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완성
몸이 무거웠다.
주말 오후 얕게 든 낮잠처럼 몸이 꾸벅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깨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옅은 의식은 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깊게 빠져드는 무의식이 자신의 몸을 지배한 듯했다.
그런데, 분명 침대에 누였던 상체가 일어나 있었다. 은재는 순간 자신의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있음을 감지했다. 예전에 지하철 화장실에서 겪었던 것과는 또 다른, 명치 아래로 묵직하게 느껴지는 위화감이었다.
주변은 어스름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 익숙한 방 안에 놓인 침대 위였다.
곤히 잠든 태영의 곁에 자신이 상체를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아니,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 제 몸을 차지한 채로 움직이는 것은 은재가 아니었으니까.
낮은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고요한 적막을 깨는 제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음이 은재에게는 낯설었다. 알고 있는 노래가 아니다.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살……, 몸…….”
굳게 닫혔던 목구멍이 벌어지며 은재가 목소리를 내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는 소리가 비집고 나가자, 마지막 남은 의식이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살아 있는 몸이야.]
그때, 은재를 차지한 누군가가 말했다.
목소리마저 놈에게 빼앗긴다면 이제는……. 조금씩 먹혀드는 의식이 놈에게 채워지고 있었다.
‘안 돼, 제발.’
점점 자신이 갉아 먹힌다는 것은 무척이나 끔찍했다. 분명 이렇게 깨어 있는데도.
[하고 싶어. 뒤가 허전해. 싸고 싶어.]
[나도, 하고 싶어.]
[그럼 저 인간을 먹자.]
[은재]가 손을 움직였다. 바르게 누워 잠이 든 태영의 중심으로 손이 뻗쳤다.
얇은 파자마 바지에 흰 손가락이 툭, 걸렸다. 그 손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옷자락을 아래로 내렸다. 태영의 파자마와 속옷이 단번에 죽 내려갔고 두툼한 둔덕이 드러났다.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태영의 가슴께를 흐린 눈으로 바라보던 [은재]는 양쪽 입술을 둥글게 말아 올렸다. 텅 빈 눈동자 아래로 기이하게 올라간 입술 선이 살짝 벌어졌다.
“……고……, 싶어.”
힘이 없이 늘어진 태영의 성기를 쥐었다. 아직 반응이 없음에도 큰 부피감이 손안에 가득 들어찼다. 은재의 몸을 차지한 놈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기대감에 찬 목소리가 은재의 안에 울려 퍼졌다.
[먹고 싶어.]
[하고 싶어.]
[싸고 싶어.]
천박하기 그지없는 아우성들이 요동쳤다. 은재의 남은 의식이 그들을 막으려 발버둥을 쳤으나 상대조차 되지를 않았다. 마치 거대한 새장에 갇힌 느낌이었다. 촘촘한 철창 사이로 손을 내밀어 보아도 저 멀리 있는 놈들에게는 닿지를 않는.
‘제발! 진태영!’
은재가 놈들에게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는 사이, 어느새 은재의 몸은 태영 위에 올라탄 채였다.
[은재]는 무릎을 침대에 내리고 다리 사이로 태영의 몸을 두었다. 팔을 뒤로 뻗어 그의 중심을 더듬고는 조금 반응이 있는 듯한 그것을 손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빨리빨리빨리빨리.]
놈들은 지하철 화장실에서 겪었던 놈들과는 또 달랐다. 당시 놈들에게서는 그저 자신의 몸을 차지하고자 하는 악의만 느껴졌다면, 지금은 그저 색(色)을 탐하는 성욕밖에는 느껴지질 않았다.
‘……왜 하필, 이런 놈들이.’
[섰다섰다섰다.]
[할래할래할래할래할래.]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태영에게는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질 않았다. 규칙적으로 흘리는 숨소리 이외에는 미동도 없었으니까. 은재는 애타는 심정으로 진태영을 부르짖었지만, 그의 귀에는 가 닿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은재의 속옷과 바지까지 허벅지 아래로 내려갔고 반쯤 선 태영의 성기가 엉덩이 골 사이로 문질러졌다.
그들은 은재의 손을 이용해 태영의 양물을 쥔 채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벌거벗은 살갗에 그의 것이 비벼지자 찌릿한 성감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그간의 기억이 여실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은재의 몸에 새겨진 태영과의 경험은 쉬이 잊힐 만한 게 아니었다.
“―하아, 으응.”
결국 은재는 목까지 그들에게 침범당했고, 이내 목소리를 잃었다. 절박하게 외치는 고함은 명치 부근에서 산산이 부서진 지 오래였다. 이제는 은재 대신 은재의 몸을 차지한, 놈들이 내지르는 신음만이 허공을 채웠다.
서늘한 공기에 노출된 살덩이는 차가웠다. 놈들은 은재의 손으로 은재의 엉덩이를 벌려 내었고, 그 사이로 태영의 것을 무작정 밀어 넣었다.
아프다는 통증을 느끼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메마른 구멍 안으로 선단이 침범하자 놈들이 감탄 섞인 신음을 내질렀다.
“……뜨거워, 기분 좋아.”
아직 다 들어가지도 않은 태영의 양물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허리를 내렸다. 그것은 은재의 몸이었으나, 이제는 은재의 것이 아니었다.
“흐, 으읏……. 아아, 크, 크다.”
어둑한 그늘이 은재의 얼굴을 가렸다. 빛 한 줌 없는 방 안에는 끼익거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버겁게 들어차는 양물을 겨우 안으로 받아들이자 압박감이 내장을 가득 채웠다. 굴곡진 내벽이 태영의 것을 받아 내었고 그 뜨거운 것을 조여 물었다. 놈들은 반도 채 들어가지 못한 성기가 못내 아쉬운 지 몇 번이고 허리를 흔들었다.
“으응. 더, 더어…….”
은재는 제 몸이 스스로 허리를 흔들며 태영을 원하고 있는 자신의 몸뚱이를 넋 놓고 구경해야 하는 신세였다. 그렇다고 놈들이 느끼는 감각이 하나도 전해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미약하게나마 찌릿 전해 오는 성감에 의식이 멀어졌다.
그 와중에도 태영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정말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것인지 이제는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평소 이렇게나 깊게 잠들었던가. 은재가 조금만 뒤척여도 먼저 일어나 살피던 태영이었다. 그런데 은재의 안으로 그의 성기가 반쯤이나 들어갔음에도 의식이 없다니. 은재는 덜컥 혹여 놈들이 태영에게까지 무슨 짓을 한 것은 아닌지 겁이 났다.
“하아, 으응. 좋아.”
그때, 빈틈없이 맞물린 접합부가 살짝 떨려 왔다. 유연하게 휘어지는 은재의 허리가 천천히 앞뒤로 기울고 있었다.
결국, 놈들은 끝까지 넣는 것은 포기한 듯했다. 은재의 양손을 태영의 복부에 짚고 허리를 살짝 들었다가 다시 내려앉길 반복했다.
푹, 푸욱. 내장이 태영의 성기에 의해 쑤셔지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렸다. 어째서인지 은재의 안은 젖어 있었다. 마치 윤활제를 바른 것처럼 스스로 액을 내어 태영의 것을 적시고 있었다.
‘……말도 안 돼.’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데 확연히 젖은 아래에서는 물이 질질 새고 있었다. 덕분에 태영의 성기가 수월하게 미끄러져 들어갔고, 투명한 선액으로 그의 선단이 번들거렸다.
은재는 그 엉망진창인 광경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 침대에서 허리를 돌리는 자신과 그 아래에서 누워 잠든 태영이.
‘……싫어, 제발. 이런 건.’
“흐으, 으응. 좋, 하, 아앗, 응, 으응……!”
‘하지 마, 그만둬!’
“맛, 있어. 으응, 이거.”
‘내 입으로 그런 소리, 제발 하지 마…….’
혹시나 태영이 깬다면 그는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까? 만약, 못 알아본다면. 그래서 저 자식들이 떠드는 헛소리를 그대로 믿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감이 치밀었다.
놈들은 은재의 몸을 제멋대로 사용했다. 푹 찔러 넣은 성기를 꾹꾹 조이며 원을 그렸다. 저릿저릿한 쾌감이 조각난 은재의 의식에마저 전해질 정도였다.
구멍 안을 완벽하게 채운 양물은 그들의 희롱에 착실히 크기를 키워 가고 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가득 담긴 성기를 은재의 무게를 이용해 더욱 안으로 박아 넣었다.
“흐―, 으응!”
은재의 입에서 높은 교성이 터졌다. 그들은 게걸스럽게 침까지 흘리며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이어 침대 위에 꿇었던 무릎을 세우더니 쪼그려 앉는 것이다. 수치스럽게 벌어진 다리 사이로 꺼떡거리는 은재의 성기는 이미 복부에 닿을 만큼 곧추선 채였다.
빠지지도 않을 만큼 꽉 맞물린 접합부에 틈이 생겼다. 쪼그려 앉은 자세로 무릎에 반동을 주자 상체가 위로 들렸다가 아래로 처박혔다. 말 그대로 태영의 성기를 자위 도구 삼아 홀로 섹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쾌감만을 위한 몸짓이 이어졌다.
“응, 아. 좋……, 아으. 아읏, 응!”
점점 커져 가는 목소리는 은재의 것과는 달랐다. 여러 사람의 음성이 하나로 겹쳐진 듯한 목소리였다. 갈가리 찢어지는 음파가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
‘진태영, 제발! 제발 좀!’
은재는 새장의 문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리듯 절규했다. 조각 조각난 의식이 송두리째 흐트러질 즈음이었다. 이렇게 또 아슬아슬한 순간이 지나치고 나서야―.
“선배.”
태영이 눈을 떴다.
내내 감겼던 눈꺼풀을 열고 은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했다. 제 위에 쪼그려 앉은 채로 자신의 성기를 넣은 은재를 보고도 말이다.
‘진태영!’
놈들의 의식 안에 갇힌 은재가 태영을 향해 소리쳤다. 어찌나 반가운지, 그라면 분명 자신을 구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지난번에 그랬듯 그저 그가 깨어난 것만으로도 이 삿된 것들이 송두리째 흩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흐, 으응. 좋, 아, 으아, 하……!”
그런데, 어째서.
제 몸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놈들의 기척은 여전했다. 태영은 제 위에서 허리를 흔들며 교성을 질러 대는 낯선 은재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심지어 살짝 붉어진 그의 낯빛은, 그리고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마저 걸린 채였다.
‘진……, 태영?’
낯설었다. 은재는 그의 이런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늘 똑같았던 검은빛의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열기가 어른거렸고, 음험한 시선은 은재의 몸을 훑고 있었다.
“흐, 으응. 더 깊이, 아, 하아……!”
태영의 위에서 허리를 흔들며 신음을 내지르던 은재가 이내 푹 주저앉듯 둔부를 내렸다. 태영의 성기가 애널 안으로 반쯤 사라졌고, 찌릿한 둔통이 조각난 은재의 의식에마저 전해졌다.
‘읏! 으응……!’
의식과 몸의 연결이 끊어졌음에도 성감이 돋았다. 저릿한 극치감이 피할 수 없을 만큼 밀려왔다.
‘대체, 왜.’
왜 태영은 자신을 놈들로부터 구해 주지 않는 것인지. 파르르 떨고 있는 은재의 몸을 태영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읏, 흐응…….”
급격하게 좁아진 내벽이 흥분감으로 부풀었다. 우뚝 솟은 혈관까지 느껴질 만큼 태영의 것을 꽉 조였다.
다시, 또.
행위를 시작하려는 듯 은재의 몸이 들썩거렸다. 놈들은 태영이 두렵지도 않은지 그의 것을 쾌락을 위한 도구처럼 사용했다.
‘싫어, 진태영! 도와줘, 제발!’
눈물 젖은 호소가 그의 귀에 가 닿은 걸까. 내내 알 수 없는 얼굴로 놈들의 행동을 방관하던 태영이 팔을 뻗었다. 아쉬운 듯 찌푸린 눈썹 사이로 미간에 주름이 잡힌 채였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은재의 의식이 불안감으로 젖어 들었다. 이윽고 그 불안감이 의구심으로 바뀌기 직전, 태영의 손이 은재의 골반을 움켜쥐었다.
“흐아. 싫, 어―! 더, 더어―!”
순간, 놈들의 기척이 더 짙어졌다. 밀려나지 않으려는 듯 은재의 안에서 몸부림을 치며 악다구니하고 있었다.
소름 끼치도록 괴상한 소리가 은재의 목구멍에서 쏟아졌다. 내장 안에 진드기처럼 들러붙은 놈들이 강제로 뽑히는 듯 폭력적인 기척이 들었다. 그 역한 기운에 울컥, 토기가 쏠렸다.
“선배.”
그리고 다시 태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한 음성이 귓전에 울렸다.
그러나, 은재는 그의 말에 아무 답도 내지 못했다. 겨우 붙잡고 있었던 의지의 조각을, 흐릿하게나마 보이던 광경들을 놓치고 말았다. 사흘 밤낮을 놈들에게 시달렸던 그때처럼, 너덜너덜해진 의식이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 * *
한 통의 문자가 발단이었다.
은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태영의 집, 거실에 있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의 말대로 집 밖으로는 나가질 않았고 나갈 생각도 없었다. 그가 내준 평온한 시간을 제 손으로 깰 이유가 없었으니까.
문득 찾아오는 위화감과 불안함만 지운다면 부족할 게 없는 일상이었다.
드륵.
소파 옆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 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이렇다 할 친구를 만들지 않았던 은재에게는 딱히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시큰둥한 얼굴로 낮잠을 청하려던 차에 또다시.
드륵. 드륵. 드륵.
진동이 울렸다.
“아, 뭐야.”
은재는 슬슬 밀려오던 낮잠을 물리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스팸인가, 별 기대감도 없이 핸드폰을 들어 연락을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그런데, 문자가 여러 번 왔던 기록이 있었다. 최근에는 핸드폰을 보는 둥 마는 둥 내팽개친 날들이 많아 진동이 오거나 알림이 있어도 제대로 확인하지를 않았다. 태영과 있을 때는 핸드폰을 볼 시간도 잘 없었고.
은재는 무심한 눈으로 문자 기록을 확인했다. 윗부분에는 그저 욕설뿐이었다. 입에도 담기 힘든 쌍욕이 담겨 있었다.
“뭐야, 이 미친놈은.”
약간의 흥미가 동해 찬찬히 기록을 되짚자, 맨 위에 자신이 보낸 문자가 남아 있었다.
몇 월 며칠, 오후에 예약한다는 내용이었다. 은재는 그제야 이 문자를 보낸 이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전에 예약해 두고 가지 못했던 그 무당이었다.
[후회할 거다.]
[쉽게 안 떨어질 거다, 그거.]
[갈수록 악화될 거고.]
[평생 달고 살아라. 아마 잠도 못 자고 쪽쪽 빨려서.]
쌍욕 아래에는 저주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은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몇 개월을 기다려야 점을 볼 수 있다는 신통한 무속인이라더니 오긴커녕 연락도 받지 않아서 꽤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냥 무시해도 되는데, 조금 찝찝했다.
[사과드렸잖아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그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어요.]
정말 신통한 자라면 괜히 기분을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 어찌 됐든 그쪽도 귀신과 연이 닿아 있지 않겠는가. 괜한 꼬투리를 잡혀 괴롭힘이 더해지는 건 질색이었다.
은재는 최대한 정중하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답신이 왔다.
[귀신 들렸지?]
짧은 답이었다.
[그날 귀신 들렸지?]
구태여 단어 하나를 더 추가한 문자가 연이어 왔다. 은재는 순간 솜털이 쭈뼛 서는 것만 같았다. 그날, 그곳에 가지 못했던 날에 은재는 빙의를 경험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그 끔찍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잠시 머뭇거리며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던 그때, 다시 진동이 울렸다.
[그거 쉽게 안 떨어질 거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분명 지금은 아주 평안한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흔적처럼 남은 불온함이 고개를 들었다.
[방법이 있나요?]
[있지, 방법. 그런데 네가 안 왔잖아.]
[그날 귀신이 들렸다고 어떻게 확신하세요?]
[보여. 네 생년월일, 태어난 시, 다 나한테 줬잖아. 그것만 봐도 보인다. 네 주위에 귀신이 있어. 귀신을 부르는 존재가.]
[주위요?]
[그래.]
귀신을 불러내는 것은, 귀문이 열린 것은 자신이었다.
그런데, ‘주위’라니.
은재는 점점 무당의 말에 빠져들다가 문득 시간을 확인했다. 점심을 막 넘긴 때였다. 태영은 볼일이 있어 자리를 비웠고 저녁에나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더 자세히 상담하고 싶은데요. 죄송한데, 혹시 오늘도 시간 안 되시죠?]
[오면 봐줄 수도 있지.]
[그럼 바로 출발할게요. 감사합니다.]
[너 같이 싸가지 없는 놈은 처음이라 장군님 기분이 많이 상하셨어. 복채는 챙겨 와.]
은재는 소파에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진태영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실제로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와 보내는 이 평안한 시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으나, 이대로 평생 그의 집 안에서만 생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태영은 은재에게 자신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해결책을 내주진 않았다.
“빨리 다녀오면 되겠지.”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지난번에는 지하철을 타고 가서 그 사달이 났으니 이번에는 택시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은재는 겉옷을 챙겨 급히 집을 나섰다.
* * *
계절은 어느덧 겨울이었다. 빠르게 달리는 차창 밖으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보였다. 고작 몇 주 정도 집 안에 틀어박혔을 뿐인데도 창밖 풍경이 이렇게 새롭다니. 은재는 새삼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
은재는 진동이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꾹 쥐었다. 태영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부재중 전화 알림이 10건을 넘어가고 있었다.
‘분명 저녁에 온다고 했었는데.’
볼일이 예정보다 일찍 끝난 것인지 은재가 점집에서 나온 순간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일단 무시하고 택시를 잡아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은재는 겉옷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었다. 끊임없이 울리는 진동을 애써 무시하며 창밖으로 다시 시선을 던졌다.
핸드폰 아래로 얇은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그 무당이 써 준 부적이었다. 꽤 비싼 값을 주고 산 것이다.
오늘, 그와의 짧은 상담은 조금은 허탈하게 끝이 났다. 그는 길게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핵심만을 간단히 말하고 은재에게 부적을 권했다.
‘그냥 귀신만 보이는 게 아닐 거다. 가위에 눌린 지는 몇 개월 되었을 거고. 지독한 놈이 붙었어. 쉽게 안 떨어질 거야. 장군님도 혀를 내두르시는데. 너는 귀신이 들러붙기 좋은 몸이야. 그대로 두면 분명 먹힐 거고. 주변에 귀신을 부르는 액이 있어. 내 부적을 한 장 써 주마.’
믿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일전에도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 부적을 받았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놈들이 베개 밑의 부적을 보고 조롱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건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이 골목으로 들어갈까요?”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태영의 집 근처에 다다랐다. 굳이 골목까지 들어가지 않고 가까운 대로변에서 내려 걸어가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외출이 처음이어서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 네. 여기 골목에서―.”
은재는 조수석을 한 손으로 붙잡고 몸을 바짝 당겼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을 설명하려던 참이었다.
“저쪽에 파란 간판 보이세요? 거기서―.”
일순간 백미러가 눈에 들어왔다. 거울에는 택시 기사와 은재의 머리 일부가 비치고 있었다.
운전대가 꺾이면서 차체가 오른쪽으로 기울던 그때, 은재의 뒤로 무언가가 휙 지나갔다. 그 기척이 거울에 고스란히 비추어졌다.
은재는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보았으나 이상한 것은 없었다. 평범한 택시 내부에 뒤의 차창에는 작은 갑 티슈가 하나 놓여 있을 뿐이었다.
“손님, 더 들어가면 되는 거죠?”
“네, 안쪽에…….”
―탁.
말을 잇는 도중이었다. 택시 기사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은재의 뒤통수에 작은 파열음이 내리꽂혔다.
―탁.
―탁탁.
애써 무시하려 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태영의 집이었다. 굳이 뒤를 돌아볼 이유는 없었다.
―탁탁탁탁탁탁.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기사님, 여기에서.”
“네? 손님?”
고막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은재는 양손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푹 숙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아무리 귀를 틀어막아도 겹겹이 쌓이는 소음들이 손을 뚫고 고막을 울렸다. 통증이 느껴질 만큼 불쾌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은재는 차라리 택시에서 내리기로 결정했다. 급히 택시를 세우고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곤 결제하는 것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사이에도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결제 알람이 오고 나서야 문손잡이를 잡을 수 있었다. 등골이 오싹한 시선을 느끼며 막 택시에서 내리려던 때, 은재는 무심코 택시의 뒤창을 보고 말았다.
투명한 차창에 회색빛의 손자국이 빼곡하게 나 있었다. 그것들은 그 순간에도 차창을 두드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은재가 내리는 것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이미 흐려진 손자국 위로 또 다른 손자국이 찍혔다.
곁눈질로 마주한 그 오싹한 광경에 온몸의 솜털이 비죽 섰다. 은재는 살짝 열린 차 문을 도로 닫지도 못한 채 황급히 택시에서 내렸다. 그러곤 그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헉, 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찼다.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금방 기운이 빠졌다.
기분 탓일까, 한쪽 다리에 누군가 매달린 것처럼 무거웠다. 바로 코앞이 태영의 집인데도 그 짧은 거리를 재빠르게 좁히질 못했다. 원래도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한 발자국을 떼는 것조차 어려웠다.
“하아, 헉.”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서늘하고 축축한 기운이 등과 허리를 감싸는 듯했다. 젖은 미역이 발목과 종아리, 허리와 한쪽 어깨에 들러붙는 것 같은 기괴한 감촉이 들었다.
그것들을 떼어 내기 위해 은재는 더욱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바닥을 차며 뛰던 발은 점점 느려졌다. 꼿꼿하게 섰던 상체가 점점 앞으로 기울면서 양 무릎에 손을 올리며 숨을 골랐다.
힘들어, 괴로워.
과호흡으로 바싹 말라 버린 입안이 이제는 따갑기까지 했다.
[은재야.]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뇌에 꽂히는 그 불유쾌한 주파수가.
[은재야은재야은재야.]
[허은재허은재허은재허은재허은재허은재.]
잊은 줄만 알았던 공포가 목구멍을 메웠다.
은재는 사색이 된 얼굴로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처음보다 눈에 띄게 느려진 걸음을 어렵사리 이어 가며 겨우 건물 입구까지 당도한 때였다.
“선배!”
태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식은땀으로 온통 젖은 은재의 몸이 휘청거렸다. 순식간에 곁으로 다가온 태영이 은재의 등에 손을 올렸고, 은재는 본능처럼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선배, 괜찮아요?”
“하아, 하……. 진, 태영.”
“무슨 일인데요. 왜 밖에 나와 있어요.”
태영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은재의 몸을 들어 안았다. 기력이 빠진 은재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그에게 들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상한 광경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은재는 안심이 되었다. 태영과 가까이 붙어 있는 이 순간이.
* * *
집으로 돌아온 뒤, 태영은 모든 창문에 커튼을 쳤다. 은재는 소파에 걸터앉은 채로 커튼을 치는 소리만 듣고 있었다. 고개를 들 힘도 무어라 말할 힘도 없었다. 핸드폰은 테이블 위에 던져 놓았다.
은재는 텅 빈 것처럼 가벼워진 겉옷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어 부적을 만지작거렸다. 효과가 있었던 걸까. 아니, 오히려 악효과였던 건 아닐까.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선배, 어디 다녀왔어요?”
그때, 지척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었다. 태영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은재를 올려다보며 재차 물어 왔다.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어디 다녀온 거예요?”
“아, 그게…….”
솔직하게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집에 확인할 게 있어서 잠깐 다녀왔어.”
“집에요?”
“응, 너 외출하는 동안 택시 타고 금방 갔다 오려고 한 건데.”
손바닥이 땀에 젖어 끈적거렸다. 손바닥뿐만이 아니고 전신이 다 그랬다.
분명 목을 조를 것처럼 들러붙던 악의들은 이 찝찝한 감각만을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태영과 함께 그의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무겁고 축축한 것들의 기척이 사라진 것이다.
‘……역시, 부적 같은 걸 쓰는 게 아니었어.’
그냥 이 집 안에만 있으면 되는데.
은재는 깊은 공허함을 느꼈다. 괜한 짓을 저질렀다는 자괴감과 자책감, 그리고 태영에 대한 미안함이 혀끝에서 맴돌았다.
“손은 왜 주머니에 넣고 있어요?”
“……어?”
겉옷 주머니에 넣은 손이 움찔거렸다. 은재는 제 주머니 안에서 구겨진 부적을 태영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방금 한 거짓말이 들통나는 것은 당연지사고, 또 그의 입장에서는 의심을 받은 것처럼 느끼지 않겠는가.
“아, 손이 차가워서. 춥네, 조금. 오랜만에 밖에 나갔더니.”
어색하게 말을 덧붙였다. 한마디를 내뱉고 바로 그 뒤로 말을 이어 붙였다. 아마 굉장히 굳은 표정이었을 터였다. 누가 봐도 거짓말하는 얼굴이었다.
“선배.”
“……어, 어?”
가볍게 부르는 말에도 흠칫, 어깨가 떨렸다. 태영은 그런 은재를 그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보았다. 그의 표정은 어쩐지 결연했다. 무언가 결정을 내린 것처럼.
“제가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뭘?”
“걱정이 되어서요.”
“뭔데, 그게.”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은재는 그 정적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공기 중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이 자신을 책망하는 것만 같았다.
“액귀를 쫓을 수 있다는 건,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뜻이에요.”
“어? 그게 무슨―.”
“그러니까.”
은재의 말이 툭 끊겼다. 태영은 그의 말을 잘라 버린 채로 성큼, 은재에게 다가섰다. 태영은 창백한 은재의 얼굴을 제 검은 눈동자에 담고 웃었다. 평소의 태연한 태도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왜인지 평소와 다른 위압감이 느껴졌다.
태영의 큰 손이 은재의 볼을 쓸었다. 애정이 가득 담긴 손길로, 걱정하듯이.
“선배가 혹시 그런 사람을 만났을까 봐.”
꿀꺽,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역시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을까, 은재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태영이 말을 덧붙였다.
“괜찮아요, 잘 다녀왔어요.”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지, 잘 다녀왔다는 건지.
태영은 계속 알 수 없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은재가 그에게 따져 묻지 못하는 건 아직 놈들의 기척이 뒤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재는 태영이 필요했다, 너무나 절실하게도.
“덕분에 앞당길 수 있겠어요.”
태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뭘?”
“아뇨, 그냥. 저도 이제는 참지 않으려고요.”
“그러니까, 그게 대체―.”
내내 웃음기가 어렸던 태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은재는 하려던 말을 그만 삼켰다. 쿵쿵, 맥동하는 심장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선배, 정말 집에 다녀온 거 맞죠?”
“어?”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집에 다녀온 거, 맞죠?”
“……어, 응. 집에.”
태영의 시선이 은재의 뒤편으로 던져졌다. 그는 그 너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셈을 헤아리듯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눈동자를 굴릴 뿐이었다.
그 시선을 느낀 은재가 고개를 뒤로 돌리려는 순간, 태영의 손이 은재의 볼에 닿았다.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집에?”
“그래. 집에……, 잠깐 다녀왔다니까.”
은재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이제 와 사실을 고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주머니에 꽂아 넣은 손끝에 구겨진 부적이 바스락거렸다.
“나, 씻을게.”
자신을 바라보는 태영의 눈빛이 따가웠다. 어딘가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은재는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게다가, 부적을 어디에 둘지도 고민해야 했다. 그가 보지 않는 때에 숨겨야 했으니.
은재는 태영의 어깨를 툭 치듯 비켜섰다. 누가 봐도 수상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도 태영은 더 묻지 않았다.
“그래요, 알겠어요.”
그저 짧은 답을 내놓은 후, 몸을 일으켰을 뿐이었다.
* * *
은재는 이제 괜찮을 줄 알았다. 만약 태영이 자신의 뒤를 쫓던 놈들을 보았다면, 그들의 흔적이 제 몸에 남았다면 치료해 줬을 테니까.
‘그래요, 알겠어요.’
그러나, 태영은 짧은 대답 이후로 그 일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은재가 보았던 차창에 난 손자국들, 발목에 남은 끈적끈적한 촉감들까지도 그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이다.
오늘 낮에 있었던 사고는 그렇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선배.”
시야가 어둑했다. 은재의 안에서 비명을 지르던 놈들의 기척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태영의 손이 올라온 골반에서 찌릿하는 통증이 일었다.
“읏, 아.”
검게 가라앉았던 동공에 빛이 조금씩 돌아왔다. 목구멍까지 가득 차 있던 다른 이의 무게감이 슬슬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은재의 초점 없던 눈동자에 작은 반사광이 떠오르고, 둔했던 감각이 점점 예민하게 돌아왔다.
놈들에게 빼앗기기 직전이었던 몸이 은재의 의지 안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발가락과 손가락 끝까지 온전한 촉각이 살아났고, 그 순간 자신의 아래를 채운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자각했다.
“아―. 으읏, 태영아. 잠깐.”
꽤 깊숙이 들어온 태영의 성기가 내장을 짓눌렀다. 쪼그려 앉았던 몸이 앞으로 기울면서 다시금 무릎이 침대에 닿았다. 태영의 위에 올라탄 제 꼴이 어찌나 민망한지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은재는 그의 가슴에 양손을 짚으며 허리를 세웠다.
“흐아, 윽. 빼고……, 싶어.”
하지만 꽉 맞물린 접합부는 쉬이 빠지질 않았다. 하나로 연결된 부근이 저릿저릿하게 아려 왔다. 고통보다는 묵직한 압박감이 하복부를 가득 채워 묘한 만족감을 주고 있었다. 쾌감과는 또 다른, 아래에서부터 내달리는 성감이 밀려왔다.
“……선배가 직접 넣었잖아요.”
그런데 들려오는 태영의 말은 예상과 달랐다. 평소처럼 은재를 걱정하거나 빙의에 대해 설명을 하거나, 아니면 자신만 믿으라며 달래 주지 않았다.
“선배가 직접 넣은 거예요.”
“어? 아냐, 내가 한 게―.”
“선배는 나와 섹스가 하고 싶어요?”
“내가 한 게 아니라고, 지금 못 느꼈어? 방금―, 윽!”
태영의 양손이 은재의 엉덩이를 쥐었다. 붉은 손자국이 남을 만큼 꽉 쥐어진 둔부가 사정없이 벌어졌다.
벌름거리는 구멍 안으로 들어찬 태영의 것이 번들거렸다. 그가 천천히 손을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위로 올리자 반쯤 걸쳐진 성기가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또 빠져나왔다. 붉은 내벽이 그의 것을 꽉 조이며 경련했다.
“흐아, 읏……. 하지, 마. 만지지 마, 진, 태영…….”
“선배, 대체 뭘 달고 온 거예요.”
“무, 하아. 으응, 무슨―.”
“정말 집에 다녀온 거 맞아요? 선배 뒤에 지금, 저놈들이 줄을 서 있는데.”
태영이 은재의 뒤로 시선을 던졌다.
“당신 하나 먹겠다고 저렇게나 많이. 그것도 내 집에서.”
“흐앗. 잠깐……, 으윽!”
평소의 태영이 아닌 것만 같았다. 지분거려 오던 손길이 점차 거칠어졌다. 약간은 격앙된 태영의 목소리가 은재의 심장을 찔렀다.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의심했다는 자책감이 들어서였다.
[은재야.]
뒤편에서 지직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귓가를 스치는 저 소름 끼치는 주파수를 은재는 알고 있었다. 태영과 함께 있을 때는 들리지 않았던 그 소리가.
은재는 소스라치게 놀라 태영을 재촉했다. 자신의 아래에 깔린 그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태, 태영아, 잠깐. 지금 뒤에서―.”
“말했잖아요. 뒤에 줄 서 있다고. 어디서 뭘 달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저도 못 막아요. 그러니까, 선배. 제 말만 잘 들으라고 했잖아요.”
“미, 미안해. 알았으니까 제발 도와줘, 한 번만……. 너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 그럼 아무리 저놈들이 와도―.”
“수가 너무 많아요. 그리고, 이번에는 저도―.”
“으응! 아!”
퍽, 맞물려 있던 몸이 강제로 내려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태영의 것을 온전히 넣은 적은 없었는데, 은재의 허리를 쥔 태영이 점점 그의 몸을 아래로 당겨 냈다.
“흐, 으아―. 아, 아파. 아, 싫어. 안 들어가……!”
“힘 빼, 허은재.”
“흐윽. 으……. 태, 영아, 미안. 잘못―.”
은재는 태영의 가슴에 손을 짚은 채로 저항했다. 당겨 오는 몸을 무릎과 팔로 겨우 버티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정말 찢어져.’
두려웠다. 고통보다도 더한 것을 알게 될 것만 같아서. 놈들의 장난질로 축축하게 젖은 안은 은재의 저항과 반대였다. 미끄러지듯 태영의 성기를 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계까지 벌어진 애널은 주름 하나 없이 매끈했다. 파르르 떨리던 팔은 그가 주는 압박감을 결국 이겨 내지 못했다.
퍽!
은재의 몸이 강하게 주저앉으며 태영의 하복부와 둔부가 맞닿았다. 태영의 굵은 양물이 은재의 배 속으로 남김없이 쑤셔 박혔다.
“―으! 아앗! 흐아, 아! 읏, 으욱!”
상상 이상의 격통이 치솟았다. 입구가 찢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벌어졌다. 한껏 벌어진 다리 사이로 두꺼운 기둥이 모조리 침범한 뒤였다. 은재는 그것을 다시 빼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헉, 허억―.”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굴곡진 장벽을 모조리 채운 압박감에 토기가 올라왔다. 은재는 가쁜 호흡을 겨우 내쉬며 태영의 몸을 긁듯 손끝을 세웠다.
“……아, 아파. 괴로워.”
은재는 제가 남긴 생채기를 보다가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가를 치켜뜨며 태영을 노려보았다.
“선배, 제가 미워요?”
“흐윽, 놔줘. 이거……, 놔.”
“제가 놓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말해 봐요.”
“윽, 아!”
몸이 들썩거렸다. 단단히 잡힌 골반 아래로 태영이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퍽, 퍽! 은재의 허리가 유연하게 들리며 침대에서 떨어지자, 고정된 구멍 안으로 성기가 다시금 푹 박혔다가 빠져나갔다. 은재는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그의 손에 이끌려 모든 자극을 온몸으로 받아 내야 했다.
“―흐, 아. 으아, 아읏. 태, 여아, 으흑!”
“하아, 하.”
“싫, 윽! 싫어, 흐아, 으응……!”
눈앞에서 별이 튀는 듯했다. 어지러운 시야가 혼탁했다. 반쯤 서 있던 은재의 성기에서 희멀건 액이 쏟아졌다. 픽, 터지는 체액이 태영의 가슴과 턱까지 흔적을 남겼다.
방금 도달한 극치감에 허리를 바르르 떠는 와중에도 아래에서 주어지는 자극은 은재의 성감대를 모조리 짓누르고 있었다.
내장이 좁혀지는 그 끝까지 양물이 파고들었다. 선단이 내벽을 긁으며 박혀 왔다. 거센 압박감에 마치 그를 뱉어 내려는 듯 내벽이 꿀럭거렸으나, 그뿐이었다. 도리어 태영의 것을 쥐어짜듯 꽉 붙들고 놔주지를 않았다.
“흐, 아응. 으, 으응……! 지금 갔, 너무, 흐앗……!”
“허리 내려요.”
태영의 하복부에서 겨우 떨어진 채였다. 은재가 바들바들 떨리는 팔로 그의 가슴을 한껏 밀어내려던 때, 낮은 경고음이 들렸고 다시금 골반이 아래로 처박혔다.
퍽!
철벅거리는 파열음과 함께 두 몸이 하나로 합쳐졌다. 주저앉은 둔부 아래로 태영의 까슬한 음모가 비벼졌다.
“―흐, 아아. 으응, 아……!”
“하아, 선배.”
“싫어, 으응. 싫어, 제발……! 아파…….”
“뒤에 소리 들려요? 저놈들, 곧 선배에게 들러붙을 거라고요.”
태영이 나직하게 건넨 말에 끔찍하고 불길한 미래가 은재의 머릿속을 스쳤다.
[은재야.]
또다시 들려오는 주파수.
은재는 두려움과 공포에 몸을 떨었다. 놈들에게 또다시 그런 짓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오랜 시간 유린당했던 안쪽이 그때의 기억을 되살린 양 잘게 떨렸다.
“그러니까, 선배.”
“흐, 으응. 읏! 아!”
“선배 안에, 제 기운을 남겨야 해요.”
“응, 으읏! 흐, 아아!”
온몸이 바싹바싹 타는 듯했다. 태영이 짧게 말을 툭 던지며 자신의 안으로 처박아 올 때면 잠잠했던 신경이 번갯불에 구워지듯 예민하게 달아올랐다. 그의 위에서 온전히 그의 의지대로 몸이 흔들렸다.
은재의 안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놈들에게 빙의되기 직전, 미끈거리는 액체가 스스로 장벽을 적셨다. 마치 누군가의 삽입을 기다리듯이.
그 안으로 재차 태영의 양물이 침범했고, 은재는 그 버거운 크기가 주는 압박감에 몸서리를 쳤다. 그와 나눈 몇 번의 관계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쾌감이 솟구쳤다.
성기가 안으로 밀려 들어와 굳게 닫혔던 곳마저 파헤치고 있었다. 벌어질 리 없는 곳까지 잔뜩 벌어져 은재는 고통 섞인 신음을 토해 내기에 급급했다. 그런 이물감은 고통과 함께 감당하기 어려운 쾌감마저 주었다.
“―태영, 으, 하아. 으응, 읏! 하으읏……! 흐읏, 윽, 으응. 으아……!”
태영의 허리 짓에 맞추어 흔들리는 은재의 입가가 천천히 벌어졌다. 흐느끼는 듯한 신음이 벌어진 잇새로 흘러나왔다.
태영은 속절없이 흔들리는 은재의 몸을 채근하며 제 욕정을 박아 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퍽, 퍼억, 퍽. 살갗이 아래에 맞물리며 꽉 들어찬 만족감이 그의 양물을 더욱 곧추세웠다.
그때, 태영이 마치 주문을 걸듯 은재에게 속삭였다.
“선배 안에, 제가 흔적을 남겨야, 저놈들에게 먹혀도, 빙의되지 않을, 테니까.”
“흐아! 으응! 아, 으윽. 읏, 그, 그만―!”
태영이 허리를 위로 쳐올릴 때마다 문장이 툭툭 끊어졌다.
하지만 태영의 말에는 일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내내 해 온 말과는 사뭇 달랐다. 전과 후가 뒤바뀐 것이다. 그들이 남긴 흔적을 지워 주는 것이라며 해 왔던 모든 짓이 어긋나 버리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은재는 그 말에서 잘못된 점을 찾지 못했다. 태영의 방법을 믿지 못하고 또다시 잘못을 저지른 자신을 책망했다. 환청처럼 들려오는 놈들의 속삭임에 진저리를 쳤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안을 괴롭히는 태영의 성기마저 은재의 모든 생각을 어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선배, 하아. 저, 못 싸겠으니까.”
“흐, 으응. 으아…….”
거세게 흔들리던 태영의 몸짓이 점점 잦아들었다. 한 번의 사정을 거치고도 다시 곧추선 은재의 성기가 복부를 두드리고 있었다. 반동하던 몸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나서야 태영이 말을 이었다.
“선배가 도와줘요.”
“뭐, 무슨…….”
매끈한 은재의 하복부 부근을 태영이 손으로 꾹 눌렀다. 배를 누르며 더해지는 자극에 은재가 숨을 훅, 들이켤 무렵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배 안에 제 흔적을 남길 수 있게 도와달라고요, 직접.”
태영의 양손이 은재의 둔부를 다시금 쥐었다. 붉은 손자국이 남은 흰 살결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다가 천천히 허벅지를 타고 내려온다. 미끈한 손끝이 여린 허벅지를 문지르며 직립한 은재의 성기를 툭 건드렸다.
“흐윽. 직……, 접…….”
“네, 직접. 할 수 있죠, 선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태영이 하는 말들은 앞뒤가 맞지 않았고, 이제는 그 억지를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은재라면, 이전의 허은재였다면 당장 태영을 밀어내고 걷어차도 모자랐겠으나, 지금 그는 태영이 하는 모든 말에 의구심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어딘가 망가져 버린 것처럼.
맥없이 풀린 은재의 눈동자가 허공을 스쳤다. 태영의 얼굴 주변을 배회하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벌어진 다리 중심에 단단하게 선 자신의 성기가 보였고, 그 선단을 톡톡 건들며 자극하는 태영의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세워 줘요, 선배의 구멍으로.”
태영이 미소를 지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그의 이마 아래로 짧게 잘린 머리카락이 보였다. 은재가 잘라 준 머리카락이.
다정한 어조였지만, 말은 그리 상냥하지 않았다. 눈물이 맺힌 채 그렁거리는 은재의 눈을 보면서도 그러한 요구를 멈추지 않았으니.
“흐, 윽…….”
은재는 태영의 말을 거부하지 못했다. 끝까지 들어찬 양물을 조였다. 하복부에 살짝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내벽이 파르르 경련했다.
“……세, 워야 해, 직접.”
은재는 마치 지시를 받아들이는 인형처럼 작게 속살거렸다.
조심스레 허리를 움직였다. 몸 선이 유연하게 휘며 둔부가 수축했다. 이미 단단한 그의 양물을 아래로 꾹 조이며 허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느릿하게 흔드는 몸 안으로 그의 것이 탁탁, 부딪힐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강제된 쾌감과는 또 다른 만족감이었다.
은재는 제 몸 안으로 직접 성기를 자극하며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유도했다. 마구잡이로 찍히고 짓뭉개지는 폭력적인 감각이 아닌, 느릿하지만 확실한 극치감이 차츰 배 속에서부터 스몄다.
“으응. 으, 아. 여, 여기이…….”
태영의 위에서 바르작거리며 허리를 흔들었다. 본능처럼 움직이는 행위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은재는 스스로 허리를 흔든다는 수치심을 꾹 잡아 눌렀다. 아니야.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늘 주문처럼 외우던 말을 다시 떠올리며 엉덩이를 들었다.
푹 박혔던 성기가 반쯤 빠져나갔고 엉덩이를 내리면 다시 채워졌다. 빈 공간을 그의 양물로 채우고 꽉 들어찬 압박감을 즐겼다. 틈도 없이 들어찬 성기는 은재가 조금만 허리를 움직여도 내벽 전체를 사정없이 짓이겼다.
“흐―, 으아. 으응, 하아. 이, 이제…….”
“읏, 조금만 더요.”
태영의 손이 은재의 성기를 쥐었다. 그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상냥하게 굴었다. 또다시 투명한 액을 흘리고 있는 성기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은재를 채근했다.
“만지면……, 으읏.”
은재의 숨이 거칠어졌다. 신음과 함께 섞여 나온 더운 숨소리가 공기 중에 흩어졌다.
앞도 뒤도 태영에게 온전히 내맡겨진 것만 같았다. 쾌감에 이끌려 허리를 흔들면 뒤가 찌릿하게 울려 왔다. 자신의 성기를 쥔 태영의 손에 선단이 비벼지며 앞쪽도 강한 쾌감이 일었다.
“아, 으아. 좋……, 윽. 아니, 하아.”
“좋아요?”
“아, 아니. 아니야. 이건.”
“괜찮아요. 이건 ‘치료’니까.”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내내 은재를 괴롭히던 작은 상념의 조각을 그가 다시 묻어 버렸다. 은재는 처음으로 그 조각을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분, 좋아.’
한 번 트여 버린 쾌감의 물꼬로 가라앉지 않은 성감이 들이쳤다. 은재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태영의 성기를 받아 물었다. 잘게 튕기던 허리를 더욱 크게 휘었다. 태영에게로 상체를 조금 더 기울이며 그의 성기를 선단까지 아슬아슬하게 빼내었다가 단번에 쑤셔 넣었다.
“―흐, 아아! 아아. 으아, 읏!”
“윽. 아, 하아…….”
태영의 입에서 만족스러운 신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은재는 그것이 몹시나 기꺼웠다. 멍한 눈빛 아래로 멍청하게 벌어진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으응. 조아, 좋아, 흐아, 으응……. 아아, 더, 깊이…….”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은재는 더욱 형태를 갖추며 부푼 태영의 성기를 자신의 구멍으로 쪽족 빨아 대며 교성을 질렀다. 부드러운 둔부 사이로 두꺼운 기둥이 빨려 들어갔다. 은재가 다리를 활짝 벌린 채 허리를 위아래로 흔들 때마다 그 자극적인 광경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다.
[은재야, 은재야.]
[허은재.]
[우리도우리도.]
삿된 것들이 뒤에서 아우성을 질렀다.
태영은 그 뒤편을 어두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은재의 허리를 손으로 쓰다듬고, 그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은재의 골반 즈음을 더듬다가 자신의 양물이 출납을 반복하는 구멍 부근을 부드럽게 훑었다. 척척한 액체가 흥건했다.
마치 가늠하듯 그 주변을 꾹 누르던 태영이 양물로 가득 찬 그 구멍 안으로 손가락 끝부분을 넣어 간격을 벌렸다.
“―흐아! 윽. 태영아, 아, 안 돼. 흐아, 읏……!”
“하. 괜찮아요, 선배. 계속해요. 곧 나올 것 같으니까. 할 수 있죠?”
“흐, 으응. 아, 제, 발…….”
움직이기 힘들 만큼 배 속이 아려 왔다. 그런데, 이물감이 더해져 앓는 소리만 터져 나온다. 더는 버티기 어려운지 눈썹을 팔자로 기운 은재가 작게 흐느꼈다.
‘싫어, 힘들어……. 또 갈 것 같아.’
은재는 또다시 흰 액체를 토해 낼 듯 경련하는 자신의 성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몇 번이나 가야 하는 걸까. 강한 오르가즘은 고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도 왜, 그 감각에 이끌리는 건지.
“선배.”
태영의 목소리는 채찍과도 같았다. 은재는 주인의 부름을 받은 노예처럼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러곤 해야 할 것을 잊어 꾸짖음을 들은 시종처럼 멈추었던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흐, 아응. 아, 앗……!”
“응, 좋아요.”
은재는 태영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그의 상체 쪽으로 기울였던 몸을 세우고 팔을 뒤로 짚어 태영의 고환을 문질렀다. 당장이라도 사정할 듯 팽팽해진 그것을 손가락 끝으로 문지르며 크게 몸을 올렸다. 퍽! 무게를 실어 아래로 내리꽂자, 태영의 손가락과 더불어 양물이 끝까지 들이찼다.
“으―, 으흐읏!”
긴 기둥이 은재의 성감대를 길게 문지르며 파고들자, 내벽이 경련하며 그것을 조여 물었다. 흐, 아아, 으아. 새된 신음이 꽤 오래 이어졌고 눈가에 매달렸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그때.
“윽.”
태영의 낮은 신음이 들리고서야 안쪽으로 뜨거운 액체가 쏟아졌다.
“으, 으응. 뜨, 거워, 하아…….”
기다리던 그의 흔적이었다. 은재는 제 안으로 토해지는 그의 정액을 남김없이 받아들였다. 혹여 아래로 샐까 봐 스스로 구멍을 꾹 조이며 완전히 주저앉았다.
“좋아요, 그렇게.”
태영과 함께 지내며 생긴 습관이었다. 그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는 태영의 흔적이 필요하다. 그의 흔적을 안쪽까지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구멍을 조여야 한다는 것도 그가 알려 준 마지막 방안이었다.
태영은 은재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조금만 더.
그러곤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툭, 태영의 손가락이 은재의 성기를 건드리자 기다렸다는 듯 체액이 뿜어져 나왔다. 몇 번의 사정 끝에 이제는 옅은 물처럼 농도가 묽어졌다.
“으, 으읏. 응…….”
밭은 숨이 느슨해졌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 허리를 세우기조차 버거웠다. 은재의 몸이 천천히 아래로 무너졌다. 태영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몸을 포개자, 안을 가득 채웠던 성기가 살짝 빠져나갔다.
“선배.”
태영이 은재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자신의 몸 위로 완전히 기댄 그의 상체를 품에 안고 식은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포슬포슬한 정수리 부근을 어루만지다가 허리를 슬쩍 들었다.
“―읏, 으응…….”
그러자 아직 은재의 안에 박힌 성기가 조금 더 깊숙이 밀려 들어갔다. 부은 안쪽에 재차 기둥이 쓸리자 은재가 노곤한 표정으로 투정 섞인 신음을 흘렸다. 은재는 아마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겼을 것이다. 태영으로서는 곤란했다.
“소리, 들려요?”
“……으응?”
[은재야.]
[나야, 이제 나야. 나다.]
오싹, 서늘한 촉각이 은재의 둔부를 쥐었다.
“어, 어? 어? 아니, 잠―.”
성기와 함께 안에 쑤셔졌던 태영의 손가락이 빠진 그 순간이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이물감이 그 틈바구니로 우악스럽게 겹쳐졌다.
“윽. 아, 으윽!”
은재의 눈동자가 크게 확장되었다. 두려움과 공포로 질린 얼굴이 태영을 향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태영에게 도리질을 쳤다.
“흐윽. 아, 태영아, 도와, 줘. 아파. 아, 아파.”
“말했잖아요, 선배.”
은재는 손톱을 세워 태영의 팔을 긁었다. 고통스러웠다. 뒤에 들러붙은 무언가는 은재의 사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들어갈 리 없는 구멍 안으로 두툼한 것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은재야, 은재야. 들어간다, 들어가.]
“싫어. 싫……, 악! 제발……! 흐아, 윽. 태영아……. 싫어, 싫어어……!”
이미 은재의 배 속을 채운 태영의 뜨거운 성기 아래로 축축하고 차가운 형태가 비집고 들어왔다. 선단까지 겨우 삼켜 낸 그것은 막무가내로 은재를 범했다.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 같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살이 뜯어져 벌건 핏줄이 드러날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선배가 불러온 것들이에요.”
“싫, 으응. 흐, 빼, 제발. 으앗, 응……!”
“아직 줄을 섰는데.”
“태영아, 자, 잘못했, 흐, 으응……!”
질척거리는 무형의 손길이 은재의 등을 내리눌렀다. 그것이 닿자, 은재의 하얀 등골에 검은 손자국이 찍혔다.
은재의 몸을 태영에게로 완전히 붙이자 자연스레 둔부가 살짝 들렸고, 이미 자리 잡은 태영의 성기를 지그시 누르며 그것이 들어섰다. 놈의 양물은 무엇에 젖은 것인지 이미 질척거렸다.
“흐아, 읏. 허억, 아! 배, 아파, 으응.”
꽉 짓눌린 복부가 태영의 몸에 맞닿으며 토기가 쏠렸다. 미끈했던 은재의 하복부가 둥글게 솟아 있었다. 두터운 양물을 두 개나 머금은 내장이 한계까지 벌어진 채였다. 그것들이 끝까지 밀려나 안을 옥죄는 것이다.
은재는 두려운 고통과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쾌감에 눈물을 흘렸다.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어깨를 떨면 안에 그득히 들어찬 두 개의 성기가 주는 감각이 오롯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은재야, 허은재.]
“선배.”
“살려 줘, 흐윽. 태, 영아.”
“선배가 제 말만 잘 들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잖아요.”
“흐윽, 자, 잘못했어. 정말, 다시는―.”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은재의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온 뼈의 마디와 혈관이 수축하듯 고통스러웠다. 뒤에서 은재의 몸을 짓누르던 그것이 허리를 튕기기 시작했다.
“안 돼, 아! 아, 제발, 흐앗, 윽, 으윽, 히익……!”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그것은 더 들어갈 리 없는 그곳에 더러운 것을 박아 넣고는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짓밟히는 내장이 그것에 의해 뽑혀 난도질당하는 듯했다.
[은재야, 은재야, 헉, 허억, 좋아, 좋아.]
“싫, 윽! 싫어, 아, 으응. 아……! 태, 영아……! 도, 와 줘. 읏……, 히잇! 으응…….!”
“하아, 선배…….”
죽을 것만 같았다. 눈가에 어른거리던 눈물은 어느새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안을 헤집자 숨이 툭툭 끊어졌다. 장기가 뒤틀리는 것처럼 압박이 거세었다. 그러면서도 그 압박감이 주는 쾌락이 소름 끼칠 만큼 선연했다.
태영의 몸에 기댄 은재의 복부가 잘게 경련했다. 푹 쑤셔질 때마다 복부의 외벽이 둥글게 부풀었다. 그 폭력적인 추삽질은 안에 그득한 태영의 성기를 자극했고, 한 번의 사정으로 잠잠해진 그것을 다시 단단하게 세웠다.
“흐, 으아. 또, 커져어, 안 돼, 흐응, 읏, 흐윽……!”
“아, 선배, 읏, 윽…….”
태영은 속절없이 제 품에서 흔들리는 은재를 어루만졌다. 귀신에게 범해지면서도 제 팔을 꽉 붙든 채 떨고 있는 그 사랑스러운 이를 말이다.
은재의 초점 없는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고, 참지 못한 신음을 입 밖으로 흘려내고 있었다. 그 벌어진 입술 사이로 태영이 입을 맞추었다.
“―흐읏, 음. 으응…….!”
유일한 숨통이 태영에 의해 막혔다. 은재는 자신의 입술을 막은 그에게 무어라 웅얼거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그의 입안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뒤편에서 제 구멍을 벌리며 쑤셔 대는 소음이 연이어 들렸다. 태영이 토해 놓은 점액질의 액체가 그 삿된 것의 양물에 묻어 끝까지 들이쳤다. 찌걱, 츠걱거리는 추잡스러운 물소리가 제 몸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은재는 이 모든 것을 잊으려는 듯, 태영의 혀가 밀려오는 입안에 집중했다. 들이치는 쾌감을 겨우겨우 몰아쉬며 옅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뜨겁게 맞닿아 오는 태영의 혀를 빨아 대기에 급급했다.
살짝 비틀어진 고개가 두 사람의 틈을 메우고 너른 혓바닥이 은재의 점막을 훑고 지나갔다. 벌어진 입술 끝으로 타액이 흘러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완전히 눈이 풀린 은재가 겨우겨우 태영에게 보폭을 맞추듯 고개를 움직였다.
[은재야, 은, 흐아, 은재야.]
싫어, 싫, 어.
놈의 허리 짓에 쾌감을 느끼는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은재는 태영의 팔을 꼭 쥔 채 멋대로 쑤셔지는 그것을 떨쳐 내려 둔부를 흔들었다.
[좋, 아, 좋아.]
“흐―, 읏!”
막혀 있던 입술이 벌어지며 길게 이어지던 입맞춤이 떨어졌다. 새벽의 서늘한 공기가 입안을 가득 메우자 반대로 더운 숨을 토할 수 있었다.
울컥, 안으로 차갑고 질척한 감각이 담겼다. 놈의 체액이 은재의 안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안 돼, 으. 싫어, 제발…….”
눈물과 타액으로 엉망이 된 은재의 얼굴은 이제 어떠한 의지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래에서 하나의 양물이 쑥 빠지고 두 개의 양물을 받아 내었던 내벽이 조금씩 제자리를 잡아 갔다. 팽창했던 입구가 다시 태영의 것만을 조여 물었다.
어째서 그것이 이토록 안심되는 걸까. 은재는 제 배 속을 차지한 태영의 것을 확인하듯 아래를 꾹 조였다.
“흐응. 으읏, 하…….”
“좋아요?”
“……으응. 좋, 아.”
“뭐가?”
태영이 은재의 뒷머리를 꾹 쥐었다. 이어 자신의 쇄골에 고개를 묻었던 은재의 머리카락을 아래로 내리듯 당기자 멍청해진 그의 얼굴이 보였다. 사고가 멈춰 버린, 쾌락에 젖어 모든 의지를 송두리째 잃은 인형 같은 얼굴이.
“태, 영이 거……, 좋아.”
“제 거만?
“응……. 태영이 것만.”
“착하네.”
태영은 은재의 머리채를 쥐었던 손아귀를 풀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머리 부근을 맴돌던 손은 천천히 내려갔다. 흰 목덜미에 지분거렸다가 또다시 등골을 훑으며 알 수 없는 액체로 흠뻑 젖은 은재의 구멍을 재차 쑤시고 희롱을 했다.
“……으읏. 흣, 으으응…….”
“선배, 그런데.”
태영이 곤란하다며 작게 웃었다.
“뒤에 아직 손님이 많아서요.”
검은 눈동자가 다시 뒤편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검은 악의를 가진 무형의 것들이 즐비했다. 더러운 침을 흘리며 은재의 구멍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불결한 놈들이 태영의 눈치를 살피며 줄을 선 것이다.
은재에게는 보이지 않는, 오로지 태영에게만 보이는 광경이었다.
“선배, 손님 받아야죠.”
벌어진 구멍으로 들어갔던 손가락이 공간을 벌려 내었다. 이미 성기를 두 개나 머금었던 안쪽은 질척하게 젖은 채였다.
은재가 앓는 소리를 내며 태영의 쇄골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이미 정신이 혼미한 은재는 태영이 내뱉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
“태, 영아. 그만, 읏…….”
“안 돼요. 선배가 자초한 일이니까. 조금 더 시간을 들이려고 했는데. 어쨌든 자, 어서요.”
태영이 한쪽 손으로 은재의 팔을 쥐었다. 그러곤 그의 팔을 등 뒤로 내리며 둔부를 더듬게 했다. 은재가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알려 주듯이.
“아…….”
은재는 태영이 이끄는 대로 손을 내렸고, 그다음은 굳이 알려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성기가 박힌 자신의 구멍을 한쪽으로 벌려 낸 태영의 손가락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 반대쪽으로 손을 옮겨 스스로 애널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틈을 벌렸다. 그러자 선홍색의 내벽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그 안으로 끝도 없이 박힌 태영의 성기에는 희멀건 액체가 흥건하게 묻은 채였다.
“흐윽. 소, 손님……. 잘, 못했어요.”
시키지도 않은 말이 흘러나왔다.
은재는 이제 정말 자신이 그들이 조롱해 왔던 ‘남창’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자초해서 만든 이 사달을 이렇게 해결해야만 태영이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지켜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파르르 떨리는 은재의 손가락 아래로 다시금 차갑고 서늘한 기둥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태영의 성기와 비벼지는 그 빠듯한 압박감에 은재는 몸서리를 치며 다시 신음을 토해 내었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태영은 굳은 얼굴이었다. 은재의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베개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는 잠깐의 고민 끝에 긴 손가락으로 베갯잇을 스쳤다. 바스락, 베개의 중간 즈음에 무언가 얇은 종잇조각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흐, 응. 으아, 으, 흐읏……!”
“여기 있었네.”
태영은 제 손바닥을 은재의 뒤통수에 대었다. 이어 그의 머리 아래에서 눌린 베개를 빼내고, 조심스레 그의 고개를 침대 위로 다시 내려 주었다. 땀에 흠뻑 젖은 은재의 머리카락은 엉망이었다. 멍한 은재의 눈동자가 잠시 태영의 손을 주시했으나, 그뿐이었다.
태영이 베갯잇의 지퍼를 열어 그 안을 헤집을 동안에도 은재는 다리를 벌린 채였다. 끊임없이 파고드는 놈들의 성기를 안으로 받아 내는 중이었다.
몇 번이나 간 것인지 대충 걸친 상의는 온통 정액투성이였다. 상의뿐일까, 흐트러진 옷 안의 살결에도 끈적끈적한 체액이 여기저기 튀어 있었다. 태영은 그런 은재를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보고는 볼을 부드럽게 훑어 주었다.
“읏, 으응. 하아, 그, 만……!”
“조금만 참아요, 선배. 이제 마지막이니까.”
태영은 벌어진 은재의 다리 사이로 헐떡거리며 제 성기를 처박는 놈을 노려보았다. 놈들은 일순 태영의 눈치를 살피었으나 쉬이 떨어지진 않았다.
‘떨어지기 싫을 테지.’
침대 아래로 줄을 섰던 것들은 이제 저놈이 마지막이었다.
베갯잇에서 솜을 빼내자 바닥으로 얇은 종이가 떨어졌다. 태영은 발끝에 챈 그것을 허리를 굽혀 주웠다. 노란색의 얇은 습자지, 그 위에 빨간 글씨가 쓰인 부적.
“재미있네.”
태영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짙은 눈썹 아래로 눈매가 길게 접혔다.
손안에서 바스락거리는 그것을 꾹 쥐었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텅 빈 눈을 한 채 신음을 지르는 은재가 있었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는 맥이 빠진 뒤였고, 퉁퉁 부은 눈가는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은재는 이제 감각마저 둔해진 아래를 기계적으로 들썩거렸다. 놈들의 체액과 태영의 정액으로 흥건한 구멍에서는 흙탕물에 발이 처박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철퍽, 츠벅.
놈의 성기가 은재의 애널을 쑤시고 빠져나갈 때면 안에 고인 액체가 침대 시트를 흠뻑 적셨다.
“흐, 읏. 응, 하읏, 힉……!”
다시 눈물이 흘렀다. 밭은 숨을 내쉬는 은재의 가슴께가 파르르 떨리자, 눈초리로 고여 있던 눈물이 줄줄 새는 것이다.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눈물은 멈추지를 않았다.
“이제 그만.”
태영이 짧게 말했다. 그러자 은재를 괴롭히던 그 마지막 악의마저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겨우 은재는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내내 구멍을 가득 메웠던 양물이 빠져나갔고, 반사적으로 하복부에 힘이 들어간 순간이었다.
“―으읏!”
낮은 신음과 함께 축 늘어진 은재의 성기에서 묽은 물이 질질 새었다. 이제는 정액이라고 할 수조차 없이 투명한 액체가 복부를 타고 흘러 짙은 색으로 물들였다.
“선배.”
삐거덕. 침대가 한쪽으로 움푹 패며 기울었다. 태영은 은재를 내려다보며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침대에 무릎을 올리고 은재의 다리 사이로 몸을 옮겼다.
“이런 깜찍한 짓을 했네요. 이러니까 놈들이 쫓아왔죠. 덕분에 선배를 손에 넣었지만요.”
“―읏. 아, 아니. 태영……, 아.”
태영의 손에서 팔랑거리는 노란 종이. 은재는 그것을 보자마자 파드득 몸을 떨었다. 그를 화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박 관념처럼 자리를 잡았다.
은재는 애원하듯 태영에게로 팔을 뻗으려 했으나, 온몸에 힘이 없었다. 손가락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축축하게 젖은 아래는 쾌감에 절어 조금만 힘을 줘도 제멋대로 경련했다.
“흐, 읏.”
“쉬이, 괜찮아요.”
태영은 겁먹은 그를 달래듯 은재의 무릎을 손으로 쥐었다.
“시험해 볼까요, 이거.”
흥미가 어린 태영의 시선 안에 은재가 담겼다. 그의 눈빛을 마주한 은재의 텅 빈 동공이 일순 수축했다. 피하려는 것인지 허리가 움찔 떨렸으나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은재는 발가락으로 시트를 밀어 몸을 뒤로 물렀다. 구멍에서 질질 샌 체액이 은재가 이동한 만큼 시트를 적셨다.
“이리 와요, 선배. 제가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태영의 몸이 은재에게로 바투 붙었다. 손에 든 부적을 살짝 구기면서 말이다.
부적은 태영의 손에 쉽게 망가졌다. 붉은 글씨가 그의 손가락 아래에서 번져 가는 모습을 은재는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가면 안 됐던 거야.’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래도 괜찮아, 이제.’
도와주겠다는 태영의 말이 세뇌처럼 뇌리에 박혔다.
태영의 손이 은재의 아래로 향했다. 알 수 없는 액체들로 넝마가 된 애널 입구를 손끝으로 쓱 훑었다. 그러자, 은재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들썩거렸다. 쾌감만이 남은 그곳은 조금의 자극에도 쉽게 반응했다.
“흐―, 으응. 아, 읏…….”
달뜬 숨이 흩어졌다.
넣어 줘, 더 넣어 줘.
은재는 깊은 곳에서 들이치는 속내를 그에게 들킬세라 입을 꾹 다물었다. 태영은 은재를 힐끗 보고는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이어 태영의 손에 들린 부적이 은재의 구멍 안으로 쑤셔 넣어졌다. 노란색의 얇은 종이가 금세 체액으로 젖어 들었다. 벌름거리는 구멍은 그것이 마치 성기라도 되듯 꾹 조이며 안으로 받아들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천박한지.
“예뻐요.”
제멋대로 경련하는 내벽 안으로 종이의 한구석이 삐져나왔다. 태영은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몸을 기울였다. 널브러진 은재의 팔을 어루만지고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주었다.
그를 향한 걱정과 애정이 비틀어진 소유욕으로 변질된 것을, 아마 그는 모를 것이다. 평생 모르게 할 것이다. 이제 그는 제 곁을 떠나지 못할 테니까.
은재의 혼탁한 눈동자 안으로 태영의 미소가 비쳤다. 태영은 짧은 숨을 내뱉는 은재의 입술에 가벼이 입을 맞추었다.
이제 잘 시간이네.
태영이 그에게 다정하게 속살거렸다.
“좋은 꿈꿔요, 선배.”
당신이 좋아하는 그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