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버닐 공항에 도착한 프레이는 5시간 전까지만 해도 남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애인이 된 남자를 쳐다봤다.
“마일드리안.”
“페트릭이라고 부르라니까.”
프레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과거에 늘 멀리서 훔쳐보며 좋아해야만 했던 남자가 불과 몇 시간 전 자신의 집 앞에서 사귀자고 고백했었다. 프레이는 과거에 자신을 설레게 했던 남자와 사귀면 희미하게만 느껴지는 감정을 다시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지가 궁금했고, 고백을 받아들였었다. 벌써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기에는 프레이의 양심이 조금 따가웠다. 두 사람이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자정이 지난 늦은 밤이었다. 프레이는 조금 피곤한 얼굴로 아직도 자신의 캐리어를 들고 있는 페트릭 마일드리안에게 손짓했다.
“이제 캐리어 줘. 호텔 체크인해야 돼.”
“같이 가.”
어깨를 감싸는 손길에 움츠러든 프레이의 어깨를 안고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페트릭은 뭐가 그리도 신 나는지 싱글벙글 웃는 낯이었다. 호텔에 도착해 예약한 방의 카드키를 건네받은 프레이가 카드키를 꽂으며 제 뒤에 서 있는 페트릭에게 늦은 저녁 인사를 건넸다.
“잘 자.”
“프레이.”
굿나잇 키스가 뺨 위에 내려앉자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 프레이를 보며 페트릭은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닫으며 조금씩 프레이를 방 안으로 몰아넣은 페트릭은 요요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어, 어 잠깐만…….”
뒤로 밀리는 바람에 뒷걸음질치던 프레이가 찰칵하고 닫히는 방문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눈앞에는 여전히 페트릭이 의도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고, 방 안에는 잘 정리된 호텔 특유의 냄새가 났다.
“아흐…….”
깨물린 입술의 통증에 신음을 흘리던 프레이가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침대 위였다. 푹신한 침대에 놀랄 틈도 없이 재킷을 벗으며 자신의 입술을 다시 빨고 있는 페트릭이 낯설고 야하기만 했다. 프레이가 손으로 페트릭을 밀어내려던 그때였다.
“우리, 사귀는 거 맞지?”
“…응.”
페트릭이 입술을 맞대고 속삭이자 간지러운지 프레이가 작게 몸을 떨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작은 고개가 위아래로 흔들릴 때마다 입술이 비벼지고 있었다. 입술을 머금은 페트릭이 프레이의 다리 사이를 노골적으로 만졌다.
“흐읏… 아!”
색이 예쁘고 감도도 좋은 야해 빠진 구멍의 안쪽 어디를 찔러주면 프레이가 좋아하며 정액을 질질 흘리는지, 어디를 만져야 몸을 굳히며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지 페트릭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니트 아래에 손을 넣어 개발하느라 꽤나 공을 들였던 유두를 살짝 만지자 프레이는 고개를 뒤로 살짝 젖히며 야한 신음을 토해냈다.
자신이 흘린 신음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서 프레이는 제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당황한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귀여운 반응에 페트릭이 피식 웃으면서 프레이가 침대 위로 도망가는 걸 보고 있었다.
“왜 갑자기…….”
“사귀는 사이에 섹스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프레이는 마일드리안이 이렇게 음란한 사람이었나 곱씹기 시작했다. 다 큰 성인이니까 당연히 섹스도 했겠지만 자신은 아직도 성인이 된 지 10년이 다 되었다는 사실을 잊는 사람이었다.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승낙한 교제제안이었지만 고백을 받고 하루도 되지 않아서 몸을 섞는다는 건 프레이에게 있어서 날벼락과도 같았다.
“기분 좋게 해줄게. 아마 너도 금방 빠질걸.”
“아, 아…….”
침대 위에 올라온 페트릭은 프레이의 위에 올라타 느리고 노골적인 손길로 바지 아래에 손을 넣어 살짝 힘을 받은 프레이의 성기를 문질렀다. 쾌감이나 아픔은 잘 느끼는 프레이가 은밀한 곳에 가해지는 자극에 몸을 조금씩 떨어대기 시작했다.
“마일드리안… 이건 아닌 거 같아… 학!”
“프레이. 겁먹을 거 없어. 좋아서 여긴 벌써 이렇게 됐잖아.”
페트릭의 손에서 크기를 더해가며 단단해지는 제 성기를 보며 프레이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의 손길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몸이 낯설고 어색해서 마음이 이상해졌다. 어느새 벗겨진 속옷과 바지는 바닥을 나뒹굴었고 프레이의 성기를 만지던 페트릭은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 같이 움찔거리는 살 기둥을 천천히 흔들었다.
“아아! 안 돼…….”
프레이의 몸이 떨리며 작게 발버둥을 치자 페트릭이 귀두 끝에 갈라진 틈 사이를 엄지로 자극하며 문지르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결국 페트릭의 손에 뿌연 정액을 토해냈다. 사정의 충격에 프레이가 눈을 손으로 가리고서 허리를 간헐적으로 떠는 모습이 음란해 보였다. 니트는 다 흘러내려서 어깨를 드러내고, 소매는 눈물을 닦아내느라 손등을 다 덮고, 하반신만 벗겨져 침대 위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마음이 동할 것이 분명했다.
손에 묻은 프레이의 정액을 구멍에 대충 문지르며 페트릭은 젤 대신 쓸 만한 것이 있나 주위를 힐끔 살폈다. 핸드 로션처럼 보이는 튜브를 찾아들고 침대 위에 다시 올라올 때까지 프레이는 가랑이를 다 벌린 채로 숨만 고르고 있었다. 구멍에 치덕치덕 발려진 정액이 빛을 받아 조금 반짝거렸다. 로션의 뚜껑을 열어 손에 짜내자 공교롭게도 코튼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아, 차가워… 뭐, 뭐 하는 거야?”
“구멍 적시는 거야.”
페로몬 샘이 마르고 더 이상 알파를 유혹할 필요가 없어진 오메가의 몸은 아래를 축축하게 가득 적실 애액이 나오지 않았다. 흥분하더라도 약간의 애액이 나올 뿐이라 충분히 적시고 구멍을 풀어주지 않으면 피를 볼 것이 분명했다.
“흐… 마일드리안… 그만해… 손가락, 아아!”
“페터라고 불러.”
프레이의 구멍 안쪽에 로션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손가락은 느리게 움직이면서 여기저기를 헤집고 있었다. 그때마다 아래를 조이면서 손가락을 조이는 압박감이 대단했다. 축축하고 찰진 구멍 안을 기대하는 페트릭의 아래는 이미 터질 기세로 발기하고 있었다.
“페… 페터… 흑…….”
페트릭은 프레이의 입술 위로 끈적한 입맞춤을 하면서도 프레이의 구멍 사이에 쑤셔 넣은 손가락을 늘리고 있었다. 아래가 뻥 뚫리는 건 아닐까 하며 점점 두려워진 프레이가 발가락을 꼼질대며 다리를 오므리려 안간힘을 썼다.
“아으, 흣.”
페트릭이 웃으며 노골적으로 손가락들을 쑤시자 찔걱거리며 로션들이 질척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파… 아, 아흐…….”
“기분 좋아질 거야. 프레이.”
프레이가 물기가 가득한 눈동자 탓에 뿌연 시야로 페트릭을 내려다봤을 때, 그는 다 발기한 제 성기를 잡은 채로 성기 끝을 구멍에 가져다 대는 중이었다.
“잠깐만… 마일드리안. 그거 다 안 들어가……!”
“페터라고, 부르라니까.”
페트릭이 프레이의 덜 풀린 구멍을 비집고 성기를 단번에 반쯤 밀어 넣으며 허리를 밀어붙였다. 프레이는 아래를 가득 메우는 뜨겁고 단단한 살 기둥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신음도 내지 못하고 입을 벌리며 침을 흘리는 프레이의 모습에 만족한 듯한 얼굴로 페트릭이 얇은 허벅지를 좌우로 넓게 벌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아흐!”
“아. 더럽게 뻑뻑하네.”
애액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발라놓은 핸드 로션이 전부인 내벽은 조금 건조하고 낯선 이물질의 침입을 반기지 않는 듯이 조여 대고 있었다. 일단 안에 정액을 싸고 부드럽게 풀려야 박는 재미가 날 것 같았다. 할딱대는 프레이의 다리를 들어 몸을 반으로 접을 듯이 들어 올리며 잔뜩 달라붙어 오는 뻑뻑한 내벽을 가르며 몸을 움직이던 페트릭은 연결된 아래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예전엔 딜도를 쑤셔 넣고 제 좆을 밀어 넣어 쑤시기도 했고, 몇 시간이나 구멍 안에 품고 있게 했던 구슬들을 빼주지도 않고 그대로 성기를 넣어 내벽을 벌리고 박으면 안에서 비벼지는 구슬들의 촉감에 만족하기도 했었다. 페트릭은 셀 수 없이 따먹은 구멍이 새롭게 느껴지는 지금이 신기했다.
“아아… 마, 마일드리안… 아파… 흐윽…….”
“금방 싸고 적셔줄게. 안 젖어서 아픈 거야.”
“으흑…….”
프레이는 이상한 감각과 아픔, 그리고 미세한 쾌감을 안겨주는 페트릭의 몸 아래에 깔려 신음했다. 엉덩이 사이를 들락거리는 거근을 자신도 모르게 조였다가 풀어내는 구멍은 느리지만 천천히 부드러워졌다. 사정을 준비하는 듯 둥근 귀두 구까지 구멍에 박아 넣고 허리를 움직이던 페트릭의 성기가 부풀자 프레이가 다리를 바둥거렸다.
“아, 안에서 더… 커지면…….”
“프레이. 혀 내밀어 봐.”
두려움에 울먹거리는 프레이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작은 얼굴을 한 손으로 붙들고 얼굴을 고정한 채로 재촉하자 프레이는 결국 혀를 살짝 내밀었다. 페트릭이 고개를 숙여 제 혀로 프레이의 혀를 살짝 건드리며 장난을 쳤더니 프레이가 흐느끼려 했다.
제 입으로 프레이의 신음을 막으면서 페트릭은 여린 프레이의 내벽에 노팅을 시작했다. 노팅당한 프레이는 아래를 가득 벌리며 커지는 성기가 내뱉는 정액의 양에 겁을 먹은 상태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내장 안에 소변을 보는 걸지도 모른다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읍. 으응!”
연결된 하체가 버둥거릴 때마다 깊은 곳에 들어차 있는 성기 끝이 여기저기를 스치며 프레이에게 쾌감을 주고 있었다. 노팅된 성기가 사정을 마치고 느리게 구멍을 들쑤셨다. 한참이나 사정의 여운을 만끽하며 정액을 안에 쏟아낸 페트릭이 허리를 물리며 성기를 빼자 프레이의 두 발은 그제야 침대 시트에 닿았다. 니트 소매로 눈물을 닦은 프레이가 얼굴에 쪽쪽거리며 입술 도장을 찍고 있는 페트릭을 살짝 밀었다.
“하, 하지 마…….”
“아프기만 했어?”
“그건… 아니지만…….”
프레이가 꼼지락대며 품 안에서 벗어나려 하자 제 품에 꼭 안은 상태로 페트릭은 위치를 역전시켰다. 얼떨결에 시야가 뒤집혀서 어지러운 프레이가 눈을 떴을 때에는 페트릭의 몸 위에 올라타 있는 자세가 된 후였다.
“아…….”
아래에서 미지근한 정액들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져서 허리를 살짝 들어 올리던 프레이는 정액이 흐르는 구멍을 파고드는 손가락에 허리를 떨었다.
“흐윽…….”
“잘 젖었네.”
품평하듯 구멍을 몇 번 들쑤시던 손가락은 다시 발기한 성기를 잡고 프레이의 구멍 안에 밀어 넣고 있었다. 앉아있었을 뿐인데 다시 아래를 비집고 들어오는 성기가 반갑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프레이가 다급하게 손을 붙들었다.
“마일드리안…….”
“페터라니까. 제대로 부를 때까지 내 거 넣고 있을래?”
페트릭의 웃음기 가득한 협박에 프레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쾌감과 통증이 어우러진 감각을 더 느끼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 페, 페터…….”
“기왕이면 내 이름 부르면서 싸는 거 보고 싶은데.”
저질스러운 농담에 프레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붙들린 채로 강제로 움직여지는 허리가 들썩거릴 때마다 아래를 반으로 가를 듯이 박히는 살 기둥의 감각이 오싹오싹했다. 정액으로 젖은 내벽은 뿌연 정액을 질질 흘리며 수월하게 거근을 뱉었다 조여냈다. 머리는 잊었어도 충실하게 길들여진 구멍은 반사적으로 페트릭의 좆을 기쁘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하악… 흐으… 페, 페터… 천천히……!”
“네가 구멍을 이렇게 조이는데 어떻게 천천히 쑤셔.”
프레이가 흐느끼면서 상체가 아래로 무너지자 연결된 아래에서 정액이 새어 나와 엉망이었다.
“아, 하지 마… 이상해.”
“어디가 이상한데? 말해줘야 알 거 아냐.”
숨을 고르도록 등을 살짝 두드려주자 페트릭의 목덜미에 뺨을 비비면서 프레이는 답지 않게 칭얼거렸다.
“그냥… 이상한데 어떻게 설명해…….”
“아프진 않고?”
프레이는 살짝 아래를 몇 번 조여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페트릭은 제 성기를 조이던 움직임이 아픈지 가늠해보기 위해 프레이가 일부러 한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헛웃음을 지었다.
“귀엽게.”
기억을 잃은 프레이의 몸을 안는 건 처음이었다. 페트릭은 제 몸 위에 엎어진 프레이를 안고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위에 앉아서 허리를 돌리는 걸 바라기엔 프레이의 정신이 어려도 너무 어렸다.
“아…….”
다시 침대에 눕혀진 프레이의 구멍은 빠져나간 성기를 아쉬워하는 듯 벌름댔다.
“허벅지 잡아봐. 좀 더 벌려야지.”
다리를 치켜들고 허벅지를 살짝 잡던 프레이의 다리를 넓게 벌리며 직접 자세를 잡아주던 페트릭은 부끄러워하는 얼굴을 반쯤 시트에 파묻고 음란하게 다리를 벌리고 구멍을 벌름대는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찰칵하고 사진이 찍히는 소리에 프레이가 놀라 눈을 뜨자 페트릭이 휴대폰을 내려놓는 중이었다.
“뭐 해……?”
“예쁘니까 눈으로만 보기엔 아깝잖아. 다리 더 벌려봐.”
“…지, 지워줘.”
프레이가 다리를 잡던 손으로 휴대폰을 잡으려 하자 페트릭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 예쁘게 굴면 지워줄 거니까. 어서. 다리 벌리고 구멍 보여줘야지.”
“아… 안 돼… 싫어……!”
“진짜 지워준다니까.”
프레이는 정말이라며 웃는 페트릭을 보며 어쩔 수 없이 다시 누워 허벅지를 벌리며 구멍을 벌름거렸다. 벌건 속살 사이로 하얀 정액이 새어 나와 구멍 주위가 마치 생크림이라도 발린 것 같았다. 입맛을 다시면서 프레이에게 페트릭이 속삭였다.
“직접 뒤에 쑤셔볼래?”
“뭐?”
“네 손가락으로 구멍 쑤셔보라고.”
프레이가 눈을 깜빡거리며 머뭇거리자 페트릭은 휴대폰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사진. 더 찍어?”
“아, 아니야… 할, 할게.”
허벅지를 잡고 있던 작은 손이 하나 내려와서 구멍에 새어 나온 정액들을 만지작대더니 구멍에 살짝 파고들었다.
“아흐.”
“내 이름 부르면서 뒷구멍으로만 가면 사진 지워줄게.”
“그, 그런… 얘기가 다르잖아.”
페트릭은 눈썹을 까딱거리며 턱짓으로 계속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포기했는지 프레이가 손가락으로 직접 제 구멍을 천천히 쑤시며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 아흐…….”
손가락을 세 개쯤 넣어도 이미 거근에 뚫린 구멍은 모자란 듯이 벌름대기만 했다. 하얀 정액들이 엉겨 붙은 손가락으로 찰박대는 소리를 내며 아무리 구멍을 들쑤셔도 모자란 감각에 프레이가 애원하고 있었다.
“으, 으응. 못, 못 쌀 것 같아…….”
“쑤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프레이의 어설픈 자위를 보며 페트릭이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엎드려서 구멍 벌려봐. 도와줄 테니까.”
프레이의 엉덩이를 살짝 치자 프레이가 구멍에 쑤셔 넣던 손가락을 빼내며 엉거주춤하게 엎드렸다. 상체를 꼿꼿하게 들고 한 손으로 엉덩이를 벌리려 하자 페트릭이 웃었다.
“구멍은 양손으로 벌려야지. 프레이.”
“아, 그렇지만…….”
그럼 엉덩이만 치켜들고 구멍을 다 보여줘야 하는 자세가 되기 때문에 프레이는 당황했다.
“어서.”
단호한 한마디에 프레이가 결국 엉덩이만 치켜들고 얼굴은 시트에 처박은 채로 떨리는 손으로 제 구멍을 잔뜩 벌리고 있었다. 붉은 속살 안에 묻어 있는 정액들과 하얀 손가락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정액 덩어리들이 선정적이었다. 얼굴을 처박고 있는 자세라 페트릭이 다시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줄도 모르고 좆으로 구멍을 헤집어 주길 기대하는 뒤태가 다시 액정에 담기며 찰칵-하는 소리를 냈다.
“으……!”
“쉿. 예쁘게 굴면 다 지워줄 거라고 했지.”
프레이는 몸을 일으키다 다시 구멍을 벌리며 중얼거렸다.
“약속, 지켜…….”
“내 이름 부르면서 앞으로 싸야 하는 거야.”
구멍에 단번에 끝까지 밀어 넣자 반가운 듯이 감겨드는 속살의 압박감에 나른한 페트릭의 신음이 프레이의 뒤에서 들려왔다. 프레이는 구멍을 벌리느라 엉덩이를 움켜쥐었던 손을 다급하게 내려 시트를 붙잡았다.
“아윽… 아아!”
도망가지도 못하게 허리가 붙들린 채로 성기를 처박는 움직임에 프레이가 울면서 아무렇게나 신음했다.
“…흐읏, 거기는… 안 돼. 아!”
엉덩이를 후려치며 정액을 쪽쪽 짜낼 기세로 요사스럽게 달라붙는 구멍에 성기를 퍽퍽 처박자 프레이의 성기에서 정액이 뚝뚝 흘렀다. 음란하게 길들여진 몸은 페트릭의 좆을 구멍에 넣은 채로 벌써 사정하고 있었다.
“페터… 흐응!”
“프레이. 내 좆 맛있어? 응?”
“하아, 으읏… 페터…….”
페터의 요구대로 프레이는 뒷구멍에 페트릭의 흉흉한 좆을 품은 채로 사정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떨었다.
“혼자 싸면 어떡해.”
“아아… 흐…….”
프레이의 질척거리는 내벽은 뜨겁고 찰지게 달라붙었다. 사정으로 경련하는 몸을 붙잡고 세게 허리를 움직이며 움직일 때마다 페트릭의 성기에 정액들이 엉겨 붙었다.
“기분 좋아?”
“…아, 아흐… 모, 모르겠어.”
프레이가 정신을 못 차린 상태로 웅얼거리자 허리를 둥그렇게 돌리며 내벽을 헤집은 페트릭이 하얀 엉덩이를 후려쳤다.
“싫은데 질질 싼 거야?”
“아흣… 조, 좋은 거 같아… 으응.”
프레이는 엉덩이의 따가운 통증에 구멍을 바짝 조였다. 예민해진 점막 너머로 페트릭의 성기에 돋아난 핏줄이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마일드리안이랑 사귀는 것도 모자라 섹스를 하고 있다니.
프레이는 음란한 신음을 토해내는 자신의 몸도 낯설고 저급한 표현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페트릭도 적응되지 않아서 죽을 맛이었다. 지금 자신의 뒤에서 자리 잡고서 거칠게 구멍에 성기를 쑤셔대는 남자가 정말 자신이 좋아했었던 사람과 동일인물이 맞는지조차 분간이 어려웠다.
“페… 페터…….”
“프레이.”
프레이의 구멍 안에 사정하며 페트릭이 중얼거렸다. 자신만을 위해 길들여진 구멍의 맛을 다시 보니 쌓였던 피로가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았다. 허리를 털어내며 프레이의 몸을 돌리자 몸이 축 늘어진 채로 숨쉬기에도 벅차 보이는 작은 몸이 보였다.
“좋아해. 프레이.”
“…으읍.”
젖은 혀가 밀려 들어와 입안이 막힌 프레이는 물기 어린 눈동자를 들어 페트릭을 쳐다봤다. 눈꼬리를 예쁘게 접은 채로 웃고 있는 얼굴은 정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프레이는 쏟아지는 잠을 이겨가면서 겨우 속삭였다.
“사, 사진… 지워줘.”
“응.”
뺨에 쪽 소리를 내며 키스를 하며 시트를 덮어주자 지쳤는지 프레이의 눈꺼풀은 금방 감겼다. 잠이 든 프레이를 확인하며 페트릭은 휴대폰에 저장된 프레이의 사진을 확인했다. 적나라하게 찍힌 음란한 사진을 어딘가에 따로 저장한 뒤, 갤러리에서 삭제한 페트릭이 피식 웃었다. 귀엽게 구는 건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욕실로 향하는 페트릭은 그냥 이참에 프레이와 결혼이라도 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속궁합도 잘 맞고 임신 걱정도 없는 베타나 다름없는 몸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귀엽고 멍청한 내 프레이. 사귀는 동안 얼마나 더 귀여운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서 페트릭은 즐거워졌다.
*
“일어나. 프레이.”
“…으응.”
비몽사몽한 얼굴을 하고서 프레이는 잠에 빠져나오지 못한 채로 흐느적거렸다. 서늘한 손바닥이 자신의 뺨을 만지자 기분이 좋은지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색색거리는 숨을 내쉬는 모습이 고양이 같았다.
귀엽네. 페트릭은 잠에서 깨어나면 무표정한 얼굴을 지을 것이 분명한 프레이의 잠투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귀는 사이인데도 프레이가 자신을 성으로 부르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페트릭은 오늘 새벽 프레이에게 자신을 애칭으로 부를 것을 요구했었다. 과연 아침에 일어나면 날 뭐라고 부를까.
프레이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얼굴을 내려 천천히 프레이의 얼굴에 입을 맞추려는 순간이었다. 눈꺼풀이 느리게 열리며 보라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유독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페트릭은 긴장했다.
“…마일드리안.”
아니나 다를까 프레이는 페트릭의 아래에 깔려 신음할 때만 해도 잘 내뱉던 그의 이름 대신 여전히 그를 성으로 부르고 있었다.
“좋은 아침.”
얼굴을 천천히 숙여 작은 뺨에 입을 맞춘 페트릭은 프레이를 천천히 살폈다. 어제 울어서 그런지 붉어진 눈가와 조금 상기된 뺨이 프레이의 얼굴과 어울려서 살짝 입술을 올리며 웃었다.
“…응.”
작은 얼굴이 위아래로 약간 흔들거렸다. 느린 대답을 내놓은 프레이는 조금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몸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 보여서 페트릭은 손등으로 프레이의 이마 온도를 가늠하고 있었다.
“열이 있는 거 같은데. 어지럽고 그래?”
“조금.”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어지러운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프레이가 희미한 대답을 속삭였다. 페트릭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면서 프레이의 뺨을 한번 부드럽게 손으로 쓸었다.
“잠깐 누워있어. 의사를 부를게.”
“…의사……?”
몸살이 난 정도에 의사를 부른다는 페트릭의 말이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걸 따질 힘도, 여유도 없는 프레이는 그냥 눈을 감고 베개에 얼굴을 기댔다. 조금 서늘한 베개의 커버에 달아오른 뺨을 식히면서 떠오르는 간밤의 기억이 선명했다.
페트릭 마일드리안이랑 잤다. 그것도 완전 야하게.
프레이는 아직도 뭔가가 들어있는 듯 엉덩이 사이에 이물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이 알몸으로 누워있는 걸 보면 정말 꿈이 아닌 건 분명했다. 몇 번이나 자신의 이름을 페터라고 부르라며 재촉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아서 귀가 먹먹해졌다. 피로감이 몰려와 의식이 점점 아래로 가라앉으려던 순간 나긋나긋하고 어딘지 조금 걱정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프레이의 의식을 위로 끌어올렸다.
“프레이. 아래는 좀 어때?”
“…페… 터.”
살짝 잠이 들었던 프레이는 느리게 페트릭의 이름을 웅얼거렸다. 몽롱하고 잠에 취한 프레이가 내뱉은 흔한 이름이 페트릭의 가슴을 간질간질하게 만들고 있었다. 고작해야 친구들이 모두 다 부르는 애칭인데, 왜 특별하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오늘 새벽, 프레이가 자신의 아래에 깔려 몇 번이고 불렀을 때도 별다른 느낌도 들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그저 마일드리안이란 성으로 부르는 것이 싫어서 강요했었던 것뿐이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런 기분인 거지.
마치 벅차서 숨이 가빠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페트릭은 프레이를 내려다보면서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의사가 금방 올 거야.”
“…어지러워.”
프레이가 눈을 감으며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아무래도 정말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보여서 페트릭은 양심의 가책을 약간 느끼고 있었다. 오랜만에 안는 몸이라 급하게 달려든 감이 있었다. 페트릭은 약간 미안한 얼굴을 하고서 말을 걸었다.
“미안.”
“…사진은?”
아예 기억을 못 하는 건 아닌가 보네. 페트릭이 생각했다.
프레이가 사진에 관해 묻자 페트릭은 휴대폰을 꺼내어 갤러리를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물론 다른 곳에 백업해두었다는 사실은 숨긴 채로.
“지웠지.”
“그런 거 이제… 찍지 마…….”
“응.”
순순히 대답하면서 페트릭이 프레이의 부스스하게 뻗은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정리해주고 있자, 머뭇거리던 프레이는 웅얼거리면서 덧붙였다.
“야한 것도… 나는 별로인 거 같아.”
“정말?”
페트릭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살짝 되묻자 프레이는 정말 싫었는지 미간을 찡그린 채로 고개까지 끄덕였다. 이 상태에서 덮쳤다간 정말 송장이 될 것 같아서 페트릭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찌푸린 미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펴주는 시늉을 하자 프레이는 서늘한 손가락 온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살짝 풀린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의사가 도착했는지 전화가 울렸다. 프레이의 몸에 셔츠를 대충 입혀준 페트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트릭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온 의사는 프레이의 몸을 진찰하더니 몸살감기라고 진단을 내렸다. 약한 해열제를 처방하면서 의사가 떠난 방에는 몽롱한 눈을 하고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프레이와 그런 프레이를 쳐다보며 희미하게 웃고 있는 페트릭. 둘뿐이었다.
“좀 더 자. 식사는 일어난 다음에 하자.”
“…너 일은?”
버닐로 오기 전, 그도 이곳에 볼일이 있다고 한 말이 기억이 나서 프레이가 묻자 페트릭이 웃으며 대답했다.
“너 자는 거 보고 해도 되는 일이야. 어서 누워.”
몸을 눕혀주면서 잘 자라고 토닥거리는 손길에 프레이는 살짝 웃으면서 눈을 감았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결려서 마치 운동장을 20바퀴는 달린 것 같았다. 여전히 어지러운 탓에 누워있는 바닥이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 같아서 프레이가 작게 속삭였다.
“조금만 잘게…….”
“잘 자.”
페트릭 마일드리안에게 친근하게 잘 자라는 인사를 받는 사이가 될 것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프레이는 이 상황이 어색해서 대답을 망설이며 몸을 살짝 뒤척였다. 작은 몸 곳곳에서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약간 끙끙거리며 느린 숨을 내뱉으며 누워있자 잠이 금방 몰려왔다. 수면제 없이도 잠이 오는 걸 보면 몸이든 정신이든 피로한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둘 다 피곤한 것 같아서 프레이는 괜히 페트릭의 교제 신청을 받아들였나 하는 후회를 하다 잠들었다.
*
“페… 트릭?”
“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프레이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남자가 왜 자신과 동행하는지 궁금한 얼굴이었다.
우연히 목적지가 똑같아서 같이 온 곳이었는데 내가 이사 갈 집을 왜 같이 보러 가는 거지?
눈을 깜빡이며 빤히 자신의 쳐다보는 작은 얼굴 위에는 의문만 가득해서 페트릭은 픽하고 웃어버린다. 프레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이후로 페트릭은 자신의 감정이 변덕스럽다는 사실까지도 인정해야만 했다. 프레이에게 저질렀던 그간의 행동들을 용서받고 싶어서 한없이 다정하고 상냥하게 대해주고 싶다가도, 프레이를 예전처럼 다시 자신의 취향대로 길들여서 알몸으로 자신의 침실에 묶어두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팔 아파…….”
알몸으로 구멍 속에 이것저것을 가득 넣은 채로 바닥에 엎드려서 물 대신 자신의 정액을 핥아대던 모습을 떠올리는 바람에 프레이의 팔뚝을 감싸고 있던 페트릭의 손에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 손에 힘을 빼면서 페트릭은 프레이에게 사과했다.
“미안. 집은 어디 쪽에 보러 갈 거야?”
“포트릴 근처.”
프레이는 자신이 어린 시절 지내던 별장이 있는 곳의 이름을 떠올리며 아직도 생생한 부모님과의 기억을 추억했다. 작은 그네가 있는 연못과 아치를 따라 장미 넝쿨이 가득한 정원. 책을 읽으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던 기억들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남의 일같이 느껴져서 프레이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서 있었다.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만들자 프레이의 가는 머리카락에서 희미한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갑자기 멈춰서 있는 프레이의 멍한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던 페트릭은 프레이가 말한 포트릴이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지내던 곳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프레이는 아직도 어릴 때의 기억이 전부였고, 몇 주가 지났지만 15년간의 공백을 받아들이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는 건 페트릭도 잘 알고 있었다. 손을 들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서 작은 얼굴에 달라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떼주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힘들면 나한테 말해. 애인이잖아.”
“…애인…….”
프레이는 희미한 바람 소리 같은 목소리로 작게 페트릭의 말을 따라 말해 보며 자신과 페트릭 마일드리안의 사이를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애인. 사랑하는 사이.
그를 사랑하는 건 자신의 뇌에 남아있는 15년 전의 자신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은 아무렇게나 살았는지 이런저런 후유증이 가득했다. 기억 손실을 시작으로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 짐작하기도 싫은 후유증들만 남아버린 말라빠진 몸을 좋다고 안아주는 유일한 사람이 자신의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맹목적인 사랑처럼 보이는 페트릭 마일드리안의 표현을 보고 있어도 프레이는 설렘, 감동 같은 감정 대신 미묘한 불편함을 느껴야만 했다.
프레이는 오랜 우울증으로 인해 낮아진 자존감과 그를 동경하고 홀로 좋아했던 15살의 기억들로 왜 페트릭 마일드리안이 자신 같은 사람을 좋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매일 눈을 뜰 때마다 자신에게 몇 번이고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생각했지만 프레이는 페트릭 마일드리안이 아니어서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춥네. 일단 차에 타.”
“응…….”
페트릭이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프레이를 응시했다. 멍해 보이는 얼굴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불안했다. 예전엔 좋아서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한 채로 쳐다보거나 일련의 사건들이 있고 난 뒤에는 하다못해 혐오감이라도 내비치던 작은 얼굴은 이제 텅 비어버린 채로 고요하기만 했다.
운전석에 올라탄 페트릭은 조수석에 얌전히 앉아서 벨트를 맬 생각도 없이 무릎만 응시하는 프레이가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상체를 조수석 쪽으로 숙이며 벨트를 대신 매 주기 위해 프레이에게 가까워지자 페트릭이 즐겨 쓰는 향수 냄새가 프레이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있잖아.”
“응?”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벨트를 매어준 페트릭은 느리게 눈을 뜨면서 자신과 시선을 마주해오는 프레이의 얼굴을 홀린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팔랑거리는 속눈썹과 추워서 살짝 붉어진 뺨, 자신에게 말을 건네려 달싹대는 작은 입술이 페트릭의 시야에 담겼다.
“나 같은 거 왜 좋다고 하는 거야?”
“너 같은 거라니…….”
차를 출발시키며 페트릭은 프레이의 질문에 당황한 기색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프레이는 잠시 할 말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나 이제 오메가도 아니라며. 그냥 뇌에 문제 있고 자잘한 병에 걸려있는 내가 왜… 좋은 거야?”
타인의 일을 말하는 것처럼 건조한 프레이의 목소리가 조용한 차 속에 흩어졌다. 페트릭은 신호에 차를 부드럽게 정지시키면서 옆에 앉아있는 프레이를 쳐다봤다. 대답을 기다리는지 자신을 쳐다보는 무표정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을 때, 프레이가 들뜬 눈으로 침대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며 어설픈 고백을 건네 오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페트릭은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인상 하나 찌푸리는 일이 없는 프레이가 이렇게 된 것이 다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숨이 막혔다. 비록 가난하고 초라한 삶이었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사람을 자신이 짓밟았다는 생각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그건…….”
뒤쪽에 서 있던 차는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정차해있는 페트릭의 차를 향해 경적을 울려대고 있었다. 페트릭이 차를 다시 출발시키며 프레이에게 대답할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명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이른 나이에 경영수업을 시작하면서 두각을 드러낸 우성 알파의 두뇌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메두사의 저주에 걸려 딱딱하게 돌처럼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프레이는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하지 못하는 페트릭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고개를 돌려 무릎을 쳐다봤다.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를 좋아하는 감정이 혹시나 하는 옅은 기대를 하게 했다. 하지만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페트릭의 반응을 보며 프레이는 아직 그를 좋아하는 감정이 약간 남아있다는 사실에 살짝 웃었다. 사실 정말 그를 아직도 좋아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건 고작 2년 동안 그를 멀리서 훔쳐보며 좋아했던 기억뿐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억에 사로잡혀 그를 아직도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과거에 멈춰있는 프레이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인물이 페트릭 마일드리안이었다.
“프레이. 나는…….”
당황해하며 차를 몰던 페트릭이 고개를 돌려 프레이를 쳐다보던 그때였다. 조수석의 유리창 너머로 차 한 대가 가까워지는 장면이 느리게 보였다. 운전자의 당황한 얼굴과 프레이의 무표정한 얼굴을 번갈아 보자 시간이 다시 빠르게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차체가 흔들리고 페트릭은 브레이크를 밟았다. 충격으로 흔들리는 몸이 욱신거리고 정신이 들자마자 페트릭은 조수석부터 살폈다. 깨진 유리창의 파편이 가득한 조수석엔 피를 흘리며 늘어져 있는 프레이가 눈을 감고 있었다. 페트릭이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움켜쥐자 손에서는 피가 끈적하게 배어 나왔다.
“프레이.”
이름을 불러도 프레이는 기절한 듯 미동도 없이 시트에 늘어져 있었다. 주위가 시끄러워지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페트릭은 피로 물든 프레이의 고요한 얼굴을 보며 난생처음 두려움을 느꼈다.
프레이가 죽으면 어떡하지. 아직 사과도 제대로 못 했는데. 좋아한다고 진심을 담아서 고백하지도 못했는데…….
자신의 마음이 후련해지기 위해 프레이에게 사귀자고 고백했었던 주제에 페트릭은 프레이가 정말 죽어버릴까 봐 겁이 났다. 구급대원이 비틀린 차 문을 떼어내고 프레이의 몸을 들것에 눕혀 이송하는 동안 페트릭은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도, 자신에게 괜찮냐고 말을 건네며 깨진 이마를 지혈하는 구급대원의 물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사고가 나기 전 ‘나 같은 게’ 왜 좋냐고 물어오던 프레이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페트릭은 프레이가 눈을 뜨면 그냥 너의 모든 게 좋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