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라영 씨, 이거 받으세요.”
눈앞의 라영에게 푹 빠져 착실히 시중을 들고 있는 사랑스러운 호구 알파가 보인다. 라영은 소파에 길게 늘어져 있다가 몸을 일으키며 이헌이 건네는 작은 유리 볼을 받아 들었다. 모던한 디자인의 볼 안에는 새빨간 체리가 좔좔 흐르는 윤기를 뽐내며 소복이 담겨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아.”
말을 늘이며 앙 벌린 입에 체리 하나를 쏙 집어넣었다. 과육이 터지며 퍼지는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서로 보고 싶다며 매일 어떻게든 찾아오려고 핑계를 만드는 이헌을 두고, ‘그래. 어차피 요즘 일도 안 바쁜데’라고 자기합리화 하며 불붙은 김에 더 불 질러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앞세워 퇴근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나던 와중, 이제는 주말이니 더더욱 함께 보내야 한다며 이헌의 집까지 밀고 들어온 참이다.
불은 네가 지폈고 나는 기름을 더 부었을 뿐이다. 그리고 불 지핀 자는 신난다고 부채질을 해대니 도대체가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주중에는 자중한다고 내내 건전한 데이트만 즐기다가 밀폐된 공간, 특히 집까지 들어오니 참아왔던 욕망이 더욱 커져서 문 닫고 들어오자마자 엉겨 붙어서 현관에서 일을 쳤다.
씻고 나와서는 이헌의 셔츠만을 한 장 걸친 채 요리를 하는 사람을 두고 집을 구경했다. 황당하게도 집은 구경할 것도 없었다. 펜트 하우스인지 초고층에 대가족이 뛰어 놀아도 충분할 것 같은 크기인데, 볼 게 없을 거라더니 정말 뭐가 없어도 너무 없다. 아주 단순하면서 심플한 디자인의 최소한의 가구와 가전제품이 있을 뿐이었다.
안방에는 침대와 협탁, 넓은 드레스룸 안에는 옷이 반도 차 있지 않았고, 책상과 의자가 있는 방에만 노트북과 여러 가지 서류 더미와 자잘한 전자 기기 등으로 약간의 생활감만 있고 나머지 방들은 모두 텅 비어 있었다. 거실에도 커다란 소파와 티 테이블과 TV가 끝이었다. 커튼과 블라인드가 착실히 달려 있는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마침 식사가 다 준비됐다며 부르는 소리에 주방으로 가서 그가 한 음식을 먹고 설거지마저 거절당한 뒤 소파에 누워서 TV 채널을 뒤적이던 참이었다.
주방에서 테이블을 정리하고 식기세척기를 돌리는 저 우렁 각시 애인 옆에 붙어서 이야기라도 건네며 도와주고 싶었지만, 주말 출근을 절대 안 하기 위해 어제 오늘 애를 쓴 라영은 기운이 너무 없었다. 그런 몸뚱이를 가지고 1차로 잔뜩 사랑을 나누고 식사까지 했으니 식곤증이 절로 몰려왔다.
“자기도 드세요.”
라영이 체리가 담긴 볼을 옆에 앉은 이헌에게 내밀었다.
“아닙니다. 많이 드세요.”
“이미 너무 먹어서 배가 터지겠는걸.”
좋아하는 알파 앞에서 저도 모르게 예쁜 척을 하느라 자꾸 말이 짧아진다. 이젠 스무 살도 아닌데 이래도 되나 싶지만 자꾸 남자의 본능보다 오메가의 본능이 더 몰려와서 라영의 뇌를 꽉 쥐었다. 몸에 존재하는 오메가의 세포가 ‘이 알파를 꽉 잡아! 잡아서 얼른 번식해!’라고 말하는 기분이다. 이렇게 몸소 체험하니 더 강한 개체로, 더 많이 번식하기 위해 이렇게 인류가 형질자들로 진화했다고 말하는 학자들의 의견에 존중을 보내야 할 것만 같다.
이헌은 극존칭을 쓰는 자신 앞에서 반말과 귀여운 척을 하는 라영을 보고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다는 듯이 흐뭇하게 웃으며 라영의 촉촉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눈빛을 좀 봐.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이잖아. 나도 나지만 너는 얼마나 나에게 푹 빠져 있는 거니, 대체.
{이리 와! 다시는 저런 놈들하고 말도 섞지 마!}
{아파, 제발 이것 좀 놔!}
한창 나른하게 고양이처럼 쓰다듬을 즐기고 있는데 TV 화면 속에서 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거칠게 끌며 큰소리 내는 장면이 나왔다.
“아, 저거 십 년 전에 유행했던 알파 오메가 커플 막장 러브 스토리죠? 아니다, 십 년도 넘은 거 같아. 나 고등학교 때 유행하던 거니까. 이게 아직도 케이블에서 나오는구나. 하긴 진짜 인기 많기는 했어요. 이제 보니 정말 촌스럽다. 세상에, 그리고 저거 뭐야? 요즘은 저렇게 알파가 강압적으로 억지로 끌고 가면 신고당하는 세상인데. 저 때는 다들 박력 있고 멋있다고 저걸 보면서 좋아했다니까요.”
오랜만에 보는 시대를 풍미했던 미니시리즈를 보며 라영은 주절주절 말을 이었다.
“저 때 저런 게 유행을 하니 안 그래도 드센 알파들이 저게 당연한 줄 알고…. 진짜 싫어요, 저런 거.”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격하게 혐오를 내뱉는 라영을 보며 이헌이 슬쩍 물었다.
“라영 씨도 저런 경험이 있습니까?”
“그럼요, 있다 뿐이겠어. 얼마나 또라이 같은 알파들이 많았는데요.”
“그걸 신고하지 않고 가만뒀나요?”
“그게 대체로 스무 살? 스물한 살? 그때쯤 있었던 일인데, 당시에는 저 드라마처럼 저 정도 강압과 폭력은 알파의 박력이나 매력으로 평하던 시기라……. 걔들도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고 저도 신고까지 할 생각은 안 해 봤어요.”
라영이 당시를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제일 심했던 알파 이야기 하나만 들려주세요.”
“음……. 다 또라이 같았어서 도대체 어떤 또라이를 최고의 또라이로 꼽아야 할지….”
또라이 같아서 또라이라고 했을 뿐이온데, 왜 그 또라이가 최고의또라이라고 물어보시오면…. 자꾸 또라이 또라이 거리니 머릿속도 또라이 같아져서 잘 생각이 안 난다. 눈알을 위로 굴리며 과거를 회상하던 라영은 아 소리를 내며 무릎을 탁 쳤다.
“스물한 살에 만난 진짜 이상한 알파 새끼가 하나 있었는데, 걔가 재벌 3세에 정말 저 잘난 맛으로 사는 놈이었어요. 근데 무슨 자격지심이 있었는지 자기를 꼭 과시하고 싶어 하는 놈이었는데… 아무래도 집에서 무시를 당했던지 무슨 큰 약점이 있었나 봐. 오래 안 만나서 그런 속내까지는 모르는데 진짜 한시도 자랑을 안 하고는 못 배겼거든요.”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그런 놈을 왜 만났는지 기분이 더럽다. 아, 그 녀석이 다른 건 몰라도 얼굴이랑 몸 하나는 끝내줬었다. 이헌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런 놈이 우성 알파의 표본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큰 키에 홍콩 영화 배우만큼 잘생긴 얼굴을 자랑했다. 뭐 당시에 한창 홍콩 느와르에 빠져 있을 시기이기도 했고.
“생각해 보니 나랑 만난 것도 그런 자기 과시의 일종이었던 것 같아. 나를 트로피 애인 취급했었거든요. 이쪽저쪽 자기 사람들 앞에 데리고 다니고, 맨날 멋있게 입고 와라, 예쁘게 꾸미고 오라고 하면서 숨 막히게 관리하고.”
“대체 그런 새끼…를 왜 만났습니까?”
이 사람도 이제 내가 슬슬 편해지나 봐. 이헌답지 않은 욕설이 삐쭉 튀어나와 웃음이 났다. 물론 본인도 깜짝 놀랐는지 말을 하면서 멈칫했다.
“그 자식이 진짜 잘생겼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느끼한데 당시에는 그게 진짜 잘생겼다 생각했었나 봐. 그런 거 다 감수하고 두 달이나 만났던 거 보면.”
“그럼 그 알파가 트로피 취급하고 관리를 너무 심하게 해서 헤어진 건가요?”
“아뇨, 그 정도 가지고는 최악의 또라이라고 말 못 하지. 진짜 최악의 사건이 따로 있었어요.”
다시 떠올리니까 아직도 화가 난다. 뭐 그런 또라이가 다 있지.
“그때가 가을에 있던 무슨 행사 기간이었는데, 그 건물에서 무슨 행사가 있어서 인파가 진짜 많았거든요? 거기서 같이 행사 참여하고 있는데, 갑자기 뭐에 미쳤는지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더니 칸에 막 밀어 넣고 옷을 벗기면서 여기서 당장 하자고 그러는 거야, 미친놈이.”
흥분하며 얘기를 이어 가다 검지로 이헌을 가리키며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헌 씨도 우리 학교 나왔잖아. 우리 동문 맞죠?”
“네, 맞습니다. 한국대학교.”
“그럼 거기 알겠네, 진리관! 거기 화장실이 진짜 건물 정중앙에 있고 칸막이도 진짜 빈약했다구요. 그런 오픈 된 공간에서 섹스를 하자고 달려드니 진짜 미친놈이지. 막 그렇게 끌고 들어가면 멋있는 줄 알았나 봐, 진짜. 내가 사람들 다 있는 이런 데서는 싫다고 하니까 그 자식이 뭐라고 말했는 줄 알아요? 여기서 하면 모두 네가 내 오메가인 줄 알 거야, 이 지랄을 했었나? 아니 그게 뭔 개소리야, 진짜 정말.”
열 받은 얼굴을 손으로 부채질해 가며 진짜 진짜를 거듭 말했다. 아무래도 라영은 흥분하면 말이 빨라지고 똑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나 흥분하게 하려고 페로몬 막 뿜어내면서 옷 안에 손 넣고 막 더듬는데, 내가 극우성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무너져서 거기서 당했을 거예요. 근데 더 웃긴 건 페로몬으로는 이겨도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더라고. 싫다고 아무리 말해도 힘으로 막 밀어붙여서 당하려는 찰나에 누가 칸 밖에서 문을 쾅 쳤어요. 그래서 그 자식 깜짝 놀라서 굳은 사이에 쪼인트 까고 도망쳤지.”
과거로 넘어가 다시 한번 쪼인트를 까는 것처럼 오른쪽 무릎을 들썩거린다.
“거기서 완전히 고자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진짜 내가 대자보 붙이려다 말았다.”
한창 씩씩거리다가 이야기를 마치니 정신이 돌아왔는지, 험악한 얼굴을 한 채 굳어 있는 이헌의 눈치를 보며 라영이 물었다.
“내가 너무 솔직히 말했나…? 정 떨어진 거 아니죠, 이헌 씨?”
“아닙니다. 괜찮아요.”
이헌의 대답에도 라영은 울상이 되어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우리 엄마가 난 진짜 알파들 앞에서 입 조심하고 주책 좀 떨지 말라고, 그러니까 다른 오메가들 다 장가 갈 때 안 가고 남아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랬는데… 미안해요. 제가 남의 과거 신경 안 쓴다고 해서 남들도 다 그런 게 아닌데…….”
쩔쩔매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에 이헌의 표정이 점점 풀어져서 평소처럼 옅은 미소를 띠었다.
“전혀 아닙니다. 과거는 과거죠. 저도 그런 거 신경 안 씁니다. 그 자식이 잘못한 거지 라영 씨 잘못이 뭐가 있나요?”
어쩜 말도 참 예쁘게 한다. 그 자식이라는 단어에 살짝 강세가 세게 들어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어여쁘다. 고럼고럼, 혹시라도 이헌이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 못 하고 라영을 힐난했다면 큰 실망을 할 뻔했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남아 있어 줘서 우리가 만나지 않았나요?”
과거를 필터 없이 주절주절 나불대던 제 오메가를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 주는 이헌의 모습에 라영의 마음에 사랑스러움이 가득 차올랐다.
이렇게 마음이 예쁜 사람에게는 뽀뽀를 해 줘야 마땅하다. 이헌의얼굴을 붙잡고 입술과 볼에 쪽쪽쪽 베이비 키스를 뿌리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무릎에 올라타서 그런지 흥분감이 몰려왔다.
“아….”
신음이 절로 나오며 뽀뽀가 점점 짙은 입맞춤으로 변하고, 이헌은스리슬쩍 양손으로 라영의 바깥 허벅지를 더듬으며 드로어즈가 끝나는 지점의 살을 손톱으로 살살 긁어내렸다.
그 손길에 피부에 소름이 돋으며 간질간질 짜릿하다. 이 남자, 평소에는 순진하게 굴면서 잠자리에서는 어떻게 상대를 흥분시킬 수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 그 괴리감이 라영을 더욱 미치게 했다.
목을 끌어안고 뜨거운 입술을 서로 헤집으며 페로몬을 개방했다. 달달한 향기와 시원한 향기가 공기 중에 짙게 뒤섞였다.
깔고 앉아 있는 성기가 완전히 딱딱해지자 흥분감을 참지 못하고 엉덩이로 난잡하게 비볐다. 그러자 이헌은 짐승 같은 소리를 낮게 내지르고 라영의 드로어즈를 한쪽으로 완전히 젖혀서 손가락을 급하게 쑤셔 넣었다.
두어 시간 전의 관계로 녹진하게 풀려 있는 구멍은 손가락을 수월하게 받아들였다. 아니, 이미 찰팍거리고 있는 흥건한 애액이 그 손가락을 기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손가락 두 개를 딜도처럼 자위 도구로 쓰듯이 엉덩이를 신나게 들썩거리던 라영은 도저히 못 참겠다고 속삭이며 자신의 속옷을 벗어 버리고 이헌의 조거 팬츠와 속옷을 한꺼번에 끌어 내렸다. 그리고는 벌겋게 성이 나 있는 자지를 손으로 고정하고 구멍에 맞춰서 몸을 내려앉았다.
“아… 이거야. 진짜 너무 좋아….”
오메가의 몸은 기뻐하며 알파를 받아들였다.
“…좋습니까?”
“응….”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이 씩 웃은 이헌이 라영의 셔츠를 벗기며 고개를 조금 숙이고 길게 혀를 내밀어 분홍빛의 수줍은 유두에 밀착했다.
힘주어 빨아들이지도 혀를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라영이 자신의 혀를 스스로 문지를 수 있게 길게 빼고 힘을 주고 있을 뿐. 그 모습을 보며 라영은 더 적극적으로 몸을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허리를 안고 살짝살짝 쓰다듬는 손 외에 움직이지 않는 이헌을 두고 스스로의 쾌락점을 찾아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니, 나는 이렇게 음란한 사람이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 수치심과 함께 더 흥분이 된다.
흥분된 몸이 자연스럽게 수축하며 알파의 자지를 쥐어짰다.
그러자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이헌이 라영을 안고 급하게 일어났다.
“아…! 나 무거운데…!”
“힘 빼요. 절대 안 놓쳐.”
깜짝 놀라서 지르는 신음 같은 말에 이헌이 라영의 엉덩이 밑을 더욱 안정적으로 추켜올리며 허리를 움직여 자지를 박아 넣었다.
퍽, 퍽, 퍽, 퍽.
잔뜩 흥분한 애액이 찰팍거리며 튀어 올랐고, 뜨겁고 단단하게 움직이는 온몸의 근육을 마찬가지로 온몸으로 느끼며 목에 매달려서 소리를 질렀다. 이헌이 그 난잡한 소리를 즐기며 나직하게 내뱉었다.
“당신. 너무. 야해.”
격렬한 몸놀림에 말이 뚝뚝 끊긴다. 느낄 때 목소리부터 이 하얗고 낭창한 몸까지 어디 하나 야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고 중얼거리며 이헌이 점점 더 속도를 높였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나요?”
라영은 이헌에게 매달려 그의 목과 머리를 두 팔로 부여잡고 잘생긴 귀를 할짝대며 속삭이듯이 물었다. 마치 물으면서도 대답을 다 알고 있는 듯한 자신만만한 투였다.
“아니, 마음에 안 들 리가요. 매일매일 미칠 것 같은데.”
흥분해서 그런지 처음으로 말이 짧아졌다. 이 남자는 반말을 해도 멋있구나. 나중에는 꼭 반말해 달라고 해야지.
“딴생각하지, 자꾸?”
“아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기민하게 눈치채고는 목덜미에 이를 박고 잘근잘근 씹으며 빨아 올린다.
“당신은 이제, 나만 보면 돼요.”
그렇게 말하고는 앞으로 걸어가 라영의 등을 벽에다 기대게 한 채 단단한 제 허벅지에 올리고는 더더욱 거칠게 움직였다.
“아…! 아…!”
안에서는 이헌의 성기가 내벽을 헤집고 있고 밖에서는 두 사람의 피부 사이에 밀착된 라영의 성기가 잔뜩 비벼지고 있으니 양쪽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쾌감에 내내 신음이 샜다.
라영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달랑거리는 성기에서 우윳빛 정액을 내뿜었다. 두 번째 정사인데도 어찌나 흥분을 했는지 세게 쏘아 올려진 정액이 조금 더 아래에 있던 이헌의 얼굴 위에 난잡하게 튀었다.
그러자 멈칫한 것도 잠시, 입가에 튄 정액을 혀로 싸악 훑어 먹으며 이헌은 위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격하게 움직이며 라영의 허리를 터질 듯이 힘주어 껴안으며 포효했다.
몸 안에 미지근한 정액이 쏘아 올려지는 감각이 예민하게 느껴졌다. 그러자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기운이 쭉 빠졌다.
“흐응……. 나 힘없어요. 매달리느라 힘 다 썼어.”
그 애교에 사정의 여운에 빠져 있던 이헌이 피식 웃으며 라영을 그대로 들고 침실로 걸음을 옮겨 침대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대로 자요. 제가 다 닦아 놓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요.”
직장 상사의 인자한 작별 인사 같은 멘트에 라영은 헤실헤실 웃으며 수마에 몸을 맡겼다.
“아…….”
계속 모니터를 보며 앉아 있는 것이 찌뿌둥해서 잠시 일어나서 허리에 손을 얹고 뒤로 젖히면서 스트레칭을 하는데, 이완된 몸에서 축축한 것이 새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속옷을 적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어제 그대로 잠이 들고 난 이후에 아침에 일어나서 뺀다고 뺐는데 아직도 잔여물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건 이헌의 것이 유독 양이 많은 건지, 아니면 자신이 아침에 뒤처리를 제대로 못 한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민망한 부분에서도 이헌은 라영의 생활 면면에 스며들어 있었다. 언제부터 함께하는 존재에 대해서 이렇게 자연스러워졌지? 이제는 혼자였던 시간을 다시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치 함께하는 이 시간과 인생의 순간이 낙원과도 같아서 온전히 평안하고 안락했다.
함께 몸을 섞을 때는 자극의 극치라는 점에서 세상의 그 어떤 위험하고도 몸에 단 타락과도 닮아 있었지만, 이헌과의 관계는 중독성이 있을 만큼 극치의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지옥이라는 묘사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묘사하기에는 이헌은 솜사탕이나 곰 인형, 나의 집 같은 달달하고 사랑스러운 것들과 닮았다. 그만큼 그는 라영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주고 있었다.
과거에 있어 왔던, 지극히 연애로만 사람을 만날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어릴 때의 불장난처럼 끝이 있다고 생각하던 가벼운 만남과는 시작부터 정말 달라서 ‘그래, 이런 느낌을 주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지.’라고 곧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기분이 처음이라 더더욱 운명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지.
멍하니 생각을 하다가 현실을 다시 직시하고 화들짝 놀랐다.
찝찝하게 더 속옷이 젖기 전에 빨리 수습을 해야겠다 싶어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칸막이의 문을 열고 들어가 걸쇠를 잠그고 급하게 옷을 내리는데, 서두르느라 너무 급하게 움직인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유독 바닥 면이 미끄러운 로퍼를 신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쿠당탕.
청소를 하시는 분이 오늘은 물청소를 하신 건지 다 마르지 않고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는 곳을 제대로 밟은 라영은 화장실 칸 안에서 대차게 미끄러졌다. 아마 변기가 있고 좁은 칸막이 안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바닥에서 슬라이딩했을 것이다.
거세게 미끄러지는 몸을 순발력을 가지고 손으로 변기와 벽을 짚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큰 일이 날뻔했다. 넘어지는 몸뚱이를 워낙 급박하게 지탱하느라 큰 소리가 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안에 괜찮으세요?”
똑똑, 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칸 밖에서 거창한 소리를 내며 넘어진 라영을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인 것을 들으니, 아마 다른 팀 사람인가 보다.
“아, 네! 괜찮습니다!”
라영은 자신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부러 힘차게 대답했다. 민망해 죽겠네……. 다 큰 어른이 화장실 안에서 넘어진 것도 창피한데, 그런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가 근처에서 듣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렇지만 창피한 것과 별개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혹시 모를 사고를 걱정하는 마음에 직접 물어봐 주기까지 하다니. 지나가는 타인이지만 참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라영은 뒤처리를 다 하고 나와서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약간의 기시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비슷한 상황에서 생판 모르는 남이 나를 구해 준 적이 전에도 있었었지. 어제 이헌에게는 우스꽝스럽고 가볍게 이야기하고 지나갔지만, 실제로는 좀 더 심각한 일이었다.
당시에 사귀던 남친에게 페로몬 샤워를 당하고 강간을 당하기 직전, 화장실 칸막이 밖의 누군가의 도움으로 정신이 나간 전 남친의 급소를 차고 도망쳤으나 진짜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났다. 우성 알파의 진득한 페로몬 샤워로 인해 히트 사이클이 일어나려고 한 것이다. 분명 자신이 극우성 오메가가 아니었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히트가 터졌을 거였다. 당시의 라영은 폭발하려고 하는 페로몬을 힘겹게 억누르며 근처 빈 강의실로 자리를 옮겼었고, 누군가가 두고 간 억제제를 먹고 겨우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조금 전에도 기시감을 느끼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제 이헌과 나눈 대화로 당시의 일을 떠올렸던 탓일까? 오랜만에 먼 과거의 일이 다시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정말 내가 다시는 그놈 같은 우성 알파를 만나나 봐라.’
강의가 끝나고도 화가 식지 않아서 씩씩거리며 강의실 밖으로 코끼리처럼 쾅쾅 걸음을 옮기는 라영을 보고 친구들은 토닥이며 위로를 했다.
라영이 전 남친에게 봉변을 당한 다음 날이었다.
‘근데 어떻게 걸려도 꼭 그런 머저리 같은 놈들만 걸리냐, 너는?’
한심하다는 투가 아니라 정말 안쓰럽고 안타깝다는 투였다. 분명 멀쩡한 우성 알파도 있을 텐데, 라영이 사귀게 되는 알파들은 죄다 교내 미친놈 리스트의 순위권을 차지할 만한 이상한 인간들이었다. 이쯤 되면 라영에게 미친놈을 끌어들이는 어떤 엄청난 힘이 있는 건지, 아니면 라영이 상대방을 미친놈으로 만드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난들 그런 머저리인 줄 알았나? 생긴 거만 보고 골랐지, 뭐.’
위로와 함께 오는 충고에 지레 찔린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부터 라영의 분노와 울분을 내내 위로해 주던 친구들이 이제 슬슬 입을 열어 라영을 진심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휴……. 앞으로는 얼굴만 보고 혹하는 그 금사빠 기질 좀 죽여.’
‘맞아. 이 정도였기 망정이지 더 미친놈이면 어쩔 뻔했어?’
‘나도 동감. 물론 그 쌍놈이 개새끼인 게 제일 잘못이지만, 네가 좀 더 사람을 오래 보면서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는 있지.’
‘나는 진짜 어느 날 어떤 미친놈이 라영이 납치해 갈까 봐 그게 걱정이야.’
툭툭 던지면서 가볍게 말하는 듯하지만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다.
‘그러게……. 진짜 사람 보는 눈 좀 키워야겠어….’
라영이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쉬면서 반성했다. 친구들의 말이 다 맞았다. 미친놈인 건 라영의 잘못이 아니지만, 미친놈을 차근히 시간을 두고 만나면서 미처 걸러내지 못한 것은 라영의 실책이었다.
‘다 이게 인생 경험이지, 뭐. 어깨 펴, 이라영.’
‘그래, 앞으로 신중하면 되지. 내가 커피 사 줄게, 가자!’
민망하고 풀이 죽어서 축 처진 라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친구들이 연신 위로의 말을 이었다.
쪼르륵.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일회용 플라스틱 컵 안에서 빨대 안으로 힘차게 빨려 들어갔다. 이제 컵 안에는 갈색은 전부 사라지고 얼음들만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남아서 저들끼리 온통 투명한 색을 자랑했다.
‘으어, 심장 쿵쾅거려.’
‘그러게, 커피를 왜 그렇게 급하게 마셔?’
몸 안으로 빠르게 들어온 많은 양의 카페인이 혈류의 맥을 빠르게 했다. 그런 라영을 보며 지혁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열 받아서 목이 타는 걸 어떡해?’
‘으이구.’
페로몬 샤워를 당한 몸이 이상을 일으켰다. 다시 생각해도 개새끼가 아닐 수 없다. 어제 병원에서 진료와 처치를 받았지만, 아직 완전히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않은 몸에 미열이 조금 남아서 라영을 괴롭혔다. 그나마 오한이 드는 열은 아닌 게 다행이었다.
‘잊어버려, 그냥.’
미열이 있는 몸 상태를 떠올리자 재차 화가 치밀어 올라 미세하게 씩씩거리고 있는 라영을 본 지혁이 컵을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라영의 등을 두드리며 말을 툭 던졌다.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상대방은 재벌 3세인 우성 알파였고, 라영은 힘없는 서민이다.
다른 두 친구는 시간표가 달라서 수업에 들어가고, 라영과 단둘이 남자 같은 오메가인 지혁이 커피가 담긴 컵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춰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페로몬은 괜찮아? 아까부터 좀 힘들어 보이는데….’
열성 오메가인 지혁이 알아챌 정도였나, 라영은 자꾸 삐쭉 튀어나오려고 하는 페로몬을 다시 갈무리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괜찮아야지.’
‘계속 안 좋은 것 같으면 병원에 다시 가 봐.’
‘응. 좀 더 지켜보고.’
큰일을 당하고도 씩씩하게 굴려고 노력하는 라영을 보며 지혁은 한숨을 쉬면서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구해 준 사람이 있었다고?’
‘응. 그 사람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났을지도.’
캠퍼스를 걸으며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말했지만, 머릿속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이유 없는 호의를 받은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 만큼 큰 도움을 받았다. 일종의 은인이었다.
다시 말하기도 짜증 나는 홍콩 배우를 닮은 전 남친이 라영을 화장실 칸으로 억지로 끌고 들어가서 겁간하기 직전에 화장실 문을 쳐서 그걸 막아 준 사람. 그 사람은 분명 우성 알파였다.
같은 우성 알파를 페로몬으로 눌러 놀라게 할 수 있는, 더 거센 페로몬을 가진 또 다른 우성 알파. 라영은 당시에 긴박한 중에도 그것을 기민하게 느꼈다. 사실 전 남친의 행동을 멈추게 한 것은 문을 가격하는 큰 소리가 아니라, 칸 밖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분노의 감정을 담은 알파 페로몬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생경한 페로몬인 것을 보니 분명 라영이 아는 사람은 아닌데,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서 분노하며 자신을 구해 준 사람….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알아볼 겨를이 없었지만, 적당한 치료를 받고 이성이 돌아온 지금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큰일을 면했어요, 라고 말하며 허리를 숙여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지만, 도대체가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자 지혁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원래 은혜라는 건 서로 주고받는 게 아니래. 내가 받은 고마움을 그것 이상으로 또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것, 그게 정말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했어.’
오……. 진정한 홍익인간 정신인가? 라영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린이 동화책에서 나올 법한 정론이지만 정말 맞는 말이었다.
라영은 지혁의 말을 잊어버리지 않게 가슴속에 새기면서 다짐했다. 타인의 어려움을 모르는 척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자신이 받은 도움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미열로 인해 땀이 살짝 맺힌 이마를 가을바람에 식히며 라영은 어제 도움을 받았던 이의 페로몬을 떠올렸다.
자신이 숨은 강의실에 두고 간 억제제에도 배어 있던 그 페로몬……. 도와준 사람은 동일인이 틀림없었다. 분노를 담은 감정 페로몬이었지만, 분명 매력적이었지. 나쁘지 않았어. 마음속에서 혼자서만 되뇌며 지혁과 함께 다음 수업이 있는 강의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폭탄이 불시에 터진 건 아니었다. 이쯤 되면 터질 때가 됐는데 싶어서 라영은 미리 팀장에게도 사정을 이야기하고 일이 회사에서 급하게 터졌을 때를 대비해서 날짜 쓰고 결재만 누르면 올라가도록 의사 소견서를 첨부한 병가 서류까지 그룹웨어에 만들어 놨다.
그 모습을 본 경현은 역시 ENTJ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혹시라도 집에 좀비 바이러스 대비 물품이 있는 게 아니냐며 진지하게 물어봤다.
폭탄의 이름은 히트 사이클.
한 번도 의학의 도움 없는 날 것의 히트 사이클을 겪어 본 적 없는 라영은 오전까지만 해도 무리해서 열이 좀 나는 건가 생각하며 업무를 하다가, 점심을 먹고 온 뒤 이상하게 간질거리는 느낌과 점점 더 심해지는 발열 증세에 깨달았다. 드디어 왔구나, 이놈이. 나는 절대 내 몸에 있어서 아리까리 하지 않지. 이건 백 퍼센트다.
그러고는 미리 생각해 둔 매뉴얼대로 실행을 했다.
[이헌 씨, 히트 터졌어. 나 좀 바로 데리러 와요.]
톡을 보내 놓고는 하던 업무를 마무리한 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이쯤 내려가면 이헌이 와 있을 것이다.
“팀장님, 저 저번에 말씀드린 그 일 때문에 이만 퇴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게 오늘이야? 알았어. 얼른 들어가 봐!”
시니어 아트 디렉터이자 베타인 유 팀장은 열이 올라 얼굴이 붉어진 라영의 모습에 본인이 더 당황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형질자들의 사정이라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굴을 보니 심각함을 직감한 것이다.
“병가 서류 결재해 주세요. 저번처럼 실수로 반려 누르시면 절대 안 돼요…. 저 며칠간은 그룹웨어 절대 접속 못 합니다아…….”
몸이 아프니까 말이 늘어진다.
“그건 내가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딱 한 번 실수한 거지!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하고. 하던 일은 진희한테 미리 다 인계했다고 했지? 그거면 됐어. 병가 기간 동안 절대 연락 안 가게 할 테니까 얼른 들어가 봐.”
“네…. 들어가 보겠습니다…….”
열 기운에 휘적휘적 몸을 추스르며 건물을 나왔더니 사랑스러운 애인이 회사 바로 앞에서 차 비상등을 켜고 정차하고 있었다.
회전문을 밀고 나오는 라영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달려온 이헌은 라영의 몸 위로 얇은 담요를 둘러 혹시라도 발정의 페로몬이 새어 나가는 일이 없게 했다.
그렇게 라영을 부축해 차에 태우고 본인의 집으로 향했다.
“라영 씨가 미리 말한 대로 음식이랑 다 준비해 놨으니 바로 집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더 필요한 건 없을까요?”
완벽하다. 완벽한 준비야. 그렇게 집에 진짜로 좀비 대비 물품 키트를 담은 배낭을 가지고 있는 라영은 생각했다.
“네, 그거면 된 것 같아요. 폐를 끼쳐서 미안해요.”
“폐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더 서운합니다. 근데 아직 페로몬이 그렇게 진한 것 같지 않은데….”
“이헌 씨 운전 방해될까 봐 지금 필사적으로 누르는 중인데….”
“아, 미안해요. 서두르겠습니다.”
이헌은 가속 폐달을 더 힘차게 밟았다.
“흐으… 하아… 안 돼요…. 아… 죽을 것 같아….”
엎드려서 침대 시트에 얼굴을 박고 엉덩이만 치켜든 채로 뒤에서 사정없이 박히고 있던 라영은 이제 제발 그만 해 달라며 사정했다.
반나절 전에 이헌의 집으로 쓰러지듯 들어온 라영은 밀폐된 공간을 감지하자마자 억눌렀던 발정 페로몬을 그대로 풀어냈고, 그대로 이헌과 몸을 겹치며 난잡한 섹스를 시작했다.
극우성 오메가의 강한 발정기 페로몬을 그대로 받은 이헌도 바로 러트 사이클에 돌입했고, 이성이 날아간 채로 적극적으로 즐기던 것도 초반뿐. 사정의 횟수가 열 번이 넘어가자 급격하게 체력이 달리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혼자만 이성이 돌아오는 듯하다는 것이다.
이헌의 모습은 평소의 다정하고 온유한 분위기를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거칠었다.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무너진 라영의 허리를 양손으로 꽉 붙든 채 거칠게 박아 넣었다. 허리를 양쪽으로 잡은 게 아니라 거의 들고 고정시키고 있는 지경이다.
반복된 쾌감에도 구멍으로 들어오는 성기의 울퉁불퉁한 핏줄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느껴져서 미칠 것 같았다.
탄력 있는 엉덩이와 허리를 미친 듯이 움직이던 이헌이 “흡…!” 하는 소리와 함께 라영을 뒤에서 꼭 껴안고 무너져 내렸다.
“하아,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싸려는 듯 허리를 털고 있던 이헌이 호흡을 고르다가 몸을 뒤로 물렸다.
“왜… 왜 떨어지는 거예요.”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던 몸이 떨어져 나가자 라영이 칭얼거리며 말했다.
“아, 콘돔에서 혹시 새어 나갈까 봐 걱정돼서요. 히트라 피임을 신경 써야 하니까….”
그러고서는 콘돔을 빼서 묶어 바닥에 던지는데 그 던져진 포물선을 따라가 보니 바닥에 사용한 콘돔이 즐비하다. 이 지경이 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자신도 웃기고, 평소에 깔끔함을 신경 쓰던 이헌이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거에 더 웃음이 났다.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라영을 보며 이헌이 물었다.
“라영 씨, 뭐 좀 먹어야죠. 배고프지 않습니까?”
“흐응, 실은 배고픈 것도 모르겠어요. 이게 진짜 발정기라는 거구나.”
“그럼 욕조에 물 좀 받아 두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요.”
발정기가 온 자신의 오메가를 안심시키고 최선을 다해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 알파는 자신의 발정기 욕망을 꾹꾹 억누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벌떡 일어나서 커다란 욕조가 있는 거실의 욕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흥분이 가시지 않고 거대한 성기는 여전히 발기한 채다.
라영은 물이 받아지는 동안 에너지를 위해 냉장고를 열어서 요거트에 시리얼을 조금 넣어 몇 스푼 떠먹었다. 아무리 배가 안 고파도 이렇게 조금이라도 먹어 둬야지 탈진하지 않겠지.
“이제 들어오십시오.”
욕실 문을 열며 라영을 살며시 향긋한 향이 풍기는 욕조 물 안에 넣어주던 이헌은 라영에게 물 온도가 잘 맞는지 물어보고 몸을 일으켰다.
“입욕제를 더 풀까요?
“아니, 이 정도면 딱 좋은 것 같아요.”
“당신은 같이 안 들어오나요?”
“네. 여기서는 자제할 자신이 없네요.”
그렇게 살짝 웃어 주고는 성급히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라영은 물 안에서 편안히 몸을 이완시켰다. 라영의 페로몬과 닮은 은은한 꽃향기가 기분이 좋았다.
날 것의 발정기는 몸에 마치 불을 붙이는 것 같았다. 상대의 페로몬이 평소보다 훨씬 더 자극적으로 느껴져서 페로몬 자체로 온몸의 피부가 활활 타들어 가는 듯한 기분. 그런 피부끼리 서로 마찰을 하며 땀샘으로, 피부 표면으로 상대의 성적인 페로몬이 직접적으로 스며드는데 이게 바로 마약을 한 기분이 아닐까 싶게 둥둥 뜨는 기분이었다. 기분만 취하게 하는 게 아니라 직접적인 삽입까지 이뤄졌을 때 그 충족감은 어떻게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마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라 더더욱 그런 게 아닐까.
이제까지 칩 없이 생활하는 다른 형질자들을 마주칠 때마다 왜 다들 편하게 칩으로 페로몬을 제어하지 않고 발정기를 겪으며 불편하게 생활을 하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그 의문이 풀렸다.
이 마약같이 강한 쾌락에 다들 중독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쾌락을 준 상대를 평생 단둘만이 느낄 수 있는 은밀하고 밀폐된 각인이라는 관계로 만들어서 이걸 지속시키고 싶게끔 한다는 걸, 오늘에서야 드디어 느낄 수가 있었다.
따뜻한 물에 누워서 근육을 이완하며 그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아직 발정기가 끝나지 않은 몸이 생기를 뿜으며 또 달아오른다. 저쪽 방에 있을 알파를 향해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
저도 모르게 일으키는 몸에서 물들이 촤악 소리를 내며 다시 욕조로 떨어져 내렸다. 타월로 물을 제대로 닦지도 않은 채 침대가 있던 방으로 뛰어 들어갔더니 찾는 이가 없다.
라영은 순간 몹시 당황했다. 발정기의 몸은 호르몬으로 심리에도 큰 영향을 줘서 본인의 알파가 부재하고 있다는 상황을 인식하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리며 급격하게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급하게 두근거리는 심박으로 온몸의 혈관이 펄떡펄떡 뛰어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고 호흡을 고르던 찰나, 방과 연결된 작은 욕실에서 거친 숨소리와 찰팍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문을 급하게 열어젖혔다.
눈앞의 광경은 너무 음란해서 충격적이었다. 이헌이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샤워부스에 서서 미약하게 흐르는 물을 맞으며 벽을 짚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보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음경을 잡고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고 있었다.
“아…….”
문이 열리는 소리와 신음 소리에 천천히 뒤를 돌아본 이헌은 잠깐 멈칫 했다.
그러더니 두 눈을 꼭 감았다가 느리게 뜨고 고개를 위로 느리게 들어 올리며 다시 손놀림을 급하게 시작했다. 마치 이제는 상상 속의 라영이 아닌 눈앞의 라영을 보며 반찬 삼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듯이 한숨을 내쉬며 느긋하게 라영의 나체를 감상했다.
그 모습을 본 라영은 아랫배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피가 몰리고 다시 발기하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흥분감을 참지 못해 눈앞의 알파에게 달려들었다. 무릎이 아픈 줄도 모르고 급히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페로몬이 가장 강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이헌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이걸 전부 먹고 싶어. 온통 그런 생각이 몸을 지배했다.
“하아….”
급하게 다리 사이 아무 곳이나 게걸스럽게 핥아 대는 라영을 보며 이헌이 뜨거운 탄성을 내뱉었다.
라영은 몸과 다리가 이어지는 허벅지 사이의 골에 혀를 뾰족하게 세워 핥아 대다가 이헌의 탐스럽게 늘어져 있는 고환 한쪽을 입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입 안에서 혀를 굴리며 부드럽고 얄팍한 피부를 쭙쭙 소리를 내며 연신 핥고 빨아 댔다.
“아…! 아!”
그 감각을 참지 못하고 이헌이 미간을 찌푸린 채 소리를 내며 오른손으로 쥔 음경을 더 힘차게 흔들어 댔다.
한참을 그렇게 양 고환을 번갈아 빨아대던 라영은 고개를 들어 이헌과 눈을 마주하고 새빨간 혀를 자랑하며 말했다.
“손 치워 봐요. 이제 내가 빨아 줄게.”
그러고는 이헌의 손을 살짝 물리고 자신의 손으로 성기의 뿌리 부분을 잡았다. 동시에 이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혀를 뾰족하게 내밀어 귀두의 갈라진 틈새 구멍에 혀를 댔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할짝거리다가 이제는 힘을 주어 구멍을 부드럽게 후벼 팠다.
그 모습을 보는 이헌은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은 자극을 느끼며 항복하듯이 줄줄이 말을 내뱉었다.
“아…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야할 수가 있죠…? 당신이란 사람은 나를 미치게 하려고 태어난 것 같아.”
“흐응…….”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한 적 없었어. 아… 그렇게 더 빨아 줘요. 더 세게.”
얼굴을 무너뜨리며 쾌락에 굴복하는 알파를 보는 라영도 미칠 것 같았다. 내가 이 강인한 알파를 이렇게 만들고 있어.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몸을 정복하고 있어. 흥분에 치솟은 머리로 생각을 하며 크게 입을 벌려 음경을 입 안에 넣어 빨아들였다. 입술로 기둥을 조이고 풀었다 반복하며 머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종국에는 라영의 머리카락에 손을 넣고 머리를 부드럽게 잡은 이헌이 스스로 허리를 털었다. 결코 라영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듯이 안간힘을 쓰며 절대 깊이 넣지 않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라영이 더 흥분을 해서 중간중간 딥쓰롯으로 깊게 빨며 목구멍을 조였다. 목구멍의 후두까지 닿을 기세였다.
신음을 잔뜩 흘리며 몸을 움직이던 이헌의 성기는 절정이 오려고 하는지 점점 더 단단해지고 크게 부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라영의 입에서 성기를 빼내 손으로 급하게 훑었다.
그 모습을 보며 라영은 눈을 감고 입을 벌리고 새빨간 혀를 내밀었다.
당신이 싸지를 곳은 여기야. 얼른 짐승같이 자지를 흔들며 음탕하게 여기에 싸 줘.
그렇게 생각하는 라영을 그대로 알아챈 듯이 신음을 내지르며 손을 거칠게 흔들어 유백색 액체를 얼굴에 뿌렸다.
“아…! 허억, 허억, 허억.”
사정의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흉곽이 크게 오르내리며 들썩인다.
“당신이 너무 야해서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아….”
그 얘기를 들은 라영은 정액이 묻은 혀로 입술 주변을 돌려 핥으며 고양이처럼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그래서, 싫어요?”
그 모습에 이헌은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습니다.”
라영은 생긋 웃으며 다리를 펴고 일어나서 샤워기를 세게 틀었다. 따뜻한 물에 땀과 정액을 씻어 내리며 샴푸를 짜서 머리카락에 문질렀다.
그 모습을 보며 이헌이 라영의 두피를 지그시 문지르며 샴푸 거품을 부드럽게 내서 머리를 감겨 주었다. 그리고 라영이 전에 선물했던 바다 향이 나는 오묘한 빛깔의 비취색 비누에 거품을 내서 서로의 몸에 둥글렸다. 그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손바닥만을 이용해서 서로의 몸을 애무하며 씻겼다.
“당신을 놓친 다른 알파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 몸을 맛보고도 당신을 떠날 수가 있다니…. 만약 내가 당신의 어린 날에 당신을 가진 알파였다면 절대 놔주지 않았을 거야. 당신의 몸을 꾀어내고 세상의 가장 좋은 것들을 안겨 주고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말들로 당신을 유혹한 뒤 노팅하고 각인해서 내 옆에 영원히 묶어 뒀을 거야.”
이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홀린 듯이 중얼중얼 라영을 향해 이야기하며 손으로는 몸을 더듬고 입술로는 라영의 얼굴과 귀를 더듬었다.
보드라운 귓불을 입 안에 넣어 빨고 혀를 내밀어 귓바퀴를 핥고 구멍을 파고 들었다.
마치 그 모습이 귀로 하는 섹스처럼 느껴져서 라영은 흥분하며 애액을 잔뜩 흘렸다.
“아…. 그럼 당신이 가져요….”
그 말에 정신을 번쩍 차린 알파가 입술을 떼어 내고 라영의 두 눈을 마주했다.
“진심입니까?”
“그럼요. 이헌 씨는 날 사랑하지 않나요?”
라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당하게 물어보자 이헌의 눈매가 허물어지며 고개를 작게 도리질했다.
“어떻게,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고는 확신에 찬 어조로 라영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이야기했다.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정말로 나의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합니다, 라영 씨. 당신은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모를 거야…….”
애절하기까지 한 고백에 라영의 마음에 감격이 차올랐다.
그 절절한 고백이 만난 지 얼마 안 된 둘 사이의 물리적인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언뜻 생각했으나 또다시 휘몰아쳐 오는 뜨거운 입맞춤에 그 생각을 머리 한구석으로 치워 버렸다.
거품을 씻어내고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물기를 닦아내자마자 이헌이 라영을 번쩍 들어 올려 침대로 돌아왔다.
라영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던 동안 새로운 시트를 깔아 둔 건지 온갖 체액으로 젖어 축축하던 아까와 다르게 피부에 닿는 천이 뽀송하고 기분 좋았다.
누워 있는 라영의 몸을 더듬다 두 다리를 잡아 올린 이헌은 향긋한 페로몬이 흐르고 있는 라영의 다리 사이에 급하게 얼굴을 박았다.
계속된 애무로 조금씩 질질 새어 나오고 있던 애액은 발정기의 오메가라는 것을 여실히 말해 주듯 바닐라 같은 달콤한 라영의 페로몬 향기를 그대로 진하게 내뿜으며 알파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헌은 게걸스럽게 애액을 빨아들이며 동시에 손바닥으로 구멍 위의 회음과 고환이 연결된 부위부터 살살 쓸어 올리고, 라영의 성기를 부드럽게 매만지며 흔들었다.
“여기는 정말 귀여워요. 쓸 곳도 없으면서 계속 빳빳하게 서 있고…. 이쪽은 아까부터 계속 벌름거리며 나를 유혹하고 있어.”
“아…! 흐응, 창피하니까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
“왜요, 보이는 그대로 얘기하는 것뿐입니다. 이게 얼마나 야하게 날 유혹하는지 당신도 알아야 해.”
마치 이곳에 머리를 박고 빨고 있는 자신은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라 꿀에 이끌리는 꿀벌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듯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동시에 성기를 어루만지고 주름 하나하나를 핥고 혀에 힘을 줘서 구멍 안을 헤집었다. 마치 혀가 자신의 제2의 성기라도 되는 것처럼 부어오른 분홍색 구멍에 넣었다가 뺐다가 반복하며 주변의 살도 이빨로 아프지 않게 잘근잘근 씹으며 라영의 흥분감을 더 고조시켰다.
부드러운 혀가 가장 쾌감을 느끼는 곳의 입구를 오고 갔다. 간지러움과 닮은 이상한 쾌감이 차올랐다. 뭔지 모르겠지만 미칠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제발 넣어줘요…!”
흥분하다 못해 참지 못하고 요구하는 라영을 보며 수치스러운 단어를 꼭 라영의 입으로 듣고 싶다는 듯이 싱긋 웃은 이헌이 물었다.
“뭘 넣어줄까요?”
그렇지만 그 말에 부끄러워할 라영이 아니었다.
야한 말과 노골적인 단어는 수치스럽지만 그만큼 사람을 흥분시킨다. 그걸 알고 있다는 듯이 알파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당신 자지.”
“…….”
“지금 발딱 서서 흔들리고 있는 당신 자지를 넣어줘요, 얼른.”
속눈썹을 들어 올리고 요부처럼 새빨간 입술을 핥으며 요구했다.
그 말에 신음을 흘리며 벌떡 일어나 라영의 몸에 성기를 붙여 오던 이헌이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콘돔이 마지막이었어요. 다른 건 다 준비하면서 그걸 더 사는 걸 잊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히트와 러트가 처음이라 이렇게 많은 양의 콘돔이 필요할 줄 모르고 그만…….”
늘 침착하고 다정하던 사람이 당황하며 급하게 말을 쏟아 낸다.
“그래서 아까 샤워하면서 혼자 빼려고 했던 거였어요?”
“네… 맞습니다.”
라영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이쪽저쪽 서랍들을 더 뒤지는 이헌을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헌 씨, 진정해요.”
“준비가 좀 더 완벽했어야 했는데…….”
“이럴 때도 있는 거죠. 괜찮으니까 이리 와요.”
라영은 안절부절못하는 이헌의 몸을 끌고 와 담백하게 끌어안고 손으로 등을 토닥이고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사랑합니다. 정말 제 마음을 다하여.”
“그럼 뭘 망설여요. 얼른 그냥 해요.”
라영의 당연하다는 듯한 말에 이헌이 안겨 있던 몸을 조금 물려 얼굴을 마주하고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
“우리 곧 결혼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하고 싶습니다. 당장이라도.”
빠르게 나온 대답에 라영이 피식 웃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늘 말하고 싶었다는 듯이 단박에 나온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헌 씨와 결혼하고 싶어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을 보며 살포시 입을 맞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우리… 아이를 가져요. 임신시켜 줘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사랑한 증거가 세상에 남아서 이어질 거야. 오메가의 본능에 완전히 지배된 그 말에 이헌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급하게 라영을 눕히고 자신을 유혹하는 그 구멍에 바로 성기를 꽂아 넣었다.
라텍스로 감싸여 있지 않은 그대로의 성기는 마치 자신의 자리인 양 오메가의 내부에 그대로 깊이 파묻혔다.
이 남자는 평소에는 몹시 침착하면서 잠자리에서는 유독 성급하고 침착하지 못하다. 스스로 그런 제 고삐 풀린 모습을 제어하려고 애쓰는 게 보이지만 라영의 몇 마디 말에 바로 무너지고 만다. 그런 모습이 라영을 못 견디게 좋아하고 있다는, 안달복달 못하는 사춘기 소년의 모습처럼 보여서 라영은 기분이 뿌듯했다.
평소에는 철두철미하지만 사랑하는 이 앞에서 제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어떻게 참을 수가 있을까. 이런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라영의 자존감은 높아져만 갔다.
이상적이야. 오직 내 앞에서만 쩔쩔매는 알파와 그런 그를 보면서 뿌듯해하는 나.
거칠게 몸이 흔들리는 와중에 라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의 이헌과 키스를 했다.
그러다 이헌의 성기가 어느 자극적인 지점에 딱 스쳤다.
“아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기집으로 가는 통로가 밑으로 내려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히트 사이클이라 아까도 분명 내려와 있었겠지만 이헌이 의도적으로 임신을 피하려고 한 까닭인지 그때는 이렇게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바늘구멍 같았던 틈새와 부풀어 오른 주변 살을 이헌이 귀두 끝으로 헤집는다. 여기가 목적지라는 걸 잘 안다는 듯이 집요하게 문질렀다.
“으아…! 아! 이헌 씨. 아, 으응…!”
자극과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높은 소리로 교성을 지르는 라영에게 대답할 정신이 없다는 듯이 이헌의 흉포한 귀두가 거칠게 아기집으로 향하는 길을 집요하게 문지르자 라영은 갑자기 오메가의 거대한 본능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여기를, 얼른 여기를 열고 알파의 자지를 넣어서 정액을 받아 내야 한다. 얼른 이 탐스러운 자지를 가득 안아야 해. 몸이 그런 생각을 하듯이 내벽의 살이 요동치며 자지를 쥐어짜 올렸다.
“아…! 빨리고 있어. 윽.”
“으응…! 더 세게! 얼른…!”
농도가 어마어마한 극우성 오메가와 우성 알파의 발정기 페로몬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제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미칠 것 같은 서로의 페로몬과 직접적인 감각과 자극으로 흥분감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었다. 이 감각을 더 끌어 올려야만 한다. 라영은 자기도 모르게 터질 듯이 달아올라서 흔들거리고 있던 자신의 성기를 잡아 세게 아래위로 문지르며 허리를 들썩거렸다.
그런 라영의 몸 위에서 이헌은 매트에 손을 짚고 허리를 일으켜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더 거칠고 세게 아기집으로 귀두를 뚫고 박아 넣었다.
아기집 통로가 완전히 열렸다. 이헌은 본능적으로 그곳에 자신의 성기를 깊게 쑤셔 박았다. 격하게 다시 움직였다가는 그 자리를 잃어버릴 것 같다는 듯이, 통로에 진입하고 난 뒤로는 몸을 뒤로 많이 물리지 않고 통로 안에서만 움직였다.
그곳이 어찌나 좁고 흡착돼서 압박감이 심한지 격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자극이 심했다. 당장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저도 모르게 사정감이 치밀어 올랐다.
이헌은 라영의 자위하고 있던 손을 겹쳐 잡아 더 세게 비벼 움직였다. 온몸으로 파도를 친 두 사람은 마침내 소리를 지르며 절정에 다다랐다.
“아아아아…!”
“으윽.”
라영의 정액이 두 사람의 몸에 잔뜩 튀었다.
극한의 오르가슴으로 몸이 떨렸다.
저도 모르게 두 다리로 알파의 몸을 꼭 감싸 껴안았다. 양팔과 다리를 모두 사용해서 사랑하는 이의 몸을 끌어안고 그 피부의 감촉과 페로몬의 모든 것을 오감으로 느꼈다.
아……. 좋다. 기분 좋아. 눈을 감고 입술에 닿는 이헌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훑었다.
그렇게 사정의 여운에 충만감을 느끼던 찰나 라영은 아기집이 점점 압박해져 오르는 기분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도대체… 으앗.”
평온하게 이완되었던 몸이 통증에 경직되기 시작했다. 이헌은 자신의 품 안에 있는 라영을 쓰다듬으며 놀라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노팅이… 노팅이 시작됐어요.”
“아… 배가 터질 것 같아요!”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배 안쪽의 내벽 피부가 노팅으로 커진 귀두 때문에 찢어질 것처럼 늘어난 감각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조금만 참아 주세요.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노팅으로 아기집 입구를 단단히 막은 귀두는 곧 몸속 제일 깊었던 개척지에 정액을 쏟아 냈다. 얼마나 세차고 길게 뿜어져 나오는지 라영은 배 안이 정액으로 출렁이는 것 같았다.
“아……!”
난생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생소한 압박감과 함께 통증과 더불어 엄청난 농도의 페로몬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쾌락도 함께 동반되었다.
그런 감각을 견딜 수 없어서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더니, 이헌은 라영의 얼굴이 고통만을 얘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연신 안절부절못했다.
이헌은 조급하게 사과를 하며 라영의 얼굴에 반복해서 입맞춤을 뿌렸다. 그리고 노팅으로 곧 임신할 자신의 오메가가 놀라지 않고 진정하기를 바라며, 자연스럽게 다정함을 가득 담은 페로몬을 내뿜었다. 이것은 오메가가 통증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파민과 엔도르핀 분비를 유발시켜 고통을 줄이고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임신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알파의 본능이었다.
그러고는 라영의 벌어진 다리를 내리고 살살 움직여 라영의 뒤로 몸을 옮겨 포개진 스푼처럼 함께 옆으로 누우며 뒤에서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라영은 점점 몸의 통증이 줄고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한숨 푹 자요, 라영 씨. 자고 일어나면 풀려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이 무척 피곤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내 발정열에 배고픔도 수면욕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알파의 노팅으로 발정기가 단번에 가라앉자 자연스럽게 성욕을 제외한 욕구가 몸을 지배했다.
그런 라영을 안다는 듯이 이헌은 껴안은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토닥이며 라영을 더욱 잠으로 이끌었다.
그 몸짓에 점점 수마에 빠져들며 라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백 퍼센트 임신이다. 난 이제 부모가 되는 건가…….
* * *
분명 인터넷에 ‘파트너와 히트 사이클 보내는 방법’을 검색했을 때 모두가 빠지지 않고 하는 이야기 중에 ‘휴가를 꼭 3일 이상 쓰세요.’가 적혀 있길래 의아하게 생각했다.
히트 사이클을 파트너와 보내는 사람들은 임신 목적이 많을 텐데…. 노팅 한 번이면 히트는 가라앉는데 굳이 휴가가 3일이나 필요할까? 싶었지만 미리 그 길을 가 본 선구자들의 충고에는 깊은 뜻이 있겠거니 하며 그 말을 그대로 따른 나 자신, 몹시 칭찬해.
몸을 꼼짝도 못 하겠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근육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댔다. 이래서 휴가가 길게 필요한 거였구나. 선구자님들 감사합니다. 일단 몸이 나아지면 동서남북을 향해 절부터 올려야겠다.
“몸은 좀 괜찮아요?”
너 같으면 괜찮겠냐, 이 자식아. 분명 일어나기 전에는 이헌을 향한 세상 누구도 끊을 수 없는 넘치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잠에 들었는데, 일어나지를 못해 애벌레처럼 몸을 뒤틀며 꿈틀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놀리듯이(지극히 라영의 관점이다. 이헌에게는 놀리고자 하는 마음이 한 톨도 없었다) 멀쩡하게 튼실하고 잘생긴 몸뚱이를 움직이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그 절절하던 사랑은 쏙 숨고 심술이 삐죽삐죽 삐져나왔다.
“너 같으면 지금 괜찮겠어요?”
“역시 무리가 됐나 보군요. 이거 좀 마셔 보겠습니까?”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쟁반을 협탁에 내려놓고 컵을 들어 건넸다. 그러나 라영의 손이 후들거리는 것을 보더니 컵을 다시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아 라영을 살짝 일으켜서 한 팔로 안정적으로 안은 채 컵을 들어 입가에 기울여서 마실 수 있게 도와주었다. 컵 안에서는 홍삼의 향기가 났다.
“홍삼 차예요. 기력 회복에 좋다고 하더군요. 다 마셨으면 여기 앉아 보겠습니까?”
그러면서 이헌은 라영의 뒤로 몸을 돌려 앉아서 어깨와 허리를 살살 주물러 주기 시작했다.
“아이고….”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마사지를 받고 있자니 어쩐지 홍삼 향기도 옆에서 풍겨 오고 시원하다 소리도 절로 나오는 것이 간호가 아니라 효도를 받는 기분이다.
분명 내가 더 젊은데! 네 살이나 더 젊은데!
그렇지만 시원해서 그만하라는 소리가 절대 나오지 않는다. 몸뚱이야, 너는 참 솔직하구나…. 쾌락에도 솔직한 걸 보면 너는 참 한결 같은 친구야. 아주 일관되고 진실 되기 그지없어.
“식사를 준비해 뒀습니다. 허기지지 않습니까?”
“아…. 그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배가 고파요.”
“안아서 옮겨 주겠습니다.”
정중히 말하며 이헌이 라영의 몸을 부드럽게 안아 올렸다. 걸음을 옮겨 주방 아일랜드 테이블의 높은 스툴에 살며시 올려 주었다. 보통 집보다 넓어서 거리가 꽤 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다리가 길어서 그런가. 몇 발자국 옮기는 것 같지도 않게 금방 도착한다.
라영이 자고 있는 동안 가사도우미가 왔다 간 건지 프로의 솜씨가 물씬 나는 정갈한 한식이 차려져 있었다. 라영은 코로 맛있는 냄새를 들이마시며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뜨며 물었다.
“근데, 이헌 씨. 병원에 확인을 해야겠지만, 우리 둘 다 우성이라 분명히 임신할 텐데 슬슬 결혼 준비를 해야 하지 않아요?”
“맞습니다. 저는 언제든 괜찮습니다.”
이헌은 매우 당당한 얼굴로 힘차게 대답했다.
“하하. 아니,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결혼에는 순서가 있잖아요.”
“라영 씨는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 없이 몸만 오시면 됩니다.”
“그런 거 말고, 서로 가족들한테 먼저 인사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말을 듣던 이헌이 반찬을 들던 손을 잠시 멈칫 했다가 다시 장조림을 올려 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라영 씨 부모님께서 편한 시간으로 잡아 주시면 저는 다 맞출 수 있습니다.”
“응. 엄마한테 연락해서 확인하고 일정 알려 줄게요. 그럼 이헌 씨네 부모님은요?”
“……제 가족들은 각자 일정이 몹시 바빠서 날짜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단 라영 씨 부모님께 먼저 인사드리고 제 가족은 상견례 때 만나도 충분할 것 같군요.”
“네? 미리 뵙지 않고요?”
“네. 제 결혼을 매우 기다리던 분들이라 무조건 허락하실 겁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아니, 그래도 순서가 있고 사람의 도리라는 게 있는데….”
“정말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나저나 라영 씨 가족들이 매우 궁금하군요. 형제 관계는 어떻게 되십니까?”
눈에 띄게 말을 돌린 게 티가 났지만 자신에 대해 질문받는 걸 좋아하는 라영은 눈치채지 못하고 신나게 가족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우리 부모님은 동갑 커플이에요. 선으로 만나셨는데도 친구처럼 재밌게 지내시고 사이도 좋으세요. 그리고 제 밑으로 여동생이 있거든요? 하아… 얘 생각만 하면 한숨이 절로 나와. 나랑 두 살 차인데 완전 마녀예요. 나도 한 고집 하지만 얘는 더해. 아주 독하기 짝이 없어. 마음먹은 건 진짜 어떻게든 이뤄내는 앤데. 나중에 보면 딱 가닥 나올걸요. 각오 단단히 해요.”
동생 애기가 나오자마자 한숨을 팍 쉬고 쓸데없는 말까지 섞어 가며 잔뜩 애정 어린 험담을 늘어놓는 모습이 누가 봐도 딱 현실 남매의 모습이다. 이헌은 자신에게는 없는 라영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당신은 부모님 중 누굴 닮았나요?”
“저는 딱 부모님 반반이에요. 아버지만 본 사람은 아버지 닮았다고 하고, 엄마만 본 사람은 엄마를 닮았다고 하고. 다들 그러더라구요.”
“그럼 동생분도 그런가요?”
“으으… 저랑 동생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남들이 다 제 동생 보고 여장한 이라영이라고 하더라고요. 엄청 불쾌해.”
넌더리를 치는 모습에 이헌은 쿡쿡 웃었다.
“그럼 당신은 누굴 닮았어요?”
“……저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들 하더군요.”
“그렇구나. 기대된다. 이헌 씨가 나이 들면 그런 모습일 텐데. 가족 관계는요?”
“저는 2남 1녀 중 막내입니다. 나중에 볼 기회가 있을 거예요.”
둘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계속했다.
두 사람 뒤로 보이는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라영은 이런 일상적이고 편안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함께 집에서 밥을 먹으며 대화만 해도 이렇게 즐겁다. 매일 이렇게 하루를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생각했다.
그래, 나랑 이 사람은 잘 살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