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落華)
아해는 말없이 사라졌다. 의식을 되찾자마자 병원을 뛰쳐나갔다는 말을 간호사에게 전해 들었을 뿐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그는 작은형의 장례식장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빈소에는 나와 큰형만이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직폭력배로 생을 마감한 작은형의 장례식장은 사람이 거의 없어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내 처가댁 식구들이 찾아온 것이 조문객의 전부였다. 이모님들께는 내가 손수 연락을 넣었지만 우리와는 딱히 혈연도 아니지 않냐며 거절당했다. 어차피 더는 찾아올 사람도 없었다. 우리들은 날짜를 앞당겨 다음날 바로 발인을 하기로 결정했다.
큰형은 억지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나로서는 그쪽이 더 걱정되었다. 한번 자신 안에 갇히면 감정이 굳고 신경이 터질 때까지 미동도 않는 그의 습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나는 그의 건강이 염려스러웠지만 멍한 눈으로 작은형의 영정을 바라보는 그에게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는 영정 맞은편 벽에 기댄 채로 꼼짝하지 않았다. 몸이 지쳐 잠시 조는 순간에도 거기 앉아 있었다. 영정 속의 작은형보다 오히려 그가 더 시체 같았다. 간간이 들려오는 기침 소리만이 그가 거기 살아 있다는 유일한 신호였다.
탈상을 앞둔 밤. 큰형이 잠든 사이 화장실에 다녀오던 나는 뜻밖의 손님을 만났다. 셋째 형의 부인 순미 씨였다. 그녀는 작은형의 장례식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먼저 그녀를 알아본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들어오지 않고 뭘 하시느냐고 말을 걸었다.
“아입니더. 마침 잘 나왔어예. 이거 전해드릴라고 왔어예.”
그녀는 미리 준비해 온 조의금을 건넸다. 나는 정중히 허리를 굽혀 그것을 받았다. 그녀는 나와 쉽사리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한 상대였다. 계속 멋쩍은 침묵이 이어지자, 마지못해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뉴스에 나오데예. 상훈 씨한테 종종 얘기도 들었고예.”
“그렇습니까.”
“고마 이리 될 것을 뭐할라꼬 그리 억척스레 살았는지 모르겠어예. 인생 참 허무합니더….”
“셋째 형은 잘 있죠?”
“…지금 병원에 있심니더.”
“병원이요?”
“말하지 말라꼬 했는데…. 절단 수술을 받았어예. 산에서 운전하는데 앞쪽으로 낙석이 떨어져가꼬 손목이 둘 다 날아갔심니더. 불쌍해서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예.”
이후 나는 불광 이상훈이 잡기를 부리다 두 손목을 잘렸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낙석보다는 그쪽이 훨씬 더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어느 쪽이 진실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도박 운을 자유자재로 다스리는 셋째 형에게 한 번쯤 낙석 같은 악운이 닥쳐왔다 해도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셋째 형은 괜찮습니까?”
“지금이야 우째 살아도 앞으로가 걱정이지예. 마 어떻게든 안 되겠십니꺼. 어떻게든 되야지예. 아도 둘이나 생기는데.”
“애가 둘이요?”
“쌍둥이라 카데예.”
그녀는 조금 볼록해진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 의외로 행복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녀는 무심하고, 냉정해 보였다. 자의든 타의든, 이미 몇 번을 실패하고 가진 아이인데도. 달리 어떤 의미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셋째 형의 두 손을 생각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움튼 두 아이를 생각했다. 등가교환이라 말하면 너무한 비약일까. 셋째 형은 쓸모없어졌고, 쓸데없어졌으며, 이제 정말 그녀의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끝내는 것도 그녀의 몫이란 의미였다.
이젠 그가 그녀의 시종이다.
“셋째 형을 부탁하겠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잘…돌봐 주세요.”
나는 하마터면 ‘버리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할 뻔했다.
“걱정 마이소. 지는 찰거머리라예. 상훈 씨는 죽을 때까지 안 놔줄 겁니더.”
“그래요….”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은 여정(餘情)인가, 여독(餘毒)인가. 나는 감히 가늠해볼 수 없었다.
“그라믄 지는 가 보겠심니다.”
“네. 조심해서 가세요. 셋째 형에게 안부 전해주시고요.”
“잘 계시소.”
순미 씨는 한기가 드는지 습관적으로 옷을 여미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은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더 작아 보였고, 그럼에도 더 단단해 보였다. 나는 순미 씨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순간 저도 모르게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저!”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당신은 잘못 없어요.”
진작 했어야 할 사과.
“당신들…잘못이 아닙니다.”
그녀 아닌 이들에게도 했어야 할 사과. 사라진 이들에게. 지워온 이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사과, 혹은 사과를 빙자한 고별. 나는 그녀 뒤에 수많은 사람들을 세워놓았다. 그녀 역시 모르지 않았으리라. 순미 씨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눌렀다.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이.
셋째 형은 유일한 특기였던 도박을 잃었다. 나는 그의 앞날이 걱정되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그라면 어떻게든 잘 살아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엾은 남자….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유일한 혈통은 셋째 형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귀한 자식을 일생 동안 끈질기게 부정했다. 단 한 번도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그의 평생처럼,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사랑의 편린조차 주지 못했다. 그의 아들은 곧 그 자신이었기에.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늘 내가 아닌 것만을 찾아 헤매며, 내가 아닌 것들만을 사랑했다. 자신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완벽히 들어내지도 못한 채 서툴게 스스로를 증오했고, 또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게 완벽한 사랑 또한 베풀지 못했으며. 습관처럼 자학과 집착만을 되풀이하며 또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사랑이란 이름의 벌레가 자신을 갉아먹고 있음에도 그것이 지닌 달콤한 폭력성을 포기하지 못해 사랑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푹푹 찌르며. 정답게 파멸하는. 아아. 가엾은 인간들….
나는 다시 큰형이 잠들어 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작은형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생의 유일한 소원이 겨우 그런 것이었다니. 나는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차올랐다. 만신창이가 되어 떠난 그의 얼굴, 막 도살된 가축처럼 전시되어 있던 그의 몸. 그곳에 독사는 없었다. 아니. 독사는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에게 독사가 필요했을 뿐.
우리는 아무도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우리는 간절히 강한 존재를 원했다. 강하지 못한 우리에게는 전방에 내세울 총알받이가 필요했고, 우리는 독사를 사육했다. 우리의 소망으로 인해 그는 강해졌다. 우리는 그를 강하다 칭송하며 경외했으나 그것은 우리가 만든 허상에 지나지 않았을 뿐, 그는 우리의 실패작. 우리의 손으로 단련시킨 절름발이 야수였다. 숲의 허술한 우리를 뛰쳐나간 그는 죽어서 되돌아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겐 더 이상 이야깃거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잠들어 있는 큰형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파리한 얼굴은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다시 한번. 이별의 계절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마음속에 방벽을 쌓았다. 너무나 쉽게 허물어질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는 계속해서 벽을 쌓았다. 마지막 파도가 몰아치면 모래성들은 모두 손쉽게 쓸려나가고 나는 혼자가 될 터였다. 더는 파도가 밀려오지 않는 해변은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나는 큰형의 곁에 앉아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그를 데려가기 위해 막 출발한 급류의 소리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흘려보낼 준비를 했다. 나는 또 그를 흘려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을 것인가. 나는 붉게 충혈된 눈가를 문지르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기나긴 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꿈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꿈은 세상에 유일한 나만의 소유물이었고. 그들조차 알 수 없는 것. 그러니까.
이제는 내가 비밀을 만들 차례였다.
* * *
잿더미로 변한 작은형을 받아들고 저수지로 향했다. 큰형은 그때까지도 한마디 말이 없었다. 부근에 차를 세우고 우리들은 물가를 향해 걸어갔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몇몇 새들이 긴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그 소리는 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에 부딪혀 뭉근히 메아리쳤다.
우리들은 자리를 잡고 상자를 싼 보자기를 풀었다. 큰형은 굳은 얼굴로 분골을 담은 상자를 붙들고 있었다. 나는 뚜껑을 열고 한 줌의 분골을 멀리 뿌렸다. 미세한 입자가 바람에 흩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면에 반사된 늦은 오후의 볕이 마지막 그가 가는 길을 찬연히 빛내고 있었다. 큰형은 여전히 상자를 붙든 채로 꼼짝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아직 작은형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한 줌을 쥐려는데 큰형이 황급히 상자의 뚜껑을 닫아 버렸다. 나는 큰형의 손을 치우고 다시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큰형은 나를 크게 뿌리치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눈은 이미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더듬더듬 고개를 가로저으며 작은형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안 돼.”
“형….”
“안 돼.”
“형. 이러지 말자. 나도 괴로워.”
나는 상자를 뺏으려 했지만 그는 필사적이었다. 그는 가슴 깊숙이 품은 상자의 귀퉁이를 이로 물었다. 난감했다. 곧 해가 저물 터였다. 저수지 일대는 비포장도로에, 표지판은 물론 가로등도 없었다. 우물쭈물하다간 돌아가는 일조차 불가능했다. 나는 천천히 큰형에게 다가갔다.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완력을 쓸 수밖에 없었다.
“오지 마. 안 돼. 나한테서 또 빼앗아 가려고? 이젠 내 거야…. 아무도 못 가져가! 안 돼…난 못 보내…. 어떻게 보내!”
“이리 줘.”
“안 된단 말이야….”
큰형의 목소리가 흐릿해진 틈을 타 나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큰형은 상자를 더 깊숙이 품고 몸을 숙였다. 한참 동안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상자는 점점 내 쪽으로 끌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큰형의 저항은 쉽게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실로 놀라운 힘이었다. 결핵에 걸린 이후 걸핏하면 쓰러지고 주저앉던 그의 힘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작정을 하고 그의 팔을 세게 끌어당겼다. 상자를 안고 있던 팔이 풀리며 그가 내 쪽으로 쓰러졌다. 우리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넘어졌다. 그의 팔을 떠난 상자는 긴 호를 그리며 우리들의 발치에 던져졌다. 갈대 사이로 뼛가루가 매캐하니 피어올랐다.
“안 돼!!!”
큰형은 상자가 엎어진 쪽으로 기어가 바닥에 엎어진 분골을 손톱을 세워 긁어모았다. 모아도 모아도 손을 빠져나가는 그의 자취에 큰형은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지 그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작은형이 흩어진 바닥 위로 쓰러졌다. 그가 울고 있었다. 한 무리의 새들이 놀라 날개를 퍼덕이며 떠나갔다. 나는 그에게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너무나 비통한 울음소리였다. 그의 통곡이 산 너머로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바닥에 흩어진 뼛가루를 긁어모으며 그 위로 끊임없이 눈물을 떨구었다. 듣고만 있을 뿐인데도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찢으며 울고 있었다. 나는 큰형의 허리를 껴안고 매달렸다.
“형. 그만해. 제발!”
“안 돼…. 안 돼…. 안 돼…!”
“이러지 말자. 응? 편안하게 보내주자! 형 이런 모습 보면 작은형 아무 데도 못 가!”
큰형은 내 말에 비로소 바닥을 파던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나는 눈물로 젖은 얼굴을 셔츠 깃으로 닦아 주었다. 그러나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고장 난 세탁기처럼 눈물과 숨을 간헐적으로 토해내며 알아듣지 못할 신음을 흘렸다. 나는 가슴팍을 쥐어뜯는 그의 손을 저지했다. 손톱에 할퀴었는지 새하얀 셔츠에 자그마한 핏방울이 점점이 맺혔다. 나는 그가 더는 자해하지 못하도록 양손을 잡아 눌렀다. 내 밑에 깔린 큰형은 폭발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폭행을 당하는 듯한 비명이었다. 견디기 힘들었다. 살이 찢겨나가는 듯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그가 일생 동안 응축해 두었던 눈물의 결정체였다. 나는 생각했다.
작은형은 이렇게 울고 싶었던 거구나….
긴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그는 겨우 진정했다. 아니 진정이라기보다는 진이 빠졌다고 해야 할까. 그의 상태는 탈진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발작은 하지 않았다. 큰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없는 슬픔이 그 안에서 물결치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큰형은 스스로 작은형의 분골을 모아 저수지에 뿌렸다. 흙에 섞여든 그의 자취. 큰형은 그를 채 다 뿌리지도 못하고 다시 울었다. 그러나 전과 달리 소리를 지르거나 고통을 토해내지는 않았다. 고요하고 쓸쓸한 눈물이었다.
모두 떠나보낸 다음에도 큰형은 기우는 해를 등진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쏟아져 내리는 빛이 역광으로 물든 그의 뒷모습을 바깥부터 차근차근 날려 보내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에게 다가갈 수는 없었다. 한결같은 침묵이 부담스러워진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냈다.
“돌아…갈까?”
“상원아.”
“응.”
“잠시만, 내 얘길 들어주지 않을래…?”
그에게 보이지도 않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보지도 않고서 그는 나의 허락을 받아들였다. 그는 어렵게 말을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숨기고 내가 기다려온 그의 막다른 진심이었고. 그의 마음이 와해되고 정신이 붕괴되는 길고 긴. 고백이었다.
* * *
“아버지…. 그러니까 내 친아버지를 처음 본 건 막 다섯 살이 되던 해 봄…. 숨바꼭질을 하던 중이었어. 나는 조금이라도 더 잘 숨어 보겠다고, 사람들이 귀신이 나온다며 가까이도 가지 않는 흉가에 몸을 숨겼지. 그런데 거기에, 아버지. 그러니까 너와 나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 어머니와 함께 들어온 거야. 그들은 들어서자마자 서로를 부둥켜안고 입을 맞췄어.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나동그라졌고 어머니와 시선이 마주쳤지. 어머닌…. 나를 죽일 듯한 얼굴로 노려봤어. 당장에라도 뺨을 후려갈길 것만 같았어. 나는 도망치려고 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어. 남자가 천천히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 그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야. 뭐라고 해야 할까….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알았어.
이 사람이 진짜 내 아버지구나.
날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어머니와는 정반대로 다정하고 친절했지만 나는 그에게서 어머니와 같은 것을 느꼈어.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지. ‘다음에 또 보자.’ 어머니는 황급히 나를 그곳에서 내쫓았지만 나는 자리를 뜰 수 없었어. 충격적이었지. 하지만 나는 은연중에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어머니가 나를 대하는 태도, 이모들이 나를 보는 시선…. 안타깝고도 불편한 그 시선을 대하면서 나는 차차 알게 되었어. 나는 이방인이라고. 나는 언젠가 발각될 거라고.
초연한 척했지만 나도 결국은 겁 많은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어. 다른 사람을 잡아먹고서라도 나는 살고 싶었어. 비밀이 들통나더라도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어. 그리고 난, 보고 만 거야. 상문이의 방화를.
난 마침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삼촌의 가게에 갔었지. 상문이가 성냥에 불을 붙여 과자갑을 태우고 있었어. 도대체 뭘 하는가 싶어 쭉 지켜보았어. 상문이는 가게 전체에 불을 놓았지. 불길은 점점 번져 가는데 상문인 나올 생각이 없었어. 상문인 불길에 취해 있었어. 나는 그를 구할 마음이 없었어. 오히려 흥미로워했던 것 같아. 그도 그럴 것이 상문이는 전혀 괴로워 보이지 않았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불은 번지고 있었고 머지않아 상문이 역시 그 불길에 휩싸일 듯했어. 나 역시 선연한 불길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아. 근데 그러던 도중.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하고 만 거야.
저 녀석이다.
바로 저 녀석이라고.
내 존재에 커다랗게 뚫린 구멍을 메워줄 사람. 내 생의 부록이 되어줄 남자. 나는 가게로 뛰어들어가 상문일 밖으로 끌어냈어. 상문인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고통스럽게 기침을 했어. 나는 상문일 부축해서 동네 개울로 데리고 가 얼굴에 뭍은 그을음이며 땀을 씻어 주었어. 내가 말했어. ‘너는 오늘 하루 종일 나와 놀고 있었던 거야.’ 상문인 혼란스러워했어. 어떤 본능이 상문으로 하여금 불을 지르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 일은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어. 상문이는 뒤늦게 두려워하고 있었어. 나는 상문이의 두 손을 꼭 붙들고 말했어.
‘나도 그래. 나도 너하고 똑같아.’
상문인 그제야 나를 쳐다보았어. 어린 두 눈동자가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흔들리고 있었어. 마치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았어. 나는 태연스레 그를 달랬어. ‘나라도 그랬을 거야. 그러니까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자.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약속할게. 누구한테도 절대 말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상문인 그제야 안심한 듯 내게 몸을 기댔어.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위로했지만 실은, 웃고 있었어. 모든 상황이 완벽했지. 나는 상문이의 생명의 은인이자, 그가 저지른 죄의 단 하나의 목격자였고, 상문이 죄를 고해할 수 있는 유일한 상담자였어. 삼촌은 죽고 숙모는 도망가고 상문인 고아원에 보내졌지. 하지만 난 어머니가 그를 데려오리란 걸 알고 있었어. 나는 기다렸어.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너그러운 척 상문일 데려오라고 했지.
상문이가 우리 가족이 되던 날. 나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어. 이 집안에 내 편이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물론 나에겐 너도 있었지만 넌 내 의지가 되지는 못했지. 너는 아무것도 몰랐고, 나는 일방적으로 너를 지켜줘야 하는 입장에 있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너는 혈액형이 형제들과 같았지. 너는 들통날 이유가 없었어. 얄궂게도 나만이, 비켜 갈 수 있는데도 나만이 혈액형이 달랐던 거야. 그게 어떤 건지 넌 모를 거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나는 자랐어.
난 차라리, 네가 내 동생인 걸 모르고 싶었어. 네가…. 나와 같은 처지란 걸 알게 된 것은 아버지가 일을 나간 사이, 우리들의 아버지가 집을 찾아왔을 때야. 어머니는 어린 널 데리고 나가 아버지에게 보여주면서 말했어. ‘둘째예요.’ 나는 의아했어. ‘어…? 이상하다. 쟤는 막내잖아, 왜 둘째라는 거지?’ 하지만, 금방 알 수 있었지. 아. 저 아이가 내 동생이구나, 하고. 너는 기억나지 않을 거야. 너무 어린 시절이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상문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친절을 베풀었어. 집주인에게 폭행당하는 순간에도 아아, 이걸로 저 녀석은 더 강하게 나에게 매달리게 되겠지…. 하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처음에는 마음이 굳게 닫혀 있었지만 그는 결국 나에게로 넘어왔어. 사랑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놀라지는 않았어. 나는 그가 원하면 무엇이든 줄 수 있었어. 나를 하나하나 내어주며 나는 그의 인생을 저당 잡았어. 처음으로 상문이 내게 키스했을 때, 나는 그를 밀쳐냈어. 그는 자신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는지 사과했지만 몸의 열은 가라앉지 않았지. 나는 거절하듯 방의 문을 닫았지만, 문고리를 잠가 놓지는 않았어. 그날 상문인 내 방에 들어왔고 난 모르는 척 뒤돌아 있었지만, 이미 끝난 게임이었지.
내겐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어. 그래. 난 한 번도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았던 것 같아. 아버지가 나에게 한없는 애정을 베풀 때도, 그로 인해 상훈이가 밖으로 겉돌 때도, 아무것도 모르는 네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어줄 때도. 오히려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나는 비밀을 들키지 않고 잘 도망갈 거라고. 당신들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당신들을 비웃어 줄 거라고. 어머니가 나를 학대할 때에도 속으로는 웃고 있었다. 너는 내 손아귀 안에 있다고, 나는 언제든지 널 무너뜨릴 수 있다고.
그런데 그 여자가 나타났지. 윤선미…. 난 지금도 후회하지 않아. 나는 그때 정말 윤선미를 죽일 작정이었어. 그런 여자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그 여자가 죽었다는 걸 안 순간 나는 웃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어. 자꾸만 저절로 입꼬리가 일어나더라. 그 여자에게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어. 박숙영이 죽었을 때도 윤선미가 죽었을 때도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어. 날 방해하는 인간이라면 몇이든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날은 생각이 한발 더 나아가, 해서는 안 되는 생각까지 하고 말았어. 난…. 그때. 너도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린 거야. 매번 내 발목을 잡는 너, 그러나 버릴 수 없는 너. 너, 상훈이, 아버지. 아니,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죄다 죽여 버리고 싶었어. 정말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물론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찰나였고 이내 정신을 차렸지만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소름이 끼쳤어. 이건 인간도 아니다 싶었지….
그리고 처음으로 이상문을 향한 내 감정이 어느새 변질되어 있음을 느꼈어. 나는 심지어 상문이가 윤선미를 사랑했었다고, 오로지 나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순간에도 어이없는 질투를 하고 있었지…. 나 때문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뻔한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 여자의 죽음. 너를 향해 갑자기 일었던 살의. 상문이의 체포…. 그 어떤 것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분노가 전신을 휘감고 있었어. 매일을 태연히 거짓말을 하며 살아왔던 내가 그의 단 한 번의 거짓말에 흔들리고 있었어. 왜냐하면 그 여자가 결국 나였기 때문에.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이야. 나는 그 여자와 부딪칠 때마다 나 자신의 추악함과 부딪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 그 여자를 사랑한다는 상문의 거짓말은 결국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거짓말과 동일한 것이었던 거지….
그 여자가 네 비밀을 까발리려 했을 때도 나는 내심 마음 한구석으로 응원을 하고 있었지. 그래, 말해라. 끝내 버려.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게…. 그래. 어쩌면 나는 너를 인간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았는지도 몰라. 내 몸에서 자라난 커다란 종양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너만은 버릴 수가 없었어. 네 앞에만 서면 자연스럽게 좋은 형을 연기할 수 있었지. 그러나 나는 네가 미웠다. 누구보다 너를 사랑했지만 때때로 난 너를 내가 있는 곳으로 끌어내리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어. 이건 네 운명일 수도 있다고. 너도 나와 같은 이방인이라고. 내가 네 대신 모두 받고 있다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지. 내가 너였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난 너만은 지켜주고 싶었어. 상문이를 저버리더라도 너만은 나와 다르게 살게 하고 싶었어. 너는 내 유일한 가능성이자 내 꿈이었어. 나는 보고 싶었어. 아무것도 몰랐더라면 달라졌을 나의 인생을 너를 통해 구하고 있었어. 너 역시 나 못지않게 괴로웠다는 걸 알아. 하지만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네가 되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 속에 그, 는 없었다. 그, 는 그곳에 서 있었고 진중한 고백 한가운데 무릎 꿇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 데도 없었다. 그는 자신을 볼 줄 몰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고 그는 이미 오래전 자신을 위해 변명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했다.
“사랑…. 한 거지?
큰형은 미동도 없었다.
“괜찮으니까 말해.”
무용한 질문인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듣고 싶었다. 작은형을 위해. 감히 그 말을 꺼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 큰형을 위해.
“말해…. 말하란 말이야. 적어도 나한테는, 나한테 만큼은 진실을 말해. 이용가치니 배신이니 하는 소리는 집어치워. 도망치지 마. 사랑했잖아. 작은형을, 이상문을 사랑했잖아!”
“안 돼…. 그런 말을 입에 담으면….”
나는 큰형을 붙들어 정면에서 그를 응시했다. 그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눈동자의 초점은 나를 비껴, 나를 넘어선 곳에 못 박혀 있었다.
“괜찮아. 말해도 돼. 아무도 형을 탓하지 않아. 우리 둘뿐이야. 우리 말곤 아무도 없어. 난 이해해. 난 다 아니까. 그러니까.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말해. 썩어 문드러지도록 안에 담아두지 말고.”
“안 돼.”
“형!”
“그런 더러운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그를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이 빠졌다. 그는 흩날리고 있었다. 형이란 이름의 굴레, 아들이란 이름의 굴레, 배신과 사랑의 올무에서 벗어난 그의 실체는 한 줄기 바람이었다. 그 바람을 잡으려다 번번이 무릎을 찧은 사람들을 나는 기억한다. 우리들은 작은형의 얼굴에 철가면을 씌웠듯 그 바람에 각자의 욕망을 덧칠했다. 바람은 어느덧 불투명해져, 아무도 바람의 심지를 볼 수 없었다. 바람은 종착지에 닿았다. 바람은 소멸하려 하고 있었다. 바람이, 울고 있었다.
“형은…내가 불쌍하지…? 난 형이 불쌍해. 형은 자기 자신을 몰라. 형의 말들은 어느 것 하나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아. 위악을 부려 자신을 가해자로 둔갑시키려 해도 난 알아. 난 형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형. 이건 형만의 잘못이 아니야. 모두의…. 실수일 뿐.”
“난 이상문이 두려웠어. 그 녀석을 사랑하는 동안에는 난 한순간도 사람일 수 없었다. 난 흉악한 짐승이었어. 인간으로 있고 싶은데, 자꾸만 미끄러졌어. 그 녀석을 못 견디게 원하면서도 그 녀석으로 인해 자꾸만 벗겨져 가는 내 추악한 모습이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어! 버리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버리지 않을 수도 없었지. 달콤한 말로 유혹해 놓고서. 평생 함께하자는 말을 하게 만들어 놓고서, 같은 입으로 평생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말을 꺼내게 만들었어. 나 때문이야…. 내가 그 녀석의 인생을 망치고 그 녀석을 죽였어….”
“작은형이 원한 거야. 죽어서도 포기하지 못할 만큼 사랑했으니까! 아직도 그걸, 그 마음을 정말 모르겠어?”
“나 같은 놈에게 속아서 자기 인생을 전부 갖다 바치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럼 왜 거부했어? 그냥 작은형 계속 이용해 먹으면서 살면 될 걸 왜 그렇게 거부했냐고! 작은형만큼은 사람으로 살게 하고 싶었던 거잖아! 작은형의 인생만큼은 망치고 싶지 않았던 거잖아!”
얼굴을 감싸고 있던 큰형은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잠시 그는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였으나 이내 청년으로, 소년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가며 작아졌다. 산 너머로부터 쏟아지는 충만한 빛에 묻혀 그는 서서히 퇴화하고 있었다. 그는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녀석은 독사가 아니었어. 독사에게 물려 미쳐 날뛰는 어린아이였을 뿐. 독사는….”
그는 자신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손에는 자그마한 단도가 들려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그를 꺼내올 수 없었다. 나는 생의 방관자였다. 하지만 생애 단 한 번 격렬한 욕망에 휩싸여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칼은 그 죄의 증거물이다. 나는 평생 칼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내 인생 역시 언젠가는 칼로 마감될 것임을 나는 안다. 살인의 연대에서조차 외면당했던 셋째 형. 나는 그의 손이 부디 낙석이 아닌 칼로 잘리어 나간 것이기를 조심스레 꿈꾸었다. 나는 그가 칼의 연대에서나마 형제와 하나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아무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경외하면서도. 경애하면서도. 증오하면서도. 질투하면서도. 용서받고 싶으면서도. 용서하고 싶으면서도. 우리들 사이에는 그 어떤 이해의 실마리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우상화시키고 독사라 부르며 가엾은 어린 양으로 둔갑시켰다. 기실 우리들은 나약하고 불안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나약하고 불안했기에 우리들은 자신으로 살 수 없었다.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에 칠을 했다. 검고 붉은 물감으로, 두려운 것을 쫓기 위해, 서로를 두려워하며.
마치 이상의 시 ‘오감도’처럼 우리들은 무서워하는 존재이자 무서운 존재였고, 우리는 지저분한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역사에 걸맞지 않음을 안다. 그러나 그 단어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우리들이 서로에게 품었던 감정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이, 모두가 말하는 사랑이 아니어도 좋다. 사랑이란 단어에 무모한 개념들을 마구 집어넣어도 좋다. 아무튼 우리들은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서로를 소모시켰다. 우리들 사이에는 자꾸만 비인 틈이 생겼고 우리들은 비누처럼 작아졌다.
나는 초라한 큰형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는 쓸쓸히 흩날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천천히. 얼마 남지 않은 작은형의 분골을 뿌렸다. 불투명한 입자가 바람에 감겨 뿔뿔이 흩어질 때마다 큰형은 서서히 투명해졌다. 그의 영혼도 그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붙든 어깨에서 미약하게나마 체온이 느껴졌지만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말 그대로 그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평온해 보였다. 황혼이 완만한 썰물처럼 어둠이 밀려들고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몸을 기댔다. 서글프고 다정한 노을 볕이 우리 몸에 스며들었다. 우리들은 한참을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멀리. 아득한 곳으로부터 종소리가 들려왔다. 바짝 날을 세운 밤의 한기가 옷깃 속을 파고들었다. 드문 인가에 하나둘 불이 켜지고 우리들은 가까스로 걸음을 떼었다.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어린 갈대가 발밑에서 우그적우그적 제 목을 부러뜨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큰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 *
큰형의 발인이 있던 날 뒤늦게 어마어마한 화환이 도착했다. 보낸 이의 신원은 역시 불명. 화환은 조그마한 상자와 함께 배달되었다. 나는 손바닥에 올려질 정도로 자그마한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속에는 오래전 주인을 떠나간 낡고 묵직한 손목시계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리움에 목이 메었다. 나는 차가운 시계의 몸체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것은 분명 셋째 형이 차고 나간 아버지의 -아버지가 큰형에게 선물한- 시계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시계를 손목에 차보았다. 호사스러운 광채를 뽐내던 시계는 낡아 군데군데 긁힌 자국이 있었고 날짜와 시간 역시 오래전에 멈추어 있었다. 빛바랜 과거의 화석. 나는 한참 동안 시계를 바라보았다. 굳어버린 시침과 초침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끝이라고. 모든 기억은 이제 냉각되어 더는 네 것일 수 없다고.
나는 시계를 풀어 조심스레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비로소 인생을 돌려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 상자를 누구에게 전달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시계를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손에 익은 내 소유의 손목시계를 찼다. 째깍째깍. 채 얼어붙지 않은 나의 시간. 내가 짊어져야 할 시간들. 올바른 시각을 가리키며 건강하게 살아 움직이는 시계의 초침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안녕.
* * *
아해가 찾아왔다. 무슨 수로 구한 건지 새까만 오토바이를 타고서. 그는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웃었다. 마침 잘된 일이었다. 나 역시 그에게 전해주고 싶은 물건이 있었다. 우리들은 집 근처의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홀가분하겠어요.”
톡 쏘는 듯한 아해의 말에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례식은 이제 지긋지긋해.”
“막내 형님은 오래 살걸요?”
“응? 내가 왜.”
“이 꼴 저 꼴 다 봤으니까.”
“하하. 듣고 보니 그렇네. 참. 너에게 줄 것이 있어.”
“네? 뭔데요.”
“괜찮다면, 받아주렴.”
나는 아버지의 시계가 든 상자를 건넸다. 상자를 열어본 아해는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거절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꼭 그에게 건네고 싶었다. 그는 우리의 역사를 엿들은 유일한 타인이자 우리 가족의 산증인이었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밖에 없었다.
“이거 엄청 비싼 거잖아요. 나 같은 놈이 껴봤자 싸 보이기만 할 텐데.”
“그 시계의 주인은 손목을 다 잃었어. 시계를 낄 수조차 없는 사람이야. 작은형도 네가 받아 주길 바랄 거다.”
“막내 형님이 끼면 되잖아요.”
“난 그럴 자격이 없어.”
“그래도, 아버님 유품인데….”
“아니. 그건 우리 가족의 유품이다.”
내 결연한 의지를 읽은 아해는 마지못해 시계를 받아들었다. 나는 손수 그의 왼 손목에 시계를 채워 주었다. 가느다란 아해의 손목에 아버지의 시계는 너무 컸지만 나는 만족스러웠다. 시계를 만지작거리던 아해는 문득 작은형의 이야기를 꺼냈다.
“장례식, 사실은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못 갔어요. 말했죠. 상문 형이 죽은 거 인정하는 게 무서웠어요.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사실 다른 거였어요.”
“응.”
“큰형님을 보는 일이요.”
“알고 있어.”
“닮았다는 거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작은형은 너도 아꼈어.”
“…알아요. 지금은 큰형님보다 덜 사랑받았다거나 큰형님의 대용품이었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 해요. 그건 상문 형한테 미안한 일이니까. 그냥. 그래도 종종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상문 형 자기 얘기는 잘 안 하는데. 딱 한 번 조금 술에 취했었나. 말해준 적이 있어요. 상문 형은 어려서부터 자기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대요. 그냥 모두 다 파괴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서. 가만히 있어도 화가 나고 그걸 또 참을 수 없어서 사람들 몰래 무얼 부수거나 불을 붙이거나 했대요. 그러다 결국 친아버지까지 돌아가시게 만들었지만…. 그런데 어떤 사람을 만나면서부터 그런 자신을 제어할 수 있었대요. 내가 도대체 어떻게? 그 사람이 뭘 어떻게 했는데? 라고 물으니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눈을 깜빡였대요. 우습죠? 나도 농담인 줄 알았어요. 그게 말이 되냐고요. 근데 상문 형은 진지했어요. 그 사람이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순간이면 지금까지의 어두운 세계가 닫히고,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고….
그 얘기를 듣는데 아. 정말 그 사람은 이길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사랑할 자신은 있었어요. 상문 형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정말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죠. 나는 상문 형에게 다른 세계를 열어줄 수는 없었어요. 오히려 그 반대였죠. 상문 형이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서로 사랑해도 마음이란 결국 일방통행이라고 생각해요. 큰형님이 상문 형에게 준 것을 상문 형이 제게 주었죠. 그러니까 미워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아요. 다만 속상할 뿐이죠. 나도 상문 형에게 주고 싶었는데. 작아도 좋으니까 무엇이라도 줄 수 있었다면. 그랬으면….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을 텐데.”
나는 그의 속눈썹을 생각했다. 눈을 찌푸리고 먼 곳을 응시할 때면 파르르 떨리던 그 속눈썹을. 눈을 감을 때면 아래 속눈썹과 착 달라붙어, 쉬 떨어지려 하지 않던 부드러운 솔기를.
“네 덕분에 상문 형은 죽기 전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어. 고맙게 생각한다.”
“뭘요. 내가 고맙죠.”
식사를 마치고 우리들은 식당 앞에서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해는 오토바이에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그 틈을 타 나는 부질없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이젠 어디로 갈 거니.”
“음. 글쎄요. 되는 대로. 아, 이거 왜 이렇게 안 걸려.”
“조심해서 다뤄. 다칠라.”
“아…. 참. 나 결심했어요.”
“뭘.”
“죽일 거예요.”
“…뭐?”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상문 형의 말도 되새겨 보았고요. 하지만 역시 무리예요. 난 결심했어요. 박창현을 죽이기로.”
“아해야!”
“물론 쉽진 않겠죠. 오랜 세월이 걸릴 테고. 그러니까 난 변할 거예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거예요. 그래서 언젠가는 그놈에게 칼을 꽂아주고 말겠어요.”
여전히 아이 같은 말투였으나 아해의 눈빛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띠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아해를 보았다. 아이의 역할을 마친 그는 이제 제 나이 또래 정도의 소년으로 보였다. 나는 어떤 말로도 그를 말릴 수 없음을 깨닫고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게…. 의미가 있을까?”
“의미 같은 건 상관없어요. 단지, 그러고 싶을 뿐. 개인적으로도 그 새끼랑은 한번 부딪치지 않으면 안 돼요. 내가 산산조각 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해야만 해요. 그 새끼는 이제 내 삶의 목표예요. 두고 보세요. 언젠가는 박창현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될 테니.”
“아해야.”
“이젠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도 돼요. 상문 형이 죽을 때, 아해도 죽었어요. 지금부터 난 아해가 아니에요. 본명으로 불러주세요.”
“원래 이름이 뭔데?”
“원래 이름은…. 아! 걸렸다!”
오토바이 시동 소리에 묻혀 그의 본명은 들을 수 없었다. 나는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넸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명함을 받아들고는 점퍼 앞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었다.
“죽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요.”
아해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멀어졌다. 그 와중에 아해에게 건넸던 명함이 바람에 나부껴 내 발밑에 돌아와 떨어졌다. 다시 그와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갔다. 나는 지평의 한 점이 되어 사라지는 아해의 오토바이를 마지막까지 바라보며 내가 원래 있던 세계와. 채 뿌리지 못한 큰형의 분골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튿날. 나는 숲을 방문했다.
그를. 그가 원래 있던 세계로 되돌려 주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