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아이고, 날이 와 이래 춥노.”
집으로 들어오며 부공태는 몸서리를 쳤다. 아직 가을인데도 날씨가 영 쌀쌀한 것이, 이번 겨울은 지독하게 추울 것 같았다.
그는 추위를 잘 타지 않으니 겨울이 딱히 두렵지 않았다. 문제는 자신의 애인이었다.
“우리 설이가 마이 춥어할 낀데.”
주희설은 몸집이 작아서 그런지 추위를 많이 탔다. 이번 겨울에도 아마 꽤 고생을 할 터다. 그 걱정 때문에 이번 겨울이 많이 춥지 않길 바랐다.
그는 오피스텔로 들어오자마자 보일러 온도를 높였다. 그리고 요리를 시작했다. 오늘도 밤늦게 퇴근할 애인을 위해 야식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주희설은 부공태가 해 주는 요리를 좋아했다. 덕분에 부공태는 요즘 팔자에도 없는 요리 연습을 하느라 바빴다. 고 조그마한 입으로 오물거리며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요즘 야식을 많이 먹인 탓인지 주희설은 살까지 조금 쪘다. 비쩍 마른 예전보다 훨씬 보기 좋아 다행이었다. 본인은 관리를 해야 한다며 난리를 부리지만 말이다.
“마, 지금도 삐 밖에 읎는데 머를 관리를 한다꼬, 참내….”
주희설은 알고 있을까. 자기가 얼마나 저를 걱정하는지.
먹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요즘 주희설은 일을 하느라고 늘 늦게 귀가했다.
“같이 살믄 뭐 하노. 애인이 일을 한다꼬 집에 오지도 않는구마.”
재료를 정리해 냉장고에 넣으며 그는 꿍얼거렸다.
주희설과 산 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그러나 신혼 기분보다는 오히려 주말부부 같은 기분이 더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주희설에게 떼를 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부공태는 자신의 애인이 얼마나 일을 사랑하는지 알았다.
그리고 그 으리으리하고 사람 냄새 안 나는 저택에서 자신의 오피스텔로 이사를 와 준 것만 해도 고마웠다.
물론 이렇게 같이 살기까지는 부공태의 피 나는 설득 과정이 있었다.
‘내는 솔직하이 무섭어 가꼬 어쩔 때는 잠도 안 온다 카이.’
설득하기 위해 꺼낸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공태 씨가 뭐가 무서워요.’
‘애인이 언제 위험해질지 모르는데 카믄 안 무습나!’
주희설은 생각 이상으로 둔했다. 그리고 은근히 무심했다. 뭐랄까, 오랫동안 혼자 산 사람의 무심함이라고 해야 할까. 부공태는 그게 야속하다기보단 안타까웠다.
부공태는 그래서 더더욱 그와 같이 있고 싶었다.
‘납치당할 뻔도 하고, 스토커 새끼덜은 맨날 따라붙고, 칸데 우째 내가 가마이 혼자 살겠십니꺼? 자다가도 우리 배우님 우예 오늘은 괘않은가, 카믄서 벌떡벌떡 깨는데.’
그는 하루 종일 주희설을 걱정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주희설은 지나치게 작고, 약하고, 예뻐서 자기가 지켜 줘야 했다.
‘뭐, 안 그래도 이사 갈 때 되긴 했거든요. 집도 처분할 생각이었고.’
‘진짜예?’
‘네. 제가 하려는 사업이 혹시 망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돈 좀 모아 놓으려고 했죠. 작은 데로 이사 갈까, 하고 있었어요.’
‘카믄 잘됐네! 고민 안 해도 되겠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이 살게 되었다.
부공태는 사실 걱정했었다. 자신이 본 주희설은 착하지만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혹시라도 불편함을 줄까 싶어서 말이다.
다행히도 주희설은 부공태의 집에 잘 적응했다. 두 사람은 집안일로 싸우는 일이 드물었다. 의외로 주희설이 능숙하게 집안일을 하는 걸 보고 부공태는 자신의 편견을 꾸짖었다. 심지어 설거지 비법 같은 것도 오히려 자기보다 더 잘 알았다.
‘예능하면서 배웠어요. 그리고 요즘 이런 거 못 하면 욕먹거든요.’
‘아….’
괜히 숙연해지는 부공태였다.
어쨌든 부공태는 현재 생활에 만족했다. 연인과 하는 동거는 과분할 만큼 즐거웠다. 하지만 주희설도 그런지 알 수 없었다.
홀로 고민을 하며 찌개를 끓이고 졸이며 청소를 하던 중 마침내 주희설이 귀가했다.
“아이고, 우리 배우님, 오늘도 수고 많았심데이.”
부공태는 얼른 그의 가방과 겉옷을 받아 들었다. 건네주는 동작이 이제는 제법 익숙했다.
“일은 잘 됐심꺼?”
“네. 다행히도 연락 돌린 곳들이 다 호의적이에요. 별일 없으면 다 계약할 것 같아요!”
“아이고, 잘됐네예.”
진심으로 기뻐하며 부공태는 그가 벗어 던지는 옷가지를 하나씩 착, 착 받아 한쪽 팔에 걸치고 다른 손으로는 잠옷과 속옷을 꺼내 건네주었다.
“씻고 오이소. 배우님 좋아하는 동태찌개 해 놨심더.”
“하, 진짜 공태 씨 최고.”
곧바로 쪽, 하고 뺨에 닿는 감촉만으로도 가사노동의 보람이 뿌듯하게 차올랐다.
주희설이 씻는 동안 부공태는 동태찌개와 밥을 퍼서 식탁 위에 곱게 차렸다.
주희설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직접 뛰어든 지 이제 약 5개월. 회사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주희설은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사업을 진행해 나갔다. 자기가 인맥을 허투루 쌓은 건 아니라며, 다 사람들 덕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공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주희설에게 특별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끌어들이고 호감을 사는 힘이었다.
주희설은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리 생각하니까 이렇게 사업을 시작할 때 다들 도움을 주는 것이지.
그래서 부공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서 말이다.매니저만 하더라도 이전 연봉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돈을 받으며 주희설이 차린 회사로 옮겨 왔다. 주희설은 자기가 협박을 해서 왔다고 말하지만 그럴 리 없단 사실을 부공태는 알았다.
비록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 협력사가 많아야 한단 사실은 짐작할 수 있었다. 혼자 협력사를 구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런데 주희설은 지금 혼자서 그 힘든 일을 다 하고 있으니 얼마나 바쁠까.
‘병이라도 날까 겁난다 카이.’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병이 안 나는 게 신기할 정도가 아닌가. 주말에도 매일 나가서 일을 하고 야근은 거의 밥 먹듯이 하니.
피곤해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부공태는 마음이 쓰렸다.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 동태찌개보다 좀 더 쓸모가 있는 일을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와, 진짜 맛있겠다.”
씻고 나온 주희설이 식탁 앞에 냉큼 앉았다. 부공태는 그의 앞으로 반찬들을 밀어 주었다.
“마이 드이소.”
“공태 씨는 저녁 뭐 먹었어요?”
“내는 퇴근하믄서 스애임들하고 뭈지.”
“아, 그 오므라이스 잘하는 집요?”
“예. 두 그릇 뭈으이까네 걱정 마이소.”
“두 그릇밖에 안 드셨으면 어떡해요! 어서 더 드세요.”
자기 몫의 밥을 내밀기에 부공태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임니더. 배 안 고픕니더.”
배가 안 고프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주희설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니 말이다.
“오늘은 어땠심꺼, 울 배우님.”
평소처럼 그의 맞은편에 턱을 괴고 앉아 묻자 주희설은 기다렸다는 듯이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아, 오늘 진짜 대박 사건 있었잖아요. 윤시 누나가요, 글쎄….”
주희설은 이렇듯 야근을 하고 와서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종알종알 늘어놓곤 했다. 사소한 것까지 말이다. 덕분에 부공태는 주희설이 차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는지까지 모두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부공태는 그가 수다를 떠는 게 좋았다. 제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알려 주길 바랐다.
그리고 그가 하루 동안 뭘 했는지 낱낱이 알고 싶었다. 이게 옳은 감정인지 알 수 없지만, 원래 다들 자기 애인이 뭐 하는지 궁금해하고 그런 거 아닌가,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 싶었다.
“그래서 윤시 누나가 엄청 화냈어요. 내가 그런 것도 하나 컨트롤 못 할 거 같으냐고.”
“매니저 햄이 잘몬했네. 윤시 배우님 자존심이 을매나 쎈데.”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어휴, 둘이 언제 안 싸우나 몰라.”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 주희설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벌써 배가 부른지 동태찌개를 먹는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더 무이소.”
“아니에요. 저녁을 많이 먹어서.”
“아이고, 우짜노….”
부공태는 꼭 그가 아프다는 이야기라도 들은 것처럼 세상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만든 동태찌개는 주희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기 때문이다.
“제가 마사지 쫌 해드리께예.”
“정말요…? 공태 씨도 일하고 오셔서 피곤하실 텐데….”
“으은지. 이래 앉아 보이소.”
그는 얼른 주희설의 뒤로 가서 그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주희설은 금세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좋아했다.
“으응, 시원해요. 응, 거기…. 아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희설의 목소리가 야릇해지기 시작했다.
“응, 아앙….”
‘어깨만 쭈물렀구만, 와 이래 할딱거리노.’
안 그래도 요즘 힘들어하는 그를 위해서 성욕을 꾹꾹 참고 있는데 말이다.
“배우님, 자꾸 그런 소리 내므는… 내가 곤란한데….”
“음.”
‘앗, 죄송해요’라거나 ‘공태 씨도 참!’ 하면서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주희설은 뭔가 고민하는 것처럼 음, 하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게 부공태를 더 환장하게 했다.
그는 제 아랫도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끼며 슬그머니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배우님, 내 화장실 쫌….”
“어디 가요.”
화장실로 도망치려는 그의 손목을 주희설이 턱 붙잡았다. 부공태는 화들짝 어깨를 떨며 놀랐다.
“화, 화장실….”
“혼자서 빼려고요? 안 돼요. 하던 거 마저 하고 가요.”
‘하던 거’라는 말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게 뭔지 부공태는 알 수 있었다. 절대 마사지는 아니었다.
“그, 그게, 배우님….”
부공태는 그답지 않게 몸을 배배 꼬며 잡힌 손목을 풀어 내려 했으나, 오늘따라 주희설이 왜 이렇게 힘이 센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붙잡힌 손을 뺄 수가 없었다.
“하기 싫어요?”
묻는 말에 부공태는 식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기 아이고, 배우님 요즘 힘드신데 그, 그거까지 하믄 영 힘드실까 봐….”
부공태도 남자였다. 그라고 왜 섹스를 하고 싶지 않겠나. 오히려 한동안 못 한 탓에 요즘은 거의 욕구 불만 상태였다. 지금도 그와 접촉 좀 했다고 불뚝 서 있는 똘똘이가 한심할 정도였다.
“내 참. 그게 이유예요? 다른 이유는요?”
“어, 없심더.”
주희설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턱짓을 했다. 그의 아랫도리 쪽으로.
“벗어요, 그럼.”
주희설이 명령하듯 말했다. 명령하는 주희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터라 부공태는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희, 희설 씨.”
“빨리 바지 내리라고.”
“아이고, 음미야, 음미야!”
‘음미야’를 연달아 외치는 부공태를 주희설은 가볍게 제압했다. 그의 가랑이 사이를 덥석 손으로 쥔 것이었다.
“와, 와 이카노, 와 이카노…!”
“와 이카긴요. 공태 씨가 안 벗으니까 제가 직접 벗기려고 그러죠.”
부공태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바지가 끌려 내려갔다. 발기한 페니스가 속옷 아래로 비죽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을 가리지도 못한 채 우물쭈물하고 있자니 주희설의 시선이 그대로 그곳에 닿았다.
‘지금 쩝, 하고 소리 내신 그 긑은데, 아이겠제?’
입맛을 다신 주희설이 그대로 몸을 숙이더니 그의 것을 답삭 물어 버렸다.
“자, 잠깐만예! 꼬치 씻지도 않았…!”
씻지도 않은 것을 감히 주희설의 입에 물렸다는 죄책감에 놀라는 것도 잠시, 주희설은 부공태가 밀어 내기도 전에 그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단단히 붙들고는 발기한 것을 빨기 시작했다.
주희설은 최근 들어 오럴섹스 스킬이 끝내주게 늘었다. 아마 같이 산 이후부터일 것이다. 영민한 그는 뭐든 빠르게 배웠고, 그게 섹스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부공태는 지금 딱 미칠 것 같았다. 몇 번 빨리지도 않았는데 쌀 것 같아서였다.
“그, 그만하이소. 싸겠심더.”
싸겠다고 하면 관둘 줄 안 게 그의 패착이었다. 주희설은 오히려 싸기를 바란다는 듯이 더 강하게 입에 힘을 주고 그의 것을 빨아들였다. 정말로 위기가 올 것 같아서 부공태는 그의 어깨를 단단히 쥐었다.
“읏, 잠시, 진짜로예…!”
그리고 정말로 싸 버리기 직전에야 주희설은 그를 놓아 주었다.
“하아….”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이번에는 주희설이 자기 바지를 벗어 던졌다. 순식간에 탈의하는 것을 보고 부공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촬영할 때 빠르게 환복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옷 벗는 스킬 하나는 확실한 주희설이라는 사실을 미처 모르는 부공태였다.
“누워요.”
주희설이 명령했고, 부공태는 버틸 새도 없이 그의 손에 밀쳐졌다. 주방 바닥에 드러누운 부공태는 어쩔 줄을 모르고 그를 올려다봤다. 주희설은 어느새 바지를 벗은 채로 그의 위에 올라타 있었다. 그 광경만으로도 이미 자극적이었다.
“희, 희설 씨….”
올라탄 주희설은 그의 성기 위에 엉덩이 골을 비비기 시작했다. 느리게 허리만 슬쩍슬쩍 앞뒤로 움직이는 모습이 끝내주게 섹시했다.
“하아, 빨리, 넣고 싶어요.”
“아, 알았심더. 진정하이소. 일단 콘돔부터….”
“싫어요.”
단호하게 거절한 주희설이 이번에는 조금 세게, 체중을 실어 그의 성기를 꾹 짓눌렀다.
“오늘은 생좆 넣어 줘요.”
“아이고예….”
잘 쓰지 않는 적나라한 단어까지 써 가면서 이렇게 비비는 걸 보니 오늘 그가 어지간히 급하구나 싶었다. 이렇게까지 바란다면… 그래도 섹스를 하는 게 애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주희설은 이제 아예 상의까지 벗어 던지고 완전한 알몸으로 그의 위에서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말랑한 엉덩이 감촉이 페니스에 그대로 느껴졌다.
“마, 모르겠다.”
제 위에서 이렇게 몸을 흔들고 있는 애인을 두고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건 고자지. 벌떡 일어나 앉은 부공태는 주희설의 자그마한 엉덩이를 끌어당겼다. 그의 엉덩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지나치게 작았다. 쥐고 터뜨리면 터질 것 같이 탱글탱글하고 말랑말랑하기도 했다.
바짝 몸을 붙여 마주 앉은 채로 부공태는 그의 구멍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송보송한 속살을 더듬으며 안쪽으로 조심스레 손을 넣자 주희설이 작게 신음했다.
“빨리, 그냥 빨리 넣어 줘요.”
“에헤이, 찢어진다 카이.”
“찢어지면 뭐 어때요. 전에도 찢어졌는데 며칠 지나니까 멀쩡해지던데.”
태연한 주희설의 말에 부공태가 움찔했다. 주희설의 말대로 일전 그의 아래쪽이 찢어지는 대참사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래, 그때 생각보다 빨리 나았었지.
“그케도 배우님이 아프다 아입니꺼. 좀만 기다려 보이소.”
부공태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그의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늘 하던 대로 그가 좋아하는 곳을 부드럽게 손끝으로 눌렀다.
“으응….”
작게 신음한 주희설이 허리를 꼬며 안달 냈다. 제 무릎 위에 앉은 채로 엉덩이를 비비며 신음하는 주희설은 그야말로 자극 덩어리였다. 그런 그를 품에 안고 있자니 딱 미칠 것 같았다.
부공태의 두꺼운 손가락이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갔다. 촉촉하고 말캉한 내벽을 더듬으며 그의 안을 침범해 나가자 다소 뻑뻑하던 속살이 조금씩 말캉해졌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서야 부공태는 제 페니스를 그의 구멍에 가져다 대었다. 그렇게 열심히 풀었는데도, 역시나 주희설의 안은 좁았다.
“하으… 빨리….”
그런데도 빨리 넣어 달라고 보채는 이 애인을 어째야 할까. 부공태 역시 빨리 박고 싶었지만 아직 그의 구멍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이럴 때마다 자신의 거대한 주니어가 원망스러웠다.
인내심을 갖고 조금 더 깊이 그의 안으로 들어갔다. 귀두만 넣었는데도 벌써 꽉 찬 듯한 감각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대로 쌀 것 같았지만, 그랬다간 자신의 이 귀엽게 음란한 연인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니 참아야 했다.
애인 앞에서 조루가 될 뻔한 위기를 간신히 넘긴 부공태는 다시 차분히 움직였다. 주희설은 그의 위에서 몸을 배배 꼬며 먼저 움직이려 했다.
“가마이 안 있나.”
“빨리, 빨리 넣어 줘요.”
“가마이!”
엉덩이를 꽉 쥔 부공태가 그의 아래서 위로 느리게 올려 치길 반복했다. 말캉하고 촉촉한 안쪽에 그의 굵은 귀두 부분이 드나들며 진득한 쾌감을 자아냈다. 주희설이 부르르, 몸을 떨더니 갑자기 정액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읏, 아! 아아!”
“와, 대가리뿌이 안 넣었는데 벌써 쌉니꺼?”
하마터면 자신이 먼저 쌀 뻔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하기로 했다.
아래쪽을 슬쩍 내려다보니 엉망이었다. 오랜만에 해서인지 주희설이 싼 정액이 그의 배를 다 적실 정도로 흥건하게 양이 많았다. 부공태의 거대한 손이 아래로 향해 막 사정을 끝낸 주희설의 페니스를 쥐었다.
“읏!”
주희설이 화들짝 떨며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부공태는 하마터면 뽀뽀라도 할 뻔했다. 그러나 그 대신 주희설의 페니스를 쥔 채로 아래위로 움직였다. 방금 사정한 탓에 잔뜩 민감해진 페니스가 거대한 손바닥에 감싸여 자극되는 통에 주희설의 온몸이 번개라도 맞은 듯이 움찔거리며 경련했다.
“읏! 너무! 강해요! 아!”
파들거리는 그를 보면서도 부공태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빠르게 아래위로 훑었다.
“나, 으읏, 또, 할 것 같…!”
그리고 주희설이 사정하기 직전에야 움직임을 뚝 멈췄다. 그의 요도를 틀어막은 채로.
“읏….”
사정이 막힌 주희설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바로 코앞의 울망한 얼굴을 보자마자 부공태는 거칠게 콧김을 내뿜었다. 하지만 그의 귀여움보다 그를 자극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컸다.
“놔, 놔 주세요….”
“싫은데.”
“흐읏….”
부공태는 주희설의 성기를 틀어막은 그대로 다시 움직였다. 주희설은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지르며 헐떡거렸다.
“읏, 아, 놔 주세요! 흐으!”
소리를 질러도 부공태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의 페니스를 붙든 채 더 격하게 허리를 올려 쳤다. 주희설은 그의 무릎 위에 놓인 채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자극이 강해서 온몸이 뒤흔들리듯이 경련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할 때에야 부공태는 손을 놓았다. 동시에 멀건 정액이 사방으로 솟구쳤다. 부공태는 그의 안에 함께 사정했다.
“흣, 으, 아아….”
신음하는 주희설이 너무 야하고 예뻐서, 입에 넣고만 싶어서, 부공태는 참지 못하고 입술을 가져갔다. 그대로 입을 맞추자 곧바로 혀가 섞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밤이 깊을 때까지 몸을 겹친 채 한참을 있었다.
***
엔터테인먼트 일은 생각 이상으로 힘들고 굉장히 추잡스러웠다.
나는 몇 번이나 이 일을 때려치워 버릴까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남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굽실거리고 눈치 보는 일에 익숙하질 않았다. 일만 잘하면 되지, 왜 남에게 손바닥 비비며 자신을 낮춰야 한단 말인가?
연예계가 더럽다는 사실이야 익히 알았다. 그나마 나 주희설은 양아버지가 대기업 회장이니 내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타고난 권력 덕분에 나는 연예계 생활을 편하게 했지만, 주변 연예인들을 보며 이 판이 결코 쉽지 않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윤시 누나 같은 여자들에게는 더더욱 가혹했다.
‘야, 너는 그래도 살 만한 거야. 아니, 살 만한 게 아니라 너 같은 애들한테는 천국이지.’
회사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술에 잔뜩 취한 윤시 누나가 내게 말했다. 윤시 누나는 그다음 날 내게 심한 언사를 했다며 사과했지만, 나는 그게 전혀 심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자마자 바로 그 가혹함을 나도 실감했으니까.
내가 아버지에게서 독립했고, 전혀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아버지와 내 사이가 틀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아버지가 나를 ‘지켜 주지’ 않는다고 판단하자마자 자세를 바꾸었다. 이전에 배우로 만났을 때는 굽실거리고 나더러 대배우니 국민배우니 하며 치켜세워 주던 이들은 이제 내 앞에서 삐딱한 자세로 앉아 내게서 더 뜯어낼 게 없는지 눈을 번뜩였다.
‘배우님이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 원래 이게 쉽게 컨펌이 나는 게 아니에요.’
‘전에는 금방 났잖아요?’
‘그때랑은 상황이 다르지, 상황이!’
그들은 ‘상황’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관례적’이라든가 ‘우리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하는 말과 꼭 같이 썼다.
나는 그래도 굴하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이 판에서 권력이 있는 편이니 바꾸려면 내가 바꾸어야 한단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건, 사람들은 직접적인 화법을 생각보다 싫어한단 거였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로 해야지. 눈짓만 한다고 어떻게 안단 말이야?
‘희설아, 너는 그래도 조금… 화법을 바꿀 필요가 있긴 한 것 같아.’
‘왜요?’
‘지금은 너무… 간절해 보여.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값을 올리려고 드는 거야.’
매니저 형의 말도 일리는 있었기에 조금 여유롭게 가 보기로 했다.
어쨌든 처음 시작한 엔터테인먼트 일은 재미도 있고 힘든 만큼 보람도 있었다. 윤시 누나를 비롯한 몇몇 이름 있는 배우들이 흔쾌히 계약 만료와 함께 내 회사로 옮겨 주어서 든든했다. 덕분에 협력사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작가와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딱히 한 게 없었다. 그저 연락을 드리고 내가 새로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자 흔쾌히 같이 작품을 하자고 해 주었다.
물론 처음이다 보니 헤매는 지점도 꽤 있었다. 제작자의 입장으로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일은 배우의 입장에서 참여하는 것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는 만큼 고집을 부리고 싶었다. 오히려 사업 초반에만 부릴 수 있는 욕심일 터다.
모니터를 노려보며 작가가 보내온 트리트먼트를 읽고 있는데, 사무실 문이 열렸다. 매니저 형이었다.
“형! 어떻게 됐어요?”
미팅을 하고 온 매니저 형은 완전히 녹초가 된 모습이었다. 날도 추운데 축 처진 모습이 꼭 물 먹은 명태… 아니, 미역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물 먹은 해산물 같았다.
“어, 그냥 뭐, 그랬지.”
툭 내뱉는 대답에 금세 주눅이 들었다. 잘 안 됐구나.
“고생하셨어요.”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오너는 원래 힘든 일이 있거나 하더라도 내색하면 안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처져 있으면 다른 사람도 처지게 마련이니까.
“원래 거기가, 좀 그래. 이러다가 갑자기 연락 와서 같이 하자고 할 수도 있고.”
“투자처야 많으니까요. 뭐, 정 안 되면 아버지한테 연락해도 되고요.”
나름대로 안심시킨답시고 한 말인데, 매니저 형은 소파에 늘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키며 정색했다.
“됐다. 차라리 내가 다시 연락해서 무릎이라도 꿇지.”
“어, 진짜요?”
태연하게 받아치자 얼굴이 더 썩어들어 갔다. 우리 형 늙겠네.
“…너 요즘 부공태 닮아 간다.”
“와, 그거 기분 좋은 말인데요?”
“말을 말자.”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형을 위해 얼른 커피 머신을 켰다. 커피 캡슐을 넣고 뚜껑을 닫자 고소한 향이 사무실에 퍼졌다.
“아, 그래도 반달기획이 제일 유력한 투자처였는데.”
반달기획은 이번에 우리 영화에 투자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곳이었다. 아니, 사실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이었다.
투자처를 구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연기만 할 때는 몰랐다. 영화를 만든다 하면 돈은 자동으로 나오는 줄 알았지.
“과거형으로 말하지 마세요. 혹시 알아요? 갑자기 마음 바뀌어서 투자한다고 먼저 연락해 올 수도 있잖아요.”
“야, 너도 알잖냐. 여기 아니면 우리 힘들 거야.”
“알아요. 그렇게 안 되게 제가 뭐든 할 거예요.”
먼저 내린 잔을 형에게 주고 내 몫의 커피를 내리는데, 형이 나를 불렀다.
“희설아.”
“네.”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다.”
돌아보자 형은 꽤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리 안 해요.”
나는 어쩌면 처음으로 책임감이라는 게 뭔지 배운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
며칠 만에 겨우 휴가를 가졌다. 휴가라고 하기엔 뭐하고, 사실상 할 일이 갑자기 없어져서 시간이 빈 것이지만 말이다.
덕분에 나는 부공태와 데이트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부공태는 무조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망설임이 없었다.
“저 놀이공원 한 번도 안 가 봤어요.”
“놀이공원예?”
되묻는 부공태의 얼굴이 살짝 떨떠름했지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왜요, 싫으세요?”
“으, 으은지. 가입시더.”
“예쓰!”
어릴 때도 한번 가 보지 못한 놀이공원을 드디어 가 보는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잔뜩 들떴다.
놀이공원에 가기 전날, 나는 직접 김밥까지 쌌다. 후식으로 먹을 과일도 깎아서 도시락 통에 넣었다. 물론 부공태가 먹는 양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김밥과 과일만으로 도시락 다섯 개를 꽉꽉 채워야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전날에는 놀이공원 지도를 펴 놓고 동선도 짰다.
‘음, 아무래도 하루 만에 모든 놀이기구를 다 타는 건 불가능할 것 같네.’
다행히도 이전에 촬영으로 몇 번 가 본 적이 있어서 동선을 짜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역시 시간이 문제였다.
‘후룸라이드는 적어도 세 번은 타야 한단 말이야.’
어떻게 에반데랜드에 가면서 후룸라이드를 한 번만 탈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도 다른 걸 조금이라도 더 타 보려면 후룸라이드를 1회로 조정할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물론 부공태에게 의견을 묻기는 했다. 문제는 그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배우님 타고 싶은 걸로 아무거나 타이소. 내는 암거나 해도 괘않심더.’
그 말은 좋은데, 나를 생각해 줘서 그런다기보다는 왠지… 떨떠름해 보였단 말이다. 얼굴이 약간 창백해 보이기까지 했다.
‘혹시 놀이공원이 싫으시면 다른 곳으로 갈까요?’
‘아, 아입니더! 놀이공원 좋심더!’
물론 나는 놀이공원에 꼭 가고 싶었지만, 그가 싫다고 하면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윤시 누나나 스타일리스트 누나랑 같이 가도 되니까 물었는데 부공태는 고개를 격하게 저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대망의 데이트 날.
꼭두새벽부터 일어난 우리는 번갈아 운전을 하며 경기도 외곽에 있는 에반데랜드로 갔다.
“와, 날씨 진짜 좋아요!”
도착하자마자 관습대로 토끼 모양 머리띠를 두 개 사서 그와 나누어 꼈다. 부공태는 다행히도 즐거워 보였다. 특히 토끼 귀를 쓰고 셀카를 찍을 때는 평소보다 환하게 웃고 장난스러운 포즈까지 취해 주었다.
“오랜만에 나오이까 완전 좋네예!”
“그쵸!”
우리는 추로스를 먹으며 첫 번째로 가볍게 범프카를 탔다. 어느 정도 타다가 둘 다 너무 진심이 되어서 좀 격해지기는 했지만 재미있었다.
후룸라이드를 탈 때, 부공태는 좀 겁을 내는 것 같았지만 즐겁게 탔다. 우리 둘이 똑같은 선글라스를 끼고 멋지게 브이를 하는 사진도 건졌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이었다. 바로 롤러코스터.
“이, 이거, 키 너무 크믄 몬 탄다 아입니꺼?”
“에이, 2미터만 아니면 돼요. 공태 씨 190대잖아요.”
“아, 예….”
이상하게 풀이 죽은 것 같더니….
“으아아아아악!”
이 사달이 났다.
“아악! 우아아악! 아아아앍!”
빽빽 소리를 질러대는 부공태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심지어 제일 위까지는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고, 공태 씨, 어떡해요….”
“으아아아악!”
내가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부공태는 그저 소리만 질러 댔다. 그리고 제일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는 아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굳어 있기만 했다.
“…….”
코스가 끝나자마자 그는 안전벨트를 급하게 풀고 도망치듯 뛰어내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롤러코스터와 멀어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공태 씨, 괜찮아요?”
“아, 예. 괘않심더! 쬐매 놀랐네.”
“‘쬐매’ 놀란 게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앉아서 좀 쉬어요, 우리. 마실 것 사 올게요.”
“아, 아입니더!”
그를 벤치에 앉히고 매점으로 가려는데, 손목이 턱 붙들렸다. 놀라서 돌아보자 부공태가 꼭 강아지 같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 가지 마이소…. 혼자 있기 싫습니더….”
“…알았어요.”
심장이 아릿한 것을 느끼며 그의 옆에 얌전히 앉았다. 그의 손이 차가웠기에 내가 그를 귀여워하고 있단 사실에 약간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덩치를 하고 롤러코스터가 무서워서 비명을 꽥꽥 질러 대는 부공태라니! 귀엽지 않은가!
“일단 좀 쉬어요. 평일이라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천천히 놀아요, 우리. 과일 드실래요?”
“괘않심더. 죄송합니더, 배우님…. 내가 데이트를 망쳐 뿠네….”
“에이, 아니에요!”
물론 처음 놀러 와 본 놀이공원에서 대부분의 놀이기구를 못 타게 된 건 아쉽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놀이기구가 아니라 공태 씨잖아요. 우리 놀이기구 안 타도 재미있게 놀다 가요.”
“배우님….”
감동한 듯이 웃는 그의 손을 토닥거려 주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매점 같이 가요. 나 음료수 마시고 싶어.”
“예에.”
우리는 매점으로 가서 슬러시와 과자 등을 잔뜩 샀다. 매점 앞 테이블에 늘어놓고 먹는데, 문득 어떤 어린아이 하나가 다가와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혹시 나를 알아본 건가, 걱정했는데 의외로 아이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부공태에게 꽂혀 있어서 다행이었다.
시선을 읽은 부공태는 과자 중 낱개 포장이 된 것을 하나 들어 보였다.
“이거 묵고 싶나?”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몸만 꼬며 망설였다. 근처를 둘러보니 좀 떨어진 곳에 보호자인 듯한 여자 세 명이 다른 아이들과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아나, 와서 무라.”
부공태가 과자를 적극적으로 흔들어 보였지만 아이는 선뜻 다가오지 않고 쳐다보기만 했다. 부공태는 슬슬 오기가 생기는 듯이 이번에는 아까 구매했던 곰 인형을 들어 보였다.
“이 봐라, 이거 귀엽제?”
그가 적극적으로 곰 인형을 흔들어 보이자 아이가 그제야 헤에, 하고 웃었다. 부공태는 이때다 싶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문제였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거대한 덩치 때문에 아이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이내 겁에 질린 표정을 짓기 시작한 것이었다.
“곰돌이하고 노까? 히야가 곰돌이랑 놀아 주까?”
“으, 으으….”
“음, 공태 씨,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요.”
“예?”
부공태가 그제야 당황하며 곰 인형을 치웠지만 이미 늦었다.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흐어엉, 무섭, 무서워….”
아이 입장에서는 곰 같은 사내가 작은 곰을 인질 삼아 흔드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무서울 수밖에.
“아, 아가야, 괜찮아. 괜찮아요. 형 나쁜 사람 아니야!”
이번에는 내가 나서서 얼른 부공태의 앞을 가로막았다.
“흐어엉….”
하지만 아이는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기만 했다. 내 쪽은 보지도 않았다.
‘어쩌지.’
부공태는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고, 저 멀리 앉은 아이의 보호자들은 뭔가 심각한 이야기라도 하는지 자기들끼리 대화하느라 이쪽을 못 보고 있었다.
문득 한 가지 생각 난 게 있어서 양팔을 번쩍 들어 보였다.
“봐, 봐 봐. 우리 친구들! 언덕에 올라가 노래를 하자!”
아이의 시선이 그제야 나를 향했다. 통했다, 아싸.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는 노래를 시작했다. 율동과 함께.
“우리의 노래가! 하늘로 퍼져 올라가!”
이 노래가 뭐냐 하면, 내가 어린이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부른 노래였다. 게스트 출연이라고는 하지만 약 5화 정도 출연했었고, 프로그램 자체가 인기가 많은 덕에 출연 후 어린이 팬이 확 늘었었지.
“하늘이 밝아 오면~ 나는 다시 노래해.”
율동을 안 잊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손짓 발짓을 하자 아이는 착하게도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물었다.
“햇님머무이…?”
이 녀석, 내 팬이구나!
“응! 나 햇님멍멍이야! 우리 친구, 햇님멍멍이랑 노래할까?”
하지만 내가 방심했다. 아이의 눈이 새초롬해지는 것이었다.
“귀… 어디 갔어? 멈무이 귀 없어졌어….”
“아, 귀, 귀 말이야. 구름이가 먹었어!”
“헐.”
“자자, 구름이한테 가기 전에 우리 노래할까?”
“우, 웅….”
아이는 의심을 쉽게 지우지 못했지만 내가 노래를 다시 하자 얼떨결에 따라 불렀다. 의심 그득하던 표정도 조금씩 즐거움이 묻어났다.
어린 팬이 즐거워하는 걸 보자 나도 기뻤다. 기쁨에 율동이 더 격해졌다. 보는 시선이 늘어나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주희설 아냐?”
“헐, 주희설이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주변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부공태도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이제 내 경호원도 아닌데, 마치 경호라도 하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가 또 울까 겁이 나는지 일어나지는 못했다.
“내일 만나요, 내일 만나요! 웃는 얼굴로 인사해요!”
“우리 친구 햇살처럼 이뻐요~!”
이제 아이는 내 노래를 곧잘 따라 하며 율동도 잘했다. 부공태도 소심하게 율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에는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애한테 재롱 좀 떠는 건데 딱히 이상한 소문이 퍼지진 않겠지. 퍼져도 어쩔 수 없고 말이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보호자가 왔다. 보호자는 자신의 소홀함을 자책하며 내게 깊이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어쩜, 정말 감사해요. 귀찮으셨을 텐데 이렇게 우리 애 상대까지 해 주시고….”
“아휴, 아닙니다. 제 팬인 것 같던데, 제가 영광이죠.”
보호자와 같이 있던 여자분이 내게 사인과 사진을 요청했고, 나는 흔쾌히 응해 주었다. 그동안 부공태는 옆에서 뭐라 한마디 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눈치였다. 물론 방해했다면 내가 못 하게 했을 테지만.
“주희설! 귀엽다!”
둘러싼 인파 중 한 명이 외쳤다. 나는 팬 서비스 차원에서 소리가 들린 쪽으로 윙크와 브이를 날려 주었다. ‘꺄악’ 하는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아이의 보호자들이 자리를 떠나고 우리도 슬슬 움직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부공태가 기다렸다는 듯이 한쪽 팔로 나를 감싸 안고 이동했다.
“자, 자, 이제 가입시더. 지나가께예.”
나를 알아본 사람들 때문에 이제 아무것도 못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나와 부공태는 제법 평범한 연인처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놀이공원을 한껏 즐겼다.
물론 부공태가 무서워해서 놀이기구는 대부분 나 혼자서 탔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부공태는 아래에서 기다리며 놀이기구를 타는 내 사진을 잔뜩 찍었다.
돌아가는 길은 대부분 부공태가 운전을 했다. 혼자 놀이기구를 타느라 진이 빠진 나는 조금 미안했지만 대신 앞으로 이틀 치 설거지를 내가 다 하겠다고 합의를 봤다.
휴게소에 들러 오징어구이도 사 먹고, 길가에 핀 들꽃도 구경하며 천천히 서울로 돌아가던 중, 매니저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 희설아! 대박이다. 우리 큰일 났다.
“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다급한 형의 목소리에 내가 그동안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얼른 돌이켜 보았다. 형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흐어어’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뜸을 들였다.
“아, 빨리 말해요! 무슨 일인데!”
- 투자 한댄다.
설마.
- 이제 우리 영화 찍는다!
“진짜, 진짜요?”
- 그래!
“와아악!”
내가 소리를 지르자 부공태가 나를 보았다.
- 자세한 건 와서 이야기하자.
“네! 얼른 갈게요!”
전화를 끊자 부공태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와예, 뭔 일인데예?”
“저 투자 건 때문에 계속 골머리 앓았잖아요. 해결되었어요!”
“아이고, 잘됐네예.”
부공태가 환하게 웃었다.
“우리 배우님, 도장 찍고 나믄 축하주 하입시데이.”
“음, 축하주만요?”
살짝 눈을 흘기며 묻자 부공태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하여튼 귀엽다니까.
“어휴, 우리 귀여운 곰돌이.”
이제 ‘곰돌이’라는 애칭이 익숙해진 부공태가 헤헤, 소리를 내며 웃더니 얼굴을 더 빨갛게 물들였다.
나는 부공태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고는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신나게 놀았지만 내일부터는 다시 바쁠 터다. 그러면 부공태와 놀아 줄 시간이 적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괜찮았다. 그가 내일 이후로도 계속 내 곁에 있을 것을 아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