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6/27)

15.

호준은 지훈의 위로 타고 올라오더니 그대로 가운을 벗겼다. 몸을 기울이면서 맨살을 맞대고 입술을 맞추었다. 벌어진 지훈의 입 사이로 혀를 거칠게 밀어 넣었다. 호준은 작정하고 입안을 거칠게 빨아 문질렀다. 지훈은 숨 쉴 틈도 없어서 가끔 빈틈이 생길 때마다 가쁜 숨을 들이마셔야 했을 정도였다.

키스가 거칠어지면서 닿아 있는 몸이 다시 뜨거워졌다. 호준은 지훈의 목덜미에서 나는 샤워 코롱 향을 느끼면서 예민하고 여린 안쪽 피부를 아까보다 더 거칠게 혀로 핥아 댔다.

아아!

간지럽고 야릇한 느낌에 아찔해진 지훈이 호준의 목을 끌어안았다. 호준의 애무는 아까보다 더 거칠고 맹렬했지만 성급하진 않았다. 지훈의 모든 성감대를 꼼꼼하게 핥아 대면서 자극했다. 지훈은 호준이 대충 걸치고 있던 가운을 완전히 벗기고는 탄탄한 맨몸에 매달렸다. 호준은 지훈의 달아오른 몸 위로 뜨거운 숨을 뱉었다. 입술은 쇄골을 지나 유두를 맹렬하게 빨았다. 이로 긁기까지 하면서 쪽쪽 빨아 대자 질척이는 야한 소리가 방 안 가득히 울렸다.

“아윽, 그러다 헐겠어요!”

“괜찮아.”

싫다고 하면 안 하겠다더니 싫다는 말 빼고는 전혀 듣지 않겠다는 뜻이었나 보다. 지훈이 뭐라 하든 제 할 일을 하겠다며 호준은 반대편 유두를 더 격렬하게 빨아 댔다. 혀로 동그랗게 굴리다가 이로 살짝 깨물어 대는 통에 축축해진 유두가 단단하게 솟았다. 못 참겠던지 지훈이 호준의 머리카락을 꽉 붙잡았다. 그 악력에 호준이 더 자극받았다.

그 바람에 지훈의 다리에 호준의 딱딱한 성기가 닿았다. 호준은 일부러 지훈의 허벅지에 성기를 비벼 댔다. 요도구가 문질리자 쿠퍼액이 흘러나와 지훈의 허벅지까지 미끈거렸다.

이성을 반쯤 잃은 호준이 지훈의 배꼽 주변도 빠짐없이 빨더니 결국 사타구니 아래쪽까지 내려갔다. 가장 예민한 피부에 혀와 입술이 닿자 지훈이 놀라서 다리를 움츠렸다. 호준이 잠깐 고개를 들어 지훈을 보더니 두 팔로 다리를 그냥 벌려 버리고 그대로 얼굴을 파묻었다.

호준의 머리카락이 간질이는 데다 입술이 닿는 얇은 피부는 자극을 받아 붉게 달아올랐다. 주변부에서 오는 자극 때문에 지훈의 성기에도 피가 쏠렸다. 하지만 호준이 성기만 제외한 주변만 열심히 애무하자 지훈의 성기는 안달이 났다. 참기 어려웠던 지훈이 손을 대려고 하자 호준이 그 손을 바로 쳐 냈다.

“만지지 마.”

“왜 못 만지게 해요. 지금 미칠 거 같은데…….”

“안 돼.”

그러면서 호준은 계속 성기 주변만 핥아 댔다. 지훈이 대신 허리라도 비틀면서 어딘가에 비벼 보려고 했지만 호준은 혀끝으로 지훈의 성기 끝부분만 살짝 핥고는 손도 못 대게 했다. 지훈이 짜릿한 자극에 저도 모르게 허리를 튕겼다. 하지만 더는 없었다. 단단하게 서서는 쿠퍼액만 뚝뚝 흘리는 성기 때문에 지훈은 거의 울먹이면서 성기 쪽으로 팔을 뻗으려 했다. 호준은 지훈의 양팔을 그대로 잡아 눌렀다.

“아흑! 제발!”

“그럼 제발 만져 달라고 해 봐.”

자기가 뭔데 저러냐고, 지훈은 호준이 야속할 정도로 짜증이 났다. 하지만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볼모로 잡혀 있는 바람에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제, 제발 만져 줘요. 빨리.”

지훈의 애원에 호준이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으면서 그대로 벌어진 입으로 지훈의 성기를 머금었다. 아까처럼 손으로나 만져 줄 줄 알았더니 입으로 물어 버리는 호준이었다. 화들짝 놀란 지훈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호준이 지훈의 두 팔을 꽉 잡고 찍어 눌렀다. 호준의 끈적한 타액으로 질척이는 축축한 입이 자신의 성기를 기둥부터 빨아올리자 지훈은 저도 모르게 헐떡이면서 허리를 튕겨 댔다.

“아으읏!”

호준의 혀가 기둥과 귀두 끝을 핥아 대다가 입안에 머금고 빨아들이기를 반복했다. 호준이 계속 손도 못 대게 했기 때문에 지훈은 자기도 모르게 호준의 머리를 쥐어 잡으며 다리를 오므렸다.

“벌리고 있어.”

그러자 호준이 팔로 지훈의 다리를 강제로 벌려 버렸다. 야한 기분이 들어서 지훈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버렸다. 호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펠라티오를 계속했다.

호준은 지훈의 귀두 끝을 엄지로 살살 뭉개더니 입으로 기둥 끝부터 빨아올렸다. 지훈이 자극에 허리를 들썩이는데 호준은 그런 지훈이 꼼짝도 못 하게 몸으로 눌러 댄 후 요도구를 막았다. 싸지도 못하게 만들고는 귀두 경계 끝의 예민한 곳을 이로 살살 긁어 가면서 혀로 핥아 댔다.

지훈의 성기는 타액이 질질 흘러내려 축축하고 미끈거렸다. 지훈이 더는 못 참고 신음하면서 벌벌 떨었다. 호준이 그제야 요도구에서 손을 떼고 입으로 바로 물어 위아래로 흡입했다.

입 안쪽의 매끈한 피부까지 성기에 닿으며 쪽쪽 빨아 대자 지훈이 못 참고 허리를 들썩였다. 호준의 목구멍까지 성기가 닿을 정도로 퍽퍽 쳐올려 댔다.

“아흑, 빼 줘요. 진짜 쌀 거 같…….”

지훈이 거의 울 정도로 애원하자 호준이 빠르게 입을 떼고 손으로 지훈의 성기를 위아래로 훑어 주었다.

“아아아!”

지훈이 거친 소리를 내면서 그대로 호준의 손에 정액을 쏟아 냈다. 손을 타고 흘러 배 위로 흰 정액이 뚝뚝 떨어졌다. 호준은 그걸 보며 다시 지훈의 성기를 주물렀다. 사정 후에도 호준이 짓궂게 자극하자 잔뜩 예민해진 지훈이 대뜸 호준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만! 그만하라고!”

“아아악!”

하마터면 머리카락이 뽑힐 뻔한 호준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성기에서 겨우 손을 뗐다. 지훈도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지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혼이 나갈 정도의 펠라티오를 받아 본 적은 없었다. 지훈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호준을 쳐다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게걸스럽게 어딘가를 빨아 대던 얼굴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뻔뻔했다. 하지만 입 주변에 번들거리는 타액이 방금 전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그 체액의 주인인 지훈은 괜히 쪽팔려서 호준한테 휴지를 뽑아다 던졌다.

“사무관님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별로였어요?”

“아니요. 너무 좋아서요.”

솔직히 말하면 중간에 못 만지게 하면서 괴롭힌 것까지 좋았다. 땀이 범벅이 된 채로, 지훈은 휴지로 대충 주변을 정리하던 호준을 끌어안아 버렸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이대로라면 호준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거 하나 잘한다고 이렇게 사람이 달라 보이다니. 스스로의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아무튼 뭐든 잘하고 볼 일이다.

“머리카락 쥐어뜯긴 것치고는 좋은 평가네요.”

다시 말을 높이는 걸 보니 호준도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했다. 좋았다고 하니까 수줍게 웃는 호준을 보고 지훈은 약간 어이가 없었다.

“말해 봐요. 진짜 뭐 하던 사람이에요? 혹시…….”

“방금 머리카락 쥐어뜯긴 사람이에요.”

“짜증 나. 한 번 더 뜯겨 볼래요?”

“좀만 이따가요. 난 아직 안 끝났어요.”

호준이 지훈의 다리를 다시 벌리고 허벅지 안쪽부터 입을 맞춰 가면서 다시 열을 올렸다. 지훈은 호준이 자기 성기를 입에 무는 시점에서 이미 자기 포지션을 직감했다. 호준의 성기 사이즈를 생각하면 겁은 좀 났지만 이미 사정한 후라 굉장히 나른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될 것도 같았다.

이번엔 생전 남의 손길이 닿아 본 적 없던 회음부와 항문 쪽에 물컹한 감촉이 닿았다. 지훈이 움찔하자 호준은 손으로 지훈의 허리와 다리 쪽을 쓰다듬으면서 긴장을 풀려고 했다. 지훈은 약간은 간질거리는 감각을 느끼면서 살짝 흥분해 있었는데, 호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지훈에게 집중했다. 호준의 성기는 이제 단단해져 있었다.

호준은 지훈의 아래쪽을 한참 애무하더니 어디서 꺼내 왔는지 준비해 둔 젤을 꺼내서 바르기 시작했다. 차가운 젤이 닿자 지훈이 약간 움찔거렸지만 곧 미끈거리는 그 감촉 때문에 다시 달아올랐다.

“사무관님 되게 이것저것 준비 많이 했네요?”

“준비 안 하면 지훈 씨 큰일 나요.”

“하루 종일 같이 다녔는데 언제 산 거예요?”

“영업 비밀이에요.”

지훈이 속으로 과연 호준이 대체 언제 약국에 갔다 온 건지를 생각하는 동안 호준은 지훈의 입구 주변에 젤을 더 바르면서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마사지했다. 그러다가 핑거 돔을 끼우더니 입구 쪽에 손가락을 살짝 넣었다. 대체 저런 건 또 어디서 구하나 싶어서 호준의 내공을 감히 가늠해 보던 지훈이 아래에 닿는 낯선 감각에 움찔했다.

“힘 빼고. 옳지.”

호준이 소아과 의사가 주사 놓기 전에 애 다루듯이 지훈의 탱탱한 엉덩이를 툭툭 치며 달랬다. 지훈은 들어와선 안 될 곳에 들어오는 손가락의 느낌에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지훈이 힘을 풀자 다시 호준의 손가락이 안으로 쑥 들어오더니 부드럽게 내벽을 탐색했다.

호준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지훈의 어깨를 붙잡고 토닥이면서도 손가락을 멈추지는 않았다. 손가락은 점점 안쪽으로 들어와 부드럽게 지훈의 내벽을 문질렀다. 지훈이 가쁜 숨을 쉬면서 그 움직임을 따라가는데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왔다. 호준은 충분히 문지르면서 입구를 서서히 벌렸다.

“어…… 언제 넣어요?”

“잘 풀어야 덜 아파요.”

안 아프다는 소린 안 하는 호준이었다. 그러고도 걱정됐는지 호준은 지훈의 아래쪽을 한참을 더 질척이면서 풀었다.

그러는 사이 지훈의 성기도 약간 달아올라 반쯤 서 있었다. 호준은 더 이상은 안 되겠던지 자신의 성기에 콘돔을 씌우더니 지훈의 다리를 붙잡았다.

“못 하겠으면 바로 말해요.”

너무 아프면 지훈이 어련히 걷어찰 텐데, 염려가 많은 호준이었다.

입구 끝에 귀두의 감촉이 닿았다. 한참 애를 쓴 덕분에 부드럽게 입구가 열렸지만 호준은 조심스럽게 귀두 끝만 걸쳐 놓았다. 낯선 감촉에 지훈의 동공이 커지자 호준이 지훈의 팔을 자기 어깨에 걸치고 고개를 숙여 지훈의 볼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힘 빼고, 숨 쉬어 봐.”

시키는 대로 지훈이 긴장을 풀면서 몸에 힘을 빼는 사이 호준은 성기를 더 밀어 넣었다. 비좁고 뜨겁고 부드러운 내벽을 느끼자 호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지훈은 아래쪽이 벌어지면서 가득 차오르는 단단한 감각에 당황했다. 이게 끝이 아닐 텐데? 시작이잖아! 지금 당장 빼라고 할까?

근데 자기보다 더 긴장한 호준의 얼굴을 보니까 이제 와서 빼라고 하면 울 것 같았다. 시키면 암말 없이 빼긴 할 것 같다만 자기만 재미 본 것도 좀 미안하고 또 아직까지 버틸 만한 거 같기도 해서 지훈은 숨을 한 번 더 몰아쉬면서 긴장을 풀었다.

호준은 지훈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으면서 기둥뿌리까지 밀고 들어왔다. 아래가 벌어지는 느낌에 지훈은 저도 모르게 호준을 꽉 끌어안으면서 신음했다.

“하윽……. 아파…….”

아프다는 말에 호준이 허리를 뒤로 빼려는데 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해 봐요.”

“미안…….”

“그냥 빨리 해요.”

호준은 지금 지훈이 걱정은 되는데 동시에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 지훈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도달했다는 사실 때문에 사실 남은 제정신도 거의 휘발되고 있었다. 호준은 꽉 조이는 지훈의 내벽 때문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살짝 성기를 뺐다가 다시 밀어 넣었다. 충분히 입구를 풀어 놓고 젤도 발라 놓은 덕분에 움직임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선 꽤나 힘이 드는지 지훈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호준의 목을 끌어안은 지훈의 팔에 살짝 힘이 풀렸다. 호준이 그런 지훈의 이마를 쓰다듬으면서 허리를 살짝 쳐올렸다. 그 순간 지훈은 약간 얼떨떨한 느낌을 받았다. 아래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 사이에서 야릇한 느낌과 동시에 함께 내벽 어딘가에서 자극이 왔다. 지훈은 두 다리를 들어 올려 호준의 허리를 감쌌다.

호준이 고개를 숙여 지훈의 입술에 키스하고는 허리를 서서히 움직였다. 마찰부에서 찌걱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맨살이 부딪치는 소리와 같이 뒤섞였다. 반복되는 통증 속에서 자극도 같이 느껴졌다. 지훈은 처음 느끼는 감각에 헐떡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맞닿은 피부에서 호준의 열기가 느껴졌다. 방금 샤워를 했는데도 달큼한 살 냄새가 났다. 지훈은 호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시 귀 끝까지 열이 올랐다.

지훈과 호준이 간간이 입술 사이로 짐승 같은 신음을 내뱉었다. 귓가에 닿는 소리가 야했다.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아픔보다 자극이 더 강해지는 임계점에 다다르자 지훈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질렀다.

“아앗! 크읏!”

지훈의 허리가 움찔거리는 걸 본 호준은 결국 못 참고 빠르게 허리를 쳐올렸다. 지훈의 두 다리를 붙잡고서는 허리를 빠르게 퍽퍽 쳐 댔다. 등과 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지훈의 살갗에도 툭툭 떨어졌다. 이를 악물면서도 고통과 쾌감에 몸서리치는 지훈의 표정 때문에 호준은 거친 숨을 헐떡이며 더 격렬하게 움직였다.

지훈의 안은 뜨겁고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자극을 받을 때마다 성기를 끊을 듯이 내벽이 조여 와서 미칠 거 같았다. 최대한 오래 버티고 싶어서 사정을 이 악물고 참았지만 지훈이 자기도 모르게 흘리는 신음이 자극적이라서 참기 어려웠다.

“지훈아……. 하아…….”

호준이 잠깐 숨을 고르며 지훈의 양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지훈의 발목에 입을 몇 번 맞추더니 한 손으로는 지훈의 허리를 붙잡고 더 깊숙이 성기를 박아 넣었다. 다른 각도로 더 깊은 곳까지 닿는 성기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지훈은 호준이 삽입만 해도 숨을 헐떡였다. 넣고만 있어도 자극 때문에 어떻게 될 것 같았는데 호준이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예민한 곳을 자꾸 찔러 대는 강한 자극에 지훈의 성기도 다시 빳빳해졌다. 움직임을 느낄 때마다 안달이 났다.

더 이상 참기 어려웠던 지훈이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매만지려 하자 호준이 대신 붙잡고 문질러 댔다. 앞뒤로 오는 자극에 지훈은 신음을 뱉으며 호준의 움직임을 따라 헐떡였다.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발끝까지 힘을 줬다. 호준의 성기가 노골적으로 예민한 곳을 찔러 대자 지훈은 결국 다시 사정해 버렸다. 그 자극에 내벽이 잔뜩 조여 왔다. 호준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대로 정액을 뱉어 냈다.

호준은 마음 같아서는 지훈의 안에 더 있고 싶었지만 지훈이 힘들 것 같아 곧바로 성기를 빼내었다. 지훈의 배에 흩어진 정액 때문에 더 야릇한 기분이 들어서 얼른 콘돔을 빼고 자기 성기를 흔들었다. 지훈의 배에 나머지 정액을 마저 뱉어 냈다. 눈을 살짝 내리깔고 무릎을 꿇은 채 성기를 붙잡고 진득한 체액을 자신의 배에 쏟는 호준의 모습에 지훈의 기분도 묘해졌다. 변태 같지만 기분 좋았다.

정액을 끝까지 뱉어 내고도 사정의 여운이 남아서 맨살 위로 뜨거운 숨을 쏟아 내던 호준은 그대로 지훈의 옆자리로 엎어졌다.

“좀만 이따가 닦아 줄게요. 지금 너무 좋아서……. 그리고 지훈 씨 약도 발라야 되는데…….”

호준은 숨을 거칠게 내뱉느라 말을 미처 끝맺지를 못했다. 대충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마찬가지로 같이 탈진한 지훈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면서 호준을 쳐다보았다.

자기도 좋아서 또 사정하긴 했는데 아래가 아프긴 아팠다. 호준이 온갖 장비를 동원해서 준비를 철저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설명할 수 없는 아래쪽이 얼얼하게 아파 왔다. 이래서 안 아프다고는 안 했구나. 하지만 뒤쪽으로도 느꼈다는 사실에 지훈은 스스로도 좀 충격을 받아서 얼떨떨하기도 했다. 처음 느껴 보는 종류의 자극이었는데 다른 걸로는 대체가 안 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좋았다. 몰랐으면 모르고 살 텐데 알고서 모른 척하기는 어려운 강렬함이었다.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사람은 없을 듯한 감각이었다.

잠깐 그렇게 누워 있는 동안 슬슬 기력을 회복한 지훈은 돌아누워 엉망이 된 호준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돈해 주고 땀방울도 좀 닦아 주었다. 호준은 땀에 젖은 채로 자길 챙겨 주는 지훈이 괜히 예뻐 보여서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끌어당겨 키스했다. 지훈이 자기 품 안에서 헐떡이던 것도 자기한테 매달리는 것도, 지금처럼 멍하게 쳐다보다가 은근히 신경 써 주는 것도 전부 다 좋았다.

아무튼 2년 반을 짝사랑하던 상대와 마침내 제대로 섹스하고 후희도 제대로 즐기게 되자, 지금 상황에 감격한 호준은 그만…….

“사무관님, 설마 지금 울어요?”

“아, 아뇨. 절대 아닙니다.”

호준이 눈가에 방울진 눈물을 급하게 닦았지만 소용없었다. 지훈은 호준의 촉촉한 눈가와 그렁그렁 맺힌 눈물방울을 봐 버리고 말았다.

“참 나. 지금 아픈 건 난데 왜 사무관님이 울어요?”

“안 운다니까요…….”

어제 섹스 절대 안 한다고 한 사람 맞아? 지훈은 어이가 없었다. 흥분하면 정신 줄을 놓는 주제에 제정신이 돌아오니 울기까지 한다.

지훈은 자기가 과연 정호준을 감당할 수 있는지 걱정되었다. 이 사람 일할 때처럼 사랑에도 최선을 다했다. 하필 그 상대방인 지훈은 호준의 스타일을 아는 터라 약간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한국에 돌아가서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하면 호준이 또 울 거 같았다.

“그나저나 아쉽네요. 지훈 씨 배에 묻은 거 야하고 좋았는데.”

지훈이 딴생각하는 사이 눈물을 거둔 호준은 지훈의 몸을 수건으로 꼼꼼하게 닦았다. 입으로는 아쉽다고는 하면서도 지훈의 배에 묻은 체액들도 야무지게 흔적도 없이 닦아 냈다. 다 닦아 내고 나서 아까 말한 대로 지훈의 아래쪽에 약을 바르려는 찰나에 지훈이 호준의 손을 막았다.

“아쉬우면 한 번 더 할까요?”

“지훈 씨, 무리하면 안 돼요.”

“아파요. 아픈데……. 사무관님, 설마 벌써 지쳤어요?”

별안간 남자로서의 체력을 의심받은 호준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설마요. 제가 주 100시간 야근하던 사람입니다.”

“저도 그런 사무관 따라서 야근했던 사람이거든요?”

자신만만한 지훈의 말에 호준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잠깐 쉬었다 합시다. 무리하면 지훈 씨 내일 힘들어요.”

“하지만 사무관님 목요일에 비행기 탄다면서요.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 전에 얼레리꼴레리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게 지훈의 요지였다. 지훈이 은근슬쩍 호준의 팔뚝을 주무르자 호준은 그런 지훈의 잠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안 되겠는지 다시 지훈을 눕히고 키스했다. 그날은 밤이 길었다.

* * *

야근과 섹스는 결이 다르지만 아무튼 각자 자신 있던 체력으로도 탈진 직전이 될 정도로 달린 지훈과 호준은 마침내 끝을 봤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도 없었지만 남은 기력을 짜내어 잠옷을 대충 챙겨 입고서는 나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지훈은 정말로 꼼짝도 못 할 지경이라 호준이 캐리어에서 잠옷을 꺼내다가 입혀 줘야 했다. 그 바람에 호준의 팬티는 미처 확인을 못 했지만 지훈이 보니 역시나 호준의 잠옷은 그 망할 펭귄 친구 잠옷이었다. 그동안 방을 따로 써서 미처 몰랐다. 천년의 욕정이 식었다. 그 욕정을 잠옷 보기 전에 미리 불태워서 천만다행이었다.

“지훈 씨, 팬티 귀여워요.”

남의 팬티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호준은 기어코 참지 못하고 지훈의 팬티를 언급하고 말았다. 갈아입은 팬티는 다른 히어로 캐릭터였다. 지훈은 수치심에 고개를 돌려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대체 언제 봤어요…….”

“내가 방금 입혀 줬잖아요.”

“그냥 못 본 척해 주면 안 돼요?”

“혹시 그거 시리즈로 다 모아요?”

“대답 안 할래요…….”

사실 다 모으는 거 맞았다. 쪽팔렸던 지훈은 나중에 꼭 호준의 팬티를 확인하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망할 펭귄 새끼 아니면 공룡 새끼겠지!

둘은 방의 불은 작은 조명 하나만 남겨 두고 시트를 덮은 채 누웠다. 체력을 호언장담했던 지훈이었지만 결국 관계 도중에 깜박 기절할 뻔했기 때문에 이미 내일 여행은 이미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잠이 솔솔 와서 눈꺼풀이 감길랑 말랑 하는 와중에 지훈이 중얼거렸다.

“사무관님. 사실 저 말할 거 있어요.”

“또 있어요?”

어제 지구 반대편 우주의 기운부터 시작해서 할 말 다 한 거 아니었나? 호준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지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중대한 사안이 담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사실 저 휴가 끝나도 퇴사 안 해요. 이민도 안 가고요. 거짓말해서 미안해요. 그땐 그냥 화가 나서 거짓말했어요.”

호준이 지훈을 향해 돌아누웠다.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 눈치를 보는 지훈이, 귀여워 미칠 것 같았다. 어차피 아닌 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자기 입으로 털어놓을 줄은 몰랐다.

“알고 있었어요. 지훈 씨 어떻게 정규직 된 건데 퇴사하면 안 되죠.”

지훈은 잠이 화들짝 깼다.

“네? 정규직 전환되는 것도 알았어요? 왜 모르는 척했어요? 그거 땜에 놀라서 그때 저한테 고백한 거 아니에요?”

“그날은 저도 몰랐어요. 다음 날 장 실장님한테 들었으니까요. 그래도 지훈 씨가 알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아서 계속 모르는 척했어요.”

“대박!”

충격받은 지훈이 입을 쩍 벌리더니 아무 말도 못 했다. 호준이 알고 있을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호준은 그런 지훈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속았던 척 깜짝 놀랄 걸 그랬나.

“북극곰한테 콜라 주러 가는 이민은 아니었던 게 좀 아쉽네요. 그거 꽤 재밌게 들렸거든요.”

“그건 최 팀장님이 뻥친 거예요. 저 멀리 가는 알리바이 만들어 주려다가 북극 투어 얘기가 나왔거든요.”

호준은 사실 지훈이 같이 일하는 팀원들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훈은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팀원 모두가 자기한테 일을 죄다 미루는 걸 지훈은 거의 모르는 것 같았지만. 약아빠진 최 팀장이 입에 발린 소리로 나불거릴 상황이 눈에 훤했다. 물론 지훈은 그걸 다 호준의 소행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훈이 자기 딴엔 중대한 비밀이었다고 생각했던 걸 실토하는 걸 보니 호준도 내심 찔리는 게 있었던 터라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저도 고백할 거 있어요.”

“사무관님은 또 뭔데요?”

“사실 지훈 씨 우루과이 오는 거 알고 있었어요. 얼추 따라온 거 맞아요. 숙소까지 같은 줄은 몰랐지만요.”

하지만 호준은 대수롭지 않게 말한 걸 곧 후회했다. 갑자기 상체를 벌떡 일으키더니 자길 노려보는 지훈의 눈에서 살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잠깐, 이건 끝까지 비밀로 했어야 했나?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지훈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극도로 분노한 듯 주먹까지 쥐면서 부들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걸? 나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에에!”

“지훈 씨 저번에 카페에서 세 시간이나 졸았을 때 휴대폰 알람이 자꾸 울려서요. 대신 꺼 주려다가 항공권 일정 변경 문자 봤습니다. 미안해요. 미리 말 못 해서.”

호준의 실토에 지훈은 분노했다. 방금 전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섹스한 것까지 생각나서 쪽팔려서 뒈질 거 같았다. 정말로 진짜 단연코 절대로 우연히 만난 줄로만 알았다. 지구의 자기장과 우주의 기운으로 인한 질긴 악연인 줄로만 알았는데! 애초에 작정하고 따라온 거였다고? 그럼 태종시에 죽 사 들고 갔는데 집에 없었던 것도 미리 출국하느라 그런 거였어?

이 개자식이! 그걸 볼 장 다 보고 나서야 말해? 이 악랄하고 간악한 정호준 새끼 같으니라고!

하지만 호준을 진심으로 죽이기 전에 딱 한 가지는 확인해야 할 거 같아서 지훈은 주먹을 쥔 채로 부들거리며 물었다. 죽이고 나면 말을 못 할 테니까.

“근데 내가 세 시간이나 졸았다고요? 대체 언제요?”

“며칠 전 지훈 씨가 태종시에 출장 와서 커피 마시러 갔을 때……. 너무 곤히 자서 못 깨웠어요.”

호준은 슬쩍 뒤로 물러서면서 말했다. 퇴로를 찾느라 눈알이 빠르게 돌아갔다. 방이 왜 이렇게 좁을까. 지금 화장실로 뛰어가면 문은 걸어 잠글 수 있을까. 거실에 숨을 데가 있나? 건물 밖으로 나가면 아예 못 들어올 것 같은데. 지훈의 표정을 보건대 분노로 이미 체력은 다 돌아온 것 같았다. 자길 때릴 파워가 충분하단 뜻이다. 호준은 이번엔 그냥 등짝이 얻어터지는 걸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지훈이 이렇게까지 화난 건 그때 고백한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제가 잠깐 졸긴 했는데……. 세 시간이나 잤다고요? 타임 워프 한 거 아니고요?”

“태종시에서 시간이 유달리 빨리 흐르진 않아요.”

씨발이라고 지훈이 욕을 했다. 호준은 저도 모르게 침대에서 내려갔다. 사랑은 사랑이고, 목숨은 소중했다.

“그럼 남의 항공권은 왜 봤어요?”

지훈도 침대에서 기어 나오며 소리쳤다. 호준이 슬금슬금 도망쳐 봤지만 방이 좁아서 소용없었다. 어차피 지훈은 호준을 잡으러 지구 반대편까지 다시 쫓아갈 기세였다.

“그건 알람이 울려서 꺼 주려다가……. 아무튼 그건 미안합니다. 근데 숙소까지 같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냥 길에서 우연히 한 번은 마주칠까 싶어서 와 봤는데…….”

“거어어짓말!”

지훈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3분을 잤든 세 시간을 잤든, 아무튼 호준이 일부러 따라와서는 모르는 척 능청 떨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완전히 속았다! 이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종류의 모욕이었다.

내가 오늘 저 인간 죽인다. 지훈은 결심했다. 애초에 살인 용의자가 될까 봐 마음 졸일 필요가 없었다. 이참에 살인 피의자가 되자. 물론 그 피해자는 호준이다. 너 죽고 나 죽자, 이 새끼야!

“전에 출장 왔던 것도 그럼 뻥이죠!”

“…….”

호준은 차마 대답을 못 하고 먼 산을 보며 관자놀이를 긁었다. 당연히 급조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지훈이 진정 자길 죽일 것 같았다. 지금 도망쳐야 할까?

“진짜 뻔뻔하다! 어쩜 그렇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뻥을 쳐요?”

“지훈 씨도 북극으로 이민 간다고 거짓말했잖아요.”

“야아아! 이 개새끼야! 그게 그거랑 같냐?”

되도 않는 호준의 반박에 지훈이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사자후를 내질렀다. 그러곤 달려들더니 호준의 멱살을 잡았다. 호준의 펭귄 친구 잠옷이 늘어졌다. 너무 화가 나서 지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까 내가 왜 이놈이랑 섹스했지? 그냥 올라탄 김에 그대로 목을 졸라 죽였어야 했는데!

“컥! 지훈 씨, 속인 거 정말 미안해요!”

분명 둘 다 서로를 조금씩 속이긴 했는데 지훈은 자기가 더 당했다는 사실이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호준을 노려보던 지훈은 결국 결심이 섰다.

“야, 정호준. 무릎 꿇어 보세요.”

잡았던 멱살을 풀어 주는데 이상하게 말이 짧았다. 호준은 반박했다간 심기를 거스를 듯하여 일단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었다.

“여기서요?”

“눈도 감고.”

그 말에 호준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그거다. 지훈의 손맛을 이미 맛본 호준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대로 한 삼 분만 가만히 있어. 이마 까고.”

“저, 지훈 씨. 김지훈 대리님? 제가 진짜 잘못했습니다. 제발 그것만은!”

사색이 된 호준이 지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지만 소용없었다. 차오르는 분노로 체력을 완전히 회복한 지훈이 목 근육을 풀었다. 손가락 마디마디 근육과 팔 근육도 풀며 스트레칭을 했다. 호준의 허리 아래에서 앙앙대던 귀여운 지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건 신기루 아니었을까. 호준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우루과이까지 와서 딱밤을 때려야겠습니까? 어제 이마에 혹도 났다고요!”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거든요.”

지훈의 눈빛엔 일말의 인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흡사 목표물을 눈앞에 둔 냉혹한 킬러의 모습이었다. 호준은 눈을 질끈 감았지만 당면한 현실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잘못했으면 벌받으셔야죠. 짧고 굵게 끝내 드릴게요.”

등짝 스매싱에 이미 시달렸던 탓일까. 딱밤 맞기 정말 싫었는지 호준이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그걸 보는 지훈은 쾌감이 느껴졌다. 나 어쩌면 내면에 가학적인 성향이 있는 걸까? 지구 반대편에서 깨달은 새로운 취향?

맨날 지훈한테 전화해서 갑질 하던 호준이 기어코 자기 밑에서 싹싹 비는 걸 보니까 속이 다 시원했다. 호준의 평소 성격이면 그냥 점잖게 맞을 줄 알았는데 딱밤을 이렇게까지 싫어할 줄은 몰랐다. 맷집이 좀 약한 거 같긴 한데 오늘 반응이 정말 대박이었다.

이거 동영상 촬영하면 평생 놀림감인데. 속으로 웃음 참느라 지훈은 숨을 크게 쉬어야 할 정도였다. 흥분으로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이게 바로 오르가슴보다 쾌감 쩐다는 딱바르가슴이구나. 지훈은 이미 손가락 근육을 푸는 시점에서 평생 복수는 다한 것 같았다.

더 이상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얌전히 무릎 꿇고 두 눈 꼭 감은 호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입술도 살짝 떨리는 것 같았다. 진짜 겁나는 것 같았다.

“사무관님. 앞머리 넘겨서 잡고 계세요. 이마가 잘 안 보여요.”

하아.

호준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겨 붙잡았다. 훤한 이마가 드러났다. 이렇게 반들반들하게 깐 호준의 이마를 가까이서 보는 건 또 처음이었다. 지훈은 새삼 자세하게 살펴봤다. 모공도 없이 깨끗한 피부인 줄 알았더니 가까이서 보니까 의외로 자잘한 뾰루지가 보였다. 물론 지금도 앞머리 아래에 왕 여드름이 하나 있는 지훈의 입장에서는 부러울 따름이었다.

말갛고 훤한 이마 왼쪽에 어제 박치기하느라 생긴 혹이 뽈록 나 있었다. 혹 난 곳 바로 옆자리를 딱밤의 목표로 했다. 어차피 거기가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지점이었다.

지훈은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딱밤에도 일가견이 있었는데, 고향 동네에서도 아주 수준급으로 통했었다. 매운 손과 마찬가지로 옆 동네에서 딱밤을 때려 달라고 요청이 올 정도였다. 지훈의 딱밤은 한 번 맞으면 그 얼얼함이 3일 정도 지속되었는데, 자국은 피부 재생력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꽤나 오래가는 편이었다. 아마 호준도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영광의 딱밤 자국을 이마에 남기리라.

지훈은 희열을 느끼며 심기일전하여 손가락 끝에 영험한 우주의 기운을 모았다. 이번이야말로 일생일대 다시는 없을 절호의 기회였다. 인생 최고의 딱밤을 때리리라.

“자, 갑니다. 하나앗, 두울!”

“자, 잠깐만!”

“방해받았더니 집중이 잘 안 되네요. 다시 갈게요! 하나, 두울…….”

호준이 머리카락을 붙잡고 있는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중간에 멈췄다가 다시 시도하면 더 무서운 법이다. 하필 속눈썹도 길어서 파들파들 떨리는 게 잘 보였다. 겁에 질린 모습마저 잘생겨서 일말의 동정심을 자극하긴 했지만, 지금 안 때리면 영원히 정호준을 용서 못 할 것 같았다. 지훈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지훈은 심호흡을 크게 한 후 호준의 이마에 왼손을 올려 목표 지점을 조준했다. 그리고 온 우주의 기운을 손가락 끝에 모아 인생 최고의 딱밤을 날렸다.

딱!

해골이 깨지는 경쾌한 딱밤 소리가 온 방에 울려 퍼졌다.

“아아아아아아악!”

지훈이 손을 떼자마자 호준의 외마디 비명 소리가 이어 울렸다.

지훈이 작정하고 가장 아픈 각도로 때렸기 때문에 호준은 해골이 어지간히 아플 것이다. 딱밤 고수 지훈은 열심히 일한 가운뎃손가락을 칭찬하며 호호 불어 댔다.

딱밤 지점으로부터 시작된 얼얼한 고통이 온 머리통에 퍼진 통에 호준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걸 본 지훈은 다소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별수 없었다. 어차피 인과응보였다. 섹스가 좋았던 건 별개고, 복수는 복수다.

“저는 오늘 침대에서 잘게요. 거실에 소파 있던데 사무관님은 알아서 주무세요.”

호준은 고통에 시달리느라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저 남은 빡침은 혼자 좀 풀 테니까 아침까지 말 걸지 마요.”

지훈이 호준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먼저 자요…….”

호준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호준은 아픈 이마를 부여잡고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혼자 궁상맞게 이불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운동량이 유달리 많았던 하루라 안 그래도 허리가 뻐근했는데 싸구려 카우치에 눕자 등허리가 불편했다. 하지만 지은 죄가 많은 몸은 감히 불평조차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골이 깨질 정도로 이마가 아팠다. 호준은 남은 새벽 내내 끙끙 앓아야 했다.

거실의 불이 꺼지는 소릴 들은 지훈은 터지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어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피식거렸다. 자기 발아래에서 비굴하게 무릎 꿇고 바들바들 떨던 호준을 생각하니, 29년을 살면서 오늘처럼 속 시원한 날은 또 없었던 것이다.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호준이 일부러 순순히 딱밤을 맞아 준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굴욕적이었던 모습을 생각하면 속이 후련했다. 지훈은 한참을 실실 쪼개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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