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별점 4.8이라는 호텔 조식을 먹으면서, 지훈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서 식사 중인 호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아침에 호텔 식당에서 호준을 마주쳤는데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더 잘생겨 보였다. 원래도 눈, 코, 입이 남들보다 반듯한 사람이긴 했는데 오늘따라 눈도 더 커 보이고 코도 더 반듯해 보이고 입도 더 야무져 보였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어찌 된 일이긴, 다 망할 꿈 때문이다.
* * *
어제저녁엔 호준이 얼마나 비싼 데를 데려갈지 몰라서 지훈은 카드 한도까지 체크해 뒀다. 호준이 데려간 곳은 분위기도 맛도 괜찮은 식당이었다. 호준은 어제 술병의 여파 때문에 금주 선언을 했고, 덕분에 지훈만 가볍게 한잔 마셨다. 나름대로 놀랄 일도 있었으니 술 한잔 마시면서 긴장 풀고 숙면을 취해야 한다는 차원에서였다.
모처럼 지훈이 사는 거니까 특히 더 비싼 곳에 가겠다는 건 호준의 농담이었음을 결제할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가격을 보니 호들갑이 무색할 정도였다. 생각보다 적게 나와서 오히려 놀란 지훈에게 호준은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지훈이 그것 때문에 오히려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물론 여태까지 호준에게 당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이런 친절 정도로 호준의 업보를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저쪽이 자길 좋아한다니까 당연히 지훈한테 잘해야 했다. 하지만 지훈은 어쩐지 은근하게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밥 잘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혼자 잠이 든 지훈은 그날따라 평소에 잘 꾸지도 않는 꿈을 꾸었다. 낮에 있었던 일이 충격이 컸었는지 꿈에서 또 바다에 빠졌다. 이 드라마는 시즌 3은 없다고 이번엔 지훈이 진짜 죽는다고 누군가가 기분 나쁘게 속삭였다. 지훈은 죽기 싫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다.
다행히 또 호준이 헤엄쳐 와서 구해 줬다. 호준은 이번에 삼각 수영복을 입고 있었는데 팔다리와 배의 근육이 장난이 아니었다. 꿈이라서 그런지 불끈불끈한 근육들이 더 빛났다. 지훈의 시선은 잠깐 호준의 쫄쫄이 수영복 아래로 실루엣이 두드러지는 고간에 닿았다가 상체의 펌핑된 가슴 근육에 멈췄다. 지훈이 이번에도 구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더니 호준은 근육질 몸으로 지훈을 꼬옥 안아 주었다. 많이 놀라지 않았냐며 토닥토닥 달래 주었다. 근육질 몸이 참 따끈했다.
지훈은 은근슬쩍 호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는데, 호준은 두 번이나 살려 줬으니 그럼 뽀뽀 한 번만 하게 해 달라고 했다. 미쳤냐고 욕하던 지훈이 정 그렇다면 딱 한 번만 허락하겠다며 눈을 감으려던 차에 잠에서 깨어났다.
화들짝 놀라서 찬물로 한참 세수한 다음, 방문 잠긴 것도 확인하고 심호흡을 다섯 번은 했다. 그제야 지훈은 자신이 바다에 다시 빠지지도 않았고 호준이 다시 구해 주러 온 적도 없고 뽀뽀해 달라는 헛소리도 안 했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꿈이었다. 호준은 자기랑 얼레리꼴레리 할 의향은 있다고 은근하게 티 냈을지언정 대놓고 뽀뽀하게 해 달라고 말할 미친놈은 아니었다. 기어코 방을 따로 쓰는 굳은 의지를 보면서 지훈은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왜 그딴 꿈을 꾼 건지, 지훈은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제 잠깐 호준이 자신과 얼레리꼴레리 하고 싶어 하는 뉘앙스를 풍겼던 게 잠재의식에 남아 있다가 튀어나온 것이 분명했다. 지훈이 호준의 근육을 신경 쓰거나 육체적으로 뭔가 끌려서 그럴 리는 절대 없었다.
* * *
그렇지만 아침에 조식 먹으며 호준의 얼굴, 특히 입술을 마주치니 지훈은 괜히 신경 쓰였다. 한번 의식하고 나니 안 보려고 해도 자꾸 호준의 얼굴에 눈이 갔다. 꿈에서 자신이 왜 끝까지 정절을 지키지 않고 한 번은 괜찮다고 허락했는지도 의문이었다. 은장도라도 꺼냈어야 했는데. 물론 꿈에서도 호준 쪽에서 하고 싶다고 한 거지, 지훈이 하고 싶다고 한 건 아니었으니 다 호준의 잘못이었다.
정작 지훈이 평소와 달리 밥도 안 먹고 안 좋은 표정으로 자기만 빤히 쳐다보자,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던 호준은 크루아상을 입안에 넣다 말고 지훈에게 물었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사실 뭐가 묻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면 얼굴을 쳐다볼 핑계가 없어질까 봐 지훈은 그냥 되는대로 내뱉었다.
“네.”
지훈의 대답에 찔린 호준이 냅킨으로 입 주변을 괜히 닦았다. 하지만 지훈이 얼굴을 계속 쳐다보자 호준이 되물었다.
“어디에 묻었는데요?”
뭐가 묻었냐고 물었으면 대충 잘생김이 묻었다고 말하고 끝날 문제였다. 근데 호준은 어디에 묻었냐고 물었다. 지훈은 호준의 어디가 특히 더 잘생겼는지를 한참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입.”
“입이요?”
호준이 냅킨으로 입가를 다시 닦았다.
“묻은 거 없어졌어요?”
“아니요.”
지훈의 대답이 미심쩍었지만 뭐가 묻었다고는 하니까 호준이 휴대폰 카메라로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러는 동안 지훈은 호준의 입술만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네.”
약간 넋이 나간 지훈의 대답에 호준은 외려 걱정이 되었다.
“지훈 씨? 괜찮아요?”
“저요? 네. 저는 아주 괜찮은데요?”
“방에 들어가서 좀 더 잘래요? 조식 맛있으면 따로 챙겨 둘 테니까……. 잠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어디 아파요?”
소고기 몇 인분을 거뜬히 먹어 치우고 여행 내내 식당에서 2인분은 기본으로 거뜬히 해치우는 지훈이 이렇게까지 식욕이 없다니 정말 큰일이었다. 호준은 지훈이 아직도 어제의 일로 혼란스러워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딱히 틀린 건 아니었다. 호준과 지훈이 생각하는 어제의 일이 각자 달랐을 뿐.
“전 진짜 괜찮아요. 사무관님은 닥치고 식사하세요.”
지훈의 단호함에 할 말이 없어진 호준은 시키는 대로 닥쳤다. 그동안 지훈은 계속 호준의 얼굴을 쳐다보며 테이블에 있던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호텔 조식 커피에서는 이상하게도 회사 구내식당의 커피에서 느꼈던 인생의 쓴맛이 느껴졌다. 여기서도 불알친구한테 배신당한 사람이 커피콩을 볶기라도 한 걸까.
잘 닥치고 있던 호준은 반밖에 못 먹은 크루아상을 마저 먹고는 지훈에게 다시 물었다.
“제 얼굴에 무슨 문제 있어요? 아무것도 안 묻었던데?”
“얼굴이 부었어요.”
지훈은 이번에도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던졌다. 하지만 그 속셈을 모르는 호준은 그 말을 고대로 믿고는 약간 머쓱해졌다. 사실 아침마다 얼굴이 잘 붓는 건 호준의 콤플렉스였는데, 지훈이 자기도 모르게 저격해 버린 것이다.
“며칠 봤으니까 알잖아요. 저 아침에 얼굴 잘 붓습니다.”
“흠. 그래서 그런가 봐요.”
호준은 괜히 민망해져서 찬물 담긴 컵을 얼굴에 갖다 댔다.
“어제는 술도 안 마셨는데. 심각해요? 저녁을 짜게 먹었나.”
호준이 얼굴의 붓기를 신경 쓰느라 계속 투덜거렸는데 지훈은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아침 식사하는 내내 호준의 얼굴만 감상했다.
* * *
오늘도 운수 노조 파업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오전에만 운행한다는 귀한 버스를 타고 곧바로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로 향했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우루과이 대부분의 지역과 달리 포르투갈 문화가 더 짙게 남아 있는 요새의 도시였다. 도심 구석구석 요새, 전투와 관련된 유적지들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관광객답게 지훈과 호준은 구식민지 시대의 작은 유럽 마을의 느낌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색적인 구시가지를 거닐었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집시 춤을 구경하고 박물관도 건성으로 둘러보았다. 호준의 계획 변태력은 오늘도 빛을 발해서 두 남자는 한 톨의 시간과 동선 낭비 없이 야무지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지훈 씨는, 왜 하필 우루과이로 왔어요?”
호준은 완급 조절과 체력 분배를 위해 여행 시간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도 완벽하게 계획했다. 특히 아침부터 넋이 좀 나가 있는 지훈을 위해서 일정을 일부러 넉넉하게 잡았다. 그 계획을 따라 둘은 또 구시가지의 노천카페에서 정확하게 1시간 5분 38초 동안 빈둥거리는 일정을 소화해 내는 중이었다.
“그냥요. 여기가 한국에서 제일 멀더라고요. 북극이나 남극보다 멀리 가고 싶었어요.”
지훈은 솔직하게 말했다. 물론 호준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는 말은 생략했다. 사실 소용없는 말이었다. 호준도 지구 반대편으로 오는 바람에 단둘이서 붙어 다니게 되었으니까. 졸지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졌다.
“그래서 계획도 없이 와서 이렇게 쉬고 싶었어요?”
“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어요.”
지훈은 대답에 호준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려는 듯 잠시 말이 없었다. 지훈이 여태 바빴다는 건 같이 일해 온 호준도 미친 듯이 바빴다는 뜻이었다. 두 사람 모두 근 1년 동안 프로젝트 몇 개를 해치우면서 날밤을 새우고 주말을 날리고 시간이 흐르는 걸 잊으며 살아왔다. 지훈은 이렇게라도 강제로 쉬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만 같아서 작정하고 긴 휴가를 낸 거였다.
계약직은 너무 힘들면 미련 없이 그만두기라도 하지, 정규직은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부터 노동이라는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 자신의 노동력을 쏟아부은 잉여 생산물을 부르주아지에게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로 살아가야 한다. 어차피 착취되어야 할 노동력이라면 공노비 신세가 낫다며 공공 기관에 입사하려고 기를 쓰는 것이 지훈의 처지였다.
게다가 공공 기관은 그 직업적 안정성 때문에 일단 발을 들이면 그만두기 더 어려웠다. 지훈은 계약직으로 일하는 동안 보아 온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장기 휴가라고 생각했다.
이미 노동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열심히 굴려지는 중간 관리자 정호준 사무관은 지훈의 말을 듣다가 자신도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휴가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는 지훈의 말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그동안 지훈에게 번아웃이 올 정도로 괴롭혔다는 자괴감이 드는 한편, 자기 자신도 번아웃 상태였던 건 아닌지 고민해 봤다.
지훈의 말대로, 어차피 휴가인데 여행마저 열심히 할 필요가 있을까. 뭐든 열심인 호준이었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휴가도 알차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그 사실에 회의감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지훈을 비롯해서 아무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유럽풍의 건축물 사이에서 남미 특유의 뜨거운 태양을 느끼며 오후의 커피를 홀짝이는 느긋한 시간이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길가의 벽에 붙어 있는 담쟁이덩굴 이파리가 흔들리거나 나무들의 잎사귀들이 부스럭거렸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여행 일정을 널널하게 짤 걸 그랬네요. 등대랑 라플라타 강가는 내일 갈까요?”
호준이 새삼 다정하게 물었다. 지훈은 그런 호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호준의 검은 머리카락이 살짝 흩날렸다. 지훈은 문득 살짝 흐트러진 그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고 싶어졌다. 물론 정신을 차리고 자제했다. 하마터면 무심코 손을 뻗을 뻔했다.
“계획을 그렇게 바꿔도 돼요?”
“뭐, 어때요. 놀러 온 건데.”
어제는 버스가 끊겨서 계획대로 안 된다고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난리더니 오늘은 또 왜 저럴까. 호준의 뜻 모를 반응에 지훈은 피식 웃었다.
“사무관님은 안 쉬어요? 계속 다음에 뭐 할지만 생각하잖아요.”
지훈이 알기로, 호준은 여행 내내 지훈보다 늦게 자고 지훈보다 일찍 일어나서 계획만 짜고 있었다.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저도 잘 쉬고 있어요.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오래 쉬는 건 저도 엄청 오랜만이거든요.”
호준은 기분 좋은 듯 기지개를 켰다. 지훈의 시선은 반팔 소매 아래로 드러나는 호준의 팔 근육과 옷 아래로 드러나는 가슴 실루엣에 잠깐 닿았다. 그러다가 자기가 뭘 본 건가 싶어 시선을 허공으로 돌리며 딴소리를 했다.
“사무관님도 여태 휴가 낸 적 없으시죠?”
지훈이 기억하기로 지난 2년 동안 호준이 휴가를 간 적은 거의 없었다.
“종종 내긴 했는데……. 매번 다른 일이 있었어요. 아니면 휴가계를 내고 출근하거나. 그래도 이번엔 잘 쉬었어요. 목요일까지면 충분히 쉴 것 같네요. 지훈 씨는 더 있다가 가죠?”
“연휴는 대체 휴일까지 계산해서 월요일까지인데 왜 그렇게 빨리 돌아가요?”
호준은 목요일에 먼저 떠나는 데 반해 지훈은 연휴를 꽉꽉 채운 다음 토요일에야 떠나는 일정이었다.
“그게……. 제가 갑자기 오느라고 남겨 온 일들이 좀 있습니다.”
굳이 지훈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호준의 휴대폰엔 곽 과장의 욕 메시지가 한 무더기였다. 지훈에게 차인 날, 호준은 밤새도록 청승맞게 찬 바람을 맞으며 걸어 다녔다. 그랬더니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져서 처음으로 병가를 냈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오후는 연차로 바꾸고 곧바로 비행기를 타러 떠났다. 이렇게 충동적으로 모든 일을 결정한 건 성인이 된 후로 처음이었다. 호준은 비행기에 올라타면서도 스스로에게 좀 놀랐었다.
그런 호준을 향해서 곽 과장은 국제 전화 요금에도 불구하고 전화 폭탄을 퍼부었다. 호준은 아무런 미련 없이 모든 국제 로밍을 차단해 두었다. 하지만 굳이 메일함을 열어 보지 않아도 주말부터 나가서 일을 따로 하지 않으면 감당 못 할 업무량임을 직감했다. 물론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진 절대로 열어 보지 않을 작정이었다. 제아무리 일벌레인 호준이라도 지훈과 단둘이 다니는 이 휴가는 좀 즐기고 싶었다.
“하긴, 사무관님이 저보다 하루 먼저 왔으니까요. 근데 미리 여행 준비해 두신 거 아닌가요? 그래서 그 전까지 일 되게 빨리 하신 줄 알았는데요.”
그래서 자신을 업무로 쪼아 대며 달달 볶은 것 아니냐는 지훈의 힐난이었다. 호준은은 애써 태연한 척 대꾸했다.
“갑자기 항공기 일정이 바뀌어서요.”
지훈은 호준의 어설픈 변명에 별다른 수상함을 느끼지는 않은 듯했다. 지훈도 경유하는 항공기 일정이 바뀌었던 터라 충분히 공감했다.
찔리는 게 있었던 호준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화제를 돌렸다.
“금요일 일정은 아직 안 정해 뒀죠? 미겔한테 부탁해 놓을게요.”
“하루는 그냥 혼자서 다녀도 괜찮아요. 그나저나 사무관님하고 여행 다니는 건 이제 3일 남았네요.”
지훈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말하고 나서 자기도 놀랐다. 내가 아쉬워하다니? 휴가까지 써서 늘린 연휴는 굉장히 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일단 우루과이는 한국에서 너무나 먼 곳이었다. 오가는 데에만 시간을 꽤나 소모했다. 정작 여행 일정 자체는 그렇게 길지도 않았다. 게다가 생각보다 계획적이고 진취적인 여행 가이드를 만나 버린 탓에 알차게 일정을 보냈다.
“저랑 헤어지는 게 아쉬워요?”
호준이 농담조로 묻자 지훈은 코웃음을 쳤다. 아쉽기는 개뿔. 완전 신난다!
“조금?”
지훈은 입을 열어 놓고는 또 후회를 했다.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왜 또 반대로 말하느냐고! 이놈의 입이 또 오두방정을 떨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주 조금은 아쉬웠다. 같이 있는 시간들은, 즐겁고 기분 좋았다. 회사 밖에서 만나는 정호준이라는 사람은 같이 다니면 재밌고 또 다정한 사람이었다. 일할 때의 악랄한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게다가 지훈은 살면서 자기한테 이렇게 잘해 주는 ‘남자’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물론 상대가 자길 좋아한다는 것도 알지만 그 사실이 불쾌하지 않은 건 그 상대가 자신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정말로 잘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감정의 심연이 얼마나 진중한지도 이젠 알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사무관과 공공 기관 직원으로서 업무를 통해서 만날 테고, 그러면 서로 이런 기분으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전에 호준이 말했던 것처럼 둘 사이에 다시 위계가 놓일 테니까. 그렇게 되면 지훈이 호준을 대하는 감정도 예전으로 돌아가게 될 테다. 게다가 여기서 만나서 놀았던 것도 돌아가면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으니, 이렇게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면서 유쾌하게 수다 떠는 시간은 다시 안 올지도 모른다. 그 점은 조금 아쉬웠다.
분명 우루과이 올 때만 해도 정호준만 생각하면 치를 떨었으면서 며칠 사이에 이렇게 심경의 변화가 생기다니 우스운 일이었다. 지훈은 스스로에게도 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호준은 그런 지훈의 대답을 오해했다.
“설마 아직 저 덜 때렸어요?”
“그걸로 어림도 없죠. 아직 한참 멀었어요. 항상 뒤통수 조심하세요, 사무관님.”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사실 일상에서의 사소한 고통을 기원하는 지훈의 복수심도 점점 흐릿해져 갔다. 아직 지훈이 목표한 복수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무래도 어제 일의 여파가 컸다. 어쨌든 어제 일은 굉장히 고마웠기 때문에 과거의 원한들이 상쇄되는 것 같았다.
나 이렇게 어설픈 마음으로 복수해도 되는 걸까? 지훈은 복수의 대상인 호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제 와서 좀 괴롭혀 보려니까 왜 이렇게 잘해 주냔 말이다. 지훈은 괜히 호준을 원망했다.
호준이 뭐라 말을 하려는데 또 바람이 불어왔다. 테이블 위의 냅킨이 바람에 휘날려 가 버렸다. 지훈이 무심코 그걸 잡으려고 팔을 뻗었는데, 호준은 손을 내밀어 가로막았다.
“그냥 놔둬요. 어차피 못 잡아요.”
그 바람에 호준의 얼굴이 지훈과 가까워졌다. 팔을 들어 올리면 바로 호준의 얼굴에 닿을 거리였다. 마침 방금 전 불어온 바람 때문에 호준의 앞머리도 산발이 되었다. 지훈은 이번에는 못 참고 그냥 팔을 올려 호준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돈해 주었다. 손가락에 감기는 머리카락이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지훈의 손이 머리에 닿자 호준은 멈칫했다. 지훈의 기다란 손가락이 머리카락과 이마에 닿을 때마다 호준은 한껏 긴장했다. 당황해서 지훈의 턱만 쳐다봤다. 차마 가까이 다가온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사무관님, 아침에 머리 감았죠?”
살짝 설렐 뻔했는데 지훈의 엉뚱한 질문에 호준은 긴장이 풀려서 웃어 버렸다.
“당연히 매일 감아요.”
지훈은 호준의 머리 모양을 다듬어 주고 다시 손을 떼어 냈다. 그러곤 호준을 빤히 쳐다보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아……. 함부로 머리 만져서 미안해요. 머리가 흐트러져서요.”
“괜찮아요. 고마워요.”
호준의 얼굴은 한 박자 늦게 빨갛게 달아올랐다.
지훈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이상하게 호준의 앞머리가 계속 신경 쓰였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냥 머리카락이 엉켜 가지고 그런 거예요.”
“알아요. 방금 바람 불었잖아요.”
이상하게도 호준이 지훈을 달랬다.
“바람도 계속 부는데 그만 일어날까요?”
호준의 제안에 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지훈은 자신의 손에 땀이 찼다는 걸 깨닫고 바지에 손을 닦았다. 아까, 머리카락 만져 줄 때.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간밤의 꿈이 또 생각나서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꿈에서 뽀뽀는 결국 안 했지만, 호준의 얼굴이 딱 그 정도로 눈앞까지 다가왔었으니까. 그 꿈이 생각나는 바람에 지훈은 당황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지훈은 이제 자신이 호준에게 설렌다는 걸 부정하기 어려웠다.
* * *
그 후로 지훈은 별로 말도 안 하고 가는 곳마다 별다른 감탄도 없이 호준의 카메라로 풍경 사진만 왕창 찍었다. 여행에서 지훈은 호준의 카메라를 자기 것처럼 가지고 다녔는데, 호준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원래 잘 종알거리는 편인 지훈이 오늘따라 사진에만 집중했다. 호준이 몇 번 가볍게 말을 걸었지만 지훈은 시큰둥했다. 셀카를 찍을 타이밍이라 사진 찍을 거냐고 제안을 했는데도 별 관심이 없었다.
호준은 아무래도 수상한 지훈을 보니 걱정되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자신의 죽음을 기원하거나 말꼬리를 잡고 시비를 걸거나 기습적으로 등짝을 때리는 게 나았다. 저렇게 암말 안 하고 있다가는 저번에 태종시에서 한번 제대로 폭발했던 것처럼 또 뭔가를 터뜨릴 것 같았다.
지훈의 머릿속은 이미 터질 것 같았다. 오늘따라 호준과 말을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듯했다. 그래서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지훈은 결단코 호준이 점점 좋아진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저 사람의 얼굴이 정말로 잘생겼다거나 같은 남자가 봐도 몸이 괜찮다는 건 생각하기 싫었다. 어제 업혔을 때 기댄 등이 꽤 탄탄했다는 것도, 아까 머리카락에서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는 것도, 검은 머리카락이 되게 부드러웠다는 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저 사람이 자길 좋아해서 자기한테 정말로 잘해 주는데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잘해 줄 사람일 거란 사실도, 이 여행이 끝나면 이런 다정함도 끝이라는 사실도 생각하기 싫었다. 저쪽이 먼저 뽀뽀하자고 하면 자신이 한 번은 허락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기 싫었다.
지훈은 뇌에 힘을 주고 일부러 딴생각에 집중했다. 정규직 됐으니까 나도 이제 다시 소개팅 열심히 해서 연애하고 결혼해야지. 안 그래도 외할머니가 가모장제 집안에서 대도 못 잇는 남자는 빨리빨리 나가 버리라고 했으니 이제 지훈은 부지런히 다음 인생 스텝을 밟을 차례였다. 학교 남자 선배들, 회사 남자 선배들 다들 결혼해서 애 낳고 잘만 산다.
물론 남자 선배들 말에 따르면 결혼하려면 집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훈도 한국 남자의 인생 최종 목표인 결혼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제 내 집 마련을 시작해야 한다. 공공 기관 정규직의 작고 귀여운 월급을 한 100여 년 동안 열심히 저축하면 22세기쯤에는 대출 끼워서 소박한 내 집 마련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훈은 내 집 마련 성공 전에 정년퇴직할 가능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지훈의 옆에서 열심히 여행 가이드를 하는 호준은 이미 집이 있었다. 물론 대출이 반이 넘는 것 같지만 재테크할 땐 대출도 능력이라고 했으니 능력자이긴 했다. 지훈은 서른셋의 나이에 본인 명의 주택을 보유한 호준이 부러웠다.
예전엔 당연히 일등 신랑감인 호준이 결혼을 염두에 두고 큰 아파트를 샀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게이라는 걸 알고 나니 달리 보였다. 앞으로 결혼도 안 할 거고 야근하느라 집에서는 잠만 잘 거면서 왜 그렇게 큰 아파트를 산 걸까? 일부러 딴생각을 하려 했는데, 생각의 끝은 결국 호준에게 닿아 버렸다.
“사무관님은 왜 그렇게 큰 아파트를 샀어요?”
지훈이 간만에 입을 열었는데 하는 말이 고작 아파트 얘기라서 호준은 당황했다.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굳이 아파트 얘길 해야 되나? 하필 둘이 걷고 있는 곳은 구시가지 안쪽의 골목길이었다. 주변에 아파트는커녕 포르투갈풍의 오래된 건물과 돌이 깔린 도로뿐이었다.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요?”
“그냥 궁금해졌어요. 사무관님은 결혼도 안 하실 거잖아요.”
“왜죠? 저도 언젠가는 할 수도 있겠죠. 나중에 법이 바뀔 수도 있잖아요. 외국에서 혼인 신고를 할 수도 있고요.”
더 큰 대한민국을 꿈꾸는 5급 공무원 호준을 보며 지훈은 자신의 편견을 깨달았다. 하긴, 이제 게이도 일등 신랑감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지훈은 그 일등 신랑감이 자기 신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물론 결혼이 가능해도 상대가 싫다고 하면 안 할 겁니다.”
호준은 지훈을 힐끔 쳐다보며 덧붙였다. 아파트 분양받을 때만 해도 지훈에게 아파트로 어필해 볼 생각이 조금 있었다. 물론 호준은 청혼할 계획을 세우기 전에 자신이 대차게 까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먼저 고민했어야 했다.
“설마요. 사무관님은 ㅇㅇ부 일등 신랑감인데 누가 결혼하기 싫다고 하겠어요.”
“아마……. 저 때문에 계약직일 때부터 일을 너무 많이 해야 했던 사람?”
호준이 지훈을 빤히 보면서 말했다. 당사자인 지훈이 머쓱해져서 헛기침을 했다.
“사무관님 저한테 설마 청혼까지 하려고 했던 건 아니죠?”
지훈이 설마 하고 찍었는데 얻어걸려 버렸다. 미래 계획을 딱 들켜 버린 호준은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사실을 실토했다.
“한 5년 뒤에 천천히 할 생각이었는데요.”
호준의 말에 놀란 지훈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저 인간, 내년이 아니라 5년 뒤에도 날 좋아할 작정이었다니! 호준의 계획은 정말이지 알면 알수록 놀라웠다. 저러다가 10년 뒤엔 애도 낳자고 할 판이다.
“설마 그것도 계획을 세워 놨었어요?”
“네.”
계획을 안 세우면 도대체 뭘 하냐는 표정으로 호준이 지훈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지훈은 정호준이 지독한 계획 변태라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지훈은 문득 궁금해졌다. 계획 변태 정호준은 정말 모든 걸 계획하는 걸까? 사랑하는 감정까지도?
“그럼 사무관님은 애초에 저 좋아한 것도 계획한 거였어요?”
“사람 마음을 어떻게 계획해요. 정신 차려 보니까 좋아하고 있었어요.”
호준의 대답은 의외였다. 저 계획 변태가 자신을 계획 없이 좋아했다니. 지훈은 그 사실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정신 차려 보니 자길 좋아하고 있었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사무관님은 마음도 계획하실 거 같았는데요. 5년 뒤도 미리 준비한다면서요.”
“제가 무슨 로봇인가요. 보통 2년 동안 좋아하면 5년 뒤에도 계속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이제 그 계획은 전면 폐기됐으니까 걱정 마요.”
전면 폐기라는 말에 지훈은 또 놀랐다. 은연중에 호준이 계속 자길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5년 뒤에도 좋아할 계획일 정도로 진심이었다면서, 이렇게 쉽게 전면 폐기가 가능한 일이었던 걸까?
“그럼 이제 저를 안 좋아하실 건가요?”
“힘들겠지만 마음은 접어야죠. 저 싫다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예의도 아닐뿐더러 심하면 범죄잖아요. 이번 여행 끝나면 마음 정리 할 거고, 지훈 씨한테도 일절 연락 안 할 테니까 너무 걱정 마요.”
하긴 왜 안 만나 주냐는 이유로 홧김에 저지르는 범죄가 많은 세상 아닌가. 그냥 쫓아다니기만 해도 스토킹 범죄다. 지훈이 공식적으로 찼으니 호준은 마음을 접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지훈은 갑자기 서운해졌다. 원래대로라면 호준이 자신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겠다는 말에 안도해야 할 텐데. 지훈은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아쉬웠다.
“그럼 여행 다니는 동안은 저를 계속 좋아할 건가요?”
지훈의 질문에 호준은 걸음을 멈추었다. 지훈도 같이 걸음을 멈췄다. 호준은 정색하며 지훈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훈 씨. 불편하면 그냥 지금부터 따로 다닐래요?”
호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지훈의 실수였다. 순전히 충동적으로 내뱉은 질문이었는데, 호준이 이런 식으로 오해할 줄은 몰랐다. 지훈은 이제 호준과 여행을 따로 다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호준의 오해를 풀려면, 계속 같이 다니자는 말로는 부족했다.
“제 말은…… 전 안 불편하거든요. 그러니까…….”
지훈이 우물쭈물하며 할 말을 생각하는 사이에 호준이 말을 잘랐다.
“사실 제가 불편해요. 솔직히 계속 같이 다니니까 마음 정리 하기가 점점 힘들어져서. 제가 이러면 지훈 씨는 아무래도 부담스럽겠죠. 같이 다니는 건 여기까지 합시다.”
지훈이 불편한 걸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호준은 자신이 이 관계를 중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마음이 급해진 지훈은 얼른 수습하려 했다.
“아뇨. 안 돼요. 계속 같이 다녀요. 며칠 남았는데…….”
“진심이에요?”
지훈의 태도에 오히려 호준이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지훈이 같이 다니자고 매달리기까지 할 줄은 몰랐다. 자길 싫어하는 거 아녔나? 그런데 뒤이은 지훈의 말은 더 놀라웠다.
“그러니까 사무관님, 여행 다니는 동안엔 계속 저 좋아해 주세요. 마음 정리 하지 말고.”
말을 하고 나서야 지훈은 자신이 그걸 원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도.
“…….”
“…….”
호준은 한참 말이 없었다. 타인의 감정을 섣불리 넘겨짚기 싫었던 호준은 지훈이 말을 덧붙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지훈은 자기가 말해 놓고 자기가 놀란 듯 더는 말이 없었다.
한참 만에 지훈이 먼저 눈을 깜박였지만, 호준은 이 눈싸움에서 자기가 진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훈 씨. 계속 좋아해 달란 건 무슨 뜻이에요?”
“그,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자기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생각해 보던 지훈도 혼란스러워졌다. 계속 좋아해 달라니, 듣도 보도 못한 헛소리였다. 그냥 좋아한다는 말보다 더 이상했다. 차라리 그냥 좋다고 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도 없었다. 지훈도 명확하게 알 수 없었으니까. 상대가 좋긴 한데, 좋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는 오랫동안 진심이었으니까, 자신은 좋다는 말을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지훈은 자기가 일단 생각을 해 봐야 하니 상대가 떠나기 전에 붙잡아 두고 싶었을 뿐이었다.
“지훈 씨. 지훈 씨? 괜찮아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던 지훈에겐 호준이 하는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생각은 정리가 안 되는데, 상황은 점점 파국으로 치달았다. 마음도 급해졌다. 내가 왜 그랬지? 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상황에 너무 압박감을 느껴 버린 지훈은, 그만 모든 고민을 몇 단계는 뛰어넘어 버린, 가장 해선 안 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저…… 저 아무리 그래도 사무관님이랑 섹스는 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