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깊은 밤을 날아서 (3/14)

3. 깊은 밤을 날아서

배운 것도 없고, 특출한 재주도 없는 내게 있는 것은 성실함뿐이었다. 성실함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항상성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한데, 먹고살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일정한 루틴을 꼭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특별히 백이 없는 사람들은 사는 게 다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머리는 좋지 않지만 성실하고 젊은 서이을. 그런 내가 생각하기에 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참새가 되어 날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택한 건 야간 비행이었다.

“어제는 괴산 휴게소까지 성공했으니까 오늘은 좀 더 가보자.”

사뭇 가볍게 파이팅을 외치고 참새로 변했으나 입 밖으로는 씨발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찌저찌 날아서 갈 수는 있는데 다시 돌아오는 것이 고역이었다. 참새는 장시간 비행에 강한 새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평소 내가 잘 날지 않기도 해서 더더욱.

날아가는 틈틈이 좋지도 않은 머리로 외운 약도에서의 표지판을 떠올려야 하는 것 역시 힘들었다. 날갯짓도 죽을 둥 살 둥 하는데 머리를 쥐어짜서 지표가 되는 지역 몇 개를 곰곰 생각해내야 곤에게 갈 수 있었다. 그것도 무려 다섯 시간 이상의 비행을 통해서.

“헉, 헉……. 이러다 나 죽겠는데.”

오늘은 돌아와보니 새벽 세 시가 되어있었다. 저녁을 든든히 먹고 일곱 시에 출발했으니까 도합 여덟 시간 비행한 셈이었다. 곤이 알지도 못할 거고, 딱히 알게 하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고생고생하는 건 분명했다. 여덟 시간 비행이라니…… 원래 나는 하루 30분도 안 나는 게으른 참새였는데.

“아고고고―.”

날갯짓이 좀 과했는지 인간으로 변한 후에도 괜히 겨드랑이께가 뭉친 것 같아 주먹으로 통통 두들기다가 잠이 들었다.

곤과 세 번째 이별을 겪은 지 꼬박 2주째 되는 밤이었다.

* * *

어젯밤에는 무려 아홉 시간 동안의 비행에 성공했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만약 내가 인간 형상으로 그만큼 움직였으면 헬창이 되고도 남았을 운동량!

과자를 다 먹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가겠다고 말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미주 씨?”

“네.”

나는 미주 씨를 찾아갔다. 지난달에 하루 쉬었다고 가차 없이 내 일급을 깠던 미주 씨. 싫은 소리를 하러 온 걸 눈치챘는지 미주 씨는 연기자처럼(당연히 악역) 오른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나를 노려봤다.

“설마 이번 달에도 쉬어야 되시는 거예요?”

보통은 일주일에 이틀씩 쉬는데 나는 주 6일이잖아요, 그것부터 가혹한 거라고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나는 우물쭈물 공손히 맞잡은 손을 딱 붙여 싹싹 비볐다. 내일은 특히 바쁜 금요일이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쉬는 일정을 짤 때도 금요일은 예의상 피하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곤이 과자를 다 먹었을까 봐 너무너무 걱정됐고, 어젯밤 장시간 비행에 성공해 이 자신감을 안고 당장 곤의 집으로 가고 싶었다.

미주 씨는 내가 10년 이상 휴게소에서 살며 성실하게 일하지 않았냐고 생떼를 쓰자 자기 이마를 팍 내리치더니만 신경질적으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휴가원. 나는 세 글자를 보자마자 연달아 다섯 번 허리를 숙여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미주 씨, 진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아예 이삼일 정도 연차 쓰세요. 띄엄띄엄 한 번씩 쉬는 것보다 그게 낫지 않으세요?”

“아이고,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과하게 고개를 조아리던 나는 미주 씨의 말에 조금 감동을 받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이을 씨가 성실하고 착하게 일하신 거 여기 사람들 다 아니까요. 푹 쉬고 다음 주에 봬요.”

미주 씨가 이런 말을 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니! 일이 잘 풀릴 징조처럼 여겨져서 나는 미주 씨가 부담스러우니 제발 좀 가달라고 할 때까지 연방 허리 숙여 인사했다.

사무실에서 나온 다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기지개를 켰다. 오늘만 지나면 이제 오밤중에 쎄가 빠지게 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 나쁜 미주는 없다, 세 번 외치고 열심히 날아가야지. 곤에게로.

휴가원에 금, 토, 일 3일간 쉬겠다고 쓴 나는 쪽지에 몇 개의 이정표와 곤이 사는 곳의 주소를 적고서 입 안에 넣었다.

‘됐어, 이제 쉬지 않고 날기만 하면 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작은 참새지만 날 때의 마음가짐은 독수리보다도 용맹했다. 휴게소 구석에 자리한 콩알만 한 내 집에서 나와 나는 괜히 가슴털을 크게 부풀렸다.

‘나는 독수리다, 독수리다, 독수리다!’

탁, 탁 땅을 몇 번 박찬 나는 쪽지가 나오지 않도록 혀 밑에 쪽지를 숨기고서 큰 소리로 외쳤다.

“짹―!”

깊은 밤을 날 시간이었다.

* * *

저녁 여덟 시에 출발했으니 지금은 한 열두 시 정도 되었으려나?

한 달 내내 야간 비행을 했으니 장시간 비행에 좀 익숙해질 만도 한데 영 몸이 안 좋았다. 어쩌면 한 달 내내 그렇게 날아대서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생활도 오늘이면 끝이니까. 아니구나, 돌아올 때 또 날아야 하는구나…….

입 안에서 약간 젖은 쪽지를 발과 부리로 콕콕 짚고서 지금 내가 어디쯤 왔는지 확인한 후 작게 한숨 쉬었다. 반 정도 왔으니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새벽 네 시쯤에는 도착할 것 같았다. 문제는 곤이 자고 있을지도 모른단 거였다.

강아지였을 시절 곤은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내가 자면 같이 자고, 내가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났으니 아마 지금도 수면 패턴은 비슷할 터였다. 열 시에 자고 일곱 시쯤 일어난다고 하면…… 곤이 있는 방의 창문가에서 꼼짝없이 세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데, 몸이 너무 안 좋았다. 새벽 추위는 참새 형상으로 견디기에 녹록지 않았다. 가뜩이나 요즘 매일 밤중에 날아다니느라 잠도 못 자서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곤이 일어나있어야 하는데…….’

텔레파시라도 보내보자. 되지도 않는 생각을 하며 다시 쪽지를 돌돌 말아 입 안에 넣었다. 지치긴 해도 도약은 여전히 신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야간 비행을 한 보람이 있었다. 중간에 길을 까먹는 일 없이 곤이 사는 집에 도착한 것이다. 사위가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한 걸 보니 곧 있으면 동이 틀 모양이었다. 나는 피곤해서 씀벅이는 눈을 연신 깜박이며 아파트 정문을 넘어 곤이 살고 있는 고층으로 힘차게 날갯짓했다.

“짹, 짹짹!”

쪽지를 뱉어버리고 마음껏 지지배배 울었다. 커튼이 쳐진 어두운 방. 내 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이렇게 으리으리한 건물을 짓는데 성인 남성 주먹보다도 작은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얇은 유리를 썼겠는가.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어 몸을 크게 부풀리고서 우렁차게 짹짹거리기도 하고, 유리에 몸통을 몇 번 세게 박기도 했다. 부리로 쪼아보기도 했으나 유리에는 흠집 하나 가지 않았다.

좁은 바깥 창틀에서 서성거리던 나는 지쳐서 가만히 웅크리기를 택했다. 곤이 계속 자지는 않을 테니까 조금만 추위를 견디면 언젠가는 창문이 열리겠지. 참새는 작으니까 저 방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이틀 내내 곤과 함께 사는 가족의 눈을 피해 숨어있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별거 아니군. 나는 창문에 몸통 박치기를 하느라 온몸이 쑤셔오는 것도 잠시 잊고 뿌듯하게 깃털을 부풀렸다. 살면서 이렇게 장시간 비행을 한 적도 없었고, 심지어 단번에 성공까지 했다. 곤을 만나게 되면 잔뜩 자랑해야지.

남들이야 내가 수인인지 그냥 참새인지 알지도 못할 테니 목청껏 노래를 부르던 때였다.

“이, 이을이……? 이을이다, 마, 맞지?”

“……짹!”

한 달 동안 피죽 한 그릇 못 얻어먹었는지 피골이 상접한 곤이 눈앞에 나타났다.

순간 이렇게 빨리 창문을 열어주다니 정말 텔레파시가 통한 건가, 아니면 내 목청이 자는 강아지도 깨울 만큼 뛰어났던 건가,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그러나 곤의 얼굴을 보니 그냥 잠을 통 못 자고 있다가 창문 한 번 열었을 뿐인 듯했다. 보통 잠이 안 오면 괜히 옷장 문도 열어보고 물도 마시러 나가보고 그러니까. 그런 일상적인 행위가 우연찮게 나의 방문과 겹쳤을 뿐인데도 이게 운명인가 싶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짹짹, 짹!”

“날아서 온, 그런 거야? 너, 너 같은 애기가…….”

“짹!!”

이런 시건방진 놈, 내가 참새로 변해서 좀 작은 거지 건장한 성인 남성에게 애기라니. 못 하는 말이 없었다. 심지어 나는 너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데…….

여차저차 꾸짖고 싶었으나 우선은 좀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곤이 얌전히 내민 두 손바닥 위에 안착해서 작게 지저귀는 소리를 냈다. 혹여나 곤의 망할 부모를 깨우면 안 되니까.

“짹짹―.”

“애기, 이을이 애기.”

한숨 자고 기운 좀 차려서 인간 형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애기 소리 좀 그만하라고 해야지. 곤이 손바닥에 받아준 물을 한껏 들이켜고서 폭닥폭닥한 이불 속에 자리를 잡았다. 노곤하니 아주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듯했다.

* * *

한참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밖이 옅은 하늘색인 걸 보니 그렇게 많이 자진 않은 모양이었다. 침구가 좋아서인지 아주 푹 잔 터라 기분은 최고였다.

폭신한 이불 위를 쫑쫑 뛰어다니던 나는 참새인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곤의 손등 위로 올라가 몇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없는 동안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진 건가, 이 집에서는 애를 굶기나…….

반가운 동시에 속상해서 볼로 날아가 머리를 비비자 곤은 정말 기쁘다는 듯이 웃으며 나를 안아줬다. 인간 형상일 때는 터트릴 것처럼 세게 끌어안더니만, 양심은 있는지 참새는 아주 살며시 안아주는 게 웃겼다.

“이을아, 나 이을이 보고 싶다……. 참새, 참새도 너―무 귀여운데, 사람 이을이.”

“짹!”

이거 또 인간으로 변하면 뽀뽀하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곤에게 약했다. 곤이 강아지든, 인간이든 간에 내가 이 애에게 약한 건 불변의 사실이었다.

곤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빙 돌며 난 후에 인간으로 변했다. 당연히 알몸이었고, 곤이 그런 나를 노골적으로 바라봐서 얼른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나 입을 옷 좀 주라, 곤이야.”

“어? 어, 줄게. 잠깐만.”

휴게소 안에 있는 내 집 문짝보다도 커다란 옷장 문을 휙 연 곤은 옷걸이를 뒤적이다가 이내 서랍장도 팍팍 열더니 커다란 티셔츠 하나와 바지……처럼 보이는 트렁크 팬티를 한 장 건넸다.

“이거 입어, 이을아.”

“나 바지는?”

“바지…… 아, 안 맞을걸……? 너무 째, 째끄매서, 이을이가.”

“야 이, 아니거든? 맞거든? 일단 줘 봐!”

자꾸 내가 작다는 핑계로 바지를 안 주려는 게 괘씸해 티셔츠를 입고서 얼른 바지를 달라고 하자 곤은 추리닝 하나를 꺼내 내게 줬다. 이런 추리닝이 안 맞을 리가 없었다. 없는데…….

“…….”

“거, 거 봐. 애기는 못 입어.”

“애기 아니야, 내가 너보다 다섯 살이나 많으니까.”

“바지 다, 다시 내놔.”

“응…….”

뭔 놈의 추리닝이 이렇게 큰지. 보통 프리 사이즈 아닌가 이런 건? 나는 줄줄 흘러내리는 추리닝을 잡다가 현타가 와서 그냥 곤에게 바지를 도로 벗어 주었다. 그래도 딱히 상관은 없던 게, 티셔츠도 워낙 커서 허벅지 반은 가려졌기에. 내가 좀 작긴 작은가. 머리를 긁적이다가 작으면 또 어떤가 싶어 곤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곤은 내가 옆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깨에 머리를 누이더니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어디 아픈가, 했는데 손장난을 치는 걸 보니 그냥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보고 애기라고 하더니만 정작 갖은 애기 짓은 자기가 다 하는 곤의 볼을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곤은 얌전히 쓰다듬을 받다가 갑자기 뽀뽀를 하고 싶어졌는지(왜 뽀뽀광이 된 걸까. 정말 모르겠다) 내 손바닥에 자기 입술을 마구 비비다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오, 오늘 아줌마랑 아저씨 집에 어, 없어. 편하게 있어, 이을아.”

“아줌마랑 아저씨? 엄마 아빠 말하는 거야?”

“엄마 아빠 없어, 나. 나는 이, 이을이 있잖아. 이을이만 가족이야.”

사람을 하대하는 게 퍽 익숙해 보이던 여자의 얼굴을 떠올렸다가 곤이 한 달간 그런 시선을 받았을 걸 생각하니 나도 기분이 나빠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곤이만 가족이야. 알지?”

“그, 그럼! 알지.”

“알면 됐어. 오늘 집에 사람 없다니까 다행이다. 한숨 더 잘까?”

“뽀뽀하고, 그러고 자자.”

이젠 물어보지도 않고 저 혼자 결론을 내린 다음 입술을 찍어버리는 곤의 품에서 나는 다시 잠들었다.

두 번째 잠은 좀 길게 잤다. 곤은 나보다 조금 더 늦게 일어났는데 일어나자마자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이나 깊이 숨을 들이마셔서 조금 짠했다.

강아지였을 시절에 곤은 꼬순내가 많이 났다. 안 좋은 일이 있는 날 나는 곤의 앞발에 코를 묻고서 킁킁거리다 잠들곤 했고, 그럴 때마다 곤은 싫고 귀찮을 법도 한데 얌전히 내게 앞발을 내어주곤 했다.

내 냄새도 곤에게 위로가 되는 걸까? 잠이 덜 깼는지 눈꺼풀을 느릿하게 끔벅이며 뺨이며 코를 문지르는 곤의 뒤통수를 쓰다듬어주었다. 하루 종일 이러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 배 안 고파?”

“응?”

“얼굴이 많이 말랐어. 볼이 쏙 들어가서 불쌍해 보여, 곤아.”

“응…… 이, 이을이가 준 과자 먹었는데. 왜 그러지?”

설마 과자만 먹은 건가……? 놀라서 과자 말고 다른 건 안 먹었느냐고 묻자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다.

“아, 아저씨가 밥 먹자, 하면 밥 먹어야 돼. 밥 먹었어, 이을아.”

“그랬어? 그럼 과자는?”

“과자는 이, 이을이…… 이을이 생각날 때마다 하, 하나씩만. 딱 하나만 먹고 잤어. 하나 줄까?”

“과자가 아직도 남았어? 그냥 다 먹지.”

“이을이랑 같이 먹으려고. 여기!”

잠기운이 사라진 곤은 침대에서 재빠르게 내려가더니 책상 서랍 깊숙한 곳까지 팔을 뻗더니 아주 작게 변한 노란색 봉지를 꺼냈다. 내가 사준 옥수수깡이었다.

“아―.”

“……아―.”

“맛있어서 아, 아껴 먹었어. 이을이 오면 주려고.”

“응, 고마워, 곤아.”

한 달간의 습기를 먹어 눅눅해진 옥수수깡을 천천히 녹여 먹었다. 곤의 품에서 먹는 눅눅한 옥수수깡은 내가 먹었던 어떤 과자보다 맛있었다.

* * *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줘야겠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간 한도 끝도 없이 늘어져있느라 곤에게 식사 한 끼도 제대로 못 해줄 것 같아서 티셔츠만 입은 채 곤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밥 해줄게. 곤이 부엌에 나 데려다줘.”

“애, 애기구나 진짜?”

“뭐라고?”

“부엌도 모르고―.”

애기, 애기, 하며 곤은 볼에 쪽 입을 맞추고선 나를 부엌으로 끌고 갔다. 얘가 도대체 서울에 살면서 뭘 보고 접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네. 왜 나한테 애기라고 하는 것이며, 뭐만 하면 뽀뽀하는 것도 그렇고…….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할지를 몰라서 그냥 부엌으로 가 냉장고 안을 살폈다. 김치 냉장고가 따로 있어서 잘 익은 김치를 한 포기 꺼내서 물에 박박 씻었다. 나는 좀 매운 걸 좋아하지만 곤은 인간으로 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자극적인 건 못 먹을 것 같아서.

곤은 내가 물에 씻은 김치와 양파, 베이컨을 써는 모습을 졸졸 쫓아다니며 지켜봤다. 자기가 직접 식재료를 썰어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나는 위험한 건 하게 해줄 용의가 없었다. 이따 밥 볶는 건 시켜볼 수 있겠지만.

“앉아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면 얼른 해줄게.”

“옆에서 보면 아, 안 돼?”

“불은 위험하니까. 금방 끝나니까 앉아있자.”

“알겠어어…….”

여전히 강아지처럼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뭐 하나라도 도와주려 하는 게 기특하고 귀여웠지만 나는 나대로 곤이 다칠까 봐 걱정됐다. 그래서 식탁을 가리키며 앉아있으라고 하자 곤은 서운한 내색을 하면서도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그게 꼭 강아지였던 시절 간식을 기다리는 모습 같아서 베이컨을 볶으며 웃었다.

밥만 좀 더 볶으면 되겠다. 한참 프라이팬 안의 재료들을 뒤적이던 나는 하도 조용해 고개를 돌렸고, 그러자 무릎 위에 가지런히 양손을 올린 채 내가 무슨 말을 하기만 기다리는 곤이 보였다.

“이을아아―. 아, 안 힘들어?”

“하나도 안 힘든데. 왜, 도와주고 싶어서?”

“응!”

“그럼 이리 와봐. 밥은 같이 볶아보자.”

의자에 앉아 애타게 보는 게 귀여워 이리 와보라고 손짓하자 쪼르르 곁으로 온 곤에게 나무 주걱을 쥐여주고서 곤의 손을 잡았다.

“불은 뜨겁잖아, 그러니까 프라이팬도 엄청 뜨겁거든. 그래서 꼭 이렇게 손잡이를 잡고서 음식을 해야 돼.”

“이, 이렇게 잡고…….”

“왼손으로 잡고서, 오른손으로 주걱 들었잖아. 이 주걱으로 살살 밥이랑 재료들을 섞으면 돼. 같이 해보자.”

힘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것 같아서 곤의 오른손을 토닥이며 밥알과 재료들이 잘 섞이도록 천천히 주걱을 움직였다. 곤이 덩치가 커서 내가 곤의 품에 들어간 채 음식을 하는 꼴이 되었으나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어떻게든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되니까.

김치를 씻는 바람에 하얀 김치볶음밥이 되었지만 냄새는 너무너무 좋았다. 나는 완성되었다는 말에 뒤에서 나를 끌어안은 채 쉬지 않고 쪽쪽대는 곤에게 그만 좀 하라고 말했고, 곤이 싫다고 칭얼거리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남자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누구신데…… 내 집에 들어와계시는 거죠.”

“아, 아저씨.”

곤과 똑같이 생긴 남자에게 곤은 아저씨라고 했다.

아저씨라고 불린 남자는 나를 아래위로 훑더니 아, 하고 박 터지는 소리를 냈다.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여자에게 이미 하대란 하대는 다 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자와 함께 사는 남자도 나를 비슷하게 하대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남자는 특별히 심사 뒤틀리는 말을 하지 않고서 명함을 건넸다.

“아들을 키워주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명함 드릴 테니 나중에 필요한 일이 있으면 아들 편으로 연락 주시면 조치 취하겠습니다.”

“아, 예…….”

“손님 대접 잘해드려라, 곤.”

곤에게 이 새끼, 저 새끼 하던 여자와 달리 이름을 똑바로 불러준 남자는 곤을 쓰다듬고 싶었는지 손을 뻗었다. 그러나 곤이 내 뒤로 쏙 숨어드는 바람에 그럴 수는 없었다. 곤은 자기 엄마인 여자를 대할 때처럼 적대적이지는 않았으나 남자를 사람 취급도 안 했다. 들어와도 인사도 안 하고, 나가도 인사도 안 하고.

곤이 또 목덜미를 쪽쪽 빨기 시작해 나는 보고 있던 ‘재무이사 이상훈’이라고 적힌 명함을 대충 트렁크 팬티 고무줄에 끼워 넣었다. 그러고는 김치볶음밥을 그릇에 소복하게 담았다. 곤은 말랐으니까, 나는 날아오느라 고생했으니까 둘 다 고봉밥으로.

계속 내 곁만 쪼르르 쫓아다니는 곤에게 수저와 젓가락을 놓고 냉장고에서 간단한 찬 좀 내놓으라고 시켰다. 지금이야 밥상 차리는 것이며 식사 때를 맞춰 밥을 먹는 것이며 모두 이상하고 약간은 버겁겠지만 슬슬 혼자서도 밥을 먹어야 했다. 그래야 저렇게 마르지 않지. 스무 살밖에 안 된 애가 젖살이 하나도 없는 게 말이 되나.

“곤이는 무슨 반찬 좋아해?”

“이을이 반찬.”

“……말을 말자.”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랬더니만 한참 보기만 하고 딱히 꺼낸 게 없는 곤에게 무슨 반찬을 좋아하냐 물어보니 헛소리를 해서 그냥 나 먼저 밥을 떴다. 냄새만큼이나 볶음밥 맛이 괜찮았다.

“먹어봐, 맛있어 곤이야.”

“응. 음…… 맛있어!”

“맛있지? 많이 먹어, 다 먹으면 또 줄게.”

후후 불어 한 입 먹더니 입맛에 맞는지 허겁지겁 먹는 곤이 짠했다. 이놈의 집구석, 애한테 밥도 제대로 안 주고 뭐 한 거야. 먹은 게 없으니 이런 볶음밥에도 눈 뒤집고 달려들지…….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서 내가 먹는 걸 또 옆에 와서 보는 곤의 허벅지를 툭툭 두들기고서 천천히 식사를 했다. 지난 한 달간 통 입맛이 없었는데 곤과 함께 먹으니 입맛이 좀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이, 이것두 먹어, 이을아. 이거는 장조림.”

“맛있는 거 많다. 곤이는 더 안 먹어도 돼?”

“이따가. 지금은 이을이 먹는 거 볼래.”

“맘대로 해.”

“응―.”

내가 먹는 걸 구경하겠다던 곤은 손을 잠시도 쉬게 하지 못했다.

맨 처음에는 머리였다. 내 머리칼을 가닥가닥 흐트러뜨리며 쓰다듬는데 그러고 싶은가 보다, 하며 그냥 뒀더니 그다음은 볼이었다. 곤은 볼을 자기 손등으로 살살 매만지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 이을아…… 잘 먹어야 돼. 너는 하, 한 그릇 더 먹어.”

“나?”

“그래, 너. 이게 뭐야, 응?”

“아하하! 간지러워, 하지 마―.”

“배도 납작하고, 마, 만질 것도 하―나도 없어.”

만질 게 없어도 실컷 만지고 있잖니……? 목덜미부터 허리 끝까지 손가락으로 가볍게 훑은 곤은 울상을 짓고서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게 자기가 불쌍한 척을 하면 내가 마음 아파하는 걸 필시 알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구는 거야.

식사 중은 고사하고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만져진 적이 없는 터라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게 식사를 마쳤다. 곤은 식사를 다 마친 후 설거지까지 싹 끝낸 내 곁에서 떨어지질 않다가 고무장갑을 벗은 순간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으억!”

“내, 내 방 가서 놀자. 이을이는 가만히 있어. 힘드니까.”

“억, 곤아, 잠, 악!”

안는 건 아기 안듯이 가볍게 안더니 우당탕탕 뛰는 바람에 온몸이 덜그럭거렸다. 이렇게 안겨서 가는 게 더 힘들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찼으나 곤이 너무 뿌듯한 표정을 지어서 나는 그냥 비명만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곤은 그냥…… 자기 마음대로 굴었고,

“하, 하나도 안 힘들었지, 그치, 이을아?”

“응……. 고마워…….”

귀여우니 조금만 봐주기로 했다.

* * *

방에서 놀자던 곤은 자기 책상에 나를 앉히고서 자신이 요즘 공부 중인 교재들을 잔뜩 보여줬다. 한글, 영어, 수학 등 어렸을 때 흔히들 하는 학습지가 즐비했다.

곤은 연필을 어설프게 쥐고서 서, 이, 을, 천천히 또박또박 내 이름을 적었다. 하도 힘을 줘서 적는 바람에 종이에 자국이 세게 남은 게 귀여워 속없이 웃다가 볼에 입을 맞췄다. 그런 후에는 내가 곤의 이름을 적어줬다. 곤. 한 글자를 적자 그 애는 곤의 앞에 ‘이’를 적었다.

“나 이, 곤, 이야. 이을이는 서이을.”

“이곤. 절대 안 까먹을게.”

“두 글자라서 좀, 음…… 특…… 특, 뭐더라.”

“특별해.”

“응! 트, 특별해. 그런데 어, 이을이는 서이을이라 더, 더 특별해.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이름이야.”

이을이라는 이름의 뜻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두 이에 갑을병정, 할 때 을. 두 번째이면서 을로 살라고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욕심 없이 남들 위해서 살라고. 그게 내 분수에 걸맞은 이름이기는 하지만, 어렸을 때는 너무 싫었다.

이건 을의 인생도 아니고 정 정도의 인생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일갑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시지. 그러면 병 정도의 인생을 살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지질하고 한심한 인생. 그마저도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이름이 싫다는 생각도 안 하게 되었다. 삶이 너무 바빠서. 별것도 없는데 아주 바쁘기만 오지게 바빴다.

좋아한 적 없지만 곤이 특별하다고 해주니 또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되는 내 이름. 노트의 빈칸에 공들여 이을, 쓰고서 뒤에 작게 하트를 그렸다. 곤의 이름 주변에는 이미 열 개도 넘는 하트를 그려준 후였다.

“내 생각에도 이름이 특별한 것 같아. 이응이 두 개나 있잖아, 그치?”

“이, 을. 엄청, 엄―청 이쁜 이름이야, 이을아.”

곤이가 예쁘다고 해주니 또 엄청 괜찮은 이름 같네. 그렇게 생각하며 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내 강아지에게 이름이 예쁘단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이것도 괜찮은 인생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반려동물과 대화하고 싶어 하기 마련인데 나는 이제 그게 실제로 가능한 사람 아닌가?

이을과 곤을 한데 몰아 쓴 후 커다란 하트로 감싸줬다. 곤은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히히 웃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한참 이름을 쓰고 놀다가 내일 늦은 오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휴게소에 가야 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침대에서 내 배며 가슴을 조물조물 나물 무치듯 만지는 곤에게 말했다.

“곤, 나 내일 가야 돼.”

“뭐, 뭐?! 안 돼!!”

당연한 일이지만, 곤은 냅다 소리를 질렀다. 분명히 방금 전 이름을 쓰고 같이 한글 공부를 할 때까지만 해도 ‘어휴, 이런 아기 강아지!’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순했으나 가야 된다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곤은 셰퍼드처럼 광포해졌다. 발을 쿵쿵 구르고 주먹으로 침대를 치며 씩씩거리는데 저 손이나 발에 맞으면 난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무뢰배처럼 굴면 아무도 너랑 친구 안 해줄 거라고 말하려다가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고서 씁―, 혼낼 때처럼 숨을 들이마셨다. 살짝 미간을 좁히자 곤은 다부지게 쥐었던 주먹을 풀고 베개를 끌어안았다. 베개에 얼굴을 박는가 싶더니 눈만 살짝 들어 올려 나를 보는 게 가증스럽고 깜찍했다.

강아지였을 때도 훈육은 내 나름대로 호되게 하곤 했다. 때리지는 않았지만 멋대로 구는 것은 용납 못 했다. 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간 함께 살 수 없었으니까. 이제 곤은 인간으로 살아야 했다. 그러니 그에 맞는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로 보이는 그 여자에게 곤을 맡겼다간…… 됐다, 말을 말자.

“매일 만날 수는 없어. 그러면 좋겠지만, 내가 일하는 곳은 곤이 지금 사는 곳과 멀리 떨어져있잖아. 곤도 알고 있지?”

“……그치만, 이, 이을아, 나는 매일 네 생각만 하는데…….”

“나도 매일매일 곤이 생각해. 그렇다고 해도 같이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어른이니까.”

“나는, 어른 된 지 얼마 안 됐어.”

“그럼 너 애기야?”

“애기는! 이, 이을이 니가 애기고.”

내가 왜 애기인데, 도대체……. 그러나 곤의 말꼬리를 잡아서라도 같이 있기는 힘들다고 박박 우겨야 했다.

“애기 같지만 나는 꾹 참는 거야. 곤이 보고 싶어도 ‘몇 밤만 더 자면 곤이 또 볼 수 있으니까 참자!’ 하고 참는 거라고. 사람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 세상에 질서가 없어져.”

“……몇 밤, 더 자면 또 봐, 우리?”

“그거는……. 잠깐만, 너 핸드폰 좀 줘봐. 그 아저씨한테 연락 좀 해야겠어.”

“으응.”

곤은 선뜻 내게 핸드폰을 줬다. 핸드폰을 받은 김에 나는 내 번호도 서이을로 저장한 후, 팬티에 챙겨 놨던 명함을 꺼내 문자 메시지를 한 통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 곤이 친구 서이을이라고 합니다. 다름 아니라 내일 개인적으로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시간 되시나요? 아내분은 빼고 둘이서만요. 긴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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