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 으, 응!”
베개에 이마를 비빈다. 혀를 깨물 것 같아서 나는 베갯잇을 힘껏 물었다. 뒤에서부터 션이 팔을 잡아당겼다. 그럴 때마다 션의 물건이 뱃속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꽉 박아 넣은 채로 더 세차게 당겨져서 등 근육이 땅기고, 머리조차 기대지 못한 채 의지할 곳 없이 뒤를 힘껏 조인다.
팽팽해진 복부에 션의 것으로 심이 섰다. 붙잡힌 손안에 땀이 고였다. 허공에 덜렁거리면서 자극을 받지 못하는 성기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션은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그 얕은 움직임에 애가 탔다. 안을 쑤실 때마다 울음 섞인 소리로 애원하고 만다.
“하, 아, 아, 션, 셔, 언, 이제……. 앙!”
그가 간신히 손을 놓아주었다. 나는 정신없이 앞을 쥐었다. 션의 손이 그 위로 겹쳐져 왔다. 다른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높이 들고 안을 짓뭉개듯이 세차게 박아 넣는다. 항문이 경련하듯이 수축하면서 그를 빨아 들였다. 션의 손이 내 손을 쥔 채로 성기를 빠르게 훑게 했다. 삼키지 못한 침이 베개로 흘러서 뺨까지 축축하게 적셨다. 그가 직접 만져 줬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는다.
“션, 션, 손을, 아흑!”
“그렇게, 하아, 자꾸, 하아, 부르지 마세요.”
그가 헐떡거리며 등 뒤로 몸을 겹쳐 왔다. 침에 젖은 뺨에 뺨을 비비면서 몸을 꽉 밀착시킨다. 그리고 내 손을 치워 내고 직접 아래를 쥔 채 바닥에 눌렀다. 압박감이 가져오는 쾌감에 나는 바르작거렸다. 종아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무게에 내리눌리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흥분하고 만다. 그와 나를 연결하고 있는 쐐기는 한계까지 깊이 파고들었다. 박을 때마다 철썩철썩 닿는 부드러운 고환까지도 생생하게 느끼면서 헐떡거린다.
“엘리엇, 엘리엇, 조금만 더요, 엘리엇.”
그는 행위 중에 나에게 경칭을 붙이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책망할 정신도 없거니와 그럴 일도 아니라 매달리듯이 손을 뒤로 뻗어 션의 목덜미를 붙든다. 그가 내 고개를 무리하게 젖혀 입술을 겹쳤다. 허공에서 혀가 뒤엉켰다.
“아응, 아, 아흣! 셔언, 빨리……!”
더는 버틸 수 없다. 절정의 헐떡임 사이로 애원하자 션이 엉덩이를 흔들며 격렬하게 안으로 내리꽂았다. 머릿속에서 하얗게 스파크가 튀었다.
“아, 아아!”
그대로 션의 손안에서 파정했다. 온몸을 웅크리며 오르가슴에 떠는데 션이 몸을 빼냈다. 나는 낑낑거리고 몸을 돌려서 그를 돌아보았다. 션이 자기 물건에서 콘돔을 빼고 손으로 그것을 쥐었다. 그리고 한 번 꾸욱 수축했다가 다시 아쉽다는 듯이 입을 벌리는 항문에 내 정액이 묻은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 아아……!”
여운이 남은 안쪽에 다시 들어온 미끌거리는 감촉은 쾌락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션은 몸부림치는 나를 내려다보고 뒷구멍을 후벼 주면서 자기 것을 빠르게 쥐었다. 나는 숨을 헐떡대면서 션이 내 아랫도리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자기의 굵고 긴 물건을 훑으며 자위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건 지나치게 색스러웠다. 방금 갔을 뿐인데, 또다시 욕구가 솟구쳤다.
“하아…….”
내가 손을 뻗어 그의 것을 잡자 긴 탄식을 한다. 나는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목을 휘감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물건을 비볐다. 그는 내 구멍을 손가락으로 쑤시면서 고개를 숙여 키스해 왔다. 다리를 구부려 그가 더 쉽게 뒤를 만질 수 있도록 내밀고 혀를 빤다. 그는 엉덩이를 주무르고 항문의 주름을 꾹꾹 눌러 펴기도 하고 예민해진 내벽을 벌리거나 피스톤 운동을 하면서 허리를 더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의 것을 내 허벅지에 대고 가볍게 압박했다. 션은 사정했다.
“아아…….”
우리 둘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달뜬 신음이 새어 나왔다. 션이 손을 멈추고 두 팔로 나를 끌어안았다. 그대로 우리는 몸이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쾌락의 여운에서 벗어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이것도 변한 부분이다. 집에 돌아갈 생각일 때는 이렇게 여유 있게 끌어안고 있을 작정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
언제까지고 허공에 둥둥 뜬 듯한 여운이 가시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숨이 고르게 되고 열이 가라앉을 때쯤에는 제정신이 돌아오고야 만다. 그렇게 되면 끌어안은 손을 놓고 이 충족감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늘 아쉬웠다.
뒷구멍은 녹아내린 젤로 흥건하고 사타구니와 허벅지는 나와 션의 정액으로 질척하다. 그것이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게 된 것도 얼마 전부터의 일이다. 나는 잠시 옆으로 돌아누운 채 한숨을 내쉬었다. 션이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으며 잘근잘근 내 귓가를 깨물었다.
“닦아 드릴까요?”
“……씻으러, 가야지.”
도저히 닦는 것 정도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나는 한숨을 섞어 대답했다. 션이 손등으로 내 뺨을 어루만지면서 나직하게 소곤거렸다.
“제가 안고 가 드릴 테니까, 한 번 더 안 될까요?”
“또?”
“안 됩니까?”
나는 조금 고민했다. 마음은 있었지만, 내일 일정이 걸렸다.
갈등한 것이 패착이었다. 가타부타 말하기 전에 션이 제멋대로 결정을 해 버렸다. 그의 손이 다리 사이로 들어와 부드럽게 벌리고 그 사이로 몸을 밀어 넣는다. 처음에 서투르던 것을 생각하면 일취월장하여 이제 아주 딴사람이 아닌가. 나는 너털웃음을 웃어 버리고 몸에서 힘을 풀었다.
션이 자기 것을 흔들어 세우고 새 콘돔 껍질을 까서 씌웠다. 항문은 이미 흐물흐물한 상태였으므로 삽입에 지장은 전혀 없었다. 마치 제 자리라도 되는 양 당연하게 밀고 들어온 것이 그네라도 태우는 듯이 살살 흔들며 안을 저었다. 옆으로 누운 편안한 자세로 다리를 벌린 채 션이 자극해 오는 것을 받아들인다.
다 식지도 않았던 몸은 금세 다시 뜨거워졌다. 성기는 그렇게 빨리 발기하지 못했지만, 그런 만큼 더 여유 있게 쾌락에 젖을 수 있었다. 션의 것은 내 안에서 순식간에 단단해졌다.
“아, 응, 아.”
“엘리엇, 기분 좋아요?”
“좋아……. 앗, 아, 학! 힉!”
기분 좋다고 말하는 목구멍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시트를 움켜쥐었다. 느긋하게 시작했지만 고조되는 것은 빨랐다. 철썩철썩 소리를 내며 션이 박을 때마다 나는 곱지도 못한 목소리로 멈추지 못하고 신음했다.
“아, 앗, 앗, 아아, 하, 셔, 션! 션! 아흑!”
“엘리엇 씨가, 윽, 부르면, 헉!”
션이 말을 마치지 못하고 세차게 허리를 놀렸다. 격렬해진 허릿짓에 위로 밀려 올라가면서 나는 기어이 눈물을 뽑고 말았다. 순식간에 맞이한 두 번째 절정은 첫 번째보다 높았다. 나는 추락하는 기분을 느끼면서 높은 소리로 교성을 내질렀다.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에 눈을 뜨자 욕조 안이었다. 잠깐 잠이 들었었던 것 같다.
물은 허리 위로 차오르는 중이었다. 어찌나 과격하게 했던지 여기저기가 뻐근하고 허벅지와 그 안쪽도 벌겋게 물들어 있다. 멍이 되려나. 나는 지친 한숨을 내쉬면서 욕조 벽에 등을 기대었다. 따뜻한 물에 몸이 풀린다. 이대로 알아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죽고 싶을 것이다.
이러니까 고정된 상대가 있으면 좋긴 좋다. 아니, 이런 것은 상대가 션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배려이긴 하다. 애초부터 그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하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욕조에 담가 놓는 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을 정도로 안심하고 있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면, 이렇게까지 안심해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불측한 마음을 품은 자라면,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모르고 있을 게 아닌가. 고작해야 1년이 되어 갈 뿐이다. 그 정도의 시간은 사람을 신뢰하고 몸을 내맡기기에 충분치 않다.
욕실 문이 열렸다. 손에 수건을 든 션이 들어왔다. 그는 내가 깨어 있는 것을 보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눈을 휘었다.
“좀 더 주무셔도 괜찮았을 텐데요. 제가 씻겨 드릴까 했는데.”
“아닐세.”
나는 몸을 미끄러뜨려 물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몸에는 쾌락의 잔열이 남아 있었고, 션을 끌어안으면 또 한 번 흥분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욕구는 풀 만큼 풀었는데 말이다.
션이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반투명한 유리 너머로 비치는 실루엣은 실물만큼이나 섹시했다. 나는 뜨거운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바라보다가 애써 시선을 돌려 도로 욕조 속을 바라보았다. 그를 처음 만났던 계절이 해가 바뀐 지 얼마 안 되는 때였고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돌아온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한 사람과 관계를 갖는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 집을 사고 션과 연락처를 주고받을 때조차도 이렇게 길게 이어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간의 길이만큼 흐뭇하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다.
션은 이제 능숙해졌고, 서로의 몸에 대해 아는 만큼 쾌락의 깊이도 깊어졌다. 안심하는 만큼 새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일도 늘었고, 나란히 누워 잠드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션이 아니었더라면 아까처럼 정신을 완전히 놔 버리고 굴러떨어지는 일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육체적 교감은 생각보다 더 많은 가치를 내포하고 있었다. 나는 아일라에게 내가 주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일리가 자신의 애인과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션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나는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켰다. 이러다가 또 잠들어 버릴 것 같으니 차라리 빨리 씻고 나가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약간 절룩거리면서 샤워부스 쪽으로 다가가자 션이 불안한 얼굴로 나를 부축하려 했다.
“혼자 할 수 있어.”
“다리가 휘청휘청하는데 미끄러지시면 어떻게 하려고요.”
“괜찮대도.”
나는 강경하게 그를 욕실에서 쫓아냈다. 션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나는 일단 침실에서 나오고 나면 벗은 몸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껄끄러웠다. 상대방이 물에 젖은 색스러운 몸을 하고 있다면 더욱 말이다.
션은 불만스러운 것 같았지만 얌전히 밖으로 나갔다. 나는 샤워기를 틀어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면서 천천히 뒤를 헤집었다. 젤을 씻어 내고, 몸에 비누칠을 한다. 요즘 들어 콘돔 없이 해 보고 싶다는 욕구는 강해지고 있다. 조만간 건강 진단서나 교환하자고 할까 생각해 본다. 준형을 통해서 보고는 듣고 있지만, 역시 그쪽이 좀 더 자유가 생길 테고. 한 사람을 오래 만나니까 별것이 다 가능하다.
밖으로 나오자 션이 커피 머신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보통 커피보다 홍차파이지만, 맛없는 차를 마시느니 차라리 커피가 나았다.
“라떼로?”
“에너지가 모자라. 달콤한 걸로 주게.”
수건을 머리에 얹은 채 털썩 소파에 앉는다. 션이 잔을 가져와 건네주고, 입술을 겹쳐 왔다. 커피보다 커피 향이 나는 키스를 먼저 들이마시며 눈을 감는다. 그는 굳이 전희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키스를 해 오곤 했는데, 나도 거기에 꽤 익숙해졌다.
그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다. 사실 이쯤 되면 이제 섹스 파트너가 아니라 애인이라고 부르는 게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간혹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이 집 안에서 한정된 일이다. 나는 내 다른 일상과 인생에 션을 끼워 넣을 마음이 없다. 그리고 진지하게 그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 성실하게 대하는 것까지는 가능하겠지만, 아마 거기까지일 것이다. 애초부터 진짜 삶에서 떨어뜨려 놓은 채로 밀회만 하고 있는데, 거기에 어떤 진실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가.
“몇 시지?”
이 아파트에는 시계가 없다. 준형이 자기가 생각하는 용도에 걸맞은 인테리어를 한 결과였다. TV도, 라디오도, 컴퓨터도 없으므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으면 종종 시간을 잊어버리고 만다.
션이 꾸물거리고 가방에 든 핸드폰을 찾으러 갔다.
“11시 넘었습니다. 주무시고 가실 거죠?”
“오늘은 곤란해.”
또 외박이라고 윌리엄이 잔소리를 할 것이다.
“밤이 늦었는데요.”
“택시 부르면 돼. 이것만 마시고 일어서야지.”
그러나 억겁인 몸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거리고 있자니 션이 내 옆에 붙어 앉았다. 그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로 눈을 감고 잠시 쉰다. 션이 가볍게 손을 들어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엘리엇 씨.”
“으응?”
“다음 주 일요일에……. 시간이 되신다면, 같이 영화라도 보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영화?”
의외의 말에 잠이 깼다. 션이 “예.” 하고 쑥스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나는 그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개봉하는 게 많으니까요. 엘리엇 씨는 영화는 싫어하십니까?”
“아니, 딱히 그런 것은 아니네만.”
영화 자체를 본 것이 굉장히 오래된 일이다.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 않았다.
“특별히 보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 건가?”
“로맨스를 싫어하시지 않는다면 꽤 재미있어 보이는 게 있던데……. 같이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가.”
나는 그 말이 그가 나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에 좀 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션의 얼굴이 더 붉게 물들었다.
“사람 많은 게 신경 쓰이신다면, 아예 외곽 쪽에 있는 데에서 예매해 두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네. 다음 주의 일정이 어떻게 될지도 확실하지 않고. 크리스마스에는 아무래도 일이 많으니까. 아마 어렵지 않겠나.”
“아, 그러시겠군요.”
“여유가 생기면 연락하겠네.”
“예.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그리고 내심으로 다음 주의 일정과 션의 감정에 대해서 계속 떠올려 보려 했지만, 지금 당장은 게을러서 도무지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 * *
예상대로 크리스마스 언저리쯤부터는 매우 바빴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뒤이어 연말 모임, 신년회를 비롯하여 참석해야 할 모임이 쏟아지고, 오랜만에 친지들을 만나거나 집안의 일도 많았다. 콘월의 외조부님을 뵈러 갔다가 남태평양의 별장까지 따라갔다 와야 했기 때문에 션에게 연락할 수 있었던 것은 1월 중순도 넘어서의 일이다.
원나잇을 하러 다니던 때의 텀으로 따지자면 그렇게 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션과 관계가 안정되고 나서는 거의 매주 만났으므로 겨우 한 달 정도 만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몹시 오랜만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평소보다 공을 들여 몸을 씻고 관장을 하면서 이상한 기분이 된다. 어차피 원나잇을 할 때도 매번 하는 일인데, 마치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인다. 욕구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실제로도 기대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것을 부끄럽다고 여기는 자신이 이상했다.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를 듣기라도 했는지, 번호 키를 미처 다 누르기도 전에 현관문이 왈칵 열렸다. 션이 팔을 뻗어서 나를 끌어안았다.
“엘리엇 씨.”
“오랜만이군.”
고작 한 달 만인데, 반년은 못 본 얼굴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포옹과 미소를 되돌려주자, 입맞춤이 보답으로 돌아왔다. 일단 집 안으로 들어가자고 밀자 션이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뒷걸음질 쳤다. 별수 없이 나도 그의 목을 감아 안은 채 눈을 감았다.
집 안에 카레 냄새가 가득 퍼져 있어서 섹시함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였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키스는 기분이 좋았다. 소파에 파묻히듯이 밀려 반쯤 눕혀진 채로 나는 션의 몸무게를 받았다. 벌려진 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몸을 허벅지로 가볍게 감은 채 끌어당긴다.
호흡이 금세 가빠졌다. 보드랍게 부푼 입술을 맞대었다가 떼고 또 맞대었다가는 떼고,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다시 얽힌다. 뺨을 손으로 감싸고 혀를 뿌리부터 감아 잡아당겨 깊게 빨아들이자 션이 팔 안에서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성급한 손길로 바지에서 셔츠 자락을 끄집어내었다. 나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무릎을 세워 그를 본격적으로 휘감으려 했다.
그때 끓는 냄비의 삐이익거리는 소리가 방해를 했다. 션이 “아…….” 하고 고통과 애석함이 뒤섞인 소리를 냈다. 농밀한 공기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헐떡이면서도 웃고 말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데.”
“뭐 하러 음식을 하겠다고 했는지 원망스럽습니다.”
그가 진지하게 말하며 다시 내 입술을 짧게 빨고 일어섰다. 그리고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 헝클어진 매무새를 다듬었다. 바지춤을 정돈하여 셔츠를 바르게 입고 벗어 던진 구두를 찾아 신발장에 넣고 슬리퍼를 신었다.
션은 프라이팬에 반죽을 붓고 있었다. 미남이 하면 뭐든 그림이 되는 법이고, 불 앞에 서 있는 모습은 더 그랬다. 아일라라면 사흘은 요란을 떨고도 남았을 것이다.
“전부 다 자네가 만들었나? 표정이 왜 그래?”
“엘리엇 씨 앞에서 실패하면 안 되니까요. 엄청 긴장 중입니다.”
이렇게 잔뜩 굳은 얼굴은 처음 보았다. 션은 때때로 같이 먹자며 식사를 준비해 오곤 했지만, 대개 데워 먹거나 내가 늦는 날이 많았으므로 만들고 있는 것을 보는 일은 적다. 인스턴트 수프에 물을 붓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러나저러나 신기한 일이다.
“결혼하면 사랑받겠어.”
“간단한 겁니다. 대성공은 못 해도 실패는 안 할 음식만 만드니까요. 엘리엇 씨는 하지 않으십니까?”
“전혀. 아내가 투정을 부려서 시도해 본 적은 있네만, 내가 손댈 일이 아니라는 교훈만 얻었다네.”
대학 다닐 때의 일이니까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계란 토스트 하나 만들지 못하기는 서로 마찬가지이면서 불평 많던 아일라를 생각하자 살짝 미소가 새었다. 난을 뒤집는 션의 손놀림을 보고 있다가 문득 정신이 들어서 그를 돌아보자,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미안하네.”
무신경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나와 아일라의 관계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에 상관없이 기혼자라는 사실 자체에 불안해한다. 충분히 신경 써 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남에게 배려 같은 것을 해 본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성격이 무신경한 편이라서 그런지 자꾸 잊어버리고 만다.
션이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아닙니다. 그렇게 마음 쓰고 있는 건 아니에요.”
그가 그렇게 말하고 접시에 난을 옮겼다. 나는 도와줄까 싶어 선반을 이것저것 열었지만, 주방에서 컵밖에 꺼내 보지 않았으므로 아직도 어디에 뭐가 들어 있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간혹 혼자서도 먼저 와서 식사를 하거나 간식거리를 챙기는 션 쪽이 잘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이 문짝 저 문짝 여는 옆에서 션이 다른 찬장을 열어서 자기 집처럼 자연스럽게 그릇을 꺼냈다.
조촐한 식탁에 마주 앉으면 어쩐지 간지러운 느낌이 든다. 현관 앞에서 키스하는 것보다 마주 앉아 식사하는 것에 더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싫지는 않지만, 조금만 고개를 빼면 입술이 닿을 거리는 일상적인 일을 하기에 너무 가깝다.
“그동안에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바쁘신 것 같더니.”
“연말에는 아무래도 모임이 많으니까. 자네도 그랬을 거 아닌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면서 나는 그의 턱을 잡아당겨 키스하는 것을 상상했다. 아니면 고개를 빼서 입을 맞춘다거나. 그러면 션이 벌떡 일어나서 나를 식탁 너머로 잡아당길까? 아니면 불쾌해할까? 궁금증이 나를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식사 중에 그러는 것은 예의가 아니므로 실현하지는 않았다.
“생각이 딴 데 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맛이 없어서는 아닐세.”
션이 어색하게 웃었다. 역시 맛이 없어서 그런다고 생각한 것 같다. 섹스 전의 식사는 몸을 무겁게 하기 때문에 그다지 많이 하지도 않고, 내키지도 않는다. 기대하고 있다고 굳이 말하기도 뭐하니까 내버려 두었더니 션은 내가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탓인지 입맛이 까다롭다고 받아들인 것 같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정말일세. 다른 생각을 좀 했을 뿐이야. 그러고 보니까 영화를 보자고 했었지?”
너무 몸만 찾는 것도 미안한 것 같아서 물었다. 션이 약간 웃었다.
“바쁘셨으니까요.”
“식사를 마치면 보러 갈까?”
영화에는 흥미가 없지만, 같이 있는 시간 자체가 몸과 마음을 고조시킨다면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션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요?”
“의심스러운가?”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엘리엇 씨는 역시 그런 건 싫어하시나 했습니다. 이 집에는 TV도 없으니까요.”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뿐일세. 자네가 원한다면 설치하겠네.”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이 집은 이대로도 좋습니다. 엘리엇 씨와 저만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그런데 자네, 그거 다 먹은 건가?”
“아, 얼른 먹겠습니다.”
말하는 것도 잊고 나만 쳐다보고 있던 션이 숟가락이 달그락 소리를 내도록 성급하게 접시를 비웠다.
그는 설거지를 하려 했지만, 그런 것은 나중에 가정부가 치울 거라며 말렸다. 션은 어쩐지 허둥거리며 일어서서 옷을 갈아입으려 들었다. 나는 재킷도 내버려 두고 현관에서 그를 불렀다. 어차피 먼 거리로 가는 것도 아니다. 코트는 필요 없었다.
그를 내버려 두고 나는 옆집으로 향했다. 보안을 위해 사들인 위아래 옆집을 여러 용도에 맞추어 리모델링하라고 준형에게 말한 것이 벌써 지난달의 일이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들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지 못했다.
지난달에 션이 영화관 이야기를 꺼낸 직후에 만나서 섹스만 할 것이 아니라면 좀 더 여러 가지 설비를 갖추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래층에는 케임브리지 웬즈데이 클럽의 게임실의 설비를 본떠 오게 했다. 나 자신은 보드게임이라든가 카드 같은 것을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그 정도밖에는 딱히 놀거리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나에는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나중에 션에게 물어보고 결정해도 좋을 것이다.
일을 너무 크게 벌이는 게 아닌가 싶긴 했지만, 어차피 비워 놓은 집들이 아닌가. 준형은 짜증을 내면서 “대포폰, 차명 건물까지는 내 전문 분야이지만, 인테리어라니. 넌 나를 너희 집 집사로 착각하고 있는 거냐.”라고 투덜거렸지만, 그래서 돈을 주는데도 안 할 거냐고 묻자 쑥 들어가더니 “언제든 불러만 주시면 달려가는 김준형 서비스입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정작 비밀번호 묻는 것을 깜박했다. 혹시나 해서 지금 쓰고 있는 집과 같은 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 불이 자동으로 들어온다. 안은 제법 훌륭하게 꾸며져 있었다. 벽을 전부 뜯어내고 넓어진 공간의 한쪽 벽에 전면스크린을 설비하고, 스피커도 제대로 장만되었다. 좌석은 푹신한 소파로 두 개뿐이다. 저택에 아일라가 설치한 것에 비하면 소박한 수준이지만, 이 정도라면 그럭저럭 그럴듯하다. 만족스러웠다.
“엘리엇 씨?”
놀라서 코트를 꿰입다 말고 신발을 구겨 신고 나온 션이 나를 뒤따라왔다. 그리고 실내를 보고 숨을 들이켰다.
“난방을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
나는 일단 보일러의 버튼을 눌러 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떠냐고 물으며 션을 돌아보았다가 당황했다. 션은 완전히 안색을 잃고 있었다. 돌처럼 굳은 무표정으로 그가 나를 바라보고,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션?”
그가 다른 한쪽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휙 몸을 돌려 되돌아갔다. 나는 당혹하여 문을 닫고 션을 쫓아갔다. 션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한쪽 팔만 끼고 있던 코트를 제대로 벗지도 않은 채였다.
“내가 뭔가 실수라도 했나?”
“아닙니다.”
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개를 여전히 숙인 채였다. 그가 단단히 심중이 상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왜 그러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서 말없이 그를 쳐다보고 서 있자 션이 고개를 들었다. 깨끗하던 흰자위에 핏발이 서 있었다.
“저는 엘리엇 씨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엘리엇 씨도 저를 이해 못 하겠죠. 진짜로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알면서도 일부러 농락하려고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드니까요.”
“션.”
“저는 그냥 단순히, 영화 내용을 보자고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나란히 앉아서 보는 게 목적이었으면 엘리엇 씨 말처럼 이 집에 TV라도 사다 달면 되고, 그것조차 귀찮으면 노트북이라도 가져다가 나란히 앉아 보면 되는 일인데. 그게 목적이 아니라고요.”
그게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목적인가. 이해하지 못해서 고개를 기울이고 그를 바라보자 션이 “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데이트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당신하고 같이 외출을 하고, 이 집에서 벗어나서 섹스가 아닌 다른 걸 해 보고 싶었던 거라고요.”
“그러려고 설비를 한 게 아닌가.”
“결국 연장 선상이 아닙니까!”
그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긴, 그렇네요. 고작 해야 섹파가 뭐라고 이런 소리를 하겠습니까? 엘리엇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는걸요.”
“션.”
“바보 같네요. 저 혼자 들뜨고, 저녁 따윌 준비하고, 전화하고, 무슨 이야기를 할지 하루 종일 생각하고, 늦기라도 하면 뭐라고 변명할지 고민하고. 엘리엇 씨는 저에 대해 알고 싶다고 생각하시지도 않는데! 심지어 크리스마스에 무얼 했느냐고 묻는 일조차 한 번 없을 정도로. 그럴 거면 차라리 머물러 있지도 말지 그러세요. 식사도 거절하고, 커피도 거절하고, 잠들지도 말고,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끝나면 바로 일어서서 돌아가시란 말입니다!”
나는 이번에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 대해 묻지 않는 것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다른 가족이 없고, 현재 다른 애인도 없고, 오브라이언 보안 회사는 크리스마스에 일이 생겼기 때문에 대표인 풀러 씨조차도 휴가를 반납했다. 그가 매우 평범한 일상을 보냈으리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션도 나에게 깊은 내용을 묻지는 않았고, 물었어도 마찬가지이다. 크리스마스 파티, 신년회, 연말 모임, 만찬회, 친지 모임. 어차피 뻔한 이야기들이 아닌가.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군. 듣고 보니 내가 지금까지 자네에게 응석을 부린 것 같은데, 불쾌했다면…….”
“그만하죠.”
그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미안합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주방의 뒷정리는 당신의 고용인에게 부탁하세요.”
그가 코트를 벗어서 바르게 걸쳐 입더니 빠른 걸음으로 집 안을 돌아다니며 가방을 챙기고 구두를 신었다. 나는 우두커니 거실에 선 채로 그것을 지켜보았다.
탕 하고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나는 조명이 꺼져서 어두워진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심결에 어깨를 떨었다. 혼자가 되자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