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2)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세월은 유수라 하던가. 그로부터 삼 년. 거짓말처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집을 나온 나는 P대 앞에 하숙을 들어, 남은 대학 생활 동안 내내 책만 붙들고 살았다. 책은 유용한 도피처였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나온 시간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고 싶었다. 펼쳐보고 싶을 때 펼쳐보고 어느 때건 마음먹었을 때 탁 덮을 수 있는.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가장 깊이 공감하는 절망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것이 아닌 절망. 그것이야말로 가장 내게 근접한 절망인 것이다. 나는 그처럼 우리 형제의 역사도 모두 피안이 되길 바랐다. 나는 차안의 존재. 내가 나의 절망과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저 멀리 지면 위의 피안으로 떠나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고 있을 때면 나는 촉촉한 진흙으로 발린 구덩이에 몸을 숨긴 것마냥 포근하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생활비는 입주 가정교사를 하며 벌어들인 돈으로 충당했다.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되고 막막한 일이었다. 한 끼 식사, 하루의 잠자리, 한 권의 책을 소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빠듯한 일인지 나는 비로소 깨달았고. 그래서 정말이지 악착같이 살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 집에 있는 동안 나는 그들만을 생각했는데. 아무리 멀어진다 해도 그들을 덜어내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 자신했는데. 그 집을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보낸 이십여 년의 기억은 자꾸만 흐려졌다. 한때 기억 속에서 찬란히 빛나던 숲의 전당은 흉물스럽게 변해 버렸고 주연 배우가 모두 떠나버린 무대는 황량한 바람만이 휑하니 불어 닥쳤다. 나는 그 모두를 내 정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묻어둔 채 한동안 그 존재를 잊고 살았다.

가장 험난한 망각의 위기를 겪은 것은 어머니였다. 너무 오래 보지 못했고,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세월에 심신을 내맡긴 노인처럼, 어머니의 기억은 슬어가고 있었다. 나는 문득 자문했다. 어머니는 존재하기나 했던 것일까. 정말로 어머니가 이 모든 비극의 근원일까. 아니, 질문하기 전에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에겐 어머니가 필요했다. 어머니는 필요에 의해 존재했다. 이 개 같은 비극은 꽃 같은 원인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얼굴이 다 닳아 뭉개진 석상 같은 어머니 앞에 무릎 꿇고 오열하거나, 주먹을 휘두르며 저주를 퍼부었다. 너무 자주 넘겨본 책처럼 어머니는 너덜너덜해졌다. 타버린 책처럼 아버지는 새까맣게 그을렸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은 자물쇠 달린 책이었다. 내겐 나를 쓰고 적을 새로운 페이지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나는 평범한 삶 속으로 녹아들고자 노력했다. 하숙 생활은 실로 편안했다. 주인 부부는 나를 친아들처럼 대해주었고 그 딸은 내게 은근한 호감을 품고 있었다. 과외를 하는 내내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교과서가 아닌 내 얼굴이었고 나는 그대로 그들 가족의 일원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 가족의 최대 장점은 평온함과 무난함이었다. 그것은 내 가족으로부터 한 번도 받지 못한 따스한 미덕이었다. 그 안에 있으면 나는 배신자도 살인자도 아닌 그저 무뚝뚝하고 수더분한 이십 대 중반의 청년으로 보였다.

내 졸업식 사진은 나의 가족들이 아닌 그녀의 가족들로 채워졌다. 찍어낸 것처럼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사진을 보며 나는 내가 그들 가족 한가운데 깊숙이 침투했음을 실감했다. 마르고 닳도록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 소녀는 결국 대학에 떨어졌다. 응시대학의 합격발표가 있던 날 그녀는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키워온 마음을 고백했고, 나는 낙방의 책임을 물어 때 이른 결혼을 약속했다.

시간은 다시 흘러 나는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 교사로서 첫 발령을 받았다. 우리들은 그녀 부모의 공인 하에 한방을 쓰고 있었고, 그녀는 이미 임신 오 개월째였다. 취직과 동시에 본격적인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천 일 남짓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처음으로.

그들을 생각했다.

결혼을 앞두었기 때문에? 아니. 그런 비루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을 차마 완벽히 매장하지 못했고, 흐르는 시간에 씻겨 머리칼, 손가락 끝, 입술의 귀퉁이 등 수많은 그들의 편린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가족을 원하면서도 나는 그 속에서 늘 내 가족이 그리웠고, 새 가족의 따스함이 스며들수록 나는 숲의 명암과 그들의 적나라한 인간성을 추억했다.

나는 따분했던 것이다. 새로운 가족은 내게 어떤 자극도 주지 못했다. 문득 그들이 간절해졌다. 나에겐 친구도 부모도 없었다. 나에겐 형제가 전부였다. 비좁은 인간관계라 비난받아도 마땅히 변명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굳게 침묵했다. 누구에게 무엇을 이해시키랴. 숲의 기억은 오직 우리 네 형제만의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설령 그것이 내 하나뿐인 아내가 될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리하여 나흘 밤을 뒤척이며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겨우 나는.

그들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큰형과는 어렵지 않게 연락이 닿았다. 그는 광주 변두리 지역에서 요양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큰형이 전라도로 떠난 것은 충격이었다. 지금에야 우스운 이야기일지 몰라도 그 시절에는 경상도 토박이가 자발적으로 전라도에 이주한다는 것은 이민을 가는 것만큼이나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 시절의 지역감정은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게다가 큰형은 몸이 온전치도 않은 사람. 나는 그가 잘 지내고 있나 걱정이 되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나는 결심을 굳히고 운전대를 잡았다. 하지만 바로 출발할 수는 없었다. 심장이 고장 난 기계처럼 사방으로 날뛰며 요동쳤다. 나는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애써 잊으려 했던 흥분이 전신을 옥죄었다. 그들에게 가는 것이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끝끝내 주워 담고 마는 나의 형제들을 향해. 나는 있는 힘껏 액셀을 밟았다. 부웅, 하고 바퀴가 지면을 차는 소리가 났다. 차는 광주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 * *

“잘 왔어.”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하는 큰형은 전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나는 그가 나의 방문을 반가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동네는 외진 곳이라 볼 것이 없다며 큰형은 나를 시내로 데리고 갔다. 아침도 먹지 않고 달려온 터라 허기가 졌다. 큰형은 자신이 잘 아는 식당이 있다며 그리로 안내했다.

식당은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볕이 잘 들고 내부가 청결했다. 우리들은 따스한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큰형은 자리에 앉자마자 수저를 챙기고 컵에 물을 따랐다.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느긋하게 그를 감상했다. 머리가 많이 길어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희멀건 했지만 입술은 예전의 핏빛을 되찾아 한결 탐스러웠다. 안쓰러울 정도로 깡말라 있던 몸에도 적당히 살이 붙어 훨씬 보기 좋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그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되었다. 평온하고 고요한. 모든 감각과 자극이 절제된 생활. 그는 적당히 행복해 보였지만 나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 만족하는 것일까.

나는 마지막 단추까지 꼭 채워진 그의 셔츠 너머를 상상했다. 한 꺼풀만 뜯어내면 곧 불미스러운 낙인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나의 노골적인 시선에 큰형은 쑥스럽다는 듯 설익은 미소를 흘렸다. 풍부한 정오의 볕에 부스러지는 그 미소는 절로 한숨이 나올 정도로 황홀하고, 아름다웠다.

“여전하네, 형은.”

“넌 좀 늙었다.”

“뭐야. 내가 늙은 게 아니라 큰형이 그대로인 거야.”

“어른이 다 됐어.”

“나이가 몇인데. 밖에서 선생님 소리 듣는 몸이야. 애 취급은 그만둬.”

“그래.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그럭저럭…. 아, 그래. 나 결혼해.”

그녀가 임신 오 개월째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셋째 형의 전철을 밟는 것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아….”

큰형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벅찬 기쁨과 절절한 체념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나는 문득 약속의 밤을 떠올렸다. 작은형이 큰형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속삭이던 밤. 큰형은 말했다. 상원이가 결혼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나의 결혼과 그의 자유는 대체 어떤 지점에서 얽혀 있었던 걸까. 또 어떤 상처가 밝혀질 것인가. 갑자기 나는 결혼한다는 사실에 지대한 흥미를 느꼈다.

“잘됐다.”

“응.”

“정말 잘됐어.”

“와줄 거지?”

“가도 괜찮을까.”

“형이 아니면 누가 와. 나한테 부모가 있어, 친구가 많기를 해. 이모님들은 와주실 거 같은데. 작은형하고 셋째 형은 찾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

아차. 이건 실수다. 형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큰형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거북한 침묵을 앞에 두고 나는 도망치듯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말이 없어지자 문득 떨어져 있던 시간의 거리감이 훅 밀려들어 나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그저 망설이기만 했다.

그 딱딱한 분위기가 슬슬 힘겨워질 즈음. 때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우리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수저를 들었다. 음식은 맛이 좋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녹여줄 정도로 깊고 구수한 맛이었다. 정신없이 이것저것 집어먹고 있는데 큰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결혼식에….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지?”

“뭐 구색은 갖추고 싶지마는. 이미 돌아가신 걸 어째. 괜찮아. 처가댁에서도 내 사정 다 알고.”

“그래…. 좋은 사람들이구나.”

“혹시 작은형이나 셋째 형. 소식 들은 거 없어?”

“…어떻게 사는지는 알아.”

“어떻게 산대.”

큰형은 대답 대신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재회 이후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가게 안에 손님이라곤 우리 두 사람뿐이라, 대화가 끊길 때마다 따가운 침묵이 가게를 가득 메웠다. 불편한 분위기를 타개할 겸 나는 가게 주인에게 TV를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뉴스 시간이었다. 뉴스 앵커의 교과서적인 목소리가 또박또박 적막한 공간을 수놓았다.

“건너 건너 들었는데. 셋째 얼마 전에 출소했다더라.”

“응? 왜? 감옥 갔었대?”

“도박하다가. 사기죄로.”

“그렇구나….”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어서 꽤 크게 터졌는데도 1년 받고 들어갔대. 그 녀석답지. 지금은 나와서 또 화투짝 돌리고 있다더라.”

“아이는 낳았대?”

“애는 유산됐어.”

“언제…. 아! 혹시.”

큰형은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도톰한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던 끈적한 핏줄기를 떠올렸다. 떫은 죄책감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날 밤?”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구나. 전혀 몰랐어.”

“그래.”

“나는 아일 가졌는데….”

대화가 끊기고 나면 크게 틀어놓은 TV 소리가 아플 정도로 생생히 귀에 박혔다. 뉴스는 최근 부산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조직폭력배에 관한 기사가 주를 이루었다. 세상일 돌아가는 데 무심한 나도 장인어른, 장모님이 이야기하는 것을 얼핏 들은 일이 있었다. 야쿠자와 손을 잡은 새로운 조직이 부산에서 그 힘을 불리고 있다고. 나는 앞에 있는 큰형도 잊은 채 잠시 뉴스에 집중했다.

…시체의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사망자는 28세 이XX. 45세 전XX. 동래파라 불리는 조직폭력배의 일원인 이들은 지난 12일 서면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자취를 감춘 뒤 일주일이 지난 오늘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Y부두에 떠오른 이들의 몸은 밧줄로 묶여 있었으며 사망 시각은 실종 시각과 동일한 12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들이 조직 간의 세력 다툼에 밀려 살해된 것으로 보고 현재 용두파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용의자를 추려내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요즘 부산 난리구나.”

…실종 접수된 동래파의 간부는 모두 아홉 명으로 시체가 발견된 두 명 이외에도 사망자가 더 발견될 것으로 추정. 경찰은 서면 일대 및 인적이 드문 부두를 중심으로 수색 작업에 들어갔으며….

“군부정권도 별수 없네. 조직폭력배 하나 못 다루고.”

“형….”

“응?”

“나. 저 사람들 알아!”

“그래?”

“작은형을 찾아왔던 사람들이야! 저 두 사람…. 틀림없어. 내 눈으로 봤다고, 저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작은형을 협박했었어!”

“그런데 죽었구나.”

“와, 이거 기분 이상하다. 진짜.”

…경찰은 용두파의 우두머리 하성룡 및 간부 이상문을 중심으로 수사망을 좁혀나가고 있으며 출입국 조사서에 협력을 요청해 놓은 상태….

손에서 떨어진 숟가락이 쨍강, 하고 바닥에 그 몸을 부딪치며 튀어 올랐다. 동명이인이라고 얼버무릴 수도 없었다. 도대체 언제 찍은 사진일까. 감시 카메라에서 잘라낸 듯한 그 사진은 앵글을 무시한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를 듯 입에 문 담배, 깃을 세운 검은 셔츠, 가까스로 눈이 비치는 선글라스. 수많은 연막에도 나는 그를 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형, 저 사람. 작은형 맞지.”

“너 설마 모르고 있었던 거야?”

큰형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만나보지 않을래?”

“만나고야 싶지, 근데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내가 알아.”

“어떻게.”

“만나러 가줘.”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큰형은 가방을 뒤적여 수첩을 꺼냈다. 모서리가 마모되고 종이 색이 바랜 낡은 수첩이었다. 수첩은 모든 지면이 빼곡한 글씨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작은형의 주소와 연락처가 적힌 면을 뜯어 나에게 건넸다.

“옮겨 적으면 되는데 왜 뜯고 그래.”

“내가 가지고 있어 봐야 아무 소용없어.”

“그렇지만.”

“부탁이야. 너밖에 말릴 사람이 없어.”

“…만나는 볼게.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

“그래.”

연락처를 쥐고 있는 손이 어쩐지 묵직하게 느껴졌다. 작은형이라…. 큰형을 만나는 것보다 더 긴장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큰형을 집에 바래다주었다. 운전을 하는 내내 큰형은 말이 없었다. 그의 침묵은 무게가 남달랐다. 나는 그가 입을 닫고 있을 때면 늘 세상이 닫혀버린 듯한 감각에 목이 졸렸다. 고요한 그의 존재는 인적이 드문 거리처럼 내게 수많은 것을 되새김질하게 만들었다. 운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넋 놓고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응?”

“아무리 치명적인 것이라도 진실이라면. 밝혀져야 하는 걸까?”

“글쎄. 너무 뜬금없는 얘기라. 뭐라고 딱 부러지게 대답을 못 하겠네.”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거라도? 말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방종일까? 그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 될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뭐.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모르는 게 약이라….”

큰형의 집은 그의 말마따나 시내의 외곽.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해서도 우리들은 차 안에 우두커니 앉아 일어날 줄을 몰랐다. 장인어른의 차가 그렇게 아늑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결국 장소는 중요치 않았던 것이다. 그와 함께 있는 곳이 곧 나의 집이었다.

고장 난 히터 때문에 차 안에는 서서히 냉기가 스며들었다. 큰형이 바르르 몸을 떨었다. 한기를 느낀 모양이었다. 마지못해 차에서 내려 그를 밖으로 끌어내었다. 나는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큰형의 목에 둘러 주었다.

“밤엔 추우니까 잘 입고 다녀.”

“손으로 만든 거 같은데. 신부 될 아가씨가 만들어 준 거야?”

“응. 뭐 그렇지.”

“그럼 안 돼. 가지고 가.”

“잃어버렸다고 하면 돼. 또 떠줄 거야. 형은 이런 거 떠줄 사람도 없잖아.”

“하하. 그래.”

큰형은 꼭 다섯 살배기 꼬마처럼 이를 드러내고 해사하게 웃었다. 보기 드문 미소였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아득한 미소. 그것은 집을 벗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그의 양달이었다. 나는 그와 꼭 같이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 어서 가.”

“그래…. 조심해서 가라.”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돌아서는 큰형의 뒷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여 지켜보는 이에게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한때 그의 몸을 탐하던 몇 마리 배곯은 승냥이들을 추억했다. 장벽처럼 그의 집을 둘러싼 검은 산의 무리가 스멀스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어디로 가도 먹이, 비정한 신의 모이라고. 존재를 지탱하지 못하는 자들의 무너져가는 신전. 제단의 희생양. 신의 체벌이라는 이름하에 분란의 불씨를 제거하려는 인간들의 얄팍한 제사. 들끓게 만드는 자. 욕망하게 만드는 자. 어쩔 수 없이 그는 공평하게 뜯어 먹혀야만 하는 운명. 난파된 세상 속에서 그는 나눌 수 없는 비상식량과도 같았다.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머릿속은 원시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들어찼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가늘게 눈을 뜨고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의 끝자락이 막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 하는 찰나. 갑자기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결혼한다는 사람 말이야….”

“응.”

“사랑하는 거야?”

시골의 밤은 어둡다. 약간의 거리만 두어도 어둠의 장막이 서로를 가로막는다. 때문에 그의 표정은 살필 수 없었다. 다만 목소리만은 또렷이 들렸다.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아니.”

“역시, 그렇구나.”

“싫진 않아.”

“그래.”

“좋아는 해. 더 좋아지겠지. 좋은 사람이니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

큰형다운 조언이었다. 나는 그에게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차에 올랐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잠시 큰형을 만난 것뿐인데 지난 몇 해 동안의 담담한 시간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교만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작은형을 만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한적한 밤의 도로를 마음 놓고 질주했다. 길은 어디로든 이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표지판에 적혀 있는 부산이란 글자를 볼 때마다 자꾸만 가슴이 들썩였다. 나는 차 안에 남아 있는 큰형의 체취를 들이키며 문득 어린 날을 회상했다. 그의 등에 업혀 있을 때면 독특한 체향이 조그마한 상아색 어깨로부터 잔잔히 피어올랐고 나는 그 어깨에 입맞춤하듯 고개를 가까이 기대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체취는 어린 시절의 그것과 거의 흡사하지 않은가. 나는 감동과 같은 전율을 느꼈다. 핸들을 잡은 손이 좌우로 흔들렸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숨 쉬는 것조차 아까웠다. 나의 호흡에 그의 잔향이 사라지는 것에 탄식하며 나는 속도를 한껏 끌어 올렸다. 길은 어디로든 이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 * *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걸 때마다 부재중이더니 이내 결번이 되어 버렸다. 한참을 망설이다 나는 큰형이 적어준 주소로 직접 그를 찾아 나섰다. 주소에 적힌 장소는 시내 한가운데 있는 으리으리한 빌딩이었다. 적의 본거지를 눈앞에 두고도 모른 채 지나치는 경찰들을 보고 있으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눈속임이란 얼마나 간단한 것인가. 분명 나도 어딘가에서 그런 식으로 맹점을 찔리고 있으리라. 그런 생각에 왠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보강 실업. 2층 한구석에 허술하게 붙은 간판을 앞에 두고 나는 잠시 망설였다.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탓인지 문과 간판에는 두껍게 먼지가 쌓여 있었다.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안에선 아무런 기척도 없었고 탁한 먼지만이 슬근슬근 피어올랐다. 좀 더 힘껏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역시 만날 수 없는 건가. 실망을 안고 돌아서는데 검은 그림자가 나를 가로막았다.

“누구….”

“보강 실업에 볼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남자는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것은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란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말투였다.

“그렇습니다만.”

검은 양복에 버건디색 넥타이를 맨 남자는 나보다 키가 컸지만 어딘가 앳돼 보였다. 남자의 얼굴은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흡사 얼음조각 같았다. 큰형처럼 사람의 혼을 빼놓는 얼굴이었지만 아름다움의 성격은 달랐다. 큰형이 악귀에게 바쳐지는 자라면, 그는 악귀로 들끓는 미남자였다. 우아한 냉혹, 고풍스러운 광기가 그의 눈언저리에서 꿈틀대었다. 나는 중성적인 외모 뒤에 숨겨진 야수의 냄새를 맡고 한 발짝 물러났다. 순간, 남자의 눈이 날카롭게 나를 위아래로 훑어 내렸다.

“누굴 찾아오셨습니까.”

“이, 이상문 씨 계시나요?”

“…이상문 씨요.”

순간 남자의 눈이 크게 희번덕거렸다. 나는 겁을 먹고 다시금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남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팔을 잡아채 뒤로 꺾은 다음 그대로 벽으로 밀어붙였다. 턱과 가슴이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뻐걱, 하고 뼈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누가 보내서 온 거냐.”

“아니…. 난 그저.”

“바른대로 말해.”

나는 힉, 하고 겁에 질린 신음을 냈다. 서슬 퍼런 칼날이 눈앞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눈과의 거리는 불과 1cm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칼로부터 얼굴을 조금이라도 떼어놓고자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늘씬한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 건지 남자는 완벽하게 나를 제압하고 있었다.

“동래 놈이냐? 아니면 경찰 쪽?”

“아니…. 아악! 아니야! 나는…. 그래. 가족이야. 가족!”

“하.”

남자의 얼굴이 조소로 일그러졌다. 남자는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는 꽤나 즐거워 보였다. 내가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그의 눈동자는 기이한 희열로 이글거렸다.

“조직 사람들 말고 여길 아는 놈은 없어. 누구의 끄나풀이냐.”

“아니라니까…! 상문 형 가족이라고!”

“한쪽 눈을 도려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단도를 쥔 남자의 손이 부드러운 호를 그리며 높이 치솟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칼끝에 반사되어 천장을 찌르고 있었다. 그 빛은 곧 내 눈을 찌를 터였다. 나는 차마 더 보지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감당할 수 없는 공포에 턱이 후들거렸다. 이런 데 오는 게 아니었는데. 쓸모없는 후회가 막 밀려들 찰나,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박창현, 그만해!”

그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눈을 뜨자 그 앞에는 단도의 첨단이 금방이라도 나를 찌를 듯 그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가까스로 동작을 멈춘 남자의 손은 흥분으로 경련하고 있었다. 남자의 힘이 느슨해진 틈을 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TV에서 본 사진과 흡사한 모습의 작은형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동생이다.”

무작스런 공포와 반가운 마음이 한데 뒤섞여 왈칵 눈물이 솟았다.

* * *

“조금 전엔 실례가 많았습니다.”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깍듯한 태도로 돌변했다. 그러나 깍듯한 태도임에도 어쩐지, 그가 내 어깨를 밟고 서 있는 듯한 중압감이 느껴졌다. 절대로 그저 그런 건달은 아니다. 분명 태생이나 출신부터 범상치 않은 남자이리라. 작은형이니 망정이지, 나는 그가 다른 이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어물쩍거린 건데요, 뭐.”

“다친 곳은 괜찮으십니까?”

“살짝 긁힌 것뿐이에요.”

사실은 보기 흉할 정도로 턱선을 따라 피부가 길게 벗겨져 있었지만 불평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곧 있을 결혼식이 걱정이었다. 이 상처, 어떻게든 감출 수 있으려나.

“이해해 주십시오. 아시다시피 요즘 언론에서 워낙 난리법석을 떠는 바람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정말 신경 쓰지 마세요. 전 작은형을 만난 걸로도 충분하니까요.”

내부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2층과 3층을 연결시켜 2층은 보강 실업이란 간판을 걸어둔 채 은신처로 쓰고 3층은 광희 섬유라는 실제 회사를 운영. 2층은 창고라는 미명하에 공식적으로 잠가 두고 실제 조직의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실제 섬유 회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3층의 광희 섬유는 전면 개방해둔 상태이지만 드나드는 것은 공장의 관리 부장과 영업 부장뿐. 이들도 모두 조직에서 심어둔 복병들이다. 경찰이 들이닥칠 경우를 대비하여 만약의 경우 창밖으로 뛰어내릴 수 있도록 간부들은 모두 2층에 모여 있으며 나처럼 2층에 신원불명의 방문자가 나타날 경우 3층이나 2층의 숨겨진 입구를 통하여 뒤에서 급습 -혹은 조무래기를 보내 일단은 정탐- 간단히 처리해버리는 것이다. 조금 전의 경우에도 박창현과 작은형은 모두 3층으로부터 내려왔다. 여간 신기한 구조가 아니었다.

“자리, 피해드릴까요. 형님.”

“…그래.”

“그럼, 저는 광희 쪽에 올라가 있겠습니다.”

박창현은 작은형과 나에게 깍듯이 인사를 올린 다음 3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시킨 것인지 곧 3층에서 한 아가씨가 내려와 가지런히 깎은 과일과 따뜻한 커피를 내왔다. 작은형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나가라는 손짓을 했고 그녀는 작은형에게 다소곳이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불편하지. 이런 분위기.”

“어? 그렇지…. 뭐.”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얼굴이 나와 눈을 맞추는 순간 부드럽게 풀어졌다. 하지만 어딘가 위화감이 드는 미소였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도 결국 아까 서슴없이 내 눈앞에 칼을 들이대던 그 깡패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자 괜히 소름이 끼쳤다. 작은형 역시 폭력을 휘두를 때는 거침이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조직폭력배는 확실히 개인의 폭력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전문적인 흉포함. 습관처럼 내뿜는 살기. 나를 향해 어렴풋이 미소 짓는 작은형에게서는 박창현과 같은 것이 느껴졌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아, 그게.”

“형이 알려 줬구나.”

나는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형…?”

“그래. 형. 셋째가 알려줬을 리는 없고.”

“으응. 형이 알려주긴 했지만….”

“그래. 잘 지내고 있다지?”

“응. 건강해 보이더라.”

“다행이네.”

나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작은형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탁한 연기가 청량한 햇살 속을 자근자근 침투했다. 빛을 등진 작은형의 모습은 역광과 담배 연기로 인해 다분히 몽환적이었다. 나는 그를 빛이 바랜 고화(古畵)를 보는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결국 이 길로 들어온 거야?”

“그런 셈이지.”

“언젠 안 한다더니.”

“교도소에 있을 때부터 이미 얽혀 있었어. 그래도 이 짓만은 안 하려고 발버둥 쳤는데.”

“그런데?”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의 손에 들린 담배처럼 내 안에서 무언가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내가 잘하는 게 이것밖에 없잖냐.”

“형이 잘하는 게 뭔데.”

“남한테 충성하는 거.”

씁쓸히 웃는 그의 얼굴에는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다. 옛날부터 이 사람은 알기 어려웠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를 몰라 잠자코 앉아 커피를 홀짝거렸다.

“넌, 어때.”

“나? 아, 그래. 나 결혼해.”

“…정말?”

왜인지 그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큰형도 작은형도 순순히 나의 결혼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럼. 청첩장도 가져왔어. 와줄 거지?”

“내가 가도 괜찮겠냐.”

“물론이지! 큰형도 그런 말 하더라. 형제라는 자각이 있긴 있는 거야?”

“그래…. 아직 수배가 떨어진 건 아니니까 괜찮겠지.”

“저기, 큰형도 올 건데. 괜찮겠어?”

“형이야 당연히 오겠지. 상관없어. 너야말로 형제라는 자각이 있는 거냐?”

“하하. 그렇네.”

평생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나. 가족의 역할만을 충실히 이행하자는. 연인에서 가족으로의 관계변환. 완벽한 단절도 아닌데 왠지 그쪽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마. 절대 소란 피우지 않도록 할게.”

“응. 식장이 뒤집어져도 좋으니까 꼭 와줘. 셋째 형은….”

“그 녀석은…. 힘들 거야.”

“역시. 그런가.”

“다음엔 집으로 와라.”

작은형은 조그마한 쪽지에 살고 있는 집 주소를 적어주었다. 작은형의 집은 한때 과외를 나가던 집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는 쪽지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가방 깊숙한 곳에 잘 넣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형은 아무래도 다른 볼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중은 못 나가겠다.”

“응. 괜찮아.”

“그럼. 그날 보자.”

3층의 광희 섬유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문을 나서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고꾸라지고 말았다.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뉴스에서 본 그 남자들. 깊이 생각할 여지도 없었다. 작은형이 죽인 것이다. 작은형은 이제 살인 같은 건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저지르는 그런 인생을 사는 것이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나는 드물게 내비쳤던 그의 아픈 면모들을 떠올렸다. 그런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뒤쫓아 오는 소리가 났다. 건물 입구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자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박창현이 서 있었다.

“태워다드리겠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사직동 방면이시죠? 마침 그쪽으로 갈 일이 있습니다.”

“정말 괜찮은데….”

“무례를 저질렀으니 만회해야죠. 사양하지 말고, 타세요.”

엉겁결에 그의 차에 몸을 실었다. 외제차는 처음인데다 조금 전까지 목숨을 위협하던 사람과 함께하려니 더욱 어색했다. 나는 단단히 안전벨트를 매고 부러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가 불편합니까?”

“낯을 좀 가리는 편이라.”

“이해합니다. 그런 짓을 당하고 불편해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지요.”

“서울 출신이죠?”

“네. 역시 티가 납니까?”

“억양이 깔끔해서요. 우린 아버지가 억지로 서울말을 쓰도록 가르쳤지만 그래도 아주 부산 억양이 없다고는 할 수 없거든요.”

“아버지가, 엄하셨나요?”

아버지라…. 내게 그 이름만큼이나 어려운 질문은 없었다.

“천차만별이셨죠. 저한테는 너그러우신 편이었습니다.”

“저하고는 반대군요. 제 아버지는 저에게만 유독 엄했습니다.”

“그것참 속상한 일이죠.”

“아뇨. 차라리 저에게만 엄하게 구는 편이 좋았습니다.”

“그래요….”

“그래야 더 맹렬히 죽이고 싶어지니까요.”

나는 운전을 하고 있는 그의 옆얼굴을 돌아보았다. 시선을 의식한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불시에 소환된 부친살해의 욕망에 절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는 이미, 그 욕망을 충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농담입니다.”

“네….”

나는 마지못해 수긍했다. 농담인 편이, 듣기에 편하니까. 또 그 이상은 파고들고 싶지 않으므로.

“아. 저 골목에서 돌면 됩니다.”

“횡단보도 건너 두 번째 골목 말씀이시죠.”

“네.”

“상문 형님을 처음 뵙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는 누군가와 참 많이 닮았다고. 그런 사람이 세상에 둘이나 존재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그런 점에서 흥미로웠죠.”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까?”

“아뇨.”

별다른 의미를 담지 않은 질문이었다. 궁금증에서 비롯된, 대답을 요하는 질문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박창현은 얼음송곳처럼 반응했다. 백자같이 매끈한 미간에 금이 갔다. 스스로도 기가 차다는 듯 그는 바짝 날이 선 조소를 흘렸다. 주변을 움츠리게 만드는, 냉랭한 비웃음이었다. 그는 이를 갈며 다시 한번 대답했다.

“그럴 리가.”

정을 때리는 듯한 대답이었고,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 듯한 표정이었다. 도리어 호기심이 일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절박한 불안에서 비롯된 호기심이었다. ‘누군가’에 대한 감정이 작은형에 대한 감정으로 이어질 확률이 컸으므로. 또한 그는 누구에게도 충성할 것 같지 않아 보였기에. 불안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물론 함께 지내보니 ‘그 사람’과 다른 점도 보이더군요. 의외로 저와 닮은 점도 있고요. 미약하게나마 동질감 같은 것도 느꼈습니다. 이 세계에 몸담게 된 계기는 정반대지만요.”

“창현 군은 어떤 계기로…. 아, 물어봐도 되는 건가요?”

“형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자신은 누군가를 버리기 위해 조직에 들어왔다고. 저의 경우엔 버림받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요. 누구든 죽일 자신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그 사람이 사는 것. 살아 있는 것. 그것만이 내 모든 의지입니다.”

“열렬한 사랑이군요. 부럽습니다. 나는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거든요. 곧 결혼을 하는데도…. 그래요.”

“글쎄요. 저는 만인을 적으로 만드는 이 마음이 때론 증오스럽습니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차가 집 앞에 도착해버렸다. 그는 먼저 내려 손수 차 문을 열어주었다. 거북한 친절이었다. 귀족에게서 귀족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그게, 일종의 놀이 같았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그의 차는 좁은 골목을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다. 차체가 큰 편이라 뒤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여간 아슬아슬한 게 아니었다. 나는 차가 사라지고도 한참을 대문 앞에 서 있었다. 행여 불길한 것을 묻혀 귀가하는 것은 아닌지, 괜한 걱정이 되었다. 나는 그 옛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옷을 모질게 털어낸 다음 초인종을 눌렀다. 그렇게라도 털어내고 싶었다. 박창현의 여파를.

그날 밤 나는 박창현이 말한 동질감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보았다. 분명 그 두 사람은 닮아 있었다. 경주마처럼 옆을 보지 못하고 그저 한곳으로만 향해 달리는 속성. 한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우둔하다 싶을 정도로 절박한 사랑. 그리고 그로 인한 잔인한 폭력성. 아니, 어쩌면 사랑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폭력성의 정당화를 위한 변명일지도 모르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비정상적인 집착이 그들을 강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들의 사랑이 빛나는 것은 아름다운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랑으로 인해서 자신이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누군가를 못 견디게 사랑하고 싶어졌다. 그녀를 좋아한다. 그러나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와 몸을 나누었고 그녀는 나의 아이를 가졌다. 나는 이제 어떤 이유로든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서로를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싫증과 염증에 진절머리가 나 상대방을 경멸하게 될지라도 –작은형이 자신의 뼈를 깎아내며 돌아섰듯이- 상대방의 전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녀를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그녀를 위해서 개미 한 마리조차 시원하게 죽일 자신이 없었다. 나는 무모한 사랑이 불가능한 인간이었다. 나는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였다. 결혼식은 사흘 뒤. 그러나 그것은 수문장이 없는 관문이나 다름없었고 나는 느린 걸음으로 그것을 통과하기만 하면 되었다. 내가 걸어갈 길은 매양 그렇게 느긋하기만 할 평지였고 나는 가만히 다른 이의 비상과 추락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협곡들.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는 그 절경에 비하면 누구나 쉽게 허락하는 내 목초의 평지는 지극히 평온하고 둔중하여 누구도 나를 찍어가지 않았으며.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내 마음은. 이도 저도 아닌 나의 사랑 따위는. 내가 한때의 치기로 시시하다고 치부해버린 타인의 열정보다도 훨씬.

시시했다.

* * *

폐기름 층 같은 두터운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거리는 주말답지 않게 한산했고 도로를 메운 자동차들은 경쟁하듯 와이퍼를 돌렸다. 그것이 내 결혼식 날 아침의 풍경이었다.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내내 그녀는 찔끔찔끔 눈물을 흘렸고 길일이라며 결혼식 날짜를 받아왔던 장인어른은 멀리 창밖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했다.

겨우 시간에 맞춰 들어간 결혼식장에는 일찍 도착한 큰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색 양복에 흰 셔츠를 갖추어 입은 큰형은 환자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갈해 보였다. 나는 큰형에게 다가가 힘껏 그를 끌어안았다. 처가댁 식구들은 그런 나와 형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큰형은 그들에게 단정히 인사를 올렸고 그녀는 언제 눈물 같은 걸 흘렸냐는 듯 밝은 얼굴로 큰형과 악수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작은형이 도착했다. 은장 커프스를 단 감색 양복에 청색 넥타이를 매고 은테 안경을 낀 그의 모습은 보강 실업에서 만났을 때와는 전혀 딴판으로, 어디로 보나 엘리트 회사원처럼 보였다. 그는 나와 큰형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먼저 식장으로 들어섰다. 우산을 접느라 한발 늦은 박창현이 그 뒤를 따랐다. 박창현 역시 누가 보아도 조직폭력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차림으로 나타나 나를 놀라게 했다.

“축하드립니다.”

악수를 마친 박창현은 작은형을 뒤따라 식장으로 들어갔다. 잘 차려입은 박창현에게서는 귀족의 품격이 흘렀다. 그는 마치 범접할 수 없는 성(城) 같았다. 역시나. 그것이 그의 천성인 듯했다. 박창현이 사라지자 줄곧 내 뒤에 숨어 있던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저분이, 셋째 형님이에요?”

“으응. 아니. 저 사람은 작은형 아는 사람. 셋째 형은 못 와.”

“그래요…. 난 먼저 대기실 가 있을게요.”

“이따 봐.”

“응.”

큰형은 아버지 대신 내 곁에 서 있었다. 몇몇 고등학교 친구들은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손님들을 맞이하면서도 큰형의 정신은 딴 데 가 있었다. 그는 틈틈이 먼저 식장에 들어가 있는 작은형과 박창현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표정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신경이 쓰이긴 하는 모양이었다. 또 그는 하객들이 찾아와 인사를 하는 와중에 몇 번이나 식장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는 입장하는 하객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불청객이 찾아올까 불안해하는 기색이었다.

나 또한 정신이 없었다. 비가 그치고 하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이 사람 저 사람,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던 도중. 나는 큰형을 바라보고 있는 작은형의 시선을 낚아챘다. 그는 갈대에 몸을 숨긴 맹수처럼 은테 안경 너머로 본심을 숨긴 채 큰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천천히 몸을 돌려 다시 앞을 보았다. 술래잡기. 수수께끼. 다음엔 숨바꼭질인가. 결혼식장 입구의 회전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회전문의 4개로 나누어진 칸 대각에 자리하여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듯하면서도 결코 닿을 수 없고, 도망치는 듯하면서도 결코 멀어질 수 없는 그들의 운명.

그리고 그날 나는 그녀와 같은 칸에 몸을 실었다.

신랑 입장, 이라는 신호와 함께 나는 의미 있는 걸음을 내디뎠다. 흘끗 본 신랑 측 좌석은 신부 측의 삼 분의 일도 채워져 있지 않았다. 큰형은 작은형과 한 칸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걸어가는 길 정면에는 공단과 레이스로 무장한 그녀가 동그란 어깨를 떨며 간신히 서 있었다. 나는 결혼 선서 대신 묻고 싶었다. 정말 나에게 인생을 맡겨도 괜찮겠어?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는 동안에도 나는 그 생각뿐이었다.

우리들은 함께 박수 세례 속을 걸었다. 장인어른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고 나는 덥석 그를 껴안았다. 그 모습을 보고 그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내 다정하고 새로운 가족은 다소 감상적이었다. 큰형은 신혼여행 때 쓰라며 미리 챙겨온 봉투를 건넸다. 몇 번이나 사양했지만 형으로서 이 정도는 하게 해달라는 말에 그만 지고 말았다. 그는 언제나 확신범. 나는 늘 그가 하는 대로 이끌리기 마련이었다.

“작은형님하고도 인사해요.”

큰형하고만 붙어 있는 나를 보다 못한 그녀가 조용히 채근했다. 워낙 생소한 모습으로 나타난 까닭에 눈앞에 있는데도 그를 자꾸 잊어버리고 있었다. 작은형은 화환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어마어마한 두 화환을 번갈아 보며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작은형에게 다가갔다.

“형. 와줘서 고마워.”

“아니, 내가 고맙다. 불러줄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 자주 자주 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작은형에게 살가운 애교를 부렸다. 한참 어린 그녀를 보며 작은형은 미리 준비한 듯한 부드러운 표정으로 미리 준비한 듯한 인사성 멘트를 꺼냈다.

“제수씨. 상원이 잘 부탁합니다. 이 녀석이 워낙 막내라 다 컸는데도 걱정이 되네요.”

“그럼요! 맡겨주세요. 아, 오빠. 결혼식 하는 도중에 화환이 왔대요. 맞다. 이거 두 개죠?”

천진난만한 그녀의 질문에 작은형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요.”

“비가 와서 늦었다던데. 하나는 이름이 써져 있는데, 하나는 이름도 안 써져 있었대요.”

“그래? 잠깐. 내가 봐볼게.”

부산 경찰청장 김철형.

어리둥절했다. 부산 경찰청장이라니 그런 높은 사람과는 만난 적도 없는데. 그러나 김철형이라는 이름만은 어딘가 눈에 익었다. 나는 어렵지 않게 이름의 주인공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 남자였다. 큰형의 친아버지. 나에게 돈뭉치를 쥐여준 남자. 김철형. 어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으랴. 그가 부산 경찰청장이었다니. 적잖이 놀란 나는 이것도 알고 있었냐는 듯한 눈빛으로 작은형을 올려다보았다. 작은형은 내 시선을 피하며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부산 경찰청장이라니. 와, 나 정말 놀랐어요. 돌아가신 아버님이 굉장하신 분이었나 보네요.”

“그렇지도 않아….”

작은형과 나는 동시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큰형이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무리한 탓일까.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져 있었다.

“화환이 왔구나.”

“하나는 김철형이, 아니. 김철형 씨가 보낸 거야.”

김철형이라는 이름에 큰형은 천천히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다음 대답했다.

“괜찮아. 예상했던 일이니까.”

“…그래.”

우리들의 시선은 이름이 없는 화환으로 옮겨졌다.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모두가 그 화환이 누구로부터 보내진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 않는 가운데 서글픈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그를 위한 짧은 묵념이었다.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에 그녀는 살포시 자리를 피했다.

“하나는 이름이 없구나.”

“차마, 적을 수 없었던 거겠지.”

“몹쓸 녀석….”

나는 이름 없는 화환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큰형은 위로하듯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나는 괜찮다는 듯 어깨를 그러쥔 손을 맞잡았다. 작은형은 손도 대지 못하고 화환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떠나간 형제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그의 자리는 늘 비어있는 자리나 다름없었지만, 남겨진 자리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자리의 무게는 확실히 달랐다.

“형님. 돌아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박창현의 등장으로 익명의 추모식은 끝이 났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작은형, 가는 거야?”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럼 뒤는 형한테 부탁할 테니까.”

“아, 그래.”

큰형도 그에게 불리는 형이란 호칭이 여간 어색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신혼여행 다녀오면, 한번 집에 들러라.”

들어올 때는 정문, 나갈 때는 뒷문이라…. 나와 큰형은 박창현과 함께 멀어지는 작은형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는 작은형에 반해, 박창현은 작은형 몰래 흘끗 우리를 뒤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은 곧장 큰형에게로 꽂혔다. 그는 혀를 드러내고 입술을 핥으며 일부러 큰형을 도발했다. 도무지 그의 생각을 가늠할 수 없었다. 큰형의 반듯한 이마가 가늘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에게 뭐라 말을 건네려는 찰나, 차가 도착했다.

나와 아내는 하객들에게 등을 떠밀리다시피 차에 올라탔다. 북적이는 사람들의 뒤편에서 큰형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를 홀로 남겨 두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는 차 안에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무리가 흩어진 뒤에도 그 자리에 서서 계속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곁에는 아내가, 작은형 옆에는 박창현이 있었지만 큰형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가만히 아내의 손을 잡았다. 아내의 손은 촉촉하고 따뜻했다. 아내는 볼을 붉히며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광주로 돌아갈 큰형을 생각했다. 차창에 몸을 기댄 채 검게 물드는 산과 몽롱한 저녁 풍경을 바라볼 그를 생각하며 나는 그녀의 머리 위에 조심스레 내 머리를 기댔다. 창밖으로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가 불청객이 된다. 개미 떼처럼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 * *

삼박사일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작은형의 집을 찾았다. 그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좀 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집은 다대포 근처의 상가 건물 3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대포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집이었다. 나는 밤바다의 장엄함을 감상하며 띄엄띄엄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철썩철썩 울리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파도가 발을 디디고 선 자리까지 밀려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똑. 똑. 똑. 작은형이 미리 지시한 대로 간격을 길게 두고 세 번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나는 작은형을 기대하며 집으로 들어섰으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작은형이 아닌, 검붉은 머리칼의 자그마한 소년이었다.

“누구세요?”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잠시간의 착각을 분명히 구분지어 주었다. 붉은 머리칼과 쇠를 달군 듯한 목소리를 제외하면 그는 너무나도 큰형을 닮아 있었다. 큰형은 이제 그렇게 어리지 않다. 알면서도 나는 그를 본 순간 어이없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열다섯 살 무렵의 큰형이 눈앞에 있다고. 아니, 그것은 어쩌면 소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소년은 패닉 상태에 빠진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기며 가볍게 하품을 했다. 소년은 작은형의 것인 듯한 헐렁한 셔츠 한 장만을 걸치고 있었다. 셔츠는 제대로 단추를 채우지 않아 가슴이 훤히 드러나 있었고 밑단 아래로 쭉 뻗은 다리는 아슬아슬하게 휘어 있었다.

“아, 글쎄. 누구냐니까요.”

“이상문 씨 집 맞지?”

“아저씨가 상문 형을 어떻게 알아요?”

작은형은 형이고 나는 아저씨라니. 제멋대로의 호칭에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상문 형 동생인데, 상문 형 집에 있으면 좀 불러줘.”

“으응? 거짓말. 하나도 안 닮았잖아!”

소년은 고양이 같은 몸짓으로 의자에 폴짝 뛰어올라 앉았다. 가느다란 다리 사이로 주먹만 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허벅지 사이의 벌어진 공간에 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진짜야. 실제로는 사촌지간이니까 얼굴이 다를 수밖에 없지.”

“흐응. 조금 닮은 거 같기도 하고.”

“내 이름은 이상원이야. 우리 집안은 ‘상’ 자 돌림이거든. 상윤, 상문, 상훈, 상원. 아니. 그런데…. 너야말로 누구냐?”

“나요? 나 상문 형 아들이에요. 아들이자 애인.”

소년은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웃었다. 소년의 이는 상아처럼 표면이 매끄럽고 새하얬다. 그가 웃을 때마다 갈빗대가 드러난 앙상한 가슴팍이 삐걱삐걱 꿈틀거렸다. 나는 소년을 바라보던 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를 떠올렸다. 큰형이 각별히 좋아하여 손수 번역까지 했던 소설. 롤리타가 소년이었다면 그와 같은 느낌이었으리라.

“상원이 왔냐.”

줄곧 닫혀 있던 방문이 열리며 편안한 차림의 작은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줄곧 자고 있었는지 머리칼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반쯤 찌푸려 뜬 눈에는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작은형을 발견하자마자 소년은 쪼르르 다가가 그의 허리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설마. 진짜 동생?”

“응. 인사해. 막내 상원이다.”

“아-. 이분이 말로만 듣던 막내 형님이구나. 진짜였네!”

“그러니까…. 진짜라고 그랬잖아.”

“우와! 반가워요. 난 아해. 상문 형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이름 좋죠?”

“아해?”

“아이라는 뜻이에요. 날 무슨 땅꼬마로 안다니까요.”

소년은 작은형에게 매달린 채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그 손과 악수를 나눴다. 딱딱한 손이었다. 손등에 불거진 뼈 때문에 마주 잡은 손이 아팠다.

“밥은 먹었어? 안 먹었으면 나가고.”

“먹고 왔어.”

“그럼 맥주나 마시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년은 냉장고로 달려가 맥주병을 꺼내왔다. 마냥 즐겁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작은형이 안주를 가지러 간 사이 소년은 재빨리 이로 병뚜껑을 땄다. 말릴 새도 없었다. 병뚜껑의 날카로운 단면에 입술이 베여 피가 흘러내리는데도 소년은 셔츠 깃으로 입을 쓱 훔쳐 닦고는, 그뿐이었다. 소년에게는 감각이란 것이 결여되어 있는 듯했다.

“괘, 괜찮아?”

“뭐가요?”

“입술. 피나는데.”

“아아. 안 아파요. 뭐 이 정도 가지고.”

“병따개를 쓰면 되잖아. 왜….”

“안 돼!”

소년은 갑자기 주먹으로 있는 힘껏 테이블을 내려쳤다. 얼마나 세게 내려쳤는지 테이블 유리에 쩍하고 금이 갔다. 소년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어디서 오는지 모를 고통에 전율했다. 안주를 내오던 작은형은 음식을 내던지고 얼른 소년의 두 팔을 잡아 눌렀다. 이미 여러 번 대처해 본 손놀림이었다. 작은형은 그대로 소년을 안아 올려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한참을 어른 뒤에야 작은형은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나는 걱정스런 얼굴로 그의 상태를 물었다. 잠들었어, 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작은형은 바닥에 쏟은 마른안주들을 내버려 둔 채 땅콩과 피스타치오를 용기째로 꺼내왔다. 나는 작은형의 잔과 내 잔에 맥주를 따랐다. 크림색 거품이 잔 위로 부풀어 올랐고 나는 얼른 잔에 입을 가져다 댔다.

“놀랐지?”

“안 놀랐다면 거짓말이겠지.”

“병따개 얘기만 나오면 저래. 네가 이해해라.”

“왜. 병따개에 뭐 나쁜 기억이라도 있대?”

“그런 셈이지.”

작은형은 테이블 한편에 던져져 있는 담뱃갑을 뒤적이더니 담배를 하나 찾아 꺼내 물었다. 담배를 피울 때의 그는 나와 너무 멀리 있는 느낌이라 왠지 싫었다. 나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의 행동을 가로막았다.

“피지 마.”

“응?”

“쟤한테 안 좋잖아. 한참 어린 거 같은데.”

“저 녀석, 올해 열일곱이야.”

“뭐? 아무리 봐도 열다섯 살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데.”

“발육이 나빠서. 다들 잘 속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작은형은 몇 모금 피우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누구야?”

“그냥. 데리고 있는 아이야.”

“어떻게 아는 사인데.”

“앵벌이 하던 앤데. 일당을 횡령하다가 박창현한테 걸려서 끌려왔어.”

“큰형을 많이 닮았어.”

“그래서 구해줬는지도 모르지. 타인에겐 별 관심 없었는데 저 녀석은 내버려 둘 수가 없더라. 보통 박창현 앞에 끌려오면 주눅이 들어서 일찌감치 설설 기거나 잘못했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데 저 녀석은 끝까지 대들더군. 어찌나 바락바락 대드는지. 믿겨져? 덩치 좋은 놈 셋이서도 저 녀석 하나를 감당 못 했어. 두들겨 맞는 걸 겁내 하지 않는 데는 도리가 없었지. 몇 놈은 도리어 물려서 살점이 떨어져 나갔어.”

“겉만 봐서는 모르겠네.”

“그러다, 박창현한테 이를 뽑혔지.”

“이?”

“그래. 병따개로.”

상상만으로,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야쿠자들이 쓰는 수법 중에 하나라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가능하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위축된 틈을 파고드는 한기에 두피가 바짝 오므라들어, 목 뒤의 근육이 팽팽히 당겨졌다.

“이가 한 서너 대는 나갔을 거야. 지금은 다시 해 넣긴 했지만. 그때 충격이 병이 됐어. 병따개 근처엔 가지도 못해.”

“말도 안 돼.”

“호적도 없는 녀석이라 박창현은 그냥 끝장을 낼 생각이었는데 내가 말렸어. 이가 빠진 자리로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지. 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출혈 과다로 죽었을지도 몰라.”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열을 식히려는 듯 작은형은 차가운 맥주잔을 단숨에 비워냈다.

“그 뒤부터 병아리 새끼마냥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길래 집에 데려왔어.”

“솔직히 좀 이상한 기분이야.”

“뭐가.”

“작은형 옆에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이 있는 거.”

“평생 가족의 곁에 있을 거라 생각했어?”

“응.”

그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잠시간 무뚝뚝하게 바라보더니 시선을 돌리며 쓴웃음을 흘렸다. 나도 그를 따라 웃었다. 파도 소리와 바닷바람이 여전히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한 소년을 잃어버린 남자와 남자를 잃어버린 소년의 집은 바다로 연결되어 있었다. 곧 성난 파도가 이 집을 쓸어버리리라. 덜컹거리는 창문 소리가 그들의 퇴거를 채근하는 듯했다.

“뉴스에서 봤어. 어떻게 된 거야.”

“글쎄.”

“형이 없을 때 우리 집에 얼씬거리던 놈들이었어.”

“묶어놓은 돌이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던 모양이야.”

“죽일 필요까진 없었잖아….”

“내가 죽였다고 생각해?”

“확신해.”

시체 중 몇 구는 특이하게도 눈에 칼이 꽂혀 있었다고 들었다. 그건 박창현의 짓이다. 서슴없이 내 눈을 노리던 박창현의 습성. 그것은 머리가 아닌 몸이 명령하는 폭력이었다. 그러니 눈에 칼이 꽂혀 죽은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작은형의 손에 의해 끝장이 났을 터. 이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 조직의 수뇌부를 몰살했다. 줄낚시처럼 시체가 줄줄이 엮여 올라왔다. 확실한 증거가 없을 뿐 약간의 물증이라도 잡히면 작은형은 그대로 끝이었다. 이미 경찰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억지로 정황을 끼워 맞춰서라도 경찰은 작은형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큰형도…. 걱정하고 있어.”

“자기 걱정이나 하라고 그래.”

“형!”

“걱정하지 마라. 난 괜찮아.”

“붙잡히면 끝이야!”

“끝나도 좋아.”

우리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잠을 설친 아해가 문을 열고 나와 작은형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반쯤 업히다시피 한 자세로 그는 상문 형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찢어진 입술이 그의 목덜미에 달라붙어 숨을 내쉴 때마다 천천히 달싹였다.

“어차피 끝내려고 시작한 일이다.”

“형.”

“내 손으로 죽을 수 없다면 다른 사람 손에 의해 죽을 수밖에. 가장 빨리 다른 사람 손에 죽는 방법은 남을 죽이는 거야. 하나가 모자라면 둘. 둘이 모자라면 셋. 그러다 보면 언젠간 내 뒤통수에 칼이 꽂히는 날이 오겠지.”

“나약한 소리 하지 마! 형 그렇게 무책임한 인간이었어? 형은 그렇다 쳐. 형이 죽으면 걘 어쩔 건데. 살려냈으면 그만이야? 냅다 버릴 거야? 책임을 져야 될 거 아냐! 형 목숨이 형 혼자 목숨이야? 우리는 어떡하라고!”

“그럼, 아저씨가 책임질 거예요?”

잠자코 있던 아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은 명백하게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런 건 아니잖아요.”

“가만있어. 김아해.”

“난 상문 형이 죽는 건 싫지만 나 때문에 죽지 말라고 매달리진 않아요. 내가 형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는 없으니까. 막내 형님은 상문 형을 전부 책임져 줄 수 있어요?”

“…하.”

할 말이 없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큰형은 그를 버렸다. 나 역시 마냥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던가. 오히려 매번 그에게 몸을 부딪쳐 온 것은 셋째 형이었다. 나는 말없이 잔에 가득 찬 맥주를 한숨에 들이켰다. 급히 들이킨 나머지 사레가 심하게 들렸다. 고통스럽게 기침을 하는 내게 아해는 수건과 물을 가져다주었다. 작은형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괴로워하는 나를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를 틈타 나는 비겁한 진심을 호소했다.

“그래도…. 콜록! 난 형이 죽는 건…끅! 싫어, 정말…. 싫다고.”

“그래. 알아.”

“이젠 아무도…. 헤어지고 싶지 않아.”

“알고 있어.”

아해는 젖은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 주었다. 그의 손길은 어린 시절 세수를 시켜 주던 큰형의 손길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으려니 거짓말처럼 딸꾹질이 멈추었다. 곧 차가 끊길 시간이었다. 나는 벗어두었던 코트를 다시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같이 나가자.”

“됐어. 얼마나 간다고.”

“입구까지만.”

우리들은 불 꺼진 계단을 함께 내려갔다. 깨진 유리창으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이 집은 곧 비울 거야. 다시 자리 잡는 대로 연락하마.”

“큰형이 지금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알지? 큰형을 생각해. 형이 죽으면 큰형도 죽어.”

최후의 수단이었다. 나는 그들의 영향력을 믿었다. 나의 협박에 작은형은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꺼트리며 한 손으로 눈과 이마를 가렸다. 서늘한 그림자가 그의 콧등을 가로질렀다.

“모르겠어, 이상원?”

작은형은 백지장처럼 웃고 있었다.

“형….”

“난 이미 죽었어.”

안개처럼. 그는 입구에 나를 혼자 남겨 둔 채 한 점 어둠이 되어 사라졌다. 우리들은 어둠의 주식. 어둠은 형제의 포식자였다. 마지막으로 그의 발꿈치가 어둠 속으로 잠겨 들 때 나는 짧게 그를 불렀다. 첫 계단을 밟는 그의 발소리가 현관을 울렸다. 지옥을 향해 내딛는 듯한 무겁고 장엄한 그의 발소리가 멈출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문 닫히는 소리가 난 뒤에도 나는 쉬 자리를 뜨지 못했다. 등 뒤로 조금 더 가까워진 듯한 파도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숲의 잎새들이 제 몸을 부대끼며 만드는 청량한 마찰음을 닮아 있었다. 밀려온 만큼 떠나가는 파도처럼 가져도 가져도 결국은 빈털터리.

숲을 떠나도 숲의 바람은 우리를 향해 불고 있었다.

* * *

그날 밤. 나는 모처럼 큰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은형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직은 무사하다는 말 이외에는 무엇도 전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아버지의 제사가 치러졌다. 큰형의 집은 장소가 협소하고 작은형의 집은 이삿짐을 꾸려놓은 상태라 양해를 구하고 내가 처가살이하고 있는 집 거실에 제사상을 차렸다. 다행히 아해는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큰형에게 아해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음식도 차례도 단출했다. 낡은 흑백사진 속에서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들을 흩어지게 만들었지만 결국 흩어진 우리들을 하나로 묶는 것 역시 아버지의 역할이었다. 가족이란 얼마나 오묘한 것인가. 제삿밥을 나눠 먹으며 우리들은 아버지에 대해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거기 있었다. 말수가 적은 형제들 사이에 불편하게 앉아 있던 아내는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가장 일반적인 질문을 했다.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우리들은 일제히 동작을 멈추었다. 아내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던 큰형이 연극을 하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자상한 분이셨죠. 아내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상원 씨도 참 자상해요. 큰형과 작은형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제사가 끝나자마자 큰형과 작은형은 제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을 배웅하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도 제법 평범한 가족 흉내를 낼 줄 아는구나.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질문했다. 그런데 셋째 형님은 왜 또 못 오셨어요? 나는 연기하듯 대답했다. 응. 셋째 형은 외국에 출장을 가서. 수많은 거짓말이 오가는 와중에도 영정 속의 아버지는 웃고 계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거기 없었다.

* * *

며칠 뒤. 산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을 허문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철거 당일 옛집을 방문했다. 계획이 틀어졌는지, 집이 있던 자리는 다시 숲으로 메워질 예정이라고 했다. 철거 작업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지은 집, 분열의 역사가 담긴 그 집은 단 몇 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붉은 흙의 토대 위에 부서진 외벽의 잔재들이 널려 있었다. 거친 절단면을 드러낸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흡사 딱딱하게 굳어버린 빵 덩어리 같았다. 집의 자취를 돌아보고 있으려니 모처럼 진득한 회한이 밀려들었다. 점액질 같은 슬픔이 망막에 달라붙어 시계(視界)를 뿌옇게 흐려놓았다.

어째서 피트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 걸까.

나의 죄는 고발될 가치조차 없는 것일까.

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에서 나는 기침했다. 신전을 잃어버린 이들의 운명은 멸망뿐이다. 그것이 순순한 역사의 법칙. 나는 종말의 기운을 느꼈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 나는 무심코 튼 라디오에서 동래파 집단 살인의 용의자로 이상문이 지목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흉악 범죄가 기승을…. 공항을 봉쇄…. 지명수배…. 거액의 현상금….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불안한 운전으로 집에 도착한 것이 저녁 일곱 시.

오토바이를 탄 박창현이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라 한마디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나는 납치되었다. 그는 잽싸게 나를 뒷자리에 태우고 경악할만한 속도로 도로를 질주했다. 한참을 달린 오토바이는 부산 변두리의 한 물류 창고 관리실에 나를 내려놓았다. 어찌나 심하게 곡예 운전을 했는지 멀미로 속이 울렁거렸다.

“갑자기 미안합니다. 경찰이 따라붙을까 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여긴….”

“상문 형님이 계신 곳입니다. 여긴 저 말고 아무도 모릅니다. 형제분께는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무례인 줄 알면서도 강제로 모셔왔습니다.”

나는 그 역시도 학살의 주역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무슨 수로 혼자서만 경찰의 수사망을 벗어난 것일까. 오히려 살인의 증거는 박창현 쪽이 명확했다. 그런데 어째서 작은형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갔을까.

박창현은 그제야 헬멧을 벗었다. 젖은 머리칼이 백도자기 같은 이마에 들러붙어 있었다. 박창현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나를 보곤 싱긋, 날카로운 미소를 날렸다. 그 순간 그의 얼굴에 짧고 빛나는 광기가 번개처럼 흘렀다. 소름이 돋았다. 이 남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세포가, 본능이 부르짖고 있었다. 이 남자는 오히려 경찰보다 위험하다.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오실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박창현은 오토바이에 걸터앉아 단도를 꺼냈다. 내 눈을 찌르려 했던 바로 그 칼이었다. 그는 장난스레 칼 쓰는 동작을 연습했다. 나는 도망치듯 그를 두고 작은형이 있다는 관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 작은형님?”

철제 테이블 위에 앉아 있던 아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난방이 잘되지 않는 곳이라 옷을 무척이나 두껍게 입은 모습이었다. 작은형 역시 터틀넥에 두터운 점퍼를 껴입은 차림으로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상당히 수척해져 있었다.

“뉴스 들었어.”

“…그래.”

“어떡할 거야.”

“우선 앉아. 앉아서 얘기하자.”

우리들은 소파에 마주 앉았다. 아해는 재빠른 솜씨로 커피를 타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지금 그런 소리 할 때야? 대책은. 생각해 둔 거 있어?”

“괜찮아요. 밀항을 하든 어디로든 가버리면 돼요.”

“이 나라를 떠날 생각은 없어.”

“그렇게 사태 파악이 안 돼? 잡히면 즉각 사형이야. 고집 피울 때가 아니라고!”

“작은형님이 설득 좀 해주세요. 네?”

“아해는 잠깐 나가 있어라.”

“싫어! 밖에…. 박창현…. 와 있잖아.”

“옆방 있잖아. 가서 누워 있어.”

“기다릴 거야. 너무 오래 얘기하지 마요.”

아해가 옆방으로 건너가자마자 작은형은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피곤해 보여.”

“별거 아냐. 잠을 못 자서 그래.”

“이런 식으로 도망 다니는 게 얼마나 갈 거 같아? 말 들어. 밀항이든 뭐든 하라고.”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아해를 부탁하마.”

“형, 진짜!”

“난 각오하고 있어. 어차피 자업자득이다.”

“애원해도 죽겠다는 사람 부탁, 내가 들어줄 거 같아?”

“저 녀석, 분명 복수한다고 날뛸 거야. 저래 뵈도 심지가 강해. 가만두면 큰일을 저지를지도 몰라. 일단 이 세계에 발을 들이고 나면 곱게 죽는 건 불가능해. 저 아이까지 나처럼 죽는 건 보고 싶지 않다.”

“그런 걸 아는 사람이 자업자득 같은 소릴 하고 있어? 살 생각은 안 하고?”

“나도 그런 식으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배부른 소리 하지 마, 형. 형 혼자만의 인생이 아니잖아. 우리도 있고 아해도 있고…. 아무튼. 안 돼. 난 형 죽는 꼴 못 봐!”

“그렇게 헤어지고…. 처음 조직에 들어왔을 때는 정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부수라면 부수고 죽이라면 죽이고. 그래도 응어리진 분노가 가시질 않아서 미친개처럼 날뛰었지. 윗놈이고 아랫놈이고 할 거 없이 눈에 띄는 족족 망가뜨렸어. 약한 놈은 짓밟고 강한 놈은 떨어뜨리고. 그런 식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내가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여기까지 왔듯이 나 또한 다른 사람의 희생이 되어 사라지겠지. 자업자득이다. 내가 당연하다는 듯이 저질러왔던 일들이 내게 벌어진다 해서 도망친다면. 그건 그냥 쓰레기에 지나지 않아.”

“성인군자 나셨네…. 그래, 맘대로 해. 내가 무슨 상관이야. 뒤지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계속 그렇게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해를 본 순간부터 자신이 없어졌어. 아해를 보고 있으면 잃어버린 무언가가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구하지 못한 그 사람 대신 이 아이를 구한 거라고. 이 아이는 그의 분신이라고. 그러니까 이 아이는 나와 같다고. 그랬더니 단숨에 못쓰게 되어버렸지. 난 이제 약해졌어. 굳이 경찰이 아니어도, 누구든 나를 먹이로 삼으려 할 거다.”

“내가…. 내가 얼마나 형을, 형들을 부러워했는지 알아? 난 형들처럼 되는 게 소원이었어. 난 형들만 보고 살았어. 그런데 왜…. 왜 다들 서둘러 떠나려고 하는 거야? 난, 난 어떡하라고!”

작은형은 내 눈을 응시하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눈동자가 새벽의 젖은 가로등 불빛처럼 아련히 흔들렸다.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마지막까지 거부당했다. 나도 한 번쯤은 그의 쓰디쓴 눈물을 맛보고 싶었다.

“너만은 바르게 살아서 다행이야.”

“아니야…. 난 형이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야! 나는…. 난…. 아, 제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그럼, 그럼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아무리 먼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결국 우리가 서 있을 곳은 다시 여기일 거다.”

“왜…. 어째서!”

나는 고개를 꺼트리며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탄식했다. 작은형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게 다였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위로였다. 나를 때리고 나를 어르던 그 손. 나는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겹쳤다. 그는 여전히 독사였다. 그는 아버지가 잡아 온 사나운 뱀. 짚더미 사이에서 껍질을 그을리고 토막토막 썰려 잘근잘근 씹히던 파충류의 육질. 그라는 사람의 내밀한 고독이 독니처럼 내 어깨를 아프게 물고 늘어졌다. 나는 텅 비고 좁은 다락을 떠올렸다. 빛이 잘 들지 않는 춥고 험악한 공간. 푸른곰팡이가 독처럼 퍼져 있는 그 방은 그의 동공 속에 있었다.

“이젠 찾아오지 마. 너까지 위험해져.”

“연락한다고 약속하면.”

“형에겐 절대 말하지 마.”

응. 나는 자신에게 다짐하듯 힘주어 대답했다. 우리들의 대화는 그걸로 끝났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해가 쪼르르 뛰쳐나와 작은형의 곁에 바짝 붙어 앉았다. 나는 아해의 붉은 머리칼을 쓰다듬은 다음 작은형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박창현은 그때까지도 칼 장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허리를 안고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아내가 큰형에게서 전화가 왔었다며 조그마한 쪽지를 건넸다.

내일 2시 도착 예정. 부산 역전에서 만나자.

나는 말없이 아내를 껴안았다. 아내는 배가 제법 불러 있었다. 출렁이는 생명의 덩어리가 복부를 짓눌렀다. 나는 태어날 아이가 딸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너는 나와 같은 꿈을 꾸지 않기를. 혈육까지도 먹이로 삼는 수컷의 역사만은 네게 유전되지 않기를. 아내의 둥근 배를 어루만지며 나는 기도했다. 신에게? 아니. 나의 기도는 그 어떤 사랑을 받아도 행복해질 수 없는 모든 이방인들의 침대 위에 바쳐졌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아내는 조산을 했고 기도의 효력이었을까. 나는 작고 영롱한 딸을 얻었다.

* * *

전화에서 예고한 대로 부산 역전 두 시. 나는 어렵지 않게 큰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회색의 더블 버튼 코트는 묵직하고 두꺼웠지만 그는 몹시도 추워 보였다. 코트의 진한 색감과 창백한 피부가 대비를 이루어 깊은 명암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눈은 전보다 더 거칠고 깊어 보였다. 못 본 사이 큰형의 상태는 악화되어 있었다. 분명 작은형의 일에 마음을 쓴 탓이리라. 나는 짐을 받아 트렁크에 싣고 그를 차에 태웠다. 별생각 없이 차를 집 쪽으로 돌리는데 큰형이 뜻밖의 말을 했다.

“부산 경찰청, 어디 있는지 알아?”

“어.”

“그리로 가줘.”

“어….”

시키는 대로 운전을 하긴 했지만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결혼식에 화환을 보냈던 남자. 김철형임이 틀림없었다. 운전 중 곁눈질로 훔쳐본 큰형의 얼굴에는 비장한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얼마나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는지 운전하는 내가 다 어깨가 뻣뻣할 지경이었다. 도로가 한산한 시간이라 생각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별생각 없이 차에서 내리는데 그가 나를 가로막았다.

“넌 먼저 집에 가 있어.”

“같이 가자.”

“좋은 꼴은 못 볼 거야.”

“아니. 갈래. 가지 않으면 후회할 거 같아.”

다시 한번 그 남자를 만나야 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좋을 대로 해.”

미리 전화를 넣어두었는지, 비서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남자는 한눈에 우리를 알아보고는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이상윤 씨 되십니까?”

“맞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자꾸만 숨이 차올랐다. 식은땀이 흐르고 관자놀이 부근이 찌릿찌릿 울렸다. 질척질척한 긴장이 나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나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남자의 방 앞에 도착하자 비서는 우리를 위해 손수 문을 열어주었다. 큰형이 앞장서서 방에 들어갔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를 따라 엄숙한 방으로 몸을 던졌다.

“손님 모시고 왔습니다.”

등 뒤로 육중한 문이 닫히며 쿵, 하고 바닥을 울렸다. 실내는 불을 켜지 않아 한낮인데도 제법 어두웠다. 남자는 커다란 의자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조금 인상이 달라지긴 했지만 분명 그날 밤 우리 집을 찾아왔던 그 남자, 큰형의 아버지였다. 남자는 큰형의 방문을 미리 연락받았음에도 의아하다는 듯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오랜만이다. 네가 제 발로 나를 찾아오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여전하시군요.”

“그렇지도 않아. 한참 늙었지. 참. 자네는 결혼했다며. 축하하네.”

“화환 감사했습니다.”

“아닐세. 그 정도는 해야지. 보잘것없는 성의지만 잘 받았다니 기쁘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옷깃에 감추어진 큰형의 손은 주먹을 그러쥐고 있었다.

“대충 짐작은 간다만. 그래. 어디 들어 보자.”

“이상문 아시죠.”

“그래.”

“도와주세요.”

“그 녀석이 뭘 어쨌는데.”

“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난 모른다.”

그래. 이 남자라면 작은형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급히 큰형과 말을 맞췄다.

“선처 부탁드립니다! 작은형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아니, 자네까지 왜 이러나?”

“안 그러면 우리 형 죽습니다. 도와주세요!”

“나 이것 참….”

남자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그의 다리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큰형은 초조해 보였다. 큰형은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불쑥 위험한 말을 꺼냈다.

“다 까발릴 겁니다.”

“뭘.”

“당신과 어머니. 그리고 나에 대해서.”

“지금 날 협박하는 거냐?”

“아니…. 애원하는 겁니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마누라도 죽었고 딸애들은 다 자기 사느라 바빠. 게다가 네 어미가 없는 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어. 자기 편할 때는 아들 행세구나. 내가 호적에 들이겠다고 했을 때 거절한 건 너였을 텐데.”

“무슨 말을 해도 좋아요. 어차피 난 오래 살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상원이는 달라요. 상훈이도 떠났습니다. 내가 없으면, 상문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이 상처, 보이나?”

남자는 검지로 눈썹 위의 굵은 흉터를 가리켰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상처로 실로 꿰맨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놈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날 생긴 상처야. 덕분에 다리도 조금 절게 되었지. 그런 놈을 애써 구할 의무도 없거니와 너는 이미 내 부탁을 거절했다. 내 부탁을 그렇게 짓밟아 놓고서, 네 부탁을 들어 달라는 거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겁니다. 제발. 이상문을…. 구해주세요.”

큰형이 무릎을 꿇었다. 그 남자 앞에. 말릴 새도 없었다. 남자도 나도 충격을 받았다. 바닥을 짚은 큰형의 두 손은 죽어가는 작은 새처럼 손톱을 세운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러지 마라. 자네, 상윤이 좀 일으키게.”

“아…. 네.”

나는 큰형의 허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큰형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 다시 무릎 꿇으려 하는 그를 억지로 소파에 앉혔다. 그가 흥분하여 각혈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큰형은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지는 듯한 기침 소리를 연속적으로 토해냈다. 보다 못한 남자가 우리들 맞은편 소파에 앉아 큰형을 달랬다.

“네 마음은 잘 알았다. 하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제야. 일이 너무 커졌어. 나 혼자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힘들겠지만 동생은 포기해라.”

“차라리 날더러 죽으라고 해! 당신 같으면 포기할 수 있겠어!”

갑자기 고함을 지르는 큰형의 태도에 남자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큰형은 자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이 터져 나올까 두려워 큰형을 잡아 눌렀다. 격앙된 호흡으로 인해 큰형의 어깨는 크게 들썩이고 있었다.

“허어. 진정해라. 몸도 안 좋다는 녀석이.”

“그럼 왜 당신은 그 여잘 포기하지 않았지? 당신도 못 했잖아! 그런데 나더러 그 녀석을 포기하라고? 죽도록 내버려 두라고? 당신과 어머니가 작당을 하고 놀아나는 동안 날 지탱해준 건 그 녀석이었어. 그 녀석이 날 가르치고 날 키웠어. 날 만든 건 당신이 아니라 이상문이야. 그 녀석은 내 아버지, 내 자신, 내 아들, 내 모든 것이었어. 그런데 지금 당신이 감히 나에게 그 녀석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거야? 이상문을 죽게 내버려 두라고!”

“어머니 얘긴 듣기 거북하군. 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건 나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훌쩍 나가선 돌아오지 않더군. 나는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돌아오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시 내 사람으로 받아들일 거야.”

“하!”

큰형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크게 벌어진 눈동자는 충혈되어 한참 붉은 기가 돌았다. 말라붙은 입술은 군데군데 갈라져 틈틈이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확장된 동공은 누구도 비추지 않았다. 나는 더듬더듬 그를 구속하고 있던 팔을 풀었다. 서슬 퍼런 공포가 뒷목을 타고 올라왔다. 맞은편의 남자 역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겨우 웃음을 멈춘 큰형은 그사이 목이 쉬어 갈라진 목소리로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기다리지 마. 그 여자는 죽었어.”

“그게 무슨 소리냐?”

“형.”

“말 그대로야. 그 여자는 죽었어.”

“농담은 그만해라.”

“내가 죽였어.”

“형!”

“난 어머니가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고 당신과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었지.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어. 한방에 모든 게 해결되더군. 이걸 얼마나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는지 몰라. 아버지에게 고백했더니 날 곧바로 정신병원에 집어넣더군.”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그가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거짓말과 연기에 능했고 또 그는 이미 오래전 망가져 버린 사람이었다. 구체적인 거짓과 애매모호한 진실. 나는 어느 쪽에도 무게를 두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그랬더니 내가 없는 사이 자기가 미쳐버렸더라고.”

“너…. 설마….”

“아마도 나는 당신보다 빨리 죽게 되겠지. 이젠 당신이 고통 속에서 살 차례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당신도 언젠가는 나처럼 말하게 될 거야. 뒤늦게 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겠지. 자. 이제 다시 한번 말해 봐. 당신 나에게 뭐라고 말했지? 이상문을 포기하라고 했던가?”

“나가…. 꼴도 보기 싫다! 얼른 썩 꺼져!”

“형. 가자. 나가자. 얼른!”

“이거 놔! 이상원, 이거 놓으라고!”

“실례했습니다.”

망연자실하여 굳어 있는 남자를 방에 남겨 둔 채 큰형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큰형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반 발광 상태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를 들쳐 업고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폭발음 같은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등 뒤에서 누군가가 수백 개의 폭죽을 터트리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차에 도착하자마자 조수석을 최대한 뒤로 젖혀 반듯하게 그를 눕혔다. 그는 한동안 기침을 멈추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다. 이마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그의 이마를 닦아 주었다. 그의 몸은 곧 열기를 잃고 차갑게 식어갔다. 호흡이 고르게 가라앉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겨우 운전석에 앉을 수 있었다. 큰형은 가늘게 뜬 눈으로 차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좀 괜찮아?”

큰형은 대답 대신 미세하게 눈꺼풀을 깜빡였다.

“형. 저기, 어머니 일은….”

“…거짓말이야.”

“그, 그렇지.”

“너도 알잖아. 어머니는 실종됐어. 난 어머니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고.”

“으응.”

“피곤하다…. 좀…. 잘게.”

큰형은 추락하듯 수면에 돌입했다. 나는 일단 큰형을 집에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고 시동을 걸었다. 화창했던 날씨는 어느덧 검게 흐려져 있었다. 비를 피해 서둘러 집에 도착했다. 잠을 깨우지 않도록 큰형을 안고 집에 들어갔다. 큰형을 본 아내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재빨리 손님방에 이부자리를 깔았다. 조심스레 그를 누이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그가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나는 깜짝 놀라 그만 벽에 몸을 부딪치고 말았다.

“데려다 줘.”

“응?”

“이상문이 있는 곳. 알지. 데려다 줘.”

“지금은 안 돼. 경찰에게 미행당할 거야. 몸 좀 괜찮아지면 그때 가자.”

“안 돼. 지금 가야 해. 지금 가지 않으면 이상문은….”

가물가물 잠에 잠겨 드는 와중에도 큰형은 내 발목을 놓지 않았다. 나는 옆에 앉아 그의 이마 위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았다.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어르듯 다정하고 살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늦었어. 그래. 내일. 내일 가자.”

“내일…?”

“약속할게. 지금은 그냥 푹 자. 응?”

그의 입술은 내게 조금 더 애원하려 달싹였지만 그의 눈은 수면의 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감겨들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머릿속이 불구덩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직도 다 벗겨지지 않은 건가. 드러나야 할 비밀이 아직 남아 있는 건가. 나는 큰형 옆에 나란히 몸을 뉘었다. 천장이 유독 낮아 보였다.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 왔다. 잠시라도 생각을 쉬기 위해 나는 눈을 붙였다. 꿈을 꿀까 두려웠다. 그러나 잠은 유일한 도피처였다. 어느 정도의 위험부담은 지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온몸의 긴장을 풀었다. 큰형의 가쁜 숨소리에 이끌려 나는 평소보다 빨리 잠이 들었다.

똑똑. 똑똑똑.

밤 열두 시. 노크 소리에 잠이 깨었다. 찌푸린 눈으로 문 쪽을 바라보니 아내가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있었다.

“쉿…. 형은 아직 자고 있어.”

“저기….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 이 시간에?”

“잠깐 나와 봐요.”

채 떠지지 않는 눈을 세게 비비며 나간 거실에는 그 남자. 김철형이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그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김철형은 손가락으로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김철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아내를 구석으로 데려가 조용히 꾸짖었다.

“아무나 집에 들여놓으면 어떡해?”

“자기 아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자기는 자고 있고 마냥 밖에 세워놓기는 미안하고 어쩔 수 없잖아. 자기 친척 아니에요?”

“아무튼. 큰형한텐 입도 뻥긋하지 마. 아래 내려가서 잠시 얘기하고 올라올 테니까.”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누구예요?”

“그냥 아는 사람. 몰라도 돼.”

나는 김철형을 집 근처의 허름한 대폿집으로 데려갔다. 사람이 적은 곳이 좋을 것 같았다. 다행히 가게는 텅 비어 있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우리 집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난 늘 자네의 소속을 알고 있었네. 자네에게서 눈을 뗀 적이 없어.”

나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은 부담스러우리만치 따스하고 다정했다. 나는 남자의 잔에 소주를 따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용건이 뭡니까.”

“뭘 그리 서두르는가. 나는 자네와 천천히 얘기하고 싶어.”

“길게 나눌 얘기도 없거니와, 곧 들어가 봐야 합니다. 큰형이 아파요.”

“그럼 우선. 이거 받아두게.”

남자는 가방에서 두둑한 돈뭉치를 꺼냈다. 나는 물론 안주를 내러 온 가게 주인의 눈까지 함께 휘둥그레졌다. 음식 둘 자리가 없어 당황한 주인은 돈다발 한가운데 안주를 내려놓았다. 그는 부엌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줄곧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입막음 값인가요.”

“아일 가졌다며. 앞으로 돈 들어갈 데가 많을 거야. 보태 쓰게.”

“필요 없습니다. 제가 왜 당신에게 이런 돈을 받아야 합니까?”

“내 작은 성의일세. 왜. 전에도 받지 않았나. 괜히 거절하지 말게.”

수치심은 손쉽게 분노로 전환되었다.

“…아세요?”

“뭘 말인가.”

“당신과 어머니는 고의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아무튼, 당신들 때문에 큰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았는지….”

남자는 말없이 소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그의 입술이 살짝 흘러내린 소주로 인해 번들거렸다.

“감히 상상도 못 할 겁니다. 나조차도 다는 몰라요. 그래도 내가 제일 많이 알고 있죠. 나는 설령 큰형이 어머니를 죽였다고 해도 용서할 겁니다. 나는 큰형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용서할 겁니다. 물론 그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앞에서 모두 죄인이에요.”

“자네는…. 자네는 괜찮았나?”

“저는 사랑받고 자랐습니다. 셋째 형도 친자였지만 아버진 저를 가장 예뻐하셨죠.”

“이런. 정말 모르는 건가?”

“무엇을요.”

전에 없던 현기증이 나를 뒤흔들었다. 벌써 취기가 도는 걸까. 겨우 소주 두 잔에? 그러나 세상은 분명 휘청이고 있었다. 나는 중심을 잡기 위해 테이블을 힘주어 붙들었다. 불안은 매서운 칼날이 되어 모르는 사이 등을 향해 날아들었고, 칼의 첨단이 마침 등의 가장 깊숙한 부분에 닿았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자네에게 양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러 온 거네. 상윤이는…. 틀렸어. 그 녀석이라면 난 이제 넌덜머리가 난다네. 하지만 자네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아. 원한다면 돈은 얼마든지 주겠네. 수를 써서 내 자리를 물려줄 수도 있어. 자네. 내 아들이 되어주지 않겠나?”

“제가 왜 당신 아들이 되어야 하죠?”

“말 그대로일세. 자네가 내, 아들이니까.”

칼날은 단번에 중심을 파고들었다. 나는 욱, 하고 억눌린 신음을 흘렸다. 사방에서 칼날이 날아들었다. 관자놀이, 정수리, 목, 어깨, 발목, 허벅지…. 수천의 칼이 몸에 꽂혔다. 그럴 리가. 설마. 아니겠지. 이건 저 남자의 술수다. 거짓말이야. 그러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누군가가 속삭이고 있었다.

역시 그랬구나.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면서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불안의 정체, 큰형이 부득부득 감추려 했던 비밀의 정체는 이것이었나. 늘 나를 감싸던 큰형. 나를 두고 떠나지 못했던 큰형. 나를 죽이고 싶다고 말했던 작은형. 나더러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고 외쳤던 셋째 형! 아, 그러나 그것은 농담이었다. 하지만 나는 왜 그때 몸을 떨었던 거지.

“이봐. 괜찮은가?”

“뭔가 오해하셨나 본데 저는…. 저는 아닙니다.”

“난 자네라도 좋네. 내 핏줄이라면 누구든 좋아.”

“난 아니에요! 난 큰형과 혈액형도 다르단 말입니다! 난 B형이에요…. 아버지도 B형이었고요! 어머니는 O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난 아버지 아들이 맞습니다. 틀림없어요!”

“그러니까. 그건. 상윤이가 운이 없었던 걸세.”

“뭐라고요…?”

“난 AB형이야. 그러니 나와 자네 어머니 사이에서는 A형도 B형도 태어날 수 있었던 거지.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상윤이는 재수 없게도 A형으로 태어났고 자네는 운 좋게 B형으로 태어난 거야. 확실하네. 자네 어머니 입으로 직접 들었어. 첫째와 막내는 내 아들이라고. 나는 자네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게 더 놀랍군.”

“아니야….”

“인정하게. 그게 현실이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진정하게. 그런다고 바뀌는 건 없어.”

“닥쳐!”

나는 주먹으로 있는 힘껏 남자의 얼굴을 가격했다. 남자는 중심을 잃고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갔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나는 남자를 내버려 둔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몇 번이나 다리가 풀려 크게 바닥을 뒹굴었다. 골목은 어둡고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질주했다. 무릎을 찧고 머리를 찧는 와중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달리던 중 나는 가로등과 정면으로 부딪쳐 그대로 쓰러졌다. 이마를 만져보니 흥건한 피가 묻어났다. 나는 피 묻은 손을 있는 힘껏 물어뜯었다. 그 정도의 고통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내가 완전히 부수어지기를 바랐다. 내 몸 안에 다른 생명체가 요동치고 있었다. 그 생명체는 곧 죽음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고 그의 모든 고통은 나에게로 전이되었다. 가슴이 끊어질 것 같았다. 몸에 일시적으로 마비가 찾아왔다. 목이 메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한참 동안 가슴을 세차게 두드리며 몸부림치던 나는 가까스로, 비명을 토해낼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모든 정황이 들어맞았다. 어머니. 당신. 정염의 화신. 바람에 흩날리던 붉은 원피스와 탐스러운 입술. 그녀의 다리에는 솜털조차 없었지. 큰형. 나를 지켜주던 내 가련한 분신. 그녀가 자르고 도망간 도마뱀의 꼬리. 그녀의 편린. 당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희생양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내 피를, 내가 당신의 피를 가졌었더라면. 당신은 나를 고발하고 나는 당신을 묵인하고. 우리들은 다시 사이좋은 형제. 하지만 나는 조각조각 살해당했겠지. 잘근잘근 씹혀져 살육당했겠지. 형제들이 나누어 먹은 것은 당신의 살이 아닌 내 살이었겠지. 그래도 나는 당신을 지키겠다며 얼마 남지 않은 내 몸뚱이마저 던져버렸겠지.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가 겪었던 고통이었다. 식도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그 또한 그가 겪었던 고통이었다. 나는 이미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것이 그의 평생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모두에게 죄를 지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거짓 사랑을 갈취했고 작은형에게서 큰형의 자유를 빼앗았으며 유일한 아버지의 자식으로서 사랑받아야 할 셋째 형의 권리를 빼앗았다. 그리고 나는 나를 기만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모든 게 잿빛이었다. 나의 세계는 연소된 것이다. 나는 재를 흩뿌리며 걸었다. 마비가 덜 풀린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거리는 점점 더 어두워졌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한 나를 보고 아내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런 아내를 내버려 두고 형이 잠든 방으로 들어가 그 옆에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거대한 슬픔이 해일처럼 나를 덮쳤다. 나는 잠든 그의 몸에 기대어 하염없이 울었다. 숲의 장막은 벗겨졌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내가 어떤 은닉과 희생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깨달았다. 온몸의 껍질이 벗겨져 나가고 나는 이제 붉은 속살만을 드러낸 채 쓰라린 생을 살아야 했다. 이방인으로서의 새로운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큰형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큰형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이방인은 그 어떤 사랑을 받아도 행복해질 수 없어.

나는 이방인이 되지 않고자 몇 번이나 그를 외면했다. 박해받는 그를 보고서도 내심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방인이었으므로. 그것이 이방인의 운명이었으므로. 아아. 그러나 나는. 나야말로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운명이 통째로 나의 운명 위에 덧씌워졌다. 헤아릴 수 없는 그의 세월. 묵혀둔 감정들이 내게로 흘러들어왔다. 어느덧 그의 눈에서도 미지근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서툰 손놀림으로 그의 눈물을 닦았다. 닦아도 닦아도 눈물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내 손에서 묻어난 피로 얼룩졌다. 닦아도 닦아도 피는 계속 번져나갔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 앞에 무릎 꿇었다. 아스라한 달빛이 붉게 피어난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고르고 미미한 호흡. 나는 내 손에 남은 여분의 피를 그의 입술에 발랐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깃털처럼 가볍게 그에게 입을 맞췄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끝에 진동했다. 나는 손끝으로 내 입술을 만져보았다. 입술에 그와 닿았던 찰나의 감각을 깊숙이 아로새겼다. 나는 마침내 그와 분리되었다. 그는 꼬리를 끊고 떠나갔다. 그는 자유롭게, 그는 잠들었으며.

비로소 나는 버려졌다.

* * *

어느새 잠이 든 것일까. 묵직한 눈꺼풀의 비좁은 틈새로 어스름한 새벽의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흐물흐물 번져 드는 시계(視界). 빛은 창을 통해 연안의 파도처럼 부드럽게 물결치며 공간의 내부로 잠입했다. 새벽, 경계의 시간 속에 있으면 언제나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공포 혹은 소망. 착각은 보통 이 두 감정으로부터 비롯되는데 나의 착각에는 두 가지 감정이 모두 관여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잠들어 있는 큰형을 내려다보았다. 뭉근한 미열이 감도는 뺨은 은은한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손등으로 조심스럽게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지난밤 내가 그의 얼굴 위에 남긴 얼룩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아니. 그것은 나의 소망이 그리는 착각.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그 위에 토해낸 비탄과 절규까지 모두 흡수해 버린 것이다.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몸 안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내 감정의 노폐물들이 쌓여 있을까. 나는 흐트러진 이불을 그의 가슴께까지 끌어 올렸다. 가슴이 뻥 뚫려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벽 다섯 시를 알리는 괘종시계의 둔중한 울림을 들으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몸 마디마디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땀과 피, 눈물로 전신이 끈적거렸다. 나는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욕실로 이끌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까지고 멍든 상처. 퉁퉁 부은 눈. 땀에 젖어 곱슬거리는 채로 굳은 머리칼.

물을 세게 틀고 공들여 몸을 씻었다. 많은 것들이 씻겨 내려갔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발밑으로 흐르는 오수를 바라보았다.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내 절망과 오욕의 때. 그 간결한 흐름 속에서 나는 단단히 마음을 정했다. 큰형이 깨어나면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시꺼멓게 타버린 마음을 토해내기로. 그럼 나는 편해질 수 있을까. 아니면 더 괴로워질까.

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껍게 김이 서린 거울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 내었다. 처음 보는 듯한 얼굴이 그 속에 있었다. 나는 달라졌다. 나를 구성하는 최초의 세포는 이제 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의 아들인가. 아버지? 김철형? 어머니? 아니. 나는 두 아버지의 아들도, 한 어머니의 아들도 아니었다. 나는 경계의 음달에서 서식하는 미생물. 습지를 찾아 떠도는 저열한 플라나리아였다. 나는 두 조각이 났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다. 복원은 꿈도 꾸지 않았다. 분열은 이미 시작되었으므로. 나는 조각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문질러 만든 거울의 구멍에 다시 김이 서려 있었다. 낯선 얼굴은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가 빨랫감을 뒤져 옷을 찾아 입었다. 잘 말린 속옷의 서걱거리는 촉감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온기에 몸을 풀고 나니 다시 졸음이 밀려왔다. 한숨 더 눈을 붙일 겸 아내가 있는 방으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당최 전화가 걸려올 리 없는 시간이었다. 장인어른, 장모님은 아침 느지막이 눈을 뜨는 체질이었고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받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둘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끈질기게 울리는 전화벨 때문에 가족들이 깰까 싶어 마지못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건 상대방은 정작 묵묵부답이었으나 전화를 걸고 있는 장소의 분주한 소음만큼은 선명하게 들렸다. 중년 여성의 통곡. 공간을 찢어버릴 듯한 날카로운 비명. 성급한 발소리- 바퀴가 바닥의 모난 곳을 치고 달리는 소리까지. 모든 것은 집의 정적 덕분이었다. 그것은 마치 하얗게 발린 벽처럼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도 선명하게 잡아내 주었다.

“여보세요. 장난 전화면 끊겠습니다.”

“어…. 어떡해요…?”

한 번 들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목소리.

“아해냐?”

“형. 어떡해요!”

운명이 나를 겨냥한 마지막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어?”

“상문 형이…. 상문 형이!”

“상문 형이, 뭐.”

“카, 칼에. 칼에!”

“어디야….”

“죽을 거래…. 힘들 거라고…. 아아!”

“어디냐니까!”

“으, 응급실.”

“어디 병원!”

“D 대학병원이요….”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서둘러 옷을 챙겨 입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아내가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침 일찍부터 뭐 하는 거예요….”

“작은형이 병원에 있대. 지금 가봐야겠어.”

“아주버님이요? 어쩌다가요?”

“칼에 찔린 모양이야. 괜찮으면 큰형 좀 깨워줘. 당장 가봐야 할 것 같아.”

“아, 알았어요.”

아내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느릿느릿 큰형이 누워 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몸이 무거워 행동이 굼뜰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그 느릿한 동작마저 눈에 거슬렸다. 나는 지갑과 차 키를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고 부리나케 거실로 뛰쳐나갔다. 운동화를 구겨 신고 막 일어나려는 참에, 아내가 난감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일어나시질 못하는데….”

“어디 봐.”

나는 운동화를 신은 채 큰형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악몽을 꾸는 듯 큰형은 괴로운 표정으로 뜨거운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마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목 뒤에 손을 넣어 보니 그새 흘러내린 땀으로 베개가 푹 젖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를 흔들어 보았으나 그는 눈도 뜨지 못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당장 병원으로 가야 했다. 나는 아내를 붙들고 당부했다.

“큰형 일어나는 대로, D 대학병원 응급실로 보내줘. 빠를수록 좋아.”

“응, 그럴게요. 저기, 나도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당신은 홑몸도 아니잖아. 그럼, 부탁할게.”

“운전 조심해요!”

한달음에 집을 뛰쳐나가 차에 몸을 실었다. 밤새 밖에 세워둔 터라 운전대가 소스라치게 차가웠다. 손바닥 전체에 동통이 느껴졌다. 시동을 거는 작업도 수월치 않았다. 손이 떨려 몇 번이나 구멍을 헛쑤신 다음에야 키를 꽂을 수 있었다. 갑작스런 충격으로 인해 정상적인 감각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으나, 나는 무작정 액셀을 밟았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몇 번이나 사고가 날 뻔했지만 그런 것쯤 아무래도 좋았다. 내 안에 두 가지 힘이 대립하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으로 뛰쳐나가려 하는 힘. 그리고 그가 있는 곳에 가지 않으려 우뚝 버티는 힘. 차는 쏜살같이 달리고 있었으나 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줄곧 큰형을 생각했다. 들쳐 업고서라도 데리고 오는 쪽이 나았을까. 혹시 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닐까. 애써 떨쳐버리려 해도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병원이 가까워질수록 예감은 점점 더 그 몸덩이를 불려 어느새 내 사고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아해야!”

병원 입구에서 어렵지 않게 아해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앞에 선 나의 부름에도 아해는 반응이 없었다. 아해는 얇은 옷차림 그대로 영하의 바람 속에 서 있었다. 옷은 후줄근했고 그나마도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었다. 추위로 인해 그의 전신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으나 그는 그 추위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나를 앞에 두고도 애타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얼어붙은 아해의 어깨를 꼭 붙들어, 시선을 나에게로 고정시켰다.

“아해야! 정신 차려!”

“어….”

“추운데 왜 나와 있어. 자! 이거 입어, 얼른.”

나는 점퍼를 벗어 그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그는 초점이 흐린 눈으로 망연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슬픔에 젖어 탁하게 바랜 눈동자. 그의 눈동자는 한없이 아래로 추락하면서도 나라는 마지막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들어가자. 얼른.”

“자, 자다가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까…. 상문 형이…칼…칼에…!”

“알았어. 알았으니까.”

“심장이…심장이 터질 거 같아…. 이것 봐. 손가락도 안 움직이잖아…. 씨발 칼이…칼이 어, 어떻게 그런 데 박히죠? 개새끼….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씨발 새끼!”

나는 몇 마디 위로의 말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대신, 억세게 아해를 끌어안았다. 얼음 덩어리를 떠안은 듯한 감각이었다. 내 몸에 닿은 아해는 비로소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아해는 매달리듯 내 목에 팔을 둘렀다. 그 팔은 운전대만큼이나 차고 딱딱했다. 나는 아해를 한 팔에 끼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비어 있는 자리가 있어 우선 아해를 앉히고 따뜻한 커피를 뽑아 손에 들려주었다. 갑자기 밀려드는 온기에 현기증을 느낀 듯 그는 뒤로 크게 고개를 젖혔다. 나는 후들거리는 그의 다리를 주무르며 최대한 그를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갔을 땐 이미…이미 다 끝나 있었어요. 상문 형은 쓰러져 있고 그 밑으로 피가 웅덩이처럼….”

“범인은.”

“못 봤어요. 하지만 누군지는 알아. 모를 수가 없어….”

아해는 분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떨었다. 그의 눈동자에 공포심과 적개심이 새까맣게 들어차 있었다. 그는 주문처럼, 혹은 저주처럼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기적적으로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도 죽을 거야…. 죽게 될 거야….”

“아해야.”

“그 새끼가 나도 죽이러 올 거야…. 이번엔 확실히 끝장을 낼 거야…! 어떡하죠? 상문 형은 없는데…. 아무도 날 구해줄 수 없는데!”

아해는 눈앞에 ‘그’가 와있는 것마냥 절규하다 결국 정신을 놓고 말았다. 나는 바닥으로 쏟아지는 아해의 몸을 황급히 안아 일으켰다. 나의 다급한 부름을 들었는지 젊은 의사가 다가와 간단히 아해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간호사에게 몇 가지 지시사항을 전한 뒤 바삐 가던 길로 사라졌다.

“일시적 쇼크와 탈진 상태예요. 병실로 안내할 테니 따라오세요.”

아해를 안고 간호사의 뒤를 따라 걷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상문 동생 되십니까?”

“그게….”

“가족은 알고 있었습니까?”

“나중에, 나중에 말합시다. 길 좀 비켜 주세요.”

간곡한 부탁에도 기자들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완전히 내 앞을 가로막고 저들 좋을 대로 질문을 던져댔다. 먹이를 발견한 잉어 떼처럼 마구잡이로 들이대는 그들을 보고 있으려니 뱃속에서 뜨거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비키세요.”

“살 가능성은 있답니까?”

“범인은 누굽니까?”

“조직 내 처분이란 게 사실인가요?”

“비키라고 했잖아! 당신들 지금 그게 문제야? 얘가 눈에 안 보여? 애가 쓰러졌잖아! 난 한마디도 안 할 거야. 그러니까 꺼져. 꺼져 버리란 말이야!”

쩌렁쩌렁한 고함에 기가 눌린 기자들은 스멀스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의사 한 명이 그 벌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와 아해를 받아들었다. 그는 초조한 목소리로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상문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이 환자는 제가 맡을 테니 빨리 응급실에 가보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전력을 다해 응급실을 향해 뛰었다. 관자놀이에서 심장 소리가 들렸다. 몸 전체가 심장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가까스로 도착한 응급실의 문은 닫혀 있었다. 나는 문 앞에 선 간호사에게 이름을 대고 이상문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간호사는 응급실 안에 들어가 작은형의 담당의를 데리고 나왔다.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의사는 진땀을 흘리고 있었으며 패색이 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 이상문 환자 가족분 되십니까.”

“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기, 형 상태는….”

“한쪽 눈에 칼이 박힌 채로 실려 왔습니다.”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나는 남자의 잔악한 눈매를 떠올렸다. 그것은 완벽한 먹이를 노리는 육식동물의 눈이었다. 왜 진작 그를 떠올리지 못했을까. 그 집은 나와 그만이 알고 있는 장소였는데!

“깊지는 않습니다만, 배에도 자상이 있고요, 눈을 먼저 찔린 다음 쓰러지면서 배를 찔린 모양입니다.”

“저기…. 그럼 형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의사는 내 애절한 시선을 피하며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모든 감각도 그와 함께 얼어붙었다. 그렇게 시끄럽게 고막을 울리던 심장 소리가 언젠가부터 전혀 들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잘 움직이지 않는 얼굴 근육을 움직여 다시 한번 그에게 물었다.

“설마…. 조금의 희망도 없는…. 겁니까?”

“마음의 준비를 해두세요.”

“선생님!”

“저희로선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깊숙이 찔린 데다 균이 침투해서 손쓸 방도가 없군요. 들어가셔서 가장 안쪽 침대입니다. 혼수상태지만 짧게나마 의식이 돌아오고 있으니 유언은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유언…. 말입니까.”

“더 많이 늦으셨다면 그마저도 없었을 겁니다.”

가벼운 목례를 하고 의사는 나를 지나쳐 갔다. 그와 맞물리듯 간호사가 응급실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터벅터벅 병실 안으로 내키지 않는 걸음을 내디뎠다. 응급실 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곳곳에 고통이 팽만하여 도무지 눈 둘 곳이 없었다. 나는 허술하게 눈을 가린 채 작은형의 침대로 다가갔다. 명찰에 적혀 있는 이상문이란 이름을 확인하고 난 뒤에야 눈에서 손을 떼었다. 그곳에는 얼굴 한가득 붕대를 감은 채 코에 호스를 꽂고 있는 작은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폐기를 기다리고 있는 커다란 로봇 같았다. 충격으로 인해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한참 동안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에야 겨우 그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저기. 내 목소리 들려?”

잠들어 있는 것일까.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링거가 꽂혀 있는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내가 왔단 말이야. 뭐라고 말 좀 해봐.”

“…드디어…. 왔구나….”

갈라 터진 입술이 뒤늦게 내 목소리를 인식하고 힘없이 달싹였다. 그의 목소리는 부러진 나무의 표면처럼 까끌까끌하고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붕대로 둘러싸인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괴로워서 그 곁에 앉아 있을 수조차 없었다. 더는 망설일 여지가 없었다. 큰형을 불러야 한다. 내 머릿속엔 그 생각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나 집에 전화 좀 하고 올-.”

“가지 마.”

막 일어서려는 찰나 작은형의 손가락이 내 손목을 그러쥐었다. 나를 저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힘이었지만 나는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자리에 앉고 말았다. 그는 자꾸만 힘이 빠져나가는 손으로 나를 붙들려 애를 썼다. 안타깝고 부질없는 몸짓에 절로 목이 메었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며 단단히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줄곧 기다렸어…. 이젠 가지 마.”

“형….”

“네 목소리…. 오랜만에 들으니 참 좋구나.”

“무슨 소리야, 얼마 전에도 봤잖아.”

“종종…. 꿈에서 너를 보곤 해. 그럴 때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너는 꿈에도 와주지 않을 것 같았거든. 네가 이곳에 오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곳 생활은…. 참담하다. 종종 상원이가 찾아와 주는 것이 유일한 낙이야. 네가 이렇게 와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고맙다.”

작은형의 의식은 교도소에 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있는 듯했다. 단 한 번도 작은형의 면회를 가지 않았던 큰형.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앞둔 그의 환각 속에서 큰형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에게 면회를 갔다. 그것은 큰형과 흡사한 목소리를 가진 나만이 가능한 선물이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큰 획을 긋고 지나갔다. 큰형은 작은형이 살아 있는 동안 이곳에 도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그가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그가 나를 큰형이라 믿고 있다면, 내가 그를 대신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마지막 가는 길에나마 그에게 큰형을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최후의 연기를 시작했다.

“지금 어디 있어? 여긴 너무 어두워서…. 네가 안 보여.”

“바로 옆에 있어. 자. 이렇게 손도 잡고 있잖아.”

“얼굴…. 만지고 싶어.”

나는 작은형의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지난밤 내가 어루만졌던 큰형의 얼굴을 되새김질하며 최대한 그와 같은 느낌을 주려 노력했다. 그의 손끝이 부드럽게 얼굴 곳곳에 스쳤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추는 춤이었다. 그 짧은 여정이 끝날 즈음 그의 의식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있었다.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살아. 살아서 다 갚아. 그렇지 않으면 절대 용서 안 해.”

“네 목소리를 듣고 나니 갑자기 무서워진다….”

“뭐가. 뭐가 그렇게 무서운데.”

작은형은 보일 듯 말 듯 피맺힌 입꼬리를 떨며.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죽어서도…. 포기가 안 될까 봐.”

가슴에 비수를 꽂는 듯한 대답에 나는 그만 그의 손을 놓고 말았다. 그 손은 힘없이 침대 아래로 툭 떨어졌다. 작은형의 몸을 감고 있던 기계들이 일제히 불길한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손을 다시 잡아 올렸으나 그 손은 중력조차 견디지 못하고 자꾸만 아래로 축축 늘어졌다. 나는 그의 손을 꼭 붙들고 소리쳤다.

“죽긴 왜 죽어! 살 거야…. 형, 살 거라고! 형도 하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냐? 해보고 싶었던 거 다 하고 죽어야지, 그냥 이렇게 한심하게 죽을래? 형은 소원 같은 것도 없어?”

“소원….”

“그래, 소원! 뭐든 좋으니…소원을 말해.”

“소원이라….”

작은형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할 수만 있다면…. 꼭 한 번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눈에서 후드득, 눈물이 흘러내렸다. 의사들이 뛰어들어와 작은형의 주변을 둘러싸고 숨 가쁘게 이런저런 의료기기들을 갖다 대었다. 작은형의 입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입술이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의사들의 집요한 괴롭힘에도 작은형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의 몸은 고무 인형처럼 힘이 가해지는 방향을 따라 푸덕거렸다. 그러나 그 몸에는 어떤 힘도 존재하지 않았다.

“형…?”

의사들이 하나둘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하나같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안 돼…. 형. 나…. 상원이야. 상원이라고! 죽지 마! 지금 죽으면 안 돼! 이상윤 오고 나서 죽어!”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봐! 저 문으로 들어올 거야! 보라고! 이상윤이 올 거라고. 만나고 가. 조금만 버티면 돼. 안 보여도 봐, 바로 저 문! 저 문-.”

에서, 뒤늦게 도착한 큰형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죽었…. 구나.”

산송장 같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는 다시 한번 확인하듯 말했다.

“죽었어.”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나의 필사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담당의는 작은형의 얼굴을 흰 천으로 덮었다. 나는 그 천을 끌어내리려 했다. 그러나 다리가 꼬이는 바람에, 자리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의사의 다리에 매달려 애원했다. 살려 달라고, 저렇게 죽으면 안 된다고. 저 사람이 이루지 못한 소원이 있다고, 제발. 그 소원만이라도 이루게 해달라고. 나는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울었다. 의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나를 떼어놓았다. 그리고 그는 기어코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었다.

“운명하셨습니다.”

큰형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의사들이 모두 자리를 비울 때까지 작은형이 누워 있는 침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큰형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순간 무릎이 풀려 그는 앞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나는 그를 작은형의 침대로 이끌었다.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던 큰형은 천천히 작은형의 얼굴을 덮고 있는 흰 천을 눌러 보았다. 그러나 그에게 닿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뒤로 뺐다. 그의 몸이 또다시 크게 휘청거렸다. 나는 뒤에서 옭아매듯 그를 끌어안았다. 작은형을, 아니, 작은형의 시체를 실은 침대가 밖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를 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 휘청거리는 그를 다잡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사실은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그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전신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 역시 그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엉망으로 울고 있었다. 지난밤 흘린 눈물로 부은 눈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눈물을 거두지 않았다. 나는 마음껏 울어도 좋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것이 그의 유일한 소망이었으므로. 나는 그가 평생 동안 참아온 눈물을 대신해서 죄다 쏟아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쏟아져 나간 것은 그를 위한 눈물이 아닌, 그 자체였다. 나는 그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내 안에서 그의 농도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관자놀이 부근에서 다시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들어보니 그것은 물살이 세게 휘몰아치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나는 입안으로 스며드는 눈물의 짠내를 맛보았다. 눈물은 점점 더 묽어지고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는 급류에 휩쓸려.

그는 떠나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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