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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적으로 보면 우성 알파의 비율이 우성 오메가보다 더 높다.
즉,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거다.
게다가 알파들은 선천적으로 남들보다 우위에 오르려고 하는 경쟁 심리도 더 높고, 그게 같은 알파들끼리 모여 있을 때는 베타가 많은 그룹에서의 경쟁 심리보다 더욱 치열하게 발휘되는 모양인데… 그런 젊고 치기 어린 알파들이 잔뜩 모인 캠퍼스에서의 여러 가지 일들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만든 게 아닐까?
그때의 알파들은 라영이 가진 달콤하고 매혹적인 우성 페로몬이 주는 황홀감과 아름다운 외모의 트로피 애인을 거느리는 우월감을 누리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지금의 알파들은 결혼 후 낳을 2세의 우성 형질을 위해 달려들고 있다는 것만 다르지, 라영이라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형질을 보며 들이대는 건 똑같았다.
과거에 사랑이라고 생각한 게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체로 저런 형국이어서 알파들에 대한 염증은 점점 심해졌지 나아지질 않았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상대방들도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여전히 비슷하다.
라영은 현 시각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처지에 대한 연민을 되뇌며,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수정본을 정리했다. 규모가 좀 작은 건인 데다 워낙 급하게 수정을 요청해서 하청 업체에 맡기지도 못하고 직접 수정을 거친 피와 땀이 담긴 작업물이다.
이번이 정말 ‘최종’, ‘최최종’, ‘최최최종.pdf’라고 잔뜩 엉켜 있는 파일들을 클릭했다.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날짜와 서식에 맞게 파일명을 수정하면서 업로드를 완료하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 됐어?”
경현이 파티션 너머로 얼굴을 괴며 라영에게 물었다.
“응. 지금 그룹웨어에 최종본 올렸으니까 오탈자 없나 한번 확인 좀 해 줘. 꼭 인쇄 나오고 나면 안 보이던 오탈자가 어디서 귀신같이 튀어나온단 말이지. 이번 파일은 웹용도 아니고 지면 광고 나갈 거라 오탈자 나오면 끝장이야.”
“뭘 걱정해. 내가 애들 데리고 세 명이서 돌아가면서 다 검수할 거니까 걱정 마셔.”
“그래. 김 카피만 믿습니다.”
“이제 퇴근하려고?”
컴퓨터를 종료시키며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고 트렌치코트를 챙겨 입는 라영을 보며 경현이 물었다.
“응. 터진 것들 요즘 슬슬 마무리돼서 살짝 여유 있어졌어. 나도 오늘은 제발 일찍 퇴근해야지.”
“아이고, 좀 더 일찍 정리할 수 있으셨네요. 너는 짬바가 5년인데 그런 데서 허술하다니까. 평소에 온갖 똑 부러지는 척은 다 하면 뭐해, 클라이언트 요구에 질질 끌려 다니고 말이야. 은근히 마음이 약해가지고는…. 그거 죽겠다고 징징대는 것도 다 걔들 전략이라니까? 안 된다고 초장부터 딱 못 박아야지!”
경현이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혀를 찼다.
“난 그게 진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끊어낸 건데…….”
“쯧쯧… 아직 한참 멀었어, 이라영. 한 살 더 많은 이 형님을 좀 닮아라.”
굳이 널 닮고 싶지는 않아. 정중하게 사양하겠어, 라는 경멸의 눈빛을 쏴 주며 가방을 집어 들었다.
“늦게 넘겨서 미안해. 오늘 수고하고 주말 지나고 보자.”
“오케이. 모쪼록 안녕히 가십쇼!”
경현의 너스레를 뒤로하고 라영은 사무실을 나왔다. 그래도 유연 근무제라 천만다행이다. 지난 월~목에 충분히 오버 근무를 해서 일찍 나올 수가 있었다.
오늘은 센터에서 매칭해 주는 두 번째 알파와 선을 보는 자리가 약속되어 있다.
음, 좋아. 얼굴에 트러블 없고, 오늘 가르마가 잘 타져서 헤어스타일도 괜찮고, 일하다 보니 셔츠에 구김이 좀 가기는 했지만 무난하게 취향 안 타는 옅은 블루 계열 스트라이프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 얇은 리넨 재질의 짙은 네이비색 트렌치코트. 이 정도면 괜찮겠지. 라영은 유리창의 비치는 본인의 모습을 확인하며 카페로 들어섰다.
플랜테리어 컨셉인지 이국적인 식물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메탈 소재의 테이블과 빈티지 가죽의 의자로 꾸며져 있는 카페는 선의 메카로 불리는 장소답게 자리들도 적당히 떨어져 있으며 아늑했다. 좋아……. 여기서라면 상대방의 얼굴에 물 싸대기를 뿌려도 시선이 집중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번에도 혹시 전과 같은 폭탄이 나올까 봐 라영은 내심 긴장했다.
미리 받은 서류로 확인해 본 오늘 만날 알파는 평소에 받아 보는 내용보다 정보가 확연히 적었다. 양식도 뭔가 미묘하게 달랐는데, 이름, 나이, 학력과 좀 특이하게 건강검진결과서 같은 신체에 대한 정보가 자세하게 실려 있었다. 게다가 사진도 없었다.
눈에 띄는 점은 라영과 4살 차이의 같은 학교 경영학과 출신이라 어쩌면 한 번쯤 캠퍼스에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점. 그리고 직업은 알 수 없었지만 미국에서 공부하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는 것과 키가 무척 크다는 것이었다. 다른 데이터는 다 제쳐 두더라도 일단 그 사람이 키가 크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라영의 이상형은 자신의 키가 상대의 코 밑까지 오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가장 보기 좋은 연인의 키 비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오메가치고는 큰 키여서 이제까지 그런 사람을 많이 만나 보지는 못했다.
약속 시간에 딱 맞게 오기는 했는데 사진이 없어서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 누구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전화를 해야 하나 생각하며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안녕하세요. 이라영 씨 맞으십니까?”
잠금을 해제하는 순간 들려온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에 라영은뒤를 돌아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가 지금 동굴에 들어왔나? 이 묵직하고 섹시한 목소리는 현실인가요?
차분한 목소리의 알파는 라영보다 한 뼘은 족히 큰 키에 짙은 갈색 머리를 자연스럽게 넘긴 헤어스타일, 얼굴은 길을 가다 누가 보아도 한 번쯤은 돌아볼 만큼 잘생겼다. 아주 얇은 쌍꺼풀이라 외꺼풀처럼 보이는 눈이지만 세로로 시원하게 쭉 뻗어 있어서 절대 작은 눈이 아니었고, 콧대의 곧음은 남성적인 매력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입술은 윗입술이 아랫입술보다 살짝 얇으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지 이건? 조각상인가? 어디 미술관에서 뛰쳐나오셨어요? 직업병처럼 이목구비의 특징을 하나하나 꼽아 보던 라영은 본인이 너무 넋 놓고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급하게 대꾸를 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라영이라고 합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이헌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미리 자리를 잡아 놓고 있었던 건지 이헌은 라영에게 눈짓하며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이헌을 따라가며 라영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너는 바로 얼굴만으로도 프리 패스다. 앞서 걸어가는 뒤태를 보아하니 피지컬도 이백 만점을 주고 싶었다. 저 키와 태평양 같은 어깨를 보아하니 내가 바로 우성 알파의 표본입니다. 수컷의 제왕입니다, 라는 자막이 절로 깔릴 것만 같은 비주얼이었던 것이다.
스리피스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도 과하지 않은 느낌에 이건 마치 이탈리아 모델의 패션 화보를 보는 느낌이다. 게다가 저 근육. 나이가 먹을수록 근육이 어찌나 좋아지던지 이게 바로 가질 수 없는 걸 탐하는 자의 심정이던가. 저 스리피스 슈트를 재킷부터 베스트까지 풀어 헤치고 적당히 태양을 본 듯한 피부에 물을 뿌려 놓으면 그야말로 지중해의 향기를 광고하는 시원한 여름 향수 화보가 따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팔뚝에 힘을 주기라도 한다면 저 딱 맞는 슈트가 팽팽하게 당겨져서 터질 것 같겠지.
간만의 취향 저격의 알파를 만난 라영은 뇌내 변태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며 잔뜩 흥분하고 있었다. 아니, 센터에서는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진작에 처음부터 소개를 해 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 혹시 현실을 먼저 보여 주고 그 다음에 상등품을 보여 주는 센터 매칭 담당자의 고도의 전략인가? 하긴 처음부터 제일 좋은 게 나온다면 어느 정도가 평균인지 알 수 없으니 만약 이게 매칭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면 아주 성공적이다. 이런 전략을 짜는 매칭 담당자는 연말 성과급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건 진짜로 비주얼만 봐도 일생일대의 기회가 틀림없었다. 저 정도의 우성 알파는 학교 때나 많이 볼 수 있었지 지금처럼 형질자를 많이 보기 힘든 평범한 사회에서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아예 만나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이 직장 생활 내내 주변에 제대로 된 알파도 없었던 지난 나의 세월이 있지 않은가. 혹시나 시도 때도 없이 페로몬으로 상대를 억지로 억누르는 사람이거나, 말하는 거만 재수 없지 않으면 정말 꼭 잡아야 한다.
설마 저번 알파처럼 집에서 애나 낳고 키우라는 구시대 사고방식을 자랑하지는 않겠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미남이 권하는데! 그걸 거절해서야 쓰겠는가. 미남의 부탁은 들어주라고 있는 거지. 암요, 그렇고말고요. 상대에 따라 바뀌는 라영의 간신배 같은 생각은 박쥐도 울고 갈 정도였다.
“주문 먼저 하시겠습니까? 라영 씨는 뭘 좋아하시나요? 아, 라영 씨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아, 눈부셔…. 차분한 저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묻는 모습에 주변이 밝아지는 것 같다.
세상에 예의까지 있는 거 좀 봐. 그럼요, 얼마든지 마음껏 부르셔도 됩니다. 라영이 아니고 라일이, 라둘이, 라삼이라도 그대가 원하면 그대가 원하면 뭐라도 뭐든지 얼마든지……. 머릿속에서 개소리를 재생시키고는 절로 눈을 깜빡이며 속눈썹을 나비처럼 팔랑팔랑 흔들어 댔다. 이 정도쯤이면 사람이 절박해서 이러는 건지 혈관에 여우의 피가 흐르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네, 저도 이헌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럼요. 편하게 부르세요. 여긴 아인슈페너가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그걸로 주문할게요.”
말투도 다정하면서 예의까지 있다고 감탄을 하며 라영은 뭐라고 대답하는지도 잘 모르고 대답했다.
분명 흔히 볼 수 있는 통상적인 예의인데 미남이 다정하게 말하니까 얼마나 정중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정식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정이헌입니다. 가족의 사업을 돕고 있고, 최근까지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왔습니다.”
주문을 마치고 와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다시 하는데 어쩜 정수리에 가마까지 예쁘다.
“이라영이라고 합니다. 광고대행사 제작팀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라영은 같이 예의를 차리며 꾸벅 인사하며 대꾸했다.
“제가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요즘 유행하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라영 씨를 만족시켜 드리지 못할까 봐 긴장이 되네요.”
미남의 수줍은 미소와 함께 나온 말은 여느 우성 알파 같지 않게 겸손해서 더더욱 마음에 든다. 이미 너의 얼굴로 나를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겉모습과 다른 순진한 듯한 태도에 촌스러운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선 자리는 처음이신가요?”
“네. 역시 티가 나나요…? 선 자리도 처음이고, 실은 부끄럽지만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이런 남자는 매력 없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했지만… ….”
“어, 아니에요. 이헌 씨 충분히 매력적이세요.”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정말로 매력적인 분께 그런 칭찬을 들으니 쑥스럽습니다. 립 서비스인 걸 알면서도 기분이 좋네요.”
수줍어서 이러는지 남자는 내내 겸손의 말을 한다. 거울이 없는 곳에서 자랐나?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척추 끝이 짜릿하다. 순수남 최고야…! 순수해서 더 마음에 드는데 이거 완전 순진한 알파를 낚는 강태공 오메가가 된 기분이라 죄책감이 들지만 이렇게 취향 저격한 알파를 거절하기엔 라영의 코는 석자요, 양심에는 털이 났다.
“립 서비스가 아니에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연애라면 저도 최근 몇 년간 죄다 공백인데요, 뭐.”
그 대답에 쑥스러워하던 알파는 다시 환한 웃음을 입에 걸고 화제를 전환했다.
“광고대행사 아트 디렉터라면 아주 바쁘시겠습니다. 혹시 오늘 이 시간 이후에 따로 일정이 있습니까?”
“아뇨. 최근에 바쁜 일들이 많이 있긴 했는데 지금은 많이 마무리되었어요. 오늘은 시간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실은 오늘 저녁에 식사를 예약해 놨거든요. 라영 씨가 괜찮으시다면 제가 오늘 저녁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혹시 못 드시는 음식이 있나요?”
어머, 박력. 그래, 남자는 박력이지. 나도 박력 있게 대답해야지.
“따로 가리는 음식은 없어요. 다 잘 먹습니다.”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인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저한테 궁금한 점은 없으신가요?”
“그럼 지금 하시는 일은…?”
물어보기가 민망해서 말 끝맺음을 잘 못 했는데도 이헌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바로 대답했다.
“가족 사업을 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미국 지사의 일을 도왔습니다. 학위 자체는 계획대로 마무리가 됐는데, 일로 좀 더 오래 있었습니다. 더 오래 걸릴 것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좋게 돌아가서 성과를 내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바로 국내에서 일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 같고, 여러 가지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두어 달 안에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가족 사업이라니, 최근 많이 이슈가 되는 패밀리형 스타트업 기업인가? 라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경청했다. 얼굴만 봐도 절로 집중이 된다.
“그렇군요.”
“쉬고 있지만 당장 벌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라영 씨와 결혼하게 된다면 충분히 가족을 건사할 수 있고, 오히려 저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여유가 있을 때 저희가 만나게 되어서 아주 기쁩니다. 아, 혹시 제가 너무 앞서가는 걸까요?”
“아니에요.”
앞서가기는, 나도 이미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이미 신혼여행까지 다녀왔단다. 그런 생각에 얼굴이 붉어지는데 그게 수줍어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오늘 처음 만났지만 저는 라영 씨가 무척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 꼭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식사를 예약했다는 곳은 생각보다 근처에 있었다. 카페에서 나와서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스치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함께 걸어갔다. 이 알파의 매너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충실히 발휘되었는데, 차도 쪽을 걷지 않게 안쪽으로 라영을 보내고 주변을 살피며 내내 보폭에 걸음걸이까지 맞춰 주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가정식답게 귀엽게 플레이팅 된 프렌치로 배를 채우고 자리를 바로 뜨기가 아쉬워 연신 와인을 홀짝이고 있는 라영의 모습을 보며 이헌이 물었다.
“와인을 한 잔 더 주문할까요? 취향에 맞으세요?”
가정교육을 잘 받았는지 완벽한 테이블 매너와 깔끔한 식사 습관, 그리고 라영을 지속적으로 살피며 불편한 것이 없는지 챙겨 주는 모습에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어서 와인이 술술 들어갔다.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라영의 이상형에 부합했다. 완벽하게 취향인 외모에 다정하고 매너까지 좋은 남자를 놓치면 분명히 후회할 것 같았다. 이 나이까지 결혼하지 않고 남은 우성 형질자들은 다 저번 알파 같은 계통일 줄 알았는데…! 올해의 운을 모두 여기다가 끌어다 썼나? 앞으로의 운은 죄다 꽝이 가득 담긴 빈 바구니일지도 모르는데 꽉 잡아야 한다.
오늘 아주 내 거라고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까지 꽝꽝 찍어 놔야지 마음이 놓일 것 같다. 기관에서 소개받은 이상 전과자나 범죄자는 아니겠지. 그래, 그거면 됐지. 이렇게 은혜로운 비주얼은 도박꾼과 마마보이, 범죄자만 아니면 된다.
라영은 첫 만남 그 순간부터 눈앞의 알파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반복, 반복, 반복했다.
선으로 만난 사이에서 발랑 까진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오늘 아주 쐐기를 박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어투는 조심스러움을 가장하며 말이다.
“이헌 씨, 실은 제가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선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이에 이런 말씀이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저희가 앞으로 만남을 지속해 나가려면 꼭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이헌은 라영의 말에 잔을 내려놓으며 자세를 더욱 바로 하고 경청의 자세를 갖췄다.
“제가 페로몬 억제 칩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해 와서 이번에 건강상의 이유로 제거를 했어요. 제거하고 정밀 검진을 했더니 당분간 모든 종류의 억제제를 투약하지 않고 자연적인 상태로 지내야 한다고 해요. 저는 이제까지 계속 페로몬을 강하게 억제해 왔거든요.”
그 말을 듣는 이헌의 눈에서 순간적으로 짐승처럼 빛나는 희열을 언뜻 본 것 같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앞에 앉은 알파의 얼굴은 다시 다정한 미소로 돌아와 있었다. 어둑한 공간에 조명까지 더해져서 순간적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건강에 큰 이상이 있거나 한 건 아니고, 이헌 씨도 우성 알파이시니 잘 아시겠지만 페로몬 건강에 더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차원이에요.”
실은 지속적인 강한 억제로 인해 페로몬 샘과 뇌하수체에 문제가생기기 직전이라 받은 처방이지만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워서 애니메이션의 고양이처럼 밑에서 위를 바라보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최대한 좋게 표현했다. 사람이 목적이 생기니 이렇게 간사하기 그지없다. 이게 필름으로 나갔다면 연기대상 감이다.
“어디 아프신 게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들으면서 걱정했어요.”
이헌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염려했다.
“그래서 말인데, 조만간 히트 사이클이 올 것 같거든요. 워낙 강하게 억눌러 왔던 터라 억제제를 죄다 없애자마자 금방 올 거라고 의사가 말해 주더라고요.”
치밀하게 가장 예쁘게 보일 수 있는 얼굴 각도를 계산하며 까맣고 긴 속눈썹을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들어 올리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이헌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살짝 테이블 위로 올린 손을 눈앞의 알파에게 보란 듯이 좀 더 내밀었다.
“그때가 오면 함께 히트 사이클을 보내 줄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숨을 가득 들이 마셔서 흉곽을 부풀리며 잔뜩 긴장하고 있던 이헌이 순간 푸시시 소리가 날 듯이 호흡을 급히 내뱉으며 대답했다. 테이블 위의 손은 어느새 붙잡힌 채다.
“물론이죠. 언제든지. 당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요.”
다소 조급해 보이는 대답이 오히려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것처럼 굴 때 완벽하게 쐐기를 박자. 서로 페로몬 합도 맞춰 보고 우리가 얼마나 달콤한 페로몬을 서로 나눌 수 있는지도 알게 해 줘야 마땅하다. 선으로 만난 첫날 무례한 짓을 한다고 욕하던 이전 선 상대 알파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 들었지만, 아니 그 자식은 얼굴이 다르잖아, 얼굴이. 게다가 그 인간은 아주 오만하고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며 양심의 털이 수북한 라영은 자기합리화를 했다.
“그치만 우리의 처음이 히트 사이클처럼 이성이 없는 와중이면 좀 슬플 것 같아요. 혹시 거북하지 않으시다면 오늘 저와 함께…….”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좀 전에 했던 똑같은 대답이 다시 한번 확신에 찬 어조로 급하게 들려왔다. 대답하는 알파의 눈빛에 승리의 기운이 어렸다.
“물론이죠. 언제든지. 당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요.”
* * *
“아….”
무릎을 싹 핥아 내리는 감각에 입에서 신음이 절로 샜다.
분명 이헌과 함께 손을 잡고 함께 빌딩 숲을 뛰다시피 걸어서 호텔 방 안으로 들어올 때의 마음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이상하다. 이 순딩한 알파의 마음을 꽉 쥐어 잡고 몸도 사로잡아서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드는 게 라영의 목표였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잡아먹히는 중이다.
눈앞의 알파는 침대에 앉아서 가운을 반쯤 풀어 헤친 라영의 앞에 무릎을 꿇고 왼쪽 다리의 오금을 한 손에 가볍게 든 채 얼굴 앞으로 끌어와 허벅지에 코를 박아 넣었다.
“흐음.”
아직 둘 중 어느 하나도 페로몬을 풀지 않았는데 그 어떤 내음을 마시겠다는 건지 피부에 잔뜩 밀착해서 숨을 깊게 들이 마신다. 오메가의 살 냄새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에 충분하다는 듯이 반복해서.
“라영 씨의 이 하얀 피부는…, 조금만 힘을 줘도 금세 자국이 남는군요. 마치 소중히 해 달라고 눈으로 말하는 것 같아요.”
슬금슬금 알파의 페로몬을 흘리며 이헌은 라영의 몸을 관찰하고 맛보고 쓰다듬었다. 분명 그 대상이 된 오메가는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희한하게도 마음을 내려놓고 온전히 즐기게 된다. 이게 바로 상성이라는 건가 싶다. 라영은 부끄러움도 잊고 오늘 처음 보는 알파에게 당당하게 요구했다.
“정이헌 씨, 내 눈 앞에서 벗어 봐요. 그리고 만지게 해 줘.”
그 말을 들은 이헌은 꿇고 있던 무릎을 펴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고는 씻고 나서도 다시 그대로 입고 있던 슈트를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라영의 눈을 마주치면서 하나씩 차례로.
마침내 셔츠 안의 근육으로 탄력 있는 맨살이 드러났을 때 라영은 손을 내밀어 가슴팍을 긁어내렸다. 건강한 피부색 위로 선홍빛 선이 서너 개가 그려진다. 그렇게 가슴을 매만지는데 집중하는 사이 이헌의 몸에는 드로어즈 한 장만이 겨우 남았다.
블랙의 드로어즈 천을 밀어내고 있는 이헌의 성기가 또렷하게 보였다.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어 뜨거운 성기를 쓰다듬자 머리 위에서 약한 탄성이 들려왔다. 천 위로 도드라진 귀두 부분을 손톱으로 살짝 긁었다가 기둥 전체를 힘주어 매만지는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 움직였다. 얼른 이 불쌍한 녀석을 답답한 천 쪼가리 안에서 구해 줘야만 한다.
드로어즈 밴드를 내리니 자지가 퉁 하고 튕겨져 나왔다.
그래, 이것의 이름은 분명 자지가 틀림없다. 외설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라영은 평소에 한 번도 자지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고 길고 굵으며 핏줄까지 선명하게 튀어나와서 열기를 뿜어대는 것을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이것은 날 것 그대로의 자지인 것이다.
이헌의 몸은 근육이 두툼해서 부피도 크고 어깨도 넓어서 마치 라영 둘을 합쳐 놓은 것 같았는데 성기도 거의 두 배만큼 클 줄은 몰랐다. 분명 라영도 오메가치고 작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와장창 박살 났다. 눈앞의 알파는 이제까지 보아 온 여느 알파보다 몸의 중심이 아주 훌륭했던 것이다. 위험해 보이지만 절로 군침이 흘렀다.
밴드를 이헌의 발목까지 떨어지게 내버려 둔 채 그의 엉덩이와 허리를 양 팔로 끌어와 그대로 안고 배꼽까지 올라 붙어 있는 성기에 얼굴을 박았다.
“하아… 이헌 씨…….”
자연스럽게 닿은 입술로 성기 위를 성의 없이 비비며 말했다. 그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진한 수컷의 페로몬 향기에 머리가 순간적으로 몽롱해진다. 마치 최상위 포식자의 향기 같은 그것은 싸하고 시원한 박하의 향기를 닮은 것 같다가도 육감적인 머스크의 향기인 것도 같았다. 이 다정하고 순한 남자와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지금 눈앞의 이 몸뚱이와 이글거리는 눈빛의 육체와는 처음부터 온전히 하나인 듯이 잘 어울렸다.
단순히 향기나 냄새가 아닌 페로몬은 뇌로 직접적으로 꽂혀서 오메가인 라영을 뒤흔들고 흥분시켰다. 오늘 처음 보는 알파의 성기에 코와 입술을 비비게 할 만큼.
묘하게 어딘가에서 느껴 본 적 있는 듯한 향기에 기시감을 느끼고 있을 때 갑자기 라영의 몸이 침대 위로 부드럽게 던져졌다.
“이제 라영 씨의 입술을 맛보고 싶어요.”
다정함을 노력해 낸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어딘가 위험하다. 한계에 다다른 짐승을 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의미를 깨달았을 때 라영은 눈앞의 자극적인 알파와 아직 키스를 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놀랐다.
흐트러진 가운을 걸치고 침대에 누운 라영의 위로 무릎걸음으로 이헌이 올라왔다.
키스가 아직이라는 걸 알고 나니 얼른 이 잘생긴 입술에 입이 닿고 싶어 안달이 나 팔꿈치를 짚고 상체를 들어 올렸다.
위험한 느낌과는 다르게 이헌은 따뜻한 손으로 얼굴과 상체를 붙잡고 고개를 틀어 살며시 입술을 붙여 왔다.
“아아…….”
뜨겁게 맞닿은 두 입술 가운데 숨이 오가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혼미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더 닿고 싶어서 내밀어진 라영의 혀에 이헌이 움찔하더니 갑자기 두툼한 혀를 급히 내밀며 흉포하게 달려 들어 라영의 입술을 물어뜯고 맛을 봤다.
거칠게 혀를 뒤섞고 입술만으로 라영의 아랫입술을 빨아 당기고 혀끝으로 입천장의 요철을 쓸어내리며 자연스럽게 타액을 교환했다.
타액의 섞인 페로몬을 맛본 둘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헌의 손은 바쁘게 움직여 라영의 가운과 속옷을 완전히 벗겨내고 전라로 만들었다. 전라가 된 몸을 온전히 감상하려는 듯이 이헌은 하나처럼 얽혀 있던 혀와 입술을 떼고 몸을 물렸다. 그리고 하얗고 아름다운-아름답다는 말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몸을 두 눈에 가득 담았다. 그 육체는 가냘픈 듯하면서도 남자의 골격이라는 걸 말해 주듯이 곧고 탄탄했다.
머릿속의 생각이 입 밖으로 그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정말 아름다워요, 라영 씨.”
그 말을 들은 라영은 눈꺼풀을 들어 올려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헌을 올려다보며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 손을 들어 올리는 동작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껴지는 건 실제일까, 아니면 그저 체감일까.
가져다 댄 검지와 중지를 혀를 내밀어 핥아서 침을 잔뜩 적신 라영은 편하게 뒤로 누우며 알파를 향해 다리를 벌렸다.
우성 오메가임을 여실히 보여 주듯 한 올의 터럭도 없는 그곳, 벌어진 다리 사이에는 숨어 있던 라영의 분홍빛 성기가 있었다. 이미 잔뜩 흥분해서 반질거리는 귀두 끝 구멍에서는 프리컴을 방울지게 흘리고 있었고, 더 밑에 살포시 드러난 수줍은 구멍에서는 이미 페로몬이 살짝 느껴지는 애액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헌을 보며 젖은 손으로 구멍과 회음을 지나 성기까지 살짝씩 쓸어 올리던 라영은 입을 열어 부드럽게 명령했다.
“당장 들어와 줘요. 다른 애무는 필요 없어.”
그 당돌한 명령에 이헌은 허물어지듯 신음을 흘리며 라영의 아름다운 육체를 끌어안았다.
나체의 오메가를 처음 접한 애송이 알파처럼 성급하게 밀착하면서 손으로 자신의 딱딱한 성기를 쥐고 구멍에 비벼 살짝살짝 밀어 넣어 가며 구멍을 착실히 넓혀 침범해 갔다.
“아… 좋아. 얼른… 얼른 들어와요. 내 알파.”
나의 알파라니. 세상에 이보다 황홀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까. 이헌은 눈앞의 자극과 성기에 가해지는 부드러운 쾌락과 침대 위의 달콤한 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구멍을 자연스럽게 넓히기 위해 성적으로 유혹하는 알파의 페로몬을 점점 짙게 내뿜던 그 순간, 드디어 거대한 성기가 자신의 자리인 양 라영의 안에 온전히 꽉 들어찼다.
서로의 몸이 온전히 맞붙었다.
많이 움직인 것도 아닌데 흥분으로 인해 거칠게 숨을 내뱉던 둘은 서로를 얼마간 마주 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목을 끌어안으며 입술을 탐했다.
그게 신호인 것처럼 라영이 그동안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던 오메가의 짙은 페로몬을 완전히 개방했다. 달달한 바닐라 같기도 하면서 고전적이라고 느껴질 듯한 아이리스나 은방울 꽃 내음과 기분 좋은 따뜻한 햇살을 품 안에 담은 듯한 매혹적인 향기였다.
단순히 향기나 냄새가 아니었다. 뇌의 극치까지 전율하게 만드는 극우성 오메가의 페로몬을 정통으로 받아들인 알파는 흥분에 겨워 거칠게 하반신을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입술을 빨아대면서도 허리 밑으로는 요동치는 파도처럼 침대가 온통 흔들릴 정도로 박아 넣었다.
매트리스가 흔들리도록 거칠게 움직이던 이헌은 귀에다 대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당신이 날 빨아들이고 있어요. 느껴지나요?”
이헌은 그 사실을 눈으로도 직접 보겠다는 듯 고개를 들어 붉은 자지가 구멍 안을 들락거리는 야하고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감상하며 동시에 라영의 목과 가슴과 유두를 핥으며, 미처 맛보지 못한 몸의 구석구석을 혀와 입술로 착실히 정복해 나갔다.
뼈마디가 굵직하면서도 길고 큼지막한 손이 라영의 얼굴을 섬세하게 더듬었다. 눈으로 자신의 손이 닿고 있는 곳을 보면서 대뜸 얼굴을 붙여 눈 밑을 핥았다.
아주 집요하게.
아…. 눈물점이 있는 자리다.
이헌은 그곳이 어떤 쾌락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혹은 달콤한 사탕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드럽게 핥으며 입술을 붙였다.
그러면서도 허리 아래는 거센 힘과 부드러움을 번갈아 가며 집요하게 움직였다.
단순히 정상위에서 삽입만을 반복하고 있는데도 한동안 성적인 접촉을 거의 하지 않고 지내던 라영의 몸에는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알파의 성기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컸지만 최고의 맛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느낌에 집중하며 함께 몸을 움직이다가 올려다본 얼굴에 라영은 숨 쉴 수가 없었다. 금욕적이고 다정했던 얼굴이 온갖 욕망에 뒤덮이고 있다. 이마에 땀 방울을 흘리고 쾌락에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린 채 라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 큰 흥분이 몰려왔다.
“아… 아… 나… 나 갈 것 같아요.”
“같이 가요. 같이. 우리. 둘이서.”
힘을 주어 온몸으로 박아 넣느라 이헌의 말이 뚝뚝 끊어진다.
하얀 라영의 몸은 온통 핑크빛으로 얼룩덜룩하고 그중 가장 짙은 핑크색의 성기가 이헌의 몸짓에 의해 허공에서 덜렁거리며 아래위로 흔들렸다. 잔뜩 무게가 실려서 터질 듯이 흔들리며 달아오른 그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 야한 모습이라고 이헌은 생각했다.
짙은 알파와 오메가의 페로몬이 공기 중에 무겁게 뒤섞이고, 뇌가 녹을 것처럼 쾌락을 나누던 두 사람은 신음을 내지르며 사정을 했다.
침대 위에서의 유토피아였다. 이게 천국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천국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