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2)

물고기의 피

입시에 대한 압박 때문이었을까. 큰형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담배를 피웠다. 나는 셋째 형이 마리화나를 하는 것만큼이나 충격을 받았다. 잘못의 경중이야 비교할 바가 아니었지만 워낙 말썽을 피우지 않는 큰형의 일이었기에 적잖이 놀랐다.

내가 큰형의 흡연을 목격한 것은 숲의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로 딱히 우연도 아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현관에 큰형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동안 서로 바빠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기에 반가운 마음이 앞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큰형의 방으로 달려갔다.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었더니 큰형이 창가에 걸터앉아 있었다. 큰형은 나를 보더니 검지를 입술에 대고, 침묵할 것을 부탁했다. 반대편 손에는 담배가 들려 있었다. 나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는 불을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창으로 시원한 숲의 바람이 밀려들고 있었다. 방 전체에서 흐릿하게 담배 냄새가 났다.

큰형은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비스듬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담배 피우는 것을 신기한 듯이 지켜보았다. 길고 섬약한 큰형의 손가락이 도톰한 담배를 부드럽게 말아 쥐고 있었다. 연기로 채워진 그 기다란 막대는 자리를 옮겨 큰형의 입안을 파고들었다. 가벼운 호흡과 함께 희뿌연 연기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러는 와중에 벌려진 입으로 언뜻 젖은 혀가 보였던 것도 같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내게는 그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마치 나부끼는 얇은 커튼처럼 그는 투과되고 있었다. 연기를 내뱉을 때마다 가늘게, 아주 가늘게 떨리는 아랫입술, 찌푸려지는 왼쪽 눈꺼풀, 담배를 들어 올릴 때마다 꺾이는 미려한 손목…. 나는 그가 실제로도 그렇게 아름다웠는지를 자신할 수는 없다. 그는 내 사춘기의 환상이었으므로 내가 보는 그는 실제의 그와 달랐을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삼십 남짓한 평생 동안 항상 누군가의 환상으로 살았다는 점이다.

담배를 다 태운 그는 가볍게 남은 재를 튕겨낸 다음 그것을 책상에 두고 방을 나갔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지만 그를 따라나설 수는 없었다. 무안해진 나는 괜히 형이 피웠던 담배꽁초를 집어 들어 이리저리 살폈다. 중간까지만 피운 담배는 보관만 잘하면 다시 피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필터에는 희미하게 큰형의 타액과 잇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것을 물어보았다. 그의 입술이 닿은 부분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형이 두고 간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기도가 타들어 가는 듯한 감각에 저절로 기침이 터져 나왔지만 큰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너 모금 빨고 나니 끝이 보였다. 나는 꽁초를 안전하게 처리한 뒤 큰형이 기대 있던 창가에 걸터앉았다. 니코틴의 알싸한 향이 혀끝에 남아 있었다. 처음 접한 담배는 씁쓸하면서도 그리운 맛이었다. 흩어지는 연기처럼 우리의 청년기도 그렇게 소리 없이 분해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저 눈을 혹사하면서도 불투명한 담배 연기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었을 뿐…. 담배를 태우며 나는 비로소 허공을 가졌다.

* * *

집안은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찾기 위해 아버지는 부산 곳곳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다. 우리들로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한 우리는 예전처럼 지낼 수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하던 집안일은 큰형이 일임해서 하고 있었다. 갑자기 떠맡은 살림을 큰형은 그럭저럭 잘 해내었다. 다만 그 일에 치여 학교 공부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아니, 큰형은 이미 대학 진학 같은 건 모두 포기한 듯 보였다. 붙는다 한들 아버지가 대학 등록금을 대줄 거란 보장도 없었다.

작은형은 아무리 일이 바빠도 집에 꼬박꼬박 돌아와 큰형의 일을 도왔다. 작은형이 없을 때는 내가 그랬다. 이사 후 수많은 충격이 나를 덮쳤지만 이것저것 생각하기에는 큰형이 너무 지쳐 보였다. 어머니가 계실 때보다 집안은 더 깨끗했고 아버지가 계실 때보다 집안은 더 평화로웠다. 솔직한 마음으로 나는 영영 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은 아무래도 좋으니 그냥 그만큼이라도 평온하게 살기를 바랐다. 아마도 그것은 나만의 바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누구도 부모의 귀가를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 와중에 떠돌이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 작은형의 도움으로 조그마한 개집을 만들어 집 앞에 두었다. 먹이를 주자 개는 쉽게 나를 따랐다. 집에서 키우던 개였는지 개는 우리들과의 생활에 순순히 적응했다. 나는 개에게 백구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런저런 재주를 가르쳤다. 백구는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나는 매일 저녁을 백구와 함께 보냈다. 백구가 죽기까지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은 석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나는 한없는 애정을 백구에게 주었다. 그것은 아마도 집에서는 언제까지나 말단일 수밖에 없는 내게 ‘보듬어 살피고 때로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그랬다. 백구는 가족들과 달랐다. 나는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집 안에 두어야만 했다.

큰형의 유일한 휴식은 숲을 거니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전과 같은 안정은 없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촘촘한 숲 사이를 거니는 큰형의 모습은 길을 잃은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았고 그의 산책은 산책을 빙자한 방랑이었다. 커다란 상실이 그의 전면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랬다. 그는 아마도 알고 있었으리라.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그 일 이후 이모들이 집을 찾아와 아버지에게 사죄하며 그간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궁금함을 견디지 못한 셋째 형과 나는 옆방에 숨어 이야길 엿들었다. 비로소 나는 어찌하여 어머니가 그토록 큰형을 친척 집으로 내돌렸는지, 이모들이 그토록 큰형만을 편애했는지를 이해했다. 큰이모가 설명하기를 큰형은 어머니가 애당초 약혼했던 남자의 아이라고 했다. 남자 쪽에서 한눈에 반해 죽자사자 어머니를 쫓아다녔다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자는 청혼했고 어머니는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남자의 집안이 워낙 위세가 대단해 북에서 피난 온 어머니의 출신을 못마땅히 여겨 파혼을 시켰다. 그러나 혼전 관계를 가진 어머니의 배 속에는 이미 큰형이 생겨버렸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가족들은 어머니를 얼른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만난 것이 아버지였다, 는 논리정연한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꼴도 보고 싶지 않다며 이모들을 내쫓았다. 이모들은 우리들에게도 거듭 사과를 하며 힘겹게 자리를 떴다. 아버지가 살아있는 한, 그들을 다시 볼 수 없으리란 사실은 명백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별로 친밀하지 않은 그녀들의 얼굴이 새삼 정겹게 느껴졌다. 그녀들은 모두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누구 하나 어머니처럼 살지는 않았다.

그 일 이후 셋째 형은 손목에서 시계를 풀지 않았다. 그는 큰형에게 그것을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큰형도 그에게 시계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연스레 셋째 형에게 양도되었다. 어쨌거나 셋째 형은 가장 서열이 높은 아버지의 친자였으므로 자격은 충분했다.

아버지가 없는 사이 셋째 형은 지하실의 열쇠를 복사하여 그곳을 ‘하우스’로 대여했다. 하우스란 일반 가정집을 가장한 도박장을 일컫는 말인데 사실 그 지하실처럼 하우스에 걸맞은 조건을 갖춘 공간도 드물었다. 인가와 멀리 떨어진 데다 숲으로 사방이 막혀 출입을 들킬 염려가 없었고 직접 들어가지 않는 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지하실의 보안은 실로 완벽했다. 셋째 형이 하우스를 시작하면서 낯선 사람들이 집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지하실은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능했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험악한 사람들이 현관을 들락날락했다. 치우고 또 치워도 집은 늘 지저분했다. 집뿐만 아니라 인근의 숲도 더러워졌다. 도박꾼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소변을 볼 때 숲을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들만의 집과 아름다운 숲의 정경이 더럽혀지는 것에 화가 났다. 그러나 셋째 형이 막내인 내 말을 들을 리 만무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작은형밖에 없었다. 작은형도 잠자코 두고 볼 심산은 아닌 듯했다. 먹이를 기다리는 매처럼 그의 두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믿고 기다렸다. 나의 분노는 그 누구도 굴복시킬 수 없었기에, 타자의 유효한 분노가 폭발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밤마다 도박판이 벌어졌다. 새벽이 될 때까지 지하실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때로는 험악한 욕이 오갈 때도 있었다. 1층에 방이 있는 나는 매일 선잠을 잤다. 그들의 환호와 욕설, 구둣발 소리에 자주 잠을 깼다. 그들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서 저절로 잠이 달아났다. 나는 점점 피폐해져 갔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눈 밑에 탁한 그늘이 생겼다. 잠을 못 자니 입맛도 없었다. 피로가 누적되어 급기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코피를 쏟았다. 상당히 많은 양을 흘렸기에 큰형은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작은형은 결국 셋째 형과 벼르던 일전을 치렀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타일렀으나 이미 돈맛을 본 셋째 형은 막무가내였다. 애초에 이 집의 권리는 실질적 장남인 자신에게 있으니 두 사람은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큰형은 함구했으나 작은형은 따귀를 날렸다. 울컥한 셋째 형이 다짜고짜 작은형에게 달려들었다. 셋째 형 나름대로는 꽤 분발했지만 폭력배들에게 함께 일하자는 권유를 받을 정도로 강인한 작은형이었으니,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나마도 작은형이 많이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 큰형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셋째 형은 턱을 매만지더니 바닥에 침을 뱉었다. 붉은 침 덩어리에 부러진 이가 섞여 나왔다. 이를 본 셋째 형은 완전히 이성을 잃고 작은형에게 악을 썼다.

“니가 머꼬? 니가 먼데 내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느냔 말이다! 애초에 니나 큰형이나 생판 남 아이가? 둘 다 이 집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다 이거라. 내 집 내가 맘대로 하겠다는데 니가 와 지랄이냔 말이고!”

“상원이는.”

“갸는 아 아이가!”

“착각하지 마라. 상원이는 그렇게 어리지 않아. 우리에게 뭐라 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그렇게 핏줄을 따지고 싶다면 상원이한테는 그러지 마라. 그리고 지하실은 아버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곳이야. 네가 진심으로 이 집이 네 거라 생각한다면 그럴 수는 없는 거다.”

작은형의 목소리는 격렬하게 싸우던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차분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상처를 입은 느낌이었다. 두꺼운 유리의 조그마한 스크래치처럼, 그래. 작은형이라고 상처받지 않았을 리 없다. 다만 누구도 그것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기에 그 역시 자신의 상처를 돌볼 수 없게 된 것이리라. 수많은 스크래치는 결국 시야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그래서 누구도 작은형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 역시도 온전한 나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린 결국 매한가지였다.

“아 가지고 유세 마라! 니 밸 꼴리면 그냥 니 밸 꼴린다 해라. 아부지처럼 굴라 하지 말고! 니 눈에 거슬리제? 내가 맘대로 할라 카니까, 저 빙신 같은 시키가 다 말아묵을라 카니까 우습고 밸 꼴리는 거 아이가! 내가 밉제? 내를 확 그냥 갖다 버리고 싶제?”

“원한다면, 우리들은 언제든 나가주마.”

“머라꼬?”

“어차피 이 집에는 필요 없는 사람들이니까.”

“상문아. 그만해.”

“사실이잖아.”

작은형의 말은 진심이었다. 나는 작은형이 집을 나가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나는 황급히 큰형을 돌아보았다. 큰형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나를 향해 미소 지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든 번복할 수 있는 얄팍한 위장이었다.

“니가 협박하면 아이고 내가 마 죄다 잘못했십니다, 카고 배라도 뒤집을 줄 알았나? 어림없는 소리 마라! 고마 콱 나가뿌지? 아이, 아이다. 이럴 게 아이라 아예 나가서 결판을 내자. 내 이리 얻어맞고 분해서 못 산다. 밖에 나가서 어디 한번 지대로 뒹굴어보자, 이 말이다.”

“그만하자.”

“안 나오나!”

셋째 형은 막무가내로 작은형의 옷을 잡아당겼다. 그 때문에 작은형의 셔츠가 부욱,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비쩍 마른 셋째 형의 체구에서 그런 힘이 나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오히려 그 발악 때문에 작은형의 잔인함에 불이 켜지고 말았다. 작은형은 순간적으로 셋째 형의 팔을 뒤로 꺾어 제압한 다음 그를 문밖으로 던져 버렸다. 셋째 형의 얼굴이 붉은 흙 속에 파묻혔다. 그다음부터는 난타전이었다. 우리들은 신발도 신지 않고 둘을 말리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데, 숲의 입구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싸움에 몰입해 있던 두 사람도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심하게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누구도 부축하러 달려가지 않았다. 숲을 등진 채 볼썽사납게 휘청거리는 아버지는 마치 악령 같았다. 얼어붙은 우리들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이놈의 자식들이…. 아버지가 왔는데도 인사 한마디…. 없고…. 니들도 내가 우습냐…. 응? 마누라한테 속은 놈팡이 따위 우습다 이거냐고….”

“아버지.”

아버지의 시선이 잠시 주저앉아 있는 셋째 형에게 머물렀으나 그는 셋째 형의 엉망이 된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셋째 형의 얼굴이 차갑게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반응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풀린 눈으로 주변을 흘끗거리던 아버지는 개집을 발견하고는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백구의 집을 마구 발로 차기 시작했다. 잠에서 깬 백구는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맹렬히 짖어댔다. 아버지를 처음 보았기 때문에 그를 외부의 적으로 인식한 듯했다.

“이건 또 뭐야? 이젠 개새끼까지…. 딸꾹! 날 무시하냐!”

“아버지…. 그만하세요.”

이를 세우고 으르렁대는 백구에게 아버지가 무슨 해코지를 할 것만 같아 불안했다. 아버지는 잠시 선 채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백구를 자신의 쪽으로 유인했다. 내가 백구를 말리려고 막 달려가려는 찰나 아버지가 백구의 배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펑,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한 충돌이었다. 내가 달려갔을 때 이미 백구의 눈은 까뒤집혀 있었고 입에서는 거품이 부글거리고 있었다. 살 가망은 없었다. 알면서도 나는 백구를 놓을 수 없었다. 큰형이 다가와 위로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나는 뻣뻣하게 몸이 굳기 시작한 백구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사이 작은형의 속박에서 벗어난 셋째 형은 숲으로 뛰어들어 갔다. 말릴 새도 없었다. 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진 채 잠이 들어, 있는 대로 코를 골았다. 나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다. 아버지를 짚불로 감싸 불을 붙여 그가 꿈틀대는 모양을 보고 싶었다. 그를 잘근잘근 씹고 싶었다. 그런 나의 살의를 눈치챈 큰형이 뒤에서 목을 감싸 안았다. 억눌려 있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흘러내렸다. 작은형이 수건을 가지고 나와 개의 몸을 감쌌다. 나는 백구를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으나 소용없었다. 하얀 수건 바깥으로 백구의 다리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것이 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앙상한 개의 다리를 한없이 어루만졌다. 손끝으로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텅 빈 개의 몸이 다시 죽음으로 채워졌을 때 나는 비로소 그에게서 손을 뗐다. 하지만 분노로 찬 나의 몸은 비워질 줄 모르고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었다. 밤은 길었고 나는 그대로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나를 힘껏 부둥켜안은 큰형의 팔이 없었다면 분명 그리되었을 것이다.

셋째 형이 빠져나간 숲은 여전히 어둡고 빽빽했지만 무엇인가에 관통당한 것처럼 작은 길이 나 있었다. 도박꾼들이 오가던 자리가 길로 남은 것이었다. 그 길은 분명 우리에게 편리한 것이었으나 나는 그 길이 하나의 구멍으로 여겨졌다. 좁다란 구멍으로 바깥의 시리고 번잡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나는 그 구멍을 막고 싶었다. 그러나 구멍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크게 벌어져 우리들은 더 이상 은둔자일 수 없었다.

개의 사체를 묻으며 나는 우리들 사이에 풍기는 생생한 야만의 냄새에 치를 떨었다. 그것은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직접 물려받은 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아버지가 왜 그곳에 집을 세웠는가를 이해했다. 그것은 거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정제된 세상으로부터 야만의 핏줄을 격리시키기 위한 하나의 감옥이었던 것이다.

* * *

그간 공부해온 시간이 아까웠는지, 큰형은 대학 수험을 치렀다. 넉넉한 점수로 예비고사에 합격한 큰형은 P대학교 교육학과, 단 한 곳에 지원했다. 어느 날 큰형은 아무런 말도 없이 산책하듯 집을 나가더니 본고사를 치고 돌아왔다. 붙든 떨어지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P대는 나 같은 건 엄두도 못 낼 명문 대학이었기에 오히려 내 쪽이 더 간절히 형의 합격을 기원하고 있었다.

합격 발표 당일 큰형은 묵묵히 일만 하고 있었다. 대학으로 전화를 걸지도 않았다. 합격 발표를 보러 나갈 분위기도 아니었다. 큰형은 시험 결과를 아예 확인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산 아래로 내려가 공중전화로 큰형의 합격 여부를 확인했다.

합격입니다.

기쁜 마음에 나는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경사진 산길을 오르는데도 숨이 차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나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큰형에게 달려가 외쳤다.

“형! 합격이야! 합격!”

“응?”

“P대, 합격이라고!

“…아아.”

“합격이라니까!”

“그래.”

그게 그가 보인 반응의 전부였다.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기뻐 날뛴 내 쪽이 무안할 정도로 그는 담담했다. 그는 허탈해하는 나의 등을 떠밀어 방으로 데리고 갔다. 큰형은 집안일을 하면서 동시에 내 공부를 살펴주고 있었다. 교과서를 펼치고 마주 앉았지만 공부가 될 리 없었다. 정말 조금도 아깝지 않은 거야?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대범하고 영악하다. 거짓을 숨기는 데는 그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의 감정이 철창 같은 숲의 집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조금이라도 좋으니 그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그에게 아직 연약한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도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의 편의를 위하여. 그러나 그는 그런 응석에 응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늦은 오후에 시작된 과외는 밤이 늦도록 계속되었다. 그중 진심이 오가는 대화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피곤에 절어 위층 방에서 자고 있는데 1층에서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셋째 형이 하우스를 대여하던 시절을 겪고 난 뒤 나는 잠귀가 밝아졌다. 셋째 형과 아버지는 그날 이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작은형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금슬금 계단을 내려갔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는 분명 큰형과 작은형의 것이었다. 나는 층계참에 몸을 숨기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합격했다며.”

“응.”

“어쩔 생각이야.”

“생각은 무슨.”

둘은 거실에 놓인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촛불을 켜두었지만 실내는 제법 어두웠다. 그들은 한참 서로 말이 없었다. 작은형은 거래처 일을 다녀온 탓인지 양복 차림이었다. 체격이 좋은 작은형은 양복이 썩 잘 어울렸다. 형은 양복이 불편해서 싫다고 했지만 필요할 때는 어김없이 정장을 갖춰 출근했다. 실적이 좋은 작은형은 몸을 쓰는 일에서 영업 쪽으로 이동 배치되어 분위기가 싹 바뀌어 있었다. 이전에는 야성적인 냄새가 났다면 바뀐 모습은 엘리트 상사 같았다.

작은형은 답답한 듯 넥타이를 끌렀다. 그래도 성이 차질 않았는지 셔츠 단추도 두엇 풀어 목 주변을 시원하게 열어두었다. 큰형은 작은형이 풀어둔 넥타이를 차곡차곡 접었다.

“대학 가라.”

“됐어.”

“저금 있어. 일단 그걸로 등록해. 이후에도 내가 지원할 테니까.”

“정말 필요 없다니까.”

“거짓말하지 마.”

“…지금은 이렇게 옆에 있어 주는 걸로 충분해.”

큰형의 고개가 천천히 작은형의 어깨로 기울어졌다. 좀 더 고집을 부리려던 작은형은 이내 말을 거두고 큰형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들의 밀착을 본 나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혐오나 분노 같은 감정이 아니라 근질근질한 쾌감이었다. 그랬다. 나의 무의식은 그들에게 더욱 강렬한 자극을 바라고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지만 동시에 노골적인 유혹이기도 했다.

큰형은 고개를 들어 작은형과 시선을 마주했다. 촛불에 비친 그 얼굴에는 수많은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의 얼굴, 그의 눈동자가 불빛을 따라 일렁이고 있었다. 그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쥔 작은형은 그에게 키스했다. 그날과는 사뭇 다른 애틋하고 정적인 입맞춤이었다. 서로를 물 흐르듯 주고받는 듯한 그런…. 그들은 천천히 고개를 떼었다. 나는 이어지는 행동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작은형에게 몸을 기댄 큰형은 금세 잠들어버렸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나는 내심, 그들의 부정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들의 정사를 목격한 그날로부터 나는 매일같이 그들을 감시했다. 다시는 부정을 저지르지 못하도록-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을 훔쳐봤지만, 사실은 그들의 섹스를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사랑이 온전히 욕망이기만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그런 따뜻한 교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은 오히려 불편했다. 내가 바란 것은 오직 야만적인 섹스뿐이었다. 충동이기에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마음이 중첩된 절절한 사랑 같은 건…. 그런 사랑 따위는….

시시했다.

* * *

백구가 죽은 그날 밤으로부터 석 달 뒤 셋째 형이 어슬렁어슬렁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격렬하게 싸운 일 같은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듯 특유의 눈웃음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불쑥 집 안에 들어섰다. 커다란 고깃덩이를 든 채로.

셋째 형이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작은형이었지만 미안하다거나 놀라지 않았냐는 식의 사과의 말은 일절 없었다. 작은형은 그가 거실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었고 셋째 형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 곁을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어디서 지냈느냐, 밥은 잘 먹고 다녔느냐는 큰형과 나의 질문 공세에도 그는 ‘고마, 밥이나 묵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일축했다.

그리고 우리 네 형제는 마주 앉아 저녁을 먹었다. 별로 오가는 말도 없었고 그동안의 안부 역시 더는 묻지 않았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어쨌든 형제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산산조각 나도록 철저히 깨부수어도 다시 이가 붙고 마는 그런 기묘한 그릇. 그러나 깨지고 붙고 다시 깨지고 붙는 그 지긋지긋한 반복 속에 자그마한 균열이 점점 그 틈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 역시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심지어 그릇의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가 모르는 사이 충돌로 마모되고 아교로 덧붙인 관계는 더는 형제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들은 각자의 마음에 이미 커다란 균열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마음은 서로에게 부대끼면 부대낄수록 질긴 상처만을 남겼다. 무관심과 외면으로 은닉한 수많은 비밀들이 조금만 더 일찍 벌어진 틈 사이로 고개를 디밀었다면 우리들은 관계를, 형제라는 틀을 재정비할 수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종종 그러한 생각에 골몰하곤 한다. 괴멸해버린 시간의 무의미한 재건. 환상의 토대를 빌려 꾸는 그 꿈은 허망하고 서글프지만 때로는 한 줄기 빛으로 영글어 내 심장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아. 지나간 것은, 설령 전신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의 무더기일지라도 이미 흘러가 버렸다는 이유 하나로 어째서 용서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용서하게 하고, 체념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간단히 놓아버리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이란 것은 과거로 밀려나는 순간 인간의 죽음과도 같은 과정을 겪는 것이라고. 그렇다. 그 시간들은 이미 죽어버린 것이다. 시간의 죽음이 인간의 죽음과 다른 것이라면, 시간은 살아 부패한다는 것. 고로 죽어버린 시간은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 하여 우리들의 시간은 진공의 숲속에서 아름답게 죽어 있다는 사실- 그렇게 나는 읊조리는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 지나. 아버지가 돌아왔다. 언젠가는 돌아올 아버지였다. 다만 내가 놀란 것은 사뭇 달라진 그의 차림새였다. 아버지의 의장은 실로 훌륭했다. 새로 맞춘 듯한 양복에 그와 세트로 맞춘 중절모, 포마드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탄력 있는 잿빛 머리칼.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그 모습은 다름 아닌 어머니를 잃기 전의 아버지. 그 자신의 모습이었다.

나는 백구의 죽음마저 잠시 잊고 맨발로 뛰쳐나가 아버지를 반겼다. 그리운 아버지의 모습에 순간 모든 것이 그 옛날로 돌아간 듯했다. 연약한 표피가 아직은 날카로운 진실을 견디어내던 그때. 나는 못 견디게 그때가 그리웠고, 정갈한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그 시절로의 회귀를 약속하는 듯했다.

“우리 막내. 잘 있었냐.”

“어서 오세요.”

“집에 누구누구 있냐?”

“다 있어요.”

“잘됐구나! 그렇지 않아도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다.”

아버지는 대뜸 숲으로 달려가 고목 뒤에서 누군가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그제야 나는 나무 기둥 곁으로 흩날리는 자주색 플레어스커트 자락을 목격했다. 못 이기는 척 나무 뒤에서 미려한 그림자가 불쑥 그 모습을 드러냈다. 봉긋한 소매의 흰 셔츠에 나풀거리는 스커트를 입은 긴 곱슬머리의 아가씨는 아버지의 재촉에도 한참 동안 숲을 나오지 않고 머뭇거렸다. 나는 넋 나간 사람처럼 망연자실 그 아가씨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태어난 이래 내가 보아온 여자들 중 어머니보다 아름답다, 고 인식한 유일한 존재였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는 찾으신 거예요?”

“인사부터 먼저 해라.”

“누구신데요.”

“네 형수 될 아가씨다.”

아버지의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조금 전의 수줍음은 간데없이 그녀가 생기발랄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완만히 치켜 올라간 깊은 두 눈은 내가 아는 누군가를 굉장히 닮아 있었다. 흡사 소용돌이 같은 그 동공에 나는 전신이 휘말려 들어가는 착각을 느꼈다.

“셋째 형 결혼해요?”

“무슨 소릴 하는 게냐. 이 아가씨는 네 큰형수님 될 분이야.”

“크, 큰형수요?”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 어수룩한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아가씨는 고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미소 지었다. 그러나 살짝 비어져 나온 입꼬리와 하얀 손 위로 가늘게 활을 그리며 웃고 있는 그 눈은 어딘가 요염해서 나는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키고 말았다. 저 여자와 큰형이, 결혼?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시야는 붉게 물들었다. 그것은 영근 석류의 빛처럼 매혹적이고 팽창된 느낌으로 또한 매우 축축하기까지 했다. 큰형과 그녀. 두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처음 뵙겠어요. 윤선미라고 해요.”

“아. 네, 네.”

당차게 내미는 손을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한참을 오롯이 그 손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지런히 반짝이는 타원형의 분홍빛 손톱은 왠지 깨물어 보면 복숭아 맛이 날 것 같았다. 나는 겨우 용기를 내어 그 손을 붙잡았다.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그 손은 맞잡은 순간 착 휘감기며 나의 동결된 정염에 따스한 입김을 불어 넣었다.

“자. 언제까지 선미 양을 세워둘 참이냐. 집에 들어가자. 어서! 선미 양은 조심하도록 해요. 흙이 부드러워서 구두가 푹푹 빠지니까.”

“정원 흙 색깔이 참 예뻐요.”

“역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다르다니까. 이게 적토라는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리 선명한 적토가 잘 없어요. 아주 어렵게 구했지.”

“집이 참 멋있어요. 센스가 좋으신가 봐요.”

잡담을 나누며 걷는 두 사람을 뒤따르며 나는 그들이 함께 있는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디선가 그러한 두 사람을 아주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보아온 기분이었다. 그녀가 잠시 멈추어 서서 나를 뒤돌아보았을 때 비로소 나는 그 기묘한 기시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닮아 있었다. 생김새와 분위기를 떠나 그녀 자체의 존재감이 내 어머니와 너무나도 흡사했던 것이다.

그녀는 필시 어머니의 자리를 메울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들자마자 전신에 한기가 들었다. 어머니의 존재가 불러왔던 소소한 폭력, 일방적인 미움, 그리고 비틀린 질투. 그 모든 것들은 하나의 재앙이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고목의 가지가 목덜미에 스치며 가느다란 생채기를 내었다. 뜨겁게 몰려오는 불길한 예감에 나는 도무지 걸음을 뗄 수 없었다. 나는 어디론가 숨어들고만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숲, 아니 숲보다 더 깊숙한 심연의 장소로. 영원히. 영원히 잠들고 싶었다.

빈 숲으로부터 묵직한 바람이 불었다. 비어 있던 신전으로부터 다시 새어 나오는 늙은 제사장의 희미한 노랫소리를 들으며 나는 큰형을, 오직 큰형만을 생각했다.

* * *

모여앉은 자리는 어깨가 뻣뻣해질 정도로 어색했다. 아버지와 그녀 앞에 일렬로 앉은 우리 네 형제는 아버지가 뜬금없이 물어온 혼담이 가져다준 충격을 제각기 추스르고 있었다. 큰형과 작은형은 단 한 번 시선을 마주쳤을 뿐 달리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으나 무릎 위에 놓인 작은형의 주먹이 꿈틀거리며 견고한 형태를 취하는 것을 나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이야기인즉슨 큰형을 그 집안의 데릴사위로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찍이 아버지에게 미군의 일을 대어준 사람으로 부산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사업가였다. 돈 많고 사람 좋기로 유명한 그에게는 단 하나, 고민이 있었는데. 손이 귀해 딸 하나를 낳고는 자식이 들지 않아 눈덩이마냥 불어나는 사업을 물려줄 마땅한 후계자가 없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무남독녀인 딸 선미 양이 유달리 총명하여 쓸 만한 데릴사위만 들이면 사업을 물려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는 아들이 넉넉한 아버지에게 많은 특혜를 베풀며 스리슬쩍 혼담을 진행시켜 온 모양이었다. 때마침 적자의 자격을 잃은 큰형이 그 혼담에 안성맞춤이라 생각한 아버지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래. 너는 어떠냐. 물론 좋지?”

아버지의 질문에 큰형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을 뿐 대답이 없었다. 그런 큰형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어쩐지 매섭고 차가워 보였으나 작은형에게 말을 건네려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순식간에 따스하고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문 씨는 참 자주 뵙네요.”

달콤하면서도 쫀득쫀득한 과일 젤리 같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작은형의 쓰디쓴 눈빛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작은형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차분히 대답했다.

“…그런가요?”

“아, 그래. 선미 양하고 상문이는 서로 좀 알지? 너는 그럼 좀 먼저 말도 붙이고 할 것이지, 그렇게 목석처럼 앉아만 있냐. 재미없는 녀석.”

“행님이랑 우예 아는 사인교?”

“우리 회사 사장님이 선미 씨 아버지 동생이시다.”

작은형에게 일자리를 내어준 사람도 그녀의 아버지였다. 애초에 아버지는 그녀의 집안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큰형의 비밀이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이 강력하게 큰형을 원했다면,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넘겨주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제가 어제도 작은아버지 도시락 싸 가지고 갔는걸요. 상문 씨도 드셨고.”

그랬다. 그녀의 시선은 이상하리만치 작은형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큰형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나는 한 번도 큰형이 그토록 동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뭐랄까. 그것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맹수의 분노를 닮은,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저. 이런 말씀 드리기는 외람되지만….”

“아니, 무슨 말이든 편하게 해요, 선미 양. 우리 사이에 뭐 가릴 게 있나.”

“저, 어디선가 들었는데. 상윤 씨는 오랫동안 사귀어온 애인이 있다고….”

“예에?”

그녀의 말에 아연실색한 것은 내 쪽이었다. 모두들 왜 그렇게 놀라느냐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머쓱해진 나머지 조금 뒤로 물러앉으며 심호흡을 했다. 오랫동안 사귀어온 애인이라는 말에 나는 자동적으로 작은형을 떠올린 것이다. 그녀의 행동거지는 조심스러웠지만 언동이나 표정, 동작 하나하나에는 어딘가 큰형을 시험하는 듯한 기지가 숨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칼을 휘두르는 그녀에게 보다 못한 큰형이 반격에 나섰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상윤 씨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에요.”

“그게 누굽니까.”

“박숙영. 아시죠?”

“…글쎄요.”

“숙영 언니한테 참 말씀 많이 들었었는데. 언니 따라 시내에 따라 나갔을 때 몇 번인가 마주쳤잖아요. 상문 씨, 기억나시죠? 항상 같이 다니셨잖아요.”

“잘 모르겠군요.”

“전 똑똑히 기억해요.”

숙영. 숙영. 박숙영…. 왠지 모르게 귀에 익은 이름이었지만, 선뜻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 점은 확실히 해주세요. 전 과거 있는 남자는 싫으니까요.”

“선미 양. 우리 상윤이 그런 놈 아니야. 이놈이 얼마나 성실한데. 부산 어디 가서 물어봐도 나쁜 소리 안 나와. 그건 내가 보장한다니까. FM이란 이 녀석을 두고 하는 말이야. 허 참.”

“물론 그렇겠죠. 저도 상윤 씨를 믿어요.”

“자, 자. 늦었으니까 나가서 저녁이나 먹자들. 어여 준비들 해라. 선미 양 배고프겠다. 어서!”

싸늘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듯 아버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쫓듯 우리들의 등을 떠밀었다. 외식을 한다는 말에 셋째 형은 흔쾌히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나는 일단 방을 나선 다음 문밖에서 미적거리며 큰형과 작은형의 동태를 살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소리가 들렸지만 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박숙영이라는 여자의 정체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 가 당장 형에게 그 여자가 누구인지 묻고 싶었다. 뜸을 들이는 두 사람 때문에 바짝바짝 애가 탔다. 갑갑한 양반들! 나의 궁금증이 한계치에 달했을 때 비로소 작은형이 말문을 텄다.

“박숙영이라면….”

“그 여자야.”

“그 여자라니.”

“네 얼굴에 상처를 만든 여자.”

눈꺼풀의 상처! 그래.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그 여자의 이름이었다. 큰형을 스토킹하다 모진 말을 듣고 그대로 자살해버린. 내게 어둠이란 공포를 선사한 최초의 인물. 그러나 박숙영의 정체가 내게 안긴 충격은 그 뒤에 흘러나온 큰형의 읊조림에 비하면 그리 섬뜩한 것도 아니었다.

“죽어서까지 귀찮게 하는걸….”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의 패배를 예감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도망쳐.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죽어. 당신이 무기로 내세운 그 박숙영처럼.

고독에 잡아먹힐 거야.

* * *

큰형의 허락은 없었지만 아버지는 마음대로 혼담을 진행시켰다. 형제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으나 셋째 형은 내심 질투가 나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어마어마한 집안의 사위 자리인 데다 상대가 뜻밖의 절세미인이었으니 부아가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작은형이 큰형과 부정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혹은 내가 무지했다면 우리들 역시 그 혼담을 부러워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복권에라도 당첨된 것처럼 우리 집을 우러러보았다. 누구든 아버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아버지의 어깨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만인의 동경이 어머니의 실종이 남긴 거대한 상실을 메우고 있었다. 혼담이 나온 이후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물론 그 두 가지 감정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지만 아버지 안의 텅 빈 곳을 채우는 데에는 무리가 없는 듯했다.

어쩌면 일생 동안 아버지를 상하게 한 것은 사랑도 집착도 아닌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잃으며 아니, 북쪽의 삶과 단절되면서부터 아버지의 자존심은 초봄의 살얼음판처럼 언제든 무너져도 좋을 그런 것이었기에 아버지는 일생을 그 무너진 자존심의 재건에 투자했다. 복구가 불가능한 것에 전부를 바친 아버지의 말년은 쓸쓸하고 초라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돌아가실 당시의 아버지에게는 거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작은형이 무슨 일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흔들리고 있는 것은 큰형 쪽이었다. 큰형은 그녀와의 첫 대면 이후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혼담을 수락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그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큰형은 결혼 상대인 그 윤선미라는 여자에게서 자신의 근본을 위협하는 무언가를 포착한 듯했다.

나는 그녀가 두 번째로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 둘이 나누었던 대화, 주고받던 날카로운 시선들, 부메랑처럼 돌아오던 경멸과 혐오의 감정들…. 그날의 경험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었다.

아무 연락도 없이 불쑥 그녀가 우리들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늦은 저녁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큰형과 나는 마당에서, 책상 모서리의 불거져 나온 대못을 고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책상 모서리에 불쑥 튀어나온 못은 잡아당겨도 빠지지 않고 망치로 쳐도 잘 구부러지지 않아 공사에 재간이 없는 나와 큰형은 애를 먹고 있었다. 그녀가 나타날 즈음에는 작은형이나 셋째 형에게 일을 떠넘기기로 하고 주변의 연장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나는 그녀가 홑몸으로 어두컴컴한 숲을 헤쳐 나왔다는데 적잖이 놀랐다. 남자인 나도 늦은 시간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서워, 무거운 짐이 있다는 둥 핑계를 대어 형들을 불러내곤 했던 것이다. 큰형은 갑작스런 방문에 순간 불쾌한 기분을 내비쳤으나 이내 미소를 띠며 그녀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나 역시 연장을 내버려 둔 채로 뒤를 따랐다.

“오늘 아버지는 많이 늦으실 텐데. 연락을 미리 주셨으면….”

“괜찮아요. 오늘은 상윤 씨를 보러 온 거니까.”

“그래요…. 우리끼리 할 얘기 같은 건 딱히 없을 거 같은데.”

“결혼. 그만둬요.”

그게 막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가 내뱉은 첫말이었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잡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무슨 뜻이죠?”

“결혼 포기하라고요.”

“…저기 형. 자리 피해 줄까?”

“아니. 그냥 있어.”

일어나려는 나의 팔목을 큰형이 강하게 잡아끌었다. 나는 큰형에게 그런 힘이 숨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쉽게 뿌리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은 뒤에도 큰형은 한참 동안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손은 평소와 달리 뻣뻣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서로 관심 없잖아요. 아니, 상윤 씨는 나 싫어하죠?”

“왜 그렇게 생각하죠?”

“나는 상윤 씨 싫거든요.”

“그럼 선미 씨가 아버지께 말씀드리세요.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결혼이 하기 싫은 건 아니에요.”

“그게 무슨 뜻이죠?”

“결혼을 취소할 맘은 없어요. 간단해요. 당신이 이 결혼 못 하겠다고 하면 상문 씨에게로 얘기가 넘어가겠죠? 난 당신의 아내가 아니라, 당신의 제수씨가 되고 싶으니까. 내가 원하는 건 그거예요.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주 천천히 큰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차 짐작은 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못 하겠다면, 어쩌실 겁니까.”

“그럼. 당신들 관계를 폭로하죠.”

“관계라뇨.”

“막내가 있는데, 말해도 괜찮아요? 나야 뭐 상관없지만.”

“어째서 그런 말을 믿는 건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군요. 가당치도 않은 소립니다.”

“아니. 난 믿어요. 숙영 언니는 그런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야.”

“숙영 씨는 망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막판에는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상문이에게 상처까지 입혔어요. 숙영 씨의 집착 때문에 우리 가족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아십니까? 그런 사람의 말을 누가 믿어줄 거 같아요? 설사 그 모든 게 사실이라 해도, 증거가 있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요. 아무도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는 믿지 않을 겁니다.”

“편지가 있어요. 거기에 전부 적혀 있어요. 언니가 본 모든 게 적혀 있다고요. 망상이든 아니든, 그 편지가 공개되면 당신들 무사할 거 같아요? 지금처럼 지낼 수 있을까요?”

그랬다. 이유야 어떻든 큰형과 작은형은 박숙영에게 내밀한 관계를 들켰던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제야 그 여자가 보였던 집착과 광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큰형과 작은형은 분명히 매혹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뒤늦게 생각건대 비밀스런 관계가 그들을 본래의 매력 이상으로 빛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들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묘한 질투를 불러일으켰고, 또 무의식중에 그들의 관계를 파괴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주변 사람들은 기묘한 파괴 충동과 그로 인한 죄책감에 녹슬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내가 포기한다 해도 그 녀석이 너 같은 걸 상대나 할까?”

큰형은 차갑게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큰형에게 붙들린 손을 놓았다. 평소와 판이하게 다른 그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서먹했다.

“당신이 시작했지? 분명해. 당신이 꼬드겼을 거야. 숙영 언니 덕분에 당신들을 처음 봤을 때부터 난 알아봤어. 언니는 당신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난 상문 씨를 봤지. 그냥 봐도 알 수 있었어. 저 남자는 희생양이구나, 하고. 당신 같이 형편없는 인간에게 얽매여 있다니 정말 아깝다고 생각했어. 숙영 언니는 몰랐지만, 난 처음 본 순간부터 알았어. 당신은 악마 같은 남자야. 그런 얼굴, 그런 표정으로 위장해봐야 소용없어. 내 눈엔 보이거든. 당신 속이 시커멓다는 거. 이 집, 그래. 이 숲과 똑같아. 겉으로 보기에야 푸르고 아름다워 보이겠지. 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서면 빛이라곤 없어. 이 숲속에서 살인이 일어난다 해도 누가 알겠어? 이 어둠 속에서 어떤 더러운 일이 벌어진다 해도 세상은 몰라. 당신은 그런 남자야. 아무도 상상 못 할걸. 당신 안으로 들어가면 어떤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지. 물론, 상문 씨도 몰랐을 거야. 암흑 구덩이인 줄도 모르고 발을 들였겠지. 먹이를 포획하기 위해 벌린 아가리인 줄도 모르고 스스로 걸어 들어갔을 거야. 안 봐도 훤해. 내가 틀렸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형은 웃음을 터트렸다. 큰형이 그렇게 크게 소리 내어 웃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큰형은 진심으로 즐거운 듯 보였다. 그녀는 불쾌한 듯 큰형을 쏘아보았다. 큰형의 웃음은 그녀가 긴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토해놓은 독설보다 더 치욕적이었다. 분노로 인해 그녀의 가느다란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 괴리감을 견딜 수 없어 내가 막 도망치듯 자리를 뜨려고 할 때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화기애애하구나. 뭐 그리 좋은 일이 있냐? 어이구, 선미 양. 언제 왔어?”

“오셨어요. 아버지.”

나는 황급히 아버지의 곁으로 다가갔다. 영문을 모르는 아버지는 연신 너스레를 떨었다.

“벌써 사이가 이렇게 좋아졌어?”

“죄송해요. 연락도 드리지 않고 불쑥 찾아와서.”

“무슨 말씀을! 선미 양이라면 아무 때나 찾아와도 좋지! 상윤이 너는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그렇게 웃고 그러냐.”

“선미 씨가 절 즐겁게 해주네요. 이렇게 웃어본 게 대체 얼마 만인지.”

큰형의 말에 아버지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화색을 띠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도록 큰형에게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큰형은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며 아버지의 겉옷을 받아들었다.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그래, 선미 양.”

“아니에요. 너무 늦었어요.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하긴 아가씨가 너무 밤늦게 다니면 위험하지. 참. 상윤아. 바래다 드리지 그러냐.”

“아니에요. 아니에요. 혼자 갈 수 있어요.”

그녀의 거절이 진심이라는 것을 아버지만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은근히 큰형에게 눈치를 주며 그녀를 바래다줄 것을 종용했다.

“…바래다 드릴까요?”

“괜찮아요. 상윤 씨는 쉬세요.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을 텐데.”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

어떻게든 그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소리치다시피 그녀의 호위를 자청했다. 나의 돌발행동에 어리둥절해진 아버지는 그렇게 하라며 순순히 승낙을 했고 나는 그녀와 함께 그 숨통 터지는 집을 나왔다. 마당에는 채 고치지 못한 책상이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책상 모서리를 불쑥 비집고 나온 대못이 마치 나의 불안과도 같아 나는 한참 동안 걸음을 떼지 못하고 그 앞을 서성였다.

“오늘은 미안해요. 소란스러웠죠.”

“네? 아…. 아니에요.”

“정말로 혼자 가도 괜찮으니까.”

그녀의 손이 내 어깨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그녀는 화사한 스커트 자락을 휘날리며 스스럼없이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몇 분 뒤 숲으로부터 작은형이 나타났다. 회전문을 이용한 듯한 그들의 등퇴장에 마치 내가 연극 무대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는 작은형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대사 한마디 내뱉을 수 없는 행인의 직분임을 철저히 깨달았다. 그래. 나는 그 극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우리의 연극은 비극이었다. 비극의 끝은 죽음. 그리하여 나는 오롯이, 홀로 살아 있는 것이다.

* * *

집에 돌아온 작은형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감지한 듯 내내 말이 없었다. 그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 나는 그의 지친 얼굴이 서먹하여 부러 거리를 두었다. 이때 나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의 황폐한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기실 작은형은 그리 무서운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어린 날 어떤 말 못 할 오기로 점철된 귀신같은 그의 모습이 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차후 사람인 그를 보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묻고 싶어졌다.

형은, 대체 어떤 사람이야?

“손님 왔었어?”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넥타이를 풀며 작은형이 물었다.

“응. 바로 전에, 그 누나.”

“선미 씨?”

나는 큰형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형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늘 하는 대로 맥주 한 잔을 삼키며 묵묵히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창밖으로 소슬한 바람을 따라 여린 이파리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조막손을 닮은 그 이파리들은 산들바람에 흔들리어 마치, 구원을 요청하는 듯했다. 나는 작은형의 시선을 쫓으며 그러한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매일같이 그러한 광경을 침묵 속에 지켜본 것이다. 순간 밀폐된 고독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혹시 그는, 갇혀 있는 것일까?

“나중에 얘기 좀 하자.”

큰형은 그 말만을 남겨 놓은 채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다. 거실에 남겨진 나와 작은형 사이에 싱거운 침묵이 흘렀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할 말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피곤하다며 내 방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어 갔지만, 밀회를 엿보는데 맛을 들인 내가 그들의 정해진 약속을 듣고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나는 그들이 안심할 때까지, 이불 속에 숨어 들어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거실로부터 이야기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 그들을 엿보았다.

“어쩔 셈이야.”

“모르겠어.”

“결혼…. 할 거냐?”

“그것도 모르겠어.”

전과 달리 두 사람은 어딘가 서먹해 보였다. 혼란스러운 큰형에 비해 작은형은 여전히 딱딱하고 곧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왔다.

“그만하자.”

“…이상문.”

“때가 됐어.”

“무슨 때.”

“떠나자.”

나는 가까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줄만 알았다. 일전에 셋째 형과의 다툼에서 언제든지 떠나줄 용의가 있다는 그의 발언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마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아니, 그는 원래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가족이었기에. 그래도 가족이라 생각했기에. 그가 정말로 우리들을 저버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작 떠났어야 했어. 이미 늦었다고 생각될 정도야.”

“…상원이만 남겨두고 갈 순 없어.”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어째서 그 대목에서 내 이름이 언급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큰형에게 그토록 소중한 존재였나? 나의 판단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말하며 굉장히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마치 자식을 떼놓고 가는 부모와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상원이는 괜찮아.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증거가 없어.”

작은형은 단호했다. 이미 떠나기로 작정을 한 듯했다. 나는 몸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인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모르겠어? 이건 네 어머니가 한 짓과 다르지 않아.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조금만, 조금만 더 두고 보자. 그래. 상원이 결혼할 때까지만이라도.”

“그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면 해. 네 선택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지 않으마. 그래도 난 널 떠나지 않을 거다. 아마도 한동안은 관계가 지속되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끝날 거다. 멀든, 머지않은 때든 끝이 온다는 것만은 분명해.”

“…끝내고 싶어?”

“너도 나도 인간이야. 딱히 무슨 일이 일어나서가 아니야. 서로의 불안이 관계를 망쳐. 모르는 사이 서서히 지쳐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끝이 오겠지. 갑자기 기계가 멈추듯 그렇게 모든 게 끝날 거야.”

“변명하지 마.”

“영원한 비밀은 없어. 이상윤.”

확인사살이었다. 역광에 비쳐 새까맣게 물든 큰형의 실루엣은 어딘가 처연해 보였다. 기실, 떠나면 그뿐인 문제였다. 떠나기만 하면 그녀의 협박과 정략결혼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즉 고민할 가치도 없는 문제였단 이야기다. 심지어 큰형은 우리와 완벽한 혈연관계도 아니었으니 누구보다도 가벼이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분노를 느끼고 있으면서도 나는 순간 망설이는 큰형의 등을 있는 힘껏 떠밀고 싶었다. 그가 떠나지 않으려 하는 그러한 상황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고, 내 이름이 나온 시점으로부터 나는 견딜 수 없이 불편했던 것이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줘.”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였다. 유보의 말이었지만 나는 큰형의 마음이 떠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내 몸에서 증기가 나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내일 서울행 오후 다섯 시발 기차다. 부산역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작은형은 큰형에게 무엇인가를 건네주고는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큰형은 작은형이 건넨 작은 종잇조각 같은 무언가를 한참 동안 쥐고 있었다. 나는 직감으로 그것이 기차표라는 것을 깨달았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때 상식 이상의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흉포하고 치명적인 감정이었다. 내가 그러한 분노에 조종당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 역시 분명 다르게 흘러갔으리라.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그 격렬한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질투였다. 나는 큰형 때문에 집을 버리려 하는 작은형이 아니라 우리들에게서 큰형을 빼앗아 가려 하는 작은형이 미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또 다른 감정이 숨어 있었으니. 나는 한편으로, 큰형밖에 사랑할 수 없는 작은형이 더할 나위 없이 증오스러웠다. 그러나 이제 와서 나는 일시적인 감정에 휘말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나 자신을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맹렬히 혐오하고 있다. 어쩌면 비극은 그들의 부정한 사랑이나, 그들의 운명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의 비열한 그 행동. 오직 그것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자고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한 걸까? 누구보다도 그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으면서.

* * *

나는 초조해졌다.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그들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발걸음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자꾸만 아버지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돼. 이러면 안 돼, 하고 되뇌면서도 한편으로 이것은 정당하다, 누군가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나는 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꿈틀대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만의 생활을 상상해 보았다. 그들은 최대한 깊숙이 숨어들 것이다. 어둡고 음습한 동굴 같은 곳, 혹은 또 다른 숲으로. 그곳에서 그들은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몸을 섞고 평생을 그곳에서 보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환한 미소만큼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나누는 소소한 일상의 대화 또한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다. 애초 그들에게 평범한 일상이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단정짓고 있었다. 배신을 저지를 용기를 끌어내기 위해 그들의 미래를 제멋대로 왜곡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그들이 평범하게 행복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무엇 하나 명확하게 내 자신의 감정을 정의 내리지 못한 나는 묵묵히, 아버지 방의 문고리를 돌리고 말았다.

“누구냐.”

아버지는 창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방은 굉장히 어두웠으며, 역광으로 아버지의 가칫한 실루엣이 희미하게 빛났다. 창밖은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으로, 나는 아버지가 대체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저기…. 안 주무세요?”

“잠이 안 오는구나.”

낮에 보여주었던 호탕하다 못해 호들갑스러운 모습은 간데없고. 아버지는 침울하고 다소 쌀쌀맞아 보였다. 그의 그림자 진 뒷모습은 흡사 비 내리는 가을밤의 스산한 정취를 닮아 있었다. 아버지는 마치 어머니가 사라진 직후의 그처럼 피까지 차갑게 얼어붙은 듯했다. 아버지는 매일 밤 이런 모습으로 저런 풍경을 지켜보았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섬뜩해졌다.

“왜 그러고 서 있냐.”

“드, 드릴 말씀이 이, 있어서….”

“거기 앉아라.”

그는 비로소 몸을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역광으로 인해 표정은 읽어낼 수 없었다. 반면 창을 마주하고 있는 나의 얼굴은 속속들이 그에게 들통났을 것이다.

어둠 속 아버지의 등 뒤로 트인 조그마한 창으로. 전면이 구름에 가려진 달이 희미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제 모습을 감추고 있었지만 달은 틀림없는 만월이었다. 그래. 문득 그리스 신화에서 읽은 제삿날은 꼭 이런 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습한 달과 낡은 복도 같은 아버지의 방이 빚어내는 분위기는 꽤나 서정적이어서 나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축축해지고 말았다.

“무슨 일이냐.”

내 위로 아버지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의 그늘 속에서 나는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다 들었는데, 저기….”

“왜 자꾸 뜸을 들이고…. 시원하게 말 못 해!”

“도망…. 간다고….”

“아니, 무슨 소리야? 그게 대체…. 누가 뭐 때문에 도망을 간다는 거야?”

“크…. 큰형.”

“상윤이가?”

“자, 작은형이요! 작은형이 가자고 그랬어요. 예전부터 생각한 거라고 큰형한테 같이 도망가자고…. 전에도 한 번 말한 적 있거든요. 언제든지 계기만 생기면 여길 떠날 생각이라고…!”

“…언제냐.”

“내일, 내일 오후 다섯 시요. 부산역에서 만나서 간대요.”

“…오냐. 알았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고발로 인해 불거진 어떤 감정이 그의 목소리를 응고시키고 있음이 분명했다. 빛을 등진 그는 내 아버지도, 인간도 아닌 그저 시커먼 어둠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어릴 적 기차에서 보았던 한밤중의 산처럼,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꿈틀대고 있었다.

“그만 나가 보거라.”

조금 더 딱딱해진 목소리. 나는 도망치듯 아버지의 방을 빠져나왔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고 있었다. 그 방안에서 이루어진 나의 고발이 문득 꿈처럼 느껴졌다. 너무도 짧은 순간에 너무도 긴박하게 이루어진 배신. 큰형과 작은형의 정사를 목격한 그날처럼 나는 나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그것을 꿈으로, 꿈으로만 치부하고 싶었다.

나는 서둘러 방에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거센 바람이 숲을 맴돌고 창에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괴성이 나를 더욱 겁먹게 만들었다. 날카로운 그 소리는 흡사 나를 질책하는 듯했고 나는 베개에 고개를 묻은 채로 소리 내 읊조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천 번의 사과를 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다시 한번 그 시간이 되돌아오더라도 나는 그들을 고발하고 말았으리란 것. 나는 버림받고 싶지 않았고, 아버지를 빌미로 삼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그들을 놓아주고 싶지 않았던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기에. 그날의 배신은 내게는 천형(天刑)과도 같은 것이었다. 프로메테우스가 매일 아침 복구된 간을 독수리에게 쪼아 먹혔듯이 나는 무한의 시간 속에서 한없이 그날의 배신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껏 단 하루도 이날의 고발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다. 그러나 나는 천 번을 되돌아가도 다시 한번, 그들을 고발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뉘우칠 것이다. 천 번의 사과는 뒤집어 말하자면 천 번의 배신이다. 죄의식의 너머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카타르시스는 나의 내면 깊이 숨겨져 있던 찬란한 광기였으며 그것은 또한 우리 가족이라면 누구든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 * *

그날 밤. 선잠이 든 나는 꿈결에 큰형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의 손은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내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고 나는 너무나 선명하게 그의 따스한 숨결을 느꼈다. 그는 나지막이 나에게 몇 마디 말을 속삭였으나 수면의 파도에 쓸려가지 않은 것은 단 한 문장뿐이었다.

“너는 나와 같은 미로에 빠지지 말거라…. 너만은.”

잠결이었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추락하는 듯한 기분 나쁜 감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말을 듣고 바로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큰형은 내 곁에 없었다. 꿈이었을까…. 꿈이라고 하기에는 일렁이는 큰형의 목소리가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꿈이든 꿈이 아니든 하나만은 분명했다. 그의 결심이 굳어졌다는 것. 그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 * *

이튿날 우리 가족은 한자리에 모여 태연히 아침 식사를 했다. 그것은 기묘한 광경이었다. 각자의 비밀을 숨긴 다섯 남자가 마주 앉아 때로는 서로에게 반찬을 떠밀어주기도 하며 일상의 대화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셋째 형의 목에는 애인, 혹은 새로운 애인이 남긴 흔적이 붉게 남아 있었다. 예전보다 흔적의 밀도가 더욱 진해진 걸로 보아 이번 애인은 독점욕이 대단한 듯했다. 그런 흔적을 남기는 애인도 그런 흔적을 조금도 숨기지 않는 셋째 형도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를 천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벗겨놓고 보면 욕망이란 다 매한가지인 것이다. 큰형과 작은형의 이른바 사랑이라는 것도 이런저런 장식을 다 벗겨놓고 보면 셋째 형의 빈번한 성욕과 다를 바 없었다.

지난밤의 일로 나는 어딘가 벗겨진 듯했고 또, 굉장히 더러워진 기분이었다. 작은형과 큰형은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큰형은 평소보다 조금 입맛이 없어 보였고 작은형은 평소보다 조금 서둘러 출근했을 뿐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집을 나서는 작은형의 뒷모습을 큰형은 결연한 자세로 지켜보았다. 그러나 비밀을 알지 못했다면 그러한 수많은 ‘조금 다른 부분’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태연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내게는 그들의 미세한 동작 하나하나가 가증스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그 간절한 혐오 속에는 나의 죄책감을 숨기기 위한 강제적인 반동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무심히도 시간은 흘러 어느덧 오후 세 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약속 시간으로부터 정확히 두 시간 전. 나는 괜스레 큰형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큰형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묵혀둔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떠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놓이는 한편, 뻔뻔하게도 걱정이 되었다. 작은형의 말마따나 이 집에 남아 있는 한 그들의 인생이 점점 검어지는 집의 외벽처럼 그렇게 멍들어 가리란 사실만은 명백했으므로. 그들의 도주를 고발한 나조차 그러한 사실까지는 완전히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 시 오십 분이 다 되도록 큰형은 그렇게 부지런히 손을 놀렸고 아버지 역시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부산역까지는 적어도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였고, 슬슬 밀려오는 안도감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생각했다.

뭐야, 별일 없잖아? 결국 작은형이 허세를 부린 거였어.

그렇게 들떠 있는 찰나 내내 말이 없던 큰형이 입을 열었다.

“상원아.”

“어? 어! 왜?”

“형. 잠시만 나갔다 올게.”

“어…?”

“서점에 부탁해놓은 책이 있거든. 오늘 들어온다고 했어.”

큰형의 얼굴이 너무나 태연했기에, 너무도 절묘한 타이밍인데도 나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속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일깨워봤자 헛수고였다. 게다가 그의 차림은 영영 집을 떠날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베이지색 면바지에 체크 프린트 셔츠 하나. 조그마한 가방 하나 없이 달랑 지갑 하나만 든 그 모습은 자꾸만 그를 의심하는 내 눈을 흐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럼. 다녀올게.”

“어…. 그렇게 입고 나가면 추울 텐데.”

“금방 올 건데 뭐.”

큰형은 현관에 걸터앉아 운동화를 신기 시작했다. 그때 일찌감치 방에 처박혀 있던 아버지로부터 부름이 있었다. 큰형을 부르는 소리였다. 운동화 끈을 매던 큰형의 손놀림이 멈추고 잠시 후. 아버지가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

“상윤아! 이리 좀 와 봐라.”

“형. 아버지가 부르는데….”

“그래? 갑자기 왜 그러시지.”

큰형은 반쯤 매듭을 지은 운동화 끈을 풀어 가지런히 신을 벗어놓고 아버지의 방으로 향했다. 나는 아버지가 나의 고발을 발설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얼른 큰형을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책상에는 안줏거리와 소주 한 병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버지와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칼칼한 술 냄새가 느껴졌다.

“무슨 일이세요.”

“어디, 나가냐?”

“잠시 친구 좀 만나려고요.”

갑자기 바뀐 외출의 이유에 하마터면 나는 둘 사이에 끼어들 뻔했다.

“그래. 가끔 친구도 만나고 그래야지.”

아버지는 쓸쓸한 얼굴로 한잔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의 낯빛은 불콰했으나 그의 두 눈은 맨정신일 때보다 더 또렷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 눈빛에 기가 죽은 나는 최대한 뒤로 물러나 되도록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딴청을 피웠다. 나는 그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간절한 소망과는 달리 두 발은 바닥에 들러붙은 듯 꼼짝도 하질 않았다. 나는 공범자였다. 내겐 내가 고발한 자가 어떤 식으로 희망을 거세당하는지 똑똑히 지켜볼 의무가 있었다. 때문에 나는 얼굴 가죽이 타들어 가는 듯한 수치심에 몸을 비비꼬면서도 끝내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많이 힘들지?”

“뭘요.”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부담이 될 거다.”

대답 대신 큰형은 입술로 혀를 축였다. 그는 희미하게 다리를 떨고 있었다.

“걱정 마라. 결혼하면 다 잘될 거야. 우리 다 같이 잘살게 될 거다.”

“그렇겠죠.”

“네 결혼을 앞두어서 그런가. 요즘 부쩍 니 에미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

아버지의 입에서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온 것은 실종 이후 처음이었다. 큰형뿐만 아니라 나 역시 어머니라는 단어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자 우리의 암묵적인 금구였다. 나는 문득 사무치게 어머니가 그리워졌다. 그녀는 다정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누구나 마음에 품어보는 우상으로서는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모성이 아닌 동경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이었다.

“…네.”

“나는 말이다. 니 에미에게 이십 년을 속고 또 배신당했지만…. 그래도 너를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맙습니다.”

“그동안, 많이 서운했지?”

“아닙니다.”

“니 에미 찾는 거 이제는 정말 포기했다. 이제 와서 찾아봐야 무얼 하겠냐. 나는 너만, 너희들만 있으면 된다.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저 너희들만 내 곁에 있으면 난 부러울 게 없다. 니들이 내 자랑거리야.”

“…뭘요.”

“너는 니 에미처럼 날 배신하지 않을 거지?”

달콤한 말들 속에 숨겨진 단 하나의 비수. 큰형의 다리 떨림이 일순 멎었다. 너무도 적나라한 아버지의 질문에 나는 큰형이 모든 것을 눈치채지는 않을까, 내가 고자질한 것을 알아채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목이 메었다. 그때 시계 종이 울렸다. 네 시를 알리는 그 소리는 묵직하고 장엄한 울림을 지니고 있어 마치 이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듯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세 시의 종소리와 네 시의 종소리는 어찌하여 이리도 다른 울림을 지니고 있을까. 또 그 소리는 큰형이 이미 약속에 늦었음을 알려주는 소리이기도 했다. 아무리 서둘러 움직인다 해도 다섯 시발 열차를 잡을 수는 없었다. 끝난 것이다.

그들의 패배였다.

큰형은 조금은 씁쓸한 표정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한숨처럼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물음에 답했다.

“물론이죠.”

“그래. 너는 그러지 않겠지. 너만은 그럴 리가 없지. 암.”

“네.”

“그리고. 상문이 말인데.”

갑자기 튀어나온 작은형의 이름에 큰형과 나는 동시에 긴장했다.

“그놈 좀 잘 이끌어 줘라. 영 막돼먹은 놈이야. 옛날부터 말이다, 왜 그 기억나지 않느냐. 세 들어 살 때, 집주인 공장에 식칼 들고 숨어 들어간 거. 그놈이 그때부터 이 애비 가는 길에 훼방을 놓더니만.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말이다. 불안해. 언제 내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놈이야. 형님하고는 영 딴판이야.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어.”

“잘, 하겠죠.”

“그래, 그래. 이 애빈 너만 믿는다.”

아버지는 대견하다는 듯 큰형의 어깨를 토닥였다. 얼핏 훔쳐본 큰형의 표정은 무심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무언가 얼어붙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그의 인생을 돌이켜볼진대, 이날의 선택은 그가 후회하고 고통스러워한 모든 사고들의 시발이었다. 여러 가지 기로가 그의 인생에 놓여 있었지만 그것은 모두 이날의 선택의 부속품 같은 것이었다.

때문에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를 미워했다. 그의 비겁함, 그의 나약함, 그리고 그가 우리 형제들에게 나란히 물려준 근원의 고독.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도 미워한 것은 그를 닮은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를 미워하며 그를 닮은 나를 미워했고, 나를 미워하며 내가 닮은 그를 미워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날 큰형은 결국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는 문을 걸어 잠근 채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저녁 담당은 큰형이었지만 아버지와 나 둘 중 누구 하나 그를 추궁하지 않았다. 우리들 역시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배고픔 같은 건 느낄 새도 없었다. 늦은 밤, 셋째 형이 들어오는 기척을 느꼈지만 누구도 맞이하러 나가지 않았다. 가족이 그렇게 서먹하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날 밤 작은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1층으로 내려가니 거실에서 셋째 형이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을 병째로 들이키는 셋째 형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피폐하여 늘 웃고 잘 떠드는 그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였다. 간간이 부는 그의 휘파람 소리가, 열린 창으로 불어오는 애잔한 가을바람에 섞여 흩어지고. 나는 취한 듯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아름답고 세련된 옷을 입고 공들여 머리를 빗어 넘긴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 역시 깊이 알고 있었으리라. 큰형과 작은형의 사랑을 알지도, 그에 관여하지도 않았던 것은 오직 그 하나뿐이었지만 그에게도 그만큼의 황량한 더미가 있었으리란 것을. 이제 나는 안다.

이튿날 밤, 작은형이 돌아왔다. 나는 그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그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귀가에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문을 열어준 것은 큰형이었다. 셋째 형은 동이 트기 전에 집을 나섰고 아버지는 여전히 일로 분주했다. 낮에 잠시 선미 씨가 찾아왔지만 큰형은 그녀를 집에 들이지 않았다. 내내 집에는 큰형과 나 단 둘뿐이었다. 구식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던 나는 사부자기 잠든 체를 했다.

문이 열리고 어제와 다름없는 모습의 작은형이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많이 늦었네.”

생긋 미소 지으며 큰형이 말했다. 그를 내려다보는 작은형의 눈동자에는 측은함과 배신감이 소용돌이처럼 뒤엉켜 있었다. 작은형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우뚝 서 있었다. 밤을 새워 큰형을 기다렸는지 그의 눈가는 어두웠다. 그의 손에는 별다른 물건이 들려 있지 않았고, 나는 그들이 빈손으로 떠나려 했음을 깨달았다.

“…정말 모르겠다.”

그게 작은형이 처음으로 입을 떼 한 말이었다.

“화났어?”

어린아이를 다독이듯 하는 큰형의 말에 작은형은 의외로 쉽게 수긍했다.

“그래.”

작은형의 볼을 쓰다듬으며 큰형이 다시 물었다.

“…버림받아서?”

작은형의 미간이 아프게 꿈틀거렸다.

“네가 아니야.”

작은형의 손이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큰형의 손 위에 조심스레 얹혔다.

“내가 화가 난 건 네가 다른 선택을 했음에도 또다시 네게 돌아오고만 나 자신 때문이다.”

“이상문.”

“하긴, 개도 버려지면 죽기 살기로 주인에게 돌아가긴 하더라마는.”

“그만. 그만 들어가서 씻어.”

더는 듣기 괴롭다는 듯 큰형은 작은형의 등을 떠밀었다. 작은형은 그에 떠밀리지 않고 거칠게 큰형을 껴안았다. 큰형은 그를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작은형은 온몸을 부수어버릴 듯한 기세로 큰형을 안고 있었다. 큰형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쓸쓸해 보였다. 아무리 빈틈없이 서로를 얼싸안아도 메울 수 없는 부분이 생겨버렸다는 것을 납득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작은형은 우는 듯도 보였다. 그는 어깨를 떨고 있었다. 하지만 큰형과 분리되었을 때 본 얼굴에는 눈물의 흔적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는 서늘하고 딱딱한 그의 얼굴 그대로였다.

작은형의 눈은 항상 건조했다. 나는 그가 우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의 건조한 눈매는 이미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버렸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그가 죽기 전 힘겹게 고백한 마지막 소원을 떠올렸다. 그 소원을 생각할 때면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눈물이야말로 내가 그를 위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큰형의 방으로 들어가 함께 잤다. 두 사람이 집 안에서 섹스를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문틈으로 습기 찬 신음이 새어 나왔고 나는 귀를 틀어막은 채 숫자를 세었다. 그것은 내가 숲에서 목격한 그런 욕망에 이끌린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분노와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관계의 균열이 부르는 섹스를 가장한 폭력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안으며 서로를 때렸고 몸을 섞으며 그 몸을 찢었다. 나는 그들의 무분별한 행위가 마치 고발자인 나에 대한 형벌로 느껴졌다. 나는 묻고 싶었다. 형.

이미 알아버린 거지. 알고 그러는 거지. 용서 못 하겠지. 욕해도 좋아. 하지만 난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했어.

당신들을.

당신들 두 사람을.

* * *

결혼식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 이윽고 상견례의 날이 다가왔다. 큰형과 작은형은 겁도 없이 계속해서 집에서 몸을 섞었고, 나는 정말 이 결혼이 괜찮은가 하는 걱정에 하루에도 수십 번 인상을 찌푸렸다.

두 사람은 그날 이후 서로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들은 무척 초조해 보였고 늘 상기되어 보였다. 선미 씨는 수시로 집에 드나들었으며 악착같이 큰형을 독촉했다. 협박하고, 구슬리고, 애원하고, 때로는 비난하며. 그런 그녀는 두 사람보다 더 급박해 보였고 나는 그녀가 얼마나 작은형을 원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상견례는 우리 집 거실에서 이루어졌다. 굳이 불편하게 밖에서 만나느니 느긋하게 집에서 치르는 것이 낫다는 아버지의 주장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주문한 음식들로 상을 가득 차리고 선미 씨의 가족을 맞이했다. 외동딸인 선미 씨의 가족은 세 명으로 단출하여, 남자 다섯이 부대끼는 우리 가족은 왠지 투박해 보였다.

형식적인 인사와 계산적인 대화 속에서 선미 씨와 큰형의 가격이 매겨졌고 두 가족은 결혼을 승인했다. 그녀는 큰형을 죽일 듯이 쏘아보았으며 큰형은 그에 화사한 미소로 응대했다. 작은형은 두 사람의 그런 암투를 알아채지 못했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묵묵히 허드렛일을 도왔다. 제법 길게 자란 머리가 눈가에 드리워져 그의 얼굴에는 더욱 깊은 음영이 졌다. 잿빛 슈트와 그에 맞추어 입은 검정 터틀넥 때문인지 그날의 작은형은 무척이나 점잖아 보였고 다소 금욕적으로 보였다.

젊은 사람들끼리 편하게 이야기하라며 아버지는 큰형과 선미 씨를 거실 밖으로 내보냈다. 어떤 이유에선지 큰형은 조용히 내 손목을 붙들어, 나를 함께 데리고 갔다. 어정쩡하게 그에게 끌려가는 동안 나는 작은형과 아주 짧게 눈이 마주쳤는데 의외로 담담한 시선이라, 그게 또 무척이나 어색했다. 큰형은 그녀를 창고로 쓰는 구석방으로 데려갔다. 그녀 역시 그런 허름하고 음습한 방으로 자신을 안내하는 데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둘은 결판을 낼 작정이었던 것이다.

“정말, 어쩔 셈이에요?”

“무슨 소립니까?”

“모르는 척하지 마! 그 속 내가 모를 줄 알아?”

“말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쨌거나 당신 남편 될 사람인데.”

“누가 너 같은 거랑 결혼한대?”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나는 두 사람을 말려보려 어설피 그사이를 어정거렸지만 소용없었다. 선미 씨는 극히 격앙되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상문 형을 놓칠 거라는 생각에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큰형을 칠 기세였고, 나는 큰형을 보호하기 위해 시종일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더러운 새끼. 하긴, 그 어미에 그 자식이지.”

“이보세요!”

그 어머니는 바로 내 어머니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어머니를 모독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갑자기 끼어든 내게 놀란 듯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왜. 그래도 자기 어머니라고 기분 나빠요? 대단한 가족애네요, 정말. 하긴 가족이라고 해도 어차피 남자는 남자죠. 이봐요, 상원 씨. 내가 모르는 줄 알아요? 상윤 씨가 씨 다른 자식인 거 내가 모르는 줄 아냐고요. 세상 사람들, 입 가벼워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인걸요. 아버님이 불쌍해요. 아니 어떻게 이십 년을 속이고 살죠? 그뿐인 줄 알아요? 그게 다인 줄 알죠? 부산에서 상원 씨 어머니,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죠?”

“모르는 소리 마세요!”

“남자가 한둘이었는지 알아요? 내가 아는 것만도-.”

“속은 쪽이 멍청한 거지.”

큰형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진 것은 내 쪽이었다. 그가 어머니를 옹호한 것은 일생을 통틀어 오직 그때 한 번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심으로 어머니를 위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를 배신한 어머니에 대한 변명이 아닌, 어머니에게 배신당한 아버지를 향한 조롱이었다.

“얼마나 남자가 못났으면 그런 거 하나 눈치 못 채고 당하겠어?”

“그래. 말 잘했어. 당신은 당신 어머니와 똑같은 사람이니까. 그 속을 들여다보듯 훤히 알겠지. 그러니까 더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 형제와 그런-.”

“…죽고 싶어?”

큰형의 손이,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손이 선미 씨의 목을 한 손에 움켜쥐었다. 숨통이 졸린 그녀는 있는 힘껏 몸부림을 쳤지만 큰형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큰형은 마치, 작은형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급수터에서 나를 때리던 작은형의 그 눈, 일말의 동정심도 내포하지 않은 그 눈동자. 큰형은 정말 그녀를 죽일 기세였다. 나는 큰형에게 매달려 그를 말렸다.

“형, 왜 이래! 이러다 진짜 죽겠어!”

다행히 큰형은 내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녀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큰형의 목과 얼굴에 크고 작은 생채기가 생겼다. 그러나 큰형은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듯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고 나는 그런 큰형을 범죄자를 속박하듯 있는 힘껏 붙들었다.

“상문 씨도 그렇게 속고 살도록 내버려 둘 수 없어. 내가 구해줄 거야. 모든 거짓을 다 까발릴 거라고. 이봐요. 상원 씨. 당신이 모르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 당신도 속고 있어! 이 남자가 당신도 그렇게 속이고 있다고!”

“그만해! 윤선미!”

“내가 지금 말하지 않으면, 당신은 평생 알지 못할 거야. 이 남자가 당신에게 말해줄 리 없어!”

“형,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순간, 큰형을 붙든 손에 힘을 빼고 말았다.

“이상원 당신은, 당신도-.”

“그만하라니까!”

큰형의 손이 그녀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 힘에 밀린 그녀는 쿵, 하고 넘어지며 책상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녀를 때린 큰형의 손이 크게 떨렸고 나는 뒤늦게 큰형을 붙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책상에 부딪힌 그녀의 머리는 책상 모서리에 걸린 채로 더 이상 낙하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피사의 사탑처럼 기운 채로 멈추어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녀의 표정을 선명히 기억한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그녀의 아연한 표정을. 부릅뜬 두 눈과 반쯤 벌려진 입. 우리를 바라보던 마지막 눈동자. 그녀의 관자놀이로부터 피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그 책상은 그녀가 홀로 우리 집을 방문한 그날, 우리들이 채 고치지 못하고 다시 창고에 넣어둔 바로 그 책상이었다는 것을. 그 책상의 모서리에는 길고 굵직한 대못이 박혀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녀의 머리가 모서리로부터 낙하하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대못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순간 자갈치 시장에서 보았던, 못에 꿰인 아나고 대가리들을 떠올렸다. 못에 양 눈을 꿰인 채 산 채로 껍질이 벗기어지던 가엾은 아나고들. 큰형에게 목이 졸려 관자놀이가 꿰어진 선미 씨. 내 마른 입술의 틈으로 서서히, 어설픈 비명이 새어 나왔다.

“으…. 으아…. 혀…. 형…. 형.”

“보지 마. 아무것도 보지 마.”

큰형은 얼른 손으로 내 눈을 가렸다. 그 손은 선미 씨의 목을 조른 손이자 그녀의 뺨을 때리고 그녀를 죽인 손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끔찍한 세상을 가리어주는 그 손에 크나큰 안도를 느꼈다. 심장 박동이 차츰 차분해지고 나는 심지어 희미하게 졸기까지 했다. 아니, 졸았다고 착각하고 싶을 만큼 당장의 현실에 눈감고 싶었다.

그때 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소리로 그것이 작은형임을 알았다. 큰형의 손이 천천히 떨어져 나갔다. 작은형은 놀라지도 않고 모든 상황을 차갑게 분석했다.

“…괜찮아?”

큰형은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형의 손이 큰형의 이곳저곳에 난 생채기를 더듬었다. 비참하게 죽은 선미 씨의 시체 같은 것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그의 가슴을 할퀸 것은 자신과 상관없는 누군가의 시체가 아닌 자신의 단 한 사람, 큰형의 생채기였다. 큰형은 말없이 한걸음 물러나 그의 그런 배려에서 멀어졌다. 그는 고갯짓으로 선미 씨의 시체를 가리켰다. 작은형은 그녀에게 다가가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한 뒤 선고를 내렸다.

“죽었어.”

“어…. 어떡해! 큰형! 이제 어떡해…!”

“조용히 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정적이 흘렀다. 큰형도 작은형도 나도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큰형도 작은형도 나도 누구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상황은 무슨 수로도 빠져나갈 수 없다. 이것은 확인사살이다, 라고.

이윽고 양가 가족들이 창고로 몰려들었다. 선미 씨 부모의 절규로 우리들은 겨우 망가진 현실로 되돌아왔다.

“서, 선미야. 선미야…!”

선미 씨의 어머니는 구급차를 부르겠다며 뛰쳐나갔다. 그녀는 두 통의 전화를 걸었다. 한 통은 병원, 그리고 한 통은 경찰을 부르는 전화였다. 아버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셨다. 셋째 형은 조금 즐거운 듯했다. 마치 ‘사람이 죽은 건 처음 보는데, 신기하네.’라는 듯한 표정, 혹은 ‘아까운 여자가 죽었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번 들이대 보는 건데.’라는 표정이었다. 그 장소에 모여든 사람들 중 그녀의 죽음에 아무런 감정의 여파도 받지 않은 사람은 셋째 형 단 한 사람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가 고마웠고 또 그런 그가 무서웠다.

“누가, 누가 우리 선미를! 누가 이런 거야. 응?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완전히 이성을 잃은 선미 씨의 아버지가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목이 졸린 흔적은 피해갈 수 없는 증거였다. 그녀는 누군가로 인해 죽었다, 그는 상황을 그렇게 단정짓고 있었다. 사실에 부합하는 추측이었다.

나는 걱정스런 마음에 큰형을 슬쩍 훔쳐보았다. 큰형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였다. 작은형을 빼앗기느니 범죄자가 되는 편이 낫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듯도 보였다. 그런데 그때 묵묵히 서 있던 작은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접니다.”

“뭐?”

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작은형에게로 쏠렸다. 잠시 경직해 있던 선미 씨의 아버지는 서툰 손놀림으로 작은형의 멱살을 쥐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작은형의 워낙 큰 키 때문에 마치 선미 씨의 아버지가 그에게 들어 올려진 듯 보였다. 큰형은 애원하듯 작은형의 옷자락을 붙들어 그를 말렸다.

“상문아.”

“이게 옳아.”

“이상문!”

“제가 그랬습니다.”

“뭐야, 이 자식! 내 딸이 뭘 잘못했는데! 네가 뭔데 내 딸을 이렇게 만들어!”

선미 씨의 아버지가 마구잡이로 작은형을 때렸다. 그러나 너무 큰 충격으로 인해 후들거리는 주먹과 다리는 위협적인 폭력을 가하지 못했다. 작은형은 마치 책을 읽는 듯 딱딱한 말투로 급조한 살해 동기를 읊었다.

“결혼을 한다기에 그만 충동적으로 저질렀습니다.”

“아, 그러니까 내 딸이 결혼하는데 네까짓 게 뭔데 그러느냔 말이야!”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뭐!”

아버지가 처음으로 입을 뗐다. 고대하던 야망이 무너진 그의 표정은 방안 누구보다도 참담했고 독이 올라 있었다. 심지어 가장 소중한 딸을 잃은 선미 씨의 부모님보다도. 게다가 그 야망을 부순 대상이 작은형이라는 사실에 아버지는 당장에라도 죽여 버릴 듯한 기세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선미 씨는 나와 결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선미가 자네 따윌 왜!”

“회사에 물어보시면 아실 겁니다. 선미 씨가 회사로 자주 찾아왔으니까요. 형과 결혼하겠다는 말에 화가 났습니다.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그만.”

“거짓말이야.”

큰형이 말했다. 복잡미묘한 얼굴로. 그는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야. 미안해, 형. 결혼할 여자를 빼앗아서.”

작은형은 정말, 동생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

“힘들겠지만 인정해. 형은 배신당했어.”

작은형은 꼭, 거짓말을 할 때의 큰형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리가 풀린 큰형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경찰입니다.”

응급차보다 경찰이 먼저 출동했다. 선미 씨 아버지는 격앙된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작은형은 일말의 저항도 없이 두 손을 내밀었다. 수갑이 채워지는 소리에 큰형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작은형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나는 셋째 형과 함께 연행되어 가는 작은형에게로 달려갔다. 정신없이 달리는 바람에 마치 숲의 나무들이 우리를 향해 덤벼드는 듯한 착시효과가 일었다. 기나긴 숲의 끝에 세워둔 경찰차가 보였다. 담담하게 끌려가던 작은형은 우리들을 보고 아픈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나왔어.”

“형….”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작은형과 그다지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는 셋째 형마저도 그 상황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작은형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살인자 형을 가지게 해서.”

그것은 과연 작은형 자신에 대한 사과였을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찰은 작은형을 경찰차 속으로 구겨 넣었다. 별다른 조사 없이 모든 죄는 작은형에게 뒤집어씌워질 판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숲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큰형을 발견했다. 바로 우리를 뒤쫓아 나왔던 건지 맨발인 채였다. 셋째 형과 내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나무에 부딪혔는지 그의 왼쪽 이마가 빨갛게 찢어져 있었다. 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또 실연당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리들은 묵묵히 촘촘한 고목 사이를 비집고 걸었다. 나무 사이로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시간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우리들은 마치 신체의 일부분을 잃은 것마냥 허전하고 슬펐다. 멀리 아버지가 보였다. 2층을 서성이는 그는 예전보다 더욱 견고하게 비틀려 있었다. 우리들은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들은 괜스레 숲을 헤맸다. 들것에 실린 선미 씨의 시체가 숲을 통과하며 멀어졌으나 우리들 중 누구 하나 그에 반응하지 않았다. 파리한 낯빛의 큰형은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그를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하여 나는 죽고 싶었던 듯도 하다. 우리를 집으로 이끄는 걸음은 셋째 형의 것이었다. 숲 너머로 이제는 잿빛이라고도 할 수 없이 검어진 그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이 꽃피는 우리 집. 사랑을 남발하는 우리 집. 누구도 솔직히 사랑할 수 없는 우리들의 그 집으로. 우리들은 꾸역꾸역 발걸음을 옮겼다.

* * *

작은형은 5년 형을 받았다. 정상참작의 이유야 차고 넘쳤지만 선미 씨의 아버지가 검찰에 손이 닿는 사람이었기에 재판은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직접적인 사인은 역시 머리를 뚫고 들어간 못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였지만 목에 졸린 자국이 있었기에 우연이라고 우길 수도 없는 처지였다. 아버지는 작은형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5년 형도 모자라다는 태도였다. 아버지는 작은형을 완전히 버린 듯했다.

큰형은 재판에도 참석하지 않고 내내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는 주로 죽은 듯이 잠을 잤고 간혹 깨어 있는 시간에도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그는 매우 초조해 보였고 또 겁에 질린 듯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한 여자의 죽음이 야기한 혼란이 아니었다. 그보다 크고 다른 어떤 근본적인 혼란이 그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뢰가 푹, 하고 터져버린 것을.

사건으로부터 며칠 뒤 나는 큰형과 한방에서 잤다. 큰형이 내게 부탁했다. 혼자 자고 싶지 않다고. 우리는 이불을 깔고 나란히 자리에 누웠다. 큰형의 방은 드넓고 황량했다. 자신의 공간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했기에 나는 큰형의 방을 제대로 구경해 본 적이 없었다. 산중의 밤은 적막하다. 압도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완벽한 적막이다. 텅 빈 방에서 매일 밤 홀로 잠들었을 큰형을 생각하니 왠지 숨이 막혔다. 그의 고독이 내게로 스미어, 내 안에 그가 지새운 쓸쓸한 밤들이 조용히 누적되는 기분이었다.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때로 그가 나인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한 몸을 나누어 가진 것처럼 그의 기분이나 그의 지나온 시간들이 내 몸에 스치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함께 자던 날 밤. 큰형은 작은형의 물건 중 몇을 자신의 방에 숨겼다. 며칠 뒤 술에 취해 돌아온 아버지는 작은형의 물건들을 마당에 죄 끄집어내어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큰형과 나는 불이 숲으로 옮겨붙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늘 어둠에 잠겨 있던 숲과 집을 환하게 비추었다. 나는 적나라하게 실체를 드러낸 우리들의 비좁은 은신처에 처음으로 경멸을 느꼈다. 빗물에 빛이 바랜 진회색의 외벽, 금이 간 창, 먼지 쌓인 환풍기, 겨울을 맞이하여 모든 것을 벗어던진 숲의 앙상한 정경. 마치 기나긴 꿈을 꾸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큰형은 오로지 불길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불길에 홀린 듯 보였다. 금빛 불덩어리가 반사된 그의 얼굴은 성별도 연령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나는 큰형에게 심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는 언제부터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그 표정은 큰형 자체인 듯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동안 자상하고 다정했던 그의 모습이 모두 연기였던 것처럼 느껴졌다. 확실히 내가 어릴 적 인지한 큰형의 모습은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빛바랜 종이처럼 퇴색되어 꿈처럼 흐릿한 것이 되고 말았다. 우리들은 모두 변해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일이 끊긴 것은 물론이고, 집을 지을 때 얻은 빚 때문에 독촉이 들어왔다. 여윳돈이 전혀 없었던 아버지는 집안의 가구들을 하나둘 팔아치우기 시작했고 일주일 사이 거실은 휑하니 비어버렸다. 큰형이 나를 2층으로 끌어올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비어가는 1층의 풍경을 낱낱이 목격했을 것이다. 작은형의 방에는 자물쇠가 채워졌다. 지하실의 가구들도 줄줄이 팔려나갔다. 이윽고 지하실에는 미군 부대에서 버린 찌그러진 로커와 철제 의자, 커다란 침대 하나만이 덩그마니 남게 되었다.

셋째 형은 돌연 군대에 갔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났기에 우리들은 입대 사실을 그의 여자친구를 통해 들었다. 그녀는 운 좋게도 부산 근처에 배치받은 셋째 형의 부대 근처로 이사를 했다. 이미 두 번 셋째 형의 아이를 가졌다 지운 여자였다.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들을 아주버님, 도련님으로 나누어 불렀다.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우리 집을 드나들며 밑반찬 등을 실어 날랐고 겨울이면 배추를 이고 나타나 김장을 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식모를 들였어?’라며 의아해했고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그러다 코 꿰인다.’며 되도록이면 집에 들이지 말라고 충고했다. 나는 그녀가 나의 형수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아버지도 그녀를 싫어했다- 이후, 결국 그녀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고 말았다.

입대 후 단 한 번 셋째 형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마침 집에는 나 혼자뿐이었고 셋째 형은 전화를 받은 상대가 나라는 사실에 편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생각보다 군대 생활이 편하다며 셋째 형은 낄낄 웃었다. 선미 양이 죽은 날 밤의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듯, 그는 마냥 밝았고 그래서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쭈뼛거리며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형. 저기….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갔어? 언제 결정한 거야?”

“언제긴 언제고. 영장 나오믄 얄짤없이 가는 거 아이가.”

“그래도…. 너무하잖아. 간다는 말도 없이.”

“언제부터 온다 간다 말하고 다녔다고. 새삼스럽구로….”

“형은 집이 싫어?”

“니는 좋드나?”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나의 둔한 반응에 셋째 형은 전화 건너편에서 키득키득 웃었다. 과자가 바삭거리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싫고 좋고 그런 기 아이다. 즈그 집 싫은 놈이 우데 있노.”

“그럼 왜.”

“고마…. 내는 있으나 없으나 별반 다르지 않은 놈 아이가. 어릴 적 생각 안 나나? 내는 사진 찍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사진이 말해주는 기라. 니는 곁다리라고. 니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그 기분 니 아나? 내는 말이다.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집에 있으면 내는 만년 엑스트라 아이가. 우짜겠노. 집을 나가야제. 평생 행님들 꽁무니 뒤쫓아 다닐 수야 있나. 내도 안다. 내 좋은 놈 아이다. 내 드럽고 치사한 놈이다. 세상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하지만 우짜노? 그기 낸데. 내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놈인데.”

“형이 뭘 그리 나쁘다고 그래.”

“그래서 말이다. 내는 어릴 적에 결심했다. 누구한테든 아무것도 미안해하지 않고 살기로. 미안하다는 생각을 싹 지워버리기로 했다. 남들 맨키로 일일이 잘못한 거 미안해하믄서 살다간 내가 죽겠다 싶은 기라. 그래서 내는 그런 거 모른다. 모르고 살기로 했다. 그라니께 니는 내 보고 생각하그라. 이렇게 살믄 안 되는 기다, 하고. 니는 단디 하래이.”

“형. 괜찮아.”

“머가 갠찮다 카노.”

“어차피 다 똑같은데, 뭐. 아무도 진심으로 남에게 미안해하지 않아. 나, 얼마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거든.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죄책감 때문에 정말이지 죽겠더라.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미안해하고 있는 건 나 때문에 잘못된 사람들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라고. 나는 나 자신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던 거야. 그것밖에 안 되는 나 자신에게 끝없이 사과하고 있었어. 그 사람들에게도 물론 미안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연한 결과 같은 거였어.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거랑 똑같은 거야. 하지만 나 자신에게 드는 미안함은 달랐어.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건 병…. 같은 거야. 살을 파고 들어가는 지독한 전염병…. 같은 거.”

셋째 형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낯선 그의 침묵에 나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내가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에 후회가 들었다. 내 마음이 그에게 전해지리란 보장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에 털어놓음으로써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역시 느낄 수 있었다.

“우야던동…. 니는 잘 살그라.”

“형!”

“와.”

“나는 셋째 형이 우리 집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마. 미칫나. 작작하그라.”

“정말이야. 그러니까 기죽지 마.”

“니나 잘 하그라. 뒤에 줄이 길어가, 고마 끊는데이.”

나는 빈말로도 셋째 형에게 형은 이미 주인공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정말 주인공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아무리 반짝인다 해도 사람은 결국 곧 부서질 자그마한 포말에 지나지 않는다. 형들을 동경하는 나마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주인공이 되지 못해 불행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배역인 주인공을 동경하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이다.

셋째 형은 트럼프의 조커 같은 존재였다. 그는 왜 몰랐을까. 어떤 의미로든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작은형과 셋째 형. 두 사람이 없는데도 집은 텅 빈 듯했다. 평소에도 두 사람은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가끔 들어오는 것과 아주 들어오지 않는 것은 의외로 굉장한 차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가게를 넘기고 새로운 고용주 아래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선미 양의 아버지가 의류업계에서는 워낙에 큰손이었기에 일은 쉽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버지는 지하실에 틀어박혀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렸다. 나는 아버지를 때려죽이고 싶었다. 그가 너무 불쌍한 나머지 그만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었다.

아버지의 등을 두드리고, 아버지를 부축하고, 아버지를 누이며 나는 급격히 자랐다. 어느 날 나는 문득 내가 청년이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아버지보다 힘이 세졌고 작은형만큼 키가 커졌고 큰형과 같은 목소리를 지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 목소리가 큰형을 꼭 빼닮았다며 신기해했다. 전화상으로는 누구도 우리 둘의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했다. 외모 역시 큰형을 닮아 있었지만 셋째 형을 닮은 구석도 적지 않았다. 나는 매일 밤 성장통을 앓으며 독립을 꿈꾸었다. 나가고 싶다. 이 집에서 나가고 싶다. 나라는 인간을 가족 없이 바라보고 싶다, 고. 나는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한동안 큰형은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내 눈은 속일 수 없었다. 그는 일없이 마당의 나무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윙. 윙. 윙. 초겨울의 예리한 바람이 그를 에워싸고 창을 두드리며 집을 한 바퀴 돌아 숲을 빠져나가는 소리. 그 소리가 귓가에 스치면 나는 마당으로 나갔다. 그의 어깨에 담요를 둘러주고 등을 떠밀어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내 하루의 마지막 일과였다.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를 때면 나는 저도 모르게 집주인에게 폭행당하는 어린 시절의 큰형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은 단지 상상일 뿐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아주 자세히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때로 그와 같은 충동에 휩싸였던 것 같다. 나는 종종 큰형을 때리고 싶었다. 울부짖는 그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당신이 모두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한때 그 말을 어머니에게 하고 싶었다. 그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을 큰형에게 하고 싶었다.

큰형은 종종 마당의 붉은 흙을 한 줌 쥐어 무던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힘없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그러잖아도 허스키한 목소리인 그가 조그마하게 읊조리는 소리를 나는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그가 미치지 않았나 걱정스러웠다. 밤이면 그는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잠들지 못하고 창가에 걸터앉아 서늘한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런 그가 신경 쓰여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는 마치 창밖으로 빨려 나갈 것만 같았다. 견딜 수 없어진 나는 기어코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형.”

“안 자고 있었어?”

“우리. 작은형 면회 가자.”

큰형의 어깨가 흠칫 경련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가늘게 치켜뜬 탓에 그 눈은 더욱 길고 깊어 보였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가.”

“왜? 시간은 바꿔도 돼. 안 되면 다음 주 주말에 가자.”

“아니. 다음 주든, 다다음 주든. 나는 안 가.”

“무슨 소리야?”

“마침 잘됐다. 안 그래도 말해두려고 했는데. 명심해둬.”

“뭘?”

“앞으로 내 앞에서 절대 상문이 얘기 꺼내지 마.”

“뭐?”

저절로 몸이 일으켜졌다. 큰형은 나의 반응이 거북했는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짜증이 난 듯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다른 뜻은 없어. 더는 그 녀석과 연관되고 싶지 않을 뿐이야.”

“말도 안 돼.”

의외의 반응에 언성이 높아졌다. 큰형은 진심인 듯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나는 거푸 말을 더듬었다.

“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물론.”

“형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재판 때도 그러더니 왜 그래? 이제 작은형은 나 몰라라 하기로 했어? 그, 그런 거야?”

“그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큰형의 대답이 맞물렸다.

“그러기로 했어.”

“작은형이 누, 누구 때문에 교도소에 갔는지 벌써 잊었어? 원래는…!”

“내가 가야지.”

곧바로 말실수란 걸 깨달았지만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나는 자꾸 큰형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는 큰형이 교활해 보였다. 묻고 싶었다. 작은형은 정말 큰형의 희생양이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고-.”

“지금이라도 신고해. 살인자가 여기 있다고.”

“형!”

“내가 할까?”

큰형은 창가에서 일어나 전화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뒤돌아서는 그를 거칠게 붙들어 세웠다. 큰형은 귀찮다는 듯 그러나 부드럽게, 내 손을 쳐냈다.

“작은형을 버릴 셈이야? 작은형이 큰형한테 어떻게 했는데. 질투 날 정도로 큰형한테는 그렇게 잘했는데! 작은형이 어떤 마음으로 대신 그걸 뒤집어썼는지 몰라서 그래? 알잖아. 작은형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은 그러면 안 돼. 작은형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어차피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잖아.”

“…미쳤구나. 형 진짜….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니까!”

나는 큰형의 어깨를 우악스레 흔들었다. 큰형은 헝겊 인형처럼 비틀거렸다. 하지만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눈빛만은 단단히 묶인 듯 흔들리지 않아 어쩐지 무서웠다. 나는 큰형을 있는 힘껏 밀쳐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큰형은 쓰러졌다. 발목을 접질린 듯 그는 불안정하게 일어나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더 해.”

“미, 미안. 실수야. 내가 잘못했어.”

“아니야. 괜찮으니까. 더 해. 마음껏 때려. 발로 차고, 밟아. 마음대로 해.”

큰형이 호소하듯 내 손을 붙잡았다. 그의 손톱이 지그시 살을 파고들었다. 순간 내 안에서 불쾌한 충동이 솟구쳤다. 당황한 나는 거칠게 그 손을 내쳤다.

“그, 그만해, 씨발…. 진짜 미쳤어?”

“그래. 나 미쳤어.”

“형.”

“다 큰 줄 알았는데. 여전히 늦되구나. 그걸 이제야 알다니.”

내 손이 스르륵 큰형의 어깨로부터 미끄러졌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와 나 사이에 두터운 벽이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황소처럼 그 벽을 향해 머리를 몇 번이고 들이댔으나 균열은 생기지 않았다. 어지러웠다. 나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러자 큰형이 천천히 나를 감싸 안았다. 그의 포옹은 마치 공기와도 같아, 순간 그가 내게 스며들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는 가볍게. 아주 가볍게 나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었다. 그의 몸은 서늘했고 숨소리 역시 물 흐르듯 평온했다. 그가 왜 그런 행동을 취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몸이었다. 오히려 내가 안아주어야 할 것 같은 몸이었다. 나는 그가 체벌을 기다리는 작은 아이처럼 느껴졌다. 나는 마지못해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의 손가락이 더욱 힘껏 나의 살을 파고들었다. 다정하게 대하지 말라는 듯. 자신을 좀 더 질책해 달라는 듯. 하지만 나는 큰형을 마주 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숨이 막혔다.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웠다. 모든 게 내게는 벅찼다. 나는 이제 떨어져나가고 싶었다. 아무리 멀리 도망간다 해도 그들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잠시라도 좋으니 잊고 싶었다. 가족을. 형들을. 무엇보다 나를.

결국 나는 혼자서 작은형의 면회를 갔다. 작은형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 들고 몇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서 겨우 그가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에 도착했다. 난생처음 본 교도소는 상상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교도관들은 하나같이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모든 일은 사무적으로 행해졌다. 나는 교도관이 일러준 대로 신청서를 쓰고 면회실에 앉아 작은형을 기다렸다.

십 분가량을 기다리자 교도관과 함께 작은형이 나타났다. 삭발에 가까운 짧은 머리에 놀란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사이에는 유리벽이 있었고, 작은형 뒤에는 교도관이 서 있었다. 딱히 그가 들어서는 안 될 말도 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쩐지 어색했다. 짧아진 머리 외에 작은형은 별로 달라진 점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건강해 보였다. 죄수복 때문에 낯설기도 했지만 나는 이내 죄수 번호를 단 작은형에게 익숙해졌다.

생각보다 그는 밝아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나를 위해 억지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작은형의 입가는 찢어져 소량의 피가 맺혀 있었다. 눈꺼풀의 흉터 부근에도 전에 없던 생채기가 생겨 있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아마도 작은형은 교도소 안에서 상당히 거친 나날을 보낸 듯했다. 실제로 출소 이후에 온갖 폭력배들이 작은형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복달을 했으니. 우리들 몰래 꽤나 명성을 떨친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야 의문이 들었다. 작은형은 언제부터 싸움을 하지 않게 되었지? 작은형은 본디 독사라고 불리던 남자가 아니었는가.

우리들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감시하던 교도관이 의아하게 여길 정도였다. 하고픈 말은 많았다. 하지만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달라진 큰형의 태도. 그걸 큰형 대신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작은형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정해진 면회 시간은 짧았다. 나는 초조해졌다. 무엇이든 말하지 않으면 안 돼.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런 나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작은형은 집에 있을 때보다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보고 웃었다.

“잘 지내지?”

작은형의 건조한 목소리가 어느덧 견고해진 우리 둘 사이의 침묵을 비집고 들어왔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질문의 주어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감정이 북받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과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됐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눈에서는 이유 모를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쁘다. 당신들은 정말 나빠. 항상 내게 거짓말을 하게 만들어. 거짓을 말해도 진실을 말해도 내겐 상처가 남아. 나는 다짐했다. 앞으로 더는 울지 않기로. 순진한 눈물을 흘리기에 커다래진 나의 몸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그 증거처럼 교도관이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작은형은 눈물을 닦아주려 무심코 손을 올렸다, 유리벽 앞에서 어색하게 그 손을 멈추었다. 나의 울음은 더욱 격해졌다. 나는 온몸을 뒤흔드는 울음 중에 겨우 큰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안 온대.”

“응?”

“안 온대…. 안 올 거래….”

작은형 역시 내 말의 빈 주어를 금세 알아채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이 오히려 쓸쓸해 보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작은형 쪽으로 손을 뻗었다. 구해달라는 듯이. 차라리 나도 그쪽으로 데려가 달라는 듯이. 그러나 작은형은 내게 손을 뻗지 않았다. 그는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부드럽고도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런 거지. 왜 우냐.”

“난 그냥….”

“울지 마. 왜 네가 울어.”

“…작은형은…. 그걸로 좋아?”

울음으로 경직된 호흡 때문에 도중 몇 번이고 말이 끊겼다. 어렵게 한 질문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그걸로 좋은 거냐구.”

“난 괜찮아.”

“…뭐가? 대체 뭐가?”

“솔직히. 지금이 더 편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상하지. 처음으로 집 밖에서 살게 됐는데. 이제야 겨우 집에 돌아온 기분이야.”

“형….”

작은형은 웃었다. 오른쪽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뚝. 눈물이 멎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유리벽 너머에 있는 그 사람은 어린 시절 급수터에서 나를 매질하던 그 작은형이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작은형의 인생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리란 것을. 작은형이 자진해서 죄를 덮어쓴 것이 누구를 위해서인지 무엇을 위해서인지조차 이제는 짐작조차 가질 않았다.

면회시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어두컴컴한 버스 안에서도 나는 계속 작은형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형들에 대해 생각했다. 다정하면서도 잔혹한 나의 세 형들. 웃는 낯으로 칼을 휘두르는 그 사람들을. 나는 그 사람들과 다르고 싶었다. 하지만 필시 나를 만든 것은 그 세 사람이었고 나는 그들에게 물려받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나는 완전한 그들의 피조물이었다.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닌, 그 세 사람의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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