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첫 만남 (3/7)

2. 첫 만남

[야, 이것 봐라. 깜찍한 짓을 했네.]

[뭔데?]

[이것 봐, 이거. 어디서 사기를 당한 건지. 멍청하긴.]

[하하, 무당 열 명 중 열 명은 사기꾼인데 말이야. 쯧쯧. 하긴, 멍청하니까 저러고 있지. 안 그래, 은재야?]

후욱, 훅.

습한 숨소리가 들렸다. 벌겋게 달아오른 은재의 귓가에 누군가의 입술이 닿았다. 서늘한 입김이 귓바퀴를 훑고, 귓구멍 안으로 놈의 숨결이 들어왔다.

정제되지 않은 호흡은 비단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발정기에 이르러 제 욕정을 토해 내기에 급급한 가축 말이다. 암컷의 몸에 씨앗을 흩뿌리고는 쾌감에 허리를 벌벌 떠는.

‘읏, 하. 윽, 으읏……!’

[훅, 후욱, 하, 으, 하아, 윽.]

그런 미개한 짓을 은재는 온몸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젖을 대로 젖어 버린 아래로 선단이 깊숙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래를 빠듯하게 채운 성기가 제멋대로 쑤셔지고 있었다. 놈의 몸에 가로막혀 벌어진 다리는 둘 곳이 없었다. 끔찍한 악몽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다.

[씨발, 저 새끼 좋아 죽네.]

[인마, 작작해라. 우리도 좀 해야지.]

주변에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껄렁거리는 투의 사내가 여럿인 것 같다. 놈들은 은재가 베개 아래에 두었던 부적을 보곤 배가 찢어져라 웃음을 터트렸다.

또 다른 손이 은재를 범하는 광경을 놈들은 마치 유희의 한 장면을 보듯 감상하고 있었다.

베개 밑에 감춰 뒀던 부적이 놈들의 손에서 달랑거렸다. 꽤 값을 주었던 부적이었다. 하지만,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던 걸까.

‘아읏!’

전신이 들썩거렸다. 침을 뚝뚝 흘리며 은재에게 몸을 기대었던 놈이 거칠게 허리를 놀렸다. 다른 놈들에게 신경이 가 있었던 것을 항의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껏 벌어진 구멍으로 다시금 놈의 것이 들이닥쳤다. 무신경하게 침입한 성기가 아랫배를 묵직하게 채웠다.

‘흑……!’

소름 끼치는 이물감에 입술을 꾹 물자 그새 놈의 입술이 따라붙었다. 게걸스럽게 입술을 핥고 비비더니 무작정 혀를 밀어 넣었다. 턱 아래로 질질 흐르는 놈의 타액이 은재의 얼굴에 후드득 떨어진다. 최악이었다.

[닳겠다, 닳겠어.]

조소를 던지던 놈 중 하나가 말했다. 이어 시체처럼 늘어진 은재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고는 몸이 겹쳐져 한 덩어리가 된 은재와 은재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짐승처럼 허리 짓을 해 대는 놈의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음험한 눈초리가 느껴졌다.

은재는 제 위에서 숨을 토해 내는 이놈도, 그 광경을 코앞에서 지켜보는 저놈도 끔찍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꼼짝도 할 수 없기에 그 모든 희롱을 당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수치심으로 심장이 젖어 망가지는 것만 같았다.

‘하, 읏. 그, 만……!’

[조, 금만 더. 아, 헉, 좋아. 좋아.]

‘씹―, 아! 제, 제발!’

겹쳐진 배 사이로 손이 쑥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옆에서 지켜만 보던 놈이 손을 들이밀어 은재의 성기를 쥐어 잡았다. 중심에 강한 압박감이 더해지자 고개가 절로 뒤로 젖혀졌다. 은재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저도 모르게 아래를 꽉 조였다.

[허, 허억! 아, 헉! 조, 조여.]

‘아, 윽. 이거 놔……!’

은재의 안으로 추삽질을 이어 가던 놈이 잘게 경련했다. 순간적으로 수축된 내벽이 놈의 성기를 꽉 조여 물었기 때문이었다. 은재 역시 앞과 뒤로 더해진 자극에 허리를 들썩거렸다. 끔찍하게 싫었지만 치미는 쾌감은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이러다간 우리 은재 구멍 헐 것 같아서 도와주려고. 어때, 도움이 좀 됐나?]

‘흐, 아. 시, 싫다고―, 이 개, 자식아!’

[흐어, 윽. 하아, 최, 최고. 자지, 녹을 것 같―.]

굴곡진 주름이 성기에 쩍쩍 들러붙었다. 잔뜩 흥분한 성기가 오도 가도 못하고 그저 은재의 몸 안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움직임이 없었음에도 은재는 허리 부근이 오싹오싹했다. 여태껏 느껴 보지 못한 불안감이 심장을 두드렸다. 예민하게 달구어진 제 안이 놈의 성기에 도드라진 혈관까지도 게걸스럽게 빨아 대는 것이다.

[헉, 허억. 은, 재야, 그만, 빨아. 응? 자지 끊어지겠어.]

‘씹, 개소리……! 으읏!’

은재의 성기를 그저 쥐고만 있던 손이 서서히 움직였다. 곧추서서 복부에 바싹 붙은 기둥을 손끝으로 건드리기 시작했다.

‘흐윽, 흣!’

놈의 투박한 손길은 도리어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은재는 그들에게서 벗어나려 고개를 흔들고 엉덩이를 뒤로 물렀으나 그뿐이었다. 여전히 악몽에서 깨지 못했고 애널을 파고든 성기의 소름 끼치는 감각도 그대로였다.

[허, 허리, 흔들면―.]

[좋아서 허리까지 흔드네. 이거 질투 나는데.]

피하려던 움직임이 도리어 놈들을 부추기는 꼴이 되었다.

은재가 허리를 움찔거리자 묵직하게 들이닥친 성기에서 피빗, 액체가 터져 나왔다.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온도가 느껴졌다. 실제가 아닌 악몽인데도 구토감이 올라왔다. 그만큼 너무나 선명했다는 것이다.

‘하아, 아. 으읏, 그만. 싫어, 빼라고……!’

구멍 안은 벌써 질척하게 젖어 있었다.

사정 후 짧은 숨을 헉, 헉, 들이켜던 놈이 히죽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은재의 안을 제 정액으로 모조리 채운 뒤에야 떨어질 생각이었을까. 휘몰아치는 사정감에 허리를 바들바들 떨면서도 놈은 몸을 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양심 없는 새끼. 너만 가면 어떡하냐, 우리 은재는?]

은재의 성기를 쥐고 있던 놈이 불쾌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손바닥 안에서 귀두를 굴리더니, 널찍한 면으로 선단을 비벼 대었다. 여린 살갗이 놈의 투박한 손안에 부딪히며 발갛게 달아올랐다.

‘헉, 아, 으읏! 아, 미, 친! 하, 제발, 제발, 아!’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가장 예민한 곳이 함부로 다뤄지자 억제되지 않은 쾌감이 휘몰아쳤다.

‘응, 으읏! 아……!’

숨이 터지면서 벌어진 잇새로 툭, 툭, 신음이 흩어졌다.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교성이 제 입에서 흘러나왔다. 앞이 자극됨과 동시에 놈의 것을 물고 있던 아래가 움찔움찔 경련하기 시작했다.

[헉, 허억. 좋아, 하, 최고야. 은재야, 조여.]

죽을 것 같았다. 놈에게 뿌리 끝을 붙잡힌 성기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은재의 성기를 단단히 고정한 녀석의 손짓이 점점 거칠어지는 참이었다. 바닥에 들러붙은 은재의 몸이 들썩댔고 애널 안으로 파고든 놈의 성기를 쥐어뜯듯 물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사정감에 하복부에 힘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흐, 아, 윽. 잘못, 아, 안 돼……. 흐윽, 흑, 아!’

[후, 하하. 여기? 여기가 좋아?]

놈의 손톱이 기둥을 긁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었던 은재의 성기가 말간 쿠퍼액을 뿜어냈다.

그러나, 놈은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뭉툭한 손가락으로 끝을 막아 버렸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양 아래에 박혀 있던 성기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아! 아아! 아! 움직이, 지 말……, 아―!’

[헉, 헉. 맛있다, 맛, 있어.]

놈의 두꺼운 기둥이 빠져나가더니 이내 선단부터 비집고 들어왔다. 굵직한 살덩이가 둔부를 벌리며 침입하자 짧은 통증이 스쳤다.

하지만, 순간이었을 뿐이다. 곧이어 말도 안 되는 쾌감이 척추를 타고 치솟았다. 놈의 짧고 굵은 성기가 안쪽의 자극점을 찍어 눌렀다. 마치 짓이기듯 계속되는 허리 짓에 은재는 미처 다 삼키지 못한 숨을 토해 냈다.

‘허억. 아, 헉, 하, 윽!’

[우리 은재 좋아 미치겠나 봐. 태생부터가 창놈 새끼라니까?]

‘그, 만―. 하, 윽, 갈, 것 같―. 싫, 어……!’

문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단어들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집요하게 들러붙는 성기는 은재의 음부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굴곡진 내벽이 놈의 것을 밀어내려 하지만, 그럴수록 엇박을 타며 밀려 들어올 뿐이었다. 도톰하게 부어 있던 극치점이 뭉개졌다. 은재의 정신 또한 무너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토해 내고 싶은 사정감이 밀려왔다.

‘제, 발……. 하, 아! 으응! 앗! 흐읏!’

흐릿하게 풀린 두 눈으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뒷구멍엔 놈의 고환이 쉴 새 없이 부딪치고 있었다.

철썩, 철썩.

물기를 머금은 살덩어리들이 부딪치며 파열음을 내었다. 꽉 맞물린 접합부에서는 놈이 움직일 때마다 질척한 체액이 질질 새었다. 엉덩이며 허리 부근까지 축축이 젖은 뒤였다.

[헉, 허억. 좋아, 좋아. 은재야, 허리 끊어지겠어. 윽, 하아―.]

[고생은 내가 하고 재미는 이 새끼가 보네.]

잔뜩 부어 버린 애널은 놈의 성기를 받아 무는 것에 급급했다. 은재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몸 안으로 치미는 쾌감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은재는 알고 있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저항하고 소리를 질러 봐야 제 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 이 모든 것은 현실이 아닌, 그저 꿈. 그저 가위에 눌리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제 몸을 파고드는 놈의 성기가 주는 쾌감도, 제 중심에서 터지는 사정감도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사실이 은재의 정신을 무너트리게 하는 것이다.

‘흐앗, 아! 아앗. 거, 거기, 그―, 만! 비, 비면……!’

놈들은 은재의 몸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다. 은재 자신조차도 알지 못했던 성감대부터 치부까지. 아직 남아 있는 이성으로 애써 참아보아도 끝끝내 무너지고 만다. 지금껏 외면해 왔던 자신의 음란함을 강제로 뒤집어 보였다.

[가고 싶어?]

끈질기게 은재의 성기를 자극하던 놈의 손이 이제는 은근하게 문질러 왔다.

이미 앞도 뒤도 감각이 헐어 버릴 만큼 너덜너덜해진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이 주는 그 은근한 자극조차 온몸이 뒤틀리는 듯하다. 아직도 자신의 몸 위에서 허리를 흔들어 대는 놈에게 제 아래를 내준 채로 말이다.

하염없이 흘린 눈물로 엉망이 된 은재가 퉁퉁 부은 입술로 놈에게 답했다.

‘……하윽, 읏! ……좆 까. 이, 윽, 씹―, 하, 으응, 새끼야.’

어차피 꿈이다. 깨어나면 될 일이다.

은재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이를 꽉 깨물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신음을 간신히 참아 내며 겨우겨우 말을 뱉었다.

[하하.]

비웃음이 들려왔다. 그놈은 재미있다는 얼굴을 했던 것 같다. 은재의 꿈속에 찾아오는 놈들은 대체로 얼굴이랄 게 없었다. 목소리와 말투, 살에 닿는 몸의 모양새로 그들의 성별을 추정할 뿐이다.

[재미있네, 허은재.]

[언제까지 버티나 볼까.]

[헉, 허억. 은재야.]

그때 콱! 몸이 크게 흔들렸다. 은재의 안을 마구잡이로 범하던 놈이 몸을 크게 움직여 안을 꿰뚫은 것이다.

점점 철벅거리던 소리가 잦아들고 아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끝까지 버텨 내었다. 놈들에게 함락당해 헛소리를 지껄이지 않았다. 은재는 안도감을 느낌과 동시에 철저하게 비참해졌다.

[은재야.]

헐떡대는 놈의 숨소리가 귓가에 노골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놈의 입술이 귓가에 들러붙는다. 꿀꺽거리며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침 소리가 귓속에 가시처럼 꽂혔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놈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넓은 강당에 홀로 발가벗은 채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 느낌이었다. 모든 이가 제 치부를 구경하며 낄낄 웃는 소리가 메아리쳐 들리는 것만 같았다.

놈들의 다른 손들이 재차 은재의 몸을 더듬고 양쪽 다리를 잡아 벌렸을 때, 그제야 겨우 긴 악몽에서 깰 수 있었다.

“……헉!”

은재는 눈을 떴다. 아니, 뜨려 했다. 하지만 눈물로 퉁퉁 부어 눈꺼풀이 쉬이 열리질 않았다.

일렁거리는 시야가 등불처럼 점멸했다. 어느새 아침이 된 걸까, 줄곧 어둠 속에 갇혀 있어서인지 밝은 창밖이 어색하기만 했다.

“하, 하아…….”

은재는 깊게 숨을 내쉬며 눈을 꾹 감았다. 현실인지 아직 악몽 속인 건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축축한 아랫도리도 땀에 젖은 침대 시트도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만 제 몸을 붙들고 있던 손들과 제 위에서 몸을 놀리던 그놈, 낄낄거리며 비웃던 그 새끼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증발하듯 사라졌다.

은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윽!”

허리부터 발끝까지 욱신거렸다. 허리에는 망치로 맞은 듯한 통증이 일었다. 허벅지 안쪽은 누가 묶어 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아팠고, 아래 역시 홧홧한 이물감이 선명했다.

“씨발…….”

입 밖으로 욕지거리가 나왔다.

정말 꿈이었을까.

속으로 되뇌어 물을 정도로 모든 감각이 그대로였다. 은재는 손등으로 짓무른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아직 혼탁한 정신은 제 길을 찾지 못했으나 눈동자는 벽에 걸린 시계를 찾았다.

오전 강의는 놓친 지 오래였다. 오후 첫 강의는 중요한 전공 수업이었기에 빠질 수가 없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 교수가 어떤 과제를 내줄지도 모르고, 또 필기도 해야 했다.

친구가 있었다면 대리 출석을 부탁한다거나 오늘 수업에서 특별한 건 없었는지 물어볼 수 있겠으나 은재는 친구가 없었다.

따돌림을 당한다기 보다는 주변에야 늘 사람이 많았지만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들이 은재를 따돌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은재가 그들을 따돌리고 있었다.

정문으로 가는 건널목에 다다랐다. 조금 전까지 깜빡이던 초록색 불이 금세 빨간색으로 변해 있었다.

‘……타이밍 참.’

한숨이 새어 나온다. 은재는 결국,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는 것을 기다리다가 차도에 잠시 정차된 자동차로 눈길을 돌렸다. 방금 세차를 했는지 몸체에서 번쩍번쩍 광이 났다.

윤이 나는 검은색 차체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급히 나오느라 대강 눌러쓴 캡 모자에 마스크, 한창 유행인 점퍼 안에는 무난한 흰색 티. 몸에 꼭 맞는 바짓단 아래로 흰색 운동화가 보인다. 운동화는 잘 관리해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했다.

‘……이렇게 멀쩡한데.’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는 사람. 아니, 흠결이랄 것이 없는 사람이 허은재였다. 선이 날렵한 탓에 예민해 보인다는 소리는 종종 들었지만 실제로도 예민하니까 그건 흠결이 아니지 않은가.

오점 하나 없던 은재의 인생이 어그러지기 시작한 건 고작 몇 달 사이의 일이었다. 그 빌어먹을 꿈.

가위라고 해야 하나. 그것들은 귀신이 맞긴 한 걸까? 초자연적인 현상, 귀신, 악마,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과는 거리가 먼 생애였다. 그러니 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직도 욱신거리는 아래가 느껴져 볼이 화끈거렸다. 이 끔찍한 감각이 깨어나고서도 그대로인데 그저 꿈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씨발. 그거 비싸게 주고 산 건데. 돌팔이 무당 새끼.’

순간 베개 밑에 넣어 두었던 부적이 떠올랐다. 불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부적을 가지고 놀던 그 새끼들의 음성까지.

은재는 신경질적으로 눈을 감고 도리질을 쳤다. 바삐 움직이는 다리는 목적지를 알고 있었으니 잠깐 시야가 닫혀도 큰 무리는 없었다.

“……저기.”

그때였다. 툭, 앞으로 나아가던 몸이 돌부리에 걸린 듯 멈칫했다. 급히 눈을 뜨자 은재의 얼굴 위로 긴 그림자가 나 있었다.

그림자가 낸 길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올렸더니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가 서 있었다.

커다란 키에 체격까지 더해져서 산에서 내려온 곰처럼 거대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작정하고 얼굴을 가린 것처럼 검은 머리카락이 눈가까지 내려와 있었고 큰 안경 너머로 보이는 검은 눈동자는 흐릿했다.

“네?”

잡상인은 사절이다. 가뜩이나 늦었는데. 게다가 온몸이 아프고 기분은 더러웠다. 지랄하기 딱 좋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은재는 금방이라도 할퀼 듯 가시를 삐죽 세우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아, 저기.”

“아, 저기, 뭐요.”

남자는 어쩐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단어를 고르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을 꺼내는 것 자체를 고민하는 듯도 보였다. 은재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었다. 이럴 거면 뭐하러 말을 붙였나 싶다.

손목시계를 확인하자 곧 수업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은재는 대놓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때까지도 말이 없는 남자를 그대로 두고 옆으로 비켜 지나가려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요즘 꿈에―.”

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굵직한 저음이 귀에 탁 걸렸다. 은재는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흠칫 놀라 어깨를 떨었다.

‘어떻게…….’

숨겨 두었던 일기장이 낱장으로 찢어진 듯했다. 팔랑거리며 흩어지는 종이 쪼가리가 바스락, 환청처럼 들린다.

“지금……, 뭐라고.”

은재가 미간을 찌푸렸다. 한순간에 험악해진 표정으로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기가 죽었는지 남자가 또다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이어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즘 꿈에 이상한 게 보이―.”

남자의 입술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천천히 벌어졌다.

‘……대체, 그걸 어떻게…….’

당연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한 찰나, 은재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안경 너머로 가려진 새카만 눈동자 안으로 은재의 모습이 비친다. 마치 신통한 점쟁이를 발견한 것처럼 은재의 동공 또한 커졌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실낱같은 빛줄기를 발견한 듯 기묘한 기분이었다.

“야, 허은재!”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공기가 깨진 것은 경망스러운 목소리 탓이었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별로 친하지도 않은 과 동기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뭐 하냐. 빨리 안 뛰어가면 강의 늦는다? 그 교수 출결에 겁나 깐깐해!”

“……아니, 잠깐.”

잠시 그쪽으로 시선을 빼앗긴 사이, 무언가 앞으로 휙 지나갔다. 제 앞을 가로막고 있던 곰 같은 남자가 뭐에 쫓기듯이 자리를 피한 것이다. 몸은 거대한 주제에 행동은 생각보다 날랬다.

“저기, 이봐요! 잠깐!”

방금까지 눈앞에 있었는데. 은재가 눈꺼풀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남자는 더더욱 멀어졌다.

은재 역시 남자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며 달렸지만,=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뜩이나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잤고 원래 운동도 그리 잘하는 편도 아니다.

은재는 턱 끝까지 올라오는 세찬 숨을 겨우 몰아쉬며 소리쳤다.

“야!”

그러나, 은재의 외침이 허망하게도 남자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 * *

“누구?”

“아까 내 앞에 서 있던 남자.”

지루한 강의가 끝나고 하나둘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나설 때였다. 은재는 별로 친하진 않지만, 아까 굳이 아는 척을 했던 그 동기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 그 시커멓고 커다란 놈?”

“응. 혹시 본 적 있어?”

같은 강의를 들은 적이 있기는커녕 생전 처음 보는 낯짝이었다.

‘애초에 그렇게 커다란 놈이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지.’

그러니 아마 다른 과가 아닐까 싶었다. 같은 학과가 아니라면 찾기가 더욱 힘들어질 테다. 사실상 거의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동기에게 물은 것이었다.

“걔, 우리 과 신입생 같은데.”

“……뭐? 같은 과라고?”

“본 것 같아서. 그런 놈, 흔하지 않잖아.”

흔하지 않은 몽타주긴 하지. 은재는 속으로 생각했다.

“확실해?”

“아마도? 이름까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본 기억은 있어. 내가 잘 모르는 걸 보면 과 활동은 안 하는 타입일걸. 나보다는 신입생들이 더 잘 알겠지. 어차피 오늘 과 행사 있으니까 가서 물어보면 되겠네.”

“아냐, 괜찮아. 고맙다.”

같은 학과면 예상보다 수월하게 일이 풀릴지도 모른다.

컴컴했던 앞날에 실밥 하나가 툭 떨어진 기분이었다. 물론, 아직 그 실밥이 실낱같은 희망이 될지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야, 뭐가 괜찮아. 가자, 애들이 너 보고 싶어 하는데.”

뒤돌아서 강의실을 나가려는데 동기가 은재를 붙잡았다.

“총회는 지난번에 하지 않았나?”

“비공식. 인마, 비공식. 맨날 빼지 말고 가끔 어울리고 그래야지. 학기 중에 안 보면 애들 만날 기회도 없는데.”

은재는 잠시 고민했다. 비공식 총회라면, 결국은 그저 술 모임일 터였다. 선후배들을 한자리에 모아 두고 술이나 퍼마시면서 술 게임을 하거나 서로 안부를 묻는 그런 자리 말이다.

고민하는 은재의 뒤로 동기, 이현수가 조잘조잘 떠들어 댔다.

“이런 기회 아니면 여자 신입생들 언제 보냐? 이참에 만나서 눈도장도 좀 찍고 애들 싹 스캔 하고 그래야지. 너는 마음에 드는 신입생 없어? 미리 말해 두지만, 김지혜는 내가 찍었다. 넌 걔 앞에서 웃지도 마라. 아무래도 내가 불리하니까.”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은재는 현수가 재잘대는 것을 뒤통수로 대강 흘리면서 생각을 이어 갔다.

아까 마주친 그 곰 같은 놈이 정말 같은 과 신입생이라면 이번 자리에 올 수도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에게 발품 팔아 가며 묻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이겠지.

고민을 마친 은재가 현수에게 말을 걸었다.

“야, 김현우.”

“김현우가 아니라 이현수다, 이 새끼야. 하여간, 너는―.”

“알았어, 갈게.”

현수가 투덜거리며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은재로서는 이름 석 자 중에 한 자라도 맞은 게 어딘가 싶었다만, 그는 꽤 불만인 얼굴이었다.

“그럼 바로 출발하자. 정문 근처야.”

은재는 현수를 쫓아 강의실을 나섰다. 교정에 난 길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나무에는 어느새 색이 바랜 이파리들이 팔랑거렸다.

은재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가 곧 아래로 떨어졌다. 서늘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자 발끝에서 자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을 따라 퍼석하게 메마른 잎사귀가 금세 흩어진다.

“선배! ……어, 은재 선배?”

“헐, 진짜네.”

“야, 너희 나는 안 반갑냐?”

“아, 현수 선배. 안녕하세요!”

교문 쪽에 삼삼오오 모인 신입생들이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건넸다.

하나같이 낯선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소리 높여 대화를 주고받았다. 대부분은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어떤 강의가 편한지, 어느 교수가 깐깐한지.

현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았다. 은재는 그저 잠자코 그들의 대화를 들을 뿐이었다. 가끔 따라붙는 시선이 느껴졌으나 늘 있는 일이다.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그런데, 은재 선배님은 원래 술 잘 안 드세요? 술자리마다 안 보이시던데.”

“아, 맞아. 그러고 보니 저 처음 봬요. 혹시, 교양은 어떤 거 들으세요?”

“나는 교양 어떤 거 듣는지 안 궁금하니?”

“에이, 현수 선배는…….”

“야, 왜 말끝을 흐리냐.”

한꺼번에 여러 질문이 쏟아졌다. 혈액형은 뭔지, 자취하고 있는지, 여자 친구가 있는지, 이상형이 누군지. 이러다가 가족 관계까지 물어볼 기세였다.

귀찮았다. 그렇지만 낮에 본 남자의 신상을 캐내기 위해 적당히 친절하게 답을 해 주자 마음을 먹었다. 은재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 가벼이 웃었다. 미소 띤 가면을 쓰곤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그―.”

공기의 방향이 바뀌었다.

바람결이 가져온 온도가 무척이나 스산해졌다. 바짝 곤두선 솜털들이 무엇인가를 경고하는 듯했다.

은재가 묘한 이질감을 느꼈을 때, 땅에 디딘 발끝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누군가의 손이 아래에 닿은 것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찰나였다.

은재에게 뻗어 온 손은 머뭇거림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것을 탐하는 양 은재의 몸을 더듬고, 또 더듬었다. 허리를 스치듯 내려간 손길은 그새 둔부 근처를 맴돌았다.

하나, 둘.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손은 은재의 둔덕 사이를 노골적으로 어루만졌으며 또 어떤 손은 허벅지 안쪽을 더듬고 있었다. 꼼짝없이 굳어 버린 은재의 몸은 그들의 장난감이나 다름이 없었다.

‘윽……!’

은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당황스러웠다.

귀에 선명히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음이 지금 은재가 꿈속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끔찍한 악몽에서는 몰라도 깨어 있을 때 놈들이 찾아온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키긱, 끽, 끼긱, 끼익.]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믿고 싶지 않았다. 귓가에 환청처럼 들려오는 유리창을 긁는 기이한 소리. 그것이 놈들의 웃음소리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은재는 이미 숱한 악몽에서 그 소리를 들어 왔다. 그것들에게 옷자락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들이 만지는 것은 은재의 살갗이었다. 밤새 당했던 그 감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살결이었다.

[은재야. 허은재]

[은재야, 왜 구멍이 비었어?]

놈의 손가락이 둔부 사이로 파고들었다. 놈은 아주 능숙했다. 마디가 굽어진 손가락이 녹진하게 풀어진 구멍 안으로 쑥 밀려 들어왔다. 은재는 밭은 숨을 들이켰다. 들키면 안 됐다. 바로 코앞에 사람들이 있었으니.

“……선배?”

“은재 선배, 괜찮으세요?”

그때, 다른 손이 양쪽 둔부를 콱 움켜쥐었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양쪽으로 둔덕을 벌려 내고 있었다. 안쪽에 파고든 손가락의 움직임을 도와주려는 듯했다.

둔부를 콱 움켜쥔 손길은 거칠었다. 발간 손자국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제멋대로 구멍을 쑤셔 대는 손가락이 예민한 부위를 스치자, 움찔 어깨가 떨렸다. 등 뒤는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해진 뒤였다.

[넣고싶어넣고싶어넣고싶어넣고싶어.]

[어제 그렇게 박았는데 또 이렇게 벌어졌네, 낄낄. 은재야, 여기 좋아?]

[나부터 할래, 나부터.]

허벅지 안쪽에서 노닐던 또 다른 손은 은재의 중심을 툭툭, 건드렸다. 장난치듯 선단을 어루만지더니 이내 올라가 가슴께를 더듬는다. 아직은 완만한 꼭지를 그러모으듯 양손으로 자극했다.

익숙하지 않은 손길이 익숙하지 않은 곳을 희롱하고 있었다. 놈의 손길로 점점 빠듯하게 올라붙는 젖꼭지가 느껴졌다. 얇은 흰색 면 티셔츠가 봉긋하게 솟는다.

“야, 허은재. 너 왜 그래, 갑자기. 어지럽냐? 얼굴이 허연데.”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들이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신기한 광경을 보듯 고개를 기울였다.

혹시, 설마.

이 모든 행위가 보이는 것은 아닐까.

이건 정말 현실일까. 아니면, 아직 지독한 악몽을 헤매고 있는 걸까. 은재는 속으로 겨우 신음을 삼켜 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제발, 제발, 제발.’

꿈이라면 깨어나고 싶었다. 발은 아스팔트 바닥에 뿌리라도 내린 듯 꿈쩍도 안 했다. 자연스럽게 내려간 양팔 역시 어디에 꽁꽁 묶인 양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은재는 놈들에게서 벗어나려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가슴이며 아래에서 오는 쾌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손가락 하나로 구멍을 쑤셔 대던 것은 어느새 개수가 늘어 있었다. 여러 손가락이 한데로 묶인 덩어리가 되어 애널 안을 헤집어 놓았다.

한계까지 늘어난 입구가 저릿하게 저려 왔다. 아직 지난밤의 흔적이 남은 채였다. 몇 번이고 유린당했던 내벽은 익숙하게도 놈의 손가락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줄 자극을 기대하는 듯 강하게 수축하며 쭉쭉 빨아 대었다.

[끼긱, 킥, 낄낄.]

[끼키, 끼기긱.]

환청이 들렸다. 놈들은 웃고 있었다. 가까스로 신음을 참아 내는 은재를 비웃고 있었다.

넌 결국 참지 못할 거야.

원하는 대로 다리나 벌려.

다들 보는 앞에서 범해 줄 테니까.

음험한 소리들이 귓가를 오갔다.

‘싫어, 싫……!’

깊숙이 박힌 손가락이 안쪽의 불룩한 곳을 짓이겼다.

‘……!’

마치 전기가 튀듯 전신이 수축한다. 너덜너덜해진 성감대가 또다시 문질러지고 있었다. 손가락이 박혔다가 빠져나가자 내장이 꾹 조여졌다. 안쪽의 온 신경이 바싹 구워지는 것만 같았다.

노골적인 손짓이 재차 구멍 안을 쑤셨고, 결국은.

“―윽!”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은재는 황급히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입술이 찢어질 만큼 세게 깨문 탓이다.

“……선배?”

“뭐지, 은재 선배 어디 안 좋으신 것 같…….”

“야, 너 뭐야. 왜…….”

사람들의 의아함이 의심으로 변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의적이던 시선들이 이제는 배타적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그 모든 광경을 은재는 뜬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함부로 안을 쑤셔 대는 놈의 손길과 가슴을 죽 잡아당기며 문지르는 다른 것들의 손길을 느끼면서.

죽고 싶었다.

은재는 그때 처음,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흠집 하나 없던 은재의 인생에 길고 긴 상흔이 남은 순간이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푹 숙였던 고개는 다른 놈의 손길에 의해 들린 지 오래였다. 그것들은 은재의 피할 곳을 모조리 막아 두었다. 다른 이들에게 은재의 표정이며 반응을 그대로 보게 하려는 것이다. 똘똘 뭉친 악의가 느껴졌다.

‘그만, 그만……. 제발.’

턱이 덜덜 떨렸다. 시체처럼 차가운 손길이 뒤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것은 은재의 턱을 부드러이 감싸고는 말을 뱉었다.

[내가 아까 그랬잖아, 은재야. 이제 시작이라고.]

뒤로 기둥이 닿았다. 안을 파고든 손가락에는 아랑곳없이 그 두꺼운 기둥이 둔덕 사이를 파고들었다. 양쪽으로 벌어진 둔부 사이에 기둥이 닿고, 이내 느릿하게 움직였다.

이제부터 벌어질 일을, 은재는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혀를 깨물고 죽어 버린다면 이런 끔찍한 짓을 다신 겪지 않겠지. 그러나, 두려웠다. 죽을 생각이었다면 진작 죽었을 것이다. 이 지독한 악몽이 시작된 그 순간에.

이젠 의심으로 바뀌어 버린 눈초리가 느껴졌다. 우뚝 멈춰 선 일행들은 이제 은재를 수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구멍에 걸쳐졌던 선단이 기어이 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빠듯하게 맞물린 살과 살에 큰 마찰이 인다.

은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성기가 주는 압박감에 하복부에 힘이 들어갔다. 허리를 감싸는 손길, 익숙해져서는 안 되는 그 손이 은재의 몸을 단단히 부여잡고 있었다.

‘윽……!’

은재는 자신의 뒤에 붙어 뜨거운 숨을 몰아쉬는 놈을 뿌리치지 못했다. 겨우 삼켜 낸 신음은 애써 숨으로 흘려보냈으나, 안으로 처박히고 있는 놈의 성기는 온전히 받아야만 했다.

그 참혹한 순간 무언가가 은재의 등을 툭, 건드렸다. 아주 찰나였다. 바닥에 묶인 듯 붙어 있던 다리가 흔들렸다. 속박에서 풀린 것처럼 뻣뻣하게 굳었던 팔에도 움직임이 돌아왔다.

‘……뭐지?’

놈들에게 붙들린 팔다리에 차츰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은재로서는 처음 느껴 보는 해방감이었다. 딱딱하게 굳었던 몸이 풀리고 이내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자신의 안쪽을 제멋대로 파헤치던 성기의 감촉까지도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간 수많은 악몽, 혹은 가위에 시달렸으나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놈들은 그들의 악의적인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는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은재의 몸과 정신이 넝마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말이다.

그런데 지독하게도 집요한 놈들의 기척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값비싼 부적이며 신점, 이외의 모든 종교의 힘을 빌었어도 놈들에게서 벗어날 방도는 없었는데.

‘대체, 지금은 어떻게.’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은재는 생각했다. 무엇인지는 모를 이 순간이 자신의 악몽을 해결할 유일한 구원책이라고.

“어? 선배!”

“야, 허은재!”

생각을 마침과 동시에 시야가 핑그르르 돌았다. 꽉 붙들려 있던 무게 중심이 순식간에 풀리면서 매가리 없이 쓰러지게 된 것이다.

아스팔트에 머리를 부딪치려던 때에, 누군가가 은재의 몸을 붙들어 안았다.

은재의 위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혼미했다. 무언가가 자신을 끌어안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식은땀으로 젖은 등에 따스한 체온이 와 닿는다. 놈들의 그 차갑고 축축한 촉감과는 전혀 달랐다.

“……저기. 괜찮으세요?”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은재는 겨우 눈꺼풀을 열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남자의 등 뒤로 햇살이 쏟아진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은재는 밭은 숨을 몰아쉬던 입술로 겨우 한마디를 꺼낼 수 있었다.

“너……, 곰.”

“네?”

이 모든 장면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던 일행들이 근처로 다가왔다. 몇 명은 낯선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았는지 “어, 너, 그.”라는 말만 내뱉으며 이름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리고, 현수도 영 미심쩍은 얼굴로 서서히 다가왔다.

은재 주변으로 사람이 모이자 남자의 어깨가 눈에 띄게 떨렸다. 부드럽게 안아 들고 있던 은재를 땅바닥으로 휙 내려놓고는 그새 도망가려 하는 것이었다.

‘사냥꾼을 코앞에 둔 곰도 아니고.’

그러나, 은재도 이번에는 그를 놓칠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남자의 멱살을 쥐었다. 컥, 짧게 숨을 토해 내는 소리가 코앞에서 들렸다.

“잡, 았다.”

“네?”

야생의 곰을 완벽히 포획한 순간이었다.

* * *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진이 빠진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볼썽사납게 아스팔트 한가운데에서 주저앉게 된 것이다.

대학가의 길바닥이니 오가는 사람들이 한 다발이었다. 젠장, 은재의 귀가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여기…….”

“응, 내 집이야.”

난데없이 나타난 남자의 멱살을 틀어쥔 은재를 사람들은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평소의 은재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순간 사고가 마비되었던 탓이었다. 바닥으로 쓰러지면서도 그의 옷자락은 움켜쥔 채였다.

하지만 그때의 은재에게는 그밖에 없었다. 이 지옥을 타개할 실마리가. 썩어 버린 동아줄일지라도 일단 잡아야만 했다.

“너, 이름이 뭐라고?”

“진……, 이요.”

“뭐? 안 들려.”

“……진태영이요.”

“1학년?”

“네.”

호구 조사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당최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다짜고짜 정체가 뭐냐, 그 악령들이 보이는 거냐, 물을 수도 없었고.

길바닥에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은재는 남자, 태영에게 부축당했다. ‘부축을 당했다’는 표현이 조금 이상할지는 몰라도 은재는 당시에 그렇게 느꼈다. 엉거주춤 몸을 기댄 채로 거의 업히다시피 한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였으니까.

‘으, 은재 선배?’

‘쟤……, 걔 아닌가? 그 진……. 뭐더라.’

‘전공 같이 들은 적 있긴 한데, 잘 모르겠어.’

‘야, 허은재. 너 지금 뭐 하냐? 아, 혹시 쟤가 걔인가? 아까 그…….’

걱정과 당황을 가득 담은 눈빛들이 거슬렸다.

그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자, 태영은 또다시 도망치려 했다. 주목 받으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건지. 그래서 결국 은재는 태영의 뒷덜미를 꾹 잡고 겨우겨우 이곳으로 끌고 온 것이다. 자신의 자취방으로.

“내가 왜 널 데리고 온 것 같아? 피차 시간도 없을 테니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너, 나한테 왜 그런 말 한 거냐?”

“네?”

“아까 너 나 붙잡고 말 걸었잖아. 기억 안 나?”

“……아, 네.”

은재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다른 누구의 시선도 없는 안전한 집에 들어와 있지만 아직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불쾌한 감촉이 몸 곳곳에 남아 있었다. 놈들의 손이 스쳤던 턱이며 입술, 부어 있는 가슴과 달아오른 아래까지. 놈들에게 만져진 아랫도리로 피가 쏠린 탓에 말을 이어 가기가 쉽지 않았다.

“……저, 선배. 괜찮으세요?”

침대에 걸터앉은 은재의 몸이 조금 앞으로 굽었다. 점점 짧아지는 호흡을 태영도 눈치챈 것일까. 단단해지는 아래를 감추려 시트 위에 널브러진 이불을 당겨 제 앞을 가렸다.

“괜……, 찮아. 그보다 아까 나한테 한 말 무슨 뜻인데? 네가 그랬지. 요즘 이상한 꿈을 꾸지 않느냐고.”

“아, 네.”

“야, 좀 길게 대답해. 그거 무슨 뜻이었냐고. 그리고 아까도…….”

태영이 자신을 툭, 건드리는 감각이 느껴졌을 때 놈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딱딱하게 굳었던 몸도 삽시간에 풀렸었다.

“……아까도 네가.”

은재는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귀신? 아니면 귀접을 당하고 있었다고? 솔직히 말해도 되는 걸까. 처음 본 사람의 무엇을 믿고.

“그냥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요.”

은재의 맞은편 책상 의자에 앉은 태영의 고개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촘촘한 머리카락이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다.

“안색? 내 얼굴빛이 안 좋아 보여서 물었다는 거야?”

“네, 별 뜻 없었어요.”

은재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태영은 거짓말에 능숙하지 않아 보였다. 언뜻 덤덤하게 말하는 듯했으나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걸 보니. 숨기려면 제대로 숨겨야지. 그는 분명 무언가 감추고 있었다.

“그걸 믿으라고? 너, 나 알아? 길 가다가 모르는 사람 낯빛이 안 좋다고 붙잡아선 혹시 꿈꿨냐, 뭐 이런 거 물어봐? 그런 인간들은 죄다 사이비던데. 너 혹시 사이비냐?”

“……아, 아뇨. 사이비 아닌데. 종교 같은 거 없어요.”

“그럼 뭐냐고. 믿을 소리를 해. 내가 바보 천치로 보여? 그래, 처음엔 내 얼굴빛이 안 좋았다고 치자. 그럼 아까 일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아까……, 뭐요?”

“뭐긴. 나 그때―.”

은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단어를 골랐다. 놈들에게 굳이 그런 짓을 당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때, 가위눌리고 있었거든.”

가위라는 단어가 은재의 입 밖으로 나오자 태영의 안색이 일순 어두워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좀 절박해. 물론 내가 헛다리를 짚은 걸지도 모르지. 그럴 가능성을 아예 지운 건 아닌데, 진짜 좀 심각하거든.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다.”

누군가에게 이리도 절절히 매달린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은재는 고개를 푹 숙인 태영의 손을 잡았다. 은재의 손이 가 닿자 태영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었다.

“별로 꺼내고 싶지 않은 주제인 건 알겠어. 갑자기 이런 걸 물어보는 나도 좀 미친놈인 건 알아. 그런데 좀, 뭐라도 아는 게 있으면 솔직하게 말해 줘. 나, 뻔뻔한 놈 아니야. 신상도 확실하고. 너도 과에서 내 이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텐데. ……아닌가? 아무튼, 대가가 필요하면 뭐든 할 테니까.”

벌써 며칠. 아니, 몇 주째인지 헤아리는 것도 포기했다. 불안함에 떠는 일 없이 잠을 청한 게 언제인지. 거듭되는 악몽은 일상의 아주 작은 조각까지 파먹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한계에 임박한 상태였다. 더는 이렇게 버티지 못한다. 은재는 그리 직감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존심 따위 중요치 않았다.

“……알아요.”

“뭘?”

태영의 눈빛이 은재를 향했다. 그의 눈동자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선배요. 은재 선배.”

“어? ……아, 날 안다고. 그래.”

거창한 비밀을 말하려나 했더니, 고작. 은재는 실망한 티를 숨긴 채 이어질 태영의 답을 기다렸다.

“선배가 짐작한 게 맞아요. 아까 봤을 때 선배 옆에 검은 놈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아까도요.”

“검은 놈?”

“네. 저는 그렇게 불러요. 어떤 놈은 검고, 또 어떤 놈은 희거나 노랗거나.”

태영이 전하는 알쏭달쏭한 이야기에 은재의 고개가 살짝 기울여졌다. 잠시 이어지는 적막 속에 탁탁, 시곗바늘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쉽게 말해서……, 이 세상에는 없는 자들이겠죠. 흔히들 말하는 혼령, 귀신, 유령 같은 거요.”

“그럼 결국 네가 귀신을 본다는 거네. 맞아?”

몸쪽 꽉 찬 직구를 내던진 건 은재였다. 꽤 속도가 붙은 공이 약점을 강타한 듯 태영의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태영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은재가 숨을 훅 들이켰다. 이어 쉴 새 없이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정말? 정말이야? 귀신을 본다고? 그럼 혹시 귀신을 볼 수만 있는 건가? 아니면 그놈들하고 대화할 수도 있는 거야? 혹시 무당이라거나 뭐 신내림이라도 받았어? 아니, 그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하고 우선 귀신을 쫓아낸다거나 부적이라거나 굿이라거나,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동아줄이었다. 아니, 적어도 지푸라기 정도는 되어 보였다.

태영의 손등을 꽉 움켜쥔 은재의 손에 더욱 강한 힘이 들어갔다. 태영은 그런 은재를 보며 조금은 놀랐는지 의자 등받이 쪽으로 몸을 피하듯 기대고 있었다.

“그……, 네? 아……, 저기 질문이 너무 많은데.”

“……아, 그랬지. 그럼 하나만 먼저 물어보자. 귀신 쫓아내는 것도 가능해? 무슨 방법이든.”

“가능해요, 아마도.”

은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제 턱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태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런 똘똘하고 천재적인 녀석이 어디서 굴러떨어졌을까. 지푸라기? 아니, 동아줄을 넘어서 거의 로프였다. 자신을 구해 줄 단단한 밧줄이었다.

“그런데, 선배.”

“응?”

“기분 나쁘지 않으세요?”

“뭐가?”

“……귀신을 본다는 거요, 제가.”

“뭔 소리야?”

태영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놀란 듯 조금 멍한 표정이 스쳤다가 이내 입술 끝이 둥근 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어두침침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꽤 봐줄 만한 미소였다.

“어찌 됐든 아까 내 근처에 있던 귀신들이 보였다는 거잖아.”

“네. 지금도 있어요.”

“……무, 뭐?”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태영의 검은 눈동자가 은재의 목덜미 쪽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이 닿자 일순 스산한 한기가 들었다. 창문도 방문도 꽉 닫힌 공간에 바람이 이는 듯했다.

확신에 가득 찬 태영의 어조에 은재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몇 번이고 겪었다지만,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지만 그래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기운이라는 게 보여요.”

“기운?”

“네. 불투명한 막처럼 둘린 거죠. 누구에게나 있어요. 그 기운이 액(厄)과 귀(鬼)가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기도 해요. 물론, 사람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요.”

도통 말수가 없는 놈인 줄만 알았는데 한번 물꼬를 터 놓으니 술술 이야기가 나왔다.

“신력(神力)이 좋은 사람은 기운이 무척 두터워요. 밖으로 퍼지는 형태인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은 흔히 말하는 무당 중에서도 진짜배기죠.”

“나는? 난 어떻게 보이는데.”

“그런데 선배는 없어요, 그 기운이.”

“없다고?”

“네, 무슨 이유로 없어진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의심할 수 있는 건…….”

은재는 어느새 태영의 이야기에 홀린 듯 빠져 버렸다. 아래를 가린 이불을 꾹 쥔 채 태영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선배의 복부……, 그러니까 명치 아래의 중심인 배꼽 부분에서 귀문(鬼門)이 보여요.”

태영의 눈동자가 아래로 향했다. 그의 시선은 은재의 하복부 쪽을 향했으나 어쩐지 어깨를 움츠리게 되었다. 하복부의 바로 아래, 은재가 필사적으로 가린 쪽이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그의 노골적인 시선을 느낀 은재가 몸을 흠칫 떨었다. 혹시 들킨 건 아니겠지, 그에게 귀접당한 것을 들킬까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귀문은 액과 귀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원래는 장소, 특히 동쪽이나 북쪽, 폐가나 폐교, 폐병원 같은 곳이죠. 그런 데는 기운이 음습하고 축축해서 모든 악귀나 혼령이 모여 있다고 보면 되거든요. ……그런데, 그게 왜 선배의 몸에서 보이는지 모르겠어요.”

태영이 손을 뻗었다. 긴 손가락이 은재의 하복부로 망설임 없이 뻗쳐 왔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화들짝 놀란 은재의 몸이 파드득 떨렸다.

“야, 잠깐!”

“잠시만요.”

태영의 큰 손바닥이 은재의 하복부 부근을 지그시 눌렀다. 그의 이야기가 주는 위압감에 은재는 그만 피할 때를 놓치고 만 것이다.

어느새 붙잡힌 한쪽 팔이 은재의 몸을 태영 쪽으로 이끌었다. 거대한 고목에 붙들린 것만 같았다. 상체가 태영의 쪽으로 기울면서 하복부에 전해지는 압박감은 더욱 짙어졌다.

태영의 손바닥 아래로 뜨거운 열기가 모였다. 그리고 그 지근 거리에서 이미 뜨거워진 은재의 성기는 벌써 단단하게 모양을 갖춘 뒤였다.

“야. 그, 윽……!”

코앞에 태영의 어깨가 보였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그의 몸으로 은재의 상체가 무너졌다. 곧게 뻗은 태영의 어깨로 이마가 닿았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옷자락을 짙게 물들인다. 은재는 태영에게 몸을 의지한 채 짧은 숨을 내뱉었다.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태영의 손길에 가라앉지 못했던 흥분감이 재차 고개를 들었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고 만 것이다. 축축하고 차갑던 감각이 아닌,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체온이 와 닿자 안쪽이 저릿저릿하게 떨려 왔다.

“역시 이쪽이 문제네요. 가위눌린 지 아마도 한 달이나 두 달 정도 되었을 텐데.”

“……으, 으응.”

“선배 옆에 유독 검은 놈들이 많이 보인 이유도 귀문과 연결되어 있을 거예요.”

“그, 저기. 이제 좀…….”

“검은 놈들은 질이 안 좋아요. 악의로 똘똘 뭉친 놈들이라.”

“……윽. 알겠, 으니까.”

허벅지 안이 파르르 떨렸다.

접촉이 싫다면 태영을 밀어내고 뿌리치면 될 일이었다. 아주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다. 그러나 그에게 기대어 있는 몸이 쉬이 떨어지질 못했다. 태영이 내뿜는 체온이, 열기가 은재를 감겨 들게 만들었다.

아래에 닿는 손길은 분명 직접적이지는 않았으나, 그저 부근에 닿은 것만으로도 은재의 아래를 욱신거리게 했다. 그래서 결국 그를 뿌리치지 못하고 도리어 허리를 들썩인 것이다.

그런데도 둔한 곰 같은 태영은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듯 태연했다. 당신의 병명은 무엇이고, 그 병은 이러한 증상이 있고. 태영의 손 아래에서 안달이 난 은재에게 차분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귀문을 닫는 방법은 저도 몰라요. 더군다나 사람에게 난 귀문은……, 들어 본 적도 없고. 귀문은 보통 사람의 발길이 없는 버려진 장소에서나 생기는 거거든요. 조치를 취한다면, 그곳에 아무도 못 가게 하는 것뿐이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주룩 흘렀다. 아래에서 퍼진 열기가 신경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에 퍼지고 있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다리가 움찔 떨렸고, 자꾸만 곱아드는 발끝이 애꿎은 바닥을 긁었다.

“으읏……. 아, 좀, 비키라고.”

은재는 도무지 떨어질 생각이 없는 듯한 태영의 손목을 손으로 움켜잡았다. 예민하게 달아오른 감각이 아래에서 맥박을 뛰게 했다.

하지만 찰나가 급했다. 태영이 조금 더 건드렸다간 이불 안에서 사정할 것만 같았다.

어찌나 부끄러운 일인지. 초면인 남자의 손에 몸이 닿았다는 것만으로 스스로 허리를 흔들다가 사정한다니. 이것보다 더 최악이 있을까? 생각만 해도 피가 차갑게 식는 듯했다.

“네?”

“윽……, 좀! 이 멍청아!”

“잠깐, 아직 확인을 다 못했어요.”

“나중에, 하라고! 지금은―.”

은재는 태영이 움켜쥔 한쪽 팔을 뿌리쳤다. 발간 손자국이 남은 손을 탈탈 털고는 양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아 들었다. 그런데 끙―, 소리가 날 만큼 온 힘을 다했음에도 어찌 된 게 꼼짝도 않는 것이었다.

“선배, 지금도 뒤에 있다고요. 우선 조금 더 살펴보고…….”

남의 몸에 손바닥을 대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지 태영은 태연자약한 소리만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사정할 듯 곧추선 성기 때문에 그가 손을 대고 있는 은재의 복부 부근마저 파르르 떨리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지금 은재의 심정으로는 태영이 더 귀신같았다. 이 상황에서 부끄럽거나 민망한 기색도 전혀 없이 저런 말을 늘어놓고 있다니. 검은 놈이고 혼령이고 뭐고 당장 놈부터 떼어 내야만 했다.

“윽, 좀! 이 곰 새끼가!”

순간 무게 중심이 안쪽으로 확 기울었다.

은재가 태영의 손을 떼어 내려 안간힘을 쓰며 당긴 찰나였다. 태영이 의자에 앉아 있던 몸을 일으키자 은재가 당기던 쪽으로 몸이 휙 넘어갔다. 푸욱, 침대가 출렁거리며 요동쳤다. 태영의 무게까지 더해져 매트리스가 움푹 들어간 것이다.

“윽…….”

“아, 아파.”

시커먼 그림자가 덮쳐 오자 은재의 눈꺼풀이 질끈 감겼다. 커다란 콘크리트 잔해에 깔리는 기분이었다. 컴컴해진 시야 너머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몇 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주 잠시의 틈을 두고 쿵쿵 뛰던 심장이 가라앉는다. 은재가 천천히 눈꺼풀을 열었다.

코앞에 태영의 가슴이 있었다. 구질구질한 티셔츠 안쪽으로 탄탄하게 자리 잡은 힘줄이 언뜻 보였다. 거지 같은 체크무늬 셔츠가 기막힌 보호막을 친 것이 아닐까. 후줄근한 첫인상과는 달리 꽤 관리된 몸이었다.

“선배.”

은재의 시선이 태영에게로 달라붙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코앞에 들이닥친 그의 가슴을 노골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거친 연필로 그린 듯한 다부진 턱 아래로 일자로 툭 떨어지는 목이 시원하게 뻗어 있었다. 두 팔이 벌어져 몸이 무너지지 않게끔 지탱하고 있는 동안 팽팽하게 벌어진 티셔츠 아래로 탄력 있는 상체가 눈에 띈다. 게다가 그 아래로는 두툼한 몸통이―.

“저기, 선배. 은재 선배.”

몸통이, 은재의 다리 사이에 꼭 들어맞아 있었다.

“……어, 어?”

“혹시 선배, 섰어요?”

은재의 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티셔츠 위로 드러난 목덜미와 둥글게 이어지는 귓바퀴까지 새빨갛게 점점이 물들었다.

마치 눈앞까지 빨간 셀로판지를 댄 것만 같았다.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굳이 만지지 않아도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비, 비켜. 비켜!”

“선배, 진정하세요.”

“너 같으면 지……, 윽! 진정하겠냐!”

뒤로 꽈당 넘어가면서 은재의 양다리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태영의 몸통, 특히 하복부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은 것이다.

이미 단단하게 발기했던 은재의 성기는 작은 충격에도 금세 제 모양을 찾았다. 이불 하나로 가려 뒀던 보호막은 태영의 아래와 정확히 맞닿으면서 산산이 깨진 지 오래였다.

“아, 좀 비키라고! ……읏, 야!”

창백한 낯빛으로 태영의 어깨를 밀어내던 은재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경악으로 가득 찬 은재와는 달리 태영은 어떠한 동요도 없이 그를 제 품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파드득거리는 은재를 제 팔 사이에 가둔 채 완벽히 밀착된 접합 면을 은근하게 내리누르기까지 했다. 마치 상태를 가늠하려는 듯 행동은 조심스러웠으나 은재로서는 그렇게 느껴질 리가 없었다.

“미친 새끼, 뭐 하는……. 아, 하지 마!”

“선배, 진정하세요. 괜찮아요. 오랫동안 귀(鬼)나 액(厄)에 노출됐으면 종종 이럴 수 있어요. 정신과 육체는 하나잖아요. 정신이 흔들릴수록 신체도 흔들릴 수밖에 없죠. 아주 작은 자극에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말이거든요.”

태영이 유연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럴 때면 은재의 다리가 크게 흔들렸다.

‘이……, 미친 새끼!’

은재는 이를 아득 짓씹으며 숨을 참았다. 어떠한 저항에도 꿈쩍없는 태영을 앞에 두자 모든 의욕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듯했다. 결국, 은재는 반쯤 포기한 채 태영이 움직이는 대로 전해지는 자극을 온전히 받아 내었다.

거칠한 앞섶이 묵직하게 스치자 가시처럼 찌릿한 쾌감이 다리를 꿰뚫었다. 어쩌면 저 미친놈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이 정도의 자극으로, 게다가 남자를 상대로 쾌감을 느끼다니.

계속된 귀접으로 제 몸 어딘가가 망가진 것이 분명했다. 은재는 순순히 인정하고야 말았다. 그편이 오히려 편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상처 없이 받아들이기에는.

“흐……, 앗. 안 돼, 그만.”

“괜찮아요, 선배. 참지 마세요. 성욕도 음의 기운이니까, 오히려 다 토해 내시는 게 좋아요.”

은재는 입술 사이로 터지려는 신음을 간신히 삼키고 팔뚝으로 얼굴을 가렸다. 흰 팔뚝 아래로 새빨개진 살결이 보였다.

“아, 으응. 아……!”

“선배는 지금 기운이랄 게 없으니까, 아무래도 제 기운을 나눠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아―! 씹, 좀 닥……, 으……!”

태영은 달뜬 숨을 몰아쉬며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은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주 작은 동물이 짧은 연이어 발정하듯 몇 번이고 경련하고 있었다.

빈틈없이 들러붙은 하복부를 다시금 천천히 움직이자 은재의 허리가 들떴다.

그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태영이 아래를 움직일 때면 은재는 제 몸을 밭게 붙여 대며 태영을 따라 움직였다. 엇갈려 부딪치는 마찰감은 점점 은재의 숨을 흩뜨려 놓았다.

“윽. 아, 흑……!”

고요하던 방 안에는 이제 태영의 숨소리와 은재의 신음만이 가득했다.

두 사람의 접합 면이 재차 문질러지자, 일순 물꼬가 탁 터지듯 은재의 숨이 툭 터져 나왔다. 사냥당한 짐승이 마지막 발작을 하는 것처럼 느슨하게 풀려 있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허공에 들뜬 양 발가락이 곱아들며 단정히 차려입은 옷 안쪽이 흥건하게 젖어 갔다.

“흐, 윽. 읏…….”

“잘하셨어요.”

은재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도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음의 기운은 담아 두면 안 돼요. 특히 선배처럼 귀문이 열린 상태라면 더더욱. 귀들은 음습하고 축축한 곳을 좋아하니까요. 들어오라고 문을 활짝 열어 둔 꼴이죠.”

“…….”

“귀신을 쫓는 건 제가 하루 종일 선배의 곁에 붙어 있어야 해결되는 문제예요. 더군다나 제가 깨어 있을 때만 쫓아낼 수 있으니 효율이 떨어지죠. 그래서 생각을 해 봤는데요.”

“…….”

“아까 말했듯이 제 기운을 선배에게 나눠 주는 게 낫겠어요. 뭐, 정확한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치는 있으니 시험해 보는 게 어떨까요?”

아주 훌륭한 표본을 발견해 기뻐하는 미치광이 과학자처럼, 그는 쉴 새 없이 말을 쏟아 냈다. 처음 만났던 그 멍청하고 둔해 빠진 인상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 말이다.

“……야.”

“네?”

여전히 그의 아래에 깔린, 그리고 안이 축축하게 젖은 은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기의 날갯짓보다도 작은 소리였다.

“……이, 새……, 야.”

“네? 선배, 잘 안 들려요.”

단어가 조각조각 쪼개져 제대로 들리질 않았다. 태영은 숨까지 죽인 채 은재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닥쳐, 이 귀신 오타쿠 새끼야!”

결국, 태영의 모든 말이 뚝 끊겼다. 동시에 은재에게서 갑작스러운 고함이 터졌고 놀랄 새도 없이 태영의 얼굴로 베개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퍽, 퍽. 입술과 턱이 부드러운 면에 뭉개졌다.

“이 개새끼가! 진짜, 개 짜증 나. 씨발, 이 오타쿠 변태 새끼가!”

분노로 가득 찼던 은재의 목소리에 점점 울음이 어렸다. 단단하던 문장이 뒤로 갈수록 흐리멍덩해진다. 거의 울음소리에 삼켜져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으니 은재의 입에서 엉엉 소리가 터진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선배.”

“흐윽. 닥쳐, 닥치라고!”

“죄송해요, 자세히 알려 드리려고 한 건데.”

“씨발, 진짜. 흑, 내가 그만하라고 했잖아. 못 들었냐? 이 개 변태 놈아!”

“일단 진정하세요. 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요.”

“닥쳐!”

은재의 자존심이 송편 반죽처럼 동그랗게 말려서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늘 침착하고 완벽했던 제 자아가 송두리째 뽑혀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초면인 남자 앞에서 발기를 했고 그것도 모자라 저놈에게 몰려 사정까지 했다.

그런데, 더 비참한 건 저 새끼는 조금도 서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마치 저 오타쿠 새끼에게 혼자 발정을 해서 혼자 세우고 혼자 싼, 그런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반 정도는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은재로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선배, 그래서 제 기운을 어떻게 나눠 줄 수 있냐면요. 기운은 사람의 구멍을 통해서 모인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야!”

동아줄은커녕 웬 또라이 새끼를 하나 알게 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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