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1권) (1/31)


한낮에도 어두운 방이었다. 커튼을 걷어도 빛이 스미기엔 창이 좁았다. 꿉꿉한 곰팡내와 짙게 묵은 담배 냄새. 이미 벽지 구석까지 좀먹은 냄새라 아무리 환기를 해도 사라지질 않는다. 그래도 시도는 했다.

아이가 고사리손을 뻗어 창문을 열고 책가방을 구석에 던졌다. 엄마는 없었다. 집에 있었다면 창문 열지 말라고 화를 내며 이불을 뒤집어썼을 텐데, 일이 있는지 이불 깔려 있는 곳이 판판했다. 구석에 굴러다니는 소주병을 한군데로 밀고 옆에 있는 재떨이를 들었다. 이가 빠진 재떨이에 대가리가 꺼멓게 익은 꽁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익숙한 손길로 재떨이를 쓰레기통에 비우고 물로 깨끗이 씻어놓았다. 예전에 바닥까지 꽁초가 흘러내린 재떨이를 방치했다가 이런 거 하나 안 치우고 처자냐고, 너 따위 낳는 게 아니었다며 빗자루로 호되게 얻어맞았다. 본인의 심기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언제나 그랬다. 똑같은 꾸중을 듣고 싶지 않아 군말 않고 지저분한 방을 주섬주섬 치웠다.

대충 정리를 끝내고 냉장고를 열었다. 시어 빠진 김치와 찬밥이 남아있었다. 뚜껑을 열고 킁킁댔다. 배 속에 들어가도 탈 날 정도는 아니라 밥을 물에 말아 대충 허기를 채웠다.

방이 너무 어두웠다. 전등을 켤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티브이 전원 버튼을 눌렀다. 회색 화면 가운데에 하얀 선이 번쩍했고, 다음에 형광등이 켜진 것처럼 방이 밝아졌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밝은 음악이 학교 쉬는 시간처럼 시끄러웠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화면 안에 있는 이들이 끝도 없이 웃었다. 그곳만 햇볕이 내리쬐는 천국인가 싶었다. 저도 그 안으로 들어가면 기쁠까, 혹시 모를 희망을 가지고 손을 뻗었다. 딱딱한 유리 벽만 손끝에 닿았다.

화면 위를 맴돌던 손은 그 안으로 스미지 못하고 볼륨 버튼만 꾹 눌렀다. 방 안이 남들의 웃음소리로 시끄러워졌다. 아이가 홀린 듯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아이의 축 처진 입가에도 나지막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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