을 잃고 나서 이성을 흔들 정도의 감정에 직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얼마나 허둥거리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이 정도로 쇼크를 받았다면 충분히 알아챘을 법한데도 말이다. 인지력에조차 문제가 있었던 건가. 그 이전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션과 짧지 않은 시간을 만나고 리암이 알아챌 정도로 생활 전반을 바꾸어 가고 있었으면서도 역시 스스로의 감정이 변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리암이 걱정해서 찾아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표정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통제하고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주인님, 차를 가져왔습니다.”

윌리엄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옷조차 갈아입지 않고 프라이빗 룸에 앉아 상념에 잠겨 있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창밖은 어두운 밤이었다. 실내를 밝히는 불빛은 어둑어둑한 스탠드뿐이었다.

“커튼을 내릴까요?”

“그러게.”

나는 나직하게 말했다. 윌리엄이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창으로 다가가 커튼을 치고 스탠드의 조도를 높였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문득 배가 고팠다.

“저녁을 걸렀군.”

“아직 그렇게 늦지 않았습니다.”

“몇 시지?”

아직 시계는 저녁 8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간단히 뭐라도 준비할까요?”

“부탁하네. 그러고 보니 리암은?”

“오셨다가 가셨습니다. 주인님께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것 같으니 잘 지켜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런가. 자네에게도 걱정을 끼쳤군. 미안하네.”

“아닙니다.”

윌리엄이 온화하게 웃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잘 대처하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고맙네.”

나는 일어서서 쭈욱 기지개를 켰다.

윌리엄이 저녁거리를 가지러 간 사이에 가볍게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가운을 걸치고 침실의 안락의자에 몸을 던진다. 머리부터 시작된 피로가 몸까지 사로잡았지만, 그렇게 불쾌한 피로감은 아니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윌리엄이 간단한 샌드위치와 수프를 저녁 식사로 가져다주었다. 나는 싸늘한 위장에 따끈한 수프를 흘려 넣었다. 오히려 지난 며칠보다 식사가 좀 더 몸에 잘 받는 듯했다.

“윌리엄…….”

“예, 주인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려다가 나는 그만두었다. 윌리엄은 충실한 사람이고 나를 몹시 생각해 주지만, 역시 그에게 의논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맛있군. 고맙네.”

대신 짤막하게 감사의 인사를 하자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다행입니다.”

나는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윌리엄을 물렸다. 그리고 혼자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로 손가락으로 톡톡 팔걸이를 두드렸다. 알지 못하는 감정에는 대처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름이 붙은 이상 처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션을 사랑하는가? 그러하다. 낮에 그가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질투를 했나? 그러하다. 그것을 책망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우리 관계는 섹스 파트너 이상이 아니고, 나는 션에게 어떤 종류의 독점적인 지위도 갖고 있지 않다.

아마도 션은 내게 보통 이상의 호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해로드 백화점에서 마주친 여자는…….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려면 준형에게 전화 한 통화만 해 보면 될 일이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 몇 달간의 일을 찬찬히 돌이켜 보면서 나는 행복해하기도 하고, 혹은 불안해하기도 한다. 슬픔과 불안을 느끼고, 또 그가 내게 보였던 호의와 애정을 되새기며 기쁨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션을 내 인생에 끼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비단 헤리퍼드와 콘월의 명예라든가 CE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아일라의 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션을 향한 마음은 나 자신을 뒤흔들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을 내포하고 있지는 못했다.

결론은 준형의 조언처럼 명확한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길을 바라보았다. 내가 망설임 없이 그 길을 선택하리라는 것은 안다. 내 감정은 언제나 판단이나 선택과 별개의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타인의 감정과도 교차하지 못하는 지점에 있었다.

션과 함께 있는 시간은 즐거우리라. 그러나 나는 그러한 미래도의 예상을 행복하게 떠올리면서도, 그것을 내 욕망으로 만들지 못한다.

그러는 자신이 쓸쓸했다. 예고된 이별은 션이 이대로 연락을 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도 속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가슴에 뚫린 헛헛한 구멍에서 뜨끈뜨끈한 액체가 흐르는 듯한 기분조차도 내게는 경이로운 감정의 잔치처럼 보이는 것이라, 나는 하루 정도는 그것을 즐기리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앉은 채 밤이 늦을 때까지 션을 생각했다.

* * *

다음 날 오후 중에 션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화를 할 만큼의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기도 하고 바보 같다고도 생각했지만, 그런 기분이 드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금요일 저녁에, 아파트로 올 때까지 기다리겠네.]

일부러 여부를 묻는 대신에 일방적으로 끝나는 식으로 맺은 것은 답이 오지 않아도 괜찮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션은 고맙게도 내가 실망하기 전에 대답을 돌려주었다.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션치고는 딱딱한 문투였지만 불만은 없다.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긴 했지만, 지난 몇 주간 그가 나를 무시했던 것을 생각하면 답을 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애초에 내가 그에게 연락처를 요청할 때 바랐던 것이 이 정도의 의사소통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 것에 안타까운 마음을 품는 쪽이 이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기분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회사에서 온갖 종류의 소란과 과장된 걱정을 들으며 조퇴를 하고 와인고에서 샴페인 따위를 고르면서 나는 자기 자신에게 조소를 보냈다. 이제 와서 션에게 잘 보이려는 듯이 이런 것을 들고 가려는 스스로가 웃기지 않은가. 도중에 귀찮아져서 나는 적당히 아무것이나 뽑아서 옆구리에 끼고 아파트로 향했다.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시각이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오는 것은 처음이다. 노을에 물든 아파트의 분위기는 토요일 오후에 나설 때와는 퍽 분위기가 달랐지만, 아마 다른 것은 내 기분일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션은 와 있지 않았다. 나는 와인을 내던지듯이 테이블에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3주가 넘은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테이블에 먼지 한 톨 앉아 있지 않았으니까. 나는 이마에 손을 얹은 채로 눈을 감았다. 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기대어 있곤 했던 션의 체온, 체취, 부드러운 손길 같은 것을 하나씩 떠올린다. 고작해야 3주인데 그리움을 느끼는 자신이 신선했다.

일찍 왔다고 해서 할 만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혼자서 옆집으로 건너가서 영화를 볼 마음도 없고, 아직까지 올라가 보지도 않은 위층에 용건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나는 소파에 멍하니 앉았다가 결국 술잔을 꺼냈다. 가져온 샴페인을 따서 한 모금 마셨지만 내키지 않아서 그냥 싱크대에 부어 버렸다. 대신 지난번에 마시다 남은 위스키를 찾아 따르고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반 잔을 마시고, 또다시 반 잔을 마실 때까지도 션은 오지 않았다. 오지 않으려는 걸까 싶어서 핸드폰을 몇 번이나 들여다봤지만, 별다른 연락은 들어와 있지 않았다. 예의 바른 사람이니 직장 일 때문에 늦는 거라면 벌써 소식을 전했을 터였다.

오지 않는 걸까. 전화를 하면 방해가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반 잔을 다시 따랐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엘리엇 씨.”

션이 나를 보고 인사도 없이 그렇게 불렀다. 자석에 끌어당겨지듯이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눈 밑이 그늘져 보였지만, 그건 착각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3주나 만나지 않은 나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는 친절한 성품이니까 노기를 풀기 위해 애썼으리라.

혹은 그와 팔짱을 끼고 가던 그 활달하고 귀여운 인상의 여자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니, 떠올리지 말자. 이 집에는 션과 나뿐이다. 처음부터 그러했듯이, 외부의 어느 것도 이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생각이 자꾸만 흐트러지면서 집중이 엇나간다. 술 때문이다. 기다리는 것이 지루했다지만, 역시 너무 많이 마셨다.

“엘리엇 씨…….”

션이 다시 나를 불렀다. 마치 안기라는 듯이 팔을 약간 벌린 채로. 나는 그 팔에 안겨 들지 않았다. 전부 다 잊고 몸을 겹치는 것은 분명히 무척 기분이 좋고 아마도 행복하기까지 할 테지만, 그리 현명한 선택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개를 젓자 션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들어오게. 할 이야기도 있고.”

“저도…….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션이 머뭇거렸다. 그리고 낯선 이처럼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의 손에 큰 쇼핑백이 들려 있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가 그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찬찬히 나를 바라보았다.

“연락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무시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각할 것이……. 이것저것 많아서요.”

“아닐세. 이렇게 나와 준 것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예……. 다시 보니까 좋네요.”

그가 비로소 미소를 보여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안심한 기분이 되어 한숨을 내쉬었다.

“저어…….”

“자네는…….”

우리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닫았다. 션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자네가 먼저 말하게.”

나는 가볍게 그에게 손짓해 보였다. 션이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마치 내 안의 심연까지 들여다보려는 듯 새파란 눈을 맑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지난번에 헤어지고 나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니었나 하고요. 엘리엇 씨에게는 전조도 없는 날벼락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감정적인 것은 싫어하시는 것 같고……. 그래도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낸 것은, 죄송합니다.”

“아닐세. 분명히 내가 뭔가 잘못을 했을 테지.”

그러자 션이 애매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입가를 가리고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가만히 그가 마음을 정리하기를 기다렸다. 션은 식탁을 돌아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가 바깥에서 끌고 들어온 냄새가 후각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내 손에서 잔을 빼내고 그 손을 쥔다. 그리고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시선을 맞추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자 숨쉬기가 어려운 기분이 들어서 몸을 빼려 했지만, 션의 손은 단단해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엘리엇 씨를 좋아합니다. 아니, 사랑합니다.”

그가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새삼스럽게 놀랐다. 정신의 냉정한 부분으로 제멋대로 출렁거리는 감정을 지켜본다. 놀랄 만큼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1년이면 충분히 서로를 알 만큼의 시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중하지 못하다고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저는 이 말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니까요.”

션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저와 정식으로 교제하시지 않겠습니까?”

마치 청혼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가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품에서 작은 상자까지 꺼내서 내 손에 얹은 것을 보면, 실제로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상자를 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러지 않았다. 1년이 짧지 않은 시간이라 해도 그가 신중하지 못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자네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손안에 상자를 쥔 채로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런 것을 건네서, 받는다 해도 그가 원하는 관계가 될 수 있을 리 없다. 손바닥 안에 상자 모서리가 콕콕 가시처럼 박혔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내게 주어진 레일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일세. 그래서도 안 되고.”

“엘리엇 씨.”

“나는 아마,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자네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안 될 일이야. 나는…… 오늘 자네에게,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하러 왔네.”

션이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손에 쥔 내 손이 꾸욱 주먹을 쥐게 되면서 상자가 아프게 손바닥을 짓눌렀다. 나는 가만히 션을 내려다보았다.

“자네와 같이 있었던 시간이 즐겁고, 좋았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겠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나는 자네가 바라는 것 같은 미래를 생각할 수 없어.”

“그게 무슨 뜻입니까?”

“자네가 생각하는 교제라는 것은, 아마 평범한 것이겠지? 섹스가 아니라 다른 것을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나. 보통은 연인 관계가 된다면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고, 그런 것을 하겠지. 나는 그럴 수가 없네. 아웃팅이나 스캔들 문제만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것도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테고, 신중하게 만나는 것도 가능은 하겠지. 근본적인 문제는, 나에게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뜻일세.”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뭔가 소리치려는 션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어 막았다.

“자네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알고 있으니 끝까지 듣게. 나는 감정적인 교류에 대해 대체로 욕구를 느끼지 못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래. 나는 자네에게 키스하고 싶기도 하고, 섹스도 하고 싶고, 자네가 나를 대해 주는 모든 상냥한 태도를 좋다고는 생각하네만, 자네를 이해하고 싶다거나 끊임없이 대화하고 즐거운 일을 한다거나, 매일같이 만난다거나, 마음을 나누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네. 애를 쓴다면 그러는 척하는 것은 가능하겠지. 한동안은. 나는 원래부터 배려가 있는 사람이 아니야. 오래가지는 못할 걸세.”

“이해, 할 수 없군요. 저를 좋아하신다면서요.”

“그래.”

“엘리엇.”

그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렇지.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성욕이나 식욕 같은 근본적인 욕구가 아니면 그다지 나는 욕망을 느끼지 않는다. 아일라의 때는 성욕조차 개입되지 않았으나 션을 상대로도 성욕을 제외하고는 무엇을 원해야 좋을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원나잇이 스테디가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무엇이 더 변할 수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처럼 지내는 것은 나쁘지 않아. 자네가 나와 마찬가지로, 일상과 이 관계를 분리하여 이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해 준다면 나로서는 운이 좋은 일이 되겠지. 하지만 자네는 이미 그걸로는 안 되지 않는가. 그렇지만 나는 자네를 내 인생 전체에 끼워 넣을 수 없고, 그러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네. 그렇다면, 이렇게 결과도 없는 무의미한 만남은 자네에게는 낭비가 될 뿐이 아니겠는가.”

“엘리엇 씨!”

그가 언성을 높였다. 나는 가만히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자네는 지금까지 내가 만나 본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매혹적인 사람이야. 나 같은 건 금방 잊어버릴 정도로 좋은 사람이 생길 걸세.”

“이해를 못 하겠군요. 제가, 제게, 당신이 특별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 이해를 못 할 걸세. 나는 자네의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네. 그게 바로 자네와 내가 결코 공감할 수 없다는 증거이지.”

션이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고맙네. 자네는 내 세상을 한 꺼풀 벗겨 냈다네. 신의 은총이 자네에게 함께하기를.”

나는 션의 손에 열어 보지도 않은 상자를 돌려주고,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그가 행복하다면, 나 역시 기쁠 것이다. 타인처럼 밖에서 지켜보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정도밖에는 상대를 위하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밖으로 나오려는데, 션이 허둥지둥 일어서서 내 팔을 낚아챘다. 나는 가볍게 그 손을 놓게 하고 다시 한번 작별 인사를 했다. 션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내가 뿌리친 손을 한 번 쳐다보고, 그리고 자기 손안에 남아 있는 상자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눈에 한 번 담고, 나는 등을 돌렸다.

금요일 밤의 캐번디쉬 광장은 붐볐다. 어깨를 수그리고 인파 속으로 파묻히면, 션처럼 한눈에 띄는 외모라면 모를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금세 보이지 않게 되고 만다. 나는 션이 셔츠 차림으로 골목 끝까지 뛰쳐나온 것을 보았지만, 모르는 체하고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택시 안에서 아일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야. 늦은 시간에 미안하군. 내가 깨운 것은 아니지? 아기는 건강하고? 다행이로군. 별일은 아니야. 그냥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나는 온화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신기한 기분이야. 지금 헤어지고 오는 길인데……. 무척 행복해. 당신 말이 맞아. 나는 이상하지. 하지만 이것으로 옳은 거야. 감정은 내게 있어 독이니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만은 확신이다.

택시가 저택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 동안 나는 아일라에게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다. 옳고 그름에 관해서, 격렬한 감정에 대해서, 션의 다정함에 대해서도 말이다. 아일라는 웃어 주었다. 그녀는 절대로 나를 크게 책망하는 법이 없다. 외로워지면 파리로 오라고도 말했다. 아기가 태어난다면 한 번쯤은 보러 가겠다고 약속하고 나는 전화를 끊고 택시에서 내렸다.

헤리퍼드의 타운 하우스는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밤에 보면, 불빛이 켜진 저택은 저 멀리 닿지 않을 곳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정문의 벨을 눌렀다. 고용인이 문을 열면서 정문까지 세워진 가로등에 한꺼번에 불이 들어와 순식간에 환해졌다. 인사를 하기 위해 달려 나온 메이드와 풋맨들이 정원까지 도열한다.

그 안으로 나는 발걸음을 들였다. 그리고 단조로운 삶 속에 만화경처럼 다채롭게 무늬를 짜 넣어 가던 비일상이 깨닫자마자 끝났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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