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
: 펭귄 친구와 비밀의 책장
푸근한 봄바람이 미세 먼지와 함께 날아드는 저녁이었다. 호준의 퇴근길 발걸음은 오늘따라 유달리 가벼웠다. 설레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호준은 럭셔리캐슬스테이트시티 아파트 103동 경비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경비원님. 오랜만입니다.”
“어이, 잘생긴 xxx호 총각. 오랜만이야!”
호준에게 유달리 너그러운 103동 남자 경비원 원 모 씨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간 잘 지내셨죠?”
“그럼. 나야 항상 잘 지내지. 수상한 사건이 벌어지는지 늘 감시하면서 말이야.”
미드 수사물 마니아인 경비원 원 씨는 주변을 살피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경비원님이 계셔서 정말 든든합니다.”
“조심하게, 잘생긴 총각. 내가 총각한테만 특별히 말해 주는 건데, 최근 밤마다 우리 동에서 남자 신음이 들린다는 소문이 있어.”
“크흡!”
남자 신음의 유력한 원인 제공자인 호준은 괜히 헛기침했다.
“걱정하지 말게, 총각. 어느 층에 범인이 있는지 내가 조만간 밝혀낼 작정이네.”
“범죄 신고가 들어온 게 아니라면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자네는 드라마도 안 봤나? 사건은 신고되기 전에 벌어지는 법이야!”
호준은 오늘부터 방음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참, 요즘 수상한 일이 하나 더 있어. xxx호에 배송되는 택배가 유달리 많아졌거든. 물론 자네 말고 그 ‘수상한’ 친구에게 말이야. 자네 알고 있나?”
“예. 제가 모를 리가요.”
택배가 유달리 많은 수상한 친구는 지훈이었다. 처음에 지훈은 호준의 집에서 딱 석 달만 지내겠다고 큰소리쳤었다. 하지만 태종시의 원룸 전월세 시세와 자신의 정규직 월급을 비교해 보더니, 그냥 호준에게 계속 빌붙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호준의 집에 작정하고 머무르게 되면서, 지훈은 무소유의 철학이 돋보이던 집을 자본주의의 물질적 풍요로 채워 나갔다. 물론 그 자본의 출처는 바로 호준의 복지 포인트였다. 지훈은 어차피 호준의 살림살이니까 호준의 돈으로 사도 된다고 생각했고, 호준은 장래 신혼살림의 밑천이 될 테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동상이몽이지만 아무튼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매사에 의심이 많은 경비원은, 절간 같던 호준의 집에 택배가 쏟아지는 현상을 수상하게 여겼다.
“내가 얘기했던가, 그 친구가 총각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제가 죽었냐고 물었다면서요. 서른두 번이나 말씀하셨어요.”
지훈을 의심하는 경비원의 일장 연설은 오늘로 서른세 번째였다. 호준이 우루과이에서 돌아온 다음 날, 경비원은 호준을 붙잡고 그 수상한 청년에 대해서 상세히 보고했다. 그런데 그 청년이 호준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기 시작하자, 경비원은 더더욱 경계했다.
“요즘 그 친구는 어떤가. 수상한 행동을 하진 않고?”
“착하고 재미있는 친구예요. 의심 안 하셔도 됩니다.”
“조심해. 하도 세상이 흉흉해서 믿는 친구한테 발등 찍히는 수가 있어.”
“예, 명심하겠습니다.”
지훈에게 자주 얻어맞는 건 사실이니,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호준은 경비원의 말이 영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슬슬 본론으로 넘어갔다.
“경비원님, 오늘 저한테 택배 온 거 있죠?”
“있었지. 그 착하고 재미있는 친구가 이미 가져갔지.”
경비원의 말에 설렘으로 가득 차 있던 호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네? 지훈 씨 오늘 출장인데요?”
“아까 저녁때쯤 퇴근하더니 자기 택배랑 같이 자네 것도 가져가던걸. 당당하게 장부에 서명까지 했네.”
호준의 택배 수령인을 적는 명부에 정갈한 손 글씨로 지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걸 본 호준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경비원에게 인사조차 남기지 않은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이럴 수가! 지훈에게 선수를 뺏겼다!
오늘 전라북도 남원에 있어야 할 지훈이 왜 자신보다 일찍 퇴근해 택배를 받은 것일까? 호준은 쇼핑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지훈이 호준의 택배에 호기심을 가질 가능성은 매우 컸다. 지훈이 남의 택배를 함부로 뜯을 성격은 아니었지만, 호준은 초조해졌다. 그 내용물이 다름 아닌 ‘펭귄 친구 캐릭터 한정판 텀블러’였기 때문이다. 지훈이 결코 열어 봐선 안 될 물건이었다.
호준은 몇 달 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워, 펭귄 친구 팬메이드 상품을 지훈이 출장 가는 날 수령할 수 있도록 미리 손을 써 두었다. 지훈이 발견하기 전에 수령해서 사무실에 갖다 두기만 하면, 지훈은 펭귄 친구 텀블러의 존재를 절대 알아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남원에 출장을 가 있어야 할 지훈이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온 것일까?
“지훈 씨, 나한테 택배 온 것 없었어요?”
현관문을 열자마자 호준이 거실을 향해 소리쳤다.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게임 방송을 보던 지훈은,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호준을 바라보았다.
“그 펭귄 새끼 텀블러요? 걱정 마요. 제가 잘 처리했어요.”
내용물을 정확하게 언급하는 지훈을 보며 호준은 자신이 한발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호준은 절망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출장은 어쩌고 이렇게 빨리 왔어요?”
호준은 택배보다 먼저 물었어야 할 지훈의 안부를 한발 늦게 물었다.
“갑자기 회의가 취소돼서 당일 귀가 했어요.”
“그랬군요…….”
호준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지훈의 회의가 취소되지만 않았어도, 지금 자신은 펭귄 친구 텀블러를 손에 넣었을 텐데. 사랑하는 지훈에게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던 호준은 주먹만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호준의 착잡한 표정을 보는 지훈 역시 할 말이 많았다.
“그딴 텀블러는 대체 어디서 구하는 거예요?”
자신의 소중한 펭귄 친구 텀블러를 무시하는 지훈의 발언에 호준은 울컥했다.
“그딴 거라뇨. 엄청 귀여운 겁니다. 펭귄 친구 팬클럽에서 공동 제작한 한정판이라고요. 어디에 뒀어요?”
호준이 온갖 펭귄 친구 캐릭터 상품을 비밀의 책장 뒤에 숨겨 놓고 쓰지도 못한 지 석 달이 넘었다. 호준은 동거를 시작한 이후에도 항상 지훈에게 조신하고 정숙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지만, 펭귄 친구 에 대한 애정만큼은 참기 어려웠다.
“사무관님이 그 펭귄 친구 팬티 숨겨 놓은 곳에 같이 잘 넣어 놨죠.”
“지훈 씨가 거길 어떻게 알아요?”
지훈의 뻔뻔한 대답에 호준은 긴장했다. 호준이 알기로 지훈은 아직 서재의 책장이 이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지훈이 집을 비울 때마다 호준은 이중 책장의 상태를 꼼꼼하게 점검했다. 이음매 사이에 끼워 놓은 머리카락 몇 가닥과 먼지의 위치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육안으로 고정폭 빈 칸을 식별하는 호준이 단서를 놓칠 리는 없었다. 지훈이 이중 책장을 열어 봤을 리는 만무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 집에서 몇 달을 지냈는데, 다 알죠.”
지훈의 말만 듣고 무심코 확인하러 갈 뻔하다가, 호준은 일단 지훈의 눈치를 살폈다. 보조개가 세 개뿐인 걸 보니 가식 웃음이었다.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 호준을 떠보는 것이 틀림없었다.
지훈도 잔머리를 제법 굴리곤 했지만, 표정을 제대로 숨기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호준을 상대로 열심히 꾀를 낸다는 점이 아주 귀여워서 보통은 봐주곤 하지만, 펭귄 친구에 관해서는 예외였다. 텀블러 하나 찾자고 책장의 비밀을 들켜 버릴 수는 없는 노릇. 호준은 차라리 텀블러를 포기하기로 했다.
“고마워요, 지훈 씨. 그럼 제가 잘 찾아서 쓸게요.”
호준이 의도대로 넘어오지 않자, 이번엔 지훈이 긴장했다.
“내가 거길 어떻게 알았는지 안 궁금해요?”
“똑똑한 지훈 씨한테 언젠가는 들킬 줄 알았어요.”
호준이 속 모를 태도로 뻔뻔하게 굴자, 이젠 소파에 앉아 있던 지훈이 초조해졌다.
“그으래요? 텀블러 어디 있는지 확인하러 안 가요?”
“천천히 볼게요. 택배 대신 받아 줘서 고마워요. 지훈 씨.”
지훈의 떠보는 말에 호준은 일부러 서재가 아닌 안방으로 들어갔다. 지훈의 따가운 시선이 호준의 등 뒤에 닿았다.
사실 호준의 예상과 달리, 지훈이 서재에 이중 책장이 있다는 걸 안 지는 꽤 되었다. 그리고 신중한 추론 끝에, 호준이 숨겨 둔 펭귄 친구 캐릭터 상품들이 그 안에 있으리라고도 거의 확신했다.
문제는 지훈이 아무리 밀어도 책장이 밀리지 않았다는 것.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것인지, 책장이 너무 무거운 것인지는 몰라도, 암만 힘을 써도 혼자서는 열 수가 없었다. 그러니 호준이 직접 열도록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던 차에 호준의 택배를 발견한 것이다.
남의 택배를 함부로 여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지만, 지훈은 호준의 택배가 너무 궁금해서 딱 한 번만 열어 보고 감쪽같이 닫아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빤히 노려보는 펭귄 캐릭터의 눈깔을 보자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자신이 출장으로 집을 비워야 하는 날 호준의 펭귄 친구 캐릭터 상품 택배가 도착했다면, 그건 우연일 리가 없었다. 매사 치밀하고 쪼잔한 호준이 필시 수를 써 둔 것이다. 이제까지 호준이 이런 방식으로 지훈 몰래 펭귄 친구들을 계속 모아 왔던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치밀하다고 해도,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지훈은 이 기회에 비밀의 책장을 열어 볼 작정이었다.
“지훈 씨, 뭐 해요?”
지훈이 호준의 서재, 특히 책장 앞에서 괜히 어슬렁거리자 호준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책 보려고요.”
“지훈 씨, 책도 봐요?”
당황한 호준이 아무 말이나 내뱉자, 자존심이 상한 지훈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저도 가끔은 보거든요?”
지훈이 읽는 책이라고는 업무상 반드시 읽어야 하는 보고서가 아니면 만화책뿐이었다. 호준은 자신을 요리조리 피하려는 지훈의 팔을 붙잡았다.
“책은 다음에 보고 오늘은 일찍 자러 가요. 출장 갔다 와서 피곤하잖아요.”
“책을 읽으면 잠이 솔솔 올 것 같아요.”
지훈은 책만 펴면 조니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책 대신 내가 자장가 불러 줄게요. 잠이 더 잘 올 겁니다.”
스물아홉 김지훈은 자신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겠다는 서른셋 정호준을 보고 정색했다.
“안 돼요! 사무관님이 노래 부르면 오던 잠도 깬다고요!”
문제는 나이가 아니었다. 바로 정호준이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었다.
호준과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훈은 어째서 호준이 그 반반한 얼굴과 몸으로 아이돌이 되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호준은 말 그대로 음치-몸치-박치 삼위일체였다. 그 정도로 저주받은 재능이면, 잘난 얼굴로도 공부만 열심히 해야 했다. 지훈은 호준과 함께 노래방을 가 보고는, 같이 가자는 말을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ASMR이라도 해 줄게요.”
음치, 몸치, 박치여도 ASMR은 할 수 있다. 호준은 잠자리에 든 지훈의 귓가에 대고 열 시간이라도 속닥일 기세였다.
“왜 자꾸 자러 가라고 해요? 서재에 뭐라도 숨겨 뒀어요?”
지훈이 떠보듯 물었지만, 호준도 순순히 넘어가진 않았다.
“그럴 리가요. 찾아 봤자 콘돔이겠지. 서재에서 당장 하고 싶은 거 아니면 방으로 갈까요?”
“저 오늘은 섹스할 기분이 아니라서요. 정호준 씨 먼저 자요.”
지훈이 이제까지 했던 거짓말 중 가장 믿기지 않았다. 호준은 웃음이 터지려는 걸, 이를 악물고 간신히 참아야 했다.
“지훈 씨, 어디 아파요? 몸이 안 좋아요? 아니면 내 매력이 부족해요?”
호준이 가슴 근육을 어필하며 속삭이자, 지훈은 괜히 입맛을 다셨다. 펭귄 새끼 텀블러만 아니었으면 벌써 저 단단한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을 텐데. 하지만 오늘만큼은 더 큰 목표를 위해 호준의 유혹을 참아 내었다.
“오늘은 피곤해요. 내일 회의도 많고요.”
“지훈 씨, 이제까지 섹스할 때 회사 일정 신경 쓴 적 없잖아요.”
“앞으로는 신경을 좀 쓰려고요. 낮에 일하다가 하품하면 윤 사무관님이 이상하게 쳐다본단 말이에요.”
“고작 윤삼 때문에 나와의 소중한 시간을 포기할 건가요?”
호준이 은근슬쩍 이중 책장 앞을 가로막으며 지훈의 앞에 서더니, 지훈을 품에 끌어안으면서 더없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호준은 원래 다정한 사람이지만, 지금은 너무 대놓고 꼬시고 있었다. 지훈은 외려 그런 호준을 와락 끌어안아 책장 쪽으로 밀어붙였다.
“사무관님이야말로 맨날 야근하느라 나와의 소중한 시간이 부족하잖아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달콤하고 마주 보는 눈빛은 따스했지만, 속내는 치열했다. 호준은 등에 힘을 바짝 주면서 책장 뒤로 기대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지훈은 그런 호준을 벽에 밀치려고 몸을 바짝 붙였다.
“지훈 씨가 피곤해하지만 않으면 더 할 수 있거든요.”
“사무관님이 너무 늦게 퇴근해서 나는 피곤하단 말이에요.”
호준이 다시 지훈을 책장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위기감을 느낀 지훈은 호준의 맨발을 꽉 밟으며 벽으로 확 밀쳤다. 그러자 당황한 호준이 발을 헛디뎌 책장에 등을 기대었다.
하필 그때, 지훈의 손이 호준의 팔을 잡으면서 호준의 몸이 더 휘청였다. 무게 중심을 잃은 호준의 몸이 한쪽으로 미끄러지면서 책장이 드르륵 밀리고 말았다.
“앗!”
호준이 무게를 실어 밀어 버리자 그만 책장이 미끄러지며 슥 열렸다. 지훈은 이제까지 의심만 했던 이중 책장이 옆으로 밀리는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사무관님? 방금 책장이 움직였어요!”
드디어 이중 책장을 연 지훈이 방방 뛰며 소리쳤다. 자기가 일을 벌여 놓고 당황한 호준은 깜짝 놀라서 그대로 지훈의 눈을 손으로 가려 버렸다.
“책장이 고장 났나 봐요. 내일 수리할게요. 이대로 가다간 책장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얼른 서재에서 나갑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요! 바퀴 굴러가는 소리 내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
“크헉! 지, 지훈 씨…….”
지훈은 그대로 호준의 복부에 니킥을 날렸다. 강한 고통을 느낀 호준이 비틀거리면서 바닥으로 쓰러진 사이, 지훈은 책장을 마저 열어 버렸다.
“이 망할 책장이 드디어 열렸어!”
마침내 지훈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중 책장의 내부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책장 선반 가득히 진열된 수많은 펭귄 친구들이 영롱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호준이 지훈 몰래 꾸준히 관리해 온 모양인지 먼지 한 톨 없었다.
위쪽엔 지훈이 처음 보는 펭귄 친구 피규어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제법 크기가 큰 캐릭터 인형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지훈의 최종 목표물인 펭귄 친구 팬티는 최하단의 거대한 상자 속에 들어 있는 듯했다.
“좀 비켜 봐요, 정호준 씨.”
“그럴 수 없어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책장을 막고 있던 호준이 지훈의 긴 다리에 구차하게 매달렸다. 지훈은 그런 호준을 발로 툭툭 쳐 냈다.
“내가 저 망할 팬티만 수거할게요.”
“제발, 그것만은 안 된다고요!”
호준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지훈을 가로막자, 지훈은 어이없어했다.
“팬티에 목숨 걸었어요? 내가 예쁜 거 새로 사 줄게요.”
“진짜 불태울 건가요?”
“안 태워요!”
지훈의 말에 호준이 놀라서 팔의 힘을 풀어 버렸다. 지훈은 펭귄 친구 상자 안에 곱게 놓여 있던 펭귄 친구 팬티의 실체를 마침내 확인할 수 있었다.
* * *
팬티를 불태우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호준에게 맹세한 후, 휴먼명조체로 작성한 계약서에 지장까지 찍고 나서야 지훈은 이중 책장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다.
호준이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지훈은 펭귄 친구 캐릭터 피규어 중 큼직한 걸 몇 개 집어 들었다. 호준은 지훈이 그걸 쓰레기통에 내다 버릴 거라고 생각했는지, 운명에 순응하는 순교자처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지훈은 담담하게 서재 한쪽에 호준의 정다운 펭귄 친구들을 장식해 두었다.
그러고는 소파 밑에 숨겨 뒀던 펭귄 친구 텀블러를 슬그머니 꺼내 호준에게 건네주었다. 다행히 지훈은 택배 배송용 겉 박스만 뜯었을 뿐, 속 포장지는 뜯지 않았다. 택배 수령의 꽃이라는 개봉식은 텀블러의 주인인 호준의 몫으로 남겨 둔 것이다.
지훈에게서 텀블러를 건네받은 호준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지훈의 눈초리에도 굴하지 않고 소중히 끌어안고 몇 번 쓰다듬더니,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었다. 서른셋의 직장인에겐 부담스러울 정도로 귀엽고 앙증맞은 펭귄 친구 텀블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훈도 호준이 기를 쓰고 숨길 정도로 디자인이 귀엽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걸 집 밖에서 사용할 용기는 없었다.
“그거 진짜 사용할 거예요? 소장용 아니에요?”
“쓰려고 산 겁니다. 지훈 씨가 괜찮다고 하면 소장용 하나 더 주문하려고요. 지훈 씨도 쓸래요?”
“아뇨, 난 됐어요.”
지훈이 정색하며 거절하는 사이, 호준은 텀블러를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두었다. 호준이 펭귄 친구를 알뜰살뜰히 살피는 걸 보며 지훈이 물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숨겼어요?”
“지훈 씨가 싫어하잖아요.”
처음 호준의 집에 들어오면서, 펭귄 친구 팬티가 눈에 보이면 불태워 버리겠다고 겁을 준 건 지훈이었다. 물론 지훈은 호준이 정말 이렇게까지 펭귄 친구들을 꼼꼼하게 숨겨 둘 줄은 몰랐다. 호준처럼 매사에 진지한 사람 앞에서는 말조심할 필요가 있는데, 그땐 지훈이 호준의 앞에서 농담과 진담을 딱히 구분하지 않는 바람에 일이 커진 것이다.
“이해는 잘 안 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걸 어떻게 하지 말라고 해요.”
“지훈 씨가 불편한 거 싫어요. 나한테는 지훈 씨가 더 중요하니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어요.”
참는 것치고 펭귄 친구들을 너무 소중히 모셔 두긴 했다. 하지만 호준이 집주인인데도 자기 물건을 꼭꼭 숨겨 놓은 걸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훈은 그간 펭귄 친구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며 요란을 떨었던 것이 되레 미안해졌다.
“망할 팬티랑 잠옷만 안 입으면 사실 상관없어요. 섹스할 때만 안 보이게 해 줘요.”
지훈의 너그러운 마음씨에 감동한 호준은 그런 지훈을 꽉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나 지금 지훈 씨한테 너무 감동했어요.”
“참나. 이런 거로 감동하면 어떡해요.”
지훈과 관련된 일이면 만사가 긍정적인 호준이었다. 지훈은 투덜거리면서 그런 호준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지훈 씨가 진짜 다 갖다 버릴 줄 알았다고요.”
호준이 지훈의 허리를 붙잡으며 속삭였다. 마치 지훈을 꼼짝도 못 하게 하려는 듯 지훈의 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이미 열이 오른 지훈의 사타구니와 허벅지를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은데, 내가 착해서 봐주는 거예요.”
지훈도 한 손으로는 호준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는 호준의 상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께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아까부터 탐이 났던 호준의 가슴 근육을 마음껏 주무르며 속삭였다.
“그런데 아동용 만화 캐릭터를 왜 그렇게 좋아해요?”
지훈의 물음에 호준은 지훈의 말랑한 엉덩이를 움켜쥐며 답했다.
“밤에 TV 채널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됐어요. 생각 없이 보기 좋더라고요. 어릴 때 아버지가 만화 영화를 못 보게 하셨는데, 그래서 지금 이러나 봐요.”
호준의 사연을 듣고 나니 지훈은 호준이 이상할 정도로 펭귄 친구 캐릭터를 좋아하는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엄격하신가 봐요.”
“엄하다기보다는 독선적이셨죠. 무조건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어요. 세상은 바뀌는데 자기 고집만 피우다가 여러 사람 힘들게 했어요. 돌아가셨을 때도 그동안 싸운 거 생각나서 눈물도 안 나더라고요.”
지훈은 깜짝 놀랐다. 이제까지 호준이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꺼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줄 몰랐어요.”
정색하는 지훈과 달리 호준은 손으로 계속 지훈의 맨살을 더듬었다. 엉덩이를 벗어난 손은 지훈의 판판한 배를 쓰다듬다가 가슴께로 올라가서는 볼록 솟은 지훈의 유두를 살살 더듬었다.
“괜찮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도 더 지났거든요.”
호준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지훈은 계속 신경이 쓰였다. 호준은 가족 얘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라 어머니와 형에 대해서도 아주 가끔 언급만 했을 뿐이었다.
애인의 작고한 아버지에 대해 말하면서까지 애무할 기분은 나지 않았다. 지훈은 자신의 옷 안에 있던 호준의 손을 억지로 빼내곤 다른 짓을 못 하게 손에 깍지를 낀 채로 물었다.
“내가 펭귄 친구 싫다고 했을 때, 그래서 그렇게까지 숨겼어요?”
지훈은 자신의 태도가 호준에게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을까 봐 걱정하며 물었다. 호준은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지만, 그것이 속내를 전부 드러낸다는 뜻은 아니었다. 호준의 드러나지 않은 심연은 너무 깊어, 지훈은 그 속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정작 호준은 지훈의 양 볼에 입을 가볍게 맞추며 안심시켰다.
“내가 속죄하려면 지훈 씨한테 평생 잘해야 한다면서요. 지훈 씨가 싫어하는 일은 하기 싫었어요. 그것뿐이에요.”
“싫어하는 일 안 한다면서, 나 몰래 텀블러 주문했다가 걸렸잖아요.”
지훈이 싫다는 걸 안 한다는 뜻은 그냥 지훈은 모르게 한다는 뜻이었다. 지훈이 정곡을 찌르자 죄 많은 호준은 할 말이 없었다.
“그건 미안합니다…….”
“사무관님이 잘못한 게 너무 많아서 그 정도는 쌓여도 티 안 나요.”
“조금이라도 깎아서 지훈 씨한테 더 점수 따고 싶어요.”
지훈은 그런 호준의 목에 팔을 감고 입을 맞췄다.
“점수는 다른 걸로 따 봐요. 사무관님이 잘하는 걸로…….”
지훈이 한 손으로 살짝 단단해진 호준의 성기를 옷 위로 쓰다듬자 호준이 살짝 열이 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몸으로요?”
지훈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자, 호준이 곧장 지훈에게 혀를 밀어 넣었다. 지훈의 입이 벌어지자 호준의 말랑한 혀가 뜨겁고 부드러운 지훈의 입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지훈은 호준의 입안으로 신음을 흘려보내며 같이 혀를 섞었다. 서로의 타액이 질척하게 섞였다.
차마 입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을 혀끝으로 다 하겠다는 듯, 열이 잔뜩 오른 지훈이 호준의 입안을 샅샅이 헤집었다. 호준은 지훈의 농밀한 혀의 움직임을 온 감각으로 느끼며 완전히 긴장을 풀었다.
지훈이 호준의 몸을 끌어안고 완전히 기댔다. 지훈이 입고 있던 얇은 옷이 밀려 올라가 뜨거운 살갗이 드러났다. 지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호준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이미 달아오른 체온으로 성기도 단단해져 있었다. 속옷 너머로도 호준의 열기가 느껴졌다.
“하아…….”
지훈이 잠깐 입술을 떼고 더운 숨을 뱉었다. 호준은 지훈의 상의를 훌렁 벗겨 버렸다. 지훈도 다급한 손길로 호준의 옷을 같이 걷어 올렸다. 호준은 맨살이 드러난 지훈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서로의 더운 살갗이 닿았다.
호준은 씹어 먹을 기세로 지훈의 목덜미와 쇄골 주변을 빨았다. 얇은 피부를 혀끝으로 간지럽히며 희롱하다가, 피부 사이를 거칠게 파고들었다. 이로 자근대며 살갗을 깨물었다. 흥분한 호준이 힘 조절을 못하고 세게 물자 지훈이 움찔했다.
“아아읏…….”
지훈이 얼굴을 찡그리자 호준이 더운 숨을 간신히 삼키며 다정하게 물었다.
“미안해요. 그만할까요?”
“그만하라고는 안 했어요.”
지훈은 눈치 없는 애인에게 핀잔을 주며 발끝으로 호준의 다리를 툭툭 쳤다. 호준이 웃는 바람에 콧바람이 지훈의 쇄골 위를 스쳐 갔다. 지훈이 그 숨결에 간지러워하는 사이 호준이 다시 입술로 지훈의 쇄골을 핥았다. 호준의 미끈거리는 혀가 잔뜩 달아오른 피부에 닿자, 짜릿함에 지훈이 몸을 살짝 떨었다.
호준이 이렇게 살갗이 아플 정도로 지훈의 피부를 빨아 대면, 지훈의 흰 살결 위에 흔적이 남곤 했다. 지훈이 아침마다 몰골이 이게 뭐냐고 호준을 향해 투덜거리면서도 그만하란 소리는 안 했기 때문에 호준은 매일 다른 곳에 흔적을 남겼다. 호준은 욕정에 불타올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옷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만 집중적으로 키스 마크를 남겼기 때문에, 지훈이 할 말이 없기도 했다.
지훈은 더운 숨을 호준의 귓가에 불어넣으며 호준의 탄력 있는 가슴 근육을 쓰다듬었다. 손가락 끝으로 유두를 자극하자 호준의 숨이 거칠어졌다.
“지훈아…….”
살짝 이성을 잃은 호준이 입술을 떼더니 지훈에게 머리를 맞대고는 속삭였다. 이름을 부르는 게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지훈은 호준의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성기를 한 손에 그러쥐었다.
단단하게 발기한 호준의 성기가 주는 묵직함을 손으로 느낄 때마다 지훈은 허리 아래가 뻐근해졌다. 삽입에 대한 기대감으로 몸이 달아올랐다. 굵은 성기가 가져다줄 짜릿한 쾌감을 지훈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지훈이 호준의 성기를 양손으로 붙잡고 위아래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부드러운 성기의 표피가 지훈의 손바닥에 닿자마자 피가 바짝 몰리면서 단단하게 솟아올랐다. 몸이 같이 달아오르는 듯, 호준의 숨이 급격하게 거칠어졌다.
“지훈아, 넣고 싶어…….”
마음이 급해진 호준이 지훈의 하의를 우악스럽게 벗기고는 엉덩이를 양손으로 붙잡아 벌렸다.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소파 옆에서 꺼내 온 젤로 지훈의 입구를 부드럽게 적셨다.
“아으읏!”
지훈이 볼을 붉히면서 자신의 달아오른 성기를 호준의 허벅지에 문질렀다. 그러더니 팔로 호준의 어깨를 밀어내 호준을 소파 위로 완전히 눕혀 버렸다. 호준의 위에 탄 채로 지훈은 호준의 바지와 속옷을 벗겼다.
“하읏…….”
아래에 깔린 채로 지훈의 입구를 벌리던 호준이 손가락을 대뜸 내벽 안으로 집어넣었다. 지훈은 신음을 뱉으며 호준의 위로 쓰러졌다. 호준은 지훈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손가락을 좀 더 깊숙이 밀어 넣고는 안에서 꽤 거칠게 휘저었다. 내벽이 문질러지는 자극에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지훈의 성기가 단단해졌다.
지훈은 고개를 숙여 호준에게 깊게 키스했다. 지훈의 혀가 호준의 입을 벌리고 안을 헤집었다. 아래쪽에서는 호준의 손가락이 지훈의 혀가 주는 움직임에 맞춰 내부에서 거칠게 움직였다. 지훈이 호준의 두툼한 아랫입술을 살짝 물어뜯자 호준도 내벽의 어느 지점을 손가락 끝으로 지그시 눌렀다.
“아으읏…….”
지훈이 신음을 내뱉으며 허리를 움찔거렸다. 호준이 누른 곳은 지훈의 전립선 바로 옆이었다. 지훈에게 강렬한 자극이 전해져 왔다.
호준은 지훈이 뱉은 신음을 온 입으로 삼키면서 지훈에게 다시 키스했다. 지훈의 입구를 벌리는 손가락은 두 개로 늘어났다.
“하앙, 빨리…….”
“빨리, 뭐?”
지훈이 무슨 말을 하는지 뻔히 알면서, 호준이 일부러 느긋하게 되물었다.
“지금 넣을래요.”
조바심이 난 지훈이 호준을 졸랐다.
“지훈이 안이 너무 쫀득거리고 말랑말랑해서 빼기 싫어…….”
호준은 일부러 두 손가락으로 지훈의 내벽을 더 헤집으며 괴롭혔다. 자극이 강해지자 지훈의 성기가 발딱거렸다.
“아읏……. 씨발, 이거 넣을 거라고요.”
“크흣…….”
지훈이 한 손으로 호준의 성기를 꽉 잡았다. 호준은 그 압박감에 거친 신음을 뱉으며 지훈의 몸 안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자, 잠깐만.”
마음이 급한 지훈이 그대로 호준의 성기를 몸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데, 호준이 지훈을 말리면서 콘돔을 집어 들었다. 그걸 본 지훈이 투덜거렸다.
“여태 콘돔도 안 씌우고 뭐 했어요.”
뭐 하긴, 지훈이 꽉 잡고 안 놔주는 바람에 늦어졌다. 호준은 억울해서 한마디 하려다, 지훈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지훈이 이렇게 조바심을 낼 정도로 자신의 몸을 원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좋았다.
“지훈이 애태우려고 그랬지.”
“참나, 빨리 해요.”
호준은 자신의 성기에 콘돔을 씌우고 윤활액을 바른 후, 안달 나서 보채는 중인 지훈의 허리를 붙잡았다.
“지훈아.”
호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 주자 지훈은 괜히 마음이 설렜다. 호준의 얼굴을 보면 두 배로 설렜고, 몸을 보면 몇 배나 더 설렜다. 자신을 바라보며 뜨겁게 달아오르는 호준과 눈이 마주치면 지훈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지훈은 호준의 두 눈을 빤히 응시하며, 호준의 위에서 천천히 몸을 눌러 내렸다. 호준의 굵은 성기가 지훈의 입구를 벌리면서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래에서부터 차오르는 압박감에 지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지훈의 몸이 뜨거워지는 걸 호준도 느낄 정도였다.
“하으읏…….”
지훈이 악물고 있는 잇새로 신음을 뱉으면서도 허리를 완전히 내렸다. 정상위로 할 때보다 더 깊숙한 곳까지, 호준의 성기가 완전히 들어찼다. 이미 예민한 부분은 압박에 짓눌린 채였다. 지훈은 삽입만으로도 온몸을 타고 흐르는 쾌감에 전율하며 호준의 몸 위로 쓰러졌다.
호준도 지훈의 내벽이 성기를 너무 조여 와서 아찔할 정도였다. 겨우 숨을 고르면서 지훈의 눈가에 살짝 흐른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아흑. 아파. 너무 커…….”
지훈은 빨리 넣겠다고 졸라 대더니, 이젠 아프다고 우는소릴 했다. 너무 큰 물건의 주인은 그런 지훈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지훈아, 너무 아프면 그만…….”
“멍청이.”
너무 아팠던 지훈이 호준을 향해 막말을 퍼부었다. 졸지에 멍청이가 된 호준이 어안이 벙벙한 사이, 지훈은 호준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허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호준의 성기가 몸에서 빠져나가면서 내벽이 쓸리는 듯했다.
“그딴 소리…… 하읏, 하지 말라고요. 읏…….”
지훈이 호준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허리를 찍어 내렸다. 다시 지훈의 몸 안으로 호준의 성기가 뿌리 끝까지 들어갔다. 지훈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 너무 좋아. 이렇게 안에 꽉 차는 거…….”
내부를 꽉 채운 성기에 자극점이 짓눌리는 쾌감이 너무 황홀해서, 지훈은 삽입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 자극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허리를 들썩이면서 움직이자 마찰이 되면서 더 짜릿해졌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체액과 윤활액 덕분에 움직임이 점차 수월해졌다. 질척이는 소리와 살갗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신음에 섞여 흘러나왔다.
“아아! 아아!”
내벽을 푹푹 찔러 대는 쾌감에 가속도가 붙으며 지훈이 허리를 점점 빠르게 움직였다. 호준이 한 손으로 지훈의 성기를 붙잡고 같이 훑어 주자, 앞뒤로 오는 자극에 지훈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잔뜩 달아오른 지훈의 성기 끝에서 쿠퍼액이 흘러나와 호준의 손을 적셨다.
“아앗! 아으으읏, 읍!”
엉덩이를 푹푹 찍어 누르며 지훈이 신음을 내질렀다. 하지만 신음이 점점 높아지자 호준이 대뜸 몸을 일으켜서는 지훈에게 키스했다. 지훈의 신음이 그대로 호준에게 삼켜졌다.
“지훈아, 쉿.”
호준이 지훈의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
“왜요?”
“우리 동에서 남자 신음 들린다는 말이 나온대요.”
지훈이 황당해했다. 대놓고 베란다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닌데, 아파트를 엉망으로 짓는 바람에 방문을 닫고 나누는 은밀한 사생활이 벽을 타고 울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다른 집도 분명 신음을 내지를 텐데, 하필 남자 신음이라서 유독 튄 게 분명했다.
“근데 어떻게 참아요. 존나 큰 걸 넣는데. 후우…….”
그냥 아래에 넣고만 있어도 몸에 열이 나고 식은땀이 흐르는 흉기를 넣고 흔들기까지 해야 하니 당연히 앓는 소리가 난다. 입에서 절로 나오는 신음을 대체 어떻게 참아야 하나. 지훈은 고민하다가, 아래가 아픈 만큼 호준의 어깨를 입으로 물어 버렸다.
“아악! 왜 나를…….”
“호준아, 쉿.”
호준이 비명을 지르자, 지훈은 호준이 자신에게 했던 그대로 돌려주며 이를 악물었다.
호준은 자신의 위에 올라탄 지훈의 유두를 대뜸 입에 머금었다. 입술로 유륜 주변을 덮은 후 타액으로 부드럽게 주변을 적시며 두꺼운 혀로 딱딱해진 유두 끝을 희롱했다.
잔뜩 핥아져 예민해진 곳에서 짜릿한 감각이 전해졌다. 아래의 자극과 더해져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쾌감이 느껴졌다. 지훈이 허리를 비틀면서 가슴을 빼내려 했지만, 호준이 오히려 그런 지훈을 자신의 품으로 꽉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허리를 아래에서 위로 크게 퍽퍽 쳐올렸다. 지훈의 몸이 흔들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으으으읏!”
지훈이 이를 악물면서 호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래에서 빠르게 삽입하는 호준의 힘에 지훈의 몸이 속절없이 흔들렸다. 성기는 자극점을 쉴 새 없이 마찰하며 내벽의 깊은 곳까지 쑤셨다. 지훈의 성기는 이미 발갛게 달아올라 호준의 복부 위에서 흔들렸다.
“으읏……. 자, 잠깐만. 나 지금 쌀 것 같아요…….”
“지훈아, 참지 마…….”
호준이 일부러 지훈의 성기를 손으로 훑으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귀 안쪽까지 파고드는 숨이 너무 뜨거웠다. 지훈은 사정을 참으려고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러기엔 자신의 성기를 매만지며 자극하는 호준의 손길이 너무 좋았다.
“아아! 아아! 아…… 아읏!”
지훈은 허리가 흔들리는 채로 호준의 배 위에 하얀 정액을 흩뿌렸다. 미끈거리는 정액 위로 성기가 계속 비벼졌다.
지훈이 몸을 파르르 떨면서 호준의 등을 할퀴었지만 호준은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계속되는 자극에 지훈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헐떡였다.
“아아읏!”
“흐읏! 지훈아…….”
호준이 지훈의 몸에 얼굴을 파묻고 사정없이 허리를 흔들었다. 지훈은 이대로 기절해 버릴 것만 같았다.
거의 눈앞이 하얗게 질릴 정도가 되었을 때, 호준이 지훈의 내벽 깊숙한 곳까지 성기를 넣으며 진하게 사정했다. 호준이 몸을 떨며 사정의 쾌감에 전율하자, 지훈은 그런 호준을 꽉 끌어안았다.
* * *
“ASMR 뭐 해 줄 거예요?”
자리를 침대로 옮긴 후에도 둘은 몇 번을 더 몸을 섞고 정액을 쏟아 내며 밀어를 잔뜩 속삭였다. 사정 후의 노곤함으로 나른해진 지훈이 아직 더운 호준의 나신에 달라붙으며 눈을 깜박였다.
호준도 자신의 품에 들어오는 지훈에게 팔베개를 해 주며 시트를 덮어 주었다. 아까 농담으로 얘기했던 걸 굳이 다시 언급하며 호준을 시험을 들게 하려는 듯, 지훈의 보조개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호준은 지훈의 보조개를 손가락으로 푹 누르며 답했다.
“자장가 ASMR이요.”
호준은 호기롭게 말했지만, 지훈이 정색하며 호준의 팔뚝을 찰싹 쳤다.
“됐어요. 나 그냥 혼자 잘래요.”
“지훈 씨, 나 좋아한다면서요. 내 노래도 참고 들어 줘요.”
호준이 뻔뻔하게 나오자 지훈도 지지 않고 맞섰다.
“세상에는 사랑으로도 극복 안 되는 게 있거든요. 정호준 씨 앞으로 집에서 노래 금지예요.”
“여기 내 집인데도요?”
호준이 부동산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지훈에게 달라붙었다.
“아까 저한테서 점수 딴다고 하지 않았어요? 노래 부르면 무조건 마이너스 오천 점.”
“그럼 그만큼 몸으로 갚을게요.”
지훈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호준을 슬쩍 밀어내려다가, 침대 너머에 있는 거대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잠깐, 저 인형은 왜 갑자기 방에 있어요?”
큼직한 펭귄 친구 인형이 서랍장 위에 앉아 지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펭귄 친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지훈은 깜짝 놀라더니 휙 돌아누웠다.
“지훈 씨가 펭귄 친구 팬티랑 잠옷만 아니면 괜찮다고 해서, 다시 갖다 놨어요. 원래 저 자리에 있었거든요.”
호준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지만, 지훈은 갑자기 펭귄 친구 금지 항목을 추가하고 싶어졌다.
“저 위치에 있으면 쟤가 우리 하는 거 다 보잖아요.”
지훈의 말에 호준이 어리둥절해했다.
“보긴 뭘 봐요. 인형인데.”
“저 망할 펭귄 놈이 우리 얼레리꼴레리 하는 거 다 보는 거 같단 말이에요! 눈빛부터 수상하잖아요!”
“뭐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눈빛일 뿐이에요!”
호준이 펭귄 친구 인형의 영혼 없는 눈깔을 보며 항변했지만, 지훈은 펭귄 친구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치를 떨었다.
“알 거 다 안다는 눈깔로 음흉하게 관음하고 있잖아요!”
“지훈 씨, 인형에 왜 이렇게 진심이에요?”
펭귄 친구 텀블러에 목숨 걸었던 호준이 할 말은 아니었다.
“빨리 저 인형 갖다 치워요. 안 그럼 나 다시는 이 방에서 섹스 안 해!”
“지훈 씨, 대체 왜 그러는…… 으악!”
지훈을 달래 보려던 호준은 결국 지훈에게 베개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호준은 머리털이 다 뽑히기 전에 얼른 펭귄 친구를 안방 밖으로 이사시켜야만 했다.
호준은 지훈이 왜 그렇게 펭귄 친구 캐릭터를, 특히 펭귄 친구 팬티나 이불 따위를 유난히 싫어하는지를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지훈이야말로 누구보다 진심으로 ‘녀석’을 친구로 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심 가득한 친구 앞에서 얼레리꼴레리를 하려니 싫을 수밖에.
그 후로 호준은 지훈을 위해서 집 안 구석구석에 장식되어 있던 펭귄 친구를 자진해서 치워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