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높고 멀리 나는 새(2권) (7/14)

7. 높고 멀리 나는 새



“형아, 형아!”

“어, 어?”

“내가 짬푸! 했자나. 형아 안 밨지?!”

“아…… 미안해. 다시 한번 뛰면 이번엔 진짜로 볼게.”

“꼭이야!”

“응, 꼭.”

그날 이후로 곤에게서 오는 연락은 한 통도 받지 않았다. 보지 않은 메시지는 100통이 너끈히 넘어갔고, 어젯밤에는 하도 전화가 와서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기도 했다. 그날로부터 고작 사흘 지난 후였다. 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단솔 짬―프!”

벤치에서 사뿐히 바닥으로 뛰어 내려가 다시 폴짝 점프하고서 퍽 뿌듯한 표정을 짓는 아이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아이는 박수를 치는 내 손을 조막만 한 손으로 꼭 쥐고는 내 손바닥 안에 제 얼굴을 모로 뉘었다.

“형아, 이제 기분이가 좋지?”

아까부터 펄쩍펄쩍 뛰더니 그게 내 기분을 위해서 한 일이었나 보다. 스물다섯인 나보다 속이 깊은 세 살배기의 말랑말랑한 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피해자였다. 내게도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은 너를 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나는 핸드폰에 뜬 네 이름을 모른 척 뒤집어 안 보이게 만들었다. 대신 나를 걱정하는 어린아이의 볼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마지막으로 본 네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응, 단솔이 덕분에.”

“히이―. 형아두 짬푸하자!”

해맑게 웃는 아이와 함께 낙엽이 쌓인 나무 위에서 몇 번이나 점프를 했다. 경비실장이 대체 세 살배기랑 뭐 하는 거냐고 쫓아와 성화를 부릴 때까지.

* * *

아파트 경비는 주말이라고 꼭 다 쉬는 직무가 아니었다. 스케줄표는 일주일에 두 번만 쉬면 된다는 식의 경비실장 때문에 엉망진창이었다. 한 달 전, 같이 일하던 스무 살짜리 경비원이 배달 일이 더 많이 벌겠다며 잠수 퇴사를 한 후에는 상황이 더 각박해졌다. 더구나 정해진 요일에만 딱딱 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가끔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나올 때도 있었다.

“이을 씨는 잠깐 쉬고 있어. 나 순찰 돌고 오면 같이 라면이나 끓여 먹지!”

“네, 다녀오세요.”

“기운 좀 내고! 요새 뭔 일이 있길래 젊은 사람이 말이야, 청년이 그러면 이 아저씨까지 기운이 빠져. 웃자고, 엉?”

“넵! 다녀오십쇼!”

“그으래애―, 경비실 잘 지키고 있어.”

졸려죽겠구먼, 뭔 기운을 내라는 건지. 새벽 두 시에 기운 넘치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 게 아니겠어요, 실장님?

그렇게 말하는 대신 얼른 넵넵! 힘차게 대답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물론 실장님이 나가자마자 바로 동태 눈깔이 되긴 했지만.

“흐아암―.”

단솔이가 어제 준 귤을 까먹으며 가을 나무라고 하기엔 겨울나무에 가까운 창밖의 나무를 쳐다봤다. 참새로 변해서 날지 않은 지도 꽤 되었구나.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곤을 보기 위해 장장 여덟 시간을 날기도 했는데.

곤을 못 본 지 벌써 일주일도 넘었다. 곤은 이제 메시지도 보내지 않고, 전화도 하지 않았다. 내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메시지를 한 통 보냈더니 그걸 받아들여준 모양이었다. 그러니 내 마음은 편해야 하는데 왜 나는 이런 서운함을 느끼는 걸까.

곤이 강압적으로 군 건 맞지만, 그 애도 놀라서 황급히 내게서 멀어졌던 건 분명했다. 곤은 화를 어떻게 내야 할 줄도 가닥을 잡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우선 내 입을 막는 데에 전전했을 수도 있다. 내가 입만 열면 알지도 못하는 여자와 결혼하는 게 네게 더 도움이 된다고 하니 그게 듣기 싫어서.

곤도 곤이지만, 내가 잘한 것도 하나 없었다. 하지만 곤이 인간으로서의 삶에 적응해나가는 것처럼 나도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인간이 된 곤을…… 내 삶에 전혀 다른 존재로 설정하고 적응할 기간이.

주책맞게 눈물이 흘러서 눈가를 벅벅 문지르는데 핸드폰 액정이 반짝였다. 실장님의 호출인가 싶어서 반사적으로 잠금을 해제한 나는 아예 엎어져 울기 시작했다.

이을아정말정말미안한대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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