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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3. 첫 주말 (21/27)

외전 3. 첫 주말

태종시 최고의 매매가를 자랑하는 럭셔리캐슬스테이트시티 아파트 단지에 자리한 호준 하우스는 전에 지훈이 잠깐 봤던 그대로였다. 여전히 무소유의 정신을 충실히 실천 중이었다.

간밤에 지훈이 호준과 열심히 뒹굴었던 안방과 화장실은 그래도 그럭저럭 생활감이 있었는데, 거실과 부엌은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 정상 가족인 4인 가구 기준에 맞춰서 설계되었지만 실상은 정상적인 1인 가구가 생활하는지라 공간이 휑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실엔 구색 맞추기용 소파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긴 했는데 그나마도 자주 사용한 것 같진 않았다.

김지훈이 짧은 시간 동안 관찰한 바로는, 정호준이란 인간은 시간을 초 단위로 알차게 계획하는 것에 반해 공간 활용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집이 휑한 것에 비해 깔끔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대충 보면 깔끔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나 지저분한 것이다.

우루과이에서도 호준의 캐리어 안을 얼핏 볼 일이 있었는데, 지훈이 기억하기에 옷가지가 그다지 정갈하게 개여 있진 않았다. 안방과 붙어 있는 드레스 룸 상황도 비슷했다. 옷들이 서랍과 옷장 안에 잘 들어가 있긴 했는데, 그 안은 정리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양말은 보통 짝을 맞춰서 말아 놓지 않나? 양말짝은 제대로 맞추고 다니나? 구두 안은 짝짝이인 거 아냐? ‘호준의 짝짝이 양말 의혹’이 깊어졌다.

호준이 꽁꽁 숨겨 둔 것 같은 펭귄 친구 팬티를 찾으려고 지훈은 여기저기 이곳저곳을 들춰 보았다. 집주인이 없는 사이에 남의 집을 뒤지는 것에 은근한 죄책감을 느끼긴 했지만 지훈은 크게 미안해하진 않았다. 일차적으로 지훈을 혼자 둔 채 집을 비운 집주인 잘못이니까.

집주인 몰래 아무리 집 안을 뒤져 봐도 펭귄 친구 팬티는 발견되지 않았다. 분명 버리진 않았을 텐데, 대체 어디다 꽁꽁 숨겨 둔 걸까? 지훈이 안방과 드레스 룸을 구석구석 열심히 뒤졌지만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훈은 결국 펭귄 친구 팬티 찾기를 포기하고 부엌으로 나왔다.

부엌 역시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냉장고엔 생수와 냉동 닭 가슴살만 있었다. 지훈이 홀딱 반해 버린 그 탄탄한 팔뚝과 가슴의 비결이었다. 하지만 지훈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퍽퍽한 저염식 닭 가슴살을 뜯어 먹을 생각은 없었다. 남의 집 냉장고에서 허락도 없이 생수 한 병을 태연히 꺼내 마시며 찬장을 열어 본 지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 국민 비상식량인 라면이 없는 것도 문제였는데,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 인간의 집에 맥주 한 캔이 없는 것도 애석한 일이었다. 대체 뭘 먹고 사는 거야? 집안이 식당일을 하는 터라 집에서만큼은 항상 푸짐하게 먹어 왔던 지훈은 썰렁한 호준의 부엌이 어색했다. 언젠가 저 냉장고를 맛있고 칼로리 높은 것들로 가득 채워 놓고 싶었다.

아무튼 부엌에는 믹스 커피 하나 없었기 때문에 지훈은 곧바로 휴대폰으로 호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는 길에 아침 먹을 거랑 커피 좀 사 오라고. 아직 운동 중인지 호준은 메시지 확인도 안 했다. 나중에 보겠지 뭐. 지훈은 까치집이 된 머리를 긁적이면서 물을 마저 마시고는 빈 생수통을 부엌 구석에 있는 플라스틱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호준은 집에 먹을 것도 없으면서 분리수거만큼은 쓸데없이 철저했다.

늦은 아침이었다. 간밤에 힘을 잔뜩 썼더니 지훈은 배가 고팠다. 정호준 자식은 야식을 시켜 준다고 해 놓고는 섹스하느라 정신이 팔렸다. 결국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다. 사실 지훈도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까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집에 이렇게까지 먹을 게 없을 줄 알았으면, 어제 그 급한 와중에라도 편의점은 들러서 도시락 세트라도 사 왔어야 했다며 조금은 후회했다.

물론 호준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 줬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한 주전부리를 사 올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훈은 자기가 나가서 사 올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떻게든 정호준을 부려 먹을 작정이었다. 실은 그 힘 좋은 정호준 놈 때문에 허리와 허벅지가 너무 땅겼다. 지훈은 집 안을 어슬렁거리며 펭귄 친구 팬티를 찾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 * *

잠을 안 재우겠다는 호준의 결심은 진짜였다. 정말 새벽까지 둘은 섹스만 했다. 샤워하면서 하자더니 욕실에서만 두 번 넘게 했는데 이건 호준의 사정 기준이었다. 호준이 하도 지분거리는 바람에 지훈은 자신이 그 사이에 몇 번이나 사정했는지는 기억도 안 났다. 침대에 돌아와서 또 엄청나게 했다. 이것저것 새로운 걸 많이 한 것 같았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그냥 다 섹스였다.

호준은 섹스도 성실하게 했다. 콘돔도 진짜 엄청나게 많은 양이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끝도 없이 나왔다. 지훈은 사실 호준의 집에 오기 전 게이 포르노라도 찾아보면서 미리 공부를 하려 했다. 남자 간의 섹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실전에 돌입하니 아무 소용 없었다. 정신 차릴 틈도 없긴 했지만, 호준이 이끄는 대로 이것저것 하면서 정신없이 흐느끼는 게 전부였다.

무엇보다도 지훈은 자신의 입에서 그런 민망한 신음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침에 돌이켜 보니 쪽팔리긴 한데, 그래도 호준이 그 소리 때문에 더 흥분해서는 지훈의 이름을 부르면서 개처럼 박아 댔으니까 결론적으로는 좋았다.

섹스 도중 지훈은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지더니 졸음이 쏟아졌다. 영하의 날씨 속 휴대폰 배터리처럼 모든 게 방전되었다. 지훈은 나머지는 내일 이어서 하자며, 너무 피곤하니 자긴 이만 자겠다고 선언했다. 지훈이 멈추면 호준 혼자서는 고추가 발딱 서 있든 말든 별수 없었다. 아무리 침대 위에서 발가벗고 누워 있어도 상대방이 싫다는데 관계를 계속하면 범죄다.

호준은 말없이 지훈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호준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니 지훈도 조금 미안하긴 했는데, 그땐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잠결에 옆에 얌전히 누운 호준의 따끈한 맨몸에 달라붙었던 것도 같은데, 호준이 얼른 자라며 머리를 토닥여 준 이후는 기억에 없었다. 정말 기절하듯 잠이 들어 버렸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랫동안 혼자 살았으니 평소엔 그게 당연한 거였지만, 간밤에 한 짓을 떠올리고는 호준이 없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그나저나 회사에서만 봐야 할 사무관님과 하는 맨살의 향연이라니! 스스로에게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허리 아래에서 엄청난 통증을 느끼고는 다시 드러누웠다. 몸에 힘을 주려니 허벅지가 달달 떨렸다.

기승위는 괜히 했나……. 할 땐 좋았는데 후유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우루과이에서도 처음 밤을 보낸 후에 반나절은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지훈은 난생처음으로 코어 근육을 좀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섹스를 열심히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좀 우습긴 했지만, 호준과 섹스는 더 하고 싶은데 몸은 아파 뒈지겠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도 더 많이 하려면 체력이 필요했다. 물론 섹스를 줄여야겠다는 건 지훈의 선택지에 없었다. 이렇게 좋은 걸 여태 모르고 살았던 게 억울할 정도로 좋았으니까. 열심히 운동해서 열심히 얼레리꼴레리 해야지!

겨우 몸을 일으켜 보니, 침대 옆에는 아침 운동을 빨리 하고 오겠다는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누가 쓴 건지는 뻔했는데, 특히 그 정갈한 글씨체 때문에 더더욱 티가 났다. 비행기 타고 가면서 봐도 호준이 쓴 거였다.

아무튼 부지런도 했다. 간밤에 그렇게 움직여 놓고 또 운동을 하러 갈 여력이 있다니. 심지어 지훈이 곯아떨어진 사이 호준은 서로의 체액으로 젖었던 시트도 갈아 놓고 지훈의 이런저런 뒤처리도 다 해 놓고 속옷까지 예쁘게 입혀 놓았다. 분명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인데 지훈은 딱히 고맙진 않았다. 작심하고 브랜드 속옷도 잔뜩 가져왔는데, 호준이 굳이 히어로 캐릭터 팬티를 입혀 놓은 거 보면 분명 고의였다. 지훈은 언젠간 호준의 망할 펭귄 새끼 팬티를 찾아내서 죄다 불태워 버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 * *

“가만 안 둬, 진짜.”

지훈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당분간 자신이 지낼지도 모르는 월 20만 원짜리 방도 둘러보았다. 지훈이 원래 살던 원룸만큼 넓었는데, 대신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태초에 아파트가 생길 때부터 존재했을 붙박이장이 전부였다. 평소에 전혀 쓰지 않는 방인지 바닥에 먼지가 꽤 쌓여 있었다.

사실 지훈은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대학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처를 끊임없이 옮겨 다녔던 터라 짐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자신이 있는 호준의 집에서도 얼마나 지내게 될지, 지훈은 확신할 수 없었다. 호준은 파견 기간 내내 계속 지내도 된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동거는 부담스러웠다. 지훈은 원룸 보증금만 빠지면 근처에 방을 구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집을 새로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 지훈은 고민이 많았다. 정규직이 되면 한곳에 정착할 줄 알았는데, 지금 상황은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지훈은 끊임없이 옮겨 다니는 삶이 좀 지겨웠다. 솔직히 말하면, 직장도 있고 집도 있어서 한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호준이 부러웠다.

지훈은 호준의 애장품 펭귄 친구 팬티를 찾기 위해 세탁기와 건조기 안까지 다 뒤졌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결국 팬티 같은 건 절대 없을 것 같은 서재의 문을 마지막으로 열었다. 우루과이에 가기 전에 호준과 대판 싸우다가 고백을 시켜 버렸던 바로 그 방이었다.

그때엔 화가 나서 눈에 보이는 게 없었는데, 제정신으로 보니 책이 굉장히 많았다. 한쪽 벽면이 전부 책장이었다. 호준은 생긴 것부터 책만 읽게 생겼기 때문에 놀랍지도 않았다. 지훈은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호준이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책장을 훑어보았다. 고시 공부할 때 쓰던 것 같은 행정법이니 경제학이니 하는 책들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옆에 있던 삼국지와 자본론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고전은 보통 책장 장식하려고 사는 거니까.

그 위 칸에는 좀 재미있는 책들이 있었다. 스페인어 사전, 스페인어 교재들과 오래된 외국 소설책들이었다. 제목을 보니까 대충 스페인과 남미 문학이었다. 지훈이 읽을 수 있는 글자라고는 ‘Che Guevara’뿐이었다. 정호준 진짜 스페인어 공부한 거 맞았다. 심지어 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럴 거면 스페인 유학을 가거나 남미의 혁명가가 될 것이지 대체 왜 공무원이 된 거야?

지훈은 자신이 하필 우루과이로 여행을 간 일이 너무 공교로웠다고 생각했다. 그냥 최대한 멀리 가고 싶어서 지구본 돌려서 찍은 거였는데. 물론 호준이 따라온 건 우연이 아니었지만, 그가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지훈이 굳이 같이 다닐 이유는 없었을 테다. 그랬다면 간밤에 호준과 뼈와 살을 불태울 일이 생길 리도 없었을 텐데.

드라마에서처럼 죽느니 사느니 하는 세기의 사랑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우연이 쌓이고 필연이 되어서야 인연이 되었다. 지훈은 지금의 상황이 새삼스러워서 괜히 눈을 깜박였다.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던 사무관과 섹스하고 연애도 하게 될 줄은.

시선을 돌리니 지훈도 여행 중에 들고 다녔던 호준의 카메라가 보였다. 카메라 옆엔 마침 인화해 둔 우루과이에서의 사진들도 있었다. 사진에 정신이 팔린 지훈은 책장 이음새가 마치 안쪽에 칸이 하나 더 있는 것처럼 생겼다는 사실을 놓치고 말았다.

지훈은 책상에 앉아 인화된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호준이 찍은 자신의 사진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지훈이 요청해서 찍어 달라고 한 것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냥 여행 중에 지훈을 몰래 찍은 사진들도 있었다. 주로 뒷모습이었다. 허락도 안 받고 찍다니, 사실상 불법 촬영 아닌가? 하지만 지훈도 호준을 몰래 찍었기 때문에 할 말은 없었다. 쌍방 불법 촬영이다. 기분 나쁘다고 고소했다간 맞고소로 이어져 둘이서 나란히 콩밥 먹게 생겼다.

지훈이 찍은 호준의 사진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것들이 있었다. 호준의 얼굴이 아닌 탄탄한 가슴에 포커스가 되어 있거나, 혹은 호준의 얼굴만 집중적으로 찍혀 있는 사진들. 시간 순서대로 정렬해 보면,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기 전부터 지훈의 시선은 이미 호준의 얼굴과 상체 근육에 노골적으로 닿아 있었다. 다시 보니까 너무 쪽팔려서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대체 언제부터 자신이 호준을 이렇게 쳐다보고 있었던 걸까? 호준이 이것들을 봤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인화한 사진으로 남겨 둘 필요는 없었다. 지훈은 황급히 사진들을 빼놓았다. 그렇다고 버리긴 좀 아까우니, 나중에 몰래 가져가서 혼자 볼 생각이었다.

지훈은 사진을 정리하다가 여행 중에 유일하게 둘이 함께 찍힌 사진을 발견했다. 어떤 노부부가 둘을 찍어 준 덕분이었다. 호준이 자신을 정신없이 바라보는 그 사진을, 지훈은 슬쩍 빼놓았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호준이 자신을 몰래 보고 있는 시선은 자신이 볼 수 없으니까, 남이 찍어 준 걸 보는 수밖에.

“지훈 씨, 여기서 뭐 해요?”

때마침 서재 문이 벌컥 열리고 호준이 눈을 뻐끔거리면서 들어왔다. 스포츠 브랜드의 반바지에 후드 티를 입은 편한 차림이었는데, 머리카락이 살짝 젖은 걸 보니 운동을 끝낸 후 샤워까지 하고 온 모양이었다.

“사진 구경이요. 여행 가서 찍은 거 인화해 놨네요?”

“안 그래도 오늘 주려고 했는데. 지훈 씨가 먼저 찾았네요.”

호준이 방문 앞에 짐을 내려놓고는 지훈의 곁으로 다가왔다. 집에 먹거리 사다 두는 걸 깜박하는 바람에 지금쯤이면 지훈이 배고플까 봐 걱정되어서 부랴부랴 뛰어왔는데 정작 지훈은 너무 태연해 보여서 내심 놀랐다.

“사무관님, 이 사진 저 주면 안 돼요?”

아까 점찍어 놨던, 노부부가 찍어 줬던 사진을 보며 지훈이 물었다. 책상에 걸터앉은 호준이 지훈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지훈은 호준의 헤벌쭉한 표정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지만, 자신의 얼굴에도 네 번째 보조개가 피어 있는 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거 다 지훈 씨 거예요. 다 가져가요.”

“사무관님은요?”

“전 괜찮아요. 백업해 놨어요.”

백업했다는 말에 안심이 되기는커녕, 지훈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럼 아까 버리려고 처분해 놨던 그 사진들은? 설마 그것도 백업해 놨어? 지훈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설마 전부 다요?”

“그럼요. 이젠 소중한 추억이잖아요. 거기서 지훈 씨랑 키스도 했는데요.”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었다. 설마가 사람 잡았다. 호준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지훈이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제가 지우고 싶은 사진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아. 호준은 그제야 지훈이 말하는 바를 이해했다. 호준도 파일을 백업하는 동안 꽤나 재밌어 보이지만 지훈이 알면 난리 날 것 같은 사진을 몇 장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전부 다 제 카메라에 찍혔으니까 어쩔 수 없죠. 혹시 민망한 사진 있으면 모르는 척해 줄게요.”

“그런 게 어딨어요! 모르는 척해 봤자 아는 거잖아요!”

퍽!

어흑. 이번엔 옆구리를 맞은 호준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호준은 이것만큼은 온몸을 얻어맞더라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특히 지훈이 자신을 찍은 사진들은 정말 소중했다. 당시엔 호준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지훈의 감정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이었다.

“그래도 지훈 씨가 영광스럽게 저를 찍어 준 건데 어떻게 지워요.”

호준이 하필이면 제일 민망한 사진들을 꼭 집어서 언급하자, 지훈이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호준의 등짝을 연달아 팡팡팡 때렸다. 진짜 아파서 호준이 온몸을 비틀면서 괴로워했다.

“지훈 씨, 그렇게 한 번에 많이 때리면 아파요…….”

“그거 제발 다 지워요!”

“그, 그럴 순 없어요.”

“지우라고요!”

“싫어요. 평생 간직할 건데요.”

“아, 진짜, 왜요!”

“지훈 씨, 배 안 고파요? 아침밥 해 줄게요. 커피도 사 왔는데.”

“말 돌리지 마요!”

배가 좀 고플 텐데 밥 먹는 얘기도 안 통하는 거 보니 지훈은 진심이었다. 곤란했다.

“지훈 씨가 원하지 않으면 그 사진들은 다시 볼 일 없을 거예요. 저도 먼저 말 안 할 거고. 하지만 제 추억이기도 하니까 간직하게 해 줘요.”

“아…….”

호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저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었다. 타인의 추억에 함부로 손댈 수는 없으니까. 물론 자신이 찍은 사진이지만, 하필 남의 카메라로 찍는 바람에!

“그럼 어디 가서 말하지 마요. 나한테도요. 너무 쪽팔리니까.”

지훈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호준은 머리는 산발을 해 가지고는 땅 파고 들어갈 기세로 부끄러워하는 지훈이 너무 귀엽고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그게 왜 쪽팔린 거예요?”

“그거만 보면……. 제가 너무 사무관님의 얼굴이랑 몸만 좋아한 것 같잖아요!”

심지어 그게 사실이니까! 지훈은 자기가 말해 놓고는 온몸으로 민망해했다. 지훈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호준은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이거 봐! 웃잖아요!”

“웃어서 미안해요. 그런데 외모 보고 좋아하면 어때서요. 어차피 다들 처음엔 외모에 끌려요.”

지훈은 떨떠름하게 호준을 쳐다보았다. 방금 전 발언은, 진정으로 얼굴과 몸에 자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예를 들면 정호준 같은 사람.

“그래도 너무 속물 같잖아요.”

“그런 것치곤……. 지훈 씨는 저 두고 고민 많이 했잖아요. 그런 거 보면 딱히 외모만 본 것 같진 않던데.”

사람 앞에서 대놓고 갈팡질팡하느라 호준의 속도 좀 뒤집어 놓았지만, 아무래도 살면서 처음으로 남자랑 뭘 해 볼 생각을 결심한 지훈 본인이 제일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진짜 지훈 씨가 제 외모나 섹스하는 것만 좋았으면 속 편하게 섹파나 하자고 했겠죠.”

호준의 심드렁한 말에 지훈은 오히려 정신이 트였다. 섹스 파트너라니. 그런 좋은 방법이! 진작 속 편하게 섹스 파트너를 하자고 할걸! 나 여태 왜 삽질한 거야? 지훈이 놀라서 물었다.

“내가 섹파 하자고 했으면 했을 건가요?”

“아뇨.”

먼저 말 꺼낸 사람치곤 칼같이 단호한 거절이라 지훈은 어이가 없었다.

“거봐요. 사무관님이 절 존나 진심으로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런 걸 해요.”

작년에도 좋아했는데 내년에도 좋아할 거라고 하는 상대를 두고서는 섹파는커녕 밀당도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지훈 씨가 저랑 만나 보기로 결심한 데엔 다른 이유도 있었겠죠.”

외모니 섹스니 하는 것들은, 성격 급한 지훈이 굳이 진지하고 신중한 호준의 템포를 맞춰 주려는 이유로는 부족했다. 호준은 처음에 지훈이 홧김에 자기랑 만나자고 말해 버린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난 며칠 동안, 지훈이 애초에 자신과 진지하게 시작해 볼 작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호준은 사실 그 계기가 궁금했다.

“있긴 한데……. 굳이 알고 싶어요?”

지훈이 그냥 말해 주긴 싫은지 떠보듯 물었다.

“지구의 자기장 때문은 아닌 것 같던데, 알려 주면 좋고요.”

그냥 알려 달라고 졸랐으면 오히려 말 안 했을 텐데. 초연한 척해도 은근히 캐묻는 걸 보니 호준 쪽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호준이 저렇게 말하니까 지훈은 그냥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부끄러워서 조금 뜸을 들였다.

“시간이요.”

지훈이 대뜸 말한 걸 이해하려면 말 그대로 시간이 필요했다. 호준이 되물었다.

“무슨 시간?”

“사무관님이 시간을 충분히 썼잖아요, 나한테. 그게…….”

좋더라고요. 지훈은 뒷말을 흐렸지만 호준에게는 분명하게 들렸다. 지훈은 말해 놓고 나서는 엄청나게 쑥스러워했다. 홧김에 고백할 때보다 더.

지훈의 입에서 나온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라서 외려 호준이 놀랐다. 고깃값을 대느라 시간보다는 돈을 더 쓴 것 같았는데. 소고기를 엄청나게 사 줬던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줄이야. 물론 지구의 자기장이 고장 났다는 말보다는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사무관님은 원래 계획적인 사람이잖아요. 스케줄 미리 다 정해 놓고 다니고요. 근데 내가 갑자기 딴 거 하자고 해도 그냥 그러자고 하고……. 저 때문에 야근도 째고, 출장도 만들고, 안 쓰던 휴가도 쓰시고…….”

한 톨의 시간도 낭비 없이 쓰던 정호준이 김지훈을 위해서 시간을 계획 없이 흥청망청 흘려보냈다. 지훈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호준을 만나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결국 그거였다.

돈을 쓰고 체력을 쓰고 정성을 들이는 그 모든 일엔 시간이 필요하다. 주어진 시간을 그 사람을 위해서 완전히 할애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지훈이 느끼기에 호준은 그걸 누구보다도 제대로 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자신을 희생하거나 상대에게 몰입하지도 않았다.

“그건 당연한 건데요. 전 지훈 씨를 좋아하니까요.”

호준이 놀라울 것도 없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지훈은 그 대답이 꽤 마음에 들었다. 호준이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서 좋았다. 지훈을 위해서 지나치게 애쓰는 게 아니라 원래 그런 태도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사무관님 전엔 안 그랬어요. 전엔 나보고 출장 오라고만 했어요. 일하라고 하고, 전화를 받으라고만 하고. 내 시간을 사무관님한테 쓰라고만 했지, 사무관님의 시간을 나한테 쓴 적이 없었다고요.”

“그땐 지훈 씨가 내 시간을 받아 주지 않았으니까요.”

방금 지훈이 말한 건 순전히 일 얘기였지만, 이전엔 호준이 애를 써도 진전이 없을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했다.

호준은 지훈과 있었던 그간의 일들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호준의 입장에서는 지훈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전엔 생각만 했던 걸 이젠 실천에 옮긴다는 정도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훈은 변화를 느꼈다고 했다. 아마 호준을 대하는 지훈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훈이 시간을 보내는 것에 가치를 둔다는 점은 호준에게는 의외였다. 꽤 중요하지만 의외로 눈에 쉽게 띄지는 않는 점이니까. 물론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아낄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남은 제 시간은 다 지훈 씨 거예요. 지훈 씨한테 온전히 쓸 테니까. 받아 줬으면 좋겠어요.”

“그건 당연한 거라면서요. 이제 다 내 거 할래요.”

호준은 그 순간 보조개를 뽐내며 자신을 향해 웃는 지훈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지훈이야말로 알아 갈수록 더 좋은 사람이었다. 너무 좋아서 보고 있으면 심장에 무리가 왔다. 이미 호준의 모든 시간과 계획표는 지훈에게 속해 있었다. 지훈은 호준을 어느 정도 쥐락펴락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생각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건 아직 모르는 듯했다. 시간이고 통장이고 마음이고 다 줄 테니까 지훈이 제발 다 받아 줬으면 싶은 호준이었다.

호준은 벅차오르는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지훈의 볼을 붙잡고 입을 맞췄다. 얼굴을 가까이 할 때 느껴지는 살결의 냄새마저 좋았다.

“앗, 갑자기 이러면 어떡해요. 나 아직 면도 안 했는데…….”

아침부터 허리도 아프고 만사가 귀찮았던 지훈은 급한 대로 세수하고 이만 닦은 상태였다. 호준의 볼 뽀뽀에 당황한 지훈이 허리를 숙여 피하려고 했지만. 호준은 지훈을 더 끌어당겨 이번엔 반대편 볼에 더 진하게 입을 맞췄다.

“뭐, 어때요. 오늘은 나만 볼 건데.”

호준의 입장에서는 지훈의 턱 밑에 푸르스름하게 수염이 나 있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냥 다 예뻐 보이고 남자다워 보여서 좋았다. 머리카락 한쪽이 눌려서 새집처럼 둥둥 떠 있는 모습도 귀여웠다.

“그래도 좀 그러니까. 이따 면도하고 나면 뽀뽀해 줘요.”

“그럼 그 전엔 입에다 하면 되겠네.”

호준에게는 뽀뽀해 달라는 결론만 들렸다. 저렇게 귀여운 얼굴로 그런 말을 하니 호준은 정말로 참기 어려웠다. 이제 지훈한테 슬슬 밥을 먹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훈에게 또 입맞춤을 해 버렸다. 지훈 앞에 있으면 아무래도 자제력이 약해졌다.

입술만 부드럽고 뭉근하게 댔다가 떼려고 했는데, 지훈의 두 팔이 호준의 목을 감아 다시 끌어당겼다. 입술은 좀 더 진득하게 맞닿았다. 간밤에 그렇게 물고 빨았는데도 질리지 않았다.

발동 걸린 지훈이 호준의 말랑말랑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무는 사이, 호준은 지훈이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을 줬다. 벌어진 입술 틈으로 바로 혀를 밀어 넣었다. 몸에 열이 확 올랐다. 호준의 혀는 지훈의 가지런한 치아와 매끈한 잇몸과 예민한 입안의 피부를 짓누르며 탐색했다.

“흐응.”

호준의 거친 혀 놀림에 자극받은 지훈이 콧소리를 내며 호준에게 더 매달렸다. 의자의 바퀴를 끌어당겨 호준에게 몸을 완전히 밀착시키려 했다. 야릇한 신음 때문에 얼굴과 목에 이어 몸까지 뜨거워졌다.

호준은 입술을 잠깐 떼고서는 지훈의 허리와 엉덩이를 붙잡았다. 그대로 의자에서 들어 올려 책상 위에 앉혔다. 책상 위에 있던 사진과 서류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호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저분해진 바닥을 보며 지훈이 눈치를 보다가 호준에게 턱이 붙잡혔다.

키스에만 집중하게 만들겠다는 듯 호준은 지훈의 허리를 끌어당겨 자신에게 밀착시키고 몸을 바짝 붙였다. 지훈도 긴 다리로 호준의 허리와 엉덩이를 감으며 매달렸다. 지훈은 티셔츠 한 장에 간밤에 호준이 입혀 준 속옷 한 장만 입고 있었던 터라 몸의 반응이 곧바로 느껴졌다.

몸은 이미 달아오를 듯 뜨거웠다. 존재감을 서서히 드러내는 지훈의 성기가 호준의 배에 닿았다. 호준도 마찬가지였다. 추리닝 바지 위로 굵은 성기가 윤곽을 드러냈다. 지훈이 일부러 몸을 더 붙여서 옷 위로 자신과 호준의 성기를 비볐다. 야릇한 감각이 올라왔다. 호준이 지훈을 자신의 품 안에 가둘 기세로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아, 큰일 났네…….”

타액으로 입술이 반들거릴 정도로 물고 빨던 호준이 문득 중얼거렸다.

“왜요?”

“지훈 씨 밥 먹어야 되는데.”

물론 배가 고프긴 했던 지훈이지만 이미 고추가 발딱 섰는데 지금 와서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눈치 없는 소릴 또 하는 호준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

“뽀뽀할 때 이미 늦었어요. 난 정호준부터 먹을래요.”

물론 호준은 지훈에게 온몸을 먹혀 줄 의향이 충분했다. 지훈이 실실 웃으면서 자신의 먹잇감을 노렸다. 후드 티 안의 맨살로 두 손을 집어넣고는 천천히 허리에서부터 가슴팍까지 손을 더듬었다.

“참으려고 일부러 운동까지 하고 왔는데.”

사실 호준이 아침에 운동하러 간 건, 지훈이 자는 모습만 봐도 또 건드리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자는 사람을 덮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얌전히 누워 있는 걸 옆에서 구경하려니 참기 어려웠다. 일부러 유산소 운동만 하면서 몸에 힘을 잔뜩 빼고 왔지만 지훈을 보니 소용없었다. 얼굴 보자마자 다시 성기를 세우고 있었다.

“왜 참아요? 제발 그만 참아요.”

호준이 정말 안 참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지훈은 태연했다. 지훈의 거침없는 손은 호준의 허리를 지나 가슴팍으로 올라갔다. 방금 운동하고 와서 그런지 호준의 가슴이 어제보다 더 빵빵하게 느껴졌다. 지훈은 호준의 가슴과 딱딱해진 유두를 마음껏 주무르며 속삭였다.

“난 정말 속물이에요.”

“…….”

“사무관님하고 섹스하는 거 너무 좋아. 사실 섹스하려고 사귀자고 했어요.”

지훈은 호준의 후드 티를 가슴팍까지 걷어 올리더니 그 아래에 드러난 유두를 대놓고 혀로 핥았다. 딱딱해진 유두에 닿는 말랑말랑한 혀의 돌기의 감촉이 야릇했다. 다른 쪽 가슴은 지훈이 손으로 야무지게 주무르고 있었다. 호준은 아직 바지 아래에 있는 자신의 성기를 지훈의 허벅지에 비벼 대며 얕게 신음했다.

“나도 지훈 씨랑 하루 종일 섹스만 하고 싶어요.”

호준의 말에 지훈이 혀를 잠깐 떼고 배시시 웃었다. 콧바람이 호준이 가슴에 닿았다.

“그거 오늘 계획이에요?”

당돌한 지훈의 말에 호준은 마치 대답이라도 하는 듯 지훈의 턱을 들어 입을 맞췄다. 그게 오늘 계획이긴 한데, 지훈의 체력이 관건이었다. 어제 지훈이 자기 피곤하다며 중간에 다 그만두고 자 버린 건 호준의 입장에서는 조금 충격이었다. 중간에 지훈에게 야식을 먹이지 않은 자기 탓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오늘은 밥 잘 먹이고 원 없이 계속 하는 게 계획이었다.

지훈은 호준이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자극적이었다. 자신이 자제력이 꽤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지훈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정호준의 점잖은 인생에서 사귀기도 전에 섹스부터 한 건 지훈이 처음이었으니까. 지훈을 보고 있으면 키스하고 몸을 맞대고 안으로 파고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참기 어려웠다.

간밤에 자신이 입혔던 지훈의 속옷을 도로 벗기며 호준은 생각했다. 어제 뭣도 모를 때 데이트 흉내라도 내길 다행이었다고. 당분간 그런 건전한 데이트는 호준에게도 무리였다. 어젯밤 침대에서의 반응을 보면, 지훈이 원래 헤테로였다는 걸 호준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우루과이에서는 처음이라서 지훈은 나름대로 긴장했던 거였다. 이제 좀 적응이 되었는지, 이제 지훈은 호준을 아주 갖고 놀았다. 자기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지훈 씨, 왜 이렇게 잘해요.”

“거짓말. 난 처음이잖아요. 사무관님이 더 잘하면서!”

“내가 잘한다고요? 지훈 씨 옷 벗기면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어제도 뭘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호준이 조급한 투로 말하며 무릎을 꿇었다. 여전히 책상에 걸터앉은 지훈이 반쯤 선 성기를 드러내 놓고 있었다. 호준은 그런 지훈의 다리를 벌리고는 작정하고 파고들었다. 사타구니 안쪽의 연약한 피부에 진득하게 키스했다. 옷을 입으면 어차피 안 보일 곳이라, 일부러 빨아들일 듯이 키스하며 살짝 깨물었다. 호준의 입술이 지나간 부분이 붉게 물들었다.

“흐으응.”

다리를 호준의 어깨에 걸친 채로, 몸을 살짝 뒤로 젖히고 한쪽 팔을 책상에 기댄 채 지훈이 신음했다. 자신에게 흔적을 남기는 호준을 내버려 뒀다. 신경이 잔뜩 몰린 예민한 곳이 강한 자극으로 짓이겨지는 기분이 사뭇 좋았다. 호준은 일부러 성기 쪽은 손도 안 대고 있었지만, 지훈의 성기는 주변부에서 오는 자극 때문에, 혹은 앞으로의 기대감 때문에 피가 몰려 딱딱해졌다.

호준의 혀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더니 지훈의 고환을 머금었다.

“헉! 거긴 안 돼!”

지훈이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예민하고 소중한 자신의 불알 두 짝이 타인의 따끈한 입안에서 혓바닥에 희롱당했다. 고환이 야하게 굴려지는 기분은 짜릿한 동시에 불안했다. 물론 호준이 자신의 고환을 콱 깨물어 버릴 리는 없었지만, 가능성 있는 일에 대한 걱정이 엄습해 왔다. 호준의 혀가 살짝 고환을 눌러 대자 더 불안했다. 지훈이 원초적으로 긴장하자 호준이 피식 웃었다. 그 바람에 콧바람이 지훈의 허벅지에 닿았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호준이 계속 웃으면서 입술을 떼어 냈다. 지훈은 반응이 너무 좋았다. 반응을 좀 더 끌어내고 싶었다. 이미 단단하게 서 있던 지훈의 귀두 끝을 입안에 대뜸 머금었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지훈의 볼이 새빨개졌다.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토했다.

매끈하게 모습을 드러낸 귀두 끝에 호준의 뜨끈하고 축축한 혀가 바로 닿았다. 좁고 부드러운 요도구를 혀끝으로 간질이면서 귀두와 기둥의 경계 부분도 핥아 댔다. 신경이 잔뜩 몰린 곳에서 강렬한 자극이 전해졌다.

“아흑!”

강한 자극에 지훈이 저도 모르게 허리를 젖혔다. 호준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호준은 그런 지훈의 다리를 굳이 활짝 벌렸다. 새하얀 허벅지가 울긋불긋해져 있었다.

지훈은 더 이상 부끄러움에 다리를 오므리거나 하진 않았다. 호준은 지훈의 허벅지 안쪽과 엉덩이를 달래듯이 다정하게 쓰다듬으면서, 지훈의 성기를 완전히 입에 머금었다. 그러고는 기둥뿌리부터 귀두 끝까지 부드럽게 빨아 올렸다. 성기에 압박감과 자극이 느껴지자 지훈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매끈했던 기둥이 금세 축축하게 젖어 미끈거렸다.

“아아아!”

지훈이 신음을 흘려 댔다. 호준은 지훈의 성기를 입안에 넣고 기둥부터 꼼꼼하게 핥아 올라갔다. 매끈한 입안의 점막이 성기에 닿자 지훈은 흐느끼면서 허리를 들썩였다. 호준의 입안은 따끈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축축하고 음습했다. 호준이 자신의 성기를 빨아올릴 때마다 지훈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더 빠르게 쑤셔 넣고 싶은 거친 욕망도 치밀었다.

저도 모르게 허리를 쳐올리다가 지훈은 움찔했다. 내키는 대로 움직였다간 상대가 힘들 거라는 생각 때문에 간신히 참고 있었다. 하지만 호준은 외려 지훈의 그런 행위를 유도하듯 일부러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성기를 머금으며 빠르게 움직였다. 입 안쪽 피부는 감촉이 달라 귀두 끝에 마찰이 일었다. 더 자극되었다.

“아아앗! 아, 미칠 거 같아…….”

지훈은 자기도 모르게 호준의 머리카락을 붙잡고는 허리를 들썩였다. 호준은 지훈이 입안에서 성기를 못 빼내게 팔로 그런 지훈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지훈이 허리를 들썩이며 호준의 목구멍 안으로 성기를 쳐올렸다.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지훈의 신음이 헐떡임으로 바뀌었다. 발끝과 엉덩이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이대로 가다간 멈출 수 없다는 걸 지훈은 알고 있었다. 너무 위험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지금 빼내야 했지만 빼낼 수가 없었다. 호준이 지훈의 허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꽉 붙잡고 있었다.

“아, 제발요. 저 진짜 쌀 거 같…….”

지훈은 호준과 잠깐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호준은 붙잡은 허리를 빼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훈은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야속한 허리는 쾌감을 좇아 계속 움직였다. 축축하고 부드러운 입안의 감촉이 너무 좋아서 영원히 그 안에서 성기를 비벼 대고만 싶었다.

차마 호준이 자신의 성기를 한입 가득 물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지훈은 그만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성기 끝부터 시작해서 온몸을 덮쳐 온 쾌감에 머릿속이 펑 터졌다.

“아아앗!”

분명 사정의 오르가슴을 느꼈는데, 성기는 계속 호준의 입안에 있었다. 계속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몸은 아직 여운에 젖어 가쁘게 헐떡였다. 뒤늦게 정신이 든 지훈이 눈을 뜨고 호준을 내려다보았다.

“사무관님. 미안해요…….”

호준은 지훈의 정액을 그대로 삼킨 모양이었다. 지훈은 수치감에 얼굴을 가렸다.

“참았어야 했는데…….”

“끝까지 가는 모습 보고 싶어서요.”

호준이 몸을 일으켜 지훈을 끌어안고 토닥였다. 지훈은 쪽팔린다며 그렇게 만든 당사자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었다. 일부러 단단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일부러 못 빼게 하다니……. 그리고 그걸 왜 먹느냐고요! 뱉어야지!”

지훈이 호준의 허리를 긴 다리로 감싸더니 발로 호준의 엉덩이를 쳐 댔다. 장난인지 작정하고 때리는 건지 모르겠는데, 맞부딪치는 엉덩이뼈가 은근히 아팠다. 호준은 지훈을 진정시키려고 어깨를 토닥였다.

“뱉으면 더 비려서 삼키는 게 나아요.”

그 와중에 안 비리다는 말은 예의로라도 안 하는 호준이었다. 살면서 자기 건 물론이고 남의 정액도 먹어 볼 일이 없었던 지훈은 쪽팔려 죽을 것 같았다. 정액이 원래 맛없다는 말은 들었는데 호준이 비리다고 하니까 더 민망했다. 괜히 억울했다. 다음엔 저 인간한테 펠라티오 한번 해 주고 말겠다며, 지훈은 쓸데없는 결심을 했다.

“애초에 비린 걸 왜 먹느냐고요!”

퍽! 지훈은 이번엔 호준의 어깨를 때렸다. 실컷 펠라티오 해 주고는 두들겨 맞는 호준이었다.

“지훈이 건데 뭐 어때.”

호준은 지훈의 티셔츠를 마저 벗기면서 귓가에다 속삭였다. 가만 보니 또 반말이었다. 짐승 접신이다. 호준도 갈수록 반말 타이밍이 빨라졌다. 먼저 사정하느라 제정신이 돌아온 지훈이 은근히 기대감에 부풀었다.

솔직히 정호준의 입에서 지훈이라고 불리면 좋았다. 평소에는 점잖게 김 대리나 지훈 씨라고만 부르니까. 섹스할 때만 편하게 부르니까 오히려 야하게 들렸다. 간밤에도 반쯤 미쳐 가지고 지훈아, 지훈아, 하고 귓가에다 이름을 속삭이면서 엄청나게 박아 댔으니까. 헐떡이던 호준의 숨소리까지 야했었다.

잠깐 생각했는데도 다시 아래가 뻐근해졌다. 방금 사정한 게 무색할 정도였다. 문제는 이번엔 뒤쪽도 움찔거렸다는 점이었다. 지훈은 자신이 뒤쪽의 자극에 익숙해져 간다는 걸 깨달았다. 호준을 통해서 알게 된 그 쾌감은 무척 좋았기 때문에, 그 사실이 기분 나쁘진 않았다.

“지훈이 사정할 때 표정 모르지? 진짜 개꼴려. 나도 쌀 뻔했어.”

이어지는 호준의 말에 지훈도 개꼴릴 것 같았다. 호준은 흥분해서 필터링이 안 되는지 맨정신에는 절대로 내뱉지 않을 단어들을 쏟아 냈다. 지훈은 환장하게 좋았다. 평소에도 호준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내 표정이 어떤데요?”

지훈의 질문에, 호준은 지훈의 말간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방금 전 지훈의 표정을 다시 떠올리는 듯했다.

“진짜 야해.”

“꼴려요? 막 흥분돼? 막 나한테 박고 싶고 그래요?”

지훈은 반바지 아래에서 이미 텐트를 잔뜩 친 호준의 성기를 슬쩍 만졌다. 완전히 딴딴해져 있었다. 지훈이 바지 위로 쓰다듬으니까 호준이 또 거친 숨을 내뱉었다. 불쑥 튀어나온 부분의 끝이 축축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지훈은 호준의 반바지와 속옷을 냉큼 벗겼다.

성기 부분에 옷이 잠깐 걸렸지만, 곧 굵고 단단한 호준의 성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혈관이 불거질 정도로 잔뜩 발기된 채였다. 간밤의 기억이 화르륵 떠올랐다. 지훈은 그 크고 굵은 성기를 손에 쥐고 쓰다듬었다. 아직 젖지 않고 발기만 한 성기 표면은 울퉁불퉁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응. 빨리 지훈이한테 박고 싶어.”

호준이 중얼거리면서 지훈의 허리를 붙잡았다. 고개를 숙이더니 귀에 숨을 불어넣었다. 너무 간지럽고 야릇해서 지훈이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내 거 만져 줘.”

귓바퀴 바로 옆에서 흘러 들어오는 낮은 목소리가 너무 야했다. 지훈은 호준의 성기를 양손으로 꽉 붙잡고 기둥을 부드럽게 훑었다. 아아. 호준이 기분 좋은지 야한 숨을 지훈의 귀에 뱉었다. 지훈은 다시 허리를 호준에게 바짝 붙였다.

호준은 지훈의 귓바퀴를 잘근잘근 씹더니, 혀를 내밀어 귓바퀴부터 귓구멍까지 핥아 댔다. 야한 혀가 살갗에 마찰하며 흘러나오는 은밀한 소리가 고막까지 바로 닿았다. 지훈이 호준의 성기를 강하게 자극할 때마다 호준의 거친 숨소리도 흘러 들어왔다.

지훈은 찌릿한 기분이 들었다. 귓가에 바로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 야했다. 지훈은 간지러움을 참다못해 호준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호준의 살갗에서는 익숙한 보디 샴푸 냄새가 났다. 운동 후 샤워하고 돌아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훈은 코를 단단한 가슴팍에 파묻고 킁킁거렸다. 보디 샴푸 향 속에서 호준의 살 내음이 느껴졌다. 별것도 아닌 이 살 냄새가 너무 좋았다. 계속 몸을 비비고 싶어졌다. 지훈은 입을 맞추고 가슴팍을 쪽쪽 빨아 댔다.

“하아.”

호준이 지훈의 귀를 자극할 때마다 지훈이 호준의 가슴팍에 신음을 내뱉었다. 가슴에 지훈의 숨결이 닿을 때마다 호준의 심장이 세차게 뛰고 몸이 뜨거워졌다. 속에서 꽉 차오르는 충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훈을 자기 품 안에 더 가두고 싶었다. 아, 정말 못 참겠다.

“지훈아. 잠깐만.”

호준은 지훈을 잠시 떼어 냈다. 그대로 손만 뻗어 책상 서랍에서 젤과 콘돔을 꺼내 들었다. 그걸 본 지훈이 놀랐다.

“콘돔이 왜 거기서 나와요? 젤까지 있어요?”

“왜?”

“여기 서재잖아요!”

“서재에서 섹스하려면 있어야지.”

호준이 태연하게 말하며 젤을 짜서는 손바닥으로 비벼 데웠다. 지훈은 어이가 없었다. 콘돔을 미리 넣어 놨다는 건데, 그럼 애초에 서재에서 할 계획이 있었다는 건가? 욕구를 참으려고 운동 갔다 온 사람치고 너무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서재 말고 또 어디서 할 계획인데요?”

“꼴리는 데에서.”

대답하는 거 보니 콘돔을 집 안 구석구석 여기저기 다 쑤셔 넣어 둔 모양이었다. 어제는 화장실에서도 튀어나오던데. 대체 어디에 또 넣어 뒀을까? 다음엔 어디서 섹스할 셈이지? 아까 호준이 공간 활용을 못한다는 말은 취소다. 섹스만큼은 모든 공간을 활용할 기세였다.

지훈이 콘돔을 숨겨 둔 위치를 의심하는 사이, 아랫도리 사정이 급했던 호준은 데워진 젤을 지훈의 아래쪽에 정성스럽게 바르면서 입구를 부드럽게 녹였다. 어젯밤에 충분히 풀어 둔 터라, 처음처럼 뻑뻑하진 않았다. 그래도 다시 제대로 풀지 않으면 지훈이 힘들었다. 호준은 끈적끈적한 젤로 뒤덮인 지훈의 회음부를 부드럽게 문지르며 마사지했다. 지훈이 비음 섞인 신음을 흘려 댔다.

“흐응.”

회음부의 자극에 지훈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책상 위로 지훈의 다리를 양쪽으로 활짝 벌어지게 한 채, 호준은 회음부를 문지르던 손가락을 부드럽게 입구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아!”

지훈이 얕은 신음을 뱉었다. 호준은 그런 지훈의 목덜미를 붙잡고 깊게 키스했다. 다른 손으로는 입구를 계속 자극했다. 손가락을 살짝 구부려 입구 주변의 예민한 내벽을 문질러 대자 지훈이 다리와 허리를 움찔거렸다. 숨이 점점 뜨거워지는 걸 보니 흥분하는 듯했다. 호준은 손가락 하나를 더 집어넣었다.

“으으, 빨리요…….”

손가락 두 개 정도는 이제 괜찮은 모양이었다. 별달리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었다. 지훈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생각보다 적응이 더 빠른데……. 어쩌면 지훈은 이제까지 성 지향성을 깨닫지 못했던 바텀이었을지도 모른다. 속으로 의심하면서 호준은 지훈의 녹진한 내벽을 자극했다. 손가락을 더 깊숙이 찔러 넣어 전립선의 주변부만 꾹꾹 눌렀다. 일부러 안달 나게 했더니 지훈이 바로 반응을 했다.

“아아, 빨리. 그냥 빨리 해 줘요.”

“빨리, 뭘 해 줘?”

“씨발, 빨리 넣어 줘요.”

지훈이 호준의 성기를 꽉 붙잡으며 거의 협박하듯 매달렸다. 당장 삽입 안 하면 손에 쥐고 있는 성기를 뽑아 버릴 기세였다. 지훈의 딴에는 살살 잡은 건데도 완전히 사로잡힌 기분이었다. 호준은 자신의 성기에서 지훈의 손가락을 일부러 천천히 떼어 냈다. 길고 단단한 지훈의 손가락을 대신 자신의 허리에 감았다. 기대감이 차오르는지 지훈의 콧김도 거칠어졌다.

호준은 자신의 성기에 콘돔을 씌우고는 그대로 귀두 끝을 지훈의 입구에 맞추었다. 축축하게 젖은 지훈의 입구가 개폐하면서 벌름거렸다. 호준은 저 안에 그대로 집어삼켜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지훈의 입구 안으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흣.”

신음을 뱉은 건 지훈이 아니라 호준이었다. 끝만 살짝 넣었는데도 눈앞이 아찔해졌다.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하게 지훈의 입구가 자신을 빨아들였다. 급한 마음에 한 번에 뿌리째로 다 쑤셔 넣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어제 그렇게 드나들었던 입구이지만 그래도 처음은 조심스러워야 했다. 차오르는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호준은 자신의 성기를 좀 더 밀어 넣었다. 압박감이 느껴졌다. 더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호준은 지훈의 표정을 잠깐 살폈다. 삽입에 대한 흥분으로 이미 눈이 살짝 풀려 있었다. 저 얼굴만 봐도 흥분해서 쌀 것 같았다. 지훈은 알고 있을까? 자신이 얼마나 야한지.

호준과 눈이 마주치자 지훈은 발가락으로 호준의 엉덩이를 툭툭 차면서 삽입을 독촉했다. 호준은 지훈이 시키는 대로 뿌리 끝까지 천천히 밀어 넣었다. 지훈의 부드러운 내벽이 호준의 성기를 꽉 죄었다. 그 자체로 자극이었다. 호준은 갑작스럽게 고조되는 흥분감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아앗…….”

호준의 성기가 주는 부피감 때문에 자극점이 눌리면서 쾌감이 차올랐다. 지훈은 허리를 젖히면서 신음했다. 지훈은 뒤쪽이 자극될 때 특유의 묘한 신음을 흘렸다. 속에서 터져 나오는 거친 숨소리에 가까웠다. 어제는 야하다는 생각만 했는데, 오늘도 뱉는 걸 보니 습관일지도 몰랐다. 앞으로 많이 하다 보면 알게 될 테다. 호준은 지훈의 신음을 더 듣고 싶어서, 성기를 서서히 반쯤 빼냈다가 빠르게 안쪽으로 쳐올렸다.

“흐으윽, 흐윽!”

지훈이 숨넘어갈 듯 허리를 젖혔다. 호준은 고개를 숙여 지훈을 끌어안고 키스했다. 삽입이 더 깊어졌다. 지훈은 안에서 차오르는 압박감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호준은 그런 지훈을 토닥이며 다시 성기를 빼내었다가 세게 쳐올렸다. 안쪽 깊숙한 곳까지 꾹 찔러 댔다.

“아! 아!”

지훈이 발끝에 힘을 주며 진저리를 쳤다. 호준은 허리를 움직이며 지훈의 안에 파고 들어가는 속도를 조금씩 올렸다. 지훈이 특히 예민하게 느끼는 지점을 지그시 눌러 가며 마찰을 가했다. 두 사람의 살갗이 규칙적으로 빠르게 부딪쳤다. 야한 신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반복되는 움직임에 몸에는 열이 차오르고 주변의 공기는 더워졌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서로의 가장 은밀하고 예민한 지점을 자극해 가며 쾌락을 향해 나아갔다.

“아! 아! 아……. 너무 좋아요.”

지훈이 흔들리는 몸을 꽉 붙잡으며 호준에게 속삭였다.

“지훈아, 지훈아.”

호준도 너무 좋았다. 나지막하게 이름을 부르면 자신을 돌아보는 지훈의 눈빛이 좋았다. 자신의 아래에서 지훈이 흐느끼며 헐떡이는 것도 좋았고, 자신에게 매달려서 엉엉 우는 것도 좋았다. 이미 삽입한 상태였지만 호준은 더 깊숙이 박아 넣고 싶었다. 부드럽고 따듯한 지훈의 품 안에 영원히 안겨 있고 싶었다. 더 깊숙이 파고들면, 그래서 완전히 삼켜지면 지훈을 완전히 차지할 수 있게 될까? 지훈이 오로지 자신으로만 가득 차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지훈을 아무 데도 내보이고 싶지 않고 아무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자신의 품 안에만 가둬 두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그냥 삼켜 버리고 싶었다…….

호준이 지훈을 끌어안은 채로 거칠게 허리를 움직이는 통에, 지훈이 흐느끼면서 묘한 신음을 뱉어 냈다.

“아흐으윽! 아아!”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너무 배려 없이 성기를 쑤셔 대고만 있었다.

호준은 미안함을 느끼며 그런 지훈에게 키스했다.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독점욕을 자제하려 애를 썼다. 평소엔 자제하고 있어서 절대 생각하려 들지도 않는 날것의 욕망이, 섹스 중에는 긴장이 풀리고 본능이 폭발하면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곤 했다. 호준은 위험한 생각을 멈추려고 이를 악물었다.

“미안해, 지훈아…….”

호준이 속삭였는데 지훈은 그 와중에 오히려 어리둥절해했다.

“뭐가요? 하아……. 진짜 너무 좋은데, 아아! 아까처럼 계속 세게 박아 줘요…….”

호준이 중간에 정신 줄을 놓아 버리는 그 순간을 지훈은 오히려 좋아했다. 호준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이었는데, 그 점이 더 지훈을 자극한다는 걸 호준은 아직 몰랐다.

이미 지훈의 머리칼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호준이 흘린 땀방울도 서로의 몸 위에 떨어져 있었다. 쾌락의 절정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호준은 지금의 이 감각을 영원히 즐기고 싶었다. 서두르고 싶진 않았지만, 간밤에도 계속 달렸던 지훈의 체력이 서서히 바닥나는 듯했다. 지훈의 한쪽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는 살짝 비대칭의 각도로 깊숙하게 박아 대면서, 지훈의 성기를 자신의 손으로 붙잡고 훑었다.

“아악! 하, 하지 마요. 나 진짜……. 아아!”

이미 호준이 손대기 전부터 말간 액을 질질 흘려 대던 지훈의 성기였다. 호준이 귀두 끝을 문지르며 약간의 자극을 더하자, 이미 뒤에서 쑤셔지던 자극과 더해져서 금방 임계점에 달했다. 호준이 허리를 세게 쳐올리며 찌르자, 그와 동시에 지훈의 성기에서 정액이 튀어 올랐다.

“헉……. 아아아!”

갑자기 찾아온 강한 자극에 지훈이 자지러지며 뒤로 넘어가려 했다. 호준은 그런 지훈의 등을 받치면서 마지막 스퍼트를 올렸다. 잔뜩 자극받은 지훈의 내벽이 호준의 성기를 콱 조였다. 삽입된 성기가 아플 정도였다. 호준도 더는 참기 힘들어서 이를 악물어야 했다.

이 자극을 더 즐기고 싶어서 최대한 사정을 늦추려 했지만, 호준의 허리 짓은 더 빨라졌다. 살짝 눈꺼풀을 내리깐 채로, 먼저 사정의 여운을 즐기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지훈의 얼굴이 너무 야했다. 지훈이 살짝 미소 지으며 자신을 향해 팔을 뻗는 순간 호준의 시야가 점멸했다. 지훈의 품에 안기면서 호준도 그대로 지훈의 안에 사정했다.

“하아.”

호준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강렬한 쾌감이 지나간 빈자리를 심리적 만족감이 천천히 채워 나갔다. 자신을 안고 있는 지훈의 땀에 젖은 몸이 좋았다. 이대로 계속 안겨 있고 싶었다. 호준은 지훈의 몸 안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 * *

“저기요, 사무관님.”

이쯤 되면 적당히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한 지훈이 호준의 등을 다정하게 토닥이며 속삭였다.

“네. 지훈 씨.”

호준의 되돌아온 이성과 함께 말투도 평소대로 돌아왔다. 호준의 그런 간극이 재밌어서 지훈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누워 있기엔 책상이 좀 좁거든요. 저 이제 허리 펴야 할 거 같은데.”

결국 자기가 일어나야 하니까 비키라는 뜻이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든 호준이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여태 삽입되어 있던 성기를 빼내고 간단하게 뒤처리를 했다. 완전히 기운이 빠진 지훈을 책상에서 내려 주었다. 지훈이 혼자 못 내려올 높이는 아니었지만, 또 다리에 힘이 풀렸다고 했다.

“업어 줄까요?”

우루과이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호준이 물었는데 지훈은 정색하며 사양했다.

“저 걸을 수는 있는데요…… 가 아니구나. 화장실까지 부축만 좀 해 주면 안 돼요?”

혼자 걸어 보려던 지훈은 안 되겠던지 호준에게 기대어서는 어기적거리며 걸어갔다. 아침부터 후들거렸던 허벅지에 또 힘이 빠졌다. 섹스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근육에 힘을 바짝 주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섹스하다 골병 나게 생겼다고 내일 당장 이 동네 헬스장 좀 알려 달라며 지훈이 투덜거렸다.

“지훈 씨 원래 운동 잘하는 편 아니에요? 육상도 하고 서핑도 오래 했다면서요.”

호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 뛰는 거 좋아하지 힘 많이 쓰는 건 싫어해요. 누가 웨이트 훈련시키면 도망가고 그랬는데. 서핑도 엄청 초급이거든요. 그런데 섹스는 때려치울 수가 없잖아요…….”

섹스를 열심히 하겠다며 난생처음 헬스장에 등록할 의지를 다졌으니 지훈에게는 나름대로 큰 결심이었다.

“지훈 씨 남자만 처음이지 섹스는 처음 아니잖아요.”

“하던 대로 했으면 저도 이 지경이 안 됐겠죠. 살면서 이렇게까지 많이 하는 건 솔직히 사무관님 만나고 처음이거든요…….”

지훈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자기가 먼저 하자고 보채던 것치고는 상당히 의외였다. 호준은 그냥 지훈이 보기보다 성욕이 많은 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설마 이게 다 나 때문인가? 호준은 갑자기 가슴이 벅차올랐다.

“저랑만 많이 한다고요?”

“그으러게요…….”

지훈이 민망한지 말끝을 흐렸다. 호준은 민망해하는 지훈을 욕조 안에 앉힌 다음 따듯한 물을 받았다. 아까 사 왔던 식료품들 사이에서 초코바를 꺼내서는 포장을 다 깐 후에 지훈의 입에 물려 주었다. 호준이 운동하기 전에 먹으려고 샀던 거였는데, 때마침 1+1 행사 중이라 호준이 하나 먹고도 하나가 남아 있었다. 지훈은 배가 고팠던지 군말 없이 받아먹었다.

목욕을 하려 해도 지훈은 일단 에너지가 좀 필요한 상황이었다. 간밤에 야식도 못 먹고 아침도 걸렀는데 단백질도 열심히 토해 내고 유산소 운동까지 한바탕했으니 피곤할 만했다. 밥 먹기 전부터 한바탕할 줄 알았으면 미리 뭐라도 먹일걸. 호준은 조금 후회했다.

체격이 큰 성인 남성 둘이 들어가기에 일반 가정용 욕조는 좁았다. 호준은 간편한 옷을 걸치고서는 그냥 욕조 밖에 의자를 가져와서 앉았다. 그냥 혼자 씻게 놔둬도 되지만, 얌전히 앉아서 초코바를 야무지게 먹어 치우는 지훈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냥 옆에 있었다.

지훈이 평소에 먹는 양을 생각하면 저걸로는 턱도 없을 테니 씻고 나오면 뭐라도 푸짐하게 먹여야 했다. 뭘 해 먹여야 할까, 재료와 조리 도구를 급하게 사 오긴 했다. 하지만 원래 해 주려던 걸로는 지훈의 성에 안 찰 듯했다. 고기를 먹이려면 배달 음식을 시켜야 하나…….

“사무관님은 원래 이렇게 섹스 많이 해요? 원래 더 하는데 저질 체력의 남친을 만나서 이번엔 실컷 못 하는 거 아니에요?”

지훈한테 밥 먹일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던 호준과 달리, 정작 당사자는 혼자 엉뚱한 생각 중이었다. 지훈이 묻는 내용이 어마어마해서 호준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그리고 어차피 지훈 씨랑 같이 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호준에게 있어서 섹스는 원래 연애 관계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에 불과했다. 물론 지금은 주객이 전도된 수준이었다. 헤테로였던 지훈에게는 육체적 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어서 더 놀랐다. 하지만 호준은 지금 상황이 좋았다. 솔직히 지금도 얼른 밥 먹이고 나서 또 하고 싶었다. 자기만 애가 타는 게 아니라 지훈도 같이 하고 싶어 할 게 분명하다는 점이 좋았다.

“아, 그래요? 다행이다…….”

지훈은 기분이 좋은지 욕조에서 물장구를 쳤다.

“사무관님은 원래 마성의 게이, 씹탑, 올탑 뭐 그런 건 줄 알았어요. 대물에 정력도 좋아서 절대로 잊지 못할 밤을 선사하는 어쩌고…….”

“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어요?”

지훈의 말에 호준의 표정이 굳었다.

“인터넷 찾아보니까 다 나오던데요?”

지훈이 하도 태연해서, 혼자 정색한 호준이 민망해질 정도였다. 하긴, 지훈도 알 것 다 아는 성인인데. 그냥 게이가 아니었을 뿐이다. 하지만 호준은 괜히 초조해졌다. 행여 몰라도 되는 것까지 알아 버릴까 봐.

“그런 걸 왜 찾아봐요?”

“애인은 게이인데 난 처음이니까 좀 잘해 보려고 이것저것 찾아봤어요. 보니까 관장도 해야 한다는데……. 아, 완전 까먹었다. 미안해요. 다음번엔…….”

“아니, 됐어요. 그건 지훈 씨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상관 안 해요.”

호준이 평소 습관대로 정색하며 딱 잘라 말했다. 빈말은 안 하는 성격이니,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호준은 정말로 상관 안 할 것이다. 사실 이런저런 준비에 좀 겁이 났었던 지훈은 내심 안도했다.

“그리고 섹스에 관해서라면 지훈 씨가 신경 쓸 건 아무것도 없어요. 궁금한 거 있으면 그냥 나한테 물어봐요. 지금도 저는 많이 미안하거든요.”

“이 시점에서 갑자기 뭐가 미안해요?”

지훈이 놀라며 물었다.

“지훈 씨가 평생 몰라도 되는 걸 알게 해 버렸다는 죄책감이라고 할게요.”

“하긴. 사무관님이 저한테 미안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니까.”

초코바를 먹은 덕에 기력이 슬슬 돌아오는지, 지훈은 욕조의 따끈한 물로 얼굴을 씻으면서 첨벙거렸다. 그러느라 호준에게도 물이 조금 튀었는데 호준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근데 평생 모를 뻔했던 재미를 알아 버린 건 좋아요. 엄청 좋단 말이에요. 근데 그걸 사무관님이 그걸 미안해하면 저도 민망할 것 같아요. 좋아서 같이 한 건데.”

지훈이 욕조 안에서 대뜸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감동을 받아서 손을 잡아 달라는 의미일 리는 없었다. 호준은 욕조 밖에 있던 샴푸를 갖다 주려다가, 그냥 자기 손에 직접 짜서 거품을 냈다. 지훈이 잘됐다며 대뜸 물에 젖은 머리를 호준에게 내밀었다.

한국인이라면 예의상으로 한 번은 거절할 법한데, 지훈은 도무지 상대방의 호의를 사양하는 법이 없었다. 호의가 자기 마음에 들면 넙죽 받았다. 호준은 지훈의 이런 뻔뻔함이 좋았다. 상대가 너무 고마워하거나 지나치게 사양하면 잘해 주는 맛도 없는 법이니까.

호준은 지훈의 눈에 샴푸 거품이 들어가지 않게 신경 쓰면서 꼼꼼하게 머리를 감겨 주었다.

“그럼 그건 미안해하지 않을게요.”

호준도 조금 뻔뻔해지기로 했다. 사실 호준은 그럴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암만 그래도 원래 뻔뻔한 지훈을 따라가긴 어려웠다.

“대신에 나한테 다른 거나 미안해하세요. 나한테 일 많이 시킨 거, 전화 존나게 한 거, 시도 때도 없이 출장 부른 거, 여태 쪼잔하고 치졸하게 굴었던 거, 우루과이 출장 갔다고 뻥친 거, 콘돔 미리미리 안 사 뒀던 거…….”

지훈이 손가락으로 일일이 꼽아 가며 과거의 업보를 읊어 대자 호준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죄목이 점점 늘어나는 듯했다.

“지금 머리 감겨 주는 걸로는 좀 안 되나요?”

“그럴 거면 몸도 씻겨 줘요.”

“그럼 과연 끝까지 씻을 수 있을까요?”

호준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훈이 호준의 아랫도리를 흘겨보더니 낄낄거렸다. 호준이 씻겨 줬다간 또 일 치르게 생겼다.

“초코바 하나 더 없어요? 하나 더 먹으면 가능할 거 같은데.”

“아쉽지만 그냥 빨리 씻고 밥부터 제대로 먹읍시다. 나도 이제 배고파요.”

실은 지훈한테 밥을 먹인 후에 체력을 회복시켜 이런저런 야한 짓을 본격적으로 해 보려는 호준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다행히 지훈은 호준도 배고프다는 말에 순순히 납득했다.

“밥은 뭐 먹을 건데요?”

“뭐라도 시켜 먹을래요? 원래는 간단하게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벌써 점심때라서…….”

“주방에 아무것도 없던데 뭐 만들 수는 있어요?”

“안 그래도 프라이팬 사 왔어요. 혹시 볶음밥 싫어해요?”

주방에 아무것도 없던 걸 보면 밖에서 사 먹기만 한 것 같았는데, 그저 김지훈 밥해 먹이려고 아침부터 프라이팬까지 샀다니. 정호준이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지훈은 그 사실을 깨닫고 키득거리며 웃었다.

“닭 가슴살 볶음밥이면 그냥 딴 거 시켜 먹을래요.”

냉동실에 잔뜩 들어 있던 저염분 냉동 닭 가슴살을 떠올린 지훈이 진저리를 쳤다. 다행히 호준은 그 정도의 센스는 있었다.

“그럴 것 같아서 햄 사 왔어요.”

“햄! 그럼 나 사무관님이 해 준 밥 먹을래요!”

“그럼 마저 씻고 나와요. 만들고 있을 테니까.”

호준이 손에 묻어 있던 거품을 덜어 내어 장난치듯 지훈의 콧잔등과 볼에 한 번씩 묻히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은 둘이지만 못해도 5, 6인분은 만들어야 할 테니 서둘러야 했다. 호준이 돌아서려는데 지훈이 젖은 손으로 호준의 손목을 붙잡았다. 얼굴에 거품이 묻은 채로 올려다보는 통에 꽤나 귀여웠다.

“사무관님. 혹시 요리 처음 해 보는 건 아니죠? 프라이팬 오늘 샀다면서요.”

“저 혼자 밥해 먹은 지 15년도 넘었어요. 먹을 만할 거예요.”

하긴 호준은 자기가 요리를 못하면 애초에 시도도 안 하고 사다 줄 위인이었다. 잘하면 또 잘한다고 자랑했을 텐데 그렇지도 않은 걸 보면 그냥 진짜 먹을 만한 수준인 모양이었다. 먹다 뱉을 정도만 아니면 지훈은 상관없었다. 호준이 해 주는 요리를 한번 먹어 보고 싶었다.

사실 지훈은 해 먹는 걸 귀찮아해서 그렇지 요리를 꽤 잘하는 편이었지만, 당분간 호준에게는 그 사실을 알릴 생각이 없었다. 왜냐, 계속 얻어먹고 싶으니까. 지훈은 호준의 뒷모습을 보면서 양 볼에 거품을 묻힌 채로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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