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프레이 비셔스는 눈을 깜빡였다. 단정히 차려입은 남자아이는 정말 페트릭이 말했던 것처럼 그와 자신을 절반씩 닮아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보랏빛 눈동자를 지닌 아이는 연보랏빛 머리카락과 보라색 눈동자를 지닌 프레이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다.’
아빠가 말해주었던 것처럼 마치 천사같이 생긴 자신의 엄마는 바람이 세게 불면 날아갈 것같이 생겼다. 그게 루시가 바라본 엄마의 첫인상이었다.
“이름이 루시라고 했지?”
“네!”
부모자식 간의 대화라기엔 조금 어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레이는 루시를 낳은 기억이 없고, 루시는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로만 들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기억이 없어서 미안해.”
프레이는 제 옆에 앉은, 자신이 낳았을 게 분명한 아들에게 사과했다. 기억이 없어진 건 페트릭이 술과 마약을 섞어 프레이에게 먹이고 난 이후로 생긴 후유증이었다.
기억의 퇴행이 시작되고 중학생 시절 기억에서 멈춰 있는 프레이는 이따금 자신이 성인이라는 걸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정말 우리 엄마예요?”
루시는 울먹이며 프레이의 눈을 쳐다봤다. 프레이는 잠시 머뭇거리며 페트릭을 바라보았다. 페트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보고 싶었어요. 엄마.”
루시가 프레이를 아프지 않게 끌어안았다. 병원으로 오는 동안 아빠인 페트릭 마일드리안에게 몇 번이고 주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엄마를 보러 갈 거야. 루시도 알다시피 엄마는 몸이 아파서 그동안 루시를 못 보러 왔는데, 조금 건강해져서 루시를 볼 수 있게 됐어. 하지만 여전히 아프니까 무례하게 굴거나 나쁜 말을 하면 안 돼.’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한 루시는 도착한 커다란 병원에 주눅이 들었지만, 당당하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도착한 병실 앞에서 아주 미세하게 느껴지는 코튼향 페로몬을 느끼며 루시는 문 건너편에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루시가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다는 루시의 말에 프레이도 머뭇거리며 대답을 해주었다.
죽기 전에 적어도 한 번쯤은 보고 싶었다. 페트릭이 고해성사하듯 보여주었던 계약서대로라면 자신에게는 친권도, 양육권도 없는 아이였지만 그래도 자신의 피가 절반은 흐르는 친아들임은 틀림없었다.
프레이는 훌쩍이기 시작하는 루시를 토닥여주며 자신과 페트릭을 쏙 빼닮은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아빠랑 나랑 반씩 닮았구나.”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엄마를 닮아서 좋아요.”
“그래?”
프레이는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었으며 드문드문 물어오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땐 도와달라는 듯, 페트릭을 쳐다보았다. 그럼 페트릭은 대신 대답해 주었다.
“우리는 그럼 언제 같이 살 수 있어요?”
예기치 못한 질문에 프레이는 습관적으로 페트릭의 눈치부터 살폈다. 아이를 만나기는 했으나 같이 살 정도로 몸이 회복된 것까지는 아니었다. 병원을 드나드는 것도 아이의 정서 교육상 좋지 못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아직 아이와의 유대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게 컸다. 그런 상태에서 프레이의 몸 상태가 나빠져서 죽게 된다면 아이에게도 분명 좋은 영향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체력도 점점 늘고, 눈 수술도 하게 된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스스로 걷는 거리가 늘어났으며 수프에서 식사로 전환되었다는 점과 무엇보다 프레이가 살려고 하는 의지가 생겼다는 점이 달랐다.
“엄마가 금방 나으면 셋이서 같이 살자. 루시.”
프레이가 머뭇거리며 아이의 조그마한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그 손길이 좋았는지 루시는 해맑게 웃으며 알겠다며 물러났다.
하지만 프레이가 금방 나을 일은 요원해 보였다. 하나의 합병증이 가라앉으면 또 다른 합병증이 터졌고 삶에 대한 의지가 생긴 것과 별개로 프레이는 사실은 꽤 오래전부터 지쳐 있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눈을 감고 싶다가도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며 애걸하는 페트릭이 떠오르고, 이제는 처음 보는 자신과 그의 아들이 눈에 어른거렸다.
루시를 집에 보낸 후 돌아온 페트릭은 링거 거치대에 손을 얹고 창밖을 바라보는 창백한 옆모습을 지켜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지 페트릭이 온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루시 말이야.”
프레이가 중얼거렸다.
“응.”
“네 말대로 나랑 너랑 절반씩 닮았더라.”
“오늘 자리, 불편하지는 않았고?”
페트릭이 프레이의 눈치를 보며 묻자, 잠시 말을 가다듬던 프레이가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낳은 기억이 없는 아들을 만나는 자리가 편할 리는 없겠지. 불편했어. 근데…….”
“응.”
프레이가 고개를 돌려 페트릭의 눈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네 아들이라고 하니까 사랑스럽더라.”
“너와 나의 아이라니까.”
“그러니까……. 응.”
프레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야경이 보이는 바깥을 바라보던 프레이가 말했다.
“루시랑 함께 살 수 있도록……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해 볼게.”
페트릭이 조그만 프레이의 품에 안겨 울었다.
“응.”
프레이는 조그만 손을 들어 연인의 들썩이는 커다란 등을 토닥였다. 토닥거림은 페트릭의 울음이 멎을 때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