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52)

2.

그 뒤로 션과는 몇 번 더 관계를 가졌다. 바에 들를 때마다 거의 항상 그가 있었던 탓이다. 꼭 그를 상대로 할 작정은 없었지만, 가면 항상 제일 먼저 말을 걸어왔으므로 으레 그와 함께 모텔로 가게 되었다. 그런 일이 서너 번쯤 반복된 다음에는, 션 쪽은 어떤지 몰라도 나로서는 사실상 상대가 고정된 셈이라 약간 경계심이 들었다.

그러나 궁합이 나쁘거나 매너가 더러운 것도 아닌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고, 한 명 거절하고 나면 그다음에 그럴듯한 사람을 만날 때까지 시간을 얼마나 낭비하게 될지 모르는 데다가, 연락처를 교환해서 만나는 것도 아닌데 뭐 어떤가 싶었다.

갈 때마다 있는 것을 보면 생활 패턴이 꽤 비슷한 듯하다. 그래서 원나잇이 중첩되고 있는 것뿐이다. 션은 나를 상당히 반겼다. 나와 잤던 그 날이 처음으로 준형의 바 같은 장소에 간 것이라니, 거기에서 처음 만난 상대인 나와 수순 좋고 깨끗하게 이루어진 탓에 나를 상대로 꽤 안심하고 있달까, 일종의 신뢰 같은 것을 하고 있는 듯했다. 이왕이면 새로운 사람보다는 이 사람과, 같은.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나쁘지 않은 일이다.

아직까지는 전화번호를 달라거나 풀네임을 묻는 일도 없다. 상대가 부족하지 않을 남자이다. 스테디를 만들 거라면 신중하게 선택하라고 충고해 준 것도 나였다.

“엘리엇 씨는 스테디는 만들지 않으시나요?”

서너 번쯤 같은 사람과 자서 안면을 익히게 되면 으레 받는 질문을 그도 했다. 나는 편안하게 엎드려서 그가 목덜미 뒤쪽을 주물러 주는 감촉을 시원하게 느끼면서 대꾸했다.

“글쎄. 기혼자가 스테디까지 따로 만든다는 것은 도를 넘는 게 아닐까 싶군.”

그 순간 션의 경악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다시 생각해도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내 머리칼에 손가락을 묻은 채로 그는 돌처럼 굳었다. 슬쩍 올려다보자 얼굴은 창백하게 핏기가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시체라기보다는 밀랍으로 만든 조각상처럼 보였다. 취향은 아니지만 역시 잘생기긴 했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나는 돌아누워서 그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부인이, 있으십니까?”

그가 간신히 쥐어짜 낸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얼굴은 안 그렇게 생겨서 생각 외로 결벽하구나 하고 나는 약간은 놀랐다. 남자와 원나잇 하는 것은 괜찮아도 불륜은 안 된다는 것일까. 그러나 그런 종류의 도덕성은 나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았다. 굳이 할 필요 없는 이야기까지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있지. 법적인 관계이지만.”

“법적인, 관계요?”

“나는 원래 게이였어. 사정이 있어서 결혼은 했지만, 처음부터 그녀와 온전한 부부가 될 작정은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지. 행복하게 해 줄 수도 없으면서 의무에 억지로 묶어서 그녀를 불행하게 할 작정도 없었고. 그녀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이해하고 나와 결혼해 준 거야.”

“부인이 전부 알고 계십니까?”

“아내를 속이고 나와서 이러고 있지는 않다네. 굳이 보고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서로 친구의 성생활에 일일이 궁금증을 품을 나이도 아니고. 충고하겠는데 션, 만약 불륜에 거부감이 있는 거라면 상대를 선택할 때 좀 더 신중을 기하는 게 좋겠군. 설마 자기 사적인 정보를 숨긴 채 일반적이지 않은 성욕을 하룻밤 만족시키려고 모이는 사람들이 모두 싱글일 거라고 믿는 건 아니겠지?”

션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상처가 나겠군, 하고 뻗은 내 손을 그가 잡았다. 그리고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부인을 사랑하고 계시는군요.”

“자네는 내 충고는 듣지 않고 있는 모양이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어, 개인을 추적해 낼 수 있는 정보도 아니고 이 정도는 말해도 상관없으리라. 스쳐 지나가는 상대이기 때문에 더더욱.

“옛날에는 육체적으로도 그녀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

세상에서 유일하게 색채를 띠고 다가오는 아름다운 체온을 사랑하지 않았을 리 없다. 약혼이 결정되었을 때도, 청혼할 때도, 결혼한 후에도, 흥분이라고는 전혀 동반하지 못한 기계적인 섹스를 할 때도, 어째서 자신이 이런 성벽으로 타고났는지에 대해 낳아 준 부모와 이런 정신적 인자를 구성한 운명을 원망했던 때도 있었다. 남들처럼 여자를 사랑하여, 아일라와 몸과 마음이 합일된 온전한 부부가 될 수 있었으면 좋았으리라고 소망하던 때가.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쪽이 잘된 거야. 그리되었다면 내 사랑은 분명 어두침침한 정욕과 질투와 독점욕으로 뒤범벅되어 엉망이 되었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 나는 그녀만이 아니라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까지도 아끼고 존중할 수 있어. 나는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완전하게, 소중하게 그녀를 사랑한다고 자부하고 있다네.”

내 이야기를 들은 션은 서글픈 얼굴을 하고 고개를 숙여 왔다.

“제가 말솜씨가 없어서 이럴 때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내 입술에 한 번 입을 맞추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한 번 더 키스하고 싶어졌는데 괜찮겠습니까?”

“이미 하고 있지 않나.”

“그렇군요.”

그 키스는 결국 새벽까지 이어지는 섹스가 되었다. 고환이 텅텅 비어 버린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쾌락도 좋지만 역시 나이를 먹긴 했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에, 아일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낌없이 축하했다. 그녀가 몹시도 행복한 목소리로 어머니가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이를 가지는 일이 없을 나는, 그 아이를 내 아이만큼이나 사랑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둘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양쪽 집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종 일가친척의 입이란 구속적인 부모보다 더 골치 아픈 것이다.

나는 아일라에게 원한다면 그 아이를 정식으로 호적에 올려 집안을 물려주는 것도 괜찮다고 제안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거절했다. 당신도, 나도 결코 그 집에서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했으니, 내 아이는 그렇게 만들지 않을 거라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하고, 태어날 아기를 위해 예쁜 요람과 장난감을 선물로 보냈다.

그것도 굳이 따지자면 내 미래의 예상도 안에 있는 일이었지만, 전혀 감상적인 마음이 없을 수는 없었다. 아기 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정말로 아일라와 내 생활이 갈렸다는 실감 때문이었다. 아일라는 이제 영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고작해야 오가는 데에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지만, 도버 해협보다 깊은 경계선이 그사이에 놓였다.

그것은 ‘진짜 가족’이라는 범주이고, 미래에 뭔가를 남길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차이이기도 하다. 어린아이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식을 가진다는 것은 좋겠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자식이 없다고 해서 내 인생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에서도 지위에서도 후계자를 얻을 수 없는 입장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끝끝내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모를 잃고 아내를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한 셈이다.

“자아.”

준형이 내 앞에 투명한 잔을 내려놓았다. 거품이 가득 피어오르는 샴페인이었다.

“내가 축하받을 만한 일이라도 있던가?”

“축하할 일이라면서.”

“내가 축하받을 일은 아니지.”

“그럼 위로주.”

“위로받을 일도 아니다, 준. 이런 걸로 나를 놀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나는 꽤 진심인데.”

준형이 빙긋 웃었다.

“축하하든 괴로워하든 눈에 띄었다 하면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모 가문의 모 합하가 여기 온다는 건 남몰래 뭔가를 하고 싶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오늘은 화요일. 규칙 바른 너로서는 드문 일이지. 그렇다면 술을 마시고 싶다는 뜻이고, 남몰래 바에서 혼자 술 마시는 남자란 건, 으응?”

“그 편견은 옳지 않군.”

“적어도 네게는 들어맞을걸, 엘리엇.”

다른 주문을 받아 칵테일을 만들면서 준형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술을 마시러 온 것뿐이라는 건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씁쓸하게 술잔을 비우고, 시가를 꺼냈다.

뭐어, 실제로 외로웠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채우는 것에 늘 이쪽을 향해 눈을 충혈시키고 있는 혈족들이나 이권을 사이에 두고 긴장된 교우를 유지하고 있는 소위 친구라는 자들이 맞지 않는다는 것도. 함께 취미를 즐길 만한 친구도, 믿을 수 있는 부하도 있지만, 민낯을 드러내고 술잔을 같이할 만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럴 만큼 온후하고 신망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내가 그럴 입장이 아니고.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는 뜻의 무색 잔을 든 채로 나는 천천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화요일 밤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몇 사람이 색깔이 든 잔을 들고 탐색하는 듯한 눈길을 서로에게 보낸다. 유난히 녹색 잔이 많았다. 잔을 바꿀까. 아는 사람들끼리만 이해하는 욕망과 긴장감이 혼재된 시선들 사이에 앉아서 나는 잠시 생각했다. 해소가 필요한 상태는 아니지만, 맨살을 끌어안고 비비는 것은 좋다. 이런 허무한 기분이 드는 날에는 더더욱.

하지만 평일이다. 내일은 아침부터 회의가 있고, 며칠 전에 체력을 소진한 입장에서 그다지 기운이 넘치는 상태도 아니었다. 거친 상대는 만나고 싶지 않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괜스레 사방을 둘러보는데,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션과 마주쳤다.

“아!”

그가 환한 미소를 띠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는 약간 놀랐다. 나는 대개 이삼 주에 한 번 금요일에 이곳에 오는데, 그때마다 있었던 것을 보면 아마 션은 매주 금요일에 오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 외모로 상대를 낚는 것에 실패할 리 없고, 그렇다면 일주일에 두 번도 오는 건가. 원나잇이라는 게 일주일에 두 번이나 할 만한 건 아니다. 섹스 자체가 아니라 사람을 찾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아니, 하긴, 션 정도라면 굳이 수고조차 들지 않을 것이다.

“엘리엇 씨, 오늘은 화요일인데 어쩐 일이세요?”

“술을 마시러 왔을 뿐이네.”

나는 무색의 잔을 들어 보였다. 션이 “그렇군요.”라고 약간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도 오늘은 그걸로.”

“항상 그거잖아요?”

준형이 빈정거리는 건지 놀리는 건지 모를 어조로 말했다. 션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션과 처음 이곳에서 만난 것도 벌써 넉 달 전의 일이다. 그동안에 ‘항상’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주 왔다면 이제 익숙해져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여전히 그는 처음의 서투른 모습에서 별로 발전이 없었다.

섹스만 빼고 말이다.

나는 잠시 션과의 섹스를 떠올렸다. 허벅지 안쪽이 뜨거워지면서 약간 목 안쪽이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술을 한 모금 들이켜자 혈관으로 화끈하게 퍼진다. 션은 준형과 시시덕거리면서 무색의 잔에 만들어진 모히토를 받아 들었다.

“상대를 찾으러 온 게 아닌가?”

“예? 아, 예에…….”

션이 어물거렸다. 순진한 면이 있는 성격이니 아무리 여기가 그런 장소라도 이미 면식이 익은 나를 상대로 섹스 상대를 찾으러 왔다고 말하기가 난처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그리고 잔을 마저 비웠다.

“나가지 않겠나?”

“예?”

“아, 규칙에 어긋나는 건가?”

준형을 힐끗 돌아보았다.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성행위를 익명으로 교환하는 이런 바가 큰 사고 없이 운영되고 있는 것은 준형의 규칙을 어겼을 때 당하는 벌칙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예외지만, 당분간 출입 금지 정도는 당할지도 모른다. 그건 사양이었다. 그리고 준형은 내 입장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에이전트이다. 규칙은 가능한 한 지켜 주고 싶었다.

다행히도 준형은 미묘한 얼굴을 하기는 했지만, 문제가 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션이 깜짝 놀라 일어섰다.

“그래도 됩니까?”

“안 될 이유라도 있나?”

“그야 그렇지만…….”

“내키지 않는다면 됐네. 자네도 오늘은 술을 마시러 온 모양이고.”

그렇다면 약간 마음이 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션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엘리엇 씨가 괜찮다면, 저는 언제든지 좋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만났으니 일주일에 두 번째이다. 그 정도로 체력이 달리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의 일탈은 나쁘지 않다.

술값을 션의 것까지 내 앞에 달아 놓으라고 준형에게 말하고 그를 동반해서 밖으로 나왔다. 늘 가던 모텔로 들어가는데 션이 이상하게 얼어 있어서 나는 그를 희한한 기분으로 돌아보았다.

“왜?”

“괜히 긴장되어서요. 엘리엇 씨는 금요일에만 오시는 줄 알았는데.”

“글쎄. 일부러 정해 놓고 있는 건 아니라네.”

무인 모텔의 카운터에는 사람이 없다. 화요일은 처음이지만, 방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나는 관성적으로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션은 어울리지 않게 오늘따라 말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치는 얼굴은 살짝 고개 숙여져 있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션이 뒤에서부터 끌어안아, 고개를 돌리며 입 맞춰 왔다. 나는 당황해서 카드키를 떨어뜨릴 뻔했다. 션은 그것을 민첩하게 받아 내서 슬롯에 꽂았다. 방에 환한 불이 들어왔다.

쾅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이 끼리릭 잠겼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안심하고 이미 입속에 들어와 있는 션의 혀에 내 혀를 감았다. 단단한 팔이 허리를 둘러 안았다. 발이 허공에 떴다. 좋은 몸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쉽사리 나를 들어 올릴 줄은 몰랐기 때문에 놀랐다. 그러나 오래 그런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금세 침대에 눕혀졌다.

“옷이 구겨져.”

“급한데, 안 됩니까?”

나는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까탈을 부릴 생각은 없다. 스스로도 성격이 별로 좋지 않은 부분에서 꼼꼼하다고 생각하지만, 원나잇 상대에게까지 까다로움을 부린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괜찮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션이 다시 덤벼들었다. 겉옷을 벗겨서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던지고 웃옷을 끌어 올리며 늑골 언저리를 핥는다. 확실히 섹스 자체에는 능숙해졌다. 크고 체열이 높은 손이 가슴팍을 덮어 손바닥으로 유두를 문질렀다.

“하아.”

나는 짧게 신음처럼 숨을 뱉으면서 션이 밀어붙이는 대로 침대 머리로 밀려갔다. 션이 신발을 벗고 지퍼를 내리면서 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왔다.

벗은 몸은 섹시하다. 타고난 몸의 모양도 좋지만 운동을 하는지 관리도 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몸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섹스 할 때 그는 온몸을 이용한다. 단순히 허릿짓을 하거나 손으로 애무하는 법이 없다. 전신의 근육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며 나를 덮어 온다.

다시 두 손을 깍지 끼어 잡은 채로 입을 맞춘다. 혀가 입술과 인중을 할짝이고 밀착한 몸이 가볍게 내 몸을 마찰하며 열을 낸다. 아랫도리는 이미 부풀어 있었다. 묵직한 질량감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목에 팔을 감아 주세요.”

나는 그의 어깨와 옆구리를 어루만지는 것을 그만두고 목에 두 팔을 감았다. 션이 왼팔로 허리를 감아 안고 척추를 따라 내려온 오른손으로 허리의 오목한 곳으로 파고들었다가 그대로 바지를 끌어 내렸다. 허벅지를 문지르고 지나가는 감촉이 오스스 떨릴 만큼 좋았다. 바지를 발목까지 내리고 나서야 그는 아직 내가 구두도 벗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나도 그가 난처해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가 구두를 벗겨 내던지고 양말을 벗기며 발뒤꿈치를 어루만졌다. 고작해야 만져지는 곳은 발뒤꿈치이지만 어디 한 곳 빈틈없이 밀착한 몸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후끈거리고 체온을 올린다.

나는 무릎을 세워 그의 허리 옆과 허벅지를 훑었다. 션이 서두르는 손으로 반대쪽 신발과 양말을 벗겨 버리고 나를 침대에 내리눌렀다.

그와 마지막으로 섹스 한 날로부터 아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뒤는 비교적 부드러웠다. 션이 젤도 없이 침으로 적신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 읏.”

압박감과 약간의 통증이 짜릿한 쾌감으로 변환되었다. 나는 당황하여 션의 팔을 잡았다. 벌린 다리 사이로 들어와 있는 손을 내려다보는 꼴이 되었다. 수치심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음란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중요한 문제가 있다.

“기다려, 아직 관장을 하지 않았어. 아침에 샤워한 후로 제대로 씻지도 않았고.”

평소라면 바에 가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 둔다. 하지만 오늘은 단순히 술을 마시러 갔던 것이라서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문 앞에서 기습당하면서 흥분해서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히 깨끗하지 못한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션은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웃음을 온 얼굴에 가득 담았다.

“괜찮습니다. 전혀 신경 쓰이지 않으니까. 저도 아직 샤워 안 했고요.”

그것이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가 밀어내려고 하기 전에 션은 고개를 숙여서 다시 내 입술에 입술을 겹친 채로 손을 움직였다. 몇 번 안을 벌려서 자극을 주고는 빠져나간다. 뒷구멍이 애를 태우며 벌름거렸다. 션이 협탁에서 일회용 젤을 꺼내어 포장을 뜯었다.

“윽.”

차가운 감촉에 소름이 돋았다. 젤을 끌고 손가락 두 개가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안을 부드럽게 부비고 벌리는 움직임에 저도 모르게 허리가 들썩였다. 션이 다른 쪽 손으로 성기를 쥐었다. 그리고 곧 생각이 바뀐 듯 허리를 앞으로 내밀어서 자기 것을 내 것과 겹쳤다. 흘러내린 쿠퍼액으로 미끌거리고 비벼지면서 금세 흠뻑 젖는다.

뒤에서도 질척한 소리가 났다. 손가락은 어느 틈에 세 개나 들어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자유롭게 움직일 만큼 길이 들어도 션의 성기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지금까지 줄곧 원나잇만 했으므로 스쳐 지나간 상대의 숫자가 결코 적었던 것은 아니지만, 션은 그중에서도 인상에 남을 정도로 굵고 길었다.

“아, 윽!”

몸속으로 그것이 파고드는 순간 저절로 등이 젖혀지고 엉덩이가 도망치듯이 뒤로 빠졌다. 션이 온몸으로 나를 끌어안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잡아당겼다. 귀두가 힘겹게 비집고 간신히 들어오는 것에 비해서 일단 그것만 통과하고 나면 흠뻑 적신 젤과 콘돔의 힘을 빌려 뿌리 끝까지 쑤욱 들어오는 것은 의외일 정도로 쉽다.

“아, 아, 하, 하.”

나는 밭은 숨을 내쉬면서 션의 어깨에 매달렸다. 소리 내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션이 “괜찮아요?”라고 다정하게 물으면서 입술이며 턱에 반복해서 키스했다. 부담감 때문에 꿈틀꿈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항문이 조여들고, 션의 두꺼운 뿌리가 예민한 곳을 문지른다. 션도 내가 경련하는 것에 보조를 맞추듯이 살며시 허리를 돌렸다. 눈물이 핑 돌아서 나는 션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션은 그대로 나를 꽉 끌어안은 채 5분 정도 가만히 있었다. 고조되는 감각에 바들바들 떨면서 나는 온몸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어리광을 부리는 듯한 콧소리가 멈춰지지 않는다. 그와 섹스 할 때는 이 감각이 정말 참을 수 없이 좋다. 이렇게 인내심 있게 안아 주는 상대는 흔하지 않다.

“기분 좋아요? 엘리엇 씨, 저는 지금 정말 좋아요.”

“아흣, 션, 이제……!”

마침내 내가 최고로 고조되어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자 그가 달래듯이 뺨을 어루만지고 내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가볍게 안은 채 몸을 일으켰다. 마주 보고 안은 채로 나는 바들바들 떨었다. 이 자세로 부둥켜안으면 지독한 결합감을 둔중한 뇌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지 쾌락이 정신을 완전히 압도하고 만다.

감당하기 어려운 감각의 해일에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헐떡거리자 션이 내 등을 어루만지면서 천천히 뒤로 누웠다. 션은 마주 앉은 자세를 좋아하는 듯했지만, 내가 워낙 감당하지 못하니까 강요하지는 않는다.

션을 내려다보는 자세가 되어 나는 간신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땀에 젖은 배와 가슴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그 피부가 부드럽고 따뜻하며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움직인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조형한 것이 아님에도 피그말리온의 기분을 이해할 것처럼 된다.

나는 천천히 허리를 위로 들었다가 내렸다. 느릿하게 시작된 움직임은 이내 다급한 들썩임이 되었다. 션이 내 허리를 잡고 격렬하게 위로 쳐올렸다. 매트리스가 출렁거릴 때마다 규칙적으로 안을 쑤셔 대는 쾌감에 교성이 멈추지 않는다.

이내 나는 션의 존재조차 잊고 말았다. 뒤에 가득한 물건을 조이고 풀면서 정신없이 집중하다가 그것이 깊은 곳까지 쿡 쑤시고 들어오는 순간 성기에서 정액이 튀었다.

“아아……!”

나는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오스스 떨었다. 션이 팔을 뻗어서 나를 끌어당겨 자기 몸 위에 눕혔다. 뒤를 채우고 있던 성기가 스르륵 빠져나갔다. 나는 다시 한번 “아…….” 하고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쾌락의 여운이 감전된 것처럼 피부 전체를 떨리게 했다.

션은 그대로 나를 잠시 안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몸을 빙글 돌려 나를 침대에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등골에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무심코 손을 뻗어서 고랑을 손으로 훑자 션이 콘돔을 빼다 말고 화들짝 놀랐다.

“아, 놀랐습니다.”

아직 숨이 가빠서 말로 하지는 못하고 나는 그의 팔뚝 너머로 힐끗 콘돔을 보았다. 다행히도 문제는 생기지 않은 듯했다.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그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여서 내 이마에 키스하고는 뒤처리를 하러 일어섰다.

다정한 상대는 좋아하지만, 이 정도로까지 잘해 주면 역시나 난처한 기분이 든다. 나는 피곤해서 가물거리는 의식을 붙들고 션이 콘돔을 처리하고 옷을 주우러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나에게 호감이 있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보았지만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션 정도 되는 남자가 무어 모자란 것이 있어서. 신분이나 지위, 재력을 떼어 버리고 나면 나는 볼만한 것이라고는 염색하지 않아도 색이 좋은 플래티넘 블론드라는 것 정도뿐인 평범한 남자다.

잠들어 버리면 돌아갈 수가 없으니까 나는 졸음을 깨기 위해 애써 몸을 일으켰다. 젤로 질척거리는 뒤가 자극을 받았지만, 한 번 쏟아 내고 난 뒤라서 조금 거슬리는 느낌이었다. 멍한 머리를 몇 번 긁적이면서 욕실에 들어간 션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반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실루엣이 낯설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관계를 가진 후에 상대가 욕실에 들어가고 그것을 기다리는 경험은 드물었다.

션은 금세 나왔다. 활기 넘치는 몸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그가 젖은 수건을 든 채로 어색하게 웃었다.

“주무실 줄 알았는데.”

“심하게 했다고 생각하는가 보군.”

“좀 체력이 들긴 했지요? 닦아 드릴까요?”

“아니야. 씻어야겠어.”

아무래도 뒤가 신경 쓰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휘청거리면서 침대에서 내려섰다. 어찌나 온몸에 힘을 주고 있었던지 다리가 좀 후들거렸다.

션이 뒤에서부터 나를 끌어안았다. 코끝이 가볍게 뒷목을 문지른다. “왜?”라고 묻자 그가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놓았다. 나는 그에게 먼저 가라고 말하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섹스는 확실히 머리를 비우는 데에 도움이 된다. 우울했던 기분은 흔적도 없었고, 뻐근함도 뜨거운 물에 씻어 보내고 나자 몸에는 기분 좋은 피로만 남았다.

션은 돌아갔겠지.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오자 의외로 그는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아래층 자판기에서 뽑아 왔는지 종이컵에 담긴 커피 두 잔이 김을 모락모락 내면서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커피, 마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는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그의 건너편에 앉았다. 남의 손에서 밀봉되지 않은 음료를 받아 마시는 것은 평소에 꺼리는 일이지만, 익숙해진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끌어당겼다. 마침 카페인이 마시고 싶기도 했고.

정사의 냄새가 도는 모텔 방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섹스 파트너와 앉아 있다니. 경호 팀이 알면 기겁할 일이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입가를 비틀어 웃었다. 아무래도 이만큼 한 사람과 연달아 몸을 겹치면 역시 원나잇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게 되는 모양이다. 잠시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나는 조금 더 웃었다. 션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빙긋 따라 웃었다. 웃을 때마다 부드럽게 처지는 눈이 인상을 좋게 만든다.

“무슨 할 이야기가 있었던 게 아닌가?”

“딱히 용건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엘리엇 씨하고 마주 앉아 있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커피를 마셔 본 적도요.”

“자네는…….”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면 바람둥이일 테고, 자각이 없는 것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 사람이다. 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평소에도 저런 식으로 말하면서 저런 얼굴로 웃어 보인다면 어지간한 여자는 그 자리에서 반하고 말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지적하려다 그만두었다. 대신 종이컵을 들어 올렸다. 예상대로 커피는 밍밍했다. 아일라가 내리는 서투른 핸드 드립보다도 심했다.

“그렇군.”

관계를 한 단계 끌어 올리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몸은 잘 맞는 편이고, 성품이 진실하다는 것도 짐작했다. 준형의 말처럼 이제 스테디 정도는 만드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럴 거라면 션은 차고도 넘치는 상대였다.

“만약에 자네가 싫지 않다면…….”

“예?”

“앞으로도 만나지 않겠나?”

“예?!”

내가 어지간히도 냉정하게 대했었는지, 션은 거의 펄쩍 뛰어오를 지경이었다. 덕분에 커피가 엎어질 뻔했다. 나는 그를 말리고 커피 잔을 테이블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꼬고 등받이에 몸을 젖혀 기대었다.

“연애를 하자는 건 아닐세. 그런 여유도 없고.”

“그, 그러면…….”

“지금보다는 좀 더 좋은 장소에서 하고 싶어. 매번 상대를 찾는 건 좀 지치는 일이기도 하고. 자네를 구속하거나 방해할 생각은 조금도 없네. 다만, 서로 정해진 파트너가 없는 상태라면 굳이 바에서 마주치거나 하는 걸 기다리지 않고 직접 연락하는 쪽이 낫지 않겠는가 하고 말일세.”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내 신분을 밝힐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션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그래도 션은 거절하거나 하지 않았다. 착각인지 몰라도, 거의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아마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타인에게서 그런 종류의 호감을 받아 본 적이 없었으니까. 딱히 션에게 연애 감정 같은 것을 품은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리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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