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외전
태영은 한쪽 구석에 앉았다. 시끌벅적한 술자리에는 온통 낯선 이들뿐이었다. 처음 선후배가 만나는 자리, 신입생이라면 모두 참석해야 한다는 불호령에 피할 수가 없었다.
“술잔 돌려, 자리 바꾸고.”
“아, 저 또 마셔요?”
“게임 진짜 못하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시끄러웠다. 태영은 미간을 좁힌 채 그저 이 지겨운 시간이 끝나기를 바랐다. 그들은 무어가 그리 즐거운지 잔뜩 붉어진 얼굴들을 하고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시끄러워.’
따분하고 지겨웠다. 별 호응이 없는 태영의 주변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곰처럼 덩치 큰 남자 혼자 테이블에 앉아 술잔만 물끄러미 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띄었겠지만, 그 누구도 관여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때, 사람들의 중심에 앉았던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 취한 듯 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말이다.
태영은 사람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나, 어쩐지 그에게만은 눈길이 갔다. 그 남자의 뒤를 따르는 몇몇 악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 술집을 나섰다.
“저기.”
벌써 어둠이 내린 하늘은 컴컴했다. 태영은 비틀거리며 골목으로 들어가는 남자를 따랐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는 자신을 쫓아온 태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 신입생이냐?”
“네.”
선배였던가. 처음 보는 얼굴이니 모를 수밖에 없었다. 외모만 봐서는 신입생인가 생각했는데.
피부는 희고 이목구비는 오밀조밀했다. 한눈에 봐도 왜 그가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뭐가.”
희한한 소리를 한다는 표정이었다. 태영의 눈에는 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삿된 것들이 보였으나, 그는 전혀 모르는 듯했다.
‘역시 괜한 참견이었나.’
또 이상한 놈 취급을 받을 게 뻔했다. 그를 보던 태영의 시선이 내려갔다. 바닥으로 향한 고개 덕분에 뒷덜미가 서늘했다. 태영은 머쓱해진 목덜미를 손으로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아뇨, 그냥 술을 많이―.”
“야.”
그때, 얼굴 쪽으로 흰 손이 훅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몸이 주춤했으나, 그의 손길을 완벽히 피하지는 못했다.
그가 태영의 눈을 가리다시피 한 안경을 빼앗았다. 그래 놓고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성큼 다가와 수북이 내려온 태영의 앞머리를 손바닥으로 밀어 올렸다.
“아.”
“사람이랑, 얘기를 할 때는.”
“저기.”
“눈을 보고 하는 거야, 신입생. 알겠냐?”
늘 감추었던 태영의 눈동자가 그와 정확히 마주했다. 수려한 얼굴이 태영의 시야 가득 담겼고, 그 순간 늘 잠잠했던 맥박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저기 서, 선배.”
“어?”
손에 쥔 안경을 빙글 돌리며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름, 알려 주세요.”
얼굴이 붉어진 태영을 조용히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은재, 허은재.”
그것이 태영과 은재의 첫 만남이었다.
<귀접몽> 마침
2021.02.04.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