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불타고 있었다. 세계가. 큰형의 가느다란 육체가. 더위라는 단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용암 같은 공기의 덩어리가 우리 모두를 불태우고 있었다. 물지게를 지고 선 사람들의 표정은 흡사 굶주린 이리 떼 같았다. 폭염보다 통렬한 분노가 급수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누군가 몰래 끼어들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피를 볼 때까지 싸웠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급수시간의 동네 분위기는 늘 그렇게 험악했다. 물장수조차 찾지 않는 빈민촌은 철창 없는 교도소였고 땡볕 아래 수 시간을 기다려야만 물 한 모금을 삼킬 수 있는 우리들은 기실, 모두가 죄인이었다. 그랬다. 가난은 그 자체가 하나의 흉기였다. 너를 찌르고 또 나를 찌르는. 양날의 검.
내 최초의 기억은 바로 이곳. 한여름의 급수터에서 시작된다.
급수시간마다 우리 형제는 지옥의 랠리에 참가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덩치 좋은 어른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쉽사리 자리를 빼앗겼지만 우리 형제는 달랐다. 잔머리의 귀재인 셋째 형이 재주를 부려 자리를 만들면 작은형이 철벽처럼 그 자리에 버티고 섰다. 장정 못지않게 커다란 물지게를 진 작은형이 날카로운 눈을 부라리고 있으면 마을 어른들도 섣불리 그 앞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작은형을 독사라 불렀다. 마냥 어렸던 나는 무시무시한 별명의 작은형이 그저 자랑스러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나도 형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발단은 ‘식칼 사건’이었다.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우리가 세 들어 사는 집 주인어른이 술에 취해 눈 덮인 마당을 청소하던 큰형을 폭행했다. 창고로 끌려간 큰형은 한 시간 뒤 합판을 찾으러 간 셋째 형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당시 큰형은 발가벗겨진 채로 기절해 있었다고 한다.
큰형은 꼬박 일주일을 앓아누웠고 아버지는 격분했다. 당장에라도 경찰서로 달려갈 기세였다. 궁지에 몰린 집주인은 반년간 집세를 받지 않겠다며 아버지를 구슬렸다. 빚에 쪼들리고 있던 아버지는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다 문득 자신의 빈 주머니를 실감하고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고. 이에 기고만장해진 집주인은 ‘아새끼 버릇대기 좀 고쳐주려 그랬소.’라며 자신의 만행을 정당한 것인 양 떠벌리고 다녔다.
사건은 조용히 무마되는 듯했다. 그런데 돌연 작은형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작은형이 사라진 그날부터 집에 하나뿐인 식칼이 보이지 않았다. 며칠 뒤 집주인으로부터 뜻밖의 연락이 왔다. 당장 짐을 싸서 나가라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작은형이 집주인이 경영하는 공장 창고에 숨어들어 이틀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잠복해 있다, 재고를 확인하러 창고에 들어서는 집주인에게 식칼을 들고 달려들었다는 것이었다.
상처는 다행히 손등을 약간 베는 선에 그쳤지만 집주인은 그런 악마 같은 놈을 ‘내 집’에 둘 수 없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겨우 몸을 추스른 큰형이 다리를 절뚝이며 찾아가 작은형 대신 사과할 때까지 집주인은 우리 가족을 집에 들이지 않았다. 산 중턱의 겨울바람은 매서웠고 우리들은 식칼도 없이 음식을 맨손으로 찢어먹었다. 강추위와 집주인에게 들볶인 아버지는 그때부터 작은형을 몹시도 미워했다. 그리고 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아버지의 매를 맞으면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버티는 작은형을 아버지의 매보다도 더 무서워하게 되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나는 큰형의 등에 업혀 있었다. 급수터의 더위는 매년이 새로웠다. 그늘 한 점 없는 공터. 흙먼지와 함께 솟아오르는 지열에, 들끓는 사람들의 체열이 뒤엉켜, 사람들은 배급받는 물보다 더 많은 땀을 그곳에 흘리고 갔다. 인간의 육체가 내뿜는 지독한 냄새, 그 선명한 악취 속에서 큰형은 한 잔의 청량음료 같았다. 목덜미에 고개를 묻으면 은근히 퍼지던 큰형만의 체취는 내 어린 날의 행복이었다.
또래보다 훨씬 작고 말랐던 큰형은 작은형의 물지게가 만드는 그늘 속에 숨어 있었다. 큰형은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묵직한 나를 악착같이 붙들고 있었다. 작은형의 만류에도 막무가내였다. 혹렬한 정오의 햇살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일도 종종 있었으나, 큰형이 자진해서 나를 땅에 내려놓는 일은 없었다. 작은형이 몇 번인가 타박을 주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는 다섯 살이었고, 그날은 그해 여름 중 가장 더운 날이었다.
더운 날일수록 줄은 더욱 길었다. 줄을 서고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나자 좀처럼 땀을 흘리지 않는 큰형의 몸에도 좁쌀 같은 땀방울이 맺혔다. 물론 내 몸은 벌써부터 막 수영을 마치고 나온 사람마냥 땀범벅이었다. 마찰력을 잃은 몸은 자꾸만 아래로 미끄러졌고 큰형은 그런 나를 놓치지 않으려 이리저리 허리를 비틀었다. 그 와중에 그만 내 몸에서 흘러내린 땀이 큰형의 다리에 떨어졌는데. 허벅지 안쪽으로 천천히 흘러내리는 그 땀줄기는 유영하는 뱀의 모습과 같았고. 나는 뱀에게 잡아먹히는 큰형을 상상했다.
그러자.
순간 전류와도 같은 어떤 파장이 푸른빛을 튀기며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 불쾌하고 으스스한 감각이 살이 맞닿은 곳을 따라 이글거렸다. 세상이 핑글핑글 돌았고 나는 강한 욕지기를 느꼈다.
‘나, 나, 내릴래.’
‘어딜 가려고 그래.’
‘나 집에 갈 거야!’
‘조금만 참아. 나중에 형들이랑 같이 가자. 응?’
‘싫어!’
나는 혼자 집에 가겠다며 마구 패악을 부렸다. 큰형의 목을 할퀴고 어깨를 깨물고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얼마나 세게 할퀴었는지 상처에 드문드문 점선 같은 핏방울이 맺혔다. 큰형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를 내려놓았다. 땅에 떨어진 나는 그 자리에 오줌을 지렸다. 그와 동시에 큰형이 쓰러졌다. 모난 돌에 찍힌 큰형의 이마에 피가 맺혔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작은형은 물지게를 내팽개치고 나를 줄 바깥으로 끌어내 호되게 매질을 했다.
‘이상문, 그만해!’
큰형이 얼른 나서 말렸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작은형은 압도적이었다. 나는 다부진 주먹에 얻어맞으며 온 힘을 다해 울었다. 그 울음에는 내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아무나 좋으니 누가 이 악마를 좀 말려줘요!’
구조요청은 기각됐다. 줄을 비우면 자리를 빼앗길까 봐 누구도 작은형을 말리러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큰형만이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지만 우악스런 힘에 밀려 이내 바닥에 축 늘어지고 말았다.
그때 줄 앞쪽에서 야바위를 치며 돌아다니던 셋째 형이 내 울음소리를 듣고 스리슬쩍 나타났다. 흙바닥에 쓰러져 있는 큰형과 작은형에게 두들겨 맞는 나를 보고 재빨리 상황을 판단한 셋째 형은 지금껏 지켜오던 자리를 빼앗길까 봐 얼른 우리 물지게를 짊어지고 사람들 사이를 황급히 비집고 들어갔다. 은근슬쩍 우리 자리를 차지하고 선 사람들은 무섭게 화를 냈지만 셋째 형이 어디선가 구해온 호박엿을 나눠주며 너스레를 떨자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자리를 내주었다.
셋째 형은 뒷사람들에게서 잠시 자리를 봐주겠다는 확답을 받아내고 나서야 줄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걱정 말그라! 자리 내가 지킸다!’
꼼짝없이 독사에게 맞아 죽는구나. 나는 도망할 의지조차 상실한 채 철퍼덕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에 퍼석한 흙이 무서운 속도로 달라붙었다. 윗도리는 가슴께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고 나는 서열 낮은 개처럼 올챙이배를 드러낸 채 작은형에게 복종을 다짐했다. 작은형은 그제야 주먹을 거두었다.
고도의 지열로 화상이라도 입었는지 등이 따갑고 쓰라렸다. 자꾸만 눈이 감겼다. 작은형이 자리로 돌아가자 셋째 형이 쪼르르 뛰어와 나를 일으켰다. 셋째 형은 특유의 반달눈으로 눈웃음을 치며 내게 속삭였다.
‘욕봤데이.’
내가 서럽게 울음을 터트리자 셋째 형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얼굴을 찌푸리며 웃었다. 그 얼굴이 꼭 눈이 쪽 찢어진 여우 같아서 나 역시 훌쩍이던 도중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셋째 형은 더욱 환하게 미소 지으며 내 엉덩일 토닥였다.
‘마. 니 그라다 궁디 털 난다.’
아아, 그보다 천진난만한 미소가 세상에 또 있을까.
‘얼레. 막둥이. 니 그거 피 아이가?’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자 피가 묻어났다. 콧속으로 피비린내가 역류했다. 입안 가득, 기분 나쁜 이물감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퉤, 하고 바닥을 향해 침을 뱉었다. 피 섞인 침 덩어리가 툭, 떨어졌다. 그 속에서 새하얀 무언가가 반짝하고 빛났다.
나는 쪼그려 앉아 침 덩어리를 파헤쳤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조그마한 하얀 고체를 조심스럽게 집어 올렸다. 침이 거미줄처럼 그를 따라 길게 늘어졌다. 나는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응시했다. 여름 햇살을 받아 바싹바싹 마르는 그것은 파도에 마모된 조개껍데기의 편린 같았다. 나는 이를 딱딱 부딪쳤다. 앞니 쪽에서 소리가 씩씩, 새었다.
그날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일찍 젖니 하나를 잃었다.
* * *
“이거이 뭔 난리당가! 긍게 애당초 고런 작자헌티 하숙 놓는 거이 아니었는디. 머여! 이거이!”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허믄 단가!”
“저, 괜찮으시다면…. 형이 살던 방을 볼 수 있을까요?”
“쩌 코나 돌면 바로여. 막냇동생이라 그랬나? 안 보느니만 못할 거인디.”
“전 괜찮습니다.”
연락을 받자마자 부산에서 바로 출발해 광주에 도착한 것이 세 시 무렵. 큰형은 이미 영안실에 안치된 뒤였다. 노발대발하는 하숙집 주인을 뒤로하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갔다. 신원 확인을 위해 형식적으로 시신을 검안한 뒤 그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렸다.
본가가 있는 부산으로 장소를 옮겨야 하는 것은 아닌가, 잠시 고민도 해봤지만 멀리 떨어진 이곳이 차라리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가라고 해봐야 남아 있는 것은 말 그대로 집터뿐이고, 남아 있는 가족이라곤 나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한 부산에서 큰형의 장례식장을 찾아올 조문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큰형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하숙집 관리인으로, 병원에서 만난 그는 구세주라도 되는 양 나를 반겼다. 이제 갓 스물이 되었을까. 서울에서 내려와 일을 돕고 있다는 그는 충격과 슬픔으로 처참히 일그러져 있었다. 화살에 쏘인 사슴처럼 푸들푸들 떨며 그는 애써 당시 상황을 전해주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어요. 업으려고 팔을 잡는데 팔이 너무 차갑고 딱딱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말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당장 구급차를 불렀는데….’
‘그랬군요.’
‘내가 조금만 빨리 알아챘더라면…. 상윤 형은, 상윤 형은….’
가엾게도. 그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당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어르고 달래어 보았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심지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부둥켜안기까지 했다.
미끈한 청년의 등을 토닥이며 나는 문득 그 슬픔이 범상치 않은 것임을 감지했다. 그는 아마도 큰형에게 비정상적인 호의를 품고 있었을 것이다. 상대가 큰형이라면 가능한 얘기였다. 그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의 전신을 아우르는 고통의 실체는 분명 실연이라는 감정이었다. 큰형의 주변 사람들은 늘 그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손끝, 발끝까지 독이 퍼져 흐물흐물 스러져 갔다.
끼이익. 관자놀이를 할퀴는 금속성과 함께 문이 열리고. 큰형이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공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좁고 아늑한 방이었다. 커다란 창으로 포근한 오후의 볕이 드리우고, 건조대에 널어놓은 이불 홑청이 바람결에 천천히 나부꼈다. 창틀과 앉은뱅이책상에 어린잎을 틔운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지 않았더라면 전면이 백색으로 도배된 방은 다소 차갑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새하얗게 빛나는 벽과 원목의 가구들, 새싹의 푸른 잎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부드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아니, 방 전체를 흥건히 적신 피만 없었다면 분명 그런 공간이었을 것이다. 백색의 청결한 방은 검붉은 피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어 어쩐지 비현실적이었다. 사람이 죽어 나갔다기보다는 누군가 양동이 가득 붉은 물감을 풀어 뿌려 놓은 느낌이랄까….
구두를 신고 방안에 들어서자 찰박, 하고 핏물이 구두창에 엉겨 붙었다. 집주인이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방 한가득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병원에서 본 형의 시신은 말끔히 씻어진 뒤였기 때문에 이런 참상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콧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피 냄새인지, 핏덩이 그 자체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해도 욕지기가 가시지 않아 나는 웃옷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혹여 유서라도 남기지 않았을까 싶어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방안에는 사생활이라고 할 만한 물건이 전혀 없었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꽂혀 있는 책들은 거의가 수업 교재였고 걸려 있는 옷도 대부분 부산에 살 적부터 입던 것들이었다. 선반에 수북한 약들 역시 오래 복용한 것뿐이었다. 형은 오랜 세월을 약에 의지해 살았다. 그토록 근근이. 질기게 이어온 목숨인데 단칼에. 허무하게 잘라내 버리다니….
울컥 화가 치밀었다. 나는 약병과 약봉지들을 선반에서 쓸어냈다. 색색의 알약들이 피로 범벅이 된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얀 직선을 남기고 추락하는 그 모습은 소나기가 내리는 형상과 흡사했다. 갑자기 실소가 터져 나왔다. 웃음소리는 이내 크고 거칠어졌다. 조롱당하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웃었을까. 너무 악을 쓴 나머지 나는 배를 움켜쥐고 숨을 헐떡였다.
“여태 거 있는가. 인자 고만 나오랑게. 어, 문은 머 땀시 잠갔는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바지가 피로 축축하게 젖어 들었지만. 눈물로 얼굴이 젖어 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천천히 흩어진 약을 주워 모았다. 미끈거리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조그마한 알약들을 억지로 그러쥐었다. 마치 흩어진 큰형의 생명을 다시 하나로 모으듯.
그 와중에 나는 문득 큰형의 죽음을 실감했다. 아니.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나는 벌써 그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나는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로 인해 치사 상태에 이른 사람이었기에. 흐물흐물해져서 더는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그에게 독을 마시게 한 사람이었기에.
“가지가지 허네. 총각. 진짜 이럴 거여? 아녀, 내가 이럴 때가 아녀. 거시기. 보조키. 고거부터 찾아야것다, 이!”
나는 관리인 청년처럼 마음껏 슬퍼할 수도 없었다. 하숙집 주인처럼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용암처럼 분출되는 그들의 감정은 고스란히 내 안에 쌓여 나는 그저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나락으로. 발소리를 죽여 아주 천천히.
그리운 우리들의 검은 숲으로.
* * *
내가 살던 집은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낮은 산 중턱에 비스듬히 자리하고 있었다. 전후. 부산으로 밀려들어 온 피난민들은 삽 들어가는 땅이면 무작정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었는데 우리 동네도 그런 형태의 군락이었다.
함경도 출신의 아버지는 대지주의 둘째 아들로, 나이 스물에 형님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내려왔다 6·25동란이 터져, 울며 겨자 먹기로 부산 사람이 되었다. 북에 약혼녀를 두고 내려온 아버지는 피난민촌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고 일곱 달 만에 큰형을 낳았다. 흔히 말하는 속도위반이었던 것이다.
석 달 먼저 결혼을 했던 형님은 아버지보다 석 달 늦게 아들을 낳았다. 형님도 형수님도 닮지 않은 아들이었다. 얼결에 쥐어본 보석 같은 아들이었다. 혹자는 애비 분수에 맞지 않는 자식이 나왔다고, 참으로 아까운 일이라고 시샘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이웃들은 복덩이가 나왔다고 마냥 부러워했지마는.
그 아들이 무럭무럭 자라 동네 아이들을 호령하고 다닐 무렵, 형님 부부는 고생고생해서 번 돈으로 조그마한 가게를 열었는데. 가게는 개점한 지 일 년도 채 안 되어 화재로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다. 술에 취해 항구를 떠돌던 형님은 발을 헛디뎌 익사했고 형수님은 아들을 남겨두고 도망쳤다. 갈 곳이 없어진 아이는 잠시 고아원에 맡겨졌다.
조카를 데려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쪼들리는 집안 형편에 아버지는 말을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형님이 돌아가신 뒤 부쩍 혈육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 아버지는 매일 고아원을 들락거리며 냉가슴만 앓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어머니는 예상과 달리 ‘우리가 아니면 누가 그 아이를 책임지겠냐.’며 흔쾌히 입적을 허락했다. 어머니는 그 즉시 고아원을 찾아가 아이를 손수 데려왔다. 그리하여 형님의 아들은 우리 가족이 되었고 상문이라는 이름으로 내 작은형이 되었다.
큰형과 연년으로 셋째 형이 태어났고, 셋째 형과 3년 터울로 내가 태어났다. 여섯 가족,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녹록지 않아 하루하루가 고되었지만 집안 분위기는 화목했다. 아버지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어머니를 사랑했다. 오죽하면 어머니 사진을 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했을까.
아닌 게 아니라 어머니는 정말 미인이었다. 멋모르는 코흘리개 아이들도 어머니 앞에서는 발그레 볼을 붉혔다. 어머니는 나의 자랑이었다. 그리고 큰형은 바로 그 어머니를 쏙 빼닮은 아들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은 자연히 큰형에게 집중되었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큰형에게 이상하리만치 냉담했다. 오히려 작은형을 너무 예뻐해서 아버지의 빈축을 살 정도였는데. 그 굴절된 애정의 영문이 밝혀지는 데는 무려 십수 년의 시간이 걸렸다.
어린 시절 큰형은 일 년의 반을 서울에서 지냈다. 큰형은 방학이면 으레 어머니의 이모님 댁으로 보내졌다. 나와 셋째 형은 그런 큰형이 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부산 토박이인 우리들에게 서울은 미지의 낙원이었고, 이모님은 친척들 중 드물게도 상당히 유복했다. 자식이 없었던 이모님은 큰형을 양자로 삼고 싶어 했으나, 아버지의 결사반대로 방학 동안만 무조건 큰형을 이모님 댁에 올려 보내기로 의견을 절충했던 것이다.
이모님 댁에서 돌아온 큰형이 들려주는 서울 이야기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집에서 키우는 커다란 셰퍼드, 이모님이 챙겨주시는 모리나가 초콜릿,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서양 주전부리들…. 그렇게 달콤한 휴식이 또 있을까. 셋째 형은 모리나가 초콜릿이 너무 먹고 싶은 나머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작은형만은 그 이야기에 무덤덤했다. 오히려 안달복달하는 우리들에게 화를 냈다. 너희들은 그딴 게 뭐가 그리 부럽냐며, 짜증 나게 굴지 말고 얼른 잠이나 자라며, 매서운 발길질을 했다. 작은형은 큰형의 서울행을 노골적으로 싫어했으며 그 일로 어머니를 끈질기게 타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은형은 이때부터 뭔가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감히. 그렇지 않고서야.
쪼들리는 살림에도 나는 어쨌거나 막내였다. 일찍 잠드는 어린 나 몰래 가족들이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으면, 다음날 쓰레기통에서 흔적을 찾아내 그 음식을 사 올 때까지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어머니의 가슴과 큰형의 등은 모두 내 차지였고 송곳 같은 작은형도 나에게는 그나마 관대했다. 나는 자상한 큰형에게 특히 못되게 굴었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는 내 이마를 매만지며 말씀하셨다.
‘한 핏줄끼리는 싸우는 거 아니야.’
큰형과 작은형, 그리고 막내인 나 사이에서 셋째 형의 존재는 위태로웠다. 평범한 외모에 바닥을 밑도는 학교 성적. 그렇다고 작은형처럼 사람을 압도하는 서슬 푸른 독기가 있는 것도 아닌. 누군가 우리 가족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마지막에 ‘뭐가 하나 빠진 것 같은데….’라며 겨우 떠올릴. 그런 아이였다. 셋째 형은.
스스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던 셋째 형은 심부름을 한다든가 밖에서 잡일로 먹을 것을 얻어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 했다. 특히 셋째 형은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큰형에게 매우 살갑게 굴었는데, 아마도 본능적으로 작은형보다는 큰형에게 기대는 쪽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리란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제아무리 독사라 불리는 작은형이라 해도 핏줄의 유대관계에서는 열등했다. 핏덩어리 시절부터 빠짐없이 봐왔다 하더라도 아버지에게 작은형은 명백히 조카였다. 그 차이는 굉장히 사소한 일상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가령 아버지가 밖에서 먹을 것을 얻어 오신다고 하면. 네 개일 때는 형제들에게 하나씩 공평하게 돌아갔지만 세 개일 때는 으레 작은형을 제외시켰다. 나는 양보라는 말의 의미조차 모르는 막둥이였고 셋째 형은 한번 자기 손에 들어온 물건은 목에 칼이 들어오지 않는 한 절대 내놓지 않았다. 큰형이 언제나 반을 잘라주지 않았다면 작은형은 분명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것이다.
드센 아들들의 틈바구니에서 눈웃음이나 살살 치는 싹싹한 셋째 형이 만만했던 어머니는 그저 무슨 일만 있으면 그를 달달 볶고 모자라다며 질책했다. 그러기를 수 해. 성적이 도통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머니는 ‘그냥 너는 일찌감치 일이나 하라.’며 셋째 형을 아버지가 일하는 미싱사의 시다로 등 떠밀 듯하여 들여보냈다. 셋째 형은 결국 중학교를 졸업하는 것으로 짧은 학창시절을 마쳐야 했다.
어머니는 묘한 여자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어린 나이에도 한 가족의 가장이 된 지금에도 나는 어머니를 모르겠다. 화단에 아무렇지도 않게 양귀비를 키우고, 버젓이 아이들이 옆에 있는데도 앞집 아주머니에게 ‘그냥 애들이고 뭐고 도망가고 싶어요.’라고 불평하고. 지긋지긋한 가난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면서도 값비싼 붉은 꽃무늬 원피스를 구해 입었던 어머니. 그리고 ‘그 사실’이 밝혀졌을 때. 아무런 미련 없이 우리를 떠나버렸던 어머니. 어찌나 묘연히 자취를 감추었는지 그 뒤로 어머니의 소식을 들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죽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있을까.
머리가 좋았던 큰형은 부산 최고의 중학교인 K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이모님이 돌아가셔서 큰형은 서울에 더는 가지 않게 되었지만, 어머니의 등쌀에 못 이겨 이번에는 예천의 외삼촌 댁에 보내졌다. 한번은 나도 큰형을 따라 외삼촌 댁에 갔는데,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갈 정도로 큰형은 인기가 좋았다. 큰형은 시골 소녀들의 아이돌이었다. 농사일에 찌든 투박한 사내들만 보아오던 소녀들에게 새하얗고 보드라운 큰형의 등장은 일종의 사건이었다. 속눈썹에 성냥개비가 올라간다며 꺅꺅대고. 교복이 멋지다며 얼굴을 붉히고. 큰형의 일거수일투족은 소녀들의 수다에 끊이지 않는 단골 소재였다. 그게 썩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이 큰형의 동생이란 이유로 마을 아가씨들이 떡이며 사탕을 나누어주는 통에 나는 배고플 새가 없었고, 까탈스러운 어머니가 없으니 천하가 내 것이었다.
그런 나와 달리 큰형은 그곳에서도 공부에 매진했다. 아버지가 -K중과 같은 재단인- K고등학교 진학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K고는 당시 서울 경기고에 필적하는 명문고로 졸업생 대부분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진학하는 엘리트 코스의 발판이나 다름없는 학교였다. 집안사람 모두가 큰형이 K고에 들어가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큰형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공부에만 매달렸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손에서 책과 필기구를 놓지 않았다. 오죽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코피를 쏟는 일은 예사요, 종이 독이 스민 손이 퉁퉁 부어올라 작은형이 삼시 세끼를 일일이 떠먹여 준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같은 해 작은형도 K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어쩐지 그는 공부에는 영 흥미가 없어 보였다. 아니. 흥미가 없어 보인다, 고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친아들인 셋째 형이 중졸로 학업을 마치고 미싱사 시다로 일을 하는데 얹혀사는 조카인 작은형이 고등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작은형은 큰형의 입시 뒷바라지를 자처했다. 둘은 같은 방을 쓰게 되었고 -그전에는 부모님과 큰형을 제외한 형제 모두가 같은 방을 썼다- 작은형은 큰형을 극진히 보살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작은형은 큰형에게만은 정말 유별났다. 그 거칠고 딱딱한 사람이 큰형에게만은. 뭐랄까. 소중하고 소중해서 그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 자신을 불살라 버릴 것처럼. 세포 하나까지도 그를 향해 신경을 곧추세우고, 그를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살인도 저지를. 그런 터질 듯 부푼 비대한 감정을 어쩌지 못해 비틀거리며. 그래,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듯.
* * *
큰형은 문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독서가 취미였던 형은 어린 나를 앉혀 놓고 종종 자신이 읽은 소설책이나 역사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 대부분은 전쟁의 이면에 가득한 인간 본성의 부조리함이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였다. 나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좋았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노틀담의 꼽추’로, 그에 관한 대화를 나는 지금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부 기억하고 있다.
내가 묻는다.
“형. 그래도 에스메랄다는 행복했겠지?”
큰형이 자상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왜 그렇게 생각해?”
“여러 남자들의 사랑을 받았잖아.”
내 말에 큰형의 표정이 사뭇 차가워진다. 형은 어딘지 모를 허공을 응시하며 읊조린다.
“상원이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응?”
“이방인은. 그 어떤 사랑을 받아도 행복해질 수 없어.”
큰형의 옆얼굴이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석양의 붉은 빛으로 물든다. 그는 자신을 책망하는 듯한 어조로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한다.
“행복해질 수 없어. 결코.”
나는 그의 말에 반박하지 않는다. 큰형의 말은 마치 빛처럼 내게 스며든다. 나는 처음으로 절망이란 단어의 깊이를 체험한다.
그 뒤 큰형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 * *
동네는 지저분했지만 우리 가족은 비교적 청결한 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상당한 결벽증세가 있었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서기 전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악착같이 털었다. ‘저러다 멍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부단히 몸을 두들겼다. 그것은 바깥에서 묻혀온 먼지를 떼기 위한 절차였는데, 우리들도 자연히 아버지의 법을 따랐다.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버지의 매서운 손끝에 담금질을 당했기에 모두 열중해서 옷을 털었다.
집에 대해서도 그랬지만 양복쟁이였던 아버지는 옷에 대해 특히 엄격했다. 밥은 굶겨도 옷만큼은 좋은 것을 입혔다. 조금이라도 옷을 지저분하게 다루면 외출을 금지당했다. 그 때문에 학교 친구들은 우리 형제를 부잣집 아들들이라고 착각했다. 우리들은 굳이 그 오류를 정정하지 않았다. 현실이 어떻든, 부잣집 도련님 소리를 듣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부산 태생이지만 우리 형제는 셋째 형을 빼놓고는 모두 표준어를 썼다. 이 역시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부산에 자리를 잡은 이후 아버지의 인생은 조악한 것이었다. 과거의 풍요로움에 비교하면 정말 보잘것없었다. 그런 연유로 아버지는 부산을 증오했다. 때때로 아버지는 가족들을 모아놓고, 돈을 벌면 언제든 서울로 가겠노라 다짐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부산말을 쓸 때면 ‘경상도 사투리는 상놈들이나 쓰는 말이다.’라며 우리를 다그쳤다.
아버지의 동료도, 상사도, 집주인도 모두 부산 사투리를 썼다. 그들 앞에서 아버지는 막상 부산의 언어를 구사하려 애썼다. 그런 초라한 노력을 비웃듯 아버지의 혀는 함경도의 딱딱하고 투박한 억양을 고수했다. 아버지는 평생을 함경도 억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지의 억양은 그 자신에게 항상 상기시켜 주었다.
너는 이방인이라고.
셋째 형은 어린 시절 잠시 예천에 맡겨졌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들 여럿을 건사할 자신이 없었던 어머니가 형을 버리다시피 예천에 떠맡겼던 것이다. 때문에 셋째 형은 자연히 경상도 사투리에 물이 들었다. 부산집에 돌아와서도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바깥으로 나도는 시간이 더 많았던 셋째 형의 말투는 어떤 노력으로도 시정할 수 없었고, 그런 셋째 형에게 아버지는 ‘저놈은 내 자식이 아니야.’라는 말을 비수처럼 꽂곤 했다.
부모 중 어느 한 사람에게도 애정을 받지 못한 셋째 형. 심지어 가출했을 때조차 누구도 발 벗고 나서 그를 찾지 않아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귀가했던 셋째 형. 그리고 그날따라 더욱 호되었던 아버지의 매질. 그런 그를 방관하던 어머니. 집을 비웠던 큰형과 작은형. 귀를 틀어막고 그의 비명을 애써 외면하던 나.
그날 이후 나는 셋째 형 특유의 천진한 미소를 믿지 않게 되었다.
* * *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이었지만 사람들은 어디서건 불을 피웠다.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었으나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습기 찬 동네라 불이 잘 번지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이들도 감자와 고구마를 굽기 위해 작은 불을 피웠다. 동네 어딘가에서 항상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꼬마들은 양 볼에 연지처럼 검댕을 칠하고 다녔다. 매운 연기에 우리들은 눈물을 땀처럼 달고 다녔다.
그중에서도 아버지의 불은 유별난 것이었다. 아버지는 종종 뱀을 잡았다. 타고난 재주가 있었는지 그 복닥복닥한 동네에서 잘도 뱀을 찾아들고 왔다. 처음에는 두려움에 뒷걸음질하던 나도 서서히 뱀에 익숙해져 ‘아, 또 잡아 오셨어요?’하고 묻는 여유가 생길 정도였다.
뱀을 궤짝에 던져둔 다음. 아버지는 짚을 구해왔다. 짚을 잘 엮어 두 개의 발로 만든 다음 뱀을 사이에 놓고 그 테두리를 묶어 버렸다. 뱀은 마치 책장 사이에 끼워놓은 네 잎 클로버처럼 납작하게 눌려 꼼짝도 할 수 없다. 그러면 그 짚에 불을 놓는 것이다. 뱀을 태우는 장면은 수십 번을 보았지만 매번 가슴이 서늘해졌다. 뱀의 형체는 보이지 않고 단지 짚단이 타오르고 있을 뿐인데도 상상해버리고 말았다. 몸의 자유를 빼앗긴 채 거센 불길에 타들어가는 뱀을. 뱀의 육체를. 육체의 고통을. 불길이 가장 높이 치솟을 때면 나는 두 팔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를 꼭 붙들어 빈틈없이 동여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뱀을 관통하는 죽음의 고통이 지켜보는 우리들에게 전이되었다. 뱀이 타는 시간 동안 내 몸도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그 뜨겁고 격렬한 불의 기억은 성인이 된 뒤에도 불시에 엄습하여 나를, 우리 모두를 담금질했다.
모두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먹는 것이라면 환장을 하는 셋째 형은 그저 입맛부터 다셨다. 뱀을 태우는 내내 안절부절못하며 불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군침을 삼키는 셋째 형을 보며 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작은형은 그 모든 작업을 책임졌다. 불 작업은 늘 작은형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불길에서 멀리 떨어져 작은형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작은형은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다. 그의 전신에 맺힌 땀이 빛에 반사되어 황금색으로 반짝였고 독사의 날카로운 두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불길을 응시했다. 작은형은 마치 프로메테우스 같았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기 위해 내려온 비운의 사자. 불길이 독수리 대신 그의 가슴을 쪼고 있었다.
큰형은 담담했다. 그는 불길을 바라보며 서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냉랭하여 성난 불길조차 그에게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큰형은 종종 고열을 확인하듯 불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 손이 불에 가까이 닿으면 닿을수록 더욱 깊고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럴 때의 큰형은 마치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어느 순간. 아버지만이 아는 절묘한 타이밍에, 타오르는 짚더미에 물을 끼얹는다. 그러면 불길은 소진되고 검은 잿더미 사이를 헤쳐 새까만 뱀의 사체를 꺼내 든다. 우리들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아버지가 익숙한 솜씨로 뱀의 껍질을 벗긴다. 두터운 칼날로 뱀을 토막 낸다. 그리고 동네 어른들을 불러모아 뱀을 나누어 먹는다.
먹고 싶어 안달이 난 셋째 형을 제쳐두고 아버지는 큰형에게만 한 덩어리를 떼어주었다. 그러면 큰형은 거절도 않고 그것을 조심스레 한입 베어 먹었다. 그리고 남은 덩이를 우리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은형은 큰형에게 받은 자신의 몫을 셋째 형에게 주었다. 그러면 셋째 형은 고깃덩이를 들고 누구에게 뺏기기라도 할 양, 바람 같은 속도로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뱀을 먹지 않았다.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뱀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절할 것 같았다.
잠들기 전 자리에 누워 나는 큰형의 몸 안에 쌓여가는 뱀의 토막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런 밤이면 꼭 꿈을 꾸었다. 큰형의 몸 안에서 자라난 뱀들이 큰형의 내장을 먹고 살을 먹고 그리하여 그의 몸을 먹어 치우는 끔찍한 꿈이었다.
그러나 더 끔찍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포식한 뱀들은 꼭 큰형의 머리를 남겨두었다. 그러면 아버지와 우리 형제는 그 머리를 두고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이었다. 꿈속의 나는 기괴한 식욕에 사로잡혀 진실로 그를 먹고 싶다고 느낀다. 큰형의 머리를 빼앗은 아버지는 그 뱀들을 잡아 다시 불을 피웠다. 살아남은 형제들은 그 뱀을 나누어 먹었다. 꿈속의 나는 걸신들린 사람마냥 뱀을 먹는다. 뱀 고기가 입안에서 오도독오도독 터진다. 비릿한 육즙이 입안 가득 동한다.
뱀을 모두 먹어치운 우리들은 다시 전투를 벌인다. 전투는 아주 치열하고 극악하다. 큰형의 머리는 우리들에 의해 갈가리 찢기고, 우리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망각한 채 오직 싸움에만 몰두한다. 모두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그런 처절한 싸움이다. 싸움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나는 겨우 눈을 뜬다. 나는 아버지가 뱀을 잡아 오는 날이 두려웠다. 뱀을 잡는 의식, 그리고 의식보다 더 잔인한 살육의 꿈이 나를 괴롭혔다.
* * *
큰형의 수험이 막바지에 이른 어느 여름날로 기억한다. 그날은 유독 더웠다. 바다와 마주한 산기슭에 위치한 우리 집은 바닷바람 덕분에 여름에도 시원했지만 그날은 수면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더웠다. 한번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자는 내 눈이 저절로 떠졌으니. 실로 경악스러운 더위였다.
찬물을 끼얹고 다시 잠을 청해 보았으나 헛수고였다. 말똥말똥해진 정신은 흐려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괜스레 몸을 뒤척이다 물이나 마실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는 셋째 형이 깡마른 배를 드러낸 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그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그의 허리를 넘어 방을 나섰다.
여름밤은 덧없이 밝았다. 목을 축인 나는 일없이 집안을 서성거렸다. 아무래도 밤을 새울 것 같아 큰형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책이라도 빌려 읽을까 하는 심산이었다. 종종 큰형은 그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했다. 그럴 때면 뻐끔한 문틈으로 실낱같은 빛 한줄기가 삐죽이 새어 나오곤 했다. 그날은 빛이 없었다. 나는 형이 깨지 않도록 조금씩 아주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시원한 바람이 왈칵 밀려들었다. 바다로 트인 창에서 불어오는 것이었다. 나를 가두고 있던 더위라는 굴레가 거센 바람에 날려 흩어졌다. 창 아래 큰형과 작은형의 이부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합판을 끼워 맞춘 엉성한 책장이 있었다. 나는 도둑처럼 스멀스멀 방안으로 전진했다. 발바닥이 장판에 밀착했다 떨어질 때 생기는 마찰음이 깊은 밤의 정적을 뒤흔들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두 형의 기척을 살폈다. 나는 둘 중 누구라도 몸을 뒤척이면 언제든 바로 문밖으로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 그 방은 내게 금지된 공간이었다.
수험생의 방이기 때문에 기웃거리기만 해도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그 방 앞에서는 한숨조차 조심스러웠다. 큰형은 너그러웠지만 자신의 공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엄해서 함부로 방에 들어오거나 자신의 물건을 헤쳐 놓으면 정말 무섭게 화를 냈다. 팍팍한 작은형과 방을 함께 쓰는 일도 나로서는 의아할 정도였다. 그날 밤 그 방에 들어갈 용기가 난 것은 아마도 몸을 소금에 절이는 듯한 더위와, 깊은 밤이라는 기묘한 시간대 덕분이었으리라.
다행히 둘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고 책장에 도착했다.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푸른 빛 덕분에 책의 제목을 살피는 일은 수월했다. 자리가 비어도 티가 나지 않을 얇은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돌아서려는데 뒤엉킨 몸이 눈에 들어왔다. 얇은 이불 위로 큰형과 작은형의 벗은 상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사실 그것은 일상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어머니를 제외하면 집에는 남자만 다섯이었다. 우리들은 거리낄 것 없이 옷을 훌렁훌렁 벗고 다녔다. 나 역시도 셋째 형과 팬티 한 장만 걸치고 한 이불에서 잠드는 일이 예사였다. 그렇게 하는데 어떤 수치심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달랐다. 그들의 나신을 보는 순간 나는 격렬한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망상은 아주 괴이하고 불결한 것이었고,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자신의 성적 환상을 구체화시킬 수도 없는 새파란 철부지였다. 설사 그 나이에 내가 이미 말초적인 섹스를 경험했다 하더라도 그 망상, 그 의심의 말미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 그 누가 형제의 벗은 몸을 보고 성적인 것을 떠올린단 말인가. 하물며 전신도 아닌 상체만으로. 구제불능의 인간 말종도 그런 망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리가 풀려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바닥이 쿵, 하고 울렸는데도 두 사람은 미동이 없었다. 그 와중에 떨어트린 책이 큰형의 가슴께에 떨어졌다. 나는 책을 주우러 기다시피 큰형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불현듯 나의 시선은 한군데에 못 박혔다. 끈적하게 젖은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선연히 반짝이고 있었다. 붉게 번진 그것은 분명 소년의 것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시달린 듯 젖어 있어 묘하게 선정적이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함께 목욕을 하며 수없이 보아온 큰형의 유두였다. 그러나 나는 그에 입 맞추고 싶었고, 있는 힘껏 내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 나는 어찌 이리도 더럽단 말인가. 나는 내가 살아 무가치한 벌레로 느껴졌다.
사실 모든 것은 간단했다. 큰형과 작은형의 허리께에 걸쳐 있는 저 얇은 이불 한 자락을 걷어내면 그만이었다. 걷어내고, 아무것도 아닌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하며, 불경한 자신을 몰아세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차마. 도저히. 그 이불을 걷어낼 자신이 없었다. 예민하고 잠귀 밝은 큰형이 한밤의 소란에도 꼼짝 않을 만큼 깊게 잠들만한 일은 무엇일까. 힘센 바닷바람에도 마르지 않은 가슴을 적신 액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의 손은 한동안 큰형의 허리께에 머물러 있었다. 달빛을 받은 두 사람의 육체는 평소 내가 보아오던 것과 사뭇 달랐다. 뭐라 해야 할까. 마치 낡은 허물을 벗고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나는 차마 이불을 걷어내지 못했다. 확인하려 드는 의도조차 죄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이유도 없이 무서웠다. 나는 책을 떨어진 자리에 그대로 둔 채 내 방으로 돌아갔다.
피곤했다. 그날은 꼭. 뱀의 꿈을 꿀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 누워 눈을 질끈 감고 아름다운 것만을 생각하려 애썼다. 그리고 나는 다시 큰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러운 것을 생각하려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나는 다시 큰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나는 나의 의식이 헐어 너덜거릴 때까지 힘주어 지우개질을 했고 늦은 새벽.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 * *
이튿날 큰형은 심야의 방문, 나의 침입을 언급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당장에 나를 벌할 일이었다. 나는 언제 튈지 모르는 불똥을 기다리며 가슴을 졸였으나 큰형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만 잠자코 있으면 조용히 지나갈 문제였다. 그런데 나는 부러 말을 꺼냈다.
“형.”
“응?”
형은 영어 단어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꾸했다.
“있잖아.”
“응.”
“어제 형이랑 작은형이랑 홀딱 벗고 자더라?”
평정을 가장하려 애썼으나 내 목소리는 구불구불 떨리고 있었다. 큰형은 단어장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으나 놀란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한층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아. 너무 더워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납득이 가는 이유에 나는 ‘어, 그래.’하고 겸연쩍게 중얼거렸다. 큰형은 다시 단어장을 펼쳐 들었다. 나는 그에게서 실낱같은 동요라도 읽어내려 애썼다. 그러나 큰형은 그저 담담했다. 역시, 그런 거야. 긴장이 풀린 나는 이유도 없이 킥킥, 웃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그날 큰형은 이례적으로 나를 혼내지 않았다. 아마도 스스로의 잘못을 자백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개운한 마음에 나는 괜히 큰형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다만.
그날 이후 큰형의 방은 오랫동안 잠겨 있었다. 그 사실만이 내 마음에 한 점 어둠을 떨어트렸다. 새하얗게 어렸던 내 안에서 소량의 어둠은 금세 희석되었다. 나는 다시 씩씩해졌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내 마음이 검은 어둠으로 뒤덮이리라는 사실을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 * *
그날 밤 나는 몽정을 했다. 붉은 꽃의 수술이 내 성기의 끝을 간질이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사레들린 사람처럼 고통스럽게 재채기를 했다. 그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내 성기는 독이 올라 시뻘겋게 부어올랐고, 몸이 묶인 나는 극한의 쾌감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나는 전신이 달뜬 상태로 무자비하게 급소를 자극당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내 눈은 꿈과 마찬가지로 젖어 있었고 눈과 마찬가지로 사타구니 역시 흠씬 젖어 있었다. 타는 듯한 갈증이 엄습했다. 나는 허겁지겁 물을 마시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랬다. 하지만 개운치 않았다. 더러운 기분이었다. 잔뜩 약이 오른 몸은 좀처럼 이완되지 않았고 그 상태가 수일간 지속되었다. 그 뜨겁고 초조한 기운은 모르는 사이 서서히 옅어졌지만 완전히 사라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낯선 쾌락의 잔여물이 내 몸 안에 침전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몽정을 경험할 때마다 같은 양상이 되풀이되었다. 내 몸은 달아올라 있지 않으면 성욕의 불순물로 인해 폐수처럼 혼탁했고, 그렇게 나는 무한의 갈증을 안고 사춘기의 문턱으로 들어섰다.
나는 한동안 어두웠다. 고문의 폐해로 불구가 된 어느 시인처럼 비척거렸다. 그런 나를 걱정한 셋째 형은 내게 귓가로만 스치던 ‘자위’라는 것을 전수해주었다. 셋째 형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사정의 통쾌함을 역설했고 그 방법과 묘수를 아주 상세히,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집이 비는 어느 날 그 비밀스러운 일을 수행하기로 결심했다.
빈집. 구석방. 셋째 형이 구해준 성인잡지를 펼쳐 들고 나는 자위에 몰두하고 있었다. 잡지 안에는 거대한 가슴이 출렁거렸고 조린 콩 같은 유두들이 딱딱하게 곤두서 있었다. 나는 어릴 적 나를 품던 어머니의 가슴을 떠올렸고 젖어 있던 큰형의 가슴을 떠올렸다. 지우려 애를 써도 그것들은 내 시야를 가로막았다.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잡지에 집중하려 해도 그들은 쉽사리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터부의 그림자 속에서 나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때. 찰칵,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와 함께 나는 서툰 사정을 했다. 축 늘어져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속옷을 끌어 올리고 바지춤을 추슬러야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바닥에 흩뿌린 정액을 닦아내야 하는데. 일어서야 하는데. 막연한 의지만을 가동시키고 있는데. 시선이 마주쳤다.
작은형의 날카로운 눈가에 당혹의 기미가 스쳤다. 작은형은 말없이 돌아섰다. 나를 비웃지도 꾸짖지도 않았다. 해일 같은 수치와 분노가 나를 덮쳤다. 나는 그 자리에 목을 매고 죽고 싶었다. 아니 작은형의 목을 매달고 싶었다. 개새끼, 개새끼! 나는 바지도 추켜올리지 않은 채로 일어나 벽을 걷어찼다. 나는 강렬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어떤 반응도 없이 돌아선 작은형의 뒷모습은 나를 비웃는 듯했다. 전부 다 비교당했다는 생각에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볼품없는 몸뚱어리가. 설익은 성기가. 적나라하게 벌어진 두 다리가! 무엇 하나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닥치는 대로 몸에 물을 퍼부었다. 피부가 빨갛게 부어오를 때까지 몸을 닦았다. 나는 나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문밖으로 가족들이 귀가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그날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즐겁게 자위하지 못했다. 완연한 수컷인 작은형에게 젖비린내 나는 자신을 폭로 당한 이후 나에게 성적인 행위는 결코 쾌락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나의 성욕은 지독한 가위에 눌렸다. 그리고 그것은 평생 회복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작은형은 나를 살해했다. 나는 더 이상 남자가 아니었다.
* * *
그날 이후 나는 작은형을 매몰차게 무시했다.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작은형을 피해 다녔고 그가 혹시 말이라도 걸라치면 다급히 줄행랑을 쳤다. 나는 자꾸 함께 목욕할 때 보았던 작은형의 나신을 떠올렸다. 단단히 여문 그 몸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차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노골적인 수컷의 육체, 그 당당한 아름다움에 나는 풀이 죽었다.
처음에는 조금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던 작은형은 이내 나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나를 간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그쪽에서 무시를 하고 나오니 나는 새삼 두려워졌다. 그가 불쾌한 반응을 보이던 때보다 불안하고 더욱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에 반해 태도는 더욱 삐딱해졌다. 나는 간절히 소망했다. 허물을 벗고 싶다. 허물을 벗고 작은형과 같은 새로운 육체로 태어나고 싶다고. 그러나 나는 자라면 자랄수록 큰형에 가까워졌고, 그래서 좌절했다. 나는 불가능한 것만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것은 더 뜨거운 열망을 낳았다.
나는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나의 섹스를 회상하지 않았다. 환상으로 버무리기에 나는 너무도 싱거웠으므로, 내 안에는 타인의 감정만이 흘러들었다. 마치 피복 전선처럼. 검은 피복 안에 웅크린 나의 심연에는 강렬한 향기를 풍기는 것들이 그저, 잠시 머무르다 떠나갈 뿐. 나는 과연 어린 나이에 인생을 알아버렸다. 자신을 꿈꾸는 것은 일부 선택받은 인간들뿐, 아름답지도 강하지도 못한 인간은 아름답고 강한 것을 꿈꾸다 자신의 생 대부분을 흘려버린다는 것을. 나는 너무 일찍 알아 버렸다. 그리고 그 사실은 내게 달콤한 슬픔을 안겨 주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그 시절에 나 자신에게 이별을 고하지 않았나 싶다.
안녕, 작은 인간아. 안녕.
슬픈 사람아.
* * *
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어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계기가 준비되어 있었을 뿐. 낮이 매우 길었던 어느 날. 집에는 큰형, 작은형, 어머니, 내가 기나긴 태양의 시간이 끝나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뉘엿거리며 산을 넘어가는 붉은 해는 우리의 삶만큼이나 권태로웠고 우리들은 묵묵히 각자의 사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가 신발 속을 구르는 조그마한 돌멩이마냥 불편했으나 누구도 집을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늦은 저녁을 차린 상 주변에 어머니, 큰형, 작은형이 둘러앉아 있었다. 내 시련의 근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허기가 졌음에도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끔찍이 싫었다. 큰형이 내게 손짓했고 어머니는 내 몫의 수저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작은형은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도 나를 무시하기로 작정을 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나의 반발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던 것인지. 그간의 불손한 태도에 화가 났을 법도 한데 그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냉랭한 태도에 식욕이 뚝 떨어져, 나는 차려진 밥상을 뒤로하고 그냥 돌아서기로 마음먹었다. 그 순간 잘 벼린 칼날 같은 목소리가 뒷덜미를 벴다.
“앉아.”
작은형의 짧은 명령에 나의 몸은 급정지했다. 내가 그에게 지닌 거대한 반감으로도 그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앉으라고 했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작은형의 눈은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으나, 무표정한 얼굴은 그 자체가 맹독이었다. 나는 지지 않으려 눈을 부릅떴으나 역부족이었다. 그의 눈빛이 내 안에 쌓여갈수록 내 표면을 난도질할수록 나는 움츠러들었고, 나의 모서리는 자꾸만 돌돌 말려들었다. 반듯하게 서 있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그래. 앉지 그러니.”
방관하고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끼어들어 나를 부추겼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담배를 태우는 어머니의 모습은 다분히 색정적이었다. 큰형이 나를 앉히려 -혹은 달래려- 일어서는데 작은형이 그의 팔목을 낚아채 다시 눌러 앉혔다. 그리고 일어나 손수 내 팔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소름 끼칠 만큼 억센 아귀힘이었다. 작은형의 크고 뜨거운 손의 감촉에 귓불이 후끈 달아올랐다. 나는 있는 힘껏 그의 손을 뿌리치며 비명을 질렀다.
“건드리지 마! 더러운 새끼야!”
절벽처럼 마주 선 우리 둘 사이로 바닷바람이 철썩철썩 불고 있었다. 소금기를 품은 우리들의 숨은 짭조름했고 나는 울고 있지 않음에도 그것이 눈물임을 알았다. 작은형의 눈가가 검붉게 빛나며 꿈틀거렸다. 그의 힘줄이 부푼 상처마냥 팽팽히 일어섰다. 인내의 기간은 끝난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처벌을 기다렸다. 견고하게 축조된 그의 주먹이 턱뼈를 부수고 배를 뚫는 그런 상상. 그 순간 스치는 그의 눈빛. 그 형형한 살기 이면에 기묘한 슬픔이 부표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철갑 너머로 감추어진 검은 눈동자. 그 속에 숨겨진 어떤 절절한 감정을 나는 들추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얘기해볼게. 잘 타이를 테니까. 참아.”
큰형의 섬약한 손이 작은형의 어깨를 천천히 쓸어내리며 충동을 저지했다. 그 손은 부드럽게 나를 이끌었고 나는 묵묵히 그를 따랐다. 우리들은 창고처럼 쓰이는 구석방-내가 자위를 하다 작은형에게 들킨 바로 그 방-에 들어가 어색한 대화를 나누었다.
“너 요즘 상문이한테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뭘.”
“무슨 일 있어? 너 요즘 이상해.”
“내가 뭘 어쨌다고! 대체 왜 난리야! 왜!”
“상문인 네 형이야. 나한테 그러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그 녀석에게는 그러지 마. 그러면 안 돼.”
“왜? 왜 그러면 안 되는데? 형! 형! 형! 형 같은 소리 한다. 그 새끼가 무슨 형이야? 부모도 틀린데, 빌붙어 기생하는 주제에 어디서 형 노릇이냐고!”
나는 놀랐다. 나는 실제로 작은형을 한 번도 그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내뱉은 말은 대부분 셋째 형이 입버릇처럼 토로하던 불만들로, 한 번도 동조한 적 없는 의견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궁지에 내몰리니 나도 셋째 형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너 정말!”
“너희들. 지금 싸우는 거니?”
“어, 엄마.”
“그런 거야?”
불쑥 들이닥친 어머니의 등장에 큰형과 나는 갑자기 입을 닫아버렸다. 늘 몽롱하고 나른하던 어머니의 두 눈이 시퍼렇게 번뜩이고 있었다. 작은형보다 더한 위압감이 어머니 주변의 공기를 잔뜩 긴장시키고 있었다.
“엄마, 지금 큰형이랑 나랑 얘기하는 중이잖아.”
“엄마. 그게 아니고-.”
“엄마!”
어머니의 손이 큰형의 뺨을 후려갈겼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고개가 완전히 돌아가고 입가가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다. 큰형이 손등으로 피를 훔쳐내려는 찰나 두 번째 따귀가 작렬했다. 어머니는 큰형의 상처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손을 들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어머니를 부둥켜안았다. 어머니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불가사의한 힘이 넘쳐흘렀다.
“상원이가 상문이한테 저딴 소리 하게 니가 꼬드겼니? 니가 어떻게 가르쳤길래 애가 지 형한테 저렇게 박박 대들어? 내가 뭐라 그랬어. 내가 너희한테 큰 거 바란 적 있니? 응? 작은형이 너희 집 기둥이야. 근데, 어떻게 그딴 식으로 대들어?”
속사포처럼 쏘아붙이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큰형을 때리려 발버둥을 쳤다. 그를 어찌하지 못함에 분해하며 숨을 씩씩 몰아쉬었다. 그러면 큰형은 그를 피하지도 않고 석상처럼 그 자리에 꿋꿋이 서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큰형의 눈에는 일말의 애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엄마. 이제 그만해요! 그만!”
기운이 빠진 나는 어머니를 놓쳤고 어머니는 스프링처럼 튕겨 나가 큰형을 마구잡이로 때렸다. 큰형을 구석에 처박고 창고에 쌓인 물건들을 마구 휘둘렀다. 신들린 듯 큰형에게 음험한 악담을 퍼부었다. 헐떡이는 숨소리에 섞여 뭐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보통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하는 그런 말이 아니었음에는 분명하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에게 빌고 또 빌었다. 요란한 소리를 듣고 달려온 작은형이 문을 두드리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으나 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덜컹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는지 어머니는 매질을 멈추고 새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뭐라고 했어.”
“작은형…. 작은형이 이 집의 기둥이라고요.”
“그거 말고! 예전부터 내가 하던 말!”
“그, 그게….”
엉망진창이 된 머릿속에는 어떤 기억도 재생되지 않았다. 모든 사고가 바람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나는 안타까움에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문질렀다. 까슬까슬한 감촉이 여린 이마를 천천히 마모시켰다.
“형제끼리는 절대 싸우는 거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너희들은 똘똘 뭉쳐서 살아야 돼. 세상에는 너희들밖에 없어! 그런데 이게 지금 무슨 꼴이야? 너희들. 이런 꼴이나 보이려고 태어났니? 이런 식으로 나 괴롭히려고 태어났어?”
“아니에요!”
어머니는 쓰러진 큰형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소리쳤다.
“네가 문제야. 알아? 네가 문제라고! 너 때문이야. 너 같은 거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만해!”
작은형의 완력에 합판으로 덧댄 문이 부서지며 상황은 종결되었다. 어머니는 작은형에게 새침하게 웃어 보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창고를 빠져나갔다. 작은형은 곧장 큰형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으나 큰형은 미소 지으며 조용히 그를 밀어냈다.
“괜찮아. 이런 거,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상원아. 이마 좀 보자.”
큰형의 손이 까진 이마에 닿자 눈물이 날 만큼 쓰라렸다. 쓰라렸지만, 나는 그의 접촉을 거부하지 않았다. 자신의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내 이마의 작은 생채기를 걱정하는 큰형의 태도에 모든 미움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나는 큰형과 작은형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으나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설움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어떠한 물리적 힘으로도 어머니를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굴절된 논리 앞에 우리들은 그저 복종할 뿐이었다. 자식들을 집어삼킨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처럼 우리들은 모두 어머니의 뱃속에 갇혀 있었다. 심지어 그 배로 태어나지 않은 작은형마저도. 독이 든 그녀의 젖을 먹으며 우리들은 세상 밖으로 나갈 방법만을 궁리했다. 그 좁은 공간의 가장 아래쪽에 눌려 있던 큰형은 그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웠으나, 어머니로부터 분리된 이후의 시간 속에서도 그는 가장 고통스러웠다.
우리들의 집은 흡사 밀림과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모두가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인생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적어도 다른 생이 산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내 삶은 적도선을 따라 떠도는 작은 짐승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 * *
이듬해 봄. 큰형은 K고에 차석으로 입학했다. 가족의 경사였고 나아가서는 마을의 경사였다. 아버지는 큰형에게 K고 교복을 입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마을 사람들은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아버지와 큰형을 축하했다. K고에 붙었다는 말은 곧 일류대학에 틀림없이 진학할 수 있다는 보증수표나 다름없었고 일류대학을 졸업하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즉 큰형의 K고 입학은 우리 가족이 머지않아 지긋지긋한 산동네를 벗어날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감격에 겨운 아버지는 큰형에게 어마어마한 것을 선물했다. 우리들 모두 그것이 언젠가는 큰형의 소유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시기가 그토록 앞당겨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시계는 고가의 외제품으로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팔지 않고 소중히 간직해온 아버지의 보물이었다. 큰형은 한사코 거절했으나 아버지는 기어이 큰형의 손목에 그 시계를 채우고 말았다.
하지만 큰형이 그 시계를 차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큰형은 그 시계를 고이 싸서 책상 안에 모셔두었다. 가끔 생각난 듯이 그것을 꺼내어 볼 뿐 지니고 다니는 일은 거의, 아니 아예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그 시계를 줄기차게 차고 다닌 사람은 셋째 형이었다. 셋째 형은 데이트가 있는 날이면 큰형의 시계를 몰래 차고 나갔다. 빼어난 미남은 아니었지만 선해 보이는 인상과 달착지근한 눈웃음, 유행을 놓치지 않는 옷차림 덕분에 셋째 형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만나는 여자들은 양갓집 규수와는 거리가 먼, 눈에 띄게 예쁘고 화려하지만 어딘가 색정적인 그런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때로 셋째 형의 여자친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목울대를 적시곤 했다.
작은형은 항구에 취직했다. 아버지 친구분이 일하는 물류 상사에서 일을 돕게 된 것이다. 작은형은 정식으로 취직하기 이전에도 종종 회사 일을 돕곤 했는데 일 처리가 야무진 작은형을 마음에 들어 하던 아저씨는 작은형이 학업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회사로 데려갔다. 사실 항구일이란 것이 보통 바쁘고 험한 일이 아니라 작은형은 일주일에 서너 번은 집에 들어오지 못했고, 그렇게 드문드문 마주치는 작은형이 나는 매번 낯설었다. 작은형은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성큼성큼 어른이 되었다. 마치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주말이면 큰형은 작은형과 함께 외출했다.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의 행선지를 알고 있었다. 몇몇의 친구들에게 P대 앞에서 둘을 목격했다는 증언을 심심찮게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말수 적은 두 사람이 번화가를 활보하는 모습이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으나, 증언에 따르면 두 사람은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고 했다. 두 사람 다 크게 웃는 일조차 드물었기에 나는 더욱 의아했다. 큰형은 어쨌거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고 작은형은 심해에 정박한 커다란 잠수함처럼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특히 큰형의 감추어진 속내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또 깊어, 죽음 직전 그는 해일처럼 진심을 토해냈으나 그럼에도 나는 그가 모든 것을 쏟아내지 못하고 죽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나서고 싶었다. 형제란 단 몇 살 차이임에도 체험할 수 있는 세상의 넓이와 허락되는 행위의 범위가 천차만별이다. 소속이 틀릴수록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나는 한편으로 그들을 감시하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 사이에 껴, 은근슬쩍 그들과 같은 등급으로 보여지고 싶었다.
셋째 형은 집에 있는 시간이 전무했다. 다만, 갈수록 멋쟁이가 되어가는 것만은 분명했다. 직접 만든 화려한 의상들이 깡마른 셋째 형의 몸에 착착 휘감겼다. 셋째 형은 종종 내게도 옷을 만들어 주었다. 내 친구들은 셋째 형이 만들어 주는 옷을 부러워했다. 그것들은 천박하다 싶을 정도로 유행을 관통하고 있었다. 숙맥인 나는 그 옷들을 벽에 걸어두고 바라보기만 했기 때문에 대부분 한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옷장 한구석에 쌓아두었다.
일본과 미국의 문화가 수시로 유입되던 부산의 유행은 민감했고 조금만 늑장을 부려도 어떤 것들은 한물간 유행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 옷들이 마치 내 선망처럼 느껴졌다. 주저하고 망설이다 결국은 제대로 욕심내지 못하고 접어버린 내 허망한 꿈들처럼 그 옷들은 오래지 않아 차곡차곡 접혔고, 그들이 차지하는 공간은 점점 비대해졌다. 그와 같이 내 안에도 연소되지 못한 욕망들이 자신의 비인 칸을 하나둘 넓혀갔다.
주말의 외출 탓인지 두 사람은 주변의 여고에서 자못 유명해졌다. 영화에서는 꽤 화려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상상만큼 그리 자유로운 시절이 아니었다. 관심이 있어도 뒤에서 쑥덕대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니까 작은 불씨만 있어도 소문은 금세 거대한 불길로 번져 실제로 그 대상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모 고등학교의 누구누구가 그렇게 잘생겼다며?’라는 식으로 동경을 품게 되는 것이다. 큰형과 작은형의 경우도 그러했다. 거리에서 둘을 목격한 몇몇의 입을 거쳐 소문이 번졌고 괜히 집 대문 근처에서 미적거리는 여고생들도 두엇 생겨났다.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고 거의가 우리 집 근처를 지나가는 김에 조금 머뭇거린 것뿐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셋째 형의 손에 넘어갔다. 실패는 없었다. 셋째 형이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마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셋째 형은 아무 여자에게나 수작을 걸지 않았다. 형은 자기에게 넘어올 여자의 취향과 성격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쉽게 말해 이기는 게임만 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백전노장인 셋째 형이 막상, 결혼할 당시에는 반대로 여자 쪽에 제대로 덜미를 잡혔다는 점이다. 물론. 아주 나중의 이야기지만.
작은형의 경우에는 중졸의 학력으로 항구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게 작은형에게 호감을 갖는 여자들은 대부분 고매한 아가씨들이었다- 좀 잠잠해졌으나 큰형은 K중, K고라는 학력이 플러스가 되어 그를 사모하는 여학생들이 더욱 늘었는데. 그중에는 종종 악질도 있었다.
가장 극성이었던 것은 P대의 여대생으로 어두컴컴한 밤 매일같이 우리 집 대문 앞에서 큰형을 기다렸다. 오죽하면 여자의 부모님이 우리 집에 찾아와 통사정을 했을까. 그렇다고 큰형의 태도가 딱히 자상한 것도 아니었다. 애써 웃는 낯으로 대했지만 행동이나 말투에는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놓고 드러내지 않을 뿐, 싫은 감정을 잘 감추는 사람이 못 되었다. 나는 큰형이 가끔 혼잣말처럼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는데….’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건 틀림없이. 그 여자에게 하는 말이었다.
원래 스토커 기질이 있었는지 아님 정말 단단히 미쳤던 것인지 그럴수록 여자는 더욱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심지어 나를 붙들고 큰형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캐묻기도 했다. 정신 나간 눈도 눈이지만. 내 팔을 붙들고 있는, 여자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억센 힘이 나를 더욱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나는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집으로 뛰어들어 갔다. 문틈으로 나를 노려보는 여자의 한쪽 눈은 마치 사람의 것이 아닌 듯했다.
무엇보다 화가 난 것은 집주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여자애가 자기 집 앞에서 드나드는 사람들을 죄 부릅뜬 눈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세상 어느 사람이 좋다 하겠는가. 게다가 집주인 가족에게도 큰형에 대해 상당히 곤란한 질문들을 퍼부은 모양이었다.
실로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어머니와 셋째 형만이 그 사태에 무심했다. 어머니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로 ‘그냥 결혼시키지 그래요?’라고 했다. 이 말에 아버지는 버럭 화를 냈지만. 어머니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정말 이대로 큰형이 그 여자와 결혼이라도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나는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그 여자를 바라보는 입장이 어떻든 간에 이 불안한 상황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란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넉넉한 가을의 일요일이었다.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우리 네 형제가 함께 외출했다. 곰곰이 돌이켜보건대 모두 함께 시내를 누빈 것은 그때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모처럼 아버지가 돈도 아쉽지 않을 만큼 쥐여 주셨기에 우리들은 신나게 놀았다. 제각기인 형제도 그렇게 뭉치니 역시 어쩔 수 없는 피붙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유도 없이 든든하고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저녁을 먹는 와중에도 서로에게 다정한 말은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으나 그런 제멋대로인 분위기가 마냥 편하고 즐거웠다. 형들의 대화에 끼지 못할 때는 부아가 났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흡족한 기분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모두들 그 여자로 인해 어지간히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던 듯했다.
어둑해지자 우리들은 지체 없이 집으로 향했다. 물주의 기분을 거스르면 안 된다, 는 게 셋째 형의 지론이었다. 큰형의 참고서를 산 뒤 우리들은 마을에 도착했다. 느릿느릿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는데 그 여자와 마주쳤다. 그 순간 한껏 들떠 있던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저 여자를 또 어떻게 돌려보낼 것인가.’였다. 하루를 거르지 않고 치르는 전쟁이었지만 그래도 지겨운 것은 역시나 지겨운 것이었다. 나는 진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이 여자가 작은형에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여자는 막무가내로 작은형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작은형은 재빨리 팔을 붙들어 날뛰지 못하게 제압했지만 여자는 성난 말처럼 꿈틀거렸다. 셋째 형이 조심스레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누부. 이라심 곤란합니더. 알 만한 사람이 와 이랍니꺼.”
“놓으라예, 지 오늘은 이대로 못 가예!”
“이제 정말. 그만 좀 하지?”
작은형의 목소리에 짙은 분노가 깔려 있었다. 분노의 대상이 아닌 나마저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싸늘한 목소리였다. 팔을 쥔 작은형의 손아귀에 점점 더 강한 힘이 들어가 여자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그대로 두었다간 팔을 부러뜨릴 기세였다. 나는 사이에 끼어들어 둘을 갈라놓았다. 여자는 한참 동안 짓눌린 팔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 형형한 안광만은 꺼질 줄을 모르고 더욱 거세어졌다.
“니가 뭐꼬? 니가 뭔데 내한테 이러는데? 디러븐 놈아. 니가 감히 어따 대고 폭력이고, 폭력이. 내가 엊그제 본 거, 그기 먼데? 내가 입 열면 니 어찌 되는지 아나? 당장 떨어지래이, 형제라고 부르기도 남사스럽다, 이놈아!”
“닥쳐.”
예상외로 여자의 입을 닫게 만든 것은 큰형이었다. 큰형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는 들켜서는 안 되는 비밀을 면전에서 폭로 당한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 큰형을 진정시키듯 작은형은 조용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여자는 큰형에게 심한 말을 들어 큰 충격을 받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칼이 들려 있었다.
“이, 이봐요!”
“내…. 내 고마 확 죽어 버릴 기다.”
여자는 칼을 자신의 목으로 가져갔다. 그래 봐야 커터 칼이었기에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반대로 의문이 들었다. 대체 큰형의 무엇이 저 여자를 저렇게까지 만드는 것일까. 기껏해야 사람 아닌가. 도처에 깔린 게 사람인데 저 여자는 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할 정도로 하나의 사람에 빠진 걸까. 사랑에 빠져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 여자의 행동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형. 좀 말려 봐! 어쩌려고 그래!”
“저 누부, 우짤라꼬 저카노. 형아. 저대로 둘 끼가?”
큰형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대답했다.
“그럼, 죽든가.”
목 안으로 차갑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은 그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자애롭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표정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 표정은 본연의 광기를 내비칠 수 있었다. 큰형의 말에 여자는 무슨 선고라도 받은 죄수마냥 축 늘어져 버렸다.
“마침 잘됐네. 그러잖아도 귀찮았는데. 이왕이면 지금 죽지그래?”
“형, 그만해!”
“꼭 죽어. 기대하고 있을 테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형은 뒤돌아섰다. 셋째 형도 성가시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그를 따랐다. 나는 주저앉은 여자가 신경 쓰여 걸음을 옮기지 못했고 작은형도 무슨 이유에선지 우두커니 서서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연체동물처럼 늘어져 있던 여자는 작은형과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또다시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끼어들 여지도 없었다. 여자가 작은형에게 팔을 휘두른 다음에야 나는 그 손에 칼이 쥐어져 있었음을 기억해냈다.
“형!”
작은형은 비명도 지르지 않고 신속하게 자신의 눈을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기겁하여 동네가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여자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놀라 칼을 바닥에 떨어뜨리더니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여자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문득 그녀의 젖은 눈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엾게 느껴졌다. 놀란 큰형은 작은형에게 다가가 상처를 살폈다. 작은형이 조심스레 그를 밀어내었다.
“피 묻는다. 저리 가.”
“지금 그게 문제야? 눈…. 눈이야? 눈을 찌른 거야?”
“눈꺼풀을 긁힌 것뿐이야. 호들갑 떨지 마. 너답지 않아.”
“칼 어디 있어…. 칼 어디 있냐고!”
큰형이 재빨리 칼을 주우려는 찰나, 작은형이 그를 저지했다. 말리지 않았다면 큰형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녀를 찔렀으리라. 칼을 발견하고 주우려는 큰형의 행동에는 망설임이라는 것이 완벽하게 결여되어 있었다.
“너도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만해.”
“저 여자가 먼저 시작했어, 당하고 가만있으라고?”
“우리가 지금, 이럴 상황이 아니야. 침착해.”
큰형은 대답 대신 여자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칼은 들려 있지 않았지만 그러쥔 주먹에서 그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 얼굴은 그냥 공포스럽다는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뭐라고 해야 할까…. 굳이 비유하자면. 귀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것은 번개 같은 감정이었다. 순간 번쩍하고 빛나는 그것은 찰나였지만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증오를 지니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에도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부요, 돈 단디 준비하이소. 이거 경찰서 가서 꼰지르면 얄짤없이 구속입니더, 구속. 누부도 그리 되기 싫지예? 마 조용조용 지나갑시더. 좋은 기 좋은 거 아입니꺼. 보니께 잘사는 집안 딸내미 같은데. 다행이구마. 우리 행님 얼굴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맨입으로 닦을 생각은 아니지예?”
“이상훈! 그만해!”
작은형의 고함에 셋째 형은 실실 쪼개며 슬쩍 뒤로 물러났다. 작은형은 천천히 눈에서 손을 떼었다. 다행히도 깊이 베인 상처가 아니라 피가 콸콸 흐르지는 않았다. 작은형은 통증을 느끼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베인 쪽의 눈을 떴다. 눈동자에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 반사 신경이 발달한 작은형이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피해 눈꺼풀만 베이는 차원에서 끝난 것이었다. 우리들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작은형의 눈꺼풀과 안구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지금도 그 얼굴이 생생히 기억난다. 아아, 그래. 마치 늙어 죽음의 기로에 놓인 맹금류 같은. 그런 것 따위 알 리 없는 그에게서 잔혹한 살육의 관록이 흐르고 있었다.
“들어가자. 들어가서 치료부터 하자.”
“알았어.”
“그냥 넘어갈 생각 말고 당장 준비 하이소. 이거, 알지예? 이거.”
셋째 형은 돈을 세는 제스처를 취하며 마지막까지 여자를 협박했다. 여자는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언덕배기로 오를수록 멀어져가는 그녀의 모습을 나는 몇 번이고 뒤돌아보았으나 그녀는 끝내 자리를 뜨지 않았다.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다는 것. 그것이 어떤 두려움인지를 나는 그녀를 통해 명백히 깨달았다. 아아, 나는 저렇게 골목 끝 어둠의 차가운 지면 위에 남겨지고 싶지 않다고. 나는 간만에 진심으로 소망했다.
작은형의 상처는 단순한 창상으로 시력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정말 다행이다.’라며 작은형을 매우 안쓰러워했다. 작은형이 거부하지 않았다면 몇 날 며칠을 그의 곁에 붙어 간호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사건은 작은형의 눈꺼풀에 긴 흉터를 남겼다. 아버지는 그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성화였다. 작은형은 아버지를 말렸지만 그 외에는 누구도 아버지의 생각에 반기를 들지 않았다. 우리 가족에게 끼친 폐를 생각하면 그 여자도 한번 당해봐야 한다는 것이 일반론이었다. 결국 이틀 뒤 아버지는 단단히 준비를 하고 그 여자의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고소는커녕 땡전 한 푼 받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바로 그날. 우리들이 떠난 뒤 그녀는 가장 후미지고 어두운 골목으로 기어들어 가 그 칼로 손목을 베었다고 한다. 그러나 손목의 창상이 죽음의 절대적인 원인은 아니었고, 이로 짓씹은 혀의 상처와 새벽의 추위가 그에 한몫을 거들었다고 했다. 나는 거기에 한 가지 사유를 슬쩍 덧붙여 보았다.
고독, 이라고.
나는 그녀가 어둠에 잡아먹혔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런 동화적 상상이 통용되지 않는 나이임에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깊은 밤 나는 가끔 그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흐르던 그녀의 눈을 기억해냈다. 나는 그녀라는 개체에 아무런 호감도 지니고 있지 않았으나 그녀의 고독에는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지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려놓아야 하는 도박의 마지막 수처럼 그녀는 큰형에게 매료되었고 그 대가로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았다.
누구도 다시는 그녀의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특히 큰형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물론 작은형의 눈의 상처를 볼 때면 가끔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분노하는 듯했지만, 작은형은 일절 말이 없었고, 셋째 형은 돈을 받아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아쉬워했다.
그렇다. 그것은 내게만 떠맡겨진 감정이었다. 누구도 그것을 짊어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게 떠넘겨진 그것을 가방 깊숙한 곳에 집어넣고 가끔 생각난 듯 꺼내보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것의 묵직한 무게를 느끼며 조금씩 빛이 바랬다. 결코 가볍지 않았다. 죄책감의 무게는. 가벼울 리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녀와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괴로웠기에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게 모든 것을 떠맡겨버린 세 사람이 미웠다. 차라리 칼에 베인 것이 나였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종종 창이 흔들리는 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 나는 어둠을 극도로 무서워하게 되었다.
* * *
몇 안 되는 나의 소지품 중에 제법 견고한 저금통이 하나 있었다. 딴에는 꽤 절약 정신이 강했는지 저금통이 꽉 차도록 돈을 모으곤 했다. 다만 말 못 할 고민이 있다면 그 저금통이 가끔씩 아무 이유 없이 축나는 것이었는데. 물론 범인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셋째 형을 미워하는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면 어떻게 반응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런 셋째 형이 가여워, 나는 늘어가는 저금통의 빈자리에 대해 눈물을 머금고 함구했다. 동전에서는 피비린내 비슷한 금속 특유의 쇳내가 났다. 그래서 나는 그 일로 속이 상해 눈물이 날 때면 ‘이것이 피눈물이구나.’ 하고 마음을 삭였다. 셋째 형의 손에서는 늘 시큼하고 비린 동전 냄새가 났다.
어린 시절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큰아버지가 -작은형의 친아버지- 돌아가신 뒤 적적하셨던 아버지는 가장 친한 친구와 의형제 비슷한 것을 맺었는데, 이후 우리 가족은 심심찮게 친구분 집을 방문하곤 했다. 마침 그분 아들이 우리와 비슷한 또래라 우리들은 곧잘 어울려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두가 함께 식사를 하고 돌아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분의 아들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그 아들의 저금통이 텅텅 비어버린 것이다. 집안은 발칵 뒤집어졌고 아버지는 친구분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꼭 범인을 잡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돌아섰다. 물론 우리들은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회초리 타작을 받았다. 아버지의 추궁은 끈질겼으나 우리들은 입을 열지 않았고 급기야 아버지는 우리에게 식사를 금지시켰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셋째 형이 자백했고 돈은 그 집 옆 공터에서 발견되었다.
셋째 형은 무섭게 혼이 났으나, 그 와중에도 손에서 먹을 것을 놓지 않았다. ‘자백하면 밥은 먹여주겠다.’고 말한 것은 아버지였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거나 매를 맞으며 입안 가득 감자를 욱여넣고 우물거리던 셋째 형의 그 얼굴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셋째 형이 우리 앞에서 영원히 모습을 감추기까지 나는 형과 대략 이십 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그에 대해 기억하는 바는 매우 단편적이다. 그는 아버지를 피해 집 밖을 떠돌았고 나는 주로 집에 웅크리고 있었으므로 우리들의 접점은 미미했다. 나는 그를 미워하려고도 해봤고 불쌍히 여기려고도 해보았으나 어느 쪽도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 불쌍하다고 여기기에는 그의 과오가 컸고, 밉다고 여기기에는 그의 인생이 너무 안타까웠다.
내가 지니고 있는 그에 대한 기억들은 대부분이 불경스러운 사고들로 점철되어 있다. 어쨌거나 세상에서 ‘나쁜 짓’이라 일컫는 일은 두루두루 빼먹지 않고 한 사람이니 어떤 의미로는 존경스럽기까지 할 정도이다. 아마 지금도 그는 내가 모를 그 어딘가에서 협잡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외도, 도박, 마약, 사기 등등. 게다가 그가 평생을 숨긴 그 비밀까지, 그 어느 것도 나였다면 감당하지 못했으리라. 어쨌거나 나의 형들은 나보다 통이 컸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셋째 형은 동네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니며 마약을 했다. 그 시절에는 의외로 마약을 구하기 쉬웠다. K고를 다니는 큰형도 반 친구에게 한 번 권유받아본 일이 있었다고 하니 보통 접하기 쉬운 게 아니었나 보다. 어쨌거나 셋째 형은 그에 꽤 심취해 있었다. 심지어 그는 내게 그것을 권하기까지 했다. 그는 아연실색한 내게 ‘한 번만 해 보그라. 마 뿅 간다. 쥐긴다카이.’라며 천진한 얼굴로 마리화나를 내밀었다.
그는 이후로도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내게 권하곤 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불쑥 나타나 경마 이야기를 하며 ‘고마 미치뿐다 아이가. 한번 해보라카이! 행님이 다 갈키 줄게.’라며 꼬드겼고 심지어는 멋모르는 나를 투견장에까지 끌고 가 한동안 나를 개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셋째 형의 옆에 있으면 되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큰형이나 작은형보다 셋째 형의 곁에 있는 편이 훨씬 즐거웠다.
셋째 형이 열일곱. 아니 열여덟 살이었던가. 여하튼 그 나이 즈음이 될 무렵. 한 부부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그 부부는 다짜고짜 셋째 형을 찾으며 우리 부모님에게 화를 냈다. 그들의 요지는 ‘아들 단속 좀 잘하라.’는 것이었는데. 우리 가족은 영문을 모르는 일이라 그저 멍하니 그들이 말하는 바를 듣고 있었다. 부부는 한숨을 쏟고 가슴을 치며 우리에게 자초지종을 들려주었다.
이야기인즉슨. 자신의 딸이 셋째 형을 따라 가출을 해 지금 이곳 부산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기실 그간 셋째 형의 행실을 따져보면 놀랄 일도 아니었으나, 우리들은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이야기였기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삼 일만에 집에 들러 옷만 갈아입고 나가는 일이 빈번했지만 워낙 잘 그러던 사람이었기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서울 사람이 어찌 부산 사는 우리 아들이랑….”
“우리 친척이 부산에 있어 얼마 전에 부산엘 들렀지요. 그때 우리 애는 방학이고 해서 시부모님 곁에 두고 왔어요. 적적하시기도 하실 테니 말동무나 되어드리라고요. 근데 이것이 시키는 짓은 안 하고 시내를 들락거리다 댁의 아들 패거리랑 만났다나 봐요. 순진한 것이 뭘 알겠습니까. 그저 사내놈들 하자는 대로 했겠지요. 나 참. 무슨 망조가 들었는지. 글쎄 이것이 댁의 아들놈한테 푹 빠져서는 서울로 올라오지도 않고 부산에 여관방 하나 잡고 버티는 겁니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 와서는 ‘오빠랑 결혼하기로 했어.’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얘 나이가 지금 열여섯이에요. 열여섯. 창피해서 말도 못 꺼내겠네, 정말. 여하튼, 그 소리 듣고 지금 이렇게 부리나케 내려온 겁니다. 네. 이제 아시겠어요?”
그야말로 황당한 이야기였다. 그쪽 부부와 우리 가족은 셋째 형과 여자아이를 찾기 위해 그 여관으로 달려갔다. 셋째 형의 친구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우리 가족을 말렸으나 아버지의 호통에 결국 앞장서서 셋째 형이 있는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방 안에서는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큰형은 머리가 아픈 듯 손등으로 눈을 지그시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작은형은 다리가 풀린 그쪽 어머니를 부축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쪽 아버지가 침통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 큰형이 마지못해 방문을 두드렸다. 방 안에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형의 친구로부터 열쇠를 빼앗아 벌컥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방 안에는.
예상대로 알몸의 두 남녀가 적나라하게 얽혀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으나 이내 손가락 틈으로 그 광경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여자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이불로 몸을 감추었다. 셋째 형은 술인지 약인지 모를 것에 취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늘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한달음에 달려가 그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셋째 형은 고통조차 못 느끼게 되었는지 머리카락이 뽑혀나가는 와중에도 실실 웃었다. 큰형이 방에 들어가 여기저기 떨어진 옷가지를 주워 그에게 입혔다.
나의 눈은 오직 여자아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젖은 등에 달라붙어 있는 긴 머리칼과, 아직 여물지 않은 하얗고 토실한 그 몸은 한창때의 소년에게는 코피가 터질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보지는 못했지만, 나의 얼굴은 아마도 그녀의 입술만큼이나 붉게 물들어 있었으리라.
처음에는 아버지 쪽에서 돈을 내어 사건을 무마하려 했으나 그쪽에서 우리에게 돈을 주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딸의 장래를 위해 입을 막아줄 것을 당부하는 돈이었다.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꽤 큰 액수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셋째 형과의 일이 이후 그 여자아이의 인생에 일으킬 파장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것도 적은 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나 미련하고 어두웠다. 세상이.
아버지는 ‘미운 놈은 미운 짓만 한다.’며 매질도 않고 셋째 형을 포기했고 어머니는 ‘발칙한 것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지금 벌써 몇 번이나 여자 문제로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는 거야? 이건 다 네가 전에 그 여대생이 뭔지 때문에 난리를 피워서 그래. 넌 대체 큰형이 돼서 하는 게 뭐니? 애들 망쳐놓는 거밖에 더해?’라며 애꿎은 큰형을 타박했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는 큰형에게 더욱 모질게 대했다. 나는 어머니가 큰형을 질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월 앞에는 장사 없다더니. 아니, 굳이 따지자면 ‘세월’보다는 ‘세파’의 문제였지만. 그토록 아름다웠던 어머니도 서서히 빛이 바래어 어느샌가 보통의 아주머니들 사이에 묻히게 되었다. 그들 무리에서 어머니는 물론 독보적으로 아름다웠지만 그것은 그들 위에 우뚝 서는 그런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조금 더 빛나는, 조금 더 특별한, 그뿐인 그런 아름다움이었다. 이를테면 이전의 어머니가 보통의 여자들과 다른 차원에 존재했다면 그즈음의 어머니는 같은 차원의 높은 자리에 존재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어머니를 쏙 빼닮은 큰형은 더할 나위 없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으니. 물론 여느 어머니였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만, 어쨌거나 어머니는 우리들의 그 어머니였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여신이었고 여신이고 싶어 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예속된 큰형은 그 옛날 신에게 바쳐지던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존재, 희생양과 같았다.
여신은 머지않아 희생양을 버려둔 채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녀의 은닉과 폭력으로 지탱되던 우리의 세계는 무너진다. 제단은 인간에게 완전히 개방되고 만다. 희생양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그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이미 그 모든 것을 보았다. 오직 나만이 아버지가 축조했던 그 신전을 추억하고 있다. 나에게는 불가피한 의무가 있다. 그래 이제.
그곳에 가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