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깨어나지 말아 줘
“…은아가요? 은아가 왜….”
청소를 하다 보면 어디로도 정리되지 않는 잡동사니가 한 박스는 나오게 마련이다. 여준에게 있어 사현에 대한 기억은 바로 그 잡동사니 같은 거였다. 그의 반듯하고 무난하며 간편한 인생의 어디에도 분류할 구석이 없는 것들. 모아 놓은 그대로 쓰레기봉투에 넣어 입구를 봉해 버려야 속이 편한 그런 것.
“…은아, 은아가…. 왜, 어쩌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소리야!”
벌컥 소리를 지른 장모가 여준의 멱살을 틀어잡고 달려들었다. 여준은 장모가 제 셔츠 앞섶을 쥐어뜯거나 말거나 어깨를 내리치거나 말거나 알지도 못한다는 듯이 은아야, 하며 허정허정 영안실 침대로 향했다. 은아는 눈 감은 채 말이 없었다. 은아야, 지오 엄마…. 불러도 대답할 사람 또한 그곳에는 없었다.
“은아야, 은아야….”
한참 후에야 장모를 떼어 놓은 처가 식구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뱉어 놓았다. 사흘째 제대로 잠들지 못해 혼란한 와중에 어렴풋이 이어지는 날카로운 말들은 질 나쁜 악몽 같았다. 여준은 두 눈을 쉼 없이 깜빡거리며 드문드문 귀에 들어오는 단어들을 차례로 늘어놓았다.
밤길…. 역주행…. 정면 충돌…. 현장에서 즉사….
“범인…, 범인은요? 범인은 지금 어디…. 뭡니까? 술이라도 마셨대요? 미치지 않고서야 왜 거기서 그런 속도로…. 그것도 차선을 거꾸로….”
“중환자실에 있네.”
“…….”
“술은 전혀 안 마셨다는데…. 경찰 말로는 그놈이 운전하던 차가 오른쪽 핸들 차라고, 아마 외국에서 오래 운전을 해서 헷갈린 거 아니었을까….”
허, 여준은 그만 탄식하듯 웃어 버렸다. 차선을 헷갈려? 그런 멍청한 인간 때문에 은아의 생이 끝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숨이 터지자 눈물도 흘렀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끅끅대는 여준의 등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장인이 차갑게 물었다.
“눈물은 나오나?”
“…….”
“은아가 그러더군. 자네 얼굴 못 본 지가 반년은 된 것 같다고.”
여준이 눈물로 부푼 눈동자를 느리게 깜빡였다. 은아는 지오를 낳을 때도 혼자였다. 안사람이 지금 양수가 터졌다고 해서…, 가 봐야 하는데…. 여준이 안절부절못하며 중얼거리자 부장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사무실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 애 있는 사람 누구누구지? 아, 박 책임이랑…. 그래, 김 주임도 얼마 전에 아들 봤지. 뭐야, 꽤 있네? 난 성 주임이 하도 유난이라 이 세상에 애 낳는 사람 성 주임 와이프밖에 없는 줄 알았네.’
‘…….’
‘뭐 해? 가서 일해.’
간신히 해방되어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배꼽이 깨끗해진 아기가 신생아실로 내려간 뒤였다. 은아는 돌아누운 채 얼굴조차 보여 주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면 안 돼? 아빠한테 내 건물 미리 달라고 할 테니까, 우리 그거나 잘 관리하면서 살자. 남들도 다 결국 그렇게 살고 싶어서 힘들게 일하는 거잖아. 자기만 마음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데 왜 싫다는 거야?’
집은 강남 소재 38평 아파트, 차는 아우디의 대형 SUV, 아내가 매일같이 백화점에 가서 쓰는 카드는 장모의 명의다. 이 상황에서 회사까지 그만두면 얼마나 대놓고 기생충 취급을 받게 될지 안 봐도 훤했다. 처가도 회사도 지옥이지만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회사가 나았다.
그런데 은아가 죽었다. 어이없고 황당하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해자는…. 지금 어떤 상탭니까?”
“뭘 들었어? 중환자실에 있다니까. 간신히 숨만 붙여 놨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거 없다고 했네. 온몸이 다 부러지고 터졌다는데.”
“그래도, 재판을 받게…, 아니, 벌을 받게 해야…. 은아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울며 주절거리던 여준이 불현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중환자실. 느리게 뇌까린 그가 영안실을 빠져나가 달려가는 동안 그를 막거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범인을 바로 만나는 일은 불가능했다. 여준은 면회 금지 팻말이 붙은 중환자실 앞에서 멍하니 선 채 욕지기를 삼켰다. 그런 여준에게 말을 건 것은 대기실 복도에 등을 붙이고 서 있던 젊은 남자였다.
“저, 혹시…. 성여준 씨 되십니까?”
여준이 퍼뜩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눈을 크게 뜬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던 남자가 거친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그 손을 맞잡은 여준이 힘겹게 물었다.
“예…, 맞는데, 어떻게 오신….”
“서초 경찰서 교통 조사관 오만진 경사입니다. 사모님 사건 조사 맡았습니다.”
“…아, 예. 예에.”
여준이 얼른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우습게도 사고 소식을 들은 이래 처음으로 마음 깊이 안도감이 번졌다. 아내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와 있는 사람.
“상심이 크시지요.”
오 경사가 말했다. 상투적인 표현이었지만 난생처음 받아 본 위로인 양 가슴이 벅찼다. 아랫입술을 짓씹은 여준이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저, 가해자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중환자실에 들어갔으면 재판 같은 건…. 아니, 애초에 어떤 놈입니까?”
“당장은 어렵지요. 일단 신원도 안 나왔어요. 신변을 파악할 물건도 없고 폰도 대포, 차도 대포. 의사들 말로는 소생 가능성도 거의 제로.”
“…그럼, 혹시 저대로 죽어 버리면 그건 또 어떻게….”
“그 경우엔 유족 분들 의사에 달려 있는데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일이 좀 복잡해졌습니다.”
말끝을 가볍게 올린 오 경사가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복잡해졌다고? 여준이 영문 모르는 눈을 하자 그는 몇 번이나 헛기침을 하며 말을 골랐다.
“처음엔 그냥 사고라고 생각하고 접근을 했거든요. 근데 가해자 핸드폰에서 사모님 사진이 나왔어요.”
“……?”
“사모님 차 번호판 사진도요.”
이명이 울렸다. 오 경사가 하는 말이 순간적으로 귀를 찌르고 그대로 빠져나간 듯했다. 중환자실에서 온갖 기계에 연결되어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이름 모를 남자, 그리고 그의 핸드폰에 은아와 은아의 차 사진이 있었다….
“그게…. 무슨…. 그 사람한테 왜 은아 사진이….”
듣기는 했으되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었다. 횡설수설하는 여준을 보며 오 경사가 낮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저희는 이게…. 이놈이 어디서 사주받고 한 짓이 아닌가 싶거든요. 조선족 킬러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
황망한 와중에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훑는 날카로운 눈동자를 느낄 수 있었다. 여준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사…, 주?”
“더 쉽게 말해서 보통 청부 살인이라고 하죠.”
청부 살인…. 말 그대로 더 쉽게 들리기는 했으나 여전히 은아와 연결할 수 없는 단어였다. 은아는 그저 부잣집에서 태어나 곱게 자란 여자일 뿐이다. 고집이 세고 어린애 같은 면이 있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고….
“말도 안 됩니다, 은아를 대체 누가…. 그럴 사람은 절대….”
“생명 보험 들어 놓으셨더라고요, 부인 앞으로.”
오 경사가 고저 없이 말했다. 그야말로 용건만 말한다는 듯이. 생명 보험? 잠시 어리둥절해 있던 여준이 곧 아, 하며 탄식했다.
“그건 아이 태어났을 때 서로 들어 놓은 겁니다. 제 생명 보험 수령자도 와이프로 되어 있어요.”
“마침 오늘이 그 보험 든 지 딱 1년하고도 하루 지난 날이고요.”
“…….”
“오늘부터 지급이 되네요, 보험료가.”
그 말을 듣고 여준의 머릿속에 스친 것은 생명 보험을 든 이유나 당위성 따위가 아니라, 어제가 아기의 첫 돌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군.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 낸 여준이 긴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요? 제가 의심받고 있는 겁니까?”
“주변인에게 다 하는 질문이니까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생보금 그거 얼마나 한다고요. 기껏해야 3억짜립니다. 제 처가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아보신 겁니까?”
“…….”
“와이프 외동딸이고, 처가 어른들…. 만나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은아 위해서라면 뭐든 해 주실 분들입니다. 돈이 탐났으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는데 은아를 죽여요? 제가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합니까?”
여준의 현실적인 변론은 다행히 경관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었다. 흠, 하며 한 발 물러선 오 경사가 중환자실을 눈짓하며 말을 돌렸다.
“그런데 뭘 조사해 볼래도 가해자가 저 지경이어서 말이죠. 의사 말로는 오늘 밤 넘기기가 힘들 것 같다더군요.”
“살려 놔야 합니다. 어떻게든 살려서 조사받게 해야죠. 도대체 왜 은아를….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놨는지…!”
“뭐…. 그렇죠. 맞는 말씀입니다.”
오 경사의 심드렁한 맞장구에 여준이 이를 악물었다. 반가웠던 마음은 사라지고 뻐근한 답답함만이 가슴을 채우자 숨이 막혔다.
역주행, 대포폰에 대포차, 은아의 사진…. 경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의미하는 바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쉬워 보였다. 가해자가 계획적으로 은아를 죽였다. 그것도 제 목숨을 버려 가면서.
“…….”
그러자 머릿속을 흐리게 스치고 지나는 나쁜 예감이 있었다.
“그럴 리가….”
천둥이 오기 전, 마른하늘에 고요히 구르는 길고 가느다란 벼락처럼.
“예?”
오 경사가 귀를 쫑긋 세웠다. 헉, 숨을 들이켠 여준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냥 잠깐….”
경관은 미심쩍은 얼굴을 하면서도 그 이상 묻지는 않았다. 여준은 아픈 머리를 싸쥔 채 뇌 주름 사이사이에 녹은 아스팔트처럼 들러붙은 불쾌감을 떨쳐 내려 애썼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가….
핸드폰 진동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얼른 받아 보니 장인이었다.
- 성 서방, 어딘가? 지오가 우는데.
“예? 아…. 지, 지금 가겠습니다.”
- 빨리 와서 어떻게 해 보게. 자네 장모가 애 우는 소리 듣기 힘들어해.
“예, 바로….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돌아보았다. 오 경사는 기다렸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 보셔도 됩니다. 바쁘신 분을 오래 붙잡아 뒀네요.”
“아닙니다, 아, 저…. 이거.”
고개를 숙인 여준이 지갑에서 얼른 새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제 연락첩니다. 혹시 뭐 알아내신 거나…. 제가 도울 일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아아, 네. 알겠습니다.”
“제가 있는 팀이 좀 바쁜 부서라…, 아니, 물론 저보다는 형사님이 더 바쁘시겠지만, 아무튼 바로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문자라도 남겨 주시면 확인하는 대로 바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 걱정 마세요.”
명함을 받아 들고 여준의 회사 이름과 직함을 확인한 오 경사의 한쪽 눈썹이 까딱 치켜 올라갔다. 대양화재 장기 보험 계획 팀 성여준 선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 봐도 알 듯했지만 여준은 말없이 돌아서 중환자실 복도를 빠져나왔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은아가 죽었고, 아이는 울고, 형사에게 의심받고 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쪼그려 앉았다. 머리가 울린다. 발밑이 푹푹 꺼진다.
영안실 복도에 닿자마자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대기실 의자에 뉘어진 채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악을 쓰고 있었다. 장모가 기다렸다는 듯 여준을 향해 일갈했다.
“어딜 다녀오는 거야? 애가 저러고 있는데!”
여준은 고개만 꾸벅 숙여 보이고 얼른 아이를 살폈다. 열은 없고, 기저귀도 아직 괜찮다.
“배고프니?”
낮게 묻자 아이는 한층 더 소리 높여 울었다. 그는 대기실 안을 두리번거리며 아기용품이 든 가방을 찾았다. 그러나 은아가 늘 분유며 기저귀를 넣어 가지고 다니는 꽃무늬 에코백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장모님, 은아 가방…. 장미꽃 그려진 에코백 혹시 어디 있는지….”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애나 좀 어떻게 해 봐!”
“…안…, 챙겨 오셨습니까? 지오 물건들이 다 거기에 있을 텐데요.”
말 끝나기 무섭게 와장창, 물건들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바닥에 널브러진 에코백과 젖병, 보온병 따위가 보였다.
“자네는 도대체 혼자 알아서 하는 일이 뭔가?”
가방 앞에 선 것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장인이었다. 여준은 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다 느리게 일어섰다. 보온병에는 은아가 타서 넣어 놓은 분유가 가득 차 있었다. 지오를 데리고 나갈 생각이었던 걸까. 그러다 마음이 변해서 친정에 맡겨 두고 혼자 갔었나…. 젖병에 분유를 옮겨 담고 흔드는 여준을 향해 아기가 두 손을 뻗었다. 툭 쥐면 바스라질 것처럼 작고 가냘픈 손가락이 허공을 옴짝 쥐었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응, 줄게.”
아기를 품에 안고 의자에 앉았다. 젖병을 입에 대 주자 두 손으로 쥐고 쭉쭉 빠느라 보들보들한 뺨이 동그라니 부푼다. 처가 식구들이 혀를 차며 나가 버리고 적막해진 대기실은 아이의 쌕쌕대는 숨소리와 우유를 빠는 소리로 가득 찼다.
우유를 급하게 먹지 않도록 젖병 기울기를 조절해 주던 여준의 손끝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숨을 쉬고 먹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마주하자 드디어 실감이 났다. 은아가 죽었다는 사실이.
“…….”
아랫입술이 터지도록 꽉 깨문 채 고개를 숙였다. 흑, 흐느끼자마자 목 아래까지 차 있던 울음이 와르르 쏟아졌다. 여준의 창백한 뺨을 적신 눈물이 아이의 턱받이며 이마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은아가 죽었다. 이토록 하루아침에, 이토록 어이없게. 팔꿈치로 눈물을 훔쳐 내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중환자실에서 죽어 가고 있을 가해자를 생각하면 속이 통째로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바-.”
그때 아기가 애매한 소리를 냈다. 동시에 따뜻하고 작은 손이 뺨에 닿았다. 눈을 떠보니 울음을 그친 아기가 동그란 눈으로 여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젖은 속눈썹을 무겁게 드리운 채로.
“…걱정돼?”
여준이 중얼거렸다. 아기는 알아듣지 못한 기색이었다.
“괜찮아, 아빠는…. 아빠가 너 지킬 거야.”
젖병을 떼어 내고 아기를 끌어안았다. 아기는 또다시 바-, 하며 손을 휘적거렸다.
“괜찮아….”
아기를 처음 품에 안던 순간을 기억한다. 화가 난 은아의 곁에서 몇 시간을 내리 사과하고 달래고 나서야 은아는 아기를 만나게 해 주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약하고 물렁물렁했다.
‘이름은 아빠가 지어 주셨어. 지오라고.’
뾰로통하게 말하던 은아의 얼굴을 기억한다. 창백하고 가칠해진 뺨을 감싸며 여준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은 이름이야. 미안해, 수고했어, 고마워….
‘여준 씨,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런 여준을 마주 안으며 은아가 말했다.
‘이번만 용서할 거야. 두 번 다시는…. 나 혼자 두지 마.’
그러나 그 말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
“…선배?”
쉰 목소리에 여준이 허억, 숨을 삼켰다. 환상이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 자리에 있는 것은 여전히 남자였다. 채 아물지도 않은 흉터가 강렬했다.
“안색이 나빠요.”
“…….”
“어디 아파서 온 거예요?”
남자, 사현은 정말이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여준의 숨이 한층 더 거칠어졌다.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왜 여기 있느냐고 물어봤죠.”
“…….”
“검사 받으러 왔어요. 뼈는 다 잘 붙었나, 장기는 제자리에 잘 있나, 그런 거.”
“…저리.”
“선배는 왜 여기 있어요?”
“저리…, 가.”
말을 뱉자마자 위장이 뒤틀렸다. 명치를 세게 걷어차이는 느낌이었다. 여준이 입을 막으며 웅크리자 남자가 물었다.
“속이 안 좋아요?”
그는 살짝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여준은 저도 모르게 절박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와줄 만한 사람이 없을까, 지금 이 남자에게서 나를 구해 줄 사람…. 동시에 응급실에 있는 아이가 떠올랐다.
“뭘 그렇게 찾아요.”
고저 없는 물음에 소름이 돋는다. 여준은 무의식중에 응급실을 향하던 시선을 애써 거둬들였다. 머리 위로 경종이 울렸다. 남자에게 아이의 존재를 들키면 안 된다. 이를 꽉 다문 여준이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선배.”
여기서 도망쳐야 해. 돌아서자마자 남자가 부르는 목소리가 뒷머리를 잡아챘다. 무시하고 걸음을 빨리 했지만 곧장 구두 굽 소리가 따라붙었다.
“…어디 가요?”
바짝 다가선 남자가 묻는 목소리, 귓속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듯 낮고 날카로운 말투에 여준이 진저리를 쳤다.
“선배.”
“…놔!”
뻗어 드는 팔을 있는 힘껏 뿌리쳤다. 사현이 슬쩍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얘기 좀 해요.”
“가까이 오지…!”
말을 채 맺기도 전에 어깨가 붙들렸다. 쇄골이 꺾일 듯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사현은 악, 낮은 비명을 지른 여준을 그대로 질질 끌어다 복도 중간의 화장실로 쑤셔 넣었다.
“놔, 놓으라고 했잖아. 이 개새끼…!”
“얘기만 하자고 했어요.”
“……!”
“조용히 대화 나누고 끝낸다, 여기서 난리 피운다, 어느 쪽이 마음에 들어요?”
사현은 시종일관 덤덤하고 평온한 어조였다. 여준이 어떤 선택을 할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우리 오랜만이잖아요, 선배.”
좁은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쿵, 사현이 닫은 문에 기대고 서자 여준은 금세 불안해졌다.
“문….”
“방해받기 싫어요.”
마른침을 삼킨 여준이 찬찬히 사현의 모습을 살폈다. 여준도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사현은 그런 여준보다 한 뼘은 컸다. 떡 벌어진 어깨나 근육으로 단단히 감긴 팔이 위협적이었다. 큰 사고를 당하고 오래 아팠던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선이 분명한 얼굴, 미간을 크게 가로지른 흉터만이 끔찍할 뿐이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뺨을 쓸어 올린 여준이 같은 질문을 다시 뱉었다. 사현은 별스러운 말도 다 듣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검사받으러 왔다니까요.”
“왜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니고 있냐고!”
“그러지 못할 이유라도 있던가?”
의아한 질문들이 하나씩 뱃속에 박힌다. 여준의 턱이 바들바들 떨렸다.
“사람을 죽여 놓고…!”
그 와중에도 ‘내 아내’라거나 ‘은아’라는 호칭은 나오지 않았다. 사현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사고였잖아요.”
한참의 침묵이 흐른 후에야 사현이 말했다. 여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멱살을 틀어쥔 채 온몸으로 부딪히자 그들의 몸에 떠밀린 문이 끼익, 거친 소리를 냈다.
“…너 지금 뭐라 그랬어, 사고…? 사고였다고?”
“그렇게 결론 났을 텐데요. 과실에 의한 사고였다고. 집유 떨어졌는데.”
“…….”
“선배만 몰랐나 봐요? 하긴 얼굴 한 번을 안 비치시더라.”
퇴원할 만큼 회복되었고 그대로 구속 조사를 받고 있다.
여준이 마지막으로 들었던 사현의 소식이었다. 그저 막연히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겠거니 생각했었다. 은아를 죽인 남자, 그리고 돈 있고 힘 있는 처가 식구들. 그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한 이 남자가 이토록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다닐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손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무릎이 꺾인 그대로 주저앉는 여준의 어깨를 사현이 붙들어 놓았다. 여준은 그의 검은 눈동자 가득 비치는 자신의 절망이 낯설어 시선을 돌려 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참…. 차가운 사람이네요, 선배는.”
그런 여준의 턱을 틀어쥔 사현이 딱딱하게 말했다.
“…뭐라고?”
“궁금하지도 않았어요?”
“…….”
“내 와이프 죽인 새끼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았다면 어떻게 됐는지….”
“…….”
“전혀 관심도 없었어요?”
사현이 사납게 웃었다. 유난히 날카로운 송곳니에 당장이라도 물어뜯길 것 같아 여준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궁금했다. 불안했다. 하지만 혼자 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녀야 하는 각박한 생활은 놀랍게도 그의 존재를 때때로 잊게 해 주었다.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였다.
“아니면.”
여준의 턱을 쥔 사현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아래턱이 그대로 으스러질 듯했다. 미간을 한껏 찌푸린 여준이 성긴 신음을 흘렸다.
“도저히 마주할 용기가 없었나?”
“…….”
“선배 특기잖아요. 보기 싫은 거, 듣기 싫은 건 안 보이고 안 들리는 데로 치워 놓고 처음부터 없었던 척 시치미 떼는 거.”
“닥쳐….”
“지금도 봐요. 입 막아 놓으면 끝난다고 생각하지.”
애원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10대의 끝자락이었다. 여준은 사현의 발치에 무릎을 꿇은 채 호소하고 있었다. 임사현, 제발, 사현아.
“선배는 항상 그랬어요. 비열하고, 치사하고…. 위선적이고 자기밖에 모르죠.”
사현아, 제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는데….”
제발.
“그랬었는데, 나는 왜.”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 줘.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 줘….
“나는 참 멍청했지.”
여준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현의 목소리도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가까워진 품에서 옅은 소독약 냄새가 났다. 등을 감는 손끝이 갈퀴처럼 느껴진다.
“처음부터 멍청했어.”
살면서 그토록 간절히 무언가를 소망해 본 적이 없었다. 여준은 남자가 자신을 끌어안고 힘을 주는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그날의 소원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사현의 다친 이마가 여준의 마른 어깨 위로 떨어졌다. 메마른 접촉이었다. 여준은 당장 그의 목을 졸라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기 위해 주먹을 힘껏 쥐었다.
***
“어머, 선임님. 오늘 출근 안 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마주친 은 주임이 놀란 얼굴을 했다. 여준은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대답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런 여준을 빤히 보던 은 주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다들 퇴근해서 아무도 없어요. 저도 가려던 참인데.”
“…네?”
“한 시간 전에 이사회 의사 결정 다시 들어갔거든요. 아예 백지로 돌리든가 다음 달로 넘기든가 할 건가 봐요. 그 얘기 듣고 팀원들 기운 빠져 있으니까 팀장님이 오늘은 다 오후 반차 쓰고 집에 가서 쉬라고….”
친절하게 말을 이어 가던 은 주임의 입술이 한순간 굳어졌다. 눈을 부릅뜬 여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선임님?”
“아. 아…, 그래요.”
뒤늦게 입을 연 여준이 제 얼굴을 거칠게 쓸어 올렸다. 아침에 팀장과 했던 통화가 머릿속을 스치고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열이 차올랐다.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은 주임이 어쩔 줄 모르고 여준 곁을 맴돌았다.
“전달이…, 안 됐나 봐요. 어떡하지….”
“괜찮아요. 정신없으면 그럴 수 있죠. 신경 쓰지 말고 먼저 퇴근해요. 난 정리 좀 하고 갈 테니까.”
손을 내저어 그녀를 밀어낸 여준이 제 자리로 향했다. 책상은 어제 퇴근 전에 그대로 두고 나온 서류와 각종 일거리들로 엉망이었다.
벌써 한 달을 매달려 있던 프로젝트다. 확정 일자가 코앞으로 다가올 동안에도 의사 결정이 나지 않아 매일 일도 없이 회사에 묶여 있어야 했던 기간만도 일주일은 된다. 그때도 아이는 꾸준히 아팠다. 어찌나 자주 열이 나고 설사를 하는지, 한 번은 휴가를 내고 종합 병원에도 데려갔었다. 혹시 어딘가 큰 이상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아이는 멀쩡했다. 심지어 또래보다 머리가 좋고 키가 크며 인지 능력 발달도 빠르다고 했다. 아버님 닮았으니 커서 미남이 되겠네요, 의사가 넉살 좋게 웃으며 건네는 말에도 여준은 웃을 수 없었다. 아이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에 놀랍게도 실망하는 자신이 있었다. 차라리 원인이 있는 거라면, 그것만 고치면 될 텐데….
“되는 일이 없어….”
중얼거린 여준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혼잣말이 늘었다. 가끔 눈물이 차오르거나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해지는 일에는 이제 익숙해졌다. 다만 한 번씩 혼자 욕설을 지껄이고 있는 스스로를 깨달을 때면 걷잡을 수 없는 자괴감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텅 빈 사무실에 앉아 이제는 재활용 쓰레기가 되어 버린 서류 더미를 뒤적이며 여준은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됐지? 뭐가 문제여서 언제부터 이 꼴이 되었을까.
***
세상이 어렵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받지 못해 괴롭다며 토로하는 대중가요 가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준에게 있어 세상은 언제나 쉽고 만만한 놀이터였다. 한 번 읽으면 외워지는 교과서, 눈만 마주치면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들. 간혹 시답잖은 질투에 시달리기는 했으나 ‘열등감’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게 된 후로는 그마저 우습게 여겼다.
학창 시절 동안 끊이지 않고 사귀었던 여자 친구들은 하나같이 학교에서 가장 예쁘고 가장 인기 있는 아이들이었다. 같이 노는 친구들은 돈이 많거나 잘생겼거나 춤을 잘 췄다. 단 한 번도 반장과 전교 회장 자리를 놓친 적 없었다. 10대의 소년이 이 세상은 나의 것이며 모두가 나를 사랑한다는 착각에 빠지기에는 충분한 시간과 환경이었다.
‘멘토요?’
친구의 사랑, 후배의 선망, 교사의 신뢰를 독차지하는 학생회장. 열여덟의 성여준은 그토록 완벽한 모습으로 교무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래, 성적 우수하고 품행 방정한 학생으로…. 한 열 명을 선발해서 1학년과 멘토, 멘티를 맺어 주자는 안이 나왔거든. 문제는 이게 우리 학교에서 처음 시행하는 거라, 이 결과를 보고 교육청에 심사가 올라가게 될 거야.’
‘네에….’
‘중요한 일인 거 알겠지? 그런데 이런 중요한 일에 우리 여준이가 빠질 수 없잖아.’
담임이 사람 좋은 얼굴로 여준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여준은 그린 듯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면 되는데요?’
‘음…. 솔직하게 말하면 좀 귀찮을 거야. 멘티 대상이 1학년 중에 반에서 겉돌거나…. 생활 지원금 받는 애들이거든. 한 번씩 공부 봐주고 상담 같은 거 해 주고 그러면 되는데, 딱 한 달이면 되니까. 응?’
듣자마자 귀찮겠다 싶었다. 학생회 일과 성적 유지만으로도 여준의 스케줄은 이미 빡빡했다.
‘근데 이거 잘되면 내년 수시 때 추천장을 받을 수가 있어. 그러니까…. 이 제도가 이번에 결과가 잘 나와서 정식 프로그램이 되면.’
‘…아.’
‘벌써부터 소문 듣고 자기가 꼭 그 멘토 하겠다는 애들 한 다스 있는데, 내가 특별히 여준이한테 먼저 말하는 거야.’
여준은 고개를 골똘히 기울인 채 고민에 빠졌다. 수시 추천장은 확실히 매력적이지만 그는 이미 지망 학교에 진학하기에 충분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민의 지점은 지금 담임의 제안을 거절해서 그와의 관계에 스크래치를 남겨 놓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무슨 소리야, 우리 준이만 한 인재가 세상에 어디 있어.’
못내 머뭇거리는 여준에게 담임이 큰 소리로 격려의 말을 건넸다. 난처해진 여준이 애매하게 웃었다.
‘저 그런 거 해 본 적이 없어서요, 자신이 없어요.’
‘이게 다 경험인 거야. 누구나 처음은 있잖아. 괜찮아, 괜찮아. 이름 쓴다?’
‘아, 선생니임….’
‘잘할 수 있다니까. 선생님도 좀 불안해서 그래. 이런 거 내가 너 아니면 누구한테 맡기냐?’
채 말릴 틈도 없이 기획서 맨 상단에 ‘성여준’ 세 글자가 적혔다. 여준은 에이, 하면서도 담임이 내미는 각종 프린트를 순순히 받아 들었다. 만족스럽게 웃은 담임이 살짝 목소리를 낮춰 여준에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멘티 애들도 이거 장학금 걸고서 하는 거라 협조적으로 나올 거야.’
‘…장학금요?’
‘그…. 집안이 좀 어려워서 학비 면제 대상인 애들 주로 뽑았거든. 잘되면 멘토 애들은 추천서 받고, 멘티 애들은 장학금 받고 그런 거야. 애들한테도 멘토들 말 잘 따르고 절대 대들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뒀으니까 아마 어려울 건 없을 거야. 귀찮아서 그렇지.’
그런 점은 처음부터 걱정하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이든 쉽게 제 편으로 만들어서 입 안의 혀처럼 굴릴 자신이 여준에게는 있었다.
‘괜찮지? 잘할 수 있지?’
‘전 몰라요. 선생님만 믿을 거예요.’
‘말하는 거 봐. 예뻐 죽겠어. 여기, 멘티 신청한 애들 명단 있으니까 보고 마음에 드는 애로 골라. 원래 학교에서 정해 주는 건데 여준이는 특별.’
산더미 같은 프린트 뭉치 위로 한 장의 프린트가 더해졌다. 증명사진과 이름, 반이 적혀 있었다. 무심히 프린트를 훑어보던 여준의 눈이 가장 아래 줄 중간에 걸렸다.
‘…….’
임사현, 1학년 7반. 카메라를 가만히 바라보는 눈이 흑백 사진 안에서도 유난히 검게 보였다. 빈말로도 유순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생김새지만 눈빛이 착해 보였다.
슬쩍 보니 알 것 같았다. 대체로 여준의 세계와는 인연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작은 학교, 그보다 더 작은 학급 내에서도 계층은 존재한다. 인사를 나누는 상대가 얼마나 많은지, 쉬는 시간에 얼마나 큰 소리로 말을 할 수 있는지, 체육복이나 교과서를 빌릴 수 있는 친구는 몇이나 있는지.
언제나 교실 구석에 앉아 조용히 하루를 보내고, 누구와도 인사 나누는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아이들. 원래라면 여준 역시 먼저 인사 건넬 일 없이 살아갔을 울타리 밖의 존재들.
‘얘로 할게요.’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담임은 선선히 웃으며 ‘임사현’이라는 세 글자 위로 여준의 이름을 썼다.
‘너무 애쓸 필요는 없어. 편한 대로 하면 돼. 알았지?’
‘네.’
‘그래, 선생님이 다 여준이 더 잘됐으면 해서 시키는 거야. 알지?’
‘맨날 말만 그렇게 하시구…. 저한테 심부름 다 시키실라구.’
‘들켰어? 잘 감춘 줄 알았는데.’
언제나 그랬듯 좋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는 끝났다. 교무실을 나온 여준이 후, 하고 긴 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득보다는 실이 많을 일이었지만 한 달뿐이니 참을 만하겠지 싶었다.
‘어.’
뒷목을 긁적이며 고개를 들어 올리던 여준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걸렸다.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던 상대도 여준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어쩔까, 고민하던 여준이 곧 상냥한 미소를 띠고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너 사현이지? 임사현.’
‘…….’
이름을 부르자 검은 눈을 커다랗게 뜬다. 뭐 이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의아했지만 티 내지 않고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멘티 때문에 온 거야? 아, 나 성여준이야. 2학년.’
‘…알아요.’
‘응, 너 멘토 내가 하기로 했어. 다음 주부터.’
안 그래도 크게 뜬 눈이 한 번 더 확장되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여준의 얼굴을 빤히 보던 사현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왜? 나 마음에 안 들어? 바꿔 달라고 할까?’
여준이 넉살 좋게 묻자 사현이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어찌나 격렬하게 도리질을 치는지 덥수룩한 앞머리가 채찍처럼 흔들렸다. 여준은 그만 진심으로 웃어 버렸다. 짜식, 귀여운 구석이 있네.
‘근데 나도 이런 거 처음이라서 뭘 해야 하는지 잘 몰라. 멘토라는 말도 쑥스럽고.’
‘…….’
‘그래서 말인데 내가 특별히 해 줬으면 하는 거 있어? 공부 봐주면 좋겠다거나 그런 거.’
‘아, 아뇨….’
‘그럼 생각해 놔. 다음 주까지.’
어깨를 두드리려 손을 뻗자 사현이 흠칫 놀라 물러섰다. 다소 격앙된 듯 눈가가 붉었다. 영문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준은 별말 없이 손을 거둬들였다.
‘음, 그래. 그럼…. 들어가 봐.’
‘…네?’
‘교무실에 볼일 있어서 온 거 아니야?’
문을 가리키며 묻자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사현이 느릿하게 아, 하고 탄식했다. 그대로 머뭇머뭇 서 있던 그가 곧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제 됐어요.’
‘응?’
‘볼일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끝까지 모를 소리를 중얼거린 사현이 천천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순종적인 몸짓이었다. 원래도 걱정 따윈 안 했지만…. 더더욱 필요가 없었네. 뒤돌아 멀어지는 사현의 뒷모습을 보며 여준은 생각했다.
하여간 아웃사이더들이란, 사람이랑 말 좀 섞었다고 얼굴이 시뻘게져서야.
***
‘뭐? 임사현?’
식판을 핥아먹을 기세로 급식을 비우던 영재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양손에 나눠 쥔 채 메추리알의 노른자를 분리하던 여준도 함께 외쳤다.
‘아, 실패했잖아!’
‘그런 건 좀 한 입에 먹어라, 징그러운 새끼야. 근데 지금 뭐? 누구한테 멘토를 해 줘?’
‘1학년 애라니까. 벌써 한 번 인사도 했어.’
‘아니, 이름이 뭐라고? 임사현? 맞붙는 인간마다 임사 현상 체험시켜 줘서 이름이 임사현이라는 그 새끼 말하는 거 맞아?’
여준이 두 번째 메추리알을 조심스레 집다 말고 멈칫했다. 이건 또 웬 유치한 타이틀이야.
‘이름이 임사현은 맞는데…. 뭐야? 노는 애야?’
‘걔를 노는 애라고 해야 하는지….’
‘그런 애로는 안 보이던데. 사납게 생기긴 했는데 착해.’
‘너한테 착하게 굴어? 역시 여준마리아….’
‘시끄러.’
숟가락을 치켜드는 시늉을 하자 영재가 얼른 두 손으로 이마를 가렸다. 식판을 들고 지나던 여학생들이 그런 여준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웃었다. 급식실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중간 자리는 언제나 여준과 그의 친구들 차지였다.
‘걔 유명해. 학교에서는 딱히 사고 안 치고 지내서 선생님들은 잘 모르는데 밖에서는 완전 날리고 다녀.’
‘무슨 소리야? 싸움질을 하고 다니는 애면 어떻게 선생님들이 모를 수가 있어?’
‘애들 싸움 수준이 아니니까 모르지. 걔는 차원이 달라. 조폭들이 이미 점찍고 자기 끄나풀로 키우고 있대.’
여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영재는 본래 이야기를 과장해서 지껄이며 오버하기를 좋아하는 친구였다. 아무리 그래도 조폭 끄나풀이라니, 이게 무슨 90년대 B급 영화도 아니고.
‘웃네? 또 못 믿는 거지?’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을지 말지 고민이라도 하지.’
‘진짜라니까. 내 사촌 동생이 걔 싸우는 거 본 적 있는데 무슨 액션 영화 보는 줄 알았대. 벽 타고 뛰어서 드롭킥을 날리는데 같이 싸우던 애가 한 대 맞고 기절해서 실려 갔대.’
‘드롭킥 같은 소리 한다. 밥이나 먹어.’
시큰둥하게 핀잔을 주고 국을 마저 퍼먹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영재는 끊임없이 임사현의 무용담을 제 이야기인 양 늘어놓고 있었다. 20명을 상대로도 이긴다느니, 배운 무술만 합이 10단이 넘는다느니, 여차하면 연장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느니, 종류도 여러 가지에 앞뒤도 안 맞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걔 빡 돌게 하면 너 쥐도 새도 모르게 시멘트에 묻히는 수가 있다.’
‘저주를 해라. 진짜 그런 애 아니었다니까. 사람 눈도 잘 못 마주치던데 조폭은 무슨….’
‘엥? 정말? 그럼 다른 앤가? 혹시 임사현이 둘인가? 그럴 만큼 흔한 이름 아닌 것 같은데.’
그때 1학년들이 급식실로 들어섰다. 교칙 상 1학년은 2학년보다 10분 늦게 급식실에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별생각 없이 훑어본 행렬에서 여준은 어렵지 않게 사현을 찾아냈다.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컸기에 금방 눈에 띄었다.
‘어, 저기 있다.’
눈이 마주친 것을 확인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또 잠시 머뭇대던 사현이 공손히 머리를 숙여 보였다. 여준이 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 영재가 입을 떡 벌린 것도 그때였다.
‘…그 임사현이잖아!’
영재가 목소리를 낮춘 채 날카롭게 속삭였다. 여준은 못 들은 척 다 비운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야, 야, 어디 가? 너 그러다 죽어.’
‘사현아, 안녕.’
여준이 다가가자 사현이 주춤 물러섰다. 가까이 올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주위에 있던 1학년들도 한마음인 듯 여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오늘 가지 튀김 먹지 마. 되게 맛없어.’
‘…아.’
‘장조림 많이 떠. 장조림은 맛있어.’
친근하게 말을 붙이고 씩 웃자 사현이 시선을 피했다. 사나운 눈매가 또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런 녀석이 싸움질은 무슨. 영재를 속으로 비웃으며 작별 인사를 하려는데 사현이 별안간 여준의 식판을 덥석 쥐었다.
‘…제가.’
‘응?’
‘제가 갖다 놓을게요.’
‘어? 아니야, 너 줄 서야지.’
‘괜찮습니다.’
뭐라 더 사양하기도 전에 억지로 식판을 빼 간 사현이 성큼성큼 반납대로 향했다. 여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의 등을 바라보다 같은 줄에 서 있던 1학년들을 향해 돌아섰다.
‘어…. 미안한데, 쟤 돌아오면 다시 줄에 좀 끼워 줄래?’
‘…네에.’
‘고마워, 밥 맛있게 먹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사현에게로 향했다. 사현은 반납대 줄에 선 채 식판을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현아.’
툭 치며 다가서자 흠칫 놀라 돌아본다. 볼수록 희한한 녀석이었다. 여준이 민망한 기색으로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 식판 지저분하지. 내가 알 종류 불문하고 노른자를 못 먹어서…. 계란 들어간 국이나 프라이나 메추리알 이런 거 나오면 좀 그래.’
‘노른자….’
‘알레르기 있거든. 심각한 건 아니고 그냥 목 가렵고 기침 나고 그 정도. 근데 그것도 증상 나오면 귀찮으니까….’
‘네.’
사현이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대화가 끊겼다. 붕 뜬 정적에 음, 하며 입술을 적신 여준이 말을 이었다.
‘근데 사현아, 이런 거 안 해도 돼. 너한테 내 수발들라고 멘토하는 거 아니야. 그거는….’
‘알아요.’
무 자르듯 여준의 말을 썩둑 끊어 버린 사현이 잔반을 버리고 식판을 반납했다. 묘하게 냉랭한 말투였다. 여준은 눈을 깜빡이며 그의 옆모습을 보다 말고 뺨을 긁적였다.
‘저도 멘토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에야 사현이 말했다. 잠깐 보였던 차가운 말투는 간데없이 다시 온순하고 순종적인 말이었다.
‘그냥…. 저는 원래.’
‘응?’
‘선배랑 가까워지고 싶었어요.’
직설적이고, 그만큼 알아듣기 쉬운 고백이었다. 여준에게는 그리 특별한 순간이 아니기도 했다. 여준이 응, 하며 활짝 웃었다.
‘근데 우리 이미 가까워졌잖아.’
‘…….’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애쓰지 않아도 돼.’
그는 사현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 물러섰다.
‘나 그럼 가 볼게, 친구들이 기다려서.’
급식실 입구 쪽을 가리키는 여준에게 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봐, 사현아.’
‘…네.’
웃으며 손을 흔든 여준이 친구들과 함께 급식실 밖으로 사라진 후에도 사현은 한참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여준의 모습이 창문 너머로도 비치지 않을 만큼 멀어진 뒤에야 그는 걸음을 옮겼다. 그를 알아본 학생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내주었다. 사현은 그대로 급식실을 나가 교실로 향했다.
***
「여준 씨, 오늘 미리 연락 못 해서 미안해. 의사 결정이 갑자기 번복돼서 상무님한테 계속 불려 가느라 나도 정신이 없었어. 여준 씨가 오후에 온다고 한 것도 깜빡하고 있었어. 정말 미안.」
선잠에서 깨어나니 팀장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여준은 핸드폰을 꼭 쥔 채 한참 화면을 내려다보다 천천히 답장을 적었다.
「아닙니다, 은 주임이 말해 줘서 저도 정리만 하고 바로 퇴근했습니다.」
전송을 하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팀장이었다. 여준은 링거를 맞고 잠든 아이를 힐끔 보고 병원 복도로 나섰다.
- 여준 씨, 지금 어디야?
팀장은 아침에 통화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걱정스럽고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다. 여준은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병원에 와 있습니다. 애가 아직 열이 안 잡혀서, 내일까진 입원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사람 구해 놨으니까 내일 출근에는 지장 없을 겁니다.”
- 아아, 아니야. 그런 거 때문에 물어본 게 아니고…. 지금 팀원들 몇 명 모여서 술 한잔하기로 했거든. 혹시 나올 수 있으면 오라고 하려 그랬지.
“아….”
- …저기, 여준 씨. 아니, 성 선임.
팀장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뻔히 보인다. 무테안경을 여러 번 고쳐 쓰며 말을 고르느라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고 있을 것이다. 여준은 표정 없이 네, 하고 대답했다.
- 아침에는 내가 미안해. 당장 내일까지 약관 마감해야 할 상황인데 여준 씨가 갑자기 못 오겠다고 하니까…. 여준 씨도 알잖아. 팀원들이 분담할 수 있는 건 하면 되지만, 딱 여준 씨밖에 못 하는 일들도 분명히 있잖아.
“…네.”
- 그래도 애가 아프다는데 말 그렇게 한 건 내가 실수했어. 미안해. 아까 퇴근해서 좀 자고 나니까 그제야 나도 제정신이 들었어. 성 선임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닌데.
“아닙니다, 저 때문에 고생 많으신 거 압니다.”
팀장은 아마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가 여준의 아이나 처가 문제로 여준을 공격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당연히 이런 식으로 사과하는 것도 처음이 아니다. 여준은 이제 와 그에게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 내일은 천천히 나와. 애는 좀 괜찮아? 뭐 어디가 안 좋고 그런 건 아니래?
“예, 그냥 장염이라고….”
- 그 나이 애들 원래 자주 그래. 자주 아프고 하루 종일 사람 힘들게 해. 내가 알아, 여준 씨. 나도 애 키워 봤잖아. 몰라서 그런 게 아니야.
“예, 팀장님.”
- 정말 미안해, 응? 사과 받아 주는 거지?
“사과는요, 무슨…. 제 잘못인데요.”
팀장은 기어코 여준의 입에서 괜찮다는 말까지 끌어내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 그나마 회복됐던 기운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도로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여준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은아의 장례식이 끝나고, 장모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려 했다. 아직 잘 걷지도 못하던 아이는 처가 운전기사의 품에 덜렁 안긴 채 손가락을 쭉쭉 빨고 있었다. 앞을 막아선 것은 단순히 아이가 울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던 처가 식구들의 모습을 떠올려서는 아니다.
자신이 없었다. 지옥 같은 회사에서 벗어나,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으로 돌아갈 자신이. 하루아침에 은아가 사라진 상황에 아이마저 없으면 그대로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무릎까지 꿇으며 매달려 빌고 나서야 장모는 아기를 두고 돌아갔다.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장모를 대할 때면 기억이 드문드문 끊길 때가 많았다. 대신 한 번씩 발작적으로 그녀가 쏘아 댔던 말이 생생하게 살아나곤 했다.
‘자네는 대체 똑바로 하는 게 뭐야?’
송곳으로 찌르고 들어오는 듯한 소리에 어깨가 벌컥 튀어 오를 때면, 이렇게 사람이 미치는 거구나 싶었다.
“…방! 성 서방!”
환청은 지나치게 명료했고, 여준은 핸드폰을 움켜쥔 채 두 귀를 막았다. 바늘이 촘촘히 박힌 헬멧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두통약…. 중얼거리며 고개를 든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장모와 눈이 마주쳤다.
“…헉.”
놀란 여준이 크게 휘청거렸다. 장모는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한 그가 결국 바닥에 주저앉는 것을 한심한 듯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뭐 하는 거야? 사람이 불러도 듣지를 않고.”
“…….”
“지오 데려가려고 왔네. 지금 퇴원해도 된다고 하니까 바로 데려가겠네.”
“…예? 네? 장모님, 그게 무슨….”
여준이 엉거주춤 일어나는 사이 그녀는 쌩하니 병실로 들어가 버렸다. 장모가 대동하고 온 운전기사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지오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장모님, 잠시만요.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자네 지오 직접 키우겠다면서 데려갈 때 나한테 뭐라고 했나?”
“…….”
“부족한 거 없이 다해 줄 수 있댔지? 혼자여도 모자람 없이 잘 키운댔지? 근데 지금 지오 꼴을 봐, 이래도 자네가 할 말이 있어?”
장모가 가리킨 자리엔 겁먹고 초췌해진 아이가 주저앉아 있었다. 아이는 외가 식구들을 무서워했다. 아이가 잠시라도 울면 소리를 지르거나 문을 닫아 버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이를 맡겨 놓으면, 그러면….
“…….”
장모에게 맞설 각오를 다지던 여준의 가슴이 순간 서늘해졌다. 애초에 아이가 왜 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그제야 떠올랐던 탓이다. 우는 소리가 짜증스러워 귀마개를 쑤셔 넣고 새벽까지 잤던 제 모습이 머리를 스치고, 이어 방금 전 들었던 팀장의 말이 겹쳐졌다.
‘자고 일어나니 나도 제정신이 들더라.’
그런 건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 그때마다 똑같은 말로 사과하는 그가 한심하고 싫었다.
그런데 나는 내 애한테 그러고 있잖아. 애한테 한 달에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그딴 계산이나 하면서. 여준의 온몸에서 힘이 풀려나갔다. 그사이 윤 기사는 보스턴백 하나를 아이의 짐으로 채워 어깨에 둘러메었다.
“아주 데려가겠다는 게 아니야. 친권이고 양육권이고 다 자네 거라는 거 나도 알아. 근데 자네 요즘 집에 얼마 들어가지도 못한다면서? 그런 기간에라도 지오를 맡아 주겠다는 거야.”
아이는 어쩔 줄을 모르고 어른들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윤 기사가 안아 올리는 손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장모의 말마따나 남의 손을 타는 데에 이미 익숙해진 것이다.
“…지오야.”
의사 결정은 미뤄졌다. 당분간은 정시에 퇴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만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번 주말에는 출근이 없을 테니까 지오를 데리고 놀러 간다거나….
“…….”
아이는 윤 기사의 목을 끌어안은 채 여준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럴 때의 아이는 나이를 많이 먹은 작은 개처럼 보였다. 작고, 나약하고, 하지만 이미 자신의 운명을 충분히 알고 있는 존재.
“…할머니네 가 있을래? 그러고 싶어?”
그 눈에 대고 더 이상 어떤 말도 꺼낼 용기가 없어, 여준은 결국 또 가장 비겁한 방책을 선택하고 말았다. 은아가 죽은 뒤 어른의 눈치를 보게 된 아이는 이런 식으로 은근히 건네는 질문에서 요령 좋게 정답을 말하곤 했다.
아이는 여준의 눈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처가에는 아예 지오의 방이 따로 있었다. 아이 침대가 있고, 장난감이 있고, 태블릿PC와 게임기가 비치된 방. 그 방에 들어가면 밥때나 화장실 갈 때가 아니고서야 방문 밖을 잘 나서지 못한다는 것도 여준은 알고 있었다.
“그래, 그럼…. 음…. 아빠가…. 열 밤만 자고…. 데리러 갈게.”
아이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장모는 허정허정 주차장까지 따라오는 여준을 곁눈질하며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자네, 애한테 너무 벌벌거릴 거 없어.”
“…예?”
“자식이야 키워 놓으면 부모 품 떠날 존재인데.”
도대체 영문을 모를 말이라 여준은 그만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모의 입에서 나올 말은 절대 아니었다. 그녀가 은아를 얼마나 자신의 분신처럼 여겼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여준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냥 우리 집에 맡겨 놓는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란 말이야.”
“-장모님.”
“도대체 이해를 못 하겠어. 도와주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잘 길러 주겠다는데 왜 미련한 고집을 부리면서 애까지 고생을 시켜?”
좁은 엘리베이터 안은 금방 숨 막히는 공기로 가득 찼다. 아이는 윤 기사의 품에 폭 안긴 채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장모가 여러 번 했던 말이다. 내가 키워 줄게. 우리 집에서 잘 돌볼게. 여준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재산도 있는 처가에서 아이를 데려다가 양질의 교육을 시켜 주겠다 하면 쌍수 들고 환영해야 맞는 게 아니냐고.
그때마다 여준은 묻고 싶었다. 그러면, 지오를 처가에 넘겨주면 나는 어떻게 해?
왜 지오를 갑자기 잃어버릴 내 마음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
“아빠.”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입구 앞에 대기시킨 으리으리한 차가 보였다. 윤 기사와 장모가 미련 없이 내렸다. 여준이 따라오는지 마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여준은 멍하니 선 채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아이의 모습을 쫓고 있었다. 아이는 문이 닫히기 직전 한껏 울상을 짓더니 소리 없이 두 손을 여준에게로 뻗었다.
“…….”
좁은 문틈으로 손을 비집어 넣은 여준이 얼른 그 뒤를 쫓았다.
“장모님,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또 뭔가?”
윤 기사가 열어 준 문 앞에 서 있던 장모가 짜증스레 되물었다. 여준은 최대한 침착하기 위해 빠르게 심호흡을 했다.
“장모님이 무슨 말씀하시는지는 이해했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정말 도움이 필요하면 앞으로는 제가 먼저 연락을 드릴 테니까 오늘은….”
물론 말이 제대로 통할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장모는 여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벌컥 언성을 높였다.
“뭐? 정말 도움이 필요하면?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내가 하는 짓은 쓸데없는 오지랖이라 이건가?”
“…이번 주에는 바로바로 퇴근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아예 엎어졌어요, 새로 뭔가 계획이 나오기 전까진 제가, 시간이 괜찮으니까….”
“여기까지 온 사람한테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 자네는 도대체 매사가 왜 이 모양이야? 내가 얼마나 우스우면!”
장모가 들고 있던 클러치를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카랑, 사슬 장식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여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한층 더 비굴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죄송합니다. 미리 설명 드렸어야 했는데 저도 아까 연락을 받았습니다. 걱정해서 와 주셨는데, 절 도와주시려 한 건데, 정말 죄송하….”
“물러서게.”
“…예?”
“물러서라고! 자네가 뭐라든 오늘 지오는 내가 데리고 갈 거야! 윤 기사!”
어느새 아이를 카시트에 앉혀 놓은 윤 기사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여준이 장모님, 하며 앞으로 나섰지만 당연히 윤 기사가 빨랐다. 우악스러운 손에 떠밀린 여준이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아무리 그래도 장서 간인데 수행원에게 이런 대우를 받게 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장모님, 지금 이건…. 이러시는 건 아니잖습니까.”
“윤 기사, 문 닫게.”
“장모님!”
“그만하세요, 다치십니다.”
윤 기사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여준은 개의치 않고 차 문을 붙들려 했다. 장인이나 장모에게 그렇게 인격적으로 존중받아 본 기억은 없지만, 이렇게까지 대놓고 선을 넘은 적도 없었다.
“장모님, 이게 뭐 하시는 겁니까?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실 수…, 윽…!”
문손잡이를 잡자마자 팔목이 비틀렸다. 여준의 팔을 쥐어 떼어 놓은 윤 기사가 그대로 그를 내팽개쳤다. 중심을 잃고 주차장 기둥에 등부터 처박힌 여준이 한껏 앓는 소리를 냈다. 모욕감으로 머리가 핑 돌았다.
“그만하시죠, 지오가 봅니다.”
윤 기사가 애석한 듯 타이르는 말에는 눈물마저 차올랐다. 짧은 순간 벌어진 모든 일에 현실감이 없었다. 넋을 잃은 여준이 벌겋게 부푼 눈으로 윤 기사를 올려다보았다. 윤 기사라고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는 여준과 은아가 결혼식을 올리던 날 공항까지 웨딩카를 운전해 준 사람이었다. 여준은 그에게 농담을 건네며 함께 웃었고, 돌아오는 길에 선글라스를 사서 선물했다. 선물 쇼핑백을 손에 쥔 채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하던 그 얼굴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가 사모님께 나중에 잘 말씀 드릴….”
한참 여준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던 윤 기사가 침울하게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쾅, 엄청난 소리가 먼저 들렸다.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너무 빨라 따라갈 수 없었다. 여준이 헛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돌렸다. 벌어진 광경은 또다시 여준의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들이닥친 검은 인영이 윤 기사를 바닥으로 쓰러뜨려 놓고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
뻐억, 돌 같은 주먹이 내리찍힐 때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핏방울이 튀어 오르고 윤 기사의 팔다리가 경련했다. 어, 어어…. 멍청한 소리를 내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 여준이 무턱대고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그만.”
팔을 붙들고 매달렸지만 윤 기사의 목을 조른 손까지 떼어 낼 순 없었다. 남자는 시퍼렇게 날이 선 눈으로 오로지 윤 기사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피범벅이 된 윤 기사는 이미 정신을 잃은 뒤였다. 축 늘어진 그의 목에서 남자의 손가락을 떼어 내기 위해 여준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그만, 그만해…. 놔! 이거 빨리 놔!”
“…….”
“놓으라고, 이 미친 새끼야! 놔!”
날카롭게 외치자 그제야 남자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미간을 반으로 가른 섬뜩한 흉터 양옆으로 새카만 눈이 번득였다. 가지런한 뺨에는 윤 기사의 피가 튀었고 꾹 다문 입술은 평생 열리지 않을 것처럼 단단했다.
“미쳤어? 뭐, 뭐 하는 거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장모는 차 문을 잠근 채 미동도 없었다. 사현을 힘껏 밀친 여준이 눈물을 훔쳐 내며 윤 기사를 살폈다. 혹시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축 늘어진 모습에 덜컥 겁이 났다.
“구, 구급…. 아니, 응급실….”
“…선배.”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당장 응급실로 달려가 사람을 불러오는 것. 그러나 음산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가 귀에 감기자 한순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하아, 가빠 오는 숨에 가슴이 뻐근해졌다. 여준은 제 셔츠 옷깃을 움켜쥔 채 신 침을 삼켰다.
“선배.”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였다. 슬쩍 고개를 기울인 사현에게서 쏟아지는 시선도 따가웠다. 사현은 놀랍게도 웃고 있었다. 입꼬리는 있는 대로 올라가고 눈에는 섬뜩한 살기가 돈다.
“참….”
“…….”
“꼴좋게 살고 있네요.”
온몸에 식은땀이 흠뻑 솟았다. 창백해진 여준의 얼굴로 사현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여준이 동시에 헉, 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파랗게 질린 입술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사현은 여전히 매끄러운 미소를 지은 채 손마디를 끝부터 차례로 접어 거둬들였다.
“무슨 드라마 보는 줄 알았잖아. 아침 시간에 자주 나오던데요? 혼자 아등바등 사는 여자가 좆같은 시댁에 애 뺏기지 않으려고 온갖 수모 당하면서 매달리는 거….”
“…저리….”
“꼴같잖아서 못 봐 주겠네.”
“…….”
“선배는 지금 본인 하는 짓이 안 우스워요?”
여준이 어금니를 꽉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현에게 이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비난을 이어 가는 그의 눈동자에 짙게 맺힌 회한이 순간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왜 이러고 살아요?”
“…….”
“진짜 모르겠어서 물어보는 거예요. 뭐가 모자라서 이러고 살아요? 직장이 없나, 가족이 없나, 친구가 없나…. 아침드라마 나오는 여자들은 다 고아에다가 찢어지게 가난하니까 그 궁상을 떠는 게 이해라도 가지. 선배는 부모도 있고 친구도 있고 돈도 있고 직장도 있는 사람이 왜 이딴 대접받고 사는 거예요?”
“…….”
“말 좀 해 봐. 당신 왜 이렇게 됐냐고.”
“…….”
“어? 성여준 이 등신 새끼야.”
낮게 뇌까린 사현이 여준의 멱살을 힘껏 틀어쥐었다. 놀란 여준의 몸이 벌컥 튀어 올랐다. 맞는다, 때리려는 거야. 윤 기사처럼 초주검으로 만들고, 은아처럼 죽이려는 거야. 분노보다 두려움이 먼저 온몸 구석구석으로 끼쳐 들었다.
‘…선배.’
사현의 숨결이 가까워졌다. 동시에 의식 가장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기억이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어둡고 습한 반지하 방이었다. 열여덟의 여준은 먼지 쌓인 매트리스 위로 처박힌 채 단단하고 무거운 몸에 짓눌려 있었다. 비명을 질렀지만 소용없었다. 거친 손이 몸을 마구 더듬고 딱딱하게 발기한 살덩이가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노…, 놓….”
피가 식는다. 심장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뜬 채 굳어 버린 여준이 숨마저 멈췄다. 허옇다 못해 퍼렇게 굳어 버린 여준의 얼굴에 사현도 멈칫했다. 손이 떨어지자 이를 딱 부딪친 여준이 곧 온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
종종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일어나는 거부 반응이었다. 습하고 어두운 방, 곰팡이와 먼지 냄새, 뒷목에 닿던 거친 숨결과 어깨를 물어뜯던 힘과 통째로 잡아먹히는 감각. 울고 비명을 지르며 팔다리를 버둥거릴 때마다 곧바로 덮쳐들던 더 큰 힘과 절망과 무력감.
“…성여준.”
아내를 죽인 범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은아를 화장한 지 딱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다.
‘가해자 신원 파악 됐습니다. 아직 의식은 안 돌아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여준은 가해자의 생존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너는 누구인지, 왜 은아를 죽이려 했는지, 은아를 어떻게 알았는지….
당시 형사들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가해자가 은아의 내연남이었을 가능성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제 목숨까지 내던져 가며 은아를 해친 동기를 설명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여준에게는 짚이는 구석도 있었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그가 만약 은아와 내연 관계였다면, 그래서 은아를 죽인 거라면.
‘누굽니까? 어떤 새끼가 은아를….’
언젠가부터 은아의 핸드폰에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말없이 외출해 밤늦게 돌아오는 일도 잦았다. 어디에 갔었느냐 물어보면 친구를 만났다고 했다.
은아가 외도했던 거라면, 그래서 이런 일을 당한 거라면….
‘어…. 일단 이름은.’
그가 깨어나자마자 묻고 싶었다. 왜 은아를 죽였느냐고. 혹시 은아가 당신과 헤어지려 했던 거냐고. 그렇다면, 혹시 그런 거라면….
‘임사현이라고, N동 일대에서 활동하는 조폭 끄나풀입니다.’
…그런 거라면 은아는 돌아오려 했다는 말이니까.
‘…예?’
한참 뒤늦게야 되물었다. 오 경사는 여준의 황망함을 이해한다는 듯이 민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조폭 끄나풀이라는 건 일단 추측이긴 한데요. 직함은 N동에 있는 큰 클럽 팀장 같은 거고요. 근데 아마 확실할 겁니다. 신원 확인하러 온 놈이 깡추라고, 그 일대에서 유명한 대가리여서….’
‘…이름.’
‘예?’
‘이름이…. 뭐라고요?’
여준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잠시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던 오 경사가 침착하게 대답해 주었다.
‘사현이요. 임사현.’
‘…….’
임사현. 여준이 멍하니 그 이름을 곱씹었다. 임사현, 임사현…. 언젠가 비슷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임사현? 그 폭력배? …임사현이 둘이나 있을 법한 이름은 아닌데.
‘지금 내장 출혈을 못 잡아서 계속 쇼크가 오고 있어요. 신원 확인도 간신히 마친 상황입니다.’
진심을 내뱉는 일에도 기력이 필요하다. 여준은 바짝 말라붙어 있던 자신의 정신에 이만큼 강렬한 소원을 되뇔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현아. 임사현. 되뇐 이름 끝마다 피가 끓어오를 듯 뜨거운 갈망이 들러붙었다.
‘의사들 말로는 아마 소생하더라도 전처럼 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데….’
사현아, 제발. 여준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꽉 마주 잡았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쇼. 의료진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어떻게든 살려내서 법의 심판대에….’
사현아, 제발…. 깨어나지 말아 줘.
‘…예, 부탁드립니다.’
이대로, …아무 소리 없이 죽어 줘.