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강아지가 사라졌다
곤이 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어쩌다 태어났는지 모를 내게 곤은 유일한 또래 친구였다. 그게 비록 개라고 할지라도.
나는 부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게 보호자로 주어진 것은 처음부터 조부모뿐이었지만, 내 주위에 소위 말하는 정상 가족이 없다 보니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은 조부모도 조부모지만 휴게소에서 일하는 어른들에게서 배웠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나를 가엾게 여겼던 듯하다. 부모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랑 사는 애.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게 딱히 불쌍한 유년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의 생각과는 별개로 어른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준 덕분에 의무교육은 받을 수 있었다. 휴게소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하는 터라 학교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갈 수 있게 어른들이 도와줬다. 덕분에 나는 또래 친구 하나 없이 중학교 졸업을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 앨범은 없고 졸업식은 참석했으나 나와 같이 사진을 찍어줄 아이는 없었다. 그래서 사진 속의 나는 멋없이 풍성하기만 한 꽃다발을 들고 입만 쭉 찢어 웃고 있다. 좋아하는 사진은 아니지만 교복을 입고 꽃과 함께 찍은 사진이 싫지는 않아서 버리지는 않았다.
호오가 불분명한 내 성장기는 이상한 성정의 어른으로 자라기에 딱 좋았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게 나쁘진 않으나, 그게 유년기와 청소년기부터 그렇다면 분명 안 좋은 영향을 줄 게 분명하니까.
앙앙!
……니 주인 어디에 있어?
앙!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도와 휴게소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작은 쓰레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줍는 게 내 일이었다. 네다섯 살 된 아이가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작은 몸은 어른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날래게 들어갈 수 있었다. 더하여 친구도 놀이터도 없는 곳에서 어린아이의 에너지 발산 방법은 여기저기 쏘다니는 것뿐이라 나는 맡은 일을 꽤 잘 해냈다.
벌써 20년 전 일이지만, 주차장에서 벌벌 떨던, 연한 갈색과 밝은 회색이 섞인 털의 강아지를 만난 일은 잊지 못한다. 강아지는 나를 보고 새된 소리로 짖었다. 너무 예쁜 강아지였다.
주인이 올 때까지 같이 있을게.
주머니에서 할머니가 몰래 챙겨준 주먹밥을 꺼내 우물거리다가 강아지가 낑낑거리기에 반을 내어주었다. 킁킁 냄새를 맡은 강아지는 이내 그걸 다 먹고서 또 달라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래서 반의반을 또 주었다. 강아지가 하도 맛나게 먹어서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해가 질 때까지 그 강아지 곁을 지키고 있었다.
이을아, 아이구,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얼마나 널 찾아다녔는지 알아?
하, 할머니, 할아버지…….
어디 탈 난 데 없으면 됐다. 가자.
저기, 강아지가 있어요. 강아지가 혼자서요.
내 카디건 위에서 잠든 강아지를 가리켰다. 저녁이 될 때까지도 강아지의 주인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예쁜 강아지를 누가 버리지는 않았을 테니 주인이 금방 데리고 갈 게 분명하다, 그러면 다시 이 강아지를 볼 수 없을 테니 그때까지만이라도 보고 있어야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해가 넘어가고 달이 그 자리를 차지할 때까지 강아지를 찾으러 온 사람은 전무했다. 힘차게 짖던 강아지는 잠들고, 다섯 살짜리 남자아이는 다리를 못 펼 정도로 오래 쪼그려 앉아있었는데도.
할머니와 할아버지 말로는 강아지를 두고 가자고 하니 갑자기 내가 자지러지게 울었다고 한다. 한 번도 크게 운 적 없는 손자가 악을 쓰며 울 때까지만 해도 강아지를 키우겠다고는 생각지 않았다고. 그러나 내가 아스팔트에 머리를 박아대자 단박에 강아지를 안아 들었단다. 제대로 교육도 못 시키는 손자를 모지리로 만들 수는 없어서.
다음 날 나는 강아지에게 ‘곤’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한 해피나 메리 같은 이름보다 특별해서 단박에 좋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강아지도 이름이 좋았는지 내가 ‘곤!’ 하고 부르면 언제 어디서든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랬던 나의 강아지를 누가 데리고 갔을까.
“이렇게 생긴 강아지 보시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작지만 사례해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주인이랍시고 따라간 개를 뭐 하러 찾느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에게 주먹을 휘두를 용의도 있었다. 곤은 나를 버릴 애가 아니었다. 한 번 버림받았던 곤은 내가 혼자 어디에 갈 때면 옆방 사람들이 욕을 할 정도로 컹컹 짖었다. 매번 휴게소 청소를 함께 다니는데도 내가 눈에 안 보이면 불안한지 이불을 닥닥 긁어 못 쓰게 만들고 대소변을 눠 놓기 일쑤였다. 그런 곤이 낯선 사람을 따라 쫄래쫄래 쫓아갔을 리가.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안 따르던 강아지인데.
휴게소에서 눈에 띄는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전단지를 돌렸다. 6년째 같은 핸드폰을 쓰는 형편인 내게 컴퓨터나 프린터는 사치였다. 그래서 휴게소 점포 사장님들과, 그나마 친한 휴게소 사무실의 토끼 수인 경리 누나에게 이면지를 받아서 직접 전단지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소중한 강아지 곤을 찾습니다>
이름: 곤
나이: 20살
특징: 연한 갈색+연한 회색 털/눈동자는 고동색과 진한 회색이 섞여 무척 매력적임/믹스견(아마 리트리버 쪽이 아닐까 싶음)/꼬리는 숱이 많고 풍성함/매우 큼! 두 발로 서면 170 정도는 훌쩍 넘음/주둥이는 길게 튀어나와 늠름한 생김새
*낯선 사람을 경계합니다! 만약 인상착의와 비슷한 강아지를 보신다면 꼭 아래 번호로 연락 주세요!
주인 서이을 연락처: 010-XXXX-XXXX
강아지를 찾아주시는 분께는 사례금 100만 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