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증오의 도착들*
우리들은 어색했다. 아니 지나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싱거울 정도로 마냥 평온했다. 나의 걱정, 혹은 나의 기대와는 달리 당분간은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들은 잠시나마 전에 없이 친밀했다. 밖으로만 나돌던 셋째 형마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꼬박꼬박 귀가했고 나 역시도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형은 일을 구하러 다녔으나, 아무리 일손이 모자라도 흔쾌히 전과자를 고용할 업체는 없었기에, 일단은 신상이 불필요한 공사판을 떠돌며 차곡차곡 일당을 모아왔다.
큰형은 병원에서 생긴 버릇인지 하루 종일 방에 불을 켜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지겹지 않냐.’고 물어봐도 ‘지겹지 않다.’는 대답뿐. 집에 돌아온 큰형의 첫 번째 부탁은 방을 새하얀 벽지로 도배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며 괜찮다면 부디 그렇게 해달라고. 다음날 나와 작은형은 도배지를 사와 2층 가장 볕이 잘 드는 방을 하얗게 발랐다. 철제 침대 하나만 덜렁 놓여 있는 방은 황량하기 그지없었으나 큰형은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었다.
큰형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낮에도 형광등을 끄지 않았다. 잠을 잘 때도 불을 켜고 잤다. 한번은 집에 정전이 일어났다. 30분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정전이었다. 비가 오면 정전이 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고, 우리들은 거실에 모여 앉아 잠자코 불이 켜지길 기다렸다. 어둠에 막연한 공포를 느끼는 나였지만 그날은 모두가 함께 있다는 생각에 두렵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우는 것이었다. 너무나 비통한 울음소리에 등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듣고 있자니 나마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울음소리는 불이 켜질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누군가 어둠을 견디지 못해 터트리는 울음이었다.
불이 켜지고 우리들은 그 울음소리의 정체가 큰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큰형은 바닥에 엎드려 쓰러진 채 숨이 끊어지도록 헐떡이고 있었다. 큰형이 우는 모습을 보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셋째 형, 심지어 작은형까지도 큰형이 우는 모습은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것은 울음이라기보단 발작에 가까웠다. 큰형은 어둠과, 혹은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듯 보였다. 작은형조차 큰형에게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불이 켜지고 한참이 지나 큰형은 비로소 눈물을 거두었고 우리들의 만류에도 혼자 2층으로 터벅터벅 올라갔다. 걱정이 되어 그를 따라 올라갔지만 방문은 이미 잠긴 뒤였다.
한번은 큰형을 보러 이모들이 어린 손자들을 데리고 우리 집을 방문했다. 큰형은 비교적 차분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모들이 아무리 끈질기게 물어도 우리들은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했다. 심심해진 이모들은 저들끼리 수다를 떨었고 손자들은 계단을 쿵쾅쿵쾅 뛰어다녔다. 그중 한 아이가 장난으로 큰형의 눈을 가리며 ‘누구게?’하고 물었다. 어린아이다운 장난이었는데. 큰형은 목이 돌아갈 정도로 세게 아이의 뺨을 갈겼다.
물론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이모들은 갑자기 합세하여 큰형을 힐난했다. 정신병원에 괜히 다녀온 게 아니라는 둥, 너도 결국 네 엄마와 똑같다는 둥. 다시는 얼굴도 보고 싶지 않다며 우르르. 집을 빠져나갔다. 이모들이 떠나고 큰형은 이른 저녁을 차려 먹었다. 도통 식욕이 없는 큰형이었는데 그때만은 저렇게 먹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을 먹었다. 아무튼 큰형은 어둠을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작은형은 좀 이상했다. 이것은 나만이 아니라 셋째 형도 느끼고 있는 부분이었다. 적어도 면회를 갔을 때의 작은형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출소하는 순간 작은형이 아버지를 끝장내고 이 집을 부숴버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작은형은 묵묵히 가족을 위해 일했고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았다. 어깨들이 집을 찾아와 귀찮게 굴고 시비를 걸어도 몇 대 얻어맞고 말 뿐 반격하거나 맞붙으려 하지 않았다.
이후 작은형의 행보를 돌이켜볼진대 이때의 작은형은 분명 참아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가족과 큰형 그리고 집안의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던 걸까. 나는 작은형을 볼 때면 과연 이 사람이 어린 시절 독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 아이와 동일 인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육감으로 하나하나 짚어가고 있었다. 그는 특히 지하실에서 자꾸만 무언가를 읽어내려고 했다. 청소를 하러 나와 함께 지하실에 내려갔을 때 작은형은 심상치 않은 눈으로 곳곳을 후비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몇 방울의 핏자국을 발로 가리고 서 있느라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바닥을 시멘트 몰탈로 다시 한번 바르든가 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작은형이 뜻밖의 말을 했다.
“나. 여기서 지내면 안 될까.”
“어어?”
나는 비명처럼 대답했다.
“아, 아니, 위에 방 놔두고 왜?”
“글쎄. 그냥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여기 통풍도 잘 안 되고 더럽고 냄새나고 여하튼 최악이야.”
“지금의 나에겐 여기가 딱 어울려.”
“아니, 아니, 여하튼 안 돼. 아버지도 자꾸 들어와 있고, 다음에 물건 다 들어내고 나면 폐쇄해 버릴 거야.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어.”
본의 아니게 호들갑을 떨어버렸지만, 그만큼 나는 다급했다. 그가 지하실에서 살게 된다면 나의 하루하루, 아니 일분일초는 가시방석 위에 놓이리라. 내가 횡설수설을 하면 할수록 작은형의 눈동자는 의혹의 수렁으로 잠겼다. 나는 억지를 부리며 등을 떠밀어 작은형을 지하실 밖으로 밀어냈다.
이튿날 나는 작은형 몰래 지하실 입구에 다시 자물쇠를 채웠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작은형이 언제 지하실에 들어갈까 노심초사하여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여분의 열쇠가 있으니 아버지가 지하실을 드나드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아예 지하실을 메워버릴 수는 없을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안일한 평화 속에서 작은형과 큰형은 확실하게 삐걱대고 있었다. 큰형은 작정이라도 한 듯 작은형을 냉대했다. 어깨들의 시비와 협박은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 평정을 가장하고 있는 작은형의 눈에도 슬슬 살기가 돌아와, 나는 큰형이 작은형을 함부로 대할 때마다 ‘저러다 큰일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에 그들 주변을 맴돌았다.
큰형은 무슨 일이 있으면 작은형 대신 나를 불렀다. 큰형의 마음은 작은형이 교도소에 들어가 있을 때의 마음. 그대로인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 대신 옥살이를 한 연인에게 감지덕지는 못할망정 왜 일방적인 이별을 고하려 하는지. 물론 지난 수년간 둘 사이에 쉽사리 메울 수 없는 공백이 생겼고 한창 그들이 뜨겁던 때와는 많은 것이 변해 버렸지만. 그렇다 해도 가족과 형제를 저버리면서까지 지속했던 그 사랑을 정말 그렇게 허무하게 접으려는 걸까. 모든 불화의 원인이었던 아버지가 인간 폐업을 선언한 이 마당에 굳이 헤어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큰형의 행동이 스스로를 괴롭히려고 하는. 자학에 길들여졌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습관처럼 조금씩 자신을 벼랑으로 내모는, 타성이 되어버린 기질. 그래. 그때는 그를 그런 식으로 생각했었다. 내 잘못은 모두 깡그리 잊어버리고.
큰형은 작은형이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자리를 피했다. 마치 더러운 것을 대하듯이. 나는 큰형의 뒷모습을 쫓던 작은형의 눈을 기억한다. 버림받은 어린아이 같은. 복수를 꾀하며 칼을 가는 듯한 그 눈동자. 그리고 그 칼은 차마 상대를 찌르지 못해 언제나 자신을 찌르는 데 사용되었다. 작은형은 명백히 상처받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받으면 받을수록 그는 자꾸만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작은형은 자신의 주변에 새하얀 석고를 덧발라 조용하고 차분하고 비폭력적인 모습을 연출했지만 큰형의 도끼질 한 번, 한 번에 거짓은 떨어져 나가고 그는 잔인하고 뜨겁고 폭력적인 모습을 다시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작은형에게서 돈을 받아 내가 산 것으로 하고 몸에 좋다는 것들을 큰형에게 갖다 먹였다. 다행히 집에 돌아온 이후로 큰형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어 푸르던 입술에는 다시 핏기가 돌았고 손가락에도 여분의 온기가 스몄다. 나는 큰형의 몸에 남아 있던 수많은 상처들에 대해 생각했다. 피트가 새긴 수많은 강간의 흔적들이 여태껏 남아 있는 걸까. 큰형은 얼굴과 손 이외의 부분은 드러나지 않도록 옷을 단단히 여몄고 그럴수록 나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나는 깨끗한 알몸으로 엉켜 있는 큰형과 작은형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홍루몽의 그녀와 몸을 섞으며 그들만큼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비교하면서도 나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나는 타인의 욕망마저도 질투의 대상으로 삼는 불완전한 이십 대의 청년이었으므로.
폭풍 전야 같던 하루를 기억한다. 창고를 정리하던 중 셋째 형이 재미있는 사진을 찾아냈다. 서너 살 무렵의, 나를 제외한 형제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우리들은 거실에 둘러앉아 그 사진을 돌려 보았다. 사진 속에 어린 시절의 큰형과 작은형, 셋째 형이 나란히 서 있었다. 겨울이었는지 모두들 점퍼와 코트 속에 손을 찔러 넣은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직접 만든 옷이라 각자의 개성에 맞게 디자인되어 있었고 –큰형은 동그란 칼라에 커다란 싸개 단추가 나란히 달린 체크 코트. 작은형은 어깨에 견장이 달린 더블 반코트, 셋째 형은 후드가 달린 양털 점퍼- 소매나 깃의 마무리도 그 시절 아이들 옷답지 않게 깔끔했다. 셋째 형의 볼은 추위로 인해 빨갛게 달아 있었고 작은형은 무려 빡빡머리였다. 큰형은 카메라가 아닌 약간 비껴 선 다른 곳을 보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소싯적의 어머니와 너무 흡사하여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피는 못 속이는구나, 하고.
이십여 년 전의 그들은 모두 마냥 순진한 땅꼬마였다. 그 아이들이 이렇게 자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진을 보는 형들도 하나 같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나와 같은 것이었으리라. 우리들은 옛 사진을 뒤적이며 일요일 오후 한때를 그렇게. 고요하고 따뜻하게 보냈다. 그 시간,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우리들은 형제였다.
* * *
그날은 과 대항 축구 대회가 있었다. 운동은 젬병이었지만 어쨌거나 인문대에는 남자가 적었기에 억지로 차출되어 경기에 나갔다. 적당히 하다 집으로 돌아올 작정이었는데 자리를 잘못 잡는 바람에 얼결에 헤딩슛을 넣게 되어 본의 아니게 승리의 주역이 되어버렸다. 그대로 뒤풀이까지 끌려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축하주를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몇 번이나 나무에 부딪힐 뻔하며 숲을 통과해 집으로 돌아온 것이 열 시.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큰형의 방은 멀리서 보면 꼭 등대처럼 보였다. 용케 취하지는 않았지만 속이 더부룩해서 밥을 제치고 잠이 들었는데. 열두 시즈음 식도가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눈을 뜨고 말았다. 물을 마시러 1층으로 내려가려는데 층계참에서 큰형과 작은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처럼.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기대와 긴장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대체 얼마만의 관람인가.
“…얘기 좀 하자.”
“무슨 얘기.”
“언제까지 이대로 지낼 수는 없어.”
“이대로 안 지내면 어쩔 건데.”
작은형과 말싸움을 하던 도중 현기증을 느낀 큰형이 크게 비틀거렸고. 작은형은 반사적으로 큰형을 껴안아 그를 부축했다. 그러자 큰형은 할퀴듯 그를 떠밀었다.
“내 몸에 손대지 마!”
“잠자코 있어. 혼자 못 걷잖아.”
“놓으라니까!”
“이상윤!”
악을 쓰며 작은형을 밀쳐내던 큰형은 발을 헛디뎌 그만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는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가까스로 막았다. 큰형에 대한 걱정보다 관음에 대한 의지가 더 강했던 것이다. 작은형은 두세 걸음에 계단을 뛰어 내려가 쓰러져 있는 큰형을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다친 덴 없어?”
“놔.”
“뭐…?”
“그 손. 놓으라고.”
작은형의 표정이 험악하게 꿈틀거렸다. 작은형은 큰형의 말에 따르기는커녕 아플 정도로 세게 그를 껴안았다. 계단을 구르며 접질린 부위가 있었는지 큰형은 고통을 참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놔! 놓으라니까!”
작은형은 큰형을 완력으로 잡아 눌렀다. 힘으로는 작은형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게다가 큰형은 만성 결핵 환자가 아닌가. 큰형은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은 채 독을 품은 눈으로 작은형을 쏘아보았다.
“놔.”
“싫다면, 어쩔 건데. 소리를 지르고 싶으면, 그래. 질러 봐. 상원인 취해서 곯아떨어졌으니까. 아니. 아예 이 꼴을 보여줄까?”
어렴풋이 보이는 작은형의 얼굴에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본연의 그였다. 어린 시절 물지게를 지고 섰을 때의 그. 일말의 동정도 없는 사신 같은 표정. 무엇에도 멈추지 않을 듯한 그 표정. 비스듬히 웃는 그 얼굴에 큰형조차 잠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이상문.”
“그거 알고 있어? 난 가끔 상원일 죽이고 싶어져.”
“입 닥쳐.”
큰형의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떨 수조차 없었다. 그 뒤 작은형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 하나하나는 비수가 되어 나의 몸 곳곳을 가르고 베어갔다. 그는 결코 모르지 않았던 거다. 나의 나약함, 나의 비겁함, 나의 옹졸함, 나의 배신, 나의 감시. 아아, 그는 무엇 하나 간과하지 않았던 거다. 그가 나의 그물을 통과하지 못했듯 나 역시 그의 그물에 걸린 작은 물고기였던 거다.
작은형의 뜻밖의 고백에, 나는 강렬한 자살 충동을 느꼈다.
“너와 같은 핏줄이라서 그런가. 사랑스러우면서도 때로 한없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순진한 얼굴을 볼 때마다 상상하게 돼. 모든 것을 말해버리면 저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질까. 지켜주고 싶은 마음 이면에 짓뭉개버리고 싶은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들어. 날 믿고 있는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라. 그럼 또 생각하지. 나를 형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그래도 이놈밖에 없다고. 면회를 올 때마다 사실은 기뻤다. 조금은 기다리는 마음도 있었지. 그러면서도 네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달라졌을 텐데,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주먹이 떨리곤 해. 너도 별반 다르진 않을걸. 이상원을 위한다 하면서 진심은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상원인 아무 잘못 없어.”
“말해.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거야.”
“구질구질하게 굴지 마. 우린 이미 끝났어.”
큰형은 끝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강조했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연습하고 준비해온 말이었겠지. 잘 해냈어, 형. 나는 그에게 박수라도 쳐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통증을 느낄 정도로 나를 괴롭히던 갈증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아프도록 생생한 긴장이 혈관을 팽창시키고 있었다. 염산을 뒤집어쓴 듯 전신이 쓰라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우리가 언제 말이 되는 사이였던가?”
“이러지 말자. 솔직히 나. 괴롭다.”
열기를 토해내는 듯한 목소리였다. 괴롭다고 말하는 작은형은 괜찮다고 말할 때보다 더 괜찮아 보였다.
“뭐가 그렇게 괴로운데.”
“교도소에 있을 때…. 매일 밤 후회했다. 그때 억지로라도 널 끌고 나갔어야 했는데.”
“내가 선택했어.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그래서,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었던 거냐? 후회하지 않은 선택이 겨우 그거란 말이야?”
“정당한 처사라고 생각해. 난 미쳤으니까.”
“함부로 말하지 마.”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너하고 그런 짓을 했겠어.”
“…후회하는 거냐?”
“그래. 매일 밤 후회해. 아니, 매 순간 후회해. 너에게 매달려, 널 핥고 널 빨고 너와 잤던 일. 널 살려냈던 것까지 모두.”
“진심이냐.”
“진심을 말해볼까? 난 너희 집안 핏줄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해. 아버지부터 시작해서 너까지. 하나같이 끔찍하다고!”
그렇다면 큰형은 무엇을 위해서 집으로 돌아온 것일까. 왜 벼랑으로 자신을 내몰고 있을까. 나는 고발되어도 좋으니 그가 진심을 말하길 바랐다.
“…다시 한번 말해 봐.”
“끔-.”
큰형이 입술을 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작은형은 물어뜯듯이 그에게 키스했다. 바동거려도 소용없었다. 큰형은 키스가 깊어질수록 자꾸만 그의 등으로 감겨들려 하는 팔을 억지로 끌어내리며 힘겹게 발버둥을 쳤다. 작은형은 그에게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저러다 호흡 곤란으로 죽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그들의 입맞춤은 끊어질 줄 몰랐다.
“다시 한번 말해 봐.”
비틀린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작은형은 다시 한번 날을 세운 질문을 던졌다.
“지긋….”
큰형의 말은 다시 한번 작은형의 입속으로 삼켜졌다. 두 혀가 교미하는 뱀처럼 엉켜 젖은 몸을 비벼댔다. 이번에는 가까스로 큰형이 작은형을 밀쳐냈다. 큰형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지긋지긋하다고!”
“다시 한번 말해 봐.”
작은형의 오른손은 큰형의 목을 감싸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인 듯했으나 내게는 그가 큰형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은 분명 본능적인 힘을 제어하기 위해 간헐적으로 꿈틀대며 마디를 세우고 있었다.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고개의 각도가 바뀌는 바람에 내 쪽에서는 작은형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큰형이 홀린 듯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작은형의 얼굴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은 잔혹한 감정을 담을수록 숨 막힌 매력을 뽐내었기에, 극의 클라이맥스를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찰나에 스치는 그 표정을, 꼭 보고 싶었다. 내게 약간의 용기가 있었다면 나는 그대로 달려나가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것이다.
“키스론 만족이 안 돼?”
“말 돌리지 마.”
“그럼 할까?”
큰형의 손이 자신의 목을 감싸고 있는 작은형의 손 위에 겹쳐졌다. 큰형은 그 손을 애태우며 쓰다듬더니, 그의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내렸다.
“그만해.”
“왜. 결국은 그게 하고 싶은 거잖아?”
“그만하라니까!”
큰형의 손이 단추가 벌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작은형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셔츠 위로 느껴지는 손의 움직임은 능숙하고 또 농염했지만 작은형은 흥분과 동시에 분노를 느끼는 듯했다. 큰형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그의 유두를 비틀자 목울대와 주먹이 동시에 꿈틀거렸다. 큰형은 색기 가득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하고 싶으면 해. 살인으로 별 하나 달았는데, 강간이 뭐 대수겠어.”
그 순간.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몇 초간 진공 상태와도 같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슬로 모션처럼 천천히 작은형의 손이 올라갔다. 아니, 실제로는 아주 빠른 동작이었다. 다만 내 눈이 그들을 느리게 읽어내고 있었을 뿐. 이윽고 그 손은 정점에 달했고. 나는 그를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권투 경기를 중단시키는 심판처럼 둘 사이로 몸을 날렸다.
“형! 안 돼!”
가까스로 큰형 대신 작은형의 주먹을 받아낼 수 있었다. 약간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입안 가득 피가 고였다. 작은형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자신의 팔목을 반대쪽 손으로 세게 붙잡아 억누르고 있었고, 큰형 역시 이 상황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채 돌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아픔을 참아내며 애써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크, 큰형은 화, 환자잖아. 사이좋게 지내야지. 다 큰 어른이 왜들 싸우고 그래.”
“상원아….”
“이러지 말고. 집에만 있으니까 스트레스가 쌓여서 더 부딪치는 거야. 작은형. 나랑 술이나 한잔하러 가자. 응?”
큰형은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나는 꿈쩍도 않는 작은형의 등을 억지로 떠밀어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바람이 유독 차가워 나는 벌어진 그의 셔츠 단추를 여며 주었다. 그는 잠자코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나는 그의 팔목을 꼭 붙들고 앞장서서 걸었다. 마침 숲을 벗어나면 밤늦게까지 하는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다. 학교에서 마신 술이 아직 몸 안에 남아 있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차라리 죽도록 술을 먹고 인사불성이 되는 쪽이 내겐 유익했다.
멀리 포장마차의 불빛이 보였다. 용암처럼 울렁이는 그 불빛은 굳어버린 작은형과 만신창이가 된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용해시켜 줄 것만 같았다. 나는 작은형을 붙든 손에 힘을 주어, 부러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달리. 포장마차에서 이어진 작은형의 고백은 이전의 시간보다 더 잔인한 것이었고. 술은 나를 구원하기는커녕 견디기 힘든 진실의 나락 속으로 떠밀었다. 나에겐, 망각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 * *
자리에 앉자마자 작은형은 담배를 꺼내 피웠다. 한숨 섞인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졌고 그럴 때마다 그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그의 미간에 집중했다. 눈을 찌푸릴 때마다 좀 더 차가워지는 눈동자는 홍채와 동공의 경계 없이 한 점의 어둠으로 뭉쳤다.
소주 세 병과 어묵 꼬치가 나오자 그는 혼자 단숨에 두 병을 비워버렸고. 목이 답답했는지 셔츠 단추 두 개를 쥐어뜯는 듯한 손놀림으로 풀어 내렸다.
“형, 천천히 마셔.”
“넌 안 마시고 뭐 해.”
“난 학교에서 엄청 마시고 왔어. 알아서 마실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술병을 붙든 작은형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을 따라 내 입속의 상처도 함께 욱신거렸다. 내가 맞아서 정말 다행이다. 나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만약 큰형을 때렸다면 작은형은 극심한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댔겠지. 물론 그것이 큰형이 노리는 바였겠지만.
“손버릇이 나빠진 건 알고 있었어.”
“난 괜찮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래서 최대한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큰형도 말이 심했으니까.”
“아니. 이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야.”
작은형은 또 순식간에 소주 한 병을 비워냈다. 갑자기 다량의 알콜을 섭취한 작은형의 얼굴에도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간간이 안주를 챙겨 그의 술 마시는 속도를 늦추었다. 나는 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타이밍을 잠자코 기다리다, 그가 돌아오면 꼭 하리라 다짐했던 말을 재빨리 꺼냈다.
“큰형은 이제 포기해.”
“무슨 뜻이야.”
“그냥. 어떤 의미든. 큰형. 정말 형이랑 절연하려는 거 같아. 면회도 자발적으로 안 간 거야. 내가 아무리 가자고 구슬려도 가고 싶지 않다고. 자기 앞에서 형 얘기는 이제 꺼내지도 말라고 그랬어. 그러니까 포기해.”
조금 취기가 붙은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작은형이 대답했다.
“안 돼.”
“사람 말 좀 들어. 나도 다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난 그 녀석이 없으면…. 안 돼. 인간답게 살 수 없어.”
“무슨 소리야.”
“난. 살인마거든.”
작은형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작은형이 내게 품고 있는 애증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가 한편으로 날 얼마나 미워하는지 알았는데. 왜 나는 예전보다 그가 친밀하고 편하게 느껴졌을까.
“무슨 소리야, 그건 사실 큰형이….”
“아니. 난 살인마야.”
“큰형을 감싸는 거야?”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그보다 훨씬 오래전의 이야기다.”
작은형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 말수 적고 입 무거운 작은형이! 눈가에 고이기 시작하던 잠이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언제?”
“이 집에 오기 전 일이야.”
“장난치지 마. 그땐 애였으면서.”
“아버지는, 내가 죽인 거나 다름없어.”
“아버지는 지금 살아 있잖아.”
“그 아버지 말고. 내 친아버지.”
이건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호기심에 비례하여 나의 몸은 자꾸만 그쪽을 향해 기울어졌다.
“내가 불을 질렀어. 아버지의 가게를 불태운 건. 나야.”
“말도 안 돼.”
“사실이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때 형은 고작….”
“이 손으로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어.”
“거짓말.”
“잘도 타오르더군. 일을 저지른 이유도 잊고 불에 취해 있었지. 태어나서 그렇게 아름다운 건 처음이었어. 그대로 타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죽어도 좋다고. 뜨겁고 위험한 그 불이 마치 나처럼 느껴졌지. 어린애 주제에 말이야.”
작은형은 여전히 그 불길 속에 있는 듯 생생하고 뜨거운 어조로 말했다.
“정말이구나.”
“그래.”
“도대체 왜? 홧김에 그런 건 아닐 테고.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들으면 괴로워질 텐데.”
“아냐. 뭘 얘기하든 충격받지 않을게. 말해줘.”
평소였다면 작은형은 절대로 발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입을 연 것은 온전히 술 때문이었다. 큰형에게서 받은 상처로 인해 이미 바리케이드는 허술해져 있었다. 술이 그것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다.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하여 그의 고백을 청취했다. 그의 이야기는 차마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야말로 그의 가족의 은밀한 내막에 관한 것이었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난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갔었어. 어머니의 부탁이었고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했지. 가게는 내가 지킬 테니 잘 다녀오시오. 아버진 꼭 나까지 딸려 보냈어. 난 외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사람들은 좋았지만 또래 친구가 없는 곳이라 마냥 심심했거든. 그래서 하루는 어머니 몰래 동네로 돌아와 버렸어. 외갓집은 역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고 마침 수중에 돈을 세어보니 딱 집에 돌아갈 차비가 되더라. 워낙 자주 오간 길이라 난생처음 혼자 기차를 타는데도 두려움은 없었어. 빨리 집으로 돌아가 동네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뿐이었지.
점심때쯤이었을 거야. 집에 도착한 건. 가게는 점심때도 문을 닫지 않는데 그날은 아예 셔터가 내려가 있는 거야. 아버지가 외출하셨나, 하는 생각에 뒷문으로 갔어. 놀려면 야구 글러브를 가지고 나와야 했거든. 가지고 다니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글러브를 꺼내고 냉큼 나오려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한숨을 쥐어짜내는 듯한 소리. 열을 토해내는 듯한 소리. 그 소리는 가게 안에서 나오는 소리였어. 웃긴 일이지. 그때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는데. 벼락처럼 어떤 예감이 머릿속을 스치는 거야. 나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서 가게로 통하는 미닫이문을 엿볼 수 있을 만큼만 열었어.
두 사람이 가게 안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더군. 하반신만 벌거벗은 두 남녀가. 남자는 여자를 벽에 밀어붙인 채 계속해서 자신의 물건을 들이밀었고 여자는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남자를 희롱했지. 신음을 내는 건 오히려 남자 쪽이었어. 여자는 별로 흥분하는 것 같지 않았어. 시시하다는 얼굴이었지. 남자는 그것도 모르고 개처럼 헐떡이며 허리를 흔들었어. 어린 마음에도,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못나 보이는 아버지는 태어나서 처음이었지.”
“아버지?”
“그래. 내 아버지였어. 흔히들 말하는 불륜이었지. 아무튼 절정에 먼저 도달한 것도 아버지 쪽이었어. 자제하지 못하고 몸 안에 사정하는 바람에 여자의 다리 사이로 정액이 흘러내렸어. 난 정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믿겨지지 않았지. 섹스의 개념조차 몰랐을 때니까…. 여자는 아버지의 섹스가 성에 차지 않았던지 욕설을 뱉어내고는 다리 사이를 핥으라고 명령했어. 쾌락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모멸감을 주기 위한 명령 같았어. 아버지는 그녀 앞에 무릎 꿇고 시키는 바에 충실히 따랐어. 자기의 정액인데 말이야. 추잡한 소리가 나도록 잘도 빨더군…. 씨발.
넘쳐나는 침과 정액이 흘러내려 바닥에 얼룩이 졌지. 그 순간 난 생각했어. 더럽다. 저건 너무나도 더러운 것이다. 나는 집에서 돈을 훔쳐 다시 외갓집으로 돌아갔어. 내가 그 모습을 본 걸 들키면 안 될 것 같았어. 다음날 나는 어머니와 함께 태연히 집으로 돌아왔지. 아버지 역시 태연히 우리를 맞이했어.
그리고 다음날. 아버지는 어머니를 데리고 낚시를 가셨다. 나는 혼자 집에 남겨 두었지. 당시 난 뱃멀미가 심했거든. 나는 가게 안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어. 얼룩 같은 건 아무 데도 없었지. 하지만 아버지가 내 머릿속에 남긴 얼룩은 결코 지워지지 않았어. 참을 수 없다는 감각. 내 몸이 뜨겁게 불타올라 무엇이든 부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어.
마침 아버지가 두고 간 성냥이 눈에 보이길래 과자 박스를 뜯어 불을 붙여 보았지. 잘도 붙더라. 신이 났지. 그리고 난 얼룩을 떠올렸어. 물로 지지 않는 것은 기름으로 지우라는 말도 떠올랐고. 마침 기름통이 있었지. 아이가 옮길 수 있을 정도의 작고 다루기 쉬운 걸로. 나는 두 사람이 교미하던 그 장소에 기름을 부었어. 내 소원대로 차례차례 사라지더군. 얼룩이 남았던 자리, 두 사람이 서 있던 자리…. 나마저도 없어질 지경이었지.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어. 아버지가 더러운 만큼 나도 더러운 거라고 생각했지. 다시 아버지나 어머니를 볼 면목도 없었고. 그런데 그때, 상윤이가 날 구한 거야.”
“큰형이?”
“내가 혼자 있는 걸 알고 놀러 왔던 거지. 아마도 아버지가 아버지…아니, ‘네’ 아버지에게 부탁했을 거야. 상문이 심심하지 않게 애들 좀 보내 달라고. 언제부터 날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어. 아무튼 불길이 내게 스미기 직전에 상윤이가 날 가게에서 밖으로 끄집어냈어.”
작은형의 눈동자는 이미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저 멀리 아득하게 먼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결코 향기롭다 말할 수 없는 과거였지만 어쨌거나 큰형과의 추억이었기에. 그는 조금 행복한 듯 보였다. 그리고 그 과거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는 다시 말을 꺼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낙담한 나머지, 술에 취해 바다에 빠져 죽었지.”
“그 여자는?”
“어떤 여자.”
“아버지랑 잤다는 그 여자는, 어떻게 됐어? 다시 만났어?”
“다시…. 만났지.”
“그래서 어떻게 했어?”
“아무것도.”
“왜?”
“내 어머니가 되었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거든.”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차마 이해해서는 안 됐다.
“그 말은….”
“이런 얘기, 듣고 싶지 않았겠지. 아무튼 네 친어머니니까.”
“말도 안 돼….”
“나도 그랬지. 믿고 싶지 않았다.”
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어머니의 정부가 한 남자였을 리 없었다. 다섯이라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편의 형과? 토악질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어머니를 탓할 일이 아니야. 내 아버지가 협박했다.”
“뭘?”
“상윤이에 대해.”
“아….”
“상윤이 아버지와 네 어머니의 밀회 장면을 아버지가 목격한 모양이야. 하지만 그건 계기일 뿐이었던 것 같아. 내 아버지는 아무튼 네 어머니에게 욕정하고 있었으니까.”
“다들 미쳤어….”
“그 뒤로도 난 불을 지를 때와 같은 욕망에 시달렸어. 부수고 싶다. 파괴하고 싶다. 아버지와 큰어머니의 불륜과 나의 방화. 그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 연쇄적인 이 사건들이 어린 내 안의 세계를 모두 불태워 버렸지. 이미 타서 재가 되어버렸는데도 자꾸만 자꾸만 어딘가에 불을 지르고 싶더라. 모든 걸 끝장내 버리고 싶었지. 고아원에 잠시 있을 때는 더 가관이었어. 덤비는 놈이건 덤비지 않는 놈이건 모두 코피를 터트려 버렸거든.”
“형 나는….”
“그렇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나에게 이상윤이 그러더라. 나도 너와 같다고. 너하고 똑같다고.”
“난 못 믿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뜨겁던 욕망이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더라. 그런 생각이 들더군. 저 녀석은 나와 같다. 저 녀석은 나다. 그러니까 내가 불을 지르면 저 녀석도 불을 지르고. 내가 악마가 되면 저 녀석도 악마가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나만 돌연변이가 아니라는 사실. 그 사실이 기뻐서 미칠 것만 같았지. 그 녀석은 내 생명과 내 정신. 모두를 구한 거야.”
소주 네 병째를 비운 작은형의 눈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연거푸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못 들은 걸로 하고 싶다. 잊고 싶다. 술이든 뭐든 좋으니 제발 모든 걸 잊어버릴 수만 있다면! 나는 한탄했다. 나는 왜 그런 남자와 그런 여자의 아들인 걸까. 차라리 사생아였다면 좋을 텐데. 나는 내가 비겁하게 지키려 했던 적자의 자리가 실은 얼마나 구역질나는 피의 결합인지 새삼 깨달았다. 고층 건물의 난간에 서 있는 것마냥 정신이 아찔했다. 그 감각을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나는 뛰어내려도 좋았다. 나는 마주 앉은 작은형을 부둥켜안고 싶었다. 그에게 기대고 그에게 어리광부리고 내가 몰라도 좋은 모든 기억을 그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문득 세 살짜리 어린애만도 못한 질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우린, 형에게 뭐야?”
나는 그에게 큰형과 비슷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걸까. 그에 뒤지지 않는 존재란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작은형은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더니 잠겨 든 목소리로 조용히.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난 용서할 수 있을 거다. 나는 네 형이니까. 우린 형제니까. 그 사실 하나로 나는 모든 걸 용서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상윤은 달라. 진심이 용서했다고 해도 용서해서는 안 돼. 영원히 헤어지고 싶다고 해도 헤어지자고 말해선 안 돼. 아무리 작은 감정이라도 우리들 사이에 생겨난 무언가를 그렇게 끊어내다 보면 우린 아무것도 아닌 남이 되는 거야. 너희들과는 평생 볼 수 없다 해도 남이 되지 않겠지. 우리들은 이어져 있으니까. 아무튼 한 뿌리니까. 하지만 이상윤은 틀려. 그 녀석은 내게 유일한 타인이자 유일한 나야. 그 녀석을 잃으면 난…. 다시 불을 지르고 말 거다.”
다 타버린 작은형의 세계로 들어선 단 한 사람. 그 세계의 새로운 지축이 된 사람. 그게 큰형이었다. 비로소 나는 내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망쳐서는 안 될 것을 망쳐버린 것이다. 나는 나의 패배를 인정했다. 나는 말없이 그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 뒤로 우리들은 마시고 또 마셨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죽도록 마셨다. 알콜로 뇌를 세척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윽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셋째 형이 우리들을 데리러 왔을 때. 탁자 주변에는 수많은 소주병이 굴러다녔고 나는 일어서서 걸을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셋째 형에게 업혀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진심으로 그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쩌면 이렇게 미꾸라지처럼 잘도 치명적인 진실들을 요리조리 피해 나가는 걸까. 갈등이 있는 날. 비밀이 만들어지는 날. 그는 항상 집에 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 우리가 모르는 곳에 갈등과 비밀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겠지. 나는 셋째 형의 목을 끌어안으며 주정을 부렸다.
“형.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냐.”
“하이고. 니 미칫나. 영감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제대로 업히래이. 자꾸 미끄러진다 아이가.”
“형, 나 진짜 속상하다….”
“주디 닥치고 고마 디비지 자라. 집에 가믄 이불 위에 던져 주꾸마.”
낭랑한 셋째 형의 목소리에 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긴장이 풀리자 졸음이, 막대한 졸음이 밀려들었다. 때문에 앞장서서 걷고 있는 작은형의 뒷모습이 자꾸만 흐릿해졌다. 아무리 제대로 눈을 뜨고 보려 해도 자꾸만 여러 겹으로 흩어지는 그 모습에 갑자기 짙은 회한이 밀려왔다. 이제 지난밤처럼 그와 속마음을 터놓고 함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와 나의 관계도, 그들의 관계도, 이제 복구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길은 내리막길. 우리들에게 남은 사명은 오로지 이별뿐이었다.
어디선가 장엄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누군지 모를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머릿속 가득 울려 퍼졌다. 나는 잠결에 그가 하는 말을 따라 읊조려 보았다.
가족을, 해체시켜라.
* * *
이후 며칠간 나는 수업을 빼먹고 줄곧 집에 처박혀 있었다. 훌쩍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큰형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지 않았다면 주저 없이 그리했을 것이다. 합병증이 생기는 바람에 큰형은 다시 병원엘 다녔고 난 그의 수발 겸 운반 역으로 -열이 심할 때는 내가 직접 운전하여 병원에 데리고 갔다- 집에 묶여 있었다. 병이 큰형을 놓아주지 않는지 큰형이 병을 놓아주지 않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던 큰형의 모습을 기억하며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장면을 추모했다. 참 아름다웠는데.
집에 있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어디서 또 떠돌고 있는 것이겠지. 모두들 지나가는 말로 ‘아버지 어디 가셨어?’라고 물었지만 ‘글쎄, 어디 가셨을까?’하고 대답하면서도 실상 아무도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그런 양반 될 대로 되라지. 분명 어디서 또 자신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타인에게 민폐만 끼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작은형의 고백 때문이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참 안 됐다는 생각. 아내와 아들에 이어, 친형에게까지 배신을 당했으니. 물론 그는 그 모든 배신의 총합을 뛰어넘고도 남는 만행을 저질러왔지만.
나는 굳게 걸어 잠근 지하실의 입구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러나 지하실의 문을 걸어 잠갔을 때처럼 이내 아버지를 의식의 가장 멀고 깊은 굴속으로 가두어버리곤 했다.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그는 내 안의 파문을 일으키는 주체였으므로 고요히 살아가기 위해 나는 그를 의식 가장 깊숙한 곳에 묻어버렸다.
큰형 먹일 한약을 달여 집에 돌아오는데 멀리서 다투는 소리가 났다. 또 큰형과 작은형이 싸우는가, 하는 생각에 서둘러 집을 향해 뛰어갔는데. 막상 목격한 장면은 내 생각과는 아주 다른 것으로, 살이 뭉그러지고 뼈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육탄전이었다. 작은형과 두 남자가 한바탕 주먹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키가 작고 검붉은 얼굴의 눈이 매서운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싸움이 벌어진 지 꽤 많은 시간이 경과한 모양이었다. 주먹의 날은 아직 살아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 서서히 지친 기색이 드러났다.
나는 고목 뒤에 몸을 숨기고 그들의 정체를 살폈다. 세 남자들 중 한 명은 이미 내가 아는 얼굴로 작은형이 없을 때 우리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건달패거리의 일원이었다. 둘은 내 나이 정도 돼 보이는 덩치들로 보아하니 한참 말단인 모양이었다. 덩치는 작았지만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키 작은 남자가 우두머리였다. 그는 구둣발로 담배를 짓이겨 끄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한 놈이 틈을 노려 작은형의 정강이를 각목으로 휘갈겼다. 아차 하는 사이 작은형은 바닥에 고꾸라졌고 다른 놈이 잽싸게 팔을 뒤로 꺾어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제압했다. 날렵함이나 힘의 세기 면에서는 작은형이 우세였으나 테크닉 면에서는 그들을 따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어쨌거나 싸움의 프로였고, 심지어 맨손도 아니었으니.
키 작은 남자가 작은형의 턱을 한 손으로 움켜쥐며 말을 꺼냈다.
“고렇게 나오겠다, 이거여? 긍게 우리 성님. 못 도와주겠다고라, 이거제? 지미. 아따 나가 미쳐 불것네. 니 고런 말 알제? 결초보은이라고. 니 빵 들어가 있을 적에 느이 부모형제 배곯을까 먹을 것 입을 것 가따 줘 부렀더니 이제 와서 뭐라? 니헌티 신경 끄라고 잉. 너가 짐승도 아니고 인간 새끼면 응당 도리란 것을 알 것인디. 너는 뭘 믿고 싹바가지가 이렇게 노랗다냐.”
귀에 익지 않은 전라도 사투리는 억양 하나하나가 생경하여 그가 힘주어 말하는 대목 하나하나가 나는 고통스러웠다.
“당신들 마음대로 한 일이야. 내가 그걸 갚아야 할 이유는 없어.”
“니 죽었다 이. 니 빵 또 가고 자픈갑제. 나가 웃대가리헌티 한마디 찔러 넣으면 니 빵 또 처넣는 건 일도 아니라. 나가 그래야 쓰것냐. 거시기 좋은 게 좋은 거라. 너도 곧 알게 될 거여. 어차피 일로 오게 돼 있당게. 너가 머를 헐 건디. 누가 너 일 시켜줄 거 같냐. 어차피 돌아 돌아서 이 짓 허게 되어 있단 말이여. 머달라고 시간 낭비헐 거여? 너 잘못되라고 우리가 이라것냐. 우리 큰형님 덕으루다 잘 먹고 잘살라는디 아따 이리 좋은 걸 왜 마다혀.”
“행님. 더 말할 것도 없슴니더. 고마 쥐기 뿝시더. 임마는 한번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꼬예.”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의 대화라니. 지금이야 그런 지역감정 따위 우습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 시절에는 아니었다. 남과 북이 갈라져 있듯 경상도와 전라도 역시 그렇게 갈라져 있었던 것이다. 전라도 출신으로 경상도 조직의 중간 간부 자리를 꿰찬 건가? 보통 남자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너 혼자 문제가 아니랑게. 가족들은 워쩔라고 그러는겨. 듣자허니 니 밑에 동생이 불광이라며. 그넘 손가락 몇 개 끊어 놔야 정신이 들어불랑가? 막둥이는 P대 다닌담서. 살인범 동생이 P대라니. 가당치도 않제. 워뗘. 함 맛 좀 볼 틴겨?”
“더러운 새끼….”
작은형의 욕설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매서운 주먹이 날아왔다. 아랫것들과는 주먹의 소리 자체가 틀렸다. 퍽, 하는 소리가 아니라 뻐걱, 하는 소리가 났다. 입가가 찢어진 작은형은 고개를 돌려 피로 범벅된 침을 뱉었다.
“듣자허니 니 성이란 놈도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잉. 아니 너거 집 자체가 미스터리여. 느이 형제들하고 얽히면 그렇게 사람이 많이 죽어 나간담서. 거시기 누기냐. 미군도 하나 사라지부렀다고 하드만. 개망나니 같은 놈이라 사람들이 쉬쉬해서 그라제, 안 그랬음 느이 가족은 통째로 깜빵행이여. 그냐, 안 그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기서 피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하마터면 나는 그대로 뛰쳐나가 남자의 입을 막아버릴 뻔했다.
“미군…?”
작은형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너 것도 모르냐? 니 아부지랑 한창 사업 같이하던 미군. 피트라고. 진짜 모르냐? 임마 이거 완전 빙신 팔푼이네. 느이 가족들은 그런 것도 안 알리 주더냐.”
“그 미군이 어떻게 됐는데.”
“사라지부렀당게. 쥐도 새도 모르게 말여. 그 양놈이 너거 집에 수시로 들락거렸단 말여. 부대엔 말 안 허구 몰래 다녀서 수사할 땐 너거 집을 안 건드렸는지 몰러도 부산 사람들은 다 알제. 양놈이 느이 집서 살다시피 한 거.”
“우리 가족과는 상관없어.”
“그 윤선미 말고도 그전에 한 년 더 죽어 나가 부럿제? 니 형한테 채여가꼬 너거 동네서 자살해 부렀담서. 그라고 윤선미 골통에 못 박아 넣고. 너거들은 그런 종족이여. 태생이 망종이랑게. 그깐 주변머리로 멀 하것어. 그랑게 좋은 말할 때 알아 들으랑게. 니 발로 기어서 오게 돼 있어. 성님 넘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 잉.”
“행님. 더 조지뿌지예. 벌써 고만 할라고 그라십니꺼.”
“이넘 말고도 일이 밀려 있당게. 나중에 너 혼자 다시 와 볼텨?”
“알겠심니다. 이상문이! 니 단디 하그라. 까불면 콱 쥑이삔다. 알긋나?”
남자는 그제야 결박을 풀었다. 남자에게서 풀려난 뒤에도 작은형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전라도 말투를 쓰는 남자는 작은형의 얼굴에 지폐 다발 하나를 던지며 말했다.
“집에만 있을라믄 깝깝할 거여. 나가서 몸 좀 풀고 용돈혀라 이.”
작은형은 석상처럼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돈다발 역시 그에게는 마당을 구르는 돌멩이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들이 자리를 뜬 뒤 나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작은형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형. 뭐해?”
“…아무것도 아니야.”
“들어가자. 얼른.”
나는 억지로 작은형을 일으켜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꿋꿋이 버티고 선 작은형은 떠밀리지 않았다. 거칠고 깊은 울림을 지닌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피트가…. 누구냐.”
“어? 어어…. 그게.”
“우리 집에 살았다면서.”
“에이. 누가 그래? 과장이 심하다. 잠시 왔다 갔다 한 거뿐인데.”
“왜 드나들었는데.”
“어….”
말문이 막혀버렸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런 종류의 위기에 여러 번 대처해왔다. 나는 어떤 대답이 가장 효율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위험하지 않을 만큼의 만만한 진실만을 흘릴 것. 그리고 나는 충실히 그에 따랐다.
“영어 가르쳐 주러 왔었어.”
내 말에 작은형은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그가 더 추궁해올까 두려워 한약 봉지를 부여안고 얼른 집 안으로 도피했다. 나는 슬슬 작은형과 함께 사는 것이 피곤해졌다. 심지어 그가 집을 나가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일도 있었다. 작은형의 잘못은 아니었다. 다만 틈이 생긴 것이다. 수년의 틈. 벌어진 세월. 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시린 바람은 나를 고달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우리의 비밀을 자꾸만 엿보려 하는 작은형은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불안을 안고 사는 것은 고통스럽다. 나는 쉬 피곤을 느끼곤 했다. 그래도 집을 나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나는 의무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됐다. 훔쳐보지 않는 내 인생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으므로.
내가 아닌, 내가 엿보고 내가 훔치는 인생들이 나를 채우고 있었다.
* * *
그날 밤. 손님이 찾아왔다. 늦은 밤인 데다 일체 손님이라곤 찾아온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가 작은형에게 손님이 찾아왔다는 말을 전했다.
“그놈들 패거리일지도 몰라. 날 찾으면, 없다고 해.”
“어…. 그래. 내려오지 말고 2층에 있어.”
2층에 올라간 김에 큰형 방에도 들렀다. 큰형은 불을 켜둔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불을 끄려다 말고 방을 나와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손님을 바깥에 계속 세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쩔 도리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고맙네.”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오십 즈음 되어 보이는 남자는 척 보아도 엄청 고급스러운 양복에 화려한 깃 장식이 달린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남자는 문을 열어주었음에도 집에 들어오지 않고 대뜸 물었다.
“아버지는 계신가.”
“아니. 안 계시는데요.”
“그렇군.”
아무리 추측해 보아도 아버지의 친구로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는 아버지가 없다는 말에 안심하고 집 안에 발을 들였다. 나는 그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고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다. 남자는 코로 차향을 음미하더니 표정도 그윽하게 차를 마셨다.
“실례지만, 뉘신지….”
“아. 난 자네 아버지 친굴세.”
내가 아는 한 아버지는 이렇다 할 친구가 없었다. 이렇게나 번듯한 친구가 있을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했다.
“그렇군요.”
“자넨 둘짼가?”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작은형과는 나이 차가 나는데. 내가 작은형 또래로 보이는 걸까. 조금 기분이 상해 버렸다.
“네? 아니. 전 막낸데요.”
“아. 그래. 그렇지.”
아무리 보아도 수상쩍은 남자였다. 모자를 벗은 남자의 얼굴은 척 보기에도 고급 관료로 보통 잘 사는 사람이 아닌 듯했다. 수려한 세공의 금테 안경과 푸른색 보석이 박힌 커프스가 어두운 형광등 아래 반짝반짝 빛났다. 은근한 광택을 지닌 양복은 아버지와 셋째 형이 만드는 그런 기성복과는 차원이 다른 우아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보고 있자니 괜히 주눅이 들 정도였다.
빨리 가주지 않으려나, 하지만 남자는 마냥 아버지를 기다릴 태세였다. 아버지가 미쳐버렸다는 걸 말해야 하나 말하지 말아야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는 남자의 말상대가 되었다.
“큰형은 잘 있고.”
“지금 2층에서 자고 있어요.”
“건강한가?”
“아니요. 큰형은 아픕니다.”
순간. 남자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아니, 어디가.”
“결핵이요. 만성화되고 있어요.”
“저런. 조심하지 않고…. 병원엔 다니는가?”
“그렇긴 한데. 영 낫질 않으니. 아무튼 걱정입니다.”
남자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 눈에는 언뜻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차가운 금테 안경을 고쳐 썼다.
“잠시, 상윤이 얼굴 좀 보고 가면 안 되겠나?”
“네?”
“어릴 때 보고 못 봐서 어떻게 컸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큰형은 지금 자는 중이라, 깨우기 좀 그런데요. 잠을 설치면 몸 상태가 더 나빠져서.”
“그런가….”
남자는 굉장히 실망한 듯 보였다. 어느새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전화를 빌려 누군가에게 차를 산 아래에 대기시키라고 명령했다. 기사를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드디어 간다는 생각에 개운해진 나는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켰다.
“이만. 가봐야겠네.”
“아버지한테 오셨다고 전해드릴까요?”
“아니. 괜찮네. 참 이거 받게나.”
남자는 주머니에서 미리 봉투에 넣어 준비해 온 돈뭉치를 꺼냈다. 오늘은 우리 형제가 기분 나쁜 돈을 받는 날인가? 하고 나는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첫째 치료비에 보태 쓰게. 아, 그리고 이건 내 연락처인데 무슨 일 있음 연락하게나. 내가 도울 일이 있음 뭐든 도와줄 테니.”
“아니,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작은 성의일세. 부디 받아 주게.”
“그래도….”
“그럼 또 보도록 하지.”
집을 나서려던 남자는 잠시 멈추어 또 얼토당토않은 말을 꺼냈다.
“어머니. 보고 싶지 않은가?”
“네?”
“오랫동안 못 뵈었지?”
“아, 네.”
“어머니께 연락은 없고?”
“네.”
“그래. 알았네.”
도대체 왜 우리 집을 찾아온 건지. 아무런 목적도 흘리지 않은 채 남자는 떠나버렸다. 손에 쥐여진 돈봉투의 묵직한 무게도 자꾸만 들뜨는 어색함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이걸 누구한테 이야기해야 하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돈뭉치 때문에 갑자기 난감해졌다.
“누구였어.”
문 닫는 소리를 들었는지, 작은형이 내려왔다.
“모르는 사람. 좀 이상해. 연락처를 주고 갔는데…. 뭘 어쩌라는 건지.”
“줘봐.”
남자의 이름을 읽은 작은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래도 그도 아는 사람인 듯싶었다.
“이 사람…. 나간 지 얼마나 됐어.”
“어? 한 오 분. 십 분쯤?”
“알았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작은형은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말리지도 못했다. 뒤늦게 우산을 챙겨주려 했지만 그는 이미 숲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열린 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유난히도 차, 나는 우선 현관문을 닫았다.
“상원아. 상원아-.”
마침 큰형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는 얼른 2층으로 올라갔다.
“깼어?”
모처럼 혈색 좋은 얼굴로 큰형은 침대에 편안히 누워 있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응. 이제 좀 열이 내려갔다. 그런데. 누가 온 거야?”
“아-. 들었구나. 글쎄. 나도 몰라. 모르는 아저씨던데. 작은형은 아나 보더라. 이름 보더니 바로 뒤쫓아 나갔어.”
“어떤…. 사람이었는데.”
“글쎄. 딴 건 모르겠고 엄청 부자란 건 알겠더라. 양복 때깔이 틀리더라고.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디서 본 듯도 해. 어디서 봤지….”
“연락처 같은 거, 남겼어?”
“어. 그러니까 작은형이 그거 보고 뒤쫓아 나갔지.”
“가지고 와 봐.”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쪽지를 큰형에게 가져다주었다. 쪽지를 읽은 큰형 역시 작은형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미간이 찌푸려지며 눈썹 끄트머리가 부르르 떨렸다. 그 쪽지 안에 심상치 않은 무언가가 담겨 있는 것이리라. 나는 차갑게 얼어붙은 큰형의 눈치를 살피며 침묵하고 있었다.
“또 받은 거 없어?”
“어? 어, 아니.”
왜였을까. 돈이 탐난 것도 아니었는데. 아마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자가 돈을 두고 갔다는 사실을 알면 큰형은 더욱 화를 낼 터였다. 모처럼 건강해진 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왜. 아는 사람이야?”
나의 질문에 대답도 없이 큰형은 남자가 남기고 간 연락처를 갈가리 찢기 시작했다. 원래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찢고 또 찢었다. 얼마나 힘주어 찢는지 그러다 자신의 손까지 죄다 뜯어버릴 기세였다.
불편한 마음에 나는 괜히 작은형을 기다렸다. 돌아올 때도 되었건만. 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작은형은 돌아오지 않았고, 빗발은 더욱 거세져 창문을 닫고 있어도 비 내리는 소리가 선명히 들릴 정도였다.
한참을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작은형이 돌아왔다. 흠뻑 젖은 작은형은 옷을 털지도 않고 큰형의 방으로 올라왔다. 두 사람은 나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서로만을 쳐다보았다. 마주친 눈동자는 내가 모를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 듯했다. 둘 사이의 분위기는 며칠 전과 달리 굉장히 부드러워 보였다. 늦은 밤의 방문객은 큰형과 작은형을 동일한 감정으로 묶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둘의 눈동자는 잘은 몰라도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의 눈은 작은형의 오른손에 꽂혔다. 손등이 까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낮의 싸움에는 없었던 상처였다.
“다신 못 찾아올 거다.”
“완전히 끝낸 거야?”
“아니. 죽지 않을 만큼만.”
“잘했어.”
큰형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작은형은 주저 없이 그 손을 붙잡았다. 그들은 가만히 부둥켜안았다. 작은형의 몸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큰형과 침대를 적셨다. 나는 가만히 그들에게 몸을 기댔다. 작은형의 젖은 몸은 소스라칠 정도로 차가웠지만 상관없었다. 일시적이나마 그들의 화해는 내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 예측 가능했지만 나는 예측하지 않으려 했다. 알 필요도 없고 또 안다고 해서 무엇하랴. 아버지도 어머니도 큰아버지도 그 남자도 무엇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 그들은 도둑이었다. 우리의 삶 곳곳에 구멍을 내는 파렴치한 도둑들.
나는 가만히 두 사람의 몸에 팔을 둘렀다. 시린 몸 깊숙한 곳으로부터 온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도둑들을 증오했다. 그러나 마냥 늙은 도둑들을 탓할 수도 없었다. 우리들은 소소한 행복이 아닌 그들이 남기고 간 구멍으로 인해 공감하고 있었기에. 우리들 또한 전혀 빼앗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없기에. 나는 모든 판단을 보류했다.
* * *
한 달이 넘도록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들쑥날쑥하는 아버지라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가 자주 출몰하는 구역에 나가 사람들에게 그와 비슷한 사람을 본 적 없냐고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 그러고 보니 요즘 통 보이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이대로 돌아오지 않으려나. 개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음이 불편했다.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 단정지어 버린 듯했다. 일절 말을 꺼내는 일도 없었다. 주인 없는 방을 마냥 비워두기도 그래서 작은형과 나는 날을 잡아 아버지의 방을 정리했다. 안 쓰는 물건들은 버리고 그래도 쓸 만한 것들은 지하실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지하실은 꺼림칙했지만 창고가 곰팡이 천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작은형이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는 동안 내가 지하실을 미리 청소해두기로 했다. 실로 오랜만에 지하실의 자물쇠를 열고 사다리를 탔다. 역한 냄새가 났다. 역한 냄새, 라는 어휘로는 다 표현되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냄새였다. 바닥에 발을 내딛자마자 나는 속에 든 것을 전부 게워냈다.
코를 틀어막고 냄새의 근원지를 찾았다. 딱히 냄새가 날 만한 물건은 없었다. 지하실을 살피던 중 나는 바닥에서 핏자국을 발견했다. 갈색의 얼룩. 큰형의 것인지, 피트의 것인지 모를. 문득 내 머릿속에 피트가 떠올랐다. 피트가 썩고 있는 걸까. 이미 한참 지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사람을 죽였다는 공포는 시간이 흘러도 그렇게 쉽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더는 냄새를 참을 수가 없어 지하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옷장이.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보이는 곳에는 냄새의 근원이 없었다. 그렇다면 옷장 안에?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옷장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진한 냄새가 났다. 역시 옷장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옷장을 열어젖혔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냄새의 덩어리가 훅 밀려 나왔다. 나는 위액까지 게워낸 다음 옷장 안을 보았다. 그곳에는 부패할 대로 부패한 시체 한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피트다! 시체의 얼굴도 확인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해버린 나는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 으아아아아!”
“무슨 일이야?”
비명을 들은 작은형이 재빨리 지하실로 내려왔다. 그 역시 발을 딛는 순간 악취에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냄새를 차단한 뒤에도 형은 계속 헛구역질을 했다. 나는 이성을 잃고 그에게 매달려 울었다.
“형 어떻게 해. 난 이제 어떻게 하면…. 그놈이 나쁜 거야. 그놈이 형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서….”
작은형의 눈이 옷장에 고정되었다. 그는 나의 말 같은 것은 듣고 있지 않은 듯했다. 나는 옷장을 등진 채 그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마음이 불안해지면 불안해지는 만큼 그를 붙든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윽고 작은형은 입을 열었다. 나는 그의 몸을 통해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동굴처럼 울리는 그 목소리는 넋을 잃은 듯. 낡아 얼룩진 이름을 불렀다.
“아버지….”
그 목소리의 말미가 흐려짐과 동시에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이란 제목의 책이 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나는 머릿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이후 내가 치른 우리 가족의 장례식 또한 그러했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은 한산했다. 이렇다 할 조문객도 없었다. 다만 검은 양복을 갖추어 입은 우리 네 형제가 나란히 서 있을 뿐이었다. 상주는 셋째 형이 맡았다. 손목에는 한때 아버지가 기쁨으로 큰형에게 하사했던 고급 손목시계가 자랑스럽게 채워져 있었다. 종종 시계에 반사된 날카로운 빛이 형제의 동공을 찔렀으나 큰형과 작은형은 그런 사실엔 관심조차 없다는 듯 벽에 기대앉아 망연자실 아버지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형은 침통해하는 와중에도 그 이면에 웅크리고 있을 무언가를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었고 큰형은 불안해 보였다. 그것은 슬픔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그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그 혼돈의 근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혼돈의 파장은 내 예상을 넘어서, 큰형은 자신의 입으로 끝내겠다고 선언한 작은형과의 관계조차 냉정히 유지하질 못하고 장례식 내내 그에게 기대거나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큰형을 보는 셋째 형은 드물게도 직접적으로 멸시의 감정을 드러냈다. 들끓고는 있으나 터트릴 수는 없는 그런 분노의 덩어리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나는 어땠냐면.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시체가 발견된 뒤 경찰의 간단한 조사가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아버지는 사다리에서 떨어져 바닥에 머리를 찧은 뒤 옷장 속에 들어갔고 누군가가 입구를 잠갔다. 뇌출혈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직접적인 사인은 아사. 정확한 사망 일시를 추정할 수는 없지만 대강 추리하자면 내가 지하실에 자물쇠를 채운 뒤 일주일은 경과하지 않은 것으로.
경찰은 정신착란증 환자의 실족사에는 더 관심이 없다는 듯 돌아가 버렸고 셋째 형은 마지막으로 문을 잠근 것이 대체 누구냐며 우리들을 닦달했다. 누구의 대답도 없어 나는 마지못해 자수했다. 나야. 그때, 셋째 형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던 것은 왜일까. 그의 눈은 마치 내게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라고 화를 내는 듯했다. 그는 애초에 다른 범인을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아, 나는 왜 옷장 속의 아버지를 잊어버렸던 걸까. 나는 후회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지하실에서 사이좋게 썩어들어갔을 피트와 아버지의 시체. 두 망자를 생각하려 들면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파 왔다. 나는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그런 공간은 없다. 우리 집에 지하실이란 곳은 없다. 존속 살해의 거대한 죄책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내일 발인해뿌자.”
셋째 형의 말에 큰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작은형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벌써?”
“올 사람도 없다 아이가. 시장바닥 맨쿠로 북적여야 할 장례식장이 이기 머꼬. 텅텅 비어가, 마. 그냥 낼 해치워뿌자.”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형 좋을 대로 해. 형이 상주니까.”
“오늘 더 올 사람도 없는 거 가꼬, 내는 좀 나갔다 오꾸마.”
“아니 어딜 가겠다는 거야?”
“낼 아침까진 오꾸마. 걱정 말그라.”
“아니, 난 걱정하는 게 아니고-.”
“맛있는 거 사 올게. 기다리지 말그래이.”
셋째 형은 그렇게 떠나갔다. 우리들은 텅 빈 장례식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아무도 울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의 눈도 부어있지 않았지만 모두 극심한 피로에 지쳐 있었다. 작은형은 갑갑하다는 듯 넥타이를 풀어 멀리 던졌다. 공교롭게도 그 넥타이는 아버지의 영정에 턱하니 걸려 얼굴 반을 가려버렸다. 반쪽의 얼굴을 한 아버지는 그 모습을 전부 보일 때보다 훨씬 생생하여 마치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저녁이나 먹자.”
모두들 밥술을 뜨는 둥 마는 둥 했다. 진이 빠져 밥 먹을 기력도 나지 않았을뿐더러 입맛도 없었다. 보다 못한 작은형이 나무라는 말을 했다.
“잘 먹어두지 않으면, 내일 힘들어.”
작은형의 타박에도 우리들의 수저는 여전히 무거웠다. 그런 나와 큰형을 번갈아 바라보며 작은형은 어려운 말을 꺼냈다.
“지하실은 메우도록 하자.”
내가 애타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 암 덩어리와도 같은 그 공간이 없어진다. 얼마나 간절히 바라왔던 일인가. 나는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큰형은 말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작은형의 제안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의 무미건조한 표정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공간을 부러 메운다 하여 우리들의 구멍 난 시간들이 채워질 것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시간이란 것도 함께 늙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영양제를 주사해도 되살아나지 않는 고목처럼 나는 관계의 부활을 단호히 부정했다.
“상원아.”
큰형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죄책감 느끼지 마.”
“어? 어….”
“네가 죄책감 느낄 필요 없어.”
“이상윤.”
“네 탓이 아냐. 어차피 죽는다는 건 그런 거니까.”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그만 대화가 끊겨 버렸다. 모처럼 배를 채우니 급격히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고 보면 몇 시간 자지도 못했다. 인간이란 괴로운 동물이다. 잊고 싶은 순간.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정작 잠들 수 없다니. 막상 수면으로 차단하는 시간들은 인간의 가장 안타까운 순간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방석을 베고 자리에 누웠다.
“여기서 자게? 안에 휴게실 쪽에 들어가서 편히 자.”
“아니야. 여기가 편해….”
“기다려. 이불 덮어줄게.”
“괜찮대도….”
이불을 덮어주는 큰형의 얼굴이 마치 물속에서 잠기는 양 가늘게 출렁였다. 포박 같은 긴장에서 풀려난 내 몸은 완전히 늘어져 나는 손가락 하나 들어 올릴 힘도 없었다. 서서히 초저녁의 어둠처럼 눈꺼풀이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그를 거부하지 않고 부드러운 어둠에 몸을 맡긴 채 기쁜 마음으로 수면의 세계에 돌입했다.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 그건 말 그대로 축복이었다.
* * *
깊고도 단 잠에서 깨어난 것은 이른 새벽이었다. 구들장의 푹신한 온기에 일어날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는 고개만 돌려 입구 쪽을 보았다. 복도에 못 보던 화환이 하나 놓여 있었다. 옆 장례식장에 배달되어 온 것인가? 그러나 화환에 적혀진 이름은 분명 아버지였고 그 옆에 적힌 보낸 이의 이름 역시 낯설지 않았다. 나는 그 이름을 어디에서 보았는지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가물가물 잡힐 듯 잡히지 않던 기억은 한참을 씨름한 다음에야 회상의 그물에 걸려들었고. 나는 깨달았다. 그 이름은 얼마 전 아버지의 친구라며 집에 찾아와 연락처를 남기고 간 바로 그 남자였다. 그 순간 전신의 핏줄이 팽팽해지며, 나는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깨가 뻐근했다. 큰형과 작은형은 휴게실에서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휴게실 쪽의 벽에 등을 붙이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때.
“…게 아니야.”
큰형의 목소리였다. 역시 둘은 휴게실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휴게실에서 잘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가로누워 아버지의 영정을 보고 있으려니 괜히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숨을 죽이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나의 침묵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깊이 잠겨 있던 그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넌 날 너무 미화하고 있어.”
허무한 웃음소리를 동반한 큰형의 목소리는 꼭 술에 취한 사람 같았다. 결핵 환자인 큰형이 술을 마셨을 리가 없는데도. 취한 듯한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는 어쩐지 벌거벗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의 목소리 역시 벌거벗겨져 있었기 때문에.
“아니. 난 그렇게 순진한 인간이 못 돼.”
작은형의 목소리 역시 차가운 웃음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 두 웃음소리는 마치 그들이 주고받는 창과 방패 같았다.
“난 널 미화하는 게 아니야. 나만이 널 직관하고 있어.”
“그런 건 다 착각이야.”
“너야말로 나에 대해 착각하고 있어. 날 미화하고 있는 건 오히려 네 쪽이야. 나 역시 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아. 대체 너 자신에게 뭘 구하고 있는 거지? 인간이란 피차 다 그런 거야. 너만 더럽고 너만 썩어빠진 그런 게 아니라고. 나도 똑같아. 너랑 다를 바 없어.”
“아버지는 외로웠어.”
큰형의 목소리는 상한 머리카락의 끄트머리처럼 갈라져 있었다.
“외로움이 독이 됐지. 나는 그 남자의 피는 이어받지 못했지만. 그 고독만큼은 충실히 물려받은 것 같아. 고여서 흐르지 못하고 썩어버리는 물처럼, 독이 되어버리는 감각 말이야.”
“아버질, 용서하기로 한 거냐?”
“아버지와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어째서인지 아프지도 혹독하지도 않은. 기묘한 것이야. 어느 날 아버지가 방 안에서 혼자 뭐라 중얼중얼하고 있기에 들어가봤더니, 울고 있더라. 나는 까치발로 조심조심 아버지에게 다가갔어. 아버진 비통한 표정으로 무언갈 부르짖고 있었어. 아버지, 왜 그러세요? 하고 물었는데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지. 나는 아버지의 어깨를 젖히며 다시 물었어. 왜 우세요? 그제야 아버지는 나를 돌아보았는데 얼굴이 눈물 자국 하나 없이 말짱한 거야. 도리어 되묻더군. 무슨 일이냐. 아니 우시는 거 같아서. 그랬더니,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거야. 단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던 것뿐인데. 어찌나 음치였는지. 열정을 다해 부르는 노래가 통곡으로 들릴 정도였던 거지.”
“처음 듣는 이야기야.”
“그 노래를 떠올릴 때면 잠시나마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어.”
“그래.”
“이 사람도 나와 같구나, 하고.”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어딘가 각자 자신만의 책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완벽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차분히 나누는 그들의 말에 굉장한 호기심을 가지고 집중했다.
“넌 사실 다 알고 있는 거지?”
처음 듣는 전사(前事). 작은형은 선뜻 대답이 없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잖아.”
“알고 싶은데도 알게 될까 두려워 모르는 척하고 있어.”
“이젠, 안 돼.”
“단정짓지 마.”
“너도 알잖아. 넌 늘 그랬어.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기억나? 처음으로 같이 잤던 날. 네가 나에게 키스하고 난 네 뺨을 때렸지. 난 야멸차게 널 밀어내고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았어. 하지만 문을 잠그지는 않았지. 그거 알아? 난 이불로 몸을 감고 기다렸어. 일부러 문고리를 잠그지 않았던 거라고. 넌 확인하듯 문고리를 돌렸지. 아주 천천히. 잠겨 있나 잠겨 있지 않나를 가늠하듯. 하지만 넌 알고 있었을 거야. 애초에 내가 계획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을.”
“글쎄.”
“마치 나와 게임을 하듯이.”
“아니. 나는 쭉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이었어. 그 많은 과제들을 풀고 나면 네 가장 깊숙한 곳에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때는 닿았어. 지금은 아닐 뿐이야.”
“생각해보면 나는 가장 폭력적일 때 너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것 같아.”
“그래…. 난 네가 날 부숴주길 바랐어.”
차근차근. 조금의 흥분도 없이 가장 중요한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폭력은 분명 위험한 것이지만 폭력으로 해소되는 무언가도 있는 것이다. 나는 큰형과 작은형이 집에서 거칠게 싸우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에 비하면 훨씬 안정적이고 신사적인 대화였지만 관계의 와해 정도는 이쪽이 더욱 가팔랐다.
큰형은 희미한 소리로 구슬픈 곡조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노래는 아마도. 아버지가 불렀다던 그 노래였으리라. 노래 사이사이 큰형은 웃기도 하고 숨이 끊어지는 듯한 신음을 내기도 했다. 노래의 마지막은 다급히 터져 나오는 기침 소리에 묻혀 사그라들고 말았다.
“뭐 때문에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거야. 아버지의 죽음 말고 뭘 숨기고 있는 거지?”
“…이리 와.”
큰형의 목소리는 간지러운 열기를 품고 있었다. 나는 벽에 더 바짝 등을 밀착시켰다. 그리고 등 너머에 있을 두 사람을 떠올렸다. 저벅저벅. 큰형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작은형의 발걸음이 내 반신이 닿아 있는 지면을 무겁게 울렸다.
“끝이라더니.”
“그래. 끝이야.”
“그럼 이건 마지막으로 주는 상인가?”
“이건 벌이야.”
큰형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시각을 제외한 감각으로 그들을 느끼려 했다. 두 몸이 엉켜 한데 쓰러지는 바람에 조립식 벽이 휘청하고 흔들렸다. 등으로, 벽을 통해, 열정적으로 구불거리는 몸의 움직임이 전해졌다. 아주 미세하게 타액이 질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내 상상으로부터 비롯된 소리인지도 모른다. 진분홍빛 두 살덩이가 한데 미끄러지는 소리. 뜨겁게 달아오른 호흡이 부딪치는 소리. 오랫동안 기다려온 손가락이 그의 온몸을 주무르고 문지르는 소리.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귀로 들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윽고 찰캉, 하고 벨트의 버클 부분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양복의 단추 부분이 딸각거리는 소리 역시. 그들은 옷을 벗어던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애써 앙다물며 마구 분비되는 침을 꿀꺽꿀꺽 삼켰다. 나는 큰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끝이라 말하며 안으로 불러들이고, 안으로 불러들이며 끝이라 말하는 그의 속셈. 게임을 펼치고 있는 것은 기실 작은형이 아니라 그 자신이지 아니한가.
“안 돼! 옷은 벗기지 마.”
큰형이 비명을 지르듯 다그쳤다. 그 몸의 흉흉한 흉터들을 차마 보일 수 없는 까닭일 터였다.
“뭘 원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작은형이 물었다.
“벌해. 날…. 벌해줘.”
당장에라도 끊어질 듯한 큰형의 호흡. 마치 내 귓가에 대고 토해내는 듯한 그의 숨결. 계속해서 벽을 울리는 그들의 움직임은 나를 흥분시켰다. 나는 자꾸만 사타구니로 향하려는 손을 얼굴로 끌어올려 입을 틀어막았다. 갑자기 큰형이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몸이 하나의 갈퀴로 꿰어졌다. 벽을 차는 움직임도 일정해졌다. 작은형이 큰형의 몸을 파고들 때마다 조립식 벽이 당장에라도 구부러질 듯 세차게 내 등을 밀어냈다. 큰형은 나의 존재를 완전히 망각한 듯 갈라진 목소리로 알아듣지 못할 신음을 토해냈고 그의 음성은 오롯이 내 고막에 심박곡선과도 같은 자취를 남겼다. 내 손은 이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입가로 묽은 침이 흘러내렸다. 아프게 발기해 있는데도 사정할 수 없기에 내 몸은 다른 구멍으로 액체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나는 벽에 기대어 선 채로 연결되어 있을 두 사람을 상상했다. 큰형의 파르스름한 입술을 적신 타액을. 떨어져 나온 돌조각처럼 날카롭고 딱딱하게 굳어 있을 유두를. 코끝을 간질이는, 내장 깊숙한 곳으로부터 끌어올려진 숨과 그 숨의 단내를. 정액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을 성기의 접합 부위를. 성기와 점막이 부딪칠 때마다 흘리는 질척한 마찰음을. 행위에 맞추어 딸려 들어가고 딸려 나올 붉은 점막을. 그 점막으로부터 흘러나올 한 방울의 피를. 나는 체험했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음란하게. 막연히 상상하는 것보다 더 뜨겁게.
이윽고 큰형의 육체가 절정을 맞이하여 크게 경련했다. 쿵, 하고 두 사람은 쓰러졌다. 그 무너짐이 지면을 통해 내게로 전달되었다. 두 사람은 마치 총에 맞은 노루처럼 푸들푸들 가쁜 숨을 토해내었다. 그와 함께 나는 손으로 전혀 자극을 주지 않았음에도 그만 사정하고 말았다. 나는 눈을 감고 있는 내내 아버지의 시선을 느꼈다. 영정 속에서, 검은 넥타이 뒤에 몸을 숨기고 우리를 훔쳐보고 있을 그 아버지. 관음의 주체였던 내가 관음의 대상이 되다니. 역겹지만 불가항력적인 쾌감이 몸 한복판을 관통했다.
우리들은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모두들 자신의 몸을 숨긴 데에서 한쪽 눈만을 노출하여 서로를 훔쳐보고 있었다. 술래가 없는 가운데 우리는 술래를 기다리는 게임의 목적이자 또 숨은 이들을 찾아내려 하는 게임의 주체였다. 서서히 침몰하는 그들의 호흡을 감상하며 나는 가만히 읊조려 보았다.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탈상이 끝나고 큰형은 기진맥진하여 한참을 앓았다. 셋째 형은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큰형을 내내 타박했다. 누워서 돈 먹는 벌레라는 둥. 산송장이라는 둥. 더러운 병균 덩어리라는 둥. 그중에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도 종종 있었다. 듣는 내가 다 불쾌할 정도로 그는 큰형에게 공격적이었다. 보다 못한 내가 제발 그러지 좀 말라며 싫은 소리를 하자 셋째 형은 정색을 하며 소리쳤다.
‘점마는 형도 아이다!’
그러나 막상 큰형이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라고 조곤조곤 따지고 들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애꿎은 방문만 걷어차는 것이었다. 작은형은 그런 셋째 형을 조용히 벼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눈빛이 나날이 험악해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고 꼼꼼히 관찰했다.
셋째 형은 가게를 정리한 돈과 집안의 재산을 혼자서 몽땅 꿀꺽해 버렸다. 내게는 그나마 같은 핏줄이라며 돈 몇 푼을 쥐여 주었지만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몇 푼 안 되는 돈이었고.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돈이었다.
재산을 거머쥔 셋째 형은 기다렸다는 듯이 양복점 일을 때려치우고 아예 전문 도박꾼으로 나서 우리들이 폐쇄하고자 잠정적으로 합의한 지하실을 새로 꾸며 전용 하우스로 이용하였다. 우리들이 조금이라도 싫은 말을 하려 들면 그는 당장 가장 행세를 하려 들었다. 결국 셋째 형의 가장 오래된 애인 순미 씨가 집 안에 들어와 살림을 차렸고 1층은 그녀의 차지가 되어 우리들은 모두 2층으로 내몰렸다.
집은 매일같이 드나드는 도박꾼과 여자들로 시끄러웠고 적절한 요양을 취하지 못하는 큰형은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어느 날 고열로 쓰러진 큰형은 병원으로 실려갔고. 기어코. 불치성 결핵 판정을 받고야 말았다. 그 말은 곧 평생을 결핵과 함께해야 한다는 악질적인 선고였고,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는 그의 여생을 약이라는 부목에 의지하여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진중한 충고였다.
큰형은 담담히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죽음은 오히려 가깝다는 태도였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작은형은 그런 큰형을 지켜내려 필사적이었다. 힘겨운 싸움이었다. 생의 벼랑 끝에 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를 다시 숨 쉬는 생의 벌판으로 끌어낸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의지와 집착만으로는 버거운 일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벌인 정사로 두 사람의 관계가 단단해졌다면 또 모를까마는 이상하게 둘은 더욱 삐걱대고 있었다. 잠시 내어준 틈을 다시 밀어내려는 큰형과 그 틈으로 더욱 강하게 치고 들어가려는 작은형 사이에는 위태로우면서도 음란한 기류가 흘렀다. 나는 그들을 보고 있을 때면 몽정 후 정액으로 흠뻑 젖은 팬티의 냄새를 직접 확인할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큼하고 비린 그 냄새를 맡을 때면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고 침샘이 자극되어 작은 벌레가 침투한 듯 목젖이 찌르르 울리곤 했다. 더러운 줄 알면서도 기어이 코를 가져다 대고 치구의 잔향을 들이키는 그 기묘한 습관처럼 나는 위험한 줄 알면서도 기어이 그들에게 정신을 밀착했다.
셋째 형의 도박장에는 작은형을 위협하던 어깨들도 드나들었다. 그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작은형을 유혹하고 협박했다. 안 될 말이었지만. 내가 봐도 작은형이 나아갈 곳은 결국 그 세계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나는 작은형의 저항이 헛수고처럼 느껴졌다. 물론 작은형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거부하는 것은 조직폭력배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 단절이었다. 작은형은 홀린 듯 불을 지르고 마는 자신의 본성을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폭력성에 강렬히 이끌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세계로 한 번 건너가고 나면 어긋난 관계를 과거 한때의 행복했던 순간으로 영영 되돌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 큰형에게 ‘나도 너와 같다.’고 동일성을 부여받은 작은형은 손쉽게 자신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 큰형 역시 자신과 함께 그 경계를 이탈하게 된다. 그런 강박 관념이 그를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느낌이었다. 불신과 맹신이 한데 얽혀 잔뜩 팽창해 있었다. 조그마한 계기만 제공된다면 언제라도 펑, 하고 여린 표피가 갈가리 찢겨나가며 우리들은 산산이 흩어질 터였다. 내심 차라리 터져버렸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연쇄 폭발의 시작. 우리들 이별의 서곡. 검게 그을려 한 몸이 되어버린 숲의 전면적 와해.
계기는 물론 셋째 형이었다.
* * *
그날은 모처럼 대낮부터 집을 비웠다.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셋째 형이 한껏 거들먹거리며 내어준 등록금, 꼭 그 허세만큼의 무게를 지고 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너무 오랫동안 집에 유폐되어 있었던 탓일까. 숲을 벗어날 때에는 늘 동굴을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쏟아지는 빛에 충격을 받아 시야가 하얗게 바래고 머릿속이 뿌옇게 차오르는 감각. 나는 밖에 나가 있을 때면 더 또렷이 숲의 구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서늘한 공간을 부유하는 안개의 덩어리. 수채 물감을 덧칠하듯 누적되는 심야 암흑의 축조 형태. 굵고 가는 나뭇가지가 겹을 이루어 만든, 거대한 거미줄을 닮은 숲의 실루엣. 그리고 그 속을 떠도는 한 가련한 소년의 초상. 밝고 바른 세상 한가운데 나는 가슴 속 깊숙이 숨겨둔 숲의 모형을 조용히 꺼내어보곤 했다. 네 명의 소년들이 나란히 매장되어 있는 내 검은 오르골. 그 모형은 세상과 나를 차단하는 경계이자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방학인데도 학교는 각종 집회로 북적였다. 절도 있는 손동작으로 주먹을 흔들며 자유와 민주를 부르짖는 그들은 마냥 붉었다. 그들은 하나의 횃불이었다. 그 한가운데 나만이 검었다. 나는 붉게 생동하는 그들을 흑백의 시야로 바라보았다. 벌겋게 타오르다 재로 부스러지는 청춘들. 내 청춘은 한번 그들처럼 열렬한 불꽃을 피운 적도 없다마는 이상하리만치 후회가 없었다. 그들이 일찌감치 버리고 떠나온 세계, 나는 하나의 혈관을 흐르고 있었으므로. 나는 땅속 거칠게 헝클어진 개미굴을 모험하는 존재. 그들의 투쟁과 나의 혼돈. 이 두 가지 충돌은 과연 다른 것일까. 투척하듯 등록금을 학교에 버리고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그런 상념에 젖어 있었다.
도서관에 들러 책 몇 권을 빌리고 큰형의 약을 찾아 집에 돌아온 것은 저녁 무렵. 슬슬 허기가 밀려드는 그런 시간이었다. 큰형의 상태가 궁금하여 나는 먼저 2층을 방문했다. 집 안에는 큰형 외에 아무도 없는 듯했다. 큰형의 방은 언제나처럼 불이 켜져 있었다. 혹시 잠들어 있을지 모를 그를 위해 가만히 문을 여는데 말소리가 들렸다. 큰형의 목소리였다. 흘끗 보았지만 아무튼 방안에는 큰형 혼자뿐이었다. 그의 손에는 수화기가 들려 있었다. 나는 벽에 몸을 붙이고,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양자요?”
양자라는 말에 귀가 솔깃한 나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옆방으로 들어가 다른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옆방에는 어쩐 일인지 셋째 형과 순미 씨가 함께 잠들어 있었다. 왜 2층에서 자고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우선은 전화가 시급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린 아니겠죠.”
-아니, 진심이다. 마누라가 죽었어. 딸들은 모두 시집갔다. 후계자도 없어. 거리낄 게 없단 말이야. 너만 허락한다면 정식으로 호적에 넣고 싶구나.
전에 찾아왔던 그 남자일까. 중년 남자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귀에 익었다.
“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에요. 그래도 좋다는 겁니까?”
-그럴수록 나한테 와야지. 거기 있음 없던 병도 생기겠더라. 환경이 중요해. 환경이.
“건강하더라도 당신 양자는 안 될 겁니다.”
-고집은 그만 부려. 생사가 달린 문제 아니냐.
“난 당신들을 증오해요.”
-나도 네 어미 행방은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서 그걸로 끝이야.
“당신들이 아니었다면 나도 없었을 텐데.”
-내 말 들어라. 이제부터라도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
“행복이라고요?”
큰형은 기침 섞인 목소리로 웃었다. 나는 큰형이 어떤 심정일 때 그렇게 웃는지 익히 알고 있었다. 수화기를 잡은 손에 흥건히 땀이 차올랐다. 나는 수화기를 어깨에 걸치고 땀에 젖은 손을 바짓단에 문질러 닦았다.
“말은 쉽네요. 행복. 행복이라…. 당신의 존재를 안 순간부터 난 행복한 적 없습니다. 머릿속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죠.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잘 배신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라는 인간을 완전히 속일 수 있을까! 당신에게는 평범한 불륜이었겠죠. 죄책감 따위 없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그 가벼운 사랑놀음 때문에 몇 사람의 인생이 엉망이 되었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해본 적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해보시죠. 그런 다음에 말하세요. 내 양자가 될 생각 없느냐고!”
-진정해라. 몸도 좋지 않다며.
“난 인간으로서 끝났어요. 이미, 끝나버렸어요. 이제 나는 누구의 가족도 누구의 사랑도 누구의 무엇도 될 수 없습니다. 내 가능성은 모두 말살되어 버렸어요. 남아 있는 가능성은 오직 머지않은 날. 다행히도 아주 멀지는 않은 날. 내가 죽는다는 것뿐입니다.”
-넌 뭐든지 심각하게 생각하는구나.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아주 비극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굴려고 들어. 그래. 좋다. 포기하마. 그럼 둘째라도….
“닥쳐!”
갑자기 고함을 내지른 탓인지 이후 큰형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하여 까칠한 기침만 토해냈다. 각혈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수화기를 조용히 내려놓고 얼른 옆방으로 건너갔다. 아니나 다를까 큰형은 하얀 이불 위로 붉은 피를 흩뿌리며 고통스럽게 기침을 토해내고 있었다.
“형! 괜찮아?”
“괜찮…아. 너 언제 온 거야….”
“지금 왔어. 가만있어. 내가 치울게. 일단 누워.”
다행히도 많은 양의 각혈은 아니었다. 나는 피 묻은 수화기를 대충 닦아 제자리에 두고 온수에 적신 수건으로 그의 얼굴과 목, 어깨와 가슴을 천천히 문지르며 그를 안정시켰다.
“누군데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짐짓 모르는 척 물었지만 큰형은 씁쓸하게 미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의사가 절대 안정하라고 그랬잖아.”
“손….”
“응?”
“손 좀 잡아줄래?”
큰형의 말에 나는 당황하면서도 차가운 그 손을 꼭 붙들었다. 양손으로 포개어 따뜻하게 덥혀 주었다. 온기를 느낀 큰형은 스르륵 눈을 감았다. 청량한 침묵이 이어지고 나는 큰형과 남자의 통화를 곰곰이 돌이켜 보았다.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지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미 자신은 인간으로서 끝나버렸다는 큰형의 말이 자꾸만 나를 슬픔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나는 남자가 언급한 ‘둘째’라는 말이 자꾸 거슬렸다. 작은형은 그 남자와는 아무런 혈연관계도 아닐뿐더러 그 남자는 아무튼 작은형에게 ‘완전히 끝낸다.’는 의미에 합당할 정도로 –그러나 ‘죽지는 않을 만큼.’- 폭행당했을 터였다. 은근한 불안이 스멀스멀 뒷목을 타고 올라왔다. 싫다. 불길한 생각은 하지 말자. 나는 머리를 털며 잡다한 생각들을 날려버리려 애를 썼다.
“…벌써 일곱 십니더. 밥 묵으야지예.”
“됐다, 마. 이리 온나.”
옆방에서 순미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미 씨와 셋째 형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순미 씨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었다. 셋째 형과의 사이에서 이미 두 번을 낙태한 순미 씨는 기어코 세 번째 아이를 가지고야 말았고. 세 번 낙태는 영원히 불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셋째 형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순미 씨와의 결혼을 약속했다. ‘결혼을 해야 되겠다.’는 셋째 형의 말에 나는 별생각 없이 ‘결혼한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라고 물었고 그는 성가신 얼굴로 대답했다.
‘아파트에 불이 나서 말이다. 높은 데서 두 눈 딱 감고 뛰어내려야 할 때가 안 있나. 안 뛰어내림 고마 불이 번지가 거기서 통구이가 되가 죽을 판이고, 안 죽을라믄 무조건 뛰어내려야 하고. 고민, 고민하다 결심해가 이 악물고 첫발을 딱! 뗄 때. 그 기분이데이, 내가 지금.’
억지 결혼이란 정말 싫은 거구나. 일순 결혼에 대한 공포가 밀려들 정도로 실감 나는 감상이었다. 그러나 결국 자업자득인 것이다. 셋째 형의 방종한 성격에 제대로 피임을 했을 리도 없고 어떻게든 셋째 형을 붙들려 작정한 순미 씨 역시 피임 따위 뒷전이었을 터. 그러나 그들의 의도가 어쨌든 간에 조카가 생긴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다. 머지않아 집안 곳곳에 배어들 달콤한 아기 냄새를 생각하면 조금은 푸근한 기분이 들었다.
“간지럽심니더.”
큰형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셋째 형과 순미 씨의 목소리가 들리자 경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다시 불쾌해 보였다. 불안한 마음에 나는 괜히 그의 손을 더 힘주어 잡았다.
“와이라예. 장난치지 마이소.”
“니 내숭 떠나? 난중에 후회 말고 맘 내키 하자고 할 때 하는 기 좋을 긴데.”
“1층에 멀쩡히 방 놔두고 만날 행님 옆방에서 와 이랍니꺼.”
“잔말 말고, 후딱 벗그라.”
설마. 거짓말이겠지.
나는 동의를 구하듯 큰형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큰형은 대답 대신 내 손을 놓은 다음, 가만히 귀를 틀어막았다. 나는 허전해진 손을 어디 두어야 할지 막막하여 괜히 주먹을 아프도록 움켜쥐었다. 그렇다면 셋째 형과 순미 씨는 이전부터 버젓이 큰형이 요양하고 있는 이 방을 옆에 두고 그 짓을 해왔다는 건가? 자신들의 전유물이 된 1층을 놔두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피가 통하지 않은 형제라 해도 상식이란 건 엄연히 존재하지 않는가. 게다가 이 행위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엿보여지는, 의도와 상관없이 훔치어지는 그런 행위와는 다르다. 이 행위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래도, 설마.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렇게까지. 마음 한구석으론 셋째 형을 믿고 싶은 마음에 계속해서 설마설마하며 판단을 유보하는 사이. 벽 너머에서는 서서히 교미의 전운이 돌고 있었다.
“살살 하이소.”
“닥치고 다리 좀 들어 보그라.”
“아야…. 아! 아 떨어지믄 우짤라고예. 와 이 방만 오면 힘이 펄펄 납니꺼? 귀신들린 것 맨쿠로….”
가슴이 철렁했다. 큰형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 담담한 눈으로 사색이 된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사심도 없는 그 눈동자를 바라보던 도중 나는 셋째 형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말이 섹스일 뿐. 의도적인 권력 과시 행위였다. 동물로 치면 마운팅, 즉 서열 확인 행위인 것이다. 우두머리 사자가 무리의 젊은 암컷을 다른 수컷들 앞에서 탐하듯 셋째 형은 서열에서 낙오된 큰형 앞에서 보란 듯이 패륜을 저지른 것이다.
또 다른 의미로 그것은 큰형에 대한 경멸의 표시, 절대 무시의 신호였다. 한마디로 셋째 형은 큰형을 인간 대접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마치 너 같은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그를 말릴 수도 그 행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놓았던 큰형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의 냉기로 내 몸의 불쾌한 열기가 가시길 바라며. 우리들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었다. 얇은 벽을 가운데 두고 한쪽에서는 몸을 한쪽에서는 체온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둘 중 어느 행위도 달콤하지는 않았다.
방 너머의 행위가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 아래층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작은형이 돌아온 것이다.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에 올라와 이 상황을 본다면 작은형은 결코 셋째 형을 용서하지 않으리라. 나는 그를 1층에 묶어두려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큰형은 내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힘주어 손을 빼려 해도 악착같이 붙들고 늘어졌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큰형은 이 광경을 작은형에게 보여줄 심산이었다. 나는 불안했다. 작은형과 셋째 형의 충돌로 인해 무너질 것은 비단 그 둘의 관계만이 아니었다. 작은형이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가 저벅저벅 울릴 때마다 나는 우리를 지탱해온 어떤 기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작은형이 그 위험한 자태를 드러냈다.
“둘 다 여기 있었어? 셋째는.”
큰형도 나도 말이 없었다. 셋째 형과 순미 씨의 교성이 그 아스라한 침묵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작은형의 눈썹이 순간 억세게 꿈틀거렸다. 잠시 큰형과 시선을 교환한 작은형은 상황 판단을 끝내고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한발 늦게 그를 따라나섰다. 그의 팔에 매달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나를 간단히 뿌리친 작은형은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자마자 거칠게 몸을 부딪쳐 문고리를 아예 부숴버렸다. 뻥 뚫린 입구로 두 사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타인의 생식기가 선사하는 뜨거운 낯섦에 불에 덴 듯 얼굴이 쓰라렸다. 나는 차마 견디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순미 씨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길고 긴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녀의 비명이 끝날 즈음에야 겨우 고개를 들어 그들을 직시했다.
“뭐, 뭐꼬!”
“…죽어.”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간 작은형은 셋째 형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그를 문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순미 씨와 분리되는 순간 사정을 맞이한 셋째 형은 참지 못하고 후두둑, 바닥에 정액을 뿌렸다. 그중 한 방울이 내 발등에 떨어졌고 나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화상을 입은 듯 발등이 뜨거웠다. 작은형은 다시 셋째 형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그의 머리를 바닥에 짓이겼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쿵, 쿵하고 둔탁한 소리가 집을 울렸다.
그래도 화가 가시지 않는지 작은형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순미 씨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그녀를 질질 끌고 나왔다. 가까스로 슬립 한 장만을 걸치고 버둥대는 그녀의 육체는 한없이 비참하여 나는 잠시나마 그녀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형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계단 아래로 냅다 집어 던졌다. 묵직한 것이 크게 구르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그녀는 계단 아래 속수무책으로 기절해 있었다. 다리 사이로 소량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나는 차마 더 보지 못하고 다시 형제들이 모인 장소로 복귀했다.
“이게 미칬나!”
한참 동안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셋째 형은 알몸인 상태 그대로 작은형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흐물흐물해진 성기가 다리 사이에서 바쁘게 달랑거렸다. 민망한 광경이었다. 그의 발악에도 당황하지 않고 작은형은 침착하게 그의 얼굴을 향해 정통으로 주먹을 날렸다. 셋째 형은 그대로 코피를 흘리며 나가떨어졌다. 셋째 형은 피를 보더니 더욱 광분하여 그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깨물린 어깨로부터 피가 흘러내렸다. 작은형은 단정한 동작으로 셋째 형의 배를 무릎으로 강하게 찍어 올렸다. 그 순간 턱에 힘이 풀린 셋째 형은 바닥에 떨어져 배를 얼싸안고 뒹굴었다. 명치를 맞았는지 잠시 동안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더니 숨통이 터짐과 동시에 뱃속의 내용물을 게워냈다. 나는 서둘러 토사물을 수건으로 훔쳐 담았다. 셋째 형의 벌어진 입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는 끈적끈적한 침이 흘러내렸다.
셋째 형은 방으로 뛰어들어가 의자 하나를 들고 나와 그대로 작은형을 향해 집어 던졌다. 원래는 내려치려고 한 것 같았으나 도중에 힘이 빠져 의자는 셋째 형의 손을 떠나 날아갔고. 작은형은 팔꿈치로 그것을 쳐냈다. 묵직한 의자였기 때문에 부딪히는 순간 뻑,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들을 말리고 싶었으나 도대체 어느 타이밍에 끼어들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방에 누워 있던 큰형은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씨발 좆도 모르는 새끼가….”
셋째 형의 찢어진 입가로 침과 피가 한데 섞여 흘러내렸다. 나는 더는 보기 괴로워 벌거벗은 셋째 형에게 셔츠를 걸쳐 주었으나 셋째 형은 내 호의를 단호히 내쳐 버렸다. 그의 눈은 작은형에 뒤지지 않는 귀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나는 그 형형한 안광에 기가 죽어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육시럴…. 빙신아, 니는 금마가 그리 중요하나!”
셋째 형의 눈은 작은형과 큰형을 번갈아 노려보고 있었다.
“부끄러운 줄이나 알아. 개만도 못한 새끼가….”
“씨발 니는 그래 잘났나! 사람 죽인 전과자 주제에 뭐 잘났다고 함부로 씨부리쌌노!”
“형!”
“와, 상원이 니도 저 새끼들 편이가?”
“아니 형제 사이에 니 편 내 편이 어딨어….”
“점마들은 형제도 아이다! 진짜 형제는 니캉 내캉 둘 아이가!”
“그래도….”
“씨발! 그래, 니도 내 같은 건 우습다 이거 아이가! 아니면 와, 니도 아부지 피 아닌갑제? 니도 딴 집 자슥이가, 어?”
말릴 새도 없이 작은형의 주먹이 다시 한번 셋째 형의 얼굴을 강타했다. 얼마나 세게 갈겼는지 고개가 완전히 돌아가 버렸다. 한참 동안 얼굴을 감싸 쥐고 있던 셋째 형은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핏덩이 속에서 무언가 하얀 고체 덩어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 속을 헤쳐 부러진 이 조각을 주워들었다. 부러진 이를 확인한 셋째 형은 히익, 하고 괴상한 소리를 내며 푸들푸들 얼굴을 떨었다. 그의 전신에서 심상치 않은 광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 알몸으로 우뚝 선 셋째 형을 보며 ‘눈이 뒤집힌다.’는 말이 어떤 형상을 일컫는 것인지를 확실히 배웠다.
“씨발…. 이거 완전 깡패 새끼 아이가! 와, 내는 농담도 못 하나! 이 새끼 아부지 자식인 거 모르는 놈이 어디 있노!”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도 못하는 놈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
“그래. 니 잘났다. 씨발 새끼야…. 지가 눈 뜬 빙신인 줄은 모르고. 니 뭐 쫌 아나? 빙신 새끼야, 니가 뭘 난리고! 은혜도 모르는 새끼…. 니 아부지한테 미안하지도 않나? 생판 고아 될 뻔한 니 델따 키웠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제, 아부지한테 못다 했으면 내나 상원이한테라도 갚아야 하는 거 아이가? 니가 인간이믄 말이다, 어? 그런데 니가, 어? 니가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사는 줄도 모르고 이상윤이 저 사생아 새끼 편이나 들고 자빠졌나? 니 좆도 모르고 이상윤이 점마만 싸고도는데, 점마가 어떤 새낀지 아나? 알 리가 없지! 점마는 아버질 죽인 놈이다! 아버지 숨통을 끊어놓은 새끼란 말이다!”
쿵, 하고 묵직한 철벽같은 것이 우리들 사이로 추락했다. 그것은 셋째 형이 억지로 천장에 매달아 아슬아슬하게 숨겨둔 또 다른 진실이었다. 그것을 지탱하던 줄이 암묵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기어코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오히려 망연자실한 쪽은 셋째 형이었다. 우리도 물론 놀라지 아니한 바는 아니었으나 셋째 형의 경악에 비하면 우리의 충격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셋째 형은 불안한 눈으로 큰형을 바라보며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듯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긴 사투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큰형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말했구나. 드디어. 난 왜 말 안 하고 있나 기다렸는데.”
모두의 시선이 큰형에게 집중되었다.
“좀 더 일찍 말하지 그랬어. 난 너한테 입막음 값도 줄 수 없는데.”
“아, 아이다. 내는…. 그런 뜻이 아이라….”
“무슨 소리냐. 아버지를 죽인 게 너라니. 입막음이란 건 또 무슨 소리….”
“내다! 내가…. 내가 돈에 눈이 뒤집히가! 형을 버리고 도망갔다!”
셋째 형은 갑자기 기가 죽어 뜬금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내가 미친놈이다! 내가 악마다! 내가 형을, 큰형을 팔아먹었다!”
“진정해. 이상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잘못한 기 아이다. 금마가, 집주인 금마가…. 그 변태 새끼가! 어린 애새끼 따묵으면서 환장하는 그 새끼가 잘못한 기라…!”
셋째 형의 눈동자가 깊숙이, 닿을 수도 없는 어린 시절로 잠겨 들었다. 셋째 형의 귀에는 작은형과 내 말 같은 건 들리지도 않는 듯했다. 셋째 형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오래전 기억에서 잊혀져버린 일을 고통스럽게. 그러나 언제고 말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는 듯 신랄하게.
고백했다.
“어릴 때였다. 기, 기억하제? 집주인이 큰형 개 패듯이 패가, 작은형 니가 식칼 들고 죽이러 간다 안 그랬나. 두들겨 맞은 그날. 몰랐제? 내, 내는 봤다. 나만 본 기라. 내, 내가 밖에서 놀다 연장이 필요해 차, 창고에 뭘 가지러 갔는데. 이, 이상한 소리가 나는 기라. 어린 아가 막 비명을 지르면서 울고 있었다. 뭔 일인가 싶어 창고에 가 봤드니, 집주인이 어린아를 발가벗기가 빗자루로 마구 갈기고 있는 기라. 아가 좀 잠잠해지니께 아를 빨고 주무르고 변태 짓을 하고 있대. 그런데 잘 보니끼네 그게 크, 큰형인기라…. 큰형은 도망갈라꼬 발버둥 쳤는데 소용없었다. 저항할라치면 주변에 있는 연장을 아무거나 주워가 마구 때리는데 수가 있나. 내는 겁에 질리가 이라지도 저라지도 못하고 그, 금마가, 큰형 입에다 자기 걸 쑤셔 넣는 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런데….”
“똑바로 말해.”
엄한 목소리로 큰형은 그를 재촉했다. 벌거벗은 몸에 한기가 스미어 그의 몸은 오돌토돌 자그마한 돌기로 뒤덮였다. 말이 길어질수록 그의 상체는 자꾸만 앞으로 수그러졌다. 그럴 때마다 그는 오뚝이처럼 꼿꼿이 자신의 몸을 다시 일으켰다. 뒤늦은 유년의 재판. 작은형과 나는 배심원처럼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 금마가 미칬는지 그 짓도 모자라서, 큰형 엉덩이에 지 걸 집어넣을라 카는 기다. 내는 내도 모르게 고마 큰형을 불러버린 기라. 형, 거기서 뭐하노? 그제사 주인 놈은 내를 돌아봤다. 금마 손에는 뻰찌가 들려 있었다. 내는 벌벌 떨면서 말했다. 아부지한테 이를 기라고. 동네 사람들한테 다 말해부릴 기라고. 큰형은 그 틈을 타 그놈 밑에서 빠져나올라 켔는데, 그놈이 뻰찌로 큰형 목을 누르더니 다른 손으로 주머니에서 수북한 지폐를 꺼내는 기라. 그라믄서 내한테, 이 돈으로 어디 가서 과자나 사 먹고 놀다 오라꼬….
물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형을 구해야 한다꼬. 짐승 같은 놈한테 먹히게 두면 안 된다꼬. 그런데 자꾸만 발길이 금마가 돈을 흔들고 있는 쪽으로 향하는 기라. 큰형 얼굴은 점점 사색이 됐다…. 금마가 들고 있는 뻰찌가 번쩍번쩍 빛나는데 오금이 저리가…. 내가 허튼짓이라도 하믄 금마가 아무 연장이나 주워가 내 대골빡을 쪼개버릴 것 같았다. 뻰찌로 내 이빨을 다 뽑아 버릴 거 같은 기라. 그래가…. 금마의 두꺼운 손가락이 큰형의 거길 쑤시고 있는데도 내는 내도 모르게 돈을 집어버린 기라.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그래, 난 그런 놈이다! 이제 됐나! 니가 바라던 게…. 이런 거제? 내만 빙신 만들고, 악당 만들고…. 씨발, 인자 만족하나!”
“형…. 그때 말한 게. 그게 이 얘기였어…?”
소름이 끼쳤다. 셋째 형이 유일하게 후회한다는 그 일이 바로 그때, 그 사건에 관련된 것이었다니. 작은형 역시 적잖이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셋째 형은 바닥에 고개를 박고 쓰러져 울었다. 비통한 울음소리가 집 안 가득 울려 퍼졌다. 큰형은 원망도 용서도 없는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대체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흐윽…. 내는 그렇다 치고, 끅. 아버지는 와 죽였노! 아, 아버지는 지 자식도 아닌 니를 내보다 더 이뻐하고, 키워줬는데… 와…. 와 죽였냔 말이다!”
보다 못한 나는 억지로 셋째 형에게 옷을 입혔다. 힘이 빠진 형은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어린아이처럼 순순히 나를 따랐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내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는 생각은 단 하나.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그렇다. 아버지를 죽인 건 내가 아니다. 그를 감금하고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었던 거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다행인 일인데. 그 순간 나를 장악한 감정은 시원한 안도가 아닌 기묘한 회한이었다. 나는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동안 약간은 개운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큰 짐을 조금 덜어버린 기분이었다. 아버지를 제거함으로써 큰형에 대해 조금이나마 속죄를 했다고, 죄책감의 지분을 약간은 덜어냈다고. 그러니까 나는 어쩌면 내 맡은 바 소임을 제대로 완수해낸 건지도 모른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서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아…. 비겁한 인간. 아…! 나라는 인간!
“거짓말이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작은형은 큰형에게 믿음을 구했다.
“진짜야.”
되돌아온 것은 불신뿐.
“왜…!”
“알고 싶어?”
큰형은 황혼만큼이나 깊고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작은형은 각오를 다지듯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주먹을 움켜쥐었고 셋째 형은 벽에 기대앉은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발가벗겨져서는 안 되는 고백들이 밤을 채우고 있었다. 야만의 밤…. 이 밤이 끝나고 나면 우리들은 어떻게 될까. 나는 큰형을 붙들고 마지막으로 애원했다.
“형…. 안 돼.”
“끝낼 때가 됐어.”
“형, 제발 하지 마.”
“이상문. 잘 봐.”
“안 돼! 하지 마!”
큰형은 말없이 웃옷을 벗었다. 말릴 새도 없이 한 겹의 옷이 벗겨지고 끔찍한 육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분노와 폭력으로 얼룩진 몸. 그의 전신은 흉터와 상처로 휘감겨 있었다. 그리고 나만이 그 상처들의 은밀한 내력을 알고 있었다. 나는 바지까지 벗으려는 큰형을 가까스로 말렸다.
“감상이 어때.”
큰형은 자신의 손으로 흉측한 상처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작은형은 석상처럼 그 자리에 선 채로 굳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은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잠시 벌어졌으나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이내 닫혀 버렸다. 셋째 형 역시 큰형의 몸에 충격을 받은 듯 휘둥그레 뜬 눈을 그에게서 떼지 못했다.
“난 더 이상 매를 맞고 싶지 않았어. 그게 아버지를 죽인 이유야.”
“아, 아버지가?”
나는 피트가 죽은 뒤에도 큰형의 몸을 떠나지 않던 멍과 흉터들을 기억해냈다. 그저 상처가 오래가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설마 그게.
“구라 까지 마라! 그럴 리가 없다! 아부지가 형한테 을매나 잘했는데! 결핵 걸맀다고 멀리 요양원에도 보내주고….”
“요양원이 아니라 감옥형 정신병원이었어.”
“미, 미국 보내준다꼬 양키 붙이가 공부도 시켜주고 안 했나.”
“이 상처의 대부분은, 그놈이 남긴 거야.”
“뭐라꼬?”
“아버지가 시켜서 난 그놈에게 몸을 팔았다.”
“형…. 기어코.”
“그게 네가 질투하던 수업의 정체야. 이상훈.”
셋째 형과 작은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고, 그 자리에 없었다. 작은형은 저도 모르게 큰형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시 그 손을 거두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상처받은 작은형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보지 못했다. 나는 그가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많은 것들이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아프게 갈라지면서도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대신 억눌린, 아주 억세게 짓눌린 목소리로 불필요한 질문을 던졌다.
“왜…. 왜 말하지 않았어…. 왜!”
큰형에게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향한 탄식. 그의 눈두덩이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가늘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후회를 어쩌지 못하고 애꿎은 가슴을 쥐어뜯고 있었다.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이상윤.”
“선택은…. 내가 했어. 서울로 도망가자고 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선택은 내가 한 거야.”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난 널 알아. 네가 하는 선택은, 널 위한 선택이 아니야. 넌 늘 그런 식이지. 나도 그러니까. 넌 나하고 같으니까!”
“아니. 넌 날 몰라. 넌 내가 아니니까. 잘 들어, 이상문. 나는 네가 아니야.”
큰형의 이 말은 어린 시절 작은형에게 내린 구원의 전면적 철회를 의미했다. 작은형의 평생을 지탱해오던 그 말, 나도 너와 같다는 그 말의 부정. 작은형의 손이 본능적으로 큰형의 멱살을 감아쥐었다. 큰형은 순순히 그 손에 끌려갔다. 나는 차마 작은형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성난 얼굴. 그러나 그곳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모진 상처가 집결되어 있었다. 상처의 모서리들이 또다시 서로를 찌르고, 그 속에 다시 상처를 만들고. 냉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 얼굴은 흡사 피를 쏟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날…. 버리는 거냐?”
“그래.”
“내 모든 선택이 너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그래.”
“내가 미쳐 날뛰다 죽어버린다고 해도!”
“그래.”
“나는 아니었던 거냐….”
이 말은 혼잣말이었으나 큰형은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그러나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래.”
“그럼 네가 지키려고 하는 게 대체 뭐야…. 그 여자를 죽이고, 아버지를 죽이고, 나를 버리고! 그놈에게 몸을 팔아서까지 네가 지키려고 했던 게 대체 뭐냐고! 말해! 말하란 말이야!”
작은형에게 멱살을 잡힌 큰형의 몸은 거의 공중에 떠 있었다. 큰형의 얼굴은 막 새로 꺼낸 형광등처럼 파리했다. 그의 목에서 희미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나는 서서히 악화되는 몸 상태를 알아채고, 작은형에게 달려들어 그를 떼어내려 애썼다.
“형, 그만둬. 큰형은 환자잖아!”
“놔.”
“형!”
“놓으라고!”
억센 힘에 의해 나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나를 흥분시킨 것은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찰나에 마주친 작은형의 눈빛이었다. 그 눈동자에는 나를 향한 명백한 살의가 담겨 있었다. 나는 갑자기 나를 죽이고 싶다고 했던 그의 고백을 떠올렸다. 순간 내 몸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만하라고-!”
나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고 날카로웠는지 가까이 있던 셋째 형은 저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았다.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가슴이 뻥, 하고 뚫리는 기분이었다. 허공으로 갈가리 찢겨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뒤이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입에 담고 말았다.
“작은형도 그 돈으로 출소할 수 있었던 거잖아!”
찔렀다. 내가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이. 푹, 하고 작은형의 심장을 깊숙이 찔렀다. 억세게 조여져 있던 작은형의 손가락이 풀어지며 큰형은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나는 보상행위처럼 작은형의 등을 껴안았다. 용서를 빌듯 생명을 구걸하듯 다급한 손놀림으로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작은형은 시체 같았다. 나의 폭로가 그를 죽인 것이다. 나는 그를 부르듯 그의 등을 주먹으로 세게 두드렸다. 셋째 형이 다가와 그런 나를 작은형에게서 떼어놓았다. 큰형은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전에 없이 차가워 나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벽을 뒤에 두고도 자꾸만 뒷걸음질을 쳤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데도 자꾸만 뒤로 물러나고 싶었다.
“내, 내는 나갈란다.”
셋째 형의 목소리는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어찌해야 될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이, 이따위 집 필요 없다. 느그들도 다 필요 없고 내는 고마 멀리 떠나 뿔란다. 한시도 여기 있고 싶지 않다. 뭐 이런 더러운 집이 다 있노! 안 그렇나. 내는, 내는 이 집 사람 안 할 기다. 암, 내는 내 발로 기어 나갈란다!”
셋째 형은 다급하게 1층으로 뛰어 내려가 기절해 있는 순미 씨를 깨워 닥치는 대로 짐을 꾸렸다. 그들의 다급하고 불안한 발소리가 타닥타닥, 집을 울렸다. 장대비가 내리는 듯한 그 소리 한가운데에서 우리들은 미동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의 영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번쩍이는 그 기억들 속에서 나는 보들레르의 시를 떠올렸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 와중에 시가 떠오르다니. 나는 견디기 힘든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마음속으로 그 시를 중얼거렸다.
내 청춘, 한갓 캄캄한 뇌우였을 뿐, 여기저기 눈부신 햇살이 뚫고 비쳤네…. 천둥과 비가 거세게 휘몰아쳐 내 정원에는 빠알간 열매 몇 남지 않았네….
몇 남지 않았네.
첫 번째 연을 계속해서 읊조리는 동안 탈진한 큰형이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능숙한 솜씨로 그를 부축하여 방으로 옮겼다. 작은형은 그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했다. 문틈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작은형은 이내 등을 돌리고 저벅저벅, 아픈 발소리만을 남긴 채 멀어졌다. 그는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그를 따라나서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막 시작된 그의 유랑. 큰형으로부터 떠나, 큰형을 그리워하며, 큰형을 밟으며 걸어갈 그 길은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큰형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뭔지 모를 강한 인력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큰형과 나 사이에는 다른 형제들에게는 없는 특유의 자기장이 흘렀다. 오래전부터 그와 나는 같은 파동으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그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 녀석은 이제 돌아오지 않겠지?”
나는 큰형이 말하는 그가 작은형인지 셋째 형인지 몰라 그저 무턱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큰형은 고통스러워하며 한 움큼의 약을 집어삼켰다. 약은 그의 앙상한 목젖이 세 번 꿈틀거리고 나서야 겨우 배 속으로 넘어갔다.
“형…. 왜 지금에서야 말한 거야….”
“글쎄….”
“이왕 말할 거였다면 좀 더 일찍 말했으면 좋았잖아.”
큰형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작은형이 나간 문 쪽을 응시했다. 반쯤 열린 문으로 서늘한 바람이 새어 들었다. 큰형은 그 빈약한 틈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일찍 말했으면 이상문이 아버질 죽였을 거 아냐….”
큰형의 얼굴이 순간 눈물을 흘릴 태세로 일그러졌다. 나는 그의 눈물을 닦아주려다 이내 손을 거두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울지 않을 것이다. 뿌리까지 메말라버린 그에게선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 것이다. 나는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약에 취한 그는 졸음이 밀려오는 듯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띄엄띄엄 혼잣말을 했다.
“그렇게나 그 여자를 미워했는데…. 나도 별수 없구나.”
“형. 그만 자.”
“평생을 떠돌고 있어….”
이 말을 마지막으로 큰형은 잠이 들었다. 큰형이 스스로 어머니를 입에 담은 것은 실종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어떤 의미든 그가 언제나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큰형의 가장 큰 소망은 어머니처럼 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큰형의 인생은 어딘지 모르게 어머니의 시간과 사뭇 닮아 있었다.
이윽고 아래층에서 대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정적이 절친한 벗처럼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이제 너는 혼자라고. 너희들은 흩어질 거라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겐 아무런 욕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훔쳐보고 싶다는 욕망조차 이미 소진되어 버린 뒤였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형제들이 모두 퇴장해버린 내 인생에는 아무런 이야깃거리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나에겐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의 시간은 내가 직접 살아낸 시간이 아닌, 그들을 지켜보느라 나를 거치지 않고 술술 흘려버린 시간이었고, 천둥과 비가 거세게 휘몰아쳐 빠알간 열매조차 몇 남지 않은 정원과도 같았다.
문득 나는 하나의 계절이 끝나고 있음을 실감했다. 두터운 겨울의 장막이 걷히고 다시 봄. 동면을 끝내고 나는 서투른 생동의 계절로 편입되어야 했다. 나는 무대에 홀로 남겨진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내 존재의 공허를 눈치챈 순간 나는 내 생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두려웠다.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었다. 누군가 나를 엿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분명 엿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관람해온 것처럼, 그들이 해체된 시점부터 나도 내 삶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전시해야만 했다. 끔찍한 일이었다. 허나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그것은 생의 주체가 되는 자의 숙명이므로. 또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혈육의 계보였으므로. 그 밤.
우리들은 비로소 피를 나눈 형제가 되었다.
* * *
이튿날 새벽. 집에 불이 났다. 2층에서 자고 있던 나와 큰형은 아침이 되어서야 화재를 발견하고 경악했다. 물이나 마실 겸 내려간 1층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연기만 자욱할 뿐 탄 물건은 없었다. 연기의 근원은 지하실이었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불을 놓은 것이다. 1층에 옮겨붙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2층까지 연기가 침투하지 않은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지하실은 그야말로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검게 그을린 그 공간은 마치 탄광 같았다. 나는 굳이 돕겠다고 나서는 큰형을 2층에 올려보내고 혼자서 지하실을 떠맡았다. 막막했다. 입구에서 내려다본 지하실은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사방이 새까맣게 그을려 블랙홀을 연상시켰다. 나는 우선 커다란 호스를 사용하여 공간 가득 들어찬 가스를 외부로 방출했다. 그런 다음 더는 먼지가 피어오르지 않도록 물을 분사했다.
지하실에 직접 내려간 것은 이러한 초반 작업으로 한나절을 흘려보낸 뒤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단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무장을 하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뛰어내렸다. 착지하는 순간 푸싯, 하고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잿개비 섞인 연기가 콧속을 파고들어 나는 한참 동안 숨도 쉬지 못하고 기침을 했다. 그 퍽퍽한 공기에 익숙해지는데 또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삽으로 잿더미를 퍼냈다. 아무리 삽질을 해도 끝이 없었다. 검고 건조한 입자가 내 동작 하나하나에 부풀어 올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작업을 마치고 겨우 지하실 밖으로 몸을 꺼낸 것은 저녁 무렵.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말 그대로 인간 석탄이었다. 한 시간가량 몸을 씻고 나니 극심한 피로와 함께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큰형이 차려준 저녁밥을 한술 뜨지도 못하고 그만 잠들어 버렸다. 하루 종일 검은 공간 안에 갇혀 있어서였을까. 그날 밤은 꿈마저도 검었다.
꿈속에서 나는 새까만 터널 속을 걷고 있었다. 멀리 아득한 곳으로부터 파도치는 소리가 들렸고 등 뒤쪽에서는 흉악한 열기가 밀려들었다. 바다와 불구덩이. 발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나는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었다. 기묘하게도 그렇게 걷는 내내 내 마음은 봄바람처럼 평온해졌다. 체력만 받쳐준다면 언제까지고 그렇게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출구는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없었다. 나는 그렇게 단정짓고 있었다. 불구덩이와 바다는 이 터널의 외부에 존재하고 나는 끝없이 출구와 입구가 하나로 이어진 이 터널을 걸으면 되는 것이다.
맨 발가락 사이로 끼어드는 검은 모래가 까슬했다. 한 번 간지러운 감각을 의식하고 나니 끼어드는 모래알이 자꾸만 신경에 거슬렸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검은 모래알들. 나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발가락 사이를 파고든 모래알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빼냈다. 빼낸 모래알들은 하나하나 사람의 목소리로 변형되어 귓가에 어정거렸다. 터널의 천장이 갑자기 푹, 하고 무너져 내리더니 검은 모래의 비가 내렸다. 그와 함께 말소리도 점점 또렷해졌다. 나직한 목소리로 비밀스레 주고받는 대화. 큰형과 작은형의 목소리였다. 모래의 둔덕이 머리끝까지 차오르고, 나는 비로소 내가 잠에서 깨어나려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불이 났다고.”
의외였다. 작은형. 그대로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한 번은 돌아올 거라고 막연히 장담했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눈을 뜨지 않고 그냥 자는 체를 했다. 사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귀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토록 흥미로워하던 ‘훔친다.’는 행동이 막상 강제적인 의무가 되자 그렇게 끔찍할 수가 없었다.
“지하실에만. 1층엔 번지지 않았고.”
“다행이네.”
말을 주고받는 텀이 상당히 길었다. 멀어진 관계만큼이나 그들의 교감도 느슨해져 있었던 걸까. 그들은 평범한 인사도 선뜻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 파손된 퍼즐을 애써 끼워 맞추는 듯한 대화를 견디지 못한 작은형이 먼저 본론에 도달했다.
“다른 얘기는 그만하자.”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거지?”
“…그래.”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어디 한두 번 겪은 일인가. 말간 얼굴로 상대방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을 큰형과 비스듬히 시선을 피하며 씁쓰레하게 웃고 있을 작은형의 얼굴. 보지 않아도 보고 있는 듯 보는 것보다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왜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나는 걸까.”
“어떤.”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선 당신을 포기해야만 해.”
“아아….”
“포기, 해야 하는 거겠지.”
다시 침묵. 단호하게 대답할 거라 예상했던 큰형은 의외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작은형이 도와주겠다는 듯 먼저 말을 꺼냈다.
“사라져 줄게.”
“…응.”
“평생 함께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함께했던 시간들이 짧은 꿈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져.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일이야. 마음은 조금도 변한 게 없는데. 조금도 너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데. 머리가 명령해. 너에게서 최대한 멀리 떠나라고. 그게 가장 너에게 가까이 가는 방법이라고. 널 완전히 포기하라고. 몸이 꿈틀댈 때마다 느껴. 이 몸도 결국 네가 가장 혐오하는 그 피와 그 살로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 같아선 이 몸을 갈기갈기 찢어서라도 네 곁에 있고 싶지만 그건 또. 너를 괴롭히는 일이 되겠지….”
“난 이제 무엇도 괴롭지 않아. 괴롭다는 감각조차 이젠 모르겠어.”
“난 늘 널 구하고 싶었다. 네가 나를 구해냈듯이. 네 구원이 되고 싶었어.”
“넌 지금도 날 구하기 위해 떠나는 거잖아.”
“아니. 난 날 버리기 위해 떠나는 거다.”
“이상문.”
“내키는 대로 한번, 살아볼게. 몸 가는 대로. 화가 치미는 대로.”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어. 모든 건 다….”
“알아. 달라진 건. 더럽혀진 것은 감정이 아닌 토대라는 거. 너와 내가 속해 있는 토대…. 어쩌면 이 숲일지도 모르지. 많은 사람들이 죽어 떠났어. 많은 사람들을 상처 입혔고. 아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지만. 나로 인해 네 살을 파먹게 한 것만큼은. 견딜 수가 없어. 몇 번이고 생각이 나겠지.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멈추어 선 채로 속삭이겠지. 지난밤들의 일을. 은밀히 벌어졌던 살육에 대하여 상세히. 내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도록. 네가 충분히 회상할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를 절망 속으로 몰아넣겠지. 서로를 원해서 안고 있어도 너는 기억 속에서 뜯어 먹히고 있을 테고 나는 그 기억을 돕지 못해 나를 뜯어 먹겠지. 그 과거를 억지로 떠안고 머물렀다간 네가 망가지겠지…. 매일 밤 너는 다시 살을 파 먹히겠지! 그리고 그 살을 파먹는 것은 어느새, 나 자신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네 목을 뜯고 네 배를 갈라 탐욕스럽게 너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먹어 치우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겠지. 나는 이렇게 끔찍이 널, 사랑하고 있다고…. 손가락 하나 남기고 싶지 않을 만큼, 네가 내 전부라고!”
“그게 사랑이야. 이상문.”
큰형의 목소리는 가까스로 울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토록 더러운 것이….”
축축하게 젖은 목소리. 그는 한숨을 흘리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와 동시에 내 눈꼬리에도 눈물이 맺혔다.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온몸을 적시는 한이 있어도 그는 울지 않는다. 차오르는 울음을 무슨 수를 써서든 내리누를 것이다. 눈물은 그의 가장 중요한 것을 용해시키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운다. 그 대신 운다. 그를 위해 운다. 미지근한 눈물이 콧등을 넘어 볼을 지나 차분히 베개 위로 고여 들고 있었다.
“이리 와.”
“아니.”
“잠시, 잠깐이면 되니까.”
퍽,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격렬한 포옹이었다. 안기는 순간 큰형은 고통 섞인 신음을 흘렸다. 환희에 찬 신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감고 있는 나는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살과 뼈를 부딪치며 서로를 마지막으로, 마지막인 것처럼 탐하고 있을 두 형제의 육체를.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어.”
작은형답지 않은 말이었다. 그의 부탁이란 게 못내 궁금하여 절로 눈이 떠졌다. 그러나 나는 번개처럼 재빠르게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괜찮으니까, 말해.”
“아주 가끔이라도 날 생각할 때면. 눈을…. 깜빡여줘.”
“눈을?”
“그래. 아주 천천히.”
“시간이 멈춘 것처럼?”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알았어.”
“그럼. 갈게.”
가겠다고 말한 다음에도 그들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침묵. 침묵. 침묵. 나는 애가 타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눈을 떴다 감았다. 다행히도 나는 그들을 등지고 있었다. 나는 초조함을 식히기 위해 애꿎은 이불을 물어뜯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누군가 몸을 움직여 그 무게로 지면을 흔들었다. 작은형이었다. 큰형의 것보다 단단하고 묵직한 진동. 끼익, 하고 문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작은형이 말했다.
“우리 평생. 다시는 만나지 말자.”
그걸로 끝이었다. 끼익, 하고 길게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큰형은 움직이지 않았다. 문을 붙들고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떤 위로도 불필요했다. 나는 여전히 그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천천히 눈을 깜빡이고 있을 그를 생각했다. 영원히 감겨들 그의 눈꺼풀을 생각했다. 흐르지 못하는 눈동자를 생각했다. 아마도 가지런할 속눈썹을 생각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속눈썹을 만져보고 싶었다. 나는 그의 위로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더는 그곳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나는.
어리지 않았다.
* * *
가족은 와해되었다. 형제는 뿔뿔이 흩어졌다. 작은형과 셋째 형은 행방이 묘연했고 큰형은 멀리 광주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집의 매각이 결정되었다. 집은 산 주인에게로 넘어갔다. 주인은 집을 개조하여 개인 별장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나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도장을 눌러 찍었고 계약은 손쉽게 체결되었다.
집을 비우기 하루 전. 나는 문득 새까맣게 그을린 지하실을 떠올리고 비밀 입구를 열어 그 안에 들어가 보았다. 그 속에 들어가 있으면 꼭 한밤의 숲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 지하실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그리운 것을 대하듯 지하실의 외벽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그리고 나는 발견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커다란 글씨들을.
백색 페인트로 아무렇게나 휘갈긴 글씨였지만 내용은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두 팔을 벌려 글이 써진 벽면을 안았다. 그 글귀에 얼굴을 비볐다. 그것은 누군가의 유일한 사과, 자신의 평생을 쥐어짜내 남겨두고 간 쓰디쓴 사죄의 문장이었다. 그토록 어려웠던 짧은 한 문장. 간절히 전하고 싶었던 유년의 인사. 화해도 용서도 불가능한 이 집에 떨구어둔 그의 마지막 진심.
미안하다.
나는 어디 있을지 모를 그를 가슴에 품고 대답했다. 더러운 사랑조차 받지 못했던 사람. 더러운 사랑이라도 받고자 발버둥 쳤던 사람. 영원히. 영원히 안녕. 바라건대 부디 이것이 당신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과이기를.
나는 용서했다. 내게만 구하는 용서가 아니었지만. 감히 불가능한 용서였지만. 그것이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