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5/27)

14.

숙소에 들어와서 문을 닫자마자 호준이 그대로 지훈을 끌어안고 입술부터 맞췄다. 잠시 식었던 열기가 다시 달아올랐다. 맘이 급해서 몸을 바짝 붙여 오는 호준 때문에 지훈은 긴장한 와중에 약간 웃음이 났다.

“왜 웃어요?”

“갑자기 웃긴 거 생각나서요.”

“지금요?”

“사무관님 어제 섹스 절대 안 한다고 해 놓고 지금……. 풉.”

그 말에 부끄러움이 몰려온 호준은 잠깐 몸을 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같이 할 거 다 해 놓고 이제 와서 이러기냐 싶은 억울한 표정이다.

“지훈 씨가 먼저 안 한다고 선언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난 그때 가능할지 아닐지 몰랐으니까?”

지훈의 뼈 있는 농담에 호준이 잠깐 지훈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보았다. 사실 그 문제는 호준이 더 걱정하던 차였다.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혹시 지훈이 남자랑 안 된다면 모두에게 낭패였으니까. 호준이 조마조마해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될 것 같아요?”

“안 될 거 같으면 먼저 하자고 안 했겠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인을 해 보죠.”

지훈의 말에 안도하는 동시에 다른 의미로 초조해진 호준이 다급하게 지훈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확인을 해 보긴 뭘 해 본담. 지훈의 예상대로 한번 꼭지가 돌더니 슬슬 헛소리를 시작하는 호준이었다.

호준의 반듯한 얼굴이 오로지 자신을 향해 달아올라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니 지훈은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더 바라보고 싶고 입 맞추고 싶고 끌어안고 싶었다. 더 나아가면 뭐가 있을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지만 지금 호준한테 몸이 반응하는 걸 보니 자신은 남자라도 괜찮은 것 같았다. 사실 지훈도 알고 있었다. 그냥 몸이 잔뜩 달아오른 탓에 죄다 좋을 대로 생각 중인 걸.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게 뭐 어때서. 지훈은 호준을 끌어안으며 다가오는 입술을 받아들였다.

입맞춤이 이어지면서 몸이 더워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여태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호준이 달려들었다. 호준의 혀가 지훈의 입안을 대놓고 헤집으면서 질척이는 소리가 입 밖에까지 새어 나갔다. 야한 소리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호준은 그런 지훈의 귓바퀴를 주무르면서 천천히 옷 안쪽으로 손을 더듬거리며 집어넣었다. 갑갑해진 지훈이 옷을 벗으려 들자 호준이 입술을 떼면서 말했다.

“혹시 싫…….”

“싫으면 싫다고 말할 테니까 닥쳐요.”

호준이 쓸데없는 걱정 하다가 김새는 소리를 할까 봐 지훈도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다. 그런 지훈이 사랑스러워서 호준은 황급히 지훈의 셔츠를 벗기곤 자기 셔츠도 벗어 젖혔다.

호준의 헐벗은 상체가 드러나자 지훈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호준을 빤히 쳐다봤다. 낮에 음흉하게 팔뚝을 주물럭거릴 때의 그 눈빛이다.

“왜요? 아까 팔뚝 만졌잖아요.”

“가슴도 운동해요?”

“네.”

호준이 체념한 듯 순순히 가슴을 내주었다. 내심 야근으로 시달리던 와중에도 아침마다 상체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 온 보람을 느꼈다. 다 오늘을 위함이었다.

“제가 그,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고 남자 대 남자로다가 근육이 궁금해서요.”

호기심 많은 지훈이 다른 의도가 다분한 기다란 손가락을 뻗어 호준의 자신감 넘치는 가슴에 올려 보았다. 탄탄한 가슴팍을 손으로 가만히 쓸어 보더니 대뜸 유두를 콕 찔러 본다.

“뭐 해요?”

“오, 꼭지가 딱딱해졌어요.”

“지훈 씨도 그렇잖아요, 지금.”

지훈의 반응에 어이없어하며 호준도 지훈의 가슴에 손을 올리더니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엄지로 지훈의 유두를 쓸어 대며 주변을 자극했다. 말랑말랑했던 지훈의 유두도 곧 빳빳해졌다.

“아읏,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저는 다른 의도가 있거든요. 이런 식으로 자극받은 적 없죠?”

호준이 지훈의 귓바퀴에 속삭이면서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능글맞은 개수작에 지훈이 화들짝 놀라자 호준은 그런 지훈을 꽉 끌어안았다. 호준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미 모르는 것 같았다.

이미 뜨거워진 발가벗은 상체가 달라붙었다. 벌써 살짝 땀이 배어 나와 달라붙은 두 몸이 끈적해졌다. 호준의 엄지는 지훈의 유륜 주위를 문지르며 예민한 감각을 자극했다. 지훈은 아래가 저릿한 걸 느끼며 무심코 허리를 뒤로 빼려 했지만 호준이 묵직해진 아랫도리를 더 밀착시키고 귓바퀴를 핥아 댔다.

옷가지 바깥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달아올랐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호준이 지훈의 귓가에 숨을 불어넣고 귓바퀴를 핥아 댈 때마다 지훈이 움찔거렸다. 질척이는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리면서 소름이 돋았다.

“아으으. 사, 사무관님.”

“네.”

호준은 애무에 집중하느라 건성으로 대답하며 지훈의 귓불을 타고 내려와 목덜미와 쇄골까지 구석구석을 핥아 댔다. 지훈은 이제 자신이 알던 일등 신랑감 정호준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앞에는 지금 배고픈 짐승 한 마리가 지훈을 잡아먹기 전에 부드럽게 만들려고 침을 발라 대고 있는 것 같았다. 전에 자기 입으로 변태라더니, 진짜 변태 같잖아. 게다가 실루엣으로 느껴지는 아랫도리는 예상보다 더 육중했다.

지훈은 간질거리는 쇄골의 혀 놀림과 호준의 거친 숨소리가 야해서 미칠 것 같았다. 머리끝까지 아찔해졌다. 다리 힘이 점점 풀려서 더 이상 서 있기도 어려웠다.

“사, 사무관님. 진짜 저, 좀 못 참겠어요. 으응.”

“뭐를요?”

호준이 낮게 속삭였다. 속삭이는 것조차 야해서 지훈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붙잡고 있던 호준의 팔뚝을 꽉 쥐었다.

“아아, 몰라요. 더는 못 서 있겠는데…….”

‘몰라요’라니. 지훈을 구석구석 핥아 대고 만져 대던 호준이야말로 꼭지가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지훈 씨 너무 야한 거 알아요, 지금?”

허기진 맹수 앞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던 어린 양 지훈은 어이가 없었다.

“사무관님이 더 변태 같거든요? 섹스도 굶었어요?”

“네. 굶었어요. 이젠 못 참아요.”

호준이 정말로 못 참겠던지 그 말과 동시에 지훈의 엉덩이를 붙잡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며칠 전 해변에서 지훈을 등 뒤로 업어 올렸던 것처럼 호준이 예의 그 단단한 팔뚝으로 이번에는 앞으로 지훈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침대 위로 데려갔다. 호준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지훈을 내려놓자마자 호준은 마음이 급했는지 다시 입을 쪽쪽 맞추더니 양팔을 붙잡고 지훈의 가슴팍을 핥으며 딱딱해진 유두를 빨아 댔다. 예민한 피부에 혀가 닿을 때마다 지훈은 간지러움과 야릇함에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바동거려 봤자 호준의 손아귀 안이었다.

“사무관님. 근데 진짜 굶었어요?”

지훈이 호준의 허리를 다리로 감아 보면서 물었다. 바지 아래 호준의 뜨거운 아랫도리가 느껴졌다. 아마 지훈의 것도 단단해졌을 테다. 호준도 그걸 느꼈는지 몸에서 입술을 떼더니 지훈을 빤히 바라보았다. 상상만 해 왔던 지훈의 나신을 두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자극되었다.

“나 거짓말 안 해요.”

“왜 굶었어요?”

“지훈 씨랑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냥 말했으면 진심이 구구절절 느껴지는 고백이 되었겠지만, 하필 인내심이 바닥난 호준의 손이 지훈의 바지를 한창 벗기던 중이었다.

“누가 바지 벗기면서 그런 얘길 해요?”

“빨리 하고 싶어서요.”

이 사람은 섹스할 때 돌아 버리는구나. 여태 어떻게 참은 거지? 절대 안 한다면서 흥선 대원군처럼 척화비 세웠던 사람 맞아? 이래서 방 같이 안 쓴다고 술 먹고 그 난리를 쳤구나. 정호준 본인도 스스로가 이렇게 돌아 버리는 걸 알아서 여태까지 그렇게 철벽을 세운 건가 싶었다. 아니라면 그렇게 누가 봐도 그거 하고 싶어서 욕망에 가득 찬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서는 입으로만 절대 안 한다고 뻗댈 리가 없었으니까.

지훈은 평소에 비해 한껏 뻔뻔해진 호준이 자기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훌렁 벗기는 걸 보았다.

“…….”

지훈의 속옷까지 벗겨 버린 호준이 자신의 나신과 성기를 쳐다보자 민망해진 지훈이 침대 시트를 끌어다가 몸을 덮어 버렸다. 호준은 그런 지훈을 가만 보더니 자신의 바지도 벗어 내렸다. 이번엔 지훈이 빤히 쳐다보았다. 속옷까지 벗고 나자 반쯤 발기한 성기가 드러났다. 발기한 다른 남자 성기를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라 다소 낯설다고 생각했지만 지훈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엄청 크다.

“겁나면 말해요.”

“아, 아뇨. 괜찮아요.”

하지만 누가 봐도 지훈이 살짝 겁내고 있었기 때문에 호준은 그런 지훈을 달려 주려고 어깨를 끌어안으면서 다시 입을 맞추었다. 지훈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좀 진정시키려고 호준의 등까지 끌어안았다. 벌써 살짝 땀에 젖은 호준의 몸이 야하게 느껴졌다. 지훈의 배에 닿은 호준의 성기가 점점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배를 찌를 정도였으니까. 자꾸 신경이 쓰였다.

“사무관님 거 만져 봐도 돼요?”

지훈이 작게 속삭이자 호준이 역시 속삭이며 대답했다.

“지훈 씨가 만져 줘요.”

지훈이 곧바로 호준의 성기를 쥐었다. 지훈의 손이 닿자마자 성기에 피가 바짝 몰리더니 더 단단해졌다. 지훈이 몇 번 쓰다듬자 완전히 발기했다. 호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지훈은 다른 팔로 그런 호준을 끌어안았다. 호준은 시트 아래로 손을 넣어 지훈의 성기를 붙잡았다.

“아아!”

“기분 좋게 해 줄게요.”

호준이 지훈의 성기를 자극했다. 엄지로 말랑하고 매끈한 귀두와 요도구를 매만지자 지훈의 성기도 완전히 발기했다. 호준이 지훈에게 키스하면서 동시에 지훈의 성기를 좀 더 빠르게 문질렀다. 지훈이 허리를 비틀면서 신음을 내뱉었다.

호준은 그런 지훈이 뒤로 물러나지 못하게 두 다리로 허리를 꽉 붙잡았다. 지훈이 졸지에 호준의 품 안에 끼어든 자세가 되어 버렸다. 호준이 지훈의 성기를 온 손으로 붙잡고 쓸어 올리자 자극이 크게 왔는지 지훈이 숨을 크게 뱉으며 헐떡였다.

“아아, 너무 세요.”

“천천히 할까요?”

“그냥 계속해 줘요.”

호준은 정말 약속대로 지훈을 기분 좋게 만들어 줬다. 타인의 통제로부터 오는 쾌감은 상당했다. 성기에 오는 자극에 두 볼에 열이 확 올랐다. 지훈도 붙잡고 있던 호준의 성기를 자극했다. 지훈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호준의 성기를 위아래로 쓸어내리자 호준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 키스를 멈춘 호준이 지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러다가 시트를 걷어치우더니 지훈의 성기와 자신의 성기를 맞잡았다.

헉!

지훈이 화들짝 놀라자 호준은 입으로는 괜찮다며 달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안달이 난 지훈이 허리를 일으켜 숨을 헐떡이면서 호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두 사람의 성기는 동시에 맞잡혔다. 지훈의 손까지 붙잡은 호준이 빠르게 손을 움직이자 두 성기가 동시에 자극되었다. 곧 쿠퍼액이 흘러나와 손바닥까지 끈적하게 질척거렸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입에서 야한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혼자 하는 것과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맹렬하게 몰아쳐 오는 자극에 지훈이 신음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얼굴, 보여 줘.”

호준이 다른 손으로 지훈의 고개를 돌렸다. 호준의 말이 갑자기 짧아지자 지훈은 그 와중에 웃음이 터졌다.

푸흡.

자긴 진지한데 혼자 웃는 지훈이 야속했는지 호준이 다른 손끝으로 지훈의 귀두 끝을 잡고 뭉개면서 의도적으로 집요하게 자극했다. 짓궂은 자극에 지훈은 미칠 것 같았다. 더 이상 참기 어려울 정도다.

“아아! 그, 그만!”

그 말에 그만하기는커녕 호준이 더 빠르게 손을 놀렸다. 곧 지훈이 눈을 질끈 감으며 허리를 움씰거리더니 결국 호준의 손에 물컹한 정액을 쏟아 냈다. 번져 오는 끈적한 체액에 호준의 성기도 곧바로 반응했다. 짙은 정액이 같이 흘러나왔다. 두 손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쾌감에 심장이 펄떡거리고 입에서는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맨살 위에 정액으로 얼룩진 지훈의 배와 허벅지를 보며 사정의 여운을 느끼던 호준이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다. 티슈로 지훈의 손과 자신의 손에 묻은 정액을 꼼꼼하게 닦아 냈다. 지훈은 침대에 누운 채로 멍하게 호준이 하는 짓을 바라보았다. 호준은 지훈의 성기를 꼼꼼하게 닦아 준 후에 시트까지 덮어 주었다. 그러곤 그 옆에 엎드려 누웠다.

호준의 몸은 아직 뜨거웠고, 땀이 적당히 흐르고 있었다. 지훈은 그런 호준의 몸 냄새가 좋았다. 호준은 알몸의 지훈을 한참 쳐다보며 약간 심통 난 표정을 짓더니 대뜸 물었다.

“아까 왜 웃었어요?”

지훈이 호준을 향해 돌아누우며 답했다.

“사무관님이 반말하니까 좀 웃겼어요.”

“내가 언제 그랬어요.”

호준은 정말로 기억이 안 났기 때문에 지훈이 농담한다고만 생각했다. 지훈은 그런 호준이 어이없어서 또 웃었다.

“기억 안 나요?”

“내가 진짜 그랬다고요?”

호준이 상당히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기억 안 나면 저만 알고 있을게요.”

“지금 장난치는 거죠? 내가 지훈 씨한테 반말했을 리가 없어요.”

“왜요? 사무관님 저보다 나이 많잖아요. 반말할 수도 있죠.”

“나이 많다고 함부로 말 놓으면 안 되죠.”

“그래서 섹스할 때만 말 놔요?”

“안 되겠다. 지훈 씨 먼저 씻고 올래요?”

호준이 화제를 전환해 보려 했다. 씻긴 해야 했으므로 지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역시 민망한지 시트로 몸을 돌돌 말고 욕실로 뛰어가는 지훈을 보면서 호준은 기분이 묘해졌다.

내가 언제 말 놨지? 진짜 말 놨나? 지훈이 장난치는 거 아닌가? 도무지 기억이 안 났다.

아무튼 지훈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걸 보니 첫 시도는 나쁘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지훈이 방금 전의 관계에 만족했는지 호준은 확신할 수 없었다. 오르가슴이 오면 누구랑 섹스했든 일단 기분은 좋으니까. 지훈도 그런 차원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삽입을 시도하면 놀랄까 봐 페팅부터 했는데 이게 다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내심 실망했을지도 모르겠고.

지훈의 생각을 알 수 없어 속이 타는 호준이었다. 다른 사람에 관해서는 이렇게 막막한 느낌이 들지 않는데 지훈과 관련되면 아무것도 알 수 없어졌다. 기대와 현실이 감정에 뒤섞여서 시야가 좁아진다.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 호준은 믿기지가 않았다. 호준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훈과 서서히 친해져서 1년 후에 고백하고, 그로부터 1년 후쯤에 조심스럽게 베드 인 하는 거였으니까. 지금 호준의 계획대로 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빨리 몸을 섞을 줄 몰랐기 때문에 호준은 나름대로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나쁘진 않았다. 한국에 돌아간 후에 지훈이 오늘 일을 모르는 척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영원히 기억하면서 살 수도 있을 것 같았으니까. 물론 이왕 이렇게까지 된 거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들었지만, 자기가 약속한 바가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지훈이 어제 시킨 대로 콘돔과 젤 등을 착실하게 준비하며 혼자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호준은, 샤워를 마치고 지훈이 맨몸에 샤워 가운만 덜렁 입고 나오는 걸 보고 놀라서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오, 옷은 안 입어요?”

“아. 옷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요.”

현관문에서부터 하나둘씩 허물 벗듯이 던져 놓은 덕분에 지훈은 옷가지의 행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호준도 자기가 말해 놓고는 아차 싶었다. 하지만 애초에 딱히 옷을 찾진 않았던 지훈은 때마침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속옷을 구석으로 걷어차며 대답했다.

“근데 어차피 또 벗지 않을까요?”

그 말에 호준은 아무 말 없이 지훈을 빤히 쳐다보다가, 지훈을 다시 벗길 준비를 하려고 얼른 욕실로 들어갔다.

호준이 욕실 문을 닫은 걸 확인한 후 지훈은 방금 전 침대 구석에 슬그머니 밀어 놨던 히어로 캐릭터 팬티를 꺼내서 자기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오늘 뭔 일이 일어날 줄 뻔히 알면서 왜 이딴 속옷을 입었지? 왜냐. 우루과이 올 땐 남 앞에서 바지를 벗을 일이 생길 줄 몰랐으니까. 가져온 속옷이 죄다 이 모양이었다.

쪽팔렸다. 지훈 본인도 팬티의 정체성을 완전히 까먹고 있었기 때문에 목욕하고 나오면서 바닥에서 팬티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다행히 호준은 못 본 눈치였다. 아까 벗길 땐 바지랑 한꺼번에 벗겼고, 또 지훈이 샤워하는 중에 봤으면 정리해 놨을 것 같은데 그냥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있었던 걸 보면.

호준의 옷가지도 마찬가지로 바닥 어딘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딘가로 치워 줄까 하다가 행여 펭귄 친구 팬티일까 봐 지훈은 일부러 쳐다보지도 않았다. 차라리 모르고 있는 게 나았다. 하지만 역시 그 망할 펭귄 놈 팬티일 것 같았다. 펭귄 친구 캐릭터 팬티가 성인용도 나오나? 도대체 그런 건 누가 왜 만드는 걸까? 그런 상품을 만드는 기준이 뭘까? 어떤 다 큰 성인이 펭귄 친구 캐릭터 상품 따위를 모을 줄 알고 그딴 걸 만드느냔 말이다. 물론 그걸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만드는 거겠지. 바로 정호준 같은 사람. 아무튼 호준이 입은 팬티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진짜 펭귄 친구 팬티이면 다음 라운드에 집중을 도저히 못 할 것 같아서 내일 아침에 확인하기로, 히어로 팬티 주인은 생각했다.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 지훈은 샤워하는 내내 걱정했다. 지훈도 남자끼리 어떻게 하는 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이유는 생각 안 나지만 아무튼 지훈은 살면서 게이 섹스 동영상을 몇 번 봤었다. 호준이 그 와중에도 뜸을 들인다고 첫판엔 가볍게 한 것 같았다. 압력 밥솥 같은 인간이니 뜸 들이기가 끝날 때까지 지훈이 기다려 줘야 할 터였다. 뜸을 더 들이려는 걸 간신히 단축 취사 버튼으로 여기까지 끌고 오긴 했지만. 뭔 놈의 인간이 맨날 뜸만 들이는 건지.

하지만 사실 첫 라운드부터 호준이 본격적으로 하려 했으면 지훈이 도망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훈은 남자 간의 관계에선 누가 넣고 누가 박히는 건지, 그런 건 어떻게 정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아무튼 뜸을 적당히 잘 들이면 밥이 맛있는 법이니까 호준도 결국엔 맛있게 잘할 것이다.

일할 때의 정호준과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정호준이 무척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침대 위에서는 제3의 인격을 만난 것 같았다. 하도 점잔 빼길래 침대 위에서도 선비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욕망에 충실했다. 게다가 바지를 까 보니까 또 남자 중의 남자였다. 크고 굵……. 그냥 다시 떠올리기만 했는데 지훈은 다시 얼굴이 뜨거워졌다.

괜히 일등 신랑감이 아니었다. 하긴 ㅇㅇ부 사람들은 같이 사우나 다니다가 봤을 테니 그런 소문이 났겠지. 이제까지 일등 신랑감이라는 호준의 별명이 단순히 얼굴과 성격 때문인 줄로만 알았던 지훈은 약간 배신감까지 느꼈다.

여태 그렇게 큰 걸 가지고서 그렇게 점잖게 다녔단 말이야? 하지만 벼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사이즈가 남들보다 크니까 오히려 조신한 걸지도 모른다. 팬티 안에 근거 있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굳이 잘난 척할 필요가 없는 거지.

지훈은 히죽 웃으면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방금 전 호준과 몸을 섞던 순간을 생각만 해도 다시 아래가 뻐근해졌다. 잘생긴 사람이 그렇게 야한 것도 잘하니까 답도 없었다.

지훈은 평생 그냥 자신이 남들처럼 여자 좋아하는 줄 알고 살았다. 여자와의 관계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남자 성기에 이렇게 관심 가질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 사실에 별로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지훈이 갑작스러운 성 지향성의 변화를 돌아보는 사이 호준이 욕실 문을 열고 나왔다. 지훈과 마찬가지로 가운만 입고 있었다. 호준의 젖은 머리카락을 보고 지훈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지훈도 이제 어느 정도 스스로를 인정하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 핑계를 대기엔 당장 눈앞의 욕망은 지나치게 명확하다는 걸. 지훈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던 걸 그대로 뱉어 버렸다.

“사무관님 솔직히 말하세요. 남자한테 인기 겁나 많죠?”

지훈의 옆에 와서 앉던 호준은 어이가 없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지훈 씨한테 어필하는 게 중요하죠.”

이 남자 분명 살면서 남자 여럿 울렸다. 호준이 게이인 걸 알기 전에는 여자만 울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남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전 인류적으로 섹스어필할 남자였다. 한가로운 행정혁신도시에 처박혀서 나랏일이나 할 사람이 아니다.

“음, 나한테만 그랬을 리가 없어요.”

“그 말은 제가 지훈 씨한테 어필을 했다는 거네요?”

그걸 지금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 당신은 지금 29년을 헤테로로 살아온 남자가 자진해서 팬티 벗게 만들었다고. 지훈은 어이가 없어서 호준을 다시 쳐다봤다. 요즘 압력 밥솥은 밥도 알아서 한다는데 호준은 밥솥보다 눈치가 없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내가 아무하고나 얼레리꼴레리 하는 줄 알아요?”

“얼레리꼴레리요?”

“앗!”

속으로만 생각하던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어 버린 지훈이 수치심에 곧바로 입을 막았다. 하지만 사태는 수습할 길이 없었다. 호준이 눈이 휘도록 웃으면서 지훈을 빤히 쳐다봤다.

“지훈 씨 너무 귀여운 거 알아요? 귀여워서 미칠 거 같아.”

입이 슬슬 짧아지는 걸 보니 또 발동 걸렸다. 지훈은 호준이 자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슬그머니 다가오는 걸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다른 말은 용납하기 어려웠다.

“아까부터 어이가 없네. 다 큰 남자가 뭐가 귀여워요. 아무튼 잘생기진 않았단 거죠?”

“잘생긴 건 한철인데 귀여운 건 평생 가는 거 알아요?”

뭐야, 5년도 아니고 평생 좋아할 심산이야? 그래도 이왕이면 한철 잘생긴 게 좋지 않나? 지훈이 어이없어서 피식거렸더니 호준이 지훈의 젖은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을 서서히 말랑한 볼로 옮겨 갔다. 쀼루퉁해진 지훈의 볼을 주물럭거리다가 대뜸 반대편 볼에 입술을 쪽 맞췄다.

“전부터 지훈 씨 볼에 보조개 파일 때마다 뽀뽀해 보고 싶었어요.”

“보조개요? 내가 웃었다고요?”

지훈은 자기가 정호준 앞에서 언제 웃었나 싶었다. 호준이랑 일하는 동안엔 가식 웃음 말고는 웃었던 기억이 없다. 일할 땐 입 열면 일 폭탄만 던지던 사람 앞에서 어떻게 웃을 수 있겠냐고.

“세 개 있잖아요. 왼쪽에 두 개, 오른쪽에 하나.”

그러더니 반대편 보조개 두 개에도 쪽쪽 입을 두 번 맞춘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까 오른쪽에도 아래에 하나 더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또 오른쪽 볼 아래쪽에 또 뽀뽀를 한다. 지훈은 호준의 부드러운 입술이 닿는 게 싫지 않았다. 아니, 실은 좋아서 내버려 두었다. 여행을 오고 나서야 호준은 지훈의 네 번째 작은 보조개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자고로 진정한 웃음은 회사 밖에서만 지을 수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상관과 한 침대 위에서 발가벗고 누워 있을 때도 진실의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줄은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근데 우리 아빠도 모르는 보조개 개수까지 셌어요? 여태 나랑 일 할 때 보조개만 봤어요?”

“그럴걸요?”

“뭐야. 나한테는 일을 잔뜩 시켜 놓고는 사무관님만 재미 본 거잖아요! 그래서 맨날 태종시로 불렀어요?”

분위기고 나발이고 분노를 느낀 지훈이 벌떡 일어나려고 하자 호준은 지훈을 눕히고 어깨를 눌렀다.

“이제 얼레리꼴레리 할 건데 일 얘기 하지 마요.”

“그 말 쓰지 마요!”

“쉿.”

“뭐가 쉿이야! 나는 완전 쉣인데, 읍!”

호준은 지훈이 더 말을 못하게 입을 입술로 막아 버렸다. 좋아서 까무러치게 웃으면서도 지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섹스는 둘째 치고 이 짓거리들이 여행이 끝나면 없던 일이 된다는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좋긴 한데 한편으로는 민망했다. 맨정신으로는 절대 못 할 짓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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