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랑스러운 내 곰 (14/18)

사랑스러운 내 곰

일단 병원으로 돌아간 나는 윤 실장에게 연락했다.

부공태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에 실장님은 별다른 말을 묻지 않고 그냥 그러라고 했다. 너무 흔쾌히 대답해서 수상쩍을 정도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공태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매니저님이 쬐매 마이 줬다 캅디더.”

검지와 엄지로 동그랗게 돈 모양을 만들어 보인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래서 윤 실장님이 아버지께 이야기를 잘해서 우리가 만날 시간을 벌어 준 거구나.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매니저 형이 왜 그렇게 열심히 저랑 공태 씨를 만나게 해 줬을까요?”

따지고 보면 매니저 형한테 부공태는 그냥 직장 전 동료 비슷한 개념 아닌가. 그러자 부공태가 거기에 대해서도 답을 내놓았다.

“‘나는 희설이의 매니저로서, 희설이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요!’라고 하시던데예?”

약간 단호한 매니저 형의 말투를 따라 하는 부공태의 모습은 귀여웠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당황했다.

“그, 그럼….”

“배우님이 내 좋아하는 거 다 알고 있는 거 긑든데.”

“그럴 리가….”

내가 얼마나 열심히 감췄는데…! 정작 부공태는 뭐 그리 중요하냐는 투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쨌든 간에 이래 만났으이 된 거 아입니꺼.”

그래, 그렇긴 하다. 어쨌든 형 덕분에 다시 부공태를 만났으니, 언제 제대로 챙겨 줘서 보답을 해야겠다.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고, 눈앞이 하얘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증세가 언젠가 또 들이닥치리라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제작자 앞에서, 혹은 카메라 앞에서, 부공태의 앞에서.

그래도 지금 당장은 괜찮았다. 괜찮을 것 같았다.

부공태의 존재는 내게 이토록 다정하고 든든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다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는 내 곁에 있기를 바라서 나를 만났다고 했지만, 사실 내가 더 그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을, 그는 알까.

어느새 집이 가까워졌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실지 좀 걱정되었지만, 될 대로 되겠지 싶은 생각이 더 컸다. 사실 부공태가 옆에 있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게 더 컸다. 원래 연애하면 이렇게 머리가 텅 빈 것 같고, 아니, 꽃이 가득 차 있는 것 같고 그런가? 처음 해 봐서 모르겠다.

옆을 슬쩍 보니 부공태도 입을 헤벌리고 웃고 있었다. 문득 백미러를 보니 나도 똑같이 웃고 있어서 웃겼다.

“그… 으흠.”

부공태가 헛기침을 하며 운을 떼었다. 무슨 말을 할지 대강 짐작이 갔다.

“연락… 해도 됩니꺼?”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으시면… 새벽 세 시에 하셔도 돼요.”

조금 쑥스럽게 대답하자 부공태가 갑자기 정색을 했다.

“어허, 배우님도 참, 내도 상식이 있는 사람입니더.”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러면 우리 오늘부터 1일인가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너무 유치하고 어려 보일 것 같아서 그냥 참았다.

“여기서 내려 주심 돼요. 데려다주셔서 감사해요, 공태 씨.”

안전벨트를 푸는데 부공태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않았다. 어째 내게 작별 인사를 할 마음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왜 그래요?”

내가 물어도 그는 한참 우물쭈물하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걱정이 돼 가꼬… 몬 가겠심더.”

아, 이 곰돌이를 어째야 하지. 정말 잡아먹어 버릴까.

“아까 배우님이 그래 벌벌 떨민서 나가는 거를 보이까네… 마, 내도 숨이 탁 막히고….”

“아버지도 계시고, 집에서 일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데요 뭐.”

“그케도….”

금세 울망해지는 눈을 보고 있자니 저 눈을 쏙 뽑아서 빨고 싶을 지경이다. 부공태가 원래 이렇게 귀여웠나? 그래, 원래 귀여웠지.

“그, 그럼, 집 앞까지….”

“같이 들어가지예.”

“네?”

“회장님한테 인사도 드리고, 이제 배우님하고 연락도 할 거라고 말씀드리야지예.”

“어, 그게… 꼭 말해야 할까요….”

아버지 성격을 아는 터라 좀 걱정이 되었다. 부공태는 정작 별로 걱정이 안 되는 눈치였다.

“우리 둘이 만나기로 했다 카는 말까지는 아이더라도, 연락은 적어도 당당하이 하고 싶습니더.”

부공태가 얼마나 바른 생활 사나이인지 잠깐 잊고 있었다. 더 말해도 딱히 듣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설득을 포기했다. 아버지가 화를 내셨을 때 그를 변호할 말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버지는 거실에서 태블릿 PC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니 흘끔 눈길을 주고 말았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아직 현관에 서 있는 부공태를 흘끔 보았다. 내가 먼저 말할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 일러 둔 참이었다.

“…아버지, 친구 왔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부공태가 현관에서 단숨에 뛰어 들어왔다.

‘내가 신호하면 오라고 했잖아요!’

필사적으로 손짓을 했으나 부공태는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비장한 얼굴로 아버지를 마주했다. 아버지 역시 부공태를 눈으로 훑었다. 웬 놈이냐는 투였다.

부공태가 콧구멍을 넓히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가뜩이나 거대한데 더 거대해진 상체를 아버지 쪽으로 휙, 숙여 보였다. 아주 깍듯한 90도 인사였다.

“회장님! 마, 미리 말씀도 드리지 않고 이래 갑작시럽게 찾아와가 죄송합니더!”

깍듯하기 그지없는 인사를 받고도 아버지는 그다지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본래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분이기는 했다. 부공태는 숙였던 허리를 펴고 군기가 바짝 든 자세로 말을 이었다.

“약 한 시간 삼십 분 전, 주희설 배우님을 밖에서 우연히 잠깐 마주칬고 짧은 대화를 나눴심더! 배우님의 안색이 영 좋지가 않아서 걱정이 돼 가꼬 함께 왔십니더!”

그리고 다시 허리를 숙였다. 정확한 90도로.

“사안이 시급해 가꼬 미리 연락을 드리지 몬하고 방문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더!”

‘와….’

이렇게 군기가 바짝 들어간 부공태는 처음 보았다. 그런데도 아버지 앞에서 쫀 티는 나지 않아서 솔직히 멋있기까지 했다.

“어차피 희설이는 집으로 올 것인데, 왜 걱정이 되었나? 윤 실장도 있었을 텐데.”

역시나 아버지는 나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괜히 내가 가슴이 뛰었다.

“물론 다른 분께 주희설 씨를 맡길 수는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심더.”

부공태의 대답에 아버지의 눈이 묘하게 가늘어졌다.

“…왜지?”

“제가 현재 주희설 씨의 경호원이 아니라꼬 해서, 주희설 씨를 걱정하는 마음이 사라진 거는 아이기 때문입니더.”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부공태가 그저 잔정이 많고 좋은 사람이라 나를 걱정한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욕심도 들었다. 나는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다.

아버지를 내내 보고 있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지는 주희설 씨를 마음 깊이 아끼고 있고, 그만큼 걱정이 돼 가꼬 온 깁니더.”

아버지는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혹시 화를 내지는 않을까. 그럼 내가 공태 씨를 지켜 줘야지, 생각하면서 주먹을 꽉 쥐고 두 사람 사이로 한 걸음 내디뎠을 때였다.

“올라가서 둘이 편히 이야기하게.”

…어?

아버지의 말에 부공태는 기다렸다는 듯이 “예!” 하고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공태가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내게 다가왔기에 어쩔 수 없이 앞서 계단을 올랐다. 아버지는 주방 쪽으로 가며 우리 쪽을 흘끔 보았다. 아버지는 부공태의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돌아섰다.

‘방금 뭐지?’

아버지가… 웃은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생각을 지우며 방문을 열었다.

***

일단 방으로 데리고는 들어왔지만 우리는 어색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도, 나도 딱히 뭔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보통 사귀기로 하고 나면 이렇게 어색한 게 맞나? 테이블에 놓인 과일은 이미 그가 다 먹어 치운 뒤여서 어색함을 먹는 것으로 채울 수도 없었다.

“그… 일단은….”

부공태가 조심스레 침묵을 깨더니 어험, 하고 헛기침을 했다.

“잘… 부탁드리고예….”

“저도요….”

갑자기 부공태가 꾸벅, 허리를 숙여 보이는 바람에 나도 함께 꾸벅,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부공태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내가 부족해 보이도, 성실함 하나는 자신 있습니더. 배우님이 원하시는 거는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성실하이 수행하겠심더.”

“에이, 안 그래도 돼요, 공태 씨. 무슨 대기업 취직하는 것도 아니고….”

“쬐매 오바지예?”

내가 고개를 장난스럽게 끄덕이자 그가 픽 웃었다. 그제야 긴장감이 좀 풀어졌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부공태의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그의 손이 어찌나 큰지, 내 손으로는 반도 덮이지 않았다.

“우리, 평범하게 지내봐요. 다른 사람들처럼 싸우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울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치사하게 굴기도 하고, 질투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연애하는지 잘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영화를 찍으면서 나도 로맨스가 뭔지는 배웠다. 그 로맨스라는 틀 안에서 연인들이 지내는 모습은 사실 별게 없었다. 영화는 특별하더라도, 그 안의 사람들은 별다를 게 없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부공태와 평범한 연애를 하고 싶었다. 보통 사람들처럼 그렇게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조금씩 관계를 쌓아 가고 싶었다. 부공태도 그런 마음이길 바랐다.

“저는 공태 씨만 있으면 돼요.”

너무 진부한 말 같지만, 그만큼 진심이기도 했다. 부공태가 손을 뒤집어 내 손에 깍지를 꼈다.

“지도 배우님만 있으믄 됩니다. 아니….”

그가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얼굴로.

“지도 희설 씨만 있으믄 됩니다.”

헤, 하고 바보 같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깍지 낀 손을 꼼지락거리자 부공태도 소리 내어서 웃었다.

“공태 씨, 근데 그거 알아요?”

“예?”

“저 본명 따로 있어요.”

부공태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마치 친우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니, 그게 그렇게 충격적인가?

“뭔데예, 본명?”

“나중에 알려 줄게요.”

일부러 새침하게 대답하자 부공태의 얼굴은 더 심각해졌다.

“본명인 줄… 알았는데….”

꿀 빼앗긴 곰돌이 같은 그를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뿌듯했다. 나는 생각보다 부공태를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

부공태와 주희설이 연애를 한다. 톱 배우 주희설이 경호원과 연애를 한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당사자 두 명밖에 없었다.

그들과 가장 가까운 매니저는 아마 조만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었고, 주희설의 친구인 이범산도 곧 주희설을 통해 알게 될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그러했다.

주희설의 부친은 의외로 쉽게 부공태와 주희설이 다시 연락하고 ‘친구’로 지내는 것을 허락했다. 물론 주희설의 경호원으로 복귀하는 것은 아직 못했지만, 부공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사실 부공태는 자신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애인, 연애, 이런 건 제 인생에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덩치는 무식하게 커서 할 줄 아는 거라곤 운동밖에 없는 자신이 주희설같이 능력 있고 예쁜 애인을 만나게 되리란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 없었다.

그래서 부공태는 더더욱 주희설에게 잘하고 싶었다. 고마워서가 아니었다. 주희설은 충분히 최고의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주희설에게 자신은 최고의 애인이 되어야 했다.

최고의 애인이 되는 방법의 첫 번째로, 부공태는 연인 간에 나눌 수 있는 애정 표현을 최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다.

그러니까… 흔히 옛날에 ‘방중술’이라고 불리던 것 말이다.

‘남자끼리는 우예 하는지 알아야지 머를 하지.’

물론 ‘절대 거시기를 함부로 놀려서는 안 된다’던 아버지의 말이 걸리기는 했지만… 부공태는 빠르게 자신을 합리화했다. 어차피 퇴원하신 이후로 일이 바빠서 아들에게 관심을 쏟지도 못하실 것이었다.

‘함부로만 놀리지 말라 캤지, 아예 놀리지 말라 카는 말은 안 하싰다 아이가….’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건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잖은가.

아버지의 명을 거스른다는 죄책감은 그렇게 가볍게 날려 버리고, 부공태는 본격적으로 남자와 남자 사이의 섹스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찾아볼까, 싶었지만 그런 공공장소를 사적인 욕망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 같아서 그냥 집에서 노트북을 켰다.

인터넷은 과연 별게 다 있었다. 믿을 만한 정보인지를 스스로 판단해 가며 부공태는 제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추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남자와 남자의 ‘삽입’ 섹스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게 된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음미야, 우짜노. 저거를 저다가 옇는다꼬….”

주희설의 자그마한 엉덩이가 떠오르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자신의 고간을 내려다보았다. 발기하지도 않았는데 허벅지 한쪽에 존재감을 드러낸 이놈을, 고 자그마한 엉덩이 사이에 쑤셔 박는다고.

“…….”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연인 사이에 즐거움은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을 테니, 일단은 보류해 두는 게 좋을 듯했다.

‘마, 진도는 천처이 나가야지! 너무 급하믄 안 된다 카이!’

순진하고 착한 주희설을 놀라게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말이다. 부공태는 두 번째 합리화를 하며 인터넷 검색 창을 미련 없이 닫았다.

그리고 때맞춰 제 연인이 된 지 며칠 안 된 주희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공태 씨 뭐해요? ^^

***

‘호피 무늬는 오버겠지?’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오버 같다. 요즘 누가 호피 빤쓰를 입나. 평범하게 빨간색으로 결정한 나는 속옷 사이트에서 구매 버튼을 눌렀다. 결제를 하고 있을 때 부공태에게서 메시지 답장이 왔다.

쉬고 있습니다. 배우님은요?

그는 메시지를 보낼 때는 말할 때와 달리 부산말과 서울말을 섞어 썼다. 그 점이 이상하게 섹시하게 느껴졌다.

우리 데이트 코스 생각하고 있었어요!

부공태가 쉬는 주말에 맞춰서 데이트를 하러 가기로 했다. 그래 봤자 사람 많은 곳은 못 가지만, 차를 타고 내가 얼굴을 좀 가리고 다니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나의 기나긴(?) 투쟁 역사가 있었다. 아버지와 담판을 지은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저는 일 말고 다른 것으로 성취를 이루는 게 좋대요.’

‘…….’

‘그리고 친구 좀 자주 만나래요.’

‘…….’

‘저는 앞으로 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 거예요! 작품도 이제 제 마음대로 고를 거예요! 망해도 제가 망하는 거지, 아버지가 망하는 거 아니잖아요? 저도 이제 엄연한 성인이고, 연기계에서는 중견 배우 이상이에요. 적어도 제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정도는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 그래도 아버지께서 이번에 K전자 사건 때문에 걱정 많이 하신 거 알아요. 한종수 사건 때문에 제 걱정 하신 것도 알고요. 하지만 아버지, 아버지도 아버지의 인생을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제 인생 편하게 살 거니까요.’

말을 한번 내뱉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아버지는 다행히도 K전자 사건과 관련해서 혐의가 없다는 게 드러났고, 모든 조사에 거리낌 없이 응했기에 여론에서도 더 뭐라고 하지 않았다.

물론 부하 직원이 횡령을 하도록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져야 했다. JH에서는 유가족에게 보상을 지급하고, 담당 직원은 모두 바뀌었으며 앞으로 사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 및 계획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얼마 전에는 아버지가 직접 유가족을 찾아가서 사과를 하기도 했다. 뭐, 할 수 있는 건 다 한 셈이었다.

떨어진 명예와 이미지는 다시 회복할 수 없겠지만, 아버지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어차피 아버지네 회사는 사건 몇 개로 무너질 곳은 아니니까.

그래도 다행이었다. 부공태에게 창피했는데, 이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여튼 아버지는 내가 일방적으로 선언한 말에 딱히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고, 나는 다시 자유를 얻었단 거다. 아직은 아버지네 집에 얹혀살고 있지만 말이다.

어디 가고 싶은데요?

부공태의 메시지를 받고 곰곰이 머리를 굴렸다. 사실 데이트 코스를 생각하고 있다고 패기 좋게 말하기는 했지만 뭘 해야 할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 중이에요. 공태 씨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사실 나는 사람 없는 펜션 같은 곳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거기서 1박 2일 정도 지내면 당연히 진도도 나가게 될 거니까 그날 입을 속옷도 주문하던 참이었다.

‘이번엔 꼭 덮쳐야지!’

그날을 위해 트레이너 선생님한테 복근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의 테스토스테론에 부공태가 반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정열의 빨간 팬티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겠지.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부공태가 산이나 바다를 좋아하느냐 하는 거다. 좋아할 것 같긴 하지만.

나는 배우님만 옆에 있음 아무 데나.

부공태는 메시지 쓰는 것이 힘들다고 일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손가락이 굵어서 자꾸 자판이 두 개씩 눌려 불편하다나. 그래서 이렇게 좀 짧게 메시지를 보낼 때가 많았는데, 그것도 묘하게 섹시하게 느껴졌다.

“헤헤.”

바보같이 웃으면서 답장을 적었다. 펜션 하나 잡아서 바다나 산에서 쉬다 오자고 쓰고 있는데, 부공태의 메시지가 먼저 왔다.

근데 우짜지. 내가 이번 주말에는 일해야 될 거 같은데.

메시지를 보는 순간 풀이 죽고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주말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지만 부공태의 잘못도 아니니까.

괜찮아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구요!!

일부러 파이팅 이모티콘도 여러 개 보냈다. 혹시 오해할까 봐 전화해서 괜찮다는 투로 목소리라도 들려줄까, 하고 있는데 메시지가 왔다.

아님 주말에 내 집 올래요?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반대로 내 몸은 이미 의자에서 뛰어올라 있었다.

“미쳤다…!”

쾅쾅 뛰는 심장을 억지로 달래며 겨우 그러겠다고 답장했다. 벌써 얼굴이 붉어지고 손이 떨렸다. 아직 데이트는 시작도 안 했는데, 그날 밤이 되면 정말 심장 터지는 거 아닌가 몰라.

‘속옷 산 거… 주말 전까지 오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넷 브라우저를 닫았다.

***

그리고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 주말이 다가왔다. 모자를 쓰고 부공태가 일하는 체육관에 갈까, 고민도 해 봤지만 괜히 부담스러울 것 같고 내 얼굴을 비쳤다가 영업에 방해가 갈 수도 있으니 꾹 참기로 했다.

대신 나는 부공태의 퇴근 시간에 맞춰서 체육관 앞에서 기다렸다. 면허를 땄으면 좋았을 텐데. 나를 데려다주신 윤 실장님께 보답으로 소고기 기프티콘을 보내 드리고 먼저 가시라고 했다.

윤 실장님은 다행히도 별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물으시면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세요, 하고 당부의 말을 할까 하다가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관두었다.

모자를 눌러쓴 채 기다리고 있자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고, 그다음으로 부공태가 나왔다. 주변을 둘러본 그와 눈이 마주쳐서 손을 흔들었다. 부공태가 웃어 주었다.

그의 차를 타고 간 곳은 서울 어딘가의 오피스텔이었다. 한강 뷰는 아니지만 무려 한강이 가까운 곳이었다. 탁 트인 전면 창과 세련된 인테리어를 보니 신축인 듯했다.

“편하게 들어오이소.”

“와, 집 좋네요.”

저녁노을이 붉게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부공태가 블라인더를 반쯤 내리자 집 안은 편안한 난색으로 물들어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얼핏 봐도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오피스텔을 보니 부공태가 내 생각보다 부자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께서 농업과 어업을 겸하시며 꽤 많이 버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편하게 앉으이소. 뭐, 마실 거 드리까예?”

“아니에요.”

“카믄 쫌만 기다리 보이소. 저녁 금방 해 주께예. 배고프지예?”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놔둔 에코 백 입구를 슬쩍 여몄다. 부공태는 꼭 빈손으로 오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그냥 올 수가 없어 뭔가를 사 온 터였다. 바로 와인이었다. 우리의 밤을 뜨겁게 해 주기 위해서는 두 병이면 충분하겠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요리하는 부공태의 섹시한 등짝을 마음껏 구경하면서.

***

부공태는 스테이크와 야채를 굽고 가볍게 과일드레싱을 뿌린 샐러드를 내놓았다. 거기다 직접 구운 로스트치킨과 양송이수프까지 곁들였다.

“이걸 어떻게 다 먹어요?”

“와예? 그거 1인분인데?”

“…네?”

“먼저 묵고 있어 보이소. 내 꺼도 담아 가께.”

“…….”

나는 ‘1인분’이라고 불린 것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식탁이 그득하게 찰 정도로 차려 놨는데, 이게 1인분이라고.

그리고 부공태는 정말로 음식을 더 담아 내왔다. 심지어 차려진 것보다 더 많은 양으로.

“배우님이 하도 쪼매 무 가꼬 내 꺼를 더 마이 담았는데, 모자라믄 말하이소.”

“모자라긴요…. 와, 그나저나 진짜 맛있을 것 같아요.”

“천천히 무이소. 체한다.”

일단 샐러드부터 조금씩 맛을 보고 곧바로 스테이크를 썰어 먹어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이거 진짜 맛있어요!”

“입맛에 맞습니꺼?”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입맛에 맞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호텔 요리 수준이었다. 부공태는 뿌듯하게 웃으며 내게 접시를 더 밀어 주었다.

“공태 씨는 진짜 못 하는 게 뭐예요? 요리도 잘하고.”

“…서울말?”

맞는 말이라서 풉, 하고 웃어 버렸다.

입이 짧은 편인데도 배가 볼록 나오도록 먹었다. 그만큼 부공태의 요리는 맛있었다. 내 입맛을 알고 그대로 만든 것만 같았다. 배부르게 먹은 뒤 나는 눈치를 보다가 가져온 와인을 꺼냈다. 다행히도 부공태는 술을 보고 반가워했다.

“이야, 울 배우님 센스 최고네! 근데 와인 잔이 읎는데?”

“대충 글라스에 따라 마셔도 돼요. …‘분위기’가 중요한 거죠.”

‘분위기’에 한껏 방점을 찍었는데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벙긋벙긋 웃는 얼굴을 보니 그 속내가 도통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의 속이 내 반만큼만 시커멓다면 좋을 텐데.

“그… 공태 씨.”

“예?”

첫 번째 와인병이 반 정도 비었을 때 슬그머니 운을 떼어 보기로 했다.

“공태 씨는… 진실 게임 같은 거 해 본 적 있어요?”

“아, 해 봤지예. 대학교 때 엠티 가 가꼬.”

안 해 봤다면 알려 주겠다고 하려 했는데 아까웠다. 나는 덥다는 투로 손부채질을 하며 입고 있던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 풀었다.

“정말요? 그럼 우리….”

“내는 술 물 때 게임하고, 뭐 진실 이야기하고, 이런 거 딱 질색임더.”

“…….”

“술 물 때는 술만 처무야지 어데. 술맛 떨어진다카이.”

“…….”

할 말이 없어서 조용히 술잔을 들고 입에 처넣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별말 없이 술만 마셨다. 정말로 술만 마셨다. 술기운을 빌려서 뭔가를 해 보려 했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주희설은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참, 공태 씨…. 제 본명… 궁금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슬쩍 물으며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 부공태가 얼른 손을 뻗어 단추를 도로 꿰어 주었다. 이 인간은 왜 이렇게 눈치가 없지? 심지어 반응도 미적지근했다.

“뭐, 쬐매 궁금하긴 하네예.”

“네? 전엔 완전 궁금하다면서요.”

“내가 은제?”

시치미까지 뗀다. 어이가 없어서 그를 노려보았다.

“제 본명 궁금하다고, 가르쳐 달라고 막 떼쓰고 그랬잖아요. 공태 씨가.”

“아인데?”

‘아인데?’라고 한 부공태는 와인을 다시 홀짝거렸다. 이상하게 그 모습이 얄미워 보였다.

“공태 씨는 그럼 저한테 궁금한 거 없어요?”

원래 내 계획은 진실 게임을 하면서 분위기를 좀 달아오르게 만들고, 대답 못 하는 경우에는 옷을 하나씩 벗자고 하려 했다. 그러다 보면 서로 벗은 몸을 보게 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진도를 나가면 될 거라고 믿었다.

부공태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멀뚱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뭐야, 궁금한 것도 없어?’

순간 서운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에 대해 궁금한 게 수도 없이 많은데. 입맛을 다시며 시선을 떨궜다.

“없으면 됐어요.”

“읎다꼬는 안 했는데.”

그리고 씩 웃는 부공태를 보고 나는 결국 깨달았다. 이 사람한테 이길 수는 없겠구나.

입꼬리를 틀어 올려 웃다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와인 잔을 입에 가져가는 부공태가 미치게 섹시했다. 당장 식탁에 올라가서 덮치고 싶었지만 강제로 하는 건 나쁜 짓이니 나는 대신 마주 웃었다.

“그럼… 뭐가 궁금한데요? 다 말해 줄게요. 물어봐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잘생긴 멜로 속 주인공이다, 생각하며 한쪽 턱을 괴고 웃어 보였다. 그의 눈에 가장 잘나 보이고 싶었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배운 연기를 이렇게 연애하는 데에 쓰려니 좀 찔리긴 했지만 뭐 어떤가. 내가 살고 봐야지. 당장 부공태를 덮치지 않는 것만 해도 내 인내심의 한계였다.

부공태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얼굴로 웃으며 물었다.

“요즘 운동은 합니꺼?”

그 물음 한 번에 그만 맥이 빠져 버렸다.

“…궁금한 게 그거예요?”

힘이 빠진 채로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니, 뭐…. 운동 안 하믄 내랑 등산이나 다니자꼬 칼라 캤지.”

“등산요…. 등산 좋죠….”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와인을 또 들이켰다. 슬슬 취기가 올라오는지 손이 헛돌기 시작했다. 잠도 왔다.

부공태는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파하기 시작했다. 나처럼 몸이 약한 타입은 특히나 꾸준한 운동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주말마다 등산을 하자고 했다.

‘미친. 등산이 뭔 말이야. 내가 타고 싶은 건 따로 있다고요….’

그리고 나는 속이 타서 그가 말을 하는 동안 혼자 마구 와인을 들이켰다. 어느새 술이 잔뜩 취해서 그의 말에 조금씩 반박하기 시작했다.

“공태 씨는, 운동이 나보다 중요해요? 어?”

“에이, 아이지. 배우님이 중요하이까 운동하라 카는 기지.”

“그놈의 운동…. 운동하고 결혼해라, 이 곰탱아.”

부공태가 껄껄 웃었다. 어째 웃는 소리도 아저씨같이 들려서 갑자기 짜증이 난 나는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단번에 붙들리고 말았다.

“에헤이. 취해 가꼬 애인을 뚜들기 패믄 되나?”

“좀 때리면 안 돼요? 가슴도 못 만지게 해 주면서…!”

입으로 내뱉고 나니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눈물이 나려는 걸 꾸역꾸역 참았다.

“나쁜 놈…. 맨날 가슴도 못 만지게 하고….”

‘맨날’이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었지만 취한 나는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그가 야속하기만 했다. 식탁 위에 엎드려 버리자 부공태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하이고, 이거를 우째야 되노….”

나를 아이 취급하는 그가 너무 밉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이쯤 되면 손이라도 끌어서 여기 가슴 있다고, 마음껏 만지라고 해 줄 줄 알았는데, 어깨만 토닥여 주는 것도 짜증이 났다.

그렇게 나는 잔뜩 취한 채로 ‘가슴….’을 중얼거리며 부공태의 식탁에서 잠들어 버렸다. 혼자 와인에 취해서 말이다.

***

아침에 눈이 부셔서 깨어났더니 놀랍게도 부공태의 얼굴이 바로 보였다. 순간 어젯밤에 느꼈던 설움과 짜증이 다 날아갔다. 누구라도 그 얼굴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짜 잘생겼다.’

부공태는 보고 있기 억울할 정도로 잘생겼으니까 말이다.

아주 단단해 보이는 콧대와 바위 같은 이마뼈, 눈을 감고 있어도 선명하게 보이는 쌍꺼풀과 긴 속눈썹까지.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얼굴이 무엇인지 샘플로 만든 듯한 모습이었다.

진짜 이 남자랑 내가 애인이 된 게 맞나.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의 볼을 슬쩍 꼬집어 보았다. 순간 부공태가 일어나지 않아서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더 세게 꼬집어 보았다. 그래도 부공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 진짜 꿈인가?’

두려움에 떨며 이번에는 내 악력을 모두 실어서 있는 힘껏 뺨을 꼬집었다. 그제야 부공태가 눈을 부스스 떴다.

“아파예….”

와, 애교도 부릴 줄 아네. 그는 커다란 덩치를 웅크리며 나를 확 끌어당겼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가 알몸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공태 씨, 원래 옷 안 입고 잔다고 했죠, 참.”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팬티는 입고 있는 듯해서 다행이었다. 문제는… 그 팬티도 소용없는 내용물이었다. 물컹한 것이 허벅지에 닿자 나는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공태 씨. 저요… 못 참겠어요.”

“어? 와예?”

목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그가 물으며 몸을 비비적거렸다. 아니, 이 남자는 도대체 자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팔을 풀고 그의 위에 올라탔다. 허벅지에는 아침을 맞아 발기한 부공태의 페니스가 두둑하게 느껴졌다. 내려다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공태 씨.”

“와, 와예?”

부공태가 잠에서 겨우 깬 얼굴로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귀여운 척해도 소용없다.

“지금부터 제가 공태 씨를 덮칠 거예요.”

나는 비장하게 선언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부공태가 내 아래 깔린 채 두 팔로 가슴을 슬그머니 가렸다. 그런다고 다 가려지는 가슴이 아닌데.

일단 가슴을 가리고 있는 이 못된 손부터 치우게 하기 위해서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힘이 얼마나 센지 꿈쩍도 않았다.

“치워 봐요. 가슴 좀 만지게.”

“와, 와 이카는교, 배우님….”

“왜 이러긴요. 공태 씨 덮치려고 그러죠.”

“내는 마음에 준비가 아직….”

“좀 치워 봐요!”

버럭 소리 지르자 부공태는 울상이 되었다. 순간 정신이 조금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하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덮치면 안 되지, 그렇지….

조금 진정이 되자 우습게도 서운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백 날 천 날 그와 애정 표현을 하고 싶은데 그는 아니라는 게 슬펐다.

“나랑 이런 거… 하기 싫어요?”

“으, 으데! 그기 아이고. 내도 하고 싶지.”

부공태가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걸 보니 다행히도 내가 싫은 건 아닌가 보다, 싶어서 조금 안도했다.

“그럼요?”

“그, 그기, 내가 부끄럽어 가꼬 캅니더….”

“뭐가 부끄러운데요….”

부끄러워하는 부공태가 좀 많이 귀엽기는 하지만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소도 손으로 때려잡을 거 같은 사람이 스킨십을 부끄러워하다니. 뭔가 콤플렉스라도 있거나,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부공태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었다.

부공태는 우물쭈물하면서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기… 내가 경험이 음써 가꼬, 배우님을 다치게 할까 봐… 내 경험이 읎는 게 부끄럽심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이 귀여운 곰탱이는 거대한 자신의 주니어에 내가 다칠까 봐 겁이 난 것이다. 하긴 부공태의 주니어는 주니어라기보단 흉기에 더 가깝긴 했다.

‘솔직히 다쳐도 상관없는데….’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순순히 포기하고 그의 위에서 내려왔다.

“…그럼 나 안아 줘요. 그건 할 수 있죠?”

“하모예!”

우렁차게 대답한 부공태는 누운 채로 나를 꽉 껴안았다. 나는 그의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공태 씨 냄새 좋다….’

그래, 굳이 섹스를 안 하더라도 이렇게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게 바로 사랑이고 연애일까?

그의 가슴에 대고 코를 킁킁거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아래쪽에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부공태의 성기가 단단하게 발기한 채로 가라앉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흥분했으면서 나 때문에 참아 주는 거야?’

이걸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참…. 그래도 안 하기로 했으니 눈을 꾹 감고 있었다. 문제는 몸이었다. 부공태가 나 때문에 흥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도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딱 죽겠다 싶은 심정으로 그의 허리를 껴안고 있자니 부공태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와 이래 꿈지럭대는교….”

“부, 불편해요?”

“은지예. 너무 좋아 가꼬….”

좋다는 말이 이렇게 가슴 설레는 말이었던가?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어느새 내 페니스도 발기해 있었다. 당연했다. 부공태가 나 때문에 잔뜩 흥분했다는 사실이 나를 달아오르게 했다.

그 역시 내가 발기한 걸 느꼈는지 허리를 조금씩 뒤로 빼었다. 하지만 내가 허리를 더 꽉 껴안았다.

“…공태 씨.”

“예….”

목소리를 들어 보니 그도 많이 흥분한 채로 참고 있는 듯했다. 나는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을 살그머니 움직여 그의 허벅지를 쓸었다. 부공태의 거대한 몸이 움찔거렸다.

“키스… 해 주실래요?”

부공태가 망설이더니 아주 조심스레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갑갑해!’

나는 참지 못하고 와락 달려들어서 입술을 부딪쳤다. 꾹 닫힌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부공태의 손이 내 어깨를 꽉 붙드는 게 느껴졌다. 그가 최대한 절제하고 있다는 것도 함께 느껴졌다.

혀를 억지로 파고들어 서툴게 그의 입 안을 훑었다. 부공태의 입술은 다른 몸과 달리 딱딱하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부드럽기만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나만 알고 싶었다. 닿고 있는 모든 곳을 내가 독점하고 싶었다.

어깨를 쥔 손에서 힘이 빠지는가 싶더니 부공태가 하체를 바짝 맞붙여 왔다. 그와 나의 발기한 페니스가 같이 뭉개졌다. 그리고 부공태의 혀가 조금씩 움직임을 바꾸었다.

그는 내 혀를 얽고 치열을 부드럽게 훑었다. 입 안의 여린 살이 그의 혀끝에 짓눌리고 밀려 났다. 부공태는 능숙하게 키스의 주도권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우응….”

야한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쪽, 쪽, 질척거리는 입맞춤 소리도 함께 들렸다. 내 페니스에 닿은 부공태의 페니스가 더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세상에, 그게 최대로 발기한 게 아니었어.

키스는 한참 더 이어졌다. 부공태는 끝내주게 키스를 잘했다. 혀가 움직일 때마다 내 입 안에 있는 성감대를 건드린 것처럼 찌릿했다. 그의 페니스가 커진 것처럼 나도 키스만으로 잔뜩 흥분했다. 속옷이 프리컴으로 조금씩 젖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읍, 우으….”

숨이 막히는 소리를 내고서야 부공태는 입술을 떼었다. 숨을 못 쉬어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들 만큼 아쉬웠다. 키스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섹스는 얼마나 좋을까? 상상할 수도 없었다.

키스에 대한 아쉬움은 부공태도 비슷한지, 그가 내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한 번 더 맞추었다.

“후….”

흥분을 참는 기색이 분명하도록 숨을 내쉰 부공태는 나를 다시 껴안았다. 맞닿은 하체뿐만 아니라 꽉 안은 팔에서도 그의 흥분이 느껴졌다. 절실할 정도로.

나는 고개만 살짝 들고 부공태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처음이었다. 새삼 잘생겼단 생각이 다시 들었다.

나와 달리 부공태는 선이 굵고 거친 얼굴이라 이렇게 바짝 붙어서 보니 위압감이 느껴졌다. 흥분한 부공태는 특히나 더더욱 위압적이었다.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미간은 살짝 좁혀지고 눈동자는 형형한데 시선이 어찌나 짙은지 마주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키스로만 끝내기는 아쉬운 건 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바짝 맞닿은 채로 어쩔 줄을 모르고 비비적거리는 하체를 보면 말이다. 나는 이 미련 곰탱이 대신 용기를 내기로 했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 만지는 건… 안 아프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말이 불씨가 된 모양이었다. 부공태는 나를 안은 채 몸을 휙, 뒤집었다.

“생각해 보이 맞네예.”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공태의 눈빛이 살짝 맛이 가 있었기에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긴장감보다 기대감이 더 컸다.

부공태는 두툼한 손으로 내 다리 사이를 찾았다. 바지와 속옷을 끌어 내리자마자 발기한 페니스가 그의 손바닥에 감싸였다. 막상 그곳이 붙들리니 창피했다.

“자, 잠깐만요….”

우는 소리로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는 듯했다. 그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반쯤 풀려서는 나를 내려다보는데, 초점이 없었다.

부공태는 자신의 페니스도 꺼내 들었다. 짐작은 했지만 정말 무시무시하게 컸다.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나을 것 같았지만 그 무식하게 큰 살덩어리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와, 저게 내 몸에 들어갈 뻔했다 이거지.’

다시 생각해 보니 역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부공태의 손이 움직였다.

“흣!”

운동을 많이 해서인지 부공태의 손은 굉장히 거칠었다. 그리고 힘이 장난 아니었다. 짓이기다시피 쥔 손이 아픈데, 그 통증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혼자 가만히 받고 있기만 싫어서 나도 손을 뻗어 그의 몽둥이를 쥐었다. 내 손은 남자치고 작은 편이고, 부공태의 것은 어마어마하게 컸기에 한 손으로 다 감쌀 수가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살덩어리를 감싸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하아….”

내 위의 부공태가 작게 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이 하도 섹시해서 하마터면 그대로 쌀 뻔했다.

‘위험했네.’

벌써 쌌으면 조루라고 생각했겠지? 식은땀이 났다.

내가 걱정하거나 말거나 부공태는 마치 내게 지지 않겠다는 듯이 손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가뜩이나 거칠고 단단한 손이 내 페니스를 싹싹 훑을 때마다 자지러질 것 같았다. 나 혼자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왜, 왜 이렇게 잘해…!’

신음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내가 기분이 좋은 만큼 부공태도 기분이 좋았으면 싶었다. 그래서 나도 손을 바지런히 움직였다. 내 손이 작고 내가 서툰 것이 억울했다. 그를 더 즐겁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물었다.

“…공태 씨, 제가 빨아 줄까요?”

대답이 없어서 올려다보니 부공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대답을 더 기다리지 않고 그의 다리 사이로 꾸물꾸물 내려갔다.

그의 거대한 페니스를 입에 무는 순간 아주 조금 후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입 안 가득 들어온 것을 억지로 물고 열심히 빨기 시작했다.

부공태가 숨을 참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나 또한 긴장했다. 혹시라도 그를 아프게 하지는 않을지, 기분이 안 좋으면 어떡할지 걱정이 되었다. 집에서 당근이나 오이 같은 걸로 연습 좀 해 볼 걸 그랬나….

나름대로 열심히 빨고 있자니 부공태가 내 머리 위에 손을 살짝 얹었다. 그 손에 힘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떨어졌다. 그가 내 머리채를 쥐고 거세게 머리통을 움직여 주길 바랐지만, 그런 말을 하면 변태처럼 보일까 봐 겁이 났다.

나는 그가 나를 다치게 해도 좋았다. 아니, 솔직히 다치게 해 주길 바랐다. 부공태처럼 순한 사람이 내게 섹스로 상처를 남긴다고 생각하면 묘하게 짜릿하고 좋았다.

그러나 부공태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약간 심심하거나 서운할 만도 한데, 그게 부공태라고 생각하면 좋았다. 이렇게 착하고 순한 곰돌이 같은 사람이라서 나는 부공태가 좋았다.

거대한 페니스를 억지로 입에 물고 앞뒤로 움직이고 있자니 부공태가 하아, 하고 긴 숨을 내뱉었다. 살짝 시선을 들어 위를 보자 미간을 구긴 얼굴이 지나치게 섹시했다.

그 모습에 자극을 받은 나도 더 세게 성기를 빨아들였다. 잘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혀로 기둥을 핥고 귀두 쪽을 입천장으로 꾹꾹 짓누르며 애를 썼다.

“그, 그만하이소.”

부공태의 말에 슬그머니 페니스를 뱉었다.

“왜요? 싫으세요?”

“그기 아이고, 너무… 좋아서… 쌀 거 같심더.”

난 또 뭐라고.

“싸도 돼요.”

그리고 다시 그의 것을 덥석 물었다.

“배, 배우님요!”

그가 소리를 지르건 말건 나는 더 힘껏 페니스를 빨았다. 굵기 때문에 몹시 버거웠지만, 그를 더 즐겁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이란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 읏….”

부공태가 신음을 하더니 셔츠 속 아랫배가 빠르게 오르내리는 게 보였다. 침대 시트를 단단히 부여잡는 주먹도 보였다. 그리고 뒤이어 내 입 안으로 미지근한 것이 쏟아졌다.

생전 처음으로 받아 보는 정액을 나는 반사적으로 꿀꺽, 삼켰다. 그리고 삼키자마자 한 움큼의 정액이 더 쏟아졌다. 그것도 삼켰다.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어 고개를 들었다. 부공태의 얼굴은 아까보다 훨씬 더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그 풀린 눈에 놀란 기색이 보였다. 묻지 않아도 만족한 기색이 보여서 뿌듯했다.

“헤.”

나도 모르게 바보처럼 웃자 부공태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그는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내 얼굴을 급히 더듬었다.

“거 다 삼키 뿌믄 우짭니꺼!”

“안 돼요? 그냥 입에 들어와서 저도 모르게….”

“그케도 그렇지 그그를 묵꼬 있노….”

“음, 맛은 없네요.”

입가에 정액이 묻었는지 부공태는 손가락으로 연신 내 입술을 닦아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을 보니 놀리고 싶어졌다.

“왜요? 공태 씨도 제가 싸면 먹을 거잖아요.”

“우, 우예 그른 말을….”

얼굴이 시뻘게진 그가 손을 내저었다. 나는 일부러 보란 듯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왜요? 내 정액 안 먹을 거예요?”

“묵을 낍니더! 싹 다 빨아 물 낀데! 그거랑은 다르지!”

더 놀리면 울 것 같아서 이만해야지 싶어 그냥 배시시 웃었다. 부공태가 이번에는 내 위로 몸을 덮듯이 올라탔다. 순식간이었다. 역시나 운동하는 사람답게 빠르네.

“그건 그기고, 내도 하게 해 주야지.”

얼굴이 붉어진 주제에 내 위에서 비장하게 말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귀엽기도 한데 무섭기도 했다.

“뭘 할 건데요?”

묻자마자 부공태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었다. 두 팔을 교차해서 단번에 벗어 내는 동작마저도 섹시했다. 그의 멋진 복근이 그대로 드러났다.

“배우님, 내 몸 좋아하지예?”

“네….”

아니라고 대답할 정신도 없어 나오는 대로 말하자 그가 씩 웃었다.

“카믄 맘대로 보이소.”

자신 있게 말한 그가 내 두 다리를 벌렸다. 그대로 내 다리 사이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부공태의 손가락이었다.

“자, 잠깐, 만요.”

“내만 좋으믄 되나. 같이 좋아야지.”

“아니, 전, 괜찮… 읏!”

손가락이 하나 들어왔을 뿐인데도 아래쪽이 뻐근했다. 부공태의 손가락이 본래 굵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나 보다. 손가락 하나가 들어왔는데도 이 정도면, 그의 페니스가 들어올 때는 얼마나 빠듯할까.

“아픕니꺼?”

“아, 아뇨.”

아프진 않은데 긴장되었다. 그리고 내가 긴장했다는 사실을 그가 몰랐으면 싶었다. 능숙하게 보이고 싶었다. 숙맥처럼 보이기는 싫었다.

“근데 와 눈을 감고 있십니꺼.”

그러나 내가 눈을 감고 있단 사실도 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얼른 눈을 뜨자 씩 웃는 부공태의 얼굴이 보였다. 아까와 달리 여유가 보였다. 이게 전세 역전이란 건가.

부공태의 손가락이 내 안쪽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구멍을 꽉 조였다. 내벽이 그의 손가락을 빈틈없이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읏….”

다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 하나만으로 사정하면 나를 어떻게 보겠어. 하지만 손가락이 더 깊이 들어와 내벽 어딘가를 누르는 순간, 몸이 찌르르 떨리며 이상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히익….”

그리고 아랫배가 축축해지는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사정한 것이었다.

‘이, 이게 뭐지?’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각에 나는 눈을 뜨고 내 아래쪽을 확인했다. 정말로 페니스가 젖어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부공태는 놀란 나와 달리 씩 웃고 있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여가 좋은갑네.”

“네?”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도 전에 같은 곳이 또 꾸욱, 눌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나는 또 사정했다. 정액을 주룩주룩 흘리는 내 몸이 부끄러웠다.

“읏, 아, 잠, 깐만, 요! 흑!”

부공태는 야속하게도 내 아래쪽을 또 건드렸다. 눈치 없는 내 페니스는 또 정액을 쏟아 냈다. 몸이 이상했다. 부공태의 손가락 하나로 체액을 주체 못 하고 흘려대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으, 으응, 아….”

심지어 더 환장할 점은, 이게 기분이 좋다는 거였다.

‘끝내준다…!’

뭔지 몰라도 기분이 좋다는 건 확실했다. 부공태의 굵직한 손가락이 내벽을 누를 때마다 감당하기도 힘든 쾌감이 머리끝까지 쭉쭉 솟구쳤다.

“고, 공태 씨, 흐으….”

내가 우는 소리를 내자 부공태가 허리를 숙여 왔다. 뺨과 코끝에 쪽, 쪽, 입을 맞춘 뒤에 시선을 맞춰 주었다.

“와예, 우리 배우님?”

다정하기 그지없이 묻는 목소리. 이건 진짜 반칙이다. 갑자기 그의 아래 깔려서 정액을 질질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면서 온갖 감정이 밀려들었다. 서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오랜 짝사랑이 보상받은 느낌이라 감동적이기도 하고, 눈앞의 그가 지나치게 멋있단 생각도 들었다.

갖가지 감정이 몰려와 결국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눈물을 보이자 부공태는 급격히 당황하며 다른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었다.

“배. 배우님, 우야노. 아픕니꺼?”

“아, 아니요. 흑….”

“카믄 와예?”

“너무, 흑, 좋아서요….”

나 자신이 바보 같은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손가락만으로 가 버린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 섹스(이걸 첫 섹스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에 운 게 더 부끄러웠다.

“울지 마이소.”

부공태는 한쪽 손으로 다정하게 내 뺨을 쓸었다. 구멍에 들어간 손가락은 어쩐지 멈추질 않았다. 울지 말라고 하면서 왜 자꾸 만지는 걸까? 내벽 같은 곳을 꾹, 누르는 또 한 번의 손짓에 곧바로 다시 사정했다.

“흐윽! 그, 그만….”

결국 민망함을 참지 못하고 애원했으나 부공태는 멈추질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 서러웠다.

“그, 그만, 해요.”

“예에, 조금만 더 하고예.”

아니, 벌써 몇 번이나 쌌는데! 나는 울음을 참으며 버텨 보려 했지만 부공태의 굵직한 손가락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몇 번이고 내 아래쪽을 꾹꾹 눌러 댔고, 나는 그때마다 속절없이 사정했다. 몸에 있는 수분이 죄다 빠져나갈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많이 쌌는데 물이 계속 나왔다. 수분 때문이 아니라 창피함 때문에 탈진할 지경이 되어서야 그의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흑, 흐으….”

몸을 늘어뜨리고 신음하고 있자니 그가 다시 내 위로 몸을 겹쳐 왔다. 얼굴 곳곳에 내려앉는 입맞춤이 하도 달아서 어쩔 수 없이 화가 풀려 버렸다.

“너무, 흑, 이상하단, 말이에요.”

“예에, 알았심더. 미안합니더.”

웃음 섞인 어투로 달래는 목소리마저 다정했다.

부공태는 나를 욕실로 직접 안아 데리고 갔다. 옷을 벗은 채로 그에게 안겨 있자니 면구스러웠지만 말캉하고 매끈한 가슴이 얼굴에 닿는 게 좋아서 얌전히 있었다.

욕실은 호화로울 정도로 크고 으리으리했다. 그의 부친께서 꽤 부자이셨다는 사실에 이어 아버지한테서 받은 월급이 꽤 된다는 것도 떠올랐다.

그가 나를 씻겨 주는 동안 나는 얌전히 있었다. 그러다 부공태가 발기했다. 그가 극구 거부했지만 나는 그의 페니스를 손으로 쥐었다.

‘어, 엄청 크다….’

사실 패기롭게 쥐긴 했지만 막상 잡고 보니 내 손에 넘칠 정도의 크기여서 살짝 당황했다. 그래도 사나이 주희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지… 공태 씨가 알려 주세요.”

부공태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가 커다란 손을 내 손 위에 겹쳐 쥐었다. 새삼 그의 손두께에 놀랐다.

“여, 여를, 이래 잡고 하는 게 좋심더….”

그가 내 검지와 엄지를 귀두 바로 아래쪽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이끄는 대로 열심히 움직였다.

잔뜩 흥분한 채로 헐떡거리는 부공태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즐거웠다. 이런 모습을 본 게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자 더 즐거웠다. 할 수만 있다면 이 곰돌이를 가둬 두고 매일 나만 보고 싶단 생각까지 하면서, 나는 열심히 그의 페니스를 문질렀다.

첫 섹스는 삽입이 없었지만 달고 즐거웠다. 그 역시 나와 같은 감각을 느낀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막 사정한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댄 채 몰아쉬는 숨소리를 듣는 일도 행복했다.

***

부공태의 오피스텔 근처에서 아침밥을 먹고 우리는 헤어졌다. 아쉽게도 부공태 친구가 근처에 들른다고 해서 내가 먼저 가 보겠다고 했다.

“그냥 친구 넘하고 점심 같이 묵고 가지예.”

“에이, 아니에요. 근처 왔다가 일부러 공태 씨 보려고 오랜만에 온 거라면서요. 방해 안 할래요.”

“그케도….”

“저 이래 봬도 바쁘거든요? 흥.”

일부러 배를 내밀며 말하자 그가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내 얼굴이 워낙 알려진 터라 아마 갑자기 끼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할 터다.

“카믄 할 수 없지예. 연락하께예.”

떠나는 부공태에게 씩씩하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택시를 불렀다. 어쩐지 허리가 살짝 뻐근한 느낌이 들어서 뿌듯했다.

‘드디어 했다!’

부공태가 사라지고 사람이 없는 골목에서 혼자 파이팅 포즈도 취하고 춤도 췄다. 드디어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에 당장 지나가는 사람에게 뽀뽀라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쁜 것은 부공태가 내 사람이라는 게 진짜로 실감 난단 점이었다.

여태까지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부공태가 가끔 집에 와서 차 한잔을 하고 헤어지는 것도 데이트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부공태가 바쁘고 내가 유명인이라 밖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니 만남에 제약이 많으리란 건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부공태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아무래도 좋았다. 함께 있는 곳이 어디여도 상관없었다. 집구석이든, 허허벌판이든 부공태와 함께 있기만 하면 무조건 좋을 것 같았다.

‘나 진짜 애인 잘 만났나 봐.’

진짜 잘해 줘야지, 혼자 다짐하며 막 도착한 택시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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