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말 완전히 정신이 깨어났을 때는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재하는 멍한 눈으로 암막 커튼이 아닌 직물 사이로 비치는 오후의 햇빛을 보며 살짝 멍해졌다.
‘대체 몇 시야….’
다리 사이가 아릿하니 얼얼했다. 왼쪽 가슴팍에는 잇자국까지 있었다. 몸 상태를 보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깨어난 곳이 몇 년 만에 들어와 보는 제 방임을 천천히 눈치챘다. 아침에 일어나 장태건에게 욕실로 끌려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방이었는데, 왜 이곳에 있는 건지 멍한 눈을 깜빡이다가 문득 그의 침대가 못 쓰게 되어 버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떠오르자마자 재하의 낯빛이 붉어졌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침대 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재하는 어쩐지 태건의 얼굴을 못 쳐다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해도 옆에서 잠들었던 사람이 없어졌는데 찾아보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라, 재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 윽-.”
침대에서 내려오기까지가 무척 힘든 일이었지만 말이다. 다리 사이가 후들거리고 벌리고 있던 골반은 근육통 그 이상의 것으로 걸을 때마다 아팠다.
유연성이 떨어지는 알파의 몸인 데다가 좁은 골반 때문에 태건의 것을 받기가 힘들었을 텐데, 한두 번도 아니고 밤새 그 짓을 했으니 오죽하랴. 재하는 고개를 절레 젓고는 방에 딸린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별거 전, 평창동으로 짐을 다 보내 놓은 탓에 입을 것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하의 사이즈에 맞는 옷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속옷을 찾을 기력이 없어 그냥 품이 넉넉한 홈웨어 팬츠와 부드러운 면 소재의 긴소매 티셔츠를 꺼내 입은 재하가 이마를 쓸어 앞머리를 넘겼다.
이발할 때가 됐는지 정리하지 않은 머리가 눈을 찔러 가려웠다. 재하는 그대로 천천히 걸으려 노력하며 방을 나섰다. 그리고 거실로 나가자마자 상의를 벗은 채 검은색 트레이닝 팬츠를 입은 태건이 푸시업을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두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한 손만 바닥에 대었다가 일정 숫자를 채우면 바닥에 짚은 손을 바꿔서 하는 듯했다. 재하는 약간 질려 버렸다.
저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체력인데 장태건은 정도가 심한 것 같았다. 그런 재하의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태건이 일어나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수건을 집어 땀을 닦으며 재하에게로 걸어왔다.
“밥 먹자.”
그는 밥 먹자고 말한 주제에 막상 행동하기는 재하의 뺨에 입을 맞출 뿐이었다. 방금까지 운동했던 알파에게서 느껴지는 열기와 옅은 페로몬이 재하의 피부 위에 떨어지듯 묻었다.
그가 일부러 페로몬을 묻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재하는 살짝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페로몬은 왜….”
“찜해 놓은 거야. 씻고 올 테니까 앉아 있어, 밥 먹게.”
그러고는 그대로 그를 지나쳐 1층의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재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약간 붉어진 목덜미를 문지르다가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는 아직 상을 차리지 않았을 뿐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자미살을 넣고 끓인 미역국과 방풍나물 무침, 양지로 만든 장조림과 마구이였다.
재하는 약간 후들거리는 하체를 무시하려 노력하며 반찬들을 그릇에 담아 주방의 아일랜드 식탁 위에 두고는 국을 퍼 담으려다가 멈칫했다. 식을 테니 태건이 나온 뒤 옮기면 좋을 것 같았다. 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멍하니 식탁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며칠이더라. 장례식 이후로 끌려와 꼬박 하루 넘게 침대에만 있었기 때문에 날짜 감각이 희미했다.
혼자 있으려니 생각이 많아졌다. 주로 김란희에 대한 것들이었다. 저를 오메가로 만들려는 목적은 뻔했다. 경영 승계의 첫 자리에 이재호를 올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몇 년간 밥에 독을 타듯 오메가로 형질 변환을 시키는 약을 타다니. 지독했다.
자세한 사정은 태건에게 물으면 말해 줄 테지만 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이재하는 알파로 태어나 알파로 자라 당연하게도 그 상위 계층의 특수성을 누리고 있었지만, 성격 자체가 거기에 연연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몇 년 전 납치를 당했을 때도 교육받은 내용대로 조용히 있기 위해 강간당할 위험을 불사했던 것도 그런 성격의 일환 중 하나였다.
이재하의 정신을 깨트릴 수 있는 건 정체성의 변화 같은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에 의해서 상처받는 법이다. 이재하에게는 그가 우성 알파라는 사실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우울해할 건 없었다. 병원에 가서 검진받기도 전이니 제 상태가 명확하게 어떤지도 몰랐다. 그러니 굳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받은 시비를 그냥 넘길 정도로 무골호인은 아니었다. 이재하는 가만히 앉아 김란희에 대한 처벌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현재는 이익형의 부인이고 이재하의 동생으로 입적되어 있는 이재호의 친모였다. 이익형은 걸릴 것이 없지만 이재호는 약간 걸렸다.
보나 마나 김란희가 뭘 한 건지 이재호는 몰랐을 것이다. 알았다면 그 성격에 티가 나지 않을 리 없었다. 나중에 알았을 수는 있지만, 일이 벌어지던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다.
무지조차 죄악이라고는 하지만, 이재호에게 그렇게까지 날 선 잣대를 들이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김란희의 처우를 어떻게 할지가 고민되는 것이다. 동생의 친모이니 어디까지 매장시켜야 할지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그녀에게는 더 불행일지도 몰랐다. 분노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심한 철퇴는 더욱 묵직하게 날아오는 법이다. 이재하가 한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목덜미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입술이었다.
“아….”
“가만히 있으랬더니 밥을 또 차려 놓으셨어. 그럼 날 대체 어디에 부려 먹을래?”
“…밥이랑 국은 안 펐습니다. 태건 씨가 가져다주세요.”
“고작 그거야? 더 말해 봐. 뭐 해다 줄까.”
태건이 슬쩍 웃는 입꼬리로 저를 돌아본 재하의 턱을 잡고 그대로 고개를 내렸다. 입술이 맞닿기 전부터 혀를 살짝 내민 태건이 재하의 입술 사이로 차갑게 식혀진 살덩이를 밀어 넣었다.
“음….”
저절로 살짝 앓는 소리가 났다.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이제는 아예 자동 반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었다.
태건이 한 손을 내려 재하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다.
“우리 매트리스 사러 가야 합니다. 그거 버려도 고물로도 안 주워 갈걸.”
“…그 정도로 젖었습니까?”
“응. 당신이 씹물 쌌잖아. 오메가한테 박았으면 그대로 임신할 양이던데. 아쉬워?”
태건이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살짝 끼쳐 오는 바다 내음에 멍한 눈을 깜빡이던 재하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뭐가 아쉬운 겁니까?”
재하의 그 말에 태건이 픽 웃었다. 눈꼬리까지 휙 휘어지는 웃음이라 그가 즐거워하는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뭐가 즐거운 걸까. 궁금했지만 그가 좋은 게 저도 좋은 거라 살짝 따라 웃었다.
“…이왕 버릴 거 한 번 더 하고 나갈까?”
“더는 못 합니다.”
드물게 단호하게 대답한 재하를 보며 쩝, 입맛을 다신 태건이 앉아 있는 그의 등에 어느새 발기한 제 성기를 슬쩍 대어 뭉근히 문지른 뒤 식탁을 지나쳐 냄비가 얹혀진 스토브를 향해 갔다.
제 것도 살짝 힘을 받은 터라 약간 난감해진 재하는 일어서 수저 세트를 챙겼다. 국을 담다 말고 그런 재하를 돌아본 태건이 쯧 혀를 찼다.
“머슴이 하게 두셔요. 뭔 챙겨 줄 시간을 안 주네.”
“음식은 누가 한 겁니까?”
“마누라가요, 공사가 다망해 가지고요, 직접 하고 싶었는데 명순이 새끼더러 밥 차리라 하고 옆에선 훈수만 뒀어요. 왜요, 내가 직접 한 거 먹고 싶어요?”
수저를 놓은 뒤 식탁을 짚은 채 태건의 말을 듣고 있던 재하가 피식 웃었다. 머슴이 한다고 해 놓고 밥은 명순이 차렸다는 말이 웃겼기 때문이다.
그가 웃자 놓칠세라 돌아본 태건이 국그릇들을 식탁 위에 둔 다음 그대로 재하에게 다가와 입술을 붙였다. 졸지에 식탁과 장태건 사이에 갇힌 재하는 그의 어깨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태건이 그를 밀어붙이듯 추격한 데다가, 한술 더 떠 제 두 손으로 재하의 뒤편 식탁을 짚어 그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음, 으음….”
혀가 자꾸 입 안을 버릇없게 헤쳤다. 꼿꼿하게 세운 끄트머리로 입천장을 긁을 때마다 허벅지 안쪽 근육이 혹시나 저더러 다리를 벌리라 할까 두려운지 심이 세워졌다. 자꾸 긴장하려는 근육들을 진정시키랴, 쫓아오듯 입 안을 훑어 가는 장태건을 버티랴 저절로 신음이 샜다.
장태건이 그런 재하의 숨구멍만 열어 주듯 입술을 붙인 채로 혀만 거둬 간 뒤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뒤에 더 빨걸. 씹물 맛 벌써 그리워서 밥이 안 넘어갈 것 같아.”
“…진짜, 장태건 씨.”
재하가 나직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태건이 입술을 붙인 채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게 맞닿은 입술을 통해서 느껴졌다. 그가 키득키득 웃자 재하 역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태건이 아예 입술을 떼어 낸 다음 그의 허리를 끌어당겨 고간부터 아랫배까지 맞붙게 한 다음 다른 손으로는 재하의 앞머리를 넘겨 주었다. 속옷을 입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어 신경 쓰였다. 맞붙은 하체를 두고 그저 얇은 홈 웨어 팬츠만 입은 재하의 성기 위로 태건의 묵직한 것이 그대로 와 닿았다.
그러나 머리카락을 넘겨 주는 손길은 다정하기만 했다. 기다랗고 상처 가득한 손가락 사이로 재하의 다갈색 머리카락이 스쳤다.
“이발 어디서 해요.”
“아, 보통 가는 곳이 정해져 있는데, 옛날에 전자 다닐 때 비서실 과장이 추천해 준 곳 안 옮기고 꾸준히 다니고 있습니다. …태건 씨는요?”
재하 역시 그가 궁금했다. 태건의 머리 길이는 들쑥날쑥한 편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조금 짧은 편이었다.
결혼식에서는 앞머리를 넘긴 단정한 머리를 했는데, 오히려 굵은 눈썹과 단단해 보이는 눈썹뼈가 드러나 단정하다기보다는 한눈에도 그쪽 계열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었다.
장창식의 장례식 때는 목덜미를 덮을 정도로 뒷머리가 길었는데 역시 머리를 넘긴 탓에 드러난 이마가 시원하고 잘생겨 보였었다. 전보다 거친 느낌은 없고 오히려 머리가 길었는데도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그래도 날 선 분위기는 감출 수가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결혼식의 장태건이 묵직한 도끼날 같았다면, 장례식의 장태건은 장인이 수천 번 담금질해 차가운 우물물을 뿌려 식힌 장검 같다고 해야겠다.
장례식에서 지금까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태건의 머리는 꽤 긴 편이었다. 정사 중에도 그의 머리카락이 다리 사이를 덮어 간지러울 때가 많았다.
“난 명호 새끼가 잘라 주는데.”
“…미용사분 성함이 명호 씨입니까?”
의아해 묻자 장태건은 뭐 때문인지 모르게 살짝 풀린 눈으로 재하의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며 그의 물음에 착실히 대답해 주었다.
“이재하 씨가 창식이네 살 때 그 밑에서 맨날 지키고 있던 놈. 걔 이름이 김명호입니다. 이발병 출신이라던데.”
조부의 집을 두고 창식이네라고 표현하는 말본새에 놀라야 할지, 무뚝뚝한 얼굴로 별채의 차고지를 지키고 있던 이가 이발병 출신이라는 것에 놀라야 할지 모르겠어서 입을 다문 재하는 그냥 고개나 끄덕였다.
그러다 충동적으로 물었다.
“그럼… 다음엔 저 가는 곳 가서 같이 자를까요.”
재하의 말에 멍하게 풀려 있던 눈이 살짝 또렷해졌다. 장태건은 그대로 재하를 끌어안더니 원래도 맞붙어 있던 고간을 한 번 더 뭉근하게 문질렀다.
“좋아요, 씨발. 얼마나 좋으냐면 쌌네, 또.”
그 말에 재하는 저도 모르게 아래를 내려 보았다. 굳이 눈으로 확인할 것도 없이 잠시 뒤 속옷을 입지 않은 재하의 성기 부근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태건이 사정하는 바람에 앞섶끼리 붙어 있다가 물기가 옮겨 묻은 것이다.
재하는 살짝 아연한 안색이 되었다. 태건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불쌍한 척 말을 이었다.
“조루에 지루 새끼라고 내다 버리는 거 아니지. 버리기만 해 봐, 이재하 씨 본가에 불 지르고 자살한다.”
“…내가 왜 태건 씨를 버립니까.”
기가 막혀 대답하면서도 재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는 걸 막지 못했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사정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것이 있어 입을 열었다.
“혹시…. 내가 더 못 하겠다고 해서 참은 거예요?”
태건은 재하를 끌어안고는 그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재하의 페로몬을 들이마시며 대꾸했다.
“음, 그것도 있고. 안 된다길래 머릿속으로 딸 쳤더니 금방 가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자위를 머릿속으로 한다는 말일까. 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재하는 태건에게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냥 그의 손목을 잡아 욕실로 향했다. 둘 다 씻어야 아침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샤워를 하며 한 번 더 일을 치른 후에는 기껏 담은 국이 다 식어 다시 덥히는 수밖에 없었다.
나란히 앉아 점심시간이 다 지나서야 아침을 먹었다. 먹는 와중에도 장태건이 식탁 밑으로 발을 뻗어 재하의 다리 사이를 쿡쿡 찔러 대서 사레가 들릴 뻔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며칠 전처럼 나란히 서서 양치를 하고 외출을 결정했다. 둘 다 머리를 자르고 매트리스를 사러 갈 생각이었다.
생각해 보니 외출복이 없다고 하려던 참에 초인종이 눌렸다. 방에서 무언갈 하고 있는 태건 대신에 인터폰을 들여다본 재하가 문을 열었다. 명순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나온 태건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겁도 없이 마누라도 없는데 혼자 문 막 열어 주고 그러면 되나. 누가 당신 예쁜 거 알아보고 뒤 따먹고 토끼면 난 그 새끼 죽이고 감방 갈 건데, 옥바라지 자신 있어?”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어이가 없어 대꾸하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고 명순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형부님.”
또 예의 그 이상한 호칭이 몇 년 만에 돌아왔다. 재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태건이 커다란 캐리어 세 개를 들고 현관으로 들어온 명순을 향해 손을 저었다.
“가, 빨리. 눈치 없이 신혼집에 찾아오고 지랄이야.”
“네, 이것만 두고 가겠습니다. 형부님, 이거 평창동에서 챙긴 물건들입니다. 살펴보시고 빠진 거 있으면 저나 정길이한테 말해 주시면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명순 씨.”
고생한 명순에게 인사하러 현관으로 향한 재하가 살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그 허리를 끌어와 뒤에서 껴안은 장태건이 짜증을 냈다.
“가라니까.”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명순은 순한 얼굴로 연신 인사를 하더니 현관을 나섰다. 문이 닫힌 뒤에도 저를 껴안고 있는 태건에게 재하가 물었다.
“고생했는데 명순 씨 차라도….”
“차는 무슨. 박명순 소주밖에 안 마셔요. 그리고 당신 지금 명순이한테 맨살 보였잖아.”
“맨살이요?”
벗은 적이 없는데 무슨 맨살인가 싶어 가만히 서 있는데 태건의 시선이 툭 꺼지더니 재하의 실내용 슬리퍼를 신은 맨발을 바라보았다.
재하는 더 참지 못하고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태건이 뭘 웃어, 하고 심드렁하게 내뱉는 게 들렸지만 터진 웃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4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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