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4)

6.

병원복을 입고 있는 프레이가 갑자기 자신을 끌어안는 페트릭을 보며 속삭였다.

“숨 막혀…….”

가만히 안겨있는 프레이는 자신을 껴안고 있는 페트릭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 걸 깨달았다.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가. 살짝 얼굴을 위로 올려 쳐다본 페트릭의 이마엔 의료용 밴드가 붙어 있었다. 얼굴 곳곳에는 긁힌 자국이 역력해서 프레이는 페트릭에게 물었다.

“넌 괜찮아?”

“아니.”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에 온 한 번의 심정지로 프레이가 정말 죽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페트릭은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응급처치로 호흡이 돌아오고, 치료로 4일 만에 깨어난 프레이는 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괜찮냐고 물어볼 사람이 누군데 누가 누구에게 괜찮냐는 건지 페트릭은 생각하다 짜증이 치밀었다.

프레이 비셔스. 이 병신 같은 새끼.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굴었는데. 아무리 다 잊어버렸어도 그렇지 어떻게 내 걱정부터 해? 머저리 같은 새끼. 속으로 프레이를 욕하면서도 제 품에 안겨 꼼지락거리는 온기에 마음이 다 뭉클해졌다.

“미안해… 프레이…….”

“뭐가?”

프레이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껴안고서 사과를 하는 페트릭이 이상해서 얌전히 앉아있을 뿐이다. 충돌 사고가 난 것 같긴 한데 금방 기절해버려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리의 통증과 시끄러운 소음이 짧게 들렸던 기억이 전부였다.

“내가 그냥 다 잘못했어. 프레이. 내 옆에만 있어 줘.”

“…요즘 이상한 말만 하는 거 알아?”

프레이는 마치 예전부터 페트릭 마일드리안이 이상한 말을 하며 굴 때마다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하지만 기억을 곱씹어보아도 떠오르는 기억이 없어서 답답할 뿐이었다. 의아해하는 프레이를 안고 페트릭은 그냥 미안하다고, 좋아한다고 몇 번이나 혼자 중얼거릴 뿐이었다.

*

자신의 아들이 자동차의 결함으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량과 충돌해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에 직접 도착한 페트릭 마일드리안의 부모가 병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병실에는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앉아있는 마른 남자와 그 남자에게 직접 포도를 먹여주는 자신의 아들이 보였다.

“페터.”

자신을 불러오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프레이에게 집중하고 있던 페트릭은 당황한 낯빛이 역력했다.

“사고가 났다기에 왔더니…….”

페로몬도 느껴지지 않는 남자를 쳐다보던 페트릭의 아버지는 자신의 손자와 조금 닮은 얼굴을 보며 혹시나 하는 가정을 하고 있었다.

“프레이… 잠깐 나갔다 올게.”

“으응.”

다정한 눈길로 프레이에게 속삭이던 목소리를 듣던 페트릭의 어머니가 물었다.

“혹시 쟤가 우리 루시 낳은 그 오메가니?”

페트릭은 당황한 얼굴로 프레이를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영문모를 소리를 하는 세 사람을 살짝 응시하던 프레이의 보라색 눈동자에는 의아함만 가득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무지 짐작도 안 가는 프레이가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루시……?”

페트릭은 일단 병실을 나가서 이야기하자며 프레이를 쳐다보는 부모님을 바깥으로 내보냈다. 프레이의 뺨에 살짝 입술을 가져가며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하려던 페트릭에게 프레이가 속삭였다.

“혹시, 너 아기 있어?”

“…프레이.”

네가 낳은 아기라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페트릭은 자신의 과거가 미친 듯이 후회되고 있었다. 프레이는 대답을 망설이는 페트릭을 보며 그에게 아기가 있다는 것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기껏 해봤자 섹스 파트너였는데. 병실에 입원한 후 상냥하고 친절하게 구는 페트릭을 보며 마음이 살짝 설레거나 조금씩 이상한 감정도 느꼈던 터라 정말 다시 그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었던 프레이였다. 하지만 그가 아기가 있는 사실을 알자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는 감각이 생생했다.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사귀기로 했지만 이런 식의 감정을 느끼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프레이는 병실 문 틈 사이로 자신을 노려보는 페트릭 마일드리안의 부모님을 살짝 쳐다보며 페트릭을 살짝 밀었다.

“부모님이 기다리셔. 마일드리안.”

“프레이.”

“어서 가봐.”

단호한 프레이의 말에 페트릭은 병실 문 너머로 서 있는 부모님을 바라봤다. 프레이를 보고 있는 눈동자에서는 호의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병실을 나가며 뒤를 힐끔 쳐다보자 프레이는 병실을 나가는 페트릭에게 등을 돌리며 침대에 눕고 있었다.

*

“쟤 맞지? 루시 낳은 오메가.”

“…네.”

아들의 대답에 헛웃음을 흘린 페트릭의 엄마, 헬렌이 물었다.

“결혼할 거니?”

“모르겠어요.”

헬렌은 병실에서 본 자신의 손자를 낳은 오메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들의 뒷조사를 하고 싶지 않아 그저 아들이 모든 걸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보려 했던 그녀의 결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난 결혼 허락 못 하겠구나. 네가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그렇지 자기가 낳은 아들을 버리고 몇 년 동안 얼굴 한 번 안 비치는 애를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 없어.”

“어머니.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면? 네가 일단 괜찮아 보이니 가보마. 나중에 집에서 이야기하자.”

바쁜 일정을 쪼개서 온 것인 듯 페트릭의 부모님은 비서들과 함께 병원을 떠나고 있었다. 페트릭은 도대체 어디부터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모님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히 프레이를 외국 멀리 어딘가로 보내버릴 것이 분명했다. 프레이의 몸을 망가트린 원인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결혼으로 얻을 금전적인 이익이 없는 인간을 인정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임신도 불가능한 오메가를 반길 리 없었다. 자신이 30년 가까이 봐온 부모님은 그럴 만한 사람들이었다. 병실로 돌아왔을 때는 프레이가 잠이 든 후였다. 잠든 프레이의 손을 잡고 한숨을 쉬는 페트릭은 머리가 복잡했다.

*

잠에서 깨어나자, 페트릭 마일드리안은 터무니없는 고백을 털어놓았다. 페트릭은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 같았다. 다짜고짜 그와 자신 사이에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프레이가 믿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대가를 받고 아이를 낳아줬다니? 과거의 자신은 미쳤던 것이 분명했다.

“다시 말해봐.”

페트릭은 프레이의 시선을 피했다.

“미안해.”

프레이는 자신이 들은 말이 사실인지 거짓말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뇌가 원망스러워졌다.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사실이야. 네가 원하면 유전자 검사라도…….”

프레이는 유전자 검사를 운운하는 페트릭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프레이.”

“…이게 다 진짜라고… 네가 한 말들이…….”

프레이는 페트릭 마일드리안이 자신에게 고백한 내용을 이해해보려 안간힘을 썼다. 손에 들린 계약서의 문구들을 몇 번이나 다시 읽을수록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풀리는 중이었다. 대가를 받고 그의 약혼을 파기할 핑계를 대기 위해 그의 아기를 임신한 뒤 출산하여 그에게 모든 법적 권리를 넘긴다. 그의 본가가 있는 주의 반경 500km 이내의 주에 거주하지 않아야 한다는 서류에 자신의 사인에 들어있었다. 자신이 한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드는 사인에 프레이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왠지 바보처럼 하라는 대로 사인을 하는 모습이 눈앞에 빤히 비치는 것 같았다.

추운 걸 질색하는 자신이 왜 추운 지역에 살고 있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됐다. 계약서 때문에 거주할 만한 주가 한정적이었을 뿐이었다. 불임의 원인인 마약도 그의 짓이라는 고백을 들었을 때는 프레이는 눈앞의 첫사랑을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네가 너무 반응이 없어서… 같이 즐기려고 그런 거였어.’

그 말과 함께 이어진 말에 프레이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입만 벙긋거려야 했다.

‘내가 너 유산도 시켰고…. 미안하다.’

자신이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조차 충격인데 유산을 했다는 충격에 프레이는 차라리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어졌다. 그의 고백을 곱씹던 프레이에게 페트릭이 중얼거렸다.

“프레이. 너에게 용서받고 싶어. 용서받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순 없을까?”

구차한 그의 말에 프레이는 눈앞이 흐려졌다. 울고 있는 걸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고요한 병실에 앉아서 깨진 머리를 붙들고 프레이는 잔인한 사실 앞에 홀로 버텨야만 했다.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몸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고, 뒤늦게 용서를 구하는데도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꿈같았다.

“…흐.”

작게 새어 나온 흐느낌을 목 안으로 삼키면서 프레이가 중얼거렸다.

“기억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용서를 하라고.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프레이…….”

무릎에 놓인 종이 위로 눈물이 뚝뚝 흐르는데도 프레이는 자신이 왜 우는지 알지 못했다. 슬픔이라거나 분노조차 흐릿해서 모든 게 끝난 것만 같았다.

“나가줘.”

눈물을 닦아주려 다가오던 손이 허공에서 어색하게 거둬졌다. 뭐라도 말을 이어나가려던 페트릭의 시도는 이어진 프레이의 말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났다.

“내가 여기서 뛰어내리기 전에… 부탁이니까…….”

정말이라도 작은 창밖으로 몸을 던질까 봐 겁이 난 페트릭이 몸을 돌렸다. 어쩌면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착각들은 이미 부서져서 페트릭의 양심에 날카로운 통증을 남겼다. 병실의 문이 닫히고, 페트릭은 흐느낌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한 병실이 무서웠다. 병원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시끄럽게 진동하는 휴대폰을 무시하며 페트릭이 한숨을 내뱉었다.

프레이 비셔스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결국 모든 사실을 알아버린 부모님은 프레이를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채로 페트릭에게 넌지시 경고했다.

‘그 애랑 결혼할 수는 없다는 거 누구보다 페터, 너 자신이 잘 알겠지. 이쯤에서 장난은 정리해라. 루시도 자신을 낳아놓고 버린 오메가 같은 건 안중에도 없지 않니. 너만 놓으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야.’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지만, 정작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망가져 버린 프레이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고, 기억이 돌아오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프레이의 인생을 박살 내버린 채로 버리라는 이야기였다. 뒤늦게 들기 시작한 실낱같은 죄책감이 페트릭을 괴롭혔다.

“젠장.”

일을 꼬아버린 건 자신이었다.

*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프레이가 잠에서 일어났을 때, 병실에는 고급 양복을 걸친 우아한 중년 남성이 앉아있었다. 서늘한 눈매와 굳게 다물린 입술은 꼭 페트릭 마일드리안과 닮아있어서 굳이 누구냐고 묻지 않아도 그가 페트릭의 아버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개하지 않아도 며칠 전 만나서 내가 누군지는 잘 알겠지.”

“…….”

상체를 힘겹게 일으킨 프레이를 품평하듯 눈으로 훑어 내린 그가 품 안에서 봉투를 꺼냈다. 닿기도 싫은지 침대 위에 툭 던진 그가 본론을 꺼냈다.

“페터가 너에게 흥미를 가졌다는 건 알고 있다. 성인이 된 자녀의 교제에 이러쿵저러쿵하기는 싫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구나.”

프레이는 침대 위에 던져진 봉투를 보며 물었다.

“저건…….”

“페터는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는 아이였지. 외국으로 떠나거라. 너도 제정신이 박힌 아이라면 네 몸을 그렇게 만든 페터랑 같이 있기는 싫을 테지.”

프레이는 봉투를 응시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페트릭과 닮은 중년 남성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사람을 보내겠다고 덧붙였다. 페트릭의 아버지는 귀찮아하는 시선이 역력했다. 프레이는 피식 웃으면서 그에게 대답했다.

“좋아요. 저도 여기서 더 엮이는 거 싫었어요.”

*

페트릭이 병실에 왔을 땐, 텅 빈 병실을 정돈하는 직원이 전부였다.

“환자 어디로 갔어요?”

패트릭의 날 선 질문에 직원은 어깨를 한번 들썩이며 심드렁한 태도로 대꾸했다.

“퇴원했겠죠. 저는 청소 담당이라서요.”

퉁명스러운 대답에 페트릭이 당황해하는 얼굴로 복도로 나와 병실의 이름표를 보니 프레이의 이름이 있었던 곳은 텅 비어있었다.

*

구름이 느리게 흐르는 하늘을 뒤로한 채 한적한 공원에 앉아있는 프레이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이름으로 살게 되었지만 프레이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집에 익숙해지지 않아 매일 밤 잠을 설쳤다.

“페이.”

프레이의 새로운 이름은 페이였다. 사창가에서 페이를 찾는다고 하면 수십 명은 달려 나올 만한 이름이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된 프레이는 새로운 이름에 담긴 마일드리안의 부모님의 악의가 노골적이라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의 새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옆집에 사는 남자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프레이에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옆집 남자는 프레이가 몸을 파는 베타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반반한 얼굴을 하고서 우울함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프레이를 노리는 사람은 생각보다 여럿이었다.

다 깨진 안경을 끼고 걸레짝 같은 티셔츠를 입던 시절에도 한두 명쯤은 프레이를 보기 위해 낡아빠진 모텔에 발걸음 하곤 했었다.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프레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얼굴이었다.

“손님한테 바람이라도 맞았어?”

기분 나쁜 인상의 남자를 피해 벤치에 일어난 프레이는 대꾸 없이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대꾸를 했다가는 말꼬리를 잡고 질질 시간을 끌며 추파를 던지는 탓에 프레이는 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너 한번 사준다니까?”

뒤를 졸졸 쫓아오며 말을 거는 옆집 남자를 피해 사람들이 붐비는 광장에 들어선 프레이의 몸이 덜그럭 소리를 낼 듯 뻣뻣하게 굳으며 멈춰버렸다. 멀리서도 시선을 끄는 수려한 외모와 마지막 기억 속에서보다 더 날카로워진 분위기의 페트릭 마일드리안이 광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을 찾아온 것은 아닌 듯, 그의 뒤에는 비서로 보이는 남자와 몇 명의 직원들이 딸려있어 프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생각에 잠겼다.

몇 달 만에 이곳에서 멀리서 페트릭을 보자 프레이는 우습지만 조금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몸이 망가지고 부모님이 묻혀있는 나라에서 살지도 못하게 된 이유가 그였음에도 지독한 향수병인지, 아니면 구질구질한 미련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를 멀리서 발견하자마자 가장 처음 든 감정은 반가움이었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낯선 나라에 유일하게 이름과 얼굴을 아는 사람을 마주하자 머리가 조금 이상해진 것 같았다. 옆에서 드디어 대줄 마음이 들었냐고 떠드는 남자의 목소리 같은 건 프레이의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부모님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과 경멸하는 눈을 하고서 대하던 태도, 페트릭 마일드리안이 자신에게 저질렀다던 일들과 계약서의 활자들이 프레이의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며 그를 피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좀 비켜요.”

프레이가 급하게 고개를 돌리며 몸을 돌렸다. 지금 이런 기분으로 마주친다면 그가 자신에게 했던 일이 기억이 안 난다는 이유로 용서해버리는 미친 짓을 할지도 몰랐다.

프레이가 자신의 팔을 세게 움켜쥔 옆집 남자의 팔을 힘겹게 떼어내며 페트릭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며 나누는 말소리로 공원은 시끌벅적했고, 페트릭은 프레이를 알아보지 못한 듯 피곤한 얼굴로 움직이고 있었다.

페트릭은 회사 경영수업에 복귀한 뒤, 해외 지사를 돌고 있었다. 잠잘 시간도 쪼개가며 일정을 잡는 부모님의 닦달에도 페트릭은 그저 따를 뿐이었다. 프레이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고, 그의 부모님은 다시 사업가 집안의 오메가와 약혼을 알아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숨기고 있었던 부모님의 분노가 대단해서, 페트릭은 약혼을 하기 싫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시야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처럼 프레이를 떠올릴 시간도 없이 일에 치이자, 페트릭은 몇 달 동안 쥐 잡듯이 찾아도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프레이를 점점 포기하고 있었다.

“페이. 자꾸 앙탈 부리면 재미없어.”

“닥쳐요.”

프레이가 뒤쫓아오며 협박하는 남자에게 낮게 대꾸하며 광장을 벗어났을 때쯤, 옆집 남자가 강제로 프레이의 몸을 골목길로 밀어 넣으면서 윽박질렀다.

“내가 돈 주고 산다고. 어? 공짜로 대 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읏.”

목을 졸린 프레이는 숨이 막혀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작은 손으로 자신의 목을 움켜쥔 남자의 손을 붙들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흐…….”

“어? 이제야 제대로 쳐다보네. 밤마다 내가 네 생각하면서 몇 번을 싸는지 알아? 네 뒷구멍 맛보려고 내가 이런 쓰레기 같은 짓까지 해야 하냐고.”

프레이는 숨이 막혀서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남자는 프레이의 목을 조르고 있는 손에 힘을 풀었다. 작은 몸을 바닥에 내팽개친 남자가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프레이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페이. 이웃사촌끼리 얼굴 붉히지 말자. 응? 손님 하나 늘어난 거면 너도 좋잖아. 안 그래?”

“…하으…….”

머리채가 잡힌 프레이의 몸이 남자가 흔드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살려달라는 말도 나오지 않아서 프레이가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흐느끼던 순간이었다.

“거기 무슨 일입니까?”

골목 안으로 낯선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프레이는 바닥에 처박힌 고개를 들어 골목을 들여다보는 정장 차림의 남자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남자는 아까 광장에서 마주친 페트릭의 뒤를 따라다니던 경호원이었다. 살려달라는 눈빛으로 프레이가 입술을 달싹거리던 순간 옆집 남자는 프레이의 입을 막았다.

“아무것도 아니까 갈 길 가쇼. 애인이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옆집 남자는 헛소리를 하며 프레이를 질질 끌고 갔다. 입이 막힌 채로 질질 끌려가는 프레이의 흐릿한 시야엔 피곤한 얼굴로 무심하게 걸어가는 페트릭 마일드리안이 있었다.

“자기야. 이번은 내가 용서해줄게. 바람 또 피우면 안 돼. 알았지?”

“우읍.”

싸구려 모텔의 뒷문으로 끌려가는 프레이는 그 순간만큼은 페트릭에게 매달리고 싶어졌다.

*

“아흑…….”

“좀 조여보란 말이야!”

손가락 두 개 정도 굵기의 작은 성기를 프레이의 구멍에 밀어 넣으면서 작은 엉덩이를 후려치던 남자가 헉헉대며 허리를 요란하게 흔들었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프레이의 엉덩이는 발갛게 부어오른 상태였다. 엉덩이를 맞을 때마다 구멍을 바짝 조여도 워낙 작은 성기의 남자는 프레이의 구멍이 너덜너덜하다고 불평하며 프레이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흣… 아아!”

프레이는 구멍을 들락거리는 남자의 성기가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정액이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감각에 눈물이 질질 흘렀다.

“헉헉. 싼, 싼다!”

요란한 허릿짓을 하던 남자가 프레이의 다리 사이에 하얀 정액을 뿌려댔다. 프레이는 뒤로 묶인 팔에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시트는 이미 눈물로 젖어 축축했고, 얼굴이 처박힌 채로 흔들려서 머리가 멍했다. 구멍 사이를 빠져나가는 희미한 감각에 엉덩이를 움찔거리자 옆집 남자는 프레이의 엉덩이를 후려치며 웃었다.

“뭐 먹을 만은 하네.”

프레이는 엉덩이의 화끈한 감각에 울면서 묶인 팔을 풀어달라고 흐느꼈다.

“뒤처리도 해줘야지. 애프터서비스 몰라?”

프레이의 몸을 일으켜 무릎 꿇게 만든 남자가 젤과 정액으로 범벅이 된 성기로 프레이의 뺨을 툭툭 쳤다. 입술에 비벼지는 물컹한 성기에서는 비릿한 정액 냄새가 나서 프레이가 울먹이며 고개를 저었다. 기어이 앙다문 프레이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벌린 남자가 살덩어리를 물려주며 프레이의 뺨을 툭툭 치면서 경고했다.

“깨물면 넌 뒤지는 거야. 페이. 알아들어?”

“…으읍.”

프레이는 남자가 힐끔 쳐다본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작은 나이프를 보며 체념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채가 잡힌 채로 구역질 나는 성기를 입안에 머금고 어설프게 혀를 움직이자 까끌까끌한 남자의 음모가 프레이의 얼굴에 닿을 정도로 남자가 허리를 처박기 시작했다.

목젖을 치는 성기에 구역질이 나서 머리를 뒤로 물리려 해도 머리카락을 쥔 손 때문에 프레이가 남자의 성기를 억지로 빨며 기절하려던 순간 입안에 물려있던 성기가 빠져나갔다. 얼굴 위로 미지근한 점액질 덩어리들이 떨어지면서 프레이가 눈을 감았다.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작은 몸 위에 정액을 다 쏟아낸 남자는 그제야 묶어두었던 팔을 풀어주며 낄낄댔다.

“말 잘 들으니까 얼마나 좋아. 앞으로 내가 부르면 바로 구멍 대주러 오는 거야. 알았어?”

정액으로 끈적거리는 프레이의 몸에 지폐 몇 개를 던지면서 남자는 하얀 알몸을 훑었다. 어느 가게 소속인지 훑어도 작은 문신 하나 없는 뽀얀 몸이 마음에 들었다. 남자가 웃으며 옷을 꿰입고 모텔 방을 나가는 동안 프레이는 멍하게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정액으로 끈적거리는 몸에 달라붙은 지폐를 떼어 낼 힘도 없어서 시선만 내려 꾸깃꾸깃 접힌 돈을 바라보는 얼굴은 지쳐 보였다.

“…….”

프레이는 비참한 지금 이 순간,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왜 부모님이 아닌 페트릭 마일드리안인지 의아했다. 아까 그 골목길에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살려달라며 소리 질렀다면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피해 도망친 이곳에서 차마 살려달라고 매달릴 수는 없었다. 강간한 새끼는 옆집 남자인데 왜 페트릭 마일드리안이 미운지, 그리고 왜 이렇게 또 보고 싶은지 알 수 없어서 프레이는 몸을 웅크린 채로 울었다.

모텔에서 십 분쯤 끅끅거리며 울고 나자 프레이의 고장 난 머리는 금세 멀쩡해져서 슬프지 않았다. 프레이는 오랜만에 엉엉 소리 내어 우느라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에 가득했던 페트릭에 대한 감정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자 프레이는 이 모텔에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가기에는 옆집 남자와 마주칠까 봐 무서웠다. 집 쪽으로는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 무작정 모텔을 빠져나와 걷는 몸은 비틀거렸다. 걸을 때마다 옷에 쓸리는 엉덩이에는 피멍이 가득했고, 팔이 세게 묶인 탓에 아직도 감각이 다 돌아오지 않은 손끝이 저려서 걷다가도 몇 번이나 제자리에 멈춰 서야만 했다.

프레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우중충한 하늘에선 비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 비에 옷이 젖고 있었지만 프레이는 그저 바닥만 쳐다보며 술 취한 사람처럼 흔들흔들 걸었다. 지나가는 행인과 부딪힐 때마다 프레이는 고장 난 기계처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뭐야! 눈 똑바로 뜨고 다녀!”

“죄송합니다…….”

강간당한 모텔에 머무르기 싫어 일단 거리로 나왔지만, 임대한 아파트 말고는 딱히 갈 곳도 없어서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페트릭을 멀리서 바라봤었던 그 광장이었다. 비가 와서 오가는 사람들이 드문 광장 구석에는 볼품없이 작은 분수가 졸졸 소리를 내며 물줄기를 뿌리고 있었다.

프레이는 작은 분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의미 없이 물줄기를 쳐다보던 프레이는 주머니를 느리게 뒤적였다. 소원이라도 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머니에는 정액이 들러붙어 있는 몇 장의 지폐가 전부였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지폐는 남자가 자신에게 화대라며 던져준 돈이었다. 그 돈을 챙겨 나온 건 옆집 남자에게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자신은 남창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페트릭 마일드리안이 보여주었던 딱딱하고 건조하기만 한 계약서의 문구가 춤을 추듯 눈앞에 떠다녔다.

내가 남창이 아니면 뭔데 도대체.

대가를 받고 섹스를 하고, 임신을 해서 아기를 낳아준다는 계약서에 서명한 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물론 기억나지 않는 과거였지만, 페트릭 마일드리안은 여러 가지 변명을 하면서도 유일하게 계약서에 프레이가 직접 서명했다는 말은 부정하지 않았다.

던질 동전이 없어서 멍하게 분수를 쳐다보는 프레이의 옆엔 비에 흠뻑 젖은 슈트를 걸친 남자가 서 있었다. 프레이의 시야는 점점 흐릿해졌다. 비를 맞아 무거워진 옷 때문인지, 얻어맞고 목이 졸린 탓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잠깐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팔이 붙잡혔다. 여전히 저릿한 팔뚝을 힐끔거린 프레이는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부슬부슬 내리던 빗줄기는 어느새 거세져 있었다. 쏟아지는 빗속에 서 있는 프레이는 낯선 남자의 품 안에 안기자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왜, 왜 이러세요.”

목이 졸려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였다.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리는 작은 몸을 끌어안은 남자가 속삭였다.

“드디어 찾았네.”

“페트릭…….”

페트릭의 품에 끌어안겨 있는 몸이 축 늘어졌다.

*

비에 쫄딱 젖은 채로 낯익은 남자를 안고 호텔로 돌아온 자신의 상사를 보던 비서는 인상을 찌푸렸다. 외국 지사의 업무들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페트릭은 프레이를 닮은 사람을 보면 사람을 보내 집요하게 확인했다. 경호원들은 이제 프레이의 얼굴이라면 자다가도 몽타주를 그려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요즘은 잠잠한 편이었다. 하지만 프레이를 닮은 남자를 봤다는 경호원의 보고를 듣자, 페트릭은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그를 봤다는 광장 근처를 뒤지는 페트릭 덕분에 아직도 비서의 전화는 전화와 문자메시지들이 수신되는 알람 음이 울렸다.

페트릭의 품 안에 안겨있는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던 비서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전임 비서에게 귀에 피가 날 정도로 이야기를 듣고, 사진도 몇백 번은 봤던 페트릭 마일드리안의 애인 같은 남자였다. 얼핏 봐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서 비서가 페트릭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사님. 의사를 대기시킬까요?”

“눈 없어?”

페트릭은 침대에 프레이를 눕힌 뒤, 짜증을 냈다.

“바로 의사를 데려오겠습니다.”

비서가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인상을 쓴 페트릭은 프레이의 창백한 뺨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냈다. 아직도 프레이를 찾아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페트릭은 손끝이 떨리는 걸 숨기기 위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가쁜 숨을 내쉬는 프레이의 젖은 옷을 벗기던 그는 피멍이 들어 흉하게 부은 엉덩이와 말라붙은 정액의 자국에 인상을 찌푸렸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페트릭은 자신의 경호원의 보고를 떠올렸다.

‘웬 남자에게 맞고 있었습니다. 애인이 바람을 피웠다고 하면서 골목 끝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얼굴을 자세히 살펴볼 시간이 짧긴 했지만…….’

나한테서 도망갔으면 잘 살아야지. 왜 처맞고 다녀. 병신 같은 프레이 비셔스. 머저리 같은 새끼. 마른 몸에 울긋불긋한 자국들을 보고 있자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속으로 프레이를 미련하다고 욕을 하면서도 열을 가늠해보려 이마를 짚고 있는 손길은 다정했다. 비서에게 단단히 주의사항을 전달받은 의사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페트릭은 눈을 부릅뜨며 재촉했다.

“어서 진료해요.”

“네.”

페트릭의 흉흉한 페로몬에 압도된 의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로 향했다. 간단한 체크를 한 의사가 입술을 열었다.

“일단 외견상으로는 독감 같습니다.”

진료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는 남자 때문에 의사는 청진기로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가운을 살짝 벌리며 한숨을 쉬었다. 자칫 잘못하면 폐렴으로 번질 위험이 있었다. 주사를 놔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의사는 가냘파 보이는 남자의 소맷자락을 걷었다. 앙상한 팔목엔 이미 검붉은 색의 멍이 올라오고 있었다.

“주사 안 놓고 뭐 해요.”

“아, 네.”

의사는 주사를 놓은 뒤,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우성 알파의 페로몬으로 질식할 것 같던 방을 벗어나자 그제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페트릭의 비서가 한숨을 쉬고 있는 의사에게 물었다. 프레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의사는 최대한 빨리 이 호텔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비서는 허둥지둥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의사를 배웅했다.

페트릭은 색색거리며 누워있는 프레이의 머리카락 끝을 만지고 있었다. 눈을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아 초조하다가도, 프레이가 일어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경멸의 눈빛을 보낼 것이 뻔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페트릭이 프레이의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이, 감겨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페트릭이 뭐라고 운을 떼야 좋을지 말을 고르던 순간이었다.

“…나쁜 새끼.”

페트릭의 얼굴을 응시하던 프레이가 울먹였다. 모든 의미가 함축된 한마디에 페트릭이 인상을 찌푸렸다. 페트릭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눈물을 닦아주자, 손길을 피할 힘도 없는 프레이는 눈을 다시 감았다.

“…더 자.”

페트릭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프레이는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후회는 한 번이면 족했다. 그는 프레이가 두 번 다시는 도망가지 못하게 할 궁리를 하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감추기 위해 눈을 내리깐 페트릭은 프레이의 손등에 입술을 내렸다. 고단한 하루의 끝에서 다시 만난 자신의 첫사랑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프레이는 그저 자고 싶었다. 비참한 하루였다.

*

프레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늦은 저녁이었다. 은은한 조명이 켜진 방 안을 살피던 프레이가 작게 기침했다. 아직도 누가 목을 조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위태롭게 서 있던 프레이는 구역질을 했다.

“…우윽.”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프레이에게 페트릭이 다가갔다. 오랜만에 느끼는 알파의 페로몬에 눈앞이 어지러웠다. 마른 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휘청거리자 페트릭은 프레이의 몸을 품에 안았다.

“너 열 아직 다 안 내렸어.”

“…씻고 싶어.”

프레이는 아직도 몸에 남아있을 것이 분명한 정액을 씻어내고 싶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고집스럽게 서 있는 프레이를 쳐다보던 페트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욕실까지 걸어가지도 못하는 몸으로 움직이려던 프레이를 덥석 안은 그가 속삭였다.

“내가 씻겨줄게.”

“…뭐?”

“지금 그 상태로는 혼자 못 씻을 텐데.”

프레이는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페트릭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그의 말대로 혼자 씻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아마 두 다리로 서 있기도 힘들어서 바닥을 길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씻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얌전히 페트릭의 품에 안겨 도착한 욕실은 서늘했다. 프레이가 벽을 짚으며 숨을 내쉬자 페트릭이 물었다.

“옷 벗겨줄까?”

페트릭이 자신을 혼자 두고 나갈 생각은 없어 보여서, 프레이는 집요한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시선을 피하는 행동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페트릭이 프레이의 가운을 벗기기 시작했다.

“나 혼자… 읏.”

차가운 공기가 살갗에 와 닿자 당황한 프레이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페트릭을 밀어내며 휘청거렸다. 팔뚝을 움켜쥔 페트릭이 귓가에 속삭였다.

“고집부리지 말고. 응?”

프레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던 페트릭은 벌겋게 부어있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페트릭 마일드리안을 피해 고향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이 나라로 도망쳤던 것 따위는 지금 프레이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엉덩이 사이에 끈적한 점액질이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몸서리를 치던 프레이가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을 하고서 잠시 침묵했다.

결국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자 페트릭은 자신이 입혀놓았던 가운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천천히 벗겨 냈다. 가운이 벗겨질수록 하얗기만 한 몸에 나 있는 멍 자국들이 선명해서 페트릭은 분노로 돌아버릴 것 같았다.

“누가 이랬어?”

“…옆집 남자.”

사락거리는 옷 벗겨지는 소리 위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프레이는 한마디를 하더니 목이 아픈지 작은 손을 들어 목을 만지다 통증에 인상을 썼다.

“흣.”

“우선 몸부터 담글래?”

욕조에 물을 받으며 페트릭이 묻자 프레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틀거리면서 욕조로 향하는 몸이 흔들거리며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아 페트릭의 표정은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물이 어느 정도 받아진 욕조에 입욕제를 푸는 손길이 더없이 신중했다.

“들어와.”

셔츠 소매는 욕조의 물 온도를 확인하느라 젖어있었다. 발끝을 살짝 담그던 프레이는 욕조에 몸을 천천히 담그면서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멍이 들어 예민해지고 피가 난 살갗에 물이 닿자 쓰라려서 금방이라도 아프다고 소리를 낼 것 같았다. 입욕제가 풀어져 있는 탓에 뿌연 욕조 안에 앉아 숨을 고르며 프레이의 얼굴에서 긴장이 조금 사라졌을 때쯤 페트릭은 샤워기를 들고 다가왔다.

“머리 감겨줄게.”

“…아, 으응.”

쓰라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따뜻한 물에 몸이 풀리면서 프레이는 조금 멍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분고분하게 머리를 내어줄 줄은 몰라서 조금 당황한 페트릭은 조심스럽게 프레이의 머리카락에 물기를 묻히며 샴푸 거품을 내기 시작했다. 세게 쥐면 부서질 것 같은 작은 머리를 열심히 감기면서 페트릭은 꾸벅꾸벅 졸고 있는 프레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우울함에 잠식되어버린 프레이의 얼굴 위로 기다란 속눈썹이 만들어 낸 그림자가 져 있었다.

“피곤하지.”

“…….”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을 걸며 잠이 든 프레이의 의식을 살짝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머리카락에 묻어 있던 거품을 다 씻어냈는지 확인하던 그가 프레이의 뺨을 한번 쓸었다. 살짝 졸고 있던 프레이가 손바닥에 얼굴 기대며 얌전히 몸을 내어주자 페트릭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환하게 웃었다. 프레이의 몸을 안아 올린 페트릭이 물기에 젖은 뺨에 입술을 가져가며 속삭였다.

“샤워해야지. 프레이.”

“…응.”

물기 가득한 입술과 자신의 뺨이 만나 촉-하는 소리가 뺨에서 났는데도 쏟아지는 잠과 열로 어지러운 머리는 한 박자 느린 대답을 할 뿐, 프레이는 페트릭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파도 조금만 참아.”

“아…….”

거품을 묻힌 샤워 볼이 몸에 닿자 조금 잠이 달아난 프레이는 몸을 흠칫 떨면서 페트릭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단단한 팔이 구명줄이라도 되는 듯 꼭 매달린 프레이의 멍이 가득한 엉덩이에 거품이 닿자 결국 통증에 눈물이 터진 프레이를 보면서 페트릭은 인상을 썼다.

“옆집 남자라는 그 새끼랑 사귀는 거야?”

“…그, 그런 거 아니야…….”

프레이는 어지러움으로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토기가 치밀어오르고 금방이라도 몸이 쓰러질 것 같아서 눈을 꼭 감고 있는 프레이가 흐느끼며 생각했다.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나중에 씻을걸. 조금 뒤늦은 후회를 하는 프레이는 왜 페트릭 마일드리안이 이런 질문을 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엉덩이 사이에 느껴지는 쓰라린 통증에 눈물을 질질 흘려대면서 고개를 저었다. 물에 젖어 색이 조금 진해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몸의 거품을 씻어주는 손길은 더없이 상냥했다.

“그럼 강간이라도 당했다는 거야?”

“…흐읏…….”

프레이는 페트릭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새끼가 너 강간했냐고.”

“…날 비참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해?”

페트릭은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프레이가 강간당했음을 확신했다. 벗겨 낸 가운 대신 다른 가운을 꺼내 걸쳐주는 손가락 끝이 분노로 잘게 떨렸다. 자신은 더한 짓도 했던 주제에 프레이를 강간했다는 옆집 남자를 반쯤 죽이지 않으면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았다. 울음을 참는 듯 잘근잘근 씹히고 있는 프레이의 입술을 응시하는 얼굴이 점점 아래로 향했다.

“읏…….”

앞섶을 여며주던 페트릭이 프레이의 뺨을 잡고 입술을 내렸다. 다급하게 찾아든 혀가 낯설어서 프레이는 몸을 버둥거리며 손을 들어 페트릭을 밀어내기 바빴다. 밀어내려 할수록 더 몸을 붙여오는 페트릭의 힘에 밀려 프레이가 결국 느리게 눈꺼풀을 감더니 입술을 내어주었다.

“으응.”

프레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페트릭은 체념한 듯한 얼굴로 천천히 감긴 눈꺼풀에 살짝 입술을 맞췄다.

다시 맞물린 입술은 누구의 타액인지 알 수 없는 액체들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여린 입천장을 혀로 쓸자 민감하게 반응해오며 비음을 흘리는 프레이의 몸을 만지던 페트릭은 천천히 입술을 떼냈다. 비틀거리는 몸을 다시 안아 들자 어설픈 움직임으로 페트릭의 목에 제 손을 감아오는 프레이가 끙끙거렸다.

“아, 아파…….”

“그래.”

조금 부은 프레이의 눈가에 키스하는 페트릭의 얼굴은 언제 분노로 손을 떨었냐는 듯이 다정했다. 샤워로 조금 상쾌해진 몸이 점점 축 늘어지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페트릭의 품에 얼굴을 기댄 프레이는 꾸벅꾸벅 다시 졸기 시작하는 모습에 페트릭이 작게 속삭였다.

“이제 잘 수 있겠어?”

“응…….”

반쯤 잠에 든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자 페트릭은 작은 손에 깍지를 끼더니 손등에 키스했다.

“잘 자. 프레이.”

잠이 든 프레이가 제대로 호흡은 하는지, 어디 아파 보이는 곳은 없는지 살피던 페트릭이 침대 위에 누웠다. 등을 규칙적으로 두드리던 페트릭이 눈을 감으며 잠에 완전히 빠져든 프레이의 몸을 껴안았다.

“좋아해. 프레이 비셔스.”

프레이가 잠든 사이 이루어진 페트릭의 고백은 흔해 빠진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고,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프레이는 잠결에도 느껴지는 토닥거림에 누군가의 품에 파고들며 잠꼬대를 했다.

“흐…….”

자신의 품 안에 파고든 프레이를 안아주면서 페트릭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

“나 혼자 먹을게.”

“손이 그런데 혼자 어떻게 먹어.”

프레이는 페트릭의 말에 깁스를 하고 있는 자신의 팔을 힐끔 쳐다봤다. 오늘 아침의 일을 회상하며 다친 팔을 내려다보는 얼굴은 우울했다.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던 프레이는 자신의 옆에 누워 졸던 페트릭이 어딜 가냐며 팔을 붙잡았을 때, 물을 마시러 간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었다. 침대 근처에 위치한 테이블에 놓인 물병을 들어 물을 마시려는 찰나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프레이는 바닥으로 몸이 추락하는 걸 인지하기도 전에 느껴지는 팔의 통증에 신음하고 있었다. 둔탁한 소리에 눈을 뜬 페트릭은 바닥에 쓰러진 작은 몸을 발견하며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널브러진 프레이에게 다가간 페트릭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 물었다.

“괜찮아?”

“…응. 괜찮… 아흑.”

몸을 일으키려 손으로 바닥을 짚으려던 프레이가 팔의 통증에 비틀댔다. 흔들거리며 바닥으로 고꾸라지려는 몸을 안은 페트릭이 프레이의 몸을 침대로 눕혔다. 페트릭의 비서가 다시 불러들인 의사는 프레이를 다시 진찰해야 했다. 진료를 마친 의사는 프레이가 넘어지며 손을 잘못 짚는 바람에 인대가 늘어난 것 같다고 하며 깁스를 권유했다. 그 결과 손에 간단한 깁스를 하게 된 프레이는 자신에게 수프를 직접 떠서 먹여주려는 페트릭과 마주 앉아있었다.

“어서. 배고프잖아.”

페트릭은 프레이가 싫다고 몇 번이나 거절을 했음에도 수저를 프레이에게 건넬 생각이 없었다. 프레이는 식탁 모서리 끝을 붙잡은 채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럴 거면 나 집에…….”

“너 강간한 새끼가 옆집에 사는데도 가고 싶어?”

페트릭의 한마디에 프레이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꾹 다물린 입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한 것이었다. 옆집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기 전 끌려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페트릭에게 자존심도 버린 채로 매달리고 싶었던 프레이는 그를 밀어내며 거부하고 있었다.

“프레이. 고집부리지 말고. 응?”

입술 끝에 따뜻한 수프가 담긴 숟가락이 닿자 고소한 냄새가 느껴져 뒤늦은 허기가 찾아왔다. 프레이는 앞에 앉은 페트릭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몇 달 만에 자세히 보는 얼굴은 조금 살이 빠진 듯 더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기억 속에서처럼 잘생긴 얼굴이었다. 포근해 보이는 니트를 입고 있는 페트릭은 늘 올리던 앞머리를 내린 채로 다정한 눈으로 프레이를 쳐다보며 숟가락을 살짝 움직였다.

프레이는 입술을 달싹대다 결국 체념한 듯 입을 열어 숟가락을 물었다. 작게 벌린 입술을 오물거리며 수프를 받아먹는 프레이를 보던 페트릭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귀여운 짓만 한다니까. 진짜.

몇 달 동안 진행된 두 사람의 숨바꼭질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사건이었다. 페트릭에게는 프레이를 향한 집착이 더 심해지는 분기점이 되었고, 프레이에게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불행들을 받아들이며 체념하게 돼버린 계기가 되고 있었다.

프레이는 아무리 적응하려 노력하고 이해해보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자신에게 닥쳐오는 불행을 막을 힘이 없었다. 이제 더는 불행에서 발버둥치려는 의지도, 용기도 없어진 프레이는 페트릭이 먹여주는 수프를 받아먹으며 느리게 눈을 깜빡거릴 뿐이었다.

“으응. 배불러…….”

“겨우 이만큼 먹었는데. 조금만 더 먹어.”

수프 한 접시도 비우지 못한 프레이는 벌써 배가 부른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입을 다물었다. 몇 번 더 권해도 싫어하는 얼굴이 역력해서 페트릭은 수프 접시를 치우며 프레이에게 속삭였다.

“약 먹어야지.”

“나 이제 그만 집에 보내줘.”

프레이가 자신을 올려다보며 말을 건네자 페트릭은 얼굴을 숙여 프레이의 뺨에 키스했다. 달달한 코튼 냄새가 나는 향수 냄새에 프레이가 몸을 움찔거리며 자신의 턱을 잡아 올리는 남자를 천천히 눈에 담았다.

“눈 감아볼래?”

“싫어…….”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리는 입술 사이로 프레이의 턱을 들어 올리다 말고 제 엄지손가락을 집어넣은 페트릭이 웃었다.

“프레이… 아직도 몸이 아파서 상황파악이 안 돼?”

“흐… 무슨…….”

입안의 여린 점막을 누르며 혀를 문지르는 손가락 때문에 프레이의 입에는 미처 삼키지 못한 침이 고였다. 눈앞의 남자는 분명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동창이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때 자신의 애인이었던 남자였다. 사실 프레이가 페트릭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라곤 그의 이름, 나이, 가족관계, 그의 형질 정도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프레이는 페트릭이 입꼬리를 올린 채로 웃고 있는 얼굴이 화를 참고 있는 얼굴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커다란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순진한 얼굴을 하고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자신의 오메가였던 남자의 입안을 헤집던 손가락을 빼내며 페트릭이 속삭였다.

“숨바꼭질은 끝났어. 프레이. 네가 진 거야.”

“…뭐… 읍…….”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던 프레이의 시도는 입술로 막혀버려 실패로 끝이 났다. 제 입안을 휘젓는 페트릭의 혀의 감촉에 프레이는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결국은 또 이렇게 되는 걸까. 도망이든, 발버둥이든 이제는 그만할까.

*

“아… 아아!”

“프레이. 다른 새끼 좆이 들락거리던 구멍 검사받아야지.”

가운의 앞이 다 벌어진 상태로 하얀 몸을 드러낸 프레이는 침대 위에 무기력하게 누워있었다. 허리 밑에 놓인 베개 때문에 엉덩이가 들린 프레이는 구멍 안에 박혀있는 손가락을 잔뜩 조이며 작게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페, 페트릭… 아읏…….”

“손 더 다치면 안 되니까 버둥거리지 말고. 응?”

우성 알파의 몸에서 나오는 페로몬에 중독된 열성 오메가의 몸은 잘 움직이지 않았다. 프레이는 숨을 내쉬더니, 힘겹게 고개를 저으면서 다리를 부르르 떨었다.

“몇 명이랑 잔 거야? 응? 열 명? 스무 명?”

꽉 다물려있는 프레이의 내벽을 들쑤시는 손길은 제법 다정했다. 말은 짓궂게 하고 있었지만 페트릭은 사실 프레이의 상처 난 내벽에 약을 바르는 중이었다. 프레이를 강간한 옆집 남자가 남긴 흔적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으면서도, 멍이 들어 울긋불긋한 엉덩이를 보니 거칠게 굴 생각이 사그라들었다. 프레이는 정말 지금 아파 보였다.

“흣… 아니야… 그런 거… 페트릭 제발…….”

“프레이. 내 이름 알려줬잖아.”

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도 잘 분간이 안 되기 시작한 프레이는 물기가 고이기 시작한 눈을 감아버린 채로 욱신거리는 몸을 간간이 떨었다. 페트릭이 의사에게 받은 연고를 구멍 안에 충분히 바른 후 붙잡고 있던 다리를 내리자 프레이의 얼굴은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농담한 건데 울기는. 마음 아프게.”

페트릭은 강간당한 몸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안을 생각은 아직까진 없었다. 약을 발라주느라 반쯤 벗겨놓았던 프레이의 가운을 여며주며 턱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낸 페트릭이 혀를 찼다.

“…페, 페트릭…….”

“응.”

넘어갈 것 같은 숨을 하고서 자신을 불러오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페트릭이 눈가에 키스를 내렸다. 여린 눈가에 뜨거운 입술이 닿는 촉감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은 프레이가 깁스를 한 손의 반대쪽 손을 들어 페트릭의 옷자락을 힘겹게 붙들었다.

“왜 불러놓고 말을 안 해. 프레이.”

대답을 재촉하듯 입술을 할짝이며 속삭이는 페트릭은 프레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자신의 아래에 깔려 울고 있는 모습이 더없이 마음에 들었다. 색이 바래서 더 희미해진 연보라색 머리카락과 눈물에 젖어 다 진해 보이는 보라색 눈동자에 오롯이 비치는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사실에 페트릭이 웃었다.

“또 어디로 도망가서 이상한 새끼한테 강간 같은 거 당할 바에는 그냥 내 옆에 있어. 응? 내가 잘해줄게.”

악마가 속삭이듯, 귓가에 속살대는 목소리가 더없이 감미로웠다. 프레이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앞의 남자가 자신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눈앞이 캄캄했다. 페트릭의 옷을 붙든 손의 힘을 풀며 프레이는 눈을 감았다. 그의 말대로 어딘가로 또 도망간다고 하더라도 강간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한없이 위축되고 모든 것을 경계하다 못해 불신하게 되어버려 지쳐있던 프레이에게 속삭이는 페트릭의 제안이 너무도 달콤하고 유혹적이었다.

프레이는 자신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혀를 받아들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걸 포기하고 그의 곁에 남아있으면 그의 흥미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약속한 거야. 프레이.”

“…약속……?”

작게 되묻던 프레이가 눈을 뜨자 자신을 내려다보는 다정한 얼굴이 보였다. 눈을 깜빡이며 멍한 얼굴을 한 프레이에게 재촉하듯 다시 페트릭이 속삭였다.

“내 옆에 있는 거야. 알았지?”

대답을 망설이는 얼굴에 입을 맞추던 페트릭은 들릴 듯 말 듯 작게 대답하는 목소리에 웃었다.

“…네 마음대로 해…….”

프레이는 열심히 도망친 곳의 끝이 막혀있는 벽임을 깨달았다. 의욕마저 사라져 버린 채로 자신을 껴안아 오는 남자에게서 희미한 향수 냄새를 맡으며 프레이는 생각했다.

사실 도망칠 방법 같은 건 없었던 걸지도 몰라. 체념하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진 프레이가 다시 눈을 감았다. 힘없이 늘어진 몸을 안아주는 품의 온기가 따뜻했다. 이 나라에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평온함을 우습게도 이 나라로 도망치게 만든 원인에게 느끼고 있었다. 망가진 뇌가 기어이 고장이 났다고 생각하며 프레이는 페트릭의 품 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오는 따뜻한 품에 기대 잠이 든 프레이는 조금 웃었다.

품에 안기자 점점 빠르게 뛰던 페트릭의 심장이 쿵쿵쿵 소리를 내며 훨씬 빠르게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자.”

등을 토닥여주는 다정한 손길에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

잠에서 깨어난 프레이의 작은 얼굴은 눈물에 젖어있었다. 아직도 꿈속인 것같이 몸이 무겁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프레이가 헐떡거리고 있을 때, 따뜻한 체온이 프레이의 몸을 감싸 안았다.

“또 악몽을 꿨어?”

“…응.”

프레이의 떨리는 몸을 진정시켜주는 다정한 체온의 주인은 페트릭 마일드리안이었다. 프레이는 페트릭의 곁에 남기로 약속한 그날 이후로 악몽을 꾸고 있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꿈을 꾸고 나면 늘 숨이 막히거나, 눈물로 얼굴이 젖어있기 일쑤였다.

“왜 자꾸 악몽을 꿀까.”

젖은 뺨을 매만지는 페트릭의 손길에서 애정이 뚝뚝 묻어 나왔다. 몸을 작게 웅크리며 무겁기만 한 눈꺼풀을 다시 감은 프레이는 뺨을 만지는 손길에 다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벌써 태어나고 자란 모국으로 다시 돌아온 지 일주일째였다. 돌아왔다는 뿌듯함도 없이 지낼 곳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프레이가 의지하고 기댈 곳은 오로지 페트릭 한 사람뿐이었다. 귀국한 이후 페트릭은 프레이의 페로몬 샘을 되살리는 수술을 알아보고 있었다.

‘돈도 없고 집도 없는 애를 어떻게 식구로 받아들여! 네 애라도 뱄다면 모를까.’

프레이는 오메가 페로몬 샘이 기능을 멈춰서 더 이상 오메가로서의 삶이 불가능했다. 약물과 유산으로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서도 페트릭의 부모는 프레이가 임신을 한다면 결혼을 허락한다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걸었다. 며칠 전, 페트릭이 프레이에게 수술을 받아보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프레이는 이렇게 되물었다.

‘내가 싫다고 하면 안 할 거야?’

프레이가 응하지 않아도 수술을 받게 할 생각이었던 페트릭은 프레이를 보며 어색하게 웃더니, 부스스한 프레이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릴 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 페트릭에게서 도망갈 생각도 안 하는 프레이는 무언가로부터의 도망은 생각보다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눈을 감고 있는 프레이의 입술을 머금으며 페트릭이 프레이의 몸을 슬금슬금 만지고 있었다.

“아, 아…….”

“다리 좀 벌려봐.”

순순히 다리를 벌려주는 프레이가 신음을 흘리며 페트릭에게 몸을 맡겼다. 달칵거리며 젤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엉덩이를 움찔하던 프레이의 구멍은 엉덩이 사이에 파고들기 시작한 페트릭의 손가락을 반기고 있었다.

“수술 날짜가 잡혔어.”

“…흐윽…….”

다물린 주름을 눌러가며 마른 구멍을 적시던 페트릭이 귓가에 속삭이자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음을 흘려댔다.

“수술이 잘되면 다시 내 오메가가 되는 거라고. 너도 좋지?”

“…아, 아… 으응.”

쾌감만 쫓게 되고 있는 몸은 페트릭의 손에 천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의 손에 길들여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프레이는 자신의 변화에 어색해하면서도 자신을 아무렇게나 방치하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 같은 걸 표출해보았자 잘 이루어지지 않을 거란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아버린 것 같았다. 페트릭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프레이는 편하게 잠도 잘 수 있고, 종종 웃을 수도 있었다.

“집중해야지.”

“그, 그거 넣을 거야?”

잘그락거리는 소리에 프레이가 눈을 뜨자, 동그란 구슬들이 꿰어져 있는 가는 체인을 들고 있는 페트릭이 웃었다.

“응. 이거 네 구멍 안에 넣고 너 따먹으면 느낌 좋거든.”

“…아악…….”

“어서 힘 풀어야지. 프레이. 예쁘게 굴기로 했잖아.”

구멍을 비집고 구슬을 한 알 집어넣자 프레이는 욱신거리는 근육에 들어간 힘을 빼면서 시트를 붙든 손을 들어 페트릭의 목을 휘감았다.

“키, 키스해줘…….”

“아랫입으로 다 먹으면 상으로 해줄게.”

프레이의 간절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다정하게 웃는 페트릭이 구멍을 비집으면서 다시 구슬을 하나 더 밀어 넣었다.

“하윽…….”

힐끔 아래를 내려다보며 구슬이 몇 개나 남았는지 가늠하던 프레이는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이물감에 허리를 뒤틀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잡아 벌린 페트릭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구슬 위에 젤을 가득 짜내더니 프레이의 손을 가져가 구슬을 만지게 했다.

“직접 넣어봐.”

“읏, 으응.”

미끈거리는 손으로 구슬을 더듬거리며 만지는 작은 손이 자신의 몸 안으로 구슬을 꾹 눌러 넣다 말고 끅끅대며 몸을 떨었다.

“아. 벌써 싸면 안 돼. 혼나려고 그래?”

“하… 하지만…….”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반쯤 밀려들어 간 쇠 구슬을 결국 다시 뱉어낸 구멍이 벌름대며 젤로 반들거리는 모습에 페트릭은 갈증이 일었다. 프레이는 자신이 시키는 일을 거부하지도 않고 대체적으로 잘 따르고 있었다. 프레이가 순종적으로 구는 만큼 더 다정하게 굴고 있는 페트릭은 종종 제 통제를 벗어나서 프레이가 머뭇거릴 때마다 짜증이 치밀었다. 금방이라도 쏟아낼 것 같은 성기를 움켜쥔 페트릭이 손을 떼어내며 속삭였다.

“프레이. 짜증 나게 굴지 말고.”

마치 강아지를 타이르듯 뺨을 살살 쓸며 달래자 프레이는 울먹이면서 다시 구멍 안으로 구슬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벌름거리는 주름 사이로 구슬들을 몇 개나 집어넣었는지 세지 못한 프레이가 더듬거리며 엉덩이를 더듬었다.

“다 넣었어. 착하네.”

“으…….”

속이 약간 더부룩해질 정도로 내장 안에 들어찬 제각각 다른 크기의 구슬들에 익숙해지기 위해 구멍을 계속 움찔거리던 프레이가 제 성기를 붙잡은 채로 링을 끼우는 페트릭을 보며 허리를 흔들었다.

“페, 페터…….”

“응?”

땀에 젖은 뺨에 키스하며 대답하는 페트릭은 프레이의 무릎을 잡아 벌렸다. 구슬을 다 삼킨 붉은 구멍의 입구가 젤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 끝으로 입구를 꾸욱 누르자 뻐끔거리며 구멍이 반기고 있었다.

“아!”

“흐, 아직 길이 들려면 조금 더 걸리려나.”

귀두가 파고들기에 프레이의 아래는 지나치게 긴장되어 있는 상태였다. 몇 번의 추삽질로 귀두가 구슬을 머금은 엉덩이 사이에 파고들었을 때 프레이는 침을 삼키다 말고 끅끅댔다. 구슬을 밀어내며 깊은 곳으로 밀려드는 뜨거운 살덩어리가 너무 단단해서 아래가 찢어질 것 같은 두려움마저 들기 시작했다.

“페터… 안 돼… 무, 무서워…….”

“안 찢어졌어. 직접 만져봐.”

찢어졌을까 봐 두려워하며 눈물만 흘리는 프레이를 보던 페트릭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연결된 아래를 만지게 하자 프레이는 숨을 몰아쉬었다. 제 성기를 기분 좋게 압박하는 속살과 구슬들의 감촉에 페트릭이 허리를 살살 쳐올리기 시작했다.

“흐아, 아… 아아…….”

프레이는 쾌감과 통증이 동시에 덮쳐와 정신도 못 차린 채로 흔들렸다. 사정하지 못하는 프레이의 성기는 점점 붉어지다 못해 터질 것 같이 핏줄이 도드라지고 있었지만, 전혀 풀어줄 생각이 없는지 페트릭은 프레이의 구멍 깊은 곳을 쑤실 기세로 허리를 놀렸다.

“아, 기분 좋아.”

“악… 아, 아파… 풀어줘. 페터…….”

제 성기를 애처롭게 붙든 손을 내려다보던 페트릭은 눈물을 흘려가며 애원하는 프레이의 예쁜 얼굴을 쳐다봤다. 마음이 약해져서는 조금 이른 감이 있었지만 성기에 끼워두었던 링을 빼내자 프레이가 몸을 들어 입술을 먼저 겹쳐왔다. 피식 웃으며 입술을 빨아주던 페트릭이 성기를 위아래로 흔들자 그의 손에 뿌연 점액질을 토해낸 프레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혼자 싸니까 좋아?”

성기를 꾸역꾸역 구멍 안에 다 밀어 넣자 빈틈없이 맞물린 하체가 땀으로 찰박거렸다. 까슬한 음모가 엉덩이에 느껴지는 것도 느끼지 못한 프레이는 사정한 직후라 극도로 예민해진 전신의 감각에 기절할 것 같았다.

“페터…….”

“잘 먹어야지. 뱉어내면 혼나.”

“응… 으응.”

달아오른 뺨을 만지는 손에 얼굴을 비비면서 프레이는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이면서 구멍을 움찔거렸다. 오메가의 페로몬 샘을 복구하는 수술을 하더라도 유산으로 인해 약해진 자궁이 제 역할을 해낼 거란 보장은 없었다. 약물을 쓰든 개조를 하든 무슨 수를 쓰더라도 프레이에게 자신의 아기를 임신시킬 생각인 페트릭은 순종적으로 구는 프레이의 다리를 접어 올렸다.

“앗…….”

맞물린 하체가 들리며 내장을 쑤시는 성기가 빠져나가자 프레이가 미약하게 발버둥치며 흐느꼈다.

“기분 좋지?”

“…페, 페터… 아아… 힉… 하앗…….”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는 쾌감이 구멍에서부터 느껴졌다. 프레이는 반사적으로 아래에 박혀있는 단단한 페트릭의 성기를 조였다. 오돌토돌한 돌기가 나 있는 구슬과 뜨거운 성기가 비벼지며 한계까지 벌어진 아래에서 녹아버린 젤들이 뚝뚝 흐르며 질척거렸다.

“하아… 프레이. 좋아해… 알고 있지?”

“아악!”

사정감을 참지 못하고 빠듯하게 벌어진 프레이의 속살에 노팅을 하기 시작한 페트릭이 고백을 속삭였다. 정말 아래가 찢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에 프레이가 뻐근하다 못해 몸을 떨 때마다 아픔이 생생한 구멍을 움찔대자, 페트릭이 정액을 쏟아내면서 긴장으로 굳어있는 작은 엉덩이를 주물렀다.

“내가, 고백을 했으면 대답을 해야지. 프레이.”

커다란 손을 들어 땀에 젖어 찰기가 도는 엉덩이를 후려치자 프레이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몸 안을 가득 메울 기세로 출렁거리는 정액들의 감각보다도 화가 난 듯 굳어있는 페트릭의 얼굴이 더 무서웠다.

“으흑… 아, 읏… 좋, 좋아해 줘서… 고마워…….”

“예쁘네.”

여린 발바닥을 살살 문지르며 허리를 느리게 치대던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제 것을 잘 물고 있던 구멍을 비집고서 손가락을 넣더니 손가락을 구부린 페트릭이 속삭였다.

“넌 내 거야. 그렇지?”

“하악… 아아…….”

손가락 끝에 걸리는 쇠 구슬을 툭 하고 건드리자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헐떡거렸다.

“하, 하윽… 맞아… 페터 네 거 맞아… 제발… 아아!”

고개를 뒤로 젖히던 프레이가 울면서 허리를 뒤틀기 시작하자 페트릭은 구멍에 박혀있던 제 손가락과 성기를 느리게 빼내며 웃었다.

“말 잘 들었으니까 상을 줄게.”

프레이의 구멍에 아직도 들어있는 구슬들이 꿰어진 금속 체인은 정액과 땀으로 젖어있는 허벅지에 들러붙어 있었다. 덜덜 떨리는 하얀 몸을 안아 올린 페트릭이 프레이가 무릎을 꿇은 채로 앉도록 자세를 잡아주고 있었다.

“무릎 더 벌리고. 그래. 이제 키스해도 돼.”

“흣… 응…….”

프레이의 눈물에 젖어 붉어진 눈가가 야했다. 허락을 받자 천천히 페트릭의 어깨에 부들거리는 손을 얹은 프레이가 눈을 감으며 입술을 겹쳐왔다. 프레이가 기분 좋은 체온을 느끼며 어설프게 혀로 페트릭의 입술을 건드리던 순간이었다.

“읍.”

뒤통수를 누르는 손바닥 탓에 입술을 떼어내지 못한 프레이는 어깨너비만큼 벌린 채로 무릎을 꿇고 있는 엉덩이 사이로 빠져나가려는 구슬의 감촉에 발가락을 오므렸다. 정액에 들러붙어 있는 가는 체인을 손에 감아쥔 페트릭이 아래로 체인을 잡아당기자 내장 깊은 곳에 밀려들어 갔던 구슬들은 덜그럭거리며 질척질척한 프레이의 내부에서 부딪혔다.

“흐으… 으응!”

입술로 막힌 탓에 목 안으로 말이 되지 못하고 흩어지는 야한 신음이 후끈 달아오른 침실에 울려 퍼지는 사이, 꽤나 깊은 곳까지 밀려들어 갔는지 이제야 구멍을 비집고 반짝이는 구슬의 표면이 드러났다. 프레이의 반응으로 구슬의 위치를 짐작하던 페트릭이 거칠게 체인을 아래로 잡아당기자 프레이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어깨를 붙잡은 작은 손이 땀으로 미끄러지면서 프레이의 얼굴이 페트릭에게서 떨어졌다.

“하으, 힉.”

구슬이 여린 내벽을 긁으며 빠져나가는 쾌감에 앙앙거리는 높은 교성을 내지른 프레이가 머리카락이 붙들려 억지로 마주한 페트릭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프레이. 좋아?”

“…아아…….”

체인을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 때마다 자극되는 구슬의 돌기에 프레이가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으려 하자 머리카락을 쥐고 좌우로 작은 머리를 흔들며 대답을 촉구하는 페트릭의 얼굴은 다정하기만 했다.

“요새 대답을 잘, 안 하네.”

“흣… 좋, 좋아… 페터…….”

달달 떠는 몸을 하고서 프레이가 흐느끼자 다정한 입맞춤이 다시 작은 얼굴 위에 내려앉았다. 작은 턱을 붙잡고 입을 맞추던 페트릭이 프레이의 손에 체인을 쥐여주며 웃었다.

“이제 어떻게 하는 건지 잘 알았지? 직접 해봐.”

“…으응.”

프레이가 붙들린 얼굴을 끄덕이며 손에 쥐어진 체인을 움켜잡았다.

“천천히 빼내도 좋고, 세게 뽑아도 좋아.”

“아… 흐… 자, 자꾸 미끄러지는데…….”

“엄살 부리지 말고.”

부들거리며 경련하는 입술을 살짝 빨았다가 혀로 문지르자 프레이는 눈을 감으며 제 손에 들린 체인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속살을 비집으며 나오는 구슬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페트릭이 프레이의 몸을 돌려 뒤로 돌게 만들었다. 엉거주춤하게 무릎으로 지탱한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자 프레이가 다급하게 체인을 놓고 두 손으로 침대를 짚었다. 구멍을 내보인 채로 엎드리게 된 자세에 프레이가 몸을 움찔거리자 페트릭은 혀로 입술을 핥더니 속삭였다.

“이렇게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아, 아…….”

“자. 다시 해야지.”

두 손으로 지탱하던 프레이가 페트릭이 살랑살랑 흔드는 체인을 더듬거리며 움켜잡았다. 한 손으로 지탱하기에는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었지만 페트릭이 원하는 거라면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심한 것들을 해야만 했다.

한 손으로 상체를 지탱하며 고개를 뒤로 돌려 체인을 잡은 자신의 손을 힐끔 쳐다보던 프레이가 가랑이 사이로 체인을 잡아당기자 구멍을 벌리며 구슬 하나가 빠져나왔다.

“흣…….”

벌건 속살을 빠져나온 구슬은 정액이 덩어리진 채로 묻어 나와 더욱더 음란해 보였다. 페트릭은 자신의 앞에 엎드린 채로 구슬을 빼내고 있는 프레이가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다시 발기한 성기를 구멍 안에 쑤셔 넣고 흔들고 싶어져서 프레이가 들고 있는 체인을 낚아챈 그가 거칠게 체인을 잡아당기자 프레이의 상체가 고꾸라졌다.

“아악……!”

구슬에 나 있는 돌기들이 여린 속살을 빠르게 긁으며 빠져나가자 프레이는 구멍에 불이라도 붙은 듯이 화끈거려서 비명을 질렀다. 정액에 젖은 체인을 침대 끝으로 집어 던진 페트릭은 엉덩이만 치켜든 채로 부르르 떨고 있는 프레이를 눈으로 훑었다.

“따먹어달라고 유혹하는 거야?”

“아… 히익…….”

성기를 받아내는 구멍의 속살은 찰지게 달라붙어 오고 있었다. 프레이가 단번에 박혀 든 성기가 주는 압박감에 숨을 끅끅거리며 침대 시트를 붙들자 페트릭이 허리를 쳐올렸다.

“프레이. 도망갈 생각 하고 있는 건 아니지?”

“흣… 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페터…….”

집요하게 프레이가 느끼는 곳을 쳐올리며 음산하게 묻는 목소리에 프레이는 정액을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프레이는 도망갈 여력도 없었고, 이미 길들여진 몸은 이제 페트릭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프레이가 아니라고 고장 난 기계처럼 되풀이하는 혼잣말을 듣던 페트릭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부드럽게 안쪽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래. 프레이. 평생 내 옆에 있는 거야.”

“으응… 그럴게. 아아……!”

프레이는 자신의 성기를 잡고 흔드는 페트릭의 손에 사정하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프레이는 페트릭을 사랑한다거나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페트릭을 향한 프레이의 감정은 복잡하고 말로 설명하지 못할 감정들이었다. 프레이는 그저 눈앞에 닥친 상황들을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것이 고작이어서 미래라거나 자신의 감정을 돌볼 여유가 없어졌다.

지금 프레이에게 있어서 선명한 것은 쾌락과 아픔을 선사하는 페트릭뿐이었다. 페트릭에게 모든 걸 의존하면서 지내는 생활은 생각보다 안락하고 편안했다.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의 말에 프레이는 정말 생각하는 걸 포기해버렸다. 오르가즘에 할딱거리던 몸이 무거워지면서 프레이는 자신의 안에 몇 번째인지 모를 사정을 하는 남자를 뒤돌아봤다. 시선이 얽히고 다정한 눈빛을 바라보면서 프레이가 눈을 감았다. 다정하기만 해 보이는 얼굴이 잠깐이었지만 왜 섬뜩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프레이는 구멍을 빠져나가는 성기가 아쉬워져서 저도 모르게 구멍을 바짝 조이고 있었다.

“수술 끝나고 여기에 아기를 가지면 나랑 결혼하는 거야.”

“…응.”

프레이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속삭이는 페트릭의 말에 아무렇게나 대답하면서 눈을 감았다.

“결혼하고 난 다음 루시랑 같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루시…….”

자신이 낳았다던 아이의 이름을 한 번 중얼거리던 프레이는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이라니.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프레이는 조금 무서워졌다.

*

수술이 끝나 회복실로 내려온 프레이에게서 희미하지만 분명히 프레이의 페로몬 향이었던 코튼 향이 맡아졌을 때, 페트릭은 프레이를 다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나머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얀 병원복을 입고 회복실에 누워있는 프레이는 몽롱한 눈을 한 채로 가만히 안겨있었다. 쿵쿵 뛰고 있는 페트릭의 심장박동을 들으며 프레이가 머리를 기대자 페트릭이 속삭였다.

“좋아해. 프레이.”

“응…….”

페트릭 마일드리안이 몇 번이나 프레이 비셔스에게 고백할 때마다 프레이는 자신도 좋아한다고 고백을 되돌려주지 않았다. 페트릭은 프레이의 감정을 세세히 살필 생각이 없었고, 프레이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생각이 없었다. 일방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쪽은 페트릭이었고, 그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쪽은 프레이였다. 일방적인 관계는 프레이에게 생각을 조금씩 앗아가고 있었다.

“퇴원하면 어디 놀러 갈래?”

프레이는 입속에 물린 손가락을 저항 없이 핥으며 페트릭이 뭐라고 속삭였는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하고 대답했다.

“좀 쉬어.”

입안을 검사하듯 만지던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프레이는 침을 삼켰다. 칭찬을 하듯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조용한 병실에는 규칙적인 숨소리가 전부였다. 프레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페트릭은 시트 바깥으로 삐져나온 작은 발에 감긴 붕대를 쳐다보고 있었다.

프레이가 페로몬 샘을 복구하는 수술을 받기 위해 마취했을 때였다. 의사는 페로몬 샘 복구 수술을 하기 전, 프레이의 발목에 GPS 칩을 넣고 있었다. 지금은 프레이가 도망갈 생각이 없는 듯 고분고분하게 굴었지만 언제 다시 멀리 도망갈지 모르는 일이다. 기르는 개에게 다시 배신당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페트릭은 제 입맛대로 프레이를 다시 길들일 생각에 절로 즐거워졌다. 그는 프레이의 이마에 입술을 내리면서 속삭였다.

“좋은 꿈 꿔. 프레이.”

웃는 얼굴은 집착과 광기로 얼룩진 채로 애틋함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었다.

*

프레이 비셔스가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는 보고를 전달받은 페트릭의 부모는 자신들의 아들이 정말 프레이 비셔스라는 오메가에게 미쳐버렸다고 인정해야 했다. 프레이가 임신이라도 하고 있다면 모를까, 절대 결혼이든 뭐든 허락하지 못한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던 페트릭의 부모는 자신의 아들의 눈을 보며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던 마음을 접어야 했다.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은 더 이상 자신을 방해했다간 웃는 낯으로 대낮에 칼부림이라도 벌일 것 같았다. 아니, 칼부림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광기였으며 지독한 집착욕이었다. 결국 백기를 든 건 페트릭의 부모였다. 비록 남창의 이름으로 만든 여권을 주며 조롱하고, 타국에 정착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돈을 주며 외국으로 보냈던 두 사람이지만 적어도 직접적으로 신변의 위협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타국에서 고생은 할 것이 뻔한 새 신분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은 그 정도 심술은 부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들을 홀린 가난한 오메가에게 다시는 페트릭을 넘보지 못하게 우회적으로 보내는 경고이기도 했다.

페로몬 샘의 복구 수술과 동시에 GPS 칩을 그 오메가의 몸에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두 사람은 제 아들에게 붙잡힌 볼품없던 프레이의 안위가 살짝 걱정될 정도였다.

“나도 모르겠어. 여보.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지만…….”

“별일이야 있겠어. 너무 걱정하지 마.”

탄식하는 페트릭의 부모는 이불을 걷어찬 채로 자고 있는 자신들의 손자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비틀린 두 사람의 관계의 결실은 아무런 걱정도 없이 고롱고롱 숨을 내쉬며 단잠에 빠져있었다.

*

퇴원 후 프레이 비셔스의 모든 것은 페트릭의 통제하에 이루어졌다. 사소하게는 식사를 하는 것부터 화장실을 가는 것까지 페트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프레이는 처음에는 당황한 기색으로 머뭇거렸지만 이내 적응하기 시작했다. 아니, 적응해야 했다.

체념은 적응을, 적응은 의존을 가져왔다. 폭력적인 행동들에 무방비로 노출된 몸은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았다. 부족한 잠과 통제받는 일상은 교수대의 밧줄처럼 프레이의 목을 서서히 조이고 있었다. 두려움에 숨이 막힐 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구세주처럼, 페트릭은 프레이를 다정하게 품에 안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단조로운 멜로디를 생각 없이 듣고 있을 때면 프레이는 어릴 때 부모님이 자신에게 불러주던 자장가를 떠올렸다. 프레이는 그럴 때마다 목을 조이던 밧줄이 느슨해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프레이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거부하는 기색을 보이거나 머뭇거리면, 페트릭은 기절할 때까지 괴롭히고 몰아붙였다. 다정하게 굴었다가는 프레이가 다시 어디론가 도망갈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할 여유 같은 건 없도록 페트릭은 프레이를 과격하게 길들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페터… 잘, 잘못… 했…….”

“쉿. 입 닥치고 움직여.”

마치 구멍 안쪽이 불에 덴 듯이 화끈해서 움직임이 삐걱거렸다. 프레이는 허락 없이 섹스를 하다 지쳐 잠들었다는 이유로 삼십 분째 바닥에 붙여놓은 실리콘 딜도로 자위를 하고 있었다. 그가 잘 볼 수 있게 등을 돌린 채로 쪼그려 앉아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동안 흘러나온 애액이 바닥에 흥건했다.

“우으으… 읏, 후응.”

“프레이. 너처럼 이렇게 음탕한 오메가를 데리고 살 사람은 나밖에 없어.”

이미 뒤쪽을 쑤셔주지 않으면 사정도 못 하게 되어버린 몸은 금방이라도 정액을 쏟아내고 싶어 했으나 요도구에 꽂혀 있는 은막대가 뽑히지 않는 한, 고통만 가중될 뿐이었다. 프레이는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페트릭의 실내화를 보며 열심히 허리를 흔들었다. 그 순간 절그럭거리는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프레이.”

“응….”

두려움으로 혼탁해진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페트릭은 지퍼를 내려 제 성기를 끄집어냈다.

“우읍.”

“잘 빨면 쉬게 해줄게.”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야한 냄새가 나는 성기 끝을 혀로 핥았다. 허리를 흔들며 성기를 빨자니 숨이 막혀 얼굴이 빨갛게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얼굴은 지루해 보였다. 피곤해 보이는 작은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목구멍을 파고드는 자비 없는 살덩이가 부피를 더하자 바닥에 쪼그려 앉은 몸이 주저앉은 채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우으으!”

노팅 중인 그의 성기가 입안에 가득 들어차 프레이는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제 앞에 서 있는 알파를 밀어냈다. 미약한 발버둥에 그제야 흥미가 이는지 우악스러운 손길이 뒤통수를 붙잡고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잘 먹어야지. 오늘 먹은 게 없어서 배고플까 봐 직접 입에 넣어주는데.”

“흐으… 큽.”

붉어진 눈가와 실핏줄이 터진 보라색 눈동자가 퍽 어울렸다. 고개를 좌우로 젓던 프레이는 모든 걸 체념하며 뒤늦게 눈을 감았다. 목구멍 안에서부터 역류하는 비릿한 정액을 억지로 삼켜낸 프레이는 한참이나 성기를 입에 물고 쪽쪽 빨아야 했다. 점점 흐려지는 의식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프레이에게 다정한 속삭임이 들렸다.

“좀 자도 돼.”

“우으.”

제 좆을 입에 물고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몸이 뒤로 쓰러지는 걸 붙잡은 페트릭은 프레이를 들어 올려 구멍에 박혀있던 딜도를 뽑아냈다. 바닥에 젤이 후드득 쏟아졌다. 축 늘어진 몸을 침대에 눕힌 그는 흉터가 남아있는 발목을 움켜쥐었다.

퇴원 후 지금까지 집 밖으로는 내보낸 적도 없고, 프레이도 집 밖에 나갈 생각은 이제 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프레이가 도망갈 것 같다는 망상에 사로잡혀있었다.

발목이라도 망가트릴까.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멀리 도망가기 힘들 것이 분명하니까. 잔인한 상상을 하면서도 프레이가 다리를 저는 건 또 보고 싶지 않았다. 프레이에 대한 일이라면 누구보다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게 시시때때로 바뀌는 마음에 페트릭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정하게 대해주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해본 적이 없는 그는 비틀리고 폭력적인 집착을 사랑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마치 장난감에 집착하는 어린이처럼. 곤충의 날개와 팔다리를 천진난만한 얼굴로 뜯어내며 즐거워하는 아이의 천진함은 뒤틀린 소유욕으로 변질되어 프레이의 팔다리를 옭아매었다. 도망가려 하면 살갗을 파고드는 페트릭의 집착에서 프레이가 벗어날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

페트릭의 기분이 좋을 때면 그는 프레이에게 이것저것을 사다 바쳤다. 언뜻 보기엔 누구보다 제 오메가에게 헌신적인 알파의 흉내를 내며 페트릭은 프레이가 세뇌될 정도로 들었던 말들을 속삭였다.

내 옆에 있는 게 널 위한 일이야. 프레이.

그의 말을 들으며 프레이는 고개를 얌전히 끄덕였다.

응. 페터, 네 말이 맞아.

고분고분하게 굴면 찰나의 순간이지만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프레이는 벌을 빙자한 강간과 학대를 당할 때마다 어떻게 속삭여야 페트릭 마일드리안의 비위를 맞출 수 있는지 하나둘씩 깨달았다. 그래서 프레이는 페트릭 몰래 거울을 보며 예쁘게 웃는 법을 연습했다. 어느 순간부터 프레이는 자신의 기분보다 페트릭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있었다. 변덕이 심한 페트릭의 장단에 맞추려면 프레이는 자신을 챙길 여유를 포기해야 했다. 프레이가 모든 걸 체념한 이후로 더욱더 폭력적으로 변한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항상 눈치를 보는 날들은 매일이 지옥이었다. 하지만 페트릭의 기분이 좋은 날이라거나, 프레이가 필사적으로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게 굴면 페트릭은 상냥한 알파의 가면을 뒤집어썼다. 길지 않은 순간이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걸 잊고 프레이는 쉴 수 있었다. 힘들어서 죽고 싶은 순간마다 감질날 정도로 조금씩 내어주는 다정함이 프레이의 망가진 정신을 지탱해주는 실낱같은 지지대였다.

프레이가 거실을 서성거릴 때마다 부러질 것 같은 발목에서 짤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요란했다. 발목에 매어진 발찌는 페트릭이 프레이를 위해 주문한 것이다. 유명 디자이너가 직접 만든 고가의 발찌에는 자수정이 반짝였다. 프레이의 발목에 그가 직접 발찌를 채워주던 날 이후로 프레이는 종종 다리를 절었다. 가볍기만 한 발찌를 하고 있는 발목은 쇳덩이라도 매달린 것 같아 무겁기만 했다. 프레이가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거실을 배회하자 페트릭이 몸을 일으켰다.

“프레이. 왜 벌써 일어났어.”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사이즈가 커서 허벅지를 다 가리는 큼지막한 셔츠 한 장을 걸친 하얀 몸이 덜덜 떨렸다. 손등을 덮고 있는 긴 소매 사이로 제 손을 꼼지락거리며 헐떡이던 프레이가 페트릭을 쳐다봤다. 오늘 새벽까지 시달린 유두는 먹음직스럽게 부어있었다. 페로몬이 질질 새어나오는 가는 목덜미에 페트릭이 고개를 파묻었다. 일부러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프레이가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몸이 떨릴 때마다 프레이의 성기 끝에 박혀있는 요도 플러그의 고리가 반짝거렸다. 울먹거리는 신음이 터져 나오고 나서야 페트릭이 입을 열었다.

“저기에 누워서 다리 벌리고 앉아.”

“으응.”

페트릭이 가리킨 소파 위로 쪼그려 앉는 몸이 후들거렸다. 우성 알파의 고압적이고 농밀한 페로몬에 중독된 오메가는 몸도 마음도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가랑이를 양옆으로 쩍 벌리고 있는 프레이는 희미한 수치심을 느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프레이 비셔스는 페트릭 마일드리안의 소유물이 된 지 오래였다. 그가 시키는 건 뭐든지 해야 한다. 프레이는 그것이 그의 물건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프레이가 얌전히 페트릭의 손길을 기다렸지만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는 프레이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지금 그의 기분을 맞추지 못하면 오늘도 거의 자지 못할 거란 불길한 직감이 작은 몸을 지배했다. 초조한 마음을 숨기고 다리를 더 벌린 프레이가 두 손으로 소파를 짚었다. 거의 소파에 드러누운 상태가 되자 그제야 페트릭이 소파로 다가갔다. 프레이의 앞에 선 그가 자신의 앞에 다리를 벌리고 숨을 헐떡거리는 오메가의 몸을 느리게 훑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마음에 쏙 들었다. 입꼬리를 올린 채로 페트릭은 프레이의 요도구를 틀어막고 있는 고리에 손가락을 걸었다. 벌겋게 변해있는 선단에서부터 찌릿찌릿한 통증과 미세한 쾌감이 피어났다.

“후읏, 페터… 아!”

끙끙거리면서도 자세를 유지하려 애쓰는 오메가의 발버둥은 처절했으나, 모든 반응을 지켜보는 알파의 반응엔 즐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의 오메가가 헐떡거리는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에 들어서 더없이 관대해진 그가 프레이의 뺨에 입을 맞췄다.

“요새 왜 이렇게 귀엽게 굴어. 응?”

“…히윽, 읏…페터…….”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덜덜 떠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반쯤 빼낸 오돌토돌한 금속 막대를 다시 쑤셔 넣자 깡마른 허벅지가 마구잡이로 경련했다.

“힉, 후으… 싫, 하읏.”

싫다는 소리를 할 뻔한 프레이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겁에 질린 채로 페트릭의 얼굴을 살폈지만 그는 크게 기분이 상한 것 같지 않았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프레이는 비좁은 구멍을 들쑤시는 금속 막대의 촉감에 소름이 끼쳤다. 발끝이 오므라들고, 소파를 짚고 있던 손이 결국 통증을 참지 못하고 가죽 시트를 손톱으로 벅벅 긁었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지만 허락도 없이 지금 여기서 기절이라도 했다간 일주일 내내 괴롭다는 걸 프레이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성기가 망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페트릭의 허락이 떨어졌다.

“화장실 다녀와. 프레이.”

“…흐응. 응.”

관대한 주인은 오메가의 성기에서 길고 얇은 막대를 뽑았다.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순종적인 오메가는 가누기도 힘들어 보이는 몸을 일으켰다. 그사이 그의 마음이 변했을까 봐 프레이는 페트릭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다행스럽게도 페트릭의 허락은 유효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페트릭의 모습에 부서질 것 같은 웃음을 지어낸 프레이가 화장실로 비틀거리며 걸었다.

흔들흔들 위태롭게 흔들리는 셔츠 자락 사이로 빨갛게 멍이 든 엉덩이가 비쳤다. 며칠 전, 페트릭의 말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아 멍이 든 엉덩이 사이로 애널 스토퍼의 자수정 장식이 반짝거렸다.

소변을 보고 성기를 씻어낸 프레이가 손을 씻고 나오자 페트릭은 자신의 옆자리를 툭 하고 치며 웃었다.

“이리 와.”

다리를 조금 절던 프레이가 느릿느릿 움직였다. 고통에 발버둥을 치다 페트릭의 손에 부러졌던 발목이 욱신거렸다. 프레이는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나는 방울 소리에 머리가 점점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페트릭은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프레이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흉흉한 심기를 대변하듯 뾰족뾰족 날이 선 페로몬이 터져 나왔다. 열성 오메가에게 예고 없이 농도 짙은 우성 알파의 페로몬이 스며들었다. 몸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아팠지만, 본능에 충실한 오메가는 속절없이 애액을 쏟아냈다. 구멍을 틀어막은 금속 마개를 괜히 조이며 프레이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래는 좀 어때.”

“…볼래?”

프레이가 소파에 엎드렸다. 실낱같이 남아있던 수치심은 달아오르기 시작한 미지근한 체온에 녹아버린 것 같았다. 자신의 주인님이 잘 볼 수 있게 엉덩이를 가린 셔츠 자락을 걷어 올리는 얼굴은 고요했다. 귀엽네. 요새. 페트릭은 몇 번의 교육으로 어깨만큼 다리를 벌리고 상체를 바닥에 붙인 자세가 퍽 만족스러워서 작게 웃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연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마치 말 잘 듣는 애완동물을 보는 시선이었다. 자신의 손길로 울긋불긋 멍이 든 엉덩이를 움켜쥐자 시트에 고개를 처박은 오메가의 목 안에서 희미한 신음이 흩어졌다. 만져달라는 듯 조명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자수정 장식을 만지던 페트릭이 속삭였다.

“약 넣자.”

“…흐, 응…….”

수술로 억지로 되살린 페로몬 샘은 아직 제 기능을 완벽하게 하지 못했다. 한 주먹이나 되는 약을 먹는 것도 모자라서 프레이는 구멍에 약을 집어넣고 한참이나 품어야 했다. 페트릭은 프레이의 구멍에 배 속이 출렁거릴 정도의 약을 집어넣은 뒤, 그대로 방치했다. 약이 새지 않게 엉덩이를 치켜들고 거실, 욕실, 침실, 주방 가리지 않고 방치될 때마다 프레이는 자신의 형질을 원망했다.

왜 오메가로 발현한 거야…. 왜 페터를 좋아한 거지. 난 왜 태어난 걸까.

몇 시간이고 차가운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자기비하를 시작하면서 프레이의 자존감은 가루가 되다 못해 소멸 직전에 이르렀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런 생각 없이 약을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습관이 된 자기 비하를 하기에는 오늘 프레이는 너무 많이 지쳐있었다.

페트릭이 플러그의 손잡이를 잡고 살살 빼내기 시작하자 마른 몸이 움찔댔다. 몸과 정신은 지쳤어도 본능만은 생생했다. 알파의 페로몬에 중독된 오메가는 달기만 한 페로몬을 갈무리하지도 못한 채 애액을 질질 흘렸다. 덕분에 수월하게 빠져나오고 있는 금속은 잔뜩 젖어있었다. 가장 두꺼운 부분이 삐져나올 때였다. 축축한 구멍을 벌름대던 프레이가 신음을 토해내며 소파 가죽을 긁었다. 단번에 뽑아내자 플러그에 들러붙은 채로 딸려나온 붉은 속살이 뻐끔거렸다. 프레이가 숨을 고르는 사이 페트릭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요새 네 상태가 안 좋다고 그래서 다른 약을 받아왔어.”

“응.”

프레이는 페트릭의 말을 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습관처럼 작게 대답했다.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단어들의 조합을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간단한 명령들만이 프레이의 머릿속에 남았다. 엎드려. 조여. 힘 빼. 움직여. 빨아. 삼켜. 온통 음란하고 원초적인 단어들뿐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것이 애초에 존재하긴 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고분고분 대답해오는 게 예뻐서 페트릭이 엉덩이를 살짝 움켜잡았다.

“아마 한 시간은 엎드려 있어야 할걸.”

“흐, 읏. 한 시간이나?”

조금 서늘한 거실 공기에 몸을 떨던 프레이가 되물었다. 한 시간이라니. 약을 머금는 시간은 길어봐야 30분이었다. 그 30분도 3년 같이 느끼는 프레이가 입술을 벙긋거리다 잘근잘근 깨물었다. 할 말이 있으나 하지 못하고 있는 오메가의 행동을 지켜보던 알파가 축축하게 젖어있는 회음을 문질렀다.

“왜. 싫어?”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조금 추워서…….”

변명하듯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겁에 질려있었다. 싫다는 말은 금기어나 다름없다. 프레이가 페트릭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좋다는 말뿐이었다. 싫다거나 하지 말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끔찍한 벌이 기다리고 있다. 프레이는 잘못을 빌면서 벌을 받고 난 뒤에는 항상 똑같은 생각을 했다.

페트릭은 나는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

물건 취급은 끔찍하기만 했다. 그의 의사를 거역하면 벌을 받고, 정신을 잃기 일쑤였다. 허락도 없이 정신을 잃었다는 이유로 또 다른 벌이 프레이를 기다렸다. 싫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페트릭이 자신에게 벌을 줄까 봐 프레이는 몸을 덜덜 떨었다.

“거실이 싫으면 방에서 약 먹을까?”

“그, 그래도 돼?”

사방이 훤히 탁 트인 거실보다 조금은 밀폐된 방 안이 훨씬 나았다. 페트릭의 물음에 어지간히도 기뻤는지 프레이는 고개를 위아래로 붕붕 흔들었다. 늘 주눅이 들어있는 모습과는 다른 반응에 페트릭이 프레이의 엉덩이를 툭 치며 웃었다.

“일어나. 방으로 가자.”

“응!”

프레이는 자신이 꾸물거리는 사이 혹시라도 페트릭의 마음이 바뀔까 봐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앞장서 걷고 있는 페트릭의 뒤를 따라 다리를 질질 끌었다. 엎드려 있느라 다리가 저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방 안에 들어서자 프레이가 숨을 멈췄다. 방 안에는 온통 페트릭의 페로몬으로 가득해서 숨이 다 막혔다.

“올라가.”

페트릭이 침대를 턱짓했다. 페트릭의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다고 프레이는 생각했다. 늘 바닥에서 개처럼 엎드리게 하던 것과는 달리 침대 위에 올라가라는 말이 기꺼웠다. 오늘은 무릎이 덜 아플 것 같았다. 침대 위를 엉금엉금 기던 프레이는 시트에 얼굴을 파묻었다. 엉덩이를 치켜들고 다리를 벌리는 사이 페트릭은 앰플 뚜껑을 따고 있었다. 용량이 제법 되는 앰플의 뚜껑을 제거하자 특유의 약 냄새가 새어나왔다. 병원을 연상케 만드는 냄새에 프레이가 허리를 움찔거렸다.

“긴장하지 말고. 그냥 아랫입으로 약 먹는 거잖아.”

“…응.”

잔뜩 굳은 프레이의 엉덩이를 살짝 문지르며 긴장을 풀어주던 페트릭이 웃었다. 몇 번이나 약을 넣어줬지만 프레이는 매번 긴장으로 온몸을 뻣뻣하게 굳힌다. 언제쯤 익숙해질지 궁금했지만 익숙해지지 않아도 즐거웠다. 익숙해지면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을 것 같았지만 프레이가 죽기 전까지 이런 행위에 익숙해질 것 같진 않았다. 입구를 기울여 구멍에 약물을 쑤셔 넣자 몸을 덜덜 떨며 발가락이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우스웠다.

온몸으로 거부감을 표출하는 오메가의 안쪽으로 그는 약물을 흘려 넣었다. 차가운 액체가 밀려 들어오자 속 안이 순식간에 싸해졌다.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이 배 속을 휘젓고 있었다. 약이 전부 들어갔는지 확인한 페트릭이 구멍에 박혀있던 앰플을 단번에 뽑았다. 벌름거리는 구멍을 손가락으로 문질러주자 헐떡거리는 숨이 흘렀다.

“페, 페터…….”

“응?”

프레이의 부름에 구멍을 덧그리던 손가락이 달싹이는 입술로 향했다. 말캉한 입술을 누르고 손가락을 집어넣자, 프레이는 젖먹이처럼 손가락을 기껍게 빨아댔다. 화한 약품 맛이 입안에 가득했지만 프레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은 입안에 들어온 건 무엇이든 빨아야 한다. 그것이 성기였든 발가락이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엉덩이를 치켜든 채로 손가락을 정성 들여 빨고 있는 오메가의 모습에 순식간에 아래로 피가 몰렸다. 페트릭은 손가락 대신 입에 다른 걸 물려줄 생각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은 그가 중얼거렸다.

“이쪽으로 와.”

“으응.”

몸을 돌린 프레이가 페트릭의 눈치를 살피며 더듬거리는 손으로 성기를 붙잡았다.

“천천히.”

“우읍.”

혀를 내밀어 성기 끝을 핥으며 오메가는 제 주인의 눈치부터 살폈다.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프레이는 입을 벌려 목구멍까지 뜨거운 살덩이를 머금었다. 구역질이 났지만 오랜 연습으로 치아가 표면에 닿지 않게 빨 수 있었다. 끅끅거리면서 펠라티오를 하는 프레이의 뒤통수를 가만히 쓰다듬던 페트릭이 속삭였다.

“맛있어?”

“후으… 으응.”

프레이는 벌게진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숨이 막혀 혀가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숨을 쉬려 입에서 잠시 좆을 뱉어내려던 순간이었다.

“으읍!”

뒤통수가 붙들린 프레이의 얼굴이 다시 페트릭의 가랑이 사이에 처박혔다. 목구멍을 억지로 비집은 성기가 꿈틀거리는 감각에 프레이는 그가 자신의 입안에 노팅을 할 생각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숨이 모자라 벌게진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손길은 다정했으나, 입안을 가득 메운 성기는 흉흉했다.

“끄흐, 읍.”

“다 삼켜야 하는 거 알지. 윗입도, 아랫입도.”

경고하는 음성은 난폭하기만 했다. 뒤늦게 엉덩이를 다시 치켜든 프레이가 목구멍을 가득 비집고 있는 좆에서 나오는 정액을 허겁지겁 삼켜냈다. 숨도 쉬지 않고 삼켰지만 미처 삼키지 못한 액체들이 목구멍에서 역류하고 있어 구역질이 났다. 온통 빨간색인 작은 얼굴을 붙들고 허리를 흔드는 얼굴은 즐거움만이 가득했다.

긴 노팅이 끝나고 성기를 빼내자 프레이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엉덩이가 씰룩거릴 때마다 구멍에서 약이 질질 샜다.

“내가 흘리지 말랬지.”

“…미, 미안해.”

목소리는 흉흉했지만 침대에 널브러진 프레이의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은 퍽 다정했다. 프레이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페트릭의 눈치를 살폈다.

“잘, 잘못했어…….”

프레이는 눈을 감으며 신음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페트릭에게 그만하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평생동안 그에게 그만하라는 거부의 말을 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프레이는 페트릭의 분노를 샀다간 끝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 문득 여기서 더 떨어질 나락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아찔했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쉴 수 있지.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곱씹는 얼굴은 휴식이 절실해 보였다.

*

여느 때처럼 섹스가 끝난 뒤, 프레이를 품에 안고 있는 페트릭은 인상을 찌푸렸다. 프레이의 몸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감기에 걸려 간헐적으로 콜록거리긴 했지만 이렇게 열이 오르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않아서 당황하기 시작한 그가 물었다.

“프레이. 괜찮아?”

귓가에 속삭였지만 프레이에게는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았다. 이명과 종종 환청에 시달리는 프레이의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누군가가 불러주는 자장가 소리뿐이었다. 페트릭이 자신에게 질문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대답을 하던 프레이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간간이 숨만 헐떡였다. 숨을 쉬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비서에게 의사를 부르라고 하기 위해 휴대폰을 집어든 그의 얼굴은 화가 난 듯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딱딱한 시선의 끝에는 붉게 달아오른 뺨이 있었다. 페트릭은 문득 프레이의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냘픈 턱선을 지나 쇄골이 도드라진 마른 흉곽을 응시하던 그가 파르르 떨리는 작은 손을 붙잡았다. 땀으로 축축한 작은 손 끝은 군데군데 손톱이 깨진 상태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깨져있었지?

기억을 더듬었으나 알 수 없었다. 페트릭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프레이를 안았다. 페트릭이 원할 때, 그곳이 어디든 상관하지 않고 다리를 벌리는 것이 프레이의 존재 의의였다. 말을 이해하는 자위 도구와 말 잘 듣는 강아지의 경계선에 프레이가 서 있었다.

처음부터 프레이의 의사 같은 건 고려되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에게 종속된 오메가를 물건 취급하는 알파는 이따금 프레이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할 때마다 변덕을 부리며 어설프게 후회를 흉내냈을 뿐이었다.

욕실이나 테라스, 식탁 위에서 그의 아래에 깔린 프레이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고, 필사적으로 손에 무언가를 쥐려 손가락을 구부리는 습관이 있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타일 바닥을 긁을 때마다 무른 손톱이 깨졌지만 페트릭은 그런 걸 세세하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쾌감과 만족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프레이의 체중이 빠졌다거나, 손톱이 깨진 것과 같은 것들을 알아채지 못했다.

프레이는 다시 페로몬 샘의 복구 수술을 받은 이후 날이 갈수록 빠르게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되살린 페로몬 샘은 약물로 그럭저럭 기능했지만 문제는 여러 후유증이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한 번 말라버린 오메가의 페로몬 샘은 그저 생명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암세포와도 다름없다. 삶의 의지를 찾아볼 수 없는 몸은 알파의 페로몬을 흡수하면 할수록 죽음에 가까워질 뿐이었다.

“프레이.”

잠을 자고 있는지, 기절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을 어루만지는 페트릭의 손은 긴장으로 배어 나온 땀에 잔뜩 젖어있었다. 프레이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도 뜨지 못한 채로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나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았다. 온몸은 두드려 맞은 듯 욱신거렸고, 열이 올라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하지만 프레이는 페트릭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을 했다.

내가 페트릭을 귀찮게 하면 옆집 남자 같은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또 버려질 거야. 허락도 없이 멋대로 아픈 거 페트릭에게 들키면 안 돼.

그에게 세뇌되다시피 들었던 말들이 프레이의 정신을 야금야금 좀먹었다.

오메가로 혼자 살면 이 새끼 저 새끼에게 또 강간당할걸. 발정 난 개처럼 아무에게나 가랑이를 벌리며 돌려지고 싶지 않지? 내 옆에 있는 게 널 위한 일이야. 프레이. 나 아니면 널 데리고 살 새끼가 있는 줄 알아?

프레이는 두 번 다시는 다른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싶지 않았다. 페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에서 지낼 때, 옆집 남자에게 강간당한 기억은 프레이에게 있어서 큰 충격이었다. 페트릭은 폭력적이 성격이었지만, 변덕을 부리며 다정하게 굴기도 했다.

그래봤자 프레이가 겁에 질려 울먹거리면 가끔 어설프게 달래주는 정도였다. 페트릭은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럽고 난폭한 남자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종종 보여주는 어설픈 다정함이 프레이의 유일한 구원이었다. 내가 잘하면 페트릭도 잘해줄 거야. 프레이는 그렇게 믿었다.

“울지 마. 의사가 곧 올 거야.”

몇 시간 전까지 얼굴을 후려치던 손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하게 변해있었다.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뻗자 반사적으로 프레이는 몸을 웅크렸다. 뺨을 때릴 것이란 자신의 예상과 달리 눈물을 쓸어주는 손길이 낯설었다. 가끔 눈물을 닦아주거나 뺨을 핥긴 했지만, 그게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폭력에 더 익숙해진 프레이는 얼굴을 쓰다듬는 손이 언제 사납게 돌변할지 몰라 덜컥 겁이 났다.

페터가 화가 났으면 어떡하지? 난 왜 허락도 없이 아파서 페터를 귀찮게 만들었지. 아파…. 숨 막혀…. 살기 싫어. 엄마… 아빠… 죽고 싶어. 죽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페터가 허락해주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힘든데… 내가 힘들어도 된다고 허락받았었나? 페터가 안 된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몽롱한 정신이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생각들은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모든 생각의 내용은 페트릭의 허락을 구하는 내용들이었다. 프레이가 페트릭의 허락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수면조차 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상이었다. 몸이 아프고 숨이 막히면 프레이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은 페트릭에게 아파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는지 되짚어 보는 것이다.

몽롱한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은 페트릭에게 허락을 받은 기억이 없어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혼날 거야. 또 혼나는 거야.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에 질식할 것 같았다. 프레이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나 있잖아.”

헐떡거리는 뜨거운 숨결이 달았다. 자신의 오메가가 자신에게 모든 걸 통제받고 허락을 구하는 모습에서 음습한 만족감을 느끼는 알파가 제 오메가의 입술을 빤히 쳐다봤다.

“나…, …어도 돼?”

“뭐?”

작은 목소리는 거친 숨소리에 파묻혀 있었다. 무슨 허락을 구하는 것인지 가늠해보던 페트릭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 죽어도 된, 된다고 허락해주면… 안될까……?”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어.”

페트릭은 열이 올라 벌겋게 익은 프레이의 뺨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눈을 뜨지도 못한 오메가는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몸을 덜덜 떨었다.

“미, 미안해… 허, 허락 안 해주면 안 할게… 안, 안 그럴 거야…….”

결국 죽음을 허락받지 못한 프레이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것이 뻔한 페트릭의 얼굴을 상상하며 몸을 웅크렸다. 괜히 물어봤어. 혼날 거야. 어떡해.

“프레이. 눈 떠. 빨리.”

페트릭의 목소리는 흉흉했다. 프레이는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리는 것이 너무 힘겨웠다. 하지만 더 화를 내기 전에 눈을 떠야 했다. 그가 눈을 뜨라고 했기 때문이다. 눈물에 젖어 뭉쳐있는 속눈썹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어렵게 눈을 뜨고 쳐다본 주인의 얼굴은 화가 난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조금 속상해 보이기도 했다.

“내 허락 없이는 죽을 생각도 하지 마. 알았지?”

“응… 안 할게… 잘못했어…….”

프레이는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울음을 참느라 끅끅거리던 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내 허락도 없이 죽었다가는 용서 못 해.”

음산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프레이에게 닿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프레이의 몸이 축 늘어졌다. 기절하는 전까지 기절해도 좋다는 그의 허락을 받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프레이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

프레이가 죽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던 그날 이후로 페트릭은 답지 않게 프레이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예민하게 굴었다. 페트릭이 준 사과 한 조각을 한참이나 베어 먹던 프레이가 고개를 숙이고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어디 아파?”

“아, 아니야.”

끔찍한 복통이 프레이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페트릭의 기분을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 프레이는 고통을 버텨내며 태연한 척을 했다.

또 허락도 없이 아픈 걸 들키면 혼날 거야…….

프레이의 얼굴은 고통으로 탈색된 듯 하얗게 질려 있었다. 눈에 훤히 보이는 어설픈 거짓말을 하는 프레이는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그저 몇 입 베어먹었을 뿐인 사과조각이 뭉개질 정도로 움켜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안 돼. 제발. 걸리면 혼난단 말이야. 아파…. 너무 아파.

어떻게든 통증을 숨기려던 프레이가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식탁 위로 고개를 떨궜다.

“아흐…….”

잘 벼려진 칼로 배가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다. 숨을 쉴 때마다 고통은 선명해질 뿐이었다. 프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신음을 주워 삼키듯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페, 페터… 미안한데… 나, 나 조금만 아파도 돼?”

아파도 되냐는 물음에 페트릭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헐떡거리던 프레이의 고개가 식탁에 처박혔다. 끅끅거리는 숨소리에 페트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덩어리 같은 몸을 안아 든 그는 당황했다. 성인 남성이라기엔 지나치게 가벼운 체중이었다. 침실로 향하는 동안 힘없이 흔들거리는 프레이의 발목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불현듯 작은 방울 소리가 마치 장례식이 열리는 엄숙한 교회의 종소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찌 아래에는 위치추적을 위해 칩을 심느라 생겨버린 작은 흉터가 선명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페트릭은 프레이가 이대로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하자 눈앞이 캄캄했다. 통증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자 페트릭은 침대에 프레이를 눕힌 뒤 몸을 움직였다. 의사를 불러야 했다.

“어, 어디 가?”

프레이는 자신이 버려질까 두려웠다. 그가 없으면 자신은 강간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세뇌당한 오메가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떠나려는 알파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나, 나 이제 안 아파…. 가지마. 미안해. 잘못했어.”

고통으로 턱이 덜덜 떨렸지만, 혼자 남겨진다는 사실이 더 끔찍했다. 프레이가 매달리는 손을 뿌리치지 못한 페트릭이 작은 손을 살짝 움켜쥔 뒤 떼어냈다.

“너 혼내는 거 아냐. 의사 불러오는 거야. 잠깐만 기다려.”

“응… 응. 기다릴게…. 그럴게.”

자신의 한마디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기다리겠다고 되뇌는 혼잣말을 들으며 페트릭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프레이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했는데도 망가진 것 같았다.

*

조용한 침실엔 희미한 약 냄새가 떠다녔다. 거칠었던 호흡이 돌아온 프레이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프레이. 아픈 건 허락 안 받아도 돼. 그 대신 어디 아프면 나한테 바로 말하는 거야.”

“…으응.”

진통제로 찾아온 평화가 기꺼웠다. 프레이는 수없이 연습했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의 허락 없이 아파도 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홀가분했다. 약기운이 도는지 몽롱한 얼굴이 베개에 파묻혔다. 페트릭은 자신의 품에 안긴 몸에서 나오는 희미한 오메가의 페로몬을 들이마셨다. 그제야 혼란스러운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점점 희미해지는 페로몬을 조금 더 느끼려 몸을 세게 끌어안자, 프레이는 꼬물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등을 조심스럽게 두드려주는 손길이 낯설었지만, 프레이는 내색하지 않았다. 밀려오는 졸음을 막을 힘이 없었다.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던 입술이 달싹였다.

“나, 자도 돼?”

프레이가 물음에 페트릭은 문득, 프레이가 언제부터 자는 것조차 자신의 허락을 구했는지 생각했다. 처음에는 곧잘 기절하는 몸이 괘씸해서 조금 겁을 주려던 것뿐이었다. 그러면 습관처럼 기절을 하거나 잠으로 도망가지 않을 거라고 페트릭은 생각했었다. 그 결과, 프레이는 자신에게 거짓말로 했다. 통증을 숨기고 자신의 눈치를 보는 상황을 만든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페트릭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침묵할 뿐이다. 페트릭의 허락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눈가엔 피곤이 덕지덕지 매달려있었다. 재촉할 법도 한데 프레이는 얌전히 제 주인의 허락을 기다렸다. 생각에 잠겨있던 페트릭이 뒤늦게 프레이의 등을 살짝 두드렸다.

“잘 자. 프레이.”

기다리던 허락이 떨어지자 프레이는 부스스한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

무거운 눈꺼풀이 감겼다. 속눈썹은 여전히 젖어있었다. 희미해진 페로몬은 약 냄새에 파묻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금세 잠이 들어버린 마른 몸은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았다.

*

프레이의 페로몬은 점점 희미해졌다. 의사는 최후의 방법으로 각인을 제안했지만, 페트릭은 각인을 망설였다. 분명 프레이는 페트릭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세뇌된 오메가는 일거수일투족을 하나하나 허락받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페트릭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프레이를 방치할 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 프레이는 페트릭에게 아파도 되냐거나, 방 밖으로 나가도 되냐는 질문들을 하지 않았다. 페트릭은 마음대로 집 안을 돌아다녀도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프레이는 매번 문 앞에 서서 페트릭의 허락을 받았다. 허락을 받지 않은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매번 방을 나가도 되냐고 묻는 프레이가 조금 귀찮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자꾸 했던 말 또 하게 만들지 마. 프레이.’

날이 선 대답에 프레이는 그날 이후 방 안에만 처박혀 있었다.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면 방 밖으로는 나오지도 않아서 매번 페트릭은 프레이를 밖으로 불러냈다.

“프레이.”

“응.”

방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페트릭이 있는 곳을 확인한 프레이가 눈을 깜빡였다.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마른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이리 와.”

“…응.”

방문이 열렸다. 불과 몇 개월 전 맞췄던 맞춤 셔츠는 품이 남아 펄럭거렸다. 하얀 셔츠 한 장을 걸친 마른 몸이 비틀거리며 방을 나섰다. 다리를 절고 있는 프레이가 움직일 때마다 방울이 희미한 소리를 냈다. 페트릭은 자신의 앞에 두 손을 모은 채로 얌전히 서 있는 프레이를 쳐다봤다.

“프레이.”

“응?”

그답지 않게 다정한 목소리였다. 다정한 목소리로 페트릭이 부르고 있는 자신의 이름이 어색해서 프레이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요새 왜 방 안에만 있어. 안 갑갑해?”

뒤늦게 프레이는 그가 자신을 불러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철저히 학습된 공포가 다시 찾아왔다.

“미, 미안해. 방에만 있어서. 나, 나 어디에 있을까… 거실? 테라스? 응?”

페트릭이 인상을 썼다. 무슨 말만 하면 잘못을 비는 태도가 짜증이 났다. 프레이를 이렇게 만든 건 자신이었음에도 페트릭은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설프게 걸치고 있던 다정함에 균열이 생겼다. 갈라진 틈 사이로 그의 폭력성이 새어나왔다.

내가 방에만 있어서 페터가 화가 났나 봐. 어떡하지. 잘못했다고 빌어야겠지? 잘못을 빌려면 어떻게 해야 하더라.

프레이는 언젠가 페트릭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뭐 하는 거야. 프레이.”

대뜸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던 페트릭이 프레이의 몸을 일으켜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손길에 눈을 질끈 감으며 프레이가 흐느꼈다.

“잘, 잘못했어. 방에만 있는 거, 흐으, 네가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그게 아니라… 젠장.”

프레이는 머리 위로 떨어진 페트릭의 욕설에 눈을 질끈 감았다. 나 또 혼나나 봐…. 오늘은 무슨 벌을 받을까? 목마는 너무 무서운데…. 프레이는 자신이 받았던 벌들을 떠올리며 몸을 떨면서도 페트릭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예쁘게 보이려 애를 썼다. 공포로 얼룩진 얼굴이 지어낸 거짓 미소는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네 꺼 빨면 안 돼? 허락해주면 정말 잘할게… 진짜야….”

늘 펠라티오가 어설퍼서 페트릭이 혀를 찼던 기억이 떠올랐다. 프레이는 잘할 수 있다고 거듭 중얼거렸다. 내가 잘 빨면 페터의 기분이 풀릴지도 몰라. 프레이가 손을 뻗어 페트릭의 바지춤을 붙잡던 순간이었다.

“아윽…….”

페트릭이 프레이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시야가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끔찍한 두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페트릭은 자신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성기를 빨게 해달라고 보채는 프레이와 시선을 억지로 맞춘 뒤 속삭였다.

“프레이. 너 나 좋아하는 거 맞지?”

프레이는 끔찍한 두통에 입술을 깨물었다. 뇌가 흘러내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억지로 올려다보게 된 페트릭의 분노한 얼굴이 무서웠다. 엉망진창이 된 머리로 프레이는 페트릭의 질문을 곱씹었다.

좋아하냐고….

페트릭에게 모든 걸 의지하고 자신의 모든 걸 내어주었지만 정작 프레이는 페트릭을 좋아하지 않았다. 분명 기억 속의 자신은 멀리서 그를 지켜보거나 머릿속으로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더 이상 페트릭을 매일 보고, 살을 섞었지만 설렌다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스럽고 힘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좋아하라고 명령하면 자신은 그 말을 따라야 했다. 프레이는 자신의 몸에 위협적으로 스며드는 페로몬에 숨을 꺽꺽거리며 속삭였다.

“페터… 네가 하라고 하면… 나는 당연히…….”

“그걸 지금 말이라고.”

막연히 프레이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았다. 하지만 자신을 좋아하라고 명령하면 당연히 좋아할 거라는 말에 페트릭의 눈이 돌아갔다. 씨발. 이걸 말이라고 해? 분노로 이성을 잃은 페트릭이 제 손에 들린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힘 없는 몸이 흔드는 대로 흔들리자 방울 소리가 요란했다.

“내 눈 똑바로 봐. 프레이 비셔스.”

“아악… 아, 아파…….”

페트릭은 프레이의 빌빌거리는 몸이 점점 짜증 났다. 항상 자신의 눈치를 보는 불안함에 가득 찬 보라색 눈동자도 지겨웠다. 사랑놀음을 좀 해보려 해도 툭하면 눈치를 보고, 코피를 쏟고 기절하기 일쑤인 프레이를 버리지 못하는 자신에게도 짜증이 났다.

“내가 하란 대로 한다고? 내가 너한테 날 좋아하라고 하면 너 나 좋아할 수 있는 거네?”

머리끄덩이를 잡고 자신의 얼굴 앞으로 프레이의 얼굴을 끌어당긴 페트릭이 읊조렸다.

“너 강간하고 마약 먹이고, 몸도 다 망가트린 새끼가 싫어서 너 도망간 거잖아. 이제 와서 내가 하라고 하면 좋아하겠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페, 페터… 아… 아파…….”

알파의 공격적인 농밀한 페로몬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겁에 질린 얼굴은 눈물에 젖어 축축했다. 숨을 쉬지 못해 가슴 부근이 뻐근했다. 가슴을 움켜쥔 프레이는 다시 시작된 아랫배의 통증에 얼굴이 허옇게 질리다 못해 퍼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분노로 흐려진 페트릭의 시야에는 프레이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보일 리 없다. 한참이나 대답을 강요하며 프레이를 흔들던 페트릭은 아프다고 신음하던 목소리가 뚝 끊겼다는 사실에 눈을 깜빡였다.

“프레이.”

고요한 집 안엔 그가 프레이의 머리를 쥐고 흔들 때마다 불길하게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뿐이었다. 머리채를 뒤로 잡아당겨 뒤늦게 쳐다본 프레이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눈 떠.”

당황했지만, 페트릭은 일부러 단호한 목소리를 꾸며냈다. 페트릭이 단호하게 명령하면 엉엉 울다가도 프레이는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기절한 프레이는 눈을 뜨기는커녕 몸이 축 늘어질 뿐이다.

“대답 안 해?”

기절한 프레이에게 윽박을 지르는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누구 마음대로 또 기절을 하고 있어. 일어나면 내가 가만둘 것 같아? 프레이. 용서 안 할 거라고. 알아들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페트릭의 얼굴은 두려움에 가득 질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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