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프레이는 허리를 받치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늘 아침도 출근하기 싫어하는 페터와 혀를 좀 섞고, 실랑이를 한 뒤라 평소보다 피곤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침부터 섹스를 하진 않아서 움직일 힘이 있다는 점이었다.
종종 아침부터 페트릭에게 홀라당 잡아먹히고 마는 프레이는 루시가 합숙캠프에서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하나뿐인 짝이 출근을 하면 크기만 한 집엔 삭막함만 가득해서 외롭기 때문이었다. 임신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페트릭은 프레이의 곁에 붙어있었다. 루시를 낳고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프레이는 우성 알파와 지속적인 성관계를 하고 있는 오메가였다. 제아무리 페트릭이 페로몬을 갈무리한다고 하더라도 아주 조금씩 페로몬에 중독되어 몸이 약해졌다.
급성 중독은 오지 않았지만 둘째의 임신도 기적에 가까웠다. 페트릭은 아이를 포기하자고 권유했고, 프레이는 울면서 반대했다. 한 번 가족의 울타리가 부서졌던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프레이는 죽어도 아기를 낳고 싶어 했고, 하나뿐인 오메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는 그는 회사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그리고 모든 시간을 프레이를 위해 썼다. 입덧이 심해서 하루에 한 끼조차 먹기가 힘든 프레이를 위해 언제든지 요리를 할 수 있는 전문 셰프들을 저택에 상주시켰다. 아침저녁으로 붓는 손발을 주물러주고 정원 산책이 지루할까 봐 주기적으로 정원을 뜯어고쳤다.
그런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는지는 몰라도 프레이의 입덧은 호전되기 시작했다. 꺼리던 음식들도 곧잘 먹었다. 감정 기복은 여전했지만 입덧이 사라진 것이 축복이라면 축복이었다. 페트릭은 할 수만 있다면 프레이가 둘째를 낳을 때까지 회사에 복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경영에 복귀해야 했다. 생각보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프레이가 스트레칭을 좀 해볼 요량으로 몸을 움직이던 순간이었다. 그럼 그렇지. 출근하고 웬일로 잠잠하던 페트릭이 전화를 걸고 있었다. 웃음을 걸친 채로 프레이가 전화를 받았다.
“응.”
[프레이. 뭐 해?]
뭐 하는지 뻔히 보고 있을 텐데 묻는 그에게 프레이가 대답했다.
“스트레칭 좀 하려고 일어나 있었어.”
[그럼 혹시 서재에 서류 봉투 하나 있는지 봐줄 수 있어?]
“…응. 잠깐만.”
프레이는 그가 눈앞에 있지도 않은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기 싫다며 루시처럼 떼를 쓰더니 서류를 놓고 간 것 같았다. 서재로 느리게 걷던 프레이가 웃으면서 그를 구박했다.
“맨날 뭘 까먹고 다녀. 루시도 유치원 준비물은 잘 챙기는데.”
[우리 아들은 엄마 닮아서 꼼꼼해서 그런 거야.]
구박에도 그저 좋은지 페트릭이 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웃음을 지었다.
유리창 너머로 자신의 상사를 쳐다보던 페트릭의 비서, 러셀 페트리샤가 인상을 구긴다. 세상 누구보다 차갑게 생긴 남자가 흐물흐물하게 웃는 얼굴을 보아하니 그가 좋아 죽는 배우자와 통화 중인 것이 분명했다.
러셀이 고용주의 배우자를 떠올렸다. 둘째를 임신 중인 오메가는 성질 나쁜 고용주와 어울리지 않게 착해빠진 성격이었다. 페트릭 마일드리안은 경영에 복귀했지만 자주 자택 근무를 했다. 이유는 프레이 비셔스의 건강이 안 좋아질 기미가 보였다는 것. 퍽 눈물겨운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가 집에 틀어박혀 제 오메가의 수발을 드는 동안 회사의 업무가 중단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결재를 기다리는 많은 결재 건들 중에 급한 것들만 고른 뒤 러셀이 그의 집으로 들고 갔다. 고용주의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러셀은 아마도 그의 가족보다 더 많이 들락거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했다. 그런 고생을 하는 사이 러셀 페트리샤에게 남은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몇 달 사이 빠진 체중, 인상된 급여, 그리고 러셀이 집에 들락거릴 때마다 괜히 본인이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예쁘장한 오메가의 얼굴 정도.
서로가 아마도 첫사랑이라고 그랬었나. 스치듯 페트릭 마일드리안이 배우자에게 속삭이던 통화 내용을 가까이에서 듣게 된 러셀이 기억을 상기하다 말고 인상을 구겼다. 유리창 너머로 금세 표정이 딱딱하게 변한 고용주가 손짓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셀 페트리샤가 몸을 일으켜 방으로 들어갔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집에 다녀와. 가면 프레이가 서류 하나 줄 거야.”
이름만 뱉어도 좋은지 페트릭 마일드리안은 또 실실 웃었다. 누구는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는데. 제 상사의 히죽이는 꼴이 보기 싫은 러셀이 차 키를 챙기며 외투를 집어 들었다. 눈을 감고도 그려낼 것 같은 페트릭 마일드리안의 저택으로 차를 몰았다. 보안 팀을 통과하고 차고에 차를 대충 주차한 러셀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프레이 님. 러셀입니다.”
본채에 달린 인터폰을 누르고 화면을 응시하고 있자 문이 열렸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언제 봐도 예쁘장하게 생긴 오메가가 러셀을 반겼다.
“어서 와요. 러셀.”
임신 6개월에 접어든 프레이의 옷차림은 언제나 편한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머플러에 코트까지 챙겨 입은 상태였다. 러셀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어디, 나가십니까?”
서류 봉투를 품에 끌어안은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러셀은 막연하게 외출을 하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손을 내밀었다. 러셀이 필요한 건 봉투에 담긴 서류뿐이었으므로. 제 손에 올려져야 할 서류를 아직도 품에 안고 있는 오메가가 말했다.
“아, 제가 직접 가져다주고 싶어요.”
러셀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잠깐의 고민을 마친 그가 외출준비를 끝낸 프레이를 향해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가시죠.”
*
러셀의 에스코트를 받아 로비에 프레이가 들어서자 직원들의 시선들이 쏠렸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대리석이 깔린 로비를 가로질러 임원 전용 승강기로 프레이를 안내한 러셀이 인상을 찌푸렸다. 조만간 사내엔 대표이사의 배우자에 대한 소문이 쫙 퍼질 것이다.
잘생긴 얼굴값을 하는 소문난 성격의 대표가 결혼한 뒤로 자신의 배우자에게 꽉 잡혀 산다는 소문이 돈 지 오래였다. 알음알음 퍼져나간 소문의 근원지를 찾으려 러셀은 애꿎은 비서실의 직원들만 닦달했었다. 하지만 러셀은 소문의 근원지가 그들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회사 최상층에 위치한 사무실에 있어야 할 남자, 그리고 소문의 근원지가 로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프레이.”
“응?”
러셀은 일부러 프레이와 함께 회사로 복귀 중이라는 문자를 그에게 보내지 않았다. 아마도 오메가의 코트 주머니에 들어있을 휴대폰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러셀은 질색하는 표정을 숨겼다. 직원들의 시선을 모조리 무시한 채 다짜고짜 프레이를 끌어안은 페트릭 마일드리안은 화사하게 웃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만난 프레이가 반가워서였다.
“페터. 여기 사람들 엄청 많은데…….”
“괜찮아. 아무도 우리 신경 안 써.”
그건 아닐걸. 러셀은 속으로 조소했다. 아마 지금쯤 다들 메신저로 떠들 걸 생각하니 골치가 아팠다. 오가며 마주치면 물고 늘어질 얼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러셀이 신경성 위염으로 쓰린 속으로 인상을 살짝 찌푸린 사이, 프레이가 페트릭을 떨어트렸다. 꼭 끌어안긴 탓에 눌린 배가 답답했다. 숨을 헐떡이는 소리에 페트릭이 승강기로 프레이를 이끌었다.
“자기야. 괜찮아?”
“으응. 얼굴 지금 너무 가까운데…….”
안색을 살피느라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에 여전히 마음이 설렜다. 프레이는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페트릭 마일드리안을 사랑했다. 설렘보다 익숙함이 더 느껴질 법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몰래 얼굴을 훔쳐보던 예전처럼 프레이는 제 짝이 되어버린 그를 여전히 짝사랑했다.
“여긴 왜 온 거야? 집에 무슨 일 있어?”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이것도 전해주고 산책할 겸 왔어.”
“일단 위에 올라가서 몸이라도 녹이자. 너 완전 얼음장이야.”
작은 몸을 감싸 안고 승강기에 올라탄 페트릭은 같이 올라탄 제 비서는 투명인간 취급이었다. 조금 붉어진 귓가를 손으로 감싸주며 염병을 떠는 모습에 러셀은 재킷 안쪽에 넣어둔 사직서를 꺼낼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사장실에 도착한 순간, 비서 팀의 직원들이 뻣뻣하게 굳기 시작했다.
“안아줄까?”
“으응. 싫어. 직원분들 계시잖아. 그만해.”
프레이가 집에서처럼 번쩍 안아 들려 하는 페트릭을 밀어내며 작게 속삭였다. 아. 괜히 왔나 봐. 창피해. 프레이의 얼굴은 금세 빨개졌다.
사실 프레이는 일하는 페트릭의 모습도 조금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둘째를 임신한 후엔 부쩍 몸이 더 안 좋아져 병원을 빼면 계속 집에만 있어서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서 서류를 핑계로 나온 건데, 안에서도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샐 리 없다. 괜히 나왔다고 후회하던 프레이가 사무실로 서서히 들어섰다. 뒤늦게 달칵하고 사무실이 잠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프레이가 속삭였다.
“페터.”
“응?”
“문은 왜 잠그는 거야?”
리모컨을 조작해 유리막을 뿌옇게 만든 페트릭을 가만히 지켜보던 프레이가 물었다. 페트릭은 대답 대신 입술을 겹쳤다.
“읏. 잠깐만.”
“응. 그래, 잠깐.”
오밀조밀 예쁘게도 생긴 작은 얼굴 위로 쉴 새 없이 쪽쪽거리던 그가 웃었다. 자신의 오메가를 살살 달래가며 페로몬으로 꾀어내는 그가 코트를 벗기고 있었다. 그 손길에 담긴 의미는 노골적이었다.
“회사, 잖아. 페터.”
“정확히 말하자면 내 방이야.”
거추장스러운 머플러를 풀어내고 코트를 벗겨내는 손길이 더없이 다급했다. 가냘픈 어깨를 짓누르던 코트가 벗겨지자 숨이 트일 것 같은 프레이는 나른하게 숨을 내뱉었다. 숨마저도 달아서 페트릭이 아깝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훔쳤다. 각인된 서로의 페로몬에 취한 둘이 엉키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신의 아기를 잉태한 작은 몸을 책상에 걸터앉힌 페트릭이 무릎을 꿇었다. 허벅지를 조심스럽게 벌린 그가 덥석 오메가의 성기를 입에 담았다.
“으응. 나는 이러려고, 온 게 아닌… 데. 흣.”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위를 쳐다보자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뺨이 탐스러워 갈증이 난다. 혀끝으로 작은 구멍을 헤집자 바닥에 아슬아슬하게 닿아있는 발이 버둥거렸다.
“싫, 싫어… 그만해. 페터. 아읏.”
“울지 말고. 왜 울어. 자기야.”
얼굴 위로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지만, 페트릭은 입에 든 성기를 뱉어낼 생각이 없었다. 살살 달래듯 페로몬을 조금 더 풀자 오메가는 고개를 뒤로 꺾은 채로 숨을 내쉬었다.
“으응, 흐윽… 나, 나올 것 같아. 아!”
페트릭의 입에 정액을 쏟아낸 프레이가 헐떡거렸다. 페로몬에 사로잡힌 채 숨을 고르기도 바빠 보였다. 기꺼운 표정으로 정액을 꿀꺽 삼킨 페트릭은 자신의 책상에 프레이를 눕혔다.
“흐, 차가워…….”
“응응. 괜찮아. 다리 더 벌려봐. 자기야.”
“아!”
풀어주지 않아도 이미 애액으로 흥건하게 젖어있는 오메가의 구멍에 단단한 살 기둥이 닿았다. 프레이가 숨을 들이마시며 셀 수 없이 받아들인 페트릭의 성기를 품을 준비를 했다.
“흐아, 응…천천히, 페터…….”
“프레이. 힘 좀 빼봐. 왜 이렇게 긴장했어?”
“회, 회사에서… 우으… 이러면… 흐.”
광장 한가운데에서 프레이와 붙어먹을 수도 있는 페트릭이 한 손으론 눈을 가리고 한 손으로는 배를 붙든 프레이의 얼굴을 쓸었다. 몸을 조금 더 맞붙이자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이 다급하게 배를 붙잡았다.
“아으, 안 돼… 애기 놀래. 안 돼.”
“살살 할게. 노팅도 안 할 거야. 응? 기분 좋게 해줄게.”
마치 동정을 살살 구슬려서 따먹으려는 파렴치한이나 내뱉을 법한 말이었다. 프레이는 아래를 꿈틀대며 고개를 저었다.
“안, 안 돼… 빼 줘. 으응, 싫… 싫어.”
“프레이. 울지 말고 내 눈 봐.”
약해진 몸이라 매사 겁을 내는 울보가 자신에게 시선으로 매달린다. 싫어. 무서워. 애기 잘못될 것 같아서 겁나. 페터. 속마음이 훤히 드러나는 눈동자는 물기에 젖어 반짝거렸다.
“의사가 했던 말 기억나지. 임신 중에 섹스하면 아기 두뇌발달에 좋다고.”
“그, 그렇지만… 아아, 잠깐만…….”
축축하고 따뜻한 내벽에 성기를 박은 채 움직이지 않는 건 고문에 가깝다. 더군다나 자신이 각인한 오메가의 속이라면 더욱더. 페트릭이 프레이의 다리를 팔에 걸친 뒤 성기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자신과 프레이의 아기가 자라고 있는 자궁에 뭉툭하고 단단한 성기 끝이 닿자, 페트릭이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프레이. 숨 쉬어야지.”
“흐… 그, 거기 닿으면… 우으, 흐.”
어지간히도 무서웠는지 하얗게 질린 얼굴은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형광등 불빛 아래 반짝반짝 예쁘게도 빛이 났다. 허리를 뒤로 물리자 프레이의 속살이 다급하게 달라붙었다.
“흐으!”
“루시보다 네가 더 우는 거 알아?”
“아, 아니야.”
프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임신 후 감정 기복이 심해지긴 했어도 루시보다 많이 운다니. 프레이는 툴툴거리며 페트릭의 팔뚝을 힘없이 툭 하고 쳤다.
“아니라고 해. 빨리…….”
“자기는 루시보다 많이 우는 울보 맞는데.”
“히윽, 읏…….”
느리게 시작된 허릿짓에 프레이는 페로몬을 질질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자기는 우는 것도 너무 예뻐서 걱정이란 말이야. 어디 가서 길이라도 잃고 울먹거리면 누가 홀라당 채갈 것 같은데 겁도 없이 누굴 믿고 쫄래쫄래 여기까지 왔어. 응?”
자신의 비서조차 제대로 믿지 못하는 그가 프레이를 몰아붙였다. 책상에 드러누운 채 프레이는 책상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몸이 자꾸 위로 밀리는 탓에 뭐라도 붙잡지 않으면 책상 밖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우으, 페터… 잘못했어… 제발.”
프레이의 울먹거림에 페트릭의 머릿속에서 이제는 다 잊었다고 생각한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자비한 폭력과 학대로 망가진 프레이가 자신의 발치에 엎드려 잘못을 비는 모습. 손이라도 올리면 자신을 때릴까 봐 겁을 내며 몸을 웅크리던 마른 몸이 떠오른다.
“프레이. 미안해. 울지 마.”
좆을 끄집어낸 그가 눈물로 엉망이 된 작은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의 양손에 폭 감싸진 얼굴은 두려움과 서러움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숨을 고르며 아직도 훌쩍거리는 프레이가 입술을 달싹였다.
“나, 나… 밖에 나온 거 잘못한 거야?”
“아니야. 잘했어. 우리 자기 누가 홀라당 채갈까 봐 겁나서 괜한 말 한 거야. 울지 마. 응?”
꼼지락거리는 프레이의 손이 배를 더듬었다. 다행히 배가 조금 욱신거릴 뿐,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프레이가 자신의 몸을 일으켜주는 페트릭의 품을 파고든 채로 웅얼댔다.
“난 페터 네 건데 누가 데려간다고 그래.”
“각인 같은 거로는 안심이 안 되는 걸 어떡해. 아. 너무 예쁘다. 우리 프레이.”
입술을 삐죽이는 것도 예쁘고 귀엽고. 혼자 다 하느라 바쁘겠네. 우리 프레이. 페트릭은 작은 얼굴 위로 입술을 꾹꾹 누르며 바보처럼 웃었다. 프레이는 서러움도 잊은 채 제 얼굴을 쪽쪽 거리는 페트릭의 입술에 간지러워서 그만 웃음이 터졌다.
“흐, 간지러워. 페터. 그만해.”
“나머지는 집에 가서 할까?”
프레이의 옷을 다시 입혀주는 페트릭이 속삭였다. 그러자 프레이는 귓가가 붉어진 채로 웅얼거렸다.
“그, 그럼 집에… 언제 올 건데?”
“지금 당장.”
회의고 뭐고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급한 회의가 줄줄이 잡혀있는 사실 같은 건 페트릭 마일드리안의 뇌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머플러를 둘둘 감아주던 그가 차 키를 집어 들었다. 임원 전용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차로 프레이를 데려갈 생각 같았다. 은색 로고가 반짝이는 걸 쳐다보던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프레이. 일단 나가자.”
“응.”
프레이의 붉은 얼굴은 이미 절반쯤 머플러에 파묻힌 상태였다. 불투명한 유리를 힐끔거리던 프레이가 티 나게 안도하고 있었다. 보이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잠잠해졌다. 프레이의 어깨를 감싸 안은 페트릭이 생글생글 웃으며 제멋대로 퇴근을 통보했다. 막무가내인 대표를 말리지 못하는 직원들이 입술만 달싹거리며 러셀의 얼굴만 응시한다.
실장님. 여기서 대표님 퇴근하시면 저희 어쩌라고요! 제발 한 마디만 해주세요!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침을 꿀꺽 삼킨 러셀 페트리샤가 유일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프레이 님.”
“네.”
목소리가 조금 갈라진 걸 보니 안에서 엄청 울었나 본데. 러셀이 표정 관리를 했다. 일부러 보지 않아도 사이좋은 부부가 방 안에 단둘이 들어간 뒤의 상황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안에서 잤네. 모두 베타로 구성된 비서실에서 가장 눈치가 빠른 러셀이 페트릭이 제지하기 전 선수를 쳤다.
“대표님 대신 제가 자택으로 모셔도 될까요?”
“러셀.”
차 안에서 오붓한 시간을 가지려던 계획이 틀어질 위기였다. 페트릭은 인상을 찌푸렸다. 주제넘은 행동을 봐줄 수 없었다.
“아, 바쁘다고 그랬었지. 페터. 나 러셀이랑 집에 갈게. 들어가 봐.”
프레이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운 뒤 방긋 웃었다. 아쉽긴 했지만 퇴근하면 볼 수 있으니까 슬프진 않았다. 첫사랑과 같이 사는 것이 아직 꿈같은 오메가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여전히 프레이 비셔스의 눈에는 페트릭 마일드리안이 가장 찬란하게 빛난다. 누구보다 멋있으며 가장 소중했다. 그런 그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집에는 자신이 산다니. 둘째를 임신했고 결혼한 지 몇 년이 흘러도 가슴이 벅찼다.
“아니야. 바쁘긴. 자기랑 집에 가도 돼.”
“4시 반에 중요미팅이 있습니다. 대표님. 더는 미룰 수가 없는 건입니다.”
“알았으니까 그만해.”
심기가 좋지 않은 그가 인상을 썼다. 페로몬이 새서 프레이가 겁을 먹을까 봐 페로몬도 갈무리했다. 생각을 바꾼 그가 생각했다. 늦어도 4시 안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프레이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기 전까지 비서실의 직원들과 인사를 하느라 바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페트릭은 여전히 자신의 품에 반쯤 안겨있는 프레이에게 속삭였다.
“차로 가자.”
“응…….”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뜬 기색을 숨길 수가 없어서 애꿎은 손부채질만 할 뿐이었다.
*
둘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뒤엉켰다. 다급하게 달려드는 알파의 아래에 깔린 오메가가 헐떡였다. 침실로 갈 시간도 부족했는지 현관에서부터 삽입이 시작됐다.
“힛, 으응. 페터. 잠깐만. 나 신발도 못 벗었, 으응!”
“하아. 프레이.”
“응. 아읏. 천천히…….”
바지와 함께 발목까지 내려간 속옷은 이미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젖은 살을 비집고 성기가 드나드는 소리가 요란했다. 길을 몇 번이나 내어도 금세 다물리는 아래는 삽입을 할 때마다 애를 먹게 했다. 아이를 가진 후론 더 심해졌다.
“밀어내지 마. 제발. 응?”
“그, 그런 거 아니야. 아!”
힘들어하는 것 같아 보여 페트릭이 페로몬을 흘려주자 애액이 왈칵 흘러내렸다.
“자기야.”
가슴팍을 더듬으며 상체를 들어 올리자 프레이가 신음했다. 현관 앞에서부터 시작된 정사에 벌써 지친 기색이 역력한 프레이가 배를 붙잡았다.
“페터. 침대로 가자. 현관에서 이러면…….”
“한 번 빼고 가자. 벽 잡아.”
“앗, 후으, 응!”
파르르 떨리는 하얀 손끝이 벽을 짚기가 무섭게 움직임이 거세졌다. 허리를 붙들고 아기를 자극하지 않게 반쯤 처박는 알파의 얼굴은 관능적이었다. 페트릭은 페로몬을 흘리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열성 오메가에게 독이나 다름없는 페로몬을 많이 풀어봤자 프레이만 힘들다는 계산에서였다.
“아프면 말해야 하는 거 알지?”
“아, 너무 깊… 이 넣으면… 읏.”
“대답해야지. 프레이.”
프레이는 깊이 파고드는 성기가 주는 쾌감에 울먹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는 참을 만했다. 속살이 딸려 나갈 때마다 프레이는 끙끙거리며 허리를 흔들었다. 제 아이를 밴 오메가가 어설프게 허리를 흔드는 광경이 눈에 훤히 보이자 갈증이 일었다. 몇 년이 지났어도 프레이의 몸이 따뜻하단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체온을 느끼고 싶은 그가 몸을 겹치자 프레이가 버둥거렸다.
“페터. 숙이면 너무 깊이 들어오는데…….”
“프레이. 조금만. 응?”
첫사랑의 투정에 오늘도 넘어가고 마는 순진한 오메가는 숨을 헐떡거리며 손을 들었다. 자신의 허리를 붙든 커다란 페트릭의 손에 제 손을 겹치면서 속삭였다.
“아기 놀라면 바로 빼라고 할 거야.”
“응. 이제 움직여도 돼?”
가빠졌던 숨이 조금 돌아오자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프레이도 한계였다. 빠듯하게 벌어진 살이 흐물흐물해질 때쯤 프레이는 페트릭의 품에 안긴 채 침실로 옮겨졌다. 달아오른 뺨이 붉었다. 지나친 쾌감에 눈물이 터진 눈가가 야했다. 눈물에 잔뜩 젖은 속눈썹과 빨갛게 익은 입술을 훔치던 페트릭이 결혼반지를 나눠 낀 손을 맞잡았다.
“프레이. 나 지금 너무 행복해.”
페트릭은 가끔씩 프레이가 여전히 자신의 품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프레이에게 두서없이 사랑 고백을 했다. 사귀고 난 뒤, 몇 년 동안 프레이는 페트릭이 건넨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에 당황해하며 얼굴을 붉히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프레이가 웃으며 속삭였다.
“나도 너무 행복해. 페터.”
“더 사랑해줄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
프레이가 없는 삶은 끔찍했다.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그가 수없이 다짐받았던 약속을 받아내고 있었다.
“응. 너도.”
“회사에 돌아가지 말까?”
페트릭은 작은 손에 끼워진 반지에 키스하며 물었다. 그러자 프레이가 예쁘게 웃으며 말한다.
“안 돌아가도 돼?”
페트릭은 입술을 겹치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돌아올 곳이 너 말고 어디 있어.”
“그건 맞아.”
“회사 같은 건 망해버리라지.”
“그건 틀렸는데.”
프레이가 페트릭을 끌어안으며 웃었다. 자신을 꼭 안아주는 체온의 주인은 자신의 알파이자 여전히 자신의 첫사랑이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적어도 프레이 비셔스에게 있어 첫사랑은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사랑이었다. 부모님의 유언이 프레이의 머릿속을 스친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프레이. 우리 아들은 행복하게 살길 신께 기도한다.
부모님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 같았다.
감정의 종말 외전: Return to you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