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
“응. 나야. 응. 응. 내일 막차로 돌아갈 거야. 응. 그래. 그래. 아니야. 안 와도 돼. 딱히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손 가는 일도 없어. 탈상하고 나면 다시 전화할게. 문단속 잘하고. 잘 자. 응. 끊을게.”
아내는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정말 손 가는 일이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큰아주버님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이 막내 제수로서 마음 편한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조문객 하나 없이 텅 빈 장례식장이나 그 한가운데 혼자 오도카니 앉아 있는 모습 따위. 무엇보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 남은 형을 떠나보낼 시간이. 사실 사흘도 모자랐다. 한 달 정도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혼자 처박혀 있고 싶었다. 형들이 내 곁에 없다. 그들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은 내 남은 인생이 더없이 한량하고 덧없을 것이란 선고나 다름없었다.
장례식 기간 동안 다른 빈소에서 끊임없이 곡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강렬한 에너지를 뿜고 있음에도 아득히 멀었고. 그들의 죽음은 내 핏줄, 아니 내 가족의 죽음과는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그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빈소 한가운데 가만히 누워 있으면 지난 세월의 기억들이 조용히 스며들어와 나는 끊임없이 회상했다. 길다면 긴 시간 속에서 나는 아팠고 슬펐으며 행복했고 그리웠다.
시간이 흘러 마지막 밤. 나는 바닥에 누워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평생 그렇게 있고 싶었다. 그 와중에 나는 죽고 싶었던 것도 같다. 홀로 남겨졌다, 외롭지 않았다, 다만 참을 수 없었다. 그들과 영원히 분리되어버렸단 사실이. 더는 그들의 세계를 훔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는 절망했다.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인 조문객이 등장했다.
“오랜만이에요, 형님.”
생각지도 못한 조문객의 등장에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조문객은 그 등장만큼이나 의외의 인물이었다.
“아해 군. 어떻게 알고….”
“들어가도 되죠?”
“아. 그래. 어서 들어와.”
자그마한 키, 그만큼이나 왜소한 체구, 붉은 기가 도는 머리칼을 한 창백한 얼굴. 소년은 성큼성큼 장례식장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머리칼만큼이나 붉은 입술이 큰형의 영정을 보는 순간 달싹였다. 하지만 그는 하려던 말을 거두고 익숙한 듯 향을 피웠다. 허둥지둥한 것은 내 쪽이었다.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작은형의 죽음으로 그와 나의 접점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기에. 적어도 그가 나를 찾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 그가 큰형의 장례식에 찾아올 줄이야.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어쩌다 돌아가셨어요? 병 때문에?”
“뭐 그렇지. 결핵 말기였으니…. 벌써부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나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왠지 그에게 큰형의 자살을 곧이곧대로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그는 작은형의 동거인이자 애인이었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네요.”
“그럴 거야.”
소년은 영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소년을 처음 만났을 때 받은 충격을 떠올렸다. 소년을 보고 있으니 큰형의 죽음이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소년을 보고 있으면 큰형이 바로 거기 살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무리 다른 차림을 하고 있어도 그들은 닮아 있었다.
“아, 기분 나빠. 꼭 내 장례식에 온 거 같잖아. 닮았다고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로 닮았는지는 몰랐어요.”
“하하, 그래. 큰형 생전에 만난 적 없지?”
“짜증 나네, 진짜. 일부러 큰형님 안 만나길 잘했다. 봤으면 무서웠을 거 같아. 안 그래요?”
“그래.”
장례식의 마지막 밤을 그와 보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들은 어색하게 마주 앉아 술을 주고받았다. 고등학교 교사가 미성년자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물론 안 될 일이었지만, 그는 예외였다. 열 살도 되기 전에 소주를 배웠다는 녀석에게 술로 내외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랴. 코흘리개 시절부터 거리에서 살아온 아해에게 일반의 상식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였다. 작은형에게 들은 아해의 인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들은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텐데도. 작은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소년은 어떻게 됐을까. 지금껏 살아는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 봐요. 형님, 많이 놀랐죠?”
“뭐…. 그래. 작은형 장례식에 안 왔길래 이제 볼 일 없는 줄 알았어.”
“매정하시네. 내가 그렇게 꼴 보기 싫어요?”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예요. 자신 없었어요.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때 죽었다는 말 들었으면, 나 미쳤을걸요? 그냥 확, 따라 죽어버렸을지도.”
널 닮은 그 사람은 따라 죽었어, 라고 말하고 싶은 걸 애써 참았다.
역시 이 소년은 큰형과 다르다. 나는 안도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이 소년이 죽으면 누가 장례를 치러줄 것인가. 나는 그것이 다시 내 몫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소년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가 익숙하게 담배를 피워 물고 소주를 들이켜고, 어른인 척 무던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나는 그가 아이처럼 느껴졌다. 작은형이 남기고 간. 그가 소년에게 지어준 이름처럼. 아해. 작은형의, 작은 아이.
“여기 오니까 확실히 실감난다….”
“응?”
“여기 오니까. 돌아가신 거 보니까 실감 나요. 상문 형. 진짜 죽었구나.”
“그래. 큰형하고 내가 보내줬다.”
“…어디 뿌렸어요?”
“우리 옛날에 살던 집이 있어. 그 근처에 있는 저수지에 보냈다.”
“그래요….”
작은형 이야기에, 소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오랫동안 참고, 또 참아온 눈물이었다. 나는 말없이 소년을 안아주었다. 소년은 손에 쥔 담배를 내려놓을 생각도 못 하고 계속 울었다. 검은 양복에 떨어진 담뱃재 덩어리가 부스러지며 하얀 얼룩을 남겼다.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소년의 나이에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던가. 나도 그처럼 누군가 나를 달래주기를 바랐다. 나는 늘 혼자 울었다. 나는 우는 것이 부끄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눈물에는 늘 자그마한 비밀이 숨어 있었다. 나는 아해가 부러웠다. 그는 내게 있어, 또 다른 가능성이었다.
“복수할 거야.”
“그런 소리 하지 마.”
“상문 형 그렇게 만든 놈한테 복수할 거라고!”
“그래서. 너도 죽을래? 상문 형이 참 좋아하겠다. 너 그렇게 죽으면 죽어서도 좋은 소리 못 들어. 그래도 괜찮아?”
“그럼 어떡해? 이대론 분해서 못 살겠단 말이야…. 그놈 잡아서 찢어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겠는데! 그 새끼 나 누군지 알아요. 형님도 알잖아요! 다들 안다구요, 그러면서 쉬쉬하는 거야! 개새끼들! 상문 형 살아 있을 때는 눈도 못 마주치던 것들이!”
“형이 부탁했어. 널 좀 돌봐달라고. 아해 좀 봐달라고, 평범하게 살도록 도와주라고. 그래도 너 계속 그런 소리 할 거야?”
“씨발, 몰라! 그딴 거 모른다고!”
아해는 한참을 울었다. 그 적나라한 슬픔이 나는 부러웠다. 나도 그렇게 울고 싶었다. 울지 않겠다 결심하던 어린 날들이 떠올랐다. 이를 앙다물고 다짐하며 머지않아 나는 또 울곤 했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이리 눈물에 인색해졌을까.
울다 지친 아해는 탈진한 듯, 바닥에 쓰러졌다. 숨소리는 잦아들었지만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나도 그를 따라 바닥에 누웠다. 그의 고통스러운 숨소리가 바닥을 통해 내게로 전이되었다. 내 눈에서 마른 눈물이 한 방울 스륵 흘러내렸다. 그가 나누어준 눈물이었다. 그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갑자기 반쯤 몸을 일으키며 내게 말했다.
“말해주세요.”
“…듣고 싶은 거라도 있어?”
“그냥. 다. 다 듣고 싶어요. 나는 들어도 되잖아요.”
“우리들 이야기?”
“네. 큰형님 이야기까지 싹 다.”
나는 뜨끔했다. 그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큰형에 대해 물어 올 줄은 몰랐다.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까. 선뜻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간 내가 기다려온 물음이기도 했다. 일생 동안 누구와도 나누지 않았던 우리 형제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한다. 나는 늘 그런 욕망에 시달렸다. 덜고 싶다. 이 무거운 짐을 덜고 싶다고, 달싹이는 입술을 억지로 걸어 잠그며 나는 조금씩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그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만큼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기에 안성맞춤인 사람도 없었다. 나는 그가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들의 세계로 편입되려 하는 그가 가여웠다. 나는 힘겹게 아주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아주 길어질 거야.”
“괜찮아요. 시간도 많은데, 뭐. 나 내일 탈상까지 보고 갈 거예요.”
“이젠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긴데…. 그래도 정말 듣고 싶어?”
“응. 꼭 들어야겠어. 내가 모르는 상문 형이 있다는 거, 진짜 싫어요.”
어리긴 어리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 나는 새삼 그에게 작은형이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지 실감했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내 평생 가장 기인 밤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