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2)

그토록 오랜 부재

“다른 문제는 모두 차치하고. 일단. 결핵입니다.”

차갑고 정갈한 목소리. 병원은 의사의 목소리까지 멸균하는 모양이었다. 그 목소리에 취해 있던 나는 머뭇머뭇 대답했다. 결핵이라고요.

“각혈은 위궤양 탓도 있어요. 과도한 스트레스로 위에 구멍이 뚫려 있는 상태입니다.”

“아…. 네.”

“이 정도의 진행 상태라면, 각혈도 했을 텐데. 가족분들은 전혀 모르고 계셨나요?”

“…네.”

“다른 문제도 많지만 그건 차후에 상의하기로 하고…. 일단은 절대 안정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너무 쇠약해져 있는 상태라. 참. 결핵이 전염되었을 수도 있으니 가족분들도 와서 모두 검사받도록 하시고.”

“알겠습니다.”

“링거액 다 떨어지면 간호사를 부르세요.”

“네….”

숙련된 솜씨로 가장하고 있었지만 나는 의사가 나를, 우리 가족을 경멸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무리도 아니었다. 가족 구성원이 그 지경이 되도록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잠든 큰형의 곁에 앉아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은 안전했다.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처럼 포근한 안도감이 촉촉이 스며들었다. 피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피트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고 그가 죽는다 해도 떨기는커녕 시원하게 웃어넘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히려 왜 그를 더 잔인하게 때리지 못했는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좀 더 제대로 된 흉기가 있었다면 나는 그를 공들여 난자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함부로 타인의 가족 공동체 안에 침입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은 하나의 요새이자 관문. 그들은 때로 날카로운 덫이다. 아무리 조그마한 것이더라도 완성된 하나의 세계에 침입하려면 그만한 각오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한 자는 다리를 잘려 절뚝이며 도망치거나 죽어 나가는 수밖에. 결국 아무도 살아서는 우리 가족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우리들이 각자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그 집이 불타고, 형제가 모두 뿔뿔이 흩어진 이후의 일.

그랬다.

그것은 가족이 해체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

부르튼 입술을 달싹이며 큰형이 속삭였다. 나는 깜짝 놀라 그에게 바짝 다가갔다. 멍이 들어 부은 눈꺼풀 틈으로 큰형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형! 목말라? 물 갖다 줄까?”

“여긴….”

“병원이야. 아무 걱정 하지 마. 이제 괜찮아.”

큰형은 고개를 돌리며 다시 눈을 감았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듯한 태도였다. 무리도 아니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큰형의 잘못도 아닌데. 보고 싶다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그 방에 숨어든 내 잘못인데. 나는 두 손으로 큰형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차갑고 미끄러운 감촉에 일순 소름이 돋았지만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 손을 따뜻하게 데우고 싶었다.

“하나만 부탁할게.”

벽으로 몸을 돌린 채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큰형이 말했다. 나는 뭐든 들어줄 테니 말만 하라고 대답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큰형은 조금 전보다 더 희미해진 목소리로 쥐어짜내듯 말했다.

“말하지 말아줘…. 상문이한텐. 말하지 마.”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발끈하는 속내를 감추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작은형이 모르는 큰형의 시간이 불어나고 있었다. 큰형과 그 사이에 말로 전하지 않으면 결코 나눌 수 없는 세월이 똬리를 틀었고, 그 비대해진 간극을 가늠하며 나는 작은형이 돌아온다 해도 그들이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음을 실감했다.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 표적을 이탈한 활시위처럼 그들의 궤도는 이미 어긋나 있었으므로.

“그게 다야?”

“그래.”

“나한텐. 나한텐 할 말 없어?”

그 순간 나는 왜 공연히 어리광을 부렸던 걸까. 만신창이가 된 큰형에게서 나는 어떤 애정을 구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그렇게나 외로웠던 걸까.

“나한테도 뭐라고 말 좀 해봐. 뭐든 좋으니까. 나에게도 좀.”

“…미안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형이 뭐가 미안해. 형이 뭐 잘못했어?”

큰형은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응시했다. 아, 예의 그 눈빛이었다. 다른 형들을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른. 나를 볼 때만 불안하게 일렁이는 그 눈빛. 애처롭고 다정한, 미워하는 듯하면서도 사랑하는. 마주 선 사람을 괜스레 숙연하게 만드는 그런 시선. 큰형은 링거를 꽂은 손을 힘겹게 들어 올려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너한테 말도 못 하고 죽으면 어쩌나 걱정했어.”

“뭘.”

“그런데. 이렇게 사니까. 또 말을 못 하겠다.”

“그러니까 뭘.”

“…별거 아냐. 여긴 됐으니까. 얼른 집으로 가.”

“아, 그러니까 뭘! 말을 하려다 말아, 왜.”

큰형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으며 웃었다. 웃는 바람에 부르튼 입술이 찢어져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나는 휴지로 얼른 그것을 닦아주었다. 그는 자신을 뜯어 피를 볼지언정 비밀을 실토하지 않을 것 같았다. 큰형은 모든 비밀에 투철했다. 그가 스스로 열지 않는 한 내가 그것을 열어 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아아.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궁금했다. 도대체 남아 있을 만한 비밀이란 것이 있을까. 지금 우리들에게. 이렇게 된 마당에. 또 무엇이 남아 있겠냐마는. 타는 목마름과 같은 의혹과 궁금증을 나는 도저히 내버릴 수 없었다. 내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어물대고 있는 사이 큰형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하듯 말했다.

“집에 가. 처리해야 할 게 남아 있잖아.”

“어?”

“실수하지 말고. 깔끔하게 처리하고 와.”

나는 그제야 큰형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흔적 남기지 말고.”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큰형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알겠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명심할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나는 커다란 봉투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발끝까지 뒤집어써도 남아돌 만한 봉투를 발견한 순간. 나는 피트의 죽음을 확신했다. 나는 그의 살기 어린 눈매를 떠올렸다. 그것은 박제된 매의 눈동자. 살아 흉기였으나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 더없이 무력한 존재였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 * *

집에 들어서자 불현듯 공포가 엄습했다. 보호색만큼이나 청결한 병원과 달리 집은 스산하고 음습했다. 나는 조심조심 지하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그날 있었던 사건들을 회상했다. 기억은 어느새 마모되어 있었다. 그것은 과연 현실이었을까. 시각은 기억하지 못해도 다른 감각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철제의자로 머리를 내려칠 때 새어 나온 두개골 쪼개지는 소리. 그 순간 온몸에 전해진 힘의 충돌. 근육이 경직되어 바르르 떨리던 손의 감각. 눈이 놓친 기억들을 몸이 보관하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지하실로 통하는 사다리를 탔다. 지하실에 가까워질수록 쿵,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귀에 선명했다. 나는 조심스레 발을 땅에 디뎠다. 싸늘하게 식은 피트의 시체가 방 한구석에 엎어져 있었고 아버지가 지하실 바닥을 들어내 땅을 파고 있었다.

“아버지.”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게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제가. 제가 그랬어요.”

의외의 대답이었는지 아버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석상처럼 한참을 딱딱하게 서 있던 아버지는 순간 내게 달려들어 턱이 돌아갈 만큼 세게 따귀를 날렸다.

“미친놈!”

나는 벌겋게 부어오르는 뺨을 손등으로 식히며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뭐가, 뭐가 어째!”

“큰형. 입원했어요. 결핵이래요. 아니. 일단은 결핵부터 치료하재요.”

“이 난리 통에 그 녀석까지 병원엘 들어갔단 말이냐? 어이고, 두야….”

“형이. 입원했다는데. 걱정도 안 되세요?”

“내가 지금 그 녀석 걱정하게 생겼냐? 어쩌자고 이런 짓을 저질렀어!”

“그 자식이 큰형을 죽이려고 했어요. 아시잖아요!”

“그렇다고 네가 살인자가 돼? 미군은 살인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 종족들이야. 그런 미군을 죽이면 니 인생이 어떻게 될지 정말 모르겠냐?”

“까짓 거 알게 뭐예요. 감방에 처넣든지 말든지.”

다시 손찌검을 하려는 아버지의 팔을 재빨리 낚아챘다. 아버지는 이제 나보다도 작았다. 갑자기 시꺼먼 용기가 솟아올랐다. 나는 힘주어 아버지의 팔을 비틀었다. 그는 싱거울 정도로 손쉽게 제압당했다. 손을 놓자 아버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넘어졌다. 아버지는 초라했고 시들은 화초마냥 연약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경멸의 눈으로 쏘아보았다. 아버지를 경멸하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한없이 경멸하게 될 것 같았다.

“좋으세요? 큰형 병신 만들어서, 돈 버니까. 살맛 나던가요?”

“어리석은 놈! 다 제 살 팔아 돈 버는 거야. 이 애비도 다 그렇게 돈 벌었다. 내 자존심 내 몸 내걸어 놓고 돈 벌었어. 넌 대체 언제까지 어리광이나 부릴 셈이냐!”

“그럼 아버질 파세요! 아버지랑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의 아들 팔지 말고!”

“이 녀석이 근데…. 너 지금 애비 말고 상윤이 편을 드는 게냐?”

“아버지? 그 이름으로 뭐든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본데. 천만의 말씀. 내가 장담할게요. 아버진 절대 곱게 죽지 못할 겁니다. 얼마나 비참하게 죽는지 내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거라고요!”

심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저절로 튀어나오는 걸 저지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충격을 받은 듯 내 말에 그럴듯한 대꾸도 못 하고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윽고 다리에 힘이 풀린 아버지는 그 자리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반사적으로 부축하러 다가가자 그는 나를 있는 힘껏 떠밀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찌그러지고 비틀린 그 소리는 마치 귀신이 소멸할 때 부르짖는 마지막 비명 같았다.

“너도 별수 없어. 그년 피가 어디 가겠어….”

순간 관자놀이 부근이 따끔하니 울렸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아버지의 눈동자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 있었다.

“또 어머니 얘기예요? 그만 좀 하세요, 정말. 지겹지도 않으세요?”

“개 같은 년. 입원을 해? 뭘 잘했다고? 죽일 년. 자업자득이야! 날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저는 아프다고 뭐, 어딜 기어들어 가? 괘씸한 것. 그걸론 모자라지. 아직 멀었어. 더 찢어놓지 않으면, 그년은 또 도망갈 거야. 이번엔 아주 제대로 망가트리려고 했는데. 망할. 잽싼 것 같으니라고.”

“아버지…. 병원에 있는 건 큰형이에요. 어머니가 아니라고요!”

“끝까지 날 우롱해? 상문이! 그놈! 그 후레자식! 그놈이 날 죽이러 올 거야. 내가 꺼내주나 봐라. 암. 어림없지. 평생 썩어보라지. 핏줄이라고 거둬줬더니 기껏 다 된 혼사를 망쳐? 하지만 그 녀석은 형님의 아들이야. 감싸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형님은 날 사랑해주셨는데. 아아! 이럴 때 형님이 살아계셨더라면! 형님. 너무합니다. 왜 나만 두고 가셨어요? 왜 날 남으로 데리고 왔어요? 여긴 지옥 같아요. 여기서 난 너무 지옥 같아요. 내가 지옥이에요…. 형님. 저 좀, 저 좀 데리고 가지 그러셨어요. 형님!”

눈앞에 있는 내가 보이지도 않는 건지 아버지는 허공을 바라보며 속사포처럼 혼잣말을 쏘아댔다. 말을 계속할수록 아버지의 목소리는 어려졌고, 오래전 돌아가신 삼촌을 애타게 부르며 울었다. 그는 나보다도 작고 약했으며 가여웠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그를 달랬다.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저예요. 상원이. 기억 안 나세요?”

“사! 상윤아! 니가 여긴 웬일이냐?”

꼭 닮은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버지는 나를 큰형으로 착각했다.

“저 상원이라니까요?”

“어. 그래. 상원이. 우리 막내 상원이. 넌 날 미워하지? 무서운 녀석.”

“아버지. 그만 좀!”

내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아버지는 황급히 뒷걸음질을 치다 피트의 시체를 건드렸다. 피트의 시체를 본 아버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신들린 듯 땅을 파기 시작했다.

“걱정 마라. 내가 널 잡혀가게 둘 줄 알고? 넌 세상에 둘, 아니,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야. 상훈이 녀석이야 원래부터 아들 하나 없는 셈 쳤으니까 나한테 혈육이라곤 너밖에 없는데. 내 하나뿐인 자식인데. 널 감방에 들어가게 둘까 봐?”

“제가 할게요. 이리 주세요.”

“우리 집안에 둘이나 살인자가 나오게 할 순 없지, 암. 내 핏줄, 내 아들인 걸!”

세상 어느 누구도 아버지에게서 삽을 빼앗을 수는 없었을 거다. 순식간에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덩이가 완성되었다. 아버지는 팔을, 나는 다리를 잡아 피트를 그 구덩이 속으로 던져 넣었다. 쿵. 활성을 멈춘 세포의 덩어리가 붉은 흙구덩이 한가운데 놓였다. 파놓은 흙으로 피트를 덮고. 바닥을 깨서 만든 구멍을 시멘트 몰탈로 발라 덮었다. 그렇게 하니 감쪽같았다. 아무도 그 속에 시체가 묻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제야 정신이 든 아버지는 혈흔이 묻은 이불들을 싹 걷어 위층으로 올려보냈다. 우리들은 지하실의 가구들을 하나둘 뒷마당으로 옮겨 쌓았다. 증거인멸의 절차였다. 다만, 옷장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내가 고집을 부렸다. 내 정신의 일부는 아직 거기 갇혀 있었기에. 어쩌면 영원히 거기 갇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없앨 수 없었다. 어떤 의미로 옷장은 내 첫 번째 묘지였다. 그곳에는 적과 함께 자폭한 내 파편들이 고스란히 묻혀 있었다.

아버지는 도끼를 들고 와 가구들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내려치고 또 내려치고. 그것들이 장작이 될 때까지 내려쳐 옷과 나뭇가지들로 모닥불을 피웠다. 지하실의 가구들이, 지하실의 기억들이, 잿빛 연기로 분해 대기로 흡수됐다.

한 시간을 태웠을까. 이윽고 모든 것이 검은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우리들은 흙으로 불을 피운 자리를 덮고 앞뜰로 나왔다. 그때 누군가 숲 저편에서 나의 이름을 불렀다.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 경찰인가? 아버지와 나는 경직한 채로 서로의 손을 꼭 붙들고 목소리의 주인을 기다렸다. 목소리의 주인이 제복을 입은 모습으로 숲 한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내려놓았던 도끼를 슬그머니 다시 들어 올렸다. 나는 순순히 잡혀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감옥에 가면 작은형을 만나게 될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가슴이 두근거렸다. 작은형의 세계로 간다. 그것은 내게 있어 강한 남자의 세계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했다.

“이상원 씨죠? 이거 찾아오는데 힘들었습니다.”

부드러운 색감의 제복을 입은 남자는 땀을 흘리며 우리들 앞에 섰다. 남자의 눈빛은 친절했고 의외로 나긋한 말투를 썼다. 아버지는 또 슬그머니 도끼를 내려놓았다.

“네. 제가 이상원입니다.”

“우편입니다. 확인 서명 좀 해주시죠.”

“아, 네.”

우체부가 건네준 우편의 용건은 실로 간단했다. 더 읽어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돌아가는 우체부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어둑어둑,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 큰형에게 돌아가기 위해 나는 숲을 통과해야만 했다. 우체부가 사라진 틈으로 흐릿한 형체의 한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착시 현상이라기엔 너무나 또렷하고 실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투명한. 바닥부터 서서히 어둠이 차오르는 가운데 나는 홀린 듯이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얼핏 윤선미를 닮은 것도 같았다. 아아. 그래. 당신이라면 웃을 것이다. 나는 수긍하며 그녀에게 얄팍한 목례를 했다. 그러자 어느새 여자의 얼굴은 또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붉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싱그럽게 차오른 입술 사이로 뾰족한 혀를 날름거리는 그녀는 잠시 나의 어머니였다.

그래요.

지켜보고 계신 거죠.

어머니가 사라졌어도 이 집은. 우리 남겨진 수컷들은 모두 어머니의 지배 아래 있어요. 이곳은 여전히 당신의 신전이에요. 당신이 사라지고 아버지는 매일같이 당신을 위해 제물을 바쳤죠. 그래도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물론 돌아올 리도 없겠죠. 이제 신전의 운명은 오직 황폐뿐이죠.

이상한 일이에요.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남루한 인간이었을 뿐인데. 아버지는 왜 당신을 숭배했을까요. 당신은 왜 배신만을 남기고 갔나요. 신전에 자신들의 모습을 몰래 새기다 추방당한 두 연인의 전설처럼 이 집에 못 박힌 두 사람의 사랑은 추방당했어요.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어요. 모든 낭만은 비극이죠. 그래요. 어떤 사랑은 그들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타인에게 흐르게 하죠. 그들은 엇갈림마저도 황혼이에요.

저주받은 태생으로 어쩔 수 없이 삶이 무대에 올려지는 사람들. 자의와 상관없이 안타까운 사랑을 공연해야 하는 이들이 있어요. 로미오가 독을 마실 때 안 된다며 눈을 가리면서도 나는 그가 죽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어머니, 아세요? 그들은 떠나갔어요. 아니 떠나갈 테죠. 그러니까 이건 소용없는 이야기예요. 이젠 나도 떠나렵니다. 밤마다 숲을 떠도는 붉은 옷의 여인들. 어머니. 내 어머니. 부디 안녕.

안녕히.

나는 노란 손수건 대신 손에 들린 입대 영장을 팔랑팔랑 흔들며 그녀를 배웅했다. 아버지는 어두운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나는 각 잡힌 걸음으로 숲을 향해 걸었다. 밤의 농도가 한껏 짙어진 가운데 어디선가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얼핏 노인의 울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는 춤추듯 나무 사이를 빠져나갔다. 수백의 나무들은 각자 자신의 운명을 점치듯 한장 한장 촉촉한 나뭇잎을 흘렸고 달은 떠도는 모든 운명을 수확하기 위해 은빛 작살을 던졌다. 어선의 조명에 이끌려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나는 도시의 빛을 따라 걸었다. 덫을 피해 걸었다. 총총히 그 모습을 감추는 자에게는 그림자도 없었다. 가느다란 초승달의 실루엣이 도끼날을 닮은. 과연 아름다운 밤이었다.

* * *

그로부터 다시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결핵에 감염되지 않았고 큰형은 한 무더기의 약봉투를 구호품처럼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소지품을 정리해 1층으로 방을 옮겼고 나와 함께 쓰던 그 방은 다시 큰형 혼자 몫이 되었다.

요양이라는 이름 아래 큰형은 그 방에 고립되어 있었다. 아무도 감히 결핵 환자가 누워 있는 그 방에 들어서려 하지 않았다. 큰형은 볕이 잘 드는 곳에 누워 책을 읽거나 간단한 그림을 그리거나 하며 무료히 시간을 보냈다. 나는 휴학계를 내고 그런 큰형의 시중을 들었다.

셋째 형은 병이 옮을까 두렵다며 1층 내 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어차피 집에 들어오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셋째 형이었기에 별다른 소리를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내 방보다 2층 셋째 형의 방을 애용했다. 큰형을 자주 들여다보기에는 그 방이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한때는 작은형의 방이기도 했던 그곳에는 이제 그의 흔적이 전무했고, 나는 새삼 그가 타인으로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늘 겉돌았던 고독한 그를 떠올리며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연민의 감정을 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의 면회를 가지 않았다. 아마도 피트가 집을 드나들기 시작하던 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그를 만날 자신이 없었다. 우리들은 짧은 시간에도 할 말이 없었다. 견고한 침묵의 벽 너머로 나는 버림받은 그를 바라보았다. 큰형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무엇을 계기로 그들은 서로에게 이끌렸을까. 죽을 만큼 궁금했지만 설령 죽는 순간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그것은 온전히 가족이기 때문에 공유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인간이란 무릇 가까울수록 더 높은 터부를 쌓는 동물이므로. 우리들은 정작 서로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 하나 알지 못했다. 그가 나의 친구였다면 나는 술에 취한 척 무리를 해가며 한 번쯤은 물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계기였느냐고.

피트의 실종은 한동안 부산 시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죽은 양공주의 기둥서방이 벼르고 벼르다 불시에 노상 습격을 했다는 둥, 몰래 본국으로 도망을 쳤다는 둥, 인천에서 피트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다는 둥…. 무엇 하나 진실에 근접한 소문은 없었지만 나는 사람들의 입에 그 이름이 오르내릴 때마다 경기 들린 사람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매일 밤 지하실 바닥 아래에 묻혀 있을 피트의 시신을 생각했다. 드문드문 낙엽이 섞여 있는 기름진 흙더미 속에서 머리카락이 슬고 살이 문드러져 형체도 없이 사라질 한 욕된 인간의 육체를. 사체에 몰린 살찐 구더기들을. 나는 매번 그것을 파헤치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그 사건 이후 아버지는 지하실을 폐쇄해버렸고 나는 내 죄의 흔적조차 곱씹어 볼 수 없었다. 나에게는 범죄 현장을 다시 방문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범죄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 현장을 다시 찾는 이유는 아마도 증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 현실인지 혹은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순간의 충동적인 실수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절차. 때문에 난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피트가 죽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둥둥 뜬 기억은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고 죄책감은 점차 희박해져 이윽고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익숙해졌다.

결핵에 걸린 큰형은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아마도 그때가 그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고요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까이 오지 말라는 큰형의 타박에도 나는 많은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다. 내가 가장 먼저 입대 사실을 밝힌 상대도 큰형이었다. 나의 고백에 큰형은 노골적인 쓸쓸함을 내비쳤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진다고 했던가. 그 시절의 큰형은 그야말로 연약한 존재였기 때문에 조금만 쿡쿡 찌르면 무엇이든 발설할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내가 그의 곁에 붙어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가 숨기고 있는 나에 관한 비밀. 그것을 혹여 발설해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

그러나 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에게서 무언가를 캐묻는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쇠약해진 큰형은 때로 대화를 나누는 일조차 힘겨워했다. 내가 떠나면 누가 그를 돌보아줄까. 입대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걱정도 그만큼 깊어졌다. 나는 집을 나가고자 모아두었던 돈을 내놓으며 큰형을 타일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나가. 그냥 나가서 혼자 살아.”

“실없는 소리. 그냥 네가 가지고 있어. 돌아와서 등록금도 내고 해야지.”

“오해하지 마. 이건 갚는 거니까. 내 등록금 형이 내줬잖아.”

“이젠 못 내주는데 뭐…. 모아둔 돈 병원비랑 약값 대느라 죄다 써버렸고.”

“아버지가 병원비 안 내줬어?”

“그럴 형편 아니잖아. 상문이 꺼내려면 돈 모아야지.”

“쳇. 그 인간이 꺼내줄 거 같아?”

“믿어야지. 도리가 있나.”

어쩌면 낫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쉼 없이 돌아가는 가습기. 그 희뿌연 수증기 속에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큰형을 보며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선명한 몸의 상처들. 멍이나 흉터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도무지 진전이 보이지 않는 상흔들을 볼 때면 나는 갑자기 폭삭 늙어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 흔적들을 보고 있자면 그냥 사는 게 마구 지긋지긋해졌다. 그래. 나으면. 나아서. 뭘 하라고?

살며시 눈을 감은 채 기적 같은 정오의 햇볕에 몸을 맡긴 큰형의 모습은 공중을 부유하는 새하얀 깃털과도 같아서. 나는 그가 누구의 침입도 받지 않고 그 방에서 오래도록 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군대 가면, 잘해.”

“어련히 알아서 할까 봐.”

“면회 갈게.”

“됐어. 병 옮아.”

“약 먹으면 안 옮아.”

“그럴 시간 있음, 작은형 면회나 좀 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큰형은 서늘한 한숨을 내뱉으며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의 눈가가 유독 축축해 보였다. 평소의 큰형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친 몸만큼이나 마음의 끈 역시 느슨해져버린 그를 보며 나는 지금이라면 작은형이 돌아와도 좋을 거란 생각을 했다. 지금이라면 완고한 큰형도 그에게 기대어 지난날과 화해하고 다시 그 입술에 입 맞출 거라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 냉정하게 그러지 마. 한 번쯤은 그래도 되잖아.”

“상원아.”

“응?”

“형이…. 끔찍하지.”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왜 이렇게 사나 싶지.”

“그런 생각한 적 없어. 왜 안 좋은 생각을 하고 그래?”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영감 같은 소리.”

“그게 내 소원이야.”

뼈가 있는 말이었다. 큰형은 잔잔하게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 표정은 수많은 상반된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아무런 사심도 없이 그저 나의 미래가 밝고 맑은 것이길 기원하는 듯, 안전한 곳에서만 살아 온 나를 조롱하는 듯, 자신의 고통을 되새기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고 숨어 바라듯, 방만한 모두가 찢어 발겨지길 악랄히 기대하는 듯. 은근한 부담이 어깨를 짓눌렀다. 나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마. 본심과 달리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시시껄렁한 농담이었다.

“잔소리는 셋째 형한테나 좀 하셔. 난 그 인간 인생이 제일 걱정이니까.”

문을 닫고 방을 나선 다음에도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가습기로부터 출하되는 수증기가 닫힌 문틈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나는 힘주어 문을 더 꼭 닫았다. 그래도 갓 알을 까고 나온 치어 떼처럼 탄력 있는 움직임으로 문틈을 뚫고 나오는 수증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가만히 그 가느다란 대열에 손을 대보았다. 손끝에 닿은 증기는 나를 피해 흩어졌다. 그처럼 큰형을 향한 나의 마음도 그렇게 순식간에 흐트러질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 안 가득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팽창해 있었다. 못쓰게 된 큰형에 대한 죄책감과 연민은 풍선처럼 몸을 불리는 다른 불안들에 의해 자꾸만 밀려났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결국은 내가 아닌 타인. 그리고 타인은 순간이었다.

* * *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모처럼 셋째 형이 집에 들어왔다. 셋째 형의 손에는 고급 소고기 한 덩이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는 그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큰형은 내내 잠들어 있었다. 셋째 형은 익숙한 솜씨로 고기를 잘라 구우며 자신의 군대생활을 들려주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소주가 달았다.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셋째 형의 입담 덕분이었는지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군대란 상당히 재미있는 곳이구나, 하고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다 했고 마주 앉은 셋째 형에게 갑작스런 동질감을 느꼈다. 전역자라는 이유로 그는 나의 인생 선배가 되어 있었고 그가 하는 말은 곧 나의 미래였다. 그는 쉴 새 없이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더니 달착지근한 눈웃음을 치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니 고스돕 좀 배워볼 끼가?”

“에이. 됐어. 무슨. 난 그런 거에 소질 없어.”

“함 해보그라. 니 그기 사회생활 하는데 을매나 중요한 건 줄 아나?”

“대충 할 줄은 알아. 아는데, 군대에서 그런 게 뭐 필요하겠어.”

“아이다. 내가 니 군대 가기 전에 그거 하나는 꼭 가르키줄라꼬 벼르고 있었다 아이가.”

셋째 형은 역시나 셋째 형이었다. 너무나 그다운 행동에 나는 실없이 웃고 말았다.

“어휴. 모르겠다. 맘대로 해.”

“오야, 퍼뜩 판 깔아라.”

대강의 규칙은 알고 있었기에 금세 판이 벌어졌다. 그리고 ‘프로’인 셋째 형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과연 타짜‘불광’이었다. 화투패를 손에 든 셋째 형은 전에 없이 진지해 보였고 또 실제로 아주 치밀했다. 내가 내는 패와 뒤집는 패의 순서를 모두 기억할 정도였으니. 그 집중력과 기억력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형.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겠다.”

“공부 머리, 도박 머리 따로 있는 기라.”

“하긴. 형은 밥 먹는 배랑 빵 먹는 배도 따로 있잖아.”

“킥킥. 그렇제.”

내리 일곱 판을 졌다. 패를 섞으며 넌지시 셋째 형이 말을 꺼냈다.

“큰형은 좀 어떻노.”

“좋아졌어. 재발하지 않게 휴식을 취하는 게 관건이라니까 나 없는 동안 가끔 들여다봐주라.”

“결핵 저게 우습게 볼 병이 아인데…. 니 그거 아나? 결핵 세 번 걸리면 불치병 되는 거.”

“설마 세 번을 걸릴까.”

“약에 내성이 생기면 고마 게임 끝이라더라. 몬 고친데. 무서븐 병이제.”

“형.”

“응?”

셋째 형이 삼광과 팔광을 먹고 싹쓸이를 했다. 나는 피를 한 장 내주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 큰형 일….”

“뭐. 그 양키 놈한테 따먹힌 거 말이가?”

“어, 어.”

상스러운 표현을 써가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셋째 형에게 적잖이 놀란 나는 패 한 장을 떨어뜨렸다.

“뭐. 당한 거야 우짤 수 없지만서도. 금마는 어데 갔노? 실종됐담서. 사람을 저 꼴로 만들어 놨으믄 치료비라도 뱉아 놔야 되는 거 아이가?”

“어, 어.”

“그라고 보면 시상 참. 우째 돌아갈라꼬 카는지 원. 실은 말이다. 내도 머스마랑 고추 장난 쳐봤다 아이가.”

“정말?”

“머라 카드라. 지가 작가 나부랭이라 켔는데. 맞다. 시 쓴다 켔다. 지가 쓴 거라 보여주길래 함 보긴 봤는데 내사 마 무신 소린지 알아먹지도 못하겠드라. 그거 써가 밥 벌어 먹고 살것나? 그래 물었더니 마 손으로 입 가리고 하하하, 웃대.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놈이었데이.”

“그 사람이랑 그런 거야?”

“그리 되뿌다. 이뿌장한 놈이 돈도 주겠다는데. 몬 할 건 또 머고? 콱 저질러버렸제. 나름 할만 하드라. 근데 여자 역하는 놈들은 머가 좋아서 그라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아파 뵈던데. 마 그래도 좋으니까 하것제?”

“어이구. 형은 돈만 주면, 그런 짓도 하는 거야?”

“하모. 내는 돈만 주면 뭐든지 한다. 돈 준다카는데 몬 할 기 뭐 있노?”

“돈 때문에 일 저질러서 후회한 적 없어?”

“없다.”

“정말. 단 한 번도?”

나가리 판이 나왔다. 셋째 형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패를 섞었다.

“…후회라기보다는. 뭐라 하믄 좋을꼬. 내가 죽도록 미웠던 적은 있다.”

“돈 주면서 뭐 하라고 했는데?”

“그냥…. 어디 가서 과자나 사 먹고 놀다 오라꼬 돈 주대. 마 돈에 눈 뒤집히가 먹고 싶은 거 죄다 사 처먹고 탁 돌아서는데. 그 순간에 고마.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드라. 내 같은 놈이 살아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과자 사 먹으라고 준 돈인데?”

“마. 그런 셈이지.”

“언제? 누가 그랬는데?”

“니는 와 아가 엿가락 맨쿠로 이래 끈덕지노. 니 차례다. 치기나 치라.”

그 판도 셋째 형의 승리로 끝났다. 다음 판도 지겠거니 생각하며 패를 받는데 갑자기 셋째 형이 도사 같은 소릴 했다.

“봐라, 봐라. 이 판엔 니가 이길 기다.”

“일부러 져주는 거라면 사양하겠어.”

“아이다. 그란 게 아이라. 판이 글케 돼있다. 내 운이 다 한기라. 다음 판에는 니가 발로 쳐도 내한테 이긴다.”

“형이 무슨 점쟁이야?”

“도박이란 기 기술도 기술이지만서도 승운이 어디로 불고 있는가. 이걸 파악하는 기 첫 번째다. 이 바람 부는 방향만 알아맞혀도 반은 간다 이기다. 잡기만 안 부리고 치면 한 놈이 언제까지고 이기는 판은 없다. 그러니까 운이 어디로 불고 있는가 요걸 단디 봐야 한다. 내 쪽으로 불 때는 가차 없이 치는 기라. 물론 내가 딸대로 다 따고 깔끔하게 판 딱 접으면 그거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노? 그치만 사람 심리가 어디 그렇나. 따먹고 토끼냐고 눈 시뻘겋게 달아가꼬 달려들재. 그럼 지는 줄 알믄서도 앉아 있어야 된다. 그거이 사람 미치는 일인 기라. 뻔히 질 판. 잃으면서 계속 앉아 있는 거 니 생각해 봐라. 기분 좋겠나?”

“그럼 형은 그럴 때 어떻게 이기는데?”

“바람을, 만드는 기제.”

“만들다니?”

“운을 내 쪽으로 억지로 끌어오는 기라. 별수 있나? 잡기 부리야제.”

“뭐야. 결국 사기잖아.”

“도박은 원래 다 사기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판은 정말 내가 이겼다. 이후 내리 세 판을 내가 쭉 이겼다. 셋째 형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날 밤 우리들은 끝없이 고스톱을 쳤다. 결코 셋째 형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다른 형들과 다를 바 없이 그가 내게 주는 것들을 소중히 했다. 셋째 형은 우리 가족들 중 누구보다도 바깥 세계에 잘 녹아든 사람이었다. 언제나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몇 퍼센트쯤은 늘 지니고 있었던 나는 셋째 형의 그런 처세술이 부러웠다. 나는 셋째 형에 대해 어떤 선고나 판결도 내리지 않았다. 다만 애정을 갖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무릇 그런 존재라고. 낯부끄럽다 해도 그것이 사람이라고. 그조차, 사람이라고.

* * *

그리고 나는 군에 입대했다. 운 좋게도 나는 열차부대에 배속되어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군인을 수송했다. 그중에는 HID라고 불리는 특수부대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수송할 때면 늘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들을 선발하는 기준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가난하고, 소속이 없고, 연고가 없거나 위태로운 이들. 마치 ‘파르마코스’처럼.

그들이 탄 기차 칸은 다른 칸과 이동이 불가능하도록 봉쇄되었다. 훈련을 마친 이들은 북파정보원이 되어 하나둘 삼팔선을 넘었다. 죽어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살아 돌아온 사람도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 불행하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들은 그들이 동요할만한 정보는 무엇도 흘리지 않고 그들을 감시했다.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다.

밤의 수송 열차를 타면 나는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들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검은 산을 바라보며 나는 어릴 적 큰형이 내게 장난처럼 한 말을 떠올렸다. 밤이 되면 산이 살아서 꿈틀거린다는 내용의, 다소 동화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정말 그런 듯한 기분도 들었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바라보는 검은 산은 거대한 맹수가 웅크리고 있는 듯 보였고, 바람이 불 때마다 근육이 꿈틀대듯 흔들리는 검은 실루엣이 그의 은유를 납득하도록 만들었다.

숲이 무성한 산을 볼 때면 나는 집을 떠올렸다. 내가 저런 곳에서 살고 있었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 것이었다. 산이란 공간의 폐쇄성을 소속되어 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깊은 밤 산을 바라보며 나는 상상했다. 저 안에 얼마나 많은 시체들이 비밀리에 묻혀 있을까. 이 밤 저 안에서는 어떤 살인이 벌어지고 있을까. 설령 그렇다 한들 대체 누가 짐작할 것인가. 그랬다. 그것은 살인을 경험한 나 같은 인간만이 품을 수 있는 의심이었다.

열차가 부산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나는 집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받았다. 하루걸러 집에 갈 기회가 있었지만 부대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일부러 한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틈이 날 때 집에 전화를 걸면 아무도 받지 않았다. 큰형이 집에 없는 게 의아했지만 그런 것에 깊이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입대 초기 나는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내가 시간을 내어 집을 찾은 것은 상관으로부터 ‘임무가 끝나면 집에 가도 좋다.’는 말을 듣고, 반년의 시간을 흘려보낸 뒤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집을 비운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귀가는 적잖이 설레었다. 큰형은 건강해졌을까. 셋째 형은 아직도 순미 씨와 사귀고 있을까. 아버지의 정신은 다시 견고해졌을까. 나는 씩씩한 걸음으로 한달음에 집까지 달려갔다.

기분과는 반대로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비에 젖은 집의 외벽은 구정물 같은 색깔이었다. 뭐, 언제나 이런 집이었지. 별다른 생각 없이 집에 들어섰다. 그러자 코를 찌르는 악취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습격했다. 나는 집에서 한 번도 그런 냄새를 맡아본 적 없었다. 결벽증인 아버지와 그 밑에서 자란 우리들은 모두 청결에는 꽤 엄격했기 때문이었다. 시체 썩는 냄새도 그보다는 고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집에서는 시체가 썩어가고 있었지만. 아무튼 원인은 그것이 아니었다.

집은 엉망이었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소주병들. 설거지도 하지 않고 쌓아놓은 그릇들. 바닥에 밀려다니는 먼지 덩어리들. 바닥에는 바퀴벌레가 사선으로 교차하며 기어 다니고 있었다. 나는 발을 디딜 엄두도 내지 못하고 꺼림칙한 목소리로 가족들을 불렀다.

“아무도 없어? 나예요, 나. 상원이 왔어요! 좀 나와 봐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방의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문을 완전히 열어젖혔다.

“아버지?”

방 한가운데 술병을 쥔 채 잠들어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을 관두었는지 행색이 엉망이었다.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주름살이 두 배는 늘어난 듯한 얼굴. 나는 술병을 치우고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정신 좀 차려보세요, 네?”

“…네가 여기 무슨 일이냐?”

“자주 올 수 있었는데 죄송해요.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일은 어떡하고요?”

“일? 그래…. 일해야지. 일 안 하는 놈은 쓰레기야. 애비 자격도 없지.”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셋째 형은 또 안 들어온 거예요?”

“내놓은 자식…. 쿨럭! 물어봐서 뭐해, 쿨럭!”

“큰형은 자고 있어요? 벌써 밖에 나갈 정도로 몸이 좋아진 거예요?”

“첫째? 첫째는 감옥에 있잖아?”

“그건 작은형이고요. 큰형 말이에요, 큰형!”

“상훈이?”

“아니요. 상윤이요. 이, 상, 윤!”

“아아…. 걔? 걘 미국엘 갔지.”

아버지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아나 하마터면 그를 놓칠 뻔했다.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미국이라뇨. 농담하지 마세요.”

“영어를 배웠으면 미국엘 가야지.”

“솔직히 말해요. 어디로 보냈어요? 설마 그 몸으로 쫓아낸 거예요?”

“피트가 보내 달라 그래서….”

“피트는 죽었어요! 저랑 같이 묻었잖아요!”

“미국엘 간다고 하니까 참 좋아하더라. 진작 보내줄 것을.”

“아버지, 미쳤어요?”

내 말에 대꾸하지 않고 아버지는 병째로 술을 들이켰다. 나는 그를 내버려 두고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큰형의 방문 앞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나는 군홧발로 자물쇠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그곳에는 먼지조차 없었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아버지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이후 두세 번 더 집을 찾았다. 하지만 큰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큰형은 사라져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는 삭제되어버렸고. 큰형의 부재를 받아들인 나는 더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휴가를 나온 나는 집 대신 경찰서를 찾았다. 큰형의 상실은 내 삶을 뿌리째 뒤흔들어놓았다. 그를 잃고 나는 한시도 그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정말 가족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실종 신고서를 쓰면서 나는 부디 그가 정말로 실종되었기를. 제발 그가 살아 있기만을 빌었다. 그가 어딘가 살아 있는 것만이, 살아 돌아오는 것만이 내 유일한 소원이었다.

* * *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악몽에 시달렸다. 그것은 지하실에 관련된 꿈이었다. 나는 집. 내 방에서 자고 있다. 큰형은 내 곁에서 내 쪽으로 고개를 향한 채 기분 좋게 잠들어 있다. 집은 고요하고 또 따뜻하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른다. 아무도 깨어나지 않아 나는 잠기운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인 채로 1층으로 내려가 문을 연다. 문 앞에는 경찰이 서 있다. 경찰은 바로 내 손에 수갑을 채우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을 탐색한다. 그 모든 과정 동안 나는 공포에 떨고 있다.

기어코 지하실이 발견되고 나는 그들에게 이끌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다. 그들은 나에게 삽을 던지며 시체를 파내라고 명령한다. 나는 마지못해 땅을 파면서 흘끗흘끗 경찰들의 얼굴을 훔쳐본다. 경찰 중 한 명은 작은형과 흡사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제복이 제 옷인 양 아주 멋들어지게 잘 어울린다.

삽질을 시작하고 한참. 팔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 팔은 하얗고 미끈하다. 나는 의아해하며 더 깊이 땅을 판다. 머리칼이 나타난다. 시체의 머리칼은 검다. 경악한 나는 미친 듯이 삽질을 해댄다. 때문에 시체는 여러 군데가 손상되어 검은 피를 흘린다. 나는 수갑을 찬 손으로 시체를 끄집어낸다. 시체는 조금 전까지 내 곁에서 잠들어 있던 큰형이다. 그들은 내게서 시체를 빼앗아간다. 나는 큰형을 돌려달라고 애원하지만 그들은 냉정하게 거절한다.

대신 그들은 나를 묻는다. 지금껏 큰형이 묻혀 있던 자리에 나를 누이고 흙을 덮는다. 손이 묶인 채 나는 겸허히 그것을 받아들인다. 점점 숨이 막혀온다. 시야가 흙으로 완전히 가릴 즈음 나는 후회한다. 나는 그들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친다. 이곳은 내 자리가 아니라고, 이것은 나의 운명이 아니라고. 그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고 구더기 모여드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체념한다.

그래, 이것은 나의 운명이구나.

내 것일 수도 있는 자리였구나.

구더기 하나가 귓속을 파고들 즈음. 가까스로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살핀다. 나는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하여 다시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평온한 잠이 내게로 스며든다. 잠들기 직전 나는 다시 한번 자문한다.

큰형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 * *

시간은 흐른다. 누가 죽든. 누가 사라지든. 그런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나는 세월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여 있었고 타인의 추락에 관계없이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열차 일에도 제법 익숙해져 내 아래로 후임이 하나 들어왔고, 나는 P대 후배라는 이유 하나로 상관의 회계를 맡게 되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하나같이 붉다.

상관이 애인에게 차려준 술집의 네온사인과 그녀의 불투명한 립스틱. 나보다 다섯 살이 어렸던 딸의 발그레한 볼과 곱게 접은 손수건. 술집 이름 ‘홍루몽’만큼이나 붉었던 그 세 사람 속에서 나는 표류했다. 아내와 자식을 두고도 그녀에 대한 불타는 사랑을 잠재우지 못했던 상관은 가게 일을 도우라며 술집 2층에 내 자리를 만들어주었고, 그곳에서 나는 그녀와 정을 통했다.

상관이 잠든 사이 우리는 몰래 주변 여관을 찾아 몸을 섞었다. 정육점 불빛 같은 조명 아래 나는 삼십 대 중반의 농익은 여체를 상대로 첫 섹스를 경험했다. 그녀의 육감적인 입술만큼이나 나를 자극했던 것은 배신의 쾌감이었다. 상관이 내게 믿음의 눈길을 보낼 때, 집에 먹을 거라도 사 들고 가라며 빼돌린 돈의 일부를 떼어줄 때 나는 섹스보다 더한 쾌감에 전율했고. 그럴 때면 그녀와 나는 그 몰래 눈빛을 교환하며 목 안으로 웃었다.

상관은 그녀와 헤어질 때까지 우리의 관계를 몰랐고 우리들의 밀애에 상처받은 것은 오직 한 사람. 그녀의 딸뿐이었다. 손수건 모서리를 질겅이며 뾰족한 눈으로 나를 보는 그 아이를 볼 때면 기묘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누구든 상처내지 않고는 내 마음이 견디지 못했다. 그 아이가 상처받으면 받을수록 나는 그녀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그녀의 부끄러워하지 않는 몸이 좋았다. 마지막 껍데기마저 벗어던진 솔직하고 노골적인 몸과 욕망. 아직 수치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던 내게 그녀의 거침없는 행위는 달큰한 보금자리였다.

섹스는 내가 꿈꾸었던 것과 달리 위험한 것이었고 나는 발기할 때마다 몸을 떨었다. 타인의 몸을 연다는 것. 내 몸을 잠시 타인에게 내어준다는 것. 그 막연한 두려움. 그것은 맹수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같은 공포였다. 문 앞에서 망설이는 공포. 침입을 경계하는 공포. 그러나 한 번 무너지고 나면 기어코 갈구하고 마는, 공포에 맞먹는 쾌락.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나는 생각했다.

그들은 두렵지 않았을까.

타인과의 섹스도 그러한데 하물며 가족이란 허울 좋은 울타리, 섬과 같이 고립된 그곳에서 서로를 탐하는 것은 얼마나 까무룩한 낭떠러지였을까. 도대체 얼마만큼의 각오가 필요했을까. 그럼에도 함께할 수 없다니. 나는 문득 그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홍루몽. 그곳에서 한동안 나는 집을 잊고 있었다. 실종 신고를 했지만 경찰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큰형의 존재는 점점 희박해졌다. 나는 은연중에 단정짓고 있었다. 큰형은 이미 죽었다고. 그 생각이 확고해질수록 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흐지부지 사라졌다. 그대로 그냥 평생을 살아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상관의 돈을 관리하고 딸의 공부를 도와주고 그녀의 담배꽁초를 치우며. 나는 이 불완전한 새로운 가족의 틀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그녀의 딸이 갑자기 배우가 되고 그녀가 딸을 위해 상관과 나를 헌신짝처럼 버릴 때까지 나는 정말.

잘 지내고 있었다.

* * *

“자네. 그거 아나?”

“뭐 말씀이십니까?”

어느 날 마주 앉아 맥주를 들이켜던 상관이 갑자기 내게 뜻밖의 사실을 말했다.

“자네가 원래 열차 부대 소속이 아니었다는 거.”

“그렇습니까?”

“그렇다니까. 자네는 원래 전방 부대 소속이었어.”

“처음 듣는 소립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자네 형. 이름이 뭐라고 하든가. 상운? 상훈?”

“셋째 형 이름이 상훈입니다.”

“그래. 맞아. 상훈이었어. 그 이상훈이 윗대가리가 나랑 아주 오랜 지기거든. 그 친구가 이상훈이를 꽤 싸고돌았지. 이상훈이 덕에 돈 좀 만진 모양이더라고. 자네 형이 꾼이라며?”

셋째 형의 유명세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체를 했다.

“그건 잘 모릅니다. 다만 잡기에 소질은 있습니다.”

“얼마 전에 불광, 아니 이상훈이가 판 하나 만들어 줘 가지고 제대로 크게 터트린 모양이야. 그래 가지고 그 윗대가리 놈이 배속하는 쪽에 이상훈이 동생 좀 편한 데로 돌리라고 입김을 넣은 거지.”

“그렇습니까.”

“자네 작은형은 감옥에 있다고 들었는데. 형들이 다 한 가닥 하는구만. 기똥찬 집안이야.”

“…잠시 전화 한 통만 걸고 오겠습니다.”

“그래, 그래. 올 때 카운터에 닭튀김 하나 추가하고.”

“알겠습니다.”

놀라운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 아주 약간의 불쾌한 마음까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는 오랜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다. 셋째 형에게 사실 여부를 묻고 싶기도 했고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 묻고 싶었다. 내가 아는 셋째 형은 부러 나를 위해 그런 수고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남에게 돈을 벌도록 도와주면서까지! 심한 말로 큰돈을 준다면 살인이라도 저지를 양반이 나를 위해 돈을 썼다는 -물론 자기 돈은 아니었지만- 말에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일었다.

셋째 형이 집에 있을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아무튼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도대체 얼마 만에 집에 거는 전화인지. 번호마저 가물거렸지만 몸에 밴 기억을 더듬어 숫자 버튼을 눌렀다. 한참 동안 대기 신호가 반복되었다. 역시 아무도 없는 건가. 체념 섞인 생각으로 전화기를 내려놓으려는 찰나.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대답이 없었다. 대신 거칠고 불규칙한 숨소리만이 세차게 수화기를 때렸다. 잘못 걸지는 않았을 텐데. 갸우뚱하며 나는 다시 말을 걸었다.

“누구세요?”

-네, 네가 어떻게!

그 숨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쉰 목소리로 갑자기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어떻게 나온 거냐…!

아버지는 여전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었다. 다음에 걸자.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아버지가 의외의 이름을 불렀다.

-상윤아…. 상윤아. 너 도망친 거냐? 어떻게…. 내가 절대 풀어주지 말라고 그렇게 단단히 일렀는데. 지독한 녀석. 어떻게 거기서…. 너 지금 어디냐. 얼른 말해라. 어?

큰형의 이름을 들었을 뿐인데 나는 그만 와그르르 무너져 내렸다. 잊고 있었던 이름, 그러나 단 한 번으로도 치명적인 그 이름. 나는 수화기를 힘주어 잡았다. 무엇이든 말하려 했지만 막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역시 큰형의 실종은 아버지와 관계가 있었던 거다.

-그렇게 꼭꼭 숨겨뒀거늘…. 안 돼…. 넌 나오면 안 돼. 네가 나오면 난 또 너를….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저절로 큰형 행세를 하고 있었다. 연습이라도 한 듯 말이 술술 나왔다. 나는 큰형을 대신해 아버지를 벌하고 싶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미친놈이다.

“그만하세요. 그런 변명. 듣고 싶지 않습니다.”

-널 그런 곳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널 보는 게 너무 괴로워서 그만.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죽어도 용서할 수 없어요.”

-너한테 모질게만 굴고 그것도 모자라서 너한테 그런 짓을 하고…. 날 원망하겠지. 그래. 이해한다. 난 죽어도 싼 놈이야.

“그럼, 죽으세요.”

-상윤아!

“죽어도 싸다면서요.”

-뭐든 말만 해라. 그래,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네가 말하는 건 뭐든 하마. 발이라도 핥으라면 핥을 테니, 말만 해다오.

“웃기지 마세요.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제발! 날 편하게 해다오. 난…. 한시도 견딜 수가 없다. 네가 없어도 네가 있어도 난 도무지 살 수가 없구나! 날 개처럼 부려도 좋다. 그러니 뭐든, 네가 원하는 걸 말해서 날 좀….

“정말, 뭐든지 할 겁니까?”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애초 큰형이 몸을 팔아서라도 이루려 했던 소망.

“둘째를…. 둘째를 꺼내주세요.”

작은형의 보석. 나는 그것이 큰형의 가장 뜨거운 소망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버지는 적이 놀란 듯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기다림이 몸 깊은 곳에서 뜨겁게 요동쳤다. 제발, 통해라. 나는 수화기를 들지 않은 손으로 가슴팍을 쥐어뜯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돈이…. 돈이 있을까 모르겠다.

“뭐든지 한다면서요.”

-그, 그랬지.

“빚을 얻어서라도, 집을 팔아서라도 꺼내세요.”

-그, 그래. 알았다. 네 말대로 하마. 어떻게든 둘째를 꺼내마. 그러니, 그러니까 나를 미워하지 말아다오. 이제 그만해라. 아니, 너는 아직 이 집에 있어. 난 그럼 누굴 보낸 거지? 밤이면 네가 이 집을, 집 주변을 떠돌아, 나는…. 잠들 수가 없구나.

“둘째를 꺼내요.”

-오냐, 걱정 말거라. 내 심장을 팔아서라도!

“그렇지 않으면, 용서는 없어요.”

-날 구해주기만 한다면야!

“구원까지 바라진 마세요.”

뒷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아 전화기를 있는 힘껏 던져버렸다. 분노가 전신을 찌르고 있었다. 너무 뜨거워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큰형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내 안 깊숙이 숨어 웅크리고 있었을 뿐. 나는 그와 분리된 것이 아니었고 아버지와의 대화로 그는 부활했다.

나는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 방향을 잃은 채 마구 내달렸다. 한시라도 빨리 큰형을 찾고 싶어 안달이 났다. 저 골목, 아니 다음 골목, 어둡고 깊숙한 곳이면 어디든 그가 있을 것만 같았다. 외딴 골목의 새벽, 나는 혼자였고 어디로 가도 혼자일 수밖에 없을 거란 속삭임을 들었다. 봄비처럼 달빛이 내리는 그 밤. 쓸쓸한 가로등 아래서 때늦은 추모임을 알면서도 나는 실로 오랜만에 몇 줄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소주보다 달았고 달빛처럼 따뜻했다. 잠시 잊고 있었다. 눈물이란 그런 것임을. 오래도록 잊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감각임을.

그로부터 일주일 뒤. 셋째 형으로부터 작은형이 출소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기다리던. 그가 돌아왔다. 나는 모처럼 환히 웃었다.

* * *

작은형이 홍루몽으로 찾아왔다. 감색 양복에 셔츠를 갖추어 입은 그는 그러한 복장이 영 불편하다는 듯 틈틈이 셔츠 깃을 매만졌다. 한동안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방문을 계산해두지 않은 바는 아니었지만 막상 녹슨 방울이 딸랑이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를 보는 순간 내 심장은 얼어붙어 버렸다.

못 본 사이 작은형은 변해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적잖이 놀랐다. 간신히 따라잡았다고 생각한 키는 더 훌쩍 자라 있었고, 몸의 실루엣은 더 날렵하고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었다. 그는 마치 완벽하게 담금질을 끝낸 연장 같았다. 교도소에서의 생활은 그를 허물어뜨리기는커녕 더욱 질기게 단련시켰다.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어떤 인력이 있는 것인지. 나에게 계속 후회만이 몰려들 듯 그에게는 계속해서 강인한 것들이 몰려들었다. 마냥 서 있기도 꼴사나운 노릇이라. 우리들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구석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형 머리 많이 자랐다. 마지막으로 면회 갔을 땐 빡빡머리더니.”

“그런가.”

“키도 더 큰 거 같다?”

“거기 들어앉아 있으려니 갑자기 쑥쑥 크더라.”

“나도 꽤 컸는데. 분하다.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거기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그러더라. 그쪽 체질이라고.”

작은형은 별로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며 비스듬히 웃었다.

“뭐야, 어떤 놈이 그런 악담을 해.”

“맞는 소린지도 모르지.”

“무슨.”

“솔직히, 어색하다. 무인도에 던져진 기분이야. 심지어 맞는 옷도 없고.”

“지금 입은 건? 처음 보는 옷인데.”

“아버지가 옷을 다 갖다버려서, 셋째가 몇 벌 맞춰주더라.”

“어울리네. 키가 더 커서 그런지 눈에 확 띄어.”

“양복은 너무 오랜만이라 아무래도 불편해.”

대화가 끊기고 나는 불안을 느꼈다. 계속 말을 이어나가야 되는데. 그래야 작은형이 큰형에 대해 묻지 않을 텐데. 그러나 나는 대화에 서툴렀고 내가 침묵하자 작은형은 기다렸다는 듯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떻게 된 거야.”

“어? 뭐, 뭐가.”

“이상윤.”

그러고 보면 작은형은 거짓말을 할 때를 제외하곤, 어린 시절부터 한 번도 큰형을 형이라 부른 적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단순히 동갑내기 사촌에게 형 대접을 하기 싫어 오기를 부리는 거라 생각했는데. 물론 그런 경미한 이유가 아니었음을 이제는 알지만, 아무튼 그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는 데 아주 익숙했다.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형제가 아니라고.

“…찾아봤어?”

“가볼 만한 곳부터 있을 리 없는 곳까지 전부.”

“미안하지만 형. 나 아무것도 몰라. 형이 왜 사라졌는지. 어디로 갔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갑자기 숨이 막혔다. 예상했던 질문이었는데. 충분히 천연덕스럽게 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호흡이 굳고 온몸이 떨렸다. 큰형의 부탁도 부탁이었지만 나는 두려웠다. 작은형이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진실을 파헤치고 나면 우리들은 어떻게 될까. 달리 큰형의 부탁이 없었다 해도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벌어진 사건들. 우리들만 아는 사건들. 엄살이라 해도 나는 그중 무엇 하나 입으로 옮길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을 꺼냈다.

“형은…. 결핵에 걸렸어.”

작은형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 몸으로 집을 나갔단 말이야?”

“…묻지 마. 형.”

“이상원.”

“큰형이 말하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난 말 못 해.”

“너는, 아직 이상윤을 몰라.”

“무슨 의미야?”

“이상윤은 자신을 배신하는 선택만을 해.”

적나라한 분석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말해도 될까? 말하면 편해질까? 나는 자꾸만 고백의 유혹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큰형을 배신할 수 없었다. 설령 그것이 큰형의 배신을 돕는 길이 될지라도.

“그 녀석 말은 듣지 마. 뭐가 그 녀석을 위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난 큰형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 난 이제 큰형이 하라는 대로만 하고 싶어. 그게 내가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그러니까 날 방해하지 말아줘.”

“너….”

“형. 제발!”

작은형은 뭐라 더 하려던 말을 거두고 이마를 감싸 쥐었다. 먼지 낀 백열전구 조명 아래 고개 숙인 그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눈 근처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와 그답지 않게 산만한 동작들이 그의 상태가 완벽한 정상은 아님을 표기하고 있었다.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큰형을 찾아다녔겠지. 어린아이가 젖을 보채며 울듯이 그는 큰형의 부재를 견딜 수 없어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왠지 그가 가엾게 느껴졌다.

“형.”

그를 향한 연민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고 때문에 나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가족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그 와중에도 나의 진심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결별을 바라고 있었던 걸까. 물론 내 치졸한 이기심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나를 강하게 이끈 것은 예감이었다.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 사이 어디에도 희망을 야기하는 지점은 없었다. 나는 이제 그들의 행복을 바랐고 그렇기에 그들이 갈라서 오롯이 자신의 길을 가기를. 막연히 바랐던 것이다.

“…이상윤은 가족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지 마.”

“가족은…. 그런 게 아니야.”

“좀 진정해.”

“어떻게 진정하겠어!”

작은형의 고함에 나는 두들겨 맞는 사람처럼 몸을 움츠렸다. 끝이 갈라진 그의 목소리에는 공간을 찢는 힘이 있었다. 그 파열의 단면에 나마저도 찢겨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출구가 막힌 터널에 갇혀버린 기분이야…. 아무런 실마리도 없어. 타들어 가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어디든 찾아가 보지만 흔적조차 없어! 지금 당장 찾아내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데, 나를 찢어발기고 싶을 정도로 못 견디겠는데! 그런데 이상윤은 없어. 알아. 죽었을지도 모르지. 십중팔구 죽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피가 끓어올라서, 미쳐버리겠다고!”

“혀, 형.”

나는 아마도 잔뜩 겁먹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기염을 토해내던 작은형은 그런 내 얼굴을 보고 고통을 느끼는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미안하다. 네 잘못도 아닌데.”

아니, 내 잘못이 없진 않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간헐적으로 떨리는 작은형의 손을 보며 나는 그가 나를 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처럼 한바탕 두들겨 맞고 나면 좀 속이 시원해질 텐데.

돌이켜보면 나는 늘 그가 화를 내는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그가 느닷없이 화를 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만남으로 나는 한 가지 추측을 하게 되었다. 그는 슬플 때, 울고 싶을 때 화를 내는 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건 아닐까 하고. 아니면 나는 그를 나와 같은 무던한 인간의 세계로 끌어내리고 싶었던 걸까. 처음으로 그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 나는 돌아서는 그에게 희망의 미끼를 던져주었다.

“큰형. 계속 찾을 거야?”

“찾아야지. 하다못해 뼛조각이라도.”

“죽진 않았을 거야.”

그마저도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살아는 있을 거야.”

작은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후 돌아섰다. 나는 황홀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석양을 등진 그의 모습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거리로 잠겨 들어 황혼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개를 생각했다. 막 줄에서 풀려난 사냥개. 어두운 밤 개는 숲 깊은 곳에 묻힌 시체를 찾아 코를 땅에 바싹 들이댄 채 떠돌고, 주인은 사냥개가 돌아올 때까지 숲 가장자리에 텐트를 치고 돌이 튀어나온 바닥에 몸을 누이겠지. 그는 저 붉은 빛 덩어리 속에서 ‘그’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의 감각은 얼마나 ‘그’를 향해 발달되어 있을까. 그의 전신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붉게 침윤되어 가는 그를 망연자실. 눈에서 놓지 못했다.

* * *

반년이 지나도 큰형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작은형의 추적은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인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입을 열지 않는 한 큰형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종종 불길한 상상을 했다. 아버지가 큰형의 거처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돌연 죽어버린다면 그는 정녕 영원한 미아가 되어버리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애써 지우며 하루하루 지루한 군 생활을 해나가던 중 나는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상관은 종종 나에게 가족에 대해 물었고 나는 그에게 적당한 사실만을 흘렸다. 그러다 보니 그의 머릿속에서 우리 가족들은 정신병자 아버지, 실종된 폐병 환자 큰형, 전과자 작은형, 도박꾼 셋째 형으로 도식화되어버렸고. 그런 내가 못내 안타까웠는지 너라도 돌아가 집에 보탬이 되라며 일방적으로 의가사 제대 신청서를 넣어 통과시킨 것이었다.

졸지에 나는 등 떠밀리듯 제대를 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뒤 상관은 애인과 그 딸로부터 버림받았다. 홍루몽 자리에는 주황색 간판의 슈퍼마켓이 들어섰고 가족에게 돌아간 상관은 자신을 가누지 못하고 폐인이 되었다. 머지않아 신인 여배우가 된 그녀의 딸이 TV와 영화관에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그녀를 볼 때면 묘한 감상에 젖어 들었다. 결국 그녀는 딸을 위해 상관과 나를 버린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녀에게 일말의 배신감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선택을 존경했다. 내 어머니도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집은 다행히도 청소가 되어 있었다. 예전에 잠시 들렀을 때의 그 아비규환에 비하면 극락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나는 발을 들여놓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개운한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 변한 것은 작은형과 셋째 형의 관계였다. 셋째 형은 이상하리만치 작은형에게 친한 체를 했다. 셋째 형은 어깨들의 정보를 물어와 차근차근 풀어놓으며 작은형이 얼른 주먹의 세계에 뛰어들어 주었으면 하고 그를 부추겼다.

“행님. 오늘 서면에서 찬혁이 만났는데, 행님 좀 보자 카든데.”

“그게 누군데.”

“와 모르노, 칠성이네 찬혁이. 행님 빵 드가 있을 때 금마가 을매나 우리 집에 잘 했는지 아나.”

“무시해. 그런 놈들 상대하지 마. 그런데 넌, 그런 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야?”

“지가 요새 요거 돌린다 아입니꺼.”

셋째 형은 엄지와 검지로 화투패를 잡는 체를 했다. 손에 패가 들려 있지 않은데도 어찌나 그럴듯한 손동작인지 손가락 틈으로 당장에라도 화투패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가게는 어떡하고.”

“가게는 본업. 화투는 부업. 요새 미국에서 투잡이 유행이라 안 하는교. 아, 그나저나 우리 막냉이. 군대서 총각 딱지는 떼고 왔나, 안 떼고 왔으믄 행님이 좋은 데 델따 주까.”

“무슨 좋은 데.”

“임마 내숭은…. 그기 가믄 아가씨들 쫙 늘어서 있고 니는 고르기만 하믄 된다. 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숫총각이고.”

“형도 그런 데 다녀?”

“마. 행님은 옛날에 졸업했지. 미칫나. 뭐 할라꼬 비싼 돈 줘가면서 그 짓을 하노. 받으면서 하믄 몰라도.”

셋째 형은, 여전히 셋째 형이었다.

“그나저나 아버지는.”

내가 별생각 없이 꺼낸 아버지 이야기에 작은형과 셋째 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말도 마라. 아부지 땜시 우리가 을매나 애먹었는지 아나.”

“왜.”

“두말할 거 없고, 지하실 함 내리가 봐라.”

지하실이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포였다. 나는 그 장소가 소름끼치게 싫었다. 아무튼 그곳은 내가 사람을 죽인 장소이자 죽은 사람이 묻혀 있는 장소였다. 나는 지하실이란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채찍으로 얻어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셋째 형이 열쇠를 건네주어 나는 작은형과 함께 사다리를 타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지옥을 향해 내딛는 걸음 같았다. 그러나 막상 내려간 지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긴 그대로구나….”

지하실에는 의자 하나와 내가 숨어들었던 옷장 하나만이 덜렁 남아 있었다. 나는 천천히 옷장을 향해 다가갔다. 그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관음과 살인의 기억이 나를 이끌었다.

“근데, 아버지는?”

“그 문. 열어봐.”

“문이라니?”

“옷장 문.”

아. 그런 건가. 나는 더러운 것을 만지듯 인상을 찌푸리며 옷장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는 꼬질꼬질한 담요를 칭칭 둘러맨 아버지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내게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형이 설명했다.

“요즘은 하루 종일 여기 들어가 계신다. 술이 줄어서 다행이긴 한데. 하루 종일 지하실에서 떠날 줄을 몰라.”

“그렇구나….”

“제대한 겸 인사나 드려라. 아버지. 일어나 보세요. 상원이 왔습니다.”

작은형이 한참을 흔들고 나서야 아버지는 눈을 떴다. 땟국물 흐르는 얼굴을 거적때기 같은 담요에 부비는 아버지는 모든 걸 차치하고 그저 가여워서 나는 묵혀둔 미움을 쏟아부을 수도 없었다.

“누가 왔다고?”

“저예요. 아버지. 상원이에요.”

몽롱하게. 나를 보는 듯하면서 저 멀리 허공을 응시하던 아버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라 옷장에서 굴러떨어졌다. 작은형과 내가 부축하러 다가가자 그는 도움의 손길을 내치며 구석으로 도망치더니, 이내 나에게로 달려들어 다리를 붙들고 늘어졌다.

“상원아. 이 애비 곧 죽는다. 죽는다고 그랬어, 병원에서 몸이 썩었다고. 다리를 잘라야 된다고 그러더라! 어떡하냐…. 너 잘되는 것도 못 보고!”

“그런 말은 안 했습니다. 당뇨 기미가 있다고만 했잖아요.”

“상원아, 네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데려와 다오, 제발. 너밖에 없다.”

“데려오다니요. 누구를요.”

선명한 예감이 물에 젖은 셔츠처럼 전신에 밀착했다.

“내가 죽으면 그 애는 평생 나올 수가 없어. 부탁이다. 내가 죽기 전에 큰 애를, 큰 애를 꺼내와 다오.”

아!

환희라고 해야 할까. 체념이라고 해야 할까. 기쁨과 절망이 한데 뒤섞여 가슴 한가운데로 날아와 박혔다. 큰형을 찾을 수 있다. 그 충격에서 먼저 깨어난 것은 작은형 쪽이었다. 작은형은 아버지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다그치듯 소리쳤다.

“어디야…. 어디냐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 와중에도 아버지는 큰형의 주소를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단숨에 읊었다. 오래전부터 말하려고 준비한 듯 잘 돌아가지도 않는 혀로 매우 빠르게 또박또박 말했다. 주소는 물론 미국이 아니었고 작은형과 나는 그 길로 집을 나가 큰형이 있는 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위험할 정도로 과속했지만 둘 중 누구도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한낮의 도로는 한적했고 우리들은 귀가 멍할 정도로 빠르게 차를 몰았다. 차창 밖으로 화살 같은 풍경들이 일제히 후위를 향해 발사되었다.

아버지가 말한 주소는 강원도에서도 깡시골 중의 깡시골. 인가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산자락이었다.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리자 겨우 병원의 귀퉁이가 눈에 들어왔다. 워낙 구석진 곳에 처박혀 있는 데다 벽돌 건물이라 도무지 병원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설령 사람들이 그 주변을 지나친다 해도 별로 눈여겨보지 않을. 그런 곳이었다. 큰형이 수감된 병원은.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대고 큰형의 퇴원을 신청했다. 퇴원 절차는 까다로웠다. 그들은 굳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보호자의 음성으로 퇴원 허락을 받아내고 난 뒤에야 우리들을 병실로 인도했다. 우리들은 아마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작은형의 손을 잡고 싶었다. 나의 긴장을 그의 긴장과 나누고 나의 설렘을 그의 설렘과 한데 섞고 싶었다.

간호사는 꼭대기 층 가장 깊숙한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철컥, 육중한 문이 열리고. 우리들은 잠시 눈을 찌푸렸다. 햇빛이 정면에서 쏟아져 내리는 데다 흰색으로 칠해진 사방의 벽이 그 빛을 날카롭게 반사시켰기 때문이었다. 빛은 어디로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 새하얀 좁은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되고 있었다. 가까스로 빛에 익숙해지자 침대에 기대앉아 책을 읽고 있는 큰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환자복을 입고 새하얀 시트를 덮고 있는 그는 다수의 인기척에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병실의 벽만큼이나 창백했고 벽에 반사된 빛은 다시 새하얀 그에게 부딪쳐 자신이 튕겨져 나온 장소로 돌아갔다. 그는 빛의 우리 속에 있었다. 아스라이 여린 빛들이 한봄의 아지랑이처럼 그 주변에 똬리를 틀었다. 나는 그 투명한 존재감에 압도되어 취한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윤 환자, 퇴원입니다. 가족분들이 찾아오셨어요.”

간호사의 말에 큰형은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다 못한 작은형이 큰형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붙들어 일으켰다.

“일어나. 어서!”

“이상문….”

“여기서 나가자.”

“아. 오랜만이네.”

큰형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작은형을 보아도 격렬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작은형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갈고리 같은 그 시선에도 큰형은 걸려들지 않았다. 큰형은 천천히 자신을 붙들고 있는 작은형의 손을 밀쳐냈다. 작은형은 미친 듯이 그에게 이끌리고 있는 반면 결코 그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것 또한 그가 제공하는 분위기로 느끼고 있었다.

뒤늦게 작은형 뒤에 선 나를 발견한 큰형은 눈을 맞추며 가늘게 웃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들과 마주 섰다. 작은형은 얼른 입고 있던 외투를 그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나는 다짐하듯 그에게 말했다.

“형, 돌아가자.”

“집으로?”

“어? 어.”

당연한 질문에, 당황해버렸다.

“아버지가, 데려오라고 하든?”

“…어.”

당연한 대답을 겨우 쥐어짜냈다.

“그래.”

큰형은 고개를 들고 웃었다. 희미하고 깊은 눈동자는 반쯤 내려온 눈꺼풀 속으로 제 반신을 감추고. 살짝 비틀려 올라간 입가는 웃고 있는데도 무언가 어두운 것을 생산하는 것만 같았다. 작은형은 몇 안 되는 큰형의 짐을 정리해 차에 실었다. 큰형은 작은형의 외투를 마다않고 그 속에 푹 파묻혀 있었다. 그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 보였다. 화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떻게 화내야 하는지조차 까먹고 있는 듯했다. 차에 시동을 거는 동안 큰형은 내게 엉뚱한 질문을 했다.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이지?”

며칠 정도야 모를 수 있다 쳐도 올해가 몇 년인지를 모른다니.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기에 그런 것도 모르는 거야? 묻고 싶었지만 물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기실 알아서 좋을 것들은 이 세상에 많지 않다. 모르는 게 약이다. 무지는 내게 수면제이자 진통제였고 또 어느 순간에는 마약이었다. 나는 말 대신 어떤 본능처럼 그를 껴안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에게 닿으면 나는 그가 나처럼 느껴지고 그와 내가 한 몸인 양 포근히 녹아들었다. 감상과 회한에 젖은 나를 밀쳐내며 큰형이 말했다.

“너무 달라붙지 마.”

서운한 마음이 앞서 괜스레 콧등이 시큰거렸다.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큰형은 얼른 내가 서운해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덧붙였다.

“결핵. 재발했어.”

차에 타자마자 큰형은 깊이, 아주 깊이 잠들어버렸다. 작은형과 나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우리들을 태운 차가 집으로 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차창 밖으로 어둑어둑해지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큰형이 덮은 담요 속으로 몰래 손을 집어넣어 가느다란 열대어 같은 그의 손가락을 가만히 쥐어보았다. 작은형이 독처럼 흘린 말이 귓가에서 계속 윙윙대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작은형은 또 위험하게 차를 몰았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차는 인력에 끌리듯 어김없이 부산을 향해, 무책임한 전진을 계속했다. 나는 그 와중에 깜빡 잠이 들었던 것도 같다. 꿈속에서 큰형의 손가락은 열대어의 무리가 되어 하얀 병실을 메우는 빛의 파도 속에서 헤엄쳤다. 나는 한 마리라도 잡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그들은 얄밉게도 요리조리 내 그물망을 피해 도망쳐다녔다. 그리고 나는 체념하여 그들의 도피의 군무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들은 오래간 쉬지 않고 건반 위를 노니는 음표처럼 춤췄다.

잠에서 깨어난 것은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는 거친 마찰음 때문이었다. 눈을 떴을 때 우리들은 집에 와 있었고 맨발로 뛰어나온 아버지가 차창을 사정없이 두들기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굵은 눈물로 뒤덮여 엉망이었다. 큰형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를 막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옷깃을 잡아끌어도 요지부동이었다. 큰형은 갑자기 창문에 손바닥을 갖다 대더니 할퀴듯 차창을 긁어내렸다. 아버지는 더 크게 울부짖었고 큰형은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내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린 큰형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녀왔어.”

숲의 인력에 이끌려 우리들은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

채 지지 않은 잎들도 한 겹의 파도가 되어 집을 향해 낙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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