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 그날의 야간 비행 (9/14)

9. 그날의 야간 비행

곤의 조부와 담판을 본 후, 이튿날 혼인신고를 하고 나서 우리는 바로 휴게소로 향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가도 괜찮은데, 곤은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며 여자에게 전화를 해 차 한 대와 기사 아저씨 한 분을 부탁했다.

그 집 돈 많은 거야 익히 알고 있으니 거리낄 건 없었다. 미안함도 물론 없었고. 다만 곤이 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게 마뜩잖았을 뿐. 곤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어찌 보면 속 편하게 산다, 싶을 정도로 곤은 자기 멋대로 잘 지냈다.

“이을아, 오늘 가면 하룻밤 자고 오는 거야?”

“음, 아니! 우리 바로 집으로 오자. 내가 거기에서 일 안 한 지도 거의 1년 다 되어가니까 아마 우리가 잘 데도 없기는 할 거야.”

“그, 그래! 나도 거기서 인사만, 하고 오자고 하려고 했어. 이을이 너 임신해서 피곤하니까 내가 주물러줘야 되잖아.”

부성 보호를 위해 이연우 경비실장은 나의 근무 시간을 대폭 줄여줬다. 미처 몰랐는데 아파트 시공사 소속의 경비원이어서 어지간한 복지는 다 받을 수 있던 터였다. 경비실장은 자기도 친구가 예전에 임신했었는데 남자여서 그런지 아주 고생을 했다며, 되도록 힘 쓰는 일은 하지 말라고 나서서 말리기도 했다. 할머니를 박대할 때는 그가 나쁘게만 보였는데 그냥 자기 주변은 알뜰살뜰 잘 챙기되 자기 바운더리 바깥의 사람은 배척하는 여느 사람 같았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오늘 알차게 놀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 벌써 휴게소였다. 거의 착취당하다시피 한 전 직장이지만, 그렇게 나쁜 일만 있던 곳은 아니었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이을아, 조심해, 조심.”

이곳은 곤을 처음으로 만난 곳이니까. 그것만으로도 나빴던 일은 모두 상쇄할 만했다.

어김없이 유난을 떠는 곤의 손을 잡고서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키오스크에서 우동 하나, 김치볶음밥 하나를 시켰다. 오기는 왔는데 막상 키우던 강아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기가 뻘쭘해서였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곤은 번호표의 숫자가 전광판에 뜨자 나를 자리에 앉혀두고 카운터로 향했다. 딱히 변한 게 없는 휴게소 식당 안을 둘러보던 나는 내게로 가까이 오는 아주머니 한 분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을이……?”

“아줌마!”

“이을이 맞지? 아이구, 어머나,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여길 다 오고! 아이참, 내 번호 없어? 아닌데, 그때 이사 간다고 했을 때 줬던 것 같은데. 얼굴이 폈네, 폈어! 이 좆같은 휴게소 떠나니까 아주 인물이 훤해졌다. 꼭 다른 사람 같아!”

내 손을 잡고 방방거리며 좋아하는 아주머니는 내게 곤을 누군가 데리고 갔다고, 자기가 말리지 못했다고 원통해하던 사람이었다. 아들딸이 다 대학생이라던 아주머니. 말 많던 아줌마가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자기 할 말만 해대는 게 웃기고 좋아서 헤실거리고 있던 중에 곤이 음식을 받아 왔다. 아주머니는 자기 앞으로 그림자가 지자 고개를 슬그머니 올렸다가 깜짝 놀랐다.

“누, 누구세요……?”

“아줌마, 저, 고, 곤이요.”

“곤이가, 누군데요?”

“곤이…… 저 곤이인데. 기, 기억 안 나요, 아줌마? 이을이네 강아지요.”

“곤, 곤……. 그 큰 개?!”

어머나악―!! 큰 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휴게소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우리에게로 쏠렸다. 곤과 나는 결국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휴게소의 모든 행정 업무를 보는 사무실로 향했다.

점심시간이었던지라 휴게소 직원들 몇몇이 삼각김밥과 샌드위치를 물고서 곤과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곤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내 어깨를 감싸 안고서 턱을 쳐들었다.

어딘가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태도의 곤과 그 옆에서 배를 얌전히 안고 있는 나를 차례로 쳐다본 직원들 중, 생전 할아버지를 아버지처럼 모셨던 아저씨 한 분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을이 네가 키우던 그 개가 실은 수인이었고, 둘이 눈이 맞아서 혼인신고까지 다 마쳤으며 애까지 생겼다, 맞아?”

“네. 나중에 집들이하게 되면 다들 부를게요. 곤이 꽤 잘 사는 집 아들내미더라고요, 덕분에 제가 요즘 아주 호강하고 있어요.”

“어머어머!”

“세상에나―, 아니 둘이 꼭 붙어 다니더니만……. 잘됐네!”

“하이고, 잘되고말고! 둘이 백날천날 붙어 다니는 거 보면서 쟤네는 전생에 연인이었지, 싶었다니깐 내가? 둘이 운명이야, 운명.”

“근데 그 개가 인물이 이리 좋다니. 개였을 때도 참 잘생기긴 했다 했는데 이건 뭐…… 할 일 없으면 연예인 하면 딱이겠다.”

“가, 감사합니다.”

“곤이 아직 말을 좀 더듬어요. 그래도 아기 낳기 전까지는 되도록 고치려고 요즘 매일 밤마다 저한테 책 읽어주고 그래요.”

나나 곤은 별로 한 말도 없었다. 휴게소 사람들이 우리에게 거부감을 갖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우리 둘 앞에서 세기의 사랑이 여기에 있다고 칭송하시는 바람에 얼굴도 들기 힘들었다.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서 이야기를 할 때 뒤늦게 나타난 미주 씨에게 손을 흔들었다. 미주 씨는 내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서 사람들이 다 일하러 떠난 후에 내게 말했다.

“결혼 축하드려요, 이을 씨. 이건 많지는 않지만 축의금이요.”

“악, 뭐 이런 걸 다 주시고 그래요!”

“그냥요, 우리 그래도 나름 이 휴게소 안에서 또래였잖아요. 배 속 아기도 건강하게 태어나길 기도할게요. 좀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이을 씨.”

연차를 쓸 때는 오지게 눈치를 줬지만 내가 휴게소를 떠날 때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미주 씨. 나는 ‘축결혼’이라고 크게 써진 봉투를 코트 안주머니에 넣고서 킁, 코를 먹었다.

“미주 씨 결혼하게 되면 꼭 불러주세요! 우리 친구예요 이제!”

“전 이미 결혼했는데요?”

까르르, 웃는 미주 씨 옆에서 나도 곤의 손을 잡고서 헤헤 웃었다. 새해엔 뭐든 다 잘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 * *

휴게소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결혼 축하도 잔뜩 받고 난 후 곤과 나는 기사님에게 잠시만 더 기다려달라고 한 후 우리가 매일 밤 산책하던 갓길로 향했다. 곧 곤의 옷은 찢어졌고, 내 옷은 바닥으로 풀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짹!”

“컹컹!”

우리가 휴게소에 온 이유 중 가장 큰 게 바로 이 산책로였다. 남들에게는 뭐 이런 데를 오고 싶어 하냐는 소리를 듣기 딱 좋은 초라한 갓길. 하지만 이런 곳에도 꽃이 피고 풀이 자라났다. 곤과 나는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산책로를 날고 뛰며 치유받곤 했다.

아주 오래간만에 강아지로서의 산책을 앞두고 신났는지 꼬리가 떨어지라 흔들어대며 앞발로 땅을 힘차게 파대는 곤의 동그란 머리 위, 쫑긋 솟은 귀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문득 내가 그 애를 보러 가겠답시고 깊은 밤 창공을 가로지르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는 모호했지만, 지금은 안다.

“째―액!”

“컹!!”

그날의 야간 비행은, 너를 사랑하기에 가능했다는 걸.

힘차게 달리는 곤의 머리 위에서 가볍게 날아올랐다. 곤과 나 둘만이 아닌 아이까지 셋이 함께 하는 산책은 힘차고 낭만적이었다.

“짹짹―.”

“컹컹―!”

“째액!”

새로운 시작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개를 되찾는 완벽한 방법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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